烏有蘭傳作者未詳◈ 大明順和{) 順和(순화): 명나라 英宗의 연호 天順(1457-1464)과 憲宗의 연호 成化(1465-1487).年間, 東方漢陽地, 有二宰相, 曰金曰李.명나라 順和 연간(1457-1487), 조선국 한양 땅에 두 재상이 있었다. 한 재상의 성은 김씨요, 다른 재상의 성은 이씨라 했다.◈ 俱以簪纓之族{) 簪纓之族(잠영지족):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하여 온 겨레붙이.(簪纓世族), 地醜德齋{) 地醜德齋(지추덕제): 원래는 영토의 크기가 같고 서로 비슷하다 는 의미., 世交殷密.모두 높은 벼슬을 해온 집안으로, 지체와 덕망이 서로 비슷하고 대대로 사귄 교분이 두터웠다.◈ 金相語李相: 吾兩家兒豚{) 兒豚(아돈): 자신의 자식 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家豚), 生年日時, 若合符契{) 若合符契(약합부계): 나뭇조각 등에 글을 쓰고 도장을 찍은 후에 두 쪽으로 쪼개어, 한 조각은 상대자에게 주고 다른 한 조각은 보관하였다가 후일에 서로 맞추어 증거로 삼는 것. (符信) 여기서는 똑같다 는 의미이다., 事不偶耳. 使當同學, 見其成就, 豈非吾 晩景{) 晩景(만경): 원래는 해질 무렵이나 철이 늦은 때의 경치 를 일컫는 것이나, 여기서는 사람의 평생에서의 끝 시기 를 이름.(늙바탕, 老境)之樂哉?(하루는)金재상이 李재상에게 말했다. 우리 두 집안 자식들의 생년일시가 符契를 맞춘 듯하니 우연한 일은 아닌 것이오. 마땅히 같이 공부하게 해서 그들의 성취를 본다면 어찌 우리들 능력바탕의 즐거움이 아니오리까?◈ 李相曰: 此誠余意.李재상은 대답했다. 이것이 진실로 나의 뜻입니다.◈ 乃酒掃一間精舍, 使之同師, 連衾比床{) 連衾比床(연금비상): 함께 숙식하며 공부함., 二生亦相與矣.그러고는 한 칸의 精舍를 청소하여 한 스승 밑에서 같이 지내게 했다. 二生들도 서로 함께 하였다.◈ 心曰: 男兒功名, 早晩必成. 周召{) 周召(주소): 중국 武王의 아우이자 成王의 숙부였던 周公 旦과 召公 奭. 이들은 형제 사이로 성왕을 보필하여 주나라 기틀을 잡는데 공을 세웠다.之功, 可期於古周,花가 이슬을 머금고 바야흐로 터지려는 것과도 같았다.◈ 眉其曲而頰其豊, 孤輪素月{) 孤較素月(고교소월): 孤輪素月 의 오기. 외로이 뜬 둥근 흰 달., 容光{) 容光(용광): 빛나는 얼굴이란 뜻에서, 상대방의 얼굴을 높여 이르는 말.必照矣.눈썹은 꼬부라졌고 뺨은 통통하였으며, 외로이 뜬 둥근 흰 달빛이 그녀의 얼굴에 비치고 있었다.◈ 生一顧眄來, 雖以士子{) 士子(사자): 벼슬하지 않은 선비(士人)之守貞, 暗嘆美色之傾國, 流 送情, 望望看看.이생이 한 번 보고는 비록 곧은 지조를 지키고 있는 선비엿지만 傾國의 美色임에 몰래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은밀한 눈길로 연정을 보내면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少焉之頃, 美人覺其窺瞰, 身起去, 步履端雅, 宛如西施{) 西施(서시): 중국 춘추시대 越나라 미인. 越王 勾踐에 의해 吳나라로 가서 吳王을 매혹시켜 오를 망하게 하였다 한다.之步越庭, 眞個是絶代佳人也.이윽고 오유란은 이생이 몰래 역보고 잇음을 깨닫고서 몸을 돌려 일어나 가는데, 걸음걸이가 단정하고 우아하여 완연히 西施가 越나라 궁전 뜰을 걷는 것과 같으니 진실로 絶代佳人이었다.◈ 自是之後, 或間五日, 或間三日, 每以前樣, 來坐故處, 乍顧乍 , 以衒其巧.이후로부터 닷새 또는 사흘을 간격하여, 오유란은 매번 이전과 같은 모습을 하고 그곳에 가 앉아 잠깐 돌아보기도 하고 잠깐 엿보기도 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였다.◈ 於戱怪哉, 生之見女, 而放蕩曠工之心, 一見加一層, 二見加二層, 至於四見五見, 一心所在, 五內自解, 工不自勤, 食不自甘.희롱함에 괴이하니, 이생이 오유란을 본 후로 방탕하여져서 공부하는 마음을 멀리하고 한 번 보면 두 번 보고 싶고, 두 번 보면 세 번 보고 싶고, 네 번 다섯 번 봄에 이르러서는 오로지 그녀가 있는 곳에만 마음을 두어 오장육부가 저절로 해이해지고, 공부해도 힘쓸 줄 모르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했다.◈ 掩卷獨坐, 憮然長嘆曰: 人於世間, 生且其何, 而其樂何哉.이생은 책을 덮고 홀로 앉아 허탈해 하면서 길게 탄식했다. 사람이 세상에있는 문. 가운데의 正門과 좌우의 東來門·西來門의 세 문으로 되어 있어서 일컫는 말이다.外, 叩 聲喧鬧{) 喧鬧(훤뇨): 여러 사람이 뒤떠드는 것처럼 요란스러움..갑자기 三門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命詢其故, 乃一蒼頭{) 蒼頭(창두): 종. (奴僕), 自京來急報也.감사가 그 까닭을 물어 보라 하니, 한 노복이 경성에서 急報를 가지고 왔다고 했다.◈ 卽令招致, 俯伏上一封書, 而皮式曰李某.즉시 불러들이게 하니, 부복하고 봉한 서찰 하나를 올렸는데, 겉에 李某旅中 이라고 쓰여있었다.◈ 旅中忙手開見, 則李相患候, 朝夕時急之報也.이생이 황망히 손으로 뜯어본즉, 李재상의 患候가 아침저녁으로 시급하다는 사연이었다.◈ 生顔忽變色, 罔知攸措{) 罔知攸措(망지유조): 어찌할 바를 모름..이생의 안색이 별안간 변해지고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伯爲之戚戚然曰: 邵年彊體{) 邵年彊 (소년강체): 年彊體 의 오기. 年富하고 몸이 건강함., 何崇{) 崇(숭): 의 오기. 빌미.之由?감사는 슬퍼하며 그를 위로했다. 연세도 젊으시고 옥체도 건강하셨거늘 무슨 빌미로 말미암았을까?◈ 急急使裨幕{) 裨幕(비막): 裨將. 監司·留守·兵使 등을 侍從하는 官員., 善馬擧行.갑사는 급히 裨將을 시켜 좋은 말을 골라 떠날 준비를 하게 했다.◈ 行具備畢, 令生上馬曰: 善爲保護.떠날 체비가 다 갖추어지자, 감사는 이생으로 하여금 말에 오르게 하고는 말했다. 부디 몸조심 잘 하게.◈ 生 躇 {) 躇 (주저견권): 살뜰한 정의가 못내 잊혀지지 아니함., 若將言而不忍, 似有意而不吐, 胸臆難禁, 涕流自沾.이생은 주저하며 오유란의 살뜰한 정의가 못내 잊혀지지 않아 말을 하려고 하다가는 차마 하지 못하니, 마치 뜻은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벅찬 가슴을 누를 수 없어 눈물만 떨어뜨렸다.◈ 實爲娘子之無一言相贈, 而見之者, 以爲人子情禮, 似當然矣.실은 오유란에게 한 마디도 말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없으나, 이생의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사람의 자식 된 도리로 그런다고 여지 못하였고 나로 인하여 죽었어도 임종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며 슬프지 않겠느냐! 통곡함은 낭자를 위함이 아니고 나의 私事를 위함이다. 사사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낭자의 살뜰한 정에 있나니, 사사로운 정이 서로 얽히고서는 누구인들 이와 같이 하지 않겠느냐? 나 아닌 네가 만일 이와 같은 지경에 당면했다고 하면 어찌 능히 그렇게 하지 않겠느냐?◈ 仍擧袖拭淚, 取水洗面, 扶倚上馬, 轉投宣化堂.그리고는 이생은 소매로 눈물을 닦고 물을 떠서 얼굴을 씻고는 마부에 기대어 말에 올라 宣化堂으로 들어갔다.◈ 伯忙出接迎, 愕然爲問曰: 春府愼節{) 愼節(신절): 남을 높여 그의 病을 일컫는 말.若何, 而往反如是速也?감사는 바삐 나와 맞이하며 놀란 듯이 이생에게 물었다. 춘부장의 병환은 어떠하오며, 갔다가 돌아옴이 어찌 이다지도 빠른가?◈ 生袖示家書曰: 親候快蘇, 敎意如此, 故不得而回程.이생은 소매 속에서 家書를 내어 보이며 말했다. 아버님의 병환이 완쾌하시고 또 분부가 이와 같이 지업하시기에 마지못하여 돌아왔네.◈ 曰: 自兄登塗, 樂宵憧憧, 此則實所願聞, 萬幸萬幸. 兄之神容瘦慽, 何其甚也?감사가 물었다. 그대가 길을 떠난 후로부터 밤낮으로 불안하였었네. 그 이야기는 실로 내가 듣기를 원한 바이었으니 천만다행일세. 그런데 그대 얼굴의 수척함이 어찌 그리도 심한가?◈ 曰: 急報以來, 多日在道, 自然食不自甘, 寢不自安而然也.이생이 대답했다. 급보가 온 이래로 여러 날을 길에서 머물렀더니, 자연 먹어도 맛을 모르고 잡을 자도 편치 못하여 그러한 게지.◈ 曰: 此日時厄會{) 厄會(액회): 액때움. 앞으로 당할 큰 厄運을 대신하여, 미리 다른 가벼운 고난을 겪어 때우 는 일., 勿復深慮, 益勤工做, 以速榮親.감사가 말했다. 이번 일을 한 때의 액때움으로 생각하여 다시는 깊이 근심하지 말고 공부에 더욱 힘써서 속히 어버이를 영화롭게 하게나.◈ 仍令進酒.이어 술상을 내어오게 했다.◈ 穩話未畢, 生告托體憊, 退居故處, {) (과라): 나나니벌.施宇, {) (소유): 의 오기 以顔子{) 顔子(안자): 공자가 아끼전 顔回.之賢, 有二毛之夭{) 二毛之夭(이모지요): 검은 머리털에 흰 머리털이 나기 시작한 나이에 죽음. 顔回가 32세에 죽은 것을 일컫는다., 況吾萬萬不較者, 何足惜也? 但所忌者, 病殞之際, 慟之{) 慟之(통지): 痛之 의 오기. 통곡함 또는 애통히 여김.難耐.이생이 말했다. 나는 부모께 이미 못나고 어리석은 자식이 되어 근심을 끼쳐드린 것이 많으며, 세상에 한 번 났다가 한 번 죽는 것은 또한 理致의 당연함이니 피할 수가 없소. 덕을 지닌 孔子같은 위대한 성인도 아들 伯魚가 먼저 죽은 慘慽한 일이 있었고, 어짊을 지닌 顔子같은 사람도 흰 머리털이 나기 시작한 나이에 일찍 죽었소. 하물며 나는 아무것도 견줄 것이 없는데 무엇이 애석 하셨소? 단지 꺼리는 것은 내가 병들어 죽었을 때 부모님들께서 통곡하는 것 이온대, 이것만은 차마 견딜 수 없을 뿐이오.◈ 曰: 此則不足慮也. 第有妙理, 此等之說, 不復掛齒{) 不復掛齒(불부괘치): 다시는 입에 올리지 말라..오유란이 말했다. 그렇다면 근심하지 마옵소서. 저에게 한 妙理가 있사오니 그러한 말씀일랑 다시는 입에 담지 마십시오.◈ 曰: 妙理何如?이생이 물었다. 묘리란 어떤 것이오?◈ 娘子含默無言, 再三堅持, 乃以手拒臂, 頻頻云道, 終不獲已, 答曰: 人之病者殞者, 莫不鬼 {) 鬼 (귀책): 鬼責 의 오기. 귀신의 버럭을 입는 것., 而痛難之狀, 不可書形. 至於以妾, 待君之道, 不與他同列也. 雖病不痛, 雖殞不異, 精靈自在, 知覺自知.오유란은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녀는 손으로 이생의 팔을 잡고 여러 번 말을 하려다가 마침내 마지못해 대답했다. 사람중에 병든 사람과 죽은 사람은 귀신이 침범하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 가슴 아파 하는 것에 대한 난처한 정황을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제가 낭군을 대접하는 방법은 살아 있는 다른 사람과 같지 아니합니다. 병이 들었더라도 슬퍼하지 않는 것은 비록 죽었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어다.
獲生金父子同宮未詳◈ 松京趙同知{) 同知(동지): 원래는 同知中樞府事의 준말이나, 직함이 없는 노인의 존칭으로도 쓰였다. 여기서는 후자의 경 우., 姓貫白川, 家 累巨萬, 差人{) 差人(차인): 장사하는 일에 시중을 드는 사람. 차인군.遍於八路{) 八路(팔로): 八道, 無處無之, 第素是孤宗, 又無子姓, 至於螟 ,無處可得, 老夫妻以是爲憂.송경(개성) 조동지는 본관이 백천(白川)이다. 재산이 여러 만금이라 차인(差人)이 팔도에 깔려서 안 가 있는 곳이 없었다. 그는 본래 고단한 집안인 데다 자질(子侄)이 없어 양자를 세울래야 데려올 마땅한 자리도 없었다. 늙은 양주는 이 때문에 노상 근심하였던 터였다.◈ 一日, 同知坐於堂上, 門外有乞飯小兒, 年 十歲.어느 날 조동지가 마루에 앉아 읽을 때, 밖에서 밥 비는 소리가 들리는데, 겨우 10살쯤 되어보이는 아이였다.◈ 時當隆冬雪寒, 而其容貌骨格, 頗有可取, 趙同知呼入房中.때는 엄동 설한이었다. 조동지는 그 아이의 용모와 골격이 제법 눈에 들어서 방안으로 불러들였다.◈ 問其姓貫, 則曰: 白川趙氏.성과 본관을 물어보니 바로 백천 조씨 라◈ 同知喜之, 問其父母, 則曰: 只有母, 今在城中乞食 云.동지는 반가 와서 아이의 부모에 대해서 물어보니, 다만 어미만 있는데 지금 성중에서 걸식을 하고 다닌다. 는 것이었다.◈ 同知卽爲率入, 以語其故, 與飯與衣, 而置之于家, 使其奴子, 訪其母來, 稱之以嫂, 而區處於近里一小屋, 其兒則仍以爲己子.조동지는 곧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아이의 내력을 안식구에게 이야기하고 나서 밥을 먹이고 새 옷을 입혔다. 그리고 종을 시켜 그 어미를 찾아다가 수숙의 예로 대하고 가까운 마을의 조그만 집으로 구처해주었다. 그 아이를 자기의 양자로 삼은 것이다.◈ 及兒稍長, 托情干養父母, 無異己出.그 아이가 성장해가면서 양부모에게 정을 붙이니 자기가 낳은 자식과 다름이 없었다.◈ 十五六歲, 加冠娶婦, 其家産出入, 一任渠手, 勤幹周密, 亦稱其意.15,6세에 관례를 시켜 며느리도 보았다. 그 집 재산 출납을 양자의 손에 맡기었다. 그는 부지런하고 주밀해서 조동지의 뜻에 맞았다.◈ 一日, 其子忽言曰: 吾已長成, 不可空遊. 願得數三千金, 出商於兩西{) 兩西(양서): 海西와 關西. 즉 황해도와 평안도.都會處.하루는 조생의 말이 저도 이제 장성했습니다. 허구헌 날 그냥 놀 수 있어요. 바라옵건대 수천 냥을 가지고 한 번 평안도 도회지로 장사를 나가보았으면 합니다.◈ 同知曰: 吾松人, 必自少時, 以興利爲業, 自是例事, 汝言不亦宜乎? 遂給五千兩.조동지는 우리 송도(松都) 사람은 소시적 부터 돈벌이로 나서는 게 예사라. 네 말이 옳고 말고. 하며 5천 냥을 내주었다.◈ 其子行到平壤, 爲妓女所惑, 數三年間, 五千兩錢, 雲散雪消, 無面歸家, 仍留妓家, 爲使喚差人.조생은 평양으로 가서 기생에 혹 해서 수삼 년 사이에 5천 냥 돈을 구름처럼 흩이고 눈 녹이듯 날려버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면목이 없어 기생집에 붙어서 사환노릇을 한 것이다.◈ 趙同知已聞此寄{) 奇(기): 奇別., 不復視以己子, 其本生母與其妻, 盡爲遂之.조동지는 이 기별을 듣고 조생을 다시는 자기 자식으로 안보겠다고 결심하여 그의 생모와 자부도 집에서 내어쫓았다.◈ 婦與姑, 出處于城外土幕, 依舊乞食.시어미와 며느리는 성문 밖 토막(土幕)으로 쫓겨나와 예전 같이 걸식하며 살았다.◈ 其子以弊衣破笠, 住接妓家, 終無歸期.조생은 떨어진 옷에 부서진 갓을 쓰고 기생집에 얹혀 있으면서 종내 돌아갈 기약이 아득했다.◈ 一日, 妓以官家宴會入去, 趙生守家矣.어느날 기생이 관가 잔치에 불려가고 조생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其日大雨, 趙生徘徊見之, 則場中有金屑流布, 探採其源, 則自後庭連絡不絶, 卽房門 石所自出也.그날 큰비가 왔다. 조생이 집안에서 어정대다가 보니 마당에 금가루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에 그 근원을 더듬어 가보니 뒤안으로 쭉이어져서 바로 방문 앞 섬돌로부터 흘러나온 것이었다.◈ 坐拾其屑, 頗爲數斤, 而觀其 {) (체): 섬돌.石, 則幾若砧石{) 砧石(점석): 다듬잇돌., 全塊都是生金也.앉아서 그 가루를 쓸어모우니 착실히 몇 근이 됨직했고, 섬돌을 자세히 보니 얼핏 보기는 다듬잇돌 같으나 온 덩어리 통째로 생금덩이가 아닌가.◈ 趙生待妓之出來{) 出來(출래): 나갔다 오다., 言於妓曰: 吾以年少之致, 如干錢兩, 雖費於君, 君之這間接待之恩, 實亦難忘. 然吾今多年離親, 情理所在, 不得不歸矣.조생은 기생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말을 꺼내었다.내가 나이젊은 때문에 약간의 돈을 자네에게 소비했지만, 자네가 그동안 나를 대접한 은공은 실로 잊기 어려운 것이네. 그러나 내 다년간 부모의 슬하를 떠나 있었으니, 인정으로 보나 도리로 보나 부득불 돌아가야겠네.◈ 妓聞言, 亦爲 然{) 然(창연): . 뜻과 같이 되지 않아 원망하는 모양. 실의 하여 한탄하는 모양.曰: 趙書房久留吾家, 以吾之不贍, 未能如意接待, 是吾所愧. 多年主客之餘, 今焉告歸, 在主人之道, 不可以徒步送之. 卽其地, 貰六足{) 六足(육족): 말 한 필과 마부 한 사람.而給之.기생은 그 말을 듣고 가장 서운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조서방이 오랫동안 우리집에 머물으셨는데,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탓으로 뜻대로 대접을 못해드렸어요. 제가 부끄럽습니다. 여러해 주인과 손으로 지내던 끝에 지금 떠나시는 길을 주인된 도리로 차마 걸어서 가시게 할 수야 있습니까? 하고 그 자리서 말과 마부를 세내주는 것이었다.◈ 趙生曰: 多感多感! 第有所願, 乃後房門前 石也. 此石不足爲貴, 然以君之朝夕着足者也. 吾今歸去, 持此 石, 如見君面, 庶可慰懷.조생은 고맙네, 고마워. 단 한가지 소원이 있네. 뒷문 앞 섬돌을 날 주게나. 그 섬돌이 하찮은 물건이나 자네가 조석으로 밟던 돌이 아닌가. 내 이번 돌아가는 길에 이 섬돌을 가져가서 자네 얼굴을 보는 듯 나의 회포를 위로하겠네.◈ 妓曰: 趙書房之有情於吾, 可知. 吾何愛一塊石耶? 須持去也. 趙生卽 而來.기생이 말히길 조서방이 다정한 분인 줄 알겠어요. 제가 어찌 돌 한 덩이를 아끼겠나요. 가져가세요. 조생은 당장 그것을 말등에 싣고 귀향했다.◈ 時當歲末, 凡松人之出商者, 必盡歸家. 各其家眷, 亦備大饌, 而迎之于五里程.그때가 연말이었다. 대개 그때에는 개성의 장사나갔던 사람들이 많이 귀가하는데, 저마다 가족들이 성찬을 차려가지고 오리정(五里程)에 마중나오는 것이었다.◈ 伊時趙同知, 亦以候差人之故, 方出來于五里程{) 五里程(오리정): 읍으로부터 5리(里) 정도의 거리. 여기서는 사람을 전송하고 마중 나왔음. 오리정(五里亭)..조동지도 이때 귀환하는 차인들을 보기 위해서 마침 오리정에 나와 있었다.◈ 趙生弊袍草履, 亦會于其中, 未敢出現其父, {) (국숙): 구부리며 종종걸음치다.一隅.조생이 떨어진 두루마기에 짚신을 끌고 거기 나타나서 마주치게 되었는데, 조생은 아버지에게 나아가 내노라 인사를 못드리고 한편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其外許多差人, 主客莫不以喜色相迎{) 其外許多差人, 主客莫不以喜色相迎(기외허다차인, 주객막불이희색상영): 원문에는 其外相許多差人, 主客莫 不以喜色 으로 되어 있으나, 栖碧外史 海外蒐佚本과 東京大 소장본 『청구야담』에는 위와 같이 되어 있다. 여기서는 이를 따른다., 而至於趙生, 則其父知而若不知, 其子亦知而不敢現.거기서 서로 맞이하는 허다한 차인들은 주객간에 모두 희색이 감돌았으나, 조생에 이르러는 아비는, 보고도 못본 척, 자식은 뵙고도 감히 나서지 못한 것이다.◈ 間或有知者, 莫不揶揄{) 揶揄(야유): 빈정거리다而譏笑之.간혹 아는 사람들로부터 조생은 빈정거림과 비웃음을 받을 뿐이었다.◈ 日暮, 訪其外城士幕而歸, 則其母與妻之怨言深責, 政難堪聽. 趙生無一言半辭, 不敢開口.조생이 날이 저물어서 성문 밖 토막을 찾아가니, 그 어미와 아내의 원망하고 탓하는 소리가 귀에 따가왔다. 조생은 일언 반구의 말도 없이 입을 봉하고 . 감히 입을 열지 않았다.◈ 息{) 息(한식): 코고는 소리.穩宿{) 穩宿(온숙): 편안(便安)하게 함.後, 其明日, 裁書與金封重裏, 出給其妻, 使納于其父.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며 잠을 잔 후, 이튿날 편지와 함께 금을 겸겸으로 싸가지고 아내를 주며 아버지에게 가져다드리라고 했다.◈ 其父方與諸差人, 早起會計, 坐房中. 其婦不敢造次入門, 呼其奴子, 通之于趙同知, 而先入金封.조동지는 이른 아침부터 여러 차인들과 한창 회계를 하느라 방 안에 있었다. 조생 아내는 감히 방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상노아이를 불러 조동지에게 통지하고, 먼저 금과 편지를 들여보냈다.◈ 趙同知受之, 開書見之, 云: 子之多年所得, 雖只此, 庶可當向日五千數, 而又有大於此者, 故先此伏達耳.조동지가 받아서 편지를 뜯어보니 사연이 이러했다.『소자의 다년간 소득은 비록 이것만으로도 지난날 제가 가져간 5천금에 거의 값할 듯하온데, 또 이보다 큰 것이 있기에 우선 이것으로 아뢰옵니다.』
滑稽{) 滑稽: 말을 잘하고, 유창하여 막힘이 없는 것. 후에는 해학, 유머의 뜻으로 쓰이게 되 쓰이게 되었다.列傳第六十六◈孔子曰六 於治一也 禮以節人 樂以發和 書以道事 詩以達意 易以神化 春秋以義孔子는 말하였다. 육예(六藝)는 그 다스림에 작용이 같은 것이다. 『예기(禮記)』는 사람을 절도 있게 하고, 『악(樂)』은 화합하게 하고, 『서경(書經)』은 옛일을 말하여 본받게 하고, 『시경(詩經)』은 옛 성현의 뜻을 전달하게 하며, 『역경(易經)』은 다스림을 신비하게 하고, 『춘추(春秋)』는 정의로 시비를 가리게 한다.◈太史公曰天道恢恢 豈不大哉 談言微中 亦可以解紛태사공은 말하였다. 천도(天道)는 넓고도 넓다. 어찌 위대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司馬遷의 뜻은 세상의 이치는 매우 많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하나만은 아니라는 뜻이다.말도 은미(隱微)함 속에도 이치에 맞아서, 또한 이것으로써 일의 얽힌 것을 풀 수 있다.◈淳于 者 齊之贅壻也 長不滿七尺 滑稽多辯 數使諸侯 未嘗屈辱 齊威王{) 齊 威王: 田因齊. 기원전 378년에서 343년까지 재위하였다.之時喜隱 好爲淫樂長夜之飮 沈 不治 委政卿大夫 百官荒亂 諸侯 侵 國且危亡 在於旦暮 左右莫敢諫 淳于 說之以隱曰國中有大鳥 止王之庭 三年不蜚又不鳴 王知此鳥何也 王曰此鳥不飛則已 一飛沖天不鳴則已 一鳴驚人 於是乃朝諸縣令長{) 令長: 縣의 행정장관. 縣의크기가 萬 戶 이상이면 縣令 이라고 하고, 萬 戶 이하이면 縣長 이라 고 한다.七十二人 賞一人 誅一人 奮兵而出 諸侯振驚 皆還齊侵地 威行三十六年 語在田完世家中순우곤(淳于 )은 제(齊)나라 사람의 데릴사위였다. 키는 7척이 되지 못하였으나, 익살스럽고 변설에 능하여 여러 번 제후에게 사신으로 나갔으나 일찍이 굽히거나 욕되게 행동하지 않았다. 제 위왕(齊威王)때의 일이다. 왕은 수수께끼를 좋아하였으며, 음탕하게 놀면서 밤새워 술 마시기를 즐겼다. 술에 빠져서 정사(政事)를 경(卿), 대부(大夫)에게 맡겼다. 백관들이 문란해서 질서가 없어지고, 제후들이 모두 침범하여 나라의 운명이 조석(朝夕)에좋은 말씀이요 라고 하고는 곧 밤새워 술 마시는 것을 그만두고, 곤을 제후의 주객(主客)으로 삼았다. 그후 왕실의 주연에는 곤이 언제나 왕을 곁에서 모셨다.◈其後百餘年楚有優孟 優孟者 故楚之樂人也 長八尺 多辯 常以談笑諷諫 楚莊王{) 楚 莊王: 熊侶. 기원전 613년에서 기원전 591년까지 재위하였다.之時 有所愛馬 衣以文繡 置之華屋之下 席以露牀 以棗脯 馬病肥死 使 臣喪之 欲以棺槨大夫禮葬之 左右爭之 以爲不可 王下令曰有敢以馬諫者 罪至死 優孟聞之 入殿門 仰天大哭 王驚而問其故 優孟曰馬者王之所愛也 以楚國堂堂之大 何求不得 而以大夫禮葬之 薄 請以人君禮葬之王曰何如 對曰臣請以彫玉爲棺 文梓爲槨 楓豫章爲題湊 發甲卒爲穿壙 老弱負土 齊趙陪位於前 韓魏翼衛其後 廟食太牢{) 太牢: 소, 양, 돼지 한 마리씩을 희생으로 삼는 최고의 제사.奉以萬戶之邑 諸侯聞之 皆知大王賤人而貴馬也 王曰寡人之過一至此乎 爲之柰何 優孟曰請爲大王六畜{) 六畜: 소, 양, 돼지, 말, 닭, 개를 말한다.葬之 以壟 爲槨 銅歷爲棺 齎以薑棗 薦以木蘭 祭以糧稻 衣以火光 葬之於人腹腸 於是王乃使以馬屬太官{) 太官: 관직 이름. 왕의 음식을 담당하였다.無令天下久聞也그로부터 100여 년 뒤에 초(楚)나라에 우맹(優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우맹은 본래 초나라의 악인(樂人)이었다. 키가 8척이며, 변설에 능하여 언제나 담소로써 풍자하였다. 초 장왕(楚莊王) 때 왕이 좋아하는 말이 있었는데, 왕은 그 말에게 무늬 있는 비단으로 옷을 지어 입히고, 화려한 집에 두었으며, 장막이 없는 침대 위에서 자게 하고, 대추와 마른 고기를 먹였다. 말이 살 찌는 병에 걸려서 죽으니, 신하들로 하여금 이를 장사 지내게 하였는데, 속널과 바깥널을 갖추어 대부(大夫)의 예로써 장사 지내려고 하였다. 좌우의 신하들이 이를 다투어 옳지 않다고 하였다. 왕이 명령을 내리기를 감히 말(馬)을 가지고 간하는 자가 있으면 죄가 죽음에 이를 것이다 라고 하였다. 우맹이 이 말을 듣고 대궐문 안으로 들어가서 하늘을 우러러 크게 곡하였다. 왕이 놀라 그 까닭을 물었다. 우맹전은 진나라의 난쟁이 창(倡)이었다. 그는 우스운 소리를 잘하였으나, 그것이 도리에 맞았다. 진 시황(秦始皇) 때 주연을 베풀었는데 비가 왔다. 창을 잡고 섬돌 가에 늘어서 있는 경호하는 군사가 모두 비에 젖어 추워하고 있었다. 우전이 이를 보고 불쌍히 여겨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쉬고 싶은가? 경호하는 자가 모두 말하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우전이 말하였다. 내가 그대들을 부르면 그대들은 빨리 예라고 대답하라. 얼마 안 되어 어전 위에서 황제의 장수를 빌며 만세를 불렀다. 우전이 난간에 임하여 크게 불렀다. 경호하는 군사들아! 군사들이 예 라고 대답하였다. 우전이 말하였다. 그대들은 비록키는 작으나 다행히도 편히 쉬고 있다. 이에 진 시황은 경호하는 군사로 하여금 반씩 서로 교대하도록 하였다.◈始皇嘗議欲大苑 {) 苑 : 여러 식물과 짐승을 기르는 곳.東至函谷關 西至雍陳倉 優 曰善 多縱禽獸於其中 寇從東方來 令 鹿觸之足矣 始皇以故輟止진시황이 일찍이 원유(苑 )를 크게 넓혀서 동쪽은 함곡관(函谷關)에 이르고, 서쪽은 옹(雍)과 진창(陳倉){) 모두 현 이름이다. 雍은 陜西省 鳳翔縣 남쪽이고, 陳倉은 지금의 陜西省 寶鷄市 동쪽이다.에 이르게 하려 하였다. 우전이 말하기를 좋습니다. 금수를 그 안에 많이 놓아서 도적이 동쪽에서 온다면 고라니와 사슴으로 하여금 그들을 뿔로 막게 하면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진 시황은 이 말 때문에 중지하고 말았다.◈二世立 又欲漆其城 優 曰善 主上雖無言 臣固將請之 漆城雖於百姓愁費 然佳哉 漆城蕩蕩 寇來不能上 卽欲就之 易爲漆耳 顧難爲陰室{) 陰室: 칠을 말리는 건조실.於是二世笑之 以其故止 居無何 二世殺死 優 歸漢 數年而卒2세 황제가 즉위하자 성벽에 옻칠을 하려고 하였다. 우전이 말하기를 좋습니다. 주상께서 비록 말씀이 아니 계셔도 신이 진실로 청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성벽에 옻칠하는 것은 비록 백성들이 비용을 근심하게 되겠지만, 그러나 훌륭한 것입니다. 옻칠한 성벽이 웅장하게 서 있으면 도적이 와도 오르지 못할 것입니다사자가 가지고 다니는 信物.出使 朔行殿中 郞謂之曰人皆以先生爲狂 朔曰如朔等 所謂避世於朝廷閒者也 古之人 乃避世於深山中 時坐席中 酒 據地歌曰陸沈於俗 避世金馬門 宮殿中可以避世全身 何必深山之中 蒿廬之下 金馬門者 宦者署{) 宦者署: 환관을 관리하는 부서.門也 門傍有銅馬 故謂之曰金馬門무제 때 제(齊)나라 사람으로 동방생(東方生)이라고 하는 자가 있었는데, 이름은 삭(朔)이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서적과 경술을 사랑하였고, 널리 외가(外家)의 기록을 본 것이 많았다. 삭이 처음 장안에 들어와 공거(公車)에서 글을 올렸다. 모두 3,000여개의 주독(奏牘)을 썼다. 공거에서는 두 사람을 시켜 함께 들게 하여서야 겨우 이것을 옮길 수 있었다. 황제는 상방(上方)에서 이를 읽었는데, 그칠 때에는 곧 그곳을 붓으로 표시하였으며, 이렇게 이것을 읽기 시작하여 두 달만에 겨우 끝냈다. 황제는 조서를 내려 그를 낭(郎)으로 삼았다. 그는 항상 황제의 측근에 있었다. 자주 불리어 어전에서 말하였는데 일찍이 황제가 기뻐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때로 조서를 내려 어전에서 먹을 것을 내렸다. 먹기를 끝내면 그 남은 고기를 모두 품에 넣어 가지고 나갔으므로 옷이 모두 더러워졌다. 자주 비단을 내려주었는데 어깨에 메고 나갔다. 하사 받은 돈과 비단을 부질없이 써서 장안의 미녀 가운데서 젊은 부인을 맞이하였다. 이처럼 하여 황제가 내린 돈과 재물을 모두 여자에게 써버렸다. 황제 좌우의 낭관들의 반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불었다. 황제가 이를 듣고 말하기를 삭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행동을 못하게 한다면, 그대들이 어찌 그에게 미칠 수 있겠소 라고 하였다. 삭이 그의 아들을 천거하여 낭에 임명되게 하고 다시 시알자(侍謁者)가 되게 하니, 그는 항상 절(節)을 가지고 사신으로 나갔다. 동방삭이 궁전 안을 걸어가고 있을 때 어떤 낭이 말하길 사람들이 모두 선생을 미친 사람이라고 합니다 라고 하니, 삭이 말하기를 나와 같은 사람은, 이른바 조정에서 세상을 피하는 사람이네. 옛사람은 같은 산속에서 세상을 피화합하면 비록 어진 이가 있어도 공을 세울 수가 없다라고 하였소. 그러므로 시대가 다르면 일도 다르다는 것이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어찌 영귀하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랴! 태공(太公)이 몸소 인의를 행하여 72세에 문왕(文王)을 만나 그 포부를 행할 수 있게 되어 제나라에 봉해졌고, 700년이 되도록 그것이 끊어지지 않았소. 이것이 바로 선비가 밤낮으로 부지런히 학문을 닦으며 도를 행하는 것을 감히 멈추지 못하는 까닭이오. 지금의 처사(處士)는 비록 시대에 쓰여지지 않는 다고 하더라도 우뚝 홀로 서고, 괴연(塊然)히 홀로 처하며, 위로는 허유(許由)를 보고 아래로는 접여(接輿)를 살피며, 계책은 범려(范 )와 같고, 충성은 오자서(伍子胥)에 합치되나, 천하가 평화스러우니 정의를 지켜 수신을 하는 것뿐이오. 짝이 없고 무리가 적은 것은 처음부터 당연한 것이오. 그대들은 어찌 나를 의심하는가! 라고 하였다. 이에 여러 선생들은 묵묵히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建章宮後閤重 中有物出焉 其狀似 以聞 武帝往臨視之 問左右 臣習事通經術者 莫能知 詔東方朔視之 朔曰臣知之 願賜美酒粱飯大 臣, 臣乃言 詔曰可 已又曰某所有公田魚池薄葦數頃 陛下以賜臣 臣朔乃言詔曰可 於是朔乃肯言 曰所謂騶牙者也 遠方當來歸義 而騶牙先見 其齒前後若一 齊等無牙 故謂之騶牙{) 騶牙: 전설에 의하면 이 동물은, 그 시대의 통치자가 신의가 뛰어남을 상징한다고 한다.其後一歲所 匈奴渾邪王{) 渾邪王 : 匈奴의 오른쪽 지역을 다스리던 왕. 去病에게 자주 패하여 單于가 벌하려 하자 漢나라에 투항하였다.果將十萬衆來降漢 乃復賜東方生錢財甚多건장궁(建章宮) 후각의 이중으로 된 난간 안에 이상한 짐승이 나타났다. 그 모양이 고라니와 비슷하였다. 무제가 가서 이를 보고는, 측근의 경험이 많고 경술에 통달한 신하들에게 물어보았으나 다들 알지 못하였다. 이에 동방삭에게 조사하게 하였다. 삭이 말하시기를 신은 알고 있습니다. 신에게 술과 기름진 쌀밥을 내리시어 실컷 먹게 하옵소서. 그러면 신이 곧 말하겠습니다 라고 하니 조서를 내려 좋?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시민의 모습을 쓰시오.▶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부모를 살해한 자식, 사회에 반감을 품은 자들의 이유 없는 범행들, 뺑소니차에 치인 영등포 어느 상인의 돈 줍기에 혈안이 되어 사고의 희생자를 방치한 채, 남의 돈과 수표를 줍고도 되돌려 주지 않는 일반시민들의 경우 등 최근 우리 사회에 일어난 일연의 사건들은 그동안 우리가 성취한 경제적 성취와 정치적 민주화를 무용지물로 만들 위험성이 우리 사회에서 자라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경제적인 여유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을 해치고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가능성과 물리적 힘은 엄청나게 커진 반면, 민주 시민의 자율적 질서의식은 자리잡지 못하고, 자신의 권리에 대한 비합리적 요구는 커진 반면 다른 사람의 권리와 이익을 존중하는 책임의식은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사고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생물학적 생존이 위협을 당하고 시민이 다른 시민을 믿지 못하는 사회에 경제적인 풍요나 형식적 민주주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간이 만들어 낸 정치제도 중 민주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제도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민주주의가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원해서 도입한 것도 아니지만 그동안의 경험과 교육을 통하여 역시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정치제도며 민주질서가 공동체 생활에 가장 이상적인 것이란 점에 의견일치가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런 민주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상응하는 시민성이 형성되어야 함을 알고 있으며, 그런 시민성은 정치영역에서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이외의 다른 일상생활에서도 필수적임을 인정하게 되었다.바람직한 시민은 어떠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 사람인가? 첫째 자율적으로 행동을 하는 인간이다. 자율적인 인간은 전통적 문화들을 절대적 운명인 것처럼 수동적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다원주의 사회에 있어서 인간은 그들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최대한 존중받으므로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자율적인 인간은 창조적이라야 한다. 선조, 선배, 다른 문화, 다른 사람이 창조해 놓은 것을 자기 것으로 선택하는 것이 반드시 자율성에 위배된다고 할 수는 없으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역시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창조한 후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자연의 지배로부터 점점 멀리 떨어져 인공적이 되고 있는 사회에서 인간의 책임은 그만큼 커져야 하는 반면에 대형화되고 조직화되는 사회에서 개개인의 책임의식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환경오염의 문제를 살피면 눈앞에 이익에만 급급해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생태계 파괴의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자율적인 시민은 단순히 환경오염을 줄이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정부로 하여금 환경 친화적인 정책을 수립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것이며 다른 시민들의 환경 파괴행위를 제재하려는 노력 또한 늦추지 않을 것이다.둘째로 미래 사회의 건전한 시민의식은 한편으로는 충분히 자율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과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입장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관용을 갖춘 시민의 모습이다. 자신의 것과 다른 가치관이나 입장을 관용할 수 있는 인간은 다른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독특한 가치를 양보하지 않고 도덕적 상대주위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색다른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상대적인 가치들을 수용하는 관용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가치나 준칙들보다 더 중요한 보편적인 가치나 원칙이 있음을 전제해야 가능 할 것이고, 다원주의 사회에서 그런 보편적인 것을 인정하려면 적어도 그것들은 모든 사람이 합리적 이기주의에 입각하여 수용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인간의 기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든지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부당하게 고통을 가할 수 없다는 등은 만고불변의 원칙이라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의 교육1.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1>역사적 배경자신들은 헬레네스(Helleness)라고 칭하던 사람들이 그리스(Greece) 반도에 온 것은 서기전 2000년 후였다. 그들은 언어.종교. 공통된 문명에 의해 단결되었으나 통일된 그리스 정부나 국가를 세우지 못했다.본토의 주민들은 가파른 계곡과 높은 상과 들에 분열되었으며, 갈라진 정착민들은 각기 폴리스(Polise)나 도시국가(City-state)를 형성했다. 따라서 그리스는 스파르타(Sparta). 아테네(Athenae)등 여러 도시국가를 포함한 총칭으로서 자연히 그 민족의 강성도 다양하였다.그리스 민족은 Hellas, 즉 빛이라는 고명을 가진 아리아족(Aryans)으로서 B.C. 11세기 경에 북쪽 발칸(Balkan) 반도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펠로폰네소스(Peloponnesos)반도에 스파르타를 건국한 도리아족(Dorians)과 펠로폰네소스 중부의 에티카(Attica)에 아테네를 건국한 이오니아족(Ionians)은 그리스의 양대 세력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그 외에도 코린트(Corianth). 테베(Thebes). 밀레토스(Miletos) 들을 포함한 여러 소민족이 집합한 도시국가는 100을 훨씬 넘었다.그리스의 도시국가와 페르시아(Persia) 왕국간의 투쟁은 B.C. 479년 플라테(Plataea)에서의 그리스의 승리로 그 절정에 이르렀고, 스파르타와 아테네와의 경쟁은 B.C. 404년 아테네의 마지막 공격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기인된다.그리스는 마침내 마케도니아(Macedonia)에 의해서 정복되고 B.C. 388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리스 문명의 시기는 B.C. 146년 로마(Rome)의 그리스 정복과 함께 막을 내린다.2>문화적 배경그리스 문화의 특색은 호머시대의 교육(The Education of the Homeric Period)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즉, 일리아드와 오딧세이(Odyssey, B.C. 900-800년경)라는 위대한 서사시로 그것은 아킬레스와 오디세우스에 의해 상징이 되는 행동의 인간과 지혜의 인간을 겸비한 2대 인간의 이상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리스의 자유민은 이러한 이상에 도달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혜인의 으뜸가는 덕은 훌륭한 판단으로 용기는 신에 대한 외경으로 조화되어야 한다고 했다.한편 그리스의 문화는 그들의 신에서도 엿볼 수 있다. 즉, 다른 민족의 신은 모두 창조자임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리스의 올림푸스(Olympos)의 신들은 완전히 인간적이다. 그리스의 신화에 등장한 신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술과 연애와 질투도 할 줄 알아 마치 인간의 세계 그대로 였었다. 인간과 다른 점은 초인적 능력을 가진 것 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 사람은 신들에게 인간의 감정과 욕구의 설명도 끌어냈다. 즉, 싸움에서 이기기 위하여 군신인 아레스(Ares)에게 기도하고, 성공허기 위하여 아프로디테(Aprodite)에게 호소하고, 지혜를 아데나에게 빌었던 것이다. 이러한 것은 그리스 사람이 인간성을 존중한데서 나온 것으로 지상의 인간성의 발견은 그리스 사람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이상과 같은 내용을 미루어 생각할 때 그리스 사람의 문화사상은 자유 사상, 휴머니즘(Humanism) 사상, 현세주의 사상, 자연주의 사상을 엿볼 수 있으며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애지하는 사상이 특색이다.2. 그리스의 교육1>시대적 구분그리스의 교육은 발달 단계로 보아 5세기 중엽을 한계점으로 시대를 구분란다. 즉, 그리스의 전성기인 페리클레스(The Perikles Age 500-429 B.C.) 시대를 전후하여 고 그리스 시대(The Old Greek period)와 신 그리스 시대(The New Greek period)로 나눈다. 그전.후기를 구체적으로 나누면 전기 고 그리스 시대는 다시 호메로스 시대(The Homeric Age)와 유사시대(The Historic period)로 나누고 후기 신 그리스 시대는 과도기 시대와 세계주의 시대로 나눈다. 이와 같이 그리스 시대는 교육의 발달 과정상 크게 네 가지의 시대로 나누어 생각한다.2>시대의 특징호메로스 시대는 전설의 시대이다. 이 시대는 약 기원전 10세기 경까지라고 추측한다. 이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이상은 두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즉, 지혜인(The man of wisdom)과 실적인(The man of action)이라는 이상이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로 보아 창업시기에 트로이 전쟁(Troy War, 1193-1184 B.C.)의 수행이었다. 이 전쟁에서 그리스 민족은 총력을 모아 10년간 싸워 승리를 거둔 그리스 군의 원정기인 Iliad와 전쟁후 귀국 도중에서 표류한 오딧세이의 두편의 유명한 호머의 시가 이 시대의 주된 교육내용이었다. 따라서 지혜인은 오디세우스(Odysseus)에 의하여 실적인은 아킬레스(Achilles)에 의하여 잘 대표되고있다.이 귀중한 문헌은 그리스의 정신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는 했으나 고전으로서 그 가치를 인식하기는 고전시대 전기에서만 이었다. 그것은 당시 교육을 위한 특수 체제이었다.유사시대는 아키아족(Achaeans), 도리아족(Dorians), 이오니아족(Ionians), 에울리아족(Aeolians)등이 도시국가를 건설함으로써 새로운 그리스의 역사가 시작된 B.C. 6세기경을 말한다.이 시기에 주목할 교육적 사실은 도시국가라고 하는 독특한 생활 형태를 유지 발전시켜 각 종족이 대립하면서도 동일의 조신 헬렌(Hellen)의 자손인 헬레네스(Hellenes)로서의 동포의식을 길러 민족적 대변란인 페르시아 전쟁에 그들은 대동단결하여 싸움에 이기고 또한 범 그리스적 축제인 올림피아(Olympia) 경기를 열어 동포의식의 민족적 단결을 시도한 일들은 중요한 교육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