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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적재산권] 저작권이란? 평가D별로예요
    저작권이란!!일반적으로, 법에 의하여 저작물의 저작자에게 부여하는 배타적인 권리로서, 자신의 창작물을 공표하고, 이를 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든 공개 배포 또는 전달하고,저작물을 다른 사람이 특정의 방법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대개의 저작권법에서는 재산권과 인격권을구별하고 있으나 양자가 함께 저작권을 구성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법에서는 통상 보호받을 수 있는 저작물의 종류 및저작권을 구성하는 저작자의 권리의 행사에 관하여 법에서는 일정한 제한을 두고있다.저작권 등록안내등록의 의의저작권 등록이란, 저작자의 성명 등 저작물에 관한 일정한 사항을 저작권 등록부라는 공적인 장부에 등재하고 일반 국민에게 공개ㆍ열람토록 하여 공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울러 등록된 일정한 사항에 대하여는 추정력ㆍ대항력 등 법적 효력이 부여됩니다.등록의 대상1. 저 작 권사람의 사상ㆍ감정은 문자, 소리, 그림, 영상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고, 거기에 '독창성'이 있다면 무엇이든 저작물이 될 수 있습니다.2. 저작인접권저작권법은 저작권과는 별도로 저작물의 구현과 제작에 따르는 일정한 노력에 대해 저작권에 인접한 권리로서 특별히 보호하고 있습니다. 저작인접물은 다음의 3가지입니다.① 실연 : 저작물을 연기ㆍ무용ㆍ연주ㆍ가창ㆍ연술 그 밖의 예능적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② 음반 : (가창ㆍ연주ㆍ자연의 소리 등) 음이 유형물에 고정된 것(음이 영상과 함께 고정된 것을 제외)③ 방송 : 라디오 방송, 텔레비전 방송 등3. 출판권많은 저작물이 출판권 설정 계약에 따라 출판되고 있습니다.출판권자는 이러한 설정출판권 및 출판권의 양도 또는 처분제한및 출판권을 목적으로 하는 질권의 권리변동 사항에 대해서도 등록하실 수 있으며, 등록하신 내용에 대해서 법적인 대항력을 부여받아 진정한 권리자로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판금 판정…KO로 승리 vs '패러디' 입증하면 역전누가 진정한 승리자일까.서태지와 엽기 가수 이재수의 논쟁이 제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지난 1일 서울지방법원 민사 50부는 서태지가 신청한 이재수의 1집 음반 '이난'에 수록돼 있는 에 대한 판매 방송 및 상연 등의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이재수는 을 그대로 수록한 채로는 '이난'의 음반을 판매할 수 없는 상황이다.그러나 법원의 판결에 대해 양측 모두 서로의 승리라고 주장하고 있다.서태지측은 ‘서태지 KO승! 이재수의 은 법으로 보호 받을수 없다’는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에 보내 승리를 자축했다.이에 대해 이재수측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저작 인격권 중 동일성 유지권 침해에 대해서만 서태지쪽에 손을 들어주었을 뿐 저작재산권 침해, 인격권 침해, 저작 인격권 중 성명 표시권 침해 주장 등 3가지의 주장은 모두 기각돼 사실상으론 이재수가 판정승을 거두었다는 얘기다.법원의 판결문에는 “개사곡이 원곡을 인용한 정도가 피신청인들이 패러디로서 의도한 바를 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재수의 개사곡은 패러디로서 보호 받을 수 없다”며“원곡가사에 추가한 부분이 원곡과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밝혔다.하지만 재판부의 판결문에는 “패러디에 해당할 경우 동일성 유지권 침해도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어 이재수측은 “재판부가 패러디에 대한 추상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 앞으로 이 패러디에 이르렀음을 구체적, 실증적으로 입증해 나아갈 계획이며 이번 판단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는 뜻을 밝히고 있다.이렇게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자 일부에서는 “‘패러디’라는문화적 현상을 문화의 잣대가 아닌 법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실제 ‘이재수의 노래가 패러디인가’에 대한 판단은각 문화 평론가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정반대로 나뉘고 있다.어찌됐건 법원의 확정 판결이 내려지면 패러디 문화에 대한 일종의 잣대가 정해질것으로패러디곡 ‘컴배콤’을 발표한 코믹가수 이재수 등을 상대로 판매등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승소한 서태지가 이재수에 대한 형사고소를 취하했다.서태지컴퍼니측은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저작권 보호와 패러디 문화 재인식의 계기가 마련된만큼 이재수 개인에 대한 처벌은 의미가 없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내지 않겠다”고 밝혔다.반면 이재수측은 법원의 결정에 이의신청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영화 ‘킬러들의 수다’의 제작사인 시네마서비스가 지난달 26일 인터넷업체 ‘구루구루’의 한 이용자(ID lycoz)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서울 중부경찰서에 고소했다.시네마서비스는 고소장에서 “10월21일 윤모씨로부터 본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 ‘킬러들의 수다’(감독 장진)를 캠코더로 찍어 온라인상에 불법 상영한다는 제보를 받고 피고소인의 서버를 조사한 결과 이 영화를 보유하고 있음은 물론 향후 동일한 방법으로 유포할 다른 영화들의 목록을 공개하고 있는 등 저작권 침해 행위를 확인해 고소하게 됐다”고 밝혔다.신현준,신하균,원빈,정재영 주연으로 지난달 12일 개봉한 영화 ‘킬러들의 수다’는 팬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지난주 말까지 2주 연속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서울지법 민사합의50부(이공현·李恭炫 부장판사)는 31일 작곡가 이모씨(29·여)가 “작곡가의 허락없이 노래를 도용했다”며 TV드라마 ‘수호천사’의 주제곡 ‘너 하나만을 위해’를 사용해 음반을 제작, 판매한 Y엔터테인먼트사 등을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Y엔터테인먼트사는 앞으로 이 주제곡이 삽입된 음반을 제작, 판매할 수 없게 됐다.재판부는 “문제의 곡은 이씨가 직접 작사, 작곡했으므로 Y사가 원 작곡가의 동의없이 이 노래가 삽입된 음반을 제작한 것은 명백히 저작권 침해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97년 TV드라마 주제곡으로 사용됐던 ‘너에게’를 만든 이씨는 Y엔터테인먼트사가 이 노래를 편곡, 제목까지 새로 붙여 드라마 ‘수호천사’의주제곡으로 사용하고 음반을 제작하자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학| 2001.12.17| 4페이지| 1,000원| 조회(1,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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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회 감상문] 음악회 감상문 평가B괜찮아요
    {감 상크누아 윈드 앙상블 정기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찾은 예술의 전당은 올해 초까지 서초동에 살았기 때문에 금방 그리 어렵지 않게 다시 찾아올 수 있었다. 공연은 오후 3시에 시작이었으나, 지난번의 아픈 기억 때문에 일찍 출발했고, 꽉 막혔던 반포대교도 원활히 소통되어 예술의 전당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경이었다.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도착했던 지난주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너무 일찍 도착한 덕에 여유를 가지고 여기저기를 둘러 볼 수 있었다. 올해 초까지 주말에 우면산에 등산을 다니면서 예술의 전당을 지나쳐 다닌 적은 많았지만 안에 들어가서 공연을 본적은 없었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서 보니,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뮤지컬 센터를 비롯하여 우면산의 자연 녹음과 함께 조화롭게 어우러진 전시관들, 시원하게 탁 트인 광장들, 그리고 많은 조형물들로 인해 공연을 보러 온 나의 마음은 차분하고 아늑하게 되었다. 특히 원형의 고풍스러운 성 분위기가 나는 뮤지컬 센터의 지붕은 전통 갓 모양이었는데 동서양의 양식을 아주 잘 조화시켜 놓은 듯이 보였다.뮤지컬 센터와 콘서트홀 사이의 공터에서는 마침 서해안 풍어제 가 열리고 있었는데, 외국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 굿판을 관람하고 있었다. 이 서해안 풍어제는 대동굿이라고 했는데 요즘 열리고 있는 세계 무용축제의 행사라고 했다. 나는 굿판이라고 해서 돼지머리와 정신없이 뛰는 무당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조용한 분위기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당과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주문을 외우는 듯 했는데 그 주문은 마치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일반적인 창 을 연상시켰다. 그러다가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여느 굿판처럼 무당이 신들린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느 굿판과 다른 것은 분위기가 시끄럽고 산만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차분했고 엄숙하기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굿거리 장단에 무당이 뛰는 동안에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 그 무당과 함께 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매우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나는 음악회에 오느라 사진기를 쭈뼛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이 다 나온 후, 어느새 나는 '건빵선생님 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참스승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선생님의 모습을 회상하고 있었다. 많이 잊기는 했어도 TV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단편단편 생각났다. 특히 서울로 오는 공연이 취소되어서 아이들이 의기소침해 있을 때 정작 가장 속상해 하는 사람은 자신이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목욕을 하면서 다독이셨던 선생님의 모습 등을 생각하고 있는데 무대의 왼쪽에서 선생님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조용하고 차분했던 것과는 다르게 휘파람까지 불면서 열렬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윽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전에 TV에서 들었던 곡이었지만 전곡을 다 들어보니 좀 더 깊고 색다른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 연주한 곡은 Air for Winds"였는데 개인적으로 내가 이날 연주된 곡 중에서 가장 감동을 많이 받은 곡이었다. 처음에는 고요하게 시작하면서 점점 강해지더니 어느새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는 마치 바람이 내 몸을 감싼 것 같았다. 잔잔하게 불다가 어느새 강해진 바람을 맞으며 노을이 지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서 있는 듯한 느낌... 절정부가 끝나고 다시 음이 차분해 질 때에는 내 몸을 감쌌던 그 바람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듯 했고, 마지막에 어느 악기의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음을 길게 끌면서 끝날 때에는 그 소리를 붙잡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정도로 이 곡은 너무 감동적이었다. 곡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환호했고 나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기립하여 박수를 쳤다.다음 곡은 Marche de Gala" 라는 행진곡풍의 곡이었는데, 곡 전체에 계속되는 짧은 음들은 마치 군인들이 발을 맞추어 나가는 소리를 듣는 듯 했고, 또 곡 중간 중간의 무거운 소리들은 전쟁터에서의 힘든 고난을 표현한 듯 했다. 하지마 곡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와 빠른 리듬은 승전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이 곡은 나에게 조금 전의 Air for Winds"처럼 가슴을 찡하게 하는 감동을 로켄스필 1 으로 되어 있다.. 오케스트라의 악기 편성{악기군현악기군(약60명)제1.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 베이스.목관악기군(약15명)피콜로,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파곳, 잉글리시 호른, 베이스 클라리넷, 코트라 파곳.금관악기군(약10명)호른. 트럼펫. 트롬본, 튜바 등타악기군팀파니, 큰북, 작은북, 심벌즈, 트라이앵글, 벨, 톰톰, 실로폰, 글로켄스필, 첼레스타 등.이 밖에도 하프, 피아노, 오르간, 바이브러폰, 색소폰, 사뤼소폰 등이 사용되기도 한다.오케스트라의 중심을 이루는 현악기군에서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은 대개 같은 수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비올라와 첼로가 제1바이올린 수의 2/3 내지 3/4 정도를 차지하며 코트라 베이스가 제1바이올린 수의 반 정도로 편성된다. 만일 이 비율이 지켜지지 않으면 음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균형이 깨진다. 한편, 관악기와 타악기의 수는 일정하지 않으며 악곡에 따라 달라진다. 17세기경에는 6개 내외의 관악기와 타악기가 사용되었던 데 비해 오늘날에는 그 수가 40개를 웃도는 수준으로 꾸준히 증가되어 왔다.● 교향곡 (Symphony)교향곡 즉 심포니(Symphony)는 오케스트라를 위한 대규모 작품이다. 원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것으로 '협화하는 음' 또는 '동시에 울리는'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14세기경에는 단순히 악기의 합주를 뜻하였고, 동시에 여러 가지 악기를 사용해서 연주되는 곡을 의미하기도 했다.교향곡이 그 모습을 분명히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반 무렵인데, 고전파 음악의 중심 인물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이어지면서 완전한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생애 무려 140여 곡의 교향곡을 썼던 하이든은 교향곡의 뼈대를 만들었고, 이어 모차르트가 피와 살을 덧붙이고,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베토벤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베토벤은 '교향곡의 완성자'로도 칭송 받고 있다.오늘날의 교향곡은 음악의 최고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보통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 1악, 드보르작, 브람스 등도 화려한 기교를 살린 작품들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독주협주곡은 현대의 바르톡, 프로코피에프 등에게 계승됨과 동시에 현대음악에서는 바르톡의 이나 스트라빈스키의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협주곡의 개념이 확대되어 가는 경향에 있다.● 힌데미트(Paul Hindemith: 1895. 11. 16- 1963. 12. 28).{독일 프랑크푸르트 근교 하나우(Hanaue)에서 출생. 어려서부터 음악교육을 받았고, 일찍이 연주자로서 재능을 보였다. 프랑크프루트 콘서바토리에서 바이올린과 작곡(A. Mendelssohn, B.Sekles에게 사사)을 전공하였고, 프랑크프루트 오페라 관현악단의 악장, 아마르 현악4중주단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본격적으로 작곡에 몰두한 후 20년대에는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음악의 선구적 인물로 명성을 얻었으나, 점차 신고전주의적 경향으로 양식을 전환하였고, 특히 실용음악에 많은 관심을 갖았다. 나찌 정권이 들어선 후 터어키로 망명하여, 그곳에 음악학교를 세워 터어키 음악교육에 영향을 미쳤고, 이후 미국을 거쳐 스위스에서 계속적으로 작곡활동 뿐만 아니라, 이론적 저서를 발표하고, 또한 지휘자로서도 활동을 하였다. 힌데미트는 평생 작곡가, 연주자(바이올린, 비올라 등), 지휘자, 이론가, 교육가 등 다양한 음악활동을 전개했고, 그의 활동만큼이나 다양한 음악양식에 의한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급격한 현대적 어법과 조성에 바탕을 둔 전통적 양식을 모두 사용한 작곡가이다.20년대 초 발표된 힌데미트의 작품들은 전통적 양식을 거부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조성적 작품보다는 표현주의적 무조음악 경향이 뚜렷하고, 낭만적 서정성과 감상성이 배제된 것이 특징이다. 전통적 미학관을 거부하는 반(反)낭만적 경향을 보인 이 시기의 음악을 통해 힌데미트는 독일 아방가르드의 선두 주자로서 명성을 얻었다:「현악사중주」 op.22(1921),「실내음악 1번」(Kammermusik, 1922), 3개의 단막 오페라(1919, 1920, 19 Fantasy on Serbian Themes〉으로, 1867년 5월 24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슬라브 음악 연주회장에서 발라키레프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연주회 후에 블라디미르 스타소프는 이제 러시아도 러시아 태생의 '강력한 소수'(moguchaya kuchka)를 갖게 되었다는 평론을 썼고, 이로써 이 연주회는 역사적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강력한 소수'라는 표제는 순식간에 유행어가 되었고, 이후 음악사에는 림스키코르사코프, 발라키레프, 알렉산드르 보로딘, 세자르 큐이,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게 되었다. 이들은 ' 러시아 5인조'라고도 불렸는데 이들의 목적은 서구음악으로부터 독립된 독자적인 러시아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그중 가장 학식이 있었고, 또한 가장 많은 작품을 썼다. 그의 작품은 모든 장르를 포괄했고, 특히 오페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1871년에 이르러 그의 명성은 대단해져서 그는 젊은 나이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작곡을 가르치게 되었다. 후일 그는 자서전 〈나의 음악생활의 연대기 Chronicle of My Musical Life〉에서 이 중요한 자리를 맡기에는 그의 능력이 부족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 그 자신은 단 한 번도 체계적인 음악이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고, 발라키레프로부터 산발적인 교습을 받거나 차이코프스키에게 조언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1873년 그는 음악교육을 완성시키기 위해 대위법과 푸가 작법을 중심으로 야심찬 학습계획을 세워 착수했다. 결국 1875년에 이르러 차이코프스키에게 10곡의 푸가를 보내는 것으로 공부를 일단락했고 그에게서 흠잡을 데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1873년 해군 복역을 마치고 군악대에서 감독 겸 지휘자로 일하게 되었다. 관현악단 지도자로서는 천재성이 다소 부족했지만, 악기연주 경험이 없는 연주자를 교육시키는 데는 뛰어났다. 1874년 3월 2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의 3번 교향곡을 초연하면서 처음으로 지휘대에 섰다. 같은 해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자다.
    독후감/창작| 2001.12.26| 14페이지| 1,000원| 조회(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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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회 감상문] 관악 음악회 보고서
    {감 상비가 유난히도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시간도 장소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한양대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국립극장에서 있다는 말에 무조건 충무로에서 택시를 타고 출발했다. 가을이라 어둠은 빨리 찾아왔고, 비까지 내려 우중충하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국립극장으로 접어드는 길은 인적이 드물어 고요했으며, 그 속에서 더욱 거대하게 느껴졌던 연주회장 창 밖으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춥고 배고픈 상태에서 그 불빛은 나에게 따뜻함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공연 일정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안내 데스크에서 한양대 공연 티켓 담당하는 사람을 만나 티켓을 받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내가 첫 관객이었다. 나중에 실내로 들어가서 알게 됐지만, 공연은 7시 30분으로, 나는 일정보다 1시간 일찍 도착했었던 것이다. 추운 기운이 몸을 감돌았다. 로비의 한 쪽에서는 따뜻한 커피와 고소한 쿠키 냄새가 나를 자극해 왔다. 맛있는 쵸코 쿠키와 헤즐넛 커피 한잔이 나의 몸과 마음에 따뜻한 기운을 넣어줘서 편안하게 해주었고, 점점 불어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차츰 공연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화장실에 갔을 때였다. 곧 무대에서 공연할 사람들인 것 같았다. 긴장을 해서인지 약간 상기된 표정을 하고있었으며 검정색 정장을 입어서인지 얼굴이 더 하얗게 보였다. 악기를 들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모습에, 바라보는 나마저도 동화되어 긴장을 하게 되었다. 문득, 두 사람이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같은 파트인 것 같았다. 전문 용어라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충 자기들이 연습할 때 느꼈던 잘 못하는 부분에 대해 걱정하고, 서로 커버해 주겠다는 격려와 위로의 말들... 그러한 모습을 보니 문득 이 사람들이 오늘 듣게 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사람들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기 시작했다.드디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차례 공연장으로 들어가고... 공연 10분 전. 환한 실내 조명과 웅성웅성한 신나는 연주였다. 아쉽게도 관객들의 예상을 뒤엎는 끝맺음으로 박수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다.다음 곡은 "Concerto pour Trombone"으로 solo연주였다. 자장가 같은 잔잔한 트롬본 소리는 차츰 관현악단의 연주와 맞물려서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 마리의 기러기가 광활한 바다 위를 여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 더 넓은 바다를 향해 더욱 높이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날아가는 모습... 처음에는 느린 템포로 연주되다가 정교한 연주에 의해 생동감을 주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내가 음악을 듣고도 한편의 풍경이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은 기교적이고 인위적인 연주가 아닌, 자연적인 음률의 조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중간 중간에 term이 있어 크게 3부분으로 나뉜 것 같았으며, 마지막 부분은 군대 행진곡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Ross Roy (overture for Band)"는 SF영화 스타워즈 배경음악처럼 신나는 연주였다. 조용함 속에 흘러나오는 트라이앵글 소리가 귀엽고 앙증맞게 늘렸으며, 타악기의 박자가 신명나게 들려와 가장 큰 박수를 받았던 곡이기도 하다.중간의 짧은 휴식을 마치고 연주된 곡은 Music for a Solemnity"였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자주 등장하는 음악으로 중간에 연주된 관악기들만의 조용한 연주는 평화로운 바다 속을 헤엄치는 듯한 잔잔함을 가져다 주었고, 4박자를 엇박자로 나누어 치는 규칙적인 팀파니소리는 음악을 생동감 있게 해주었다.김연준 곡의 그대여 내게로 에서는 가늘고 초롱초롱한 음색의 플룻소리와 소프라노의 고운 음색이 조화를 이루었으며, 목소리의 떨림이 마치 구슬이 굴러가는 듯 했다. 관객들도 같은 느낌이었는지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그 고운 목소리로 다음 곡인 Una voce poco fa"까지 들을 수 있었다.마지막 곡인 Symphonic Variations"은 웅장한 관현악 연주였으나 지나친 반복으로 다소 단조롭고 지루한 감을 주는 곡이었다. 하지만 끝마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을... 한참을 음악에 도취되어 나의 감정까지도 연주와 동화되었나 보다. 공연이 끝나고, 힘이 빠져나간 듯 기운이 없었다. 아무리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일지라도 집에 돌아오면 텅 빈 듯한 공허함이 밀려들지 않던가... 여기서 공허함이란 시시함이나 허무함이 아닌, 스폰지가 그릇 안의 물을 빨아들여서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바닥을 볼 때처럼, 내 몸 안으로 음악이 흡수되어 느끼는 공허함... 더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시간적 제약과 공연의 끝... 하지만 마지막은 가벼운 마음으로 나올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려는 듯, Symphonic Variations에선 경쾌한 춤곡들이 연주되었다. 깔끔한 마무리... 연주자들도 공연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난 듯이 자유롭고 편안한 표정이었다. 공연의 끝을 확실히 알려주는 교가가 연주되었을 때서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칠흙 같은 어둠 이 짙게 깔린 밖에서는 여전히, 아니 더욱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공연을 보기 전 처음에 느꼈던 차가움과 우울함이 주는 느낌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따뜻한 음악의 빗물을 흡수한 스폰지인 나는 더 이상의 차가운 빗물을 빨아드릴 마음의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마지막으로 한양대학교 교가가 연주될 때는 나는 기립하여 함께 교가를 제창하였다. 학교에서도 수업시간 외에는 불러본 일이 없던 교가.... 그 교가를 부르면서 나는 가슴 저 밑에서 뭔가 솟아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연주회에서 느낀 감동과 흥분을 가슴속에 새겼다. 이 번에 몇 번의 연주회를 다니면서 나름대로 느끼는 것이 많았다. 그 동안 내가 너무 이런 문화에 대해 담을 쌓고 당장에 좋은 문화만을 따라 다녔었는데 이런 클래식 연주회에 와서 아름다운 그리고 여러 가지 감정과 모습을 내포하고 있는 음악들을 들으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단순히 즐거운 문화보다는 좀 더 깊이있는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서 앞으로도 이런 연주회를 자주 관람하러 다 밀라노 이외의 장소에서 몇 차례 성공을 거두게 된다. 가수 주제피나 스트레포니 Giuseppina Strepponi(1859년, 베르디는 그녀와 결혼함으로써 오래 지속된 애인 관계를 합법적인 관계로 바꾸었다)를 비롯한 몇 친구의 끈기 있는 격려로 베르디는 이 시련을 이겨내고 역시 스칼라 극장에서 나부코도노조르(통칭 나부코)를 상연했다(1842). 이 작품은 대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그것은 민중의 예술의 탄생을 알리는 성악 어법의 격렬함과 민중을 상징하는 합창을 대폭적으로 도입(롯시니의 모세의 영향이 분명하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또한 이 성공은 작품의 주제가 애국심에 호소한 결과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당시 롬바르디아 사람들은 오스트리아의 압제하에 놓여 있었다. 롬바르디(제1차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1843)는 역사를 제재로 한 대오페라라는 서사시적인 감흥에서 착상을 얻은 작품이다. 그러나 베르디가 라틴적 낭만주의 특유의 사정에 어울리는 그의 극적 재능을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위고 Victor Hugo 원작의 에르나니(1844 베네치아)에 의해서였다(이룰 수 없는 사랑, 마지막 장면에서의 주인공의 희생적인 행위, 정치적 또는 인간적 배경 등). 한편, 그는 줄거리를 최대한으로 압축하여 성악에 거의 부동의 지상권(至上權)을 부여하는 타입의 오페라라는 음악적 도식을 중시했다. 이때부터 유명해진 베르디는 원하지 않더라도 1년에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오페라를 이탈리아에 있는 대극장을 위해 작곡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외국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1847년 런던에서 군도를(주연은 예니 린드), 파리에서는 예루살렘을 초연했다(주연 뒤프레). 갈레선(船)의 죄수처럼 일한 이 기간에 베르디의 작품은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실패도 적지 않았다. 작품 자체에도 하자가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성공 여부를 가름한 것은 연주자들의 수준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베르디의 새롭고 힘찬 음악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고 또 반드시 검토해서 선정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젊에 작곡했던 정치적 작품은 그 존재 이유를 이미 상실해 버렸다.가면 무도회 Un ballo in maschera가 로마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을 때 베르디는 부세톤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리소르지멘토의 영웅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토리노에서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를 배알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베르디의 이름의 각 글자 V. E. R. D. I.는 이탈리아왕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Vittorio Emmanele Re d'Italia의 단축형이었다). 그는 그 후 다시 작곡활동을 시작했으며 1862년에는 운명의 힘을 페테스부르크에서 초연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의 작곡 리듬은 눈에 띄게 더디어졌다. 1865년에 맥베드를 개정한 뒤 베르디는 파리 오페라 극장을 위해서 프랑스어로 오페라 돈 카를로스(1867)를 작곡하여 이탈리아어판으로 런던과 이탈리아에서 상연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1871년 카이로에서 초연한 아이다는 전대미문의 호화로움(일찍이 없었던 고액의 보수로)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적 영광을 얻었다. 만초니 Manzoni의 추도를 위해 작곡한 웅대한 레퀴엠의 발표 후 이탈리아의 새로운 세대의 음악들로부터 타도해야 할 사람으로 지목된 베르디는 일찍이 적대자였던 아리고 보이토와 화해했다. 시인인 보이토의 협력으로 시몬 보카네그라의 개정판(1881)의 공연이 대성공을 거두자 그는 다시 보이토에게 오텔로(1887)와 팔스타프(1893)의 집필을 의뢰했다. 이 두 오페라에는 놀랄 만한 젊음이 고동치고 있어서 80대에 이른 베르디의 혁신에 대한 노력이 엿보인다. 주제피나 스트레포니가 죽은(1897) 뒤 1898년에 베르디는 4개의 성가의 작곡을 끝냈다. 유산 상속인이 없던 그는 밀라노에 X음악가들을 위한 휴식의 집을 세웠다. 1901년 1월 27일 밀라노에서 숨을 거둔 베르디는 그의 희망에 따라 검소한 장례로 치루어졌고 2월 27일 이 휴식의 집으로 옮겨졌다. 이 의식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이끄는 900명 가까운 음악가들에 의해 엄숙하게 치루었다.
    독후감/창작| 2001.12.26| 7페이지| 1,000원| 조회(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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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이해] 대중예술의 이해-친구
    대중예술의 이해메타비평문 영혼의 지문이 묻어 있는 깡패 영화김소희-영화평론가라는 영화에 대해 영화평론가 김소희는 영혼의 지문이 묻어 있는 깡패 영화 라는 타이틀 아래 강한 지지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일련의 조폭 영화 (조폭을 희화한 영화와 조폭을 미화한 영화)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저 그런 깡패 영화 (굳이 차이점을 말하라고 한다면 감독 자신의 기억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이다.)일뿐이며, 이 영화 속에서 어떤 영혼의 지문 도 확인하지 못했다.평론의 서두에서 그는 이 영화가 성취한 바 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기 위해 극장을 찾았을 때, 열 개의 스크린 가운데 네 개를 차지한 는 심야였음에도 불구하고 완전 매진을 기록 중이었고, 두 시간이나 기다려서야 영화를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 이전에 이 영화의 상업적인 흥행 돌풍에 대해 명백히 예상 했으며, 이 영화가 성취한 바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것에 반대한다 는 의미로 낮은 별점 쪽을 택한 적이 있었다고 말하였다. 그것은 이 영화가 성취한 바 라는 것이 결국 상업적인 흥행에서의 성공 일 뿐이며, 그 역시 이 같은 이유로 인해 낮은 점수를 주었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화의 대대적인 흥행에 편승해 다시 영화관을 찾았고, 라는 영화에 대해 전과 달리 더 높은 평가를 내리며 강력한 지지론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물론 영화평론가 또는 비평가가 처음 영화를 접하고 나서 내린 평가가 과연 얼마나 정확한지(아니, 한 개인의 의견을 정확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또한 자신의 평가에 대해 변치 않는 일관된 주장을 할 수 있는가에 의문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영화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자신이 내렸던 평가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 그 영화의 상업적인 성공에 편승해 이전과는 달리 높은 평가를 주었다는 점에서 일반인이 아닌 한 사람의 영화평론가로서의 역할을 다했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현재 한국영화의 의무상영일수는 최소 106일. 도 적지 않다. 반대론자들의 입장은 가 신드롬까지 불러 일으켜가며 독주하다보니 다양한 장르의 한국 영화에게 제작 기회와 상영기회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의 성공은 `깡패 영화'의 양산을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멜로 영화로, 그리고 이제 깡패 영화로 이어지는 ‘기획성’영화들은 분명 한국영화의 중흥을 이끈 견인차 구실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예술성 있는 작가주의 영화의 탄생을 막고, 치밀한 마케팅 전략으로 관객의 기호에 부응하는 비슷비슷한 흥행영화들만 쏟아냈다는 비판론이 적지 않다. 비단 이것은 영화의 제작기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스크린 쿼터 와도 연관지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 한국 영화의 의무 상영일수는 최소 106일인데, 가 전국 극장의 5분의 1에 달하는 117개 극장(160개 스크린)에서 장기간 상영되다보니 스크린 쿼터의 절반 이상을 채우게 되었다. 한 작품의 대대적인 흥행도 물론 중요하지만 대중문화의 발전에 있어서 다양성을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면, 보다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또한 상영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다양한 작품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가 1년에 영화 1편 볼까말까한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지만,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통해 계층별, 연령별, 취향별로 새로운 수요를 계속 창출하는 것이 한국 영화가 발전하는데 있어서 더욱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점에 있어서 의 흥행은 700만 명 짜리 영화 1편보다 100만 명 짜리 영화 7편이 훨씬 값지다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부분이다.그는 평론의 소제목으로 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모두가 고아였던 시대 라고 제시하였다. 그는 여기 나오는 모든 아버지들은 무관심하거나 폭력적이거나 무기력하거나 음험하거나 부패해있으며 기껏해야 동정을 일으키는 정도이며, 따라서 영화 의 주인공들에게 아버지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 같은 고아 의식 이이르는 시기 동안 부산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연대기적 기술을 하고 있긴 하지만, 남한의 근대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하다 못해 부산의 지역사에도 아무 관심이 없다.또한 그는 영화 속 네 친구의 인생길이 갈라지는 것도 각각의 아버지들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작가·감독의 머리 속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버지의 존재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단락”이라고 제시한 셈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감독은 상택이라는 인물을 통해 과거의 기억들을 캐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영화의 주무대인 깡패 세계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택의 시선을 통해 분절된 에피소드들만을 이어 붙이는 구성을 하도록 하였다. 이를테면 준석은 아버지가 건달이었기에 그 뒤를 이어 건달의 길을 걷게 되고, 동수는 또 아버지가 죽은 사람의 염이나 하는 비천한 직업을 가졌기에 그것에 대한 반발로 결국 깡패 세계에 입문한다. 이것은 여느 강패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인과 결과의 연쇄가 되풀이되는 것일 뿐, 상택의 시선으로는 인과관계 안에 있는 연결고리와 숨겨진 이야기들을 둘춰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친구는 불운한 주인공들이 하강하는 운명의 이야기를 그리 설득력있게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상택의 시선은 영화속에 그려지는 깡패 세계에 대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피상적인 것 이상을 보여줄 수 없다.나는 이 영화에서 아버지의 부재보다는 오히려 어머니 또는 여성의 부재에 대해 꼬집고 싶다. 이 영화의 어디에서도 어머니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버지들은 비록 무기력하거나 부패한 모습일지언정 영화 속에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어머니는 하다 못해 단 한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그룹 레인보우의 리드싱어인 진숙 역시 준석의 여자친구이자 훗날의 아내로 등장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렇다할 역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 예상치 못한 성공에 대해 “남성성의 상실에 대한 저항과 그것을 회복하려는 욕망”(영화평론가 심영섭) 또는 “답답한 현실에 대한 우울 원리가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생존 논리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군사독재에 종지부를 찍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였다. 그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경쟁자를 다루는 법, 자기 절제와 성실성, 직업상의 전문 기술을 설파하며 건설업과 원양어업 등에서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하다면서 이 영화가 깡패세계를 빌려 자본주의 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갱스터 장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깡패 세계의 맹목적인 충성과 배신을 일반적인 생존 논리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평범한 일반인이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고 살인까지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으며, 또한 상부에 지시에 따라 자신의 친구를 죽이도록 사주할 수 있을까? 깡패 세계의 논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될 수 없는 부분이다. 이것은 조폭에 세계에 대한 미화에만 그치지 않고 조폭 세계를 과잉 일반화한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그는 또다른 소제목으로 시스템, 배우, 드라마의 조화로운 앙상블 이라고 제시하였다. 그는 를 흥행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 상업영화 시스템의 전반적인 활력에 기인하여 스크린 수를 최대로 열고 마케팅을 집중시키면 비용이 효과적으로 회수되기 때문에 완성도 있는 대작의 경우 흥행 안전성은 더욱 높아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배우 문성근은 "99년 이후 에 이르기까지 한국영화계에서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식으로 많은 극장을 잡아 대규모 홍보비를 쏟아 붓는 방식이 일반화되다보니 처럼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흥행성 있는 대작의 제작이 과연 작품의 완성도를 어느 정도 고려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말하는 작품의 완성도 라는 것은 결국 라는 영화를 놓고 보았을 때, 상업성 또는 흥행성의 완성이 아닐까?그는 친구의 성공요인의 하나로 배우의 힘을 들었다. 바로, 유오성의 에너지 넘치는 연기와 장동건의 변신이 그것이다. 나도 물론 유오성낌이 들었고, 장동건은 그저 조연이라고 생각되었고, 속았다는 느낌까지 들기도 하였다. 실제로 한 영화제에서 유오성은 남우 주연상을, 장동건은 남우 조연상을 수상한바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유오성 주연, 장동건 조연이라고 밝혔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 역시 영화의 상업성과 관련지어 장동건의 인기와 상품성을 영화의 흥행에 이용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우리는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의 영어 제목은 ‘Memory Island’라고 한다. 기억 속에 드문드문 섬처럼 남아 있는 유년의 추억 속에서 그 친구들의 우정은 완벽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타이어 고무에 매달린 채 먼 바다로 수영을 나왔던 네 꼬마 중에 누군가가 말한다.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이제 돌아가자.” 앞서 말한 동화책의 작가는 유년의 즐거움이야말로 에누리 없이 완벽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완벽함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이런 상념 때문이었는지 를 보는 동안 같은 후샤오시엔의 영화들이 떠올랐다. 그러자 왜 에게 높은 별점을 주기를 망설였는지도 아울러 생각났다. 아이들의 머리 위로 살랑거리는 나뭇잎과 그 사이로 비쳐오는 햇살에다 대만의 역사 속에서 가녀린 숨을 내쉬었던 사람들의 애틋한 삶을 새겨 넣었던 후샤오시엔의 극도로 예민하고 지적이고 아름다운 영화 세계를 그리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기대는 쉽게 채워지기 어려운 비평가의 공상인지도 모른다. 마치 후샤오시엔에게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해보라고 얼러대는 것만큼이나. 생경하거나 개그맨 같거나 그도 아니면 거룩한 희생양처럼 ‘후까시’를 잡는 깡패가 아니라, 그 얼굴에 영혼의 지문이 묻어 있는 아픈 인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먼저 눈을 돌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를 언급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이야기는 이 영화가 부산이라는 지역성을 가지고 정면 승부를 한다는 점이다. 죽음과 패배를 비장미 넘치게 강조함으로써 남성 신파의 경지에 이른 이 영화에 대해 부산 정서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애초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오늘날 그 지역에 넘다.
    예체능| 2001.12.24| 6페이지| 1,000원| 조회(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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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생과 청년문화
    강 사 : 김유혁 (단국대 명예교수)일 시 : 2001년 5월 25일서 언퇴계(退溪)는 조선 이기철학을 집대성하고 또한 조선의 유자형(儒者型)을 완성한 학자이다. 올해는 그런 퇴계 선생이 출생한지 500년이 되는 해이다. 1492년에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부스의 출항을 기념하기 위해 1992년에 바르셀로나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었듯이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선조이자 세계적인 대학자인 퇴계선생을 알고 기리는 모습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퇴계선생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단지 그 분이 우리의 선조이며 유명한 학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퇴계이황이라는 역사적 인물의 인간상을 보고 자기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며,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발전의 계단을 한걸음 더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퇴계 이황이라는 한사람이 살아온 생애와 사상을 지금의 나의 그것들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퇴계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알고 생각해 봄으로써 나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 앞으로 내가 나아갈 길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본 언. 이황의 생애이황(李滉, 1501-1570)의 동상비문에서 열암 박종홍(朴鍾鴻)은 퇴계의 생애와 사상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웅성 깊고 정밀한 것은 선생의 학문이요, 분명하고 간곡한 것은 선생의 가르침이다. 앎도 행함도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공경의 자세 하나로 밑받침하는 데 교학의 근본을 두었다. 타고난 성품이 순수하고 진실되어 제자들을 정성껏 이끌어 계발하니 문하에 명현들이 뒤를 이어 나왔다.고명한 이름이 일찍부터 널리 들리었으며, 70평생의 마지막까지 자기의 학설 속의 잘못을 고백하고 고치기에 용감하였다.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남겨주신 값진 본보기이다. 벼슬살이를 즐기지 않았으나 국은에 보답하는 일념에서 심혈을 기울여 지은 글들을 임금께 올리니 나라를 근심하는 경륜이요 유학의 진수이었다. 품격 높은 선생의 글은 저절로 사람을 감복케 한다.선생은 경상도 월 8일 세상을 떠났다. '고종기'에 의하면 장중하고 향기로운 진정한 선비였던 퇴계의 임종모습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초사흘날 이질로 설사를 하시다. 마침 매화의 화분이 곁에 있었는데 선생은 그것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으라고 말씀하시고는 매형(梅兄)에게 깨끗하지 못하면 내 마음이 편할 수 없다. 고 하시다. 같은 날 병세가 매우 위중하시다. 자제들에게 당부하시기를 여러 사람의 책을 잃어 버리지 말고 돌려주라고 하시다 나흗날 형의 아들 영을 시켜 유계를 쓰게 하였는데, 첫째, 예장(禮葬)을 하지 말 것, 둘째, 유밀과를 쓰지 말 것, 세째, 비석을 세우지 말고 다만 조그만 돌을 쓰되, 그 앞면에는 퇴도만은 진성이공지묘라고 쓰고 그 뒷면에는 오직 고향과 세계와 지행과 출처의 대강을 가례에 적힌대로 간략히 쓸것이라 하시다. 이날 오후에 여러 제자들을 만나보고자 하시다. 자제들이 그만 두시기를 청하다. 선생은 죽고 사는 마당에 안 볼수 없다. 하시고는 웃옷을 입고 모든 제자들에게 내가 평소에 잘못된 소견으로 제군들과 종일토록 강론하였으니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하시다.여드렛 날, 아침에 매화에 물을 주라 하시다. 이 날은 개었는데, 유시(酉時)가 되자 갑자기 흰 구름이 지붕 위에 모이고, 눈이 내려 한치쯤 쌓였다. 조금 뒤 선생이 자리를 바르게 하라 명하시므로 붙들어 일으켜 드리자 앉아서 돌아가시다. 그러자 구름은 흩어지고 눈은 개이다.』. 이황의 사상과 철학퇴계는 16세기 중반에 주리(理)적 이기이원론의 토대 위에서 기대승과의 4단7정론 을 통하여 한국 성리학의 특징인 심성론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수양론의 실천방 법을 정밀하게 규명함으로써, 조선시대 성리학의 기본 틀을 정립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1) 이일원론 (理一原論)퇴계는 처음 이기이원론에서 출발하여 이일원론에 도달한 객관적관념론자였다. 조선 전반의 주자철학 연구자는 대개가 이기이원론에서 출발하여 이일원론에 이르렀던 것이나 퇴계에 이르러 더욱 명백하게 드러났다.세계는 理와 氣로써 형성되며 사물이 생성되고 나면 理는 각 사물의 본질이며 나아가 주재하는 법칙이 된다. 그러므로 「사물에는 大와 小의 차별이 있지마는 理는 大小의 차별이 없으며 이른 곳마다 없는 곳을 보지 못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사물의 본질과 우주의 본질은 동일한 理라 생각하였으며 또 사물에 각기 갖추어진 理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기동리현한 理에 해당되는 것이라 생각된다.2) 인 식 론 (認 識 論)퇴계는 理의 인식을 성찰과 체험으로 가능하다 하였다. 그러므로 「존양체찰(存養體察)은 오가(吾家)의 종지(宗旨)라」하여 존양 혹은 존성함에 있어서 理를 체험하고 성찰하여 사람의 본래적인 性을 존양하여 덕성을 기르고, 천리를 성찰하고 체험함으로써 그것의 인식이 가능하다 한 것이라, 천리와 성의 본질을 성찰 및 체험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직관적방법을 뜻하는 것이라, 덕성의 존양은 수양을 의미한 것이다. 존양이란 마음이 발동하기에 앞서서 미발지중(性)을 기르는 것이니 궁리진성의 방법이 자연 내향적인 마음의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하여 내면적인 체험이 중요시되고 오랜 존양성찰의 공부가 익어 도덕적 연성과 절조의 기백이 인격화 된다. 그러므로 독서도 한정이 있게 되며 박학보다는 오히려 심성의 수양에 필요한 사색으로 이인 근본 실재를 주체적으로 파악하되 그것은 다만 이론적이며 지식적 파악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체험과 성찰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므로 「그래서 수시수처에서 관성체험하되 이 마음을 방일치 않게 할 뿐이다」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인 참여활동보다 내면적존양을 치중하는 퇴계학풍을 낳게 하였다. 퇴계학파는 경 혹은 인의 문제에 집중적인 관심을 모아 도의주의적인 경향이 강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또 심성정문제에 관심을 집중하여 사단칠정의 문제 중심적인 연구 과제로 드러난 것이다.또 인식론의 한부분으로서 지행문제에 있어서는 지행호진(知行互進)을 주장한다. 이 知와 行의 문제는 이론과 실천의 문제와 같은 것으로서 유학에서는 전통적으로 중요시 하여왔다. 그런데 퇴계는 중국의 왕양명의 때문에 사단의 순선함을 생각할 수 없으므로 「사단은 理의 發이라 순선하고, 칠정은 겸기의 發이라 선악이 있는 것이라」하여 다소 완화하였다. 퇴계의 논거는 理氣의 불가분한 관계를 인정하지만 그것은 서로 다른 두 가지라는 생각에서 출발하였다. 그 후에는 그는 「주자어류」의 보한경의 기록인 맹자를 論하는 조항에서 주자가 「사단은 이지발이요, 칠정은 기지발이라」한 것을 발견하고 자기의 전설과 부합하므로 정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사실 「사단의 發은 순리요, 칠정의 發은 겸기라」한 것은 명백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이발기발이라는 사상과는 서로 맞지 않는다. 그런데 「답기대승제일서」에서 「성정의 변론은 선유의 발명함이 상세하다. 오직 사단과 칠정을 운운함은 함께 情이라 할 것이나 理氣로 나누어 설명한 사람을 아직 못 보았다」하여 자기 독창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사단은 이발, 칠정은 기발이라 한 說에 대하여 두 가지로 해석 할 수 있다.첫째 마음은 理와 氣를 겸합한 것이요, 心의 작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理의 발동부분과 氣의 발동부분을 구별 인식할 수 있다. 사단은 순선한 마음의 작용이며, 理의 일어남이라 생각되며 칠정은 선악이 정하여지지 않는 마음의 작용이며 氣의 일어남이니 단순히 사단은 理의 일어남이요, 칠정은 氣의 일어남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답기대승제일서」에서 퇴계는 「나는 일찍이 情에 사단과 칠정의 구분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性에 본연과 기질의 차이가 있는 것과 같이, 그러하다면 性을 理와 氣로 분석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情만을 이기로 분석할 수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측은, 수오, 사양, 시비의 사단은 어디에서 이는가, 인의예지의 性에서 일 따름이다.희, 노, 애, 애, 악, 욕의 칠정은 어디에서 일었는가, 외물에 그 형기가 접촉하여 마음속으로 움직여 대상을 따라서 나타난 것이다. 사단의 일어남은 맹자가 벌써 마음이라 했으므로 心은 원래 理와 氣가 합한 것이다. 그런데 理를 주동으로 한다함은 무엇인가. 인의예지의 성이 순수하게 마음깊이 중심으로 한 정주계 성리학으로서 내향적 이론 추구의 경향으로 발전하였고, 그의 사상으로 인하여 한국 성리학이 더욱더 강한 독자성을 지니게 되었다.ㄹ. 수양론의 실천방법을 정밀하게 규명하여 조선시대 도학의 기본틀을 정립함퇴계에 의하면 사칠론 등 심성에 관한 이론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그 목적은 단하나,"감성적인 욕구를 막고 이성에 따라 행위하려는"데 있다. 이 "알인욕 존천리"는"경"의 태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경의 태도를 취하면 천리가 무엇인지마음 속으로 스스로 알 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로서의 천과 인간이 합일됨"을가리킨다. 그리고 위기지학의 성리학을 바탕으로 그러한 경의 태도를 한평생 잃지않고 실천함으로써 그가 지닌 학문의 깊이와 인격의 진가가 어우러져 많은 사람들을끝없이 매료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황의 교육사상1) 교육관성균관 대사성의 책무를 맡으면서 퇴계는 그의 교육관을 밝힌 적이 있다. "선비란 예의의 원천이며 원기의 본거이다......지금부터 제군들은 모든 일상생활이 예의 가운데서 행하여지도록 하라. 서로 채찍질하여 구습을 벗도록 힘쓰고, 집에서 부형 모시는 마음을 미루어 밖에서 어른과 웃사람을 섬기는 예를 삼을 것이다. 안으로 충신(忠信)에 주력하고 밖으로 손제(遜悌)를 행함으로써 국가가 문예를 장려하고 학교를 세워 선비를 기르는 뜻에 부응하라." 요컨대 올바른 선비를 길러 국가의 교육 목적에 부응하는 것이 퇴계가 지향했던 교육자상이었다.2) 퇴계학의 시대적 성격퇴계학은 16세기 조선의 역사적 산물이면서, 그의 역사의식과 인간의 식의 표현이 다. 따라서 퇴계학을 성리학의 동방별종(東方別宗)으로 보거나, 아니면 한국 철학의 독자문호(獨自門戶)로만 이해하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전자는 철학적 보편성을 강조하게 되어 퇴계학의 역사성이 결여될 우려가 있으며, 후자는 역사적 특수성이 강조됨으로써 학문의 세계적 호흡을 단절시킬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퇴계학은 퇴계의 시간.공간.인간이라는 삼간의 삼중주이면서 당시의 세계철학이던 정주성리학과의 것이다.
    사회과학| 2001.06.12| 21페이지| 1,000원| 조회(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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