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승*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6
검색어 입력폼
  • [독후감]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고 평가A좋아요
    * 목 차 *Ⅰ. 들어가는 말 - 사기 에 대해Ⅱ. 인상 깊었던 사기 열전(열전을 읽고)(1). 「사기열전」의 (평원군)?우경 열전(2). 「사기열전」의 범수?(채택) 열전(3). 「사기열전」의 자객 열전(4). 「사기열전」의 계포?난포 열전(5). 「사기열전」의 맹상군 열전주제: 사마천의 사기 열전 감상Ⅰ. 들어가는 말 - 사기 에 대해사기 는 ?본기? 12권, ?열전? 70권, ?표? 10권, ?서? 8권, ?세가? 30권의, 총 130여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역사서이다.사기 의 근간이라고 볼 수 있는 ?본기?는, , , , , , , , , , , , 의 12권으로 이루어졌다. 태고로부터 한의 효무제에 이르는 2천 5백년 동안 천하의 역사를 움직인 제왕들의 계보이자, 그들의 정치와 행적을 연대기에 따라 편년체로 기술한 것이다. 특이한 것은 임금이 아니었던 항우에 대한 나, 혜제의 본기 대신 가 들어있다는 점이다. 또 와는 별도로 가 따로 있나는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인데, 이러한 구성은 오로지 사마천의 독자적인 역사 해석의 결과라 할 수 있다.?세가?는 춘추˙전국 시대 이래 제왕을 둘러싸고 활동했던 제후급 인물들의 사적을 기술한 것이다. ‘제후’라는 존재는 ‘제왕’이라는 중심축과 세계를 연결시키는 고리로서 중요하게 상정되었기 때문이다. 한나라의 개국 공신인 소하를 다룬 , 유방의 군신이자 개국 공신인 조참 장군과 그 후손을 다룬 , 장량을 다룬 등은 뛰어난 유세로써 한나라의 천하통일과 그를 위해 큰공을 세운 개국공신들을 제후의 반열에서 다룬 내용들이다. ?세가?에서 주목할 부분은 와 편을 들 수 있다. 의 ‘공자’는 제후가 아닌 노나라의 관리에 불과하지만 기록되었는데, 이는 사마천의 유학 사상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에서는 반란의 주동자를 제후의 반열에 올려놓았는데, 이또한 사마천의 독특한 역사 해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세가?만으로는 연대기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이를 위해 공간적?시간적으로 알기 쉽게 기술할 도인 봉선 의식을 기록한 , 토목 사업의 기술적인 측면을 상세히 기록한 , 사회경제적인 내용 및 국가의 경제 정책을 다룬 의 여덟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마지막은 ?열전?이다. 이 ?열전?이야말로 사기 를 불후의 역사서로 자리매김 하는 부분이요, 그 가운데서도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열전? 편은 천하에 이름을 날린 개인의 전기 즉, 개인의 사적을 서술한 것이다. 하지만 그 형식과 대상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사마천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잘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총 70편인 ?열전?은 개개인의 열전 이외에도 비슷한 혹은 대비되는 성격의 인물을 동일한 열전에 묶어 서술하는 ‘합전’의 형식도 있고, 비슷한 유형 또는 동일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역대 인물들을 묶어서 열전을 편성한 ‘유전’도 있다. 유전은 과거 인물의 유형화를 통해 귀감과 평가의 기준을 제시하고 아울러 어떤 역사적 사건이나 사태의 진전, 인간이 이룩한 문화적 성취도 다수의 참여에 의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마천의 관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사기 는 기전체로 쓰인 최초의 역사서이다. 이전까지의 역사서는 연대별로 발생 사건을 순서대로 기술하는 편년체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다면 기전체란 무엇일까? 이는 제왕의 즉위 연대에 따라 편년체의 형식으로 사건을 기술하는 ‘본기’, 시대를 살아간 많은 영웅, 호걸, 간웅, 선비, 도적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을 다룬 ‘열전’, 그리고 시대의 상황을 읽을 수 있는 ‘표’, ‘서’, ‘지’ 등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서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기전체’란 단어는 본기의 ‘紀’ 열전의 ‘傳’을 따서 만든 것으로 후한시대 반표와 반고 부자에 의해 약간 손질이 가해져 이른바 정사라는 형식의 모범이 되었다.그렇다면 왜 사마천은 보편적인 것을 거부하고 기전체란 새로운 서술방식을 만들었을까? 사마천은 수많은 역사자료를 체계적이고도 계통적으로 분류한 뒤, 자신이 이해한 전체적인 역사상과 개개의 사실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표현하기 위해,론 지나치게 현실을 인식한 비판은 객관성을 잃기 쉽지만, 그에 있어 비판이란 역사적 진실에 보다 접근하는 수단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사마천의 노력의 결과 사기 는 역사 전반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일관된 역사관에 근거한 것이어서 때로는 엄숙하고 통렬하면서도, 차원 높은 비판의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Ⅱ. 인상 깊었던 사기 열전(열전을 읽고)(1). 사기 열전의 춘추?전국기라는 혼란이 동안 여러 나라를 섬기는 지조 없는 일부 빈객들과는 달리, 우경은 끝까지 합종을 지키며 진나라에 대항하고 조나라에 충성을 다하였던 인물이다. 사마천은 ‘우경’에 대해 “우경이 곤궁하고 우수에 잠기지 않았더라면, 책을 저술하여 자신을 후세에 드러나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우경은 유세하는 선비이다. 그는 짚신을 신고 챙이 긴 관을 쓴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조나라왕을 한 번 만나 백옥 한 쌍과 황금 2000냥을 받았고, 두 번 만나 상경에 임명되었으며 세 번 만나 조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우경은 사태를 헤아리고 상황을 추측하여 주도면밀한 계책으로 효성왕을 도와 어려운 나라의 정세를 바꾸어 오히려 진나라가 조나라에 화친 사신을 보내게 만들고 조나라와 위나라가 합종 하도록 만든다.하지만 이 과정에서 위나라 재상 ‘위제’는 범수의 원한을 사게 되고, 훗날 진나라의 재상이 된 범수는 ‘위제’의 목을 요구하게 된다. 곤경에 빠진 위제가 우경에게 도움을 청하고, 갖은 애를 썼음에도 능력의 한계를 느낀 우경은 재상의 지위를 버리고 위제와 함께 대량으로 몰래 도망치게 된다. 그러나 결국에 위제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우경이 떠난 조나라는 범수의 계략에 걸려 대패를 당한다. 우경은 어려운 생활을 하며 이루지 못한 뜻을 책으로 엮었고, 이 책을 우씨 춘추 라고 했다.우경은 효성왕을 세 번 만나 재상이란 높은 작위를 얻는다. 그러나 궁지에 처한 위제가 우경에게 매달리자, 우경은 재상이라는 높은 작위와 봉록도 버리고, 대량의 신릉군에게 도망을 간다. 어려움에 처한 이를 위해 힘써 일을 하꾸게 되고, 그 결과 조괄이 이끈 조나라의 40만 대군은 장평에서 몰살을 당한다. 역사에 만약은 없겠지만 우경이 재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범수의 계책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고, 40만이 버티는 조나라가 진나라에 멸망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의리를 중시해 도망쳤던 우경은 결국 위제도, 40만 조나라군도, 조나라의 운명과 백성도 모두 죽음으로 이끌게 된 것이다. 우경의 신의는 본받아 마땅하겠지만, 그로 인해 자신이 맡고 있는 책임을 함부로 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2). 사기 열전의 열전에서 사마천은 “이 두 사람(범수와 채택)도 만약 곤궁하고 재앙이 없었던들 어찌 이렇게 발분 하여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하였다.위나라 중대부 ‘수고’를 섬기던 범수는 그를 따라 제나라에 사자로 가게 된다. 이때 제나라 양왕은 범수에게 선물을 보내고, 이를 안 ‘수고’와 위나라 재상 ‘위제’는 범수가 위나라 비밀을 제나라에 알린 대가로 받은 것으로 알고 범수를 매질하여 변소에 버린다. 범수는 어렵사리 탈출하여 이름을 바꾸고 진나라로 들어가 숨어 지내다가, 훗날 진나라의 재상이 된다. 재상이 된 범수는 소왕을 도와 멀리 있는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어 가까이 있는 나라를 공격하는 원교근공의 계책으로 강국 조나라와 한나라, 위와 초까지 멸망시키고, 북쪽의 연과 진까지 도모하여 천하를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이때 범수는 자신을 변소에 두어 소변을 보게 한 위제를 결국 자살하게 함으로써 복수하고, 자기 집 재물을 풀어 옛날에 곤궁할 때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 하나하나 보답했는데 그때 단 한 끼의 식사라도 대접받은 자에게는 반드시 갚았고, 눈을 한 번 흘길 정도의 사소한 원한에는 반드시 보복을 했다. 후에 범수는 ‘해도 중천에 뜨면 기울고, 달도 차면 이즈러진다.’는 속담처럼 채택의 말을 듣고 재상의 자리를 채택에게 넘겨주었다.한비자는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 할 수 있다’고 했다. 범수는 세상에서 말하는 뛰어난 변사요 뛰어난리석은 일일까?(3). 사기 열전의 이 열전은 다섯 명의 자객에 대한 이야기로, 이 중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예양이다. 예양은 진나라 사람으로, 범씨와 중항씨를 섬겼으니 인정받지 못하고 지백을 섬기게 된다. 지백은 예양을 매우 존경하고 아꼈다. 훗날 지백이 조양자를 치지만, 오히려 조양자는 한?위와 함께 지백을 멸망시키고 그 자손까지 죽여 땅을 셋으로 나누었다. 예양은 산 속으로 도망가며 지백의 복수를 다짐하지만, 오히려 조양자에게 붙잡히고 만다. 잡힌 와중에도 당당하게 지백의 원수를 갚으려 했음을 밝히자, 이에 감동한 조양자는 예양을 풀어준다. 그러나 예양은 복수의 결심을 굽히지 않고 다시 조양자를 죽이려다 잡히게 된다. 조양자가 지백에 대한 예양의 충성과 절개를 칭찬하면서도 죽일 수밖에 없음을 탄식하자, 예양은 조양자의 옷을 얻어서 그것을 베는 것으로 원수를 갚게 해달라 부탁한다. 이를 의롭게 여긴 조양자는 자기의 옷을 내어주고, 옷을 내리친 예양은 지백의 은혜를 갚게 되었다는 말을 남기고는 스스로 자살한다.자객열전에는 이러한 예양 외에도 비수로 제나라 환공을 위협해 땅을 되찾은 ‘조말’, 연나라 태자 단의 인정을 받자 그 보답으로 진시황을 죽이려는 ‘형가’ 등 다섯 명의 자객이 등장한다. 비록 이야기에 등장하는 자객들은 단신으로 적군을 유린하는 뛰어난 무위의 소유자도 아니고, 복수를 하려는 대상 또한 일개 자객이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객들은 오직 자신을 인정해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용감히 일어나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바치고 있다.(4). 사기 열전의 이 열전에서는 불우했던 삶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른 두 인물을 만나 볼 수 있었다. 계포는 항우의 용감한 장군으로 여러 차례 유방을 자주 괴롭혔고, 때문에 항우가 멸망한 후 한의 고조 유방은 천금의 상금을 현상금으로 내걸고 계포를 체포하려 하였다. 계포는 복양의 주씨의 집에 숨지만, 이를 두려워한 주씨는 계포를 노비로 꾸며 주가에게 팔았다. 계포의 인물됨을 알아본 주가는 밭 창고에.
    독후감/창작| 2003.04.18| 6페이지| 1,000원| 조회(3,095)
    미리보기
  • [북한문학]북한소설 - `황진이`에 나타난 사랑
    ◈ 목 차◈Ⅰ. 서 론 - - - - - - - - - - - - - - - - - - - - 1Ⅱ. 북한 문학에 등장하는 사랑 - - - - - - - - - - - 21. 애정 문제를 다룬 소설의 등장 - - - - - - - - - - - - - - - - 22. 사랑 에 대한 남북한 문학의 서술태도 차이 - - - - - - - - - - 3Ⅲ. 북한소설『황진이』에 나타난 사랑 - - - - - - - - - 41. 에로스적 사랑의 모습 - - - - - - - - - - - - - - - - - - - - - 41) 벽계수와 황진이2) 원묵대사와 황진이3) 김희열과 황진이2. 황진이와 놈이의 필리아적 사랑의 모습 - - - - - - - - - - - - - 93. 사랑의 모습을 통해 본 특성 - - - - - - - - - - - - - - - - - 10Ⅴ. 결 론 - - - - - - - - - - - - - - - - - - - - - - 12※ 참고문헌 ※Ⅰ. 서 론올해로 민족상잔의 비극이라는 6·25 전쟁(1950.06.25∼1953.07.27) 이 일어난 지 54주년 되는 해이다. 그동안 남북한은, 자신들의 체제와 이념만을 강화·발전시키는 이른바 배타적 고립기 {) 박태상,「북한의 문화와 예술」, 깊은샘, 2004, p406를 보내며 서로 독자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남북한의 정치·사회·문화·문학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서로 이질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남북한의 문학 모두 같은 민족이 같은 언어로 쓴 것임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문학만을 우리의 문학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때문에, 평화 통일을 위해서는 이러한 이질성을 극복하고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질성을 극복하는 한 방법으로 중 남북 교류를 들 수 있다.남북한의 교류는 1972년 7월 4일 7·4 남북 공동 성명 {) 1972년 7월 4일 남북한 당국이 국토분단 이후 최초로 통일과 관련하여 합의발표한 공동성명으로, 자주적 통일문학창작의 주요한 요구이다. 모든 작가들은 당이 제시한 주체적인 창조 체계와 창작 원칙을 철저히 구현하며 …(중략)… 사상 예술성이 높은 우수한 작품들을 더 많이 창작하여야 한다. (김재용,「북 한 문학의 역사적 이해」, 문학과지성사, 1994, p259)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러한 사회주의 현실 주제를 유형화 시켜보면, 도시와 농촌의 갈등 문제, 과학기술의 혁신 문제와 인텔리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문제, 개방적이고 수정주의적인 젊은 세대의 등장으로 인한 세대간의 갈등 문제, 여성들의 가정과 사회 내에서의 위상과 역할 문제, 애정 윤리 문제 {) 박태상,「북한문학의 현상」, 깊은샘, 2003, p233등이 작품에서 다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1980년대 북한문학은 이전과는 달리, 다양한 민중 계층이 현실 생활에서 느끼고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변화로 인해 80년대 말 북한사회에서 최초로 애정문제를 공론화 하였던 『청춘송가』가 등장하게 된다.1990년대의 소설 문학은, 80년대 문학의 다양한 민중계층의 삶에 대한 세부 묘사에 치중 하는 특징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좀 더 세분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 시기 등장하는 애정 문제는 이전보다 좀 더 대담하게 삽입되기 시작한다.그렇다면, 애정 문제가 좀 더 대담한 모습을 보이는 요인은 무엇일까? 먼저, 90년대의 작가들은 사회 현실을 변호하며 낙관적 전망을 가진 긍정적 인물을 대거 등장시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1994년 김일성의 사망·황장엽 망명·식량난을 비롯한 경제난 등의 위태로운 사회 현실로 인한 동요를 막기 위해 대담한 애정 문제로 북한 주민의 관심을 끌려는 것 {) 통일부, 《북한개요》, 통일부 정보분석국, 2000, p 501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다른 요인으로는, 3대 혁명소조 {) 노동자들을 교육하는 세 가지 기본 방향, 기술혁명·사상혁명·문화혁명. (박태상, 「북한문학의 동향」, 깊은샘, 2002, pp209~210)의 활동이후 새로이 하며, 사람들의 정치적 생명에 대한 문제를 내세우고 풀어야 한다 {) 박태상, 위의 책, p58라고 강조하고 있다.이러한 특징을 염두에 두고 『청춘송가』·「사랑」·「삶의 향기」 등의 애정 문제 즉 사랑 을 다룬 작품들을 살펴보면, 애정 문제와 함께 다른 현실 주제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청춘송가』의 경우 애정 윤리의 문제와 함께 인텔리 과학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삶의 향기」에는 청춘 남녀의 애정 문제와 함께 세대 갈등과 주부의 역할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즉, 북한 문학에 등장하는 사랑 이라는 애정 모티프는, 청춘 남녀의 사랑을 다룸에 있어서도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사랑 의 문제를 통해 세대간의 단절이나 남녀평등의 문제 등의 사회적 문제를 함께 형상화하고 있다.이상을 정리하면, 남북한 모두 청춘남녀의 사랑이 낭만적 사랑의 경향을 지닌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남한이 좀 더 개인적이고 통속적이며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데 반해, 북한은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고 있으며, 사랑의 문제와 함께 다른 사회 문제를 함께 형상화하고 있다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Ⅲ. 북한소설『황진이』에 나타난 사랑1. 에로스{) 에로스(Eros)는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남녀의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 상대편의 행복을 추구하는 대 신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상대방과의 관계를 맺는다. 즉, 에로스는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신만 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랑으로, 상대방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만을 지니게 된다.(신웅순, 『문학과 사랑』, 문경출판사, 2000, p33)적 사랑의 모습1) 벽계수와 황진이북한소설 『황진이』에서 벽계수 이충남은 왕손이요, 녀색에 근엄하고 색사에 담연하기로 소문난 선비 {) 홍석중, 『황진이』, p169로, 옥골선풍{) 옥골선풍이란, 살빛이 희고 고결하여 신선과 같은 풍채를 말한다.의 금지옥엽으로 서울의 젊은 선비들 속에서 부귀와 명망뿐 아니라 도학군자의 절개로 첫째 둘째를 다투는 당대의 총아로 그려지의 주지인 큰스님이요, 선방에서 중들의 좌선을 지도하는 조실스님 {) 홍석중, 『황진이』, p297이다. 그러나 원묵대사는 저녁좌선이 시작할 무렵임에도, 절과 등성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사당촌의 젊은 과부집 건너 방에서 과부와 함께 누워 {) 홍석중, 『황진이』, p297있을 정도로 타락하고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그는 중년중과 달리 승복을 다 벗어 던지고 가는 베로 지은 시원한 속인의 바지저고리를 걸쳤는데 죽침우에 반들반들한 민대가리가 놓여 있으나 그것만 가지고는 그가 불가에 입적한 부처님의 제자라고 짐작하기 어려웠다. …(중략)… 5년전 백종날 우리가 진이를 좇아 음식공양을 들리려 귀법사에 왔을 때는 먹물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치고 흰 고깔에 륙환장까지 짚고 나선 그를 만났었다. 그 때는 어딘가 좀 모자라 보이는 늙은이의 얼뜬 얼굴이였는데 중의 옷을 다 벗어 던지고 속세의 모습을 한 지금 그의 얼굴은 위불없이 음흉하고 잔꾀가 비상한 여릿군패의 늙다리 꼭지였다. …(중략)… 어쨌든지간에 지금 그의 얼굴에는부처님제자의 관후한 표정이란 꼬물만큼도 없고 죄 많은 속인의 음충스러운 탐욕만이 잘 익은 독안의 술처럼 부글부글 괴여 오르고 있었다. (pp298~299)이러한 원묵대사에게,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왔다는 황진이가 찾아오게 된다. 하지만 거짓되고 위선적인 인물인 원묵대사는, 황진이를 죄에서 구하려는 종교적 숙명을 생각하지 않고 육체적 사랑의 도구로 생각하며 흑심을 품게 된다.스님들 말씀이 이제 제가 영낙없이 흑송지옥에 떨어질게구 뿔 달리 지옥귀신이 저의 온몸을 쇠사슬로묶어서 토막토막 톱으로 켠다더군요.…(중략)… 저 같은 년두 이제부터 공덕을 쌓으면 그 무서운 지옥을면할 수 있을까요?… 네?진이는 열 띤 목소리로 강잉히 부르짖었다. 이 순진한 부르짖음이 로회한 늙은 땡추에게 자신만만한 생각과 은근한 기쁨을 불러 일으켰다.…(중략)…얼마나 많은 계집들이 래세에 대한 이런 어리석은 공포를 가지고 줄을 당기는대로 순순히 그의 품안에 기다. 또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성인 이나 군자 를 믿지 않았으며, 성인 이나 군자 를 다른 사람의 믿음과 존경을 얻어 보려는 교활한 위장물이요 위선의 탈박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성인이요, 군자요 하는 인물들을 찾아 시험해 보게 된다.효행과 덕행을 떠들며 도덕군자행세를 하는 떠들썩한 사내들일수록 자기 아버지와 같은 위선자들이라는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을 확신할수록 혹시 어디엔가 진실한 도덕과 행검의 주인이 숨어 있지 않을가하는기대에 더더욱 마음을 인정하지 못한다. (p272)그러나 김희열은 자신이 사사로이 쓴 상목으로 인해 유수사또라는 자리가 위협해지자,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점차 탐욕스럽고 위선적인 모습의 부정적인 인물로 변해간다. 즉, 자신이 사사로이 쓴 상목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이방과 호장을 옥에서 타살하고 , 공을 세우기 위해 갖은 간계를 동원하는 간교한 모습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이는 황진이와의 사랑 관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이제 와서 사랑이라는 것이 무슨 집어 내던진 잠뱅이 같은것이냐. 사랑을 않겠다면 완력으로, 완력이 통하지 않으면 권세로, 하여튼지간에 무엇으로든 진이를 꺽어 버려야지 그대로는 짓밟힌 자존심의 아픔과손상된 긍지의 괴로움을 좀처럼 잠재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p494)이처럼 다른 양반들처럼 탐욕스럽고 위선적인 모습으로 변해버린 김희열은, 공을 세우기 위해 놈이의 선처 를 바라며 찾아온 황진이를 배신하게 된다. 결국 김희열의 황진이에 대한 사랑은, 필리아적인 상지상의 방법에서 에로스적인 하지상의 방법으로 전락해버리게 된 것이다.괴똥이를 살려주세요. 사또께서 괴똥이를 구원해 주시기만 하면 쇤네가 사또께서 줍시는 무슨 분부든,어떤 령이든 따르겠습니다. …(중략)… 가느스름해진 그의 눈길이 진이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그러나 지금의 그 눈은 참새를 쳐다보며 여유자작하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하는 장난기 담긴 묘한눈길이 아니라 참새를 덮치려고 노려보는 맹수의 눈길이였다. (p500)"알아 둬라 전에도 말했지만
    인문/어학| 2005.11.17| 14페이지| 1,500원| 조회(840)
    미리보기
  • [중국 사상] 공자의 생애와 사상 평가A좋아요
    {◈ 목 차◈Ⅰ.서 론Ⅱ.본 론1. 공자의 생애2. 덕치(德治)와 예치(禮治)Ⅲ.결 론※ 참고문헌 ※Ⅰ. 서론건국 초기 60여 년간의 태평성대 이후 차차 정치질서가 무너져가며 국세가 기울어져 가던 주나라는, B.C 770년 서쪽 오랑캐 견융(犬戎)의 침입을 받고 도읍을 동쪽의 낙읍(洛邑)으로 옮기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주나라의 천자는 제후들을 통제할 능력을 차차 잃게 되고, 천자의 통제에서 벗어난 전국의 제후들은 멋대로 공전(攻戰)을 일삼으며 서로 패권을 다투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천하통일(天下統一)을 할 때까지 지속되게 되는데, B.C 770년부터 B.C 221년까지 500년에 이르는 이 시기를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라고 한다. 춘추전국 시대는 주나라의 여러 가지 제도가 파괴되고 새로운 제도가 대두되는 이른바 사회적·정치적 혼란기이자 변혁기였다.춘추전국 시대의 사상가들은 각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뜻을 알렸으며, 의기 투합하여 제후들의 고문이 되거나 외교관의 역할을 하였는데 이들을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한다. 이들은 크게 유가(儒家),도가(道家),묵가(墨家),명가(名家), 법가(法家)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이중 유가는 문화 전반에 걸쳐 중국 사상의 바탕을 이루며 지금까지 발전하고 있으며, 유가의 창시자인 공자 역시 세계 역사상 예수·석가모니와 함께 3대 성인(聖人)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공자와 유가사상이 중국뿐 아니라 세계 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뜻하는 것으로, 중국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공자에 대한 이해는 필요하리라 생각된다.본 과제에서는 공자의 생애를 살펴보고, 그가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통해 이룩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Ⅱ. 본론1. 공자의 생애공자는 주(周) 영왕(靈王) 21년(B.C 551 = 魯 襄公 22년, 庚戌年 11월 庚子日){) 이기석·한백우 역,「論語」, 홍신문화사, 1994, p5노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 邑)에서 아버지 숙량홀(叔梁 들 수 있었고, 일흔 살에 뜻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느니라 위정(爲政) 편 (이기석· 한백우 역,「論語」, 홍신문화사, 1994, p25)편에서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 공부하기 시작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공자는 특히 예(禮)를 중시하였는데, 이는 공자의 집안이 사(士){) 사(士)라는 계급은 위로는 귀족 대부(大夫)들이 있고 아래로는 서민과 상공 계급들이 있는 중간 계 층이었다. 사는 군대에 있어서는 작전활동의 핵심을 이루고, 정치에 있어서는 중·하급 관리 노릇 을 하며, 문화적으로는 고금에 관한 지식을 배워 지니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사유(私有)의 전택(田 宅)과 생업을 갖고 있어서, 사회적으로 높지는 않았지만 매우 중요한 계급이었다. (김학주, 「공자 의 생애와 사상」, 明文堂, 2003, pp35~36)에 속하는 계급이었고, 소싯적에 놀이를 할 때면 언제나 제기(祭器)를 벌여 놓고 예를 갖추는 장난을 하였다 {) 《사기-공자세가》라는 기록처럼 어릴 적부터 예를 직접 보고 들음으로써 익히고 배웠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는 예(禮) 이외에도 사(士)로써 필요한 육예(六藝){) 《주례(周禮)》의 지관(地官) 대사도(大司徒) 및 보씨(保氏)조의 기록에 의하면, 육예란 예(禮), 음 악(樂), 활쏘기(射),수레몰이(御),글쓰기(書),셈하기(數) 의 여섯 가지를 뜻하였다.등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훗날 유가의 기본 경전인 오경(五經)을 저술할 정도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지식은 공자가 배움을 좋아하여 꾸준히 공부하였고, 남의 뛰어난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것을 배우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때문에 그의 학문과 사상은 날로 발전하여 점차 명망이 높아진다.공자는 19세(B.C 533) 때 노나라의 위리(委吏){) 《맹자(孟子)》만장(萬章) 하편에 공자는 일찍이 위리(委吏)가 되었는데, 회계(會計)를 잘 들어맞게 하였을 따름이었다 고 하였다, 위리(委吏) = 창고관리라는 벼슬을 21세(B.C 531) 때에는 진 공자는, 가정생활의 문제나 유(儒)로서의 직업인 상례(相禮)와 교육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점차 혼란스러운 세상과 그 혼란 속에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백성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기 시작한다. B.C 517년 노나라의 소공(昭公)이 나라 안의 실력자인 삼환씨 중 계평자(季平子)를 처벌하려다 실패하여 제(齊)나라로 망명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자, 임금까지도 쫓아내는 귀족들의 권력투쟁에 실망을 느낀 공자는 노나라에서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소공이 망명한 제(齊)나라를 찾아가게 된다. 하지만 제나라에서조차 대부들의 반대로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펴볼 길이 없음을 알고 다시 노나라로 돌아오게 된다.고전을 연구하며 교육에 매진하던 공자가 다시 벼슬길에 나선 것은 B.C 501년 공자의 나이 51세 때였다. 그가 맡은 벼슬은 중도재(中都宰)라는 중도(中都)라는 곳을 다스리는 벼슬로서, 그가 다스리기 시작한지 일년만에 다른 고을이 모두 본뜰 정도의 예의와 윤리 등의 질서가 잡혔다고 한다. 노나라 정공 10년 봄 노나라와 제(齊)나라의 화맹(和盟)회견에서 외교상의 큰 공{) 노의 정공과 제(齊)의 경공이 협곡에서 가진 회견에서, 제나라가 무력으로 노나라 정공을 위협하 여 제나라에 유리하게 화맹(和盟)하려 하였으나, 의례를 담당하고 있던 공자가 뛰어난 정치력으로 제나라가 일찍이 노나라로부터 빼앗은 땅까지 반환하고 노나라에 유리한 화맹을 맺게 된다. (김학 주, 「공자의 생애와 사상」, 明文堂, 2003, pp 104~105)을 세운 공자는 곧장 사공(司空){) 사공(司空)은 육경(六卿)중의 한 사람으로 국토를 다스리는 일을 맡는 자리.과 사구(司寇){) 사구(司寇)는 형옥(刑獄)을 다스리는 관리.를 거쳐 마침내 B.C 497(정공 13년, 공자 55세)년 대사구(大司寇)까지 올라 재상의 일을 하게 된다. 공자가 재상을 맡은 후 점차 노나라가 안정을 찾아가자 불안감을 느낀 제나라는, 정공과 공자를 이간시켜 정치를 방해하기 위해 노나라에 미녀 80명을 선발하여학주, 「공자의 생애와 사상」, 明文堂, 2003, p134정도로 보이고 있다.공자가 처음 찾아간 나라는 위(衛)나라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공자에게 이상을 실현해 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참언까지 받게 된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 조(曹)·송(宋)·정(鄭)을 거쳐 진(陳)나라에 이르렀지만, 혼란한 진나라에서도 공자의 능력을 발휘해 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공자는 천하를 주유하는 동안 융숭한 대접을 받기도 하였지만 여러 곳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수난까지 당하기도 한다. 광(匡)이라는 곳에서는 양호(陽虎)로 오인되어 생명의 위협을 받았으며, 송나라에서는 사마(司馬) 환퇴(桓 )로부터 공격받기도 하여 도망치다 정(鄭)나라에 이르러서는 제자들과 떨어져 공자 홀로 있기도 하였으며, 진(陳)과 채(蔡)에서는 먹을 양식이 떨어져 고생하기도 했다. 다시 위와 진을 거쳐 채(蔡)와 초(楚)나라로도 가보고, 세 차례 노나라에 돌아가기도 했었지만, 결국 공자는 자신의 정치 이상을 실현해 볼 기회를 얻지 못한다.B.C 484년(공자 68세) 공자는 자신의 고국인 노나라로 돌아가게 되지만, 노나라로 돌아온 공자는 끝내 등용되지 못하였고 공자 자신도 벼슬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후 공자는 국로(國老)의 대접을 받으며 제자들의 교육과 교육의 교과서로 쓰일 경전들의 편저에 힘을 기울였다. 만년에 공자는 아들 공리(孔鯉)와 그가 가장 사랑하고 학문의 후계자로 생각했던 제자 안연(顔淵) 및 자로(子路)가 잇달아 죽는 불행을 겪기도 하였지만, 학문과 덕행에 뛰어난 인재들을 양성하였고, 하(夏)·은(殷)·주(周)의 문화전통의 집대성이라 할 시(詩)·서(書)·예(禮)·악(樂){) 현재 육경(六經) 중 이 음악에 관한 경전만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어떤 이는 진(秦)나라 시황(始 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 때 사라졌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시경》300편은 본시 모두가 악장(樂 章)이니 그것이 바로 《악경(樂經)》이라고도 한다. (김학주, 「공자의 생애와 사상」, 明文堂, 2003, p301)· 상을 치렀으며, 자공(子貢)은 3년 동안 더 상을 치렀다고 한다.2. 덕치(德治)와 예치(禮治)그렇다면 공자는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펼치려 했던 정치는 무엇이었을까?중국의 고대사회는 주(周)나라 성왕 때 주공(周公)이라는 정치가에 의해, 주나라의 봉건제도(封建制度)와 종법제도(宗法制度) 및 관제(官制)가 확정되었으며, 여러 가지 예의와 음악이 제정되었다. 주나라 무왕은 은(殷)나라를 멸망시킨 뒤 광대한 토지를 나누어 각 지역마다 제후들을 세우고, 천자는 중앙에서 사방 천리의 땅을 관장하는 봉건제도를 확립하였다. 제후들의 대부분은 천자의 집안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혼인관계로 유대를 다졌다. 또한 제후들 역시 그들의 토지를 대부들에게 나누어주며, 다시 혈연관계를 맺었는데, 이같이 혈연에 기초한 통치방법이 종법 제도였으며, 이 제도를 뒷받침해준 것이 예(禮)였다. 그러나 이러한 질서는 주나라가 서쪽 오랑캐 견융(犬戎)의 침입으로 유왕이 죽고 도읍을 옮긴 이후, 제후들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차 무너지게 된다. 이러한 경쟁으로 세력이 있는 제후가 천자의 행세를 하려 들고, 제후가 세력을 잡아 군주의 권한을 무시하고, 가신이 섬기던 대부를 위협하여 정권을 잡는 등 혼란스러운 사회가 지속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중 대표적인 사상가가 공자이다.《논어》의 계씨 {) 이기석·한백우 역,「論語」, 홍신문화사, 1994, pp 373~374편에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천하에 도(道)가 있으면 예악(禮樂)과 정벌(征伐)에 대한 명령이 천자에게서 나오고,천하에 도(道)가 없으면 예악(禮樂)과 정벌(征伐)에 대한 명령이 제후에게서 나온다....(중략)...천하에 도가 있으면 정권이 대부에게 있지 않고,천하에 도가 있으면 백성들이 나라 일을 의논하지 않느니라.이것은 예(禮)가 잘 유지되면 질서가 있어 천자가 권위를 갖게 되지만, 예(禮)가 붕괴되면 천하가 어지러워져 제후나 대부들이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인문/어학| 2003.12.31| 7페이지| 1,000원| 조회(576)
    미리보기
  • [문학] 조경란과 하성란 작품에 나타난 페미니즘 양상과 가족의 문제 평가B괜찮아요
    ◈ 목 차◈Ⅰ. 서 론Ⅱ. 페미니즘과 가족1. 페미니즘(Feminism)2. 가족(Family)Ⅲ. 조경란 작품 분석1.『움직임』2.『식빵 굽는 시간』Ⅳ. 하성란 작품 분석1.『옆집 여자』2.『식사의 즐거움』Ⅴ. 결 론※ 참고문헌 ※Ⅰ.서 론식민지 시대 여성도 인간이다 라는 소박한 인식에서 출발했던 여성해방운동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자율화를 요구하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경제적 평등과 더불어 남녀평등을 요구하는 움직임으로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여성해방운동은 문학에서도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문학을 여성주의 문학이라고 한다. 여성주의 문학은 여성주의의 특성을 근간으로 하는 문학을 말하는 것으로 여성해방의 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여성주의 문학은 여성의 억압상태를 밝히고 그 억압이 사회 구조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으며 나아가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위해 이러한 억압상태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를 밝히는 문제를 기본관점으로 하고 있다.우리 나라의 여성주의 문학은 1920년대의 신여성 문인이었던 김명순, 나혜석, 김일엽 등의 산문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들 여성작가들은 여성해방과 자유 연애 및 개인주의 사상을 주장하는 시대의 선각자인 사명의식을 가지고 그 사상을 의도적으로 작품 속에 수용하여, 전통적 제도와 부조리한 현실의 온갖 규범에 항거하고 남녀평등을 주장하였다. 이후 1950년대의 박경리를 필두로 한무숙, 한말숙, 강신재, 박완서, 오정희를 거쳐, 현재에는 양귀자, 윤정모, 공지영, 공선옥, 신경숙, 은희경, 천운영, 조경란, 하성란, 전경린 등 많은 여성 작가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개척하며 여성문학의 지평 넓히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본 과제물에서는 먼저 페미니즘과 가족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조경란과 하성란의 작품들을 읽고 작품에 나타난 가족의 문제와 페미니즘 양상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Ⅱ. 페미니즘과 가족1. 페미니즘(Feminism)요즘 우리는 페미니즘이니 페미니스트니 하는 말들을 자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여성 교육의 강화와 남녀동등의 바탕 아래 여성 취업을 늘리기 위한 법률적·제도적 개선에 주력한다.과 신좌파에서 독립한 급진적 페미니즘{) 1960년대 민권운동에서 발전되어 온 급진적 여성해방론에 근간을 두는 운동으로, 이들은 성 을 최 초의 물적 토대로 간주하고, 성모순이 가장 모순이라고 주장하며 대안으로 레즈비어니즘을 내세우 고 있으나, 그 급진성과 과격함으로 대내외적으로 많은 저항과 반발을 사게 된다.으로 나뉘어져 전개되고 있다.2. 가족(Family)우리는 태어난 이후 가정이란 곳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가족을 나타내는 영어 Family는 라틴어 famulus에서 유래된 것으로, 가내 노예를 의미한다. 또한 고대 로마의 familia라는 단어는 부부와 자녀 등 혈연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논밭, 가옥, 금전, 노예 등 한 남자에 속한 생산도구를 의미하는 것이며, 고대 희랍에서는 family 대신에 oikos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것 역시 재산 또는 주거를 의미한다. 이것은 고대문명 최초의 경제가 가족경제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족이라는 개념은 구조 기능주의 사회학자들의 관점이다. 구조기능주의 사회학자들은 가족을 혈연과 성별 분업에 기초한 사회 경제적 제도로 정의하며, 혼인 관계로 맺어진 남녀 즉 부부와 그들의 자녀들로 구성되고, 이들이 거주를 함께 하면서 경제적으로 협동하는 사회적 단위로 본다. 가정 내에서 남녀는 성을 중심으로 역할을 분담하며, 자녀를 양육하고 가족 구성원을 보호·부양하며 사회 전체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는 사회적 기능을 담당한다. 때문에 가족은 인간에게 사랑·안정감·친밀성·성애와 같은 정서적 욕구를 충족하게 되는 장소이자, 이곳은 삭막한 사회에서 도피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안식처라고 가정된다. 즉 이들의 관점에 따르자면, 가족이란 구성원에 대해 물질적, 신체적, 정서적 보호의 역할을 하는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로 정의 할 수 있다.하지만 페미니스트다 시멘트보다 모래를 더 많이 섞은 블록벽돌을 찍어내고 있으며, 상고를 졸업하고 하루종일 농협에서 돈을 세는 이모는, 밤마다 가슴팍에 베개를 받치고 열심히 공부를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외갓집의 어느 누구도 나 의 이름인 이경 을 불러 주지 않는다. 이모는 새로운 가족인 나 를 마치 남처럼 성까지 붙여서 신이경 이라고 부르며, 삼촌은 내 이름조차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가족들 사이에서 이경은 여전히 혼자 밥을 먹고 아침이면 혼자 어두운 방안에 남겨 {) 조경란, 『움직임』, 작가정신, 1998년, p15져야 하며,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녀가 관심을 가지게 되는 대상 역시 엉뚱하게도 가족이 아닌 앞방 남자이다. 그도 나 처럼 타자 사람인 까닭에 배달되는 우편물이 전혀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래서 나 는 훔친 열쇠로 그의 방에 몰래 들어가 그의 체취와 흔적을 더듬는다. 그리고 나 는 그 속에서 익숙함과 안온함을 느끼며 혼자라는 생각을 지운다. 이모의 지갑에서 몰래 훔친 돈으로까지 그의 밀린 방세를 내주는 것도, 그가 떠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나 의 가족인 외갓집 식구들은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싸울 때가 아니면 거의 말을 하지 않으며, 네 식구가 함께 밥상 앞에 모여 식사를 한다는 것은 포유류 동물이 하늘을 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할아버지가 집에 있을 때는 삼촌이 들어오지 않으며, 삼촌은 신김치를 싫어하고 이모는 금방 담근 김치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짧고 뭉툭하면서 벌어지기까지 한 못생긴 발과 발가락이 유난히 희고 기르스름한 삼촌의 여자를 달가워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할아버지, 이모, 삼촌 이들은 모두 제각각 다른 꿈을 꾸며 서로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가족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이상한 동물원 {) 조경란, 앞의 책, p17같을 뿐이다.이러한 가족을 떠나고 싶은 삼촌과 나 는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 서울행 기차를 기다리듯 역사를 서성거린다. 하지만 정작 떠나는 사람은 할아버지와 이모이다. 그들이 죽하다.여기 식빵이 있다. 식빵을 잘 만들면 다른 종류의 빵들을 비교적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모든 빵의 기초, 그러나 기초임에도 불구하고 만들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은 빵, 식빵이……. 주인공 강여진 은 빵 만드는 기술을 익히는 사람이다. 그녀는 서로 과거를 밝히지 않는 가족과 기억상실증 환자인 애인, 그리고 애인의 이복 여동생 사이에서 빵을 만든다. 하지만 그녀가 만드는 빵들은 그들에게 거절당한다. 떠나버린 애인의 옛 애인은 브리오슈를, 아버지는 소보루 빵을, 이모는 감자 빵을 거부했으며, 어머니는 그녀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 의 곁을 떠난다. 어머니는 병으로 죽어 떠났고, 아버지는 1년 후 자살하는 것으로 떠난다. 이름과 나이 그리고 자주 직업을 바꾸었다는 사실밖에 알고 있는 것이 없고 더 알려 들지도 않았던 애인도 그녀를 떠나며, 이모도 스스로 가방을 싸고 떠나버린다.빵이 만들어지는 동안, 애인의 기억이 드러나고 나 의 과거가 밝혀진다. 애인은 여동생과 근친상간 관계에 있었으며, 이모는 어머니가 석녀였고 아버지를 사랑한 이모가 그녀를 낳은 엄마라고 밝힌다. 하지만 주인공은 나 의 애인이 이복 여동생과 근친상간의 관계라는 것을 알고도 그래. 그랬겠군. 당신은 가끔 발바닥에 굳은살이 많은 여자와 그리고 한쪽 젖가슴이 함몰 유두인 여자와 번갈아 가며 습관처럼 섹스를 했을테지. 그랬군, 당신은……. {) 조경란,「식빵 굽는 시간」, 문학동네, 2003년, p29이라는 독백으로 철저하게 냉담해 버리며, 나 가 근친상간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그래서 홀로 남은, 서른 살의 나 는 나 의 이름을 붙여 빵집 상호를 정하며 계속해서 빵을 만든다. 그녀가 빵을 만드는 일은, 삶의 굳은살을 제거하는 작업과 평행적으로 이루어진다. 겨드랑이의 거추장스러운 털 제거, 손바닥에 각질을 만드는 피부병의 치료, 함몰 유두의 절제수술, 그리고 일그러진 가족 관계의 청산과 함께…….이처럼 조경란은『움직임』과『식빵 굽는 시간』에서 가족에 대해 라는 이름의 여자가 이사온다. 29살의 미혼인 명희 는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보습학원에서 글짓기를 가르친다. 명희는 밝음과 친근성을 내세우며 그녀에게 다가서고, 그녀는 그런 명희 를 친구처럼 인식한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명희는 그녀에게 부침개 뒤집기를 시작하여 물건을 하나둘씩 빌려가지만, 그렇게 빌려간 물건들에 대해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에 대해 혼란스럽게 한다. 그리고 그 빌려준 물건들은 이상한 곳에서 발견되어, 그것이 자신의 건망증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결국 명희는 그녀의 남편과 아이까지 빌려간다. 명희는 그녀를 이해해주는 친구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 자신의 존재까지 앗아가는 적이었던 것이다.그녀는 세탁기의 뚜껑을 쓰다듬으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린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것인지……. 8년 동안 소외 받는 매일의 일상 안에서, 자신의 존재가 말살되고 지쳐 있는 그녀는, 원심력을 감당하지 못한 세탁기처럼 베란다 창을 뚫고 날아가고 있다.{) 6.5 킬로그램의 빨래를 담을 수 있는 원통형의 빨래통이 날아가지 않는 것은 도망가지 못하도록 빨 래통을 감싸고 있는 상자 때문일 테지요. 하지만 언젠가 원심력을 감당해내지 못한 세탁기가 베란 다 창을 뚫고 날아갈지 모를 일입니다. 세탁기의 뚜껑을 쓰다듬으면서 나는 누구에게랄것도 없이 중얼거립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니? (하성란,「옆집 여자」, 창작과비평사, 1999년, p31)2.『식사의 즐거움』하성란의『식사의 즐거움』은 10년째 산부인과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직장에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지난 10년 동안 그녀에게도 주기적으로 권태가 찾아왔었지만, 아직도 캐도 캐도 캐야 할 감자 알 들이 남아 있는 그녀는 이 일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만둘 수 없다. 그녀의 실수인지 신생아들의 요람은 뒤바뀌어져 있지만, 교대한 간호사에 의해 신생아들은 제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이러한 서두는, 자신이 바뀐 아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의 이야기로 이어진다.『식사의 즐거움』의 주인공인 이 남자 는뿐이다.
    인문/어학| 2003.12.31| 9페이지| 1,000원| 조회(548)
    미리보기
  • [작가] 이태준의 단편에 나타난 근대 인식 평가B괜찮아요
    ◈ 목 차 ◈Ⅰ. 서론Ⅱ. 이태준의 생애Ⅲ. 이태준의 단편에 나타난 근대 인식1. 근대의 속악함 - 낡은 것에 대한 애정2. 근대적 공간 - 고향의 파괴와 유민의 비애3. 근대에 대한 반성 - 땅에 대한 애착Ⅳ. 결론※ 참고문헌 ※Ⅰ. 서론이태준은 1930년대 카프에 반발하여 문학의 이념성과 도식성을 지양하고 순수문학 을 주창한 의 좌장격인 인물로, 그는 다른 작가들이 가지고 있었던 진보를 향 한 욕망, 혹은 근대에 대한 맹신에서 한 걸음 물러서 사라지는 것 에 대해 애정과 관심 을 보인 작가였다. 또 그는 단편의 예술적 우위{) 이태준은 현재 우리 문단만 보더라도 수에 있어 장편은 단편을 따르지 못하고, 또 질에 있어 서도 장편은 단편보다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장편은 대개 신문소설로서 본래의 장편과 는 특수한 조건 밑에서 발달하는 것이니 현재 상태로는 소위 전작 이외에는 집필자의 태도부 터 진정한 문학제작이 아니다. 그러므로 작가들의 직업이 아니라 작가들의 예술을 보려면 아 직도 단편을 떠나 구할 데가 없다 (「상허문학독본」)라고 하여 단편의 예술적 우위를 주장하 고 자신의 단편에 주력했다.를 주장하며 단편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 고 있었다. 본 글에서는 이곳에서 1930년대의 상황에 대해 정리해본 후 본론으로 들어가 서 이태준의 생애에 대해 살펴보고, 그의 단편에 나타난 근대에 대한 인식을 작품을 예 로 들어 정리해보고자 한다.1930년대 후반에 이르자 만주사변(1931년)과 중일전쟁(1937년)을 거친 일본은 조선을 전쟁수행을 위한 후방의 병참기지로 만들기 위해 군국주의를 강화하고 조선의 산업구조 를 군사적으로 재편하게 되었다. 이것은 조선의 화학공업과 금속 공업 등 군수품 생상과 관련이 있는 분야의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으며, 독점자본에 의한 대규모 공장의 건설로 급속한 생산집중을 가져왔다.한편 일본은 일본과 조선의 궁극적 동일화를 위하여 내선일체의 구호를 내걸고 조선인 들의 황국신민화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식민지 조선에 대제 2의 운명』책머리에 적힌 내용이다. 하지만 민충환은 이태준의 휘문고등보통학교 학적부에 기재된 사항을 토대로 1904년 11월 4일로 교정하고 있다.강원도 철원군에서 지식계층에 속했던 부친 이문교와 소 실인 순홍 안씨의 1남 2녀중 장남(서자임)으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1909년 러시아 땅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하지만 곧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귀국하여 함경북도 배기미 에 정착하여 얼마간 생활의 안정을 되찾게 된다. 하지만 1912년 한겨울 어머니마저 죽자 철원 친척집에 맡겨졌는데 1918년 철원에서 봉명학교를 졸업 후 집을 떠나 서울에서 고 학을 하게된다. 1921년 휘문 고등보통학교에 입학{) 이때 맺어진 가람 이병기와의 인연은 그가 월북하기 전까지 지속되면서 그의 문학에 심 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하였지만 1924년 동맹 휴교의 주모자 로 퇴학당한 뒤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1925년 동경에서 처녀작「오몽녀」를 써서 《조선문단》 7월 호에 입선하였지만《시대일보》에 발표된다.1931년 이후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이며 1933년에는 박태원과 함께 구인회 의 중심성원 으로 활동 카프의 목적문화에 반대하는 등 자신의 문학적 색채를 뚜렷이 드러낸다. 1938 년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심한 갈등을 보이고 문학적 변신을 시도하여「농군」과 같 은 현실 인식이 뚜렷한 작품을 쓰기도 하지만 가중되는 시대적 압력으로 인해 큰 결실을 맺지 못한다.그 이후 《문장》지의 편집자를 지내기도 하며, 조선문학 건설본부라는 좌익 문학 운 동에도 참여하며 지냈는데 1946년 2월 15일에서 16일 사이 민주주의 민족전선 결성대회 대의원·의장단 일원으로 홍명희와 함께 38선을 넘어 북으로 갔다. 월북 이후 평양조선 문화협회 방문 사절단 일원으로 소련을 방문하기도 하였으며, 『소련기행』,『농토』, 『고향길』등을 출간하였다. 그의 마지막에 대해서는 월남한 이철주가 1966년 간행한 『북의 예술인』에서 이태준은 1956년 1월 13일 시당 열성자 대회가 개최되기 전에 숙청 당했으색 같은 통속적인 연애이야기로 생각하는 부분을 떠올리며 기분이 상한 나 는 우연히 중학 때 한 반이었던 강군을 만나는데, 그는 총독부에 근무하는 출세한 인물로 소설을 쓰는 나 에게 대뜸 그래, 돈 좀 잡았나? 라고 묻는 속물적인 인간이다. 그와 헤 어져 돌아오며 아내에게 고생을 시키는 자신의 경제적 무능을 인정하며, 자신의 책을 연 애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보내달라던 옛 시골 친구에게 책을 부친다는 내용이다. 즉, 「장마」는 이태준이 속물적인 인간과 자신의 차이 를 스스로 확인하는 것과 그것의 가치 를 인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됨으로써 그가 작가로서 지향하는 가치가 드러나 있다.패강냉 (1938)의 패강은 대동강의 옛 이름이다. 그러므로 패강냉 이란 제목은 대동강 의 우수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 현은 조선어와 한문을 가르치고 있는 친구 박을 만나기 위해 십 년만에 평양에 오게 되어, 이조의 문물다운 우직한 순정 을 가지고 있 는 평양에 대해 애틋한 감상에 젖지만, 실제 평양의 문화가 갈수록 훼손되고 파괴되어 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는 조선어와 한문을 가르치는 친구 박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는 자신의 신세와 같다고 생각하며 자괴감을 느끼고, 경제 타령에 평양여자 들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인 머리 수건이 금지되었으며, 비행장 때문에 명승 지에도 올라가지를 못하는 등 개명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제 모습을 상실해 가고 있는 현실을 보고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낀다. 또 십여 년만에 다시 만난 평양의 기생 영월 이도 서울말을 쓰고, 유성기 소리에 맞춰 딴스 를 추어야 돈을 벌어 살 수 있다는 말에 우울해 하며, 점점 서울(서울은 이미 동경을 닮아가는)을 닮도록 노력을 기울인다는 경세 가들의 말을 들으며, 이제 현에게 평양도 폐허라는 서글픔을 준다. 실업가이자 부회의원 인 출세한 친구 김은 철저한 일제의 주구로 변절하여 현에게 방향전환을 권하며 실속을 차리라고 타박을 주고, 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이다 컵을 김에게 던지고 박과 함께 자리를-하고 따라 나서야 하는 복덕방 늙은 이에 지나지 않고, 복덕방에 자주 놀러오는 박희완 영감은 업을 가져보려고 속수국어독 본 이 손때에 절고, 베고 자서 머리 때까지 새까맣게 절도록 항상 끼고 다니며 공부하지 만 대서업 허가를 따기는 요원해 보인다. 서참위의 복덕방 신세를 지면서도 미안한 기색 은 전혀 없는 안초시는 어떻게든 요행을 타서 한몫 단단히 잡아 보려고 벼르는 인물이 다. 안초시의 성격은 영악한 속물성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뱁새의 종종 걸음으로 황 새의 현실감각을 쫓아가려는 어리숙함으로 그려지고 있다. 안초시의 딸 안경화는 여류무 용가로 이름을 날리지만 아버지를 핑계로 생명보험은 들어도 아버지의 솜옷 한 벌 사주 기를 아낀다. 하지만 안초시가 엉터리 정보에 속아 땅투기를 권했을 때 애인과 자신이 모든 일을 처리하지만, 마침내 그것이 사기로 판명되자 안초시를 닥달하며 추궁하고 결 국 견디다 못한 안초시는 서참위의 복덕방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새로운 사회에 끼어들고 싶어하는 안초시는 성공한 무용가인 딸의 발레공연에 우쭐해 하며 친구들을 데리고 가지만, 서참위에게 발레는 넓적다리를 내놓고 덤비는 천박하고 쌍스러운 것 이상이 아니다. 이것은 근대와 그것에 대한 반동 사이에 생겨나는 갈등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낡은 것과 새 것 사이의 갈등은 인륜적 도리를 갖추고 있는 낡 은 것의 아름다움이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새 것에 밀려나야 하는 비운을 함축하고 있다 또 투기가 실패하여 안초시가 절망하고 자살을 하자 아버지의 자살이 자신의 명예에 끼 칠 영향을 걱정하며 서참위에게 그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안경화가 애원하는 장면은 새 것(근대)의 속물성과 부도덕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이태준은 당대의 작가들이 새 것에 대한 열망에 불타 있을 때 그것의 포악함과 속악함 을 경고한 작가였다. 속악한 근대의 모습에서 그는 근대에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는 것 들 에 대한 안타까움을 작품 속에 그려냈다.2. 근대적 공간 - 고향의 파괴와 유민의 비애이태준 소설에는 유독 정칠 놈의서자 소작 료가 오르게 되고, 그것을 지불하지 못한 방서방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갈수록 피 폐해지는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고향을 떠나는 것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 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본인 지주로 인한 가난 때문이다. 방서방네는 서울에서 방 한 칸도 마련하지 못하고 다리 밑에 살게 되며, 구걸을 나섰던 아내마저 인신매매를 당해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어린 딸은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만다. 그 후 방서방은 아내가 색주가로 팔려갔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아내를 원망하며, 뜨 내기 짐꾼으로 생계를 연명해 나가며 정칠 놈의 세상 같으니! 하고 탄식하고 만다. 방 서방이 살아가는 세상이 정칠놈의 세상 인 것은, 그가 술 한잔 허투루 먹는 법이 없고 담배도 일하는 날이나 일꾼들을 주려고만 살 줄 알았던 근실한 농민이었음에도 받아주 지 않고 그의 소중한 가족까지 파탄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촌띄기 역시 몇 대를 살아 온 고향이지만 살기 위해서는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만 하 는 현실을 그린 작품이다. 화전이나 파먹고 숯이나 구워 먹고, 덫과 함정을 놓아 산짐승 이나 잡아먹고 생활해 오던 주인공 장군이는 산이 삼정회사로 넘어간 뒤에, 금령을 어기 고 팠던 멧돼지 잡이 함정이 재수 없이 군청의 단속에 발각되자 20일 동안 유치장 신세 를 지게 되었다. 어떻게라도 살아볼까 해서 빚을 내어 고친 물방앗간은, 발동기가 들어오 는 바람에 세월만 낭비한 셈이 되어 장군이는 모자라지도 않지만 결국 반편이 꼴이 되어 버렸다.달밤 의 주인공 황수건은 성북동이라는 서울 변두리에 사는 신문 보조 배달부로, 그 의 평생 소원은 원 배달부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작은 것에 만족하고 천진스러운 바보 스러운 인물이지만, 물질적인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계산하는 도시에서는 반편이 같은 황수건은 보조배달원 자리도 떨어지고, 의좋던 아내마저도 도망가버린다. 시골 에서라면 황수건과 같은 못난이들도 마음놓고 살 수 있겠지만 서울이라는 도시는 못난이들이 행복 하게 살 수 워진다.
    인문/어학| 2003.08.07| 8페이지| 1,000원| 조회(908)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5
15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2
  • A좋아요
    8
  • B괜찮아요
    4
  • C아쉬워요
    1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7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1:01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