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요인 만전춘 별사 를 처음 접하던 고등학교 수업시간이 생각난다. 재미있게도 그것은 국어시간이 아닌 국사시간이었다. 고려시대의 생활사를 배우면서 선생님께서는 그 시대의 여성들이 얼마나 개방적이고 멋졌는지 아느냐고 하시며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자신이 너무나 좋아하는 고려가요가 있다며 이 작품을 소개해 주셨던 것이다.그런데 그 시간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단지 위와 같은 사소한 이야기 때문은 아니고 그 내용과 선생님의 태도 때문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연거푸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작품 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시다가도 우리가 막상 알려 주세요 라고 외치면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며 망설이시는 것이다. 결국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요구를 외면하지 못하시고 학생들한테 이런 거 알려줘도 되나..?? 라고 하시며 얼굴까지 빨개지시면서 그 작품을 읽어주셨다.어름우희댓닙자리보아님과나와어러주글만뎡어름우희댓닙자리보아님과나와어러주글만뎡졍情둔오다범더듸새오시라더듸새오시라-만전춘 별사 中-지금 보면 그 시대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흥미있는 고려가요인데 그 때는 선생님이나 우리나 뭐가 그렇게 부끄럽고 재미있었는지 야유까지 해가며 킥킥거리던 생각을 하니 지금도 웃음이 난다.어쨌든 그 사건(?)이 있은 이후 이 작품은 국어시간에 배운 그 어느 문학 작품보다도 나의 기억에 남는 불후의 명작 이 되었다.그런데 내가 여기서 이 말을 꺼낸 이유는 내가 지금부터 알아보고자 하는 논문의 주제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 작품의 범주는 사설시조 이지만 그 내용적 주제를 이루고 있는 것은 성(性) 이다.위에서 내가 겪은 이야기처럼 성 은 쉽게 표출할 수 있는 거리낌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흥미있어 하는 소재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문학작품에는 자연히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과 사상이 투영되게 마련이다. 조선시대 문학장르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시조, 그 중에서도 형식, 내용..등에서 남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사설시조 역시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성 의 문대한 자유의지는 새로운 지향점을 마련하여 굴절의 기미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은밀히 주문 제작되면서 매우 노골화된 성을 표현하던 혜원의 춘화도와도 비슷한 맥락이라 보고 있다.지은이가 말하고자하는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즉, 제도나 관습적으로 성적 행위들이 매우 통제되었고, 그를 어겼을 경우에는 매우 엄격한 형벌이 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의 예술작품에서 성이 노골화될 수 있었던 것은 실제의 반영이라기 보다는 조심스런 예술적 허용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사설시조의 예술적 허용을 성 의식의 굴절 로 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설시조의 굴절 이란 자유롭게 성행위를 즐기고자 하는 본능적 욕망이 어떠한 시대나 상황에서 서로 다른 性認識으로 인하여 휘어지고 꺾이어 시조 연행의 전반부에 가창되는 단시조의 性과는 매우 색다르게 형상화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또 사설시조의 굴절은 그 연행 상황과도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고 보았다. 시조는 양반, 가객, 기생들의 상호 연관성 속에서 향수되어 온 장르로 그 향유계층의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그러나 시조의 향유층이 어떤 계층으로 귀결되든 사설시조는 여럿이 모여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풍류를 즐기는 酒宴의 장에서 즐겨졌을 것이라는 논리는 일반화될 수 있을 듯하다는 것이다. 사대부 혹은 그와 같은 풍류를 지향하는 인물들이 모인 자리에서 처음에는 근엄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 단시조를 부르다가 취흥이 돋우어지고 술에 취해 흥청거리는 분위기가 절정에 달하면 그러한 상황에 걸맞는 희학적인 사설시조를 불렀다는 것이다.다시 말해, 사설시조의 성 표현은 부담없이 이완되어도 좋은 놀이에서 회포를 풀고자 하는 의도와 작품을 흥미 롭게 각색하고자 하는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연행 현장이 바로 사설시조에 나타나는 성을 굴절시키는 결정적인 환경적 기반으로 작용하였다는 것이다.위 의견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지은이는 사설시조에 나타난 성이 그 형태에 있다. 사설시조에 나타난 성의 굴절은 유교의식이 내재된 향유층이 당시에 외적인 부자유로 기능하던 성에 대한 사회적 금기라는 벽을 의식하다가, 정서적 이완을 가능하게 하는 연행기반이 마련되자 관념적으로나마 자유로운 성을 구사하게 되면서 생겼다는 것이다. 즉, 사설시조의 성적 묘사가 나타나게 된 것은 철저한 유교 관념에 중압감을 느끼는 층들이 실재로 즐기지 못하는 성적 행위들을 문학 형태로나마 즐기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의견이다.다음으로 신경숙님의 논문 내용을 살펴보자.먼저 지은이는 첩과 정실사이의 시기로 인한 다툼을 그린 사설시조를 들며 가부장제 아래에서 가장에 의한 성의 지배가 원인이라고 보고 구체성을 획득한 형상화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의 세계는 전통적인 남성 중심의 사유 방식 내에 자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여성이 남성의 성기 묘사를 통해 성의 욕망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을 들며 남근이 여성에 의해 노래되었다는 사실에서 성기 중심의 오래된 가부장제의 성문화가 보이는 남근 숭배적인 속성이 여과없이 표출되고 있다고도 했다. 즉, 여성화자를 통한 여성적 욕구의 표현은 그 새로움에도 불구하고 남성중심의 성문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져 건너 月仰 바회 우희 밤쥼마치 부헝이 울면노 사링 니론 말이 남의 승앗 되야 百般 巧邪힝다 져믄 妾년이 急殺마자 죽다다 힝데妾이 對答힝되 안해님 겨오셔 망녕된 말 마오 나다 듯짜오니 家翁을簿待힝고 妾새옴 甚히 힝시다 늘근 안해님 몬져 죽다다데.-진본 청구영언 中-白華山 上上頭에 落落長松 휘여진 구지 부헝이 방귀 뀐 殊當�� 옹도라지길쥰 넙쥰 어툴머툴믓 뭉슈로 힝거라 말고 님의 연장 그러코쟈 眞實노그러곳 힝쟉시면 벗고 굴물진들 셩이 무싶 가승리-진본 청구영언 中-이상과 같이 사설시조의 性은 전대에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내용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 보다는 아주 오래된 남성의 성적 우위를 그대로 용인하는 성문화가 적지 않은 무게로 여전히 자리잡고서 사설시조의 性形象을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당대의 강고한적인 대응 방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사설시조에서 성을 향해 집중되는 이런 욕망의 모습은 이러한 시정적 분위기 위에서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 여성화자에 의해 성이 직설적 노골적 표현을 얻게 되는 것도 이런 맥락 위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작품들은 남성작가에 의한 일방적이기 보다 이미 사회 속에 이런 愛慾을 긍정하는 삶의 형태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러므로 사설시조의 性體驗과 形象은 사설시조가 갖는 연행공간의 특성을 중시하여 남성들의 가치에 의해 굴절된 성 으로 보거나 성에 대한 표현이 허용된 기방 과 같은 유흥공간에서 산생된 것으로 한정하여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향유공간이 어떠하든 그 작품 형성의 출발은 바로 이상과 같이 사실적인 시정적 체험의 구체성에 바탕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조금 더 자세하게 실례를 들어보자면 이렇다. 18세기 초 기방과 같은 유흥공간이 확대되고 유흥문화가 점차 발달되는 시기에 새로이 창작되는 작품들은 초기 사설시조에 비해 성의 노골화를 벗어내고 있다는 것을 몇몇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작품은 오히려 性은 비유로 감추어지고, 암시만으로 형상화된다. 여기서 유흥과 성형상 이 곧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님을 확인케 된다는 것이다.앞서 소개한 황병익 님의 의견대로라면(특히 성에 관련된 사설시조는 여럿이 모여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풍류를 즐기는 酒宴의 장에서 즐겨졌을 것이라는 논리) 유흥문화가 점차 발달되는 18세기 초나 그 이후에 나오는 사설시조는 한층 질탕한 성의 형상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나, 신경숙님은 이 논문에서 오히려 그 반대라는 의견을 펴며 사설시조의 性에 대한 표현이 꼭 유흥공간과 연결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즉, 性을 노래한 사설시조가 유흥을 즐길만한 여유가 있었던 상층에 의한 유흥공간의 요구였다기 보다는 당대 구체적인 시정적 삶의 형상화였음을 밝혔다. 여러 작품들의 성체험은 훨씬 시정적인 현실적 경험에 바탕하고 있으며 사설시조는 이들 의견이 전적으로 옳다고 해보자. 性에 대한 사설시조는 유흥을 즐길만한 여유가 있었던 상층의 작품이라고 단정짓는다면, 이러한 작품들 중에 서민층에 의한 창작도 있을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도 배제시켜 버린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앞서 말했듯 사설시조의 창작층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시각마다 다르고 이것이다 라고 단정짓기는 힘든 것 같다.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개방적 자세 라고 생각한다. 즉,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생각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다음으로는 황병익 님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신경숙 님의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그것을 언급하고자 한다.性에 대한 사설시조 내용에 관한 논의가 그것이다. 앞서 말한 향유층에 관한 논의와 마찬가지로 이 사설시조의 내용에 관한 의견 역시 두 분이 상이한 의견을 내 주셨는데, 먼저 황병익 님은 이 시조의 내용 대부분이 현실적이지 못하고 과장적이고 희화적인 것을 들며 실제 생활을 나타냈다기 보다는 문학적 표현이라고 했다. 반면 신경숙 님께서는 오히려 이러한 사설시조는 당시의 실제적 삶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무엇보다도 시정적 삶 의 수용이라고 본 것이다.그런데 나는 이 논의에 대해서는 황병익 님의 의견에 손을 들고 싶다. 솔직히 말해서 비슷한 논의의 여러 자료들에 참고된 사설시조 작품들을 보면 性에 대해 너무나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며 황당할 정도로 말도 안되는 것 같은 작품들이 많다. 그것이 지체를 생각하는 양반들이 아닌 서민들의 시정적 삶 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더라도 요즘보다 더 성에 대해 억압적이고 의식 자체도 보수적이던 사회에서 그런 작품이 실제의 삶을 반영했다고 보는 것은 다소 이해가 가질 않는 부분이다. 오히려 황병익 님의 말처럼 문학적 허용이라고 보는 측면이 옳을 듯 싶다. 문학은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상상의 표현이기도 하다고 하질 않는가..도저히 실제적 삶의 수용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에 대해 나는 아래의 두 작품을 판했다.
다음 글은 유씨 부인의 조침문 중의 일부이다. 빈 칸에 들어갈 말은?□□□ 모년 모월 모일에 미망인 모씨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에게 고하노니, 인간 부녀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바늘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에 흔한 바이로다.위의 문제는 3주전 모 방송국의 퀴즈 프로에 나온 주관식 문제이다. 그 때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상금이 500만원이었던 걸로 생각된다. T.V를 보다가 이 문제가 나오는 순간 내가 저기 나갔으면 500만원은 따놓은 당상인데.. 라고 하면서 함께 보던 가족들 앞에서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색을 냈지만 알고 보니 우리 가족들 역시 모두 알고 있었다.난 우리 가족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고전문학에 관심이 많았나 하고 의아했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인 즉, 정답인 유세차 는 이 작품에서만 쓰이는 문학용어가 아니라 제문의 첫머리에 붙는 말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내가 오히려 가족들 앞에서 무안을 당했던 아주 창피한 기억이었다.그러나 나는 조침문 이라는 작품에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조침문에 대해서 자세히 배워본 적은 없다. 다른 고전을 배우다가 국어 선생님께서 이런 글이 있다고 잠시 언급하셨던 것 외에는..그 때 나는 국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바늘이 부러진 것에 대한 제문이라는 것이 너무나 독특하고 재미있기에 따로 찾아서 보았던 것이 연이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쉬운 말로 풀이된 것만 읽고 재미있어 했지, 각각의 기본적 단어의 뜻도 모른채 문학을 즐겼다니 참으로 유씨 부인께 머리 숙여 사과드릴 일이다.아무튼 나는 그 때 이후로 고전수필 하면 자연스레 조침문부터 떠오른다.중.고등학교 때부터 항상 들어오던 수필의 개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이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11가지 수필 관련 서적을 읽다보니 이제 수필의 개념, 기원 정도는 외울 수도 있을 듯 하다.수필의 개념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된 말은 붓 가는 대로 쓴 글 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이것은 수필이란 용어가 붙은 최초의...이런 부분에서는 여성의 감수성이 잘 나타나 있기도 하다.규중칠우쟁론기 도 중학교 때부터 나에게 친숙한 작품이었다. 내가 쓰던 노트의 겉표지가 규중칠우쟁론기를 재미있게 만화로 각색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실, 가위, 바늘, 골무...등이 서로 싸우는 것이 만화로 재미있게 그려져서 자연스레 흥미와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이처럼 수필은 다른 여타 문학과는 다르게 문학에 대해 잘 모르는 우리같은 일반인에게도 쉽게 다가오는 부담없는 글이다.수필의 개념을 단순히 붓 가는 대로 쓴 글 에서 조금 더 확대해서 국어사전에 풀이된 뜻을 살펴보면 이렇다.어떤 양식에도 해당되지 아니하는 산문 문학의 한 부문. 인생과 자연에 대한 수상, 소감, 단상, 논고, 잡기 등이 포함되며, 생각나는 대로, 붓 가는 대로 형식이 없이 보통 1~2페이지 또 30페이지 가량 되게도 씀. 개성적, 관조적, 또는 인간성이 내포되게 위트, 유머, 예지, 기지로써도 표현함. (국어대사전, 이희승, 民衆書 , 1963)대부분의 서적들이 이 정의를 많이 인용하고 있었다.그런데 한국문학개론(김광순 외, 경인문화사, 1996)에서 이동근 대구대학교 교수님께서 이에 대해 비판한 부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라 이채롭기도 하고, 그동안 우리가 너무 수필을 쉽게만 생각하지는 않았나 하는 자못 엄숙한 분위기 마저도 든다.그 분은 우선 첫째, 무형식의 글이란 형식이 없는 글이 아니라 다양한 형식의 글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즉, 문학은 언어와 문자로 이루어진 형상과 인식의 복합체라고 할 때, 수필의 형식은 실용적이고 단순한 말의 구조가 아닌 쾌감과 교훈을 주는 유기체적 문장임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둘째, 붓가는 대로 쓴 글이란 아무나 붓을 들고 쓰면 된다는 뜻이 아니라, 붓을 잡을 만한 자격을 갖춘 자가 산보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지만 그 속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독자적인 안목이 있음을 뜻한다고 했다.셋째, 신변잡기에 가까운 글이란 우주의 삼라만상이 수필의 소재가 될 수는 있지만, 그 속에주는가 하면, 임란과 같은 국가적인 위기 상황 앞에서는 사실적인 일기류도 많이 남겼음을 알 수 있다.국문수필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 등과 같은 서(序) 를 중심으로 쓰여지다가 숙종조를 전후하여 주로 여인들에 의해 쓰여졌다. 한문 수필에 비해 양도 적을뿐더러 비평적인 글보다는 기행류나 일기류가 많고 더러 내간체도 보인다. 문장은 한문 수필에 비해 대체로 평이하다.고전수필에 대한 기존의 논의는 여타의 문학양식에 비해 소홀한 감이 적지 않았다. 그것은 고전수필의 작품이 양적으로 적어서가 아니라 다른 문학양식보다 오히려 방대한 영역에 걸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양이 많았기 때문이며, 그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수필이란 장르의 설정조차도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와 국문학 연구가 본 궤도에 오르고 나서도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른 후에야 수필이란 갈래가 설정될 수 있었던 것이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한국의 고전수필의 역사는 위에서도 말했듯 한자가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한 삼국시대에서부터 시작되어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통일 신라시대의 김후직의 , 혜초의 , 설총의 , 최치원의 등을 비롯하여 고려시대의 많은 시화나 평론, 짤막한 이야기들, 그리고 조선시대 말엽까지 개인들의 문집이나 서발, 묘지명 등 대부분이 수필적 성격을 띤 글이라 할 수 있다.우리나라 수필은 다른 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 갑오경장을 중심으로 고대와 현대로 나눌 수 있고, 고전수필은 사용 문자에 따라 한문수필과 국문수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즉, 한글 창제를 분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에는 한문수필만이 있었고, 한글창제 이후에는 한문수필과 국문수필이 병행하여 존재해 왔던 것이다. 한문수필과 국문수필의 종류를 제시하여 보면 아래와 같다.1)한글수필 - 궁정, 기행, 의인, 설화, 전기, 한담, 잡기, 문담, 서발, 일기, 서간, 기사, 술회, 교훈, 가사, 비망, 전장, 애제, 사부2)한문수필 - 사부, 주의(표.책.계.소), 서발, 기, 잠명, 찬송, 축문, 상량문, 다.서간체 수필은 실용문인 서간과 구분하여, 문학성이 내재된 편지글을 지칭하기 위하여 서간수필이라고 하지 않고 서간체 수필이라고 하였다.일기체 수필은 실용문인 순수일기와 구분하여, 문학성이 내재된 일기를 지칭하기 위하여 일기수필이라고 하지 않고 일기체 수필이라고 하였다.기행체 수필은 실용문인 단순한 기행문과 구분하여, 문학성이 내재된 기행문을 지칭하기 위하여 기행수필이라고 하지 않고 기행체 수필이라고 하였다. 많은 작품들이 일기체 수필과 중복이 되나, 단순한 하루하루의 기록인 축시적 견문기의 경우는 모두 기행체 수필에 포함시키고자 한다.수상체 수필은 직접 체험한 사건을 기술하는 중간중간에 자신이 사상과 감정을 노출시킨 수필로서, 문학성을 내포한 기, 잠명, 송찬, 사부, 신변잡기 등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논고체 수필은 세상사에 대하여 자기의 견해와 철학을 상식적 차원에서 논리적으로 재미있게 기술한 수필로서, 문학성을 내포한 계. 교훈. 담. 잠. 명. 사설. 서발. 표 등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이것이 그 분의 의견이다. 본인 스스로도 밝혔듯 기존 분류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하지만 일견 타당성이 있는 의견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그는 최초의 한문수필과 한글수필에 대한 논의 또한 추가하였다.최초의 한문수필에 대하여 최강현은 김후직의 를, 문선규는 설총의 를, 조동일은 < 碑>를, 김동욱은 과 을 들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김후직이 는 문학적 서간문이 되지 못하고, , , 은 실용문적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문선규는 를 화왕(모란꽃), 백두옹(할미꽃)을 의인화하고...위정자는 邪妄을 물리치고 정직을 친히 해야 한다는 뜻을 담은 훌륭한 수필이다. 라고 했고, 최승범은 내용으로 보아 교훈적 수필이나 뒷날 우화야담적 수필에도 영향을 주었다. 라고 하였다.즉, 이들은 우화, 야담, 수필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을 엿볼 수 있는데, 설화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고, 수필은 작가의 생각이 주이며, 설혹 수필이 부분적으다. 둘째, 잡기류가 많아졌다. 셋째, 시화류의 비평들도 많아졌다. 넷째, 고려 말엽에 이르러 가전 수필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것 등이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朴寅亮의 는 遼王에게 고려의 국경을 인정하도록 촉구한 표문으로서 서간수필이다. 문면에서 상대방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한 서간문의 요체를 볼 수 있다.의천의 은 현전하는 승려의 문집으로 유명하다. 문집에 수록된 서.표.상.서.제문 등에서 서발.제문.서간수필을 대할 수 있다.김부식은 의 편찬으로 유명하거니와 특히 고문을 잘 쓴 문장가로서도 당대의 최고봉이었다. 20권의 문집이 있었다고 하나 현전하지 않고 을 통하여 67편의 그의 산문을 대할 수 있다. 대부분 서간수필이다.이인로는 을 남겼다. 그의 산문집인 이 있었다 하나 현전하지 않는다. 에서 그의 산문 15편을 대할 수 있다. 그의 으로 우리 수필에 시화수필의 등장을 보게 된다.이인로와 함께 당시 竹林高曾 海左七賢 중의 한 사람이었던 林椿은 을 남겼다. 이 문집에는 시를 비롯하여 書, 序, 記, 傳, 狀, 祭文 등이 담겨 있다. 말하자면 서간수필 뿐 아니라 서발. 기행. 우화. 제문 등 다양한 수필을 대할 수 있다. 는 한 편의 격조 높은 기행수필이다.이규보는 을 남겼다. 그의 문집에는 다양한 산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는 고려시대 수필문학의 질. 양. 면에 있어 최고 정상을 차지한 작가라 하여도 손색이 없다.일연의 도 수필문학적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고조선으로부터 통일신라까지의 단편적인 사실들을 수집. 검토하여 분류 수록하고 있는 이 책은 모두가 古文의 문장이다.최자의 은 다양한 내용의 수필집이다. 시화가 있는가 하면 비평이 있고, 笑話, 怪談 까지도 수록하여 우화, 야담적 수필도 있다.이제현은 고려 말기의 시인이요 문장가이다. 특히 그의 은 수필집이다.이 밖에도 여러 고려수필 들이 있다.이상 간략하게 고려시대의 수필문학을 살펴보았다. 중국문학의 다종다양한 문체를 포용하면서 주제와 소재가 다채로워진 것을 볼 수 있고, 그 내용 또한 지적 상황이겠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백제의 무왕이 지었다는 서동요 를 배우면서 나 혼자 깊이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내가 배운 바로는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인물이 절색이란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서울에 와서 마 뿌리를 거리의 아이들에게 돌려 먹여 아이들을 꾀어 부르게 했다고 한다.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으로부터 천년도 훨씬 이전인 그 옛날에 어찌 오늘날의 로맨스 드라마의 스토리같은 이야기가 버젓이 존재하며 그 노래가 역사서에 기록되어 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올 수 있는 것인지...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는...물론 이러한 내용을 흔히 문학시간에 당연히 배우는(입시 준비를 위해 공부하는) 한국 문학의 한 부분 쯤으로만 여기던 평범한 나의 친구들은 나를 엉뚱하다며 놀려대곤 했다.어쩌면 나는 모든 것은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발전하며 그러므로 현재보다 훨씬 이전의 사람들은 지금보다 여러모로 미개하고 부족할 것이라는 단순한 자연과학적 인식의 잣대로 훌륭한 선조들을 업신여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어느정도 성숙한, 그리고 고전 문학에 깊이 심취하고픈 국어교육과 학생으로서 현재는 전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 시절의 문학, 아니 그 보다 더 오래된 그 이전의 문학이라도 지금의 문학과 비교할 때 전혀 손색이 없으며 오히려 더 뛰어난 부분도 많이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이처럼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를 비롯해, 국어 선생님마저도 그 작품성에 감탄하시며 가르쳐 주신 (본래는 누이가 로 전하며 제망매가 라는 이름은 양주동님이 붙였다 한다.), 그리고 역신이 아내를 범하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내몰았다는(그 당시로는 다소 이해가 안되던)...등으로 본래 고전문학에 관심이 있던 나에게 향가 는 좀 더 특별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국문학 개론 시간에 향가에 대해 배우면서 나는 또 한번 놀라게 되었다. 훌륭한 문학 장르라고만 생각하던 향가는 형식이나 명칭, 발 연구의 방법론에 따라서는 작가 문제를 연구 범위 밖으로 방축하는 예도 있고, 반대로 작가론을 핵심적인 연구 대상으로 취하는 예도 있다. 다양한 방법론 중 연구자의 의취에 따라 특정한 방법론이 선택될 수 는 있다. 하지만 문학 연구와 문학비평과의 차이를 생각해 볼 때, 작가론을 배제하고서 문학작품이 총체적으로 이해되기란 사실상 어렵다고 생각된다. 더구나 고전문학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경우라면, 작품을 단순히 심미적 대상으로 한정시키는 것보다는 그 이상의 가치나 배경 문제까지도 관심의 사정권에 끌어들여야 마땅할 것이다. 향가는 단순히 감상되는 대상에 그치지 않는다. 현존하는 모든 것에 대해 공시적 가치나 기능만을 우선시해야 할 필연성이란 없다. 통시적 관점의 해석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심층적 이해가 방해를 받을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심청전 을 공시적인 관점으로만 보면 주인공 심청이는 불효막심한 자식이요, 그 주제는 불효가 된다. 심청전과 같은 작품을 이해하려 할 때 살신성인이라는 전통사회의 규범적 가치가 고려되어야 하며, 환생이라는 것을 종교적 신앙의 틀 속에서 철저하게 사실적으로 믿었던 옛날의 관념구조가 무시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전통적이며 통시적인 이해 구조를 배제해버리면 심청이의 효심은 불효로 왜곡되고 만다.향가 역시 고전문학이 하나요, 또 그것의 밑바탕에 흐르는 정서는 인류의 항구적이며 보편적 정서와 일치된다 할지라도 일정한 시대에 그것의 사명을 다했던 작품이다. 따라서 굳이 문화사적 태도를 고집해서가 아니라, 문학적 생명력을 가지고 노래되던 당시로 돌아가 보지 않고는 문학작품의 이해를 그르치기 쉽다는 해석학적 전제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향가의 작가 문제는 단순히 작가론적인 연구 대상에 한정되지 않고, 문학의 본원적인 연구와 맞닿아 있다. 향가의 작가 문제란 크게는 그 시가의 향유계층 문제, 그 작품의 배경사상 문제, 그 양식의 역사적 전개 문제 등에 깊이 관련되고, 나아가서는 개별작품의 올바른 해석으로 원작의 진면목에 접근 있는 인물은 신충뿐이다. 효성왕과 경덕왕 때 중시와 상대등을 역임했던 인물로 나와 있다. 향가 작가를 설화적 인물로 보고자 하는 주장들에서는 신충까지도 그의 작명 동기를 향가의 배경설화에서 찾아 성화적 인물로 간주하고 있다. 즉 신하로서 왕과 맺은 신의를 지키고, 충성을 다했다는 배경설화에 착안하여 이름의 뜻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름이 얻어졌다고 해서 신충을 설화적 인물로 칠 수는 없다. 그는 이름과 관련없이 벌써 역사적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 점은 다른 역사적 인물의 이름 등을 통해 여실히 확인될 수 있는 문제다.역사적 인물이라 하더라도 전기적 사실에 의거하여 이름이 지어진 경우는 많다. 이런 예는 많지만 전형적인 예 몇을 들어 보면, 광개토왕, 장보고, 원효, 백결선생, 장수왕 등이 있다. 고구려의 역사를 통해서 영토를 가장 크게 넓혔기 때문에 광개토왕이라하고, 98세의 장수를 했으므로 장수왕이라 했다. 원효, 백결선생, 그리고 장보고의 이름 역시 향가 작가처럼 전기에 의거한 작의적인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설화적 인물은 아니다. 이름이 전기적 사실과 일치한다고 해서 설화적 인물일 수는 없다.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의 작명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지금은 단지 성명만을 쓰고 있을 뿐이지만, 예전에는 名,字,號 등을 사람의 이름의 이름으로 썼고, 또 쉽게 바꾸거나 여러 개의 아호를 가지기도 했다. 나 에서 많은 인물들의 가계에 대해 고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한 예일 수 있다. 또한 앞에서 말한 바 있지만,에서 가능하면 불교와 관련된 사람들, 특히 불승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가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많은 향가 작가가 불교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거나 또는 신분 자체가 승려다. 라는 책명이 시사하듯, 일연이 보았던 에는 사실 중에서 빠진 부분이 많았고, 특히 김부식이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기사 중에서도 불교관련의 사적들이 심했다. 이러한 사실이 사시하는 바는 향가 작가의 상당수가 불울러 규명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들 작업을 위해 먼저 두 가지 필요한 준거를 설정한다.첫째, 개인작인가 공동작인가?둘째, 설화의 역사화인가 역사의 설화화인가?위 두 가지 기준은 사실상 하나나 같다. 왜냐하면 작가가 설화적 인물이라면 집단창작의 가요일 것이며, 역사적 인물이라면 개인창작의 가요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다른 측면을 부각시켜 말하면 첫째의 기준에 따라 향가 중 전승민요는 어떤 작품인가가 가려질 것이고, 두 번째의 기준에 의해 배경설화의 엄밀한 성격이 분석될 것이므로 서로 다른 과제일 수 있다. 결국 이 둘이 서로 상보적인 한에서 합리적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마련된 기준이다.배경설화의 문면에 드러나기로는 첫째 기준에 의해 검토될 수 있는 작품으로는 풍요를 꼽을 수 있다. 다른 작품들은 모두 작가가 나타나 있다. 비록 실명이건 전설적 인물이건 풍요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든 작품들이 뚜렷이 작가명을 가졌다. 풍요라는 말 자체가 민요라는 뜻이다. 풍요는 전승민요로서 가창되던 노동요며, 공동작인 것이다.來如來如來如來如哀反多羅哀反多矣徒良功德修叱如良來如--두 번째 기준에 의해 작품을 유별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앞에서 누누이 말해 왔지만 의 성격 자체가 그렇고, 또 향가 작가의 이름과 배경설화의 내용등이 여러 가지로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하나의 분기선을 찾을 수는 있다. 배경설화를 이루고 있는 모티프의 유별화가 그것이다. 서동요, 처용가, 헌화가는 모두 용사모티프와 이류교혼모티프를 공유하고 있으며, 신화적인 배경설화를 가졌다는 점에서 일치를 보이고 있다. 서동이 다음에 무왕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설화의 역사화에 속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처용설화 역시 문신기원신화가 헌강왕 때의 시대적 상황과 결부되어 역사화되었고, 무엇보다도 인간이 아닌 처용이 향가 작가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가 결코 역사일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하다. 헌화가 배경설화의 경우도 상고대의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야기로서 수로부인의 이이 규명되어야 옳을 것이다.향가의 작자를 계층적 측면이나 그 범위에서 볼 때 흔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는 다소 다른 의견도 있다. 현전하는 향가의 작가들이 불승을 비롯하여, 낭도.촌녀.견우노인 등 널리 편재해 있는 사실로 미루어, 그 범위를 넓게 잡는 데에 의견이 일치되어 왔었다. 그러나 좀 더 세밀히 고찰하여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즉 승려의 작품 18수를 필두로 하여, 승려와 가장 긴밀한 유대로 연결되어 있던 낭도의 작품 18수를 필두로 하여, 승려와 가장 긴밀한 유대로 연결되어 있던 낭도의 작품이 3수, 그리고 여류의 작품 1수는 독실한 불교 신도의 작품이었으니, 이러한 작품을 종합하여 보면 현존하는 향가 25수 중 실로 22수가 불교에 관련된 사람, 또는 그러한 고도한 문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고급 문화인에 의하여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세를 풍미하던 당대의 이름 높은 향가 시인들은 대부분 월명사, 충담사, 융천사, 석 영재, 균여대사와 같은 고승들이었음을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이처럼 향가의 작가는 결단코 광범위한 데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승려 또는 화랑도를 중심으로 하는, 당시의 문화층에 속하는 극히 국한된 부류만이 향가의 작가일 수 있다는 결론을 지어 마땅하리라 본다. 더욱이 고문헌의 전하는 바에 의하면, 향가를 표현하여 詞淸句麗 라 하고 其意甚高 라 하였으니, 이 말을 고도한 본격적인 문학으로서, 세련된 수사와 투철한 시정신을 구비한 예술 문학 이란 말로 바꿔 본다면, 향가가 신라의 국풍(國風)이라는 견해는 부당한 독단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향가는 도저히 범용한 필부나 교양 없는 서중(庶衆)의 힘으로 제작될 성질의 것은 못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비록 전래 문헌의 편파성을 충분히 시인한다손 치더라도 역시 향가의 작가는 당시의 귀족 문화층이라 보는 편이 좀 더 타당한 해석이 아닐까 하는 바이다.향가의 형식은 흔히 형식단락의 단위로써 4구체.듬으며,
신경숙의 소설에는 가족, 나아가서는 가족의 이미지로서의 고향의 모습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것이 작가의 현실 상황에서 기인한 것인가는 알 수 없지만, 작가가 이상적인 가족과 사랑의 완성을 열망한다는 느낌은 지울수가 없다.그가 모르는 장소 도 그러한 범주안에 포함된 작품, 나아가서는 가족과 사랑에의 성찰과 열의가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은 표면적으로 아주 평화롭고 바람직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모범적인 가장이다. 인자한 어머니와 조신한 아내, 예쁜 딸아이,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으로서의 주인공...그렇다면 무엇인 문제인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지나치게 평화롭고, 지나치게 안정적인 모습은 모순적으로 더 큰 불안감을 안겨준다.작품에 등장하는 모자간의 대화를 한 번 보자. 통상적인 우리들의 대화와는 무언가가 다르다. 통속성이 사라져 있다. 주인공이 말하듯이 등짝을 때리고, 쩝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춰주고 하는 동물적인 풍경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어머니와 아들로서의 사랑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아들이 담배피는 모습을 보면 손에 든 것도 다 잊어버리고 지청구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 그런 어머니 앞에서는 조심하고 어머니의 시린 어깨를 걱정하는 아들의 모습...제 피붙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은 아마도 모자간이라는 관계를 지탱해줄 수 있는 방법은 말 그대로 이상적인 어머니, 또 아들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중압갑을 갖는 것이다. 절대 싫어하거나 마음 상하게 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한 스스로의 금기, 착하고 바람직하게만 살아가는 것...하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공허함을 스스로도 알고 있는 것이 그들간의 대화에 나타난다.흐르는 강물처럼같은 영화를 보고도 모자는 다른 꿈을 꾼다.자식들에게 때로는 엄하지만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을, 수줍어하는 어머니와 춤을 추는 반항적이지만 따뜻한 아들의 모습을...하지만 이 두사람의 다른 꿈은 일맥상통한다. 때로는 서로 다투고 다시 보듬어주고 하는 평범하지만 그들이 누리고 있지 못하는 가족으로서의 끈끈함. 왜 서로가 바라지만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그들은 사랑의 방법을 모른다. 아니면 그걸 두려워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켜왔던 안정감.둘을 모자로 연결시켜주었던 아버지란 사람의 부재 이후에 서로에 대한 충실함으로써 유지되어왔던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붕괴가 두려웠던 것일 수도 있다. 그가 아내와의 섹스도, 가구의 배치도, 무엇이든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는 것이 그것이다.사랑......호수.......그가 모르는 장소 는 호수가 아닐까. 사랑이라는 호수.항상 호수에 가고, 호수 주변에 대한 것은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항상 호수를 꿈꾼다. 그의 아내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랜 시간을 항상 지내왔으면서도 그는 아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그녀에게 알맞은 장소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불길한 운명을 안고 태어나 사납게 싸웠던 아버지, 고향, 가족, 바다를 등지고 여자는 떠나오지만 그녀는 능내에 고향집을 다시 만든다. 그녀가 거부하고 싶었던 것은 난쟁이의 혈통을 안고 태어난 기혹한 운명이고, 그녀가 진정으로 갈망했던 것은 사랑으로 충만한 가족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둘은 하나로 붙어있었던 것이다.어머니에게 있어서 아들은 호수이다. 주인공이 아내를 만나서 떠올린 이미지도 호수이고, 그 호수의 모습을 잊고 살다가 다시 아내의 모습에서 호수를 발견한 것도 아내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때였던 것이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유해를 뿌린 곳도...그들의 호수를 가는 행위는 어쩌면 그 채워질 수 없는 사랑에의 보상욕구 일 수도 있다. 향어를 잡기 위해. 향어...독일산, 이스라엘에서 개량된 잉어 어종.향어는 주인공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토종 어종도 아닌데 우리 잉어보다 환경 적응이 빠르다. 양식장에서 자라난 향어. 그것은 결코 평범하다고 말할 수 없는 주인공의 가정환경, 길러졌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니지만 가장으로서의 의무감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사회에 적응해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하지만 양식장이 사라지고 향어는 자취를 감춘다. 아내와의 결별...그를 받쳐주던 가정의 붕괴...양식장은 호수가 아니다. 주인공의 가정도 모습뿐인 사랑이 결여된 그러한 공간이었다. 이제 양식장은 사라졌다. 하지만 향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놓친 것은 분명 향어였을 것이다.물의 생명력은 사랑이다. 내가 버린 사람들, 날 버린 사람들도 보여주고 때로는 말도 하는 하나의 유기체로써의 생명력이다. 생명력의 상실은 사랑의 부재를 의미한다. 주인공처럼 세상에 길들여져 사는 것에 익숙해져서 며느리와도 딸처럼 지내는 어머니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것- 죽은 생선을 먹지 않는 행위 - 그것은 그녀가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의 갈구이다.그렇다면, 그와 그의 어머니는 결코 그들이 꿈꾸는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것일까?좋은 혈통을 갖고 태어났지만 가족을 잃고 초라한 모습으로 아파트 주위를 돌아 다니는 더펄이처럼 아내는 자신과 가족의 사랑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기는 했지만 아내는 다시 사랑을 찾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더펄이도 가족을 찾는다. 사랑으로 충만한 가정. 아내가 안정적이고 부족할 것 없는, 다툼도 거짓도 없는 가정을 포기하고 사회적 지탄을 감수하면서까지도 찾고자 했던 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있는 생명력이 있는 가족.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거기에 있다.
-김소진-1963년-12월 3일(음)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학사리 미상번지에서 아버지 김용수, 어머니 김영혜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남. 함경남도 성진이 고향인 아버지는 6.25 당시 원산의 한 병원에서서무원으로 일하다가 국군이 올라오자 우익 치안대에 가입. 순전히 원활한 배급을 위해서였는데 이 때문에 원산 대철수 때 예고 없이 원산 앞바다의 군함으로 전격 소개되는 바람에 처자식(아버지는 북쪽에서 결혼을 한 상태였음)을 고스란히 포화 속에 남기고옴.1968년-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졌으나 거동은 비교적 원활함. 어머니가 삯바느질 등으로 생계를 떠맡음.1970~75년-미아국민학교를 다님. 5학년 한때 아버지가 어머니 말고 북쪽에서 결혼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동네 양아치 형들 방에서 성인 만화 탐독.1976년-아버지는 한 평짜리 구멍가게를 열어 매우 열성적으로 꾸려갔는데 이 구멍가게는 훗날 데뷔작의 배경이 됐음.1982년-서울대학교 인문대 입학함. 과 백산서당의등을 읽고 충격을 받음. 이승만, 박정희 등 그동안 존경해 왔던 인물들이 모두 반역사적 이라고 기술돼 있었음. 영문과로 진입한 2학년 4.19 때 첫 데모를 해봄. 그 뒤로 졸업 때까지 웬만한 집회와 시위에는 거의 참여함.하지만 할수록 가투가 자신이 없어지면서 차선책으로 글쓰기를 염두에 둠. 주로 황석영, 이문구, 박완서 씨의 작품들을 습작 텍스트로 삼음.1983년-이산가족 찾기 열풍이 몰아닥침. 아버지도 텔레비젼 앞에서 며칠씩 밤을 새며 눈물을 흘림.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아버지를 경제적 무능력자로 경원시했으나 마음을 돌려 화해하기로 작정함.1985년-아버지 돌아가심. 휴학함.1990년-직장을 두 번 옮기고 교열부에 자리잡음.1991년 신춘문예에 연거푸 세 번 떨어지고 난 다음, 대학 복학생 때 대학신문 현상문예에 응모했던 를 개작해 신춘문예에 투고한 것이 당선됨.1993년-6월6일 김윤식 선생의 주례로 소설가 함정임과 결혼.강남구 세곡동에서 신혼살림.1994년-3월 20일 아들 태형 암종증 진단을 받음. 4월 22일 새벽 3시 43분 연희동의 동서한방병원 에서 눈을 감음. 4월 24일 용인 공원묘원에 묻힘.소설집 (1993) (1995) (1996)장편소설 (1995) (1996)장편창작동화 (1996)짧은 소설 모음집 (1996) 미완성 장편 소설 소설 혹은 다른 어떤 문학 작품을 논함에 있어서도 그 작품을 작가의 삶과 별개로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연결시켜 생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항상 작품 감상에 있어 화두가 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래 문학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그 특성상 어느 정도의 개인적 체험에서 나왔음을 부인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 경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은 우리같은 일상 독자가 읽어서는 분간하기 어렵게 마련이다.작품은 작품으로 봐야 한다거나 혹은 작품은 곧 작가 자신이므로 관련시켜 보아야 한다는 이런 논쟁은 얼마전 작고하신 故서정주 님의 삶과 그 분의 작품에 대한 논의와도 연관된다.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읽은 김소진의 은 작가 자신의 삶에 비추어 볼 때 대부분 그 자신의 체험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위에 작가인 김소진에 대한 약력을 자세히 언급한 것도 모두 이 작품에 등장하는 것과 관련있는 내용들이기에 자세히 조사하여 실은 것이다.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는 연작소설이 아닌데도 무언가 서로 연관이 되고 있는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만 들었을 뿐이었는데, 소설을 몇 번 더 읽어보고, 또 작가의 약력을 자세히 조사해 본 결과 세세한 부분에서부터 큰 사건에 이르기까지 작가 자신의 삶과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러기에 이웃집 세찬이 형이나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만난 석주형, 혹은 철원네로 불리는 어머니나, 아버지의 북에 두고 온 가족사항, 어린시절 집에서 운영하던 구멍가게...등의 반복되는 내용이 나와도 이제는 왜 다른 소설에서도 같은 인물과 배경이 등장하나.. 하는 의문이 들지 않게 되었다. 모두 작가 자신의 체험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우선 은 모두 처음 이라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듯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에 등장하는 항아리는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심소재이다. 결국 제목인 파애 역시 이 항아리의 이름이니까.. 어쨌든 이 소설에는 유난히 성(性)적인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소설의 첫부분에 나오는 미친여자 이야기(그녀가 주인공에게 보시를 하라는 것도 성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듯 하다.)나 이 소설의 중심 모티브인 아내의 강박관념이나 항아리가 의미하는 것..등이 그러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항아리에는 희미한 금이 가있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금 자체가 순결을 상징하는 것같다. 집안의 오랜 풍습인 며느리의 첫 서답 빨래를 넣어두는 항아리는 주인공의 아내 친정 어머니에 이르러 처녀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 그 대가 끊긴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집에서 소박을 맞은 어머니는 자신의 한이 서린 그 항아리를 가지고 나오게 되고 그녀의 딸인 주인공의 아내는 이런 사건 때문에 성 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그 항아리를 전화 받침으로 쓰면서도 그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때문에 그녀가 쓰는 소설에서는 언제나 정사 장면이 빠지질 않는다. 주인공은 부부관계가 순탄치 않음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자책감에 빠지지만 결국 그 이면에는 이러한 아내의 남다른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내는 스스로 그 강박관념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누군가가 그 항아리를 깨주길 바란다. 그래서 남편에게 고백하려는 마음에 자신의 자전적 소설을 남편의 눈에 띄는 곳에 두게 된다. 그 소설을 다 읽은 주인공은 아내를 이해하며 항아리를 들어보는데, 그 곳에는 이미 구멍이 뚫려 있다. 아내는 자신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항아리에 구멍을 뚫어 놓았지만 차마 자신 스스로 꽃을 심지는 못했던 것이다. 아내의 글을 다 읽고 구멍 뚫린 항아리를 본 주인공은 갑자기 그 항아리에 꽃을 가득 심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아내와, 그리고 그녀의 그런 아픔들과 화해를 꾀하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내용은 소설 중반에 나오는항아리를 놀부가 탄 박통처럼 두 쪼가리를 내버릴 듯한 균열로 보이지만 그간 한 반년 간의 사용으로 볼 때 대세에 큰 지장은 없는 것이었다.순결도 마찬가지이다. 여자의 처녀성이 모든 것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대세를 깨뜨릴 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에서 등장하는 철원댁 역시 처음 이라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다. 소설 시작에서부터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마수걸이 라는 단어나 자신의 동생인 쌍가매 가 재혼을 하려는 상대에 대한 불만 혹은 조카인 수영이 중고차를 인수하는 데 대한 못못마땅함..등은 그녀가 얼마나 처음 을 고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철원댁의 아버지인 김장군이 동네의 갑부였음에도 동네의 토박이인 구서방네의( 처음 을 의미하는 토박이보다 타성바지가 더 큰 집을 지을 수 없다며) 반대에 부딪혀 뜻대로 집을 짓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후에 쓰러진 철원댁을 구한 것도, 쌍가매와 결혼을 하는 고물장수 고영만이었고 그녀를 실어간 것도 수영의 중고차였던 점을 감안해 본다면 철원댁 역시 자신의 그런 강박관념과 화해를 시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런 점에서 와 는 매우 닮아있다고 볼 수 있다.또 다른 작품을 들자면 과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소설인 을 묶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작가의 가족관계가 두드러진 모티프로 등장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에서는 주인공 아버지의 직업이 개흘레꾼 이다. 별 소득도 없이 동네의 쑥덕거림을 무릎쓰고 무작정 당신이 좋아서 개들을 흘레 붙여주는 것이다. 때문에 주인공은 대학시절 다른 친구들처럼 테제도 안티테제도 되지 못했던 무능력한 자신의 아버지를 경원시하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포로수용소의 포로시절 앞에총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앞에총을 모른다는 것은 누구에게 총을 겨눈다는 문제의식이 없는 즉 이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뒤에 나오는 동네 셰퍼드와도 관련되는데, 아버지는 누구의 부탁이나 사례가 없어도 알아서 동네 개들을 흘레 붙여주었는데 유독 동네의 셰퍼드재자에 대한 반감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개 이름 부터가 히틀러인 셰퍼드는 동네 개들에게 군림하는 독재자를 상징한다. 그 독재자의 이념으로 인해 다른 많은 이들이 얼마나 피해를 받고 있는가 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또 다른 셰퍼드에 물려 죽은 아버지는 이념 또는 현실 앞에서 아무 힘이 없는 가엾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에서도 역시 주인공의 아버지는 북에 가족들을 두고 온 이산가족이다.그런 아버지가 동네 약장수 연극단에서 뺑덕어멈역을 맡고 있는 여인에게 색념을 품고있다는 것을 알게된 주인공은 왜 하필 그녀인가에 대한 의문과 아버지에 대한 측은함이 들지만 아버지는 단지 발정이 나서가 아니라 북에 두고온 아내(뺑덕어멈을 연기한 그녀와 닮은) 최옥분 이 그리워서 였던 것이다. 주인공은 뺑덕어멈으로 대변된 아버지 북의 가족들도 역시 그녀처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글속에서 뺑덕어멈을 아무데나 붙어먹는 여자..등으로 표현한 것을 보아도 그렇다. 이것은 아마도 실제 작자가 아버지의 두 번째 가족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닌 듯 싶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게 된 주인공은 결국 아버지가 실제사진도 아니고 전단사진까지 오려가며 떨리는 글씨로 고아떤 최옥분 이라고 쓴 글씨를 보며 아버지의 그녀에 대한 애정 으로 이해하게 된다. 즉, 이 글에서도 역시 아버지의 북측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으로 파악하려는 작자의 이해의 의도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이 밖에도 나 등의 작품은 사회에 대한 모순과 비판적 시선으로 일관한 작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에서는 공장근로자가 한 달 꼬박 일을 해도 결국 그 돈으로는 자신이 바느질한 옷도 사입지 못하는 모순된 우리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역시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대학선배들 중 한명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전기기술자로 힘들게 살아가는가 하면, 다른 한명은 사회에 적응하여(오히려 반대의 길을 선택해) 외교관으로 창창한 앞날을 걸어가는 우습지 만은 않은씁쓸한 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