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生傳의 주제 의식】━━━━━━━━━━━━━━━━━━━━━━━━━━━━━━━━━━━━━━━━━━Ⅰ. 序『許生傳』은 주제의식이나 문체면에서 그 동안 두루 찬사를 받아 온 작품이다. 燕巖은 『許生傳』을 통해 탁월한 시대의식과 사상적 배경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러한 주제의식이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또한 『許生傳』에 제기할 수 있는 문제점은 없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本□ 『許生傳』의 형성 과정『許生傳』은 燕巖의 기행록 『熱河日記』중 『玉匣夜話』에 실려 있다. 작자는 『許生傳』의 소재를 얻게 된 경위를 자세하게 밝히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燕巖은 20세 겨울(丙子 1756) 奉元寺에서 글을 읽고 있을 때, 尹映이라는 노인에게서 許生故事를 듣게 된다. 그런데 그가 許生에 대한 傳을 지으려고 한 것은 그가 奉元寺에서 尹映에게 소재를 얻었을 때였으나 그가 정작 한 편의 작품으로 이룬 것은 20년이 지난 후의 『熱河日記』(1780)에 와서였다. 그가 許生에 대한 일화를 작품의 소재로 얻은 지 18년이 지난 후, 癸未(1773)年 봄 평안도 여행 중에 尹映을 다시 만나게 되어 그 때까지 늘 관심을 갖고 傳을 쓰고자 했던 許生 이야기의 몇 가지 모순되는 점을 물었다는 사실은, 燕巖이 許生의 傳을 쓰는 데 있어서 尹映에 의해 제보 받은 내용을 단순히 기록화한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의 창작의식과 문장력을 개입하여 작품으로 형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그렇다면 燕巖은 『許生傳』의 창작 배경을 왜 그토록 자세하게 밝히고 있는 것인가. 황패강 교수는 上揭論文에서 『許生傳』 제작의 주변을 소상히 밝히는 것은 제보자를 호도함으로써 時諱를 피하려는 燕巖의 의도적 알리바이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이러한 推斷은 이 작품이 작자의 이상실현에 방해가 되는 사회적 부조리를 비판하는 강렬한 諷刺文學이고, 尹映의 존재는 諷刺의 매개자 許生을 설정함으로써 대상과의 사이에 거리를 설정하기 위한 예비로 보는데 확신을 갖게 한다. 결국 언동을 史實에 결부시키고, 사건을 곧 諷刺가 본질적으로 정치문학의 가장 일반적인 형식임을 말하고 있는 것일 뿐 아니라, 諷刺와 정치간 숙명적인 관계를 설명한다. 諷刺만이 사회의 向進과 개혁을 방해하는 정신적 요인을 제거하는데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燕巖의 사상은 18세기 실학의 한 주조를 이루고 있었던 소위 利用厚生學과 士意識을 기조로 하고 있었다. 利用厚生學은 상공업의 발전을 기도하는 입장에서 복고적 經世致用學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면서 주로 선진 淸文化를 받아들여 이를 바탕으로 李朝末의 현실을 개혁하려는데 주안점을 둔 것이었다.위정자들의 上工賤視가 빚어낸 경제적 후진성과 이에 따른 재정의 궁핍 등 빈곤타개의 대안으로서 상품의 유통과 생산기구의 개발을 주장했고, 勳戚權貴의 부패를 비판하고 주자학적 권위주의도 또한 부정의 대상이었다. 農商工에 이바지하기 위해 적극적 참여를 고취한 그의 士觀 등 작자의 격렬한 실학적 이상 추구가 諷刺精神으로 집약된 것이다.2. 諷刺의 특성이 작품의 諷刺는 무능한 士人으로부터 경제 정치현실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을 확대 망라하면서 조소와 냉소와 痛罵가 교묘히 혼효되어 있는 점을 그 특성으로 지적할 수 있다. 許生은 처음 아내로 하여금 양반의 지체가 도적의 수준으로 격하될 만큼 그의 무능이 조소된다. 그러나 諷刺의 대상이었던 許生은 결연히 일어나 실천적 상행위를 통해 경제적 빈곤과 교통의 후진성, 유통질서의 맹점을 폭로 비판함으로써 풍자의 매개자로 轉身한다.無人空島의 설정은 냉소적 현실과의 대비를 위한 것이다. 사회제도에 대한 불합리점을 그의 실증적 경험을 통해서 지적하고 모순이 없는 생산적 이상국가 실현을 주장하는 단계로 발전한다.李浣은 자신의 驕傲放恣한 성격에다 北伐策과의 관련하에 朝野의 원망을 산 인물이다. 이를 내세워 격렬하게 공격한 許生의 언동은 사회의 결함과 지배층의 愚劣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에서 私怨을 넘어선 公憤의 대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3. 諷刺의 양상① 許生을 통한 양반의 무능 비판墨積洞의 許生은 〈不蔽風雨〉한 數間草屋에서 〈好讀書〉諷刺의 대상에서 諷刺의 매개자로 그 역할을 바꾼다. 그런데 許生의 아내를 통해서 무위무능한 士人을 도적의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諷刺의 방법은 작자의 상공장려의 정신이고 생산적 士意識의 발현으로 주목할 가치가 있다.② 買占賣惜을 통한 취약한 유통 구조 비판許生이 한양의 부호 변씨로부터 萬金을 빌려 시작한 장사는 세 번 자리를 옮기면서 백배의 이윤을 남겼다. 처음 안성에서는 대추?밤?감?배?감자?석류?귤?유자 등 과실을 매점하여 10배를 벌었고, 제주도에서는 말총을 독점하여 또 10배를 벌었다. 또한 無人空島에서 수확한 잉여 농산물을 일본 長岐島에 수출하여 백만금을 얻는다.그런데 일본과의 무역으로 이윤을 취득한 것 이외에 일어난 許生의 상행위는 분명 부도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행위는 의미상의 표리를 갖는다. 이윤을 얻기 위해 買占과 같은 부도덕한 상행위가 장려된 듯한 표면상의 의미와 그것이 가능했던 유통구조의 원시성이 폭로되는 이면을 呈示한 아이러니이다. 작자는 상품의 원활 신속한 유통과 상업발전을 지향하는 이용후생을 주창했을 뿐 독점상행위를 〈小人之買〉라고 함으로써 부당한 치부를 권장하거나 독점상행위를 옹호하지는 않았다.③ 이상향으로서의 無人空島 설정이상국으로서의 無人空島는 諷刺家인 燕巖이 지향하는 종착지이고, 황량한 벌판 넘어 지평선에 열린 꿈의 장소이다. 빈곤과 범죄 그리고 사회적 부조리가 해결된 질서있는 인간사회를 의미한다.소외집단인 군도가 가정을 이루고 도적의 누명에서 해방된 생을 누릴 수 있었던 空島와 빈곤과 죄악을 치유 못하는 현실의 결함이 대조되고 〈有田有妻 何若爲盜〉의 원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집권층의 무능력이 諷刺되고 있다. 백만금이 쓰일 데 없는 국가재정의 천박성을 비판하고 〈知書者〉는 모두 끌고 나오면서 식자들로 인해 빚어진 사회적 병리를 혐오하고 있다.④ 이완으로 대표되는 사대부층에 대한 통렬한 비판燕巖의 현실비판은 궁극적으로 사대부의 허위와 무능에 집중된다. 이완은 부패하고 무력한 사대부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를 논적의 대를 구박하고 있다. 국가에서 급히 현사를 구한다는 이완의 진술을 듣자 “내 곧 와룡선생과 같은 이를 천거할테니 임금으로 하여금 삼고초려하도록 請諫할 수 있느냐”고 했다. 인재등용책의 누적된 폐단과 勳戚輩의 세도를 지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허생이 난색을 띤 이완에게 두 번째 제시한 것은 다음과 같다.明의 장병은 일찍이 자기네들이 조선에 묵은 恩義가 있다 하여 그들 자손들이 東으로 오지 않았나,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떠돌이로 살면서 홀아비로 고생하고 있다니 네 능히 조정에 청하여 종실의 딸들을 고루 시집보내고, 김류와 장유 따위의 집을 징발해서 살림살이를 마련해 줄 수 있겠느냐?明將의 후예와 국혼을 맺게 하는 것도 불가능한 조건의 제시이다. 이것도 소위 북벌주의에 대한 야유이고, 勳戚輩의 부정을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작자가 『熱河日記』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地閥로써 서로 뽐내는 것을 國俗의 누습으로 지적한 사실로도 알 수 있다.許生이 든 時事三難 가운데 세 번째가 바로 북벌주의의 허세와 미몽에 대한 지탄이다.이제 곧 그들에게 청하기를 우리 자제들을 귀국에 보내어 학문도 배우고 벼슬도 하여 당?원의 고사를 본 받고, 또 商賈의 출입도 금하지 말아 달라하면 그들은 우리의 친절을 받아 환영할테니, 그제야 국중의 자 제를 뽑아내 머리를 깎고 호복을 입혀 군자는 가서 빈공과에 응시하고, 소인들은 멀리 강남에 장사로 들어 가 그들의 허실을 엿보고 호걸들과 締結하면 그제야 천하의 일을 꾀함직하고 국치도 씻을 수 있지 않겠느냐?이렇게 함으로써 북벌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되고 또 이것이 천하에 대의를 드날리는 일이라는 것이다.時事三難의 제안은 북벌을 주장하던 효종조의 信臣 이완에게 있어 애당초 불가능한 조건의 나열이고, 이들 조건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현실의 확인이다.公憤을 대변한 許生은 경제와 정치의 맹점을 폭로하고 이완을 諷刺의 희생자로 버린 채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다. 許生은 사악한 사회의 공범자가 아닌 것이다. 소외된 정치적 아웃사이더이며 諷刺家 燕巖이 창안한 냉철한 러내고 있다.우선, 이 작품은 내포하고 있는 문제가 너무 거창하여 차라리 하나의 단편소설로서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런 실패의 첫 요인은 이 작품에는 완성된 두 개의 사건이 연접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반부에 취급된 사건은 許生이라는 주인공이 아내의 强迫을 견디지 못해서 집을 나와 변씨의 돈을 빌려 각종의 상업적 시험을 치루어 보는 것으로, 그 사건은 그것으로 완전히 首尾가 완결된 사건으로 일단락졌는데, 작가는 다시 새로운 인물 이완을 등장시켜 후반부를 연접시키고 있다.또한 작품중에서 변씨가 이완에게 許生을 얘기할 때 異人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許生이라는 인물의 眞實味를 죽이고 작품 자체를 일종의 傳奇小說로 전락할 위험 앞에 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이 밖에도 『許生傳』에는 여러 모순점이 보이는데 다음과 같다.① 상공업에 대한 인식의 한계조선사회에서는 상공업을 천시해 왔기 때문에 고소설 가운데서도 사회성을 띤 작품들은 주인공이 비상한 능력과 출중한 인품으로 외우내환을 治平하여 국가에 공헌을 끼쳐 입신양명하는 것이 특징이며, 일시적이나마 상공업에 종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본작품에서는 許生이 우리나라 경제의 유통구조의 폐쇄성을 지적하며, 국내는 물론 외국과 무역을 시도하여 일부 실학파들 사이에서도 등한시 해 온 상업의 중요성을 행동으로 실증시키고자 하였다.그런데 許生은 상업에 종사하여 단시일에 거금의 獲利를 했으나, 상업을 장구적인 생활 방편으로 생각하려는 직업의식은 없었다. 다만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 일시적으로 상업에 종사하였으나, 그것은 자신이 말한 바와 같이 작은 시험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하였다.그는 상행위를 직접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吾善賈者라 자칭하면서도 변씨에게 빌린 돈을 갚으려고 갔을 때, 변씨는 그의 용색을 보고 실패하지 않았느냐 하자, 그는 만금이 어찌 道와 상관이 있겠느냐 하며 有道의 인물로 자처하였고, 변씨가 빌려준 돈의 利息을 십분의 일만 받고자 하였을 때, 어찌 나를 장사치로 보느냐 하며 화를 내었다. 이로써 미루어 다.
1. 김수영은 ...김수영은 1950 ∼ 60년대에 활동한 시인으로서 해방 후의 우리 현대 詩史를 논하는 자리에서 서정주, 김춘수와 함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비록 사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김수영에 대한 비평적 탐사의 활기는 김수영 비평의 역사 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김수영이 자신이 살았던 당대보다 70년대 이후의 평자들에게서 더욱 관심과 조명의 대상이 된 것은, 김수영의 문학세계 자체에 대한 주목의 폭이 넓어진 때문이라고 하겠다. 또 한 그의 많은 시편들이 다각적 해석을 요구하는 난해성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시세계가 비평가나 연구 자의 시각에 따라 달라보이는 다면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그런데 지금까지 논의 된 김수영의 평가를 살펴보면,모든 기존 사실이나 관념의 거부와 정직한 언어의 추구(金禹昌)자유에의 끈질긴 탐구(김현)끊임없이 앞을 향하여 움직이는 정신(廉武雄)자유에 대한 간구와 진실에 대한 갈증의 詩化(柳宗鎬) 등 김수영 시의 특정 주제와 시정신에 주로 집중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김수영의 시사적 위치는 단순히 그의 시정신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더니즘과의 관계나 그의 시가 보여주는 난해성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야만 조금 더 온전히 드러날 것이 분명하다.2. 전쟁의 상처라는 콤플렉스 ; 50년대 모더니즘과의 불화 또는 독보적 모더니즘 구축1950년대는 김수영에게 있어 자연인으로서는 고난의 연대였으며, 문학인으로서는 모색의 연대였다고 할 수 있 다. 전쟁 당시 김수영은 서울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결국 의용군에 징집당했다가 탈출했으나, 이어서 다시 경찰 에 의해 체포되어 거제도에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데 유달리 자의식이 강했던 그가 이 기간 동안의 고통 스런 체험을 남에게 얘기하거나 글로써 남긴 것은 별로 없다. 또한 이후 4·19라는 역사적 변혁에는 그토록 즉자 적으로 현실과 직접 부딪치는 작품들로 대응하게 되는 그가, 전쟁과 분단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작품을 표현해 내지 모색의 연대였다는 앞서의 언급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시 기에 그는 어떤 형태로든 모더니즘과 깊이 연관되어 그의 시세계를 이루어 나간다.그런데 김수영이 당대 모더니스트들인 《後半期》{) 합동시집인 《새로운 都市와 市民들의 合唱》(1949년)을 펴낸 박인환과 김경린에 주도되어 1951년 결성됨.동인들과 어울리면서도 그들이 가진 모더니즘의 허상에 깊 이 침윤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後半期》가 결성되던 시기가 바로 김수영이 포로 수용소에 있던 시절이었으므로 우선 물리적으로도 여기에 참여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 시기의 생활은 김수영의 자의식에 상당한 상처와 그늘을 드리웠으며, 이로 인해 그가 다른 모더니스트들과 일종의 거리감을 갖게 되었던 것으로 여 겨진다.김수영이 모더니즘의 제스처 와 포즈 에서 빠져 나오게 되는 가장 큰 깨달음은 김현에 의하면, 당시 모더니스트 들의 태도, 즉 非詩的 요소와 현대문명을 도입하기 위해서 도입하는 태도 까지를 그 자신이 비판할 수 있었다는 데서 찾아진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김수영이 모더니즘에서 빠져 나왔다는 표현을 흔히 쓸 때, 그것은 1950년대 우리의 문예운동으로서의 모더니즘이라는 단서를 달고 언급되어져야 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 는 가장 모더니즘의 본질에 충실했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더니즘의 본질적 모티프는 바로 더 이상 명백한 것은 없다는 부정의 논리에 있고 그 부정은 새로움을 추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결국 김수영에게 있 어 문학적으로 볼 때 모색의 연대로 파악되는 시기였다고 하겠다.3. 죽음과 설움의 모티프{(1) 나비의 몸이야 제철이 가면 죽지만은그의 몸에 붙은 고은 지분은겨울의 어느 차디찬 등잔 밑에서 죽어 없어지리라그러나고독한 사람의 죽음은 이러하지는 아니하다나는 노염으로 사무친 정의 소재를 밝히지 아니하고운명에 거역할 수 있는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여기에 밀려 내려간다등잔은 바다를 보고살아있는 듯이 나비가 죽어누운무덤 앞에서나는 나의 할 일을 생각한다-〈나비 려 살아있는 존재를 더욱 살찌게 하는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영이 후에 詩 月評에서 사람은 죽을 곳 을 알아야 한다 고 하지만 이 말은 시에도 통한다 라고 하며, 이어서 모든 시는 맑스주의의 시까지도 합해서 어 떻게 자기나름으로 죽음을 완수했느냐의 문제를 검토하는 방법 이며 모든 詩論은 이 죽음의 고개를 넘어가는 모 습과 그 행방의 거리에 대한 측정의 의견 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4) 비가 그친 후 어느 날나의 방안에 설움이 충만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중략)…설움을 逆流하는 야릇한 것만을 구태여 찾아서 헤매는 것은우둔한 일인줄 알면서그것이 나의 생활이며 생명이며 정신이며 시대이며 밑바닥이라는 것을믿었기 때문에 -아아 그러나 지금 이 방안에는오직 시간만이 있지 않으냐-〈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일부죽음 과 함께 김수영의 시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는 것이 바로 설움 이다. 시 (4)에서는 설움을 逆流하고 싶은 나 / 방안에 충만한 설움 사이의 대립이 보여진다. 그런데 이러한 대립구조는 사실 그 표면적 의미에서의 대립 일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동시에 서로 상승과 긴장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자기갱신을 해 나가는 動因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5)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거미〉설움을 逆流 한다는 진술은 설움 의 부정이나 거부가 아니라 시 (5)에서 보듯이 껴안고 나아감을 의미한다. 무 언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설움 에 몸을 태운다는 진술은, 그리고 늙어가는 거미 처럼 몸이 타버릴 정도로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춘다는 인식은 그가 설움 을 단순히 생활의 비애 로만 파악하고 있지 않음을 단적으 로 보여 준다. 설움 은 김수영의 다른 시에서 긍지 로도 치환될 수 있으며, 또한 叡智 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5에서도 내려다볼 수 있을 것을 짐작하기 때문에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 자유- 비애더 넓은 전망이 필요없는 이 무제한의 시간 우에서산도 없고 바다도 없고 진흙도 없고 진창도 없고 미련도 없이앙상한 육체의 투명한 골격과 세포와 신경과 안구(眼球)까지모조리 노출낙하시켜가면서안개처럼 가벼웁게 날아가는 과감한 너의 의사(意思) 속에는남을 보기 전에 네 자신을 먼저 보이는 긍지와 선의가 있다너의 조상 우리의 조상과 함께 손을 잡고 초(超)동물세계 속에서 영위하던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원형을너는 또한 우리가 발견하고 규정하기 전에 가지고 있었으며오늘에 네가 전하는 자유의 마지막 파편에스스로 겸손의 침묵을 지켜가며 울고 있는 것이다-〈헬리콥터〉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김수영의 시의 주제가 인간의 회복을 전제로 한 자유라 한다면, 이 시편은 김수영이라는 시인이 자유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보기가 될 것이다. 특히, 이 시 가운데 자유 , 비 애 라는 두 단어가 주축을 이루는 것으로 보아 자유는 곧 비애라는 역설적 표현을 얻게 된다. 고쳐 말하면, 헬리 콥터는 새처럼 창공을 비상하기 때문에 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원형이라 할 수 있지만, 한편 스스로 겸손의 침 묵을 지켜가며 울고 있는 사실 때문에 설운 동물로 파악된다.5. 젊은 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 죽음 앞에 깨어있기눈은 살아있다떨어진 눈은 살아있다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기침을 하자젊은 詩人이여 기침을 하자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기침을 하자눈은 살아있다죽음을 잊어버린 靈魂과 肉體를 위하여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기침을 하자젊은 詩人이여 기침을 하자눈을 바라보며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마음껏 뱉자-〈눈〉1950년대 중반에 씌어진 〈눈〉은 특히 견고한 형식미가 돋보이는 시이다. 눈은 살아있다 의 반복적 변형인 1 연, 3연과 기침을 하자 의 반복적 변형인 2연, 4연이 마치 사슬 고리처럼 연결된 것이 견고한 형태를 구성하는 주된 이유로 보인다. 김수영이 동안의 시인의 고뇌로 해석된다. 김수영에게 죽 음 이 새로운 삶을 향해 열려있는 의식의 의미로 쓰인다면, 죽음을 잊어버린 靈魂과 肉體 는 현실에 대해 끊임없 이 깨어있어야 하는 젊은 시인에게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여기서의 가래 는 더러운 것이라는 일상적 의미보다는 오히려 내적 고뇌의 형태로, 즉 깨어있어야 한다는 당위와 그러지 못하게 가로막는 현실의 장애 사이에서 겪은 지난 밤의 갈등이라고 이해되어야 한다. 순결한 눈 은 고뇌와 갈등을 포근히 감싸안 으며 시인에게 깨어 있음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6. 트릭의 詩學4·19 이후에 씌어진 김수영의 작품을 보면, 폭포 에서 읽을 수 있는 달관한 마음가짐과 고매한 정신은 한갓 사 치스런 몸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김수영의 모더니즘에 대한 주장은 시의 모더니티란 외부로부터 부과 하는 감각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지성의 화염이며, 따라서 그것은 시인이 - 육체로써 - 추구할 것이지 시가 - 기술면으로 추구할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푸른 하늘을 제압하는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부러워하던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자유를 위해서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사람이면 알지노고지리가무엇을 보고노래하는가를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혁명은왜 고독한 것인가를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푸른 하늘을〉사실, 이 시는 자유는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노고지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자유를 얻 기가 얼마나 힘드는가를 피냄새와 고독이란 말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폭포 와 같은 고매한 정신이 아니라 헬리콥터 와 같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는 비애의 감정이다.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졸열(拙劣)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바람은 딴데서 오고구원은 예기치 않는 순간에 오고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절망〉이 시편은 첫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