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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안락사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찬성 입장) 평가A+최고예요
    안락사(euthanasia)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1. 서 론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이 많이 있다. 또한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간다운 삶은 불가능한 채 그저 숨만 쉬고 있는 인간인, 식물인간이나, 뇌사상태의 환자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생존 가능성이 없고,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는 환자들에게 행해지는 행위 중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가 있다. 이 안락사는 현재 사회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종교, 도덕, 법률 등의 분야에서 논쟁되어 왔다.시대가 흐름에 따라 과거의 생명과 죽음의 의미와 현재의 생명과 죽음의 의미도 점차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의료 윤리와 생명 윤리가 발전했으며, 앞으로 의료기술이 점차 발달함에 따라 안락사는 점점 우리에게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공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으로서 이러한 윤리적인 개념에 대해 꼭 알 필요성을 느꼈기에 이번 리포트의 주제로 ‘안락사’에 대해 쓰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의료 윤리와 생명 윤리가 비단 의학계와 철학 계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안락사에 대한 의견은 찬성과 반대로 나뉘고 있으며, 현재도 계속 논쟁 중이다. 그리고 찬성과 반대, 이중 어느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필자는 안락사에 대해 찬성한다. 이유는 본론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여기서 잠깐 언급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락사를 찬성하는 입장에 서서 이에 대한 근거를 본론에서 자세하게 여러 참고 문헌의 자료를 제시하고 설명하겠다.2. 본 론1) 안락사란 무엇인가먼저 ‘안락사’의 개념에 대해 알아보자. ‘안락사(euthanasia)’는 어원적으로 ‘편안한 죽음(an easy death)’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어의 ‘Euthanatos’에서 유래한 말로, ‘좋다, 행복하다’는 의미의 ‘eu’와 ‘죽음’을 뜻하는 ‘thanatos’가 결합해 만들어진 용어이다. 영어의 ‘mercy kil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안락사는 또 ‘한 사람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위에 의해 그 사람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야기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하나의 행위가 안락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반드시 죽임을 당하는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안락사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의료계, 법조계, 종교계 및 윤리학자들 간에서만 논의되던 것이 현대로 오면서 점차적으로 일반인의 관심이 집중 되었다. 안락사는 위에서 정의 내린 것처럼 합리주의적 발상에 지지되어 인간생명이 불가역적인 죽음의 방향에 이르렀을 때 이를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려는 인간의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또 ‘중증의 정신적 또는 신체적 장애의 인위적 치사’라는 생각의 안락사는 나치 독일에 의한 ‘사회적으로 무가치한 생명의 강제적 말살’이라는 방향으로의 이용도 ‘안락사’라는 이름으로 통용되어 안락사라는 용어의 사용에는 많은 불신을 남기게 되었다.2) 안락사의 종류안락사의 종류에는 3가지가 있다. ‘자발적(자의적) 안락사’와 ‘반자발적 안락사’, 그리고 ‘비자발적 안락사’이다.‘자발적 안락사(voluntary euthanasia)’는 말 그대로 생명을 가진 주체가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원함으로써 의사 등의 의료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때때로 자의적 안락사는 도움을 받는 자살과 거의 구별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현재 안락사를 허용하도록 법을 변경하고자 캠페인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단체는 이러한 자발적 안락사를 위해 캠페인 운동을 하고 있다.‘반자발적 안락사(involuntary euthanasia)’는 타의적, 강제적 안락사라고도 하며, 생명주체인 환자의 적극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 3자에 의한 사실상의 자기 결정권을 무시한 안락사이다. 편의상 안락사의 분류에 속하기는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자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안락사의 범주에는 속하, 또는 가능하다 할지라도 외부에서 이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행되는 안락사를 말하며, 주로 가족이나 의료인의 견해에 따라 이루어진다. 만약 인간이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면, 안락사는 자의적이지도 반자의적이지도 않을 것이며, 비자의적일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속하는 사람들은 심하게 불구이거나 지체인 아이들, 그리고 사고나 질병 혹은 노쇠로 인하여 관련된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영원히 상실한 사람들로서, 사전에 그러한 경우에 대비해 안락사를 요청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3) 해외 및 국내의 안락사에 대한 견해안락사에 대해 세계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알아보자. 세계 각 나라마다 안락사에 대한 판정은 일정하지 않다. 예를 들면, 1994년 6월 네덜란드에서는 한 정신과 의사가 심한 우울증으로 시달리던 한 여인에게 치사량의 수면제를 주어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대법원에서?의사에게 유죄가 인정되나 형은 선고하지 않은 예가 있다. 이는 ‘죽을 권리’에 관한 법률을 한계상황에 이른 정신병 환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는 판례로 남게 되어 안락사를 육체적 고통에서 정신적 고통에까지 확대한 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995년 로마 교황은 안락사를, “모든 고통을 없애려는 목적으로 그 자체로써 그리고 고의적으로 죽음을 가져오는 행위나 부작위”로 정의하고, 이를 하느님의 율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으로 규정한 바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1993년 제한적으로 허용되어 오다가 2001년 4월에, 벨기에는 2002년 9월에 합법화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노던준주(州) 다윈에서는 1996년 조건부로 허용법안을 마련하였다. 미국은 오리건주(州)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스위스에서는 이를 묵인하고 있다. 프랑스는 2004년 '인생의 마지막에 관한 법'을 제정하여, 환자의 치료 중단 요구건 인정하고 있다. 일본은 불치병 말기 환자의 생명연장장치의 제거를 관행적으로 묵인하는 실정이다.국내에서는 안락사 문제에 대하인간 상태의 환자에 대하여 인위적인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하는 것과 같은 존엄사(尊嚴死)의 경우에는 실제로 병원 등에서 암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실정이고, 이를 실정법으로 처벌하는 경우도 드문 것이 현실이다.우리 국민들은 안락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얼마 전, 한림대학교 이인영 교수 교수팀이 우리나라 국민 1020명에게 고통이 극심한 불치병 환자가 죽을 권리를 요구할 때 의료진이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지 물어본 결과 69.3%가 동의했다. 이 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국민들 약 70%가 안락사에 대해 찬성하고 있다.4) 안락사의 찬성 근거(1) 자기결정권이렇게 논란이 많은 안락사에 대해 필자는 찬성한다. 의사능력이 있는 환자가 불치의 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고, 그 고통에 대한 해결책이 죽음뿐이라면, 이에 대하여 자신의 치료 중단을 원하는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는 의사는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는 법적,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이는 존중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환자 자신이 치료거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즉, 자신이 치료를 거부함에 따라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 할 수 있어야 한다.환자의 고통도 무시할 수 없다. 회복가능성은 없는데,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 환자가 앞으로 남은 그의 생애에서 기대할 수 있는 행복과 기쁨은 없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슬픔과 고통일 경우 그에게 그것이 인생이니 그냥 감수하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환자 가족의 고통도 무시할 수 없다. 사랑하는 이가 고통스러운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을 그저 바라보아야만 하는 가족이 느끼는 심리적 고통은 어떠한가? 이러한 이유로 안락사는 합법화 되어야 한다.그렇다면, 만약 환자의 의사표시가 불가능할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환자의 의사표시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환자의 로 치료를 중단할 수도 있다. 단, 이를 위해서는 죽음의 임박이나 의식회복의 불가능성이 확실하게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의학적으로 확정될 것이 원칙적으로 요구되겠다. 또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환자의 극심한 고통의 제거, 인간의 존엄성 보장, 그리고 치료가능성의 희박성, 의식회복의 불가능한 정도 등이 있겠고, 가족의 유산상속이나 경제적 부담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2) 삶의 질인간 생명이 신성하고 침해될 수 없다는 원칙으로 안락사를 반대할 수도 있지만, 필자는 이 원칙보다 인간 삶의 질과 인격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싶다. 인격체로서의 기능이 불가역적으로 상실하는 것은 결국 죽음과 같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들의 삶의 질이 죽음을 의미할 정도로 상실 되었을 경우 인간은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즉,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최고의 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살아있다는 것은 사랑, 우정, 이성적 사고 등과 같은 가치를 구현시켜 줄 수 있을 때에만 의미를 가진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삶은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식물적 삶, 동물적 삶, 인간적 삶이 그것이다. 식물적 삶이란 말 그대로 식물의 삶을 사는 것이다. 광합성을 통해 영양을 얻고, 호흡하는 것이다. 동물적 삶은 영양과 호흡 이외에 동작할 수 있고, 욕망할 수 있는 삶이다. 인간적 삶은 이러한 것들 이외에 앞서 말한 인간적 부분(사랑, 우정, 이성적 사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삶이다. 우리 인간의 삶은 이런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상황 윤리학자 Joseph Fletcher는 생물학적 생명과 인격체로써의 생명을 본격적으로 구분하였다. 그는 최소한의 대뇌신피질의 기능조차 없는 개체를 ‘주체로 인정받을 수 없는 객체’ 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그는 또한 인간됨의 지표로 15개의 긍정적 기준과 5개의 부정적 기준을 제시하는데, 그 중 15개의 긍정적 기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① 최소한의 지능 ② 자기인식 ③다.
    의/약학| 2007.07.09| 6페이지| 2,000원| 조회(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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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패놉티콘(panopticon)과 정보사회, 그리고 우리가 갈 길 평가B괜찮아요
    패놉티콘(panopticon)과 정보 사회, 그리고 우리가 갈 길1. 서 론현대 사회는 항상 감시되고 있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어디로 이동하는지 모든 것이 수집되어 정보로 저장되고, 그 정보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로 흘러가고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인터넷을 하면 내가 접속한 시간과 접속한 장소 모두 정보화 되어 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컴퓨터에 수집된다. 또 이제 전 국민이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휴대폰을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구와 어떤 내용을 통화 하는지,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지를 거의 오차 없이 알아 낼 수 있다.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어느새 소수가 다수를 감시하는 패놉티콘(panopticon)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받고 있는 모든 감시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일방적인 감시만 있다면, 우리의 사생활은 없어지고 말 것이다. 현대 사회가 정보 사회로 진입하면서, 감시만 늘어난 것은 아니다. 언론과 통신 기술의 발달로 다수가 소수의 권력자를 감시하는 역패놉티콘(reverse panopticon)이 가능해졌다.본론에서 패놉티콘과 역패놉티콘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정보화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본다. 미리 결론을 말하면, 정보화 사회에서 패놉티콘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역패놉티콘의 주체가 되어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필요하다.2. 본 론‘패놉티콘(panopticon)’은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뜻의 ‘opticon’을 합성한 것이다. 번역하면 ‘모두 다 본다’는 뜻이다. 원래는 죄수를 감시할 목적으로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르미 벤담(Jeremy Bentham)이 1791년 처음으로 설계하였다. 이 감옥은 가운데가 비어있는 동심원 모양을 하고 있으며, 바깥쪽의 둥그런 건물에는 죄수를 가두는 방이 들어서 있고 중앙에는 죄수를 감시하기 위한 공간이 있다. 죄수의 방에는 햇빛을 들이기 위해 외부로 난 창 이외에도 건물 내부를 향한 또 다른 저 사설감옥인 벤담의 패놉티콘이라기 보다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의 베스트셀러 『감시와 처벌』에서 나온 패놉티콘이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패놉티콘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합리적 지식의 탄생과 발전을 새로운 권력의 형성과 뗄 수 없는 것으로 파악한 푸코는, 진리의 메타포로 간주되던 시선을 권력의 메커니즘으로 탈바꿈시켰다. 푸코에게 있어서 패놉티콘은 벤담이 상상했던 사설 감옥의 의미를 훨씬 뛰어 넘는 것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근대적 감시의 원리를 체화한 건축물이었고, 군중이 한 명의 권력자를 우러러보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한명의 권력자가 다수를 감시하는 ‘규율 사회’로의 변화를 상징하고 동시에 이런 변화를 추동한 것이었다. 이는 또 개인에 대한 근대 권력의 통제가 육체적인 형벌에서 산업자본주의의 인간형에 적합한 영혼(soul)의 규율로 바뀌어갔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패놉티콘은 ‘모세관과 같은 권력(capillary power)’이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우리를 통제한다는 푸코 철학의 정수를 잘 보여주는 덧없이 좋은 실례였다. 감시는 은밀하고 알 수 없게 이루어진 반면에 처벌은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수행되었고, 통제와 권력은 ‘비대칭적인 시선’을 가능케 한 건축구조에 체화되었던 것이다. “감옥이 공장, 학교, 군대의 막사, 병원과 비슷하고, 이것들이 다시 감옥을 닮았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일까?”라는 푸코의 논평에서 보듯이, 우리의 사회가 거대한 패놉티콘 즉 감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푸코가 함축하는 바였다.이렇게 벤담의 패놉티콘은 벽돌과 나무로 지은 감옥에 불과했지만, 푸코에 의해서 새로운 규율과 통제의 상징, 혹은 이를 담당하는 추상적인 메커니즘으로 변화되었고, 현대 사회에 들어서 전자 기술의 발달로 인한 ‘전자 감시’로 변화되었다.전자 기술의 발달로 시작된 현대의 패놉티콘에 대해 알아보자. 서구 사회의 역사를 보면 대략 19세기 초엽부터 정부가 주체가 되어 국민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활동을 벌이기 시작함을 볼 수 있다. 나기 초엽에 통계 처리를 위해서 계산기를 설계했고, IBM도 1890년 시카고 인구 조사를 처리하기 위한 연산 기계를 만들면서 출범했다. “숫자의 산사태”는 권력과 정보와 기술이 만난 또 다른 접면이었다.이 접면은 20세기 중엽 이후 전자 컴퓨터가 사용되면서 새로운 단계로 진화했다. 1950년대를 통해 상용화되기 시작했고 1960년대에 정부, 기업, 은행으로 확산된 메인프레임 컴퓨터는 수집된 정보의 처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의 수집과 저장을 혁신적으로 용이하게 했다. 미국의 경우 1960년대부터 FBI등의 국가기관은 세금, 범죄의 목적으로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1971년 250만 명의 범죄자에 대한 신상정보를 만들면서 출범한 FBI의 국가범죄정보센터는 이제 수천만 명에 대한 신상 정보를 축적했을 정도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이 데이터베이스의 초기 목적은 보호관찰과 같은 사법적인 절차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었지만, 이후 사람을 고용하거나 자격증을 줄 때 그 사람의 과거를 조회하는 민간적, 상업적 목적으로 더 많이 쓰이게 되었다. 사회 안전 파일(Social Security files)에 수록된 정보도 FBI, CIA, 복지부서들, 이민국, 보건부, 교육부는 물론, 심지어 자식을 방기한 배우자를 찾는 목적에도 열람되었다. 시민의 신용, 건강 등에 대한 정보는 신용 조사 회사, 생명보험회사, 의료보험회사에 의해서도 수집되었으며, 신용카드회사의 고객 신용정보는 정부 기관이 가진 정보와 맞바꾸기로 교환되었고, 카드회사는 이 정보를 다시 다른 회사와 광고 대행사에 판매했다. 1976년, 운전면허에 수록된 정보를 보험회사가 자유롭게 접근하게 되면서 기업에 의한 정보의 수입과 보관은 가속화되었다. 이렇게 신상 정보는 다양한 방법으로 수집ㆍ축적 되었고, 교환ㆍ연동 되었으며, 그 열람 범위가 지속적으로 확산되었다. 이 모든 과정은 컴퓨터가 데이터 송신선을 통해 서로 연결되면서 더 신속하게 진행되었다.컴퓨터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은 위성 시스템과 결합해서 전 세계의 비군사용 통신을 실시간으로 모니터 할 정도로 강력한 정보 수집과 독해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1990년대에 들어 상용화된 인터넷은 사이버 공간을 통한 감시를 구현했다. 인터넷 브라우저를 통해 개인의 컴퓨터에서 웹 페이지로 전송되는 쿠키(cookies) 파일은 개인의 인터넷 서핑 습관이나 웹사이트에 대한 방문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기업이 소비자 정보를 모으는 방편으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미국의 회사 더블클릭닷컴(doubleclick.com)이나 인게이지닷컴(engage.com)은 쿠키를 사용해서 수천 개의 웹사이트에서 사용자 정보를 수집ㆍ분석해서 기업의 마케팅을 돕고 있다. 직장에서의 컴퓨터는 정보 처리를 통해 업무를 도와주지만 동시에 작업자의 업무시간과 작업의 진행과정, 심지어는 그의 행동까지 낱낱이 기록해서 상관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특히 직장에서 사용하는 전자메일은 업무를 모니터하는 용도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FBI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 카니보어(canivore)는 인터넷 서비스 회사(ISP)에 장착되어 한 터미널에서 다른 터미널로 전송되는 인터넷 패킷을 가로챌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인터넷 국제전화, 휴대폰 문자메시지, 전자 메일, PC통신과 인터넷서비스 회사의 정보, 휴대폰 가입자의 신상정보와 통화시간, 음성사서함 내용, 상대방 전화번호 등은 수사기관에 열려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 전화통신에 대한 수사기관의 감청은 2380건으로 1999년에 비해 26.4% 감소한 반면에, 인터넷이나 PC통신 분야는 224건으로 전년에 비해서 23.8% 늘어났다. 특히 PC통신 사업자들이 수사기관에 넘겨준 통신 자료는 총 3465건으로 1999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러한 새로운 감시 체계는 전자 패놉티콘(electronic panopticon), 혹은 정보 패놉티콘(information panopticon)이라고 명명되었다. 여기서 정보는 벤담의 패놉티콘에서의 시선을 대신해서 규율과 통제의 기용하고 있는 공무원들의 IP 대역을 제출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정홍보처는 그 이유로 “대통령님께서 ‘(공직자들이) 국정 브리핑을 적극 활용하고 애용하라’ (2006년 2월 14일 국무회의)고 지시 하신 것과 관련, 각 부처의 부처별 공무원 방문 통계, 부처 별 기고 통계를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 의원에 따르면, 국정홍보처가 각부처 공무원들의 IP주소를 파악하고 있으면 해당공무원이 홈페이지에 얼마나 자주 방문했고 어떤 글을 남겼는지 알 수 있다. 정 의원은 “국정홍보처는 공무원 내부 반발이 있자 공문을 철회한 것으로 안다”며 “언론 통제를 넘어 이제는 공무원 조직조차 통제 속에 넣겠다는 의도로 중립적이어야 할 공무원 전체를 대통령 의지에 순응하게 하는 온라인상의 독재” 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정홍보처 관계자는 “댓글 파악이 아니고 공직자들에게 국정브리핑을 적극 활용하라는 취지에서 개인이 아닌 각 부 처별 IP를 제출하라고 공문을 보낸 것”이라며 “중단한 이유는 보안상의 이유와 부처별로 사용하는 IP 숫자를 정확하게 통계 를 잡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국가에서는 더욱 더 많은 정보를 독점하고 일상적인 감시를 하려고 한다. 공무원들의 IP를 제출 받아 온라인상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다는 국정홍보처의 발언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1984(Nineteen Eighty Four)』에 나오는 ‘빅 브라더(Big Brother)'를 연상케 한다.'빅 브라더‘란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혹은 그러한 사회체계를 일컫는 말로, 긍정적 의미로는 선의 목적으로 사회를 돌보는 보호적 감시, 부정적 의미로는 음모론에 입각한 권력자들의 사회통제의 수단을 말한다. 사회적 환난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정당화될 수도 있는 이 빅브라더는 사실 엄청난 사회적 단점을 가지고 있다.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는 텔레스크린(TV와 카메라의 겸용)을 통해 소설 속의 사회를 끊임없이 감시한다. 이는 사회 곳곳에, 심지어이다.
    사회과학| 2007.07.09| 6페이지| 2,000원| 조회(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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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로봇은 인간이 될 수 없나 평가C아쉬워요
    로봇은 인간이 될 수 없나?1. 서 론지금 우리는 내일이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과학기술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로봇을 만들고 있다. 아직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는 없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로봇을 만들어 냈고, 지금도 계속 연구 중이다. 기계들은 아마 2010년쯤이 되면 인간의 평균 지능을 능가하고 인간과 똑같이 지능과 감정을 가지게 될 지도 모르며, 그들도 언젠가는 진화하여 의식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그들을 인간으로 생각해야 될지 아니면 단순히 기계로만 생각해야 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실제로 SF(Science Fiction) 영화를 보면 사람과 같은 로봇들이 자주 등장한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영화 에서도 앤드류라는 로봇이 등장한다. 생김새가 사람과 약간 다를 뿐 생각하고, 느끼고, 사람처럼 생각한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이 로봇을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외형적으로 로봇은 인간과 비슷할 수도 있지만, 본질적인 면에서는 로봇과 인간은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로봇이 아무리 인간과 비슷하며 똑같이 말 할 수 있고, 감정도 표현할 줄 안다고 하더라도 로봇은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론에서 여러 참고 자료와 간단한 예를 통하여 자세히 밝힌다.2. 본 론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듯이 미래의 로봇은 훨씬 더 쌍방향적이고 학습 능력이 우수한 모델로 발전 될 것이다. 비록 학습능력은 인간뿐 아니라 지능이 우수한 동물들도 가지고 있지만, 로봇이 인간과 비슷해지려면 학습능력은 기본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겠다.앞에서 말한 영화 의 경우도 그렇다. 주인공 로봇 앤드류는 인간과 함께 생활하면서 의사소통도 하고, 남을 사랑하기도 하고,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여러 일을 배우며, 인간이 하기 힘든 일을 모두 척척 해낸다. 이와 같이 로봇은 정해진 임무에 효율적이어서 우리의 삶을 원활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여기서 제기된다.위에서 말한 영화 의 앤드류가 이렇게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해서 과연 그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단지 기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하려면 먼저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직면하게 된다.인간과 기계의 기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과거 사람들은 인간에게는 동물이나 다른 생물들과는 다르게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러한 영혼이란 개념이 상당히 모호할 뿐만 아니라 설명하기도 어렵다.“인간만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마음은 몸하고 달라서 어떤 공간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 말한 철학자가 바로 데카르트이다. 그는 마음이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실체이며, 그런 능력을 타고나기 때문에 인간이 다른 존재와 본질적으로 구분 된다고 생각했다. 즉 인간의 본질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동식물이나 기계 같은 것에는 마음이 없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동식물이나 기계는 아픔을 느끼거나 슬퍼하거나 기뻐할 수가 없다. 그들이 보이는 반응은 일종의 기계적인 반작용과 같은 것이다.”위에서 데카르트는 인간이 다른 존재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고, 그가 말한 ‘마음’은 과거 사람들이 인간에게만 있다고 주장 했던 ‘영혼’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다. 나의 생각도 데카르트와 비슷하다. 인간이 다른 존재와 다른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고, 또 가질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데카르트는 이것을 ‘마음’이라고 했고, 과거 사람들은 ‘영혼’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이것을 ‘창의적 사고’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창의적 사고’란 쉽게 말해서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창의적 사고에 대해서 예를 들어 보자.일반적으로 로봇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 진다. 안드로이드(android)도 마찬가지이다. 로봇의 뇌에 해당하는 CPU(Central Processing Unit)와 각종 데이터가 저장되는 시스템은 입력을 받아서 출력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로봇이 정상적으로 동작하려면 설계할 때에 입력 받을 만한 모든 데이터를 미리 저장해야한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 로봇이 만들어진 다음에 어떠한 입력(자극)을 받을지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로봇은 인간이 만든 한계적인 시스템에 불과하며, 정의되지 않은 입력을 받게 되면 오류를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기계는 불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수동적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인간은 어떠한가? 인간은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에 대해 자극을 받으면, 처음은 약간의 혼란이 올 수도 있지만 대부분 지능적으로 생각하며 그 자극에 대해 어떠한 행동을 표출한다. 이처럼 기계는 수동적인 반면에 인간은 능동적이다. 그리고 인간은 생각할 줄 아는 존재이다. 바로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이번에는 ‘감정’ 측면에서 인간과 로봇을 바라보자. 이에 관해 좋은 예가 있다. 바로 2006년 11월 25일부터 12월 5일까지 11일 동안 독일 본에서 있었던 인간과 컴퓨터의 체스(Chess) 대결이다. 세계 체스 챔피언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크람니크가 체스 컴퓨터 ‘딥 프리츠’와 최종 승부를 겨룬 것이다. 크람니크와 딥 프리츠 경기는 열흘 동안 6번 열렸다. 그 결과 마지막 경기 날이었던 2006년 12월 5일 크람니크가 짐으로써 인간 챔피언은 여섯 번 붙어 컴퓨터에 한 판도 못 이기고 두 번 져서 6전 4무 2패로 결국 지고 말았다. 이 게임에서 클람니크는 컴퓨터 딥 프리츠를 이기고 싶어했다. 인간의 이러한 이기고 싶은 욕구에 대해서 철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기고 싶은 욕구를 갖는 것, 나는 나와 게임을 하고 있는 로봇보다 나은 존재라고 믿는 것 등과 같은 마음의 상태를 철학자들은 지향성이라고 부른다. 지향성의 개념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마음, 또는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증거로 여겨졌다. 책상이나 연필 같은 사물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믿거나 의지할 수 없다. 데카르트처럼 인간에게만 마음이 존재한다고 믿으면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도 무엇을 지향하는 일은 할 수 없다. 그런 동물들은 로봇과 마찬가지로 외부의 자극에 대해 기계적으로 반응할 뿐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이 희망하는 것에 대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에 대해 스스로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 밑받침 되어야 한다. 여기서 자신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내적인 눈이 필요하게 되고 그것이 곧 다른 존재에게는 없는 인간의 본질로서의 마음으로 여겨졌다.”이처럼 인간이 이기려고 하는 것과 컴퓨터가 이기려고 하는 것은 다르다. 인간은 이기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컴퓨터는 단순프로그래밍 된 프로세스이다. 이 게임의 결과는 인간의 패배로 끝났지만 만약 컴퓨터가 한판이라도 졌다면 컴퓨터는 무엇을 느꼈을까? 부끄러움을 느꼈을까? 아니다. 단지 졌다는 결과 값만을 얻었을 뿐이다. 이처럼 로봇은 정해진 프로세스에 의해 체스를 두었을 뿐 아무 감정이 없었다. 이러한 감정의 차이로 인해 로봇과 인간은 구별 된다.사람과 같이 학습이 가능한 로봇도 있다. 예를 들면, 2006년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의 로봇학자들이 공동으로 개발한 Babybot을 들 수 있겠다. 이 Babybot은 자율적으로 근처의 물체들을 이용하여 실험을 수행하며, 이들 물체의 최적 사용법을 학습한다. 이러한 학습은 인간의 어린 아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팔이 하나인 토르소(torso) 형태인 이 로봇은 팔에 물건을 잡을 수 있는 손을 가지고 있으며, 한 쌍의 카메라가 눈의 역할을 한다. 이 로봇은 테이블 위의 물체들에 대한 물리적 실험에 대한 의욕을 내장하고 있으며, 이들 물체를 이용하여 서로 다른 상호작용의 형태에서 실수로부터 학습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로봇이 물체를 안전하게 잡는 것을 실패한다면, 다음에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다른 형태로 시도하게 된다. Babybot은 병을 테이블 위에서 굴리는 기술을 자율적으로 개발하였다.” Babybot의 두뇌는 실제로는 다수의 신경 네트워크들을 가동하고 있는 20대의 컴퓨터로 이루어진 클러스터이다. 이 소프트웨어는 생물학적 신경 시스템을 모사하며 인공 뉴런 사이의 연결 강도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연결시키는 등의 인간과 유사한 방법으로 학습한다. 하지만, 인간의 뇌와 Babybot과 같은 학습 로봇의 제어에 사용되는 컴퓨터는 분명 차이가 있다. 기계적인 연산에는 인간의 뇌에서 할 수 있는 생각(사고)을 할 수 없다. 이 Babybot도 학습능력은 있지만 생각을 할 수 없기에 인간에 미치지 못하고 기계로 분류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번에는 인간과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을 살펴보자. 일본의 소니 사에서는 친구를 의미하는 일본어를 따서 ‘아이보(Aibo)’라 명명된 장난감 로봇 개를 만들었다. 아이보는 출시되자마자 며칠 만에 3천대가 팔렸다. “저널리스트 용 워첼은 아이보를 구입한 후 매일 그날의 경험을 기록했다. 처음에 그는 ‘강력한 감성적인 반응’을 느꼈다고 한다. 아이보를 상자에서 꺼낼 때 워첼은 이미 자신이 미소 짓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실리콘 애완견을 즐겨 쓰다듬었고, 그 애완견이 그의 인사에 대해 보내는 열정적인 반응을 즐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는 점점 지루해졌다. 왜냐하면 관계가 더 발전하는 것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워첼은 실망을 느꼈다.” 이처럼 이 아이보는 단순히 몇 가지의 단어만을 이해하며, 인간의 음성을 흉내 내기 때문에 사람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이 예에서 본 것과 같이 인간은 결국 아이보를 실제 애완견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공학/기술| 2007.05.16| 5페이지| 2,000원| 조회(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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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행정] 개발제한구역 평가A좋아요
    Ⅰ 서 론오늘날 인구의 도시집중으로 표현되는 도시화 현상은 대도시에 있어서의 공해문제 , 상하수도 문제, 교통문제 등 사회문제를 초래하였고, 아울러 주변지역으로 까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으로 인하여 자연환경의 파손, 농지의 축소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부작용을 야기시키고 있다. 우리 나라 경우 1960연대 초부터 비롯된 경제개발에 편승하여 급격한 인구증가와 도시화 및 산업화에 의한 많은 토지의 수요가 발생하였다.이러한 토지수요에 공급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토지구획정리사업과 공업단지 조성사업등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반면에 반대급부로 인하여 농경지의 잠식과 절대면적도 해마다 감소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여건속에서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한정 된 농경지와 임야를 보존하여 도시의 무계획적인 확산을 방지할 필요성이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당국은 1971년 1월 19일 토지계획법을 개정하여 도시주변에 영국의 Green Belt 제도를 모방한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개발제한구역이 설치된 지 20여년이 경과하였지만 개발제한구역의 개선방안에 관한 논난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으며 건설부에서는 1993년 9월 27일자 개발제한구역 제도 개선방안으로 원주민을 위한 규제완화안 등을 발표하였지만 논란의 여지는 계속되고 있는 상태다. 김대중 대통령의 그린벨트 연내 해제발언으로 그린벨트는 이제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하나의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번 받아들인 제도를 우리실정에 맞도록 적용을 한다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또한, 효과적인 토지이용을 위해서는 계획적이고 합리적인 계획아래 제도가 개선되어져야 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대구시 개발제한구역의 사례를 들어 현재 추진중이고 있는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광역도시계획에서 개발제한구역내 집단취락지의 정비방안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Ⅱ. 개발제한구역에 관한 이론적 고찰1. 개발제한구역의 개념개발제한구역은 국토이용관리법상 도시지역(도시계획구역)에만 적용되는 구역의 하나로서,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지도시규모는 도시행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는데 도시는 일정 수준의 규모를 유지해야만 도시서비스가 공급될 수 있으며 일정수준을 지나치게 넘어서 거대도시가 될 경우 도시서비스가 공급되더라도 사회적 비용 때문에 1인당 고용비용이 더 상승하게 되어 사회적인 낭비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를 '도시규모의 경제이론'이라고 하며 도시의 적정규모를 토대로 분석하는 것이 도시규모의 적정수준을 판단하는데 유용하다. 도시인구증가에 따른 주택수용의 증가, 산업시설의 확대, 주거기능의 교외확산 등은 필연적으로 도시의 평면적인 확산을 초래하여 농경지의 잠식, 환경의 훼손 등의 문제를 발생시키므로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막아야하며 이러한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방지의 논리에 도시의 경제적인 적정규모이론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도시의 규모가 어떤 수준까지 유지되어야 도시경제가 운영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살펴보면 도시의 규모가 지나치게 작을 경우 1인당 공공행정 서비스비용이 높고 도시의 규모가 너무 비대하게 되면 1인당 비용이 높아지게 된다. 1인당 공공비용이 가장 낮은 적정규모에 도달된 도시의 수준을 '적정규모의 경제'라고 하고 기능이 비대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을 가리켜 '규모의 비경제성'이라 한다. 규모가 어떤 수준에 이를 경우 집적이익에 의해 도시의 성장이 가속화하고 그렇지 못한 도시는 정체적 도시가 된다. 집적이익이 가속화되어 성장하게 될 경우 곧 대도시로서의 규모의 비경제성을 가져온 점에서 학자들은 경제의 산출비용과 토지비용을 적용하여 U자형 곡선을 그리고 있다. U곡선에서 가장 낮아지는 지점을 가리켜 1인당 도시서비스 지출이 가장 낮은 적정규모의 도시라고 한다.경제적인 논리에서 보면 도시규모의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제공해 주는 완전경쟁시장에서 사회적 적정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다.그러나 도시 내의 여러 요인은 외부성을 일으키며 이러한 요인들에 의해 도시는 과대화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이러한 도시의 과대화 경향을 막아 도시를 경제활동이 집적경제를 보장해 주는 수준에서 억제해야 한소비하게 되는 성질의 공공재가 있는데 이를 '국가공공재'라고 하는 반면 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소비하게 되는 것은 '지방공공재'라고 한다. 개발제한구역의 기능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의 방지와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보전과도시민의 건전한 생활환경의 보호라는 기능은 그 편익이 한 지역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지역공공재로서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4. 개발제한구역제도의 기능적 효과(1) 도시에 미치는 효과1) 긍정적 효과개발제한구역이 도시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로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첫째, 근교녹지의 보전을 들 수 있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인구의 증가는 개발압력으로 인한 토지수요(주택수요, 공장용지수요, 상업용지수요 등)의 증가를 가져와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하지 않을 경우 대도시의 시가 지역은 훨씬 광범위하게 확장될 것이고 도심 주변의 녹지는 심하게 잠식될 것이다.둘째, 토지이용의 고도화를 들 수 있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은 도시 내부의 가용토지에 대한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토지이용의 고도화를 이루게 한다. 실제로 외곽에 개발제한구역이 설정되어 있는 서울의 토지이용률은 비슷한 입장에 있는 동경이나 멕시코시티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토지이용의 고도화는 토지자원을 절약하고 도시기반시설의 설치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효과적이다. 특히 버스,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수단의 설치에 있어서도 이용권의 공간적 범위를 축소시켜 경제성을 높여준다.셋째, 대도시의 인구집중을 완화시켜주는 효과를 들 수 있다. 대도시 내 개발가능토지의 감소는 지가상승과 거주비용의 증가를 초래하여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는 현상을 억제한다.2) 부정적 효과주변에 개발제한구역이 설치되어 있는 대도시는 도시자체의 성장에 따라 다음과 간은 부정적 특징을 보일 수 있다.첫째, 도시 내의 토지수요(주택수요, 공장용지수요, 상업용지수요)증가에 따라 토지이용경쟁이 가속화되는데, 이는 지가를 상승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Cheshire의 연구에 따르면 1965년 사이의 영국 약 도심지 곳곳에 쐐기형으로 녹지를 조성한다면 열섬형성을 저지하고 도심지 내부에 신선한 공기를 도입할 수 있으며 시가지 환경개선에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4) 녹지이용효과개발제한구역이 갖는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도시민의 휴식공간으로서의 역할이다. 경제사회의 발전에 따른 개인소득의 향상과 자유시간이 증대로 레크리에이션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도시사회의 정신적 긴장을 풀고 휴식과 육체적 건강을 얻기 위해서는 옥외 레크리에이션이 극히 중요하고 그 대부분은 녹지가 수용해야할 부분이다.심신의 건강과 사회에 대한 적응, 자연에 관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장으로서 녹지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며 이러한 공간의 부족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많은 청소년 문제의 한 원인이 된다. 개발제한구역내의 녹지는 도시민에게 휴식공간으로, 일상생활에서 주민 상호간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서 심신의 건강유지와 사회성 함양에 기여할 수 있다.5. 그린벨트의 존재의의개발제한구역지정의 목적은 ①도시의 평면적 확산을 방지하는 데 두고 있다. 도시의 외연적 확산방지의 목적은 대도시의 경우 도시성장자체를 억제시키는 데 있으며 중소도시의 경우에는 이웃도시와 연담화를 방지하고 개별도시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보전하며 시가화 구역내의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데 있다. ②도시주변의 농경지 및 자연자원의 보전을 위한 것으로 국토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측면외에도 환경공해와 대기오염, 청음등 도시공해의 방지 및 도시민의 정서 함양에 더 큰 목적이 있다. ③옥외 위락공간의 확보를 위한 것으로 도시개발 및 인구집중에 따라 실외공간(open space)은 줄어드는 데 반하여 도시민의 여가, 레크레이션 욕구는 증대되고 있어 개발제한구역내 녹지공간의 위락적 이용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개발제한구역은 도시의 팽창으로 인한 인구 및 산업의 집중을 억제하고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개발제한구역내에 토지투기를 막는 데서 그 의의를 찾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넓은 전원지대 또는 산림으로서 일반.7광주권 (광주)501.32549.9267.753.4대구권의 개발제한구역은 1972년 건설부 고시로 1개시 4개군 1개읍에 걸쳐 531.02㎢가 지정되었고, 현재는 경산도시계획구역의 일부가 편입되어 대구시 418,96㎢, 경상북도 117.49㎡(경산시 23.4㎢, 고령군 20.50㎢, 칠곡군 73.59㎢)로 총 536.5㎢가 지정 관리되고 있다. 대구시의 행정구역내 개발제한구역의 면적은 1981년과 1995년에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전체 행정구역면적 885.54㎢의 47.3%에 해당하는 418.96㎢로 다른 대도시에 비해 가장 넓은 면적이 지정 관리되고 있다(참조). 그리고 개발제한구역내 거주하는 인구수와 가구수는 총 239개마을 10,149가구에 34,456명이 거주하고 있어 대구시 전체 인구수와 가구수의 1.5%의 비중을 보이고 있다. 구별 행정구역내 개발제한구역 면적은 북구 63.47㎢(66.5%), 수성구 46.79㎢(61.2%), 동구102.48㎢(56.2%)가 전체행정구역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에 서구(4.9%), 중구와 남구는 지정된 개발제한구역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자치구에 따라 개발제한구역이 차지하는 비율에 있어 심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한편 달성군인 경우 개발제한구역의 면적, 가구수, 인구수에서 타 구보다 넓은 면적과 높은 비중을 보이고 있다. 대구시 구별 개발제한구역 현황 (단위: %)구 분행정구역(㎢)개 발 제 한 구 역면 적(㎢)읍·면·동수가 구(세대)인 구(명)계885.54418.96(47.3)4110,14934,456동 구182.35102.48(56.2)93,806(37.5)12,086(35.1)서 구17.510.86(4.9)1--북 구95.5163.47(66.5)6726(7.2)2,450(7.2)수 성 구76.4546.79(61.2)132,223(21.9)6,520(18.9)달 서 구62.2711.10(17.8)6235(2.3)739(2.1)달 성 군428.92194.26(45.3)63,159(31.1)12,661(3타났다.
    사회과학| 2002.11.25| 17페이지| 1,000원| 조회(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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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마이너들의 반란
    "넥스트 마이너들의 반란"을 읽고 - 새로운 세계적 질서형성과 그 영향에 대해...도시지역계획학과 51955533 안 재헌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책에서 마이너로 표현된 10대들을 놀라움이나 대견스러운 관점으로 보지는 않았다. 이 책의 저자가 영국방송에서 "인터넷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프로그램 제작 참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말 그대로 인터넷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렇게 밝게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조나단과 마커스, 다니엘 등 책 속 10대들이 펼치는 인터넷상의 활동은 내 눈에는 그리 유쾌하거나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라고 비춰지지는 않았다. 놀라움보다는 먼저 걱정이 앞섰다. 인격형성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을 그 시기에 내가 어릴 적 몸담고 살았던 시골의 냇가나 산과 같은 자연환경은 접해보지도 못한 듯한 인상을 주는 그들의 생활. 나에게 어린 시절의 가치관과 추억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던 예전의 자연환경들은 현재를 살고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별다른 느낌을 주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듯 했다. 요즘 시대의 환경은 너무 급속하게 변해가고 있다. 그 속도를 따라 잡지 못하는 사람들은 벌써 시대의 낙오자와 같은 대우를 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한 환경과 함께 인터넷은 이제 어린 10대들에게 일상생활에서 친구보다도 중요한 존재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인터넷이 사회에 나쁜 영향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제목인 마이너들의 반란은 사회중심 세력에서 먼 위치에 있는 세력들 즉, 주변세력들의 반란을 뜻한다. 그들의 반란은 한마디로 말해 파격적이고 혁신적이다. 그들의 신념과 생각은 사회 전체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은 나에게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인식시켜 주는 역할을 한 책이다.책 속 주인공들은 인터넷 상에 각자의 활동무대를 만들고 그들만의 세상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유명세를 탄다. 놀랍게도 그들의 나이는 이제 14살,15살이었다. 그들에게 나이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산이나 냇가보다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더 친근하고 가까운 환경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환경에 대해 완벽하게 적응하고 있었다. 기존 세대들과는 다른 놀라운 창의력과 사고방식으로 그들 앞에 주어진 잘못된 사회적 규범을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는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들 모두에게 사회적 규범이라는 잣대를 정해놓고 그들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그 규범에 우리들을 적용시키려 한다. 이는 공통된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 우리들의 가치체계와 생각에서 나온 발상으로 사회를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 규범이 꼭 공통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일부 사회적 규범들은 소수의 사회중심세력들을 위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금융반란의 핵심은 기존 세대를 구성하고 살고 있는 중심세력이 아닌 15세 사춘기 소년의 생각과 가치관에 바탕을 둔 마이너들이다. 사회 중심세력에 의한, 그들이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자들의 주식분석과 투자권유는 인정되면서 창의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능력 있는 개인의 주식분석은 불법이라는 논리는 사회적 규범의 모순을 보여준다. 금융반란의 핵심은 조나단과 같은 환경적응이 빠르고 상황에 대한 판단이 빠른 개인이 되어야 한다.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론과 주장이 옳다고 믿는 시대는 이제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회적 체계에 이와 같은 논리를 대입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사회적으로 위험한 일이나 중대한 일에 대해서는 전문적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금융권에서나 인터넷 웹사이트상의 세계에서 전문가란 단지 힘의 원리를 무기로 삼아 그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로 그려지고 있다. 그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모두 불법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나도 현재 이용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컴퓨터음악 하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디지털 뮤직파일 작동 프로그램인 Winamp를 제작한 프랭클은 이제 갓 20대를 넘긴 나이이다. 그는 19세의 나이에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1천 5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그의 프로그램을 소개했고 그 실효성을 인정받았다. 궁극적으로 돈벌이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편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인터넷 상에서 음식 요리법을 쉽게 찾기 위해서 이와 같은 단순한 동기와 순수한 의도에서 Gnutella(그누텔라)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사용자끼리 1:1로 직접 만나는 것이 가능한 Peer-To-Peer방식으로써 혁신적인 기술이다. 이 프로그램은 결국 AOL사의 요청에 의해 사라지게 되었지만 인터넷상의 모든 정보는 무료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기본 이념은 지금까지도 보이지 않는 전문가들 즉, 소수의 마이너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고 언젠가는 세상에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아무런 금전적 동기도 여기에 개입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컴퓨터의 이용을 가능하게 하는 신기술의 개발이 소수 마이너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존 사회의 중심세력에서 나온 신기술이 아니라 15세에서 20세에 이르는 어린 두뇌들에서 나오고 잇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이와 같은 흐름은 이제 새로운 체계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인터넷이 그것들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앞으로도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소수들이 우리들에게 편리한 기술을 개발할 것이다. 세계가 하나가 되는 시대가 도래된 것이다. 나라끼리의 지역상의 문제는 더 이상 그들에게 장벽이 되지 않는다. 소수들의 힘이 뭉쳐 지금까지 사회를 유지시키던 기존 체계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도전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기존 사회질서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회구성원들은 그들의 이러한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그들을 격려한다.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받아들이고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당연한 결과라고 인식하고 있다. 나도 물론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시대적 흐름은 사회구성원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중심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중심세력들은 그러한 흐름을 조정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만을 하면 된다. 그들이 사회의 모든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는 있지만 모든 일들을 진행하고 결정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러한 흐름의 핵이 바로 인터넷에 있다. 끝없이 빠른 기술진보와 환경변화를 요구하는 현 사회에서 프랭클이나 조나단, 마커스와 같은 이들이 없었다면 기존 사회질서의 유지가 가능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 질서의 유지는 사회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어져야 하고 진행되어져야 한다. 이것은 시대적 흐름이고 시대가 요구하는 핵심사항이다.
    독후감/창작| 2002.11.02| 3페이지| 1,000원| 조회(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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