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정*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1
검색어 입력폼
  • [국사/중국사]공녀 헌납의 배경과 전개, 여파 및 폐단
    공녀 : 중국 원(元)나라와 명(明)나라의 요구로 바쳐지던 여자들을 총칭- 중국에 대한 공녀의 헌납은 고려시대에 원의 간섭을 받으면서 시작되어 조선에까지 이어졌다. 고려는 원나라에게, 조선은 명나라, 청나라에게 공녀를 바쳤다.Ⅰ. 공녀 헌납의 배경(1) 당시의 외교적 상황삼국시대 이래 한국과 중국과의 외교관계는 조공외교)를 특징으로 한다.) 조공관계는 그 성격에 따라 크게 전형적 조공관계, 준조공관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형적 조공관계는 종주국과 종속국 관계에 행해지는 것이었으나, 준조공관계는 이에 국한되지 않았다. 조선은 전형적 조공관계의 공물 중 특수한 것으로 노비?여자 등을 보냈다.삼국시대 전반기에는 준조공관계가 주를, 삼국시대 후반기에는 두 관계 모두가 나타났으나 고려말기부터 전형적인 조공관계가 강화되면서 공녀의 문제가 커지게 되었다. 즉 공녀 문제는 바로 이러한 전형적인 조공관계에서 형성된 불합리한 문제로 파악하여 볼 수 있는 것이다.이전의 국가들이 그러했듯이, 조선 또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정치적 목적 때문에 조공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힘을 배경으로 하여 지배자의 위치를 유지하겠다는 생각이 당시 관료 사이에 팽배했기 때문이었다.(2) 공녀 헌납의 발단조선시대 공녀 문제의 발단은 전형적 조공관계가 강화된 고려말기에서 찾을 수 있다.1225년(고종 12) 몽골 사신 저고여(著古與)가 피살된 저고여 피살사건 이후, 몽골은 이를 구실로 고려에 침입하여, 항복 조건으로 고려의 동남동녀(童男童女) 각 500명씩을 바치라고 하였다.몽골은 국호(國號)를 원(元)이라 고친 후에도, 계속해서 고려에 공녀를 요구하였다. 원의 공녀 요구 이유는 복속정책(服屬政策), 또는 원과 고려의 친근정책(親近政策) 때문이라고 했으나, 사실은 원나라 왕실에 여자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원은 1274년(고려 원종 15) 고려에 공녀 140명을 보내줄 것을 요구하는 등, 1275년(충렬왕 1)부터 1355년(공민왕 4)까지 약 80년간 150명이 넘는 여자들을 데려 생각해 볼 수 있다. 명이 조선에 공녀를 요구한 목적은,① 명대1) 황제의 시중을 드는 궁녀의 조달 (따라서 미모를 갖춘 어린 처녀들을 주로 요구함)2) 황제의 식사장만이나 유희를 위하여 요리와 가무에 능한 여자를 얻으려 함)② 청대1) 명분 : 병자호란 이후 조선?청 양국간의 우호를 증진한다.2) 혼인을 위한 처녀를 우선적으로 요구 (조선 왕족이나 재상 가문의 딸)3) 원?명과 마찬가지로 궁녀 목적의 처녀 요구정도로 압축해 볼 수 있다.이것이 표면적인 것이라면, 이면에 숨겨진 진정한 목적은 고려와 조선에 대한 고도의 복속 정책 내지 종속관계의 강화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Ⅱ. 공녀 선발 과정 및 이에 따른 폐단(1) 공녀 선발 과정① 고려와 조선 : 공녀 징발 사신이 중국에서 오면 임시 특별관청을 설치하고 금혼(禁婚 令)령)을 전국에 발동② 조선전기 : 진헌색(進獻色)이라는 관청을 임시로 설치. 진헌색에서는 관리와 환관을지 방에 파견하여 각 도의 관찰사들과 함께 처녀를 뽑아 보내도록 하였다. 3 차까지의 심사를 거친 처녀들은 중국으로 보내졌다. 기준은 뛰어난 미모에 있었고 결정권은 명나라 사신에게 주어졌다.③ 조선후기 : 전기와 대체로 비슷한 절차. 예조?형조?공조의 고관으로 구성된 혼례도감(婚 禮都監)을 설치하였다.(2) 폐단 및 기피 실태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는 이국 땅으로 딸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부모에게는 물론 친지, 공녀 자신에게도 어마어마한 고통이었다. 이에 따라 공녀가 되는 것을 피하려는 갖은 방법이 조선) 사람들 사이에 행해졌다.① 조선 시대의 공녀 기피 방법1) 딸을 몰래 시집 보낸다: 공녀 징발 대상은 결혼하지 않은 처녀들에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강보에 TK인 어린 아이를 유모가 안고 시집보내는 경우도 생겼다.2) 처녀를 숨긴다: 조선 사람들은 딸을 고의로 은닉하였다. 혹은 나이가 비슷한 못생긴 다른 처녀를 내 놓기도 했다고 한다.3) 거짓말로 모면한다: 병에 걸린 것처럼 위장하는 여자들이 많아서, 공녀를 심사하는 경복궁 마당에중전이 송별연회를 경회루에서 베풀었다. 가족과 친지가 모두 참석하도록 한 이 자리는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연회를 보는 이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2) 공녀들의 힘든 여정중국까지 가는 길은 매우 멀고 험한 여정이었다. 교자를 타고 갔지만 힘든 여정에 병이 나는 일이 빈번했는데, 이 때는 조선 의관이 급파되어 치료를 해 주었다. 추위가 그녀들을 괴롭혔으며 그보다 더한 것은 환관 출신의 사신들이 홀대하거나 희롱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힘든 여정을 이기지 못하고 호송 과정에 자살하는 처녀가 있었다고도 한다.(3) 공녀들이 끌려간 길우리나라 역대 왕조의 사신들이 조공을 하기 위해서 중국으로 가는 길은 육로와 해로였다. 이 길을 통하여 사신들이 왕래하고, 상인들이 무역을 하였으며, 공녀 또한 이 길을 통해 중국으로 끌려갔다.고려 초기에는 바닷길을 통하여 송나라 당에 도달하였다. 처음에는 예성강 입구에서 배를 띄워 중국의 등주로 이르는 해로가 이용되었으며, 후에는 벽란도에서 출발하여 흑산도를 거쳐 중국의 명주로 도착하는 코스가 이용되었다.원나라가 들어선 이후에는 육로와 해로가 함께 이용되었다. 육로는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북경에 이르는 경로였고, 해로는 예성강 입구에서 흑산도를 지나 명주에 도착하는 종전의 코스가 운용되었다. 명나라의 건국 뒤에도 사신들은 바닷길을 통해 남경에 도착하였다. 명나라가 북경으로 천도한 이후에는 다시 육로가 이용되었다. 이러한 사신들의 조공로가 공녀가 끌려간 길이었다.Ⅳ. 당시 공녀 헌납 실태(1) 조선 전기 명에 대한 공녀 : 명나라에서는 모두 12차례에 걸쳐 조선의 처녀를 요구. 명나라 황제의 사망 등으로 5차례는 중지되고 실제로 처녀가 보내진 것은 7차례였다.① 태종 8년 (1408) 11월1) 조선왕조 건국 후 명나라에서 최초로 처녀를 요구. 선발 작업에 두 달 여가 소요되었는데 최종 선발 된 처녀들에 대해 명나라의 사신이 노골적으로 불만 토로하여 처녀들의 부친은 귀양, 정직(停職)등의 처벌을 당함.2) 명나라 사신의 불만에씨 처녀는 다시 끌려가게 되었다.③ 태종 17년 (1417) 8월황하신의 딸과 한영정의 딸 2명이 선발됨. 한씨 처녀는 영락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고 전해진다.④ 세종 9년 (1427) 7월1) 처녀 선발 작업을 두 달 여 진행하는 도중 명나라의 영락제가 북벌 도중 갑자기 사망하여 처녀들을 돌려보냄.2) 선종 즉위 후 공녀 진헌이 재개됨. 최종 5명의 명단을 전달하였으나 선종이 달가워하지 않아 7명의 처녀를 재차 선발하고 요리에 능한 10명의 집찬비(執饌婢)도 선발. 백성들의 기피에 따라 처녀 선발이 어려워지자 나이가 어린 처녀의 비율이 늘어남.3) 명나라 사신들이 도망을 막으려고 처녀들이 탄 교자에 자물쇠를 채움.⑤ 세종 10년 (1428) 10월명나라 사신들은 전년도에 병으로 가지 못한 한씨 처녀(본명 : 계란))만을 고집. 주변인들은 그녀가 가는 것을 생송장(生送葬)이라며 탄식하였으나 그녀는 가장 장수하여 74세까지 살았다.⑥ 세종 11년 (1429) 7월요리를 잘하는 집찬녀(執饌女)와 노래나 춤을 잘하는 가무녀(歌舞女)를 원함. 영락제는 조선요리를 좋아하였고 선종도 그러했던 것으로 추정. 집찬녀 12명과 가무녀 8명이 보내짐.⑦ 세종 15년 (1433) 11월집찬녀 20명을 북경으로 데리고 감.(2) 조선 후기 청에 대한 공녀Ⅴ. 중국으로 간 공녀의 운명(1) 공녀의 운명공녀에게 주어진 운명은 가족들과 생사부지의 땅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것뿐인 듯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이들도 있었다.① 조선 전기에 명나라로 끌려간 처녀들: 모두 영락제의 후궁이 되었다.1) 현인비 : 권집중의 딸. 권비. 미모가 뛰어나고 옥통수를 잘 불어 영락제의 총애를 받 아 현인비에 봉해짐. 황후 사후에 내전의 일을 맡아 보았으나 태종 10년 10월에 갑자기 사망. 처음에는 병사(病死)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후에 독살로 정정.2) 어여지난 : 현인비 독살 사건의 범인으로 처음에는 여미인이 지목되었으나 평소 여미인에게 원한을 품었던 중국인 궁녀 여씨의 : 세종 10년 (1428)에 헌납. 장수하여 성종 14년(1483)에 74세의 나이로 병사. 명나라에서는 궁녀로 50여 년간 봉사한 노고를 치하하여 부인(夫人)을 추증하고 공신(恭愼)이라는 시호를 하사하는 등의 배려를 함.③ 송환된 여종들1) 처녀들과 함께 명나라로 간 여종들은 죽음을 당한 경우가 많으나 일부는 송환됨.2) 영락제와 함께 순종된 한씨의 부탁으로 가능했다.3) 세종 17년(1435) 4월에 김흑을 비롯한 53명이 환관들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왔으며,4) 조선 조정에 의해 명나라 궁중의 일을 누설하지 말 것을 엄격하게 당부 받았다.④ 의순공주1) 효종 원년(1650) 4월 섭정왕인 구왕과 결혼하기 위해 청나라로 떠났으나 구왕이 의순공주의 미모에 만족하지 못하여 노골적으로 불만함.2) 결혼 후에도 구왕의 불만은 계속되었음. 결국 부하에게 시집을 보냈다가 그녀의 아버지가 사신으로 가 청원하여 데리고 옴.이처럼 조선시대에 명?청나라에 끌려간 공녀들은 황제의 총애를 받아 후궁이 되었으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제 명을 다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할 수 있다.(2) 운명을 개척한 여자 - 기황후대부분의 공녀들은 이와 같은 비참한 신세를 면치 못하였으나 그 중에는 황제의 총애를 받아 황후에까지 올라 영화를 누리고 정치적 세력을 형성하여 고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존재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기황후라고 할 수 있다.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갔던 기(奇)씨처녀가 황제에게 차를 올리는 궁녀가 된 것은 고려출신의 환관인 고용보의 천거가 큰 몫을 하였다. 궁녀가 된 직후부터 기씨 처녀는 순제(1320~1370)의 총애를 독차지 하게 되어 황후와 황제의 애정을 둘러싸고 갈등과 질시의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기 궁녀는 미모와 교양을 갖추고 순제의 총애를 독점하게 되었다. 그녀는 미모 외에도 항상 교양과 기품을 지니고 있었으며, 항상 효경(孝經)과 사서(史書)를 가까이 하고 역대의 현명한 황후들을 본받으려고 노력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이처럼 순제를 뇌쇄시.
    인문/어학| 2006.04.03| 7페이지| 1,000원| 조회(863)
    미리보기
  • [언론,신문방송,커뮤니케이션] 한국, 사회, 언론
    한국, 사회, 언론- 2001 vs 2004국어국문학과20010257한정희☞ 한국, 사회, 언론언론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가. 막연하게나마 객관성과 공정성의 개념 등으로 우리는 언론의 역할을 정의한다. (신속성 등의 문제는 본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힘, 혹은 권력의 문제에 대해서는 차치하기로 한다.) 그런데 객관성과 공정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언론사, 혹은 언론 기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기자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 기자에게서 나오는 기사들은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는것일까. 그렇다면 그 잣대는 무엇인가. 언론이 거대화되고 하나의 기업화된 오늘, 기자는 기업에 소속된 하나의 직원과도 같은 의미가 되어 버렸다. 기업은 기업의 뜻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쳐나가는 직원에 대해 급료를 지불하려고 할 것인가.이렇게 되면 언론의 의미는 복잡해지고 만다.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막연한 것인지에 대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그렇다면 언론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깊고도 넓은 문제에 대한 간략한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해답을, 우리는 다음 글을 통해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언론은 사회를 바라보는 창입니다. 언론은 여러가지 사건 중 어떤 사건이 보도될 것인가 그 범위를 정하는 데 힘을 발휘합니다. 그런 점에서 언론은 2차원적 권력을 가진 집단이지요. 언론을 제4의 권부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광주항쟁 때 군부는 처음에는 보도 자체를 통제합니다. 더 이상 통제가 불가능해지자 폭도니 불순분자니 해서 항쟁의 성격 자체를 왜곡하려 합니다. 바로 그것이 언론의 힘입니다. 언론은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agenda를 보도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언론을 비판할 때 보도된 것을 중심으로 비판하는 것은 행태적(behavorial) 비판입니다. 그러나 행태적 비판보다는 보도되지 않은 것을 비판하는 구조적(structructural) 비판이 더 중요합니다.'what is there' 보다 'what is not there때 차관특혜 의혹도동아, 50.60년대 '세종로광장'계획 이전거부로 무산“사옥 손 못댄다”시청∼종각 1호선 노선수정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우뚝선 동아일보사와 옛 조선일보사(현 코리아나 호텔)의 사옥은 과거 언론권력이 `성역'이었음을 상징하고 있다.광화문에서 서울시청쪽으로 오다보면 오른쪽에 조선일보사가 들어있던 코리아나 호텔이 옆의 다른 건물과 달리 튀어나와 있다.광화문앞 편도 8차선 교차로는 시간당 평균 1만1388대가 이용하는 반면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 세종로네거리의 편도 8차선 교차로는 시간당 1만6800대가 이용한다. 그러나 코리아나 호텔앞부터 편도 6차선으로 줄어드는 바람에 차량은 많아지는 데 차로는 줄어 병목 현상을 피할 수 없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코리아나 호텔 근처에서 차선이 줄면서 교통량이 15%정도 더 정체된다”고 분석했다.이 건물이 들어서는 과정 역시 언론권력의 `힘'을 느끼게 한다. 방우영 조선일보사 회장은 지난 1997년 발간된 이란 자서전에서 “1967년 태평로 본사 사옥이 도시계획으로 철거되자 남은 땅에 차관 도입으로 호텔을 짓기로 했는데 20층짜리 건물을 지을 자금은 한푼도 없었다”면서 당시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을 찾아가 “신문사 하나 살려 주는 셈잡고 건물을 지어주면 신문을 팔아가며 갚아 나가겠다”고 말해 수락을 받은 일을 털어놓고 있다. 방 회장은 “어려울 때 남을 도와주는 그의 의협심이야말로 기업인의 귀감”이라고 밝혔으나 정 회장이 과연 `의협심'에서 수락했는 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사실 언론과 권력간의 찐득찐득한 관계를 해명해보는 것은 보다 길쭉한 언론의 역사를 되훑어봄으로서 더 명명백백해 질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2001년과 2004년을 전후한 문제들에 대해 다루어보도록 하겠다.)1999년, 의 홍석현 사장이 세금포탈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때 중앙일보에서는 그것이 언론탄압과 개인비리를 구분해서 논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언론탄압과 개인비리를 구분해야한다는 주장은 기실 중앙일보가 대응해 나간 현실과는 조 선수의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제패를 계기로 마라톤 발전을 지원한다며 지난 1993년 국민모금 방식으로 40여억원을 모아 '동아마라톤 꿈나무재단'(이사장 민관식)을 설립한 뒤, 8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전용훈련장 건립 등 약속했던 사업을 이행하지 않고 있어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면서 "특히 동아일보사와 공동으로 성금을 모금했던 대한육상경기연맹(회장 이대원)이 이에 항의해 지난해 기금운영권 환수를 적극 검토했고, 국세청도 최근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이 재단의 자금 운영 및 사업실태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큰 파장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이 기사는 한겨레가 당시 3주 전부터 준비한 '특별취재팀'에 의해 작성된 것이었다. 특별취재팀에는 각 부에서 차출된 8-1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후로도 약 17회 정도의 기사를 내보낼 예정을 가지고 있었다.6일 시작한 에 대해 약 7회 정도의 기사가 예정돼 있으며 에 대해서는 약 10회 정도 다룰 예정이었다.당시 한겨레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주로 조·중·동을 다룰 것이며 사주들의 비도덕성을 드러내는 사안은 물론 친일과거 등에 대해서도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사건 당시 한겨레는, 시리즈를 소개하는 편집자주를 통해서 "언론사 세무조사가 시작된 이후 정부는 '언론이 성역은 아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부 족벌언론들은 '권력에 의한 언론 길들이기' 또는 '언론탄압'이라는 논조를 펴고 있다"면서 "그간 성역 속에 감춰져 있던 '언론권력'의 일그러진 모습을 파헤침으로써 과연 족벌언론들의 이런 논리가 타당한 것인지, 독자들에게 올바른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기획취지를 밝혔다.여기에 대해 족벌언론측은 거센 반발을 했다. 동아일보측은 오마이뉴스에 보낸 '설명문'에서 한겨레의 이번 보도는 "전혀 사실과 다른 왜곡 비방보도"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측은 "어제(5일) 오후 한겨레 초판이 배달된 후 한겨레측에 통보문을 보내 '전혀 사실과 다른 왜곡보도이므로 기사 전체를 삭 않을 수 없다"고 강한 톤으로 비난했다.동아일보의 한 관계자는 2001년 3월 6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한겨레에서 어제 우리의 항의를 받고도 기사를 빼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 소송밖에 방법이 없다"면서 "7일 동아일보 지면에서 성금사업의 진행과정을 설명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아일보는 7일자에서 1면과 27면에 관련기사를 싣고 "단1원도 유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등, 당시의 공방 열기는 무척 거셌다.이는 당시 기득권적 언론의 성격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적인 사례다. 위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수구 언론들은 권력의 노리개로 존재하면서도 여기에 대한 작은 반발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겨레는 2001년 3월 28일 다시 심층해부 언론권력시리즈를 내보냈다. 제2부 추악한 '과거'의 첫 기사는 조선일보의 친일곡필 사례가 그것이다. 한겨레는 조선일보가 창간 81돌을 맞아 지난 2∼7일 5회에 걸쳐 쓴 '조선일보 사장 열전', 8∼19일 8회에 걸쳐 쓴 '명기사 명사설'은 통해 '친일'의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가렸다고 꼬집었던 것이다.당시의 사태에 대해 퇴임을 2주 남긴 상태에서 큰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겨레신문 고영재 편집위원장(53)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나는 확신한다. 이건 건 이건, 우리가 기사를 통해서 밝힌 비리·탈선·횡포보다 훨씬 더 큰 것이 있다고. 우리는 지금 빙산의 일각조차도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취재팀을 만들어 움직이고 있지만 어떤 타협이나 절충도 있을 수 없다."☞ 2004년 현재 여전한 그 놀음마당이처럼 언론과 권력의 누이좋고 매부좋은 유착은 여기저기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미미한(?)투쟁 역시 언급했던바와 같이 이루어졌다.그러나 서두에 언급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도 중앙도 동아도 아닌, 하니리포터를 통해 게재되었다. 2004년, 오늘 역시 수구언론과 권력은 꿩먹고 알먹고 둥지떨어 불떼는 행각을 계속하고 있으며 개선의 노력들, 어느 역대 대통령이 언론에 맞섰는가? 한 두번 이런 비슷한 예가 있었던 기억은 있으나, 번번히 언론의 위력 앞에 모두 무릎을 꿇었다. 나는 현 대통령이 신문언론에 맞서리라 공언했을 때, 그의 주변에서 이를 극구 말리던 일을 기억한다. 이번 탄핵안 가결만을 놓고 볼 때, 역시 언론의 위력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활자로 인쇄된 논리가 대중에게 전파될 때, 그 위력은 대단하다. 특히 신문 언론의 지면은 대개 우리 시대 최고 지식층이 장식한다. 이들은 겉으로는 고고한 자태를 보이면서 , 때로는 훈계조로, 때로는 현학적인 미사여구를 동원, 대중을 계몽하려 든다.자세히 보면 그들이 써나간 글의 행간에는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논리가 담겨 있음을 곧 알 수 있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이 드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겉으로는 16대 국회 193명의 합작품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학자 논객들이 다수 포진한 소수 신문 언론의 승리로도 보인다.☞ 2004년의 대안, 온라인 저널리즘2004년, 여전히 찐득찐득(?)한 언론과 권력의 관계를 푸는 해법을 우리는 이른바 ‘대안 미디어’로 칭해지는 온라인 저널리즘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기득권적 미디어에 대해 안티적 성격을 띄고 등장한 미디어들을 대안 미디어라고 부른다. 특히 이들은 대개 온라인에 기반을 두고 성장하였다. 기존의 언론들도 인터넷으로 발길을 돌려 웹상에서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지만 (ex. 동아닷컴, 조인스닷컴 등) 순수 온라인 저널리즘은 여러 가지 면에서 on-off line 매체와는 그 성격을 달리 한다.우리나라에서는 1995년2월, 중앙일보가 인터넷에 기사를 게재한 것에서 온라인 저널리즘의 출발을 찾을 수 있다. 비록 그 시작은 기존 언론의 일부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에 불과했지만 이후 인터넷의 급속한 성장에 힘입어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지는 대안 미디어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오늘날 승승장구 하고 있는 오마이뉴스, 프레시안과 같은 온라인 저널리즘을 그 예로 들 수
    사회과학| 2004.05.31| 8페이지| 1,000원| 조회(303)
    미리보기
  • [방송학/신문방송학/커뮤니케이션학] 방송학 커뮤니케이션학 개론
    한정희1. 은 언론제도(특히 방송제도, 이하에서는 편의상 언론이라고 쓴다)를 각 사회의 정치제도와 관련하여 크게 4가지로 구분한다. 그 4가지는 권위주의와 자유주의, 사회적 책임주의와 공산주의다. 본문에 따르자면 권위주의는 대체로 자유주의와 대치하는 개념이고 공산주의는 권위주의에 그 근간을 두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유주의의 발전형이 사회적 책임주의다.이는 얼핏 보기에 매우 타당한 분류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맹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권위주의를 하나의 언론제도, 혹은 언론 사상으로 분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역사와 언론제도를 연관시켜 살펴보면 권위주의는 특정 시대나 특정 지역에 존재하는 하나의 언론 사상이 아니라 어느 곳에든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언론에 대한 통제나 억압은 본문이 다루고 있는 것처럼 국가 권력에서부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권위주의 언론 하에 있었다고 분류하고 있는 시대에는 국가가 언론을 통제하고 관리했으므로 국가의 권력이 언론을 통제했다는 것이 옳다. 그러나 오늘날에 비추어 생각했을 때 자본도 충분히 권위적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본과 기업, 광고주는 언론의 재정적 기반을 손아귀에 넣고 이를 통한 통제를 일상화하고 있다.본문에서는 자유주의 언론 제도가 억압적이고 구시대적인 권위주의에 대항하여 나온 것이며 따라서 모든 이의 자유를 보다 폭넓게 보장하는 훌륭한 제도라는 것처럼 설명되고 있지만 오늘날 자유주의 언론제도의 이면에는 여전히 권위주의가 존재한다. 오히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통제로서 더 심화되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차이점은 언론의 소유가 정부에게 있느냐, 자본권력에 있느냐 하는 점이다. 방송의 사유화에 따라 그 권력이 옮겨간 것뿐이다. 그러나 본문은 미국의 언론제도를 옹호하기 위해 쓰여진 양 자유주의 언론제도에 대해서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왕관을 씌우기에 여념이 없다.또 본문은 소비에트 공산주의 이론을 다룸에 있어 중대한 혼동을 범한다.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실제로는 잘 인식되고 있지 못하다. 대체로 정부가 전파를 관리하고 방송국이 그것을 사용하며, 광고주에 의해 이용되고 차후에 국민이 이용한다는 식으로 파악되고 있다. 둘째로 전파 자원의 제한성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주파수가 겹치지 않도록 공적 기관이나 국가, 혹은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전파는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되며 엄밀히 말하자면 HAM과 같은 통신 장비도 불법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전파 자원의 희소성이 급감함에 따라 이 근거는 다소 약해지게 되었다. 셋째는 국가 이익적 근거다. 방송이란 그 영향력이 지대한 것이므로 그 권한을 가지는 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도록 할 우려가 있으므로 국가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넷째는 국민 이익적 근거다. 방송의 재원을 따져보면 이는 당연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것이 오늘날 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와 같이 광고 수입을 통한 것이던 혹은 시청료나 세금을 통한 것이던 간에 그 재정적 자원 기반은 국민에게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문화적 근거를 들 수 있다. 역시 여기서도 방송의 영향력과 관련하여 생각하게 되는데, 방송이 사회?문화적으로 수용자의 일상에 매우 근접하게 파고든다는 점이 중요하게 파악된다. 일상생활에서 선동이나 선전의 과정을 통하지 않고도 친근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은 더욱 지대한 것이다. 따라서 개인이나 특정한 집단의 이익보다는 공익을 위해 방송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방송의 공익성은 공공성에 비해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측면에서 파악되는 개념이다. 공공성이 이념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것이라면 공익성은 그것의 실현, 방법론적 문제라고 볼 수 있다.공익성은 공공성의 근거를 기반한다. 방송이 공적인 소유 형태를 띠고 있다면 그것이 당연히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는 재고의 여지가 없다. 방송 전파의 한정성이나 방송의 영향력 등이 같은 맥락에서 공익성의 근거로 제시된다.공익성은 방었다. 이를 위해 사단 법인 형식의 민영으로 방송을 출발시켰으며 조선 총독부에서 재원의 3/4을 지원함으로서 이를 자본으로 통제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정책에 의해 우리나라의 방송은 초기부터 급격한 변화에 휘말렸다.2) 미군정시대, 이승만 정권좌익 계열이 3년여에 걸쳐 완전히 정리되었고 언론은 정권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갑자기 주어진 해방이었으나 이 해방을 해석하는 것은 미군정과 좌파, 우파가 모두 달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미군정은 자국적 자유주의를 전파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식민국(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미국의 정책도 일종의 식민 정책으로 이해하기에 충분하다.)의 탄생으로 이해했고, 좌파는 사회주의 사상에 기반한 민주주의 국가 성립의 시작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보다 온건적인 우파 또한 나름의 입장으로 좌파와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 대립은 어찌보면 미군정에게 스스로의 운명을 내맡기는 꼴이었던 것이다.미군정은 점령군의 성격을 띠었으며 따라서 방송 역시 권위주의적 시스템 하에 있었다. 미국은 자국의 방송국은 자유주의 제도 하에 민영으로 운영하면서 우리나라의 방송국은 국영 체제로 전환하였다. 이는 원활한 점령 정책 수행을 위한 것이다. 미군정시대 방송 체제의 특징은 대부분 이후 이승만 정권으로 이어진다.3) 이승만 정권이승만은 미군정이 언론사에 남긴 오류를 대체로 수정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정권 수립 이후 이승만 정권의 시각에서는 반체제적인, 또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진보적 민주주의적 성격을 지녔던 신문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 ‘반체제적’ 신문들은 공산당과 제휴하여 남북 통일을 실현하고자 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이승만이 볼 때에 반역에 다름없었다. 이승만 정권은 일제의 잔여인 광무 신문지법을 들먹여 가며 반대 세력 언론의 뿌리를 뽑고자 하였다. 강압을 통해 일단의 정치적 영역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4) 박정희 정권박정희 정권은 이미 방송의 영향력을 파악하고 있었다. 라디오를 보급하고자 노다.이처럼 방송이 시장 원리에 의해 지배되고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함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결과가 생겨난다. 첫째는 자본의 연계와 집중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소수 기업이 통합을 통해 자본을 독점할 확률이 높으며 그들은 방송에 있어서도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쪽으로 방송 내용이 흘러갈 우려가 높다. 둘째는 광고의 영향력이 높아짐에 따라 방송의 상업화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이다. 광고주는 되도록 프로그램과 광고간의 경계가 얇아지기를 원할 것이며 그러한 광고주의 입맛에 맞추다보면 프로그램은 광고와 같이 변질될 것이다. 프로그램은 탈 정치를 표명하겠지만 그 이면에는 늘 자본주의 기제가 숨어있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방송의 보수성이 보다 견고해지는 것을 들 수 있다.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해 방송은 익숙하고 실패 염려가 적은 프로그램을 제작할 것이며 이에 따라 시청자도 보수적으로 되어 갈 것이다. 이 체제 하에서 프로그램은 어떠한 사회 문제나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상식이나 이슈를 전달하는데 그치고 말게 된다. 넷째는 수용자가 곧 소비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광고주가 원하는 그것이기도 하다.따라서 이 같은 방송은 방송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기보다는 주목을 끄는 데에 우선적인 목표가 있다. 그래서 프로그램 내용은 선정적sex이고 폭력적violence인 것, 기이하거나 모험적인 것adventure으로 가득차게 되며 이는 재배합적 문화라는 비판을 받는다.6. 1) 정치적인 시각에서 뉴스나 드라마 등이 현실과 상관없이 일정한 이야기의 틀을 가지고 현실을 이에 맞게 구성하여 전달한다고 보는 것이 ‘현실 구성론’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TV가 사회 속의 지배적인 문화에 맞춘 틀을 가지고 해석한 후에 그것을 수용자에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내용은 바깥(현실)의 실제와 같냐 다르냐에 관계없으며 지배가치를 옹호하느냐가 중요하게 생각된다. 이에 따라 방송, 특히 뉴스는 힘을 가진 집단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다. 부분적이고 임의적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가득하였고 주왕에게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여성이었으며 예영은 주왕과 오랜 시간 만나온 온순한(?) 여성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왕의 선택은 아리영에게 기운다. 여기서만 볼 때에는 가부장적 질서가 선호하는 여성이 배제된 듯 하나 아리영의 아버지가 저지른 죄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선악의 대립구도에서는 선의 손을 들어준 것이며 이후 아리영이 인격의 대변신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의 변화를 보이며 전형적인 전통적 여성상으로 변한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하는 것으로도 보여진다. 이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결혼을 통해 이렇게 되었다던가, 역시 여자는 원래 이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준이 예영과 마린의 친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구도에서는 선택과 배제 전략이 더 잘 드러난다. 마준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한다는 면에서 보다 현대적인 연애관을 지닌 마린의 친구는 배제되며 마준의 프로포즈를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예영이 선택된다.② 가정의 행복과 안정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여성을 이상화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여성 인물이 가정은 행복과 안정을 위해 노력하며, 문제적 요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 6월 16일 방영분에서는 결혼 전 잘 나가는 전문 방송 작가였던 아리영이 ‘이제 일을 접겠다.’고 했으며 이에 대해 시어머니(김용림)은 ‘그래 이제 일 그만두고 애나 키우고 내조나 해.’라고 응대한다. 여기에 대해 반발하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 아리영과 예영, 예영의 어머니, 마준의 어머니(고두심), 아리영의 시어머니와 시할머니(사미자) 등은 모두 가부장적인 여성상에 알맞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나마 현대적이고 이단아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이 마린(이재은)인데 역시 드라마 종반을 향해 가면서 안 감독과의 사랑에 빠져 전형적인 여성상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다.따라서 이 드라마에서는 특별히 전통적인 역할의 여성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없으나 이러한 여성을 이상화하고 있다고 보아야겠다. 물론 이는여진다.
    사회과학| 2004.05.11| 13페이지| 1,500원| 조회(695)
    미리보기
  • [구조주의/문화주의/커뮤니케이션학] 구조주의 문화주의 사례 분석 평가A좋아요
    구조주의, 문화주의커뮤니케이션 상황 분석학과 : 국어국문학과학번 : 20010257이름 : 한정희제출일 : 2004년 4월 9일구조주의>커뮤니케이션 상황 1>인터넷 사이트 ‘싸이월드(http://www.cyworld.com)'에서는 사이버 머니를 부를 때 ’도토리‘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실제 화폐의 100원을 도토리 1개로 환산하는 이것으로는 싸이월드 내의 미니홈피를 꾸밀 수 있는 배경화면이나 장식품, 소품 등을 구입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로의 선물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고, 도토리 복권도 존재하는 등 사이트 내의 교환 가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싸이월드 이용자가 급증함에 따라 싸이질, 싸이폐인 등의 신조어가 20대, 특히 대학생 층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싸이월드 내의 도토리라는 말 또한 보다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인터넷 사이트 ‘싸이월드(http://www.cyworld.com)'에서는 사이버 머니를 부를 때 ’도토리‘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실제 화폐의 100원을 도토리 1개로 환산하는 이것으로는 싸이월드 내의 미니홈피를 꾸밀 수 있는 배경화면이나 장식품, 소품 등을 구입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로의 선물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고, 도토리 복권도 존재하는 등 사이트 내의 교환 가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싸이월드 이용자가 급증함에 따라 싸이질, 싸이폐인 등의 신조어가 20대, 특히 대학생 층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싸이월드 내의 도토리라는 말 또한 보다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이 사례에서 사실상 도토리는 돈, 혹은 사이버 머니라고 말해도 무관하다. 그러나 싸이월드 유저 간에 이 용어는 어느 새 친숙하게 퍼져나갔고 많은 싸이월드 유저들이 도토리라는 단어를 들으면 동식물 > 식물 > 속씨식물 > 쌍떡잎식물 > 너도밤나무목에 속하는 도토리보다는 싸이월드 내의 도토리라는 개념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돈 혹은 모든 교환가치 (기의) - 싸이월드 내의 도토리 (기표)싸이월드 내의 도토리 (기표) - 실제 도토리 (기의)이 사례를 소쉬르의 도식을 기본하여 롤랑 바르트가 2차적인 의미작용의 단계를 덧붙여 완성한 이와 같은 구조에 대입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실제 도토리와 우리나라 화폐 사이에는 아무런 필연적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구조를 분석해 냄으로서 도토리라는 말이 싸이월드 내에서, 혹은 싸이월드 유저 간에서 의미를 갖게 하는 과정을 분석해 낼 수 있다. 도토리와 교환가치라는 의미는 임의적으로 결합된 것으로, 이 약속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 관계가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소쉬르의 구조주의를 설명할 때 제시되는 체스경기의 예(체스경기를 할 때, 규칙이라는 체계(랑그=구조)없이는 실제 게임(파롤=수행)이 존재할 수 없으며 실제 게임에서만 이러한 규칙들이 명백해지는 것이다)에서 적용해 볼 수 있듯이 도토리와 교환가치 사이의 임의적 결합 규칙 없이는 둘의 관계가 무의미하며, 이 관계는 싸이월드 내에서만 유효한 것이다.이처럼 구조주의는 의미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결합 규칙과 관습을 밝혀내는 데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문화주의>커뮤니케이션 상황 2>팬도 많지만 그만큼 안티팬도 많은 연예인를 꼽으라면 첫 번째로 떠오를만한 사람이 가수 문희준이다. 그를 둘러싼 팬?안티팬간의 논쟁은 너무나 뜨거워 언제나 기사거리가 되었고, 특히 3집 앨범 발표 이후에 그 논쟁이 정점에 달하였다.앨범 발표 후 몇 달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는 그 열기가 다소 수그러들었으나 지금도 많은 곳에서 논쟁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의 논쟁이 상당했는데,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ir_id=30401&docid=62593와 같은 사이트를 참조해 볼 수 있다.특별히 문제가 되었던 문희준의 발언 몇가지를 든다면, 우선 수없이 구설수에 올랐던 ‘7옥타브’ 발언을 들 수 있다. 자신이 7옥타브를 넘나드는 음역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서 많은 반발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이에 대해 안티 팬들은 옥타브의 개념을 알기나 하느냐고 비난하였으며 7옥타브 이상의 음역대를 가진 사람은 돌고래와 교신할 수 있다고 비꼬기도 했다.‘레드 제플린이 누구에요?’라는 발언도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3집 앨범 발표 이후 자신을 락커rocker라고 이야기하고 다니면서 세계적인 유명한 락 뮤지션 레드 제플린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것이다.이같은 논쟁에 대해 팬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듣기 싫으면 듣지 말아라’며 팬들간에 ‘안티 팬들의 게시물에 답변하지 말라’는 움직임을 만들어 논쟁을 원천봉쇄하려는 시도도 보였고, ‘레드 제플린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락 뮤지션이 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며 문희준을 옹호하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당신이 만나보지 못했을 뿐, 문희준은 실제로 7옥타브를 넘나드는 음역대를 가지고 있다’라는 식의 발언이 등장하기도 했다.여기서 팬?안티 팬간의 논쟁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각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집단 이데올로기다. 팬클럽 회원들은 문희준이라는 인물에 대한 신뢰(혹은 맹신)와 팬클럽 회원간의 유대감 등을 공유하여 그의 발언에 대해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안티 팬들 역시 문희준이라는 인물, 혹은 그의 행동을 싫어하거나 못마땅히 여긴다는 것에서 유대감을 형성하여 그를 비판하기 시작하는데 이것 역시 극단적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안티 팬 중 자신도 레드 제플린을 모르면서 문희준을 비난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 디씨인사이드(http://www.dcinside.com)나 김풍넷(http://www.kimpoong.net)등의 사이트를 중심으로 문희준 비난, 패러디가 하나의 사이버 문화와 같이 정착되자 문희준은 하나의 비난받는 문화 아이콘이 되었고 이것은 하나의 유행이 되어 특별히 문희준을 비판하고 싶은 감정이 없는 네티즌마저도 이 ‘놀이’에 끼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사회과학| 2004.05.11| 4페이지| 1,000원| 조회(990)
    미리보기
  • [PR론/광고/신문방송] 현대사회 PR의 의미 (기업 PR 중심으로) 평가B괜찮아요
    현대 사회와 PR의 의미소속대학 : 국어국문학과학번 : 20010257이름 : 한정희제출일 : 2004년 5월 10일0. 현대 사회와 PR의 의미PR은 궁극적으로 PR 대상의 호감을 얻기 위한 활동이다. 현대 사회에는 많은 PR 활동이 있으나 본문에서는 기업이 공중을 대상으로 하는 PR 활동을 주로 하여 분석해 보기로 한다. 여기에서는 마케팅 PR, 즉 MPR적 요소를 많은 부분 포함하게 될 것이다.PR에 대한 현대적 의미를 새겨보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본문에서 기업 PR을 주로 하는 것은 그것이 현대 사회의 PR이 보여주는 각종 특성의 정점에 달해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가장 경쟁이 치열한 PR 분야인만큼 그 수단과 방법이 다양화되어 있고, 넓은 수용자 층을 대상으로 하며 PR 의도가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것이 기업 PR이다. 따라서 기업 PR의 특성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짚어보고, 이를 전 PR의 영역에 적용시켜 의미를 확장해 보는 방향으로 글을 구성하고자 한다.기업 PR 중 가장 대중적이고 규모가 크게 이루어지고 있는 기업 이미지 광고 메시지에 대한 내용도 언급하고자 한다. 팩토리 파크)) 등 다른 방법의 기업 PR도 많지만 보다 다수를 대상으로 한 경쟁적 PR이라는 점에서 이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1. PR과 현대 사회와 기업의 삼각형현대 사회에서 PR은 기업과 소비자들 각각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기술의 발전과 시민의 성장을 비롯한 복합적 사회?문화적 요인들은 전 세계에 걸쳐 사회 구성원 간의 커뮤니케이션 양과 욕구를 증대시켰고 그 채널의 다각화를 가져왔으며 커뮤니케이션의 크기나 방법 또한 다양하게 변화시켰다.이전과 같은 획일적/단일적 메시지만으로 양자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이는 모든 메시지 생산자/수용자의 관계에 적용시켜 볼 수 있겠지만, 조직이 공중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 더욱 적절히 이야기할 수 있다. 특히 그 조직이 특정 기업일 때에, 기업이 공중에게 어떻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 것이다.2. PR에 투자하는 기업의 피같은 노력!기업은 PR을 통해 소비자의 호감을 얻어내고자 한다. 이는 수많은 종류의 PR 정의들이 누적적으로 확인해 온 확실한 결론이다. 세일즈를 위해서, 기업 이미지 신장을 위해서, 혹은 위기 관리를 위해서와 같은 수많은 명분이 기업으로 하여금 소비자의 호감을 갈구하도록 한다.따라서 기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어떠한 종류의 호감을 끌어내야 할 것이냐를 정하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라면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메시지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일방향적으로 메시지 생산자의 의도에 따라 메시지가 전달된다고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을 기업 PR 담당자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이 소비자 분석을 하고, 기업의 이미지에 대한 설문을 실시하는 것이다.기업 PR 메시지 제작자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의도가 수용자 층에 전달되어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주된 두 가지 관점 중 과정학파적 관점에 비추어 파악해 볼 수 있다. 메시지 생산자(Sender)는 자신들의 의도가 수용자(Receiver)에게 직선적으로 전달되는 것을 원하며 그 피드백으로 소비자의 호감이 나타나기를 원한다. 메시지 내용(Message)은 자(自)기업이 훌륭하다/최고다...와 같은 것이며 이를 통해 소비자를 설득하고자 한다. 선택되는 채널(Channel)은 대개 매스미디어일 것이다.그런데 현대 사회의 복잡한 환경은 이 같은 메시지 전달의 일방향성을 허가하지 않는다. 대형 커뮤니케이션 인만큼 수많은 노이즈가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개입한다. 또 개개의 수용자들이 가지고 있는 수 백 가지 이상의 문화적 코드가 획일적인 메시지 수용을 방해할 것이다.게다가 현대 사회가 날카로워지는 만큼이나 사회를 보는 시각이 예리해지는 미디어 메시지 수용자들은 광고 메시지의 의도를 간파하는데 있어서도 영리함을 보인다. 이처럼 기업 PR에는 많은 외부 요인들이 관여하고 있다. 기업 기업의 이미지 광고가 무엇인가에 대해 간략히 정의한다.기업 이미지 광고는 기업의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광고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추구하는 일반적인 방향을 표명함으로써 기업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여 기업 전체의 활동을 촉진하는 광고이다))(1) 삼성생명의 이 광고는 1995년 세계광고대상의 대상 수상작인 삼성생명의 가족사랑 이웃사랑편, 다.1995년이라면 국내 기업 이미지 광고의 초창기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큰 화제가 되었던 삼성 생명의 이 광고는 단순한 그래픽에 좌측에는 흐르는 듯이 담담한 줄 카피를 사용하였다.이 광고에는 수많은 ‘의도’들이 숨어있다. 어머니가 전통적 한국의 어머니상에 가까운 여성이라는 점을 주목하자. 바르트에 따르면 사진 속의 이미지는 선택되는 시점부터 이미 하나의 메시지가 되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사진 속의 ‘어머니’가 지니고 있는 온화한 느낌, 주름살이 주는 고생의 흔적, 전통적인 색채의 의복, 과장되지 않은 인자한 미소, 한국 어머니들의 대표적 헤어스타일인 커트머리 등은 메시지 수용자들이 광고에 등장한 어머니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하도록 한다. 될 수 있으면 수용자 자신의 어머니와 동일시하는 것이 광고 제작자의 목표일 것이다.바르트는 이를 ‘코드화된 도상적 메시지’라 말했다. 도상적 메시지라는 것은 메시지의 외연, 즉 물리적 실체라 할 수 있는 기표가 메시지의 내연인 기의와 형태적으로 닮아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 광고와 같은 경우 어머니의 사진임에 분명하지만 이것이 특정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 자연적인 실체 세계에서 특정 부분을 단절시켜 등장시킨 것이라는 점에서‘코드화된 도상적 메시지’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다. (이는 사실상 모든 광고 이미지에 해당한다)바르트의 개념을 좀 더 도입해보자.) 수용자는 위 광고의 이미지에서 우선적으로 배경과 인물을 구분한다. 이것은 단순한 시각의 기능이 아니라 수용자의 해석이 관여하는 부분이다. 수용자는 배경과 인물을 구분하며, 그 인물이 어머니를 2004년 5월 7일자))(2) 삼성의 2003년 말-2004년 초에 걸쳐 실린 삼성의 기업 PR 지면 광고다. 이 광고는 캠페인 식으로 여러 번에 걸쳐 전개된 것이다.사례 (1)에서 본 것과 같은 이미지의 차용이 마찬가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성이 주력하는 이미지는 대개 가족/친구와 같은 다정한 이미지다. 네 개의 이미지 모두가 가족적인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저 사람들이 ‘가족’이며 ‘단란함’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해독하는 것은 수용자의 영역이다. PR 담당자는 그 같은 해독의 코드를 보다 잘 알아내어 수용자가 친근하게 느끼는 코드로 메시지를 작성하고자 할 뿐이다. 고찰하면, 저 사람들은 서로 가족관계가 아니며 다정해 보이는 모습도 연출된 것이라는 것을 수용자는 당장의 메시지 수용 과정에서는 깊게 인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PR이 파고들 수 있는 여지이기도 하다.공통적인 메인 카피는 ‘함께 가요, 희망으로!’다. 앞에서와 같이 기업과 소비자를 동일시 하고자 하는 의도로 파악할 수 있다. 또, ‘-ㅂ시다’체가 아닌 ‘-해요’체를 사용함으로서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한다. 희망을 향해 가는데 있어서 가족과 함께 한다는 의미를 부여함과 동시에 자사가 가족과 같이 함께 한다는 의미를 준다. 다르게 말하면 가족과 자사를 헷갈리게(?!)하는 것이 기업 PR의 목표다.(3) 삼성의 편여러 가지 기업 이미지 광고 중 가장 대표적이고 대대적으로 전개된 캠페인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기업 이미지 광고라는 개념을 사람들의 뇌리에 인식시켰고 캠페인성으로 지속함에 따라 자사의 이미지 혁신에 상당한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다.시골 동네에 들여오는 TV로 인한 잔잔한 에피소드를 구성했다.2001년 1차로 방영되었던 ‘포장마차’편이다. 겨울에 귀가길 발걸음이 무거운 아버지가 등장하는데, 핸드폰으로 전해져오는 딸의 메시지가 사랑과 용기를 준다는 내용이다.‘장모님 생신’편이다. 아내는 쇼윈도의 빨강 스웨터를 보며 친정 어머니의 생면 삼성의 일차적인 의도는 광고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일까. 그보다는 아름다운 세상, 삼성이 함께 하겠습니다가 아닐까.가족과 가족의 마음이 통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로 디지털 네트워크가 자리 잡기를 바라는 것이 기업이며 그것이 드러난 것이 기업 PR 광고다. 디지털의 혜택과 축복은 기업에 돈을 주고서만 구입할 수 있으며, 그렇게 했을 때 디지털은 가족과 가족을 통하게 해 준다는 말이 교묘하게 포장되어 있다.3. 무엇을 위한 PR인가현대의 영리한 기업가(직접적으로는 기업 PR 담당자)와, 역시 영리한 소비자들의 줄다리기는 계속 된다. 어떠한 PR 담당자든 ‘동국이 가장 좋은 기업입니다’라는 텍스트 한 줄에 불과한 직접적이고 일방향적 메시지로 수용자들의 귀를 빌려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사랑해요 LG'라는 말을 들어 곧이곧대로 LG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기업은 직접적인 메시지로 소비자들을 자신의 품 안에 두기 어렵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여러 가지 우회적인 방법으로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이와 같은 기업 PR의 특성에 따라 PR 메시지는 아주 당연하게도 자(自)기업에 유리한 부분만을 절단해 낸 형태를 띠게 된다. (이는 모든 광고나 선전, PR 메시지 등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는 하다.) 유리한 메시지를 절단해 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체적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다는 데에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기업 PR 메시지들은 한결같이 우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랑과 가족, 평화와 행복, 평등 등의 주제들이 다양한 이미지의 선을 타고 시시각각 전달된다. 그렇다면 그 우호의 화살표는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 것인가? 대기업이 ‘발굴’해낸 소년소녀 가장 모델이 기업 이미지 광고에 이용되었다면, 그래서 그 결과 그 소녀 가장에게 많은 모금액이 돌아갔다고 해도 이는 기업 활동의 의도의 꼬리 정도에 해당되는 부분이 아닌가. 기업이 그 소녀 가장을 돕고자 이 같은 캠페인을 기획한 것.)
    사회과학| 2004.05.11| 11페이지| 1,000원| 조회(926)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0
10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
  • A좋아요
    2
  • B괜찮아요
    6
  • C아쉬워요
    1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7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6:03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