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언어장애 (SLI-Specific Language Impairment)단순언어장애의 기준단순 언어장애의 일반적 준거 (Leonard,1998)낮은 구어 IQ (-1.25 SD 이하)85 이상의 비구어적 IQ정상의 청력 (진단 시, 중이염을 알고 있지 않은 상태)말 산출 관련된 구강구조 혹은 기능이 정상신경학적 병력(뇌성마비, 뇌손상) 혹은 관련 약물을 복용 경험 무정상적인 사회적 상호 작용 능력배타적 특성 임상적 진단의 어려움 다른 유발 요인의 부재 전문적인 중재 없이 또래 아동 수준에 도달하기 어려움 정상발달 아동과 다른 발달단계의 외현적 지체김영태(2002), 아동언어장애의 진단 및 치료단순 언어장애의 분류단순언어장애 (SLI)표현에만 문제를 보이는 경우 (expressive SLI)이해에만 문제를 보이는 경우 (receptive SLI)이해와 표현 모두 문제를 보이는 경우 (mixed expressive -receptive SLI)Nickisch von Kries, 2009단순언어장애 (SLI)표현에만 문제를 보이는 경우 (SLI-E)표현 과 이해 모두 문제를 보이는 경우 (ER-SLI)미국 정신의학 협회 (DSM-IV-TR) / ICD-10단순 언어장애의 분류Expressive SLI 적절한 수준의 이해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 주로 언어 산출에 어려움을 보이는 아동. 그러나 보다 정교한 도구로 평가할 때에는 미묘한 이해 결손을 보이기도 한다. Mixed expressive-receptive SLI 언어의 이해와 산출 모두에서 어려움을 보이는 아동. 보통 단어와 문장 수준 특히 복문에서 어려움을 보인다. SLI-E보다는 심각한 수준을 보인다. Pragmatic Language Impairment 새롭게 관심 받고 있는 유형으로 이 범주에 속한 아동들은 언어의 사회적 사용 능력에서 두드러진 어려움을 보인다. 즉 문장을 만드는 단어와 문법 면에서는 다소 강점을 보이나 연장된 화법의 이해가 취약하고 사회적 상호작용 또한 어색하다. 이런 아이들fic language impairment (SLI) in middle childhood. 『Child Psychology and Psychiatry: Frameworks for Practice』 , David Skuse,Helen Bruce,Linda Dowdney,David Mrazek단순 언어장애의 원인▪정상발달 아동과 단순언어장애 아동의 부모간 상호작용 형태의 차이 -정상발달 아동 : 아동의 발화 수정 시, 동사구를 수정해 줌 -단순언어장애 아동: 아동의 발화 수정 시, 명사구를 수정해 줌사회-환경적 요인▪두뇌의 불균형 ▪ 미엘린화의 지체로 자극의 전이가 정상보다 빠르게 나타남 ▪ MRI 상, 정상발달 아동들과 다른 두뇌 활성화와 협응 형태보임. 기능이 비효율 적 형태에 의존 ▪ 의사소통 처리과정에서 중요한 두뇌 영역이 감소된 활성화 보임 ▪ 가족력을 반영 (60%가 가족력, 이중 38%가 부모의 영향) ▪ 조기출산 :32주 이전에 태어난 극소미숙아들에서 높은 가능성 보생물학적 요인단순 언어장애의 원인A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Investigation of Verbal Working Memory in Adolescents With Specific Language ImpairmentEllis Weismer, Planate, Jones Tomblin단순 언어장애의 원인신경운동기기 능력 (Neuromotor Skills) SLI들은 전형적으로 “경미한” 신경정신학적 사인(어색함, 낮은 집중력, 약한 행동장애 등)을 보임 신경성장관점에서의 뒤처짐이 SLI의 근원 중 하나일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 일으킴 신경운동기기의 부족과 언어장애 사이에서의 연관성을 많은 연구들이 입증 사회적, 행동학적 기능 □ 말이 늦은 아동들은 언어적 어려움에 기인한 사회 능력 부족을 보이기도 함 취학 전 SLI 아동들은 상호작용을 시작하는 경향을 덜 보이고, 이에 따라 또래들과 의사소통 혹은 사회성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제한 받으나 연령이 올라d Lee, 2001, Tetnowski, 2004)기타 요인 (Paul)표준화된 지능 척도에서는 측정되지 않는 인지적 결함 □7-14세 SLI 아동 IQ가 비언어적 일반 아동 평균 보다 20점 낮음 (Botting, 2005) 적극적인 정보처리 전략 미사용; 진행적 정보, 기억, 문제해결에서 문제점 발생 인지적 처리 용량의 제한: 반응의 정확성과 속도 간의 균형의 문제 □음운적 정보처리와 저장의 저하 및 비효율적인 빠른 이름 연결하기(fast-mapping) □제공된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능력에서만 문제가 있는 것(Tallal et al. ,1966) □느린 청각 정보처리가 언어 장애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 일 가능성 제기(Bishop, 1997) □느린 낱말 인식과 비효과적인 문장 이해 □ 음운적 처리 용량의 저하; 무의미한 낱말들의 반복의 어려움을 보이나 음운 인식 결함은 없음 □ 소리의 음조와 길이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지며, 문장이 복잡해 질수록 더 많은 산출 오류를 보임 작업기억의 전반적인 문제의 가능성; 제한된 정보 저장 및 처리 용량 □ 길이와 복잡성이 SLI 수행 오류에 가장 큰 영향 (Deevy Leonard, 2004)인지/ 정보처리 요인단순언어장애 아동의 발생률 및 발달 특성전체 아동의 10~15%가 '말 늦은 아동'(Late Talkers) '말 늦은 아동'(LT)의 20~50%가 단순언어장애(SLI)로 발전 언어를 제외한 영역에서는 두드러진 문제를 나타내지 않음 SLI의 발달특성 전체 유치원 아동의 7.4%로 추정 성장하면서 가변 가능 SLI 유치원생의 2/3은 청소년기까지 지속됨 SLI 중 많은 비율이 학습장애 특히, 읽기장애로 이어짐(Eisenmajer, Ross Pratt, 2005) -SLI와 학습 장애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다른 연령대의 같은 문제점 징후로 보아야 함(Tallal, 1998) 아동기: 말하기 / 학령기 -읽기 장애는 해독능력 부족, 이해 장애는 의미론, 구문론적 어려움의 두 양상으로 보아야 함(Bishop, 20의 배제 초등학령 기 후반~중학교-자긍심의 상처,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 중.고등학교-과묵함과 극도의 고립성으로 인한 따돌림, 괴롭힘 (Rubin, Burgess Coplan, 2002) 심각성 수준에 따라 예후가 달라짐 비단어 반복, “재빠른 연결”을 통한 단어 학습 능력, 담화 능력, 특정 말운동 능력과 문장 반복 과제로 학령기 언어장애 수준 예측 가능단순언어 장애아의 언어 특성 (참고;아동언어장애의 진단 및 치료, 김영태)① 어휘적 특성 ▪초기 낱만 산출이 지체 (일반아동:생후 1년경, 단순언어장애 아동들: 2세경) ▪산출 유형은 유사한 형태(보통명사 55%, 행동, 속성 나타내는 표현:12%) ▪동사 습득 및 사용에 특히 어려움 ▪초기 낱말 산출 뿐 아니라 이후 어휘 학습에서도 지체 (fast-mapping 능력 제한) ▪낱말찾기 (word-finding)의 문제 :머뭇거림, 에둘러 표현하기, 모호하게 표현하기-장기기억 저장 문제의 가능성의미론①구문적 특성 ▪비교적 느린 약 3세경에 구문 산출 시작 ▪구문 습득 시점, 습득 패턴은 일반아동들과 유사 ▪특정 구문 오류를 더 오래 지속 및 습득한 구문능력 확장 사용에 제한 ▪명사, 동사와 같은 주요한 문법적인 범주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음 ▪능동태에 비하여 수동태 문장, 실현 가능한 문장에 비하여 실현 불가능한 문장을 이해하는데 더 어려움을 보임 ▪낱말순서 전략이 적용되지 않은 문장을 이해하는데 특히 어려움을 보임통사론/ 형태론② 의미 관계적 특성 ▪첫 낱말 습득 이후 낱말 조합의 지체 (일반아동:18개월 전후, 단순언어장애 아동:37개월) ▪의미관계 산출이 매우 제한▪의사소통 기능면에서는 일반 아동들과 특별한 차이를 보이지 않음 (Leonard et al.,1978) ▪대화 개시, 대답하는 능력에서 일반 아동들과 별다른 차이를 나타내지 않음. (Leonard,1986) ▪적극적이고 자기 주장적인 특성을 나타냄 ▪자신보다 어린 정상 발달 아동처럼 행동 ▪또래 정상 발달 아동과 같은 화용기능을 갖고 있으나 덜을 보임.화용론단순언어 장애아의 언어 특성 (참고;아동언어장애의 진단 및 치료, 김영태)▪음운 측면에서는 특징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으나, 표현능력의 지체로 인해 말소리 습득 지연 및 오류 음운 형태를 오래 나타내는 경우가 많음 ▪말소리 습득 순서나 산출한 음운변동의 유형들은 생활연령이 어린 아동들과 유사한 특성을 보임 ▪초기 아동의 어휘습득과 말소리 발달과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 진행 중음운론▪형태소와 같은 지속기간이 짧은 단위에 대한 변별 능력이 떨어짐 ▪문장에 대한 이해가 비효과적 ▪문자음소적, 형태론적, 의미적 또는 화용적으로 관련 없는 읽기 오류를 종종 나타냄이해②형태적 특성 ▪단순언어장애 아동들이 일반아동에 비해 가장 많이 차이를 보이는 영역 ▪ 전반적인 형태소 습득과 산출 연구에 대한 결과가 상이 -Morehead, Ingram(1973):단순장애 아동들의 낱말 및 형태소 사용 비율이 일반아동들과 비교 시, 차이가 없음 -Steckol,Leonard(1979):단순언어장애아동이 일반아동들에 비하여 형태소 사용비율 및 사용량이 적음 ▪단순언어장애 아동들은 동사와 관련 형태소, 특히 과거형 형태소 사용에 어려움을 보임 ▪문법형태소-그림에서 지적하기, 판단과제를 사용 : 문법 형태소를 이해하고, 오류를 인지하는데 어려움을 보임SLI 아동들이 지니는 어려움 (Connell Stone, 1994; Ellis Weismer, 1991 등) 언어규칙의 학습 서로 다른 언어 문맥간의 연결 어휘 성장을 위한 낱말-참조물간의 연결 형성 (fast-mapping) 형태론적, 음운론적 규칙의 학습 및 적용 어휘 발달 의도를 성취하기 위한 효과적인 언어 형태의 사용진단 기법 및 국내 법규정보건복지부 '장애등급 판정기준 개정안 中'수세기 연속적인 숫자의 회상 무의미한 낱말 반복 규칙의 추리 이야기 회상 산출 문법 완성하기 동사 표지들, 발화 표본에서 다른 낱말들의 수 듣기나 읽기를 하는 동안 기억 및 해석하기 등진단기법단순언어장애 아동의 기억과 인식 중재▪글자와 사물 이름 말}
취학전 아동의 수용언어 및 표현언어 척도 (PRES: Preschool Receptive-Expressive Language Scale)검사도구 개요검사도구 이름 취학전 아동의 수용언어 및 표현언어 척도(PRES) 저자 및 출판연도 김영태, 성태제, 이윤경 (2001, 출판중) 검사목적 언어발달 수준이 2-6세에 해당되는 아동들의 수용언어 및 표현언어 능력을 측정. 결과를 통해 언어 발달의 정상 혹은 지체를 판별하고, 수용 언어 및 표현언어 발달 간의 차이 분석 가능검사도구 개요검사구성 ①수용언어 45문항 + 표현언어 45문항 ②수용언어, 표현언어 모두 15개의 언어 발달 단계로 구성 (1;0~4;0세까지는 3개월 간격, 4;1~6;6세 까지는 6개월 간격) 검사 문항 내용 ①인지개념 및 의미론적 언어능력 ②조음 및 구문론적 언어능력 ③사회적 상호작용 능력과 관련되는 화용적인 언어능력검사도구 개요검사 문항 내용검사도구 개요검사 대상 및 연령 ▪ 대상은 2세에서 6세의 정상 아동뿐 아니라 언어발달 지체나 장애를 나타낼 가능성이 있는 아동들의 언어능력을 평가하는 데 사용 ▪ 단순언어장애, 정신지체, 자폐, 뇌성마비, 청각장애, 구개파열 등으로 인하여 언어발달에 결함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는 아동들의 언어능력을 평가하는데 활용검사 절차사전 준비물: 검사지, 검사실시 요강, 그림 자료책, 사물자료검사 절차검사 실시 전 사전준비과정 ①아동과의 친밀감 형성 ②검사의 기초정보 기록;아동 이름, 성별, 검사날짜, 생활연령 등 ③아동정보 기록;신체, 언어발달 상의 특이상황, 동반 장애 등 ④검사 도구 조작 방법 등 숙지 ⑤결과 기록 및 채점 방법 숙지검사 절차채점 방법+/-+--+/- or --틀린 반응이나 못한다고 전혀 시도하지 않는 반응--+/-+/-+ or +/-+/-일관성이 없거나 애매한 반응+++정확하게 반응최종 평가주 양육자 점수검사자 점수기준검사 절차검사실시 ①검사는 수용언어검사부터 시작한다. 아동의 생활연령에 해당하는 연령단계에서 한 단계 낮은 연령단계의 첫 번째 문항부터 시작한다. ②표현언어검사는 수용언어검사가 끝난 후 실시한다. 검사는 수용언어검사를 시작한 문항번호에서 시작하거나 수용언어의 기초선이 확립된 단계에서부터 시작한다. ③기초선은 아동이 세 문항에서 모두 '+'를 받는 연령단계로 한다. 검사를 시작한 연령단계 이전의 낮은 번호 문항으로 계속 내려간다. ④기초선을 확립한 후에는 처음 시작한 문항의 다음 문항부터 다시 높은 번호 문항으로 계속 올라간다. 계속 올라가다가 한 연령단계의 세 문항 모두 '–'가 나오면 그 연령단계를 최고 한계선으로 한다.검사결과 처리-발달지수 산출언어발달 연령의 산출 ①연령단계에 기초한 언어발달 연령 산출 ▪언어발달연령 산출은 각 검사별 기초선이 확립된 이후 처음으로 '–'가 두 개 이상 나타난 연령단계의 평균연령으로 산출 ▪소수점은 반올림 (예,61~66개월인 경우 64개월) ▪수용언어 발달연령, 표현언어 발달연령, 통합언어 발달연령 산출 ②획득점수에 기초한 언어발달 연령의 산출 ▪산출 연령단계와 상관없이 아동이 최고한계선까지 획득한 점수를 기초로 산출 ▪점수는 기초선 이후 최고한계선까지 아동이 획득한 점수를 계산하는데, 점수 계산은 검사지침서의 표에 제시되어 있는 문항별 점수를 참조하여 총 획득점수를 산출하며, 이에 기초하여 언어발달연령을 산출검사결과 처리-발달지수 산출문항별 점수검사결과 처리-발달지수 산출언어지수: 각 영역의 언어발달연령을 생활연령으로 나누어 준 다음 100을 곱하여 언어지수를 산출 백분위 점수: 얻어진 자료의 크기를 순서로 늘어놓아 100등분 한 값으로 아동이 획득한 점수가 동 연령대 아동들 중에서 어느 정도에 해당하는지 상대적인 위치를 제시검사결과 처리-발달지수 산출①수용언어 발달연령(RLA): '-'가 두 개이상 나타난 수용언어 단계의 평균발달연령 ②수용언어지수(RQ) : RQ=RLA/CA X100 ③ 표현언어 발달연령(ELA); '-'가 두 개 이상 나타난 표현언어 단계의 평균 발달연령 ④표현언어지수: EQ= ELA/CA X100 ⑤통합언어 발달연령(CLA); CLA= (RLA+ELA) /2 ⑥언어지수(LQ); LQ=CLA/CA X100검사결과 처리 및 해석검사결과의 해석'다소 빠른 언어발달'통합언어발달연령(CLA) 생활연령(CA)+1세이상 통합언어지수(LQ)가 115이상정상 범위통합언어발달연령(CLA) 생활연령(CA)-1세미만 통합언어지수(LQ)가 85-115'약간의 언어발달 지체'통합언어발달연령(CLA) 생활연령(CA)-1세~2세미만 통합언어지수(LQ)가 85미만 70이상언어장애통합언어발달연령(CLA) 생활연령(CA)-2세이상 통합언어지수(LQ)가 70이하검사결과 처리 및 해석특정 언어영역 장애의 판별 아동의 수용언어 발달연령(RLA)과 표현언어 발달 연령(ELA)이 2세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에는 특정 언어영역의 장애(수용언어장애/표현언어장애)로 간주 하위 구성영역의 정확율 산출을 통해 언어의 하위구성영역 능력 비교 가능 문항 분석을 통해 아동의 어휘 및 문장구조, 또는 의사소통 기능 등에서의 강점과 약점 고찰 가능- 언어 훈련 및 중재 계획 수립에 활용 가능진단도구의 장/단점①실시해야 하는 검사 문항이 많고, 검사 방법이 다소 복잡한 문항들이 포함되어 있어 검사 실시 시간이 오래 걸림 ②의미장애, 구문장애, 화용장애 등 구체적인 장애를 판별하기에는 하위 구성 영역별 문항의 수가 부족 ③검사에서 제시한 규준 추출의 한계;서울 경기 지역의 621명의 일반 아동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를 기준 ④언어장애 집단과의 수행 비교 불가 ⑤언어발달연령과 실질적인 의사소통 능력간의 괴리 설명 불가단점①언어의 의미론, 구문론, 화용론 측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언어의 수용-표현 측면뿐 아니라 구체적인 언어 영역들에 대한 평가가 가능 ②주 양육자의 의견을 참조하도록 하여, 아동들의 검사상황에 익숙하지 못하여 나타낼 수 있는 문제를 감소 ③자신의 아동에 대하여 너무 과장하거나 과소 평가하는 부모의 성향으로 검사의 결과가 오염되지 않도록 체계적인 참조 방법을 사용 ④지체나 장애의 조기 진단이 가능하여, 조기 교육기관 및 치료기관에서 폭 넓게 활용 가능장점{nameOfApplication=Show}
들어가며『비전시대의 조직패러다임』은 변화무쌍한 오늘날의 사회에서 복잡한 조직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나가야 하는 조직의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시각과 새로운 자질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이는 원제『Reframing Organization』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대의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을 재구성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지도자들은 조직이 나아갈 비전을 제시하고, 이에 걸맞는 의사결정으로 조직을 통합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효과적으로 적응해나가도록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현재 우리 삶에서 한 인간이 어떠한 조직에도 속해있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나만해도 작게는 가족이라는 사회의 한 구성원이자, 동시에 학교, 동아리, 그리고 우리나라라는 거대한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직은 영원불멸 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가족구조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는 잘 알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진행으로 예전의 대가족으로서의 가족 조직은 더 이상 시대와 어울리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고,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있다. 즉, 이는 조직은 환경이 변화하면서 그 환경에 맞도록 다시 재구성 되야 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학교라는 작은 사회하나만을 보더라도,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교의 구조가 다 다르고, 구성원들의 행동양식과, 인식이 다르다. 그리고 학교 조직 역시, 환경의 변화에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하면서 나름대로 자신들의 구조를 개편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네 가지 인식 틀 중에서 세가지를 중심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구조와, 그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 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Ⅰ. 구조적 인식틀구조적 관점은 조직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체계라는 전제를 가지고 두개의 이론을 가지고 있다. 조직이 최대의 태를 제시한 베버의 관료제이론이 그것이다. 또한 민츠버그는 조직 구조가 중추적 과업을 수행하는 일선현업 부문과, 관리부문, 전문기술관리 부문, 지원 스텝부문, 그리고 조직의 전략 방향을 설정하는 최고경영층의 요소로 되어있다고 본다. 이러한 구조는 각 조직의 특성에 따라, 혹은 환경의 변화, 기술의 변화 조직의 성장, 정치풍토의 변화, 리더십의 변화 등에 따라서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만일 이에 대해 적절한 구조개편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조직은 구조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개편은, 각 구조가 지닌 특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하게 일반적 원칙만을 적용하다가는 실패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구조적 딜레마’에 빠진 학교의 예로 나는 몇 해전 사회적으로도 크게 물의를 일으킨 상문 고등학교 비리 사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상문 고등학교 사태는 1994년 학교경영자의 내신성적 조작, 찬조금 부당징수, 보충수업 비 유용 등 23억원의 공금횡령으로 인해 사립학교 운영자 모두에게 명예를 실추시킨 사건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사회가 인사권, 회계권 등 모든 권한을 독점한 폐쇄된 학교구조 속에서는 그러한 비리가 만연할 수 밖에 없다고 비판하면서, 이 학교의 구조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즉, 학교가 개방된 구조를 요구하는 사회의 흐름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폐쇄풍토를 고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 사건은 학교장이나 이사장에게만 모든 권한이 부여되는 중앙 집권적인 구조는 더 이상 그 효과를 발휘 할 수 없음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학교는 이제 폐쇄적 풍토에서 벗어나 그 구성원들에게 책임을 할당하고 다양한 활동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 구성원들이 조직에 대하여 신뢰를 갖을 수 있고, 행정가와 구성원들 사이에 신뢰가 존재해야 만이 조직은 목표를 달성하는데 효과적인 제 기능을 발휘 할 수 있기 때문이다.Ⅱ. 인적자원적 인식틀인적자원적 인식틀은 개인과 조직의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졌을 때, 둘 모두에게 이롭다는 인식을 가정하고 기회를 내주는 참여적 경영과 개인에게 더 많은 자유와 권한을 부여하며, 도전적인 목표와 책임감을 갖게 하는 직무 충실화를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작업진단이 자율적이고 자주적으로 관리 하도록 하는 자주관리와, 종업원들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조직민주화,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토의와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인 설문조사 피드백,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직에서의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환기시켜 성공한 일본식 경영과 미국식 경영의 조합인 Z이론 등을 해결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인간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조직에서의 권력, 갈등에 대한 문제를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조직은 사람으로 구성된 집합으로, 사람이 없으면 조직도 없는 것이다. 때문에 조직 안에서의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 조직의 지도자는 구성원들의 욕구와 그들 간의 상호관계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들은 이점을 간과하고 있는 듯 하다. 무엇보다, 인간이 우선시 되어야 할 교육에서, 인간이 배제되어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학교의 구성원을 학교장과 교사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나는 여기서 학교의 제 일의 구성원으로서 학생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학생이 없다면 학교도 없는 것이다. 다음은 올해 벌어진 대학 수학능력시험 부정사건에 대한 한 교사가 국민참여마당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 중 일부이다.‘국민 여러분 감히 누구에게 이 죄 값을 돌리겠습니까? 모두 저의 잘못입니다. 양심을 가르치지 못하고, 진실을 가르치지 못하고, 잘못을 잘못이라 가르치지 못했던 이 형편없는 선생 놈의 잘못입니다. 제도를 탓하지 않습니다. 시대를 탓하지 않습니다. 모두 사람의 잘못입니다. 사람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 간판이 들어서 있고, 인격이 바로 서야 할 자리에 외모가 들어서 있고, 용기와 양심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 특권과 물질이 부정사건을 학생들만의 잘못이라고 선뜻 얘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들 학생에 대한 처벌 방침을 모색하고 있고, 다음 해부터는 수험 장에 전파차단기를 설치한다는 대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처리보다 앞서서 학교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가 계속해서 학생들을 대학으로 내보내기 위한 산출물로서만 바라본다면, 이는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학교는 조직의 목표부터 다시 세워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상위대학에 보내는 것이라는 학교의 목표가 바뀌지 않는 이상, 학생들을 도구로서 보는 인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 혼자의 힘으로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사회의 인식 또한 변화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변하기까지 마냥 기다릴 수많은 없는 노릇이다.Ⅲ. 정치적 인식틀현재 모든 조직에서 우리는 여러 갈래의 복합적인 개인이익과 집단 이익이 충돌하는 현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정치적 인식론은 지속적인 이해 대립과 희소자원으로 인해, 담합집단 그리고 구성원들과의 갈등은 불가피한 현상이며, 권력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갈등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조직 내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본다는 점이다. 즉 자원이 희소하고 우선순위가 불가능한 상황 때문에 경쟁이 나타나고, 갈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관점의 초점은 갈등의 해소가 아닌 갈등 전략과 전술에 있다. 갈등을 없애버릴 수는 없기 때문에 문제는 개인과 집단이 어떻게 하면 갈등을 잘 활용하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도자에게는 정치적 기술이 요구되며 이러한 전술에는 비전을 제시하고 달성 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는 공동과제의 설정, 비전 달성을 위해 필요한 인물을 파악하고, 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구축하는 인맥과 지원세력의 구축이 있다. 또한 공통된 이해와 상반된 이해가 존재 할 때, 이들 사이를 교섭하는 협상의 기술도 이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러한수 있다. 먼저 교실내부에서의 정치적 활동을 살펴보면, 반장과 부반장 등 학급 임원에 의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같은 반 학생들에 의해 민주적인 절차를 걸쳐서 선출됨으로써 일정한 권력을 지닌다. 때문에 우리는 반장이라고 하면, 흔히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셨을 때, 칠판에 떠든 사람의 이름을 적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이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공식적 권위를 가지고 이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장의 권력은 반 내부에서 비공식적으로 권위를 가지고 있는 학생에 의해 떨어지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짱’ 이다. 그들은 어떠한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권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학급 구성원들의 인식 안에서 그들의 힘은 선생님을 능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반된 권위 때문에 종종 이 둘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이 둘의 갈등은 반 전체의 긴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교실내부의 갈등은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잘 나타나 있다. 이밖에 학교에서 나타나는 정치활동에는 특별한 지위, 예를 들면 주임교사 자리를 두고 나타나는 교사들의 갈등, 혹은 교실 내에서의 학생과 교사와의 갈등, 그리고 행정적인 문제를 둘러싼 학교장과 교사와의 갈등 등 많은 형태가 있으며, 특히 요즘은 학교 운영위원회라고 하는 학부모 집단과 학교와의 갈등에서 빚어지는 정치상황 또한 무시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의 근원은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경우가 많고, 조직이 이러한 갈등을 건설적이고, 윤리적인 방법으로 원만하게 해결해 나가면, 조직은 한 층 더 성숙한 단계로 발전 할 수 있게 된다.나오며조직을 구성하고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 지도자들에게는 구조적, 인적자원적 ,정치적 등 다양한 인식체계의 활용이 필요하다. 하나의 편협한 사고로는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조직도 완벽할 수는 없다. 완벽하다면 그 조직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쇠퇴하는 길 밖에 남지 않았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들어가며...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는, 왜 경영학이나, 경제학 등 실용학문을 전공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이중전공이나 부전공으로 이들을 공부했으면, 나에게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후회를 하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저한 계산능력과, 논리적 분석능력을 가진 사람, 혹은 흔히 말하는 경영마인드를 가진 인재들을 찾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이 어떠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인문학의 위기 가 도래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래도 영문학은 좀 나은 편일 수도 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학부제라는 제도 하에서 철학과는 가장 낮은 지원 율을 기록하고 있고 나 역시 철학은 왠지 나와는 거리가 먼 학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러 공부를 하면서, 어떤 학문을 공부하던지 간에, 많은 분야에서 철학적 배경의 이해를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현재 교직이수를 하고 있는데, 교직이수 필수과목 중에는 교육철학이라는 과목이 있고, 법대 부전공을 하고 있는 내 친구 또한 한 과목에서, 법 사조에 대한 철학적 배경을 공부하느라고 진땀을 빼고 있다. 즉, 이는 철학이 우리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배운 철학적 지식을 조금이나마 나의 전공과 연계시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영문학을 해석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후, 앞으로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1. 해석학이란 무엇인가?해석학(解釋學)이란 말 그대로, 무엇인가를 풀어서 설명하는 학문을 말한다. 여기서 무엇인가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는데, 이것이 변화함에 따라서 해석학이 점점 학문의 틀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적 의미의 해석학의 계보는 현대 해석학의 아버지 라고 불리는 슐라이어마허(Schleier 순수이성비판이론 을 그 표본으로 삼았다. 딜타이의 이성이 우리 앞에 오늘날 놓여 있는 것처럼 이성은 이미 새로운 사실, 즉 그것의 힘찬 추구 속에 사는 행운을 우리가 가지는 사회적, 도덕적 역사적 학문들의 새로운 등장에 의해 확장되어졌다. 라는 말은 그가 칸트와 마찬가지로 이성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렇게 해서 생긴, 역사이성비판이론 은 모든 인간의 표현이 역사적 과정의 부분이며, 역사적 문맥에서 설명되어야 함과, 우리가 다양한 시대상황과 각각의 개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과 관점 속으로 들어가야만 함을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칸트가 선험을 근거로 순수이성비판이론 을 수립했다면, 딜타이는 체험, 경험을 통한 역사이성비판 이론을 펼친 것이다. 왜냐하면 유한한 인간에게는 절대적 이성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역사적 이성을 바탕으로 한 이해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딜타이로 인해 방법론으로 인정을 받은 해석학은, 실존주의자 하이데거(Heidegger, Martin)가 그의 유명한 저서『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에서 전개한 기초 존재론 에 의해, 존재론적 입장을 갖게된다. 하이데거는 이해란 인문 과학의 특수한 방법이 아니라 인간 존재 그 자체의 근본적인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이해는 충실한 자료 해석의 방법이라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인간 존재의 기본 구조에 대한 해석이며 그것의 존재 양식이라는 것이다.(윤평중, 2002. p102) 이로써 해석학은 방법론적 해석학에서 진정한 철학의 해석학의 모습을 갖게된다.해석학은 하이데거의 입장을 받아들인 가다머(Gadamer, Hans-Georg)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어 실존주의적 입장을 탈피하고, 모든 학문, 인식, 지식을 해석학을 기초로 하게끔 하는 보편적 인식이론을 정립하게 된다. 이렇게, 딜타이의 정신과학 방법론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에서 출발한 가다머의 해석학은 인간적 현실 자체의 언어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언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가다머는 , 이를 발전시켜서, 사회철학을 탄생시켰다.2. 해석학적 관점으로 본 영문학의 이해2.1 영문학 이해와 언어관계문학은 모국어로 쓰여짐으로서, 자연스럽게 각 작품의 소설가와 시인들의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즉 비트겐슈타인이 정의한 우리를 삶과 연결시켜 주는 언어로서 자연언어 가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는 임의적이고, 애매한 면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언어가 쓰이는 삶의 형식, 인식체계, 사고관계가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지닌다. 영어와 영문학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면, 이에 대한 개념을 보다 잘 알 수 있게 된다.영국이 낳은 최고의 극작가, 영문학의 자존심 셰익스피어의 글을 원문으로 읽는 것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에게조차도 어려운 일이다. 17세기 영어가 현대영어는 단어뿐만 아니라 형식면에서도 현저한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용 사전이 따로 있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에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댄 브라운의 추리소설『다빈치 코드』를 읽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영어, 현재 미국에서 쓰이는 영어로 쓰인 소설이기 때문이다.『다빈치 코드』에서, 단어는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다시 말해, 같은 단어라도 그 단어를 사용한 사람의 의도를 고려하면서, 다르게 해석함에 따라, 주인공은 차츰 차츰 사건을 해결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를 보면, 확실히 언어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성, 임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또한 동시대의 작품이라 할 지라도, 어느 지방출신 작가의 작품인가에 따라서 그 작품에 대한 이해 정도의 차이가 생긴다. 특히 흑인출신들은 자신들의 방언을 섞어가면서 글을 쓰기 때문에,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같은 영어라 할지라도, 둘의 문법체계와, 단어는 상당히 다르다. 때문에, 이를 번역할 때는 상당한 고충이 따른다. 먼저,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후, 그 다름을 나타내주기 위한 장치를 덧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크 트웨인의『허클베리 할 수 있다.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언어는 임의성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변화 가능한 역동성 또한 갖고 있다. 하지만 언어가 변화한다는 것은, 그저 아무런 의미 없이, 규칙없이 변하고 싶은 대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역사와 함께, 당시 시대상황에 맞게, 수년간 갈고 닦이면서 변화하는 것이다. 특히 영어에는 라틴어계 언어로부터 차용된 단어가 많이 있는데, 이는 영국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예를 들어, 소고기(beef), 돼지고기(pork) 등 음식을 나타내는 말은 노르만족이 영국을 지배했을 때, 들어온 어휘들이다. 따라서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수많은 뜻과,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언어가 창출해 내는 진실을 알아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2.2 영문학 이해와 역사성 관계가다머는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작가의 제약, 독자의 제약 속에서, 작가의 지평과 독자의 지평이 충돌하고, 융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아주 단순하게 설명 될 수 있다. 우리가 독서를 통해 자신이 평소에 하지 못하는, 어쩌면 평생 할 수 없는 간접적인 경험을 하면서, 견문을 넓혀 감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을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내가, 유럽에 대한 책을 읽으면, 그 나라들의 문화와, 특성들을 알게되고, 또는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현재 한국에 있는 나의 제약과, 나와 직접 만날 수 없는 작가의 제약, 유럽여행을 다녀온 작가의 지평과, 유럽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의 지평이 처음에는 융합되는 것으로 설명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여행서적 같은 실용서적 뿐 아니라, 문학 작품 읽기에서도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는 수많은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예전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공포감에 싸여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가끔은 한 작품이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홧점이 되기도 한다.그리스 신화를 생각해보자. 이는 그리스에 전해 내려오는 옛 전설들을 모아서, 시인이나 문인들이 이야기로 엮은 것이다. 모든 민족의 신화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화도의 지평을 넓혀 대작을 완성하고, 이를 들고, 자신들은 독자들에게 말 걸어오는 것이다.이와 같은 현상은 꼭 문학 작품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의 대화, TV, 영화 등을 통해서 우리는 수많은 자신의 지평 밖의 것과 충돌한다. 때로는 이러한 충돌이 충돌로 그치고, 자신의 지평을 고수하도록 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서 우리는 충돌을 넘어, 남의 것을 이해하고 수용하여 자신의 것에 융합시킴으로서 지평을 확장해 나간다. 이가 바로 가다머가 말하는 영향사적 의식인 것이다.2.3 영문학 이해와 순환성 관계가다머는 어떠한 대상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 주는 것이 선입견 이라고 했다. 이러한 선입견은 모국어, 권위에 대한 믿음, 전통 등 개인적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작업을 통해서 형성된 것을 뜻한다. 그러나 선입견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환 가능한 것으로서, 반성적 사고를 통해서 전환이 되기도 한다. 또한 선입견을 지지해 주는 권위는, 사람들의 요구를 통해서 획득된 것으로서, 맹목적인 것이 아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전통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은 그들이 의식적으로 선택한 행동이지, 그저 권위에 복종하는 형태의 움직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문학에서는, 이러한 흐름 또한 찾아 볼 수 있다.19세기 에머슨을 중심으로 나타난 초절주의 운동은 낭만주의 독일 철학과 영국 작가들의 영향을 받아서 인간의 마음과 자연 속에 신이 내재하고 있고, 지식을 얻는 최고의 원천은 개인의 직관이라는 믿음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그 이전 시대에 지배적이었던, 청교도라는 전통에 대한 반항이었다. 시간에 따라서 변질되어 가고, 타락한 청교도를 보고, 초절주의자들은 새로운 사상을 계속해서 갈구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초절주의인 것이다. 그래서 에머슨의 『자연론』(Nature)을 보면, 기쁨이 자연 속에, 인간의 마음속에, 또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다시 호손에 가서 다른 양상으로 바뀐다. 초절주의에 영향을 받은 호손은, 초절 있다.
1.들어가며영문과를 들어와서, 영문학을 공부한지 3년이 지났지만, 시 수업을 들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시는 공부되어 지기보다는 그저 독자에게 느껴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여태껏 나는, 시란 감수성이 풍부한 시인이 그때그때 자신의 느낌을 언어로 옮기고, 그 단어들이 모여 간단한 운율을 이루고, 하나의 형식으로서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면 그것으로서 충분하다고 여겼었다. 그래서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고, 나 또한 시인이 될 수 있으며, 시작 활동이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완벽히 외우는 영시가 없는 것은 둘째치고, 이름을 제대로 아는 시인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영시를 접해보자는 취지에서 이 수업을 듣기로 결정했다. 허나, 수업을 들으면서 내 생각이 큰 오산임을 아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는 그저 시인의 감정을 노래한 것이 아니었다. 시는 그 자체로서, 한편의 소설보다, 어떤 희극보다 더 시인의 생각, 세계관을 잘 나타내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시인의 인생을 얘기하기도 하며, 특히 현대시속에는 감상적인 차원을 넘어서 모든 지식이 총망라 되어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문학, 아니 세계의 문학은 폭발적인 변화를 겪는다. 이른바 19세기 빅토리아조의 특성과 결별하고, 모더니즘이 태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시는 더 이상 낭만적인 몽롱함과, 환상을 노래하지 않는다. 대신 시인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현실을 바라보고,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당대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한 시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토마스 하디(Thomas Hardy)에서 시작된 이런 흐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견고해진다. 특히 각각 1923년과 1948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영국시인, 윌리암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와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 토마스 스턴즈 엘리어트(Thomas Stearns Eliot)를 통해서 영국 시는 그하지 못하고 쇠퇴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독립혁명이라는 실질적 사건을 배경으로 실재 이에 가담한 인물들까지 언급한「1916년 부활절」(“Easter 1916”)의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 무서운 아름다움이 탄생했다 (A terrible beauty is born)에서는 조국 아일랜드가 처한 정치현실을 바라보는 예이츠의 복잡한 심기를 느낄 수 있다.마찬가지로 엘리어트의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비록 시인 자신은 이 시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무의미한 삶의 불평을 토로한 것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당대 사회에 대한 신랄한 문제제기와 비판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유산계층 여성의 방을 보여주면서 간접적으로 그녀의 수동적이고 답답한 삶의 모습을 제시한 후, 남편과의 단절된 대화로 전개되는 2장, 장기놀이 (A Game of Chess)는 부부사이의 권태를 잘 보여준다.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부인은 남편에게 계속해서 무엇인가 묻고 있지만, 남자는 무관심한 답변으로 일관할 뿐이다. 이에 대해 여자는 점점 병적으로 변하고 급기야는 남자에게 당신은 살아있기는 한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Are you alive, or not?)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 부부관계 사이에는 어떠한 교감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엘리어트는 이와 병치되게 하류계층 여성의 삶도 보여주는데, 이곳에서는 계속되는 성관계가 빚어낸 낙태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 시대가, 생명에 대한 존엄의식마저 상실한 시대임을 지적한다. 이렇듯, 예이츠와 엘리어트는, 비록 이를 나타내는 방식과 형식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당시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시를 썼음을 알 수 있다.둘째, 20세기 시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을 절제하고 이를 사물에 빗대서 나타내는 기교는 예이츠와 엘리어트 시에서 모두 나타나고 있다. 먼저 예이츠 초기시인 「도둑맞은 아이」( The Stolen Child )에서 그는, 자신자신은 모든 것이 변했으나 자연은 여전히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대조를 통해서 우리는 작가의 심정을 더 잘 느낄 수 있다.이러한 특징은 주지주의 시인의 대표자이자,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를 통한 감수성의 통합을 주장한 엘리어트에 와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 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 )에서 주인공 프루프록은 나의 삶을 커피 스푼으로 측정해 왔다 (I have measured out my life with coffee spoons)라고 하면서 자신이 무의미한 삶을 보냈음을 말하고, 판에 박힌 자신의 삶을 곤충채집판 속의 핀에 찔려있는 곤충들의 모습으로 그리는 등, 지극히 추상적이고 형이상학 적인 감정의 영역을 구체적인 물체로서 그리고 있다. 엘리엇은 시인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어떠한 개성을 갖고 있지 않다. 단지 특정한 매개물을 가질 따름이다. 그 가운데서 인상과 체험이 예기치 않은 특별한 방식으로 서로 결합된다. (요하네스 클라인 슈튀크, 1997. p14)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시론을 밝힌다. 바로 인상과 체험의 예기치 않은 결합이 엘리어트를 형이상학적 시인의 선두에 서도록 한 것이다. 두 시인의 이러한 시적 경향은 언어를 조각과 같이 구상할 것을 주장한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의 영향에 기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예이츠는 파운드가 근대의 추상적 표현으로부터 벗어나 정확성과 구체성으로 돌아가도록 나에게 도움을 주었고, 모두가 분명하고 자연스러워졌다 (이창배, 2000. p12)라고 말함으로서 자신이 파운드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시인한다. 엘리어트 또한 그는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에게 운문감각을 개선하도록 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시를 개선시켰다. (이창배, 2000. p13)라고 파운드의 공헌을 칭한다. 두 사람의 이러한 평은 다른 시인은 몰라도, 최소한 예이츠와 엘리어트가 추상적인 언어영역에서 벗어나920년대는 한 시인으로서 자신만의 상징체계를 창안하게 된다. 예이츠는 1925년 초판된 『환상』(A Vision)의 출판을 계기로, 달의 모양에 따라서 인성의 형태도 달라진다는 다소 동양적인 사상이 가미된 그만의 독특한 역사관과 철학을 이론화한다. 그리고 이는 예이츠의 후기시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예이츠의 이러한 사상은「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에서 그가 보여주는 예술과 영혼에 대한 고찰, 즉 보다 높은 차원의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모습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의 후기작품에서는 다시 내재된 불안과, 분노, 비극을 표출하면서, 이를 제어하려는 모습으로 다시 육체적인 현실의 삶으로 돌아오는 예이츠를 볼 수 있다.반면에 엘리어트는 예이츠처럼 폭 넓은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영국으로의 귀화와 개종 이후의 그의 시들에서, 이전 시와는 다른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전작들이 현실에 대한 고발이나 자기 비애 등의 부정적인 면을 나타내주는 것이었다면, 「동방박사의 여행」(“Journey of the Magi”)나 「사중주」(Four Quarters) 등은 보다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모습을 보인다. 특히 「동방박사의 여행」에서,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는 것의 어려움과, 그 속에서 해이해진 자신을 다시 일깨워 줄 또 다른 죽음 (another death)을 달게 받겠다는 화자의 말에서, 현실에 대한 비판보다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엿 볼 수 있다.3. 예이츠와 엘리어트 시의 교집합을 뺀 여집합먼저, 예이츠와 엘리어트는 시의 소재선택에서부터 차이를 보인다. 예이츠가 아일랜드의 풍경과, 민담, 전통에서부터 그 소재를 찾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과 관련하여 시를 썼으나, 엘리어트는 처음부터 프루프록으로 대변되는 현대인의 고뇌를 노래했다. 때문에 예이츠의 시를 시대 순으로 읽어보면, 그가 살던 사회의 모습과, 일어났던 사건, 그가 사랑했던 사람과, 사랑의 전개, 만남을 가졌던 사람 등, 그의 소소한 일상까지 추 변화했을 지라도 시작활동을 하는 내내 자신의 일상을 노래했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엘리어트는 시인의 정신은 인간으로서의 시인 자신의 경험에 부분적 또는 전면적으로 작용하지만, 시인이 예술가로서 완전하면 완전할수록 경험하는 인간과 창조하는 정신과의 분리가 그의 내부에서 완벽하게 되고 또 정신은 그 소재다운 여러 가지 정열을 더욱 더 완전하게 소화해서 변절시킨다. (김회진, 2000. p67)라고 말하면서, 시인의 경험한 것을 그대로 적은 것은 시가 아니고, 정신작용이 필요하다고 평했다. 물론 예이츠가 자신의 생활과 느낌을 세세하게 시로써 표현한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예이츠 또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승화하는 모습은 분명히 보인다. 하지만, 엘리어트처럼 시가 시인으로부터 완전한 독립된 존재, 몰개성적인 존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엘리어트는 주지주의 시인이라고 말함에 있어서 서슴지 않지만, 예이츠는 그렇지 않다. 케언즈 크레이그(Cairns Craig)는 『예이츠, 엘리어트, 파운드와 시의 정견』(Yeats, Eliot, Pound and the Politics of Poetry)에서 예이츠 시는 기억의 예술 (the Art of Memory) 또는 기억의 상실과 복원 (the Loss and Recovery of Memory)이라고 하고, 엘리어트의 시를 기억의 절단된 다리' (Memory's Broken Bridge)라고 정의했다. 또 혹자는 예이츠를 조화와 균형의 시인, 엘리어트를 고립과 소외의 시인이라고 평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두 시인은 시의 내용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다음으로, 작품형식 대한 얘기를 빼먹을 수 없다. 임의로 두 작가의 한 작품을 선택해서 읽으라 하면, 몇줄을 채 읽지 않고서도, 금새 누구의 작품인 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정형시와 자유시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고, 엘리어트의 시가 예이츠의 시보다 더 길고 난해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이렇게 단순화할 것이
-영미문학읽기-완성되지 않은 반항2001130377 영어영문학과 김 수 진버지니아 울프(Virgina Woolf)는 20세기 대표적인 여성작가이자 페미니즘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인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은 페미니즘에 관한 이론을 소설의 형태로 풀어나간 소설이다. 처음 이 책을 읽어보았을 때에는, 줄거리도 없고, 뚜렷한 주인공도 없어서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쓰인 곳곳의 소설적 장치들을 발견하면서 자칫 딱딱하고, 무거울 수 있었던 주제를 다소 재미있게,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표현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즉, 울프의 가치는, 신랄한 어조로 직접적인 비판을 하던 이전의 여성 작가들과는 달리, 냉정하고 이성적인 목소리로 문제제기를 하면서 그 가능성을 제시한 점에서 높이 평가 할 수 있겠다.1928년에 출판된 이 소설의 도입부에서 울프는 옥스브리지(Oxbridge)와 펀햄(Fernham)으로 대표되는 가상공간을 제시하면서, 1920년대의 남성과 여성들의 삶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진 이분법적 사회에서 어떻게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는가에 대한 고찰을 하게끔 하는 것이다. 또 여성이 가난한 이유와 여성작가가 등장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역사적 배경 안에서 설명하면서 독자가 스스로 그 해답을 찾아나가도록 하고 있다. 더불어 여성들의 유일한 해방공간이자 정체성 찾기의 탈출구로 소설을 제시하면서, 이상적인 글쓰기 형태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울프는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돈 과 자기만의 방 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을 했을 때만이 창작 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현재 우리 삶에서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살았던 시대만 하더라도, 이 두 가지가 아니, 한가지만이라도 여성에게 소유되기 매우 힘들었던 시대였음을 생각해보면, 울프가 제시한 이 두 방이라고 함은 누구나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철저한 자기만의 공간으로 이러한 곳에서야말로 진정한 창작 행위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여성에게 이런 것이 허락될 만큼 사회는 여성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인정하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이 시대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아버지들이 하셨던 것처럼 자신의 모교에 기부금을 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리하여 300년 역사를 자랑하고 여태까지 많은 기부금이 투입된 옥스브리지와 역사도 없고, 재정적으로 빈약한 펀햄 사이에는 사소한 음식부터 시작해서 도서관등의 시설, 교육수준에서 까지 많은 차이가 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당연히 남성들보다 질적으로 떨어진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고, 모든 면에서 남성들보다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여성은 자기 자신의 성공을 통한 자아성취감 획득보다는 콧등에 분칠을 하고, 옷을 예쁘게 입어 남성들에게 잘 보이려는 요조숙녀(lady)로서, 혹은 13명의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의 위치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만약 여자에게 고정된 수입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작가는 여기서 매년 500파운드의 고정 수입이 생겼을 때의 여성의 변화에 대해서 언급한다. 여태껏 여성들의 마음 한구석을 자리잡고 있던 가난에 대한 증오와 쓰라림이 사라지고 더이상 여성에게 무언가를 해주지 못하는 남성들에게 아첨할 이유도, 그들을 미워할 필요도 없게되는 것이다. 대신 증오가 있던 자리에 의식주가 충족된 것에 대한 안정감이 생기고 마침내는 자유로움이 자리잡게된다.하지만 여성의 의식에 자유로움이 자리잡기 전까지 많은 여성들의 작품에서는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분노가 표출된다. 또 여성을 남성의 반대편으로 규정지으면서 남자를 증오함과 동시에 두려워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여성들이 지적인 활동에 몰두하는 것 자체가 남성들에게 조롱의 대상(blue stockings)이었던 것을 보면 당연할 결과이다. 여성은 글을 쓰면서도 그들의 공격이렇게 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여성은 자기가 쓰고자 하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고, 또한 여성작가의 글이라는 편견으로 왜곡된 평가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글을 쓰려는 의지마저 상실하여, 글을 쓰려고도 하지 않았을 터인데, 이러한 선인 여성작가들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지금처럼 자유롭게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이렇듯 여성작가에게는 여성이라는 사실 자체가 글을 쓰는데 있어서 큰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좋은 글은 모든 욕망이 자유롭게 외부로 표출 될 때 써지게 된다. 즉 여성이 성(sex)을 떠나서 자유로운 사고를 해야만이 비로소 좋은 글이 써질 수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 과 자기만의 방 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충족이 바탕이 되어야만, 분노와 두려움이 사라지고 비로소 정신적인 독립으로부터 나오는 진정한 자유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울프는 소설과 현실의 여성들을 비교하면서, 현실 속의 여성과 소설 속의 여성들의 차이를 말해주고 있다.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소설에 등장하는 훌륭한 인격과 인품을 가지고, 모든 갈등을 풀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여성들이 과연 현실 속에 존재했는가에 대한 물음과 이러한 여성을 언급한 구절을 역사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답변을 통해서 말이다. 현실 속의 여성들은 왕족 등 뛰어난 신분이 아닌 이상, 유년시절에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정혼자와 정략결혼을 하고, 잘 읽지도, 쓰지도 못한 채, 남편의 부속물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는 소설 속에 나오는 현명한 여성들과는 너무나도 상이한 모습이다. 이때, 울프는 쥬디스(Judith)라고 불리는 가상인물을 제시한다. 쥬디스는 윌리암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으로 그의 오빠와 버금가는 능력을 지녔으나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빠와 같은 고등 교육을 받지 못했고, 아버지에 이끌려 결혼하게 되려던 찰나 집을 나와 극단에 들어갔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여성이 Browning)의 말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그러나 울프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여성은 남성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심지어는 남성보다 더 많은 것을 본다는 것이 울프의 주장이다. 현실 속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남성에게 자신들의 메마른 생각을 재생시킬 수 있도록, 신선하고, 활력적인 어떠한 것을 제공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작가가 되기 힘들었는데, 이는 높은 수준의 교육과 진정한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경험의 부재의 탓으로 돌릴 수 있겠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다시 여성의 가난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난한 여성은 여행을 말할 것도 없이,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사본다거나 글을 쓰기 위한 충분한 종이조차 사기도 힘들었다. 물론 가난한 남성작가들에게 이는 마찬가지 일 수 있었겠지만, 테니슨(Tennyson)과 같은 남성작가들에게는 그를 후원해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난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들에게는 후원자는커녕,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수많은 장애물들만이 펼쳐져 있었다. 책을 읽으려고 하는 딸에게 스타킹이나 꿰매라고 하는 어머니와,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사랑 없는 결혼을 시키는 아버지, 우여곡절 끝에 글을 쓴다고 한들, 쏟아지는 비웃음과 혹평들이 여성을 작가로 만들지 못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여성이 그들 자신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당한 장르가 소설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설은 서사시와는 달리 방대한 분량의 것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그만큼의 집중력과 시간을 요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여성의 시간에는 언제나 방해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여성에게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에는, 그 이전의 문학장르들은 그 틀이 굳어질 대로 굳어져서, 고정되었기 때문에 여성의 문체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허나, 소설만은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기에 여성이 쓰기에는 그나마 적당하다는 때문에 가능 할 수 있었다. 그 중, 대모격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으로 울프는 에이프라 벤(Aphra Behn)을 꼽는다. 그녀는 최초로 작품을 통해서 돈을 번 여성이다. 그녀야말로 여성이 여성으로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한 장본인인 셈이다. 그 후로 중산층 여성들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들이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여러 여성 작가들과 명작들을 낳은 것이다. 울프가 모든 여성들이 그녀의 무덤에 꽃을 바쳐야한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여성이 글을 쓰면, 여성이라는 굴레 안에서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는 남성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글을 쓰는데 있어서 덜 자유로웠던 여성에게는 자신의 성이 미치는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한 듯 하다. 즉, 여성이라는 것 자체가 좋은 작품을 쓰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였다는 셈이다. 그 예로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e)의 작품『제인 에어(Jane Eyre)』를 제시하고 있다. 이 소설 속의 그레이스 풀(Grace Poole)은 브론테의 울분과, 증오가 담긴 인물로 해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남성과 여성에 대한 각기 다른 잣대 때문에 세상을 등지고 숲 속의 외딴 오두막에서 살았던 죠지 엘리엇(George Eliot)을 들 수 있는데, 그녀 또한 세상에 대한 울분을 내포하고, 이 울분을 토해내기 위한 수단으로 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러한 분노는 분명 그들의 작품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이 틀림없다. 이렇게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고로 쓰여진 소설은 어딘가 정직해 보이지 못한 구석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울프는 이렇게 억압된 사고로 쓰여진 소설과는 상반되는 예로 메리 카마이클(Mary Carmichael)의 첫 작품인『인생의 모험(Life's Adventure)』을 제시한다. 그녀의 작품은 정연하게 쓰여지지는 않았지만, 여성들의 관계에 단순한 친분관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관계형성의 가능성을 불어넣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녀가 자신이 여성이라
-영미문학 읽기-로마에는 로마법만이 있는가..2001130377 영어영문학과 김 수 진가장 위대한 문학가중 한 사람이라고 칭송 받는 헨리 제임스(Henry James)는 심리학적 사실주의의 창시자이다. 심리학적 사실주의란, 작중 인물들의 의식 세계에 나타나는 정서와 태도 등을 통하여, 인간 심리의 다양한 면모를 묘사하는 기법이다. 즉, 제임스는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줄거리와 같은 사건이 아니라, 극중 인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글을 썼다는 말이 된다. 이는 그의 초기 작품인,『데이지 밀러(Daisy Miller)』에 잘 나타나 있다. 제임스는 이 소설에서 작중 인물들의 심경을 뛰어나게 묘사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이 작품에서 데이지가 윈터본(Winterbourne)을 사랑했다는 한 줄의 글도 찾아 볼 수는 없지만,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 베어 나오는 사랑의 마음을 그리 힘들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 제임스는 발랄한 미국여성과 딱딱한 유럽적 남성사이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는 다소 통속적인 줄거리를 그의 뛰어난 감각을 통해서 훌륭한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다.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제임스는 소설에 있어서, 인물들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인물(character)이란, 단순히 작품에 등장하는 개인들만을 지칭할 뿐 아니라, 관심, 욕망, 감정 등 내면적 속성들이 개성화된 한 인격체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들 인물들의 사고와 행동, 또는 그들 사이의 갈등을 통해 소설을 전개해 나간다. 헨리 제임스도 데이지와 윈터본을 대표로 해서 『데이지 밀러』라는 이 소설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들은 각각 미국과 유럽이라는 집단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미국적인 자유 분방함과 발랄함을 갖춘 데이지, 유럽적 격식에 맞추어져 수년간을 유럽적으로 살아온 미국인, 윈터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그들 내면적인 갈등이 이 소설의 주된 골격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설명해 주고 있지는 않다. 다만 보여줄 따름이다. 때문에 우 말과 행동, 또 그의 생각을 통해서 찾아내야만 한다. 이 논문에서는 데이지와 윈터본, 그리고 그들 주변사람들의 분석을 통해 헨리 제임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아보고자 한다.먼저 데이지를 살펴보자. 그녀는 매우 빼어난 미모와 부를 갖춘 미국 여성이다. 허나, 그녀의 집이 부자라고 하지만,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상류층의 계급은 못된다. 그들이 생각하는 상류층이란 가문에 오래된 전통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내려오는 관습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교양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부는 그 다음의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을 안내해주는 안내원과 가깝게 지내는 데이지와 그녀의 가족들은 이들이 말하는 품위에 어울리지 않음이 분명했다. 특히 데이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럽인들이 중요시하는 격식(decorum)에 부합되지 않은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녀의 첫 등장에서 윈터본이 모자를 쓰지 않고(bare-headed) 있다는 표현을 하는 것부터가 데이지의 이러한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데이지의 틀에 벗어난 행동들에서 윈터본은 당황함을 금치 못하나, 인위적이고, 위선적인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함을 가진 이 여성에게 묘하게 끌리는 것도 사실이다.우리는 이 소설 속의 데이지를 미국 여성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미국적인 여성이라고 함은, 자유분방하고, 개성이 강함을 뜻한다. 그녀는 윈터본과의 첫 대화에서부터 그곳의 사교계가 없음을 불평하면서, 그녀가 미국에서는 사교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고 자랑한다. 이는 데이지가 어느 미국 여성들보다 더 미국적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은 아름다우며, 괜찮은 여자 중에서 바람둥이가 아닌 여성이 있는 것을 들어보았냐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신에 대해 솔직하다. 또 자신은 미국인이며, 따라서 따분한 일상을 사는 유럽여성들의 생활에 자신을 껴 맞추어야 할 이유가 없고, 어떤 남자도 자신에게 명령하게끔 하지 않았을 뿐더러, 자신이 하는 일에 끼어 들게 있는 개성이 강한 여성이기도 하다. 데이지의 이러한 말속에는 거짓이 없다. 또한 행동을 하고, 말을 내뱉음에 있어서 그녀의 의식 속에는 주위의 평판에 대한 어떠한 두려움도 내재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그녀는 순진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여성으로 두둔되기도 하고, 교양 없는 천박한 여성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데이지의 자유분방한 행동을 천박하다거나 순진하다는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앞서서, 이가 데이지에게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다 준 것은 틀림없다. 자유로운 정신에서 비롯된 데이지의 무모함은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남자 지오바넬리(Gipvanelli)와 데이트를 하고, 그와 함께 어느 날 저녁 콜로세움으로 구경을 갔다가, 끝내는 열병에 걸려 죽음을 맞는다. 밤의 찬 공기를 맞았기 때문에 열병에 걸려 죽은 데이지를 보고, 그녀가 단순히 열병 때문에 죽었다고 믿는 사람은 몇 안될 듯 하다. 데이지가 얻은 열병은 비단 추위에서 얻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의 병은 겉으로는 자유롭고, 때로는 당돌해 보이기까지 했던 데이지의 내면 속에 자리잡은, 유럽의 냉랭한 사회적 기후를 견뎌내지 못함에서 온 스트레스에 기인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그녀가 죽기 전에 윈터본에게 자신은 지오바넬리와 약혼한 사실도, 그러할 생각도 없었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볼 때, 언제나 자유로워 보였던 데이지 역시 자신의 속내를 시원스럽게 내보이지 못했음으로 알 수 있다. 즉, 그녀의 어머니가 겪은 소화불량이나, 코스텔로 부인이 끊임없이 시달리는 두통과 같이 그녀의 열병 또한 사회에 대한 부적응에서 얻은 마음의 병이 밖으로 표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굴, 데이지는, 로마에서 로마의 법을 따르지 않음에서 온 사회적 질타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두 번째로, 윈터본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그는 미국인이지만 유럽사회에 너무나도 오랫동안 젖어있어, 유럽적인 것에 물들어 미국적인 것에 대해서는 잊고 사는 젊은 청년이다. 유럽적인 것이란, 형식적 틀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고 활동적인 미국의 그것과는 상반된다고 할 수 있겠다. 윈터본은 어린 시절부터 유럽여행을 통해서, 유럽을 여행하는 돈 많은 미국인들을 보면서 미국과 유럽의 두 문화에 대한 고찰을 했던 헨리 제임스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데이지와 그의 가족들을 바라보는 관찰자로 등장하는 윈터본은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첫눈에 끌리나, 그녀의 가족에 대하여 좋게 생각하지 않는 코스텔로 부인의 말을 듣고는 데이지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한다. 즉 편견에 쌓인 정보만을 듣고도 자신의 생각을 재고해 보는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한 발 물러서서 그녀를 살펴본다. 그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데이지는 그를 너무나도 뻣뻣한(stiff)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데이지에게는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고 매사에 이성적인 말로 그녀를 설득시키고자 하는 윈터본이 무정한 사람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윈터본은 그녀에 대해 줄곧 관찰을 하며 그녀의 실체를 파헤쳐 보려고만 했다. 즉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데이지가 연인과의 만남에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초대하고, 또 자신에게는 보잘것없는 삼류 이탈리아 청년으로 보이는 이와 아무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는 그녀가 정말 바람둥이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그녀를 진정한 신사와 가짜 신사를 구별할 능력도 없는 여자로 판단하기도 한다. 또, 코스텔로 부인이나 워커(Walker)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만으로 그녀가 교양 없는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윈터본은 처음부터 끝까지 데이지를 지켜보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그녀의 내면은 들여다보지는 못한 것이다. 아니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은 듯 하다. 즉, 그는 매력은 있으나, 자신과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난 행동을 보이는 이 철없는 여성을 그 틀에다 가두어 놓고 싶어했을 뿐이다.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그녀를 설득하려고 애를 쓴 것이다.하지만 윈터본이 줄곧 데이지의 자유분방한 행동들에 대해서 냉소 그는 코스텔로 부인에게 데이지는 길들여지지 않았을 뿐, 절대로 천박한 여성이 아니라고 두둔하며, 데이지만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과 사람을 끄는 흡인력에 빠져 그녀에게 진정으로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그녀에 대한 반감과 호감사이에서 갈등하던 윈터본은 데이지가 죽고 난 후에야, 진정으로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된다. 그는 뒤늦게 나마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들은 데이지의 마지막 남긴 말의 의미와, 지오바넬리가 그녀는 정말로 순수한(innocent) 여성이었다는 말을 한 이유에 대해서 깨닫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깨달았을 때, 자신이 미국적인 어떠한 것에 대하여 잊고 살았음을 시인하고, 후회하는 모습을 내비친다. 하지만 마지막에서 그는 똑똑한 외국여성에게 관심을 주면서, 그의 어쩔 수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데이지와 윈터본,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데이지를 포함한 그녀의 가족들은 데이지 쪽으로, 코스텔로 부인과 워커 부인, 그리고 수많은 유럽의 말 많은 사람들은 윈터본 쪽으로 분류된다. 전자는, 미국적인 사람들을 후자는 유럽적인 사람들을 뜻한다. 유럽에서조차 미국 과자를 찾고, 빨리 미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데이지의 남동생과 줄곧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그녀의 어머니는 데이지 보다 한층 더 유럽사회에 동화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대로 코스텔로 부인과 워커 부인은 유럽에 오래 전에 건너온 미국인으로서, 스스로를 유럽화 시키고, 미국인과는 분리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유럽에 놀러온 돈 많은 미국인들을 보는데 있어서 매우 부정적이다. 이들이 보기에 그들은 어쩌다 떼돈을 벌어서 생각 없이 돈을 쓰려고 놀러 다니는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데이지에게 특히 노골적인 반감을 나타내고, 데이지와 가장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코스텔로 부인도 끊임없이 두통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그녀 역시 유럽에 완전 동화되기에는 무리가 있었음을 내비치는 듯 하다. 여기서 우리는 유럽사회라는 것이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하여 철저하 있다.
이 소설은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항상 학기가 시작할 때쯤이면 나누어주는 추천 도서 목록에 올라와 있는 소설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왜 이 책을 추천도서에 올려놓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글을 일고 느낀대로 행동해도 좋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분명 우리는 학교를 뛰쳐나와야 옳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도 우리는, 나부터도 학교라는 수레바퀴 밑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리고 이제 대학을 와서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으니 그때의 생각과는 다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이 소설은 작가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들었다. 헤세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명석하고 특히 라틴어를 잘해서 장차 명문 신학교에 합격해서 존경받는 신부가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뷔르템베르크 주립 신학교에 합격했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그는 엄격한 교육방식을 견디지 못하고 한학기 만에 자퇴하고 만다. 바로 이 체험을 책으로 쓴 것이 라는 소설이다. 학교 와 사회 라는 수레바퀴 밑에서 서서히 죽어 가는 소년의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독일 남부의 한 작은 도시에 한스 기벤라트라는 재능 많고 영특한 소년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겉으로는 교양 있는 척 했지만 사실은 아들을 성직자로 만들어서 돈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랬으며 학교 선생님들이나 목사님들도 그를 유명한 신학교에 입학시켜 학교와 지역의 명성을 높이려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한스는 국가시험에 2등의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고 돌아오지만 휴식도 잠시.. 아니 어쩌면 전혀 없이 새로 시작한 공부들 때문에 한스는 그토록 좋아하는 수영과 낚시를 즐길 시간도 없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 권위 있는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그는 전체 1등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생활 속에서 한스는 친구를 사귀는데 이름은 헤르만 하일러이다. 한스는 하일러로부터 학교란 과연 무엇이며, 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 에 대해 의심하는 것을 처음으로 배운다. 어느 날 하일러가 학교로부터 처벌을 받게되자 겁이난 모범생 한스는 하일러와 절교를 한다. 하지만 힌딩거라는 가까운 친구의 익사 사건을 보고 한스는 그 동안 타협적인 삶에 대해 반성하고 하일러를 따돌린 것에 후회하고 하일러와 화해한다. 다시 둘은 가장 친한 친구사이가 되지만 한스의 변화를 탐탁스럽지 않게 여긴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외면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한스와 하일러 두 사람을 더욱 가깝게 하고, 한스의 학교 성적은 점점 떨어지기만 한다. 떨어지는 성적으로 한스는 많은 고통을 받게 되고 두통도 심해지게 된다. 그러다 하일러가 학교를 몰래 빠져나가려다 들켜 퇴학을 당하고 한스는 외톨이가 된다. 이런 힘겨운 생활을 이기지 못하고 신경쇠약으로 기진맥진하다가 졸도하는 한스는 요양을 위해 특별 휴가를 받는데 아무도 그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는 유년시절처럼 한가로운 시절을 보냈지만 학교에서 낙오한 그를 보는 주위사람들의 눈은 차갑기만 하다. 그리고 나서 한스는 생업을 잇기 위한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아버지의 주장에 따라 초등학교 동창인 아우구스트를 찾아가고 그는 철공소의 선배 기술자로써 한스를 견습공으로 받아준다. 한스는 철공소 일을 배우며 새로운 직장 세계를 알게 되지만 이 직장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 뿐이다.어느 날, 철공소 동료들과 함께 야유회를 가는데 따라나선 한스는 술자리가 시작되자 태연한 척,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는 등 동료들과 맞장구 치며 놀지만 속으로는 이것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들판으로 가서 누워 있던 그는 계곡으로 달려 내려가고 그날 밤 집에 돌아오지 않고 다음 날 계곡에서 그의 익사체가 발견된다.여기 까지는 헤세와 한스의 이야기이다. 이제는 나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중학교때부터 고등학교까지 6년 간 나는 매일 아침 일찍 학교를 가기 위해 아침밥을 거른 체 집을 나서서 버스정류장에서 학교로 가기 위한 버스를 기다린다. 그리고 학교로 가기 위한 나와 같은 학생들로 꽉꽉 차서 발 디딜 틈도 없는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를 겨우 타고 학교 앞에 내리면 거기서부터 난 또 뛰기 시작한다. 선도부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교문을 겨우겨우 통과하고, 교실로 들어서면 한숨 내쉴 겨를도 없이 선생님들의 교실 문을 두드리면서 소리치는 소리에 아침 자율학습 이란 것을 시작한다. 아침 자율학습이 끝나면 쉬는 시간 10분 그리고 다시 총 7교시 수업을 받고, 보충수업을 받은 뒤, 바로 학원을 가서는 새벽 1시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때론 지치고 힘들어도 다시 일어서야 했다. 거기서 낙오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두렵고 무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한스나 헤세.. 그리고 나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모든 동서고금의 학생들은 정말로 너무나도 똑같은 일상생활을 겪는 듯 하다. 나는 한스처럼 부모님께서 옆에서 쪼아대며 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 선생님들께서 옆에서 닥달하신 것은 더욱 아니었다. 다만 어른들의 기대감.. 또, 우리나라의 현실.., 대학이라는 문에 들어서기 위해서 내가 뒤쳐져서는 안 된다.. 라는 그런 나의 생각이 나를 이러한 수레바퀴 속에 가두어 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현 우리 교육의 모습이다. 공부에 파묻혀 숨이 막히고 수많은 낙오자가 생겨도 교육이란 수레바퀴는 여전히 무신경하게 회전을 계속하고 그 수레바퀴의 받침이 되는 우리 학생들은 깔리지 않으려면 뛰는 수밖에 없다. 교육이라는 수레 바퀴가 좀더 제약보다는 자율에, 불신임보다는 믿음과 존경에 돌 수는 없을까?? 그렇다면 더 적은 수의 낙오자가 생기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면.. 어린 기벤라트는 얼마나 훌륭하게 성장했는가.. 쓸데없이 빙빙 돌아다니는 것이라든지 또한 장난은 거의 스스로 삼갔고, 시간 중에 어리석게 웃어대는 것은 벌써 오래 전에 없어졌다. 흙을 만진다든지 혹은 토끼를 기른다든지, 그리고 그토록 즐기던 낚시질도 어느 틈에 그만 두어 버렸다. 라는 대목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아무도 한스가 정말 훌륭하게 자랐구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우리는 한스같은 아이를 보고 모범생 이라는 단어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반대로 학업의 철창 안에 갇혀 있던 한스를 일깨어 준 친구 하일러는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는 동정심을 갖게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지 못한 일을 해주는 영웅 으로도 비춰지게 된다. 하지만 현실 속, 이 시대에서 하일러같은 아이는 반항아, 나쁜 아이, 친구를 현혹하는 아이라고 질탄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마울브론 신학교 입학식을 묘사하는 장면에는 자랑스러움과 아름다운 희망에 그들의 가슴은 벅차올라, 오늘 자기들이 아이들을 금전의 이익과 바꾸어서 나라에 팔아버렸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라는 작가의 말이 있는데.. 난 여기서는 헤세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 부모님들은 항상 말씀하신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지.. 내가 무슨 덕을 보겠다고.. 이렇게 말이다. 모든 부모님들은 같지 않을까?? 이곳의 부모님들도 또한 자식이 좋은 학교를 나와서 좀더 나은 생활을 하기 바라는 뜻에서 자식들을 이 신학교에 입학시키려 했던 것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생각대로 금전의 이익과 바꾸어 나라에 팔아버린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한스의 아버지는 예외인 듯 싶지만 말이다..)그리고 이 소설에서 던져지는 물음들,, 예를 들어, 왜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 까지 공부해야 했으며 왜 그에게서 토끼를 빼앗아 버렸던가? 왜 라틴어 학교에서 일부러 그를 친구들로부터 격리시켜 버렸는가? 왜 낚시질이며 돌아다니고 노는 것을 금지시켰던가? 왜 몸과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는 것 같은 쓸데없는 공명심의 공허하고 저속한 이상을 불어넣어 주었는가? 왜 시험이 끝난 후에도 마땅히 쉬어야 할 휴가를 그에게 주지 않았는가? 이러한 물음들은 다시한번 우리의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한스와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별반 다를게 없기 때문이다. 과연 지금 우리의 교육은 올바른가? 우리의 교육현실은 이러한 물음에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해줄 수 있는가? 대답은 아니오.. 일 것이다. 학생들은 학업에 매우 집착한다. 아니, 집착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매일 밤늦게 까지 공부를 한다. 한스처럼 말이다. 물론 나부터가 그랬다. 실수로 시험문제 하나만 틀리는 것은 그저 속상한 것에 그치지 않고 대학이 바뀌고,, 과장하자면 인생을 바꾸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것을 경험하기보다는 방에 처박혀 문제집이나 풀고 교과 예습 복습을 한다, 물론 학창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해보게 된다.한스가 고향으로 내려와서 철공소 견습공이 되어 출근하는 장면에서 나는 다시 한번 현실의 무서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작업복을 입고 보니 그는 딴 사람같이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학교나 교장 선생님과 수학 선생님댁, 플라이크 일터, 목사 댁을 지나칠 때는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하일루너는 뭐라고 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한스를 보면서 만약 내가 대학이란 문을 넘지 못했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무서워 졌다. 나와 같이 출발해서 같은 수레바퀴와 경주를 했지만 그 경주에서 져서 지금 다시 그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내 친구들도 머릿속을 스쳐갔다. 내 친구들도 고등학교근처를 지나갈 때나 오랜만에 다른 친구들을 만났을 때, 그리고 친척들, 동네 어른들을 만났을 때는 한스처럼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두려움이 먼저 생긴다고 한다. 대학을 가지 못한 것이 죄는 아닌데... 하지만 죄를 지은 사람보다 더 고개가 숙여지고 비참해 지는 것이 우리나라 재수생들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대학이라는 것이 한사람을 낙오자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현실은 정말 무서운 것 같다.
Ⅰ. 서현재 우리나라 교육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허나, 이러한 논의가 하루 이틀 된 것은 아님에도 뚜렷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 않은 시점이다.『아동과 교육과정 경험과 교육』은 ‘교사는 신의 왕국의 문지기요 파수꾼이다.’라고 말한 존듀이의 교육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듀이는 아동을 교육하는데 있어서 교과과정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렇게 하여 형성된 지식을 현재 경험에 연결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하여 역설하고 있다. 또한 이를 교육적으로 적용시키는 방법에 대해서도 진보적이거나 전통적인 사상 중 어느 한 사상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교육철학을 정립하려하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100여년 전에 듀이가 지적한 문제점들이 현재 우리나라 교육현실에서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의의를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교육현실을 재검토하고 명확히 이해하여, 교육을 통한 삶의 진보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겠다.Ⅱ. 요약1. 아동과 교육과정학습자와 교육과정은 교육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교육은 이 둘의 대립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두 요소의 상호관련성을 기반으로, 교육활동을 파악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아동과 교육과정은 범위, 관심분야와 유용성의 측면에서 서로 분리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교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파와 아동의 경험내용과 성격을 강조하는 학파로 나누어진다. 교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파에서는 교육내용이 바로 교육의 목적이 되는 동시에 교육방법을 결정한다. 반면에 아동의 경험을 중시하는 학파에서는 아동을 교육의 출발점으로 여기고, 모든 기준을 아동에서 찾는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한 요소만 강조하는 입장들은 아동과 교육과정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가지고 있어, 이 두 학파가 합의점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교과와 경험은 대립되는 것이여부와는 관계없이 그대로 적어 놓은 심리적인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교과란 과거 경험의 결과를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해 놓은 것으로 경험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교육내용을 다시 경험 속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는 교사의 몫이다. 교사는 학습자들로부터 교과에 해당하는 직접적이고 생생한 경험을 이끌어 내야 한다.교과가 학습자와 관련을 갖지 못하게 될 때, 교육적 문제는 아주 심각하게 나타난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학습자 삶 속에서 아무런 유기적 관계를 맺지 못하면 학습자가 이를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는 자연히 학습자의 학습동기 결핍으로 이어진다. 학습자들은 주어진 교육내용에 대해 아무런 필요성도, 욕구도 열망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즉, 교육내용이 학습의 목표달성을 위해 따르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유용한 것이 되려면, 학생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교과의 심리화라고 한다. 한마디로, 학습자의 의식적인 삶 속에서 학습내용이 한 부분을 차지하도록 만든다는 뜻이다. 인간의 활동은 안과 밖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특징을 갖는다. 학습도 마찬가지다. 교과를 구성하고 있는 지식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학습자와 교사에게 영향을 주면서 지식과 인간사이에 교감이 나타날 때야말로 그 가치를 발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서 교사는 학습자의 능력이 마음껏 피어날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아동과 교과는 이렇듯 대립적인 것이 아닌 서로 상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사가 교육과정에 들어있는 인류의 경험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야만, 교사는 아동의 현재 힘과 능력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을 교육적으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2. 경험과 교육교육이론은 교육을 ‘외부로부터의 형성’과 ‘내부로부터의 계발’ 이라는 대립된 입장으이라고 한다. 경험의 계속성 원리는 교육적 경험에 관한 철학을 확립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원리에 따르면, 교육은 경험 내에서의 경험에 의한 경험을 위한 발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새교육은 이러한 경험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의 정립 없이, 전통적 교육과 반대방향으로만 나가려는 경향을 띄고 있다. 때문에 새교육운동이 현재 학교교육에 대한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새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험적이고 실험적인 사실에 토대를 둔 교과와 교육내용을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방안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진보주의 교육은 인간적인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이는 전통적 교육에 비해 훨씬 더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더 선호되고 있다. 여기서 가치 있는 경험이란 모든 경험 속에 작용하고 있는 계속성을 말한다. 즉 모든 경험은 당사자에게 일종의 습관을 형성하게 하고, 이는 다음의 경험에 좋은 영향이던, 나쁜 영향이던지 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교사가 아동에게 어떠한 태도 혹은 습관이 형성되고 있는가와 아동들의 마음속에서 실제로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주시할 임무가 있음에도 경험에 계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경험의 계속성을 교육실제에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자는 또한 환경적인 조건들이 경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바탕으로 아동들이 가치 있는 경험을 하기 위해 이러한 환경들의 활용방식에 대한 명확한 지식 또한 갖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객관적이고 외적인 요소와 주관적이고 내적인 요소는 따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작용하고 있다. 즉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험의 교육적인 가치는 그 경험의 상호작용과 계속성의 정도에 의해 측정, 평가된다.교육문제는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통제라는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된다. 사실상 우리는 사회적 통제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개인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스스로 통제하는 것을 자율적 통제라고 한다. 또한 자율적 통제의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즉 자유는 충동에 의해 좌우되는 것도 아니고, 외부적인 힘에 의해 휘둘리는 것도 아니라 스스로 통제할 때, 그 의미를 지닌다.자유는 한 사람이 목적을 선정하고, 이를 실행하는 것에 영향을 끼친다. 전통적인 교육의 학습 목적설정에서 학생의 참여는 전면 배제되는 반면, 진보주의 교육에서는 학생의 참여를 적극 권장한다. 그렇다면, 일단 목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진정한 목적은 항상 충동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이 자체로는 목적이 될 수 없다. 목적은 상황에 대한 관찰과, 사물에 대한 의미 파악이라는 지적 작용을 통해 설정된다. 이러한 목적설정은 교사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이다. 교사가 일정한 목적 없이, 아이에게 전혀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충동이나 욕망을 따라서 행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의 능력과 경험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들 경험을 토대로 계획을 수립해서 새로운 제안을 제시 할 수 있어야 한다.경험을 통해서 학습 내용을 설정한 후에는 경험한 내용들이 원래 상태 그대로 머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아동들의 경험내용을 교과의 형태로 접근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발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경험의 상호작용이라는 측면에서 경험과 교육, 아이와 환경은 유기적인 관련을 맺어야만 한다. 또한 모든 교육적 활동의 출발점이 경험이 되어야 한다는 경험의 계속성 원리의 입장에서 보면, 교육은 현재의 경험이 확대되고 성장하게 하는 조건이 된다. 전통적인 학교의 교과는 옛 성인들이 정해놓은 학습자의 현재 삶과는 무관한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내용 또한 계속성의 원리에 입각했을 때, 무시될 수 없는 측면을 갖고 있다. 현재의 경험은 과거의 경험과 관련을 맺어야 하며, 과거로부터 단절이 현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는 역사교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한 충족만으로는 부족했던 듯하다. 조카는 성장함에 따라서 공주가 나오는 동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카가 글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언니는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등의 비디오를 조카에게 보여주었고, 조카는 비디오를 보고 나서는 신이 나서 그 이야기를 혼자 자기만의 방법으로 다시 얘기해 주었다. 다음은 신데렐라를 보고 나서 조카가 나에게 해준 말이다. “신데렐라가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물방울에다가 자기 얼굴을 비쳐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호박이 마차로 변하였고 신데렐라는 공주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엉뚱한 이야기 같았지만, 같이 비디오를 보고 나서는 이해가 되었다. 조카는 줄거리보다는 자신이 본 것, 그 중에서 기억나는 것들만을 줄줄이 이야기했던 것이다. 아직 이야기의 인과관계와 주제 등을 파악하기에는 아이가 덜 성숙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턱이 없었다. 그러다가 조카는 유치원에서 글읽기를 배웠고, 다음해 설날에는 자신이 읽은 동화책에 대해서 꽤 조리 있게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지금 조카는 자신의 동생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등 아주 어엿한 꼬마 숙녀가 되어있다. 이 경우에서 보면, 아이의 공주에 대한 막연한 흥미와 동경이 아이가 글을 읽고 이해하도록,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남에게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정도로 성장하게끔 한 가장 큰 요인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아이가 흥미를 잃지 않도록, 사촌언니가 아이의 경험에 맞게 적절히 교재를 선택하고, 올바른 교육적 환경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언니의 교육방침이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현재 우리나라 대학교육도 경험을 토대로 한 교과과정의 중요성의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사실상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이 전공하고 있는 과목에 대해서조차 왜 그 과목을 공부하는가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있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에게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들은 자신들의 삶과는 무관한 그저 학점을 채우기 위한 수단인 경우가각한다.
● 들어가며이 소설의 주인공, 토토는 나와 닮은 듯 하지만, 굉장히 다른 소녀이다. 나도 어렸을 적에는, 토토처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호기심이 많았던 그러한 아이였던 것 같다. 토토가 전철표 파는 사람이 되고 싶어했던 것처럼,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승강기 도우미 언니가 되고 싶어했었고, 토토가 스파이가 되고 싶어했던 것처럼, 나는 영화 속에 나오는 FBI요원이 되고 싶어한 적도 있다. 이때까지 나는 왜 엘리베이터 언니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가 인상을 쓰셨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토토처럼 마냥 되고 싶었던 것이 많았던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토토와 나는 전혀 다른 구석도 있다. 나는 토토처럼 퇴학이라는 것을 경험 해 보지 못했다. 오히려, 모든 선생님들의 칭찬과 신임을 받으면서,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또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퇴학이라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토토는 다르다. 담임선생님과 다른 선생님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던 이 아이는 초등학교 때, 이미 퇴학이라는 것을 경험한다. 물론 그때 자신은 그것이 퇴학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허나, 토토는 이전 학교에서의 퇴학을 계기로,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퇴학생은 어찌 보면, 사회에서 낙오된 낙오자의 모습일 수 있다. 하지만 토토에게 있어서 만큼은, 퇴학이 그녀가 구로야나기 테츠코라는 유명 방송인이 될 수 있었던 삶의 시초를 마련해 준 셈이다. 그녀는 도모에 학원에서, 비로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자연의 소중함을 배웠고, 친구들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비단 도모에 학원 덕만은 아닌 듯 하다. 그녀를 끝없이 이해해주고, 아껴주고, 도와준 부모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글에 나타난 아이의 교육에 있어서의 부모님과, 학교의 역할, 그리고 대안학교의 모습으로 도모에 학교와 참된 교육자로 비춰지는 고바야시 교장선생님 대하여 고찰 해 보고자 한다.● 가정교육토정하시면서, 딸을 위한 결정을 내리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토토의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 들으시고, 아이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를 할 때에도, 다시 한번 아이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끝내는 아이의 뜻을 알아내어, 토토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또한 되도록이면, 아이에게 사회의 아름다운 면만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신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예로, 토토에게 퇴학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것 뿐 아니라, 조선인인 마사오짱이 토토에게 조센진 이라고 했다고 말했을 때, 다 똑같은 어린이라며, 친구라면서, 왜 그 아이가 그렇게 불리는지, 그때 그 시절이 어떠한 상황이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일체 하지 않은 일 등이 있다. 토토의 어머님은 토토가 몰라도 되는, 알아서 좋을 것이 없는 일을 굳이 아이에게 알게 하고 싶지 않으셨던 것이다. 또, 일부 학부모가 도모에 학원의 너무도 자율적인 방책을 우려하여 학교를 옮기려 할 때도, 토토의 어머님은 걱정보다는, 교장선생님의 뜻을 이해하셨다. 예를 들어, 교장 선생님이 아이에게 가장 허름한 옷을 입혀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을 때나, 도시락 반찬으로 산과 들과 바다에서 나는 것을 싸오라고 하셨을 때 등 어딘가가 보통 학교와는 다른 듯한 모습이었지만, 교장선생님의 그 큰 뜻을 알아차리고, 이를 따르며, 오히려 감사해 하셨다. 이는 아무래도 토토 어머니의 의식이 열려있었기 때문에, 교장선생님의 열린 교육관이 어렵지 않게 전달 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가정이라는 곳에서 자라나게 된다. 가정이 한 인간이 교육을 받는 첫 번째 장소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정에서도, 아이는 엄마와 가장 많은 접촉을 하면서, 커 가게 된다. 즉, 엄마는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또한 자식이 그릇되도록 가르치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하지만 자식 사랑의 방식은 너무도 다양하고, 때로는 그 방식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볼 수아이를 아이 자체로서 이해하고 가르친다면, 아이를 꾸중하는 일도, 아이에게 실망하는 일도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우리나라에서는 신사임당과 함께 한석봉의 어머니가 현명한 어머니 상의 대표격이다. 때문에, 지금 우리 시대에는 한석봉 어머니처럼 되기 위하여, 아이의 능력은 뒷전으로 한 채, 무리한 요구와, 과외수업을 강행하는 어머니들이 많은 듯 하다. 물론 불을 끄고 아이에게 글을 쓰게 한 모진 어머니, 이 어머니의 희생정신과, 엄격함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시대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과거에는 부단히 공부하여, 과거급제를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사회였으나, 지금은 각각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지 못한 채, 아무런 개성 또는 창의성 없이 학교 교육에만 의존해서는 무엇인가 이루기에 역부족인 시대가 아닌가. 그렇다면, 한석봉의 어머니와 토토의 어머니 중, 지금 우리 시대에는 아이를 위해서 어떠한 어머니가 더 필요한지, 한번쯤은 고민해 볼 만하다고 본다.● 공교육 체제의 학교토토가 원래 다니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담임선생님은 토토의 어머니에게 토토가 수업 중에 책상 뚜껑을 백 번도 여 닫는 다면서, 교실 창가에 서서 친동야를 부른다고, 미술시간에 국기를 그리라고 하면, 책상에 온통 칠을 하곤 한다고, 더 이상은 이 아이를 학교에 있기 할 수 없다고, 아이가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니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가 배운 대로라면 위와 같은 행동은 학교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수업시간에는 정해진 자리에 바른 자세로 앉아서,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 듣고, 수업 중에 돌아다니거나 떠들어서는 안되며, 미술시간에는 정해진 도화지 안에 정해진 주제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것이 교칙인 것이다. 대개의 아이들은 왜 이 규칙을 따라야 하는 지도 모른 채, 부모님이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라고 하셔서, 아니면 선생님께 혼나는 것이 싫어서 저마다 이 규칙을 지켜가면서 학교 생활을 별 무리 없이 해나 학교에 오셨어야 했지만 그 후에도 레이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여름 방학 후에는 레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누구는 레이가 일본에 만화 공부를 하러갔다고 했고, 또 다른 친구들은 가출을 했다는 등 레이를 둘러싼 뜬소문만 무성한 채 레이는 그렇게 우리교실에서 없어졌다. 담임선생님의 입장에서 보면 골칫거리가 하나 사라졌기 때문에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는 지도 모르겠으나 레이의 빈자리는 우리에게 씁쓸함을 남겨주었다. 레이가 어디로 갔는지는 잘은 몰랐지만, 그래도 그 친구는 어디에선가 학교 안에서는 금지시 되었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수밖에는 없었다.토토와 레이는 자의든 타의든 공교육 체제 안에서는 도저히 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의 학교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다양한 아이들의 특성을 모두 포용 할 수 없는 획일적이고 체계적인 규율인가 아니면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선생님의 탓인가 것도 아니면 자신을 사회에 동화시키지 못한 이들 스스로의 책임인가. 물론 이들에게도 문제는 분명 있다. 누구든지 간에 자신이 하고싶은 대로 살아갈 수는 없지 아니한가. 하지만 하고 싶다는 것이 나뿐 일이 아니라면, 최소한 누구에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 일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그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장려해 주는 것이 학교가 또는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학교가 더 높은 교육기관으로 가기 위한, 또는 사회에 나가서 성공하기 위한 준비기관으로서의 모습보다는 학생 자체의 인격을 고양시켜주고, 개개인의 개성과 특기를 잘 살려주는 모습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교육의 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대안 학교도모에 학원은 대안학교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안학교란 무엇인가? 두산 학생 백과사전에 따르면, 대안학교란 자연 친화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의 전수를 교육목표로 하고 학습자중심의 비정형적 교육과정과 다양한 교수방식을 추구하는 학교를 말한다고 고 선생님한테 꾸중을 들을 일도 없다. 미술시간이면, 강당 전체가 도화지가 되기 때문이다. 칠판, 벽, 바닥 할 것 없이, 아이들은 분필로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면 된다. 하지만 지우는 것 또한 아이들 몫이기에 아이들은 낙서를 하면 어떠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지도 스스로 알게 된다. 이렇게 아무런 규율이나 강제가 없어도, 자유롭게만 보이는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게 되는 것이다. 도모에 학원이야말로 자연 친화적인 교육, 학습자 중심의 교육을 한다는 것에 있어서, 대안학교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도모에 학원과 비슷한 형태로 영국에는 써머힐 학교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이학교의 교육 목표는 자율이다. 다시 말해, 정형화된 학교교육에 맞추지 말고 철저한 자유를 학생들에게 주는 형태인 것이다. 아이들을 자율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학교로부터는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는다. 다만 학생들로 구성된 학교 자치회에서 이들의 행동을 평가, 처벌하는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가 규칙을 만들고 공동으로 그 사회를 꾸려나간다는 말이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정규학교에서 버티지 못하고 빠져나온 아이들이다. 때문에 이들이 처음 이 학교에 들어서면,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고, 놀려고만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몇 일 또는 몇 달을 가다가, 스스로 공부하고싶은 것을 찾아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학교는 아이가 공부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이들을 도와 주는 것이다. 교과 과정 또한, 학문중심 보다는 창조적 능력과 집단적 사고 방식 등이 주를 이룬다. 즉 이들은, 즉 이들 은 다른 학교에서 지향하는 출세, 명예 등을 얻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아직 우리나라에는 이렇다 할 대안 학교는 아직 없는 듯 하다. 물론, TV 교양 프로그램이나 잡지 등을 통해서 우리나라에도 열린 교육, 자유 교육을 행하는 학교들이 곳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기는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