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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의 음식 문화 평가A좋아요
    이 책을 읽기 전에 책의 제목만으로는 단순히 유럽의 음식 문화에 대한 내용일거라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게 음식문화의 역사를 통해서 유럽 문명의 형성 배경 분석하고자 했던 것 같다. 당연한 일이지만 인간과 사회의 이해에서 근본적인 문제의 하나가 다름 아닌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 하는 문제’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 책은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 유럽사의 구성을 살펴보려 했던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저자는 음식의 문제에 접근할 때에 음식의 재료나 조리 방법, 혹은 기발한 여러 음식 등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라는 주제를 중심에 두고 그것과 연관된 사회의 여러 측면들을 포괄적으로 보고자 했다.이 책은 수세기 동안 유럽의 음식문화에 영향을 미친 사회·경제적 측면들과 함께 '음식문화'를 역사학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는 유럽 문화사이다. 이 책은 유럽인 들이 당면하고 있는 ‘유럽인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변을 해주고 있다.중세사가이자 이 책의 저자인 몬타나리는 중세라는 단어에 담겨있는 무의미성, 혹은 중세가 담고 있는 반 해석적 의미에 항의하며 글을 써나간다. 우리가 너무 쉽게 중세는 어떻다고 치부하는 동안에 그 안에 담겨있는 무수한 갈등과 모순은 채 읽혀지지 못하고 사라진다. 바로 이점이 이 책에서 강력히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점이다. 저자는 먼저 '중세'라는 개념을 의식적으로 지우면서 시작한다. '중세'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광범위해서 그 용어가 포괄하는 사건들과 가치가 너무나 다양하고 심지어 모순 되어서 단일한 역사적 의미를 가질 수 없으며, 15세기 인문주의자들이 역사와 문화의 공백 내지 부재의 시기를 뭉뚱그려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낸 원래의 뜻에 절대 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세'라는 마디를 잘라냄으로써 '고대'나 '르네상스'의 구분은 덩달아 허물어지고, 학계의 일반적인 시대구분은 무시되고 만다. 저자는 역사 학자답게 방대한 유럽의 시대를 구분할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저자는 '음식'이라는 소재의 특성과 연구 과정에서 추출해낸 개념인 '기근과 풍요의 반복'을 새로운 시대구분의 기준으로 내세운다. 기근과 풍요의 반복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음식문화는 언뜻 단순한 주제로 보이지만, 저자는 개인의 선택을 지배하고 좌우하는 현실 세계의 권력관계에 주목하면서 독특한 해석을 해낸다. 잉여분이 풍부하면 잘 먹고, 부족하면 굶주렸다. 여유가 있으면 우아하게, 환경이 허락하지 않으면 허겁지겁 먹었다. 어느 시대이건 사람들은 먹을 수 있는 한 ‘잘’ 먹으려고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이다. 먹거리의 선택은 개인의 취향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음식'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소유한다. 사회적으로 높은 계급의 사람들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고 그 자신들은 자신의 위신이 깎이는 걸 막고 그들의 위신을 더욱 뽐내기 위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바람직한 방법으로 먹고자 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유럽 문화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아시아 문화에서도 기득권만이 누리는 음식 문화가 존재 왔다. 수세기에 걸쳐 음식이 획득한 이미지에 따라 어떤 음식은 선호되고 어떤 음식은 경멸당했다. 여기에 철학과 과학, 문학이 공인된 위계를 공고히 하는 데 힘을 더한다. 그래서 높이 올라갈수록 가치가 오르고 내려갈수록 가치가 내려간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귀족들 사이에는 먹이 피라미드의 위치에 따라 동식물의 가치가 정해졌다. 식물계에서는 땅에 묻힌 구근류가 가장 낮은 위치를 차지했으며, 그 다음으로 풀, 관목, 나무 순이었다. 과일은 나뭇가지 끝에 달려 하늘 높이 있다는 이유로 최고의 귀족성을 의미했다. 이런 식으로 동물계에서는 육지에서 걸어 다니는 동물보다 하늘을 나는 가금류가 최상의 위치를 차지했다. 이렇듯 이 책은 유럽의 음식체계에 지금처럼 형성되기 위해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을 풍부한 사료를 들어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유럽의 대표적인 작물로 밀과 포도가 그리스/로마 문화적 배경 아래서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퍼져나간 것을 보여주고, 로마와 야만인이라는 좀 상투적이지만 설득력 있는 틀을 통해서 이종의 문화가 섞여가면서 벌어지는 문화적인 전쟁도 제시한다. 지금까지는 물질적 전쟁 만으로만 해석되었던 과거 유럽사를 음식 전쟁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었다.채식과 육식, 빵과 고기, 포도주와 맥주, 올리브유와 라드 및 버터, 이렇게 대조적인 특성을 보이는 남유럽과 북유럽의 음식 문화를 살펴보는 일은 의외로 유럽 사회의 근본적인 특징들에 대한 많은 안목을 제공한다. 또한 흰 빵과 검은 빵의 대조가 상징하는 부자와 빈자의 음식 문화의 역사 역시 그렇다. 유럽에서 숲의 사용이 일반인들에게 제한되고 귀족들만 그 안의 동물들을 사냥할 권리를 지녔다는 점 역시 흥미로웠다. 쌀, 메밀, 옥수수, 감자 등 새롭게 도입된 작물들과 커피, 차, 설탕, 초콜릿 등 자극제의 도입사도 간략하나마 다루어져 있었다. 이를테면 쌀에 대한 빵의 우위라고 하는 서양인의 편견도 실은 고대부터 이어져온 흰 빵에 대한 유럽인의 문화적 선망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유럽에서 빵의 권위는 너무나 오래고 견고한 것이어서 16세기 새롭게 유입된 쌀, 메밀, 옥수수, 감자 따위의 신 작물은 그 경제적, 영양학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한참 동안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다 18세기 기근의 세기에 혁명적인 변화로 오늘날 독일, 영국에서 볼 수 있는 감자에 대한 호의를 볼 수 있다. 음료에 대한 이해의 변화도 흥미로웠다. 포도주와 맥주는 17세기 중반 커피와 차가 유입 될 때까지 유럽인의 주 음료로 자리해 있었다. 그 소비량도 엄청나서 일부 지방에서는 일인당 매일 3리터의 맥주를 마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던 것이 17세기 이후 급속히 커피와 차로 대체되었는데, 이는 새로운 자극제로서 커피와 차가 주는 행복감과 함께 새로운 음료가 건강에 이롭다는 속설이 크게 영향을 끼친 탓이었다. 이 책을 보며 2년 전 영국에서 1년 여 간 어학연수를 하면서 갖았던 그들의 음식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거의 매일 감자만 먹으며 점점 빠지는 체중을 해결할 수가 없었고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 역시 커피숖을 찾기가 힘들어 1년 여간은 홍차만 마셨던 기억이 이 책을 보면서 다시 생각나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커피보다 홍차를 더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이탈리아에서는 에스프레소가 유명하며 많은 사람들이 차보다는 커피를 마셨던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카로니와 스파게티를 먹는 이탈리아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옥수수와 감자가 그들의 음식문화에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고 있을 때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가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파스타는 신선한 파스타와 말린 파스타로 구분 할 수 있는데 두 종류의 파스타는 서로 상반된 두 개의 상이한 소비 계층이 있었다. 말린 파스타는 장기간 보존 가능한 음식을 필요로 하는 서민층을 위한 음식이었고 신선한 파스타는 일부 한정된 부유한 소비자를 위한 사치품이었다. 이렇게 양분화 되기 이전인 17세기 전 까지만 해도 파스타는 서민들을 위한 음식이 아니고 특별한 음식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18세기의 기술적 혁명과 함께 서민적인 음식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자연과학| 2003.08.15| 4페이지| 1,000원| 조회(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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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사당패 공연감상문 평가A좋아요
    '소리'의 맥을 지키는 사람들― 운현궁 일요예술무대, 마당극 "남사당 놀이"를 다녀와서놀다, 신나게 놀다.마당극은 여러 공연 예술 중에서 우리의 삶을 가장 넓게 포용하는 예술이다. 마당, 곧 우리의 놀터에서 이루어지는 까닭이라고 그 이유에 대해 쉽게 말해버려도 되는 것이 마당극은 구경꾼을 가두는 적이 없다. 장거리나 집집으로 돌아다니면서 해금을 켜거나 노래를 부르며 돈을 구걸하는 사람 풍각쟁이에게도 같이 섞어지자며 넉넉한 자리 인심을 베푸는 것이 우리의 마당 놀이이다.연극이 일차적으로 언어에 기초를 둔 것이고, 춤을 언어 감각의 연장, 몸짓 소리로 본다면 소리란 인간의 머리가 아닌 심장의 박동을 기초로 한다. 그래서 소리는 언어, 민족, 문화 감각의 차이를 뛰어넘어 원초적인 호소력을 가지며, 그 힘은 다른 무엇보다 강하다. 우리의 전통 민속 예술 중에서 소리의 생명력이 그처럼 강인했던 것도 그 이유를 소리의 맥을 지키는 사람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남사당놀이보존회는 단순히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소리를 만드는 사람들'이며, 인간의 표현 욕구를 가장 자유롭게 구사하는 예술가로 부상하고 있다.은행 나무의 열매 벌어지는 냄새가 꽤나 익숙한 공기마냥 낮게 깔려 있는 인사동 거리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동양의 소리는 서구인들이 보이는 관심과 우리들 자체의 욕구가 겹쳐져 활기를 띠고 있었다.나는 한동안 그 신바람에 휘말리고 있었다.공연을 시작할 채비를 차리는데 천둥이 치고, 반짝 비가 쏟아지더니 해가 났다. 이 흥소리 열리는 날, 여우비에 호랑이가 장가를 들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그 천둥 소리, 생소리가 잦아들고 우리 소리가 태평소 울음으로 시작되었다.오묘하게도 여러 장르 속에 들뭇들뭇 녹아들었던 국악의 소리는 우리들의 흥과 한과 짓을 담아내어 결국 우리의 바탕 소리이기 때문에 낯익었던 것이리라.놀터에 얕게 깔리운 흙먼지를 재촉하여 일으키는 발장단 사이로 이쪽 꽹과리의 부름에 저쪽 꽹과리가 들은 체를 보낸다. 열매달 9월의 풍물 가락으로 올해는 허수아비를 앞세우고 추수를 서두르겄다, 풍년이 들겄다.상모 휘휘 돌리우는데 이마 위에 붙은 꽃술이 환하다. 어지럼을 모르고 도리질을 하는데 리듬체조 경기에서 리본을 흘리우는 듯도 하다. 돌아 들어가 풀어 나온다, 모아 들어가 흩어져 나온다. 저물녘까지 온 동네가 한바탕 시끄럽다.앉은 듯 일어서며 소고 장단을 만들어내던 소년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쿠야∼!'하고 들리는 태평소 소리가 마침 절묘하다. 꽹과리를 잡은 상쇠를 쫓았든가, 장구치는 소년의 손놀림에 반했는가 그들의 꽁무니에서 덩어리를 지던 어린 아낙들. 머릿수건을 두르고 버선발로 마당을 쓸던 어린 아낙은 벌써 동네 한 바퀴를 다 돌았는가 옷매무새의 흐트러짐도 다시 보니 곱기만 하다. 약주 한 잔 걸치고 나오신 할아버지들의 어깨 춤사위에 구경꾼들 입방아마저도 덩달아 들썩거린다.나도 나서보고 싶다.남사당놀이란 정확한 근거는 없으나 구전으로 내려오는 남사당놀이는 신라시대 초기 때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에 전승하는 유랑 연예인단으로 구성되어 전국을 유랑하고 떠돌아다니며 민중 오락을 제공하던 유랑 연예 집단을 '남사당패'라고 한다. 그들은 사회에서 격리된 상태에서 자기들만의 사회를 갖고 정처 없이 전국 각지를 돌며 민중 놀이를 하면서 그 명맥을 어렵게 유지하였다.내부 조직을 살펴보면 꼭뒤쇠(단장) 밑에 곰뱅이쇠(기획), 각 연회 분야의 뜬쇠(조장), 수련생, 삐리(초보), 잔심부름과 패거리들의 장비를 운반하는 등짐꾼 등 약 40∼50명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들은 가난한 농가 출신 또는 고아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내부 규율만은 시대적인 배경도 있었겠지만 매우 엄격하였다.이들은 당시 사회에서 천대받던 한과 양반 사회의 부도덕성을 놀이를 통해서 풀고 비판하며 민중 의식을 일깨우는 역할도 하였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놀이는 대개가 획일적인 것으로 풍물(농악), 버나(체바퀴), 무동, 얼음(조선줄타기), 살판(땅재주), 덜미(박첨지놀음), 덧뵈기(탈춤) 등이 중요무형 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로 지정되어 후지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뿐 아니라, 활발한 국내외 공연 활동을 통하여 우리 민속놀이의 우수성을 재인식시키고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현재 남사당놀이 보존회에서는 국악의 저변확대와 우리 민속 음악의 올바른 이해와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정기적으로 발표공연을 하면서 일반대중에게 보급활동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다시금 일깨우는 일을 지속함으로써 민족문화 보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들의 설을 푼다.1. 풍물첫 번째 놀이인 풍물은 웃다리 가락을 바탕으로 하는 풍물놀이다. 남사당패의 풍물놀이는 그들 패거리가 유랑패였다는 성격으로 하여 그 이전에 있어서도 웃다리 가락의정수로는 볼 수 가 없을 것 같다.2. 버나《버나》버나는 체바퀴와 대접, 대야 등을 앵두나무 막대기로 돌리는 묘기를 말함인데, 지난날에는 이 버나놀이판에 얼른(요술)이 같이 있었다. 버나는 묘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돌리는 사람인 버나잽이와 받는 소리꾼인 매호씨(어릿광대)가 서로 주고받는 재담과 소리가 있어 극성이 짙은 것이다.3. 무동무동놀이는 사람의 어깨 위에 또 한사람이 올라가서 행하여지는 놀이로서 위에 올라가는 사람을 무동이라고 하여 불리러진 놀이이다.4. 살판"잘하면 살 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라는 뜻에서 이렇게 불려졌다고 한다. 본시는 대광대패나 솟대쟁이패의 주된 놀이 중의 하나였는데 이것이 남사당놀이에서도 보이고 있다.5. 덧뵈기다섯 번째 순서인 탈놀음. 덧뵈기란 명칭은 "덧본다"는 것으로 탈의 뜻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덧뵈기는 다른 지역적 탈놀음에 비하여 의식성이나 행사성에 관계없이 그때그때 지역민의 갈구와 흥취에 영합하였던 것이다.6. 덜미남사당놀이의 마지막 순서이며 우리 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민속인형극 꼭두각시 놀음을 남사당패 연희자들은 덜미라 부르고 있는데 "목덜미를 쥐고", "몽둥이를 쥐고" 놀린다는 장두인형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소리, 그 ○○○에 대하여한국의 소리는 한국의 역사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한다.오늘의 전통 예술 현장이나 그 주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남아 있는 우리의 소리와 가락에서 그 깊고 먼 근원을 짐작하고, 역사로 정리되지 못한 뭔가 더 큰 줄기가 있었음을 크게 예감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소리가 새삼스레 역사와 그 원형, 남아 있는 유물 등 잔 부스러기 하나라도 소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창작 현장에서 파악되고 있는 우리 소리의 원래 모습과 근본적인 예술성이나 내포하고 있는 힘이 많은 면에서 일그러진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우리의 과거는 쉽게 말해서 모두 무너졌다. 소리의 교육도 바뀌었고 거기서 자란 소리 자체도 변했다. 더구나 새로운 것, 서구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내 것, 우리 것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도 없이 무시하고 모멸하고 때로는 부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 차츰 예술 자체에 대한 가치관은 향상됐지만 이들 과거형의 예술 종사자를 천시하는 풍습은 더욱 심해졌고, 나아가서는 그런 사람들이 지닌 예능 자체도 경시하는 풍조가 뿌리 박혀 있었다. 과거 우리의 직업적인 전문 예술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재인·광대·기생·사당들이나, 그들의 후예들은 현대의 공연 예술 주류로 연결되지 못하고 소외됐던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2.11.04| 5페이지| 1,000원| 조회(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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