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소설론 독서감상문02111021 신경애새의 선물이란 제목을 보았을 때에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사실 우리 과의 사람들에게 빌려 읽어야지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모두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과제가 나간지 2주 정도가 되어도 읽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러나 어느 샌가 읽은 사람들은 모두 재미있다고 입을 모아서 말했다. 처음에는 거짓말인줄 알았다. 그러나 앞으로 조금 읽어보고는 이 책을 샀다.나도 언젠가 어른 같은 생각을 하는 아이에 대해서 다루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내용을 짠 것은 아니지만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리얼리티가 살아있지 않다고 할 것을 감안해서 포기했다. 새의 선물을 보고 받는 느낌은 이런 식으로도 표현해 낼 수 있구나 였다. 물론 나는 아직 출발선에서 아장아장 걷고 있는 아기아도 같겠지만 이런 식으로 표현해 내지 못했던 너무 안타깝다.어떤 사람은 새의 선물에서 주인공인 '나'의 관점이 지극히 아이 같은 부분이 있다가 어른 같기도 하는 등. 매우 불안정 한 것이 흠이라고 말했다. 그것에 대해서 나는 오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마저도 작가의 계산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작가는 불안정하고, 미완성인 자아를 표현하기 위해서 그런 식의 표현 방법을 빌린 것이다. 같은 것을 그리고자 하더라도 작가의 능력과 취형에 따라서 달라지듯이 은희경은 불완전한 모습을 그렇게 표현했다.우선 이 글의 주인공은 진희라는 이름을 가진 '나'가 나온다. 그녀는 아직 초등학교 5학년이지만 말이나 행동은 그것들을 넘어선다. 이미 성숙한 어른의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전체적으로 진희가 자기네 집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관찰하면서 쓴 일기의 형식을 빌리고 있다. 그녀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혹은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비밀을 글을 통해서 하나씩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비밀을 같이 공유하고 싶다고 말을 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모이야기, 장군이 엄마.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나 진희가 제일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건 그것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에게 함으로써 자신의 비밀을 우리가 같이 공유했으면 하는 의도였다. 이것이 바로 어른 같으면서도 아이 같은 면이다. 집 안에 같이 있는 사람들의 비밀을 하나씩 폭로하면서 진희의 이야기도 하나, 둘씩 튀어나온다. 이것은 의도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일 안에 자신의 감정을 실어 넣는다. 진희의 진실만 마음을 알고 모르고는 순전히 독자에게 맡긴다는 뜻이 아닐까.새의 선물은 진희와 그의 이모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성장소설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 처음부분에서부터 진희가 첫사랑에 실패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그녀가 말하는 부분은 불안정했다. 이 말은 어른스러운 부분 속에 어린아이의 모습이 있다는 말이다. 즉, 엄마의 옷을 빌려 입은 듯한 아이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그러나 소설의 후반부에 들어서 그녀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깊게 생각하고,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일부러 말하지 않는다. 그녀가 말하는 부분이 퍼즐 맞추기라면 초반에서 그녀는 모든 재료를 다 가지고는 있으나 아직까지 길을 못 찾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후분에는 모든 그림의 자리를 알고 그 속까지 알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런 소설을 쓴 것일까.이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단순히 재미있는 작품이라면 소설론 과제로 나오지도 않겠지만 이 소설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더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함 참을 곰곰이 생각해 봐서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얻었다.우선 주인공인 진희에게는 엄마와 아빠라는 존재가 없다. 후반에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일이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엄마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미친년이 나올 뿐이다. 장군이 엄마와 장군이의 모습을 진희는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마음 속에는 자신도 그것을 바라고 있다. 할머니와 이모 그리고 자신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진희는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할머니는 가끔 이렇게 이모의 응석을 은근히 받아줄 때가 있다. 내가 아는 할머니라면 그렇게 비논리적이고 나이와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억지 애교를 받아들일 리 없다. 그러나 이모의 어머니이기에 할머니는 그것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모양이다. 할머니가 나의 할머니이기에 앞서 이모의 어머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내게는 어쩔 수 없이 배신감과 질투가 함께 온다. 이모는 늘 할머니에게 퉁박을 받지 않을 수 없게 행동한다. 반면 나는 언제나 할머니의 마음에 딱 맞는 존재이다.』그녀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자신을 혼내지 않는 할머니가 아니라 야단칠 수 있는 엄마일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의 존재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단순히 진희가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면을 만드는 것은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이다. 자신은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고 있지만 결국에는 혼자가 되지 않으려는 작은 아이의 마지막 몸부림인 것이다. 자신의 또래들을 아이처럼 취급함으로써 그녀는 자신과 다른 이들을 구분한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자신의 비밀을 아무에게도 털어내지 않는다. 자신의 비밀을 제시하기 보다는 주변 사람의 비밀을 하나씩 꺼내든다. 독자에게 비춰지기에는 재미를 위해 진희가 이야기를 하듯이 보이지만 진실은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버림 받을지도 모른다는 현실과 자신은 결국 손녀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 그녀에게는 상처였을지도 모른다.『나는 이런 장면을 가끔 상상하곤 했다. 기우제 때 처녀를 바치는 제단이 있다. 비가 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무기에게 처녀를 바쳐야하는데 처녀라고는 이모와 나뿐이다. 이 때 할머니는 우리 둘 중에 과연 누구를 그 컴컴한 동굴 속에 집어넣을까.그에 대한 내 대답은 놀랍게도 나였다. 또한 그럴 줄은 알면서도 번번이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내가 가진 간절함이기도 했다.』
2002 .3 .14순수와 인간미를잃어버린 현대인-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고-+독서지도실습+(목요일 1교시~3교시)=02111021 신경애='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고 나서 순수라는 단어가 머릿 속에 떠올랐다. 문명이라는 것에 취한 우리들은 배고픔을 모르고 편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그 편한 것의 이면에는 우리가 인간다움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있었다. 누가 그것을 알고 살아가겠는가?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가 된 까닭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문장이 아름답고, 내용이 감동적인 소설은 많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잃어버린 그 무언가를 알게 하는 소설은 얼마 없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작가인 김중미씨는 어릴 적부터 괭이부리마을에서 자랐다. 그에게 있어서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란 소설은 단지 허구의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추억일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이유도 그것일 것이다.소설 안에서 나오는 숙희와 숙자. 쌍둥이 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 두명의 주인공은 단지 소설 속 인물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모든 모습들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무언가를 성취하고 있는 나와 타인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 그것들은 나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고쳐야하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것은 모자르는 것만 못하다란 말이 있다. 숙희와 숙자의 장점만을 배운다면, 성격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괭이부리말아이들'에 나오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더 많이 있다. 가서는 안될 나쁜 길에 빠지면서도 동생 동준을 걱정하는 동수의 마음은 배울 만 하다고 생각한다. 아픔을 잊고, 상처를 위로받기 위해서 본드를 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모든 것을 극복한 의지는 나약한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말고도 소설 안에 나오는 영호라는 인물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부모가 없는 고아들과 같이 나누어 쓴다. 그것을 보면서 과연 몇 명의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우리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속이면서 자심의 욕망을 채워간다. 가끔 사회에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는 사람들도 부자가 아니라 어려운 시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가난한 시절에서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때를 돌이켜보았으면 한다. 적어도 그 아픔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영호가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나누어주는 것처럼 많은 것을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