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6
검색어 입력폼
  • 버버리 브랜드 분석
    - 목 차 -1. 버버리 브랜드 역사2. 버버리 브랜드 창시자3. 버버리 마케팅 믹스4. 버버리의 성공비결1. 버버리 브랜드 역사 (연혁)1856 : 창시자 토마스 버버리 영국에 shop 첫 오픈.Thomas Burberry opens an outfitter shop in Winchester Street, Basingstoke,Hampshire,England.1879 : 토마스 버버리 새로운 천 ‘개버딘’ 개발.He develops a weatherproof, cool, and breathable fabric by waterproofing the yarn before weaving. Burberry names the new fabric "gabardine" and registers the word as a trademark.1888 : 버버리의 두 아들 사업에 영입.Burberry's two sons, Arthur and Thomas Jr., join the business.1900 : 버버리의 첫 개버딘 레인코트 판매.The first Burberry's gabardine raincoat appears.1901 : 토마스 버버리 밀리터리 디테일을 띤 트렌치 코트 디자인.Thomas Burberry designs a raincoat that becomes regulation style during the First World War. Because of the military details (epaulettes, straps, and D-rings), it is named the Trench Coat.1924 : 버버리 체크무늬가 트랜치코트에 소개됨.The now-famous Burberry's Check is introduced as a lining to a trench coat. Later, it's registered as a trademark for the company.1926 : 창시자 토마스 버버리 죽음. 이다음해 그의 아들 죽음.Thomas Burry retires.1997 : 명품유통에 몸담아온 Rose Marie Bravo가 버버리에 ceo로 취임. 기업에 새 이미지 창출.Rose Marie Bravo, an experienced executive in American luxury retailing, joins Burberry's as CEO, marking the beginning of the company's new image.1998 : 디자이너 Roberto Menichetti 버버리에 합류.Roberto Menichetti, a young designer with experience at Claude Montana and Jil Sander, joins Burberry's as creative director.1999 : 기업 이름 바꿈.The company name changes from "Burberry's" to Burberry". "The apostrophe was just too confusing," Bravo has said.2001Menichetti leaves to spend more time in his family's manufacturing business. He's replaced by Christopher Bailey, plucked from Gucci's ranks.군복이 패션에 녹아들어 ‘밀리터리룩’이 됐다. 군복은 원래 방한 방풍 피부보호 등이 주목적인 기능성 의류. 버버리 최고의 인기품목인 ‘트렌치코트’는 전투중 적의 탄환으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해 판 참호(trench)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공식군복이었던 트렌치코트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 실용성 때문에 일상생활 속에서 애용됐고 계절이나 유행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트렌치코트는 가장 성공한 밀리터리룩 상품인 셈이다.창립자 토머스 버버리로부터 시작된 버버리 브랜드는 트랜치코트의 ‘대명사’로 자리잡아 한국에서는 버버리라는 상표명이 트렌치코트라는 말을 대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는 ‘로이 열풍’과 함께 버버리 바람이 불었다. ‘카사블랑카’에서는 험프리 보거트의 깃 세운 버버리가 우수어린 연기를 더욱 빛내는 조연으로 사용됐다. 이밖에도 버버리는 탐정 스파이 비즈니스맨을 묘사하는 영화 속의 중요 소품으로 자리를 굳혔다.명예로운 역사를 이어오던 버버리도 90년대 들어 한때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나의 스타일만을 고집해온 버버리는 소비자 욕구의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고 한때 장년층이나 노인들이 입는 옷으로 인식되기도 했다.90년대 후반 버버리는 혁신을 시도했다. 새로운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 버버리의 오랜 틀을 깨는 디자인이 선보였다. 버버리의 전통 체크무늬를 변형한 새로운 체크무늬가 선보였으며 가죽 등 새로운 소재가 사용됐다. 장식단추 등 미적 요소를 가미하면서 젊은 패션 마니아들을 다시 버버리 상점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2. 버버리 브랜드의 창시자♣ 토마스 버버리 (Thomas Burberry)그는 1835년 영국 남서부의 셔리 주에서 태어났다. 20살에 햄프셔주의 베이싱 스톡의 한 포목상 주인이 되었고, 그 시절부터 버버리는 농부나 목동들이 즐겨 입는 옷감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연구결과 만들어진 것이 바로 개버딘(Gabardine)이라는 소재였다. 이 개버딘 천은 당시 스포츠 매니아들과 탐험가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된다. 개버딘 천으로 만든 코트는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에 의해 많은 사랑을 받으며 명품으로 알려지게 되었다.버버리는 현재 엘리자베스 여왕과 웨일즈 왕자로부터 수여 받은 문장과 더불어 옥스포드 사전에서도 이름이 올라가 있을 정도로 영국인들에게 사랑 받는 브랜드며, 10년마다 갱신되는 왕실의 인가와 함께 영국의 지정상인(Royal Warranty)으로서 명예로운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명품중의 명품이다.3. 버버리 브랜드 마케팅 믹스1) 제품: WOMENSWEAR, MENSWEAR ,ACCESSORIES , BURBERRY BABY 라인으로 분류♣ 디자인: 버버리 체크버버리만의 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로 자리하고 있다. 변치 않는 트래디셔널 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한결같이 지켜왔고, 현재는 트렌치코트를 비롯하여 남녀 의류와 스카프, 모자, 가방, 벨트, 시계, 신발, 향수 등의 실용성을 추구하는 다양한 디자인의 액세서리 까지 패션 전 분야의 품목을 취급하고 있다. 무엇보다 버버리를 잘 표현하는 것은 영국 전통의 버버리 체크인데 검정색, 주황색, 흰색, 밤색의 굵고 가는 선이 서로 교차된 문양으로 버버리 전제품에사용되는 버버리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버버리 체크와 더불어 사용되는 버버리의 문양은 말을 타고 달리는 기사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활동성을 강조한 이 문양은 버버리만의 고유 로고로서 각종 악세사리에 사용되고 있다.♣ 체크 무늬의 기원체크무늬의 기원은 색의 무늬로 분을 나타냈던 스코트랜드의 전통에서 기인한다. 당시 하인은 1가지, 농민은 2가지, 관리는 3가지, 지방 행정관은 4가지, 재판관은 5가지, 시인은 6가지, 왕족은 7가지 칼라로 신분을 나타냈다고 한다.♣ 버버리 문양의 자존심버버리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베이지 바탕에 검정색과 주황색, 밤색 그리고 흰색 줄이 교차되는 체크. 버버리 전제품에 사용되는 버버리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이와 더불어 사용되는 버버리의 문양은 말을 타고 달리는 기사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 활동성을 강조하며 버버리만의 고유 로고로서 각종 악세사리에 사용되는 이 디자인은, 클래식한 영국 패션의 전통적인 자존심 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의 버버리 체크는 화이트, 카키, 덕에그블루, 핑크 컬러의스펙트럼과 붓 터치를 이용한 추상적인 버전의 체크로 발전, 클래식한 멋의 추종자들에게 버버리 특유의 품위와 함께 젊고 새로운 감각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05년 컬렉션 버버리 라인 소개- WOMENSWEAR버버리 런던 남성의류 컬렉션은 클래식한 버버리에 스포티하지만 세련된 느낌의 새로운 라인을 더한다. 컬러가 돋보이는 이번 컬렉션은 버버리 prorsum line의 영향을 브릭은 부드럽고 유연하며 풍부하다. 가죽제품과 shearling이 선보이며, 은은하고 연한 체크가 돋보이는 washed fabric과 overdyed fabric,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새로운 스트레치이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또한 Prorsum collection에서 영향을 받은 지퍼와 포켓의 디테일링은 클래식한 버버리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는다.- ACCESSORIES버버리 런던 액세서리 컬렉션은 영국적 스타일의 진정한 이해를 바탕으로 발전한 모던 클래식을 표현. 특히 전통 버버리 타탄 체크를 바탕으로 단정함과 우아한 정교함이 돋보이는 컬렉션은 많은 관심을 모았다.2) 가격버버리는 대부분의 명품라인에서 선보이는 고가 전략을 취하고 있다. 현재 한국 내 매장 및 온라인 쇼핑몰에서 선보이고 있는 대중적인 버버리 아이템들의 가격은 다음과 같다.? 니트 : 20만원 ~ 50만원 / 남방 : 10만원 ~ 20만원 / 스커트 : 30만원 ~ 50만원 / 코트 : 80만원 ~ 150만원 / 지갑 : 20만원 ~ 30만원 / 모자 : 13만원 ~ 18만원 / 가방 : 35만원 ~ 50만원3) 유통버버리는 1997년 뉴욕 패션업계 출신인 로즈 마리 브라보(51.여)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한 후 경영실적이 크게 좋아졌다. 2001년 회계연도(2001년 4월~2002년 3월)의 영업이익이 1억3천2백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30%나 늘어났다. 같은 기간 매출액도 7억2천9백만달러로 18% 증가했다. 회사 측은 이같은 경영 호조가 브라보가 기업을 잘 이끈 덕분이라고 밝혔다. 브라보는 취임 후 제품군을 신발.수영복.액세서리 등으로 다양화했으며, 신규 점포를 잇따라 개설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다. 그녀는 월 스트리트 저널(WSJ)이 선정한 유럽에서 성공한 여성 CEO1위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버버리 브랜드 swot 분석① 강점- 클래식한 브랜드로 유행을 타지 않음????????- 타겟 층이 넓어 누구나 부담 없이 소화 할 수 있음② 약점- 버버리고유 체크무늬를 따라?
    예체능| 2007.09.14| 6페이지| 2,000원| 조회(2,724)
    미리보기
  • [보험] 백수 보험 문제와 해결책
    SUNGKYUNKWAN UNIVERSITYREPORT제 목 : 백수보험 확정배당금 ‘날아간 꿈’과 목 명 : 무역/보험/영문계약담당교수 : 오태형 선생님제 출 일 : 2004. 6. 8학과 : 의상학과학번 : 2001312874이름 : 고 경 임‘백수보험'…보험사 '쪽박' 계약자 '대박'?80년대 초까지 판매됐던 고금리 저축성보험에 대한 소송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여 보험사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계약자들이 증빙서류를 갖추거나 설계사 증언을 확보하면보험사들은 계약내용의 10배에 달하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특히, 일부 생보사의 경우 보험 증권을 잘못 만들어 꼼짝 없이 거액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입장이다. 2일 생보업계에 따르면 최근 보험소비자연맹은 인터넷 상에서 백수보험계약자 모임을 추진하고 있으며, 보험사들을 상대로 공동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 2004 년 경향 신문최근 신문 사회면에서 백수보험에 관한 기사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기사의 주요 내용은 다수의 백수보험 계약자들이 일명 ‘사기꾼’ 보험회사를 상대로 계약자 자신들이 입은 피해액을 보험회사로부터 보상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 입장인 백수보험 판매 보험회사들은 자신들에게는 잘못이 없으며, 때문에 계약자들이 주장하는 보상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체 백수보험은 어떤 것이며 문제점은 무엇이고 그 해결책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1. 백수보험이란「 36세 기준. 보험료로 연간 523,400원씩 5년만 내면, 55세부터 75세까지 20년간 매년 보험금 1,000만원씩 지급하고 75세 이후 사망 시에는 5,000만원 상당의 배당금을 지급합니 다. 」위의 내용은 백수보험의 주된 계약 내용이다. 이처럼 백수보험은 연금보험의 형태로써 계약자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 보험료를 납부하고, 보험료 납부기간이 끝난 후에는 종신까지 연금을 지급받게 된다. 저렴한 보험료와 높은 확정 배당금. 백수보험이 약속하는 대로라면 이는 보험 계약자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보험 상품임에 틀림없는 것이며, 실제로 1980년 초부터 1982년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6대 생보사(삼성, 교보, 대한, 알리안츠, 흥국, 금호 등)가 판매한 고금리의 장기저축상품 백수보험은 엄청난 히트를 치게 되었다.2. 백수보험의 문제점 (보험계약자 입장에서)「 소송을 낸 가입자들은 "20%를 넘었던 시중금리가 계속 떨어지자 생보사는 계약 해약을 유도하거나 확정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면서 "보험사의 상품 안내장이나 조견표, 약관, 청약서 등 어디에도 확정배당금이 전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언급이 없다"고 밝혔다.- 한국경제 2004. 4 」▶ 약속된 보험금 지급 불이행2004년 현재, 그렇다면 보험 계약자들은 보험회사가 약속한 확정배당금을 받았을까? 대답은 ‘아니오’ 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험사가 계약 당시 보험계약자들에게 약속했던 확정배당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험회사에서 실제 지급하겠다는 보험금은 10년간 매년 100만원씩이었다. 하지만 안정된 노후를 보내려 이 상품에 가입했던 계약자들은 예상의 1/10에 불과한 100만원 정도의 연금만 받게 되거나 전혀 지급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보험회사는 예정 이율과 정기예금 이율 차이에서 오는 배당금이 백수보험 판매이후 정기 예금 이율이 예정 이율보다 늘 낮아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약속했던 배당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약관 설명의 불이행시중금리에 따른 배당금 변화. 대다수의 계약자들은 이러한 약관에 대해 알지 못했다. 실제로 한 백수보험 피해자 커뮤니티에 기재된 글에서 보험소비자연맹 관계자는 ‘계약자들이 가지고 있는 조견표에 금리변동에 따른 불리점 등에 관한 단서조항이 없기 때문에 소송에서 유력한 증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 이라고 했다.다시 말해, 백수보험 판매 당시 보험 설계사들은 계약자들에게 높은 확정배당금만을 앞세워 판매율을 높이는데 열을 올렸을 뿐, 가장 중요한 ‘시중금리가 하락하면 확정배당금이 없다’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보험 설계사가 나누어준 팜플렛에는 "배당금이 정기이율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라는 문구가 약관 내에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한 부연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팜플렛 귀퉁이에 작게 적어놓은 그러한 문구를 읽어보지 못했고, 혹 읽어보았더라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때문에 만일 보험설계사가 위의 약관에 대해 언급 했었더라면 보험계약자들은 백수보험 가입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려했을 것이고 지금에 와서 보험사가 ‘사기’를 쳤다고 할 만큼의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과대 과장광고로 유혹해 손님을 끌어드리고는 나 몰라라 하는 보험회사의 도덕성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금리에 따른 확정 배당금 변화 사전 통지 불이행또 하나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금리가 떨어져 보험회사가 계약자들에게 약속한 바를 지키지 못함을 미리 통지하지 않은 점이다. 정기예금 금리가 급격히 떨어져 확정배당금이 발생하지 않게 된 것은 백수보험 판매시점 후 2~3년만의 일인데, 이 사실을 계약자에게 전혀 알려주지 않은 채 보험료를 받다 연금개시시점에 알려준 것은 일종의 사기로까지 볼 수 있다. 당연히 금리가 떨어져 확정 배당금에 대한 약속을 이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보험회사는 하루빨리 계약자들에게 그 내용에 대한 언지를 했어야 했다.▶ 보험사의 무책임함과 책임회피보험 계약자들이 보험사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하려드는 데 가장 근본적 원인은 물론 약속된 확정배당금을 받는데 있지만, 또 한편으로 무조건 문제의 원인을 계약자들에게 전가시키려는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고쳐놓기 위한 결심이 담겨있다. 백수보험 소송과 관련해 불거져 나온 판매당시 보험 설계사의 약관 설명 불이행을 감추기 위해 보험사에서는 관련 설계사에게 책임 전가를 한다든지 뇌물을 주고 진술을 막는 등 회사로써 계약자들을 대상으로 더 큰 불신을 안겨주었다.3. 백수보험의 해결책「 대한생명의 경우 보험증권 자체를 잘못 만들어 원래 약속했던 보험금을 모두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대한생명의 백수보험증권에는 '연금 개시 후 매년 보험가입금액(연금연액)을 지급 한다'고 돼 있는데, 이 조항에 따르면 대한생명 백수보험은 매년 10년 치 연금액을 한꺼번에 지급해야 한다. 즉 매년 100만원씩 10년간 받는 보험계약이라면 이 조항에 따라 그 10배인 1000만원을 매년 지급해야 한다. 보소연 조연행 사무국장은 "사례와 사건별로 경우가 다르지만 부산지법에서 10배의 보험금 지급 판결을 내리는 등 증빙서류만 갖추면 가입자들은 거액의 보험금을 탈 수 있다"며 "백수보험가입자들의 사례를 추가로 모아 공동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백수보험을 계기로 설계사들이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보험을 파는 불완전 판매를 근절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 최명용기자 xpert@moneytoday.co.kr 」
    경영/경제| 2004.12.04| 4페이지| 1,000원| 조회(753)
    미리보기
  • 장미와 이름으로 감상문
    영화 ‘장미의 이름’는 이태리 북부지역 1327년 어느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시작된다. 프란체스코파인 윌리엄 수도사와 조수 앗소가 이 수도원에 도착하고, 이곳에서 윌리엄 신부는 수도원에서 차례로 발생하는 미스테리한 살인사건을 조사해 줄 것을 부탁받게 된다. 그는 미궁에 빠져있던 사건들을 논리적으로 조사해 나가며 결국 범인과 사건의 모든 배경을 알아낸다.수도회를 검게 물들게 했던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의 범인 악마가 아니었다. 그것은 베네딕트 수도사들이 생각했던, -어쩌면 믿고 싶었던- 악마(사탄)가 아니었다. 인간이었고, 베네딕트 수도사 중 하나인 호르헤 수도사였다. 그는 금서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 2권-를 읽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책에다 독을 묻혀 놓았고, 죽은 수도사들은 침으로 책장을 넘기다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그는 이토록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 2권을 죽음에 이를 정도로 금지했을까. 그 문제의 답은 중세 종교의 유희와 본성의 문제로 거슬러 올라간다.중세사회는 철학과 종교(기독교)의 시대였다. 이 시대에서의 종교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발견이었으며 모든 사회를 지배하는 힘을 지녔다. 교회만이 성서의 유일한 해석자이자 진리의 관리자이며 봉건 사회의 정신적 통일자였으며, 교황은 왕을 넘어서는 절대 권력을 가진 존재였다. 이러한 배경 아래 자연과 인간에 대한 해석은 철저히 봉쇄되었고, 오직 신학만이 발전했기 때문에 국민들의 정신적인 영역은 종교만이 충족 시켜줄 수 있었다.중세의 두 가지 대표적인 신학 시대로 교부철학과 스콜라 철학 시대가 있다. 교부철학에서는 신의 세계인 초월적 세계관과 교회가 중요시 되었으며, 인간은 오직 가톨릭교를 통해서만이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역설되었다. 때문에 스콜라 철학이 일어나기 이전까지의 중세는 암흑기로 기독교를 제외한 이교도는 철저히 배척되었고, 그것을 믿는 자들은 멸족, 마녀사냥 되었다. 반면, 10~ 13세기까지 이어진 스콜라 철학에서는 인간에 본성과 자연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스콜라 철학은 또다시 실재론과 명목론으로 나뉘는데, 플라톤의 주장을 따라 보편적 이데아(idea)는 독립적이고 실재하는 것이며, 신이라는 보편이 실제로 존재하며 모든 계층은 그 반영에 지나지 않는 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반해 명목론은 보편적 이데아는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이고 불필요한 것이며 신의 세계가 있기 이전에 사물이 존재했음을 주장했다.영화에서 기존세력 베네딕트파와 개혁세력 프란시스코파는 대립한다. 이것은 실재론과 명목론의 대립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받아들여 유희와 본성에 대한 탐구를 인정했던 프란씨스코파와는 달리 베네딕트파는 원칙을 중시하고 엄격한 침묵과 절제를 강조한 보수적인 수도회였다.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이단은 가장 큰 죄였으며 이단, 사유재산, 지식에 대한 탐구는 엄격히 금기시 되었다. 또한, 웃음은 인간의 가장 부도덕함을 들어내는 죄악으로써 웃는 다는 것, 유희한다는 것은 신성자체를 모독하는 행위로 간주 되었다. 즉 인간의 본성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독후감/창작| 2004.05.20| 2페이지| 1,000원| 조회(466)
    미리보기
  • [의상학과] 마돈나 패션 평가A좋아요
    * 마돈나 패션 부가 설명*Ⅰ. 보이 토이 (Boy toy)마돈나는 배꼽티는 물론 헤어밴드, 검은 고무 팔찌, 보이토이 벨트 등으로 전 세계로 유행시키며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전파했다. (한때, 김완선이 짧은 웨딩드레스도 마돈나의 것, 또한 최근엔 마돈나의 카우보이모자가 국내연예인들이 즐겨 쓰고 있다.)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보이 토이'라 쓰인 벨트, 배꼽을 드러낸 레이스 의상, 헝클어뜨린 머리 등은 '마돈나처럼 되고자 하는 10대 소녀들, 이른바 워너비 (wanna-be) 족을 양산했다.또한 'Like a virgin' 활동에는 당시 흰색 웨딩드레스 차림의 자신과 보이시 하고 섹시한 검은 옷차림의 자신을 교차 편집 함 으로써 순결함과 섹시함을 동시에 지녀야 하는 여자의 모순됨을 노래했다.Ⅱ. 마릴린 먼로 룩마돈나는 처음 MTV에 들고 나온 노래인 Like a virgin'을 부를 당시, 마릴린 몬로의 스타일을 따라하며 당돌하면서 섹시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어필했다.* 마릴린 먼로 룩의 특징마릴린 먼로 룩의 아이템으로는 홀터 넥이 대표적이다. 홀터넥은 마릴린 먼로가에서 입고 나온 스타일로 목선 처리가 뒤로 둘러싸듯이 된 것으로 아주 섹시한 모습을 연출한다. 마릴린 먼로 룩은 마릴린 먼로가 좋아하던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 이라 불리는 개방적이고 대담한 라인이 주류를 이룬다. 또한 이런 홀터 넥 드레스의 섹시함은 하이힐로 완성한다.글리터링 룩(Glittering look;반짝이는 소재나 장식을 사용해서 화려함을 강조하는 옷차림) 역시 마릴린 몬로가 아주 좋아했던 스타일이다. 특히 바디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누드 톤에 라인스톤 3000개가 달린 글리터링 드레스가 유명하다. 또한 도트 프린트, 쉬폰, 플레어 스커트, 러플, … 등등 역시 마릴린 몬로의 스타일링에 자주 나오는 아이템들이다.Ⅲ. 란제리 룩 (Lingerie Look)1. 란제리 룩이란?1990년대 중반, 여성들은 노출을 통하여 페미니즘 적 표현을 하기 시작하였다.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나 속려 기성세대의 소극적이고 순응적인 여성상을 전복하겠다는 선언적 의미를 담은 것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Ⅳ. 에비타 룩 (Evita Look) 영화 에비타 출현 당시1. 마돈나의 EVITA LOOK시뇽(쪽진 머리) 스타일에 붉은색 립스틱과 새빨간 메니큐어, 검정, 흰색의 아이라이너, 검정 마스카라, 호사스런 50년대식 금색 케이스에 든 고형 파우더, 그리고 40년대 말 50년대 초에 크게 유행했던 대담할 만큼 화려한 색조의 화장과 검은색의 긴 탱고 드레스, 주름잡힌 이브닝드레스와 칵테일 드레스 등이 1997년에 복고풍의 기류와 함께 정착한 것을 일컫는다. 에바페론(1919-1952)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에비타' 역시 40년대 복식을 상류층에서 서민층의 의복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 페니로즈(Penny Rose)가 그대로 재현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또 이 작품은 1997년 식 새로운 복고풍을 만든 '에비타 룩'의 근원이 되었다. 마돈나는 영화 에비타를 찍으면서 또 하나의 패션에서의 유행을 일으켰다.거대한 패션쇼인 「에비타」는 60년대 이후 다소 소원해있던 영화와 패션의 유대를 되살리는 영화이며 여성이 남성을 지배했던 5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마돈나는, 장 뤽 고다르가 말했듯이, 「50년대의 오리지널보다 훨씬 뛰어난 복사품」인 것이다.2. 에비타 룩의 넓은 이름: 엘레강스 룩넓게는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페미닌룩을 만드는 패션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페미닌풍의 클래식한 패션 감각을 말한다. 엘레강스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시티 엘레강스, 클래식한 엘레강스, 샤넬 슈트(Chanel suit)와 같은 진품(오센틱)의 클래식 슈트를 중심으로 하는 오센틱 엘레강스(authentic elegance), 아이비룩에 현대적인 엘레강스 요소를 더한 프레피룩, 남국 이미지의 엘레강스 등에서 나타난다.엘레강스 스타일은 1950년대에 유행했는데, 대표적 디자이너는 크리스티앙 디오르, 발렌시아가, 샤넬 등이다. 특히 1947년 디오르는 뉴룩을 발표하였는 에비타 내용과 주인공1) 영화 EVITA의 내용내용: 시골 가난한 농부의, 그것도 사생아라는 사회적으로 멸시받는 출생의 에바 마리아 두아르떼. 그녀는 나이트클럽의 댄서로 시작해서 라디오 성우를 거치며 자신을 천대해온 세상을 비웃어줄 수 있는 출세를 위한 야망을 키워 나간다. 영화배우라는 꿈으로의 첫걸음을 내딛을 즈음인 1944년, 지진으로 인한 난민구제모금 기관에서 에바는 노동부 장관인 후안 페론(조나난 프라이스)을 만나게 된다. 이 우연한 만남은 사랑으로 이어지고 에바의 운명을 단숨에 뒤바꾸어 버린다. 후안 페론과 에바의 결혼이 임박해 올 무렵, 후안 페론의 정치적 역량이 확장되는 것에 위협을 느낀 권력 기관과 군인들은 후안 페론을 체포하게 되고, 페론의 석방운동은 1945년 9월 17일 민중혁명으로 이어져, 후안 페론이 대통령에 추대되기에 이른다. 이로서 에바는 천한 농부의 사생아에서 고귀한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로 등극한다. 스스로의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소외당하고 멸시받았던 약자였음을 잊을 수 없었던 에바는 권좌에 있으면서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서 기금을 모으고,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며 불평등을 척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에 감화된 수많은 국민들은 에바를 부통령 후보로 추대한다. 그러나 부통령 후보를 사임한 직후 에바페론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암 말기 진단을 선고받는다. 1952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퍼스트 레이디 에바페론의 장례식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비탄 어린 통곡 속에 장엄하게 치러지고, 결코 죽음으로도 잊혀지지 않는 에비타의 신화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자리 잡는다.2) 에비타 룩의 주인공: 에바페론( Evita Eva Peron, 1919-1952, 아르헨티나 )라리오하 출생. 대통령 J.D.페론의 미망인(3번째 부인)으로 이사벨로 통칭된다. 중하류층 출신으로 무용수로 있다가 파나마에 망명 중이던 당시 장군인 페론을 만나 1961년 결혼하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 여러 차례 아르헨티나를아시아에서는 헤나의 잎을 갈아서 몸에 그림을 그리는 관습이 있어왔다. 특별한 이벤트나 축하연을 위한 준비로 행복한 결말과 행운 그리고 좋은 기분을 바라는 마음으로 헤나는 행해졌다.헤나 나무헤나 나무는 이집트가 원산지로 덥고 건조한 지역에서 자라며 이집트, 아프리카, 중동, 파키스탄, 인도 등지에서 자란다.크기가 다 자라면 4.6m 까지 자라나 보통 2.4 ~ 3 m 까지 자라면 봄, 가을 두 차례 수확을 한다. 잎은 수 천 년 전부터 헤어 염색, 헤어트리트먼트, 멘디, 네일 케어 등 미용과 약재로 사용되어 왔고, 꽃은 향수의 원료로 사용되어 왔다.1800년대에는 유럽에 소개 되어 화학머리 염색약이 발명되기 전에 호두껍질과 함께 머리염색에 보편적으로 사용 되었다.Ⅵ. 카우보이 룩 (Cowboy Look) 마돈나 2000년도 앨범, Music의 카우보이 룩마돈나가 2000년 Music앨범을 내면서 유행시켰던 룩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유행했었던 야성적이고 목가적 분위기의 서부풍이다.* 서부 풍 패션 몇 가지 기본 아이템가장 기본적인 것이 흰색의 면 칼라셔츠와 두꺼운 데님으로 만들어진 청바지나 가죽으로 된 로데오 팬츠다. 여기에 수술 달린 가죽조끼를 입고 , 손수건 크기의 작은 반다나 스카프를 목에 매고, 끈과 챙이 달린 모자 그리고 장딴지까지 올라오는 낮은 굽의 부츠를 신는다.마돈나는 이 서부 풍 패션을 세련되게 표현하기 위해 셔츠 바지 신발 조끼 모자 등 여러 아이템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몇 가지만 선택했다. 카우보이 모자, 멋지게 굴곡 진 퍼머 머리에 로데오 진을 입었다.로데오 진은 원래 로데오 경기를 위해 바지위에 덧입었던 가죽바지를 일컫는다. 최근에는 일반 데님보다 두껍고 튼튼한 진 제품을 말한다. 로데오 진은 야성적이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좋긴 하나 다소 투박해 보일 수 있다. 따라서 마돈나는 바지밑단이나 주머니, 허리 부분에 장식을 부착하여 부드럽고 여성스런 분위기를 가미하였다.Ⅶ. 밀리터리 룩 (Military Look) 마돈나 2003년도 앨범, Am나 입을 수 있도록 캐주얼화되었다.대표적 디자이너는 피노 란체티로 1963년 밀리터리 디자인을 발표하였다. 그 뒤 1977년 티에리 뮈글러, 클로드 몬타나, 지아니 베르사체, 콩플리세 등이 가죽과 개버딘을 소재로 넓은 어깨를 강조한 밀리터리 트렌치코트를 발표하였다.2. 마돈나의 전쟁에 대한 반대, 밀리터리 룩마돈나는 검은 베레모와 군복 차림을 한 여전사의 모습으로 American Life 앨범을 들고 나왔다. 데뷔 20주년을 맞아 발표한 새 앨범 아메리칸 라이프( American Life) 는 출세 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했던 자신의 삶을 조롱하고 있다. 이는 정복의 광기 에 사로잡힌 미국인들에 대한 분노이자 경고이기도 하다. 마돈나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물론 반전과 평화 그리고 사랑이다.3. 마돈나의 앨범, American Life기사마돈나가 새 앨범 아메리칸 라이프 (American Life)에서 반전과 평화를 부르짖는 여 전사 로 변신했다. 이번에도 그는 앨범 출시 직전 발매된 싱글 American Life 의 뮤직비디오가 전쟁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긴급 회수하는 등 마돈나 라는 이름에 걸맞는 논란과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번 앨범에서 마돈나는 출세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 온 자신의 삶에 대한 조롱을 담았으며 동시에 전쟁이라는 광기에 사로잡힌 미국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마돈나는 최근 문제가 될 만한 장면을 다른 장면으로 바꾼 새로운 버전의 뮤직비디오를 발표했다. 애초에 발표한 뮤직 비디오는 마돈나가 군복을 입고 춤을 추다가 수류탄을 던지면 부시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이것을 받아 담뱃불을 붙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마돈나는 뮤직 비디오에는 반전, 평화 메시지를 담고자 했으나 전 세계가 이성을 잃은 전쟁 상황에서 뮤직비디오의 초점이 반미, 반 부시 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오해를 부를 소지가 있어 회수 한다 고 밝혔다. 새로 편집한 뮤직비디오에서도 마돈나는 군복을 입고 등장하지만 수류탄을 던지는 장면은 세계 각국의 국기 앞에서 춤을 추며 다.
    인문/어학| 2004.05.20| 9페이지| 1,500원| 조회(1,767)
    미리보기
  • [회계] 재벌과 IMF
    IMF사태 원인을 알면 대책이 보인다. : 재벌편Ⅰ 서론1997년은 그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속설인 '재벌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 라는 한국 재벌의 신화가 무너진 해였다. 1월 한보, 3월의 삼미특수강, 4월의 진로, 5월의 대농, 한신 공영, 7월의 기아에 이르기까지 주요 재벌그룹들이 부실한 경영으로 인하여 잇달아 쓰러졌던 것이다. 이는 지금껏 한국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한국 재벌체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재벌그룹의 부실은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졌고, 한국경제를 휘청 이게 했던 11월 외환위기의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외환위기를 초래한 재벌에 대해 비판하고, 재벌과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Ⅱ 본론ⅰ예전에 읽었던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은 참으로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간단히 줄거리를 살펴보자면, 공명은 꾀를 내어 조조의 배를 모두 쇠사슬로 묶도록 한다. 조조는 겨울이라 동남풍이 불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고 이 꾀에 넘어가게 되고, 흔들리지 않는 육지처럼 됐다하여 흡족해 한다. 그러나 동남풍은 불었다. 동남풍이 불자 쇠사슬로 굳게 묶여있던 조조의 모든 배는 불로 휩싸이게 되고 조조의 진영은 아수라장이 되고 조조는 결국 80만 대군을 제대로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지게 된다. 이것이 적벽대전의 간단한 줄거리이다.한국의 재벌들은 문어발식으로 여러 업종의 여러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 중 어떤 계열사는 수익성도 좋고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 계열사도 있을 것이고, 매번 적자를 기록하며 자금난에 허덕이는 계열사도 있을 것이다. 이런 재벌의 많은 계열사 중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그 문제가 생긴 계열사를 다른 계열사들이 지원에 나서게 되고, 한계상황에 이르기 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다가 문제가 수그러들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어느 순간 모두 망해 버린다. 이것은 위에 예로든 적벽대전의 조조의 함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평상시에는 전혀 배가 흔들리지 않아 최상이지만 바람이 불어 80만 대군이 전멸하였듯이, 한국의 다수의 재벌들도 한번의 역경에 무너져 내렸고, 또 무너져 내리게 될 것이다. 이런 한국 재벌의 문제점과 대책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한다.재벌지난 수십 년간 한국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왔다. 이런 빠른 성장과 함께 정부의 특혜를 입고, 정경유착을 통해 우리의 재벌들도 빠르게 성장하여왔다. 물론 그들의 땀과 노력과 사회에 기여한 점 등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재벌은 우리에게 많은 문제점 역시 던져주었고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 재벌에 대한 현재의 대다수의 시각이다. 한국경제에서 이런 재벌들은 규제를 받아야한다. 규제를 받아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벌이 망하면 국민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준다는 점 때문이다. 재벌이 망하면 그 재벌에 돈을 빌려주었던 은행이 부실화되고 결국은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국민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재벌을 규제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또 재벌은 무너질 때의 충격이 크기 때문에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부실대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택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을 악용하는 기업은 경쟁적으로 내실보다는 몸집불리기에 치중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볼 때 이는 귀중한 투자재원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재벌을 규제해야하는 두 번째 이유이다. 또한 이러한 몸집불리기 과정에서 이들은 도박성이 강한 투자를 하게 되는데, 이것은 잘못된 관행이다. 이것이 재벌을 규제해야 하는 세 번째 중요한 이유가 된다.지금까지 재벌을 규제해야하는 이유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런 규제가 필요한 것은 재벌에 많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재벌의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문제점1) 채무보증채무보증은 재벌의 계열사중 하나가 망하면 재벌전체가 망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사실 채무보증은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우선 간단히 채무보증의 비실현성 대해 설명해보자. 우선 재벌의 한 계열사가 은행에 모기업의 채무보증을 근거로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그 계열사가 운영이 잘 되지 않아 부도를 맞았다고 하자. 그럼 그 막대한 보증액을 부담해야하는 모기업은 그것을 부담할 능력이 없어 연쇄 부도를 맞게 되고, 결과적으로 재벌 그룹 전체가 망하는 그런 형국이 된다. 재벌들은 이런 실현 불가능한 채무보증으로 대출을 받고 있으며, 다시 불황이 온다면 대형부도가 줄지어 반복될 것이다. 이런 채무보증에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2) 문어발식 경영재벌들은 수익성보다는 안정을 위해 한 사업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전혀 관계없는 사업에도 진출하기도 하는 등 보통 사업 다각화를 위해 노력한다. 이런 문어발식 경영은 보통 덩치불리기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덩치불리기는 보통 자기자본이 아닌 타인의 자본이나 은행의 부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어발식 경영이 비난받아야하는 이유이다. 이 때, 금융권에서는 충분한 검토보다는 채무보증에 의해 기업에 돈을 대출해주게 되고, 비효율적 다각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채무보증에 의한 문어발식경영은 재벌의 또 하나의 큰 문제점이다.3) 비효율성어느 한 사업을 중소기업과 여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이 경쟁한다고 가정해보자. 시간이 흐르면 아마도 중소기업이 그 사업에서 손을 떼거나 망하게 될 것이다. 비록 중소기업이 더 싸게,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낸다고 할지라도 이 사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은 비효율적 상황이다. 대기업의 계열사가 적자를 낸다고 하더라고 재벌입장에서는 이런 계열사를 채무보증 때문에 쉽게 정리할 수 없을 것이고, 비효율적으로 이런 계열사에 자원을 계속해서 투입하게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비효율성이 지금 우리 재벌의 또 다른 문제점이다.대책우선 신규대출에 대한 채무보증을 전면 금지하여야 한다. 채무보증의 해악 중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투자에 대한 적절한 심사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것들은 어쩔 수 없다면, 앞으로 이루어질 투자에 대해서는 철저한 심사를 통해 대출하도록 하여야 하겠다.또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지금의 재벌 기업들은 주주의 의견보다는 주로 기업의 총수의 의견에 의해 기업의 사업 방향과 내용이 결정되어 왔다. 이런 비현실적 세태를 견지하기 위해서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간단히 책에 나온 재벌의 문제점과 대책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제 이에 덧붙여 재벌에 대한 나의견해에 대해 쓰고자 한다.Ⅱ 본론ⅱ재벌은 우리 경제의 발달사에 있어서 경제성장의 기관차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국민들도 이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실제로 재벌은 경제의 각 부문에 있어서 맨 앞에 서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끌어왔다. 비록 정상적인 방법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 경제에 있어서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던 자본축적을 어느 부문 또는 어떤 분야보다 쉽게 그리고 빠르게 이루어왔다. 또한 선진 생산기술의 도입이나 선진 경영기술의 도입에 있어서도 남다른 바가 있었다. 그래서 재벌의 영업실적 성장률은 뛰어나게 빨랐으며 이것이 결국은 경제의 집중을 초래하기는 했지만 우리 경제의 전체적인 성장을 선도해왔다고 할 수 있다. 현재에 있어서도 재벌은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순기능을 하고 있다. 대단위 자본이 아니면 엄두도 낼 수 없는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데에도 일조를 하고 있다. 또한 재벌은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데, 특히 중요한 사실은 높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하여 국민총생산의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런데 이상과 같은 재벌의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재벌은 틈만 있으면 국민여론의 집중적인 질타와 함께 비난을 받고 있다. 나도 이 책의 저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재벌은 사회에 부정적이라는 의견에 동조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재벌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몇 가지 현상에 대하여 조사해보았다.1) 사회 전 부문에 걸친 지배영역의 확장이것은 책에서 살펴본 문어발식 확장과 비슷하다. 지금까지 재벌들은 ‘백화점식’경영다각화를 추진해 오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재벌들은 주력업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건설, 레저, 유통 등 손을 뻗치지 않는 부문이 없이 팽창을 거듭해왔으며 또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재벌내의 계열사 중 이익을 내지 못하는 계열사가 하나, 둘 씩 늘어날 경우 재벌 내부의 자금 운영이 어려워지게 되고, 결국엔 흑자를 내는 계열사까지 위태롭게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책에 설명된 채무보증과 함께 이런 연쇄적인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백화점식’경영다각화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영/경제| 2003.03.23| 4페이지| 1,000원| 조회(362)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36
36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4
  • A좋아요
    15
  • B괜찮아요
    13
  • C아쉬워요
    2
  • D별로예요
    2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23일 목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6:31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