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제기1.여성복지의 필요성⊙ 성차별 여성문제1) 경제영역의 여성문제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여성들은 여전히 저임금·단순반복직· 하위직에 머물러 있고, 일용·시간제·임시직 등 전반적으로 열악한 근로조건 속에서 임금, 승진, 정년, 해고 등에 계속적인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 따라서 고용의 전 단계에 걸친 성차별개선을 위하여 성차별 관련규정의 개정, 근로조건의 개선, 기혼여성의 모성보호 및 육아지원 등의 여성복 지 관련법·제도의 정비 및 지원서비스의 제공이 필요해졌다.2) 법과 정치영역의 여성문제1법영역의 여성문제1983년 한국 여성개발원의 발족, 1989년 가족법 개정, 1989년 모자복지법의 제정, 1994년 성폭 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제정, 1995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가정폭력범 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 등 1980년대 이후는 부분적이기는 하나 여성문제에 대한진전이 있었다.이러한 여성복지 관련법률의 제·개정으로 법적 평등권과 복지권 실현을 위한 기본적인 토대 는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대부분의 관련법 조항은 강제성을 갖지 못한 채 권고 내지 권 장사항으로 되어 있어 사문화가 우려되고 있다.2정치영역에서의 여성문제우리나라 여성의 정치참여는 세계적으로도 아주 저조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전세계 평균 여성국회의원 비율이 11.3%안팎인데 비하여 우리는 고작 3% 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우리 사회의 남녀 유별한 정치문화는 정치를 남성의 영역으로 규정하여 여성이 정책결 정과 정에서 배제됨으로써 가부장적 관점의 여성복지정책이 일관되어 온 주요원인이 되었 다. 오늘 날의 많은 여성들은 가족의 보호자로서의 역할 지원뿐만 아니라 여성개인을 대 상으로 하는 평 등한 복지정책을 요구하고 있다.3교육영역에서의 여성문제성역할의 사회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기존의 교육제도가 교육기회에서부터 교과과정, 교 과서 내용, 그리고 교사들의 성차별적 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성차별의 사회화를 재생 산하 복지로 발전하게 되었다.2)여성복지 추진체계(1) 변천과정해방이후 불우여성의 복지증진을 위해 1946년 정부수립과 함께 부녀국이 설치되었다. 1947년 부녀행정조직을 착수하여 여성계장 임명, 자질향상을 위한 지도자 강습 등을 추진하였다. 1995년 지자체의 실시 이후 각 기구의 개편 등을 통해 여성정책은 지방으로까지 확산되었다. 1998년 이 후 여성특별위원회의 개편이 있었고, 여성정책의 연계강화를 위해 중앙 관련부처에 여성정책담당 관이 배치되었다.(2)여성정책 추진체계여성정책은 남녀평등의 촉진,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및 복지증진에 관한 정책 등을 말하며 다음 의 세부정책들을 포함한다.① 교육에서의 남녀평등 및 남녀차별의식의 개선에 관한 정책② 정책결정과정의 여성참여 확대에 관한 정책③ 고용상의 남녀차별 해소에 관한 정책④ 여성고용촉진 및 안정에 관한 정책⑤ 여성보건 및 모성보호에 관한 정책⑥ 보육시설에 관한 정책⑦ 저소득 모자가정의 여성, 미혼모, 가출여성 등 요보호 여성 및 노인여성의 복지증진에 관한 정책⑧ 농어촌 여성의 복지증진에 관한 정책⑨ 성폭력 및 가정폭력의 예방에 관한 정책⑩ 가사노동 가치의 평가 등에 관한 정책⑪ 여성분야 국제협력에 관한 정책⑫ 기타 여성의 권익증진에 관한 정책(3)중앙여성정책 추진체계1여성특별위원회2보건복지부4 여성복지의 현황⊙ 사회보장1)사회보험(1)여성의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현황19960년 현재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있는 전국여성은 648,310명으로 전체 가입자의 25.7%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으로 인한 소득보장비율에 있어서 남성이 여성보다 높은 것을 알 수 있으며, 국민연금을 통한 여성의 소득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의료보험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적용인구 현황을 보면, 직장의료보험에 의한 적용인구가 가장 많은데, 각 의료보험별로 여성인구가 약간씩 더 많지만, 많은 수의 여성이 피부양자의 위치에 있다. 또 의료보험 대상자의 의료기관별 이용률과 방문횟수를 보면 여성의 외래이용이 전반적으로 높을 위하여 경로연금제도와 노인취업알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1997년 8월 노인복지법의 개정으로 경로연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노인의 취업기회 확충을 위하여 노인취업알선센터를 70개소 운영하고 있다.②노인건강관리 강화를 위해 치매노인 10년 대책 추진(치매전문요양시설의 지원 및 확충, 치매병원의 확충), 노인의료서비스 강화, 의료보험 급여 확대(의료보험 급여기간을 365일로 확대), 보건소의 노인진료기능 강화를 꾀하고 있다.③재가노인을 위한 방문서비스 강화를 위해 가정봉사원 파견사업과 주간 및 단기보호사업을 연차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④즐겁고 편안한 생활조건 조성을 위해 경로당 운영을 활성화하고, 중산층노인을 위한 유료시설을 확충하는 외에 지역봉사지도원제 도입을 통하여 노인의 자원봉사기회를 확대하고 있다.⑤노인공경 사회분위기 확산을 위하여 노인의 날 및 경로의 달을 지정하고 경로우대를 확대하고 있다.6) 여성장애인을 위한 복지사업사회적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받기 쉬운 여성장애인의 권익보호와 가사 및 육아보조 등 여성장애인을 위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여성장애인 상담실 운영, 여성장애인 쉼터 설치·운영, 기혼여성장애인 가사활동 지원, 미혼 여성 장애인 결혼주선 그리고 기타 여성장애인의 취업알선 및 사후지도가 있다.5. 여성복지의 향후 과제Ⅰ)여성복지의 향후과제(1) 여성의 빈곤화를 해소하기 위한 소득지원정책의 확대①경제적 자립기반 조성을 위한 소득보장을 위하여 고용기회의 확대, 남녀임금격차 해소 등 법·제도적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②여성노인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경로연금액수와 급여대상자수의 확대 등의 대책수립이 시급하다.③저소득모자가정 지원사업이 확대되고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지원 가정 수를 늘리고 생업자금융자 등을 활성화하여 저소득모자가정의 자활을 적극 지원해야 하며, 이들 가정의 빈곤의 세습화를 방지하기 위해 자녀교육비 지원을 2년제 대학까지 확대하여 교육기회를 확대해야 한다.④여성의 연금수급권 확대가 필요하다. 가사, 육아 등에 대한 여성의 개방화되면서 전통적인 가치관에 근거한 성 관념이 변화하면서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묵인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혼전 미혼 임신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의편견과 낙인이 지배적이다. 한국여성개발원(1984년)에 따르면 미혼모의 80%가 사회가 자신을 냉대 또는 죄인시 한다고 느끼고 있으며 입양을 원하는 주된 이유는 사회의 부정적인 태도에 기인된 요인들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론관점원인사회규범사회문제의 형태기능주의탈선비합법적 성행위법률, 도덕서방질, 처녀가 애 밴다범죄자기아 증가상호작용주의비처녀낙인문화적 규범시집 못 간다사회부적응자사회병리학비처녀사생아부부 부적응, 가족해체문화규범죄의식사회부적응자표 Ⅱ-1 < 한국의 미혼모에 대한 이론적 관점 >한인영(2002) 『한국사회사업의 쟁점과 과제』, 학문사. p. 136② 미혼모의 증가미혼모의 문제는 70 ~ 80년대 도시화,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전통적인 사회구조의 변화로 야기되기 시작했으며 최근에 이르러서는 성 개방 풍조, 성 가치관의 혼돈, 무지 등으로 그 숫자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홀트아동복지회의 입양상담건수 중 미혼부모의 상담건수를 보면 1980년대 미혼부모의 상담비율이 60~68%에 머물렀던 것에 비해 94년이 후 2000년까지의 추세를 보면 76~93%로 현저히 높아진 추세이며 최근 3년 사이에는 미혼모 발생건수가 1, 450명 이상을 유지하며 절대수가 늘어났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숫자가 지속되거나 증가될 전망이다.연도입양상담건수미혼부모상담비율(%)941,4681,28687961,3591,08980981,8021,5698720001,6641,45287표 Ⅱ-2 < 홀트아동복지회 미혼부모 상담건수 >김경주(2001) "미혼모 발생과 입양실태", 『기독교 사상』통권 509호③ 미혼모의 저연령화미혼모의 연령분포가 점차 어려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를 1989년과 2000년 홀트아동복지회의 미혼모의 연령별 분포와 보건복지부의 미혼모시설 입소자 중 10대 비중 추이를 통해 살펴 보면 다음과 같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우리의 성교육은 성 윤리교육보단 각 성의 신체구조와 기능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여성에게는 순결교육을 남성에게는 성병교육을 중점적으로 하는 형식적인 교육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성에 관한 정보를 음란비디오나 잡지, 영화, 만화, TV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얻고 있어 성에 대한 왜곡된 생각과 잘못된 지식을 갖게 된다.4)향락, 폭력문화가 범람하기 때문이다.물질만능주의와 성차별주의를 바탕으로 성 산업이 발달하면서 쾌락적 성의 대중화를 통해 여성의 성과 육체를 여가와 오락을 위한 소비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또한 보다 큰 자극을 찾아서 폭력을 지향하는 사회분위기로 변하고 있다. 각종 대중매체에서는 선정적인 문구와 함께 성의 노출, 암시적 성 묘사, 폭력장면 등을 서슴지 않고 방영하여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폭력화하는 것을 심화시키고 있다.5)성폭력에 대한 사법계의 인식 부족 때문이다경찰이나 검찰의 조사과정에서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들을 수용하고 있는 형사나 검사는 남성의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처리하기 때문에 피해여성은 오히려 자신이 죄인이 된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성폭력 피해자는 고소를 하고 나서 겪는 이중의 고통을 못이겨 고소를 취하하거나 아예 고소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성폭력에 대한 사법계의 인식부족으로 인하여 피해자는 피해사실을 아예 은폐하거나 법적 과정을 포기하게 되고 가해자는 또다시 성폭력을 가하는 결과를 낳음.3. 성폭력의 유형성폭력의 유형을 분류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즉 피해자의 연령별로 구분할 수도 있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안면관계나 혈족관계, 가해자의 수, 가해자가 행한 폭행의 정도 등에 따라 구분할 수도 있다(한국성폭력상담소, 1993). 그리고 대부분의 피해자는 여성과 아동인 경우가 99%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해자를 남성으로 정의 내리고 있다.한편 한국형사정책연구원(1989)은 성폭력을 음란전화, 신체의 중요한 부분의 노출 등 성적 희롱, 가벼운 추행, 심한 추행,다
< 제목 차례 >1. 대만의 역사 22. 대만의 정치제도 23-1. 대만의 각종 현황 33-2. 대만의 개요 34. 대만 경제의 흐름 변화 41) 1950년부터 1959년: 전후 재건시기 혹은 제1차 수입대체시기 42) 1960년부터 1969년: 수출 확장시기 53) 1970년부터 1979년: 제2차 수출주도시기 84) 1980년부터 현재 자유화 국제화 및 제도화 시기 95. 대만경제위기의 배경 131) 경제적 배경 13(1) 금융권의 부실 13(2) 내수부진 142) 정치적 배경 166. 향후 전망 17참고문헌 18< 표 차례 > 주요 개발 도상국의 1차 수입 대체 지표 5 주요 개발 도상국의 GDP 중 수출의 비율 5 대만의 부문별 성장 기여도 6 주요 개발 도상국의 수출 상품 구성 7 1960년대 대만의 주요 경제 지표 8 1970년을 전후한 대만의 주요 경제지표 8 GNP에 대한 R&D 투자율의 국제 비교 10 1980년 전후 대만의 주요 경제지표 11 대만경제발전의 중요경제지표 12 금융권의 부실 여신 비율 13 월별 실업률 추이 15 월별 주식시장 변동 추이 15 국내 총생산에서 소비비중 추이 14또 하나의 작은 중국 대만(Taipei)1. 대만의 역사타이완 섬을 최초로 발견한 것은 한민족이라고 하며 그에 관한 중국의 기록문헌《임해수토지는 3세기 중엽의 것이다. 7세기 초 수 때부터 한민족이 타이완의 정찰정략을 시도했다고 한다. 원은 1360년 펑후 섬에 처음으로 순검사라는 행정기관을 설치하였다. 명대에 이르자 한민족의 도래가 증가하고 동시에 서구의 열강도 타이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1590년 포르투갈인이 이곳을 방문하여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포모사(Fomosa)라고 명명하였다. 네덜란드는 타이완 남부의 한민족을 누르고, 일찍이 1624년 안핑에 제란디아 성을 구축하였다. 에스파냐도 1626년 지룽지방의 서랴오섬에 산살바도르 성을, 다시 3년 후에는 단수이항에 산토도밍고 성을 각각 축조하고 타이완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네델란드는 1642속하여 경제를 발전시켜 40여 년의 발전을 이룩하여 매우 성공적인 경제성과를 거두고 "경제기적"으로 비유되었다. 대만의 경제발전 과정 및 정책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 개의 단계로 나눌 수 있다.1) 1950년부터 1959년: 전후 재건시기 혹은 제1차 수입대체시기대만은 1953년에 제1차 4개년 경제계획을 제정하고 추진하여 "농업으로 공업을 배양하고 공업으로 농업을 발전시킨다"는 정책 하에 진력하여 농업 생산력을 제고시키고, 아울러 공업발전에 필요한 기기와 원료를 수입하였다. 공업생산 방면에서는 기술이 간단하고 자본요구가 적고 또한 노동집약적인 공업을 선택하였다. 예를 들면 방직, 합판 등 공업으로 수입을 대체하고 생산활동은 농업부문에 편중하였다.한편 1950년대 중·후반으로 들어서면서 대만은 수입 대체 산업화와 관련해 흔히 나타나는 몇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것은 크게 시장의 포화, 부정 부패, 그리고 국제 수지의 악화 등으로 요약된다.1952~56년 사이에 대만 경제는 비교적 높은 수준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었지만, 성장률은 매년 하락하였다. 소비의 경우 1956년 전혀 늘어나지 않았으며,1957년에는 투자 수요 또한 거의 소진되고 말았다. 비내구성 소비재를 위한 국내 시장은 이미 고갈된 상태였고, 섬유·종이·고무·비누 등 대부분의 산업에서 대만 경제는 생산 능력의 과잉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시장 포화의 문제는 완전 고용이라는 목표를 심각하게 위협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개발 도상국에서 통화 가치의 과대 평가는 생산 활동보다 수입업자와 중개상들을 부추기게 마련인데, 이들은 외환 할당이나 수입 쿼터의 특권을 획득하기 위해 위장된 설비들을 설치해 놓고는 정작 생산이나 자본 투자에 대해서는 등한시 하였으며, 이는 부정부패 및 그와 관련되 사회적 비용의 문제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이와 같이 대만의 수입 대체 산업화를 통한 성장 전략의 한계는 분명했지만, 그것이 바로 수출 확장 정책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대만의 수출 확장 정책으로히 이들 국가의 수출 상품 구성은 외환 공급을 원자재와 곡물의 수출에 의존하는 수입 대체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주요 개발 도상국의 수출 상품 구성(단위: %)196019701980콜롬비아농산물78.880.676.7광 물18.911.32.8공산물2.38.120.6멕 시 코농산물64.248.614.2광 물15.018.771.1공산물20.732.514.6한 국농산물58.016.68.9광 물27.86.71.1공산물14.276.789.9대 만농산물82.124.510.9광 물2.11.91.5공산물15.873.687.6필 리 핀농산물80.469.941.7광 물13.022.521.3공산물6367.437.0태 국농산물90.874.356.9광 물7.114.913.9공산물2.110.729.0주: 통계상 불일치로 합계가 100이 되지 않을 수 있음자료: Statistical Department of Taiwan, The Trade of China, various issues ;United Nations, Yearbook of International Trade Statistics, various issues.대만의 1960년대 수출 확장 정책의 성과를 살펴보면 먼저 1960∼62년 사이 1950년대의 평균보다 후퇴하였던 성장률을 제조업 부문의 주도를 통해 회복시킨 것을 들 수 있다. 즉 수출 주도 정책이 공업화의 고도 성장을 본격화시킨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둘째, 주목할 만한 성과는 수출의 성장이다. 에서 알 수 있듯이 1960∼1971년 사이에 대만의 수출과 수입은 각각 12.6배와 6.2배 증가하였다. 그리고 1960년 당시 대만의 수출액은 1억 6,400만 달러에 불과하였으나 1971년에는 20억 6,000만 달러에 달했다. 물론 수출의 급성장은 수입의 증가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대 대만의 국제수지 적자폭은 1억 3,300만 달러에 달했으나 1970년에는 불과 4,300만 달러로 축소되었다. 1960년대 대만의 주요 경제 지표성장률(%)산업구조(%)무역라, 오히려 중공업을 위주로 하는 경제구조로 변천하게 되었다.대만이 실시한 중화학공업화를 통한 수출주도의 성과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물론 앞에서 밝힌바와 같이 대만 경제가 석유위기와 수출 여건의 악화로 마이너스 성장과 전후 최대규모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등 경제성장의 침체기를 맞기도 하였으나 1976년부터는 신속히 회복을 달성하였다. 그 이유는 23.3%에 이르는 제조업 성장률과 농업에서의 10%라는 상대적 고성장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중화학 공업화 이후에 발생한 급속한 수출 증대가 대만의 회복을 도왔다고 할 수 있다.수출의 급신장을 이끈 것이 중화학 공업이라는 것은 수출품의 구성에서도 나타난다. 즉 이 기간 동안 수출품에서 차지하는 중화학 공업 제품의 비중은 경공업의 그것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해 갔는데 이러한 사실은 대만의 중공업화가 단순히 기존의 수출 주도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수출 상품의 구성만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대만의 경제 성장 과정에 있어서 생산 능력과 공급 능력의 획기적인 비약을 가져온 주요한 계기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4) 1980년부터 현재 자유화 국제화 및 제도화 시기1960년대부터 시작하여 대만정부는 지속적으로 수출을 위주로 하는 방향의 경제정책을 추진하여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다. 1980년대부터 대외무역 흑자가 큰 폭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고, 외환 보유고가 세계 각국 중에서 상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미국에 대한 무역혹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서 대만과 미국의 무역마찰이 발생하게 되고, 그 외에 대만화폐의 가치가 높아지고 화폐공급의 증가 및 물가상승의 잠재적 압력 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대만정부는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84년에 "자유화, 국제화, 제도화"의 경제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목적은 곧 자유개방의 경제체제를 확립하여 불필요한 행정관여를 감소하고 자유경제 시장기능을 촉진하여 충분하게 기능을 발휘하여 시시각각 변하는 경제환경에 적응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주요한 경제정책은 공공건설을 증가시키고 국내던 국내적 요인과 1980년대 무역불균형으로 인한 미국의 대만 상품 및 자본 시장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개방화 요구와 서비스산업의 자유화의 수입 개방 압력과 대만 환율 정책 즉 자율화에 관한 것 등이 외적 제약으로 작용했다.1980년대 중반 이후 대만의 경제 구조 조정을 강요한 이러한 대내외적인 요인들은 대만 수출 상품 구성의 변화를 가져왔다. 즉, 섬유 및 신발과 같은 대만의 전통적인 수출 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그 대신 개인용 컴퓨터와 노트북 컴퓨터와 같은 새로운 산업이 그 자리를 대신함으로써 산업 및 수출 구조가 고도화되었다.또 1991년부터 1996년에는 "6개년 국가건설" 계획을 추진하여 대만건설을 가속하고, 사회질서를 이룩하여 지역의 균형성장을 강화하였다.상술한 경제정책으로 대만은 상당히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발생으로 인하여 아시아 각국의 경제가 모두 큰 타격을 받았으나, 대만이 받은 영향이 제일 적었던 것은 확실히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대만 경제발전의 목표는 줄곧 경제성장과 안정을 중시하였고, 더욱이 농업과 공업의 균형발전과 중소기업 위주의 발전을 중심으로 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소득분배 평형을 함께 고려하였다. 때문에 물가와 실업률 부문에서 기타 개발도상국의 물가가 오르는 폭보다 비교적 낮을 뿐만 아니라 또한 선진국보다 비교적 안정적이다. 대만경제발전의 중요경제지표1975년1980년1985년1990년1995년1998년1999년2000년2001년국민총생산억 달러1534086111,6092,6912,6922,9053,1392,8831인당(GNP)달러9642,3443,2978,11112,68512,36013,23514,18812,941경제성장률%4.97.35.05.46.44.65.45.9-1.9투자율%30.533.918.822.524.924.723.322.518.4저축률%26.732.433.729.327.026.026.125.424.0실업률%2.41.22.91.71.82.72.93.04.6생산자 물가 상.
-목차-주제:직장내 여성 불평등 대우 사례조사와 이에 맞서는 여성단체(NGO)의 활동Ⅰ.序직장내 여성이 당하고 있는 불평등 사례가 많이 있 음. 이에 맞서는 여성단체의 활동을 알아봄Ⅱ.직장내 여성 성차별 사례1. 근로기준법 제5조: 均等待遇의 원칙2. 직장내 여성 불평등 사례3. 모성보호법과 모성보호법의 침해 사례Ⅲ.여성단체의 활동1. 관련 여성 단체들2. 여성단체들의 구체적 활동 사례Ⅳ.結직장내 여성 불평등을 해결 하기 위한 방안 모색주제: 직장 내 여성 불평등 대우 사례조사와 이에 맞서는 여성단체(NGO)들의 활동Ⅰ. 序여성노동자는 성인 남성 근로자에 비하여 신체적으로 약할 뿐 아니라, 자녀 출산 및 양육과 가사의 부담을 지고 있다는 점에서, 근로조건에 있어 특별한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함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의 실제 근로조건은 일반 성인근로자에 훨씬 미치지 못하거나 더 열악하였으며, 부당한 차별적 취급을 당하여 왔고 이들은 오히려 자본에 의한 노동 및 임금수탈의 대상이 되어 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어 이들에 대한 보호가 강화·확충된 것이 사실이고, 최근의 새로운 산업발전은 여성취업을 더욱 증대시켰고, 질적인 면에서도 남성노동과 여성노동의 차이나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정도로 향상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회에 팽배한 남녀 차별적 사고방식이나 실제 산업전선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여성근로자에 대한 인권침해나 불평등한 처우를 볼 수 있다. 이럴 때 여성들은 자체적으로 해결을 하거나 또는 포기를 하기도 하지만, 여성단체, 즉 여성 NGO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구체적으로 여성 NGO는 어떤 일을 하는지, 또 여성들이 직장에서 당하는 불평등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직장 내 여성 성차별 사례1. 근로기준법 제5조: 균등대우의 원칙근로기준법 제5조에서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며,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위한 교양강좌 4기 여성학교 개최1990년 강정순씨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 무죄판결, 5기 여성학교 개최,창립 3주년기념 제 3회 여성문화한마당 개최, 제 6기 직장여성학교 개최대구지역 사무직여성 실태조사1991년 3월 페놀사태 관련 수돗물 오염 범시민대책위 구성 및 규탄대회강정순씨 사건 '강간경찰 구속 요구 가두 서명작업'4월 신종 결혼·임신·퇴직 및 조기정년 철폐를 위한 공개토론회 개최대구시민 성의식 실태조사 보고회 및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 개최1992년 성폭력대책 대구시민단체협의회 발족, 대구지역 사무직여성 실태조사 보고회 및 초청강연회, 제 6기 여성학교 개최1993년 창립 5주년 기념 문화행사, 자원재활용을 위한 헌옷바자회초청강연 '지방자치와 주민의 역할', 제1회 어린이환경캠프친고죄폐지를 위한 토론회, 여성영화세미나 '여성의 눈으로 영화를 본다.' 개최1994년 3월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 1회 대구경북여성대회5월 여성신문 대구지사 개설, 자원재활용을 위한 헌옷바자회 개최성폭력특별법 설명회 개최, 제2회 어린이 환경캠프 개최여성의 정치참여와 할당제 도입을 위한 공청회 개최세계성폭력추방의 날 기념 직장내 성희롱 실태조사1995년 일본인 모리가와씨와의 정신대문제 관련 간담회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2회 대구·경북여성대회자녀 글쓰기 지도를 위한 어머니교실, '대구여성' 40호 특집 발간학교급식 조례제정을 위한 공청회, 내고장알기 어린이 현장학교대구지역 10대 여성정책 과제발표를 위한 기자간담회대구시장후보 초청 여성정책 토론회정신대 할머니 돕기 바자회, 정신대 할머니 그림 전시회제 1회 어린이 현장학교, 살기 좋은 지역사회 만들기 시민포럼'지방시대, 바람직한 여성복지프로그램을 위한 제안''세계 성폭력 추방의 날' 기념 성폭력추방을 위한 거리 캠페인 개최1996년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 3회 대구·경북 여성대회 개최부모역할훈련교육, 직장여성학교, 회원가족체육대회자원재활용작품 전시회 및 의류 발표회 개최영남일보 제정 지방자치대상 금상 활동가 워크숍을 통해 여성회의 중간활동력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을 실시성과 인권위원회일상에서의 사소한 성차별적 현상과 의식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관습화 되고 제도화된 상황에서 악화되기 쉬운 여성의 권리에 관심을 가지고 가부장제도의 핵심인 호주제 관련법과 제도를 제·개정하기 위해 에 전력을 하고 있으며 대안적 가족형태를 확산시켜 내고자 함편집위원회회지 발간을 통해 대구여성회 사업내용을 알려냄으로써 여성운 동의 저변확대 및 홍보에 힘쓰고 있다.환경위원회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환경의식을 유도하기 위해 폐품을 활용 한 재활용작품, 못쓰는 옷이나 천을 이용한 재활용의류 등을 공모하여 발표하는 을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회원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평화위원회남북화해와 협력의 시기에 평화·통일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 고, 평화·통일 교육을 확대·강화하여 통일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칠 조직역 량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2 부설여성노동센터·여성권익 및 여성노동자권익 확대를 위한 상담활동-여성실업과 고용, 여 성과 특수고용, 여성노동과 법, 가정과 모성보호의 문제·여성노동문제의 여론화를 위한 연구활동 및 교육활동 실시-여성노동상 담원 교육 및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비정규여성노동자 노동권실현을 위한 계몽 및 연대 활동.3 그 밖의 고용평등 상담실 과 ‘성매매피해여성 구조지원팀’운영고용평등 상담실고용평등 상담실’을 운영하여 사이버상담실, E-mail 상담, 고용평등 상담전화(0505-520-5050)를 통해 사건들을 접수받고 상담하며, 함께 해결해 나가고 있다. 주로 산전·후휴가, 육아휴직 등 모성보호가 미흡할 때, 모집·채용, 임금, 배치 및 승진·교육, 정년·퇴직 및 해고에서 성차별 당했을 때,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당했을 때, 비정규직 차별, 임금체불이 되었을 때 상담을 받고 있다. 전문상담원과 공인노무사가 함께 함성매매피해여성 구조지원팀(053-422-8297)주로 전화상담을 받고 있다. 주로 성매매 피해 상담이나, 구조나 지원, 법률적·의료적 구조연계관적이거나, 기업에서 의도적으로 남성을 채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나마 임금체불의 경우는 나음(명백히 입증할 수 있으므로..) 그러나 이 또한 쉽지 않다.11. 어떻게 해결됐는지?승진의 경우- 객관적 승소를 했으나 합의가 다음승진 때 고려하겠다로 시정 조치됨. 직장내 성희롱 고소하면 벌금형-사업주, 가해자에 대해서는 명백한 제재조치가 가해진다. 임금체불의 경우는 그나마 제소하면 시정조치가 떨어지지만 말 그대로 시정조치이므로 완전한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벌금형일 경우 벌금만 내면 끝, 구속은 없다. 더 강력한 제재수단이 없는 상황.12. 강요하면 여성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싫다고 강하게 거부해야 한다. 여성이 취직할 때 결혼퇴직각서 그 자체가 불법이므로.. 근로기준법 5조에 저촉이 아니라 고평법에 결혼퇴직각서는 무효라고 명기되어 있다. 그리고 정당한 사유가 되면 노동청에 구제신청을 할 수 있다.13. 창설 이후 나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 힘들었던 일은 어떤 게 있는가?해결이 지지부진 하다든가, 승소했는데 근로자가 포기할 경우, 성희롱의 경우에 상담을 몇 차례 했는데 포기하는 경우, 근로자가 그 법적인 과정을 못 견뎌서, 자신에게 돌아올 실익이 없으므로(즉,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이 번거롭고 사업주가 버티는 경우) 도중에 스스로 포기하려 할 때, 상담이 깔끔하게 끝나지 않아서 힘든 점이 많다.비 정규직 상담이 많으므로- 법으로 보호해줄 수 없을 때, 상담만 받고 조언만 해 줄 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14. 소송까지 가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가?어떻게 처리하고 요구해야 하며,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설명해주고 노동청에 구제신청 할 때 서류절차 등을 알려 주고 있다. 주로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15. 여성회가 개인이나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개인이 변하지 않으면 사회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그리고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이 사회의 부조리들이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말하고 싶다.”16. 여성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앞으로 천천4분기 여성고용 동향 보고서(민주노총, 한여노협 공동) (`99)4인 이하 사업장 근로조건과 근로기준법 준수 여부 (`99)직장내 여성에 대한 폭언·폭행 실태와 대책마련을 위한 토 론회 자료집(한여노협,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연합) (2000),법을 알면 권리 가 보인다 (2000)ⅱ)비정규직비정규직 조직화방안 자료집 (`98), 파견직 여성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 (`99)경기보조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과 성차별적 조기정년에 관한 긴급 토론회 자료집(2000)세계화와 한국 여성 노동(한 글, 영문) (2000), 비정규직을 통해 본 최저임금제 개선방안 토론회 자료집(2001),'내 권리 이렇게 찾았어요'-비정규직 투쟁 사례집(2001)ⅲ)실업대책공공취업알선기관 모니터링 및 여성실업자 실태조사 보고서 (`98)여성실업대책본부 활동백서 (`98), 중장년 여성실업자 실업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99), 결연 운동 여성 창구 공동평가토론 자료집 (`99)여성실업대책본부 발족 1주년 평가 및 여성실업정책 제언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99)대졸여성실업 극복을 위한 여대생 취업준비 실태와 구직과정에서의 성차별 극복방안 (2000)자활사업 활성화와 발전방안 모색을 위한 유럽 스터디 투어(2001)ⅳ)모성보호모성보호실태조사 (`93), '일본 모성보호운 동사' 번역 발간 (`94), 생리휴가 사용 실태조사 (`94), 정책건의서 '모성보호비용의 사회부담화 방안' (`96), 단순반복작업으로 인한 경견완 장애 대책 (`96), 화학물질을 사용 여성노동자의 모성보호와 건강권 확보를 위한 조사연구 (`97),모성보호 제도 사용 실태 및 활성화를 위한 제언(2002),ⅴ)직업훈련연구보고서- '여성직업훈련 현황 및 확대방안' (`94)'여성의 직업훈련, 교육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정책 토론회 자료집 (`96)부산지역 일하는 여성의 집' 위탁운영 (`97)ⅵ)육아의 사회화책- '일하며 키우며' -일본 보육 운동 사례 출판 (`92)'직장탁아소추진 활성화를 위한 활동-
청년 실업2003년 초 청년 실업률은 8.7%로 전체 실업률의 3.7%의 2배 이상의 수치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이 수치는 실망 실업자, 비정규직 취업자 등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이를 포함할 경우 청년 실업률은 10%를 상회한다. 여기서 실망실업자는 취업의사와 일할 능력이 있으나 스스로 일자리 구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현재 상당수 청년들이 실망 실업이나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취업상태에 있으며 대졸이상의 고학력자 실업의 증가가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청년 실업의 개념에 대해 확실히 해두고 넘어가자.청년실업의 개념- UN, OECD 등은 15∼24세 연령대의 실업자를 청년실업자로 정의- 우리 나라에서는 20대 남자의 군복무가 의무화 되어있어 외국에 비해 경제활동을개시하는 시기가 늦으므로 일반적으로 15∼29세 기준을 사용·군복무 후 대학을 마치고서 사회에 진출하는 연령은 평균 27세청년 실업 이렇게 정의된다. 잠시 내가 대한민국사람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물론 취직을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만약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휴학을 한번하고 졸업을 하는 나는 유럽에서라면 청년으로 대우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청년이라는 그 단어가 별것이 아닐 수 있으나 내가 볼 때는 도전하고 실패를 하면서 경험을 쌓는 "사회적으로 허용하는 준비의 시기"라고 점에서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사람에 따라서는 더 많은 시간을 배움에 투자하고서 또 무슨 준비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등학교까지는 다들 인정하는 타율적 교육의 기간이고 대학교에서는 어느 정도 자율이 보장되나 그 또한 전공과 그 관련 과목 등 학문으로 제한된다. 이러한 점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준비는 사회에서의 이해를 두고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인관계, 일에 대한 자신감 등을 얻은 과정을 말한다.서론이 길어졌다. 그렇다면 청년 실업은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그 원인은 무엇인가?IMF에 200억달러 공식요청정부는 금융. 외환시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냥 외국에서 돈 좀 빌려오는 걸 가지고 왜 저렇게 떠드나 그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그 일이 설사 뉴스에서 국치일 이라 말할 만큼 큰 일이라 해도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이 잘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다. 순진하게도 대학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졸업만 하면 아무 문제 될 것 없다던 할머니 말씀을 믿었다. 그 땐 대학이 일생일대의 목표였으니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다.그러나 할머니의 예상, 나의 바램은 빗나갔다. 물론 IMF 지원금 상환을 시일을 앞당겨 마치긴 하였으나 그것이 우리 나라 경제의 완전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즉 IMF는 97년 지원을 받을 당시 정리해고, 금융기관 개혁, 부실기업 정리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했었고 그것은 단기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영향은 경제위기를 벗어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요즘은 수출도 호조를 띠고 있고 IMF 관계자들조차 한국이 향후 몇 년간은 다시 위기를 맞는 일은 없다고 할만큼 대외적으로는 경기가 회복되어 가는데 좁아진 취업의 문은 구직자들에게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청년실업이 늘어가는 이유를 눈 높아진 구직자에게만 돌려야하는 것인가? 2003년 현재 청년실업이 계속 증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분석들을 내어놓고 있는데 그것들을 종합하여 한 마디로 한다면 인력수급의 양적·질적 불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먼저 수요의 측면을 보자면 경제성장 둔화로 인한 신규채용둔화, 산업구조의 변화, 경력직을 선호하는 기업들의 인력정책을 들 수 있겠다. 공급측면에서는 대학의 개혁지연, 학벌 선호의 사회풍토 그리고 변화된 청년 근로의식 등을 원인이 될 수 있다.공급측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 대학의 개혁 지연에서 대졸자는 급증되는데 반하여 그들의 경쟁력은 전반적으로 낮아졌음을 말할 수 있다. 한국은 교육열 높기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그런 부모들의 교육열이 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내는데 큰 역할을 한 것도 부인할 수 대학 수요를 창출하였다. 그후 제2의 베이비붐이라 일컬어지는 시대인 1970년대 태어난 아이들이 대학을 들어가는 시기로 이어져 대학의 전성기는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과거에는 비교적 사회변화가 느리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의 조건 또한 단순했기 때문에 대학이 개혁을 다소 게을리 하여도 학생을 유치하거나 양성하는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그러나 현대는 그렇지 않다. 이제 10년에 한번씩 강산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 번씩 세상은 변한다. 그리고 기업은 원하는 인재 또한 다양하다. 그러므로 대학 또한 변해야 한다. '문만 열어놓으면 학생들이 오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을 모으기 위해 발로 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학생들이 저절로 찾아올 수 있도록 교육 내용이나 체제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조사에 따르면 대학에서 습득한 능력이 기업에 필요로 하는 능력과 크게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 표는 다음과 같다.대학에서 습득한 능력과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에 대한 인식(%)매우 적다적다보통이다많다매우 많다인사담당자2.213.443.634.56.2대졸사원1.69.523.553.412.0그렇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대학은 현실과의 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방법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대학교 1학년 교양세미나 시간에 대학의 이념이라는 책을 읽고 비슷한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의 결론이 진리탐구와 실용학문의 조화가 대학이 나가야할 방향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현실에 적용한다면 대학교육에서 실용 과목의 비율을 늘여야 할 것이다. 늘 교수님께서 법과목이나 회계학 등의 과목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해오셨는데 학생들은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우선 학점을 잘 얻을 수 있는 과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런 과목들은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여 교육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대학의 교육이 전공 제도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많은 과목을 개설하다 보니 각 과목들에 할당되는 시간이 적어서 개인적인 공부가 뒷받침되수 있지만 blue 칼라와 white 칼라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많이 나는 사회에서 고학력자가 하향 취업을 선택하는 것의 어려움 또한 고려해 주어야 한다. 취업이란 구직자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자식 하나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뒷바라지 해오신 부모님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그리고 IMF 이후 우리 나라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완화되고 유연성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3D업종에 취업해 있다가 나이가 들어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경력직의 수요도 한계가 있고. 얼마 전 경북 경주시 환경미화원 모집에 대졸자만 2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환경미화원 모집 ‘대졸만 2대1’'환경미화원이 되려면 대졸은 기본?’경북 경주시가 환경미화원 25명을 모집하는 채용공고를 내자 2년제 대졸 이상 학력자 만 50명이 몰렸다. 대졸자의 환경미화원 응시사례는 그 동안 종종 있었으나 이처럼 대 졸자 로만 2대 1의 경쟁을 보인 것은 처음이다.2003. 11. 23. 경향신문취업난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다 보니 취업자의 눈 높이도 상황에 맞추어 적응되어 가는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그러므로 청년의 의식이 문제가 된다할지라도 그들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의 가치관 바로 세우기 작업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청년실업이 장기화되고 증가됨에 따라 사회에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첫째, 앞에서도 나타난 고학력자의 하향취업문제를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4년제 대학 출신들이 취업 경쟁에서 석·박사와 해외 유학파에 많이 밀리고, 고졸자는 대졸자에 밀리면서 상대적 저학력자들의 구직난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둘째, 취업난을 의식한 교육기간의 장기화를 들 수 있다. 나도 휴학을 한번 했었지만 요즘은 휴학 한번 하지 않고 졸업하는 사람이 드문 것 같다. 옛날에는 휴학의 이유가 가정형편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졸업을 하면 바로 실업자가 될 형편이니 졸업을 미루고 취업 준비를 하자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구직자 30% "취업 위해 휴학 텐데 인기학과와 그렇지 않은 과의 양극화 현상이 올해는 얼마나 나타날까?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 올 수 있다. 의약계열과 같은 오래도록 인기를 끌고 있는 학과도 있지만 인기학과라는 것은 시대의 필요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고 인기학과에 계속해서 사람이 몰리다 보면 인력수급의 불균형을 초래, 국가발전의 기형화를 가속화할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다.셋째, 고시 열풍을 들 수 있다. 두 번째에서 잠시 인기학과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했는데 직업에 있어서는 안정적 지위가 보장되는 법조계 등에 진출하기 위해 다수 학생들이 고시에 매달리고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전공에 관련 없이 많은 이들이 고시에 매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고시·공무원 열풍은 벌써 새로운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사법연수생도 '취업대란'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출세의 지름길'로 여겨지던 사법연수생마저도 취업에 어려움을겪고 있다. ··· 내년 1월 수료하는 신규법조인 966명 중 예비판사와 검사로 진출하는 사람은 200여 명이고 군 입대 예정자는 146명이다. 따라서 이들을 제외한 620여 명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2003. 11. 27. 매일경제또한 요즘은 고시 뿐 아니라 7·9급 공무원이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공무원 응시 열풍시대 흐름에 따라 한동안 시들하던 공무원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는 소식이다.인터넷 채용업체의 한 조사에서 구직자의 90% 가량이 "공무원을 생각해 봤다"고응답했다. 이처럼 공무원을 선호하는 이유는 불안한 고용시장에 대한 탈출구로여기기 때문일 것이다.2003. 9. 8. 한국경제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뭐 할거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대답하기가 싫어진다. 대답을 하면 "아! 너도..." 라는 눈빛으로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잘 알지는 못했지만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공무원이 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매일 뉴스에 나오는 부패 공무원들이 공무원의 모든 모습은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런 나의 생각을 보는 말이다.
북한의 교육정책1. 이념과 목표북한은 그 교육목표를 헌법 제43조에서 '국가는 사회주의 교육학의 원리를 구현하여 후대들을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는 건전한 혁명가로 지·덕·체를 갖춘 공산주의적 새 인간으로 키운다.'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산주의적 새 인간'은 공산주의 체제에 절대 충성하고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필요한 생산기술 기능을 소유한 인간을 일컫는다.북한은 이와 같은 교육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1977년 9월 5일 노동당중앙위 제5기 14차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교육에 대한 테제 를 내놓았다. '사회주의 교육테제'는 사회주의 교육학의 기본원리, 사회주의 교육의 내용, 사회주의 교육의 방법, 북한의 사회주의 교육제도, 교육기관의 임무와 역할 및 교육사업에 대한 지도와 방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북한의 학교교육 원리는 여러 사회주의국가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교육학의 원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면, 첫째, 조선노동당에 대한 충성심, 둘째, 주체사상에 대한 신념, 셋째, 투철한 혁명성, 넷째, 11년제 의무교육 실시로 요약된다.2. 교육행정체계북한의 교육행정체계는 3원 구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당은 지시와 감독을 하고, 내각은 당에서 내려온 지침을 가지고 구체적인 교육정책을 관장하며, 학교는 교육을 실시한다.1) 노동당북한 교육제도의 큰 특징은 노동당의 통제를 수반한다는 점이다. 당은 교육과 관련된 당중앙위원회의 결정을 하급 당 위원회와 내각에 지시·전달한다. 북한의 행정이 그러하듯이, 당은 내각이나 일선 학교에 대해 우선적인 권한을 갖고 인사나 교육문제를 다룬다. 모든 학교는 형식상 교장이 책임을 지고 있지만, 학교에 파견한 당 위원회 위원장이 실권을 장악한다.2) 내각행정적·실무적인 업무는 내각의 교육성이 담당한다. 교육성 산하에는 보통교육부와 고등교육부가 있다. 보통교육부에서는 인민학교와 고등중학교, 그리고 교원대학을 관장하며, 고등교육부에서는 일반대학과 사범대학을 관장한다. 교육성은 해당 업무를 각 중등의무교육(7년제)에 이어 66년에는 '전반적 9년제기술 의무교육'을 선포, 이듬해 4월 1일부터 실시했다. '전반적 9년제 기술 의무교육'제도는 당시 미성년자의 법적 노동연한(16세)이 될 때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기술교육을 시킨다는 점에서 '일대변화'라고 평가받았다.북한은 지난 72년 9월께 9년제 기술의무교육을 폐지하고 '전반적 11년제 의무교육'을 실시,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이 교육제도는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가 후계자로 지목된 때(74.2)와 맞물려 종전의 소련식 모방교육에서 탈피, 독자적인 북한식 교육체계를 정립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의 교육 방향은 시대상을 반영해 변천해 왔다. 전후복구사업이 추진되던 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 중반까지 기술교육이 중시된 반면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투쟁이 전개되기 시작한 67년 5월 당중앙위 제4기 15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김일성 주석 의식화 교육으로 방향을 선회했다.특히 지난 76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5기 6차회의에서 '어린이 보육교양법'(6장 58조)과 77년 9월 제5기 14차 당 전원회의에서 북한판 교육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 교육에 관한 테제'가 발표되면서부터 김 주석 의식화 등 사상교육이 한차원 높아졌다.김정일 총비서에 대한 찬양교육이 본격 등장한 것은 그가 84년 7월 22일 '교육사업을 더욱 발전시킬데 대하여'라는 문건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종전까지 주로 과외교양시간이나 사상학습을 통해 진행됐던 김 총비서 찬양 교육은 이 문헌 발표 후 공식 교육과목으로 등장했다.북한은 80년대 들어서는 찬양 교육과 함께 세계흐름에 눈길을 돌려 각종 변화를 모색했다.자본주의의 대표적 교육형태로 비난했던 영재교육 방식을 받아들여 84년 첫 영재양성학교인 평양 제1고등중학교를 설립했고 지난 95년에는 각 도 소재지에, 올해 들어서는 각 시(구역).군까지 확대했다.또 국제무대에서 영어권 국가의 역할이 강화되는 추세에 따라 8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어.영어 병행교육에서 영어치원 상급반 교육과 인민학교 4년, 고등중학교 6년, 대학교 4∼6년으로 단선형 학제와 복선형 학제를 절충하는 입장을 취한다.북한에는 현재 350만의 학령전 어린이들이 6만여개의 탁아소·유치원에 수용되어 교육을 받고 있는데 탁아소는 생후 1개월~만 3세까지, 유치원에는 만4세~만5세까지 교육을 받는다.유치원에서의 교육은 단순한 언어교욱(1년 6개월~2년), 보행법, 노래, 유희 등을 통해 조직 규율 생활에 대한 순종심, 집단주의 정신, 김일성을 어버이로 섬기는 정신 등을 주입한다.인민학교는 남한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며, 6세에서 9세의 학생이 재학한다. 보통 1개 반에 60명으로 편성되어 통상 2부제로 운영되고 1교시 45분씩 수업을 하며, 김일성 어린 시절, 김정일 어린 시절, 공산주의도덕, 국어, 수학, 자연(3∼4학년), 체육, 음악, 도화공작의 9개 과목을 배우고 있다. 부모 및 후견인에게 학령아동에 대한 취학의무를 규정하여 이를 어기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벌칙규정을 명문화하였다. 인민학교는 소년단복장 이외에는 지정된 복장이 없는 자유복장으로 교모를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남한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고등중학교 4년의 중등반 과정과 2년의 고등반 과정으로 6년제로 되어 있으며, 만 10∼15세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6년간 배우는 과목은 현행 당 정책, 김일성·김정일 혁명활동, 김일성·김정일 혁명역사, 국어문학, 공산주의도덕, 한문, 외국어, 조선역사, 세계역사, 조선지리, 세계지리,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음악, 미술, 체육, 공작·여학생 실습, 전자기계실습, 제도, 실습 등의 24개이며, 최근에는 심리학과 논리학을 신설하고 컴퓨터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대학교는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고려성균관대학 등 종합대학은 3개이고, 공장, 농장, 어장대학 등 야간대학과 이공계 단과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면, 인문계 대학은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으며 대학과목의 40% 정도는 정치사상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 기숙사에서 "국가졸업고시"에 졸업논문을 제출하여 합격해야 졸업할 수 있다. 심사는 제출된 논문에 대한 구술 시험과 필답시험으로 한다. 또한 대학 재학 중 습득한 군사이론과 기술을 평가하는 종합군사 시험에 통과하면 졸업과 동시에 조선 인민군 예비군관으로 임관된다. 학위는 남한의 석사에 해당하는 '학사'와 '박사', 그리고 명예칭호인 '원사'가 있으며, 대학졸업생들에게는 남한의 경우와 달리 학위를 수여치 않고 인문, 사회, 예체능계 졸업생에게는 "전문가", 자연계는 "기사", 사범계는 "교사" 자격증을 부여하고 있다.5. 교원의 임무·양성1) 교원의 임무북한에서는 교원을 공산주의 혁명가를 양성하는 정치적 도구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원 스스로가 정치적 사병이 되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김일성은 1961년 4월 「전국교육일군열성자대회」에서 교육자의 사명을 「젊은 후대들을 사회주의의 믿음직한 건설자로, 전면적으로 발전된 훌륭한 공산주의자로 교양 육성하는 것이며 교원들은 부모들을 대신하여 청소년들을 당과 국가가 요구하는 훌륭한 인재로 키워 내는 무거운 임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고 선언하고 있다.2)교원양성교원 양성 제도는 1960년 이후의 기간 동안에만도 세 차례의 큰 변화를 치렀다.그 중 1961년엔 4개의 교원 대학과 6개의 사범대학을 신설하여 모두 11개 교원 대학과 8개 사법 대학에서 교원을 양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범 교육제도를 재정비하고 교원 교육 기관을 확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1958년 7년제 중등의무교육제의 실시 등 사전에 충분한 준비 없이 지나치게 선전 목적적인 의무교육 제도의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교원이 크게 부족하였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나타난 북한 교원의 특징은, 첫째, 교원의 수가 갑자기 증가하여 전체적으로 그들의 자질이 크게 저하되었으며, 둘째, 해방 후 북한에서 공산주의 교육을 받은 젊은 교원과 여성 교원의 비율이 높아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북한은 정치 체계의 유지를 위해 교원 선발을 엄격히 하고 양을 막고, 이른바 실천을 결합한다는 명분을 내걸면서 학생들의 노동력을 끌어내는 이론적인 기반도 된다.셋째, 조직생활, 사회정치활동의 강화방법이다. 북한에서 조직생활은 공산주의의 품성과 태도를 집단적으로 단련하는 '정치생활' 자체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어린 시절에는 '조선소년단'에서, 그 이후의 청소년 시절에는 '김일성 사회주의청년동맹'에서 조직생활을 하게 된다.넷째,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의 결합방법이다. 이 방법은 정규 학교교육 이외에 다른 정치사회화의 일차적 매체인 가정과 '사회교양수단'들을 잘 연계해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다섯째, 학교 전 교육, 학교교육, 성인교육의 병진 방법이다. 이 방법은 "사람들의 사상의식은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조건과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어린이로부터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리고 북한의 교육·교양 내용은 일차적으로는 당원으로부터 핵심군중(계층)으로 전달되며, 마지막으로 일반 대중에게 확산하는 방식을 취한다.7. 학교 생활1) 수업인민학교는 하루 평균 5시간을 가르치며, 과목당 45분 수업에 10분 휴식을 원칙으로 한다. 고등중학교는 1∼3년이 6시간, 그리고 4∼6학년이 7시간을 가르친다. 대학은 하루 4강좌를 기준으로 하며, 강좌 당 90분간 수업을 진행한다.수업은 보통 8시에 시작한다. 인민학교의 경우 3교시와 4교시 사이에는 15분간의 '업간체조' 시간이 설정되어 있으며, 5교시를 마치고 1시간 50분간 점심시간을 갖는데 점심시간에는 오침시간이 포함되어 있다.대학생의 경우 등교 후 30분간 독보와 상학전 검열이 실시되며, 8시 반부터 오전 강의가 시작된다. 대학 또한 점심시간에 오침시간이 있으며 보통 5시 반에는 정규강의가 종료된다. 그러나 농촌지원이나 노력지원 등으로 수업에 결손이 있는 경우는 1강좌를 더하여 7시까지 강의를 하기도 한다.2) 과외 활동북한에서는 남한과 같은 과외 열풍은 없다. 고급 관리의 경우, 대학생이나 학교 교원을 초대해 부정기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