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날 보러 와요”vs 영화 “살인의 추억”대부분의 내가 아는 사람들은 연극보다는 영화를 더 선호한다. 물론 나 자신 또한 그러하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영화라는 범위는 무한대이며 상상이 곧 영화화 될 수 있지만 연극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에 밀려 소재의 다양성에서 밀릴 수 있기에 사람들은 더 새롭고 자극적인 걸 찾아 영화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을 곧 영화가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연극은 영화가 나오기 전부터 오랜 세월 우리 곁에 있었다. 영화가 등장하고도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연극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것은 연극이 영화가 가질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연극은 한정된 시간에 상연되고 사라져 가는 예술이다. 물론 희곡 자체는 영원히 고정되는 것이지만 연출이나 연기 또는 장치는 각 공연 때마다 다르다. 특히 배우의 연기는 매 공연 때마다 다를 수 있다. 정해진 시간에 존재했다가 사라져 가는 예술이라는 것이 연극의 약점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오늘 현재 존재한다는 점에서 보다 싱싱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또 전국적으로 동시에 볼 수 있는 영화와는 달리 연극은 같은 시간대에, 오직 한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있다는 사실, 또 배우들의 생생한 호흡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아닐까.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있는 연극에 비해 영화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롭다. 또 완성된 하나의 필름을 반복해서 볼 수 있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는 점이 연극과는 다른 점이다.연극과 영화의 이런 차이점에서 나오는 서로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두 작품을비교해 봤다.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두 작품, 연극 “날 보러 와요”와 영화 “살인의 추억”은 많은 관객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연극 “날 보러 와요”가 96년에 공연되었다가 영화 “살인의 추억” 인기에 힘입어 재공연을 하게 되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연극을 각색한 작품이다. 연극이 보다 심오한 주제에 중점을 두었다면 영화는 형사 스릴러물을 표방한다. 그러나 이 두작품모두 심각한 살인사건을 희극적으로 풀어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이 두 작품은 연극과 영화라는 차이점 외에도 많은 다른 점들이 있다. 두 작품의 무대도 많이 다르다. 연극은 공간의 제약이라는 한계를 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무대에는 형사계 사무실이 중심이 된다. 4개의 책상과 캐비넷등이 무대를 차지하고 있고 뒤쪽에는 블라인드가 쳐져있는 큰 창문이 보인다. 창문 뒤쪽 공간을 살인 사건이 나는 공간으로 어둡고 비가 내리도록 연출했다. 그 뒷공간은 자주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연극에 긴장감을 더해 주는 역할을 해주었다.영화는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여러 곳이 등장한다. 살인사건이 나는 들판과 산, 취조실, 기차길 등 사건과 관계되는 모든 장소들을 보여주며 사건의 사실감을 살리고 있다. 특히 논둑 옆의 수로는 첫 피해자를 발견하는 장소이며 마지막 박두만이 들여다보며 사건을 추억하는 중요장면을 담당하고 있다. 연극은 무대의 제한 때문에 극의 흐름을 형사계 사무실안에서 형사들의 대사를 통해 이끌어 간다. 반면 영화는 살인 사건과 현장도 보여주면서 형사들의 범인을 잡기위한 노력을 화면으로 직접 보여준다. 그러다보니 대사가 많은 연극 쪽이 대사의 맛깔스러움은 큰 것 같다.그 외에도 연극과 영화는 기본적인 얼개를 빼고는 비슷한 점이 별로 없다. 화성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다는 점, 주먹구구식 시골형사와 서울에서 온 합리적인 형사가 등장하고, 용의자의 설정이 비슷하며 중간중간 코믹한 요소가 들어있다는 점을 빼고는 많은 것이 달랐다. 한정된 시간, 공간 인원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 연극은 영화에 비해 굉장히 전형적인 설정을 따른다. 영화에서 서울 형사는 연극에서 단순히 4년제 대학 졸업자가 아니라 서울대 영문과 출신의 시인 지망생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그는 쑥다방 미스김의 흠모를 받는다. 또한 연극에는 사건을 캐러다니는 여기자가 등장하지만, 영화에는 없다. 그리고 범인이 사건 당일마다 라디오 방송에 신청하는 음악은 연극에서는 꽤 고전적이고 구태의연한 느낌이 드는 모차르트의 레퀴엠, 영화에서는 유재하의‘우울한 편지’다.흥미로운 것은 영화에서 빨간 팬티를 입은 변태 용의자로 등장한 배우 류태호가 연극에서도 역시 용의자 역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연극에서 1인 3역으로 판이한 용의자 셋을 혼자 연기한다. 다른 인물들은 모두 영화 쪽이 훨씬 풍부하지만, 용의자만큼은 연극이 훨씬 흥미롭다. 같은 배우가 천연덕스럽게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방식은 영화에선 쓰기 힘든 방식이지만 연극에서는 자연스럽다. 배우 류태호는 우스꽝스러운 정신병자와 성불구 변태성욕자, 냉철하고 빈틈없는 20대 젊은이를 모두 소화해낸다. 의도적인 1인 3역의 장치는 연극적 재미와 함께 범인의 실재감을 떨어뜨리면서 연출자 김광림이 밝힌 의도대로 ‘진실은 없다’는 연극의 주제를 뒷받침해준다. 끝내 잡지 못한 범인을 둘러싼 진실은 손에 잡히지도 않고, 그 속에서 사건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서서히 미쳐가거나 나가떨어진다.반면, 시간과 공간, 인원의 제한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장르인 영화로 옮겨 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연극에 비해 훨씬 자유롭게 재현된다. 시골 쑥다방의 미스김은 80년대 시골이라는 공간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면서도 특별한 느낌이 드는 동네 간호사로 변모된다. 그리고 연극에서는 전혀 중요치 않았던 ‘80년대’라는 시간, ‘시골’이라는 공간이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전면으로 부각된다. 시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은 거대한 레미콘 공장이 들어서고,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이 시골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스며들면서 공포감이 스멀거린다. 시골 형사들은 실체 없는 범인은 붙잡기 위해 무당집 조언을 듣고 ‘너는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 죽는다’고 쓴 허수아비를 사건 현장 농수로 옆에 세워둘 만큼(실제로도 그랬다고.) 순진하다. 하지만, 살인 사건이 숱하게 일어날 것 같은 서울에서 온 합리적인 형사 역시 속수무책이다.결국 10차례의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전두환 정권은 노태우 정권으로 바뀌고 비합리적인 폭력성의 끝을 지나 80년대는 90년대로 들어간다. 무언가 변화하고 있지만 답답함이 묻어있는, 결국 죽은 자는 많지만 죽인 자는 별로 없는 것으로 결론 나버린다. 영화는 태극기를 들고 대통령 퍼레이드에 동원된 여고생들의 모습이나 ‘데모 진압에 경찰이 다 동원되었다’는 등의 대사를 통해 화성 살인사건을 그 시대와 연결해 놓는다.
포스트모더니즘: 모더니즘의 계승과 대안(1)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모더니즘은 기성 전통이나 인습으로부터의 단절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모더니즘을 하나의 전통으로 본다면 그것은 바로 ‘비전통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모더니스트들은 역사적 단절을 통하여 생존 가능한 새로운 가치관을 찾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모더니즘이 맞서는 가장 대표적인 기성 전통과 인습은 리얼리즘이다.리얼리즘은 우주나 자연 또는 삶의 실재를 ‘있는 그대로’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것을 예술의 지상 목표로 삼았다.본질적으로 다원적이고 상대적인 관점을 지니는 모더니즘은 우주나 자연 또는 실재에 대하여 리얼리즘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리얼리즘이 삶의 실재를 객관적이고 확고불변한것으로 보려고 하는 반면, 모더니즘은 그것을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며 상대적인 것으로 보려고 한다.리얼리즘의 문학은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중요시 여겼다. 빅토리아 시대 소설가들은 문학을 독자들에게 윤리적, 도덕적 비전을 제시해주는 수단으로 삼았다.그러나 모더니즘의 입장은 이른바 ‘예술을 위한 예술’의 기치를 높이 내세운 유미주의에 의하여 이론적 뒷받침을 받는다.이렇게 전통과 인습에 맞서 혁신적 태도를 보이던 모더니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그 자체로서 비판적 기능을 잃어버리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모더니즘 또한 일종의 전통으로 굳어져버리는 결과를 낳았다.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난 사조요 이론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다.포스트 모더니즘은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예술 또는 문화 현상을 두루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러나 이 무렵 활약한 작가들이나 예술가들을 모두 다 포스트모더니스트로 범주화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포스트모던’이나‘포스트모더니스트’라는 꼬리표는 오직 20세기 후반부터 작품 활동을 해온 일부 작가들과 예술가들에게만 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2)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과의 상호 관련성1) 계승적 관계실존적 위기 의식과 소외감이나 고립감 같은 주제에서 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적어도 주제적 측면에서 볼 때에 포스트 모더니즘은 바로 앞서 일어난 모더니즘 전통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계승적 관계를 맺고 있다.2) 발전적 관계한편 과거의 전통이나 인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문화적 급진주의라는 형식의 관점에서 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전통을 상당 부분 발전시킨다.전위적인 실험성은 포스트모더니즘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3) 대립적 관계유기적인 구성이나 형식 또는 예술의 자기 목적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는 대립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통일성이나 일관성보다는 오히려 편린성이나 임의성 또는 유희성을 좀더 설득력 있는 예술 원리로 받아들인다. 또 모더니스트들과는 달리 예술의 자기 목적성이나 창조성에 깊은 회의를 보인다.4) 적대적 관계‘억압된 것들의 복귀’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적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동안 가부장적인 모더니즘의 권위 밑에서 억압되었거나 무시되어온 것들이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그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인정받으며 중심부로 옮아오기 시작하였다. (기성 문화에 반기를 드는 청년 문화를 비롯한 반문화, 고급 문화에 맞서는 대중 문화,제3세계의 문학, 페미니즘 문화 등)모더니즘의 기본 원리를 논리적으로 이어받아 그것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이 안고 있는 한계와 모순을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후기 러시아 형식주의자인 유리 티니야노프가 처음 펼치고 로만 야콥슨이 좀더 체계적으로 만든 ‘지배소’의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을 밝히는 데에 아주 편리한 출발점이 된다.야콥슨은 ‘예술 작품의 나머지 구성 요소들을 지배하고 결정하고 변형시키는 핵심적 구성 요소’, ‘rnh성의 통일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바로 이 지배소이다’라고 말했다.(3)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적인 지배소1) 상호 텍스트성쥘리아 크리스테바ㆍ수평적 관계: 발화가 화자나 청자와 맺는 관계ㆍ수직적 관계: 발화가 그 이전 또는 동시대의 다른 발화와 맺는 관계수직적 관계를 가리키기 위하여 이 상호 텍스트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크리스테바의 이론은 바흐친의 대화주의 또는 다성성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ㆍ일반적 의미에서 상호 텍스트성: 주어진 어느 한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와 맺고 있는 상호 관계를 뜻하지만 그 상호 관계라는 것이 여간 넓은 스펙트럼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ㆍ가장 좁은 의미에서의 상호 텍스트성: 주어진 텍스트 안에 다른 텍스트가 인용문이나 언급의 형태로 분명히 드러나 있는 현상을 말한다.ㆍ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상호 텍스트성: 텍스트와 텍스트, 주체와 주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지식의 총체를 가리킨다.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태양 아래에 새로운 것이 없듯이 모든 텍스트는 어디까지나 그 이전에 이미 씌어진 텍스트를 다시 배열하고 결합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움베르코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상호 텍스트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손꼽힌다.2) 자기 반영성과 메타픽션포스트모더니즘은 리얼리즘과 재현성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모더니즘과 매우 비슷하다. 모방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재현성은 모더니즘을 리얼리즘과 구별짓는 가장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리얼리즘의 작가들은 우주나 자연 또는 삶의 실재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모방하거나 반영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예술적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모더니스트들는 삶의 모습은 결코 고정불변한 실체가 아닐뿐더러 예술가의 주관성에 따라 얼마든지 굴절되고 변형된다고 재현성에 대한 회의를 드러냈다.실제 세계보다는 오히려 창조된 세계를 더 높이 여기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실재가 예술 창조 행위에 있어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레이먼드 페더먼은 미국 소설의 특성을 반실재성, 반리얼리즘, 반재현성에서 찾는다. 페더먼은 서픽션 이야말로 20세기 후반의 복잡하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포스트모더니즘이 보여주는 반리얼리즘적 태도와 비재현성은 무엇보다ㅑ도 자기 반영성, 그리고 그것에 뿌리를 두고 있는 메타픽션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리얼리즘이 객관적인 외부 현실의 반영에 주로 관심이 있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주로 자기 반영성에 주의를 기울인다. 자기 반영성이란 텍스트 그자체의 메커니즘을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자기 반영적 소설은 그것이 창작되는 과정 그 자체를 중요한 주제로 삼는 소설을 가리킨다. 자기 반영성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소설은 흔히 메타픽션이라고 부른다. 존 바스나 노먼 메일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등이 메타픽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대표적 작가들이다.물론 자기 반영적 실험성이 모든 작가들에게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이론가들이나 비평가들한테서 칭찬보다는 오히려 비난을 받아왔다. 로버트 올터는 ‘볼모의 연습’과 ‘무분별한 창안’이라는 관점에서 메타픽션은 큰 한계를 지닌다고 했다.3)탈장르 또는 장르 확산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장르와 장르사이에 놓여 있는 경계는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한 문학장르를 다른 문학 장르와 서로 엄격히 나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흔히 ‘탈장르화’이니 ‘장르 확산’이니 또는 ‘장르 파괴’는 바로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일컫는 용어이다. 소설 장르과 시 장르,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의 경계가 전보다 훨씬 유동적인 상태로 되었다. 전자의 경우의 예로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창백한 불꽃』이 후자의 예로는 존 바스의 『미로에서 길 잃어』가 좋은 예일 것이다.시 역시 전통적인 시 장르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작품을 쓰는데, ‘시의 산문화’,연극 장르와 시의 결합, 시와 일상대화를 구분하지 않는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장르 붕괴 현상은 창작과 비평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더니즘에서는 창작과 비평을 서로 엄격히 나누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에 와서는 이러한 구분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않게 되었다.창조적 비평은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를 문학 이론으로 만든 미국 해체주의자들한테서 훨씬 뚜렷이 드러난다.또 허구성과 사실성의 경계가 무너지는데 흔히 ‘논픽션 소설’이나 ‘뉴 저널리즘’이라고 부르는 장르가 대표적인 예이다. 1970년대 말엽과 1980년대 초엽에 몇몇 저널리스트들이 객관적 기술과 보도에 깊은 회의와 불신을 보이며 아예 실제 사건이나 상황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완전히 날조된 ‘새로운 뉴 저널리즘’을 만들어냈다. 뉴 저널리즘이 생겨난 것은 공식적인 언술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대중 매체가 역사의 내용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텔레비전과 신문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오보한다면, 사실적인 것과 비사실적인 것, 사실과 허구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마련이다.
시 속에 나타난 물고기 상징에 대하여물고기는 종교적으로나 민화,신화등에 따라서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우선 종교, 민화, 신화등에 나타난 상징을 살펴보고 생태시를 주축으로 시 속에 나타난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살펴본다.1.불교, 유교, 기독교에 나타난 상징모양이 길다랗고 곧게 생겨 꼭 물고기 모양이었는데, 지금은‘방’이라고 부른다. 뒤에 와서 현재의 것과 같은 둥근 모양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목탁(木鐸)이라 하여 부처님 앞에서 염불 ?독경 ?예불을 할 때에 쓰고 또 공양할 때, 대중을 모을 때에 신호로서 사용한다.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데 대한 근거는 없으나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어떤 스님이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죽은 뒤에 물고기가 되었는데 그 등에서 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어느 날 스승이 배를 타고 바다를 지나갈 때, 한 마리의 물고기가 바다에서 나타나 전에 지었던 죄를 참회하며, 등에 자란 나무를 없애 주기를 애걸하므로, 스승이 수륙재(水陸齋)를 베풀어 물고기 몸을 벗게 하고 그 나무로써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달아놓고 스님들을 경책(警責)하였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물고기는 밤낮 눈을 감지를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졸거나 자지 말고 늘 깨어서 꾸준히 수도에 정진하라는 뜻으로 고기 모양으로 만들었다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둥근 것을 목탁이라 하고 긴 것은 목어라고 구분하여 부른다.물고기는 떼를 지어 다니되 한 마리의 인솔로 움직이므로 행진하는 군대의 모습에 비유된다. 그래서 임금과 신하 ,장수와 병사.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상징한다.유교사상이 담긴 문자도(文字圖)는 유교의 도덕관을 대표하는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義).염(廉).치(恥) 여덟 글자를 그림으로 형상화하여, 교육용 또는 사대부 취향의 장식용 그림으로 신(信) 그림에는 신의(信義)가 담긴 편지를 전해 준다는 흰 기러기와 물고기가 짝을 이루어 등장하고 있다.박해가 한창일 때 은밀히 모일 수밖에 없었던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들련된 풍어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라시대의 금,은제 허리띠장식의 내림장식에는 물고기 모양이 매달려 있다. 우리 민속에는 다손과 여의로움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물고기 문양이 많이 쓰여졌다. 한쌍의 물고기 무늬는 여의롭고, 대길하며,부귀를 누리고 ,또 환희를 상징하니 남성의 상징이며 성적인 의미를 지녔다. 그리고 다손을 상징하기 때문에 약혼 선물로서 약혼녀 집에 선사하는 풍속이 있었다. 물고기는 또한 부귀의 상징이며 또 자손 번창을 의미한다. 민화에 많이 등장하는 물고기 그림을 어룡 (漁龍)이라 하는데 이는 어변성룡(魚變成龍) 즉,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는 말도 있고, ‘기운찬 잉어처럼 성공한다’ 라는 뜻으로 이는 등용과 입신 출세를 의미하였다. 등용문 (登龍門)이라 하는것도 물고기가 창파를 헤치고 폭포를 뛰어 넘어 어룡이 된다는 뜻으로 입신 출세의 관문을 뜻하는 것이다. 물고기 아홉 마리는 ‘구어’(九漁)이니 ‘모든 일이 여의롭게 되라’는 구여(九如)의 뜻을 지니고 한편 많은 자손이 출세하기를 기원하는 뜻을 지닌다. 또 단폭에 한 마리 또는 세 마리를 그리거나 여덟폭 병풍에 백 마리를 그린 백어도 등이 있다. 세 마리를 그린 그림은 삼여도라 해서 과거길에 올라 출세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또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목제 칠화 두침에는 어룡이 그려져 있는데 여기에서의 어룡 모양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초어라고 하는 물고기를 나타낸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물고기는 잉어같이 생겼으나, 닭의 다리를 달고 있다고 하였다. 중국에서는 소어를 먹으면 종양을 없앨수 있었다고 한다.3. 신화에 나타난 상징인도의 홍수 신화 마누(Manu)에는 물고기가 등장한다. 어느날 마누는 손을 씻기 위해서 가져온 물 속에서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작은 물고기를 발견했다. 물고기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구해줘요, 그러면 나도 장차 당신을 구해줄테니까." 마누가 물고기에게 어떻게 구해줄 것인가를 묻자, 물고기는 큰 홍수가 일어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휩쓸어갈 게 커서 바하무트의 콧구멍에 비하면 지상의 모든 바다는 사막에 겨자 한 톨이 떨어진거나 다를 바 없다고 한다. 레모라는 잿빛 물고기로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플리니우스는 이 물고기가 로마제국의 운명을 바꿔놓았다고 적고 있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악티움에서 벌인 전쟁에서 안토니우스의 배를 지연시켜서 참패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 레모라는 태아가 태어날 때까지 어머니의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4. 그밖의 물고기 상징융은?짝지은 물고기?자리를 그리스도교의 대극(pposites)문제를 해석하는 데에 사용했다. 즉, 물고기자리란 ?영혼의 물고기(왼쪽)?와 ?물질의 물고기(오른쪽)?가 한데 얽혀 있다는 것이다.비너스에게는 물고기가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다. 고대 이교도와 현대 그리스도인 상징주의(Ancient pagan and Modern Christian Symbolism)란 책에서 볼 수 있는 삽화는 여신 비너스가 자기의 상징인 물고기와 같이 있는 것을 보여 준다.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교 여신으로 경배하였던 아스다롯(Ashtoreth)에게 이 물고기는 거룩한 것으로서 여겨졌다. 고대 이집트에서 이시스(Isis)는 때때로 머리에 물고기가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금요일이 성적 다산의 여신을 따라 이름이 지어졌고, 금요일이 이시스의 거룩한 날인 것과, 물고기가 그녀의 상징이 되는 것을 고려하면, 카톨릭 교인들에게 금요일에 고기를 먹지 않고 물고기를 먹게 하는 날로 가르치는 것이 우연한 일치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 물고기(fish)란 말은 번식 혹은 다산을 암시하는 다그(dag)에서 유래되었고, 이는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옛날부터 물고기는 중국인, 앗시리아인, 페니키아인, 바벨론인 및 그 밖의 사람들에게 다산의 상징이었다. 물고기는 까마득한 옛적부터 생명의 상징이었고, 어부라는 칭호는 생명의 근원과 보존에 특히 관련 있는 신들과 태초부터 연결되어 있다.[ex.인도: 가장 위대한 물고기 자사(Jhasa), 창조주 비시누(Vishnu)서는 우리가 핵전쟁의 위협아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직설적 서술로 시적 공감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개발 논리의 극단에서 부딪치게 될 위기 상황이 무엇인가를 적절히 요약해주고 있다. ‘썩은 실개천에서 그래도 아이들은 등 굽은 고기를 건져올리고’, ‘눈이 하나뿐인 고기가 잡힌다’ 는 것을 통해 인간의 생활의 터전이 오염되고 있음과 인류의 미래가 위협에 처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등이 굽은 물고기들/한강에 산다/등이 굽은 새끼를 낳고/숨막혀 헐떡이며 그래도/서울의 시궁창 떠나지 못한다/바다로 가지 않는다 -김광규, 「고향」일부위의 시에서도 신경림 시인과 마찬가지로 등굽은 물고기가 산다고 말하고 있다. 그 뒤 행에서 등이 굽은 새끼들이 태어난다고 말함으로써 계속 후세로 이어지는 오염의 연속성을 고발하고 있다. 또 이렇게 비참한 상황에서도 이곳을 떠나지 못함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물고기는 생명력과 신성,풍요를 상징하지만 산업폐수에 오염된 물고기는 더 이상 신성을 전달하지 못한다.물고기를 먹자고 낚시를 한다/주먹만한 붕어 몇 건져 올린다/비늘 떨고 아가미 떨고/내장을 헹구며 디스토마를 잡는다/둔각의 등뼈 마디마디 헤집어/수은, 납을 도려낸다/살점에 박힌 부영양 오물, 방카A유 찌꺼기/카듀늄을 걷어낸다/마침내/초고추장 병을 열고/강내를 더듬는다/기억에 절은 손가락을 빨았다- 신진, [강?물고기회] 전문시인은 오염으로 인하여 물고기마저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화자는 물고기의 순수성을 찾아 헤매나 그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기억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물고기 회를 먹으려고 낚시질한 생선의 살과 내장에 가득찬 수은, 납, 부영양오물등 인간에 의해 마구 버려진 중금속들이 물고기를 불구화 시킨주범이며 언젠가는 인간의 생명마저도 빼앗아갈 독성 오염원이라는데 대한 극명한 인식을 제시한다.어찌된 일인지 새끼들아/너희를 배고 나서는 얕게 떠올라도 알빛이 뵈지 않고/때로는 숨을 막는 독물이 흘러들어 무거운우와 같이 인간도 현대 사회의 고립된 구조 속에서 한걸음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말라붙고 짜부라진 눈,/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막대기 같은 생각/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느닷없이/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최승호, 「北魚」‘당신도 새우’라고 했던 앞의 시에서처럼 이시에서는 북어가 사람에게 ‘너도 북어’라고 부르짓는다. 그러니까 시인은 딱딱한 몸과 빛나지 않은 지느러미를 가진 북어를 생명력을 상실한 인간에 비유하고 있다. ‘날을 생각을 버린 지 오래’인 사람들에게는 북어처럼 싱싱한 지느러미 역시 잃은 지 오래일 수밖에 없다.나는 죽은 꽁치들이 빽빽한 통조림 속에/머리를 내밀고 있는 느낌이었다//-중략-//빌딩을 오르내리는 날개없는 요일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있었다/올라가도 거대한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듯/함몰과 큰 추락에 대한 공포에 나는 떨고 있었다-최승호,「엘리베이터 속의 파리」일부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화자가 빽빽한 통조림 속의 죽은 꽁치 하나와 동일시되는 것은 몰개성의 무기력한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극도의 소외감을 표현한 것이다. 또 화자가 느끼는 함몰과 추락에 대한 공포는 엘리베이터가 상징하는 세계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이 느낄 수밖에 없는 공포이다.4. 문명의 감옥살이-생명력의 구속과 지배홍역에 걸린 듯몸이 쑤시다가배 불룩이 된 금붕어는비단옷을 입었으나/돌아갈 고향이 없어/긴 강 큰 물에서/변변히 한번 놀 수도 없는 출세(出世)/수심(水深)이 그리워서/어항 풀 사이를 헤치며/제법 뽐내고 가지만/금방 바닥이 나서/멀지 않은 장도(壯途)/낯선 돌이지만 바위처럼 믿고/입술을 대고 엎디어 쉬며/하품하다가도/수면(水面)을 보고/해를 따라 올라가/하느님께 매달려 죽는다/하느님의 은혜 없음 아니라/인간과 친교 두터우니/수심(水深)이 얕아지며/금붕어들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 - 꿈과 소망, 자유와 사랑에 대하여어릴 적 시골에서 양계장에서 자라는 닭을 본 적이 있다. 움직일 수 없는 조그만 철망 속에서 닭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료와 물을 먹고 알을 낳는 것이었다. 가끔 알을 걷는 일을 돕기도 했는데, 그때 닭들은 알을 걷는 내 손을 부리로 쪼며 알을 지키려고 했었다. 그때는 쪼아대는 닭들이 무섭기만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난용종 닭들이지만, 자신의 알을 지키려던 닭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좁은 곳에서 답답했을 닭들이 안쓰럽게 느껴진다.그런 닭들과 같이 양계장에서 사육 당하던 암탉 잎싹은 마당에 사는 암탉이 병아리를 까서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소망을 갖는다. 그것은 바로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이었다. 양계장에 있는 다른 닭들이 주인이 주는 모이를 먹으며 알을 낳고 편하게 생활하지만, 잎싹은 마당에 있는 아카시아나무를 보며 잎사귀처럼 뭔가를 하고 싶어 스스로 이름을 지어 가지기도 하고, 모이도 거부한다. 편안한 자신의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험한 삶을 스스로 선택한 잎싹을 보면서 지금 내 생활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폐계로 몰려 밖으로 나오게 된 잎싹은 족제비를 피해 마당으로 오지만, 마당식구들에게 거부당한다. 하지만 잎싹은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넓은 텃밭으로 나와 먹이를 찾고 잠자리를 만든다. 그러다 덤불 속에서 흰 알을 발견하고 자신이 낳은 알은 아니지만 알을 품기로 한다. 잎싹은 자신이 낳은 알을 아니지만 소망하던 알을 품는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행복해한다. 잎싹이 알을 품는 동안 친구였던 청둥오리가 먹이도 갖다 주고 밤마다 소리를 치며 날개를 퍼덕이며 날뛰었다. 잎싹은 처음에는 몰랐지만 청둥오리가 족제비에게 죽임을 당한 후 알과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그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맞바꾼 청둥오리의 죽음은 희생의 숭고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잎싹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마당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마당식구들은 잎싹이 자신의 종족이 아닌 오리를 품었다고 경멸하고 오리들은 아기를 내놓으라고 하지만 잎싹은 자신이 품어서 낳은 자신의 아기라고 상관없다고 한다. 그러나 아기의 날개 끝을 자르고 자신을 잡아먹어야겠다는 주인의 말을 듣고 마당을 떠난다. 하지만 그들 앞에는 너무나도 험난하고 고단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자리도 없고 먹이도 스스로 구해야 하는 생활이지만 잎싹은 청둥오리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용기를 가지고 족제비에게 맞서 아기를 보호한다. 아기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헤엄치고 나는 법을 배운다. 잎싹은 아기오리가 나는 것을 보며 세 번째 기적이라고 하지만 세 번의 기적 모두 잎싹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망을 가지고 자유를 꿈꾸며 자신의 삶을 개척했던 암탉 잎싹이 그런 기적을 만든 것이다. 아니 기적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자라서 청둥오리를 닮아가는 아기오리 초록머리는 자신이 엄마와 다른 족속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무리에 끼고 싶어 하며 마당을 간다. 하지만 초록머리를 길들이려는 주인에게 잡혀 끈에 묶이게 되고, 잎싹은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들어 초록머리를 구해낸다. 잎싹의 희생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자신이 낳은 아기는 아니지만 사랑으로 낳은 아기를 위해서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는 잎싹을 보면서 사랑이란 서로 이해하는 것이라는 잎싹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저수지로 돌아간 잎싹과 초록머리는 청둥오리떼를 만나게 되고 초록머리는 종족에 합류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끈 때문에 무리들에게 외면당한 초록머리는 잎싹과 같이 있길 원하지만, 잎싹은 초록머리에게 족속들을 따라 날아다니며 다른 세상을 경험하라고 보내준다. 사랑하지만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보내주는 잎싹의 현명함은 자식을 품안의 자식으로만 키우려는 이 시대의 엄마들에게 큰 교훈을 남긴다. 자신과 다른 아기오리를 사랑으로 키워서 넓은 하늘로 날아가게 해준 잎싹은 초록머리를 떠나보내고 청둥오리떼가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것이 또 다른 소망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잎싹은 날아 보기위해 퍼덕이다가 족제비에게 잡힌다. 자신을 끊임없이 잡아먹으려 했던 족제비 또한 한 어미임을 이해하고 순순히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또 하나의 소망이었던 나는 꿈도 이루게 된다.
제2장 기억: 지식의 획득, 파지 및 인출(1) 인지과정/ 처리의 중재자로서의 기억① 기억의 시간적 흐름: 학습/획득(acquisition, encoding, learning)-> 파지(retention)-> 인출(retrieved)② 기억의 다양성첫째, 서술기억(사실에 대한 기억, 언어화 용이) / 절차기억(방법에 대한 기억, 언어화 어렵다)(일화기억-자전적 기억, 의미기억-객관적 및 원리 지식)둘째, 자동기억(노력 없이 인출)과 통제기억(인출에 노력)셋째, 외현기억(의식적으로 지각)고 암묵기억(지각되지 않으나 영향을 미치는 기억)넷째, 단기기억과 장기기억 -지속시간에 따라다섯째, 회상과 재인-- 기억과제에 따라(2) 획득(특징: 주위 일부 정보에 대한 선택적 주의)첫째, 주의 기울이기, 정보처리의 한계에 따른 자기 주의 상태에 대한 모니터링 하기둘째, 의미를 모니터하기, 사전 조직자를 활용하며 의미수준처리 및 정교화를 통한 학습책략셋째, 분산학습 및 과잉학습하기(절차적 지식획득 용이) (서술적단계-> 연합단계-> 자동화단계)넷째, 범주학습을 통한 체제화와 조직화다섯째, 여러 개의 인출 단서 생성하기(인출맥락과 부호화 맥락의 일치할수록 더 잘 인출, 부호화명세원리)여섯째, 비인지적 요소에 대해 인식하기(수면부족, 피로, 음주, 불안 등의 비인지적 요소들도 기억에 영향)(3) 파지첫째, 기억은 능동적 구성과정이지만 고정관념과 편견에 영향을 받음.둘째, 추론에 따른 기억의 왜곡과 추론한 내용과 실제 일어났던 내용의 구분의 부정확성(예, 개사진 제시)셋째, 극단적 정서상태에 따른 주의 폭의 좁아짐, 기억은 부정확하지만 자신 있어함(증인기억), 실제일어나 지 않은 일을 일어났다고 기억도 가능(거짓기억)(4) 인출(사고와 망각, 회상오류)첫째, 인출 시 간섭에 의해 망각이 일어나는데 자기 판단과 수행의 정확도에 대한 과잉추정을 과잉확신, 기억된 정보구조를 추정하는 회상오류도 발생할 수 있음.둘째, 인출단서가 제시되면 자유회상에서 인출되지 않았던 정보가 인출되기도 한다이론: 언어가 사고를 결정첫째, 강한입장(언어가 사고를 완전 결정)둘째, 약한입장(언어가 사고에 영향 줌)2) 언어가 사고를 방향지움첫째, 정서적 언어와 name calling, 언어가 사고를 완전히 결정하지는 않지만 그릇되게 방향짓기 가능semantic(의미의) slanting: 청자/독자들에게 어떤 특정한 태도, 신념들을 조성하기 위하여 단어나 이미지들을 의도적으로 조심스럽게 선택하여 사용하기.둘째, 모호성, 애매성, 다의적 말하기: 오도 가능성모호성(단어의 의미가 맥락에 따라 다른 여러 의미를 지닐 때)애매성(부정확한 의미를 지닐 때)다의적 말하기(단어의 의미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변화하기)셋째, 어원과 구상화, 단어 의미에서 어원이 중요하긴 하지만 어원이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gay)구상화는 추상적인 것에 이름을 붙이고 구체적인 대상으로 다루는 것이다(이약 먹으면 ego 강해짐)넷째, 관공서어투(특별 분야에 대한 지식과 교육이 없는 사람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형식적 어구)와완곡어법(좋지 않은 표현어구 대신에 좀 나은 표현을 사용하려는 것)다섯째, 유도성 질문, 부정, 특정 단어 사용하여 일정한 방향으로 옭아매기a. framing; 특정한 방향으로 답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질문을 제시하기(두통, 상인들, 9,900)b. 부정: 부정 어법은 오히려 반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음(닉슨 대통령, I am not a crook)여섯째, 대비와 맥락(평가 맥락/대비가 달라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짐)판단과 평가는 준거 틀에 비추어서 정해짐(돈 꿀 때, foot in the door effect, door at the face effect)3) 사고의 척도; 어떤 배경 맥락에서 어떤 어구를 사용하여 질문하였는가에 따라 달라짐(투표 성향조사)맥락의 영향(선택적 활성화)(1) 인부들이 피아노를 날랐다(2) 옆집 꼬마의 피아노 연주는 나를 괴롭혔다.단어판단과제 a) 플룻 b) 가볍다--> 단어판단에 대한 사고를 할 때 주어진 맥락에 따라 선택적으로 활성화되는 경 정보 유지 실패 시)둘째, 추리도식(추리는 상황에 대한 해석 다음에 적절한 도식이 적용되어 추리가 일어난다): 추리의 문제가 허용과 의무 규칙의 형태로 제시되면 사람들은 추리를 잘 한다.셋째, 심성모형: 전제의 의미와, 추리자 자신의 일반적인 지식에 기초해서 전제들에 대한 모형들을 형성하고, 2차적으로모델들을 조합하고 간결한 형태로 기술하여 결론을 도출하고, 3차적으로 도출된 결론에 어긋나는 모형이있는가 탐색하여 그 결론의 타당성을 확인한다.(연계조건추리: 2개 이상의 if->then이 있는 경우 내용에 따라 자발적으로 해석하는 추리)예) 부가적인 조건: 친구를 만나면 영화를 본다, 돈이 있으면 영화를 본다대안적인 조건: 친구를 만나면 영활르 본다, 언니를 만나면 영화를 본다친구를 만났다? --> 전제에 대한 전체적인 추론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4) 조합적 추리: paiget 식이 형식적 추리 단계에서는 체계적인 조합을 통합 추리가 필요(5) 삼단논법 추리① 삼단논법추리(두 개의 전제에서 결론을 내리는 추리)범주삼단추리(양화추리): 세 항목의 포함관계에 관한 추리, 중간항을 고리로 해서 말단항간의 관계를 기 술하는 결론② 보편양화사(all, none) vs 특정양화사(some, some ~not)긍정(all, some) vs 부정(none, some~not)③ 삼단논법추리에서의 특징적 현상첫째, 양화사의 효과, 두 전제가 전칭, 특칭이 사용되면 결론을 특칭으로, 두 전제가 긍정, 부정으로 사용 되면 결론을 부정으로 추리하는 과정둘째, 형상 효과, 전제의 위치 형태에 따라 결론을 내리는 방향이 다르다.셋째, 내용이 미치는 효과(믿음직함 효과, 그럴싸함 효과); 결론이 지식과 부합하면 타당하지 않은 결론을타당한 결론으로 판단하는 것.1) 결론의 타당도 판정 방법(그림을 이용한 방법, 언어적 방법, 심성 모형을 이용한 방법)① 그림을 이용하는 방법: Venn diagram이나 Euler circle을 이용해서 전제들을 표상한 후 두 전제를 종합 결론② 삼단추리에정성을 판단⑤ 추리하기와 합리화하기첫째, 합리화하기(자기가 선호하는 결론에 호의적인 정보에 주의함, 선호 결론지지 정보 선택적 수집)둘째, 확인편향(지지하는 해석에 비중을 두고 반대하는 증거들은 무시하는 경향, 이를 막는 방법으로 결론 과 반론을 지지하는 이유들을 각각 열거하고, 각 이유들에 대해 그 증거 강도, 타당성, 힘을 평가하라)이유에 기초한 선택: 사람들은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그 결정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타냄.(4) 설득과 선전① 설득과 선전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하게 하거나 믿게 하려 하는 것② 선전: 상징이나 개인심리를 조작하여 집단적 암시, 영향을 주는 것(5) 이유의 심리① 사람들은 약하고 틀리더라도 이유를 가지고 생각한다.② 허위-오류: 설득을 위하여 사용된 온전하지 못한 추리 기법(온전한 사고를 위한 기준 한 개 이상 위배)(6) 신념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① 제시하는 정보의 원천으로 신뢰로운 원천을 제시(전문가 활용)② 반론을 예상하여 그를 제기하고, 반론의 반증을 제시③ 편향적인 것처럼 보이지 말 것④ 직설적일 것, 토론조장하고 관중 유도⑤ 결론지지 이유 반복 제시(많이)⑥ 메시지의 이해 용이성, 시각적 이미지, 21개의 허위 오류의 신중한 사용제6장 가설검증으로서의 사고(1) 가설검증의 이해① 설명, 예언, 통제첫째, 가설검증의 목표는 예언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불확실성 감소 및 환경 통제)둘째, 관찰, 가설설정, 가설검증, 예측의 과정② 귀납법과 연역법첫째, 귀납법은 사건의 관찰-> 가설 형성-> 가설 검증둘째, 연역법은 보편에서 특수로③ 조작적 정의: 관찰하려는 개념을 어떻게 파악/측정하는가를 규정하는 것으로 개념을 관찰 가능한 조작/절차 형태 정의④ 독립변인과 종속변인첫째, 독립변인이란 통제되고 조작된 변인둘째, 종속변인이란 독립변인 조작에 의해 반응이 관찰되는 변인⑤ 측정의 민감성: 독립변인의 효과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도록 민감해야 한다.⑥ 모집단(알고자 하는 집단 전체) 표본(모집단의 일부)⑥-을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확률보다 높게 평가하는 오류( Tversky & Kahneman(1983)의 실험 예), 린다는 은행원 vs 린다는 은행원이며 여성운동에 적극적④ 누적적 위험(cumulative risks): Or Rule 적용의 오류: 사람들은 반복되어 일어나는 사건의 누적적 확률에 대하여 과소 평가하는 오류(예: 자동차 사고 확률: 1회시 vs 10000회시) : 사건의 1회 발생확률보다 누적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이해 못함(4) 기대치기대치: 계속하여 관찰하거나 행동을 취하였을 경우에 최종으로 얻을 잠재적 값(수없이 반복하였을 경우 얻을 수 있는 득실의 종합)= [각 결과의 확률 x 각 결과의 값(가치)]대안적 결과 사상이 다양하면 확률이 일반적으로 증가함(예) 한 방에 40명 있는데 생일이 같은 사람이 있을 확률: .90, 23 명이 있을 경우 확률 >.50(5) 주관적 확률사건 발생에 대한 주관적 추정치로서 주관적적 확률은 오류인 경우가 많은데도 사람들은 많은 경우 이에 의존① 도박꾼의 오류(gambler's fallacy): 자연은/운은 스스로 교정한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전에 안 일어났으니까 이후에 일어날 가능 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오류이다.: 이와는 반대로 hot streak라는 생각도 함.: 두 번 계속 성공하면 계속 두 번 실패한 경우보다 다음에 성공할 확 률 높게 평가함② 기저확률(사전 확률)의 무시 (base-rate neglect): 두 가지 이상의 사상이 연쇄일 경우, 각 사상의 단순확률 즉 기저율을 무시하는 오류③ 표본의 크기에 둔감(변산성을 고려하지 못함, 소수의 법칙): 변산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예: 야구해설자, 3할 타자니까 이번엔 안타 칠 것이다)(6) 확률적 결정복합사상의 확률은 각 단순사상의 곱한 값 (각기 독립적인 사상일 때)① 정보를 종합해 예측하기: 특히 사후확률 계산시 Bayes's theorem 유용: 사람들은 기저율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음(해결방안)첫째, tree diagram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