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
검색어 입력폼
  • 장미의 이름 평가B괜찮아요
    장미의 이름종교, 신념, 이성, 진리에 관한 끝없는 여행.편집인의 변장미의 이름을 정하고 나서- 서양의 사상과 결합된 부조리한 판타지 세계를 거닐며...어릴 적에 우연히 읽게 된 책이 있었습니다. '장미의 이름'. 당시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던 여 선생님의 감탄 어린 추천사가 있었던 글이었기에 많은 친구들이 읽고 있었죠. 저두 그 무리에 얽혀서 다들 지쳐서 읽지 못하게 된 책을 꺼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고등학교 수업 치고는 꽤 수준이 높았던 서양 문학의 흐름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거기에는 서양 문학 사상의 한 흐름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책(소실되었다고 하는...)을 소재로 한 흥미진진한 얘기가 바로 장미의 이름입니다.윌리엄(or 윌리암)이라는 신부가 겪는 수도원 내에서의 비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엄청난 철학자가 쓴 엄청난 책 '시학'의 존재, 중세라는 격리되고 퇴쇄된 공간에서의 암투, 기독교 사상에 대한 접근등은 꽤 방대한 내용이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이 책이 20세기의 10대 소설이라는 소리와 저자 옴베르토 에코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단순히 읽을 거리가 많다거나, 저자의 상식이 풍부하더라거나, 흥미진진하다고만 해서 꼭 책을 대단하다고 평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물론 정 반대의 경우도 말이 안 되겠죠.) 여기에는 책 이면에 감추어진 기독교 사상에 대한 고찰과 종교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중세 시대의 부조리한 삶에 대해서도 중요한 부분입니다.우리는 이 소설에 있는 커다란 흐름과 거기에 숨겨진 얘기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열심히 써내려 가려고 합니다.자신의 생각을 쓴 글이 있으며, 편집인이 여기 저기서 끌어 모인 자료들이 있으며, 비교적 잘 만들었다고 하는 영화 Name der Rose 의 줄거리랑 감상문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상당히 보구 싶습니다. 소설 자체를 완전히 이해 못했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더라도 기독교에 대해 다른 생각이나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은 있을 수 있는 것이다.하지만, 중세의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이미 전제하여, 여러 가지 사회, 정치적 운영에 그 의미를 담았다. 이런 측면에서 중세는 그리스도의 권위에 속하지 않는 것들에겐 하나의 암흑기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에 나오는 미로화된 비밀 도서관처럼. 하지만 비밀은 오래갈 수 없고, 도식화된 거대 기독교에 이질적인 것들의 흐름은 시작된다.의 마지막 장면은 우리에게 이런 인상을 확신시켜준다. 호르헤 신부가 반기독교적 사상의 전파를 막기 위해 금서에 독을 묻혀 간접적 살인을 했음이 탄로나고, 결국 그는 아래와 같은 말을 하며 자살한다. '웃음은 두려움을 없애. 그러면 신앙심이 안 생겨. 악마가 두려워야지만, 신의 필요성이 생기는 것이야. 책(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을 공개한다는 것은 웃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야. 그러면 인간의 웃음에 하나님에 대한 경건성은 사라지고, 다시 세상은 혼돈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네.'우리는 전체화로 인한 많은 비극을 보아왔다. 여기서도 사람들이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했으며, 그 후에도 중세유럽은 마녀사냥과 같은 공식적인 학살을 저질렀다. 그러나 기독교는 윌리엄 오캄의 보편논쟁으로 근대로 접어들고 데카르트와 영국경험론, 대륙합리론의 문제제기로 그 의미와 범위를 재조정하게 되었다. 20C에도 헤겔의 절대정신이라는 전체화에 반대하여 니체가 부활되고 푸코에 의해 광기의 의미가 재조명되었으며 들뢰즈에 의해 분열증이 그 의미를 새롭게 가졌음을 생각해보면 또한 이들과 함께 현재성을 분명히 띌 수 있다고 본다.언제나 속하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의식에서 고려하지 않았기에 그것들의 이름을 모른다. 항상 유출되고, 이탈하는 그것들. 하지만, 항상 피어나는 그것들이 바로 '장미의 이름'이다. 그것은 시대사적으로 중세의 반그리스도적 이탈이였고, 기호학적으로는 기표에 충만되거나 일치하지 않는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의 관계,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즉 개인의 잘못 세워진 신념 체계는 그 개인이 위치하고 있는 사회 지위와 연관을 맺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어떠한 사항에 대해 극단적인 추진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 나치의 인종주의도 일종의 신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신념에 의해서 살해당한 수많은 유태인들의 경우를 보더라고 그릇된 신념체계가 가져다 줄 수 있는 맹점을 잘 설명해 준다. 소설에서 보여지듯 이단 심판관의 신념 체계는 이단은 곧 사형이요 자기의 결정은 곧 신의 결정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느낌이 강했다.) 그리하여 그는 살바토레등을 이단으로 몰아(실은 이단이었지만..) 그들을 화형시키게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제대로 자신의 변명을 하게 해 주지 못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을 변명하는 윌리엄 수도사에게도 이단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는 어찌보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기 지위를 이용한 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념이 폭력과 연관되어 있을 경우에는 그리고 그 신념을 가진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많은 희생이 나오게 된다. 이와같은 희생은 그릇된 신념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신념을 갖고 한 행도은 흔히 그릇된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신념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우리는 흔히 개인 영역으로 돌린다. 신념은 개인이 가져야 할 어떤 것이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흔히들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신념이라는 것은 지극해 개인적인 측면이면서도 사회적인 측면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사회 행동 패턴은 흔히들 그들이 갖고 있는 신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릇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으로 인한 사회 행동의 부적응을 가져 오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개인의 사회화 과정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그릇된 신념 체계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수 많은 사람들이 그릇력한다. 반면 눈멀고 이미 늙어버린 요르게는 독실한 신앙의 추종자이다. 요르게가 시편2의 열람을 막기 위해 수도사들을 죽인 것은 어쩌면 전근대의 사회에서 일어났던 모순적 상황과 일치할 수 있다. 그 장면에서는 종교적 신앙의 이름으로 화형에 처해진 중세 유럽의 (이른바) 마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녀처형도 중세 기독교적 질서의 결속을 위한 지배층의 자기방어적 노력이었다. 윌리암의 수사와 압박은 결국 요르게를 죽게 한다. 윌리암은 승리했다. 그러나 그가 찾던 시학2는 불타버린다.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신앙과 감성을 몰아낸 이성이 결국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현대사회의 많은 윤리적 병페를 빚어내고 있다는 작금의 사실과 유사하다. 우리는 서구의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고유하게 전해 내려오던 우리의 전통 사상을 말살해 왔다. '비합리'는 언제나 제거해야 한 대상이었다. 암묵적인 관습을 법으로 '합리화'하려 했고 우리의 끈끈한 정(情)은 비리의 온상으로 배척 했다. 더구나 지금 불어 닥치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는 '합리적'이라는 말을 '이윤이 남는'이라는 말로 대치시켰다. 우리는 합리적이기에 옆집의 가난한 장애인과 친해지려 하지 않는다. 합리적 계산으로 보아 계속 사귀어도 나에게 '이익이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어째서 많은 농민들과 노동자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책의 해설을 보면 반이성주의인 '포스트모던'과 연관된다고 말하지만 나는 솔직히 학문적으로 포스트모던을 잘 모르기에 거기까지 언급하지는 않겠다.이런 단순한 구조적 틀은 600페이지의 한 소설을 채우기에는 미흡하다. 그밖에 이 책은 세부적으로 적지 않은 생각거리들을 가지고 있다.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우르베티노라는 이단적 현자와 화자 아드소가 사랑을 나눈 한 여인이다. 어쩌면 작가는 이성과 신앙과의 대립을 순수한 사랑이라는 '듣기에도 기분 좋은'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스타인 벡의[분노의 포도]에서 역경을 극복하는 것은 마지막 장면의 숭고한 사랑(기아 직전의그 개념이 출현하게 된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조건을 우선 살펴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간략하게나마 이성을 올바른 사고기능, 혹은 데카르트의 표현을 빌려 "올바른 판단능력"이라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이와 불어 모든 형태의 사고가 올바를 수는 없다는 생각, 그리고 사고란 어떠한 조건이 지켜질 경우에만 합리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나타난다. 한편으로 사고의 규범, 다시말해서 사고 자체에 내재하는 원리와 사고를 합리적인 것으로 만드는 원리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을 수 있다. "이성은 적용되는 대상이나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식 정도와는 아무런 관련없이 다수의 불변자질로서 특징지어진다"라는 말이 있다.플라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등의 희랍 철학자들이 발전시킨 이러한 관점은 철학의 문제를 진리의 문제로 규정짓게 된다. 실제로 이러한 방법으로 논리적 사고에 접근함은 오로지 담화의 질서만이 의미세계, 다시 말해서 진실된 현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정보와 모양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또한 현실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력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으며, 그 최상의 단계는 현실에 대한 사고를 정당화 할 수 있는 경우이다.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일까? 우리가 진리의 기준, 즉 모든 종류의 언술의 지위를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 기준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진리의 기준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진리란 이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러한 생각은 진리를 본질, 즉 어디엔가 감추어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드는 믿음의 이면에 다름 아니며, 또한 인간들이 찾아내고자 애쓰는 믿음의 이면에 불과한 것이다. 한편으로 모든 인간이 자기 몫의 진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어떠한 종류의 담화도 진리를 표출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진리의 개념을 상대화하고자 하는 생각 역시 잘못된 것일 수 있다. 그러한 이유는 만약 진리가 어디에도 존재하는 것이라면 진리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역도 역시 가능하다. 따 영원
    독후감/창작| 2000.12.27| 20페이지| 무료| 조회(5,785)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21
21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
  • A좋아요
    3
  • B괜찮아요
    4
  • C아쉬워요
    11
  • D별로예요
    2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2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5:39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