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 근대의 거점을 정신사적 관점에서 조선 말기인 19세기 중엽에서 현대미술이 태동하는 1960년대 경까지의 약 100년간의 한국 근대미술을 재조명하고자 한다.’미술관에서 제공해준 팜플렛에서는 이번 전시에 대해서 위와 같이 말하고 있다. 솔직히 미술에 대해 문외한인 내에게 이번 전시회 관람에 대해서 문화적 사료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미술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가지고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이번 전시회에서 중점적으로 본 것은 조선 말기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변화된 미술 문화이다.이번 전시회는 시대적 흐름이나 표현방법 등으로 구분하던 그간의 다른 전시회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이는 근대 미술에 대해 새로운 해석으로서 근대미술을 조선말기의 미술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를 계승하면서도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표현으로 새롭게 창조하여 한국미술에 내면에 흐르는 한국 정서를 나타내고 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근대 미술이 이와 같이 변화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에 봉건주의 사회가 점점 몰락해가고 자본주의 사회로 변화해 가면서 문예활동을 할 수 있는 계층이 폭 넓어 졌을 뿐 아니라 이들의 표현도 점점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러한 변화는 이 전시회에서 분류한 것처럼 격조, 창의, 해학 이 세가지로 잘 표현되고 있다.격 조격조라는 것은 예술 작품에서 내용과 구성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예술적 품위를 말한다. 그간 우리 미술에 대해서 여백의 미를 많이 강조하고 있기는 하나 근대로 들어오면서 이런 여백의 미는 새롭게 재창조된다.추사 김정희의 ‘죽로지실’을 보면 ‘室’을 마치 방처럼 그린 것 이라던지 ‘爐’의 ‘火’변과 ‘之’의 공간미에서 이런 여백의 미를 계승하면서도 기존의 미술과는 또 다른 공간의 미를 느낄 수 있다. 이런 글씨의 변형으로 이루어진 공간의 재창조는 글자를 의미를 전달하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이를 시각적으로 보여 줌으로서 하나의 예술로서 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이다.근대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이 널리 활동하게 되는데 우봉 조희룡, 석파 이하응, 운미 민영익등이 이에 해당된다.우봉 조희룡의 작품을 보면 전체적으로 세세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고 싶은 부분은 세밀하게 그리고 나머지는 먹을 연하게 흩뿌려 놓은 것과 같이 그린다. 이런 표현은 묵의 농도로서 원근감을 줄 뿐 아니라 작가가 표현 하고 싶은 부분을 진하게 표현함으로서 보 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만든다. 그리고 석파 이하응의 묵란도를 보면 길쭉한 화선지 중간에 있는 그림은 마치 난이 절벽에서 핀 것 과 같은 공간감을 준다. 그리고 난 줄기는 가늘지만 매우 힘차게 뻗어있다. 그리고 꽃은 옅은 묵으로 그려 난 줄기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운미 민영익의 묵란도를 보면 난 줄기는 옅은 묵으로 간드러지게 그리고 글씨나 꽃술을 짙은 묵으로 그림으로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언뜻 보기에도 석파 이하응의 묵란도는 남성적이고 진취적이지만 운미 민영익의 묵란도는 세련되고 여성스럽다.이들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기존의 사군자를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공간의 적절한 활용과 묵의 농도로서 그림의 전체적인 격조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이런 노력은 근대 이후에도 많은 문예가에게 영향을 미쳐 김환기, 서세옥, 유영국, 김종영의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김환기의 작품은 얼마 전 경매에서 최고가로 낙찰 받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구체적인 사물보다는 점과 선을 이용하여 단조로우면서도 추상적인 소재를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언뜻 그림만 봐서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다. 또 서세옥은 단조로운 패턴을 반복하여 나열하거나 김환기의 작품처럼 점과 선을 단조롭게 배치하여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김환기와 다른 점은 김환기는 색과 점의 위치를 통하여 전체적인 조화를 이룬 반면 서세옥은 묵의 농도와 선의 두께 등을 조절하여 전체적인 조화를 꾀하였다. 서세옥의 이런 시도는 군무라는 작품에서 잘 나타내고 있는데 원과 그리고 네모를 적절히 배치하여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추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또 보통 산을 푸르게 많이 그리는데 노란색, 빨간색, 주홍색등의 명도와 채도가 밝은 색으로서 산을 즐겨 표현 유영국의 작품도 눈여겨 볼 만하다.창 의창의라는 것은 말 그대로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 받아들여야 할 창의는 어떤 대상에 대한 창의뿐만 아니라 독특한 구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말은 작가가 대상을 표현할 때 이를 적절히 왜곡하거나 굴절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서 대상은 작가의 눈을 통하여 새롭게 창조되고 새로운 공간과 시각 속에서 표현되었다.이에 대표적인 작가로 북산 김수철, 석창 홍세섭, 오원 장승업 등이 있다. 북산 김수철은 사물을 표현할 때 세세히 표현한 것이 아니라 특징만을 살려서 간결하게 표현하였으며 채색도 수묵담채화에 걸맞게 아주 깔끔하다. 또 김수철이 높게 평가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대상이 화폭의 한쪽으로 치우치게 그린다던지 절벽을 좌우로 그린 것 등, 그의 독특한 구도 때문이다. 그리고 석창 홍세섭의 작품 중 오리가 시냇물을 따라 내려가는 그림인 유압도를 보면 예전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대상을 바라보는 시점의 위쪽이라는 것이다. 보통 이동하는 방향의 옆쪽에 시점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홍세섭은 기존의 구도에서 탈피하여 위쪽에 시점을 두고 그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묵화임에도 불구하고 묵의 농도를 잘 이용하여 물살을 그림으로서 오리가 물살을 따라 내려가는 속도감을 잘 표현하였다. 홍세섭의 이러한 시도는 오원 장승업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그림을 밑에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그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구도의 변화를 통한 대상의 창의적인 표현은 근대 이후의 화가인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박수근으로 이어져 이후의 근대미술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청전 이상범은 풍경화를 많이 그렸는데 그림의 크기도 클 뿐만 아니라 대부분 완만한 야산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세세한 점들로 표현된 야산은 험준한 산보다 더 평온하여 서민적인 풍취를 물씬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소정 변관식은 금강산을 소재로 삼아 남성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외금강 삼선암 추색’이라는 작품을 보면 마치 수묵화 같지 않고 아주 정교하게 찍어낸 판화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명암의 구분을 확실히하여 사물의 굴곡을 잘 표현했는데 큐레이터의 설명을 빌리자면 이러한 기법은 적묵법이라고 하여 담묵위에 농묵을 덧칠함으로서 암석의 질감과 깊이를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소정 변관식은 이 적묵법을 통하여 금강산의 괴암들을 입체적으로 표현함으로서 전체적인 구도와 공간감을 잘 표현하였다. 또 이러한 기법은 우리나라의 또 다른 정서인 끈기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박수근의 작품을 보면 박수근은 여인상을 많이 그렸는데 조선 말기의 작품이 여인들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표현한 반면 박수근은 서민적인 여인상을 많이 그렸다. 그리고 그들은 보통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여인들의 생활상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리고 여인들의 모습을 정면에서 그린 것은 거의 없고 뒷 모습을 많이 그렸다. 또 선의 굴곡을 최대한 단순화하여 표현하여 각지게 표현하면서도 안정된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는 불필요한 선을 생략하여 작가가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의미를 더 함축시킨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또 박수근의 작품을 가까이서 보면 물감이 굉장히 두껍게 덧칠하여 심지어 갈라지기까지 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또한 박수근만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그림의 질감을 더 높이면서도 고대 벽화처럼 신비로운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