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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 교육공공성의 인식과 재구성
    교육 공공성의 인식과 재구성1. 교육에서의 공공성최근 “교육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 교육 공공성은 그 의미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는 개념은 아니다. 때문에 우선적으로 공공성과 교육의 개념을 분리해서 내용을 살펴보고, 두 개념이 어떻게 연관성을 가지는지를 이해함으로써 교육 공공성의 의미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1) 공공성의 의미사전적 의미에서 ‘공(公)’은 개인적인 것이 아닌, 사회일반의 많은 이들에게 관계되는 것으로 공정이나 공평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모여서 관계를 만들고 공동의 일에 참여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모든 국면에 대한 평가적, 규범적, 기준적 측면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공(共)’은 함께하다, 같게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사람들이 모이고 관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서 공적인 것은 공익(公益)과 연결지을 수 있겠다. 이렇게 구성된 공공(公共)은 몇 가지 속성을 지닌다.우선 공(公)적이라는 것은 불특정 다수인들이 언제나 접근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공공성은 개방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정의 개인이나 집단에 유리하게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고 이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공공성은 생존권적인 것으로, 특권층의 비호보다 약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또한 공공(公共)은 공개성을 가진다. 접근가능성을 가진 자유시민들이 여론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적 표현, 자유로운 공적 연설, 언론 등의 수단을 통해서 여론을 형성을 형성할 수 있고, 여기에서 하버마스가 제시한 공공영역의 가능성이 언급될 수 있겠다.한편 공공(公共)은 사익을 존중한다. 공(公)적인 것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가 개인이고, 개인이 모여서 공적 집합체를 이루는 것이므로 사익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공적인 것은 사적인 것과 대립하는 것이면서도 궁극적으로 타인에 대한 신뢰와 이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적인 것 속에서 사적 삶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가치 지향성을 띠고 있다. 그런데 교육의 영역은 근대 이후 개인적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공교육의 형태로 사회와 끊임없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개인과 사회의 차원이 중첩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의 측면에서는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이거나 사회의 구조 속에서 개인을 지키기 위한 권리의 형태이며, 사회의 측면에서는 개인의 행위가 개인적인 수준에 머물지 않고 공익과 연결되도록 제도를 통해 사회가 보장해야하는 속성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한 교육은 인간행위의 두 가지 차원인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개인 행위의 자유를 강조할 것인지, 사회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행위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보장받을 수 있는 평등을 강조할 것이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교육은 개인과 사회의 차원, 그리고 자유와 평등의 차원에서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이러한 각 영역들은 개별적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다.개인적 측면에서 교육은 학습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교육을 통해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85년 UNESCO의 ‘학습권 선언’에 의하면 학습이 모든 인간의 생존?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부가결한 것으로 ‘보편적 필요로서의 교육’을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학습권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서 사회가 보장해주어야 할 것은 자유와 그에 따른 선택을 존중하는 자율성이다.사회적 측면에서 교육은 개인이 지닌 발전 가능성을 존중하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타고나는 권리로 나타난다. 사회 내에서 교육을 통해 개개인은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되고 모든 이들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으로 ‘교육받을 권리’로 인식되어 갔다. 이러한 교육원은 헌법에 따라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권리’,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로 구성된다.이처럼 교육받을 권리는 개인이 국가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개인을 위한 권리를 의 구현이라는 공교육 이념이 단계적으로 구현된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역사적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역사적으로 공교육 제도의 성립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 그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국가주의에서는 정치적 사회통합과 국민성 형성을 위해 교육할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고, 경제적 원인으로는 산업혁명을 기초로 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효율적 노동력 양성을 목적으로 성립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생겨난 빈민과 이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교육으로 사회 안정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공교육은 대중교육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민족주의에 의한 애국심과 국민의식 형성이 필요해졌으며, 사회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는 다양한 원인이 결합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필요에 의해 형성된 공교육은 제도적으로 교육의 기회를 관리하고, 공정한 선발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가 필요하게 되었고, 근대국가 형성과정을 통해서 국가가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오늘날 보편화된 공교육 제도는 ‘평등’의 추구를 통한 인간의 권리의 실현과 그를 위한 ‘국가관리’라는 특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현실에서의 공교육은 교육 공공성의 의무기회 보장이나 국가에 의한 관리로 한정하고 더 이상의 내용을 담아내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학교교육제도의 발전은 교육기관에 대한 재정적 원조와 그에 보상으로서 국가?지방 자치단체의 학교 감독에 대한 인정을 통해 전반적 학교감독행정의 성립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학교감독에 대한 국가의 권한은 학교교육제도의 운영방식을 통해 학교에까지 미치게 되었고, 현실에서는 교육내용까지 국가가 관여하여 통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위임된 힘인 국가의 권한이 공교육 전반에 걸친 국가의 관리로 전환되어 나타난 것이다.공공성은 공익의 추구를 목적으로 해서 현실에서 그러한 성질이 구현되어 나타났을 때 받는 평가를 되었다. 이러한 압축된 변화의 경험은 국가가 구심점이 되어서 계획을 세우고, 이러한 계획에 모든 사회적 역량들이 집결되면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것은 사회영역 전반에 대해서 국가의 의지가 개입되는 총체적인 구조로 작용하는 국가주의적 성격으로 나타나게 되었다.일제의 식민지배 아래에서 한국 사회는 민족주의를 고조시켰고, 광복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국가’의 힘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게 되어 결국 권위주의적 국가체제가 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적인 조건이 조성되었다. 또한 1960년대 이후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사회발전 전략을 취하면서 ‘민족중흥’이라는 민족주의적 슬로건 아래 국민통합을 이루어냈는데, 이 시기에 교육이 국가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며 또한 기여해야한다는 발전교육론적 명제가 거의 모든 교육활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중심논리가 되었다. 따라서 교육을 국가발전과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국가 체제의 하위체계로 이해함으로써 교육과 국가의 관계를 부분과 전체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렇게 위로부터의 근대화 과정을 거쳐 온 한국 사회는 ‘공(公)’ 개념에 내포된 ‘공정성’의 측면과 ‘다수 민중의 이익’의 측면을 배제한 채 오로지 국가의 권력에만 ‘공(公)’으로서의 무게를 실어주었고 결국 이러한 국가주도의 공교육과 ‘공적인 것’에 대한 오해가 한국사회에 굳어져 간 것이다.또한 개인적으로 이러한 한국의 특징적인 성장은 교육을 통한 세대 간 사회 지위 이동의 가능성을 높이게 됨으로써 교육영역에 대한 개인들 간의 경쟁을 심화시키게 되었다. 전반적인 교육여건이 갖추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교육기회의 확대와 교육제도를 통한 사회에 필요한 인력이 충원되는 상황이 동시에 일어나 개인들 간의 경쟁은 심화되었고, 국가의 개입을 통해 교육에서의 공정성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이러한 한국사회의 하나의 제로도서의 공교육은 여러 가지 모습의 문제점을 파생시킴으로서 학교교육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다. 공교육의 획일화된 지식학습이다. 즉, 개인 수준의 선택과 자율성을 통해서 공교육의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려는 것이라고 하겠다.이와 같은 방식으로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교육재편의 방향은 경제적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이러한 대응도 여러 측면에서의 한계점을 시사하고 있다.우선 신자유주의 교육론이 추구하는 것은 교사와 학생 등 교육주체의 자율성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철저한 시장질서 내에서의 자율성이다. 때문에 경쟁력을 갖춘 교육공급자와 교육소비자들만이 교육의 자율성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신자유주의로 인한 교육의 경쟁체제는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나타났던 경쟁양식을 더욱 제도화하고 형식화함으로써 더욱 경쟁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러한 경쟁은 교육의 도구화 경향을 심화시키고, 교육목적과 방향이 수단가치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을 높게 하고 있다.또한 교육부문에 대한 시장원리의 도입은 지금까지 공교육을 움직여왔던 원리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국가라는 공적 주체에 위임되었던 교육기회의 확보라는 사회구성원들의 평등한 권리에 기반을 둔 공교육이 퇴각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신자유주의의 교육에의 도입은 효율성과 합리성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교육의 사유화와 불평등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는 것이다.이처럼 한국의 교육현실에서 신자유주의적 교육론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문제점을 드러내게 된다. 신자유주의의 교육론은 교육부문에 대한 경제논리의 도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동시에 교육부문에 있어서 국가가 새롭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교육론의 적용으로 우려되는 많은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대처함으로써 공교육의 역할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한국사회에서 하나의 제도로서 공교육은 사회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교육의 내용과 질이 아닌 제도 자체의 유지를 중시하되 되면서 학교교육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문제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강력한 권위를 바탕으로 사회 전반의 문제를 이끌어가는 국가의 역할에 익숙이다.
    교육학| 2004.11.21| 6페이지| 1,000원| 조회(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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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사-중국] 중화사상의 형성과 본질 평가B괜찮아요
    1. 들어가며끊임없이 변해가고 있는 세계 속에서 최근 눈에 띄도록 급속하게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나라들 중 하나가 중국이다. 불과 몇 십 년 전 만해도 그다지 세계의 흐름 속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중국이 자유주의적 경제의 도입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어마어마한 세력으로, 어쩌면 다시 이전의 동아시아의 중심으로 군림하던 중국·중화사상으로의 회귀(回歸)를 예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갖곤 한다. 고대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 우리 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나라들 중에서 유일한 정치적·군사적·경제적 대국으로서, 그리고 문화의 대국으로 주변의 나라들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중국. 이렇게 동아시아 문화의 원류(源流)이자 주변 여러 국가들의 민족문화의 모태가 된 중국. 이러한 문화적 대국이라는 바탕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중화사상(中華思想)이 오늘날에도 다시 재현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적 정황 속에서 중국과 중화사상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이해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며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2. 중국의 지리 환경과 민족의 구성중국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 중의 하나는 세계 3위의 대륙국가로서의 막대한 영토이다. 우리 나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토를 가짐으로서 남으로는 열대 기후에서 북으로는 한대 기후까지 다양한 기후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그에 따라 지방마다의 특색 있는 지리적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광대한 영토를 지녀 자체적으로는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중국도 세계사적 시각에서 본다면 다소 고립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의 고개 4대 문명 중에서 다소 떨어져서 발전을 이루어왔을 뿐만 아니라, 북쪽과 서쪽, 서남쪽으로는 몽고의 초원과 사막, 시베리아, 그리고 히말라야 산맥과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파미르 고원과 같은 가공할 장벽을 이루고 있었고, 동쪽과 남쪽으로도 험준한 산맥과 바다로 역시 장애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중국은 지리적으로 다양하면서도 고립된 이중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특성은 하나의 큰 틀 안에서 민족적인 중국만의 문화를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중국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또 하나는 13억에 이르는 인구이다. 더욱이 그 중에서 90%에 이르는 숫자가 한족(漢族)이라는 것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 한족은 상고시대에서부터 중국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온 중심민족이라 말할 수 있으며,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주변의 수많은 민족들과 접촉·교류·융합·동화하여 현재의 중국민족을 형성해왔다. 특히 이들은 원(元)왕조를 세워 150여 년간 중국을 통치했던 현재의 몽고 민족을 제외하고는, 항상 한족의 문화를 그대로 지키면서 소수 민족들을 그들에게 동화시켜왔다는 사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결국 현재 중국의 복합적인 민족구성은 한족 스스로의 무력에 의해 혹은 그들의 풍부한 경제력과 고도의 선진문화 그리고 방대한 인구로서 동화시킨 수많은 소수민족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3. 황하 농경의 발달과 문화고대 문명의 발생지들의 그러하듯이 산업혁명 이전의 문화 발달지들은 대부분 강을 끼고 비옥한 농토를 바탕으로 풍부한 농경 경제력을 기반하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황하를 바탕으로 한 황토지대에서 농경이 시작되어 경제적으로 풍부한 기반을 갖게 된다. 장강 유역에서도 농경이 발달했지만 다소 환경이 유리한 황하지역에서 더욱 선진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고, 이 같은 현상은 용산문화 말기부터 시작되는데 용산인들은 선진적 농경법을 앞세워 주변지역으로 진출하여 생활영역을 넓히고 결국 중원전체에 농경화를 가져왔다. 또 용산문화와 중원의 농경화는 중원지역이 취락 또는 부락으로 전철되었음을 전제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국가성립의 기반이 되었다.실로 이러한 방대한 경제력은 정치적으로는 동아시아 최초의 국가탄생을, 군사적으로 영토팽창을, 문화적으로는 세계 최고의 청동기문화 창달의 밑거름이 되었다. 결국 중원국가의 성립과 발달 그리고 고도의 문화 발달 원동력은 바로 황하 농경에서 생성되었던 거대한 경제력이 그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4. 통치 사상의 발달과 천치(天治)사상농경의 발달은 식량증산과 인구증가를 유발하였는데, 인구증가는 필연적으로 농경지의 부족, 활동영역의 확대 등으로 인간 부족간의 무력충돌을 초래하였고 결과적으로 군장·대인의 출현을 촉진하였다. 끝없이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씨·부족원 전체가 공동운명체임을 실감하고 군장·대인을 중심으로 뭉쳐야했고 그들의 정치·군사적 수장(首長)으로서의 역할은 커져갔다. 그러나 군장·대인이 단순한 무력만으로 통치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전체부족의 사제장으로 씨·부족의 제사를 거행하고 이러한 의례·의식을 통한 신(神)과의 유기적 관계 형성을 통해 카리스마적 위엄과 권위를 창출해 신성적 통치자로 부상하였다.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약소부족은 점차 강한 부족을 중심으로 정치·군사적 연맹을 형성하게 된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치수사업을 들 수 있는데 일개부족의 힘으로는 부족한 사업을 통해 부족연맹 또는 방읍연맹의 배경이 된 것이다. 은(殷)왕조의 개국 또한 이러한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강력한 군사적·정치적 힘을 가진 은을 중심으로 수많은 부족들이 뭉치게 되었는데, 각 부족의 내부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은왕은 연맹을 제어하기 위해 여러 통치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 은은 대규모의 제사제도를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는데, 은대의 최고신이었던 상제를 비롯해 연맹방읍의 족신(族神)을 수용한 자연신과 조상신에 대한 제사 의식은 연맹부족을 은왕을 중심으로 결속시키는 범국가적,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정치적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은의 통치제도는 특정 신의 카리스마에 의탁한 신정(神政)정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이후 중국 역대왕조에 전승되고 보완되어 세계에 유래가 없는 통치 이념으로 발달하였다.이후 주(周) 왕조는 이러한 사상을 발전시켜 천명(天命)사상을 내세워 새로운 통치 질서를 도모하였다. 은 왕조를 멸하라는 천명을 받았다고 하여 정통성을 내세워 주는 세력을 키워나갔고, 결국 강력해진 무력으로 은을 제압하고 주는 이전보다 강력한 주왕과 제후간의 관계를 명확히 하여 봉건적 군신관계를 돈독히 하였다. 또한 주는 보다 새로운 통치이념을 강구하였는데 그것이 천(天) 의 절대적 권위를 배경으로 한 천명사상이었다. 그러나 주목해야할 점은 천명사상이 단순히 주 건국과 통치의 정통성을 확립하는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맹자의 이론으로 더욱 발달되고 동중서에 의해 한 제국의 이념적 통치이론으로 채택됨으로써 마침내 천명사상은 중국 역대 군주의 통치와 지배의 정통성을 옹호하고 동치의 유일성을 천명하는 통치이념으로까지 확립되었다. 그리고 중국적 천하관의 형성과 천하를 중국천자의 통치영역으로 설정하는 통치이념의 발달에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이후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秦)에 의해 최초로 중국은 통일된 나라의 형태를 띄게된다. 진나라는 이전보다 강력한 통치질서를 원했는데, 이는 최초로 황제(皇帝) 라는 존호를 사용한 것으로부터 알 수 있다. 지상에서 떠오르고 있는 태양을 나타내는 황(皇) 과 우주 삼라만상을 주관하는 천제(天帝)를 의미하는 제(帝) 를 사용했다는 것은 이전에 하늘의 명을 받은 하늘의 아들 의 의미를 넘어서 우주 삼라만상의 조물주이고 천지자연의 법칙을 주재하는 상제 차원에까지 통치이념을 확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사회과학| 2001.11.06| 3페이지| 1,000원| 조회(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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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사 미술] 르네상스 매너리즘에 대하여...
    [ 서양사 입문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매너리즘의 대표화가, 틴토레토와 엘그레코를 중심으로...인문학부 2000131014 김 경 석1. 들어가며...재생 과 부흥 이란 의미의 르네상스.기존의 신 중심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난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작품들은, 서양사와 서양의 예술적 가치에 무지한 나에게도 매우 큰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을 비롯한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작가들의 이름은 이미 우리들을 귀에 익숙하게 들리며, 그들의 작품 또한 낯설지 않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번에 수업을 들으면서 다소 낯설지만 특별하게 들리는 부분이 있었다. 르네상스의 전성기였던 15세기말에서 16세기초의 작가들이나 그들의 작품들은 익숙했지만, 매너리즘 이라고 하는 16세기초에 일어났던 사조의 내용은 나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흔히 매너리즘이라고 하면, 일정한 기법이나 형식 따위가 습관적으로 되풀이되어 독창성과 신선한 맛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현상유지 경향이나 자세를 가리켜 흔히 매너리즘에 빠졌다고도 말하는데, 르네상스 시대의 매너리즘에 대해서는 독창적인 사조로서 새로이 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익숙하지 않은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으로 글을 써나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르네상스 시대에서 새롭게 평가되고 있는 매너리즘 작가(틴토레토, 그리고 엘 그레코)와 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감상을 써보고자 한다.2. 매너리즘의 시작 - 틴토레토완벽한 기법의 숙달로 16세기말 사람들은 미술의 발전이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정신적 혼란 속에 당시의 젊은 미술가들은 르네상스의 이상인 "조화와 균형 을 거부하고 반고전주의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안렌즈로 바라보듯이 목을 길게 하거나 하여 신체의 일부를 과장하여 신기하고 부자연스러운 효과를 기도했는데, 16세기 초의 이러한 경향의 미술을 매너리즘이라고 한다. 이러한 시도의 선두자 격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 바로 틴토레토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전부터 경계가 모호해져오던 것을 그의 시대에 이르러 매너리즘의 획을 긋고, 충격적이고 극적인 그림을 보여주기를 원했다.1548년에 그려진 는 프로방스의 어떤 기사의 사환이 주인의 명령을 무시하고 성 마르코의 성 유물을 배견했다는 죄목으로 눈과 다리를 잘리게 되었을 때, 기적적으로 성 마르코가 나타나 그를 구했다는 황금전설의 한 장면이다. 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겹겹이 합쳐져 있고 그림의 우측 상단에서 내려오는 성 마르코의 영과 함께 그에게로 비롯한 빛이 잘 합성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구도적으로 다소 불안한 구도이기는 하지만 역동적이고 빛을 강조하는 그의 생각을 뚜렷하게 느낄수가 있다.또한 이란 작품에서는 그의 역동적인 구도를 확연하게 볼 수 있는데, 헤르메스에게 안긴 채 헤라의 젖을 빨려는 헤라클레스를 피하려는 헤라의 유두에서 용솟음치는 젖이 금색으로 빛나는 숱한 선이 되어 천공으로 뻗치고 있는 모습을 대각선 구도로 매우 활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우측상단에서 날아오는 헤르메스와 헤라클레스를 피하려는 비스듬히 누운 헤라의 모습에서 인체의 격렬한 움직임을 살펴볼 수 있는데, 기존 르네상스 시대 작품들과는 매우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3. 매너리즘의 절정 - 엘그레코매너리즘의 기법을 가장 깊이 있게 밀고 나간 대가는 그리스 출신의 엘그레코였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혹평을 받던 중 스페인으로 건너와 인정을 받게 되는데, 엘그레코의 작품들은 이미 바로크적인 역동성을 배태하고 있지만 지극히 정신적으로 흘러서 신비감과 모호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회화세계를 이루었다.
    사회과학| 2001.10.28| 2페이지| 1,000원| 조회(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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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사회락] 가사노동의 재평가 평가A좋아요
    가사노동의 재평가가사 노동은 끝없이 되풀이해야 하기 때문에 시지푸스의 고통과 같다.가정주부는 생산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단순히 현재를 영구화시킨다.-시몬느 드 보봐르-1. 발단초등학교 때부터 학기가 시작할 때면 빠짐없이 집안 환경 조사 를 하곤 했었다. 가족관계, 가족들의 나이, 직업, 가계소득 정도 등을 기입하는 종이의 빈칸을 메워가면서 항상 고민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고민의 이유는 바로 어머니의 직업. 물론 어머니가 직업을 가지고 직접 돈을 벌어오시는 아이들은 보험설계사, 선생님, 약사... 이렇게 적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머니의 직업을 무(無) 로 적을지 주부(主婦) 라고 적을지를 두고 고민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고민을 한 가치를 생각하기 무섭게도 무(無) 라고 적은 어머니의 직업은 선생님의 교사수첩에는 자연스레 주부(主婦) 로 등재되었다.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대답은 뚜렷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어린 시절 학기초마다 종이를 들고서 고민했던 기억들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세뇌되어버린 남성과 여성의 불평들 구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해보며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2. 가사노동 평가의 역사가사노동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나 마르크스 페미니즘에서 1970년대 내내 논쟁을 벌여온 주제이다. 여성의 해방은 가사노동의 해방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가사노동과 관련된 최근 여성운동에서도 중요한 이유로 부각된다. 여성운동가들은 가사노동의 본질 규명과 가치의 재평가가 여성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가사노동이 문제시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여성의 일 이며 무보수 노동 이라는 데 있다. 가사 노동에 대한 이같은 사회 통념은 시장 노동에 참여하는 취업 여성들에 대한 각종 차별과 불평등의 원인으로도 작용한다. 따라서 여성운동가들은 가사노동이 여성의 자연적인 임무로서의 일이 아니라 선택적인 일이라야 하며 가사노동의 가치가 재평가되어야만 여성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에 대처하기 위해 식량의 안정성을 위한 서로 보완하는 관계였지 사회적인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현재 여성은 가사노동, 남성은 시장 노동의 형태로 성별 분업화 된 현상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가부장적 성별분업이 자본주의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으나 산업화에 따른 생산과 소비의 분리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다. 전통적인 시각에서 노동시장에 제공한 시간 이외의 시간은 모두 여가 로 정의되는 것은 가정 안팎에서 하는 일 중 소득을 창출하는 일이 아닌 것은 모두 일 이 아니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여기에서 자녀 양육과 가사에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하는 가정 주부를 놀고 있다 고 말하는 사회적인 인식과 시장이외의 일은 여가 라고 규정하는 경제학의 인식이 일치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그러나 1965년에 베커의 시간 배분 이론 이 나온 후 가사 노동에 관한 논의가 미시 경제 이론적인 측면에서 진전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사 노동을 GNP 계정에 포함시키려는 실질적인 시도도 나타났다. 베커 이론이 가족과 가사 노동에 대한 시각이 전통적인 것과 매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가계는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 가계는 시장에서 구입하는 상품과 가사노동을 사용해 상품(일반적 의미의 상품 개념과 다름 예를 들면 깨끗한 방, 자녀의 질과 건강 등)을 만들게 되는 것. 이다. 베커류의 이론에서는 가사 노동 시간의 증가=시장 노동 시간의 감소=가계 화폐 소득의 감소 이기 때문에 가사 노동은 경제적 노동이며 기회비용의 제로 가 아니라 시장 노동에 참가할 경우에 얻을 수 있는 잠재 소득이다.가사노동은 대체로 상품을 구입해서 그것들을 유용한 형태로 변형시키는 것으로 구성된다. 인간의 생산과 재생산에 사용되는 노동의 기능과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비 상품화된 노동을 통해서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가사 노동인 것이다. 가사노동이 GNP계정에서 제외되고 있는 이유는 순수한 소비활동으로만 간주되어 왔고 현대의 시장 경제 제도하에서는 그 교환 가치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또 현대 사회에서는 기계화나 자동화, 사회화로 인해 가사노동이 점점 더 불필요한 것이 되어가므로 굳이 가사노동의 가치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으나 ,가사노동은 삶의 질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므로 인간의 욕구가 개발됨으로써 새롭게 창조되거나 강화되는 부분 또한 나타난다.3. 가사노동의 가치(1) 총합적 대체비용법 ⇒ 856,689원이 방법은 주부가 행하는 가사노동을 하나의 직업으로 보고 거기에 적당한 직업인을 가정에서 고용한다는 전제하에 그 보수를 기준으로 가사노동의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계산이 쉬워서 많이 이용되었으나 가정부나 파출부를 대체직으로 선정할 것인가, 총괄관리자를 대체직으로 선택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만약 가정부가 파출부를 대체직으로 선정할 경우 가사노동의 가치가 과소평가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대체직의 일반적인 보수만 계산하면 되므로 용이하다 할 수 있다.(2) 전문가 대체비용법 ⇒ 968,555원이 방법은 가사노동을 각 작업영역으로 분류하고 각 영역에 소요된 시간을 측정해 해당 대체 직종의 노동에 지급되는 임금을 시장 임금율을 적용시켜 가사노동의 가치를 산출하는 것이다. 각각의 분류된 가사노동에 소요되는 시간을 측정해야하고 각 작업을 수행하는 직업인의 임금율 또한 산출해야 한다. 각각의 작업에 해당하는 직업인을 따로 따로 고용하는 것은 거의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성이 적다는 비판이 있고, 총합적 대체 비용법보다 훨씬 복잡하나 가사노동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방법이다.(3) 기회비용법 ⇒ 1,026,000원기회비용법은 주부가 취업할 경우에 벌어들일 수 있는 잠재 소득을 가사노동의 가치로 산출하는 방법이다. 가계 생산 혹은 가사노동에 시간을 배분할 때 시간당 가계 생산의 한계 가치가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임금율과 같은 점에서 결정된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가정에서의 하루 노동 가치는 시장에서의 하루 노동 가치와 같다는 것이다.(4) 요구임금법요구임금이란 비취업주부로 하여 이 방법은 생활수준과 가정생활주기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즉, 생계문제로 취업을 요구하는 여성의 경우 그 최소한의 임금은 낮아질 것이며, 생활수준이 높거나 육아와 출산비용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5) 주관적 평가 방법주관적 평가 방법은 투입된 가사노동 시간의 양이나 시장 임금을 근거로 한 평가 방법과는 달리 주부들 자신이 가사노동에 어느 정도의 가치를 부여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방법으로 주부 스스로 평가한 가사노동의 가치를 화폐적으로 환산해 보는 방법이다. 따라서 이 평가 방법은 자신이 현재 수행하고 있는 가사노동의 양이나 가사노동에 대한 인식 등에 따라 차이가 생길 것이다.4. 결론이상의 조사에서 보았듯이 가사노동의 가치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 그 이상이다. 점차 삶에서 양보다는 질을 중요시하는 사회로 전환되어 가는 지금, 이제껏 양을 추구하면서 소홀하고 제대로 평가되어지지 못해왔던 부분들에 대한 올바른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바로 그 소홀해왔던 평가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우리 어머니들의 가사 노동에 대한 평가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다행히도 최근에 이르러 가사 노동은 재평가되고 있다. 이혼,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에서 직접적인 화폐소득이 없었던 주부의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판례들은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시사해 주는 예다. 거시적인 차원에서도 가사 노동의 가치가 포함되는 새로운 경제지표의 사용이 제시되고 있다. 경제복지척도(MEW : Measure of Economic Welfare)', '국민 순 경제 지표(NEW : Net Economic Welfare) 가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실질적인 재평가와 여러 제도들의 도입에 앞서 우리 스스로 가사노동이 남성 여성의 차별을 심화시키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가사노동에 대한 인식을 가지는 것이라고 하겠다.전업주부 임금 모두 합하면 GDP 1대신한다면 85만6689원, 그 시간동안 다른 일을 했을 때의 기회비용을 감안하면 102만6천원으로 계산됐다.현재 전업주부가 사고를 당하거나 사망했을 때 보험회사가 일용직 근로자 임금인 월평균 73만3103원을 기준으로 보상하는 것을 감안하면, 주부 보상액은 실제 금액의 71.4%~85.6% 정도로 과소평가된 셈이다.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분쟁에서도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인정은 판결마다 들쭉날쭉이다. 국내총생산(GDP)에도 반영되지 않는다.또 우리나라 전체 전업주부의 임금을 이번 산출액에 따라 계산하면 연간 70조9천억원으로 국내총생산의 14.9%, 전 근로자 임금 총액의 30~35%를 차지했다. 육아의 경제적 가치가 연간 18조원, 노인이나 장애인 가족을 돌보는 일이 12조4천억, 음식 준비와 설거지가 42조원 등이었다.여성개발원이 여성부와 유엔개발기금(UNDP) 협력사업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는 국내 첫 전국단위 무급노동 평가다. 기초자료로는 통계청이 지난해 전국 1만7천가구, 만 10살 이상, 4만6109명의 응답을 분석한 `1999 생활시간 조사보고서'가 활용됐다. 이 가운데 무급 가족종사자의 83%가 여성, 남성은 17%였다.지난달 27일 열린 `여성의 무급노동 평가와 정책화를 위한 세미나'에서 이번 연구를 진행한 김태홍 여성개발원 수석연구위원은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는 상해보상과 재산분할, 부부간 상속·증여세, 사회보험제도 등에 필요하므로 정부가 사회적 합의로 가치평가액을 산정해 고시하고 민간부문에도 적용을 권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이번 연구에서 하루평균 시장 노동시간은 남성이 4시간39분으로 여성의 2시간47분에 비해 1시간52분 길었다. 하지만 가정관리시간은 남성이 20분인 데 비해 여성은 2시간40분으로 8배나 길다. 결국 전체 노동시간을 합하면 남성은 5시간7분, 여성은 6시간7분으로 여성이 1시간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60살 이상 여성노인도 하루 3시간1분의 가정관리 노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 남성 12분과 큰 차이를 보였다. 특히 여.kr
    사회과학| 2001.10.28| 6페이지| 1,000원| 조회(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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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사회학] 한국사회 교육열의 형성 평가B괜찮아요
    교육열의 형성 과정1. 전통적 교육문화의 형성과 교육열우리 나라의 교육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이스라엘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과 함께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오랫동안 우리 나라에서 교육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어왔으며 우리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자식의 교육을 우선시하는 모습들을 역사 안에서 수없이 보여왔다. 그러한 모습들이 나라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주장과 함께 사회적으로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우리 나라 교육의 특별한 면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교육열. 이러한 교육열의 근본적인 원인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역사적인 배경 아래에서 형성된 우리 나라의 특수한 교육문화에서 찾으려고 노력한다. 숭문주의, 입신양명주의, 문벌주의, 그리고 가족주의로 대표되는 우리 나라의 교육문화들은 역사적으로 누적되어 형성된 것으로 현재 우리 사회의 교육의 초석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교육적 전반에 걸쳐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하겠다.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교육에 대한 낙관적 인식과 그로 인한 자녀 교육에 대한 열의는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교육문화의 전통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보이는 교육열의 전반적인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의 전통적인 교육문화가 어떤 사회사적 형성 과정을 거쳤으며,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기에 교육에 대한 낙관적인 인식을 촉발시켰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이해할 때,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교육열에 대한 이해를 올바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숭문주의적 전통은 유학이 일상생활의 규범으로 정착하게 된 조선시대부터 보편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졌다. 고려말 신진사대부들은 정권창출을 위해 신유학을 도구적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이들은 조선 초의 정권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충과 효의 강한 계서적 원리를 강조하였다. 지배계층들은 신유학을 도덕적 실천원리로 삼았다. 구체적으로 소학, 주자가례, 효행록 등을 사회 깊숙이 전파하여 일상생활의 행위규범을 통제하였다. 유학의 실천원리인 도덕적 우월성을 일반민에게 내면화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신유학은 학문적 위계서열에서 제일 가치고 높은 것으로 사회의 정당성이 부여되었는데, 이것은 과거제도에서 잡학과의 철저한 차별에서도 알 수 있다. 결국 지배계층은 자신들의 사회적 이점을 보호해 주는 문에 대해 사회적 가치를 부여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실천적 원리를 통해 문에 대한 인식이 고양될 수 있었다.입신양명주의는 유교적 효과 관련이 있다. 교육을 통해 입신을 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를 세상에 나타내는 것이 효의 끝이다. 이념적인 면에서 효와 입신양명은 사회적 이해 관계가 관련된 도구적 특성을 지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확대 적용됨에 따라 입신양명은 과거제를 통해 관직에 오르는 것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따라서 입신양명주의는 효와가문의 명예를 높일 수 잇다는 긍정적 인식이 확산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의 미분화된 사회구조로 인해 관료적 지위는 지위, 권력, 부가 집중되어 있다. 사회적 혜택이 관료들에게 편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관료적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 욕구는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입신양명주의 내에 내포된 교육의 의미는 지위적 이해관계와 관련된 도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문벌주의는 혈연을 중심으로 사회적 이해관계를 확보하기 위한 개인적, 집단적으로 구성된 연대망이다. 사회적으로는 비슷한 동류의식을 지난 집단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고양키 위해 형성된 것을 의미한다. 고려시대에서 제도적으로 나타난 문벌주의는 조선시대에 들어 명백히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문벌을 중심으로 파벌이 갈라지는 심각한 양상을 띠기도 하였으며, 관리선발에서도 문음제를 통해 혈연적 이해관계를 보존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문벌의 중심은 양반관료이다. 이들과 문화적 교류를 통해 최소한의 연결망을 구축하려면 유교적 지식을 가지고 있어여 하며, 결국 학력이 인지적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라, 문화적 연대망에 편입하려는 교육자격증에 지나지 않는다는 콜린스의 생각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교육은 문벌적 이점에 편입하기 위해 문화적 교양과 소양을 쌓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가족주의는 가족을 중심으로 한 집단적 성격이 강하다. 조선전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유교적인 생활원리가 강해지면서 가문중심의 생활양식은 유교적 이념에 의해 지지를 받았으며, 가족내의 집단적 성격이 강해졌다. 따라서 혈연이나 씨족을 바탕으로 사회적 지위를 고양하려는 집단적 노력은 자연스럽게 정학될 수가 있었다. 그 중 관리가 된다는 것은 가문의 명예를 높일 수 있으며, 그 사회적 혜택은 당사자에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가문전체에 그 영향력이 파급된다. 따라서 관리적 지위 획득을 위한 교육의 의미는 가문의 사회적 지위를 고양하는 도구적 수단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집단적 성격과 관련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 문중에서는 재능이 있는 자를 가문 중심의 집단적인 교육투자를 서슴지 않았다. 미약한 가문의 출신이라도 과거에 합격하면 가문 전체가 일시에 사회적 명예와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교육의 의미는 시간적으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 지향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이런 이유로 교육에 대한 투자는 사회 유산적인 성격이 강하였으며, 이 점은 교육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사회적 동기로 작용하였다.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교육문화의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교육이 사회 내에서 어떤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높은 가치로 매겨지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주목해보아야 할 점은 교육이 사회적으로 궁극적인 목표로서의 가치로 존재하기보다는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도구적인 가치로 강하게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숭문주의적 전통은 양반들의 지위적 우월성을 내면화시키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입신양명주의, 문벌주의, 그리고 가족주의적 전통은 사회적 이해관계를 증진시키는 도구로서 교육을 중시하고 낙관적인 인식으로서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에서 꾸준히 교육에 대한 인식은 연결되어 현재에까지도 우리의 교육문화는 외형상으로는 교육의 본질적 성격을 담고 있으나, 사회 현실적으로 볼 때 교육적 행위는 지위적 이해관계를 위한 수단적 실천원리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우리의 교육문화는 외향적으로는 애타주의를 지니고 있으나, 실제 내면적으로는 개인 및 사회적 이해관계를 고양하는 수단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2. 현대사회에서의 교육열 형성앞서 논의한 교육문화는 우리의 교육적인 동기를 자극하였으며, 현대사에 있어서도 교육 행위 결정에 동기요인으로 작용해왔다. 물론 시대마다의 특수한 성격에 따라 그 형태는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교육 행위 전반적으로 전통적 교육문화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고 할 수 있다.조선말 신분제의 개혁으로 적어도 외형적으로 계급적 평등을 지향하게 되었고, 학교도 근대학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제도화된 교육체제는 직업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었으며, 결국 신교육 내용이 직업자격시험의 기준이 되었다. 일제시대에는 식민지 교육정책으로 학교 설립이 제한되었으며, 학교 교육을 받아야만 제도화된 지위구조에 편입할 수 있었다. 또한 직업구조의 위계 서열에 따라 시험의 수준과 요구하는 학력수준이 달라, 결국 이것은 교육적 동기를 자극하는 사회적 유인체로 작용하였다. 신분해방을 통해 외형적으로는 교육기회를 개방하였으나 제한된 학교교육으로 인해 실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교육을 통한 지위 획득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교육적 열망은 더욱더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유일한 고등교육기관이었던 경성제국대학 출신자들이 직업의 위계구조에 최상층부를 점유하고 있었으며, 교육구조와 직업적 위계구조가 서로 대응적인 모습을 띄면서 교육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을 자극하게 되었다.
    교육학| 2001.10.28| 4페이지| 1,000원| 조회(1,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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