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299
검색어 입력폼
  • 중세 종교개혁가들
    1. 종교 개혁의 선구자1) 토마스 브래드워딘 (1290-1349)영국 신학자이면서 수학자로, 에드워드 3세의 목사로 있다가 1349년 캐터베리 대주교 로 임명 되었고 1349년 흑사병으로 사망 하였다. 그는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했다. 특히 이교도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2) 리미니의 그레고리 (1358)이태리 철학자 어거스틴의 수도사가 되었으며 그는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강 조 하였다.3) 존 위클리프 (1329-1384) - 영국교회의 부와 권력을 잘못 사용하는 법에 대한 격렬하게 공격했으며, 성사예배 제도에 대해서도 비판했으며, 라틴어 성서의 영문번역 등은 후세에 그로 하여금 종교개혁기의 샛별이라고 받들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로마 교회의 오류들과 수도사들의 타락을 완전히 인식하고 그것들을 폭로하기로 결심했다. 공공 강연에서 그는 그들의 악을 비난하고 그들의 어리석음을 반대했다. 그는 미신으로 덮여진 수많은 폐해를 드러냈다. 처음에는 대중의 편견을 풀어나가기 시작했고, ?차츰 나아가서는 그 시대의 형이상학적인 논문들과 종교적인 소설을 사용하여 그의 의견을 나타냈다. 로마 법정의 강탈이 그가 즐겨 쓰는 주제였다. 이런 것들에 대해 그는 신랄하고도 장황하게 상술하면서 논리적 사고를 합류시켰다. 이것은 곧 성직자들 사이에 논란을 야기 시켰으며, 그들은 위클리프에게서 캔터베리 주교직과 관직을 박탈했다. 교황의 횡령과 그의 무오성과 그의 자존심과 그의 허욕과 그의 전제를 맹렬히 비난했다. 그가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이름붙인 첫 번째 인물이었다. 교황에 이어 그는 주교들의 겉치레와 사치스런 옷차림 등에 대해서도 비평하였다. 그들의 미신과 속임수는 그가 지성과 논리적 명확성을 가지고 말했던 주제들이었다.위클리프는 또한 성서 번역에 있어서 기억되고 인정받고 있다. 1380년대 초기에 그는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이끌었는데, 관용적이고 일상적인 언어로 된 두 개의 완전 번역본을 내었다. 그것은 설교자들이 영어로 된 성경을 읽고 그것으로 설교하게 521년 츠비카우에서 추방되고, 1523년 보헤미아 알슈테트에서 포교활동을 하였다. 그의 복음운동이 급진적 사회개혁으로 기울어져, 가난한 자를 위하여 교회 ·수도원 강탈을 주장하였다. 영주제와 타협하여 기존질서의 존중을 역설하는 루터와 정면으로 대립하고, 또한 내면적 신앙의 체험만을 중시하고 성서의 객관적 권위를 무시한 주장이 주관적인 신비주의라 하여 루터파에게 공격을 받고 다시 쫓겨나 튀링겐 뮐하우젠으로 피신하였다. 그곳에서의 운동은 한때 성공을 거두었지만, 영주군(領主軍)의 공격을 받고 도피하여 각지를 유랑하였다. 1525년 농민봉기를 돕기 위하여 민병을 거느리고 프랑켄하우젠으로 향하였다. 거기에서 영주 연합군에게 패하고 결국 참수되었다.2) 안드레아스 폰 칼슈타트 (1480-1541)독일의 종교개혁 급진파의 한사람. 본명은 보덴슈타인. 엘푸르트, 퀼튼에서 공부하고 비텐베르크대학 신학교수로서 루터의 스승, 후에 동료가 되었다. 그로인해 믿음의 노선을 바꾼 후 루터의 95개조 논제를 변론하여 교황의 칙령에 의해 루터와 함께 파문당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더욱 급진적인 개혁을 지향하고, 성서론, 직제론, 성찬론 등에서 루터와 대립, 루터의 격렬한 비판을 받아서 그곳을 떠나서 농민 전쟁의 혼란중에서 각지를 전전했다. 쯔빌글리의 비호로 취리히, 바젤에서 교수, 설교자로서 평생을 끝마쳤다.3) 필립 멜랑히톤 (1497-1560)독일의 인문주의자이자 종교개혁자. 1497년 2월 브레텐(Bretten)에서 태어나 하이델베르크대학을 졸업했다. 고전어에 능숙했던 그는 1518년 젊은 나이에 비텐베르크대학의 희랍어 교수로 부임하였다. 거기에는 루터(Martin Luther)가 있었다. 루터는 이미 그 1년 전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어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멜랑히톤은 루터의 사상에 공감하고 깊은 교분을 쌓기 시작했다. 1520년 4월 그는 “루터와 헤어지기 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고백했다. 그 후 멜랑히톤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적극 지지했을 뿐 아니라 그 자신도냈다. 1532년 그는 제네바를 방문하게 되는데 이후로 제네바의 종교개혁을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된다. 비록 반대세력이 있긴 했지만 베른(Bern)의 지원에 힘입어 종교개혁을 힘있게 추친했다. 그리하여 1536년 5월 21일 제네바는 확고하게 종교개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538년 칼빈과 함께 제네바에서 추방되어 뇌샤텔(Neuchatel)에 돌아온후 그는 그곳에서 그의 남은 생애 27년 동안 교회를 세우고 지도하면서 보내게 되었다. 그는 1565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그는 그 지역 뿐만 아니라 인근지역에까지도 종교개혁 사상을 전파하였다. 파렐의 첫 번째 기여는 종교개혁 사상의 전파와 옹호에 있다. 그는 확신으로 가득찬 사람이었고, 능력있는 설교자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제네바의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사람이고 나중에 제네바가 종교개혁의 본산이 될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사람이었다. 그는 동료 개혁자들에게 약 350-400개의 편지를 쓴 것으로도 그가 개혁가들 사이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나타내준다. 그는 다수의 변증서들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의 예식서는 그의 생전에 6판이나 인쇄했는데 그것은 완변히 칼빈신학에 입각하여 만든 것이었다.마틴 부처Martin Bucer (1491?1551)마틴 부처는 1491년 11월 11일에 독일 알사스지방의 슈레트슈타트(Schlettstadt)에서 태어났다. 그는 루터보다는 8세 연하였고 칼빈보다는 18세 연상이었다. 그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지역의 라틴어 학교에서 월등한 실력으로 수학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르네상스 휴머니즘과 만났고 새로운 이상을 배양할 수 있었다. 그는 르네상스의 실천적인 면에 관심이 깊어 독일 인문주의 학자이며 신학자인 에라스무스를 깊이 공부하였다. 1506년 15세 때에 도미니칸 수도사가 되어 하이델베르크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 신학을 배웠다. 그는 뛰어난 학문적 소양으로 수도회의 교수로 불리워지기까지 하였다. 그러던 중 1518년에 루터의 글 "자유의지론"을 접한 후 보름스 국회에유카리스트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기억 (Gedenken)이며 감사 (Dankbarkeit)의 잔치를 위한 교회의 소집이다. 성찬은 제사가 아니며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아니다. 떡과 포도주는 상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실제로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임재하신다. 이런 생각은 Bullinger가 1524년에 처음으로 Zwingli와 토론했던 것으로서 Zwingli의 사상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Bullinger에게는 남다른 강조점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모든 인간과 언약을 맺으셨다. 유월절 양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언약을 위한 가시적인 표식이듯이, 단 한번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희생죽음도 모든 인간에 대한 언약의 표식이다. 따라서 더 이상 미사는 필요하지 않다. Bullinger는 성찬을 설명함에 있어서 언약사상을 도입하였다1529년에서 1531년까지 Bullinger는 Bremgarten에서 아주 존경받는 설교자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Kappel 전투 (Zwingli가 1531년 10월 11일에 전사) 이후에 이 곳을 떠나 Zurich로 도피하였다.3. 후계자 (1531-1575)1) 취임Bullinger는 1531년 12월 9일 Zwingli의 후계자로 선정되었다. 이때 Bern, Basel, Appenzell에서도 초빙이 있었지만 Zwingli와의 우정 때문에 Zurich에 남기도 했다. (1531년 8월에 Zwingli는 마지막으로 Bullinger의 집에서 머물렀다. Bullinger는 Zwingli가 길을 떠나면서 자신에게 말했던 것을 전해준다: “Zwingli는 눈물을 흘리면서 세 번째로 나와 작별을 하면서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Heinrich, 하나님께서 그대를 지키시기를 원한다. 주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충성하라 (Gott bewahre dich, und sei treu am Herrn Christo und seiner Kirche)”그러나 초빙과 시간성 (영원한 언약), 넷째로 언약의 의식 (피의 의식: 할례)을 설명한다.(2) 일기 (Diarium 1541년부터)(3) 기독교 신앙의 대요 (Summa Christlicher Religion 1556)Bullinger는 많은 사람들이 Dekaden이 너무 방대하여 접근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그 내용을 압축하는 기독교 신앙의 대요를 정리하였다. 이것은 모두 10항목으로 되어 있다.1. 성경2. 하나님과 하나님의 활동3. 죄와 형벌4. 하나님의 율법 (십계명 해설 포함)5. 은혜와 칭의6. 신앙과 복음의 말씀 (사도신경 해설 포함)7. 기도 (주기도문 해설 포함)8. 성례9. 선행10. 죽음과 종말6) 신앙고백서(1) 첫째 스위스 신앙고백 (Confessio Helvetica prior 1536)1536년에 Bullinger는 로마 카톨릭의 교리와 구별되는 신앙을 표현하기 위하여 스위스의 여러 도시들 Bern, Basel, Schaffhausen, St. Gallen, Muhlhausen, Biel과 연합하여 첫째 스위스 신앙고백 (Confessio Helvetica prior)을 작성하였다. 이 신앙고백서는 방대하지는 않지만 개혁교회의 중요한 교리를 담고 있다. 우선 성경은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근거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어서 하나님과 인간에 관하여 고백한다. 여기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의 부자유성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선택되었고 그리스도는 구원자로 오셨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교회에 관하여 가르치면서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이 고백서는 예배에 관한 교훈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속정부와 결혼을 다룬다. (cf. Walchli, "Bullinger, das erste und das zweite Helvetische Bekenntnis", 94f.).(2) 성찬합의 (Consensus Tigurinus 1549)Bullinger는 Zwingli의 성찬론을 따라 기념과 교제라는 상징적 된다.
    인문/어학| 2013.11.22| 20페이지| 1,500원| 조회(319)
    미리보기
  • 교의학과 신학
    제 2장 신학전반에 있어서 교의학의 위치 요약 정리1. 슐라이어마허의 입장에서 본 교의학적 위치신학 전반에 있어서 교의학의 위치에 대해서는 견해 차이가 적다. 슐라이어마허는 교의학을 역사신학 안에 삽입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의 변증학이라는 저서에서 취한 철학적 입장에서 보자면 신학을 하나님에 대한 학문으로서 파악하기를 금하였고, 신학과 철학을 엄밀하게 구별하는 것은 저절로 얻은 결과이다. 이상과 실재의 통일로서 하나님은 그가 항상 모순 속에 움직이기 때문에 오성 앞에서 인식될 수 없고, 다만 그분은 느낌 속에서 경험될 수 있다. 따라서 종교는 지식도 아니요 행위도 아니며 그 느낌에 대한 확고한 상태이다. 특히 교의학의 과학성은 언어의 교훈적 성격과 조직적인 질서 곧 순수히 형식적인 어떤 것에만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참된 종교인지는 전적으로 교의학 밖에 있다. 이것이 다만 명제적으로 기독교 경건성의 요소들을 해명했다.그에게 있어서 철학에 의존하는 신학의 의존성은, 좀 더 강하게 그의 변증학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밝히도록 했던 철학적 한 부분을, 역사적 그리고 실천적 신학에 선행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따라서 슐라이어마허에 의해서 의도되었던 그 구별은 하나의 완전한 혼합을 초래했다. 일반적으로 그로 인하여 밝혀진 것은 도그마가 과학과의 충동을 피하기 위해서 가능한 크게 종교적 윤리적 내용에 제한되었다는 점이다.많은 신학적 동향에 있어서 기독교적인 경험과 그들의 내용의 묘사를 통하여 하나님, 그의 본질과 속성, 그의 말씀들과 역사에 관한 모든 초월적 형이상학적 진술들을 대신하려는 노력이 있다.주석학과 역사학에 과학적인 방법이 엄밀하게 적용이 될 것을, 반면에 교의학과 실천신학에서는 교회의 고백과 명예직의 필요를 사려했던 교회적 방법이 적용되기를 베르눌리는 바랐다. 양심은 헤겔적인 표상, 즉 진리를 신앙 안에서 표상에 맞게 고백하는 것은 종교의 본질에 속해 있다. 종교학과 신학을 서로 한 학부와 한 신학교 내에 두게 되었을 때, 과학과 삶 사이의 그 결들의 책임 안에 있고 교회 교수요원의 책임 위에 놓여 있지만, 그 때 종교한 교수들은 아주 쉬운 길을 생각하여 삶과 실천과 교회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그러나 역시 성과를 생각함이 없이 어리석은 이론을 최신 지혜로 사람에게 소개하기 쉽다. 이들이 그들의 정신적인 결핍의 감정 에 싸여, 삶을 향한 부정한 타협 외에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어떤 과업에 대한 어떤 열심을 느낄 수 없고, 개인적인 것에 있어서 학생들의 의식 속에 어떤 직책적인 확신을 명심케 하는 일에는 이들이 자포 자기함에 틀림없다.2. 실증주의와의 관계역시 아마 이론적인 이의는 더 심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생각하였던 분리는 실증주의가 과학의 유일한 참된 견해라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무모한 것만은 아니다. 과학자는 연구실 에 들어가자마자 그의 깊고 종교적이고 도덕적이며 철학적인 확신에 대한 침묵을 강요할 수 있다고 전에 어떤 사상가가 믿을 수 있었는가? 그러나 그것 은 자신의 이론과 직접적인 모순에 있다. 왜냐하면 과학적 탐구의 무전제성을 전적으로 앞서서 거절한 전제는 실증주의가 과학의 참된 개념을 제안하고 있다는 인식이기 때문이다.인간이 신학에 있는 도그마들을 논박하지 못한다고 의심할 수 없는 모든 중요한 가설들이 확실히 과학적인 관심이 되는 것은 도그마들이 있기 때문에, 그러나 사람들이 다른 도그마들을 지키고 이들을 그 대신 내밀기 때문이다.기독교 입장에 있는 신학이 실증적인 기초 위에 있는 종교학보다 앞선 자리를 취하여야 한다. 아무리 둘 사이에 차이가 있더라도 그들에게 공통적인 것은 그들이 허공에 매여 있지 않고 신앙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종교학이 실천과 교회를 위하여 교회적인 방법 혹은 교회신학교를 교의학과 실천분야에 귀속시키고 있는 한, 그것으로 기독교 신학이 용납할 수 없는 호의를 그것이 게다가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물질주의 혹은 범신론적인 불신앙은 과학적인 성격을 띠지만, 기독교 신앙은 본래 과학에 속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다(Le coeur a ses raisons, que la raison ne connait pas). 그 때문에 복음은 우리의 의지를 향하고 있다. 계시는 실천적 목적을 가지며 우리의 지식의 증보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의 증진에 이바지한다. 신앙은 오성의 효력이 아니라 의지의 행위이다. 그리고 신학은 사변적인 학문이 아니 라 실천적 학문이다. 이런 추론이 아무리 좋은 것을 내포한다 할지라도 그 전체에 있어서 받 아들일 수 없다. 신앙이 명백히 질적인 것이며 의지의 경향에 속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지금보다 일찍이 아주 잘 관찰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은 자유의지의 행위가 아니다. 사람이 믿으려고 했을 때, 사람이 믿으려 고 한 것을 사람이 믿을 수 없다. 전적으로 임의로 행하려고 하고 그가 좋다 고 생각하는 것을 수용하는 의지의 산물인 세계관은 없다. 이것을 가르치면 종교신학의 영역에서 절대 무관심주의와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며 역시 신앙의 본성에도 위배되는 것이다.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그 본성 때문에, 예를 들어 순전히 역사적인 증거들의 보고(報告)와는 전혀 다른 방식에서 주체에 영향을 끼친다. 시실 그것은 의지에로 향하고, 의지 없이는 어떤 신앙도 일깨워질 수 없다. 그러나 전적으로 신앙은 의지 밖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지만 그러나 의지의 산물은 아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의 우리의 수용으로부터 독립적인 존 재, 곧 색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가 봉사나 귀머거리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똑같이 우리의 신앙에 앞서서 우리의 신앙 밖에 확고히 서 있는 객관적인 내용을 가지며 보유하고 있다.피조물은 그 자체의 목적이 아니다. 개인이든 사회 혹은 국가이든, 그리고 참과 선과 미 추상들까지도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통하여 그리고 역시 하나님 때문에 존재하기 때문 이다. 과학 역시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고 그분의 영광 안에서 그것의 궁극 목적을 갖는다. 이것은 또한 특별히 신학의 경우에 그리고 역시 하나님에게로 이 다. 그러나 바로 신학은 어떤 한 피조물 안에, 역시 똑같이 실천과 경건과 교회 안에 그것의 궁극 목적을 갖지 않기 때문에, 모든 과학의 중심에 자신의 고유한 성격과 본성을 보존하고 있다. 진리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그 지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이다.3. 교의학의 과제교의학 과제는 하나요 동일하다. 그것은 그 본성에 따라 종교적 진리의 과학적 표현, 하나님의 말씀의 해설(enarratio verbi Dei), 성경의 보고 (thesauri Sacrae Scripturae) 의 표현,교훈의 본의 전파 (Trapa&xns' eW tuttov &8axrp, 롬 6:17)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안에서 하늘의 교훈(doctrina coelestis)에 형식 (forma)과 형상(imago) 을 갖기 때문이다. 교의학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말씀의 단조로운 형태와 어렴풋한 비유이다. 또한 그것은 자신의 자유로운 방식에 따라 하나님이 이전에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선지자를 통하여 그리고 마지막 날 그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던 것을 따라서 생각하고 말하는 유오한 인간의 노력이다. 교의학이 가장 좋은 그의 과업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은 방법에 대한 물음이고 다음 단락에서 대답될 것이다. 여기에서는 다만 사실의 중요성과 교의학과 변증학과 윤리학과의 관계를 논술하고자 한다. 교의학의 개념과 과제, 방법과 위치에 관해서는 오늘날까지 입장의 큰 차이들이 있어 왔다. 신학분야의 각 그룹이 차례로 그것을 수용하고 지금 모든 신학의 머리에 놓여있다. 그리고 다시 겨우 실천적 분야로서 의미가 적고 신학의 마지막 부분에 두거나 그 자체가 전적으로 자신의 유업에서 멀어지고 있다.4. 교의학과 윤리학교의학에 가장 가까운 것은 윤리학이다. 옛 부터 도그마라는 말은 두 가지 즉 믿음의 조항(articuli fidei)과 십계명 (praecepta decalogi), 믿음의 도그마들 (dogm포함하였다도덕성과 종교는 내용적으로 구별되지는 않지만 형식적으로 구별되고 있다. 종교가 도덕법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여기게 했고 그 성취를 쉽게 만들 고 있다. 종교는 결코 도덕의 기초가 아니라 그를 위한 도움 수단이다. 이런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은 종교와 도덕과의 관계를 표상하였다. 슐라이어마허 와 특별히 로테 (Rothe)의 경우 윤리학이 기독교로부터 유래되지 않고 오히려 기독교가 윤리학 안에 흡수되고 있다. 역시 크라럽 (Krarup)과 헤르만 (Herrmann)과 같은 새로운 도덕론자의 경우 기독교 종교가 도덕의 기초가 아니라 그것은 다만 우리에게 자체적으로 존재하였던 도덕 계명을 더 잘 실천하도록 능력을 준다는 것이다.트뢸치 (Troeltsch)는 교의학을 통한 윤리학의 모든 기초를 결정적으로 부정하면서, 그것을 인간 생애에 마지막 목적의 교리로서, 그것을 위해서 인간이 가족과 국가와 사회 등에서 살아야 할 도덕적 선들의 지침으로서 파악 하고 있다. 이 입장으로부터 한편 사람들은 모든 종교로부터 독립적인 하나 의 도덕, 그리고 생물학적이고 사회학적인 기초에 의존하는 자연주의적 윤리학으로 발전시켰고 그 자체가 지금까지의 모든 도덕적 가치의 변경으로 발전 하였다?그와 반대로 도르너 (Domer), 부트케(Wuttke), 팔머 (Palmer), 루트 하르트(Luthardt), 바이스(H.Weiss), 쾨스틀린(KSstlin),샤르링 (Scharling), 프랑크(Frank), 켈러 (Kahler), 퀴벨(Kiibel) 등의 다른 사람 들은 더 기독교 종교와 연관해서 윤리학을 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이것은 아직 완전한 방식으로 구별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거기 에서는 종종 신학과 철학 사이에 중용 입장이 수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과 고백과의 관계가 규칙적으로 애매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그 때문에 교의학과 윤리학 사이의 구별은 거의 항상 순수한 소원으로 남고 있다. 그것은 둘 사이의 구별이 지식과 행위, 구원론과 삶론, 교회와 개인 안에 .
    인문/어학| 2013.06.07| 5페이지| 1,500원| 조회(140)
    미리보기
  • 사회복지서비스의 전달체계
    사회복지서비스의 전달체계정의 : 사회복지행정이란 사회복지정책을 구체적인 사회복지서비스로 옮기는 과정을의미한다. 이러한 생정 과정에는 인력과 재정을 바탕으로 한 조직구조와 관리운영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이루어진다.1.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중요성사회복지에 있어서 전달체계란 급여 또는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수혜자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어떠한 조직을 통해서 실천할 것인가의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란 ‘지역사회적 맥락에서 사회복지 급여를 공급하는 자들 간의 조직적인 연계 및 공급자와 소비자들 간의 조직적 연결’로서 정의된다.2.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구분1) 구조기능적 구분- 정의 : 사회복지서비스를 공급하는 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그들 간에 구조와 기능이어떻게 분화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사회복지 서비스들이 기획되어 최종적으로서비스 수급자들에 이르기까지 구조와 과정을 서비스 전달체계라고 본다면, 그 안에다수의 조직과 프로그램들이 각자의 분화된 기능들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집행체계 : 서비스 수급자들과 직접대면적인 사회작용의 관계를 통해 서비스를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있는 것들을 묶어 집행 체계라고 한다.- 행정체계 : 서비스를 기획하고, 지휘하고, 지원하고, 관리하는 행정기능들을 중심으로묶여지는 조직과 프로그램들을 행정 체계라 한다.2) 운영주체별 구분- 민간체계 : 복지재단, 자원봉사단체, 사회복지협의회, 이용 및 수용시설들, 개인 등수평적인 체계망- 공공체계 : 보건복지 가족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조직 관련 부서들의 위계적인 체계망공공과 민간은 서비스 전달을 위한 자원 동원의 양식에서 우선 구분된다. 공공 체계는주로 강제적 세금 자원에 의해 유지되고, 민간 체계는 기부, 위탁, 후원, 자원봉사 등과같은 자발적인 자원들에 의해 유지된다.3) 서비스별 네트워크에 의한 구분- 정의 : 지역사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서비스의 수요자와 공급자들 간의 네트워크를가상하는 것이다.- 의의 : 사회복지서비스는 수급자로서의 클라이언트, 즉 서비스에 대한 수요자들의욕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각 서비스별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전달체계를통해서만 그러한 욕구들이 적절히 충족되고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때문이다.3.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주요 원칙1) 전달체계의 원칙의 기본 요건- 통합성- 계획성- 접근용이성- 책임성2) 전달체계의 사정- 충분성 : 지역사회의 대인적 혹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충분한 양,충분한 질, 충분한 기간의 서비스 제공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접근성 : 서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서비스를 활용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어야한다.- 연속성 : 전달체계 내의 모든 기관과 프로그램들이 서로 간에 얼마나 밀접하게 근접해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비파편성 : 연속성과 관련된 기준으로, 서비스의 편중이나 누락에 초점을 둔다.전달체계의 파편화는 비록 서비스 프로그램들이 전달체계 내에 존재하고 있으나이들 간의 연계를 어렵게 하는 조건들이나 불확실성이 존재함으로써 발생한다.- 책임성 : 전달체계에 주어진 사회적 위임과 기대들을 전달체계가 적절하게 소화하는지의여부이다.3) 전달체계의 균형 유지찬정된 자원이라는 현실적인 제약 하에 효과적인 서비스 전달체계를 구성하기 위하여 각 조건들 간의 최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조정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현재 전달체계의 어떤 조건들이 가장 심각하게 문제되는지를 파악하고, 주어진 자원을 그러한 조건들의 개선 노력에 우선적을 할당하는 것이 필요하다.4) 전달체계의 통합- 완전 통합의 방법 : 각각의 조직들에 의해 제공되던 서비스들을 통합하기 위해 이들조직을 묶어서 완전히 새로운 단일 서비스조직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단순 조성의 방법 : 각 조직이 자신들의 인적, 물적 자원 및 구조 등은 계속해서독립적으로 유지하면서, 서로 간의 관계를 보다 밀접하게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다.4. 사회복지서비스 접근성과 활용서비스 활용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한정된 자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클라이언트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다.1) 서비스 접근성과 활용서비스 접근성이란 조직의 관점에서는 적절한 서비스를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사람에게 주선하기 위한 시도로서, 개인들의 서비스 활용에 대한 장애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혹은 없애기도 하는 모든 의도적인 활동들을 말한다.- 서비스의 과활용 : 욕구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서비스를 이용한 경우- 서비스의 저활용 : 욕구를 가진 인구가 서비스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말한다.- 접근효과성 지표 : 서비스 활용에 있어서 욕구를 가진 인구들이 얼마나 적합하게서비스에 접근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2) 서비스 활용과 비용- 저활용에 따른 비용 : 욕구를 찾고 있으면서도 서비스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나해결되지 않은 사회적 문제들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이다.- 과활용에 따른 비용 : 기회비용 혹은 잠재적인 개인적, 사회적 급여의 상실을 의미한다.- 행정 비용 : 욕구를 규정하는 것과 관련해서 프로그램 활용을 선택적으로 촉진하거나혹은 억제하는 노력에 드는 비용을 말한다. 즉 과활용과 저활용을 줄이기 위한 행정적인노력에 투입되는 비용이다.3) 서비스 활용과정의 장애- 정의 : 한 개인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활용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일련의장애들로 구성된 것이다.- 동기, 인지, 지식 : 개인들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기가 발생해야 한다. 이것은 외부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지를 통해서 발생한다.문제에 대한 인지와 동기가 이루어졌다면, 어디에서 도움을 찾아야 할 것인가를 아는지식도 필요하다.- 지리적 장애- 심리적 장애 : 도움을 청하는 과정에서 극복되어야 할 또 하나의 장벽은 심리적인것이다.- 선별기준 장애 : 재정적 장애, 자격요건 장애, 절차 장애, 욕구진단 장애- 자원의 가용성 : 대부분의 사회복지서비스 조직들은 한정된 예산의 압박을 받고 있다.정부 예산의 경우 대부분 고정되어 있거나, 서비스 수요의 변동에 크게 구애받지않고 점증적으로 증액이 이루어지는 것 보통이다.5.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실태- 정의 : 사회복지서비스를 수요자인 클라이언트에게 ‘누가’직접 제공하는가 하는공급주체의 문제로서 여기서 ‘누구’란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자인 공,사 단체와 조직체를의미한다.6. 공,사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문제점1) 공적 전달체계의 문제점- 일선 행정체계의 획일성으로 사회복지 담당자가 전문성을 발회하여 자율적으로 업무를수행하기 어렵다.- 상의하달식의 수직적 체계로서 지역 특성과 욕구를 반영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할여건이 미흡하다.- 복지 업무가 읍, 면, 동과 시,군,구의 별개의 행정단위체계로 수행되며 대상 분야별별도관리가 이루어져, 대상자에 대한 중복지원 또는 누락의 가능성으로 인간 급여의효율성 및 제도 간의 연계성이 부족하다.- 취약계층의 자립, 자활, 재활을 가능하게 하려면 상담 등의 전문적 대인 서비스가필요하고 사후 보호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나, 현재 배치된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들은업무가 과중과 주변 여건의 미비로 이를 실행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사회복지 관련 위원회와 위원의 활동 부진을 들 수 있다.
    사회과학| 2011.06.27| 4페이지| 1,000원| 조회(148)
    미리보기
  • 설교학 개론 소논문
    Report실천 신학 개론 요약 & 서평과 목 : 실천신학 개론교 수 : 이 정 현 교수님학 번 : 131205이 름 : 김 상 국대한예수교 장로회대 신 총 회 신 학 연 구 원제 출 일 : 2013. 3. 201. 요약 정리제 1장 목회학 (목회학 ~ 예배학107~201, 94p)1. 목회의 정의와 필요성성경에서 목회의 정의를 보자면 먼저 구약에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목자이시고 이스라엘은 그의 양떼라는 것을 볼 때 일련의 목양을 목회라고 할 수 있다. (시편 23편)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목자라고 표현하신 것은 예수님께서는 그만큼 양들을 돌보며 인도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2. 목사직의 정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사자라고 할 수 있고, 말씀을 맡은 파수꾼이며,교회와의 관계에서 청지기라고 할 수 있다. 현대 목사는 설교자이면서 교사, 조직자, 상담자, 심방자, 그룹 지도자, 교육자, 친구,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자이다.3. 목사의 기본 자격 요건으로는 먼저 이중적 소명을 받아야 하고 말씀을 연구해야 하고 기도의 사람이어야 한다.4. 목사직의 실행 영역은 크게 예배, 교육, 심방, 상담, 선교, 행정가, 복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요약을 하자면, 예배에서 중심 축은 설교, 성례, 기도이다. 교육적인 부분에서는 그리스도를 믿고, 닮아가게 하겠다는 분명한 성경적 목적을 가지고 적당한 교수법을 가지고 가르쳐야 한다. 심방과 상담은 교인들의 형편과 처지를 살펴서 그들을 격려해야 한다. 선교적인 측면에서는 교회와 개인이 선교사를 위해 물질을 후원하는 것도 바람직하며 기도하는 것도 필요한 사항이다. 교우들을 선교집중적인 교회가 되도록 교육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목사는 교회를 조직하고 당회를 조직하고 제직회를 조직하고 교육 부서를 조직하고 전도팀을 조직하고 중보 기도팀 등을 조직하는 것을 해야 한다.제 2장 교회 개척론1. 교회개척의 필요성과 중요성교회 개척이 필요한 이유는 성경적이고, 교단의 생존과 관련 있고, 새로운 지해야 한다. 두 번째 은사중심으로 사역하되 교인들의 은사를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 세 번째 열정적인 영성을 가져야한다. 영성은 기도와 말씀을 통해 성도들의 변화된 삶이다. 네 번째 기능적인 구조를 만들어라. 성장하는 교회의 구조는 항상 유동적이다. 다섯 번째 영감 있는 예배를 드려라. 여섯 번째 전인적 소그룹을 형성하라. -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의 삶 속에 적용시키는 전인적인 소그룹이 활성 되어야 한다. 일곱 번째 전도를 하라. - 교회에서 전도의 은사를 받은 자들을 발굴하여 그들에게 사역을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불신자들의 당면 문제와 필요를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 현존하는 불신자들과의 관계유지가 필요하다. 여덟 번째 사랑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제 3장 예배학1. 예배의 정의와 중요성예배의 정의를 종합적으로 하자면, ‘존경의 가치가 있는 분에게 거기에 걸맞는 존경과 애정을 표하는 진실한 행위’를 의미한다. 예배를 드리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이다. 교회의 본질에서 중요하고, 은혜의 수단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기뻐하시며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다.2. 예배의 변천사를 보자면 우선 구약에서 모세 이전의 예배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인 선과 믿음의 예배, 노아의 제사는 감사의 예배,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인 믿음의 예배를 찾을 수 있겠다. 성막 예배, 솔로몬 시대의 성전 예배 포로 시대의 회당 예배로 변화 되고 있는데, 제사 형식에서 복잡한 제사 의식에서 회당 예배가 되면서 말씀을 읽는 형식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신약에서는 예수님 당시의 제사는 성전과 회당예배가 드려지는 것을 볼 수 있고, 초대 교회로 넘어가면서 유월절 예배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 예배로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내용은 그리스의 부활과 복음, 구원의 기쁨, 성도의 삶 등의 내용으로 변화되었다.종교개혁시대에서 청교도시대를 보자면 칼빈의 주장을 따라 성경만이 유일한 리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말씀으로 세울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시키는 목적도 있다.3. 제자훈련의 성경적 배경에서 구약성경에서는 모세와 여호수아의 관계, 엘리야와 엘리사의 관계, 사무엘과 선지자의 생도들, 다윗 성가대의 스승과 제자, 이사야와 그의 제자, 예레미야와 바룩을 볼 수 있고, 신약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훈련, 베드로의 제자 훈련, 바울의 제자훈련을 보자면 소수 집중의 방법, 새신자를 영적 자녀로 삼는 방법 : 바울은 충성스러운 사람을 만났을 때는 반드시 제자로 선택하여 훈련을 시켰는데 그의 교육 방법은 간단명료한 요점식 가르침과 귀납적 교육방법, 일문일답식의 토론식 교육 방법, 팀 워크 방식으로 훈련시켰다.4. 제자훈련자로서의 예수님의 자질로는 우선 선택성- 소수를 선택, 충실한 사람, 영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을 선택 하셨다. 두 번째로는 주님은 자기의 관심과 사랑과 시간과 힘을 집중하셨다. 세 번째로는 자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메시지를 효과나 내용면에서 손실 없이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다. 네 번째로는 피훈련자들이 자신을 완전무결하게 알 수 있을 때까지, 피훈련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의 책임에 충실하며 기탄없이 또 충분하게 자신을 노출하여 열어 보일 수 있는 위대한 훈련자의 자질을 말한다. 다섯 번째로는 임파워먼트의 원리이다. 여섯 번째로는 지도자가 자신의 생각이나 개념을 구체화하여 피훈련자들이 실제적인 방법으로 지도자의 이상을 경험할뿐더러 같이 나눌 수 있게 하는 자질을 말한다. 일곱 번째로는 이해 평가의 자질로 내면을 살펴보고 그 사람에 대한 정확하면서도 성숙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다. 여덟 번째로는 초지일관의 원리로 훈련자가 자기의 책임 대상인 피훈련자들에게 끝까지 집착하여 엄청난 도전과 실망할 일들이 있거나 또는 이렇다 할만한 확실한 결과들이 없는 상태에서라도 효과적인 훈련의 전 과정을 끝마칠 수 있는 능력이다.5. 제자도란 제자의 자질이다. ‘기독교에서 제자도가 빠진 기독교는 언제나 그리스도가지만 우리에게는 그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하나님 앞에 충성스런 종이 되기 위해서라도 전도는 해야 하는 것이다.4. 예수님께서 전도를 시작한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A.D. 26~27년 사이로 추정을 할 수 있다. 그분의 전도 방법은 죄에 대한 심판과 구원에 대한 명확한 기준으로 말씀하셨지만, 사랑과 은혜로 그리고 성실과 열정으로 전도를 하신 분이셨다.5. 전도의 내용으로 보자면 최우선을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전해야 하고, 인간의 죄인 됨과 회개를 선포해야 하고,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반드시 회개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 기도로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하고 영접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해야한다.6. 전도의 종류로는 임재전도와 선포 전도, 설득 전도, 개인 전도 등 많은 방법이 있다. 먼저 임재전도는 그리스도인 세계관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복음주의적이지는 않다. 선포전도는 복음을 선포하고 불신자가 자유로운 결정을 내리게 맡기는 형식이다. 설득전도는 예수그리스도를 선포하고 교회의 회원이 되도록 설득하는 전도이다. 개인 전도는 개인의 삶을 통해 관계를 맺어 자연스럽게 교회로 인도하는 전도이다. 그 외에 많은 전도법이 있다.7. 전도학의 미래 전도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하기 위한 노력과 방법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개발되어야 한다.8. 설교학 (설교학 ~ 교회 성장학 373~ 525, 299p)1. 설교학의 정의와 위치를 살펴보면 설교는 Kerygma, Didache, Parakalleo, Homilia, Predicatio, Sermon, Contio, Preaching등의 용어에서 정리를 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 공적으로 알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에 의해 부름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회중들에게 선포, 설득하는 거룩한 행위‘라고 정의 할 수 있다. 학문으로서의 위치에서 카이퍼는 ility, Spiritual gifts, Humbleness, Integrity, Pioneer, 로 정의 할 수 있다. 리더십의 본질로는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 존경심, 변화시키는 능력, 비전을 전달하는 능력, 사람을 키우는 훈련, 조직을 운영하는 능력, 섬기는 봉사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따른 리더십의 세 가지 요소로는 Purpose, Process, People.이다.2. 리더십의 성경적 배경에서 살펴보면 지도자로서 합당한 사람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사람이여야 하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모세, 기드온, 바울을 들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지도의 힘의 원천이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나와야 한다. 이것을 잘 하기 위해서는 말씀, 기도, 순종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다윗을 통해서는 올 곧은 마음, 충성, 자기 관리, 기능 개발, 다른 사람을 세움, 인간관계, 희생적인 사랑, 겸손, 회개의 생활을 볼 수 있고, 느헤미야를 통해서 본다면 섬김, 판단력, 극복, 준비와 계획, 기도, 희생, Empowerment, 목적의식이 분명한 지도자였다. 예수님께서는 가슴, 머리, 손, 습관에 대한 질문을 통과해야 하고, 영혼을 위한 비상 번호를 암기하고, 동기를 알아내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행동 지침도 마련되어야 하고, 기도를 해야 한다. 바나바를 살펴보면, 동역자를 세우고, 격려하고, 청렴하며, 관용적이다. 바울은 사도적형,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아버지형이며, 설득자형, 보호자형, 모방형이며 상호일치형이고, 원인 해결 형이다.3. 리더십의 유형을 정리하자면 전략가형, 전문가형, 관리자형, 개혁자형, 성취가형구비자형, 최고 경영자형으로 나눌 수 있다.4. 좋은 리더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조직원들을 적재 적소에 잘 배치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목표와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추진 할 수 있도록 하는 의사 전달 능력이 있다. 다음으로는 목표와 비전은 리더 혼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 조직이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팀이 서로 잘 융화요하다.
    학위논문| 2013.05.27| 10페이지| 3,000원| 조회(391)
    미리보기
  • [교육학] 기독교 교육이란
    기독교 교육이란 무엇인가?들어가는 말현대의 신학의 영역에 있어서 이제 기독교교육이란 하나의 뚜렷한 분야로서의 자리를 매김하면서, 교회와 신학에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학으로서의 기독교교육과 실천으로서의 기독교교육을 새롭게 정리하며 이해하는 작업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기독교 교육의 과정들이 우리의 교회현장속에서 살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본 글에서는 먼저 기독교교육에 대한 어원적 설명과 정의를 내려보고, 그 후에그리고 그 이후에 육하원칙에 따라서 1)기독교 교육의 주체(who)가 누구이며, 2)기독교교육의 장소(where)는 어디이며, 3)기독교교육의 내용(what)는 어디이며, 4)기독교rydbbr의 근거(why)가 무엇이며, 5)기독교교육의 방법(how)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서술을 해보려고 한다.몸 말1)정의 : 먼저, 교육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어원적인 의미를 살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교육(education)이란 ‘이끌어낸다'(E(out) + Ducare(to draw))란 뜻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에서 유래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 뜻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내부에서 무엇인가를 이끌어내도록 만드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근거할 때 “기독교 교육”이라고 말을 할 때눈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실존이 무엇인지 깨우쳐주고, 회개를 촉구하며 이끌어내는 것과 동시에 복음으로 이끄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적인 이끌어냄의 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2)기독교 교육의 주체기독교교육은 엄밀히 말할 때 하나님의 교육에서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삼위일체의 하나님 자신이 교육하시는 하나님의 전형적인 모범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특별히 신명기에서 그러한 모습을 보여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 역시 교육자로서 우리 기독인들을 교육하고 계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삶의 모든 순간순간을 지도하시는 성령께서도 우리들에게 가르침, 즉 교육이라는 것을 쉬지않고 계시기 때문이다.또한 교육의 주체자는 가정 혹은 교회, 그리고, 그 안의 부모님, 교사로 볼 수 있겠는데, 엄밀히 따진다면 교육적인 활동을 하는 모든 자가 교육의 주체가 된다고 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가 과연 진정한 기독교 교육의 주체인가?’ 하는 것은 다음의 사실을 고찰해볼 때 명확해지리라고 본다. 첫째, 기독교교육의 주체자는 신적인 의도성(divine intentionality)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둘째, 하나님의 가치기준(value of God)을 가지고 교육해야하며, 셋째, 시간성안에서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안에서의(eternal time) 교육을 행해야 하며, 넷째, 명확한 성서적 근거(Biblical foundation)를 가지고 교육에 임하는 자가 되어야하며, 교사, 학생, 교재, 그리고 성령 4자간의 인격적 상호작용(Interactional action)을 하도록 해야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성을 전제로 교육하는 자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2)기독교 교육의 장소일반적으로 ‘기독교 교육의 장’을 논할 때, 교회가 제일 먼저 언급이 된다. 왜냐하면 기독교교육은 “구속받은 공동체”인 교회가 우선적 환경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그 공동체안에서 역사하시고, 그 구성원들은 누구나 그의 역사에 동참하여 교육하는 일에 서로 계약되어 있다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쉐릴의 경우 만남이 교회안에서 이루어지므로 기독교교육의 장을 교회로 이야기하며, 하우의 경우는 교회의 사역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므로 기독교교육의 장은 역시 교회라고 말하며, 스마트의 경우는 교회의 사역은 본질적으로 선포와 가르침이라고 말한다.본인은 물론 이러한 주장들에 동의를 하면서도 이제는 “교육의 장”으로서의 기독교 가정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독교 교육의 형성과 틀은 가정에서 이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며, 또한 피교육자의 입장에서 보면 종교적 심성과 대부분의 인성형성시기를 가정에서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다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인의 가정교육을 보더라도 그들의 대부분의 종교교육이 가정에서 이루어짐을 알 수 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의 기독교교육에 있어서도 가정내에서의 기독교교육이 이루어지도록 부모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3)기독교 교육의 내용(Content)이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의 문제라고 이해한다. 신정통주의 신학이 자유주의신학을 극복하고 일어났던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었던 것처럼, 본인은 기독교교육은 윤리,도덕교육과는 본질상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인간으로 하여금 은총의 수준에 따라 살 수 있는 ‘종교적 인간’으로 교육하는 내용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본다. 교육 내용을 ‘하나님 나라’와 그로 인한 가치개념의 변화를 교육의 중심 내용으로 삼아야 하리라 본다. 이 두 내용을 일반적인 말로 바꾼다면, 바른 신앙과 바른 지식, 그리고 바른 삶이 될 것이다.4) 기독교 교육의 근거교육의 근거는 역시 말씀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먼저 구약의 경우 신명기 6:6-7의‘새기고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말씀과 다음 신약의 경우 마9:35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내용 중 teaching, preaching, healing의 한 내용으로서 teaching속에서, 또한 마28:21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육명령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또한 교육은 교회의 사명인 선포(didake), 봉사(diakonia) 등과 함께 그 본질적 활동으로서 그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인문/어학| 2004.10.20| 3페이지| 1,000원| 조회(1,088)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30
130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20
  • A좋아요
    39
  • B괜찮아요
    37
  • C아쉬워요
    19
  • D별로예요
    15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6일 수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9:59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