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국어의 발전은 우리 민족의 발전과 필연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국어의 올바른 보존 없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한글은 외래어, 외국어의 사용으로 인해 그 위치가 위협받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정보화,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영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초등학생들에게 영어 교육을 실시하는가 하면, 급기야 ‘영어 공용화’라는 주장까지 등장하여 국어를 더욱 움츠리게 하고 있다.오늘날 세계는 한 울타리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살수밖에 없으며, 언어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런데 언어는 그 민족의 정신이기 때문에 언어의 상실은 그 민족의 멸망과 같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국제화, 정보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글의 우수성을 인식하고, 세계의 각종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우리말을 체계화해야 한다. 또한 한글의 우수성을 바탕으로 한글의 세계화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Ⅱ. 본론1. 한국어의 우수성(1) 명료한 창제목적과 과정오늘날 이 지구상에는 여러 문자가 사용되고 있지만, 한글처럼 만든 사람과 목적이 분명한 글자는 흔치 않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는데, 한 나라의 임금이 백성들을 위해 새로운 문자를 만든 예는 한글이 유일하다.세종 임금은 그 때로서는 드물게 볼 수 없는 민족 자주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 때의 지식인들은 중국만이 훌륭한 나라요, 중국 문화만이 본받을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모든 면에서 중국과 같아지기를 힘쓰는 사람이 많았다. 그 가운데서는 글까지 같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라고 살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세종 임금은, 우리는 중국 사람이 아니며 또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국민에게 역설하였다. 훈민정음 서문에서 세종 임금이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서, 중국 글자로 우리말을 적을 수 없다.”고 한 것은 바로 이 정신의 민정음은 세종임금의 민족 자주와 민본정신, 그리고 학자적 자질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2) 한글의 독창성한글은 세계 어느 문자보다도 독창적이다. 한글의 독창성은 훈민정음이 표의 문자인 한자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표음문자라는데 있다. 중국의 글자는 표의문자로서, 한 글자가 하나의 단어를 이루기 때문에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글자가 생겨났다. 게다가 한자는 부수, 획수, 필순, 독음, 해석 등이 매우 어려워 배우기도, 익히기도 어렵다. 그래서 한평생 한문학을 하는 중국 사람도 겨우 한자의 3분의 1 정도밖에 모른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중국에는 문맹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간자체를 고안하여 사용하게 하고 있는데, 역시 한글에 비해 너무 어렵고 표현에도 한계가 있다.일본의 가나는 중국 한자의 영향을 받아 고안해 낸 글자로서, 50개의 음을 나타낼 수 있는 표음문자 중의 음절문자이다. 일본의 가나는 음절문자이므로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음절을 나타낸다. 그래서 한글의 자모보다 그 숫자가 많은데도 표현할 수 있는 음에는 한계가 있다. 24개의 최소의 자모만으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표현 할 수 있는 한글에 비해 많은 한계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이에 비해 한글은 소리글자이다. 소리글자는 그 수가 적을수록 좋다. 여러 나라의 소리글자의 글자 수를 보면, 이탈리아어 21개, 라틴어 23개, 한국어와 그리스어가 2개, 러시아어 35개, 일본이 73개이다. 한글은 24자로 11,172개의 음절을 나타낼 수 있다.또한 영어와 같은 로마자가 뜻 단위로 이루어져 있어서 많은 낱말을 일일이 배워야 하는 반면에 한글은 24자만 알면 모두 적을 수 있다. 따라서 훈민정음 해례 서문에 “슬기로운 이는 아침 먹기 전에,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깨우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아침나절이면 배울 수 있는 쉬운 글이라고 하여 한글을 ‘아침 글’이라 부르기도 했다.(3) 한글의 과학성한글의 과학성은 한글의 과학적인 제자(制字)원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즉 한 곧 하늘을 상징하는 ‘?’, 땅을 상징하는 ‘ㅡ’, 그리고 사람을 상징하는 ‘ㅣ’ 이렇게 세 가가지 기본자를 만든 다음, 나머지 모음 여덟 낱자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는 그 기본 낱자를 다시 결합시켜 만들었다.이처럼 한글은 기본 낱자를 바탕으로 다른 여러 낱자를 만들고, 또 그 낱자들을 결합해서 수많은 글자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과학적인 창제 원리는 세계 어느 문자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도 500여 년 전에 이러한 원리가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현대 과학자나 언어학자들이 한글의 과학성을 높이 사는 것이다.(4)정보화 가능성한글이 다른 언어에 비해 정보화 시대에 알맞은 글자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그 근거로 ‘모아쓰기’를 제시하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는 컴퓨터가 사람이 쓴 글을 읽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의 원리는 컴퓨터가 문자의 형태를 기억하고 있다가 읽은 내용을 이 기억된 문자와 비교하여 일치하면 해당 문자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 때, 인식하는 단위는 글자 단위가 가장 효율적이다. 하나의 글자는 적당히 복잡해서 다른 글자와 구별이 쉽고, 또 글자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아서 컴퓨터가 기억하기도 쉽기 때문이다.일본의 한 산업 문제 분석가(이타미 히로유키)는 그의 저서 『일본의 컴퓨터 산업 : 왜 침체하고 있는가?』에서 일본의 컴퓨터 산업 저해의 가장 큰 이유로 ‘두터운 일본어의 벽’을 제시하고 있다. 즉 일본이 많은 한자와 가나 문자 등을 혼용해서 쓰는 복잡한 언어 표기는 정보화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우리는 일본과는 달리 한자를 쓰지 않고도 한글만으로도 글자 살이를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이 지난 50년 동안 실증되었다. 더구나 한글은 로마 알파벳보다 뛰어난 정보과학 기능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영어의 ‘school'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생각해 보자. s, c, h, ...를 각각 인식할 경우 획이 단순해서 다른 것과 구별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단어 자체로 인식해야 할까? 그러나 이 경우에한 한민족이 약소민족이라는 생각은 실상과 어긋난다.최근 외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175개국과 수교를 맺고 있다. 그리고 한국어 및 한국학을 강의하는 나라가 30여 개국에 이르며, 이러한 대학 및 연구기관만도 약 200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에서는 대학에 한국학과 설치에 붐이 일고 있으며, 동남아에서도 한국어 학습의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학 입시 선택과목으로 한국어를 채택하였다.한편, 국어 어휘들이 세계어로 인정되어 외국의 사전에 오르는 예들도 있다. 우리의 전통 음식인 ‘김치’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 경기에 사용되는 용어들, 예컨대 ‘차렷’, ‘시작’, ‘갈려’, ‘그만’, ‘얼굴’, ‘몸통’, ‘아래’, ‘하나’, ‘둘’ 등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 되었다.(2) 국어의 세계화로서의 가능성국어의 세계화로서의 가능성은 국어가 과연 정보화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언어인가라는 물음과 일치한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긍정적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국어는 정보화 시대의 가장 중요한 수단인 컴퓨터를 이용하는데 효과적이다. 몇 개 안되는 기본 낱자를 입력하면 글자가 이루어지며, 글자와 글자가 만나 낱말을 만들어 내는 원리가 컴퓨터의 계산 원리와 일치하기 때문이다.또한 한글은 발음을 매우 규칙적으로 표기해 주는 문자이다. 이것은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드는 데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3) 국어의 세계화 방안한국어의 국제화를 추진하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한국어를 세계에 보급하고 심어야 하는 데에는 단계가 있다. 우리말을 세계에 보급, 전파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말이 국제적으로 손색이 없는 체계적인 언어가 되어야 한다. 정비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국제적인 언어가 된 뒤에는 세계 도처에 우리말을 국제적인 언어가 되도록 보급해야 하여 정비해야 한다.언어의 운용에 관한 문제는 규범의 적용 문제이다. 그러면 우리말의 규범은 잘 지켜지고 있는가? 아니다. 오용과 혼란이 심한 상태에 있다. 비표준어의 사용, 맞춤법의 오용, 비문법적인 표현 등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밖에 외래어의 남용, 비속어의 사용도 문제이다. 이들을 순화하여 쓰도록 해야 한다.국어의 세계화 방안 중 대외적인 단계는 국제화의 기본 단계이다. 우리 동포와 외국인에게 한국어 교육을 꾀함으로 세계에 한국어를 보급, 전파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행하여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첫째, 자격을 갖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사는 일반 “국어교사”와는 다르다. 그는 한국어와 이중 언어 교육 이론을 알아야 하며, 우리 국어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현지 언어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하고, 표준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국어 교사를 양성하는 기관이 없다. 하루 빨리 제도적으로 이러한 교사양성 기관을 만들어 현지에 파견, 교육에 임하도록 해야 한다.둘째, 적절한 학습 자료를 개발하여야 한다. 교육을 하자면 교재가 필요하다. 더구나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자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우리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에서는 이러한 교재 개발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셋째, 한국어 능력 검정 시험 제도를 마련하여야 한다. 한국어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습 성취도가 객관적으로 측정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간 한국어 국제화에 제대로 눈을 뜨지 못했고, 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아 평가 도구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미국에서 SAT가 실시되고, 일본에서 한국어 능력 검정 시험을 보이고 있는 현실이고 보면, 하루 속히 한국어 능력 검정 시험 제도를 마련하여 이를 운영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야 한국어 학습이 본궤도에 오르게 된다. 한국어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교사, 교재, 평가의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넷째,
일반적으로 상담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특별한 문제 아동이나 비행 청소년들, 또는 정신 이상자들 만이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상담의 본질적인 목적이 청담자로 하여금 좀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청담자의 행동 변화를 촉진시키는 것에 있음을 생각한다면, 상담은 상담실이라는 정해진 공간뿐만 아니라 생활 곳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포함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친구의 진학문제, 이성문제, 가족문제 등 우리가 흔히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이러한 것들이 모두 상담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상담 전문가와의 차이는 있으나 이는 본질의 차이가 아닌 수준과 전문성의 차이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이 책의 저자 역시 상담은 일상 생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상담의 중요성을 설명해주면서, 동시에 어떻게 해야 효율적인 상담으로 이끌 수 있는가에 대하여 다섯 가지로 나누어 말해주고 있다. 이 다섯 가지는 함께 느끼는 마음, 충고가 아닌 수용이 필요하다는 것, 진실이 있을 때 마음이 통한다는 것, 상담 활동에 있어서 고정관념을 깨자는 것, 마지막으로 실제로 상담 대화를 할 때 주의할 점이다. 이를 하나하나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1. 함께 느끼는 마음공감적 이해란 상대방이 경험하고 있는 것에 관하여 정확하게 지각하고 그 지각에 관해서 의사 전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따라서 공감적 이해의 근본 정신은 같은 사람은 없다 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즉 자신과 유사할 것이라는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누군가와 상담을 할 때 청담자를 억지로 자기의 틀 속에 끼워 맞추려 하지 말고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까? 에 대한 답을 찾고, 그 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공감적 이해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말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또한 문제해결을 신속하게 해준다. 달과 공주 의 이야기처럼 공주가 원하는 달은 모양은 동그랗고 크기는 손톱 만하며, 색은 황금색이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 입장에서의 달의 개념을 떠올렸으므로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광대의 경우는 공주가 말한 달의 개념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었으며 이로써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었다.그러나 공감적 이해의 해결 방법이 꼭 주인공이 원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주의 장신구 와 같이 주인공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되,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공주에게 물거품을 가져오도록 함으로써 해결할 수도 있는 것이다.이처럼 상담자는 청담자의 어떤 점을 바꾸려고 애쓰기보다는 청담자 속에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즉 청담자의 문제 핵심을 파악하고 그 문제를 공감적 이해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인 것이다.2. 난 충고가 아닌 수용이 필요해요.수용은 청담자를 그들의 행동과 분리시켜서 인간 그 자체의 가치를 순수하고 깊게 수용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에 의해 조건화 된다. 이 조건화에 의해 개인은 그들 고유의 가치를 잃어버릴 뿐 아니라 여러 질곡에 사로잡혀 심리적인 문제와 고통에 시달린다. 그런데 이런 조건화를 무장해제 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수용이다. 흔히 수용은 비소유적 존중 ,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 온정 어린 배려(따스함) 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대게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를 소유하려 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로써 나와 너 의 관계가 나와 그것 의 간계로 타락하면서 상대방 인격에 대한 고려는 사라진다. 소유적인 관계가 문제가 되는 것은 상대방이 하나의 살아있는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한다는데 있다. 따라서 상담에 있어서는 자신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도 동일한 가치와 대우를 받을 만한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해야하는 비소유적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무조건이라는 말은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말이다. 즉 무조건적 수용은 상대방을 하나의 전체 로서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어떤 기준을 세워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상대방의 느낌, 행동, 생각들을 하나의 전체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따스함은 청담자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청담자의 자기 탐색을 촉진해 준다. 상처입고 아픈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상처를 감싸고 위로하는 일이다. 이는 청담자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긍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가능하며, 상담의 전과정은 온전 어린 수용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수용의 관계에 있어 상담자는 수용을 제공하는 사람이고 청담자는 상담자가 베푸는 수용의 수혜자이다. 상담자가 청담자를 수용하는 목적은 청담자를 변화 성장시키기 위함이다. 이는 바로 상담자가 청담자를 수용하듯 청담자 스스로 자신을 수용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상담자의 수용적 태도는 조건화된 관계에 익숙해 있는 청담자에게 자신의 현 상태와 가능성을 동시에 수용하는 결과에 도달하게 해준다.3. 진실이 있음에 마음이 통한다.진정성은 상대방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과 흥미를 가짐과 아울러 순수하고 투명하게 자신을 열고 대하려는 자세이다. 따라서 진정성에 있어서는 상담자의 언어적 행동과 비언어적 행동이 일치해야 하며, 솔직성과 정직성을 필요로 한다. 진정성에 있어서는 성실성, 일치성, 신뢰성이 필요한데 이들의 관계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상담 장면 → 성실성 → 일치성 → 신뢰성 → 청담자의 자기 탐색(상담자-청담자) (상담자) (상담자) (청담자) (청담자)성실성은 상담관계에서 상담자가 청담자의 세계에 몰입해 들어가는 것이 중요해짐에 따라 요구되는 것이다. 성실한 상담자를 만난 청담자는 성실한 상담자의 태도에 안도감을 갖게 되고 나아가 일종의 감동을 받게 되며, 이는 청담자가 자기 탐색을 결정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상담자는 자신의 느낌을 존중함과 아울러 청담자에게 전해오는 여러 느낌들을 매순간 순수하고 진실 되게 받아들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일치성은 말 그대로 상대방과 대화를 하면서 느끼는 내면의 느낌과 이에 대한 외부 표현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즉 이것은 상담자가 필요하다고 느끼거나 청담자의 요구가 있어 자신을 표현하게 될 때 꾸밈없이 솔직해야 한다는 말이다. 상담관계에서 청담자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표현을 억지로 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이러한 솔직한 표현이 상담 관계에 손상을 줄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미봉책으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며 대신 수동적 반응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상담자가 청담자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기를 원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신뢰감을 쌓는 것이다. 신뢰감이 밑바탕 되어야 내밀한 부분에 대한 자기 탐색이 가능하고, 자기 탐색이 깊어질 때 바람직한 변화와 성장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4. 고정관념을 깨자.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객관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이를 어떤 시각에서 보는가에 따라 사실에 대한 개인의 반응은 전혀 달라진다. 이처럼 사람들은 사물이나 행동을 볼 때 어떤 방식으로든 틀을 세워 세상을 들여다본다. 이 틀은 고정불변의 상태로 있지 않고 변화, 발달한다. 그리고 개인의 경험 세계가 넓어지고 활동 반경이 커질수록 새로운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게 된다. 따라서 종전의 틀이 적용되지 않고 쓸모 없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런 절차를 통해 개인의 틀은 적응력이 높은 보다 복잡한 형태를 갖추게 되는데 이런 관점이 바로 틀 새로 짜기 이다. 틀 새로 짜기 는 크게 틀 주형하기 와 틀 바꾸기 로 나눌 수 있다.틀 주형하기 는 전혀 새로운 틀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상대방이 흥미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새로운 요소를 주입하기도 하며, 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사실들을 하나의 중심으로 묶어서 새로운 틀을 짜기도 한다.틀 바꾸기 는 전에 기능 하던 틀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으로 시각을 바꾸어, 보는 틀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틀 바꾸기는 무조건 긍정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도록 돕는 것이 아니다. 같은 행동이라도 맥락에 따라 달라지듯이 부정적 틀 바꾸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틀을 바꾸려고 할 때는 문제의 성격에 따라 긍정적 틀 바꾸기와 부정적 틀 바꾸기를적절히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5. 상담대화는 이렇게상담은 의사소통 과정을 통해 변화는 돕는 활동인데, 이 의사소통 과정에 있어서 핵심을 차지하는 것이 대화이다. 특히 상담대화에 관한 연구는 청담자, 상담자 두 사람이 진행하는 대화의 방법에 따라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하나는 주의집중, 명료화, 요약, 지시, 재진술, 반영, 직면, 해석, 자기 개방등 대화의 미세 기술에 대한 탐색이고, 다른 하나는 공감, 수용, 진정성 등 인간 관계의 핵심 요소를 언어로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탐색이다. 이 중에서 더 중시되는 것은 전자이다. 왜냐하면 후자는 바람직한 인간관계 형성을 위해 상담자가 견지해야할 태도 이므로 이를 대화하는 기능 또는 기술 로 환원하는 데는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세화 기술을 중시하되 이는 바람직한 인간관계의 태도를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제 1 공화국{과 목 명 :한국정치의 이해교 수 님 :제 출 일 :2002. 11. 19.목 차Ⅰ. 제 1 공화국이 등장하게 된 시대적 상황·····················1Ⅱ. 제 1 공화국의 전개1. 권력 상황과 정치 과정····························22. 정권의 성격(1) 국가 우위와 1인 독재·························· 3(2) 민주주의 도입과 반공노선························ 43. 국민의 정치의식 성장···························· 44. 정권의 몰락·································5Ⅲ. 정리하며··································· 6Ⅰ. 제 1공화국이 등장하게 된 시대적 상황1945년 일제식민지배가 끝나자 한국은 비로소 독립국가를 건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독립적인 국가건설이라기 보다는 미국의 간섭에 의한 한반도 이남지역에서의 국가건설이었다.한국의 국가건설 과정에서 이승만은 빠질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승만은 일제시대 때 국내에서 발발한 3·1 민족독립시민혁명기에 국내에 거주하지 않았고 3·1 시민혁명의 거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승만을 추종하는 혁명주도의 집단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임정의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이것은 이승만에 대한 명망과 기대가 그 곳의 독립투사들에게 깊이 인식되고 있었음을 뜻한다.해방이 된 후 한국은 자주적으로 독립되어 정치를 했다기 보다는 미국이라는 또 다른 외세에 의해 신탁통치라는 명목으로 간섭을 받았다. 이 때 이승만과 김구는 반탁투쟁 초창기부터 행동을 함께 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도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전개되었고 온 국민이 제 2독립운동으로 결의하고 나섰다. 한편 UN총회에서는 남북한이 UN 감시 하에서 총선거를 하여 국회를 구성하고 통일정부를 수립케 한 뒤 미·소 양국이 동시에 철수하자는, 미국안이 가결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U로써 같은 날, 미군정은 종식되었다. 또한 정부형태를 의원내각제로 하느냐 대통령제로 하느냐 하는 것은 권력구조상 중요한 문제인데 기초위원회는 일방적으로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기로 되어있었으나 이승만은 내각책임제로서는 정치적 안정을 기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대통령제를 강력하게 주장하여 채택되었다.어쨌든 이승만은 미국과 UN에 호소하는 외교활동에 성공 정부수립과 동시에 집권의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이승만이 집권한 제 1공화국의 집권과정을 보면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이 위대한 업적의 수립인지, 민족통일의 대업을 망가뜨린 졸작인지를 놓고 그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도입 등의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독재정치와 친미적 성격,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점등의 부정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다.Ⅱ. 제 1 공화국의 전개1. 권력 상황과 정치과정이승만 정권하의 정치 변동은 권력 유지를 위한 이승만 및 그 추종 세력의 노력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야당 세력간의 힘의 투쟁에 의해 결정되었다. 초기의 권력 투쟁은 이승만과 한민당 간의 투쟁으로 압축되었다. 한민당은 건국 이전부터 이승만과 일종의 동맹 관계를 맺고 단정 수립에 일익을 담당하였으나, 건국 후 그를 명목상의 국가 수반으로 내세우고 실질적인 정치 권력 장악을 기도하였다.그 반면 이승만은 모든 정파를 초월한 국부적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정부 제도는 국회가 대통령 선출권을 갖고 대통령은 국회 동의 없이 내각을 임명할 권리를 갖는 기묘한 절충의 형태로 나타났다.{) 김영명, 고쳐쓴 한국 현대 정치사, 을유문화사, 1999.이승만의 대통령 취임은 일단 한민당에 대한 그의 정치적 승리를 의미했다. 그리고 한민당의 실질 권력 장악의 좌절은 곧 한국 정치사회에서 정당제도의 여당·야당의 개념을 설정해 주었다.1951년 취약한 국회 내 세력기반을 보강하기 위해 이승만은 자유당을 창당했다. 형식이나마 정당이 정치과정의 중심적인 기반으로 기능 함으로써 일종의 정당 정치적 성격을 보여주기도 하였만을 전부로 인식하고 국민과 국가에 대한 사명감이 미약한 인사들로서 당시의 정책결정자 집단이 구성되었다는 것은 이 정권의 보다 큰 한계였으며 책임이었다.2. 정권의 성격(1) 시민 사회에 대한 국가우위이승만 정권 하 국가와 시민 사회의 특징은 시민 사회에 대한 국가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서 찾아진다. 그것은 국가가 일제와 미군정에서 물려받은 경찰, 관료기구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정치·경제를 좌우할 수 있었던 반면, 시민 사회는 산업화의 미숙과 그에 따른 계급형성의 미약, 그리고 각종의 사회 단체, 이익 단체들의 미발달로 독자적인 힘을 형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경찰과 관료는 이 정권 권력 구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이승만 정권의 권력 확장을 위하여 불법적인 선거 개입과 반대파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자행하였다. 전국적 규모와 조직을 가지고 이승만이라는 최고 권력자와 일종의 후원·피후원 관계를 형성한 경찰·관료의 간부들은 이 정권의 흥망과 자신의 흥망을 동일시하였다. 따라서 대통령으로부터의 물질적, 혹은 지위의 보상을 받는 대가로 그들은 대통령의 권력 유지를 위하여 불법과 폭력 행위를 기꺼이 수행하였다. 경찰은 반공이데올로기와 맞물려 좌익탄압의 주요 기구로 부상하였으며, 제주도4·3사건, 여순 사건, 6·25전쟁을 거치면서 강화되었다. 제주도 4·3사건은 8 ·15광복 직후의 혼란기를 틈타 남조선노동당이 제주에 지하조직을 구축하여 무장훈련에 돌입하고, 남한만의 단독선거에 반대투쟁을 벌이던 제주도민에 대한 경찰 및 우익단체의 무차별한 테러가 극심하여 도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발발하였다. 이후, 서북 출신의 경찰관들이 제주에 파견되자 이를 계기로 좌익세력은 남한만의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 반미 ·반경찰 ·반서북청년단 등의 구호를 외치며 민중봉기를 주도하며, 유격전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이에 미군정청은 경찰병력을 제주에 투입하여 이를 진압하려 하였으나, 사태가 더욱 악화되자 군을 투입하여 제주도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약, 유효투표는 투표자 총수의 96.5% 해당하는 7,020,684표로서 이승만이 유효투표 총수의 75.2%에 해당하는 5,238,769표의 압도적 다수표로써 당선되었다.이러한 사건에 가능하도록 하는데 기능한 역할은 폭력적인 어용 단체의 전국적 조직을 갖춘 관료 기구에 의해서도 수행되었다. 해방 후 대두된 친일파 처리의 과제에도 불구하고,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효율성을 위한 전문 인력의 필요성을 이유로 일제하의 관리들을 존속시켰다.관료 기구는 통치를 용이하게 할 재원을 조달하는 재정적 역할, 시민 사회와 야당 세력의 도전을 분쇄할 억압기구의 역할, 그리고 정권의 정통성을 선전하고 관리할 정통성 유지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무엇보다도 관료 조직, 특히 내무부와 지방 자치 조직들은 부정 선거에 앞장섬으로써 이승만의 권력 유지와 정치적 퇴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김영명, 고쳐쓴 한국 현대 정치사, 을유문화사, 1999.그리고 당시는 이러한 국가의 압도적인 조직적 기반으로, 계급적으로나 조직적 기반으로나 미성숙한 시민 사회를 지배한 상황이었다. 국가는 독자적 영역이나 정치 세력화가 극히 미미한 사회 세력들을 동원하고 조직화하여 지배의 수단으로 이용하였고, 사회세력은 원자화하여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자율성은 정책 능력으로 연결되지 못하였다. 정부는 부패에 휩싸였고 경제 사회적 발전 계획이 입안이나 집행과정에서 무기력했기 때문이다.(2) 민주주의 도입과 반공노선이승만 정권의 탄생으로 인한 대한민국의 수립은 한민족에 의한 최초의 근대 국가 형성을 의미했고, 자유 민주주의가 처음으로 한국에 도입되었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사회 경제적 배경이 전무하였을 뿐 아니라 이승만 정권이 자유 민주주의 의식보다는 권력 강화와 유지에 더 몰두하였기 때문에, 정치체제는 권위주의화의 길을 밟았다.이승만은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되, 대통령제를 주장했다. 이렇게 탄생한 제1공화국 헌법의 주요 내용은 국회를 단원제로 하고, 정부 형태는 대통령제를 중심으황에서 이승만이 표면적으로 내보인 반일감정에 정치적인 의도가 개입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반일감정은 반공이데올로기를 보완하여 정권에 대한 국민적 통합감정을 고조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기능 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일제 잔재 청산은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결과적으로 반공노선은 좌익세력에 타격을 주고 보수세력에 정당성의 명분을 제공한 기능을 하였지만, 해방 이후 혼란스런 정치상황을 통합하고 즉시 독립을 통해 일제하의 제반 불평등을 곧바로 해소해 줄 것으로 생각하였던 일반국민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3. 국민의 정치의식 성장정치 문화면에서 볼 때, 한국 국민은 195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아직 서구적 의미에서의 시민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치자와 피치자에 대한 전통적·유교적 관념이 여전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또한 6·25전쟁을 통해 반공이념이 국민사이에 확산된 결과, 반공의 화신으로 대두된 이승만의 개인적 이미지가 대중의 지지와 추종을 유도했다.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도 시민 사회의 미성숙과 이로 인한 국가에 대한 도전의 허약성이 이승만의 개인적 지배를 쉽게 만들었다. 그러나 급속한 사회적 동원을 경험하는 신생 국가에서 대중의 묵종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1950년대의 한국사회는 도시화, 교육의 확대, 그리고 매스컴의 확장으로 인한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집권 세력의 정치적 정당성이 크게 훼손 받은 1950년대 중반 이후 야당세력이 상당한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비록 이러한 지지는 야당 세력의 정치적 역량의 결과라기 보다는 자유당 정권에 대한 국민의 증가한 혐오를 반영한 것이었지만, 국민들이 자신들이 새롭게 습득한 민주적 가치관을 보유하기 위해서 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일이기도 했다. 결국, 사회적 변화와 이를 통한 정치 참여의 증대를 수용할 정치적 중재기구가 개발되지 못한 정권은 국민의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4. 정권의 몰락이승만과 자유당은 미졌다.
1. 들어가며우리 국어 학계는 한글 전용론과 한자 병용론, 한자 혼용론으로 수십년 간 대립을 계속해 오고 있다. 세계는 표의 문자와 표음 문자의 두 날개를 양대 축으로 해서 형성되어 왔는데, 그러한 대립 때문에 우리 나라는 우리만의 훌륭한 과학적인 문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문발전에 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조상에게도 죄송할뿐더러 문화 발전에 큰 장해 요인이 되어 오히려 발전보다도 후퇴하고 있는 실정이다.지난 1999년 2월 정부의 한자병용 추진 방안이 발표되자 우리말의 표기법 논란이 다시 과열되고 있다. 한글 전용을 주장해온 단체들은 시대에 역행하는 그릇된 처사라고 단정하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반면, 한자 교육을 강조해온 단체들은 이번 방안을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한자 병용이란 무엇인가? 다음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가) 한국 과학 기술원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좋은 대학이다(나) 韓國 科學 技術院은 世界에서 손꼽히는 좋은 大學이다(다) 한국 과학 기술원(韓國 科學 技術院)은 세계(世界)에서 손꼽히는 가장 좋은 대학(大學)이다.(가)는 한글 전용이고, (나)는 한자 혼용이며, (다)가 한자 병용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에서 발표한 한자 병용 방안은 한글 표기를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용한다 는 것이므로 발표 내용만을 본다면 대부분은 (가)처럼 쓰지만 그 뜻이 혼동되는 극히 일부분의 단어만 (다)처럼 한자를 괄호 안에 쓴다는 것이다.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글 전용이 옳으냐, 한자 병용 혹은 한자 혼용이 옳으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한자 병용·혼용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것이 우리 글 문화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제부터 차례로 각 주장의 주요 내용과 장·단점을 알아보도록 하자.2. 한글 전용론 자들의 주장2.1 한글 전용론 자들이 그들의 주장을 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1 한자는 글자수가 너무 많고 광범위하여, 신속하게 세계 문화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또 한 요구되는 바쁜 시대에는 일상적인 사용이 불가능하다.2 한자는 학습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편지 한 장을 제대로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면 적어도 4∼5년간의 학습을 요하므로, 일부 특수층에서만 학습하게 되어 일반인이 공용 화 하기는 어렵고 문화의 평준화에도 지장을 초래한다.3 한자의 발음이 한·중·일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4 정보화 시대에 한자의 사용은 큰 걸림돌이 된다.5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은 어린이들의 활력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창의성을 발휘 하 지 못하게 한다6 한자의 병용은 통일을 앞둔 시점에서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를 초래한다.2.2 한글 전용의 장·단점한글 전용론 자들이 그들의 주장을 펴는데 있어 가장 확실한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현대 사회가 정보화 사회라는 점이다. 한자는 한글과는 달리 컴퓨터에 글을 입력하는데 있어서 많은 용량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 중국과 일본 학생들은 그들의 보고서를 쓰는데 있어 한자를 이용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에 한글은 쉽고, 간편하고 빠르게 정보를 소유, 작성할 수 있다.또한 한글을 전용으로 하였을 때 우리민족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다. 왜냐하면 한자는 과거 일제 식민 지배의 잔재이며, 친일파들이 해방 후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들을 무지한 상태로 묶어두는데 사용했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과거 일제 식민 지배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도 한글 전용은 유익하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한글 전용론의 입장에서 단점도 지적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글 전용으로 한글 말을 배운다는 것은 우리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 단어의 뜻을 각각 외워야 하는 것을 뜻하므로 국어 공부에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단어의 뜻이 바르게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예를 들면, 동음이의어의 경우 의미 새김과 뜻 전달에 있어서 상당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즉 固辭와 故事, 士氣와 事記 등은 한글 표기로는 뜻이 전달되기가 거의 불가능 할 정도이다. 물론 이것 역시 문맥의 앞 뒤 내용을 통해서 뜻을 파악하거나 혹은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괄호 속에 그 뜻을 풀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은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문장의 길이도 길어지기 때문에 효율성 측면에서 어긋난다.3. 한자 병용론 자들의 주장3.1 한자 병용론 자들이 그들의 주장을 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1 한자만으로 발전해 내려온 우리의 빛나는 유구한 문헌을 계승하기가 곤란하다.2 한자의 광할한 상상력과 다양한 조어능력이 위축되며, 현재 사용하고 있는 어휘까지 상실되어 가고 있다.3 한글 전용으로 했을 경우 동음이의어의 사용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4 한글 전용을 목표로 하여, 너무 많은 신조어가 남발되어 또 하나의 문맹을 양산하고 있다. (예 : 갈무리, 매독, 달날, 더갑, 물날, 누리집, 꽃피우기, 든사람, 난사람 등)5 한글 사용만으로는 12억 한자 사용 국가와의 문화교류도 곤란해 질 것이다.3.2 한자 병용의 장·단점우리 민족은 과거 2000년 가까이 한자로 이름을 짓고, 한자로 땅 이름을 메기고 한자로 편지를 쓰고 제문을 지어왔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우리말 어휘의 70%는 한자로 되어 있다. 이러한 가운데 무조건 한자를 배척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한자의 일부를 수용 한다면, 국어사용 능력의 향상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또한 언어 생활을 전달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면 언어가 없이도 수화나 판토마임으로 또는 율동으로 의사를 전달 할 수 있다. 그러나 언어는 전달의 기능과 함께 의미를 새겨 줌으로써 이해의 폭을 넓혀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보면 동음이의어의 문제를 한자 사용 측면에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결론이 나온다.반면에 한자 문화권이라 해도 각국의 한자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실제적 효용성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 이미 한자를 사용하는 여러 나라들이 한자의 불편함을 알고 그들 나름대로 간체화 하는 경향에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 한자를 예전 그대로 배우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실제 현실에서는 의사 소통의 불편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또한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한자는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중국 내에서도 학생들이 한자를 익혀 글을 읽고 쓰려면 최소한 초등학교 5, 6 학년은 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 나라에서는 5, 6 살만 되어도 한글을 읽혀 사용할 수 있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도구로서의 문자 자체를 배우려고 그 많은 땀을 투자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다.4. 한자 혼용론 자들의 주장- 인제대학교 총장 백낙환 선생 을 중심으로4.1 한자 혼용론 자들이 그들의 주장을 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1 우리의 역사와 문화 유산의 이해와 창달이라는 측면에서 한문이 가지는 위치를 살펴 보면 한자 혼용의 필요성을 알 수 있다.중세 시기 우리 나라의 모든 문화적 활동은 당시의 공동 어문이던 한문을 통하여 이루어져 왔다. 이때 이루어진 문화 유산들은 지금의 편협한 근대 민족주의 이념에 입각한 것이 아니었기에 온전히 우리 선조들의 정신적 뜻을 담아낸 것이었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한 이념적 고향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민족 문화 유산의 정당한 이해와 바람직한 계승을 위해서도 중세 공동 어문인 한문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이해는 필수적인 것이라 하겠다.2 한자는 국제화 시대에 외국어로서의 기능적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특히 동양권의 외교, 관광, 학술 교류에 있어서 한자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3 한글의 표현력 강화하는 측면에서도 한자 혼용은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우리 한글을 서양의 알파벳처럼 풀어쓰기 방식이 아니라 현재의 모습처럼 모아쓰기를 하도록 하였다. 이는 한자와 한글이 문자 생활에서 잘 어울리도록 하려는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표의 문자인 한자는 함축성이 풍부한 언어이기 때문에 한글보다 표현력에 있어 깊이와 넓이를 갖추고 있다.또 한자는 무한한 확장력을 갖추고 있어서 어휘를 늘려 나가기에 알맞은 문자이다. 따라서 한자를 한글과 섞어 쓰게 될 때 우리말은 순 한글만 쓸 때에 비해 훨씬 풍부한 표현력을 보이게 될 것이다.4.2 한자 혼용론의 장단점한자를 혼용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한자 지식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는 사람에 한에서는 글의 문맥을 빨리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 안목으로 본다면 한자를 혼용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오랜 기간의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한자 혼용이 되면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을 세계화 시대에 낙오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또다시 영어, 수학에 이은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일 것이다. 이것은 국민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과 목 :시조 및 가사론교 수 님 :발 표 일 :2002. 12. 9.賞春曲{목 차Ⅰ. 서론1. 에 대한 소개···························· 12. 에 관한 문제들··························· 13. 창작동기······························ 2Ⅱ. 본론1. 작품분석(1) 서사(序詞)································ 3(2) 본사(本詞)································ 4(3) 결사(結詞)································ 7Ⅲ. 결론······································8Ⅰ. 서론1. 에 대한 소개은 선행시기 시가문학이 달성한 성과를 기초하여 새로운 가사형식 즉, 3·4 혹은 4·4조를 분절 없이 계속 사용하여 긴 시가형식을 처음 창조한 작품으로 지은이가 벼슬을 사임하고 향리인 전라도 태인으로 돌아가 말년을 지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풍류와 안빈낙도의 정신을 노래한 작품이다. 내용은 서사·본사Ⅰ·본사Ⅱ·결사 4분단으로 구성되었는데, 내용 전개에 있어 풍월주인, 가려춘경(佳麗春景), 소요음영{) 천천히 거닐며 시조를 읊조림, 산수구경, 음주자적, 등고부감(登高俯瞰), 수분행락과 같은 장면 배합이 잘 되어 한결 상춘의 흥취를 고양시켜 준다. 조사법이 자연스럽고 표현 기교 또한 아려해서 양반 가사 중 일품으로 꼽는다.2. 에 관한 문제들이 가사는 그간 사적 고찰은 물론 작가 연구, 내용 및 형식분석, 문체 연구 등 다방면에 걸쳐 활발히 연구, 진행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되어 학계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첫 번째 문제가 이 가사의 사적(史的) 위치의 문제이고, 두 번째는 이 가사의 작자에 관한 문제이다.이 작품의 사적(史的) 위치의 문제는 이 가사가 종전의 학설대로 가사문학의 효시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최초의 작품으로서는 그 형식이 너무 정제 가사이다. 따라서 우리는 상춘곡 이라는 가사 문학작품이 지닌 자연탄미의 내용과 이 작품 속에 나타난 화자의 태도, 세계관 등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 작품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3. 상춘곡 창작 동기- 강호가도로 표출된 자기충족적 자세사대부의 시가에서 강호가도의 형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는 그들의 사상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그들의 사상적 바탕은 물론 유교이고 따라서 조선시대의 모든 문학작품에는 유교사상이 크게 반영되고 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항상 예찬한 것은 은둔, 도피 사상에 안빈낙도하는 생활이었다.가난한 속에서 도를 즐기는 선비 중에서는 현실 참여로 적적한 地立을 지닌 派와 완전히 속세를 떠나 학문에 심혈을 기울인 派, 시세에 따라 의기상합할 때는 신로에 나아가고 그렇지 않을 때는 자연에 묻혀 살았다는 派가 있다. 그러나, 유학은 어디까지나 현실적으로 오늘을 충실히 예에 어긋남이 없이 살자는 실천철학이요, 수기치인의 大道이지 현실의 고뇌를 벗어나 내세를 꿈꾸거나 마음놓고 자신의 입지에 관계없이 자의식에 충실하기는 어려웠다.그들이 속세를 떠나 안빈낙도를 부르짖게 된 것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홍정균, 상춘곡 연구, 성균관대 교육대학원, 1984, pp. 45∼47이것은 조선조 시대사 고찰을 통해 좀더 깊이 알아보도록 하겠다.조선초기는 국가적 통치의 기본 조직과 이념이 확립되면서 유교적 학문이 꽃피기 시작하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이 시기로부터 사대부 관료들간의 정치적인 갈등이 발생되어 나아가 士禍로 이어졌다. 이러한 정치적인 갈등은 소위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에서 빚어진 것이다. 사화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으로, 당쟁은 사림파 내부의 갈등으로 보아 온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나, 사림파에 속하는 구체적인 인물들의 출신 성분과 경제적 배경을 살펴보면, 훈구파와 별 차이가 없다. 또한 이들은 현실을 도피하면서도 성리학으로 당시 모순된 국가 체제를 옹호하기도 하였다. 성종 이후 중종 초의 기묘사화가 일어나기까지, 사림의 이론은 권이 아닌 다른 벗이 없다고 해서 내심을 더 드러냈다. 밀려나서 은거를 하는 것이 바라지 않던 바일수록 자기는 신선인 양 자부하고, 세속의 먼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엾다고 해야 심리적인 보상이 이루어졌다. 요컨대 상춘곡은 자연과 화합하는 즐거움을 찾는 미의식을 겉으로 표출하면서 관직에 대한 욕망을 저버리지 못한 정극인의 내면심리가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상춘곡의 창작동기도 이 점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Ⅱ. 본론{) 본론의 상춘곡 구조적 분석은 박병완, 의 분석적 연구-『한국고전시가론』, 신구문 화사 1997 과 윤석산, 「상춘곡 구조연구」, 한양대학교, 1997을 바탕으로 한 것임.▲ 序詞 : 자연 속에서의 생활紅塵(홍진)에 뭇친 분네 이내{) 이내 는 이 나의 생활 의 준말로써, 지은이는 번거로운 속세에 묻힌 사람들에게 나의 생활을 강조하여 말하고자 하고 있다.生涯(생애) 엇더�彭�.노 사링 風流(풍류)링 미칭가 밑 미칭가.天地間(천지간) 男子(남자) 몸이 날만�� 이 하건마다,山林(산림)에 뭇쳐 이셔 至樂(지락)을 밑링 것가.數間茅屋(수간 모옥)을 碧溪水(벽계수) 앎픗 두고,{) 배산임수(背山臨水) : 등뒤로는 산을 접하고, 앞으로는 물을 접했음.松竹(송죽) 鬱鬱裏(울울리)예 風月主人(풍월 주인) 되여셔라.화자는 '紅塵에 뭇친분네'(세속의 공간에 있는 사람들)와 '天地간 男子몸'(세속공간을 싫어하면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과 대조되는 동시에 '노사람'과 비교되며 '風月主人'과 같은 존재이다. 이러한 화자가 세속을 떠나 안주하는 공간으로 정한 것이 '數間茅屋(수간모옥)'이다. 자연 속에 묻힌 화자가 되돌아보는 紅塵에 뭇친 분 과 天地간 男子몸 은 내 생애의 공간과 다른 공간에 있는 삶이며, 이런 삶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에 나는 이들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내가 찾은 위안은 '노 의 風流'요 세속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풍월주인'으로 자연과 어울리는 길이 있을 뿐이다다. 새봄을 맞는 작자는 성급하게도 계절적 상황보다 앞지른 5, 6월경의 춘경을 노래하면서, 조물주의 신비한 솜씨로 빛은 춘경을 완상(玩賞)하고 있다. 여기서 봄 은 하루의 국면으로 볼 때 새벽에 해당되며, 인생의 국면에서는 탄생, 세계의 창조, 나아가 어둠의 힘이 파멸되고 겨울이라는 죽음이 물러가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시의 화자는 이와 같은 새봄을 맞이하며, 엇그제 겨울 지나 새봄이 돌아왔음 을 강조하게 된다. 이제 막 새로운 봄이라는 세계, 새로운 생명력의 세계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산림에서의 즐거움을 더욱 실감하게 되고, 봄날에의 찬미를 더욱 높게 하는 것이다.앞에서는 아름다운 춘경(春景)[서경적]에 도취되었다가, 둘째 단락에 이르러서 작자는 집 앞을 이리저리 거닐며 시를 읊조리는 가운데 춘흥(春興)[서정적]에 싸여 있다. 화자는 고독한 한중진미(閑中眞味)를 즐기면서도 외공간으로 도주를 보여준다. 그 경계가 되는 시비(사립문) 에 걸어보는 발길은 마침내 정자 라는 외공간으로 도주한다. 그렇다면 왜 시적화자는 외공간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일까? 그것은 화자가 물아일체의 대상이 되는 자연의 새 와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는 땅과 하늘의 매개항으로서, 인가 근처에 서식하며 지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하늘로 비상할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닌 존재이다. 즉, 새는 현실과 초현실을 들락날락 할 수 있는 존재이며, 이런 존재와 자신을 일체 시키려는 화자의 모습은 자연 속에서 더 넓은 세계로 탈출을 시도하려는 화자의 내면 심리가 새 라는 대상에 감정 이입되어 표현된 것이다. 또한 산일 은 소요음영 하는 산중진미 가 있지만 그것은 적적하다고 표현한 화자의 모습에서 겉으로는 혼자인 한중진미 를 즐기는 자신의 기쁨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새와 같이 더 넓은 세계로 날아가고 싶은 화자의 마음이 내포되어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해석을 해 보았다.▲ 本詞 2 : 상춘 취락(賞春醉樂) - 춘경(春景)을 즐기는 풍류A. 이바 니웃드라, 山水(산 그런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겠다.'산수구경'은 세속을 떠난 광활한 공간에서 자연친화를 의미한다. 특히 '踏靑'과 '浴沂', '採山'과 '釣水'는 여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즐기는 놀이이다. 그런가 하면 보다 적극적으로 봄의 진미를 누리고자 하는 모습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봄놀이가 아니라 화자 스스로 자연에 묻혀 있음을 강조한 부분이다. 특히 오늘이라는 현재에도 또 내일이라는 미래에도 踏靑 과 釣水 를 하며, 항상 자연 속에 묻혀 산다는 그러한 자연과의 친화를 강조한 표현의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즉 '踏靑'과 '浴沂'는 정치적인 야심을 버리자는 다짐이며, '採山'과 '釣水'는 부귀 공명을 탐하지 말자는 의지의 표출이다. 앞으로의 자신의 삶의 양식을 심안으로 찾은 세속적 현실 초극의 길, 곧 외공간의 확장을 통한 자연친화인 것이다.세속(정치적야심, 부귀공명) -----→ 니웃들 (나) -----→ 산수구경(자연)(踏靑, 浴沂, 採山, 釣水)넷째 단락은 상극과 갈등의 해소 수단으로 음주 행각을 보여준다. 술을 갈건으로 걸러 취하도록 마시겠다는 것은 속세의 홍진을 미련 없이 털어 버리고 를 부르며 도연명의 '걸건녹주'하는 음주 행락을 본받고자 하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즉 淸香과 술잔 의 조화나, 落紅과 옷새 의 조화가 이러한 모습을 말해주는 표현이다. 淸香이 술잔에 지므로 결국 화자가 마시는 것은 술 이라기 보다는 봄날의 그 맑고 향기로운 꽃내음이 되고 있는 것이요, 落紅이 옷새로 지므로 해서 결국 화자는 분분히 떨어지는 봄날의 붉은 꽃잎의 하나로 자연 속에 놓여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화자는 술과 함께 봄날의 맑고 향기로운 꽃내음을 마시며 취하게 되고, 그 취기는 곧 화자를 자연의 한 부분인 붉은 꽃잎으로 봄날과의 일체를 이루게 한다. 이와 같은 일체감은 곧 화자로 하여금 자연친화의 가장 이상적인 本鄕인 무릉 을 꿈꾸게 하기도 한다.다섯째 단락은 음주 행각으로 인하여 세속적 욕망을 떨치고 자연에 친화하려는 것으로 확장된 공간으로 나아간다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