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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소설과 카프소설의 감상문(꽃파는처녀) 평가A좋아요
    서론책을 읽고 나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았다.북한의 문학 성향과 KAPF 대한 역사나 성격에 대한 자료는 많았으나, '꽃파는 처녀'는 극이나 영화에 대한 자료는 있는데 소설로는 자료가 없었다한가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꽃파는 처녀는 김일성 부대가 창작했던 작품이고 소설 이전에 무대예술로 쓰여진 극작품으로, 그것을 소설과 영화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꽃파는 처녀'를 읽어보면 내용이 쉽게 서술되고 희곡적인 성격이 많이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카프의 두 단편 김기진의 '붉은쥐' 와 박영희의 '전투' 는 시기상으로 '꽃파는 처녀'보다 일찍 지어진 작품으로 내용이나 구조상으로 엉성한 면이 있었다.세작품의 공통점세작품은 일제시대애 지어진 작품인데 KAPF의 단편소설이 시기상으로 빠르다.그래서 공통점이 많다. 모두 리얼리즘 작품으로 식민지 치하의 환경적 상황으로 민족해방이라는 의미에서 '꽃파는 처녀'나 KAPF의 단편소설은 같은 취지에 있다. 그래서 내용상으로 일제와 자본주의 지주층의 억압과 착취가 강조되고, 이러한 불평등한 세상 즉 자본주의에 모순을 드러내고 저항을 하는 내용의 구조를 나타낸다.차이점붉은쥐나 박영희의 전투는 관념의 전면적인 노출, 갈등 구조의 비현실적인 설정, 문제 해결의 안이한 처리 등은 이 시기의 소설의 현실 인식이 지극히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산자의 계급적 각성일텐데 그러한 각성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쉽사리 간단히 처리된다. 자가의 관념적 편향에 의한 인물의 단순화 사건과 행동의 도식성 전망의 과장 등의 특징을 드러낸다. 그것은 선험적인 관념으로 현실을 재단하는 태도이다. 현실과 관념 사이에는 아무런 매개항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소설의 세계는 구체적 현실이 아니라 추상적 관념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래서 현실에 대한 강한 부정과 변혁의 열정을 지닌 것이었으나 인물의 성정과 변혁의 행동에 있어서는 아직 개인적 본능적인 차원의 반항이시키는 작품이다.인물의 구조'꽃파는 처녀'는 장편소설로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선과 악이 엄격히 구분된다.자본주의의 대지주와 일제 지배자들이 반동 인물로 나온다.이 반동 인물로 배지주, 그의 마누라 장씨, 배지주의 똘만이 백만이, 일제와 관련된 서장, 군수, 부장 등이 있다. 그리고 주인공 꽃분이와 가족인 순이, 철용이가 있고, 꽃분이를 도와주는 영란이 엄마, 성삼오빠, 오째오빠, 생선가게 아주머니, 바이올린 고학생, 황영감, 강동무 등이 등장한다.선의의 인물꽃분이 -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예전의 신파극의 전형적인 주인공과 비슷하다.내성적이고, 착하고 효심이 깊다. 그러면서도 아주 힘든 역경을 겪으면 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이겨낸다.순 이 - 둥실한 얼굴과 큰 눈의 순이는 가난하고 희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의기쁨으로 막내둥이이다. 어린 시절 배가 너무 고파 대추를 훔쳐먹다가눈을 잃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고 활발하다.노래도 잘한다.어머니 - 한평생 종살이를 하다가 생을 마치는 비운의 인물이다.수많은 억압에 순종하기도 하지만 강인하고 꽃분이에게 종살이를 시키지않으려는 억척스러움을 볼 수 있다. 자식에 대한 모성애가 깊다.철용이 - 강동무와 함께 이 소설의 영웅으로 표현된다.아버지가 돌아가심으로 배지주네 빚을 갚기 위해 힘겹게 종살이를 하지만 순이가 눈을 잃는 일로 배지주네에 불을 지르기도 하는 반항심도 엿 보인다. 하지만 교도소를 탈출하고 조선 혁명운동을 하면서 사나이다운 관골과빛나는 눈빛, 침착하고, 대범하게 변한다. 임무완수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고 믿음직스러워 혁명 동지들에 신뢰를 얻는 등 전형적인 영웅으로 표현된다. 가족에 대한 복수를 포기하고, 혁명운동에만 전념하려 하지만 강동무와 함께 복수를 하고, 양지 마을에 혁명 운동을 하게 된다.강동무 - 퉁퉁한 체격에 조선 혁명군의 리더로 등장.철용과 같이 사선을 넘나들며 공작을 수행. 리더십이 뛰어나고 철용이를 잘 이해 해주고 투철한 사회주의자의 성격을 나타낸다. 프로레탈리아계층의 대변자고공살이를 하고 있는 나이 많은 총각 머슴과 결혼을 하고 어미니의 몸값 500냥은 남편의 10년간 머슴살이 계약으로 이어지고 꽃분이의 어머니는 철용이와 꽃분이를 데리고 쫓겨나 움막살이를 시작했다. 꽃분이의 아버지는 종살이를 하다가 연목에 가슴을 치인 것을 빌미로 한겨울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된다. 그 이후 열두 살의 어린 철용이가 나머지 6년의 종살이를 배지주네에서 혹독하게 당한다. 어머니는 철용이를 배지주네에서 빼내 오기 위해 힘들게 일해서 나머지 빚을 갚는다. 그러나 배지주는 어릴 때부터 철용이를 길렀다 하여 놓아주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집에서 기다리던 꽃분이와 순희는 순희의 배고픔과 오빠를 보고 싶어해서 조르는 바람에 철용이와 어머니가 일하고 있는 배지주네 집으로 가게 된다. 꽃분이가 어머니를 만나는 도중에 순희는 장씨가 배지주를 위해 산삼과 한약재를 다리고 있는 마당에서 대추를 훔쳐먹다가 장씨에게 들켜 호되게 맞다가 약을 다리는 화로에 부딪쳐 약탕관이 순희의 머리맡에서 깨여졌다. 산삼을 달이던 약물은 다 엎어지고 순희는 눈을 멀게 된다. 이에 분개한 철용이는 배지주네에 불을 지르다 발각되어 재판을 받고 징역8년을 선고받고 교도소로 간다. 철용이의 방화로 빚을 더 지게 되었고 꽃분이의 어머니는 철용이가 나올 때까지 열심히 일을 하지만 장씨의 힘든 종살이에 시름시름 앓게 된다.꽃분이는 어머니의 약값을 벌기 위해 양지산과 수리봉의 있는 꽃을 꺾어다 장에 내다 팔게 되었는데 '꽃사세요'라는 말 한마디조차 제 소리를 못 내는 꽃분이에게 생선가게 아주머니가 힘이 되어 준다. 장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행상을 하는 고학생의 연주를 듣기도 한다. 그리고 장에서 꽃분이는 어머니의 병과 오빠의 소식, 순희의 눈을 치료할 수 있는지 지금의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허구한 그 앞날에 닥쳐올 궁금한 운명의 정체 때문에 당책을 본다는 노인에게 자신의 사연을 말하고 말하게 된다. 노인은 꽃분이의 딱한 사정을 듣고 거짓으로라도 미래에 귀인이 나타나서 꽃분이를 도와준다고 격련해 온 정성과 꽃분이의 딱한 사정을 듣고 비싼 인삼 둬뿌리와 약을 받아서 집으로 달려왔다. 약을 달이고 어머니에게 약을 드시려는 도중에 백만이가 분주히 절룩거리며 와서는 눈굽에 시퍼런 빛을 번쩍거리며 다짜고짜 꽃분이를 배주사네에 끌고 가려고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간밤에 어머니의 병이 악화되어 미처 말씀을 못 드리고 약지으러 왔다고 좀 이따가 간다고 하지만 백만이는 고함을 지르면서 끌고 나가려 한다. 이때 꽃분이가 주사네 종살이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서 백만이를 말린다. 그때 배가가 나타나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어 어머니의 앙가슴을 힘껏 차서 꽃분이의 어머니는 죽음을 당한다. 수리봉 골짜기 어느 볕바른 둔덕의 아버지 무덤 옆에 어머니의 구덩이를 파고 있을 때 멍청히 바라보기만 하던 꽃분이가 뛰어들고 뒤어어 순희가 뛰어들어 관을 끌어안고 운다. 꽃분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오동골에 넘어가 종일 삯방아 품을 팔며 지내고 있을 때 백만이가 다시 찾아와 배가네 종살이를 강요하지만 어머니의 원수네에서 일할 수 없다고 결심한다.배지주는 축도 공사판 용재 조달을 위해 자본이 많이 필요로 하게 된다. 배지주는 양지 마을의 소작농의 빚 대신 딸년들을 뚜쟁이에게 팔 생각을 한다. 이러한 배가의 음모를 알게 된 황령감은 꽃분이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도망치기를 권한다. 꽃분이는 순희를 데리고 도망을 치려 하지만 영란네 부모님은 순희를 데리고 먼길을 떠날 수 없다고 하면서 순희를 영란네에서 돌보기로 하고 꽃분이는 오빠가 있는 곳으로 도망을 치게 된다. 배지주는 꽃분이가 죽은 줄만 알고 꽃분이를 찾지는 않았다. 그러나 꽃분이가 도망을 간사이 성삼이의 동생 간난이는 배가에 의해서 멀리 팔려 나가게 된다.한편 양지 마을에서 도망 친 꽃분이는 여비 마련을 위해 철교의 교각 건설 현장에서 힘들게 일을 한다. 오빠가 있는 교도소까지 가게 되지만 면회를 하기 위한 신청서를 작성하기 위해 대서료와 수입인지 값 1원을 벌기 위해 다시 힘든 노역을 하게 된다. 이 와중에화로를 배가에게 내동댕이친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백만이가 달려와 빗장으로 꽃분이의 등을 후려치고 두들겨 패 광에 가둔다.마을 사람들은 배지주네에 가서 꽃분이를 불쌍히 여겨 풀어 주기를 간청하나 배가는 꽃분이를 감옥에 보내기 위해 순사를 부른다. 오빠인 철용이는 교도소를 탈출해서 조선혁명단의 단원이 되었다. 교도소에서의 6년간의 생활을 거쳐 양지 마을의 철용의 모색은 찾아보기 어렵고 사나이답게 관골이 두드러지고, 정열이 넘치면서도 침착하게 빛나는 눈으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허울을 말끔히 벗고 임무를 완수해서 동지들로부터 신임을 얻게 된다. 철용이는 강동무와 함께 고향 가까이 와서 지난 설움과 힘든 세월을 떠올리며 가족들을 걱정하게 된다. 철용이는 밤에 양지 마을로 내러가 가족들을 만나기로 하고 산전막에 묵기로 한다. 수리봉 산전막에 도착했을 때 산전막 노인은 수리봉 뒤골짜기에 놓은 노루 덫을 보러 들렸다가 아이의 울음소리에 대리고 왔다는 열 살쯤 될 만한 소녀를 간호하고 있었다. 눈을 먼 소녀라는 노인의 말에 철용은 다가가 순희임을 확인하고 서로 부둥켜운다. 철용이는 순희를 통해 지난 6년간 있었던 일을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고, 배가네의 원수를 갚고 싶어하지만 조선혁명단의 임무 완수를 위해 복수를 단념하지만 강동무의 권유로 순희를 업고 양지 마을로 내려간다.성삼이는 순희와 꽃분이, 그리고 팔려 간지 넉달이 지났지만 기별도 없는 동생 간난이에 대한 생각에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오째와 함께 백만이를 잡아 두들겨 패고, 자백을 받는다. 이에 더욱 화가 난 성삼이는 백만이의 목을 졸라 죽이고, 배가네 가려고 하던 도중 산전막에서 내려오던 철용이 일행을 만나 사연을 얘기하게 된다. 모두 물방앗간에 가서 계획을 세우고, 마을 사람들을 선동해서 철용이가 앞장을 서서 배지주네로 달려간다. 이시기에 배가는 일분 순사부장을 불러 술을 대접하고, 뇌물을 바쳐 꽃분이를 감옥으로 보내려 한고 있었다. 폭동 군중들은 배가네를 쳐들어가게 되고, 저항하는 순사를 철용이다.
    독후감/창작| 2001.10.22| 11페이지| 1,000원| 조회(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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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형제도의 존폐양론 평가A좋아요
    사형제도의 존폐양론과 나의 견해목차서론본론1. 사형제도의 역사2. 사형제도의 실태3. 사형제도의 폐지론4. 사형제도의 존치론서론낙태나 안락사에 대한 세계적인 견해 대립이 있어 왔다는 건 여성학 수업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그냥 꼭 필요한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 왔었다. 사형제도에 대한 지식이 아주 없어서 리포트를 쓰기 위해 인터넷이나 서적을 통해서 많은 자료를 찾았다.우선 형벌중의 사형제도에 대해서 살펴보면 형벌의 목적은 정의 구현, 범죄 예방 및 개선이다. 사형은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이므로 형벌 중에서 최고의 형이고, 그런 의미에서 생명형 또는 극형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형제도를 통해 국가 자체의 질서유지를 위하여 잔인하지만 형벌적 효과는 크다고 한다. 사형은 그 형이 확정되면 법무부 장관의 집행 승인을 받아 교도소에서 교수하여 집행한다.현재의 유엔 가입국 중 여러나라가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있는 상황임을 볼 때 사형제도의 존치여부는 매우 큰 이슈고, 이 문제가 형식적인 학문상의 논쟁이 아닌 존폐여부가 끊임없이 대립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형벌이 아닌 고귀한 인간의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게 대부분의 여론이고, 사형제도의 위헌성이나 폐지의 정당성에 대한 글이 많았다.그리고 예전부터 사형은 정당성의 고찰은 전혀 없었고 단지 악을 제거하는 응보이론에만 한해서 그냥 당연시되었다. 우리나라는 1953년 형법을 제정할 당시 '사형을 형벌로 인정할 것인가?' 여부에 깊은 검토 없이 무비판적으로 도입되었다.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물의를 빚는 범죄가 발생하면 엄벌에 처하라는 여론에 쫓겨 사형의 범죄 수를 추가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사형의 남용 국가로 평가받고 있긴 하지만 나는 그래도 사형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먼저 사형제도에 대한 역사와 사형제도의 실태, 그리고 존폐양론을 본론의 내용으로 하고, 찬성하는 이유 열거로 결론을 맺겠다.본론1.사형제도에 관한 역사서양에서는 18세기까지 나 전쟁시기에는 사형은 사회통제의 일차적 수단으로 널리 쓰였고 자주 남용되었다.서양사에서 보면 종교적 독선과 광기가 사형에 남용에 큰 역학을 했다. 예수와 그의 제자, 초기 기독교인들의 박해사는 누구나 알고 있다.1764년 근대 형법학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이탈리아 베카리아는 그의 저서 '범죄와 형벌'에서 최초로 사형의 폐지를 주장하였는데, 그후 서구 사회는 사형의 존폐에 관한 치열한 논쟁을 거치게 되었다.한국사에서 과거 사형은 일반적 형벌의 하나였고, 교수형, 참수형, 능지처참과 그외의 잔혹한 사형을 시행했다. 사형은 구경꾼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행하고, 3족을 멸하거나 5가작통제와 같은 방식으로 연대형벌이 일반화 되어 있었다. 이러한 체계하에서 조선조 말 천주교에 대한 대량의 처형이 이루어졌고, 순교자를 양산하는 비극이 빚어졌다. 그허나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사형의 방법으로 참수형이 폐지되고, 교수형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감옥의 담안에서 시행되고, 개별 책임주의가 원칙으로 자리잡는 등 큰 변화가 일어났다.근대에 들어서면서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일이 빈번했다.2. 사형제도의 실태(1) 유럽 지역 국가35개국 중 27개 국가는 완전 사형 폐지국이거나 전쟁시 범죄와 같은 예외범죄를 제외한 모든 범죄에서 사형을 폐지했거나 또는 실제 처형만 하지 않는 폐지국이기도 하다. 8개국에서는 여전히 사형을 존속시키고 있다.(2) 아프리카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단 한 나라 케이프 버드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사형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또한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범위와 실제 사용 되는 사형의 방법도 상당히 다양하다.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처럼 해마다 많은 수의 죄수들이 사형에 처해지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코모로, 지부티. 세이셀 군도처럼 독립 이후 사형이 한 건도 없는 나라가 있다.(3) 아메리카아메리카 지역은 두 가지 뚜렷한 경향을 만들어 냈다. 한쪽은 라틴 아메리카 내에서이고, 또 다른 한쪽은 미국과 영어권 내의 카리브 해 연안국이다.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수년나라에서는 몇 년 동안 집행되고 있지 않지만 남아 있다. 미국에서는 36개 주에서 사형제도를 1960~1970년 중반기 동안의 유예기간을 둔 뒤 재도입 하였다. 1977년 이래 13개 주에서 107명의 죄수가 처형되었고, 1988년 12월20일 당시 34개 주에서 2182명이 사형을 선고받은 채 있었다.(4)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이 지역의 대부분 국가에서는 사형제도가 존재하거나 실제로 시행되고 있지만, 과거10년간 사형제도를 폐지에 관한 중요한 움직임이 이어왔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1985년 사형제도를 폐지하였다. 필리핀에서는 1987년에 사형제도가 폐지되었다.중국에서는 사형이 가장 빠른 억지효과를 주는 처벌이라는 주장이 너무도 강하기 때문에 법적인 절차가 끝까지 완결되지 못하고, 실제 범인을 체포한 지 며칠 내에 처형하는 것이 허용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사형을 선고한 채로 수 십년간 죄수를 두는 일이 흔히 있다. 한 해 평균 2~3명만이 처형된다.3. 사형제도의 폐지론(1) 사형에 관한 사상사사형에 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철학적인 관점에서 다루기 시작한 것은 중세 이후이다. 중세시대 성 토마스는 그의 "신학전서"라는 저서에서 사형을 야수를 죽이는 일에 빗대었고 루터도 사형을 신에 대한 봉사로 여겨 신의 이름으로 사형을 긍정하였다. 이러한 중세기적 사상은 근세에 이르러 신에 대신하여 이성이 사형의 근거가 되었다. 몽테스키외, 칸트, 루소(사회계약론)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루소와는 반대로 사회계약이론이 베카리아에 의해 사형폐지의 근거가 되었다. 베카리아는 1764년 그의 저서인 "범죄와 형벌"에서 사형폐지를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생명이란 각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의 최대의 것이므로 이것을 사회계약에 제공 할리 없을 뿐 아니라 인간은 자살에 의해 자기 생명을 자유롭게 처분할 권리도 못 가지므로 사회계약에서도 자기 생명을 자유 처분할 권리를 양도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본다. 따라서 사회계약에 의해 성립된 주권 중에는 사형의 시인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의 생명은 무한대의 가치를 가지는데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할 수 없는 국가 또는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여 그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야만적이고 잔혹하여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허용될 수 없다.둘째, 재판도 인간이 행하는 제도로서 오판의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는데, 오판에 의한 사형의 집행은 영원히 구제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당해 재판관 에게도 엄청난 충격과 도덕적 책임을 안겨 준다.셋째, 통계적으로도 입증되듯이 형과 같은 중형이 흉악범의 예방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위하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흉악범들은 범행당시 마취 상태등의 책 임무능력 상태의 경우가 대다수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넷째, 범죄인도 국민이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보장받을 권리가있으며, 국가는 범죄인이 선량한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교육.개선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사형은국가 스스로가 이러한 의무를 포기함으로써 형벌의 개선적 기능과 교육적 기능을 전혀 갖지 못한다.다섯째, 국가가 살인행위를 비난하면서 국가 스스로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모순이다.(2) 인도적 입장인도적 견지에서 사형을 폐지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은 일회적이며 때문에 한 인간의생명은 우주의 무게보다도 무겁고 소중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뿐인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은 인도적 견지에서 허용될 수 없다.(3) 종교적 입장사형은 종교적 견지에서도 허용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은 절대자. 조물주, 하느님만이 허용한 것이며, 생명을 줄 수 없는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말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즉 인간이 형벌이라는 미명으로 인간의 생명을 박탈할 권리가 없다.(4)법적인 입장사형은 인간이 생명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 '생명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므로 헌법에 위반되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5)형벌의 본질형벌의 본질은 죄를 범한 범죄인을 교육하고 교화하여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것인데, 교육과 교화를 근원적으로 포기하는 사형은 형벌의 본질에 반하는 제도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6) 범죄 억제 효과 형을 선고할 수 있는 흉악 범죄가 증가하지 않았다는 일치된 통계가 입증하고 있다. 사형이 일반인에게 겁을 주어 흉악 범죄를 억제한다는 것은 비과학적인 미신일 뿐이다.(7) 오판의 가능성사형은 오판에 의해 저질러질 수 있기 때문에 폐지하여야 한다. 존치론자들은 오늘날의 형사재판은 철저한 증거재판주의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오판의 가능성은 없다고 말하지만, 수사와 재판에 임하는 검사나 판사도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며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인간일 뿐이다. 인간은 선입관, 고정관념, 편견에 사로잡히기 일수이며, 모함.무고.위증.증거의 조작 등 인간의 판단을 그르칠 수 있는 오판의 요소는 도처에 존재한다. 인간이 어떠한 재판 제도를 갖고 운영하든지 간에 무죄한 자를 사형장으로 보낼 가능성 앞에 모든 인간은 전율하고 겸허해야만 한다. 따라서 오판의 가능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형은 폐지할 근거가 충분하다고 한다.(8) 정치적 남용사형은 지배자.권력자.독재자 등에 의하여 남용되고 악용되어 온 대표적 형벌이므로 폐지해야 한다. 사형은 지배자가 자기의 정적이나 반대자를 단숨에 침묵시키고 제거할 수 있는 효율적 수단으로 악용되어 온 것은 인류 역사가 보여주는 엄연한 사실이다.우리나라의 지난 반세기 사형의 역사에서 보면 제1공화국 때의 조봉암, 5.16직후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에 대한 처형은 분명히 정치적 목적을 위한 사형이었다. 인혁당으로 처단된 인사들은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다음날 집행되기도 했다. 5.17 쿠데타화 함께 집권한 신군부 세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사형을 확정지었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을 확정지었던 김성만 등이 있다. 이 모두 정치적 반대세력을 분쇄하거나 봉쇄하기 위하여 공포정치를 단행하거나. 집권 세력이 정치적 위기에 몰릴 때 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속죄양을 찾아내는 성격이 짙었다. 비상사태를 이용하여 사법권이 매우 위축된 가운데 사형을 선고하고, 변호인의 실질적 조력을 받을 권리가 매우 억압당하며, 방청권의 제한 등 적법절차에 어긋나는 가운데 사형선앴다.
    사회과학| 2001.10.22| 7페이지| 1,000원| 조회(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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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통일에 관하여목차1. 통일의 당위성2. 통일의 난관3. 통일을 위한 노력1. 통일의 당위성1) 민족적 요청과 헌법의 구현성한민족의 오 천년 역사를 이어온 단일 민족으로서 문화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왔으며, 수많은 국난과 외침에도 불구하고 운명 공동체로서 민족적 단결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단합된 민족의 저력을 면면히 이어왔다. 그리고 일제의 폭압 아래 민족사적 단절의 위기를 경험하면서도 3.1운동과 같은 거국적인 운동을 이끌어 낼 수 있었으며, 일제의 무자비한 총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저항하기도 했다. 그러나 광복을 맞이하면서 타의에 의한 민족 분단을 당하여 민족의 분열을 초래케 되었다. 현대처럼 사회가 급변하는 사회에서의 50년간의 단절은 단순한 국토의 분단이 아니라 사상의 이분화로 인한 문화 전통의 붕괴 특히 언어나 풍습의 변질을 초래하는 것은 민족의 비애가 아닐 수 없다. 유구한 민족의 문화적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민족의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하여 또한 민족적인 자부심과 긍지의 손상을 회복하기 위하여도 조국의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그리고 대한민국헌법 전문에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단결을 공고히 하고' 라고 되어 있다. 북한도 우리 남한과 같은 통일이 최우선의 국가 과제로 헌법에 명시 되어 있다. 남북한 양 국가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분단된 국토와 민족의 통합과 아울러 정치, 경제, 사회의 발전에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2) 인도적 차원에서의 요청근래에 잇달은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한민족이라면 이 장면을 보고 눈물을 글썽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축복받은 소수에 불가할 뿐 아직도 1000만이 넘는 이산가족들이 가족들의 생사도 모른 채 반세기가 넘도록 그리워만 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의 국토 분단은 천만 이산가족에게 그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고 아직도 그 고통은 끝나지 않고 있다. 그들의 아픔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b. 국가 안보적 측면과 평화 구축에서의 당위성국가 안보적 측면에서는 두말할 나위 없이 통일은 중요하다. 남북간의 군사 대치 상태는 지구상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장 긴박하고 소모적인 군사력의 경쟁으로 인한 긴장의 지속으로 한반도는 물론 주변 지역 아시아 지역 내지 세계 평화에 커다란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그리고 남북간에 소모되는 군비를 절약하여 이 비용을 우리 나라의 경제적 발전과 국민 복지 번영에 사용한다면 국가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방비는 국가 전체 예산 중 교육비 다음으로 그 비중이 크다. 약18조가 되는 엄청난 돈이다. 이 예산이 경제력 증대와 복지 비용으로 돌려 진다면 국가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4) 국가의 자주성과 정치적 당위성또한 남북통일은 국제 정치적 측면에서도 그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만약 우리 민족이 통일을 이룬다면 국제사회에서 어느 나라 못지 않게 막강한 국가로서 발돋움하게 되고 국제적 지위도 확고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의 이미지는 국제 세계에서 미개하여 서로 헐뜯고 싸우는 가운데 독재 정권은 정권 이욕을 한껏 채우는 후진국으로 남아 있다.반만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배달민족으로서의 한국은 대내적으로 자유와 평등이 살아 숨쉬는 민주국가를, 대외적으로는 자주와 독립이라는 대명제를 숙명적으로 안고 있다. 통일은 내부적으로 민족의 단합을 이루어 번영하는 동시에, 외부적으로 민족의 지위를 국제사회에 고양하는 길이라 할 것이다.5) 사회 변혁적 당위성통일은 국민의 주권과 인권 확보 차원에서 필요하다. 분단 구조로 인하여 남북한 대결적 상황하에 특별법이 제정되고, 이로 인한 국민의 인권도 상당히 유보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분단을 빌미로 이념적 경직성과 체제적 독재를 강행하는 한 국민의 주권과 인권은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극도의 국가안보 상황은 국민의 분배적 요구를 향한 정당정치와 이념적 욕구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혁의 걸림돌로 군림해 왔던 것은 다름 아닌 분단 상황하의 특별법이었고 제 사정을 남북 교류 협력을 통하여 경제적 어려움의 타개책으로 충분하다.7) 북한 현실과의 접합성통일을 전제한 교류, 협력은 북한에 대한 원조나 협조의 차원으로 결과될 수 있다. 현재 북한의 경제 사정은 극도로 악화되어 달러의 필요성이 절박한 시점에 와 있다. 필연적으로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시점에 있다. 특히 남한 일부 층에서는 흡수 통일 운운하며 통일 비용이 천문학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북한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고, 이러한 교류와 협력을 통해서 자력으로 북한이 일어서기를 바래야 한다. 또한 조총련과 러시아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 동포들에 대한 지원과 배려도 북한과 협력해서 서로 협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2. 통일의 난관1) 이념 문제대한민국은 건국 이념인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여하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통일을 위한다 하더라도 이 이념은 양보하지 않는다. 즉 자유민주주의 이념은 타협의 대상이 아닌 것이 남한이 입장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 당국은 노동당 지배 체제를 포기 않으려 할 것이며, 노동당의 지도 이념인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속적으로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지키려 할 것이다. 북한 당국은 교조적 레닌주의체제를 더 극단한화한 1인 통제의 일당 지배 체제를 김일성-김정일 2대에 걸쳐 유지해 왔으며 인민에게 책임지지 않는 전제적 통치를 실시해 왔다. 북한의 이러한 교조적 절대주의 이념이 한국의 상대적 가치관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상극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까지도 분단 극복을 못 하고 있다. 남북한 각각 이런 이데올로기를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며, 중간이 없는 극과 극의 이념으로 일관해 왔다.2) 주변 강대국의 간섭주변 강대국, 즉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는 남북한간의 기본 관계 변화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남북한이 통일을 한다면 자국의 경제적 손실이 크다.우선 주한 미군의 철수, 그리고 매년 우리나라가 미국에 사들일 어마어마한군사 무기 문화의 모든 측면에서 별개의 특성을 갖는 체계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비록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체제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 동안 인적, 물적, 그리고 정보의 교류가 있었다면 서로간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물리적으로 나뉘어 있다 할지라도 상대방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교환되었다면 서로간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분단 50년간의 이질화는 정치제도, 경제체제, 사회구조와 같은 표면적인 영역은 물론 개개인의 의식구조와 가치관의 내면 세계까지 침투하여 사용 언어만 같을 뿐 남북한은 서로 다른 민족과 국가처럼 변해 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심지어 민족의 동질성 유지의 최후의 보루인 국어마저 점차 이질화되고 있어 민족의 장래가 매우 우려되고 있다. 남한의 경우 그 동안의 통일 교육은 국내외적, 정치적 여건 하에서 남북한간의 이질화를 심화시키는 내용과 방법으로 진행되어 오다가 1990년대에 들어서 동질화를 위한 노력이 강화되고 있다. 이에 비해 북한은 분단 이래로 일관되게 이질화를 가속시키는 학교교육의 목표와 내용, 방법론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독일의 경우를 보더라도 통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 서독인 간의 마음의 장벽은 높았다고 한다. 비단 우리나라는 어떻겠는가?4) 경제적인 어려움북한은 재정의 30%를 군사비로 지출함으로써 다른 생산성 정체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북한의 산업 구조는 크게 낙후되고 왜곡되었다.북한이 군사, 경제의 병진정책에 입각해서 무리한 공업화 정책을 추구함으로써 서비스의 비중이 매우저조하다. 그리고 자력갱생의 원칙에 입각한 자급자족의 추구로 인해 80년대 초에 도입된 대외 개방 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제는 아직도 폐쇄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소련의 붕괴로 인해서 더욱 북한의 사정은 악화되었고, 정치, 경제적 체제의 급속한 붕괴를 보이고 있다. 우리 남한은 꾸준한 경제적 성장을 했지만 지난 97년 IMF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도소한 부분적으로, 또 점진적으로라도 통일이 되든 안되든 '통일 후 준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통일을 위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이념적, 안보적, 복지 측면에 대하여 대책을 나열하겠다.1) 정치적 대책과거 남한의 대북 정책에 비해 김대중 대통령은 적극적인 대북 정책을 펴고 있다.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로 이산가족의 재회, 남북한간의 자유왕래, 자유통신, 자유통상 등의 생활권 통합 문제이다. 예전의 서독의 경우 사회당이 집권하기도 했고, 일본 또한 사회당이 있다. 우리 남한은 이런 사회당과 비슷한성격을 띤 단체가 있긴 하지만 아직은 미숙한 걸로 알고 있다. 정치적으로 법적인 조치로 이러한 사회당의 창당으로 통일에 대한 정책이나 문제 해결 대안 등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2) 이념 통일 - '흡수'도 '수렴'도 아닌 '발전적 이념 통합' 으로분단 이후 남북한이 분단이 되었지만 그때는 극좌익 단체, 극우익 단체, 그리고 이것을 절충하는 중간 이념의 단체가 있었다. 그러나 6.25전쟁을 겪고 난 후 남북한은 서로 적이 되어 극과 극의 이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50년이 지난 지금 남한이든, 북한이든 서로의 이념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다. 남한은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만 우선시 했다. 그 결과로 많은 생산과 발전을 거듭했지만 양적인 성장이지 질적인 성장을 하지 못했다. 이 말은 생산에 비해 분배에 대해서는 결코 공평하지 못한 현실이다. 그럼으로 빈익부 빈익빈은 더욱 가중되고, 정경 유착, 돈 위상주의 등 많은 문제를 초래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의 불만은 가중되고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사회에 대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우리는 지금 이러한 문제를 자본주의 이념에서 그 돌파구를 찾으려 하지만 찾지 못하고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북한의 사회주의 이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사회주의 이념을 100%로 다 수용하지는 것이 아닌 생산적인 측면은 효율을 위해 자본주의 이념으로 하고 분배의 측면한다.
    사회과학| 2001.10.22| 10페이지| 1,000원| 조회(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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