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초?중?고등학교의 교육을 받으면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배워왔다. 또한 헌법 조항을 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의 정의를 내려보면,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시작은 초기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이 다수결의 원칙으로 정치적 권한을 직접 행사하는 「직접민주주의」였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국민 모두의 다수결에 의해 정치적 권한을 행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국민이 선출한 대표를 통해 정치권한을 대리시키는 「대의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많은 결함을 내포하고 있고, 이것을 사회학자인 Robert Michels는 이 책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우선 이 책의 저자 로베르트 미헬스(Robert Michels, 1976~1936)에 대해 설명하면,독일의 부유한 부르조아 가문에서 태어난 미헬스는 파리와 뮌헨 그리고 라이프치히와 할레에서 역사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1900년 '루이 14세기의 네덜란드 침공 연구'를 통해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에 이탈리아 사회당 그리고 3년 후 독일사민당에 입당한 사회주의자였던 미헬스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면서 당시 이탈리아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생디칼리즘에 큰 영향을 받았다. 당시 이탈리아의 생디칼리즘은 총파업을 통하여 노동 대중이 자율적으로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여 사회주의 사회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고, 이러한 생디칼리즘은 민주주의와 반자본주의가 철저하게 결합된 운동이었다. 따라서 이 때 미헬스가 생각하던 사회주의는 혁명적 대중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로서의 사회주의였을 것이다. 독일 사민당 전당대회에 마르부르크 지역 대표자로 참석하고 마르부르크 시의회 선거와 독일 제국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사회주의자로서 경력을 쌓아간 미헬스는 그러나 이러한 경력 때문에 독일에서 교수자격 취득을 위한 논문의 제출자격마저 거부되기도 하였다. 1907년 이탈리아 토리노 대학의 정치경제학 교수가 되면서 독일을 등진 미헬스는 이후 1914년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함으로써 이탈리아 국민이 되었다.사회주의자로 살아간 미헬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극적이며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파시스트당의 입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자의 파시스트화라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러한 선택은 아마도 과두제의 철칙을 호명해 낸 생디칼리즘에 경도되었던 사회주의자의 고뇌에 찬 결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 생디칼리스트 운동에서 견고한 조직을 갖추지 못한 노동운동이 얼마나 허망하게 분쇄될 수 있는지를 똑똑히 목격하고 독일 사민당에서 조직화된 노동자들이 과두적 지도부에게 얼마나 무기력하게 복종하고 있는 지를 목도한 그에게, 이러한 현실로부터의 유일한 해결책은 파시즘이 될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과두제가 철칙이라면, 그리고 그 과두제하에서 지배자에게 순종하는 대중이 필연적이라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이러한 과두제의 철의 굴레를 파괴하는데 헌신하는 것 두 번째는 이러한 과두제의 철칙에 순응하며 '어차피 벗어날 수 없는 과두제라면 그 과두제를 이끌어 갈 현명한 지도자를 만들고 그에게 헌신하자'라고 하는 것이다. 미헬스는 결국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고 당시 이탈리아의 떠오르는 별이었던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무솔리니가 특별히 그를 위해 만들어 준 페루자 대학의 경제사 강좌에 교수로 취임하였다. 독일 사민당 당원이던 시기에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를 '거짓 사회주의'라고 앞장 서 비판했던 미헬스는 아마도 맑스의 일화처럼 ‘그들이 맑시스트라면 나는 맑시스트가 아니다’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사람일 지도 모르겠다.“선출된 자가 선출한 자들을 지배하고, 위임받은 자가 위임한 자들을 지배하며, 대의원이 유권자들을 지배한다.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의의 품안에서 과두정이 발전하는 것은, 사회주의 조직이건 아나키즘 조직이건 조직에는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유기적 경향이다.“이것이 미헬스가 내린 결론이다. 미헬스가 주목하는 것은 ‘조직’인데 그는 이 ‘조직’을 지도자와 대중의 구성으로 단순화했다. 지도적 개인들은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의식하고, 자신의 역량을 자신하며. 자신의 지식과 연설 능력으로 대중을 끌어들인다. 대중은 근대문명의 복접성이 직면하여 자신의 무기력을 통찰하고, 지도 받기를 열망하고, 지도자에 대하여 감사해하며, 지도자를 경배할 욕구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렇듯 상반된 열망을 소유한 대중과 지도자가 만나는 곳이 조직이다. 대중은 복잡다단한 근대문명이 요구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처리하고자 조직을 건설한다. 건설된 조직은 근대문명의 논리에 따라 다양한 과제를 넘겨받고, 따라서 분업화된다. 게다가 조직은 업무를 신속하고 탄력적으로 처리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되지만 대중에게는 이러한 능력이 결여되어있다. 따라서 대중은 지도적 개인들에게 다양한 조직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위탁한다. 그로써 조직의 업무를 전문적, 직업적으로 처리하는 지도자들이 등장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분업화라는 근대의 논리가 필연적으로 관료화를 부르기 때문에 직업적 지도부는 관료화한다. 관료화에 동반되는 현상은 관료적 지도부의 권력이 항구화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도자와 대중에게 본질적으로 깃들여 있던 심리적 속성 때문이다.지도부가 공고화됨으로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들의 권력 기반인 조직을 보호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지도부와 대중의 이해관계는 상충된다. 그러므로 대의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대중의 직접 민주주의는 조직의 건설이 건설되면서 멀어져간다. 이제 조직을 유지하는 것은 과두적 지배체제를 항구화하려는 지도부의 욕구와 이 지도부를 헌신적으로 추종할 도리 밖에 없는 대중의 무기력이다. 운동은 조직을 낳고, 조직은 관료제를 낳고, 관료제는 과두정을 낳으며, 과두정은 보수적인 신 엘리트를 낳는다. 이것이 근대의 숙명이다.미헬스는 이러한 정당의 과두적 성격을 사기업과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사민당은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창당된 정당인데 이것은 시장의 논리를 제외하고는, 당의 성공이 관리 및 운영 인력의 질에서 좌우된다는 점에서는 기업과 동일하다는 생각이다. 어느 기업가도 기업가, 즉 경영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정당도 지도자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 따라서 노동운동 역시 기업과 마찬가지로, 노동 조직이 성장함에 따라 지도자들의 가치와 의미가 중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미헬스는 개인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의 적극적 활동가로 활약하면서 독일 사민당을 중심으로 대규모 조직의 권력배분과 의사결정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였다. 그가 주장한; ‘과두제의 철칙’은 현실정치에 있어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제기한 것이며, 당시 보수적 정당과 비교할 때 보통선거, 언론자유, 정책결정에 있어 대중의 참여 등을 주장한 유럽 대부분의 사회주의 정당에서 나타난 당내 민주주의를 지적한 충격적 주장이었다. 미헬스가 담아내는 일화들은 그가 책을 쓸 당시에는 그리 흥미로운 사실이 아니었고 오히려 너무나 익숙한 사례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100 여 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에게 있어 그 내용들은 접하기가 그리 녹녹치 않기에 지극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7,300 명에 불과한 당원을 가진 바덴 사민당의 기초단체 의원이 1,000명을 넘어섰다는 흥미로운 사실이나 1904년 이탈리아 사회당의 기관지위원회는 392명의 편집인들과 발송자들이 소속되어 있었고 그 보다 몇 배나 더 많은 1,476명의 인쇄담당 직원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현재의 정당정치에 견주어 볼 때도 충분히 ‘놀라운’ 사실이기도 하다. 7,300 명에 불과한 당원을 가진 바덴 사민당의 기초단체 의원이 1,000명을 넘어섰다는 흥미로운 사실이나 1904년 이탈리아 사회당의 기관지위원회는 392명의 편집인들과 발송자들이 소속되어 있었고 그 보다 몇 배나 더 많은 1,476명의 인쇄담당 직원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현재의 정당정치에 견주어 볼 때도 충분히 ‘놀라운’ 사실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독일 사민당의 당원 구성에서 술집 주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의 산출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독일 사민당과 더 나아가 독일 노동운동에서의 경향성과도 연결시켜 내는 미헬스의 능력은 흥미로움 그 자체이다. 1906년 여름에 맥주 판매세가 부과되면서 맥주 가격의 인상 요인이 발생하자 독일 사민당 당원이기도 했던 술집주인들이 그 인상분을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가 부담하도록 전가하고 이에 대해 노동자들이 전국각지에서 소위 “맥주전쟁”을 선언하고 거세게 저항하자 술집주인은 이것이 정부가 새로운 소비세를 도입하는 것을 막는 방안이고, 심지어 '사회주의를 위한 전술'이라고 정당화하며 노동자들을 협박했다는 사실이나 사민당 소속 술집주인들이 운영하는 일명 '당원주점'이 초기에는 사민당의 당원들과 노동자들의 '토론의 장소', '각종 집회의 장소'로 적극 활용되던 것을 넘어서 이후에는 '맥주 판매에 악영향을 미칠 잠재적 위협' 때문에 노동조합이 사용하기 위한 건물 신축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포기시키고 좀 더 좋은 시설을 갖춘 대형 맥주 점들의 등장을 방해하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은 현재로선 거의 접하기 불가능한 정보이기도 하다.
서론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대표되는 세대층은 4.19세대, 6.3세대 386세대가 있다. 이 세대들은 민주화 추종세력으로 대부분이 정당으로 들어갔으며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 언론 등의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이끄는 큰 축으로써 활약하고 있다.4.19세대는 4월 19일 학생, 시민들의 민주주의 혁명에 의해 이승만 독재 정권이 물러난 일이나, 민청학련이라는 대학생들의 연합조직을 간첩사건으로 조작한 일 등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평가하면서 그 당시 그 일에 직접 참여했거나 공감했던 세대를 지칭한다.6.3세대는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에서 폭팔한 학생운동 세대로 김덕룡, 이명박, 최장집 등 무려 200여명이 넘는 이들 6.3세대 인물들은 현재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언론문화, 학술계를 대표하는 중심세대이자 핵심리더들이다.요즘 20대들에게는 4.19세대나 6.3세대 보다는 386세대라는 말에 더 익숙하다. 지금도 언론 방송등에서 386세대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등장과 함께 정치권에서도 386세대를 둘러싼 말들이 아주 많다. 386세대란 숫자의 조합인데 각각 뜻이 분명하다. 30대 나이고(그러나 지금 이들의 나이는 40대에 접어들었다.) 80년대 대학 학번을 가지고 있으며 6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중에서도 1980년대에 20대 대학생으로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전념해온 그 또래 집단의 정신이나 삶의 태도를 가리킨다. 이들 386세대는 젊기도 하거니와 이전 세대보다 덜 부패하고 부정하다고해서 한때는 이 나라의 잘못된 정치를 한순간에 바꿀 수 있는 ‘젊은피’ 또는 세대교체의 주인공으로까지 인식되기도 했다.앞서 언급한 4.19, 6.3, 386세대들은 당시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세대라는 특징적인 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 이후의 세대들을 지칭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1.신세대1990년대 초반쯤 신세대가 등장한다. 1980년대와 사뭇 달라진 것같은 1990년대의 문화폭팔 현상을 경험하면서 사회학이나 인문학을 공부한 젊은 사람들에 의해 기존세대와 다른 신세대에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은 국가, 민족, 집단 위주의 자아 정체성에서 벗어나 ‘나’라고 하는 개인의 정체성의 중시를 주장했고 온갖 권위주의에 대해 반대하면서 자유롭고도 평화로운 연대를 옹호했다. 나아가 일상의 문화를 통해서 개인, 집단, 사회, 국가의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새로운 생각을 펼쳐 나갔다. 그러나 후에 신세대라는 말이 남발, 과용되면서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소비, 과시하려는 젊은 층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곤했다.2. N세대(Net- Gerneration)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의 세대를 지칭해 ‘N세대’라고 부른다. N세대를 정의하자면, 77년부터 97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로 디지털 기술과 함께 성장해서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디지털 문명 세대를 말한다. N세대(Net- Gerneration)는 미국에 8,000만명 정도 있으며 컴퓨터를 막 배우기 시작한 꼬마에서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르는 20대까지 포함한다. 집, 학교, 사무실 등 N세대 주위의 모든공간에는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어. 이들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미디어인 인터넷을 활용해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의 의사소통을 하며, 또한 TV보다 컴퓨터를 좋아하고 전화보다 이메일에 더 익숙한 세대이다. 단순한 관람자나 청취자가 되가보다는 이용자가 되길 원하고 정보를 찾아가고 개성을 주장할 줄 아는 강한 독립성과 자율성/능동성, 감정, 개방, 자유로운 표현과 뚜렷한 관점을 가지고 자기개발과 혁신을 추구한다. N세대가 중심이 되는 미래사화는 국경도 없는 자유로운 네트워크 사회가 될것이다.(1) N세대의 특징적 문화ⓛ 놀이문화"캐논 러시다. 시저 탱크 준비해"이 말을 이해하는가? 이 말을 이해한다면 여러분들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아는 것이다. 이 게임은 블리저드사에서 국내에 들어와서 우리 나라 N세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아니 지금까지 누리는 게임이다. 아예 못하면 왕따(?)가 될 정도이다. 왜 이 게임이 N세대에게 인기가 있었을까? 우선 전략게임을 좋아하는 국민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더 이 게임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점은 컴퓨터와 사람간의 게임의 차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네트워크(network)를 통한 실시간 어느 곳에서나 어느 시간이라도 배틀 넷을 통해 서로의 실력을 겨룰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여기에 이길 경우 승이나 패가 결정되거나 점수가 부여되어 사람들의 순위 결정을 하게 되어 사람들 간에 승부 욕을 일으켜 인기를 얻었다. 여기에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이 게임의 세계 1백위 안의 순위에 약 50%가 한국인이라는 점에 그 대부분의 사람들이 N세대에 속한 계층이라는 점이다. 이는 이 게임의 판매량이 전 세계적으로 150만 복사 본이 판매 됐으며 국내에서만 총 판매의 20%가 팔렸을 뿐만 아니라 불법 복제까지 합하면 엄청난 수의 배포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또 한번 느낄 수가 있다. 또한 N세대들이 이렇게 손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 계기는 PC 보급률의 증가와 게다가 1만개가 넘는 PC방이라는 새로운 업종이 만들어지면서 N세대들이 적은 돈으로 그들이 원하는 시간이면 언제나 게임을 즐길 수 있어 그들의 새로운 놀이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IMF이후 침체된 PC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프로게이머라는 신종 직업까지 탄생시켰다. 하지만 이 게임이 중독성이 짙은 부정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게임은 어디까지나 N세대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놀이문화이다.② 소비문화N세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길 원한다. 톡톡 뛰거나, 신선하고, 깜직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품에 호감을 갖는다. 유명 브랜드 상품에 대한 호감이나 믿음이 적은것도 N세대들의 특징이다. 또한 집안에 앉아 인터넷으로 전자상 물품 거래를 할 뿐아니라, 가격과 품질을 비교하기도 쉬워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 N세대는 앞으로 21세기의 주 소비계층이므로 이들의 소비기준은 곧바로 기업의 마케팅 전략과 연결된다. 예를 들면 N세대는 밤에 잠자는 시간이 아닌 낮보다 훨씬 다양하고 이채로운 활동을 한다. 이들을 겨냥해서 심야에 영화를 하는 심야 영화가 성업 중이다. '부천 판타스틱영화제' 에서도 컬트나 예술영화에서부터 헐리우드의 오락물, 한국영화까지 심야에 상영되었다. 또한 낮보다 밝게 불을 밝혀 놓은 동대문 시장은 많은 대형 패션전문점에서 밤을 잊은 이 세대를 위해 경품행사 및 부대행사 뿐만 아니라 언더 록밴드 공연, 케이블 TV 공개방송 등을 개최한다.③ 언어문화PC 통신 및 인터넷에서 유행된 신조어들이 N세대들의 언어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새로운 문화로 N세대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ㅋㅋ, 햏햏햏 ,방가요, 하이루, ~~함다. ~~하져」등 귀여운 느낌을 주는 어미에서 「번개(만나자), 엽기적인, 펌글」 등의 신조어가 통신을 통해 만들어진 N세대들의 언어다. 하지만 이런 신조어보다 더욱 이들 N세대 언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기존 언어를 비트는 새로운 언어습관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구어체 문장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약어의 사용이다. 구어체 문장은 채팅의 영향이 커서 말을 나오는 대로 글을 만들거나 발음상으로 줄일 수 있는 말은 과감하게 줄여버리는게 특징이다. 예를 들면「이었다」를 「이어따」「반갑습니다」를「방가」「드디어」를 「드뎌」는 식이다. 이는 대화하는 또래끼리의 동질 감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또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약어들도 N세대를 대표하는 언어이다. 요즘 종종 듣게 되는 TTL역시 원래 20세의 전화생활이라는 뜻이었지만 N세대의 특성상 의미를 밝히지 않는 것을 내세워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N세대 언어는 기존의 표준어를 오염시킨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2) N세대들의 문제점N세대는 적극적인 참여 및 능동적인 행동 분명한 자기 주장 등 좋은 면을 지니지만 N세대 역시 밝은 면만 가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적극적인 참여 및 능동적인 행동 등의 다른 이면에는 개인 정보의 유린 및 불건전한 정보의 범람 인터넷 중독증 등이 어두운 그늘이 도사리고 있다. 또한 통제가 어려운 인터넷의 특성을 이용해 음란물이나 무기 폭력 같은 반사회적인 사이트들이 속속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것을 막기 위해 음란물 차단프로그램 등이 배포되고 있기는 하지만 N세대를 이 같은 정보에서 차단하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직 많지는 않지만 인터넷 중독증을 보이는 삶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외에도 익명 성을 이용한 통신상의 허위사실 유포, 채팅 방에서의 욕설 및 음란언어 사용 등 N세대가 보여주는 어두운 면이다.N세대는 기업과 마케팅에 의한 상업적인 가치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이들 세대에게 신세대라는 자의식을 불어넣고 그들을 영향력 있는 사회적 존재로 만든 것은 단지 기업의 마케팅과 광고였다. 다른 세대처럼 소비자로써의 능력이 없어지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존재로 취급될지도 모른다. 창의적이고 새롭다는 신세대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사고방식, 행동양식을 포괄하고 그 특성이 올바르게 분출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교육적 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N세대가 열광하는 공간은 채팅과 게임, 유명 연예인의 팬클럽 정도다. 사회나 환경 등에 관한 진지한 토론공간에서 N세대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을 찾아보기는 그리 쉽지가 않다. 정보와 기술을 익숙하게 다룰 줄 아는 N세대가 앞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주도 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이 개성을 기반으로 한 전자민주주의 꽃을 피울지, 아니면 사이버 공간에만 탐닉하는 이기주의적 사회를 건설할지는 결정하는 것은 오늘 우리의 준비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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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ha' 기업 소개1) What is Missha?미샤란, 화장품 전문 회사 ㈜에이블 C&C가 2000년에 여성 포털사이트 '뷰티넷'으로 시작하여 2002년에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 한 저가격대의 전문 화장품 브랜드이다. 미샤는 뷰티넷(www.beautynet.co.kr)의 200만 명 회원들과 '함께' 만들어지는 브랜드로서 회원과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그들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반영한 화장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기존의 값비싼 화장품과는 다르게 미샤는 전제품을 3300원~9800원의 파격적인 가격에 기초화장품, 색조화장품, 기능성 화장품, 바디헤어용품 등 총 700여종의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다.2) 에이블 C&C?설립일 : 2000년 1월 10일주요사업 : 인터넷 여성포탈, 온라인 커뮤니티, 화장품 제조, 화장품/패션잡화온라인/오프라인 판매, 미샤 전문매장 프랜차이즈 사업.3) 에이블 C&C의 연혁2000. 01 (주)에이블커뮤니케이션 창립2001. 01 여성포탈 BeautyNet.co.kr" 정식 오픈 및 MISSHA 브랜드 출시2001. 08 벤쳐기업 지정(신기술 기업)2002. 05 미샤 직영 1호점 이대점 오픈2003. 05 주식회사 에이블씨엔씨로 사명변경2003. 08 미샤 프랜차이즈 사업 개시2003. 12 온라인 뷰티넷 회원 100만 돌파2004. 03 미샤 프랜차이즈 100호점 돌파2004. 05 미샤 한경마케팅대상 수상2004. 07 코스메틱넷 브랜드 출시2004. 08 온라인 뷰티넷 회원 200만 돌파2004. 08 미샤 프랜차이즈 200호점 돌파, 미샤 멤버쉽 카드 100만 돌파2004. 08 주식회사 에이블씨엔씨 사옥 이전2004. 09 미샤 해외진출 1호 시드니 매장 오픈2004. 10 미샤 싱가폴 매장 오픈4) 에이블 C&C의 4대 마케팅 전략- Quality Base (내용물 우선주의)미샤는 화장품의 겉포장보다 내용물의 품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용기 디자인에 거액을 들이기보다는 심플하고 깔끔한 흰색 플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직접 연결되어 복잡한 중간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또한 업계의 거래 관행인 후불결제방식에서 벗어나 선불결제방식을 도입하였다. 이 선불결제방식은 수금을 하기 위한 영업사원의 수를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인건비 비용을 낮출 수 있게 된다.- 과도한 포장을 지양한다화장품의 특성상 기존의 화장품들은 내용물보다도 화장품 용기나 포장에 많은 비용을 투자해왔다. 그러나 미샤의 경우 이러한 화장품의 포장이나 용기를 최소화해서 비용을 낮출 수 있었다.- 과대광고를 하지 않는다.TV나 신문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CF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유명한 연예인들을 통한 CF를 하루에도 몇 번씩 TV에 내보내는 것은 정말로 엄청난 광고비를 수반하게 된다. 그러나 미샤의 경우 TV나 신문을 통한 고비용의 광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엄청난 광고비를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2) 회원 수 200만 명의 '뷰티넷'2000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 뷰티넷에 무려 200만 명의 회원들이 가입해있다. 현재 뷰티넷은 마이클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형 여성 포탈 사이트이다. 회원 200만 명중 95%가 여성회원이며 이중에서 110만 명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그 중 50만 명은 아주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령별 분포를 살펴보면 19세~24세 65%, 25세 ~ 30세 20%, 14 ~ 18세 10%, 30 중반이후 5%로 나타났다. 이 뷰티넷의 회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 시제품으로 생산된 제품을 회원들이 직접 써본 후 품평하여 가격까지 결정한다. 이러한 170만 명의 회원들은 충성고객이기도 하면서 홍보요원이기도 한 미샤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뷰티넷에서 회원들 간의 정보공유가 가능하며 다이어리, 음악 감상 등의 기능을 즐길 수 있어서 복합적인 인터넷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3) 3년 동안 검증된 미샤의 품질미샤의 제품들은 2000년부터 여성 포털사이트 뷰티넷(www.beautynet.co.kr)의 200만 명의 회원들하거나 경쟁력을 키워 시장을 선도해 나가고 있다.5) 코스닥 12월에 상장 예정미샤는 오는 12월에 코스닥에 상장될 예정이다. 코스닥에 상장되면 첫째, 거래하기가 쉬워지므로 더 많은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고 애널리스트들이 회사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분석함으로써 적정주가에 근접하게 평가 받을 수 있다. 둘째, 환금성이 좋아진다. 셋째, 코스닥 등록요건이 갖춰진 것이므로 재무구조나 회사 내용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넷째, 회사입장에서도 유상증자 등으로 자금을 활용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에 부채를 증가시키지 않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다.미샤의 코스닥 상장으로 미샤는 현재 급속한 성장으로 인한 자금조달문제, 신뢰성문제등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6) 가격 이외의 특별한 유인전략 부재저렴한 가격 이외에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특별한 유인전략이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만약에 다른 경쟁업체에서 화장품 가격을 더 낮출 경우 저렴한 가격이외의 유인 전략이 없다면 많은 소비자들은 더 이상 미샤의 화장품을 고집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7) 저가격대로 인한 수익구조문제높은 이윤을 장기화할 수 있는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미샤는 주로 저가 화장품을 통해서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만약 똑같은 숫자의 화장품을 팔아도 고가의 화장품을 파는 다른 업체의 매출을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다.8) 일관되지 못한 가맹점관리현재 미샤는 전국에 130개가 넘는 가맹점을 가지고 있다. 2002년 서울 이화여대 1호점을 시작으로 엄청난 속도로 가맹점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급속한 확장은 매출액 상승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문제점 또한 존재한다. 미샤에 대한 불만사항을 살펴보면 불친절한 종업원, 청소가 안 된 지저분한 매장, 정돈되어있지 않은 tester, 제품인데 이 세 가지 문제는 모두 가맹점 관리가 철저하지 못한 데서 발생하는 문제이다.일관되지 못한 가맹점관리는 향후 미샤의 브랜드이미지에 부정적인영향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 브랜드 이미지는 한번 만들고 할 수 있다.최근 중국 국가발전화개혁위원회가 35개 중대형 도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사스 이후 소비지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31.4%와 17.3%가 각각 전화주문 및 인터넷 홈쇼핑을 적극 활용한다고 답해 상당수 소비자들이 온라인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이것은 인터넷 판매로 그 기반을 다져온 미샤에게 있어 중국 시장진출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보여 진다.2) 인터넷 문화의 보급우리나라 인터넷 사용인구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2922만 명에 이르러, 올해 인터넷 이용자 수가 30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인터넷의 보급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활성화로 온라인문화라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또 이런 온라인 문화는 쇼핑문화에도 큰 영향을 주었는데 지식 쇼핑이 바로 그것이다.지식쇼핑 이란 종합검색포털 사이트를 통해 고객이 사고자 하는 특정 상품과 이에 대한 구매 방법, 서비스 정보 등을 미리 인지하고 사전에 꼼꼼히 구매 여부를 타진한 뒤 쇼핑에 착수하는 합리적인 구매 방식이다. 결국 정보력에서 앞서는 똑똑한 소비자가 올 한 해 더욱 급증할 것으로 보임에 따라 홈쇼핑, 인터넷쇼핑몰로 대변되는 무점포 판매가 전문점, 백화점, 마트 등 유점포 판매시장 점유율을 상당수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회 문화 환경1) 중고생 화장품 사용증가과거에 화장은 대학생이나 직장을 다니는 직장인들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교육정책의 변화로 중, 고등학교가 점차적으로 자율적인 분위기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많은 여중고생들이 화장을 쉽게 접하게 되었다. 실제로 여고생이나 여중생의 경우 화장을 하는 학생도 많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2) 남성 화장품 시장 확대기존에 남성화장품은 스킨이나 로션정도의 아주 기초적인 제품만으로 인식되었으나 현재는 남자도 꾸밀 수 있다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남성용 화장품이 많이 등장 하였고 남성화장품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확대 되고 있다.3) 웰빙 트랜드 형성지르시나떼따떼뜨, 한불화장품의 슈가레이 등이 이에 속함 더불어 태평양은 초저가 브랜드에 대응하는 새로운 모델로 브랜드샵을 추진. 또한 웰빙 문화에 맞추어 여러 기능성 화장품 개발을 통한 제품의 차별화 및 방문 판매를 통해서 미용에 관련된 전문적인 카운슬링을 제공함과 동시에 접근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3) 외국 화장품 브랜드고가 정책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의 고급화. 또한 화장품이 단순히 필요성을 만족시키는 기능 뿐 만 아니라 소비욕구를 만족시키는 상품으로의 개발. 또한 다국적 브랜드 메이블린은 전면적으로 모든 제품의 가격을 내리지는 않고 새롭게 출시되는 제품의 가격인하를 점진적으로 단행함으로서 초저가에 대응할 수 있는 저가 색조로 운영될 것으로 예상된다.4) 인터넷 쇼핑몰인터넷쇼핑몰은 10대층의 이탈에 대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초저가 브랜드로 빠져나가고 있는 10대층과 20대 초반의 고객을 다시 끌어안기 위한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했지만 효과가 미미, 새로운 대책 마련에 돌입한 상황이다. 그 방안으로 기존 초저가 화장품의 쇼핑몰 입점 및 대만, 중국산 초저가 품목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강점약점-저렴한 가격-회원수 200만 명의 뷰티넷-3년 동안 검증된 미샤의 품질-수평적인 아웃소싱을 통한 높은 R&D 투자규모-코스닥에 12월 상장예정-가격이외의 특별한 유인전략 부족-저가격대로 인한 수익구조문제-일관되지 못한 가맹점 관리기회위협-중국시장의 급부상-인터넷 문화의 보급-중고생의 화장품 사용증가-소비침체-동종 경쟁자의 시장진출-기존경쟁사의 대응-웰빙 트랜드4. SWOT 분석5. 문제점 도출위의 SWOT분석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 미샤는 다음의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미샤의 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감부족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싼 가격 때문에 미샤의 제품을 구매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미샤의 품질에 대해서는 신뢰감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Able C&C에서는 제품의 질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실제로 미샤의 화장품은 경쟁사인 페{{
서론사람들의 음식문화는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자연적인 환경, 즉 지형이나 기후, 토양, 수질과 사회적 환경인 종교, 관습, 생활과 규범, 가치관 등에 영향을 받아 형성한다. 한 민족 특유의 음식문화는 민족의 풍속이나 습관이 음식습관의 형태로 전통을 이어가면서 선승되어 지는 것이며, 또한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것이 혼합되어 또 다른 형태의 음식문화를 형성하기도 한다. 발칸 유럽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통로에 위치하여 있고 역사적으로 동서 로마 제국의 분기점에 위치하여 양대 크리스트교의 교세 확장 주 무대가 되었다. 또한, 500여 년 간 오토만 터키 제국의 지배 하에 있어서 무슬림 종교와 문화가 전파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은 발칸 유럽 각 국의 음식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렇기 때문에 발칸유럽 각 국에는 여러 다양한 문화로부터 전해진 음식들이 혼재되어 있기도 하지만, 각 국가별로 그들의 전통음식을 가지고 있다.아직은 유럽을 가보지 않았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발칸 유럽의 관광지로서의 매력에 빠지게 되어 꼭 한번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발칸 유럽의 음식문화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발칸 유럽에 대한 흥미도 높아질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평소에도 음식에 관심이 많았기에 발칸 유럽의 음식문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본론1. 슬로베니아슬로베니아의 음식은 전통 음식과 더불어 피자, 파스타 등 국제적인 음식 그리고 동양적인 음식이 서로 혼재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슬로베니아는 동쪽의 판노니아, 북쪽의 알프스, 서쪽의 지중해 문화의 교차점이기 때문에 이들 세 문명의 영향을 받은 문화이다. 따라서 음식 역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태리에서 온 것들이다. 가장 오래된 슬로베니아 음식은 밀과 호밀로 만든 것이다. 그중의 최고는 휴일에 만드는 빵으로 지금은 꽈배기 모양과 동그란 도너츠 모양으로 된 스트루클이(struklji)가 있다. 약 70가지가 있는데 빵 속에 달콤한 것과 고기, 야채 등을 넣어서 만든다.슬로베니아 특별식엔 뽀티차(potic적인 발칸지역의 비상식사인 부렉(burek: 치즈와 고기 심지어 사과를 여러 층 쌓은 파이)은 나들이 음식으로 마련한다. 슬로베니아는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되어있다. 이에 따라 크라스키 쁘르수트(kraski prsut)라는 전통음식이 있다. 이는 다양한 해물과 가정에서 만든 치즈와 올리브, 와인을 재료로 카르스트 동굴 안에서 건조하여 만든 햄이다.그밖에 슬로베니아 공화국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동유럽 최고의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그 예로 크라니스케 클로바세 스 키슬림 젤렘(kranjske klobase s kislim zeljem: 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넣은 소세지), 자비트키(zavitki: 과일, 치즈 등을 밀가루 반죽으로 얇게 싸서 화덕에 구운 것), 토르테(torte: 층을 이룬 케이크), 팔라췬케(오믈렛) 등이 있다. 수프로는 고베야 유하(goveja juha: 쇠고기 수프), 키슬라 주하(kisla juha: 신맛 수프), 리비 브로데트(ribji brodet: 이스트리아의 물고기 수프), 요타(jota: 소금에 절인 양배추 수프) 등이 있다.{{{ 2. 크로아티아크로아티아의 음식은 각 지역의 독특한 조리법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되어있다. 조리법은 옛 원시 슬라브족의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또한 내륙과 해안간 조리법의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다. 내륙지역의 조리법은 헝가리, 비엔나, 터키의 접촉과 그 영향으로 인해 독특한 개성을 나타낸다면, 해안지역의 조리법은 지중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혹은 그리스, 로마, 고대 일리리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크로아티아는 또한 다양한 고급와인이 유명하며, 약 700여 가지에 이르는 와인들은 지역별 특성에 따라 잘 보전되어왔다. 와인 외에도 크로아티아 산 브랜디, 과일주스, 맥주, 광천수 또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약간의 기름기 있는 음식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고기와 치즈가 들어 있는 여러 층의 파이인 부렉을 즐겨 먹는다. 부렉은 발칸 유럽에서 많이 찾아송아지 스테이크' 위에 뿌리면 향기가 독특한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고 옥수수 가루로 만든 노란 꽃 위에 뿌리면 더욱 고급스런 요리로 탄생한다. 타르투프는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최고의 음식이라 할 수 있다.또한 크로아티아는 우리나라처럼 4계절이 뚜렷하고 겨울이 추운 나라이기 때문에 겨울철을 대비해 돼지를 잡아 부위별로 저장 식품을 만들어 놓는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약간의 기름기 있는 음식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 진미로는 고기와 치즈가 들어 있는 여러 층의 파이 부렉, 자그레브 지역의 치즈 도넛, 피로스크(pirosk) 등이 있다.아드리아 해 지역에는 해산물요리가 뛰어나다. 스참피(scampi), 조개인 프르스타치(prstaci), 여러 가지 생선과 쌀을 끓인 스튜인 달마티안 브로데트 등이 있다.콩과 신선한 옥수수 수프인 마니스트라 오드 보비차(manistra od bobica), 혹은 시어진 우유로 만든 연하고 흰 치즈 스트룩클레(struckle) 등은 내륙지방의 특별 음식이다.{{ 3.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보스니아의 음식문화는 터키의 오랜 지배로 인해 터키의 동양식 요리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보스니아를 대표하는 음식들로는 잘게다진 소고기 요리로 양배추와 함께 요리되어 나오는 보산스키로자츠 , 층을 이룬 치즈 또는 고기파이인 부렉 , 대중적 디저트 음식은 바클라바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치즈파이 시르니차(sirnica)나 시금치 파이 젤라니차(zeljanica)가 있으며, 호도와 휘핑크림이 위에 덮인 애플 케이크인 투파히예(Tufahije)가 있다.{{ 4. 세르비아주변 여타 슬라브인들 음식과 비슷한 세르비아 음식은 기존 슬라브 전통 음식처럼 오랜 동안의 터키 지배로 인한 터키풍의 음식 문화가 서로 혼재되어 나타나고, 보이보디나 등의 과거 헝가리 지배를 받았던 지역에서는 굴라쉬 등 헝가리풍의 음식 문화가 자주 보여 지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세르비아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는 다진 소고기를 양념해 길게 튀겨서 내 놓는 췌밥취치, 여러 겹의 파이속에 소고기를 다네그로몬테네그로의 음식은 슬라브, 터키, 이탈리아, 그리고 그리스풍의 맛이 서로 혼재되어 나타난다는 특징을 지니며, 양념을 곁들인 다양한 육류 요리가 특징이다. 몬테네그로 인들이 주로 즐겨 먹는 음식으로는 여러 겹의 파이 속에 소고기를 다진 것 또는 치즈를 넣어 만든 부렉과 소고기 스테이크인 쁠레스카비차, 양파와 고추로 양념된 소고기 혹은 돼지고기를 쇠꼬챙이에 끼어 구워서 내놓는 라즈니치 등이 있다. 또한 온화한 대륙성 기후로 브라나쯔라는 유명 포도주와 고급 라키야 생산에도 일조 하고 있다.6. 마케도니아마케도니아의 대중 음식으로는 피자같은 파스트르마이일리야와 부렉을 들 수 있다. 특히 내용물이 치즈나 다진 소고기가 파이 형식인 부렉은 요구르트와 함께 값싼 아침 식사대용으로 많이 애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터키식의 다진 고기구이와 미트볼처럼 소고기를 다져 만든 키오프티냐는 우리 한국인들의 입맛에 매우 적합하다. 또한 프라이팬에 콩을 요리해 만든 그라브체 나 타브체(gravce na tavce)도 매우 특이하다. 고기와 채소를 넣어 서서히 끓여 조리한 스튜는 마케도니아의 전통 음식이다. 빵은 스튜에 찍어 먹는다. 이 외에 계절에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양이나 염소의 젖으로 만든 흰색의 치즈인 페타치즈, 후추를 뿌려 구운 고기, 파이의 일종인 젤니크 등을 먹는다. 각 지방의 특산물인 적포도주와 증류한 브랜디는 맛이 독하고 알코올 함유량이 높다. 브랜디는 즐겨 마시는 알코올 음료로서 특히 본격적으로 식사에 들어가기 전이나 채소를 안주삼아 먹는다. 포도주는 주로 겨울철에 콜바시(kolbasi 돼지고기와 부추를 넣어 집에서 만들어 먹는 훈연 소시지)와 함께 먹는다.{{ 7. 불가리아불가리아 요리는 뭉근한 불로 푹 익도록 찌는 요리법이 특징이며 부드럽고 섬세한 맛을 내는 양고기나 송아지 고기 요리가 특히 일품이다. 대중음식으로는 미트롤을 숯불에 구운 음식인 케바프체(kebapche), 고기와 야채의 냄비요리인 카바르마(kavarma), 쌀과 계란을 넣어 구운 양의 간인 드롭크(tamyank: 감칠맛), 챠르도나이(chardonnay), 갈라테아(galatea) 등이 있다.한편 불가리아인의 식생활 문화 가운데 흥미로운 점은 요구르트를 주식의 하나로 많이 섭취한다는 점이다. 불가리아의 요구르트가 장수 식품으로 알려진 계기는 생리의학부분의 노벨상 수상자(1908년)안 메치니코프가 1902년 [생명의 연장]이라는 논문에서 유산균이 대표적 장수 식품이라는 점을 밝히면서부터이다. 이 논문에서 인간 노화의 원인이 장내 독소에 의한 만성중독이라 분석하였고 이러한 유해균의 생성을 억제하고 장내 부패를 방지하는 균이 바로 유산균이라고 주장하였다. 실증적 근거로 당시 미국인의 평균수명 48세와 유산균이 다량 들어있는 발효유를 매일 섭취하는 불가리아인의 평균 수명이 87세를 사례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발표직후 불가리아는 요구르트 유산균에 의한 장수 국가로 유명해 졌고 현재까지도 그 명성을 이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양 유업에서 나온 농축 요구르트인 불가리스 를 통해 불가리아의 요구르트가 알려졌는데 불가리아의 요구르트는 약간 신맛이며 크림치즈와 비슷한 맛이 난다.{{ 8. 루마니아루마니아 음식의 특징은 신맛을 내는 음식들이 많다는 점이다. 루마니아의 대표적 음식 중 소 내장을 주 재료로 신맛이 강한 진한 수프의 일종인 치오르버 데 부르떠(ciorba de burta)는 절인 고추와 먹어야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해장국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다진 고기와 쌀을 섞어 포도잎 혹은 양배추잎으로 감싸 만든 사르말레(sarmale)는 원래 크리스마스 이브에 먹는 음식이다. 이것은 귀한 음식이라서 큰 명절이나 중요한 손님이 올 때 가끔 내놓는 음식이다. 또한 루마니아 음식 중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음식중에 하나인 머멀리거(mamaliga)는 일종의 옥수수 죽으로 옥수수가루, 버터, 치즈 등을 섞어 만들고, 마늘, 달걀 등과 같이 먹는데 루마니아의 웬만한 시골집에서 주식처럼 먹는 음식이다. 햄, 소시지, 코프, 갈빗살 등 돼지고기를
1. 비디오게임산업의 역사최초의 비디오게임은 1961년 MIT연구소의 스티브러셀이 개발한 슈팅게임인 스패이스워(space war)이다. 10년 후인 1971년 놀런 부쉬넬이 스패이스 워를 개량한 컴퓨터 스패이스를 만들면서 게임산업이 성립되었다. 그 다음해인 1972년 세계 최초의 게임 회사인 “아타리”사가 설립되었다. 아타리 사의의 첫 작품인 “퐁”이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면서 두 번째 작품인 “벽돌깨기”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지만 불법 복제품이 범람하여 비즈니스면에서는 대실패하였다. 자금난에 위기에 빠진 아타리 사는 영화업계의 대기업인 “워너커뮤니케이션”에 매각되었고 1977년 카트리지 식 게임기인 아타리2600을 발표했다. 아타리2600은 초반에 판매부진으로 고전하였으나 1979년 일본의 타이토사가 개발한 “스페이스인베이더”가 미국에 상륙함에 따라 폭팔적으로 팔려 나갔다. 미국에서만 해도 상당한 보급률이었고 게임 소프트웨어 회사도 급증했다. 이후 아타리 2600의 판매 호전으로 1982년 20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매출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2년 이른바 “아타리쇼크”가 발생한다. 과다한 서드파티 계약 체결에 의해 조잡한 게임들이 양산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가중되어 게임기의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다.1983년 일본에서 닌텐도는 패미컴을 출시하게 된다. 이 패미컴은 당시 폭팔적인 인기를 누리던 아케이트 게임인 동킹콩을 탑재하여 빅 히트를 치게되고 1985년에 슈퍼마리오가 발매되면서 닌텐도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일본국내 시장 점유율 70%, 미국 국내 시장 점유율90%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 후 1989년 닌텐도의 경쟁업체인 세가 사는 16비트 게임기인 세가 제네시즈(메가드라이브)를 개발하여 시판하지만 1년 후인 1990년 닌텐도사는 16비트 게임기 슈퍼패미콤을 발매하여 최고의 호황을 맞게 된다. 이러한 닌텐도의 독주는 약 10년 간 계속되어 오다가 1994년 3DO, 세가 세턴,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등의 32비트 게임기의 등장으로 게임시장에 지자나 연구개발비는 필요 없게 될 것이고 꼭 필요한 소프트웨어에만 투자하면 되므로 투자액은 적은 반면 결과물은 세계 최고의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닌텐도의 주 수입원은 라이센스 계약을 맺은 소프트웨어 회사로부터 받는 로열티와 제조위탁금인 셈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가능한 이유는 닌텐도가 패미컴이라는 절대적인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끊임없는 연구개발 투자를 들 수 있다. 닌텐도 최고의 호황기는 역시 패미콤 시절이었다. 닌텐도는 이러한 패미컴의 성공에 안주하지않고 계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로 1년 후 미니게임기인 겜보이를 개발하여 휴대용 게임기 시장까지 진출하였다. 이 밖에도 소프트웨어 개발력 향상을 위해 총 1500억 엔을 들여 도쿄 개발 센터를 건설하였다. 이러한 계속적인 연구개발과 투자는 닌텐도를 국내시장에 안주하지 않는 세계적인 닌텐도를 키운 원동력이라 할 수 있겠다. 세 번째 캐릭터 산업의 중요성 인식이 있는데 닌텐도만큼 게임의 캐릭터를 잘 개발한 회사도 드물다. 그 예로 너무나 유명한 슈퍼 마리오, 슈퍼 마리오와 관련 된 게임은 수십 종에 이른다. 그러나 이 게임들은 모두 장르가 다르고 공통점이라곤 슈퍼 마리오가 출연한다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이 게임들이 성공한 까닭을 찾는 것은 쉬울 것이다. 사람들은 슈퍼 마리오의 인지도를 믿고 사는 것이다. 슈퍼 마리오를 좋아해서 슈퍼 마리오가 나오는 새로운 게임을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한 가지 캐릭터가 히트하면 게임만이 아닌 제 2의 제 3의 수익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시장에서 캐릭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닌텐도의 이러한 전략은 시장을 독점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슈퍼 마리오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최근에 포켓몬스터만 보아도 닌텐도가 얼마나 캐릭터 산업을 중요시하는 기업인지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닌텐도의 경영 전략을 들 수 있다.(2) 닌텐도만의 경영전략①소프트웨어비지니인 인기를 끌었다. 이런 훌륭한 하드웨어가 있었기 때문에 닌텐도는 우수한 많은 소프트웨어 제작자들에게 제품개발에 이용할 수 있었다. 또 다른 강점으로는 뛰어난 인적자원을 들 수 있다. 닌텐도는 “평범한 백명보다는 한 명의 천재“를 원한다는 철학을 세우고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700명에 불과한 직원으로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약점으로는 외부 소프트웨어개발업체와의 갈등을 들 수 있다. 앞에서 설명한 소프트웨어 라이센스제도는 닌텐도에게는 상당히 유리한 계약이었지만 많은 소프트웨어개발업체에게는 불리한 계약조건이었다. 이러한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제작업체들은 패미콤이라는 절대적인 하드웨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닌텐도와 계약을 체결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불평등한 계약 때문에 닌텐도는 약한 업체들을 울려서 성장 해왔다 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계약은 닌텐도가 세계게임시장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후에는 소니 등의 경쟁업체들에게 밀려 많은 소프트웨어업체를 빼앗겼다. 또 하나의 약점으로는 어린이만을 겨냥한 소프트웨어 개발이다. 예전에는 비디오게임이라는 것이 주도 어린이들의 장난감이었지만 최근에는 많은 20~30대 들이 게임을 즐긴다. 닌텐도는 그러한 예측을 늦게 해서 경쟁사들에게 뒤쳐지게 됐다. 기회요인으로는 미국의 게임시장 확대다. 닌텐도가 미국에 진출할 당시는 미국의 게임시장이 지속적인 성장 중이었으나 아타리 쇼크를 겪고 미국업체들은 침체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닌텐도의 미국시장진출이 수월했다고 볼 수 있다. 위협으로는 세가의 16비트시장 선점을 들 수 있다. 8비트시장은 닌텐도가 점유율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있었다. 그러자 1988년 경쟁업체인 세가가 세계최초로 16비트게임기인 제네시스를 발표하게된다. 게다가 닌텐도는 패미콤의 후속모델인 슈퍼패미콤의 발표가 연기되는 등 위기가 찾아온다. 두 번째 위협은 패미컴을 둘러싼 일본과 미국의 법정투쟁이다. 패00만대 2000년에는 7000만대돌파라는 대업적을 이루게 된다 이로써 플레이스테이션은 명실공히 가정용비디오 게임기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 것과 더불어 게임을 하나의 산업과 문화로 끌어올리는데 첨병역활을 하게된다. 또한 소니 수익의 40%를 차지할 정도의 대단한 성장을 이루게 된다.(4)SWOT분석우선 강점으로는 소니 내부의 경쟁을 통한 빠른 발전, 소니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내수기반, 플레이스테이션에 대한 굉장한 게임기란 이미지가 잇다. 다음 약점요인으로는 소니라는 브랜드가 전기 전자 제품을 떠오르게 한다는 이미지, 소프트웨어의 개발 능력을 감안하지 않은채 하드웨어 기술만 향상(플레이스테이션의 기능 수준을 맟추려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엔 엄청난 돈과 시간이 필요함), 디지털 기기를 통합 운영할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표준화 가능성인데 하드웨어에선 최고의 회사로 인정받고 있는 소니지만 소프트웨어까지 소니가 표준화 시킬수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다음 기회요인으로는 앞으로 광대역의 네트워크가 실현될거라는 점과, 해피넷, 세븐일레븐 재팬 같은 유통의 큰손과의 제휴, 게임 시장의 엄청난 성장세를 들 수 잇다. 마지막으로의 위협요인은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 MS사의 X박스, 닌텐도사의 게임큐브의 등장, 엄청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 있다.(5)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 대한 성공 전략소니의 가장 큰 성공 전략은 포맷홀더에서 탈피하고 서드 파티를 배려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과거 닌텐도 사의 경우 자사의 서드파티들에게 높은 로열티, 게임제작에 있어서의 많은 간섭, 게임 제작툴 자체가 상당히 고가라는 점등 서드파티들에게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였다. 하지만 소니는 이런 서드파티들에게 로열티 수수료 대폭 인하, 게임제작사들에게 게임 제작에 있어서의 자율성 부여, 거의 무료로 제공하는 게임개발툴 같은 파격적인 조건을 서드 파티들에게 내걸었고 이에 많은 서드파티들을 영입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서드 파티들은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에 많은 영향을 줬던 화이날환타지 게임의 스퀘어사, 80년 초에 성공에 힘입어 미국 지사 세가 엔터프라이즈를 설립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83년 에 벨리에 매각되고 .남아있던 일본 세가도 곧 이어 외부주주에게 인수됨과 함께 세가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으로 개명한다. 1986년 세가 엔터프라이즈는 도쿄 주식에 상장되고 SEGA OF AMERICA 는 미국 시장에서 급속히 시장을 확대하여 갔다. 1980년대 후반 세가 엔터 프라이즈는 성공적인 비디오 게임 시스템과 소프트웨어 출시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회사가 되지만 곧 1995년 세가 새턴의 부진과 1998년 드림캐스트의 부진으로 게임기 콘솔을 판매를 마감한다.(1)드림캐스트의 실패원인드림캐스트의 실패로 세가는 게임기 콘솔 개발을 중지하였는데 그 실패원인을 분석하여 보면 첫째 세턴의 실패로 인한 자금압박을 받았다. 세턴의 실패로 1조원을 손해보고 세가의 총 자산 3조원정도인걸 감안할 때 큰 손해를 입었다. 자금 압박으로 인하여 가장 중요한 기능인 DVD 기능을 탑재하지 못하엿다. 두 번째로 경쟁사의 신제품 출시 예고와 방해전략을 들 수 있다. 소니의 신제품의 출시 예고는 드림캐스트의 구매를 망설이게 했고 드림캐스트가 가장 먼저 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약세를 면치 못했다. 세 번째로 서드 파티들의 이탈과 재 확보 실패를 들 수 있다. 메이져급 서드 파티들의 이탈은 세턴의 실패 원인이지만 드림캐스트의 또한 실패의 원인이 되었다. 네 번째로는 출시 당시 하드웨어 부품 수급 문제로 시장 선점에 실패했다. 1998년 발매 당시 세가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파워 VR칩셋을 맡은 NEC공장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공장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함에 다라 칩의 수급에 큰 차질을 빚게 되었다. 9월말 발매 예정을 11월말까지 출시를 미루게 됐고 이는 드림캐스트 발매를 기다리던 소비자에게 불신감을 심어줬고 성수기를 놓침으로써 시장 초기에 20만대 정도밖에 팔지 못하는 치명적인 시장 선점 실패를 하게 되었다. 5번째로 불법복제 방지에 대한 실패를 했고 세가의 이미지 회복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