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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리비에로 토스카니-베네통 광고 디자이너
    언제인지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중학교에 다닐 때인 것 같다.) 베네통 광고를 보고 무척 기억에 남았던 적이 있다. 막 태어난 아기가 탯줄도 안 잘린 채 광고지면에 있는 모습을 보고 저런 게 광고에 나와도 되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그 때는 베네통이 무언지도 잘 몰랐었고 왜 그런 광고를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광고에 관한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베네통의 광고가 사례로 등장하곤 했었다. 그래서 이번 디자이너 분석의 주제를 베네통의 광고를 디자인했던 올리비에로 토스카니로 정했다. 처음에는 올리비에로 토스카니의 광고를 보면서 어떻게 이러한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지 놀라웠다. 그는 광고인 한 사람의 철학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광고에 미칠 수 있는가를 보여 주었다. 그는 우리가 배워온,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적용시키고 있는 수많은 광고 원칙을 거부했다. 그의 스타일을 대변해주는 한 마디가 생각나는데 “모든사람이 오른쪽으로 가면 저는 왼쪽으로 갑니다.”라는 말이었다.이탈리아인 특유의 유머와 자유분방함을 자닌 크리에이터 올리비에로 토스카니는 그 이면에 숨은 고집과 바탕이 있었기에 베네통 광고는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었던거 같다.보통은 광고를 만드는 사람에게 작가라는 말을 붙이지 않으며, 그것을 바람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나 왠지 그에게만은 ‘광고 작가’라는 호칭이 너무나 적합해 보인다.1942년 이탈리아 최고의 발행 부수와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일간지인 Corriere Della Sera지 사진 기자의 아들로 때어난 토스카니는 그의 나이 7살 때 생일 선물로 작은 카메라로 사진을 시작하면서 사진과 더불어 다양한 경험을 갖기 시작했다. 지역 여건에 따라 세계 첨단의 유행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고, 『엘르(Elle)』, 『보그(Vogue)』, 『하퍼스 바자(Harpers-Bazaar)』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잡지의 커버 사진을 촬영하면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당시 세계 최첨단을 걷는 밀라노 패션을 보여 주는 중요한다.올리비에로 토스카니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이탈리아 옷 베네통이 지금처럼 유명해지지지는 않았을지고 모른다. 마찬가지로, 루치아노 베네통이라는 혁싱적인 사업가가 없었더라면 사진 작가 토스카니는 그냥 묻혀 버렸을지도 모른다.토스카니는 그의 사진 때문에 오전에는 영국의 법정에 서야 했고, 같은 날 오후에는 네덜란드에서 영예로운 상을 받았다. 일본은 그이 어떤 사진은 금하면서도, 어떤 사진에 대해서는 상을 주었다. 동경 아트디렉터즈 클럽(ADC)이 선정하는 1994년 ADC상 최초의 그랑프리 영예는 보스니아 내전 중 청탄을 맞고 죽은 한 젊은 병사의 피 묻은 셔츠와 바지를 소재로 한 베네통의 신문 광고 ‘병사의 옷’에 돌아갔다.[보스니아 전쟁에서 죽은 병사의 옷, 1994..]ADC 편집장은 이 작품을 “외국에서는 여러 가지 비판이 있었지만 전쟁 반대, 평화라는 메시지가 잘 함축되어 있고, 급변하는 격동의 20세기 말에 ADC 그랑프리의 이미지에 가장 잘 들어맞는 작품”이라고 평가했으면, 심가 위원장도 “신문 광고의 목적은 상품 판매나 기업 이미지 제고 외에 메시지나 기업의 사회적 공헌 등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어 왔다. 베네통도 그 대표적인 예로, 다른 경로를 통해 편화에 공헌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자신의 메시지로 만들어 가는 자세는 행후 시대의 흐름이 될 것”이라고 선정경위를 밝혔다.이처럼 그이 사진은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그 때문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마치 광신도 같이 칭송이 있는가 하면, 꼬리 달린 못생긴 원숭이라는 비방도 줄을 잇는다. 토스카니는 광고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직접적이고, 단순하게, 다양한 메시지를 자유롭게 전하고 있다. 어떤 이는 그의 광고에 대해 “다양한 문화를 비교할 구 있는 대중 예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토스카니의 광고는 이 시대에 있어 새롭고 확실하고 힘있는 매체 중 하나로 자리잡은 것이다. 토스카니의 활동은 학술 세미나의 연구 주제나 논문 주제가 되기도 하며, 영국의 한 대학에서는 “토시카니의 광고와 베그 광고에 대해 토론을 하고 사랑과 거부, 혐오감과 연대감을 표현하게 만들었다. 어떤 이는 그를 “파괴를 찍는 광고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고, 어떤 이는 그의 광고를 “다양한 변화를 비겨할 수 있는 대중 예술의 한분야”라고 표현하다. 토스카니의 사진은 20세기 말에 있어 새롭고, 힘있는 매체로 자리 잡은 것이다.짙은 녹색에 ‘United Colors of Benetton'이라고 찍힌 상표가 전세계에 얼마만큼 보금되어 있으며 ,그것을 보는 순간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갖는가를 생각한다면 토스카니는 '자본주의의 미덕’에 충실한 작가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광고 사진을 찍는 데 한가지 믿음이 있다. 광고 사진은 끊임없이 대상을 자극하고 도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피카소도 다다이즘(Dadaism)도, 큐비즘(Cubism)도, 바로크(Baroque)도, 바우하우스(Bauhaus)도 이러한 ‘자극’에서 나왔다면서 ‘자극의 미학’을 부르짖는다.오늘날 평범한 광고인들이 토스카니에게 가장 하고 싶은 “도대체 에이즈가 스웨터와 무슨 상관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같은 제목의 책 『도대테 에이즈가 스웨터와 무슨 상관인가?』(베네통사로 온 편지를 모아 만든 팩)의 서문에 있다.왜 수녀와 신부가 키스하는 장면을 보여주는가?총천연색 콘돔과 베네통이 광고하는 상품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이런 질문은 자진해서 스스로가 파놓은 함정에 떨어지고자 작정한 사람들의 질문이자 고뇌들이다.조선일보사 갤러리에서 열린 자신의 사진전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토스카니는 세미나에서 그의 사진 슬라이드를 참석자들에게 보여 주었다. 베네통 광고는 나오는 것마다 신문지상에서 화제가 되었고 책으로도 나와 있기에 대부분 본 것들이라 생각했지만, 그중 몇몇은 낯선 것들이었고, 그 중 한 장은 정말이지 충격적인 것이어었다. 그 사진은 각 인종 남여노소 56명의 성기 모양을 모자이크한 사진이었다.이 사진을 게재하도록 허용한 매체는 단 하나, 프랑스의 일간지 『리베라시옹(Liberation)』뿐이었다고 한겨놓는다. 이제까지 그의 사진들은 많은 사회적인 이슈를 불러일으켰다.신부와 수녀의 키스 장면, 탯줄도 채 자르지 않은 갓 태어난 갓난아기, 곧 죽음을 맞이할 사형수와의 인터뷰, 에이즈로 막 죽은 환자의 임종 장면을 그대로 잡은 사진이라든지,1992년 걸프전쟁 때 페르시아 만에 검은 기름으로 뒤덮여 있는 바닷새, 깨끗하고 이쁜 엉덩이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에이즈 양성반응 스탬프.보스니아 내전 때 죽은 크로아티아 병사의 피범벅이가 된 옷 등이 모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면서도, 교묘하게 베네통 회사에서 생산한 상품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 전략을 통해서 소비자들에게 더욱 베네통 상품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게 소비자 심리를 자극한다. 여기에는 그의 사진이 다른 사진작가의 사진과는 달리,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광고라는 매체와 직접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이유가 큰 몫을 차지한다.[사형수 / dziecko / 수갑을 찬 두 손, 1989../ H.I.V. positive1993.]1983년까지만 해도 베네통의 광고 사진은 기존의 전통적인 제품 이미지 위주의 전략으로 소비 자에 어필해왔다. 하지만 1984년 이래 광고는 토스카니가 아트디렉터를 맡으면서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보스니아 전쟁에서 죽은 병사의 옷, 1994..]그것은 서로 다른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사진이미지를 통해 세계에 대한 베네통 기업의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상품을 팔아먹기 위한 광고 사진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조명함으로써 인류를 계몽하기 위한 캠페인사진처럼 보였다.90년대에 들어와 그의 사진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광고라는 매체를 통해서 그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였다. 이에 대한 각국의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문화적인 상이한 차이로 대중과 언론의 반응은 대부분 비판적이었고 많은 광고들이 발표되자마자 거부되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무언의 동의를 보이는 등 이중것이기 때문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나아가 그것은 다른 의미에서, 즉 현실의 어떤 관념상의 폐허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킨다.[White Magic]그의 사진이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의 마지막 한계라고 설정해두었던 그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어떤 작가도, 적어도 사진으로 신부와 수녀가 키스할 수 있다는 발상을 해본적은 있는가?혹은 보도사진도 아닌 연출을 통한 광고매체로 쓰이는 사진에 죽은 병사의 피 묻은 옷을 보여준다는 그러한 발상을 해본 적은 없다. 설사 생각은 했다 하더라도, 전혀 있을 수 없는 발상이라 여기고 이내 그것을 지워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세계가 이제 토스카니 사진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세계는 토스카니 사진 속에서 전혀 다른 기준으로 재편된다. 이 사진이라는 아주 이상한 나라에서, 모든 낯설고 특이한 만남의 기반이 되는 것은 색깔이다. 신부와 수녀의 키스는, 깨끗한 흰색과 깨끗한 검은색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형형색색의 콘돔들(1991년 작), 흰색 십자가와 초록색 잔디가 오전의 맑은 햇살을 받고 있는 공동묘지의 풍경(1991년 작), 또는 흰 늑대와 진회색의 양처럼 의도적으로 색깔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 백인 여자 아이는 천사의 형상으로 흑인 여자 아이는 악마의 모습으로, 그러나 그들은 친구처럼 서로 껴안고 있다. 인종 문제에 접근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 속에서도 색깔의 지배적인 우위는 변하지 않는다.수갑을 찬 흑백의 두 손이 만나고(1989년 작), 백인아기가 새빨간 스웨터를 걸친 흑인 여자의 젖을 먹고 있으며(1989년 작), 흑, 백, 황인종의 세 여자 아이가 혀를 빼꼼히 빼물고 있는 모습(1991년 작) 등등 거의 모든 작품에 그렇다.[Safety First][Wired]누군가 말한 것처럼 베네통은 토스카니 에 의해서 색채 공화국이 되었다. 그가 이토록 색채의 상징성에 집착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색깔에 대한 편견을 고발하면서 낯선 장면다.
    예체능| 2005.06.20| 9페이지| 1,500원| 조회(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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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포스티노 감상문
    '일 포스티노'는 우리말로 해석하면 '우편배달부'라는 뜻이다. 실존 인물인 20세기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히는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이탈리의 작은섬 '칼라 디 소토'의 우편배달부가 나누는 소박한 우정과 사랑을 담아 만든 영화이다.영화는 지중해의 자연경관에 둘러 쌓인 이탈리아 나폴리 섬 근처에 있는 어촌 마을에 노벨상을 받은 칠레의 좌파 시인이며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오면서 시작된다. 이 섬의 작은 우체국에는 전계에서 네루다에게 날아오는 수많은 편지가 쌓이게 되고 고민 끝에 그곳의 우체국장은 어부의 아들 마리오를 우편배달부로 고용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우편배달부와 수취인으로 만난 관계이지만 네루다와의 만남을 통해서 시적 감성을 배우게 되고 삶의 새로운 전기를 (노동자의 권익에 눈을 떠 파블로네루다님께 바치는 시를 연설하려 한다) 맞게 된다.한편 마을 식당의 아름다운 여인 베아트리체를 보고 사랑에 빠지는데‘은유’라는 단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녀를 향하여 사랑의 표현을 하는 청순한 마리오, 결국 그들은 네루다의 도움에 의하여 결혼을 하게되고 네루다는 칠레 정부로부터 귀국의 소식을 듣고 이탈리아의 망명 생활을 마치게 된다. 이후 이 섬의 사람들은 네루다와 마리오의 친분을 생각하고 그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리나 네루다는 방송이나 신문 등에서 이탈리아의 아름다움만을 얘기할 뿐 짧은 시간이나마 깊은 추억을 남긴 어촌 사람들에 대하여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서운함을 가지면서도 네루다를 이해하는 마리오의 심정이 교묘히 교차한다.그러던 중 어느날 마리오에게서 기다리던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든다. 그러나 이 편지는 네루다의 비서로부터 온 편지로 이탈리아에서 생활하던 물건을 보내달라는 소식일 뿐 아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다시 한번 마리오와 가족은 아쉬워한다. 짐을 정리하러 네루다가 기거하던 곳으로 간 마리오, 언젠가 네루다가 칠레의 친구들에게 이 섬의 아름다움을 들려주기 위해서 말해달라고 했을 때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베아트리체 루소’라고만 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이제는 네루다가 자신을 위해 남기고 간 것이 무엇인가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에 우체국장의 도움으로 어설픈 녹음기를 만들어 그 섬의 아름다움을 담기 시작한다.몇 년 후 네루다가 마리오를 만나러 이 곳을 다시 찾았을 때 이미 마리오는 세상을 떠났다. 사회주의 시위에서 파블로 네루다님께 바치는 시를 연설하려하다 농성장에서 시위 진압군에 의하여 아쉬운 모습으로 사라진다. 뒤늦게서야 테입을 전해들은 네루다는 바닷가의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그와의 짧았던 만남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상상하며 못내 가슴이 시리기만 하다.어찌 보면 아무런 관계가 없는 마리오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는 네루다라는 전형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통하여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사랑과 우정을 느낄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지루한 듯 하지만 그 배경에 깔려있는 아름다운 음악과 잔잔함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휴식처와도 같은 편안함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되며, 그 감동이 마치 지중해의 파도 소리처럼 가슴 깊이 밀려와 이 영화를 보는 동안 행복함을 감출 수 없게 했다.편지를 받은 사람도 시를 읽은 사람도 그것이 어떤 내용이냐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우편배달부가 전하는 편지는 우편배달부와는 상관없는 내용이 닮긴 글이고 시인이 전하는 시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이 닮긴 글이다. 마리오가 마지막으로 네루다에게 남긴 녹음기를 들으며 예전의 추억을 떠올리고 마리오의 마지막 모습을 그려보는 네루다에게 마리오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은유'가 뭔지도 모르고 시의 내용도 모른 체 그에게 다가오던 우편배달부의 모습일까, 아니면 노동자를 대변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한 시인의 모습일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나는 마리오를 시인으로서 기억한다. 시인이란 은유를 적절히 사용하여 아름다운 단어들을 사용해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세상의 것들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닮아 글로 표현 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충분히 시인으로서 불려질 자격이 있고 생각한다. 마리오도 시를 통해 순수한 자아를 찾아 내었다.
    독후감/창작| 2002.10.20| 3페이지| 1,000원| 조회(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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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하사탕 감상문 평가B괜찮아요
    1. 서론이 영화는 파산 당한 한 40대 남자가 철교 위에 올라가 달려오는 기차 앞에서 서서, 다시 돌아갈래! 라고 외치다 죽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러고 나서 기차는 방향을 바꾸어 과거의 시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999년부터 1979년까지. 폭력과 상흔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 20년의 시간여행이 끝나는 지점은, 서울 구로 공단의 20대 청년의 가슴에 아직 상처받지 않은 첫사랑의 기억이 머물러 있던 시절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김영호이다. 아무 개성도 없고 흔하디 흔한 이름을 주인공에게 붙인 것에서 주인공 김영호를 우리 시대의 보편적 인간으로 상징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가 이렇게 오늘날 타락한 원인은 무엇인가?2. 가장 독특했던 점 - 구성이 영화는 야유회에서 시작해 소풍으로 끝난다. 아니 사실은 소풍에서 시작해 야유회에서 끝난다. 전체적인 구성이 특이하게 짜여 져있다. 현재 주인공의 절망적인 삶에서 영화는 시작되어 차츰차츰 과거로 흘러간다. 결국 관객은 영화를 거꾸로 보고 있는 것이다. 난데없이 낯선 사건과 낯선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주인공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된다.이 과거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그럴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바로 기차이다. 사실 달리는 기차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단지 기차의 소리와 철로만 보인다. 기차가 시간을 향해 달려간다. 과거로...과거로...천천히 주인공의 과거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달려가는 기차의 장소도 다르다. 아마도 과거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는 것일 것이다. 단 한번 기차가 달릴 때 사람이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아이도 아저씨와 리어카도 모두 거꾸로 달려간다. 이 장면이 특이하게 남았었는데...이 기차가 과거로, 그러니까 거꾸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과거의 시간으로 갈 때마다 까만 색 화면과 흰 글씨의 소제목들, 그리고 시간...이런 것들이 보여짐으로서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전체적인 흐름은 야유회 1999년 봄, 사진기 1999년 봄 사흘 전, 삶은 아름답다 1994년 여름, 고백 1987년 봄, 면회 1980년 5월, 소풍 1979년 가을로 흘러가고 있다. 과거의 회상이 아닌(다른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한다) 계속적인 과거로의 이동,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일이 없다.3. 역사(시간의 흐름)에 따른 개인(주인공)의 변화주인공 김영호, 그의 순수했던 젊은 시절과 점점 자신을 약하게 만드는 사회들...주인공 김영호는 첫사랑 윤순임을 만났을 당시는 순수한 청년이었다. 들꽃을 사진에 담고 싶어했던...군에 입대하여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순임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박하사탕의 순수함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영호의 오발로 인해 한 소녀가 죽게 되고, 그의 삶은 그때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변하기 시작한다. 경찰이 되어 그 사회에 물들어 가기 시작하면서, 여기서 그의 역할은 운동권 학생을 취조하는 것,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엔 조금이나마 따뜻한 맘이 남아있다. 차가움으로 자신을 찾아온 순임을 돌려보내고...결혼을 하여 사업을 하면서 그는 점점 악한 사회에 물들어 간다. 아내의 외도, 엇갈린 영호의 삶...그는 이제 더 이상 순수한 청년이 아니다. 친구의 배신 등으로 사업은 망하게 되고 그의 삶은 걷잡을 수없이 황폐화되어 간다. 죽기로 결심을 하고 있던 순간 한 남자가 방문을 하게 되고...그는 순임의 남편이었다. 병실에서 죽어가고 있던 순임이 영호를 찾고있는 것이다. 영호는 박하사탕을 한 통을 사들고 병문안을 가지만 순임은 이미 의식이 없다. 거의 정신이 나간 영호는 옛날 그 소풍의장소로 돌아온다. 예의 그 사람들이 모여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르다. 영호는 철교위로 올라가 절규한다. 그리고 기차가 영호를 향해 달려온다......4. 박하사탕의 의미도대체 이곳에서의 박하사탕의 역할은 무엇일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박하사탕은 영호와 순임을 연결시켜준 매개체이다. 박하사탕은 영호와 순임의 첫만남을 이어주고, 영호의 마지막 순간, 그리고 순임의 죽음 직전에서도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입안이 싸아하고 상쾌한 느낌이 드는 박하사탕의 깨끗한 맛처럼...그들의 아니 영호와 순임의 사랑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박하사탕이 단순히 그들의 순수했던 사랑을 이어주는 구실만 하는 것일까? 박하사탕은 새하얀 색깔이다. 약간의 누런빛도 띄지 않는 새하얀 색깔...소풍 편에 나온 영호의 모습은 마치 그런 박하사탕의 색깔처럼 순수함 그 자체를 지닌 존재로 보였다. 그의 생활도 그러해 보였다. 하지만 원래가 흰색이라는 게 가장 더러워지기 쉬운 색깔이기에... 그 박하사탕 같은 존재가 점점 사회에 물들어 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서 영호는 박하사탕을 기억해 낸다. 그리고는 그 박하사탕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 나 다시 돌아갈래" 그 장면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깝게 만든다.5. 박하사탕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김영호는 우리 시대의 대표자답게, 1979년에서 1999년까지 6개 장으로 나뉘어진 각 시기의 전형적인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80년 광주, 80년대 중반 민주화 운동에 대한 폭압, 90년대 가족의 해체와 경제적 몰락까지를 모두 겪은 것이다. 영화의 시작 부분의 파멸과 그 파멸 전의 타락은 고문경관으로서의 도덕적 자포자기가 원인이고, 그 자포자기는 광주에서 무고한 소녀를 죽게 한 데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표현된다.
    독후감/창작| 2002.10.14| 3페이지| 1,000원| 조회(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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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트릭스 감상문 평가B괜찮아요
    매트릭스는 조금 복잡하고 난해한 영화다. 마치 영화에서 암호표가 물처럼 흐르듯이 이 영화는 135분의 상영시간동안 그 암호를 쏟아붓는다. 그러나 마치 네오가 부활후 매트릭스 세계를 위의 그림처럼 직시할수 있었던 것처럼 충분히 해석 가능하다.(암호의 1차적 목적은 정보차단이 아닌 정보전달이다!) 나아가 매트릭스는 어떤 면에서 심도 있지 않다라고까지 말할수 있는 부분이 많이 나타난다. 그러니까 그냥 복잡할 뿐이다. 적어도 이것이 스토리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라 믿는다. 어찌되었든 이 영화는 한번 보는 것만으로 자기자신을 다 보여줄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만큼은 확실하다.여기서 짐고 넘어가야 하는것중의 하나가 매트릭스란 무엇인가이다.현실같은 꿈을 꾸어보았나? 네오!현실같은 꿈! 바로 그것이 MATRIX이다.매우 익숙해진 하늘, 끝 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언제까지나 영원할 것만 같은 수평선, 그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 떼이 모든 것들이한 순간의 파도에 지워지는 해변의 발자국들 처럼단순히 프로그래밍화된 아주 잘 짜여진 가상의 세계에 불과하다면?MATRIX는 이러한 가상세계이다.지금 보고있는 모니터, 창문너머로 쏭아지는 눈부신 햇살, 산들바람 조차도...환경오염으로 태양열을 잃어버린인공지능 컴퓨터(AI:Artificial Intelligence)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자신을 만든 인간의 체내 전기적 작용을 자신의 CPU의 유지를 위한 에너지원화시키기 위해 인간들의 의식을 가두어버린 가상감옥믿을 수 없는 암울한 진실 뒤에 현실처럼 꾸며진 가상세계그 것이 바로 MATRIX이다!매트릭스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평범한 사무직 노동자 토마스 앤더슨은 밤이면 컴퓨터 해커 네오로 변신한다. 정체불명의 여인 트리니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형사로 보이는 스미스 요원에게 체포된 그는 모피스란 위험 인물을 붙잡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요구를 거절하자 스미스는 네오의 몸 속에 모종의 괴물을 삽입하고 풀어준다. 트리니티는 그를 찾아와 세상을 지배하는 인공 지능 매트릭스에 대항하는 저항군의 리더 모퍼스에게 안내한다. 모피스는 매트릭스가 사람들에게 1999년(실은 이미 까마득한 과거이다)을 살고 있다는 환상을 주입해 그들을 다스리고 있지만 결국은 모두가 매트릭스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뿐임을 알려준다. 모피스 일행에 가담한 네오는 힘겨운 자아 각성 과정에 들어간다. 생명 유지 장치에 몸을 맡긴 네오의 의식체는 매트릭스가 구축한 시뮬레이션 일상을 돌아다니며 토마스 앤더슨일 때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 기술을 프로그램받는다. 모피스는 네오가 저항군이 오래도록 기다려온 구원자라고 확신한다. 동료 사이퍼의 배신으로 스미스에게 붙잡힌 그는 저항군 본부이자 인류의 마지막 보루인 시온의 소재를 알아내려는 스미스에 의해 고초를 겪는다. 구조에 나선 트리니티와 네오는 우세한 적과 맞서 무사히 모피스를 구출한다. 매트릭스 세력이 포위망을 좁혀오는 가운데 스미스와 맞붙은 네오는 스미스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그러나 트리니티가 생명 유지 장치의 네오를 끌어안고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네오의 의식체는 기적처럼 소생한다. 디지틀 네오는 스미스를 끝장내고 무사히 육체로 돌아와 매트릭스 세력을 분쇄한다. 트리니티를 포옹하며 구세주로서의 숙명을 받아들인 그는 잠든 세상을 깨워 반격에 나선다.{Neo(네오) (Thomas A Anderson) / Keanu Reeves낮에는 유명 소프트웨어 회사의 프로그램머인 Thomas A Anderson로 살아가지만 밤이면 세상의 진실을 찾기 위해 번뇌하는 hacker인 Neo.테러리스트인 모피스를 동경, 정보를 수집하다 잠이 든 어느날 밤 컴퓨터 스크린에 뜬 Fellow the white rabbit"이라는 문구를 보고 토끼를 따라나서다 이상한 나라(하지만 real word)의 구멍으로 빠지게 된 사나이.모피스의 신념과 달리 Oracle은 전혀 다른 예언을 해 네오를 당혹스럽게 하지만 그것은 필요한 말일뿐.... 서서히 자신을 자각하게 된 그는 Agent Smith에게 죽음을 당하지만 트리니트의 사랑과 자신에 대한 자각으로 마침내 the One으로 부활하게 된다.{Trinity(트리니트) / Carrie-Anne Moss이름 그대로 삼위일체 라는 id를 가진 해커 출신의 여전사.하지만 그가 찾기 위해 싸운 진실은 네오에게로 귀결된다.강한 것이 아름답다는 말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그녀는 끝까지 네오를 신뢰함으로써 네오의 부활을 불씨로 일깨우게 된다.{Moepheus(모피스) / Laurence Fishburne그리스 신화 꿈의 신(혹은 그 아들) 으로 불리우는 남자.혹자는 그를 세례 요한으로 비유하기도 한다.벌어진 앞 이빨이 조금 웃겨보이기도 한 이자는 고독한 전사들의 리더이며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결국 네오를 문 앞까지만 인도하는 것일뿐 결코 진실을 말해줄수 없다.{Cypher (Mr. Reagan) / Joe Pantiliano불필요한 가치없는 사람 혹은 0 일수 있지만 그렇기에 더 인간적이다.그에게는 트리니트의 사랑도 the One으로서의 사명도 없다.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싸움과 형편없는 음식, 구질구질한 생활만이 있을 뿐이다.{Angent Smith / Hugo Weaving냉철함, 차가움, 논리적이라는 단어를 한시도 놓이지 않는 매트릭스의 요원.구의 임무는 오로지 Zion으로 가는 코드를 얻는 것일뿐.그래야만 구역질 나는 매트릭스를 벗어날 수 있기때문.0과 1로 이류어진 완전한 체계의 일부인 그에게 매트릭스는 분명 역겨운 것이다. 동물원 같은 감옥 같은 세상에서 탈출을 희망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유일한 길은 거짓 밖의 세상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1.매트릭스는 무엇인가?"What is the matrix?"는 이 영화의 기본적인 물음이다.Morpheus는 이것을 말해줄수 없다고 하고 봐야만 한다지만 그점은 이후에 자세히 논하기로 하고 간단히 설명하겠다. 매트릭스란 '컴퓨터가 만들어낸 하나의 가상체제'이다. 그곳에서 자아잔류영상이미지로 자신의 육체/활동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자신의 육신은 온전히 사육당하되 정신은 1999년의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가상현실이라 할수 있겠다. 단지 그것이 가상인 것을 알수 없으며 온전히 평생을 그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2.매트릭스의 등장 및 전쟁은 어떻게 이루어졌나?매트릭스는 AI에 의해 개발되었다. AI는 21세기즘 인간에 의해 개발된 정신을 가진 인공지능으로 볼수 있다. 이들은 처음에는 인간과 거의 비슷한 대우를 받았으나 차츰 인간들과 대립하게 되고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알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게 된다. 전쟁중 인간들은 기계들이 태양열에 의존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하늘을 불태운다. 그러나 인간은 패하고 에너지원이 없게된 기계들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게 되지. 그래서 찾아낸 것이 인간의 몸에서 발생하는 열량과 전기에너지이다. 그래서 기계들은 매트릭스라는 가상 체계를 만들어서 그속에 인간들의 정신을 집어놓고 그 육체는 사육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애초의 매트릭스는 1990년대말의 상황이 아니었다. 애초의 매트릭스는 완전한 세계였다. 마치 에덴과도 같은... 그러나 인간들은 그곳에 적응을 하지 못했고 결국 20세기를 배경으로 다시 매트릭스를 설계한 것이다. 그러나 매트릭스 안에서도 어떤 사람이 나타나 저항을 시작하게되었고 그가 반군활동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다가 그가 죽게되는데 그의 환생이 바로 Neo인 것으로 보인다.3.Cypher는 왜 배신했나?흔히 Cypher가 Trinity의 사랑을 얻지 못해 배신했다고 생각하는데 Cypher는 그렇게 로맨틱한 인물이 못된다. Cypher는 처음부터 배신자(이 단어에 조심한다. 여기서 배신자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단순히 동료들에 대한 배신만을 의미한다)였다. 처음 Trinity가 요원에 쫓기는 상황부터 Cypher의 배신에 의한 제보에서 출발한다. 이는 요원들의 대화가 증명하고 이후 사이퍼와 스미스요원과의 대화에서 확인된다.4.Morpheus 일행이 유일한 반란군이다?Morpheus가 이끄는 느부갓셀호는 유일한 반란군이 아니다. 반란군의 터전이 되는 시온도 있고 또 다른 반란선도 존재한다. 영화 중간에 문어처럼 생긴 이상한 괴물들이 정찰하는 것을 제보한 것이 다른 반란선으로부터였다. 아마 2,3부에서 다른 반란선이 등장하고 모르피스의 애인 등의 다양한 인물들이 추가로 등장할 것 같다. 이외에도 영화의 곳곳에는 원맨쇼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막기 위해 곳곳에 기름을 쳐놓는데 대표적인 부분이 스푼보이 등을 또다른 가능성 운운하는 장면이다.5.리얼월드에서는 모니터로 매트릭스를 손바닥위에 놓고 본다?아니다. 흐르는 문자코드 암호코드 자체로 보인다. 물론 영상번역기가 있지만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냥 암호코드로 직접 본다. 그것이 어느정도 능숙해지면 그 암호코드가 정보 자체로 보이는 것이다. 이는 Cypher의 말과 Tank의 대사에서 확인된다.
    독후감/창작| 2002.10.14| 5페이지| 1,000원| 조회(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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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오리얼리즘 평가C아쉬워요
    ◎네오리얼리즘2차 대전 이전의 이탈리아 영화들은 무솔리니의 선전 영화와 낙관적 부르주아 영화(일명 백색 전화영화 White Telephone Films), 도피적인 코미디물과 뮤지컬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더구나 전후에는 전쟁을 치른 다른 나라들처럼 할리우드 영화가 양적으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이러한 가운데 이탈리아 영화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영화인들의 부단한 노력과 두 번에 걸친 대전에서의 패전 경험이 더해져 새로운 영화의 흐름이 일어난다. 루치노 비스콘티의 (1942)으로부터 본격적인 시작을 보이게 된 이후, 움베르토 바르바로가 한 잡지에서 '네오리얼리즘'이라고 불렀으며, 당시 파시즘의 몰락으로 인한 새로운 상황과 제반 사회 문제를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영화들이 새로운 영화 형식으로 내걸고 발표되면서 중요한 영화 사조를 형성하게 된다.비스콘티에 이어 신사실주의의 방법론과 형식을 완성한 사람이 바로 로베르토 로셀리니다. 나찌들의 잔혹성과 그것에 대항하는 인간적이고 단결된 투쟁을 그린 1945년작 는 신사실주의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린다. 로셀리니의 는 종전 직전의 로마를 기록 영화같은 생생한 분위기로 묘사한, 여러 에피소드로 엮은 영화다. 귀족 출신이자 마르크시스트였던 비스콘티는 시실리 지방의 어촌 사람들의 가난에 깊이 공감하고 그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장중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화면으로 어부의 삶을 객관적으로 관찰한 를 내놓았다. 그리고 비토리오 데 시카는 시나리오 작가 세자르 자파티니와 함께 1946년 와 1948년 을 발표한다. 희극 배우였던 데 시카는 자전거를 도둑맞음으로써 극장 포스터를 붙이는 직업을 잃게 된 중년 남자의 일화를 통해 전후 이탈리아의 심각한 실업문제를 담아냈다. 데 시카는 전후 노동자들의 일상 생활과 궁핍한 현실을 소박하게 담아 내어 혼란스러웠던 당대 이탈리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드러낸 영화 작가로 평가받았다.어떤 특정한 연출상의 방법론이나 하나의 경향으로 묶을 수 있는 사조는 아니었지만, 네오리얼리즘 감독은 이야기 법 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네오리얼리즘이 '스타일 없는 스타일의 영화, 곧 현실 앞에서 영화의 모든 인위적인 조작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애쓴 끝에 나온 스타일'이라고 정의했다. '현실이 거기에 있다. 왜 대상을 연출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 로셀리니 감독의 신조는 현실을 정직하게 담으려는 사실주의 영화 감독들의 금과옥조가 되었다.네오리얼리즘 감독들이 2차 대전의 패전국인 이탈리아의 잿더미뿐인 거리에 카메라를 들고 나가, 현장에서 행한 즉흥 연출로 실업, 가난과 같은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 영화를 세상에 내놓자 엄청난 반응이 일었다. 할리우드 스타인 잉그리드 버그만은 1948년 뒤늦게 를 보고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로셀리니에게 편지를 썼다. 버그만은 구구절절이 그 영화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칭찬한 뒤 편지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제가 아는 유일한 이탈리아 말이 있어요. 티아모(사랑해요).' 당대 할리우드의 최고의 스타인 버그만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로 전후 이탈리아 영화계는 네오리얼리즈 스타일의 영화로 사상 최대의 전성기를 누렸다.영화 배우 안소니 퀸은 그의 자서전 에서 당시의 로마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다. '로마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영화 관계자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그곳에는 얼마 전의 할리우드나 뉴욕이나 칸에서처럼 사람들이 혈안이 되어 몰려들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큰 거리 양쪽의 야외 카페는 영화 관계자들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배우의 인기도는 그 거리를 지나가는 동안 영화 출연 제의를 얼마나 많이 받느냐에 따라 측정될 정도였다. 커크 더글라스와 나는 누가 더 많은 출연 제의를 받는지 내기를 걸었다. 어느 일요일, 그는 엑셀시오르 호텔에서 포르타 핀치나이까지 갔다가 돌아왔는데, 열아홉 건의 출연 제의를 받았다. 그는 나보다 두 건이 더 많았다.'네오리얼리즘은 즉흥 연출, 스튜디오가 아닌 현장 촬영 비전문 배우를 기용한 기록 영화적 분위기 도입 등 영화 기법 면에서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로셀리니와 데 시카가 후대의 영화인들에게 가르쳐 준 가통 수단임을 일깨워줌으로써 이후의 영화인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정작 이탈리아에서 네오리얼리즘은 그다지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비참한 실상이 세계에 알려지길 꺼려한 정부의 견제도 있었지만 주된 이유는 전후 이탈리아 사회의 급속한 경제 발전 때문이었다. 더 이상 밑바닥 사람들의 삶만으로 영화를 찍을 수 없게 된 것이다.◎네오리얼리즘의 특징적 스타일첫째, 현장 작업(야외촬영, 자연조명, 즉흥연출)을 중시했다. 전쟁으로 인한 제작 환경의 부실은 이들을 자연스럽게 거리로 내몰았고 거기서 야외 촬영과 자연광 선호의 전통이 싹트게 된다. 이것은 뒤에 나오는 다른 특징들과 함께 다큐멘터리식의 사실적인 영상으로 네오리얼리즘을 규정짓게 하는 요인이 된다.둘째, 비직업 배우를 기용했다. 경제적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생생하고 사실적인 외모나 행동을 위하여 비직업 배우들을 다수 기용하였다.셋째, 후시 녹음을 선호했다. 이탈리아 영화의 관행이기도 한 후시 녹음은 저예산 소규모의 제작진으로 현장 촬영을 가능하게 했다.넷째, 롱 쇼트와 롱 테이크를 주로 채택했으며, 움직이는 인물을 화면 속에서 배경과 함께 흔들리지 않게 잡아내기 위해 트레킹 샷을 사용했다. 그들은 단순성와 자발성과 직접성을 최대의 장점으로 섬겼기 때문에 편집은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애썼다.다섯째, 느슨한 서사 형식이 특징이었다. 이전의 전통에 반발하여 느슨한 서사 연결이나 열린 구조를 선호하였다. 네오리얼리즘 감독들이 즐겼던 현장 작업은 느슨한 서사 구조를 허용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구체적인 상황 속에 배치되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은 지극히 단편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그 어떤 해결책도 제시되지 않는다. 당시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영화 속에도 고스란히 담겨있었던 것이다.이들의 영화는 열린 결말 구조를 취하고 있어서 꽉짜인 플롯을 배제하고 있다. 시작과 중간 끝이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작위적인 삶의 모습이 아니라 실제 삶의 한 단편을 제시하는 그들의 영화문제는 풀리지 않은 채 미결의 상태로 남겨졌으며, 등장 인물들도 가난한 구두닦이 소년들이거나 실직한 가장이었으며,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야 하는 비참한 노인처럼 전후 이탈리아 사회 어느 곳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감독들의 목적은 사람의 일상성을 찬양하거나 주목받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전부터 그곳에 존재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삶의 모습들을 세부적 묘사를 통해 잡아냈다.네오리얼리즘 영화의 대표적인 시나리오 작가 세자르 자바티니는 네오리얼리즘의 원칙들을 '사물을 있는 그대로 허구보다는 사실을, 고상한 영웅보다는 평범한 사람을, 낭만적인 환상보다는 사회적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네오리얼리즘 영화는 타락한 사회구조가 인간의 치를 어떻게 타락시키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며, 사회 고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네오리얼리즘 영화의 공과는 무엇인가? 비판적 리얼리즘의 중요한 성격들을 구체화시켜 낸 신사실주의는 현실적인 이념을 바탕으로 당대 제문제의 본질을 밝힌 점은 인정 받고 있다. 그러나 그 시대의 현상들을 만들어 내는 원인을 총체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표면만을 드러내는데 그치고 일관적이고 전망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들이 한계로 지적받고 있다,. 1950년대로 접어들면서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작가들이 점점 실리적이고 개인적인성격의 작품들을 만들게 되는 원인의 한 가지로 애초 그들의 분명한 방향성 부재가 지적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1940년대 중반부터 거의 10여년 동안 이탈리아 영화계를 풍미한 네오리얼리즘 영화 운동은 프랑스의누벨 바그 영화를 비롯해 1950년대 미국 영화, 50년대 후반 이후의 영국 영화, 남미의 사실주의 영화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누벨바그누벨 바그라는 명칭은 1958년 '렉스프레스'지의 여기자가 당시 새롭게 데뷔한 감독들을 새로운 물결(Nouvell Vague)이라 자칭하면서부터 영화계에 등장했다. 누벨바그는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로, 자서적인 영화보다는 앞으로 프랑스에서 나아갈 영화에 대해 논의하였다. 영화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영화 속의 현실에 대해 고뇌했던 그들은 감독의 창조적 개성을 반영한 영화가 진정한 영화라고 주장했으며, 영화 속에서 꾸준히 탐구하는 일관된 주제를 갖는 사람을 '작가'로 규정하여 영화계에 작가주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누벨 바그 세대들이 새롭게 내 걸었던 영화 형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승전결식의 양식화된 구성에서 벗어난 영화였으며, 저항과 변화를 전제로 기존의 문화 관습과 패러다임에서 탈피한 영화였다.첫째, 누벨 바그 감독들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스튜디오에서 잘 만든 세트 속에 잘 알려진 스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공 조명을 사용해 영화를 찍는 것과는 달리 이탈리아 신사실주의 전통과 바쟁의 리얼리즘 이론에 영향받아 스튜디오를 떠나 거리에서 동시 녹음으로 영화를 찍었다. 누벨 바그 감독들은 현장에서의 경험 없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만들었고 고전적인 할리우드식의 잘 만들어진 영화보다는 일부러 엉성하고 낯선 영화들을 만들었다. 당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일탈과 반항을 즉흥 연출과 인터뷰, 자막사용, 단절된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블록 구조, 관객에게 직접 건네는 대사 등 전통적인 이야기 틀을 벗어난 화면 속에 담음으로써 할리우드 영화에 도전했던 것이다.둘째, 현장 촬영을 선호하고, 들고 찍기 같은 현란한 카메라 움직임을 자주 사용했으며, 롱 테이크를 특징으로 한 영화였다. 또한 인물을 쫓거나 장소를 보여주는 데 패닝과 트레킹이 자주 쓰인다. 트뤼포의 에서 주인공 앙뜨완느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고백하는 대목에서 미디엄 쇼트로 앙뜨완느의 얼굴을 롱 테이크로 잡아 준 장면이나, 고다르의 의 첫 장면에서 자동차 사고 현장을 수평 크레인을 이용하여 카메라를 횡으로 이동시키면서 롱 테이크로 잡은 화면 등은 관객들에게 영화 속 사건에 대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카메라의 수평 이동을 통해 잡은 이동 화면을 통해 관객들이 배우가 아니라 주변 환경에 집중하.
    예체능| 2002.10.14| 5페이지| 1,000원| 조회(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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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 리뷰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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