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춤추게 하라(Louis V.Gerstner,Jr.)1. 요 약이 책은 루 거스너가 IBM에 부임에 얽힌 일화와 IBM을 다시 업계 제일의 위치로 돌아가게 만든 루 거스너의 비즈니스의 위업을 요약한 책이다. 하지만 그는 IBM에 있어서 아웃사이더지만 진정으로 IBM를 사랑하는 이로써 최고의 변화와 실천이 뒤따른 최고경영자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현대사회를 정보화 사회 혹은 인터넷 사회라고 흔히 말한다. 이러한 정보와 인터넷이라는 개념은 컴퓨터를 말하지 않고서 성립할 수 없다. 즉 컴퓨터 기술과 이에 발맞춘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무수히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기술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컴퓨터를 이야기하면서 IBM만큼 많은 사람들이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한다.그만큼 IBM은 60년대 대형컴퓨터에서 시작하여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수십 년간 독보적인 위치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IBM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컴퓨터의 역사에 대해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그렇듯이 IBM 역시 승승장구하던 컴퓨터시장에서 수많은 경쟁과 그에 따른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잘못된 경영진의 판단으로 IBM이 해체될 위기까지 이르렀었다. 하지만 새로이 CEO로 영입된 루 거스너의 적절한 판단과 리더십으로 IBM은 다시 한번 최고기업으로 도약하게 되었으며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앞에서 PC시장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IBM은 이제 재빠르게 변화해 나가고 있다고 끝을 맺는다.다시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서 루 거스너에 대한 짤막한 소개가 있다면 그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23살의 젋은 나이에 사업의 세계로 들어섰다. 1965년 6월 경영컨설팅 회사인 뉴욕의 ‘Mckinsey&company'사에 9년 동안 근무하였다 거기서는 금융사업 책임자 겸 고위 리더십위원회 위원자리까지 올랐으며 30대 초반이 되자 컨설팅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1977 ’A 낮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따라 총이익금이 줄어들 것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단기적인 면에서 회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주주배당을 주당 2달러에서 1달러로 직원감축의 생존의 문제를 다루었다.? 사업방식을 혁신한다.→ 당시 IBM의 모든 과정은 비합리적인 고비용 상태였다. 그에 따라 1993년 다국적 기업으로서는 매우 큰 규모의 개혁 작업이 시작되었다.? 수익성이 없는 자산을 매각하여 자금을 마련한다.→ 1993년 IBM의 자금이 바닥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회사의 자금 동원 능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팔 수 있는 자산은 많았다. 그래서 회사에 꼭 필요치 않은 자산을 모두 매각하였다.거스너는 초반에 우선 급한 불을 끄는 작업부터 시작하여 다음에는 회사의 근본전략을 다시 세웠다. 우선 IBM은 세계적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IBM은 각 나라에 조직이 있었으며 세계에서 정부 다음으로 가장 복잡한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각 나라는 저마다 독자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유럽에만 142개의 서로 다른 재무 시스템이 있는 지경이었다. 고객에 대한 자료는 회사 안에서 유통 될 수 없었다. 직원들은 일차적으로 자기지역에 속했고 IBM은 먼 나중 이었다. 이에 그는 자원을 대거 재배치하고 시스템과 절차를 바꾸어야 했다. 이러한 조직 개편 계획을 세우는 것은 쉬웠지만 그 계획을 시행하고 정착시키는 데는 3년 이란세월이 걸렸다.그 다음으로는 브랜드 되살리기다. IBM를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고객과 시장을 중심에다 두어야 하고, 또 강력한 마케팅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IBM은 1993 당시 70개의 광고대행사에 일을 맡겼고 각각의 디자인과 메시지가 달랐고 심지어는 로고조차 통일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에 그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IBM의 모든 광고대행을 한 대행사로 통합하기로 결정했다.마지막으로 보상체계의 재정립이다. ‘옛 IBM'은 보수에 대한 매우 은 사실 그 당시 큰 도박이었다. 1994년에는 인터넷이 주류를 이루기 전이었다. 하지만 변화의 최초 조짐들은 일고 있었다. 즉 1990년대 중엽까지 IBM의 폐쇄형 컴퓨팅을 청산하고 업계의 다른 우세한 기준들과 상호 작용할 수 있도록 우리 제품들을 개방하는데 필요한 기술적, 문화적 노력을 쌓아왔다는 사실이다.IBM의 전략은 대략적으로 이러하다. 서비스를 통합의 열쇠로 보는 것이다. 서비스 분야가 IBM에 잠재력이 있는 사업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정보기술 산업이 부품 쪼가리가 아니라 솔루션을 중심으로 재편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고객들은 기꺼이 돈을 쓸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단지 기술통합에서 이제는 네트워크 컴퓨팅 모델이 자리 잡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통합이 부상하고 이로써 고객들이 핵심사업과정과 기술을 통합하고 나아가 가격책정, 주문처라, 물류 업무 같은 과정들을 서로서로 통합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그 다음으로 IBM은 세계최대의 소프트웨어 사업을 구축하는데 전력을 다하게 된다. 빠른 속도와 폭넓게 움직이는 디지털 컨텐츠의 바다를 지속시키자면 물론 네트워킹 장비의 수요가 커질 것이다. 거래량의 폭발에 대처하기 위해 고객들은 서버와 저장 공간의 지속적인 확장을 필요로 하며 네트워크 솔루션의 디자인과 실행을 위해서는 폭넓은 서비스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1993년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어디인가 생각하면 마이크로소프트라고 답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하지만 그 당시 어느 회사보다도 더 많은 소프트웨어를 판매한 곳은 바로 IBM이었다. 그 당시 IBM은 소프트웨어 의식이 없었고, 진정한 의미의 소프트웨어 사업은 더더욱 없었다. IBM은 늘 자사 하드웨어의 운영 소프트웨어를 직접 설계해 왔다. PC가 등장했을 때 IBM은 그 시장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최초의 IBM 퍼스널 컴퓨터의 운영체제 제작을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의뢰하면서 IBM은 컴퓨터 업계 최강의 프랜차이즈를 구축해 버렸다. 이로 인해 I고 드는 경쟁자들에게 판매할 계획이라면 과연 어떠한 생각을 할 것인가?즉 IBM의 기술 부품들을 판매하는 사업을 구축한다는 결정을 둘러싸고 내부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루 거스너는 1994년 그들의 기술을 상업시장에 내다 파는 사업을 진지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것 역시 비즈니스 실용주의의 한부분이였고, 동시에 그들에겐 IT 서비스만큼이나 새로운 사업에서 또 하나의 성공을 일구어 내려는 또 한차례의 ‘주사위 굴리기’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그들이 기술을 판매함으로써 기대되는 것은 ①기술을 폭넓게 보급하는 것은 향후 업계에서 개발되는 제품의 표준을 정하고 프로토콜을 정의할 경우 IBM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②기술의 판매는 연구 개발비의 상당액을 벌충하면서 새로운 수입 흐름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점 ③ PC 이후 세계에서는 네트워크 접근용으로 만들어져 나올 새로운 디지털 장치들에 동력을 공급해 주는 부품들의 수요가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마지막으로 IBM이 다시 한번 업계의 의제를 주도할 수 있는 그들의 목소리와 자신감과 능력을 찾은 e-business에 대한 설명으로 전략부분에 대한 생각을 끝내려 한다. 루 거스너가 IBM에 오기 오래전부터 매우 집중적으로 폭넓게 논의되던 업계의 기술 추세중 하나가 ‘통신과 방송의 융합’이라는 다시 쉬운 말로 하자면 전통적인 아날로그 기술과 떠오르는 디지털 기술의 통합이라고 하면 더 이해가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 1994년 3월 루 거스너는 월스트리트의 한 애널리스트 그룹을 만났을 때 말한 것 중 ‘네트워크 중심세계’라고 명명한 곳에서 선두주자가 되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뉴스는 빛을 보지 못했고 1995년 가을 루 거스너는 IBM의 전략에 대한 확신이 커져 결국 네트워크 중심 컴퓨팅을 IBM의 전략적 비전의 핵심으로 삼기로 결심하게 된다. 여기서 그가 말한 핵심적인 말 중 사람들은 모두 한대의 PC를 가지고 있고 대부분 그들이 없을 때 집에서 노는 컴퓨터를 볼때 이제는 진정 있다. IBM의 판매사원들 아니 IBM 직원들은 누구나 정장을 입는다는 것이 업계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고객들이 직장에서 옷 입는 방식도 바뀌어 졌으며 양복을 입는 기술바이어들은 거의 없어졌다. 이에 1995년 거스너는 복장 규정을 폐지했다. ‘모든 일을 탁월하게’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탁월함을 추구하다 보니 완벽에 대한 강박 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 결과 남을 무능력하게 보는 문화와 함께 거미줄처럼 엉킨 검토, 승인, 비준 절차가 생겨나 의사 결정이 한없이 느려졌다. 다음으로는 ‘개인존중’에서는 가격의 문화 즉 개인이 존경을 얻기 위해 어느 노력도 할 필요가 없으며 그저 채용된 것으로 풍족한 수당과 평생 교용을 기대하는 문화를 낳았다는 것이다.IBM의 문화는 독특한 강점이면서도 병에 걸려 IBM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 역기능을 설명하기로 한다. 첫째는 IBM은 소비자는 뒷전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IBM의 자아도취는 커다란 이윤을 낳았다. 하지만 IBM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쟁자가 생겨나고 수많은 경쟁자들이 IBM의 영역에 구멍을 뚫게 만들었다. 루 거스너가 IBM에 부임한 뒤 그는 고객과 경쟁자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것과 이러한 마케팅 정보를 정리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즉 IBM의 문화에서는 조직 그리고 개인이 그 조직에 얼마나 부합하는지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는 사실이다. 루 거스너는 직원들이 회사 내부가 아니라 고객과 시장에 초점을 맞추기를 원했다.둘째로 IBM의 ‘아니오’ 라는 문화이다. IBM 문화의 가장 두드러진 측면은 개인이든 팀이든 부서든 모두에게 합의나 행동을 봉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개인존중’의 신념은 요지부동을 지탱하는 제도적 장치로 퇴락했다는 사실이다. IBM의 ‘아니오 문화’가 나타나게 된 형태는 비협조 시스템이다. IBM인들은 동료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협조를 하지 못함을 선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두 사업 단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