1. 전통적 과학관- 과학은 가치중립적 학문이다.? ‘과학’ 그 자체와 ‘과학자의 활동’은 구별된다. ‘과학’은 그 자체로 독립된 지식체계이며 객관적 대상으로 규정함. 따라서 과학자는 자신의 주관과 편견을 제거하고 오직 있는 현상 그 자체를 드러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자세가 곧 과학의 객관성을 보증해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실증주의적 과학관? 과학은 항상 합리적이고 엄밀한 학문이다. 즉 과학은 객관적이며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고 그 연구는 항상 엄밀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실증주의적 과학관은 1950년대 중반까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2. 정상 과학(Normal Science)- 정상과학은 기존의 지배적 패러다임 내에서 수행되는 과학활동을 말한다. 즉, 기존의 패러다임이 인정하는 규칙을 바탕으로 문제를 만들어 내고 풀어나가는 것이다. 현재 과학의 기본 패러다임에서 볼 때, 모든 과학적 이론(혹은 가설)의 입증은 인간의 관찰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서의 관찰은 우리의 5감(청각, 시각, 후각 등)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것으로 인식할 수 없는 초월적 감각, 예를 들면 제6감, 제7감 등으로 인식하는 것들은 기존의 패러다임이 인정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바탕으로 제기되는 주장들은 과학적 연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초심리학의 싸이(psi)나 기(氣)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것들은 현재의 패러다임으로는 연구할 수 없는 분야라는 것이다. 초자연현상을 다루는 많은 학자들은 따라서 현재의 과학적 도구틀 내에서 이것들의 존재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래야만이 기존 과학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쿤에 따르면 정상과학은 다음과 같은 2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 번째 특징 - 정상과학은 특정의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과학자들의 연구활동이다. 정상과학 기간에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을 보다 정교화하고 적용범위를 확장시키는 작업을 진행시키는데 이때 패러다임 자체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정상과학 기간에는 패러다임에 대한 시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 특징 - 쿤은 정상과학을 퍼즐 풀이활동(puzzle-solving activity)으로 보았다. 즉 주어진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문제를 어떻게 푸는가 하는데 대한 규칙이 존재한다고 보았다.3. 과학의 발달은 누진적인가?- 과학 지식의 진보는 누진적인 것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그러한 전환은 공약 불가능한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한 패러다임 내의 과학이 모순으로 부글부글 끓다가 위기가 닥친 순간 혁명적인 과학자에 의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당대의 천동설을 뒤엎은 지동설의 개가이자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뉴튼의 ‘만유인력’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도 패러다임 변혁의 예가 될 수 있다. 두 과학자의 업적들은 이전의 과학적 유산을 점진적으로 발전시킨 소산물이 아니라 질적으로 그 이전과 이후를 단절시키는 획기적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즉 과학의 발전이 전통 과학자들이 생각한 것처럼 새로운 지식이 차곡차곡 쌓여 누진적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4. 과학과 형이상학, 종교와의 관계- 형이상학과의 관계? 전통적 과학관에서는 과학은 가치 중립적이며, 신념이나 도그마, 그리고 형이상학은 과학의 적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쿤은 신념이나, 가치, 그리고 형이상학은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과학자들은 무전제한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하나의 도그마처럼 전제하고 있으며, 이러한 선입관이나 패러다임에 대한 신념과 더불어 연구작업을 수행한다. 과학이 과학자의 연구활동으로부터 분리 될 수 없는 한, 그리고 과학활동에서 이러한 신념의 선입관이 존재하는 한 과학은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 따라서 쿤에 있어서는 과학은 형이상학과 반드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형이상학 위에 성립되는 것이다. 과학사라는 것도 객관적, 실증적으로 사실을 기술하고 잇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과학사도 하나의 역사인 만큼 사실들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는 사관이 게재되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뷰티풀 마인드”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는 그저 평범한 사랑 얘기이거나 고작해야 세상에선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평범한 교훈이나 주는 그저 그런 영화인줄 알았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틀리지만은 않은 이야기인 듯싶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보다도 '존 내쉬'라는 한 인물을 통해 그가 어떻게 그의 병-정신분열증-을 극복하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학자가 될 수 있었는지 차근차근 보여준다.이 영화의 배경은 1940년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다는 프린스턴 대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은 시험도 보지 않고 장학생으로 입학한 천재 ‘존 내쉬’이다. 존 내쉬는 내성적이고 무뚝뚝한 성격이다. 또 “강의는 창조력을 죽인다”며 수업을 멀리 할 정도로 오만하고, 화려한 넥타이를 맨 동료를 향해 “네 값싼 넥타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해 볼까”라는 말도 서슴치 않는 괴짜였다. 하지만 주인공 ‘존 내쉬’는 그저 평범한 괴짜가 아니라 수학에 미친 천재 괴짜이다. 그는 모든 생활을 수학적 원리로 생각하고 수학으로 풀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영화의 도입은 일반 전기 영화들처럼 평범하지만 중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으로 약간 당황하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영화에 계속해서 나오던 인물과 상황이 '존 내쉬'가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것이다. '존 내쉬'는 룸메이트, 비밀정보기관 요원, 룸메이트의 조카까지 세 명의 가상인물을 만들어서 그들과 함께 40년의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말 그대로 40년 동안 '존 내쉬'는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생활해온 것이었다.영화는 약물적 치료를 필요로 하는 정신적 분열이라는 병을 앓으면서도 학문에 대한 뜨거운 열정 때문에 약물을 끊고 스스로 고통스러운 치료를 택하며 가족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아 결국엔 병도 극복하고 그의 학문적 업적도 인정받는 모습은 한 사람의 인간승리라는 관점을 넘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 모두에게 희망과 감동을 동시에 전달해 준다. 존 내쉬라는 실존 인물이 이 영화를 통해 주는 메시지는 이전의 전기 영화들의 내용과는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기는 하다.하지만 그러한 모습들이 언제나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인간이 가진 능력엔 한계가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 깨닫게 해주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