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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 이데올로기의 해부 (가족은 없다를 읽고)
    가족 이데올로기의 해부박대승< 요 약 >가족은 전체 사회의 사회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체제를 이루는 하나의 구성요소로볼 수 있다. 즉, 어떤 사회체제에서도 명백히 필수적 구성요소이고, 또 그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가족 이데올로기의 중심에는 젠더관계와 연령관계에 대한 신념이 들어있다. 그것은 가족내그리고 일반사회 내에서 공식화되는 방법으로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이유이다.가부장제의 본질은 남성과 여성사이의, 남성과 어린이사이의 권력관계가 행사되고 정의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가부장적 가치는 가족들내에서 야기되고 가족들내에서 되풀이하여학습되었지만, 단지 가족들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수준에서 즉, 정치, 경제,이데올로기, 그리고 가족의 수준에서, 사회에 스며들어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동거주, 친밀성, 성애적 ? 감정적 결속을 가족의 구성요소로 본다면, 그 형태는 무한히 가변적이고, 결코보편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가족을 보편적인 형태로 단정 지을 수 없다.또한 결혼은 불평등 개념인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다. 결혼하는 것이 역사적전개와 사회적 압력의 결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우리는 자녀를갖게 된다. 그것은 가부장가치, 재산과 자아에 대한 욕구,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정상’이되고 싶은 바램 등에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갖음으로써, 가족이 형성되며, 그 안에서 여성들의 일은 이중적 성격을 띠게 된다. 아내임과 어머니임의 ‘자연적’ 책임이 주어지면, 또한 ‘자연스런’ 전제가 깔리는 것이다.국가정책은 무엇보다도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가장 강하게 영향을 받았는데, 이 이데올로기는 개념상 남성과 여성, 어린이와 어른,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사이의 불평등한 대우를 전제하고 있으며, 따라서 불가피하게 현실은 그렇지 않다손 치더라도 가족연대의 이상을 강화시켰다.가족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도전 받고 있고, 이를 통해 현존하는 사회경제적, 정치적, 가부장적 체계의 정당성에 의구심을 제기할 수 있는 추동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가족이데올로기가 없다면, 남성, 여성,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관계의 실체를 재고하고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며, 같이 살아가고 일을 할 때 좀더 평등하고서로 배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감 상 문 >이 책은 기존의 가족에 대한 관념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보고 새로운 개념을 강조하는내용이다. 그것은 가족의 가변성, 다양성, 유연성을 강조하는 ‘가족들(families)' 개념이다.기존의 ‘가족(the Family)’ 개념은 그 시대를 지배하는 특정집단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것이라고 말한다. 서구사회를 기반으로 쓰여진 내용의 책이지만, 가족이데올로기의 변화,가족원리의 변화가 사회변동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 그리고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가 각계층에 강제적으로 용해되는 점 등의 유사성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가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끔 한다.먼저 가족이란 무엇인가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기능주의적 관점에서의 가족은 머독(Murdoch)의 예에서 공동거주, 경제적 협동, 재생산, 그리고 성애로 특징 지워지는 사회집단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실재적 공동거주 없이도 스스로를 ‘가족’으로 생각할 수 있고, 그리고 또 스스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제 2 정의에대해 보면, 사실상 가부장권을 전제로 하는 젠더관계와 연령관계가 분업에 따라서 정의되는방식의 관점이 경제적 협동으로 정의되는 방식보다 더 유용하다고 기틴스는 말한다. 머독의제 3정의인 재생산 기능은 두 명의 성인에 대한 사회적으로 공인된 관계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사회적 승인은 명백히 결혼의 사회적 정의 및 관습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결혼은 문화와 시대에 따라 가변적이며, 사회계급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즉, 결혼은 보편적이지 않다. 성애 역시 재생산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머독은 이성애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상에서 보듯이 머독의 정의뿐만 아니라, 이를 수정 ? 개선한 대다수의 가족 정의는 현대서구의 중간계급들 특유의 사상과 이상에서의 가족을 당위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문제점을노출하고 있다. 여기서 가족에 대한 기능주의적 정의를 크게 개선한 ‘친족’ 이라는 용어가있다. 친족은 생물학적, 사회적, 상상적 중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개개인이 또는 집합이특정의 방식으로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을 구분시켜 준다.즉, 친족은 고도로 가변적이고 유연한 사회적 구성물로 보면 된다.하레븐이 제시한 것과 같이 가족을 분석할 때, 개인적 시간, 가족적 시간, 역사적 시간을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따라서 어느 사회의 ‘가족’의 구조와 의미를 고찰하는 데는 부양과 개인적 시간의 정의가 어떻게 바뀌고 변화하는지, 개인들과 가구들 사이의 상호작용 양식이 어떻게 바뀌고 변화하는지, 그리고 역사적 발전이 이러한 모든 것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그러므로 가족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채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신념이 깃든 보편적인 가족이 아니라, 다양하고 가변적인 가족을 생각해야 한다.전근대사회에서는 사회적, 지리적 이동과 더불어 다양한 변동이 있었다. 가족역시 예외는아니었다. 가족을 이루는 가구들은, 비록 법적으로 분리된 생산, 재생산, 소비의 단위들이라할지라도, 고정되거나 고립된 구조는 아니었다. 그것들 사이의 경계와 그 안에서의 위계는,결혼과 죽음이 가구들 사이에 사람을 이동시키고, 각 가구별로 지위와 친척관계를 재정의하는 것에 따라 끊임없이 깨어지고 새롭게 정의되어 갔다. 재산, 현금, 희생, 노동, 그리고실제로 사람들 그 자체가 가구들 사이에서 정기적으로 교환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체계 내에서 결혼에 부여된 총체적 의미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의미와는 매우 달랐다.결혼은 이제 점차 여성에게는 생존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지만, 남성에게는 그다지 중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며, 또한 부유층에게는 재산을 취득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을뿐만 아니라, 국가에게는 빈민구제에 대한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이 되었다.이데올로기란 단지 ‘막연하게 감돌고 있는’ 어떤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법을 제정하고다음에는 그 법을 수행하는 방법에 영향을 미치고 결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족에 대한 고찰을 위해서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바라본 이 책에 대해 읽으면서 공감되어지는 부분이많았다. 물론 나는 여전히 잔존해 있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있는 남자 즉, 아버지가 될 것이고, 그 이전의 가부장권에서 우선시되는 장자이지만, 기틴스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부분 동의하며 이 책을 읽어 나갔다.가족 이데올로기는 역사의 특정시기에 특정한 계급에 의해 형성되었던 것이다. 대개 가족유형을 나눌 때, 기준으로 삼는 산업화 전후의 시기의 가족들을 고찰해보면, 가족들은 부의수준, 연령별 구성, 성별 구성, 직업에 따라 매우 가변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자본주의의성장으로 좀더 많은 가족들이 임노동에 종속되어 갔다. 이것은 가능한 한 많은 가족구성원들이 생존 그 자체를 위해 노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또한, 새롭게 등장한 중간계급들이 점차 경제, 사회, 정치적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축적된 부는 중간계급의 남성을 가계부양자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을 남성의 부양가족으로 가정 내에 묶어 둘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중간계급들은 이러한 상황을 바람직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규정했다. 이와 같이 가족유형은 계급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했다.중간계급 가정 이데올로기에 내재해 잇는 가치는 묵시적으로 그리고 명시적으로 가부장적이었다. 이러한 가치들에 따른 지나친 사회입법과 사회정책이 나타났다. 법률들을 면밀히 고찰해 보면 법률들은 기본적으로 여성을 보호화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녀의 아버지 또는남편의 재산으로서의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근친상간, 강간, 그리고 아내와 자녀에 대한 육체적 폭력 등은 모두, 가족 내 남성의 권위의 관점에서 정의되는 불평등한 권력관계의 논리적 귀결이다. 현대사회에 근친상간, 폭력, 강간이 존속하는 것은, 아내와 자녀가 더 이상 남성의 재산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가부장제가 존속한
    사회과학| 2008.03.18| 4페이지| 1,000원| 조회(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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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학]문학속의 여성상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바라본문학 속에 등장하는 여성상20001642 박 대 승페미니즘(feminism)이란 무엇인가. 이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한 갈래로 문학을 통해, 여성의 권익을 주장하거나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여 이른바 여성성을옹호하는 문학을 통칭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여성학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페미니즘 문학으로 볼 수 있다.여성의 문화라는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이론은 생물학, 언어학,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하는 이론보다 좀 더 완결되고 만족스런 방식으로 여성글쓰기의 특정성과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문화이론은 여성의 육체, 언어, 심리 간의 개념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들을 설명할 때는 반드시 사회적 맥락을 함께 해석해야 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육체와 성적, 재생산적 기능을 사유하는 방식은 그 문화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 심리는 문화적 힘들의 산물, 문화적 힘에 의해 구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언어 행위가 사회적 차원을 갖고 있다는 것, 언어 사용에 개입하는 결정요소들이 이미 사회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문화적 이상이 언어 행동을 형성한다는 것들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언어 또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문화 이론은 결국, 작가로서의 여성들 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차이들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크리스티안 로슈포로(Christian Rhoshupolo)는『의식의 특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나는 여성 문학이 특정한 범주라고 생각한다.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 여성문학은 식민지의 문학이기 때문이다.’계급적, 인종적, 민족적, 역사적 차이는 젠더만큼이나 중요한 문학적 결정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문화는 총체적 문화 속에서 본다면 하나의 집단적 경험을 형성하므로, 여성 작가를 시대와 공간을 넘나들며 하나로 묶어낸다. 바로 이처럼 여성 문화의 결속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 접근은 문화적 헤게모니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접근과 다르다. 여성문화에 대한 가설들은 지난 십 여 년 동안 인류학자,, 역사에 얼마만큼이나 깊게 연루되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안나가 자신의 의식 속으로만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몰입하면 할수록 자신이 얼마만큼이나 사회적 구성물인가를 인지하여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서문에서 “개인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라고 한 말고 상통한 것이다. 이 작품은 1951년부터 1957년까지의 기간 동안 쓰여진 것으로 되어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제2차 세계 대전의 기억이 사라지지도 않은 채 폭력과 전쟁은 더욱 심해져 가는 것이 다음과 같은 곳에서 드러난다.‘검정 공책을 「출처」와 「돈」의 두 부분으로 나누려는 원래의 의도를 이제 버 렸다. 각 장들은 1955년, 1956년, 1957년 날짜의 잘라 낸 신문 조각으로 풀칠되 어 뒤엎여 있었다. 기사들은 모두 아프리카 어디에선가의 폭력과 죽음, 폭동, 증 오를 언급하고 있었다.---- (중략) ---- 검정 공책처럼 빨강 공책도 1956년과 1957년의 잘라낸 신 문 조각으로 덮여 있었다. 이 신문들은 유럽과 소련, 중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언급했다. 같은 기간의 아프리카에 관한 신문 조각들처럼 이들도 대부분 폭력에 관한 것이었다.’자신에 관한 것을 쓰려한 검정 공책은 써 갈수록 아프리카에서의 인종 차별과 제국주의의 폭력, 한국전쟁을 포함한 이 세계의 끊이지 않는 전쟁과 폭력, 그리고 증오를 다룬 신문기사 조각들로 덧붙여진다. 빨강 공책 역시 1956년부터 1957년의 기간동안 유럽과 소련, 중국, 미국의 폭력에 관한 신문 기사조각으로 메워진다.『풀잎은 노래한다.』의 여주인공 메어리가 사회의 주변부적 인물로 그려졌다면, 레씽의 대표적 단편 소설의 하나인 『19호실로 가다』는 지성적 여성이라도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정체성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어려움을 그리고 있다. 지성적이고 독립적인 수잔은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자녀 양육과 가사 일을 맡는다. 자녀 양육이 어느 정도 끝나면, 사회로 복귀할 것이라는 것이 그녀의 계획이었다. 수잔은낸 소설에서 표현했던 불공평함에 대한 개인적인 의식은, 신여성 세대가 여성 예술가들의 역할을 고통 받는 자매들에 대한 책임으로 재규정한 시기인 1880년대에 들어 더욱더 뚜렷하게 페미니스트적으로 변한다. 1890년대의 아마존 유토피아 문학(Amazone utopias)의 대표 작가이기도 한 샬럿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 은 섹스와 전쟁으로 점철된 남성중심 문학의 선입견과 해방된 여성 문학의 대안적 가능성을 분석해냈다. 길먼의 유토피아적인 페미니즘은 조지 앨리엇(george alliet)의 “소중한 특수성” 개념을 모계 중심제의 극단으로 옮겨간다. 자매 의식으로 인한 집단성에 관한 견해를 벌집에 비유하며, 길먼은 이러한 의견을 드러낸다.‘꿀벌들의 이야기는, 벌집을 짓고 꿀로 채우며, 어린 구성원들을 보살피고 먹이 는 복잡한 과업으로 가득 찬, 풍부하고 폭넓은 작업이 될 것이다. ? ? ? ? ? ? 그것 은 모성의 거대한 생산력과, 집단 어머니 제도의 교육적이고 선택적인 과정들, 벌집을 결속시키는 충성심과 사회적인 봉사로 인한 열정을 다루게 될 것이다.’이것은 복수심을 품은 페미니스트 사회주의 리얼리즘이지만, 당시의 여성소설가 들은 -심지어는 길먼 조차도 그녀의 단편 소설들을 통해- 그러한 교훈적인 공식이나모성을 강조하는 주제의 한계에 갇혀 있을 수 없었다. 1920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여성의” 단계에 들어선 여성들은 의존의 두 가지 형태인 모방과 저항을 모두 거부하고, 그 대신 문화에 대한 페미니스트적인 분석을 문학의 형식과 기법에도 확대시킴으로써, 여성의 경험에서 자율적인 예술의 원천을 찾고 있다.우리나라로 이러한 시선들을 돌려보고, 시대별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 있다.제1기 (1920~1930년대)1917년 김명순이 『의심의 소녀』를 발표한 후, 시작된 우리나라 여성 문학은 김일엽과 나혜석이 가세하면서 3인 중심으로 제 1기를 맞게 된다. 이 시기의 여성문학은 여성작가나 그들의 작품이 문학사에 편입됨으로 해마다 홍수’가 지고 농민들은 그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칠은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는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고, 빈부 격차는 타고난 팔자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주란, 팔자 사나운 소작인들을 먹여 살리는, 은혜로운 사람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홍수로 인한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아들의 노력에 대해서도 극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명칠의 태도는, 한 차례 거센 홍수 예보에도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게 만들고, 결국 어린 딸 쌀례가 홍수에 휩쓸려 죽고 마는 처참한 상황으로 결말을 맺는다.여성 문학적 관점에서 전근대적 가치나, 사회에서의 체면 등을 고려하는 남성인물에 비해, 여성인물들은 대단히 현실적이다. 그들은 가정 내의 결정이 가부장의 권위에 따라 일방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일단은 순종하지만, 이후 그것을 원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더 나아가 비현실적이고 봉건적인 사고를 가진 남편을 정면에서 비판하기도 한다.박화성의 또 다른 작품『한귀』의 남자 주인공 성섭에게 가뭄이란 하나님이 죄를 짓고 사는 인간들을 벌주시는 것이며, 더욱 더 교회에 의지해서 착하게 사는 것만이 이 어려움을 벗어나는 해결책이다. 따라서 소작료 문제로 지주와 협상을 한다든가하는 일은 그에게 있을 수도 없다. ‘착함’만이 전부라는, 이 지나친 순진성은 아내(봉현 어머니)에게 정면으로 비판당한다. 자식들이 굶어죽게 된 마당에 무엇인들 하지 못하랴는 절박성이, 아내를 ‘살기등등하고 얼골에도 푸른 독기’가 서린 모습으 로 바꾸어 놓는다.박화성의 『고향없는 사람들』에서 일제 당국의 이민정책에 대한 선전을 그대로 믿고 이주해 온 오삼룡 가족에게 닥친 어려움은 자연재해나 마찬가지로 불가항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넋을 놓다시피 한 가장에게 감정적인 분노이나마 터뜨리는 덕근 어머니의 모습은 보다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대응태도로 볼 수 있다. 남들이 다 보내는 진정서, 그것이 별 힘이 없을 지라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항의 최전방이 될 수 있다. 이런 순응의 극단에 인어공주가 있고, 저항의 극단에 아마조네스가 있다. 인어공주는 다리의 ‘첨가’ 자체가 순응이 되는 몸을, 아마조네스는 유방의 ‘훼손’ 자체가 저항이 되는 여성의 몸을 보여준다. 하지만 둘 다 온전한 몸이 아닌 훼손된 몸이라는 점에서 여성의 몸이 처해 있는 비정상적인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페미니즘의 발전은 육체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60년대에 페미니스트들은 성차(gender)가 유발하는 각종 차별과 성폭력, 매매춘, 포르노, 성 상품화 등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갖기 시작했다. 이들은 여성성을 규정해온 것은 바로 여성들의 몸의 특성, 혹은 여성의 몸과 관련된 역할들이고 이것이 여성에 억압적인 규범을 구성해왔다고 주장하면서 그동안 폄하되어왔던 여성육체 및 남성과 다른 여성육체에서 파생되는 재생산, 여성성, 모성 등에 대한 문제를 다시 고려하기 시작했다. 몸에 대한 페미니즘의 관심은 문학 텍스트에서 크게 두 가지의 방향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여성이 욕망의 주체임을 선언하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여성의 몸이 이제 타자 중심적인 '보살핌의 윤리'에 의해 세계의 중심이며 세계의 전부로 확장되는 경우이다. 작가들의 이러한 낙관주의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견고화는 여성의 육체를 상품화함으로써 미를 위한 무한 경쟁에 밀어 넣는다. 여성성의 특성으로 언급되는 허여성의 의미도 현실이라는 마법의 통로를 지나면 여성의 현 위치를 고착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게 된다. 몸 담론은 새로운 의미를 산출할 수 있는 전복의 지점이지만 스스로 왜곡될 수 있는 지점일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만 한다.우리 문학계에 몸에 대한 담론이 생산되면서 텍스트에서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이다. 이와 더불어 문화 예술 텍스트 속에서 구현되는 여성의 몸에 대한 관점 역시 다양화된다. 편차 또한 대단히 크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수동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에서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고수하며, 다른 한 편에서
    사회과학| 2007.01.20| 24페이지| 1,000원| 조회(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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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훈의 화장을 읽고
    화장 (火葬)과 화장 (化粧)20001642박 대 승을 읽는 내내 복잡한 생각의 실타래에 얽혀, 작가 김훈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마지막 문장이 눈에서 멀어지는 순간, 머릿속은 더 뒤엉키고 말았다. 작가는 상반되거나 대비될 수 있는 것들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소설의 긴장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그것은 ‘아내와 추은주’, 그의 딸과 추은주의 아기와 같은 인물적인 것과 심전도 계기판과 휴대폰, 내면여행과 가벼움 등의 소재적인 것들의 이용으로 구체화 되고 있다. 이러한 소설적 장치는 ‘사랑’의 서사와 함께 김훈의 에 긴장을 유지하는 중요한 이야기 수법이 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사랑의 실체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는 것들의 내면적 의미에 대한 가치들끼리 상호작용을 통해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사랑과 욕망에 관한 보고서이다! ”글 속의 주인공 오상무에게 있어 아내는 과거의 사랑이자 이루어진 사랑이며, 추은주는 현재의 사랑이자 이루지 못한 사랑인 것이다.‘운명하셨습니다.’ 과거의 사랑에 대한 마침표이다. 이별선고인 것이다. 심전도 계기판이 ‘0’을 가리킨다. 아내의 심장박동을 체크하는 것과 동시에 오상무의 심장을 체크하는 것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부터 이어져 온 아내와의 사랑에 이제는 더 이상 오상무의 심장이 반응하지 않는다. ‘0’이 되어 버린 것처럼 말이다. 아내의 투병생활은 서로간의 긴 이별기간이기도 했다. 아내가 고통스러운 것은 알지만, 그 깊이를 알지 못했고 오상무 자신의 고통만이 느껴질 뿐이다. 여느 연인들이 이별한 뒤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 없다. 이별의 당사자 둘 다 고통스럽기는 매 한가지지만, 상대방이 느끼고 있을 고통의 정도는 알지 못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오상무는 아직 떠나간 사랑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딸이 떠나간 사랑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거의 사랑 속에서 허우적대는 오상무를 끄집어 낸 것은 휴대폰 소리였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휴대폰 소리가 과거의 사랑에 대한 이별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화장의 글보고 당신의 이름은~~이름인지요...뭐 이런부분을 쓰자...) 작가는 추은주에 관해 글을 쓸 때마다 이와 같이 시작함으로써, 추은주에 대한 오상무의 아련한 마음을 더욱 애틋하게 표현하고 있다. 오상무 자신이 불렀을 때, 그녀의 이름이 의미를 가졌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다. 즉,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한탄이라고 나 할까? 오상무는 추은주를 바라보면서 언제나 살아있음을 느끼고, 그녀에 대한 느낌은 (책속에서 완연한다고 표현한 부분 찾아서 보충하자...) 오로지 완연한 모습들뿐이다. 그녀는 ‘햇빛, 눈보라, 그리고 저녁놀’과 같은 아득한 것들과 동격이다.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빗장뼈와 턱 밑의 살들을 더듬는 행위는 누군가를 사랑해 봤던 사람이라면 이해되는 부분일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과 동화되거나 그 사람을 상상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세상이 영영 끝날 것 같아 조바심 날 정도로 그녀에 대한 사랑이 크지만 이름을 부를 수 없는, 불인지심 같은, 그런 애틋하고 가슴 저미는 오상무의 추은주에 대한 사랑은 그녀의 모습을 묘사한 표현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떠나간 사랑 아내를 묘사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누군가의 손길이 닿으면 사라질 것처럼 대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의 추은주에 비해 오상무 자신의 모습은 초라하고, 몸 전체가 설명되지 않는 결핍이었다. 그러하기에 열렬히 사랑하고, 느끼고 싶고, 안고 싶지만 고백하지 못하는 그 고통은 빠져나가지 않는 오줌에 대한 몸속의 고통과 다름없었다. 끝내 그녀는 다른 사람 곁으로 떠나버렸다. 차마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운 좋게 지방 출장을 왔다. 하지만 공적인 일로 참석하게 된 술자리에서 착잡한 마음 때문에 아무런 소득없이 술만 마시게 되었다. 나는 이부분이 가장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너무나 사랑하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이 떠남으로 인해, 그것을 잊으려 자신의 일에 매달려 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모든 일은 부질없기만 하다. 또 술을 마시고 난 뒤에는 그녀를 떠올리는 오상무의 모습에서 나를 보는 듯 하였다. 나는 이루지 못할 사랑의 아픔을 겪고 난 뒤면 으레 술을 마셨고, 오히려 그럴수록 더 생각나는, 그래서 더 괴로웠던 날들을 보낸 적이 있다.뇌종양 발견과 그로 인한 아내의 투병은 오상무와 아내의 사랑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암시한다. 반면에, 야근과 칸막이는 오상무로 하여금 추은주를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칸막이 사이로 얼핏 비춰지는 그녀의 모습은 오상무의 애절함을 더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그의 딸은 ‘떠나간 사랑’과의 이별을 더욱 더 가슴 아프게 할 정도로 아내를 닮아 있었고, 또한 추은주의 아기는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더욱 가슴 저미게 할 정도로 추은주를 닮아 있다. 이처럼 오상무는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 사이에서 수많은 혼란과 심적 갈등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광고 컨셉 중 하나인 ‘내면여행’은 바로 이러한 오상무의 자기 확인 과정을 달리 말해주는 소설적 장치이자, 전략이기도하다. 오상무는 자신의 복잡하고, 고통스러우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던 기나긴 내면여행을 끝내고 마지막 정리를 시작한다. 바로 아내 유골의 소각완료와 추은주의 사직서 제출로써, 오상무의 사랑은 종지부를 찍는다. 종양의 불빛이 보이지 않게 된 유골의 소각완료로 과거의 사랑은 끝을 맺었고, 추은주를 미련없이 떠나보내는 사표처리로 현재의 사랑도 끝을 맺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정리하려는 그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한 가지 일이 더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히던 방광 속 오줌을 빼내는 일이다. 과거의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과 현재의 사랑에 대한 아쉬움, 그 어떤 것에도 좋지 않은 결말에 대해 언제나 억압할 수밖에 없었던 욕망의 찌꺼기 - 늘 그의 방광을 짓누르고 있던 오줌 -를 제거하는 일만이 아픔과 고통으로부터 스스로의 존재를 가볍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였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가벼워진다’로 광고 컨셉을 결정하는 것도 오줌비우기와 그 의미면에서 결코 무관하지 않다. 오상무는 떠나보낸 과거의 사랑과 이루지 못한 현재의 사랑에 대한 심적인 내면여행을 모두 마치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오줌 쌓인 몸의 무게, 욕망의 덩어리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7.01.20| 2페이지| 1,000원| 조회(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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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삼국유사에 대한 서평
    신(新) 한국유사를 꿈꾸며...20001642 박 대 승오늘날 일연 스님에 의해 쓰여진 『삼국유사』를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그 『삼국유사』가 어떤 책인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설령 내용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그것이 역사책이라고는 알고 있다. 이처럼 현 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알지 못하는, 까마득히 오래된 옛날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을 오늘날 우리들에게 뭔가를느끼게 하려고 출판된 책이 바로 『신삼국유사』이다. 제목자체에서 느껴지는 어려울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도대체 읽고나서 우리에게 뭘 느끼라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도 모두 부질없는 노파심이다. 『신삼국유사』는 ‘신(新)’이라는 뜻 그대로 새로운 것이다. 오늘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우리의 감각에 맞게 쓰여진 책인 것이다.책의 곳곳에서 삼국유사에 있는 일화들을 예로 들면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여러 단면들을 살펴보고 있다. 신라시대 토우에서 드러나는 섹스츄얼리티, 서동요나 처용가에서의 남녀간 성적 입장 등의 에로스적인 것들이 있다. 또, 선덕여왕의 일화에서의 여성지위 문제, 도깨비로 비유된 오늘날의 정치판, 가락국기와 관련한 종교와 문화 등과 같이 다양한 측면에서 삼국유사의 일화를 오늘날의 사회에 견주고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먼 옛날 선조들의 생활과 그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개탄을 금치 않고 있다. 정치, 사회, 문화뿐만 아니라 성의 측면까지 아우르고 있다. 특히 여성과 남성이 대비되는 에로스적인 내용들의 비중이 의외로 많이 차지하고 있다. 서동의 이야기, 토우, 여근곡 그리고 남근석등 핵심적으로 성적인 이야기들을 노골적이지 않게 담담하게 다루고 있다. 이것이 일부에서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스님의 『삼국유사』를 비교하는 이유이기도하다. 『삼국사기』에서 유류된 삼국의 일들에 관한 기록내지는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 내용이 『삼국유사』에 주류라는 것이다. 하지만 E.H. 카가 말하듯이 역사를 해석하는 자의 역사적 관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역사적’사실이다. 그러하기에 『신삼국사기』가 나온다고 가정하더라도, 오히려 현시대에 우리에게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고, 공감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은 『삼국유사』라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 당시의 시대상과 관련한 사실만을 기록하고, 그 당시의 상황에 부합되는 내용만을 취합한 『삼국사기』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재조명의 의미가 퇴색된다. 하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모습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모습 -남녀관계, 부자관계, 부부관계, 우정, 춤, 노래 등등-들의 일화를 다룬 『삼국유사』의 내용은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그 의미하는 바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삼국유사』는 재조명되어야할 여지가 있고, 이 책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본 『신삼국유사』는 우리에게 느끼게 하는 바가 적지 않다.
    독후감/창작| 2007.01.20| 2페이지| 1,000원| 조회(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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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소적 이성비판을 읽고 평가B괜찮아요
    디오게네스를 만나러 가는 길...- 견유주의적 삶의 태도를 갖자 -20001642박 대 승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에 차가워졌으며, 모든 것을 믿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사회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오히려 바라던 것들을 옥죄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렇게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냉소주의라 한다. 여기서 냉소는 분명 의심과 회의의 산물이다. 이 냉소에 대해 가장 철학적으로 접근한 사람이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 다이크이다. 우리는 그의 한마디 주장만 가지고서도 그에게 주목해야하기에 충분하다. 바로 이 시대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는 온통 냉소적이 되었다.’ 고 슬로터 다이크는 단언한다. 독일 사상사들의 가장 큰 결점은 아이러니, 냉소, 그로테스크풍 경멸과 조롱에 대한 감각이 없다고 오토 플라케는 말한다. 하지만 슬로터 다이크의 감각은 살아있으며, 살아 움직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감각은 그의 저서 『냉소적 이성 비판』에서 느낄 수 있다.통념상 냉소주의는 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기에,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동시에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냉소 자체가 비판이라는 것을 필연적으로 불러온다. 그렇다면 냉소적 이성비판은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에게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책에서 슬로터 다이크는 냉소주의는 계몽된 허위의식이라고 정의한다. 이 명제 자체도 냉소적이다. 계몽된 의식은 허위의식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슬로터 다이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냉소적 입장에서 -또는 관점, 시각에서- 이성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그는 이데올로기 비판을 언급한다. 이데올로기 비판이란 실패한 대화를 다른 수단을 이용해 논쟁적으로 속행한다고 말한다. 정확히 말해 단순히 치고 맞받아치는 논쟁이 아니라, 그 의도를 폭로해야 한다는 것이다. 슬로터 다이크는 『냉소적 이성 비판』에서 계몽된 허위의식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을 행한다. 그것의 구체화된 것이 냉소적 이성비판으로 8가지 폭로를 다루는데서 드러난다. 현시의 비판에서부터 사적허구의 비판까지 폭로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인간본성자체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늘 주어진 것에 인간적인 것이 덧붙여진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폭로에 대해 냉소적으로 비판하고 특히 계몽주의에 대한 냉소적 비판이 가해진다. 그 중에서 우리에게 자기 내면적 갈들의 극한을 보여주는 예로 알튀세의 자기 부인의 살해에 대한 일화는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 알튀세를 통해서 마르크스 사상을 재해석한다.폭로 이후의 슬로터 다이크의 계몽주의에 대한 냉소적 비판은 비로소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낸다. 잃어버린 뻔뻔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오늘날 냉소적인 탕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뻔뻔함의 철학, 견유주의라는 탕으로의 전환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가 말하는 키니스모스 (Kinismos : 견유주의)는 고대 그리스 원형에 서부터 찾아볼 수 있는 변증법적 물질주의의 뻔뻔함이다. 자신에 대한 진리를 알고 있고 지금 하던 것이 그 진리에 위배됨을 알고 있어도 하던 것을 계속하는 것을 현대적 냉소주의라 한다. 슬로터 다이크는 견유주의가 오늘날 현대적 냉소주의에 절실히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견유주의의 표본적인 인물로 디오게네스를 칭하고 온몸의 대화로써, 자신의 철학을 표현하는 디오게네스적 견유주의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디오게네스는 자신의 의식을 지향하고, 그 다음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대화를 한다. 이것이 궁극적인 견유주의이다. 바꾸어 말하면 디오게네스는 삶에 대한 관념과 일치하는 대안으로써, 삶의 구체화 -또는 분열- 를 택한 것이다. 자기 경험을 절대적으로 우선시할 것을 요구한다.슬로터 다이크는 이 디오게네스적 견유주의를 밑바탕으로 그것을 우리의 시대정신으로 삼고자 함을 신체 ? 정신의학으로 풀어낸다. 입, 유방, 엉덩이 등으로 서술되어지는 신체의학과 그에 따른 정신의학을 피력하는 부분에서 그가 말하는 견유주의가 우리에게 얼마나 밀접하게 존재하는 것인지를 쉽사리 알아낼 수 있다. 어렵게 보이던 철학적, 사상적 내용들도 우리 신체기관에 비유하여 논술한 부분에서는 그 이해의 정도가 넓어짐을 부지불식간에 느낄 수 있다. 덧붙여 말하면, 여느 철학관련 서적과 마찬가지로 언뜻 보면 난해하고 말하는 바를 알아내기 쉽지 않다. 하지만독일의 철학자나 사상가들을 일련 적으로 시대흐름에 맞춰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책 속의 내용은 견유주의란 사회학적 용어의 낯설음을 슬로터다이크가 좀 더 친숙하게 하기 위한 집필의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끝으로 냉소주의를 이어 받아가는 과정의 흐름에 따라 정리하여 디오게네스, 루키아노스, 괴테의 메피스토 펠레스, 토스토에프스키의 종교재판관으로 이어지는 냉소주의자의 진열장에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도구적 이성 (호르크하이머)’ 의 특징인 수단 냉소주의는 오로지 목적견유주의로 회귀할 때만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즉, 수단이 될 수 있는 목적에만 관심을 갖던 것에서 목적자체를 지향해야 하는 것으로의 회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7.01.20| 2페이지| 1,000원| 조회(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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