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연세대학교회 Musica Glorifica 초청-Baroque Chamber Music Concert-11월 7일 루스채플에서 바로크 교회음악을 감상할 기회가 생겼다. (물론 감사하게도 교수님께서 주신 정보로^^;)수업시간에 배운 대로, 바로크 실내악 연주단은 악기의 특성상 넓은 콘서트 홀보다는 작고 아담한 실내공간이 알맞듯이, 루스채플의 작은 예배당에서 연주를 하는 것은 적절한 것 같았다. (하지만 예배당이라 의자들이 모두 평면에 배치되어 있어서 앞에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연주자들을 보기위해 고개를 바짝 들고 있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다.)5명의 연주자들과 성악가-Lute, Viola da Gamba, Baroque Violin, Cembalo, Baroque Tenor가 나왔고, 5곡을 연주하는 동안, 각 연주가들은 각각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의 기원과 연주 특성 등을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비록 영어라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_-;; 생전 처음 접하는 바로크 시대의 악기들이라, 연주자들의 설명과 함께 시범연주-기본적인 소리내기-를 들으면서 현대의 클래식 악기들과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첫 번째 연주곡은 Gaspar Sanz의 곡으로 Baroque guitar의 반주에 Lute가 솔로로 연주하였다. Lute는 연주자의 설명에 의하면, 중세에서 바로크 시대까지 사용이 됐으며 9세기 아라비아에서 만들어져, 스페인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14개의 줄을 가지고 있는 Lute는 소리가 아주 부드럽고 섬세했으며, 멀리서 속삭이는 듯했다. 마치 어릴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 기타-플라스틱 줄로 된-의 소리를 연상시켰으며, 섬세하게 연주할 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만큼 작은 소리가 났다.두 번째 연주곡은 Henry Purcell의 Tenor 솔로를 위한 곡이었다. 성악가의 설명에 의하면, 바로크 성악가는 가사와 정확한 음정의 전달이 중요하기 때문에, 현대의 성악가들에 비하여 비브라토의 훨씬 비중이 적다고 한다. 설명처럼, 실제 그의 노래는 가성으로 날아가는듯한 약한 비브라토와 끝까지 다독이는 듯한 발음이 다 들렸다.세 번째 연주곡은 Marin Marais의 Prelude-Caprice-Sarabande-Grand Ballet로 gamba를 위한 솔로곡이었다. 춤곡을 시작하기 전 안내를 위한 연주곡이었다고 한다. 태양왕 루이 14세에게 애호되었다고 하는 gamba는 거트줄로 만들어졌으며, 현대 첼로에 비하여 깊은 울림이 없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첼로의 깊은 음정을 사랑하는 나에겐 왠지 현이 막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연주자가 활을 쥔 팔을 끝까지 뻗으며 열심히 연주하는 반면에 악기에서 나는 소리는 너무 작아서 플라스틱 현을 연주하는 듯한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제 43회 정기연주회Two Pianos Festival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된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피아노 협주. 정말 오랜만에 가는 예술의 전당이라, 정장도 빼입고 참 두근거렸다. *ㅡ* (표 마련해주신 교수님 정말 고맙습니다..)콘서트 홀은 좌석이 2층까지 배치되어 있었고, 현대 클래식 음향이 효과를 발휘하도록 반사벽이 올록볼록했으며 오케스트라의 머리위에는 수많은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었다.첫 번째 연주된 M.L.Glinka의 Overture From Opera "Ruslan & Lyudmila" 는 오페라의 서곡으로 러시아의 민속적인 소재로 작곡되었다고 한다. 두 명의 피아노 연주자가 나오고 오케스트라와 함게 연주가 시작되었다. 좌석이 맨 앞의 맨 오른쪽이라 연주자 두명을 동시에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협주곡은 밝고 장대했다.두 번째로 연주된 곡은 Mozart의 Concerto for 2 Pianos in Eb Magor KV365 였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 바이올린과 첼로, 콘트라 베이스의 연주자들이 1/3가량이 무대에서 사라졌다. 수업시간에 Mozart의 오케스트라 곡은 규모가 작았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그 때문에 나간 것 같았다. Mozart의 곡은 경쾌하고 밝았지만 복잡하지 않았고 익숙한 곡이었다.세 번째 곡은 M.Bruch의 Concerto for 2 Pianos in Eb Minor OP.88a였다. 처음 접하는 작곡가였는데, 1900년대에 발표한 곡이라 하니 수업시간엔 아직 나오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았다. 낭만음악의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그의 곡은 민속적 멜로디를 많이 사용하여 매우 독특하였다. 단조의 심오한 선율과 두 피아노의 조합은 나를 충분히 매료시켰다.네 번째 곡은 F.Mendelssohn의 Concerto for 2 Pianos in E Major였다. 아름다운 곡이었지만, 꽤나 다음 진행이 상상되는 형식적인 음악이었고, 너무 졸렸다 -_-;;(이 부분에서 잠들었음..)마지막 곡은 처음 접하는 현대작곡가 F.Poulenc의 Concerto for 2 Pianos in D minor 였는데, 멘델스존의 음악을 들으며 졸고있던 나를 확 깨울만큼 아주 신선했다. 선율이 매우 판타지스러웠고, 기존의 클래식 연주에서는 사용되지 않던 타악기들의 사용- 캐스터네츠, 트라이앵글, 민속 북 등-으로 색다른 카오스적 음감을 표현했다. 불협화음이 마구 마구 쓰인 두 대의 피아노의 연주와 타악기들의 조합은, 크리스마스 저녁에 아이들이 잠든 침실에 들어와 파티를 벌이는 요정들을 연상시켰다.
◇사회적 관심 이슈: 혈액형=성격 ???요즘 커피숍이나 음식점에서 조금만 주위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보라. 어렵지 않게 혈액형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혈액형과 성격을 연결짓는 내용의 이야기는 단지 스포츠 신문의 심심풀이용 읽을거리가 아니라 신문과 뉴스에 오르내리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어버렸다. 정말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다른가?김현정이라는 가수는 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고, 충무로에선 조만간 B형 남자에 관한 영화까지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뿐이 아니다. 혈액형에 따른 대인 관계 관리법에 관한 서적이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나오고 있고, 보험 회사에서는 혈액형별로 맞춤 서비스를 갖춘 보험을 만들어 팔고 있다. 기업에서는 신입 사원을 채용하고 부서별로 배정할 때 혈액형을 참고한다고 한다. 대기업 사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A형과 O형을 선호한다고 하고, 이에 한 술 더 떠서 모 회사에서는 채용공고를 내면서 A형과 O형만 지원할 수 있다는 자격 제한을 두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혈액형은 곧 성격이라는 공식이 이미 완전히 성립되어 버린 것처럼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정말로 혈액형이 사람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일까?한동안 유행처럼 번졌던 싸이 월드라는 온라인 홈페이지 서비스에서는 혈액형 별 성격 유형과 애인 공략 방법을 적은 글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 내용을 보면,A형 성격의 특징은 내성적이고 완벽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의외로 외향적인 면모를보이는 A형도 꽤 있으나 자신의 보여지는 면과 내면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다고들한다. 우유부단하여 판단이 서질 않아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이상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인내심이 많으나 기본이 어그러지는 것에 대해선 가차 없는응징을 하기도 하고, 서비스 정신이 강하지만 한번 마음을 다치면 오래간다.그리고 자기애와 자존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다.B형 성격의 특징은 성급하고 단순하고 극단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좀 망상적이고,창조적인 직업에 잘 맞는다리면 분노하기도 한다.(자신이 만든 환상일지라도...)AB형이 비만인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젊은 시절엔 사람들과 거리를 두지만,늙으면 따뜻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경쟁을 싫어하고 포기가 빠르다. 거지도 없지만 큰 부자도 못된다.알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지식의 깊이보다는 그 폭에 혀를내두르게 한다. 그러나, 성공과는 거리가 먼 잡학사전.아닌 척을 잘 한다. 특히 싫은 척. 여간해선 거짓말도 잘 안 들킨다.자기관리가 치밀하기 때문에 술주정이 거의 없다. 어쩌다 드물게 망가졌다싶은 경우 꽤 볼만하다. 남들은 그렇게 안 보는데 늘 자기 성격이 더럽다고먼저 말한다. 대부분 오버를 안 한다. 가끔 일부러 하는 오버가 있는데 좀 어설프다.이렇게 구체적으로 각 혈액형별 특징을 나열해놓았다. 위에서 나열해놓은 자신의 혈액형에 따른 특성들을 보면 왠지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 주위의 대학생 친구들도 인터넷상에 떠도는 혈액형 관련 글을 종종 접하고 이 글들에 많이 설득된 것 같다. 인간관계를 형성할 때, 사람들의 혈액형을 알게 되면 그 사람들의 성격을 위의 혈액형 특징으로 이해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경향은 혈액형에 관련된 이야기가 유행하기 전에는 물론 없었다.◇혈액형과 성격의 관계에 대한 과학적 연구혈액형 별 성격이 따로 있는 것인지에 대해 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사주나 궁합이나 별자리 점 같은 미신현상이고 pseudoscience(거짓과학)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해 놓은 결과가 있을까? 아쉽게도 이에 대한 연구가 별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것을 연구할 만한 과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이 주제를 비과학적인 낭설이고 연구 가치가 없는 대상이라고 믿는 것 같다.혈액형별 성격이 달리 있다는 생각의 기원은 우생학에 있다. 여기서 우생학이란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 여러 가지 조건과 인자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1883년 영국의 F.골턴이 처음으로 창시한 학문이다. 세계li & Sidney Leland Stepp & Rob Lyerla가 Southern Illinois 대학에서 연구한 "Relationship of blood type with decision-making style and personality type"이라는 논문이 있다. 이 연구에서는 혈액형별 의사 결정 유형과 혈액형별 성격 유형을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서 의사 결정 유형을 자연발생적인(spontaneous)/조직적인(systematic) 그리고 내부적인(internal)/외부적인(external)으로 나누었다. 전자는 의사 결정에 있어서 선호되는 정보 수집 유형에 따라 구분되고, 후자는 선호되는 정보 분석 유형에 따라 구분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spontaneous 결정자는 전체적으로 생각하고, 목표 설정은 변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여 행동 목표를 반복해서 세운다. 또한 일반적으로 잘 연결되지 않는, 연관성이 낮은 생각들을 빠르게 연결시킨다. 그리고 Systematic 결정자는 단계적으로 생각하고, 이전에 결정된 논리적인 결과 중 가장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목표로 세운다. Internal 결정자는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기보다 혼자서 의사 결정 하는 것을 편하게 여긴다. 마지막으로 External 결정자는 의사 결정할 때 말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고, 다른 사람과 논의하여 의사 결정하는 것을 선호하여, 의사 결정하기 전에 다른 사람과 논의 하지 않으면 불편하게 생각한다. 이 연구에서는 이렇게 두 가지 기준을 교차 시켜서 External spontaneous, External systematic, Internal spontaneous, Internal systematic의 네 가지 의사 결정 유형이 혈액형 별로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를 통계치를 이용하여 나타내었다. 그 결과 의사 결정 유형은 혈액형 별 차이가 있고, 특히 O형은 그 결과가 가장 유의미하게 나왔다. 반면에 MBTI를 이용하여 검사한 성격과 혈액형 간에는 혈액형과 연결시켜 상관관계를 도출해 낸 것이다. 결과는 이미 말했듯이 모든 가설에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위의 세 가지 연구들로 중간 결론 내려보자면, 혈액형으로 성격을 예측하고 설명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말도 안 되는 거짓과학이다.Ⅱ. 성격과 혈액형은 관련이 있다.(TV쇼 진짜?진짜! 와 노미 도시타카)1.우리나라의 혈액형 붐은 TV 쇼 프로그램에서도 혈액형을 큰 이슈로 유머러스하게 혹은 진지하게 다루게 하고 있다. 최근 MBC의 “TV 실험쇼, 진짜?진짜!”라는 프로그램에서 “혈액형 미스테리 정복”이라는 제목으로, 혈액형별 기질이 따로 있는지, 혈액형별 학습법이 따로 있는지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였다. TV 쇼 프로그램이라 뭔가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오염 변인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와 같은 시청자 입장에서는 정확한 실험설계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이 TV쇼를 100% 신뢰할 수는 없다. 하지만, TV에 보여지 것으로만 평가하자면, 실험이 굉장히 타당도와 신뢰도가 높게 설계 되었을 뿐 아니라, 실험 결과도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우선, 혈액형별 기질이 따로 있는가에 대한 실험은, 분당에 있는 모 유치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 실험은, 어린이들을 A, B, O형으로 나누어 각 혈액형 집단 별로 작업을 수행시켰다. 작업은, 바닥에 종이로 만든 은행 나뭇잎, 종이로 만든 단풍 나뭇잎, 장난감 보석, 트리 장식에 사용되는 액세서리, 트럼프 카드 등을 자유롭게 늘어놓고, 벽면에 커다란 나무가 그려져 있는 흰 종이에 이 재료들을 자유롭게 붙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A형은 나뭇잎은 나뭇잎끼리 나란히 붙이고, 결코 화려하지 않고, 질서 정연한 장식을 만들어 냈고, B형은 나뭇잎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장난감 보석과 트리 장식을 이용해서 나무 전체를 매우 화려하게 장식해 놓았고, O형은 나뭇잎과 트럼프 카드를 집중적으로 특정 부위에서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는 점이 특이점이었다. 그리고 이 작업을 수행하는 동이도의 사자 성어 샘플 예비 테스트를 수행한 결과, 학생들은 본 수행에 노출된 적이 없는 상태라고 평가 내렸다. 수행 지시가 내려지자 A형은 거의 모든 학생이 노트를 꺼내서 쓰면서 공부하였고, 물론 자리를 뜨거나 소란스러운 학생도 거의 없었다. B형은 수행 지시가 내려지고 얼마 안 있어서, 거의 대부분이 자기 자리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어떤 학생은 화장실의자에 앉아서 중얼거리면서 공부하였고, 어떤 학생들은 복도에 기대서 공부를 하였다. AB형은 많은 학생들이 서로 물어보면서 공부를 하였고, O형 학생들은 그냥 떠들거나, 가만히 앉아 있거나 하다가, A형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자 경쟁심을 느끼는 것처럼 서둘러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혈액형별 학생들이 일괄적으로 저런 학습행태를 보인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혈액형들끼리는 행동의 차이가 눈에 띌 정도였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A형,B형,O형,AB형을 골고루 섞어서 4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서 4개의 교실에 들어가서 첫 번째 실험과 비슷한 수행을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룹1에는 모두 쓰면서 공부하도록 지시했고, 그룹2에는 5분 마다 장소를 바꿔가면서 공부하도록 지시했고, 그룹 3에는 문답식으로 공부하도록 지시했고, 그룹4에는 경쟁심을 계속적으로 유발시키는 조건 속에서 공부하도록 지시했다. 결과적으로 그룹1에서는 A형 아이들의 시험점수가 , 그룹2에서는 B형 아이들의 시험점수가, 그룹3에서는 AB형 아이들의 시험점수가, 그룹4에서는 O형 아이들의 시험점수가 가장 높았다. 각 그룹 별 다른 혈액형 아이들의 점수는 평균적으로 하락하였다. 만약 , 이 TV프로그램에서 조작된 바 없는 실험 설계를 정직하게 수행했다면, 충분히 혈액형별 성격과 혈액형별 학습법이 달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2.또한, 일본의 노미 도시타카는 그의 아버지인 노미 마사히코의 연구의 대를 이어 혈액형과 성격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하며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실 실제 혈액형 연구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중국은 나에게 무엇인가서론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다름아닌 지난 여름에 중국을 갔다 와서이다.음.... 처음 낯선 땅을 밟아 본다는 설레임이 나의 마음속을 가득 채웠다. 도서관에서 이리저리 책을 고르며 고민 했던 난 마침내 이책으로 하기로 결정했다.중국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중국의 문화를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우선 이책은 제 1부 북경에서 산동까지 제 2부 낙양에서 사천까지 제 3부 남경에서 항주까지 제 4부 강서에서 광주까지로 나뉘어서 설명하고 있다.중국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의 45배에 달하는 거대한 대륙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기야 작은 우리나라 한반도에서도 지방마다 문화가 다른데 중국이야 오죽하랴.... 더욱이 여러 소수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사는 나라이니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혹자가 그러던데 이렇게 넓은 땅덩어리와 여러 소수민족들이 잘 공존하고 살 수 있는 까닭이 다름 아닌 그들의 문자인 한자와 유교 문화라고 한다. 그리하여 각 지방의 문화적 특징을 비교 검토할수 있도록 전자에서 밝혔듯이 중국의 지방을 나눈 것이다.하지만 난 지난 여름에 배낭여행을 통해 갔던 제 3부 남경에서 항주까지를 이글에서 담으려고 한다.따라서 이를 통해 다양하고 독창적인 중국의 문화를 검토하고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본론드디어 7일간의 작업 끝에 난 비자를 받을 수 있었고 이제는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일만 남았다. 설레임으로 밤잠을 설친 다음날 졸린 눈을 비비며 인천 공항으로 발걸음을 향했다.내가 처음 중국음식을 먹은 것은 비행기 안이였다. 닭요리였는데 간장에 조린듯한 어쨌든 느끼해서 계속 안내양에게 코쿠어코라를 연신달라고 알지도 못하는 어설픈 중국어로 말했다.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의 음성이 나즈막히 깔리며 곧 상해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안내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처음 본 중국 땅 너무나도 마냥 신기하기만 하였다.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찌는 듯 한 더위가 나의 얼굴을 강타했고 난 얼굴을 찌푸렸다. 정말이지 내 눈에 들어온 상해 공황의 분소(分所)가 설치되었다. 1842년에 아편전쟁(阿片戰爭)의 결과 맺어진 난징조약[南京條約]에 의해 구미제국과의 무역을 위한 개항장(開港場)이 되자, 상공업도시로서 급속히 발전하여 중국 제1의 도시로 성장하였다.그러나 상하이의 실권은 외국인의 해관세무사(海關稅務士)가 장악하고, 치외법권(治外法權)이 인정되는 외국인의 조계(租界)가 설치되는 등 제국주의 열강의 중국 침략의 근거지가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의 민족해방운동이나 노동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하여 1949년까지 혁명과 반혁명 세력의 격렬한 대결이 되풀이되기도 하였다.한편 상해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이곳에서 1919년 4월 17일에 조직되어 1932년 5월에 일본의 탄압을 피해 항주[杭州]로 옮기기까지 활약했던 곳이다. 또 1932년 4월 29일 윤봉길(尹奉吉) 의사가 이곳 훙커우공원[虹口公園]에서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 육군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등을 폭사?부상케 한 곳으로, 윤봉길 의사 의거 유적지와 임시정부 청사가 보존되어 있다. 이곳을 관람하면서 너무 비싼 관람비에 아깝다는 생각도 했지만 우리 조상들의 독립투쟁의 정신과 얼이 깃들여저 있는 이곳어세 다시금 나라의 소중함을 깨달을수 있었으며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하고 관리하는 그들의 마음속에서 문화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상해는 중국 굴지의 공업도시로, 방직?기계?조선?전기기기?화학?비료?인쇄 등의 공업이 다양하게 영위되고, 또 기술적으로도 전국을 리드하고 있다. 본래 경공업, 특히 방직공업의 비중이 대단히 높았으나, 근래 중화학공업이 크게 신장하고 있다. 시가지 교외의 각 현(縣)에서는 쌀 외에 채소?목화?과일 재배 및 양돈?양금(養禽)?담수어양식 등이 활발하다.1968년 10월 남경[南京]의 창장대교[長江大橋] 완성에 의해 북경[北京]에 직결되는 징후[京嫉] 철도가 열리고, 또 후항철도[嫉杭鐵道:상하이~항저우] 외에 많은 도로가 집중되어 있다. 상하이 국제공항은 국내 각지와 국내선을 통하는 외에 국제항로가 열려 있고, 황푸강이 우리나라돈 16000원 이었지만 가격에 비해 시설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내가 여관을 안가고 이곳 기숙사를 찾게된 이유는 바로 안전상의 문제였는데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여관이 싸고 훨씬 좋았던 것 같다. 어쨌든 돈을 벌어드리는 그들의 상술에서 이 기숙사 활용은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밖에 인민공원?중산[中山]공원?훙커우공원?푸싱[復興] 공원 등이 있고, 명소?고적으로는 징안사[靜安寺]?룽화사[龍華寺] 및 루쉰[魯迅]의 묘(墓:훙커우공원), 서광계(徐光啓)의 묘 등이 있다. 아 또한 상해하면 우리나라 명동 처럼 중국에도 남경로라는 번화가가 있는데 우 규모면에서 우리나라의 그것과 엄청나게 컸다. 국가는 동양 건물들은 서양 건축양식술에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해에 도시환경과 빈부의 격차로인한 한편으론 가난한 빈민층의 삶에서 지금 중국이 겪고 있는 개방의 물결이 얼마나 빨리 급속도록 번져가고 있는가를 느끼게 해주었다.다음으로 향한곳이 소흥 및 영파였다.영파는 이곳은 춘추전국시대 월국(越國) 은읍(蹄邑)의 땅이었으며 당(唐)?송(宋) 시대 이후에는 명주(明州)라고 하였던 곳으로, 일본?한국?아라비아?동남아시아와의 무역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특히 명(明)나라 때에 이르러 감합(勘合)무역선의 기착항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왜구의 출몰이 잦아 방위기지를 두기도 하였다. 이곳에서는 겨우 5시간만 머물렀다. 그래서 그다지 기억에 남는곳은 없다. 아! 맞다 여행 가이드 책을 잃어버려 가지고 대단히 고생이 많았다. 그래두 14000원 짜리 물건인데...1840년 아편전쟁 때 영국해군에게 점령되었고, 1842년 난징조약[南京條約]에 의해서 개항되었으나, 상하이가 크게 발전한 영향을 받아 상대적으로 쇠퇴하였다. 그러나 이 고장 출신의 상인들이 상하이로 진출하여 저장[浙江] 재벌의 주류를 이루어 재계의 중진이 많다.아쉬움을 뒤로한채 다음 종착역인 소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소흥은 진(秦)나라 때는 산인현[山陰縣], 수(隋)나라 때에 위에조우[越州]가 설치되었고, 당(]로 알려져 있으며, 견직물?도자기 산업도 유명하다. 근래 남서쪽의 리주전[쳰 渚鎭]에 화동(華東) 제1로 알려진 철광산이 개발되었다.또한 경공업?방직?기계?야금(治金)?식품?전자?건재(建材) 등의 공업이 발달하여 항저우[杭州], 닝보[寧波]에 이어 저장성 3위의 공업도시이다. 저둥운하[浙東運河]와 철도의 요지로, 주위를 둘러싸는 현 내에는 수로망이 좌우로 발달하였다. 소흥이란 도시에서도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우선 숙비를 아끼기 위해서 처절하게 새벽까지 고생을 하다가 결구 택시기사의 꼬임에 넘어가 별 3개짜리 호텔 이른바 삥관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계약을 했지만 그래두 호텔에서 잔다고 생각하니 마음만은 황제가 된듯했다. 요순우 시대에서 지금도 영울 대접을 받고있는 우릉으로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웅장하게 산 위에 설치 되어 있던 우릉상에서 정말이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였다. 난정 역시 우리나라의 경주에 있는 포석정의 영향을 끼쳤던 만큼 한국의 그것과 매우도 흡사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건데 역시 중국의 문화재 관람비는 비싸다는 것... 그리구 그들의 보존하려는 노력은 대단하다는 점이다. 또한 물가가 지방마다 작게는 0.5배 크게는 2배까지 나니 정말이지 중국이란 나라는 신기하기만 하였다.이밖에도 부근에 후이지산[會稽山]?위에왕대[越王臺] 등 역사적인 고사와 관련 있는 명승지가 많다. 또 많은 문필가와 정치가들을 배출하였는데, 중국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루쉰[魯迅]의 출생지로 루쉰기념관이 있다. 부근에 선위안[沈園]?등후[東湖] 등이 있다.5시간의 여정을 마치고 도착 곳이 서호 유명한 항주였다.소주[蘇州]와 함께 아름다운 고장으로 알려졌다. 7세기 수(隋)나라가 건설한 강남하(江南河:大運河의 일부)의 종점으로 도시가 열려 남송(南宋)시대에는 수도가 되었으나, 임시수도라는 뜻에서 행재(行在)라고 하다가 임안(臨安)이라고 개칭하였다.19세기에 태평천국군(太平天國軍)의 싸움으로 파괴되었고, 난징조약[南京條 짐을 풀고 고된 하루를 정리하였다.다음날 여행 가이드 버스를 타고 서호의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쫙 펼쳐진 서호의 물결과 그 위로 늠늠히 서있는 많은 전각들.... 그리고 배를 타라는 호객꾼들 사이에서 관광 도시로서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이틀간의 아쉬움도 뒤로 한채 우린 빠르게 남경으로의 열차에 몸을 실었다. 5시간의 긴여정으로 그리고 그 동안 3주간의 피로로 지친 나에게 남경은 역사에서 배웠듯이 국민당의 수도로서 고대의 수도로서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해 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생각은 남경역에 내리는 순간 순식간에 나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게 해주었다.중국에서 3번째로 크다는 남경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건 내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남경이 국민당의 수도였고 지금은 공산당이 중국을 잡고 있는 시점에서 역사란 승리한 자의 것이 아니라고 했는가 그렇기 때문에 남경의 발전을 저해 시켰는지도 모른다.어쨌든 여러 상념을 뒤로한채 우린 남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남경은 당(唐)나라 때에 금릉(金陵) ?백하(白下) 및 금릉부 등으로 불리다가 오대십국(五代十國)의 이변(李長)이 강녕부(江寧府)로 개칭(937)한 뒤 남당(南唐) 20여 년의 도읍지가 되었다. 남송(南宋) 때에 건강부(建康府), 원(元)나라 때 집경로(集慶路)로 불리다가, 1356~1441년에 명(明)나라 도읍지가 되어 처음에 응천부(應天府), 뒤에 남경(南京)으로 불렀다. 현재의 난징의 명칭은 그때에 비롯되었으며, 현존하는 주위 34km의 성벽도 그때에 축조되었다. 1441년에 도읍지가 베이징[北京]으로 옮겨진 뒤에는 배도(陪都)로서 중시되었다. 청(淸)나라 때에는 강녕부(江寧府)로 불리고, 1853년부터 12년간 태평천국군(太平天國軍)에 의해 점령되어 천경(天京)으로 불렀으나 전란으로 황폐해졌다. 1842년에는 아편전쟁 후의 난징조약[南京條約]이 이곳에서 체결되고, 58년 톈진조약[天津條約]에 의해 개항장(開港場)이 되었다. 신해혁명(辛亥革命)의 결과 1912년에 중화민국(中華民다.
학전 그린에서 공연된 지하철 1호선.공연장에 들어섰을 때, 온통 검은색의 분위기가 압도를 했다. 검은 무대에 검은 벽면, 검은 스크린.. 무대는 기본적으로 프로시니엄 무대였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정 중앙에는 꽤 높은 계단과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그 계단 옆으로 무언가 있을 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박스형의 공간이 돌출되어 있는 다소 기형적인 형태였다. 공연이 시작되면서 중앙에 있던 검은 스크린에는 서울역에서 보여지는 남산과 남산타워의 모습이 빛났고, 박스형의 공간이 밝아지면서, 연주자들이 들어가있는 모습이 보였다. 일렉 기타의 소리가 먼저 들리고, 따라서 섹소폰과 베이스기타, 그리고 드럼과 신시사이져까지.. 악기가 하나씩 울릴 때마다 그 악기를 비추고 사라지는 조명들이 신비감을 더했다. 연주곡은 비록 락이었지만 어두운 조명아래 울리는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연주가 끝나고 모든 조명이 꺼지면서 연극이 시작된다.이른 새벽의 서울역. 연변 처녀 선녀는 홀로 서울역에 도착한다. 선녀는 순수함과 순진함을 연출하기 위함인지, 하얀색 전통 중국 옷차림에 까만색 단발머리를 단정히 빗어넘겼다. 연변 가이드 시절 사랑을 나누었던 한국 관광객 ‘제비’를 만나기위해, 달랑 제비의 사진 한 장과, 그가 588에 있다는 소식만 듣고서 부푼 희망을 가지고 온 선녀. 그녀의 아리아가 시작된다. 사진 한 장과 588이라는 사실만으로 관객들은 그녀가 제비를 만날 수 없거나, 만나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게 되지만, 정작 순수한 선녀 자신만은 모른체,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청량리로 떠난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밤의 여왕 '빨간바지‘. 밤의 여왕 답게 화려한 모피코트에 빨간색 바지와 비싼 장신구들로 치장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천해보이고 피곤해보인다. 그녀는 사랑에 상처를 입은 후 악착같이 돈을 모아 부자가 되지만, 나이가 들어 주변을 돌아보니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쓸쓸한 여왕이다. 그녀는, 돈은 넘치나, 쓰레기같은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사라진다. 사라진 가 되어버린 취객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서울역 계단에 쓰러져 잠들어버리고 만다. 앞은 화려한, 그러나 정작은 추하고 서글픈 서울역의 풍경이었다.청량리행 지하철 1호선을 탄 선녀는 출근시간 지하철 안의 풍경이 낯설기만 하다. 말을 걸려 해도, 대답해 줄 겨를조차 없는지 자신이 가던 길이 바빠 고개를 푹 숙이고 종종걸음을 하는 사람들, 길을 물어도 핸드폰을 들고 통화하는데 밖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 좌석에 낄 틈도 없이 촘촘히 앉아서, 남이 무엇을 하든 말든 스포츠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졸고있는 출근객들. 실상 신문으로 가린 얼굴 뒤로 서로를 엿보고 있고 신경쓰고 있으면서도, 무시당할까, 먼저 다가갔다가 상처를 받을까, 눈치만 살피며 무관심한 척, 모두들 무표정을 짓고 있다. 나 역시 이런모습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지하철이 서울역을 출발하여 청량리에 도착하기까지 여러역을 거치면서, 평소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지하철 안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보인다. 교복치마를 고쳐 미니스커트로 만들고 각종 복장불량에 버릇까지 없는 ‘고삐리’ 들과, 잡다한 물건을 팔러 들어온 잡상인들, 신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사명을 띈 교주, 순진한 선녀의 가방을 면도칼로 그으려는 소매치기들과 그 장면을 보고있으면서도 다들 자는척하는 승객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서울의 모습이다. 나중에 선녀가 만나게 될 인물 중 ‘안경’ 이라는, 사칭 독립운동가가 부르는 ‘서울의 노래’ 에는 “서울은 거대한 독버섯” 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그렇다. 실상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장으로서의 서울은 추하기만 하다.청량리에 도착한 선녀는, 자신의 낭군님이 있는 588이 어디인지를 물어물어 찾아간다. 그러나 거기엔 손님을 잡으려는 창녀들과, 창녀촌에 들어가고 싶으나 돈이없어 시계까지 파는 군인들, 밤새 흥청망청 즐기고 술이 깨 창피해하며 도망치듯 가버리는 직장인들, 잘 사기쳐서 한몫 해보려는 포주 사기꾼들만이 있을 뿐, 아무도 선녀의 말에 주의를 주지 않고, 심지어 선녀는량리의 588은 더 이상 낭군님이 계시는 아름다운 고향이 아닌 위험한 곳임을 알게되고, ‘걸레’ 라는 창녀에게 그 곳을 떠나라는 경고를 받는다. 창녀 ‘걸레’ 그녀는 창녀 엄마에게서 태어나 평생을 588에서 살아온 여자이다. 남자와 약물에 찌든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몸에는 걸레같은 천조각들을 걸치고, 얼굴을 어둡고 퀭하게 분장했으며, 그에 반면 머리엔 화려한 주황색 가발을 썼다. 그녀가 천조각들을 벗었을 땐, 여기저기 맞은 멍자국과 약물을 주사한 자국, 자살을 몇 번씩이나 시도했는지 손목에 그어진 칼자국들이 선명했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 ‘안경’. 그는 사실 가난뱅이 공돌이었고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아 생계를 좌절하며 술에취해 588에 쓰러져 있던 중, 그를 독립 운동가로 오인한 창녀 걸레가 그를 데려와 구완한다. 어차피 살아갈 길이 없었던 ‘안경’ 은 계속 걸레에게 빌붙어 살기 위해 그녀가 기대했던 대로 고문을 받다가 절름발이가 된 독립운동가 행새를 하며 살아간다. 걸레는 모자를 너무나 사랑하고, 자신을 바라봐주기 바라지만, 안경은 어쩔수 없는 ‘독립운동가’ 이기 위해 그녀에게 매정하기만 하고, 그 때문에 걸레는 안경을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로 여기며 더더욱 동경한다.한편, 청량리 588에서 낭군님을 찾지 못한 선녀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눈에띄는 곳에서 내리고, 허기에 지쳐있던 중 ‘곰보할매’가 장사하는 포장마차에 간다. ‘곰보할매’ 는 포주 철수의 어머니로, 비록 돈도 없고 얼굴도 곰보로 얼기설기 흉하지만,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이다. 오랜 삶을 용감하게 살아온 그녀에게는 깡패들도, 노점상 단속위원들도 전혀 두렵지 않다. 그녀는 선녀에게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힘들지라도, 살아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며, 살아있는 한은 그 삶은 즐기기위해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노래를 불러준다. 이것이 바로 이 연극이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닌가 한다. 서민의 삶, 비록 추하고 불공평하고 억울하지만, 살아있다는 것이 어딘가. 움직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인 것이다.포장마차에서 허기를 가신 선녀는, 포장마차에 술을 마시러 왔던 밤의 여왕 ‘빨간바지’ 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된다. 선녀가 애타게 찾던 낭군님 ‘제비’ 는, 사실은 ‘빨간바지’와 동업한 적이 있는 인물이며, 588에서 이름날리는 바람둥이이고 일말의 양심도 없는 사기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기꾼을 찾아 또 속을 생각 말고 어서 연변으로 돌아가라는 충고까지 듣는다. 선녀는 낭군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제비’의 아이까지 배고있던 자신의 신세를 돌아보며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른채, 지하철에서 정처없이 방황한다.선녀가 지하철 한켠에 지친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는 도중,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된다. 바로 부잣집 노마나님 네분이 탑승한것. 노마나님들은 oo백화점에서 세일하는 명품 의류를 사기위해, 혹시라도 길이 막혀 상품이 품절될까봐 고급 외제 승용차와 기사를 제쳐두고 지하철을 탔다. 그러나 온갖 명품으로 치장한 그들의 모습과 초라하고 더러운 지하철 안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생전 타지도 않았던 지하철에 익숙하지 않아 이리휘청 저리휘청 거리며, 자신들의 명품 치장거리 자랑과, 재산, 자식자랑, 그리고 지하철이 얼마나 더럽고 자신들에게 안어울리는지에 대해 떠들기에 여념이 없다. 빈익빈 부익부. 잘사는 사람들은 더욱 잘살고, 못사는 서민들은 한푼이라도 아끼려 지하철을 타지만, 그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서울의 이상한 구조. 지하철에 같이 타고 있던 창녀 걸레가 그들을 윽박질러 쫒아버린다. 그리고 지하철 한켠에서 잠에 들었다가 악몽을 꾸고 일어나 불안해하는 선녀에게 다가가 위로를 한다. 아는 사람 한명 없는 서울땅에 들어와, 서울의 더러움에 물들 법도 하지만, 본연의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자신을 인간으로 대해주었던 단한명의 사람 선녀. 자신의 불행에 울고있는 선녀를 위해 그녀는 노래를 불러준다.울 때마저도 아름다운 너1. 이봐. 거기. 그래. 너.내말 좀 들어 봐줄래 응?말 꺼내기도 너무 챙피해아직 내가 약속할 수 있어내 얼굴에 씌었어 자 용기를 내행복해 질 수 있다고왜냐면 넌 너무 이뻐울 때조차도2, 날 봐 내 꼴 좀 봐요 걸레 쪽병들고 마약중독까지다들 다니는 중학교도 못나와KT고엄만 술만 먹으면 날 때려댔지마 놈팽이 한테 당하고 끌려왔지나도 엄마 미워(후렴반복)머리 빗겨줄 할머니도 친구 한 명도기를 개 한 마리도 없고앞날은 끝도 없는 터널 캄캄하고독사만 우글대는 더 땅굴처럼그런 내게 너 같은 선녀가 찾아와울어 주다니그녀의 독창은 너무나도 가슴시렸다. 그녀의 겉모습은 썩어문드러진 듯 하고 삶을 포기한 것 같지만, 가슴속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삶에 대해 저렇게 울고 있었던 것이다. 588의 다른 여자들도 모두 그녀와 같은 생각이리라.걸레는 선녀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한 후 다음역에서 내리기 위해 일어선다. ‘안경’을 사랑하면서 왜 그와 잠자리를 하지 않냐는 선녀의 질문에, 그녀는 ‘안경’ 은 자기의 마지막 남은 삶의 희망이자 순수함이라며, 그를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대답을 던지고 사라진다. 그리고 갑자기 ‘덜컹’ 하는 충격과 함께 정전이 되어버린 지하철. 선녀와 승객들은 놀라서 내리고, 곧 누군가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것은 바로 창녀 걸레. 지하철에서 내린 후 ‘안경’을 만나게 된 걸레는, 안경에게서 ‘돈을 가져왔으니 오늘 밤은 자신과 함께 하자’ 는 말을 듣게 되고 마지막 삶의 희망의 빛이 꺾이는 것을 느끼며 지하철에 뛰어든 것이었다.여기서 나는 눈물을 멈출수가 없었다. 걸레의 죽음으로 인한 수많은 사람들의 깨달음. 그것은 바로 그동안의 무관심과 이기심에 대한 후회와 탄식이었다. 포주 ‘철수’ 가 조금만 그녀를 덜 무시했더라면, ‘곰보할매’ 가 조금만 그녀에게 더 따뜻했더라면, ‘안경’ 이 조금만 더 그녀에게 솔직했더라면, 588을 찾아오는 남자들이 조금만 더 그녀를 존중했더라면, 지하철 안의 사람들이 조금만 더 그녀를 경멸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조금만 더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