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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고등학교 물리교육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고등학교 물리교육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기초자료※ 학생들의 과학교과 학습의 간단한 실태 조사- 대상학급 : 이천시 마장고등학교1. 과학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매우 그렇다그렇다보통이다그렇지 않다매우 그렇지 않다계2명4명10명10명4명30명1) 과학 교과에 대한 관심이 높은가?매우 그렇다그렇다보통이다그렇지 않다매우 그렇지 않다계2명5명10명8명5명30명2) 과학 교과에 대해 흥미를 느끼는가?2. 예습, 복습 정도를 중심으로1) 일주일에 과학 교과를 예습, 복습 하는 총 시간량은?예습, 복습 총 시간량인원(명)비율(%)5시간 이상8명26.6%3시간 - 4시간15명50.0%1시간 - 2시간4명13.4%1시간 미만3명10.0%3. 과목별 학업 성취도를 중심으로과목국어도덕국사사회수학10-가과학기술,가정외국어(영어)평균81.1167.1275.5861.3766.1571.2967.0378.91) 과목별 성적(2005학년도 1학기 중간고사)2) 성적 분포표과학점수(점)인원(명)비율(%)※ 종합 결론대상 학급 1학년 1반 학생들은 과학에 대한 흥미 및 관심도 는 그리 높지 않지만, 예습과 복습에 투자하는 시간량이 타 학 급에 비해 높게 나타났고, 그 결과 과학 점수 분포도가 중?상 위권에 많이 퍼져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이것은 과학 교과에 대해서 흥미가 있어서가 아닌 단지 시험을 목적으로 하는 학습에 그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100 - 801550.079 - 60723.359 미만826.7학년평균점수58.79Ⅰ. 서 론교육은 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잠재적 능력을 계발· 신장시켜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일련의 교수-학습과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교사들은 무한한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과 창의적 능력을 조장· 계발 시켜 주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교사가 이렇게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과 창의적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미래 사회의 새로운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가변적 유연성과 자기 교과에 대한 확고한 철학어 졌고, 물리선생님 때문에 자연의 이치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는 반응이 학생들에게서 나와야 할 텐데 물리 선생님 때문에 물리를 포기하게 되었다니 얼마나 기가 막힐 일인가? 그렇다면 그 모든 책임이 물리교사에게만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 책임은 물리학과 관계를 맺고있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일반적으로 초등학교 학생들은 과학(물리)교과에 대해서 매우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장래에 과학자가 되겠다고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학생들은 과학자가 되겠다고 희망하기 보다는 법관이나 의사, 정치가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물리교과에 대한 흥미도도 점점 떨어져 마침내 고등학교에서 물리교과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13% 대로 줄어들고 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왜 이렇게 물리교과는 어렵고 딱딱한 과목으로 학생들의 머리 속에 인식되어 있는 것일까? 혹 물리를 가르치고 있는 우리들이 학생들에게 발견의 기쁨이나 자연현상의 물리적 의미를 알려주지 못하고 이미 존재해 있는 원리나 개념만을 전달하면서 수식적 결과를 암기시키는데 그 원인이 있지는 않을까? 교사의 교육 방법이 일방적 전달 방식이고, 수리적 계산 문제가 많이 나와서 학생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과 내용이 너무 난해하고 복잡해서 학생들이 싫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습의 과정을 중요시하는 물리교육이 아니라 내용을 중요시하는 물리교육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식상해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싫어하는 신세대들의 사회적 현상 때문일까? 아무튼 물리교과를 가르칠 우리들 스스로 곰곰이 반성해 봐야할 중요한 문제다.아무리 명분이 있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주장해도 수요자들이 관심을 갖고 선택해 주지 않으면 물리교과를 가르치고 있는 우리들은 설 땅이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고등학교에서의 물리교육의 문제점을 파악해 보고, 물리교과를 가르치고 있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물리교육을 위해 무엇을 어는 누구에게나 감추어져 있는 것을 찾아내려 하고, 모아진 것을 나누어 보고, 흩어진 것을 다시 모아서 새롭게 바꾸려는 욕구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적 욕구와 능력은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적에 경험하는 교육의 훈련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창의적 능력이 극대화 될 수 있는 학생시절에 다양한 장면의 학습경험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의 학교교육은 상급학교 입시를 위한 점수 올리기 교육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 소품종 대량생산 교육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학생들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길러주지 못하고 일방적인 교사 주도형의 주입식 교육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물리교육은 다른 학문과 달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제반 자연 현상들에 호기심을 가지고 왜(why)와 어떻게(how)의 관점에서 자연 속에 숨겨진 비밀의 열쇠를 찾아내려는 일련의 탐구 과정 그 자체가 바로 물리교육이다. 그러나 오늘의 물리교육은 상급학교 입시 때문에 이러한 탐구 학습의 과정을 맛보지 못하고 오직 교사 주도의 개념학습으로 문제 풀이를 위한 이론교육만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기껏 한 학기에 2-3번 실험하는 실험 실습 활동마저도 탐구를 위한 실험실습이 아니라 평가를 위한 형식적인 실험에 그치고 있다.2) 선택과목 지정이 문제다.5차 교육과정에서는 자연계 학생들은 물리나 화학 중에서 반드시 1개 과목을 선택하도록 하여 이·공계 분야로 진출할 학생들의 기초학습을 튼튼하게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인문계 학생의 경우 공통과학(8)을 이수 후 물리1, 화학1, 생물1, 지구과학1 중 2개 과목(4)만 선택하면 된다. 그래서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점수 따기가 쉬운 지구과학1과 생물1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자연계 학생은 공통과학(8) 이수 후 물리1, 화학1, 생물1, 지구과학1 중 2개 과목(4)을 선택하고, 물리2, 화학2, 생물2, 지구과학2 중 1개 과목만 선택하면 된다. 그래서 자연계 학생들는 주당 확보 시수(주당 2시간)는 부족하고, 교과서에 수록된 학습 분량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사 주도의 개념학습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수학능력시험에서는 대개 원리나 개념파악, 자료해석 등의 통합교과적 문제를 많이 출제하고 있는데 반해 교과서의 구성은 대부분 개념중심, 이론중심으로 너무 어렵고 진부하며 양이 많다. 그래서 교사들은 학생들의 창의성과 응용력을 길러줄 수 있는 자기 주도의 학습능력을 향상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물리교과를 어렵고 골치 아픈 과목으로 인식하고 있다.4) 현대물리 단원을 소홀히 하고 있다.물리교과의 Ⅰ,Ⅱ단원이 다분히 기본적이고 원리적인 물리 개념을 다루고 있다면 Ⅲ,Ⅳ,Ⅴ단원에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과학 문명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물리적 요소들이 많이 들어 있다. 따라서 물리학의 원리나 법칙에 근거한 응용력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문명사회의 발달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는 Ⅲ,Ⅳ,Ⅴ단원을 충실히 다루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Ⅴ단원 현대물리 단원은 수학능력고사 실시 후에 배우게 되어 있고, 수학능력고사에 출제도 되지 않는다는 핑계로 소홀히 취급되거나 아예 가르쳐 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연계를 진학하는 학생들조차도 Bohr 이론이나 Einstein의 광전효과 등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2.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의 문제1) 물리교육 목표에 문제가 있다.고등학교 과학과 교육과정 해설집에 있는 '물리Ⅰ', '물리Ⅱ'의 교육목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다섯 개의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물리Ⅰ의 교육 목표(가) 물리에 관한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데 이를 적용하게 한다.(나) 물리 현상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능력을 신장시키고, 실생활 문제 해결에 이를 활용하게 한다.(다) 물리 탐구와 물리 학습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증진시키고, 과학적 태도를 함양 하게 한다.(라) 물리학의 여러 개념들은 계속 발전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마) 물리념중심 교육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학생들은 어떤 물리적 개념에 대해 학교교육 이전에 이미 어떤 사물이나 사건, 현상들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형성한 개념들을 각자 가지고 있으며 이 개념이 과학적인 개념(과학자의 개념)과 같지 않을 때 우리는 학생들이 오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물리 개념에 대한 오개념 정도를 조사 연구한 바에 의하면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학생들이 초등학교시절에 가지고 있던 오개념이 과학적 개념으로 바로 잡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에서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볼 때 중· 고등학교의 물리교육이 물리에 관한 기본개념을 이해시키는데 목표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물리적 기본개념을 갖게 하는 데는 여전히 실패하고 있다.2) 물리교육 목표와 반대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물리교육의 목표중의 또 하나는 학생들의 『탐구능력 신장』과 『흥미와 관심 증진을 통한 과학적 태도 함양』이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 중·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관찰· 실험을 할 기회는 오히려 적어지고 있으며, 한 학기에 2-3번 실험을 한다고 해도 탐구실험이 아니라 내신 평가를 위한 확인실험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자연현상에 대한 호기심과 사물의 이치를 깨닫기 위하여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신성적 산출을 위한 실험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결과 고등학교 학생들은 물리교과를 싫어하고 있으며, 장래에 과학자(물리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5%도 안될 만큼 아주 낮다. 이렇게 물리교과에 대한 관심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요인 중의 하나는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학생들이 직접 해보고 토론하는 실행중심의 탐구학습을 하지 않고 물리개념을 이해하고 암기하여 시험문제를 풀어보는 개념중심의 물리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3) STS 교육을 소홀히 하고 있다.물리학의 여러 개념들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으며, 물리학의 발달이 사회의 발 있다.
    교육학| 2007.06.14| 7페이지| 1,000원| 조회(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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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학]양자론의 태동
    목 차 1. 고전역학의 붕괴 2. Planck의 흑체복사이론 1) 빛 = 파동설이 무너지는 계기 2) 빛 에너지의 양자화(quantization)의 발견 3. 빛의 이중성(Duality) 1) 빛의 파동성 2) 빛의 입자성
    자연과학| 2007.06.14| 28페이지| 1,500원| 조회(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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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역학의성립
    목 차칼로릭 이론 카르노의 원리 일과 열의 상호변환 - 열역학 제 1 법칙 - 열역학 제 2 법칙과 '엔트로피' 엔트로피 개념에 대한 이해17세기 기계적 철학의 영향으로 열의 본질을 물질입자의 운동으로 해석 (베이컨, 보일, 뉴턴 등) `18세기 열이 '칼로릭'(caloric)이라 불리는 '무게가 없는 물질입자”(imponderable)가 받아들여짐 (칼로릭이론)칼로릭 이론열의 출입에 의해 생기는 물체의 온도변화 - 칼로릭을 흡수 , 방출 따라서 고체가 열을 받아 액체가 되는 것 - 고체를 이루는 물질입자와 칼로릭이 결합 액체가 칼로릭과 결합하면 기체 두 물체가 마찰해서 생기는 열 - 두 물체 속에 있는 칼로릭이 빠져 나오는 것칼로릭 이론의 문제점Ex) 마찰열에서의 문제 마찰열은 두 물체 속의 칼로릭이 다 빠져지면 끝나야 함 - 마찰열은 무한히 계속됨 1798 ~ 1801년 럼퍼드(본명 Benjamin Thompson)와 데이비와 같은 학자들은 자신들의 생각 발표 - 열이 칼로릭이 아닌 단순한 물질입자의 운동 (체계적이지 못하여 추측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 들여짐) 1830년대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칼로릭'이라고 믿음카르노의 원리19세기 초 열현상에 관한 이론적 취급에 대한 관심 - 열의 본질이 칼로릭이라는 것에 문제되지는 않음 - 칼로릭이론을 바탕으로 열의 전달과 흡수, 이에 수반되는 온도의 변화와 온도 기울기 등에 관한 수학적 이론을 얻어 내려함 푸리에(Joseph fourier)는 칼로릭 이론에 바탕한 열전달이론의 수학적 체계를 세움열기관의 열효율에 관한 문제 - 열기관이 사용한 열과 일, 즉 역학적 에너지의 관계 - 이 문제에 기초를 놓은 사람이 카르노(Sadi Carnot)카르노는 칼로릭이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이동하면서 일을 한다고 생각 - 열기관의 열효율은 열기관의 작동물질에 관계없이 그 열기관을 구성하는 두 온도만의 함수가 된다고 생각1824년 “열에 운동에 대한 고찰” (Reflexions sur la puissance motrice de표 당시에는 별 주목을 끌지 못함 (공학 전문학술지 기재, 열기관의 실제문제가 아닌 이론적 문제를 다룸) 카르노 사후 1840년대에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읽혀지고 논의됨물리학자들이 카르노의 원리에 관심을 가짐 - 열에 대한 칼로릭이론은 퇴조 1830년대부터 여러 가지 형태의 '에너지', '힘', '효과' 특히 역학적 에너지와 열, 화학적 에너지 등 서로 같은 종류의 물리적 양이고 서로 변환될 수 있다고 생각 (18세기 말부터 퍼진 자연철학주의의 영향이 큼)일과 열의 상호관계 (열역학 제1법칙)자연철학주의(Naturphilosophie)계몽사조가 지나치게 기계적, 실험적, 수학적 자연관을 강조하여 자연으로부터 생명, 신비함, 통일성, 감성 배제 - 자연철학주의는 자연에 이러한 것들을 다시 부여 - 특히 자연세계의 통일성을 강조(기계적 자연관이 자연을 조각, 분해 통일성을 보지 못한다고 비난)셀링(Friedrich schelling) - 다양한 형태의 자연현상들 밑에는 그 현상들 모두를 포괄하고 거기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단일한 무엇-양, 관념-이 있다고 믿음 ('힘' 또는 '에너지') - 이것이 전기, 자기, 빛, 소리, 열, 화학 및 역학 현상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고 생각 이 같은 분위기의 영향하에서 에너지보존의 원리, 또는 열역학 제 1법칙을 발견 - 마이어(Robert Maver), 줄(James p. Joule), 헬름홀츠(Hermann Helmholtz)가 대표적인 발견자마이어 (Robert Maver)- 의사시절 1824년 열대인과 유럽인의 정맥피를 관찰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발견 - 사람이 음식물 섭취 산소와 반응(몸의 열) 열이 역학적 에너지로 소모 - 열대인들은 역학적 에너지 소모가 적어서 정맥피 속에 산소가 더 많이 남아서 더 빨간색임 - 음식물의 화학적 에너지, 열, 역학적 에너지(일) 상호변환 가능한 같은 종류의 양헬름홀츠(Hermann Helmholtz)- 동물체의 열의 근원에 관한 탐구 (마이어와 비슷한 결론) - 열, 일, 에서의 에너지보존 법칙이 다른 모든 에너지를 포함하는 형태로 확장되어야 함을 주장줄(James p. Joule)- 에너지가 보존되고 여러 형태가 서로 변환이 가능함을 실험으로 보여주려고 노력 (영국 과학의 특징) - 주어진 양의 열을 내는 각종 에너지의 양을 재는 실험 - 특히 역학적 에너지 전기 에너지 열로 바뀌는 과정에 대한 실험 (일과 열 사이의 상호변환계수의 정확한 측정)* 이들에 의해 열과 일이 서로 같은 종류의 양이고 서로 변환되며 그 합은 보존 (열역학 제 1법칙이 받아들여짐)열역학 제 2법칙과 '엔트로피'1847년 톰슨(William Thomson)은 줄과 카르노의 생각이 서로 모순됨을 인식 (카르노는 열기관은 높은 온도에서 흡수한 열 전부를 낮은 온도로 보내고 일을 한다는 생각, 줄은 열과 일이 같은 종류의 물리적 양이고 서로 변환될 수 있으며, 이때 열과 일을 합친 양이 일정하게 보존) 위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 (클라우지우스와 톰슨 – 열역학 제 2법칙을 얻어냄)클라우지우스는 열이 다른 아무런 변화 없이 낮은 온도에서 높은 온도로 흐르는 일이 생김을 추론 - 불가능함에 바탕으로 카르노 원리 증명 톰슨은 다른 아무런 변화 없이 주위로부터 열을 흡수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바탕 (카르노 원리 증명)클라우지우스 (Clausius )톰슨 (William Thomson)클라우지우스와 톰슨이 사용한 경험적 사실들, 또는 사실들의 경험적 불가능성 - 열역학 제 2법칙의 내용 Cf)열역학 제 1법칙은 열과 일을 포함한 변화에 있어서 그 합이 보존 (양적인 관계를 규정) 열역학 제 2법칙은 일과 열의 변화에 대한 방향성 제한열역학 제 2법칙은 자연세계에서 어떤 특정한 종류의 현상이 일어날 수 없다는 형태로 표현 - 클라우지우스에게는 불완전해 보임 - 보편성, 규칙성을 포함하지 않고, 보존성을 보이지도 않았으며, 정확한 표현도 아님 1850년 이후 열역학 제 2법칙을 더 일반적이고 완전하며 수학적으로 정리하고자 노력 - '엔트로피'(entropy)개념은던 것은, 1852년에 발표된 톰슨의 논문 톰슨은 에너지의 유용한 부분이 감소한다고 생각 - 에너지의 '낭비'(dissipation)라 함 - 열의 생성, 전도(conduction), 복사(radiation)등 비가역적 과정들을 논의 (“현재 물질세계에는 역학적 에너지의 낭비를 향한 일반적 경향이 존재한다”고 결론 지음) 이를 수학적 계산과 논리적 추론을 통해 얻기 위해 노력한 가지 방향으로만 변화하는 물리적 양을 수학적으로 정의하는 일에 집중 - 15년간의 노력 끝에 그처럼 항상 증가하는 양을 정의 - '엔트로피'라고 부름 ('에너지'라는 단어와 유사하게 만들려는 의도) 1865년 그는 논문에서 '우주의 두 가지 기본법칙' 표현 1. 우주의 에너지는 일정하다. 2. 우주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엔트로피 개념에 대한 이해엔트로피의 개념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됨 - 우주의 변화를 통해 항상 보존되는 '에너지' - 우주의 변화가 방향성을 나타내며 항상 증가하는 '엔트로피'이기 때문 엔트로피의 개념은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음1865년 엔트로피의 개념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킴 (자신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면이 있을 정도였음) - 그 이유는 정의된 형태가 지극히 간접적이었기 때문 - 그 자체로서가 아닌 미분량으로 정의되고, 이상적인 가역적 과정의 제한하에서 정의 (비가역적 과정에 대한 변화는 계산하기 힘들었고, 물리적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움) - 물리적 의미가 어느 정도 직관적으로 파악되었던 에너지의 개념과는 크게 대조적엔트로피의 물리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을 시도 - 확률적인 방식을 통해서 성공 열역학 제 2법칙이 수학적 추론과 이론적 증명이 아닌 경험적인 사실이라는 점으로부터 시작 톰슨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들이 과거에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 이론적으로 불가능함이 증명된 일들은 아니었음 - 단지 확률이 극히 낮아서 경험적으로 그것이 일어나는 것을 관측하기가 불가능한 일이었음열역학 제 2법칙이 제시하는 변화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변화가 일어날 확률이 지극히 높다는 것이 됨 1877년 볼츠만(Ludwig Boltzmann)의 논문 - 주어진 상태에 대한 엔트로피가 그 상태에 해당되는 분자들의 배열방법수의 로그(log)에 비례함을 보임 - 이는 엔트로피가 확률의 로그에 비례함을 의미함어떤 상태에 대한 엔트로피는 그 상태에 대한 확률, 또는 그 상태의 무질서함의 척도 - 어떤 계(system)의 무질서한 상태(기체상태) : 배열방법수, 확률이 큼 질서가 있는 상태(고체상태) : 배열방법수, 확률이 작음어떤 계 속에 담겨있는 기체분자들의 가능한 배열방법을 모두 찾아 볼 수 있다면 거의 모든 배열이 분자들이 아무렇게나 섞여 있는 무질서한 상태, 극히 드문 경우 질서가 있는 상태가 얻어짐볼츠만은 어떤 기체계에서 분자들이 질서 있는 배열로부터 시작해서 움직이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무질서한 배열들로 가게 되리라고 쉽게 예측 - 무질서한 배열들이 가능한 배열방법의 수가 훨씬 많고, 그에 따라 확률이 높기 때문 Ex) 카드놀이 - 질서가 있는 배열로부터 시작해 카드를 섞으면 질서가 줄어든 배열이 얻어짐(무질서한 상태가 확률이 높기 때문)이 같은 논으로부터 분자들로 이루어진 계가 겪게 될 어느 물리적 과정에서나 무질서함(엔트로피)이 증가할 것은 거의 확실 열역학 제 2법칙은 많은 숫자의 분자들로 이루어진 계에 적용되는 이 같은 거의 확실한 사실에 대한 확률적 법칙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것과 같은 극히 드문 경우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사실임)확률을 통해 엔트로피를 정의해 줌으로써 볼츠만은 열역학 제 2법칙을 확률법칙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만듬 어떤 상태에 대한 엔트로피는 그 상태의 확률을 나타내는 척도 - 계는 확률이 낮은 상태 높은 상태 (엔트로피는 증가) 엔트로피와 확률 사이의 관계, 그것들과 분자배열의 무질서함 사이의 관계가 명확하게 주어짐 - 엔트로피는 열의 출입이 수반되는 변화에 대해 간접적으로 주어진 정의에서 벗어나서 모든 물리w}
    자연과학| 2007.06.14| 27페이지| 1,500원| 조회(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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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학]과학혁명과 종교 평가C아쉬워요
    목 차갈릴레오 종교재판 청교주의와 과학 : 머튼 명제 성서적 자연관과 합리주의적 자연관 이성과 경험 : 데카르트적 합리주의, 베이컨적 경험주의 보일과 실험과학갈릴레오 종교재판갈릴레오는 1610년경 망원경 직접 제작 하늘을 관측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를 강력히 옹호 달 표면이나 흑점, 목성과 금성 등을 관측 일반인들이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줌갈릴레오 갈릴레이갈릴레오의 망원경갈릴레오가 기록한 금성의 위상갈릴레오의 우주관은 지구 중심설을 부정함으로 기독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것이었음 1616년 코페르니쿠스 우주구조에 대한 금지령 발령 갈릴레오는 이 금지령을 어기지 않으며 자신의 주장을 계속하였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의 구조가 옳다고 말하지 않고, 아리스토텔레스 우주구조에 바탕이 되는 생각들을 반박하였고, 코페르니쿠스 우주구조에 대한 반론들을 되받아 반박하였다.코페르니쿠스태양 중심 우주론두 가지 주된 우주구조들에 관한 대화1623년 진보적이며, 과학에 조예가 깊은 우르바누스 (Urbanus) 8세가 교황으로 직위 갈릴레오의 측근들은 두 가지 우주구조에 대한 장,단점을 살펴보고 그 이유를 공정하게 밝혀내는 대화체의 책을 쓸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음 갈릴레오는 교황의 참뜻을 착각 코페르니쿠스 우주구조의 우수함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생각하였다.갈릴레오는 1630년 “두 가지 주된 우주구조들에 관한 대화” 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가 분명히 옳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구조를 믿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라 믿게 만들었다. 갈릴레오의 탁월한 문장력에 의해 출판 당시부터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교회 당국의 반응교회 당국은 뒤늦게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음 이 책은 루터나 칼뱅보다 교회의 권위와 교리에 더 위협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가짐 갈릴레오에 대한 가혹한 조처를 취하게 된 가장 큰 원인 1632년 재판에서 갈릴레오의 죄목은 1616년 교회에 대한 서약을 위반 이에 근거하여 갈릴레오는 유죄판결을 받음 갈릴레이나 우주구조에 대한 논의는 삼가한 채 역학의 연구와 집필만 하다가 일생을 마침갈릴레오 종교재판의 성격종교재판의 성격은 과학과 종교의 대항이 아닌 여러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음 16세기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의 공격에 대처 가톨릭교회는 교회의 신앙적 배경이 약화되는 일은 방치할 수 없었다. - 교황 자신의 개인적 환경도 이에 작용 갈릴레오의 낙관적인 생각과 순진한 면도 이에 기여 - 자신의 합리적인 주장으로 교황청 당국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믿음 교회 당국의 착각도 작용 - 단순히 과학적 주장 자체만 억누름으로써 과학이론의 발전과 전파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 갈릴레오 종교재판은 여러 측면을 가진 인각관계의 복잡한 사건이었음 - 따라서 이를 단순히 과학에 종교의 억압이라는 상투적인 관계로 이해할 수는 없다.청교주의와 과학 : 머튼 명제과학혁명기의 과학과 종교 사이의 직접적이고 긍정적인 연결과 부합을 보여주는 주장이 머튼에 의해 제기 1938년 처음 발표된 “머튼 명제”(Merton Thesis)라 불리는 이 주장은 오랫동안 많은 물의와 논란을 빚어 왔다. 머튼의 주장은 막스 베버의 “개신교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의 주장을 과학과 청교주의의 관계로 옮겨 적용 - 17세기 영국의 새로운 과학이 개신교, 특히 '청교도의 윤리' (Puritan ethic)와 부합되고 그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우선 머튼은 청교도윤리와 과학에 공통된 여러 요소를 들었음 - 청교도들은 신의 영예를 드높이려 하고 인류와 사회에의 공헌을 꾀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근면과 열성이 필요하며, 또 자신들의 직업과 임무, 특히 지적인 직업과 임무에 대한 사명감이 크게 요구된다. - 따라서 인간이 가진 이성(reason)의 역할을 찬양하며 그와 아울러 교육의 역할을 강조 - 교육이란 재래식 교육이 아닌 직접 관찰과 경험을 중요시하는 것 청교도들의 이와 같은 경향은 새로운 과학의 관념과 공통된 점이 많으며, 과학적 지식을 추구하고 과학활동에 종사하는 일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 머튼은 둘 과학자 중에 특히 청교도가 많았음 (왕립학회 회원들에 관한 자료 분석)머튼 명제의 한계와 제한적 유용성머튼의 주장은 과학혁명기의 과학과 종교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제한된 범의에서의 유용한 명제 - 청교도윤리와 새로운 과학이 서로 부합됨을 보이고, 실제로 두 가지의 상관관계가 높았음을 통계적으로 보여주었을 뿐이다. - 또 영국에서의 새로운 과학활동에 기여했다고 주장했을 뿐, 과학혁명 전반에 대한 기여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따라서 머튼의 주장을 확대 해석해서 청교도윤리가 과학혁명에 기여했다거나 근대과학의 형성을 가져 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위의 문제점은 머튼 명제가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 주장에 제한을 가해서 상당히 약화시켜야만 할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청교도주의와 과학에 대한 열의가 거의 같은 시기의 영국에서 나타났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또한 이와 같은 연결이 청교도만이 아닌 개신교 전체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 과학자들 중에는 갈릴레오나 데카르트와 같이 가톨릭교도도 있었지만, 이 시기의 과학자들 중에 개신교도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결국 머튼 명제는 종교개혁과 과학혁명 사이의 연관을 지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많은 문제점 지니고 있음에도 오랫동안 영향력 있는 주장이 되었다.성서적 자연관과 합리주의적 자연관호이카스는 머튼 명제보다 지역이나 시기상으로 더 광범위하게 그리고 신학적 내용면으로 더 깊은 차원에서 기독교 신앙과 과학과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호이카스는 그리스 이래 과학혁명기까지의 자연관과 과학의 역사를 달리 해석 - 신의 전능성을 믿는 성서적 자연관(Biblical World-view)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합리주의적 자연관(Rationalist World-view) 사이의 경쟁관계에서 해석 이 과정에서 과학혁명이 일어난 것으로 보았다.성서적 자연관신은 자연세계를 창조했으며 단순히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자연세계를 계속 유지하고 지탱시켜 주었다. 자연에는 질서가 존재하지만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신의 계속적인 연구되고 이용되어야 할 대상합리주의적 자연관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해서 기독교가 자리잡기 이전부터 받아들여져 왔다. 합리주의적 자연관은 자연은 무로부터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물질을 가지고 만들어 졌다. - 신의 임의대로가 아닌 합리적이고 조화로운 '계획'(design)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생각 자연세계에는 합리적이고 질서에 맞으며 조화로운 일만 일어날 수 있다. - “우주의 영”(World soul)에 맡겼다는 플라톤의 견해가 이를 뜻한다.이성과 경험 :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와 베이컨적 경험주의고대에 각각 따로 시작된 이 두 가지 견해는 중세를 통해서 다 존재 - 중세 기독교의 압도적인 힘에도 불구하고 성서적 자연관은 합리주의적 자연관을 이기지 못했다. 두 가지는 서로 타협관계에서 평형을 유지 호이카스의 견해는 이와 같은 평형상태를 깨었다. - 과학혁명 (성서적 자연관이 합리주의적 자연관을 대체해 낸 것을 가르킨다.) - 자연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의 이성(reason)과 경험(experience)의 역할 사이의 상호관계를 살핌과학혁명기에는 종교와의 관련과는 별도로 이미 경험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퍼져있었다. - 합리주의적 경향에 구애 받지 않고 경험적으로 얻어진 실제지식들을 받아들임 (항해사, 천문가, 기숙자, 장인들 사이에 널리 퍼짐) 호이카스가 '베이컨적 경험주의'(Baconian Empiricism)라고 부른 이 경향은 점차 많은 과학자들이 받아들임 - 그들은 외부 자연세계를 합리적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 - 경험적인 실제 지식을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임경험주의 경향은 14세기경부터 중세 기독교사회에 대두됐던 주의론적 신학(Voluntarist theology)으로부터 크게 지원을 받았다. - 지나친 합리주의적 색채에 대한 반발로 신의 전능성을 재천명함으로써 대두한 주의론적 신학은 17세기에 맹위를 떨침 주의론적 신학에 영향받은 사람들은 합리주의적 자연관에 반대해서 전능한 신은 인간의 합리적 사고의 수준을 넘는 일도 얼마든지 않더라도 일단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경험주의적 자연관을 갖게 되었다.이것은 이미 존재해 있던 경험주의적 색채와 서로 합류해서 과학혁명기의 자연관의 주된 조류가 되었다. 주의론적 신학에서 출발했으나 결국 합리주의적으로 흐른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를 이겨내고, 궁극적으로 과학혁명의 결과로 나타난 새로운 자연관으로 받아들임 - 파스칼, 보일, 뉴턴 등은 모두 이와 같은 경향을 보여준다.보일과 실험과학과학혁명기를 통해 과학종사자들의 수가 증가하고 이들의 지위도 상승 이들은 자신들의 활동과 기독교 신앙과의 상호적응을 꾀하게 됨 - 종교의 믿음과 자신들이 종사하는 새로운 과학을 적응시키려고 하였다. 대표적인 그룹은 '기독교도 버튜오스'(Christian Virtuosi)라고 불리우는 계층 - 보일로 대표되며 17세기 영국사회의 상류 지식계층의 큰 부분을 이룸 - 이들은 기독교로부터의 과학에 대한 비난이 있자, 과학활동이 기독교 신앙에 저촉되지 않음을 강력하게 주장기독교도들은 과학이 사람들을 지적 교만에 빠지게 하고, 합리적 판단을 신보다 우위에 두려고 한다고 비난 특히 새로운 과학에 바탕을 둔 기계적 철학은 사람들을 완전한 유물론(materialism) 으로 몰고 간다고 주장 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견해 - 자연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연구해서 조화와 질서를 보여주는 것은 신의 능력에 대한 실제 경험이며 기독교 신앙과 저촉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 보일은 자연세계의 법칙은 신이 부여한 것이며 이를 연구하는 것은 신의 전능함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기독교도들은 그러한 일은 열심히 해야 한다고 주장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보일은 그의 여러 글들을 통해 강력히 주장한 '기계적 철학' 과 '실험적 철학'(experimental Philosophy)이 기독교 신앙과 잘 부합됨을 강조 과학혁명에 의해 새로운 중요성을 띠게 된 과학은 당시 사회의 지배적 요소였던 기독교와 상호적응과 타협을 얻어 내야만 했다. 이러한 적응과 타협의 과정에서 새로운 과학의 요소들이 융합 - 실험과 기계적 철학이 기독w}
    자연과학| 2007.06.14| 21페이지| 1,500원| 조회(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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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자역학의 역사 평가A좋아요
    양자역학◆ 1900년 “막스 플랑크” ◆“양자(quantum)"라는 양을 도입 열복사에 관한 그의착상을 발표, 양자역학의 탄생1. 막스 플랑크의 젊은 시절※ 막스 플랑크의 젊은시절막스 플랑크는 1858년 4월 23일 북부 독일의 항구 도시인 킬에서 태어났다. 1874년 그는 뮌헨의 막스밀리안 김나지움을 졸업했다. 학창시절 그의 석차는 상위권이었으나 한번도 수석을 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즉, 어학, 수학, 역사, 음악 등 모든 과목을 고루 잘했으며 부지런하고 성실했으나, 특출한 재능이나 적성을 타고나지는 못했다. 대신 그는 목사, 학자, 법률가 집안의 출신답게 책임감이 강하고 보수적이었으며, 어느 의미에서는 대기만성형의 인물이었다.1874/75 겨울 학기부터 플랑크는 뮌헨대학 철학부에 등록했다. 당시 플랑크의 지도교수였던 필립 폰 욜리 (Philipp von Jolly)는 플랑크에게 열역학의 기본 원리들이 모두 발견되어서 이론 물리학은 이제 거의 완성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에 아마도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없을 것이니 다른 전공을 택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플랑크는 그에게 설득되지는 않았다.1878년부터 그는 대학을 옮겨 베를린의 헤르만 폰 헬름홀츠 (Hermann von Helmholtz, 1821-1894)와 구스타프 키르히호프 (Gustav Kirchhoff, 1824-1887) 밑에서 배웠고, 1879년 6월 '열역학의 제2 법칙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최우수 성적(summa cum laude)으로 뮌헨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그는 1880년 6월 뮌헨 대학에서 교수자격 논문을 통과해서 그 곳에서 사강사로 생활하다가, 1885년에는 고향인 킬 대학 수리물리학 부교수, 1889년에는 키르히호프 후임으로 베를린 대학의 부교수가 되었다가 마침내 1892년 베를린 대학 정교수로 자리잡게 된다. 바로 이곳에서 플랑크는 자기 생애의 최대의 업적인 흑체 복사 이론을 완성하게 된다.2. 초기 흑체복사에 대한 연구흑체복사 이론에 대한 helm Wien), 오토 룸머 (Otto Lummer, 1860-1925), 페르디난트 쿨를바움 (Ferdinand Kurlbaum, 1857-1927), 하인리히 루벤스 (Heinrich Rubens, 1865-1922) 등이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비롯한 좋은 제도적 조건 속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당시 급성장하던 독일 조명산업에서는 필라멘트에서 방출되는 스펙트럼의 가시영역과 가시영역 밖의 전자기적 에너지 분포를 비롯한 복사현상에 대한 보다 넓은 이해를 원했는데, PTR의 유능한 실험물리학자들은 독일 조명산업계의 이러한 현실적 요구에 제도적으로 부응하기 위해 복사현상에 대한 면밀한 실험을 행했던 것이다. 바로 이들의 실험 결과는 플랑크로 하여금 새로운 복사 관계식을 찾게 만든 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한편 1895년 정교한 실험 장비로 빈의 변이 법칙에 대한 결정적 실험적 결과를 얻어낸 하노바 공대의 조교 프리드리히 파센 (Friedrich Paschen, 1865-1947)은 그 이듬해 에너지 자신의 실험 결과를 확장해서라는 키르히호프 법칙에서 예측한 함수를 얻어냈다.그는 자신의 실험을 통해 이 법칙에서 α 의 값이 5에서 6 사이의 값, 평균적으로 약 5.6정도라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같은 해 빈은 파센의 법칙이 슈테판-볼츠만의 법칙과 양립할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이 복사식에서 α의 값은 5.0이 되어야 이론적으로도 모순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 뒤 1899년까지 계속된 더욱 정밀한 실험을 통해 빈의 복사법칙은 많은 과학자들 사이에 실험적으로 확인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한편 실험적인 차원뿐만이 아니라 이론적인 차원에서도 빈의 법칙이 일반적인 형태로 유도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과제로 남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독일에서 학과 제도상으로 보나 학문 분야 면에서 보나 최초의 이론물리학자로 인정되고 있는 막스 플랑크가 도전했던 문제였다. 플랑크는 빌헬름 빈이 변이 법칙을 실험적으로 발견한 1893년부터 흑체 복사 문제를 이론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하는 데 사용했던 통계적 방법은 이미1877년 볼츠만 이 제기했던 논의였다. 물론 당시 볼츠만의 통계적 논의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맥스웰-볼츠만 통계 와 1924년 이후 등장하는 보즈-아인슈타인 통계 와 구별하기 매우 힘든 형태의 논의였다. 따라서 플랑크는 자신의 방법이 우리가 알고 있는 맥스웰-볼츠만의 통계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통계라는 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로 자신의 '혁명적'인 논문을 집필했던 것이다.이런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에 플랑크의 작용 양자에 관한 논의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에너지 불연속 개념은 그리 중요한 개념이 아니었다. 당시에 플랑크 자신에게 있어서는 볼츠만의 통계역학과 고전 전자기학을 동시에 만족하는 통일되고 체계적인 자연법칙을 유도하는 것이 양자 불연속 개념 보다도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플랑크가 흑체복사의 에너지가 정수 배로 변화한다는 중대한 가정을 처음으로 자신의 논문에서 쓰고는 있었지만, 그 자신은 빛이 바로 입자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심한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다.6. 양자 불연속개념의 확립1900년부터 1908년에 이르기까지 양자불연속 개념은 빈-플랑크 복사식이 실험적으로 입증되었는데도 하나의 특별한 미봉가설로 간주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시의 과학자들은 에너지 불연속 개념과 같은 혁명적인 개념의 사용에 대해서 그리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는 플랑크 자신도 1906년까지도 자신의 이론에 함축되어 있는 양자불연속성 개념에 대해서 확신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그러던 차에 1908년 당대에 가장 권위가 있었던 물리학자였던 로렌츠 는 로마의 제 4차 수학자 회의에서 행해진 일련의 강연에서 이전의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고전전자기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레일리-진스 법칙을 이론적으로 유도했다. 이 때 로렌츠는 빈-플랑크 식과 레일리-진스의 복사식을 비교하면서 레일리-진스의 이론이 빈-플랑크의 이론보다 훨씬 더 우수하다고 주장했는데, 이 사시점이었다. 또한 플랑크는 혁명적 이론을 제안한 다른 많은 과학자들과는 달리 그리 천재적인 인물은 아니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20세기 초 물리학 내의 혁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실하게 일했던 대기만성형의 평범한 과학자에 의해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1905년 “아인슈타인” ◆광양자 가설빛의 본성이 파동인지 아니면 입자인지에 대한 논쟁은 과학계에서 이미 오래된 해묵은 논쟁에 속한다. 운동의 3법칙과 보편중력을 바탕으로 과학혁명을 완성한 뉴턴 은 빛의 입자성을 제기했고, 뉴턴이 지녔던 엄청난 권위와 영향력 때문에 18세기를 지나는 동안 오일러 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빛이 입자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19세기에 들어와서 회절과 간섭 현상이 발견되면서 과학자들은 다시 빛은 파동의 성질을 지녔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진공 중에서 빛이 전파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에테르 라는 가상의 물질을 제안하기도 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아인슈타인 은 상대성이론을 도입하여 고전역학과 전자기학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를 극복했고 이 과정에서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했다. 또한 그는 광양자 가설 을 제기함으로써 19세기 초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던 빛의 입자성을 다시금 부활시켰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광양자 가설을 제기함으로써 양자론의 발전에 커다란 획을 그었을 뿐만 아니라 빛에 대한 현대적 해석인 파동-입자 이중성의 개념이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 막스 플랑크의 작용양자아인슈타인 의 광양자 가설 은 1900년에 나타난 막스 플랑크 가 지녔던 빛에 대한 관점을 더욱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형성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단순한 계승 발전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광양자의 존재 문제와 양자 불연속 개념 의 접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두 인물 사이에 커다란 입장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1900년 막스 플랑크에 의해서 제안된 흑체 복사 이론은 고전물리학과 대별되는 새로운 양자론의 탄생을 알리는 출발점이었지만, 보수적 인식했던 에너지 등분배 법칙을 이용해서 플랑크 공진자 (Resonator)의 평균 에너지를 유도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이 새로운 비열 이론에 의하면, 19세기에 등장한 고체 비열 이론에서 주장한 것과는 달리, 고체의 비열은 절대 온도 0도 근처에서 지수적으로 0으로 접근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비열 그래프아인슈타인 의 비열에 관한 이론은 정작 물리학자들에게는 그리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으며, 오히려 1880년대 말부터 물리화학 분야에서 활동하던 화학자 발터 네른스트 (Walther Nernst, 1864-1941)가 이 논문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당시 네른스트는 고체나 유체 상태의 대단히 순수한 응집 물질 사이의 열역학적 상호작용에서 헬름홀츠 자유 에너지와 전체 에너지 사이의 차이가 아주 적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런 경험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1906년 네른스트는 절대 온도 0도 근처에서는 엔트로피 의 변화가 없다고 하는, 요즈음 흔히들 네른스트의 열역학 제3법칙 이라고 부르는 가설을 제안했다. 이 열역학 제 3법칙 때문에 유한한 회수의 열역학적 과정으로는 절대 온도 0도에 도달할 수 없으며, 절대온도가 0도에 가까워짐에 따라서 비열이나 열팽창률 등도 0에 가까워지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비열 이론은 네른스트가 가정했던 열역학 제3법칙의 결과와 절대온도 0도 근처에서 비열이 0으로 수렴한다는 점에서 서로 보완 관계에 있었다. 네른스트와 그의 학생들은 극저온에서의 비열을 측정하는 방법을 개선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즉 네른스트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넓은 온도 구간 사이의 평균 비열 값뿐만이 아니라, 극저온의 아주 작은 구간의 온도에서 비열을 정확하게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었다.1907년 아인슈타인이 이미 고체 비열 이론에 양자론을 이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는데도 1910년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자들은 광학적 측정값으로부터 고체 결정격자의 진동수를 유도하려는 것에는 거의 주목하지 다.
    자연과학| 2007.05.28| 17페이지| 2,000원| 조회(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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