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고분유적 1개소를 현장 답사하고 고분의 형식, 부장유물, 연대와 그 역사적, 문화적 성격을 정리경주의 고분들이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당시의 다른 지역들에 견주어서도 특이한 점이다. 경주 여러 고분들 가운데 약 12만 5,400평의 평지에 23기의 능이 솟아 있는 황남동의 대릉원은 고분군의 규모로는 경주에서 가장 큰 것이다. 대릉원 안의 고분들은 신라왕과 귀족들의 능묘로 추정되고 있고 외형상으로는 대부분 원형봉토분으로 되어 있으나, 표형부인 부부 합장의 쌍분도 있으며, 내부구조는 몇몇 고분의 발굴 결과 신라 특유의 적석목곽분일 것으로 추정된다.대릉원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내부가 공개되어 있는 천마총과 이곳에 대릉원이라는 이름을 짓게 한 사연이 있는 미추왕릉, 그리고 규모가 경주에 있는 고분 중에서 가장 큰 황남대총 등이다. 이들 고분의 형식, 부장유물, 연대와 그 역사적, 문화적 성격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1, 천마총 - 적석목관분1)고분의 형식고분의 구조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천마총(155호 고분)은 내부에 직접 출토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 천마총은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형식이다.돌무지덧널무덤은 땅속에 곽이 들어갈 수 있게 장방형으로 판 뒤 모래와 자갈을 깔고 목제 곽을 넣고는 그 곽 안에 다시 목곽을 넣는 방식이다. 목관에는 썩지 않게 옻칠을 하고 죽은 이의 영혼을 영접한다는 뜻에서 주검을 화려하게 분장하여 안치하였다, 곽과 관 사이에는 많은 부장품을 넣어주며, 특히 피장자의 머리 쪽에 귀금속류의 귀중품을 넣었다.2)부장유물(1)천마도53*75센티미터(6세기경, 신라), 천마도 그림으로 인해 고분의 명칭을 천마총이라 하였으며, 천마도는 신라의 그림 수준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말다래에 그려진 그림이다.가운데 흰색으로 그려진 말의 사지에는 각각 날개가 달려 있어, 그것이 신성한 천마임을 말해 주고 있으며, 특히 바람을 차는 다리 모양과 갈기와 꼬리 모발이 휘날리는 모습에서 천마의 준동하는 모습이 생생하다.(2)금모(국보 189호)문양을 투각한 4장의 금판으로 구성하여 상단은 둥글고 밑으로 갈수록 넓어져서 하단은 반원형이 되어 양 끝이 처진 형태이다.(3)천마총 금관(국보 188호)넓은 대륜 위에 3줄의 연속 뫼 산자 모양과 2줄의 사슴뿔 모양의 장식이 있는 전형적인 신라계 관모형식이다.이 외에도 관식, 과대요패, 팔지, 반지, 목걸이 등의 장신구류와 환두대도 등이 있다.3)연대와 그 역사적, 문화적 성격천마총은 신라시대 고분으로 5세기말에서 6세기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적석목곽분은 세월이 지나면 썩고 위의 적석과 봉토가 내려앉아 내부가 노출되기 어렵고, 후장의 풍습에 따라 많은 유물이 부장됨으로써 오늘날 신라의 유물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당시 이러한 능묘는 왕족이나 귀족의 신분과 그 영향력을 알리는 가장 성대한 역사였고, 따라서 이런 고분들은 그 시대 문화의 정수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는 타임캡슐인 셈이다. 따라서 이 고분은 신라인의 생활모습을 짐작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됨은 물론이다.2, 미추왕릉대릉원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왕릉이다. 미추왕은 신라 제13대왕으로 김씨로서는 최초로 왕이 된 인물이다. 『삼국사기』에는 ‘미추왕이 재위23년만에 돌아가니 대릉에 장사 지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대릉원은 거기에서 유래하였다.1)고분의 형식미추왕릉의 내부구조는 적석목곽분일 것으로 추정된다. 능 앞에는 화강석으로 만든 혼유석이 있고, 남쪽에는 삼문이 있으며 이 삼문을 따라 담장이 돌려져 무덤 전체를 보호하고 있다. 또 능 전방 가까운 곳에 왕을 제사하기 위한 숭혜전이 있다.2)부장유물(1)금제감장보검(보물 645호)철제 칼집과 칼은 썩어 없어져 버리고 금으로 된 장식만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고리자루칼(환두대도)과 그 형태와 문양이 다른데, 이러한 형태의 단검은 유럽에서 중동지방에 걸쳐 발견될 뿐 동양에서는 발견되는 일이 없어, 동·서양 문화교류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2)상감유리옥부경식(보물 634호)대체로 8가지 옥을 연결하여 만든 목걸이로, 대부분의 옥이 삼국시대 신라 무덤에서 자주 출토되는 편이지만 상감유리환옥은 처음 출토되었다.그 외에도 서수형토기, 금제수식등이 출토되었다.3, 황남대총1)고분의 형식황남대총(98호 고분)은 동서의 길이가 80m, 남북 무덤이 길이 120m, 높이가 25m나 되는 거대한 능으로 낙타등처럼 굴곡이 져 있다.1975년 발굴조사 때의 기록에 따르면 북쪽의 능은 여자, 남쪽의 능은 남자의 묘였다. 호석이 맞물린 상태로 보아 남쪽 능을 먼저 축조하고 나서 북쪽 능을 잇대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1. 序論우리나라는 1962년도 1인당 GNP가 87달러에 불과 하였고 수출 5천5백만달러, 소비재공업이 전체의 74.2%에 이르는 대표적 후진국이었다.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은 1950년대에도 몇 차례 수립된 바 있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1960년대 4.19와 5.16 혁명을 거쳐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했다. 이것은 오랫동안 장기적 정체성을 가져왔던 한국경제를 의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처음으로 시도된 계획추진이었다. 빈곤에 대한 숙명론이나 체념에서 탈피하고 한국의 국민의지에 의해서 자립경제성장을 일으켜 보자는 노력이 이때부터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1972년부터의 제3차 경제 개발 계획은 성장과 안정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농어촌의 경제를 혁신, 수출을 증대하고 중화학 공업의 건설에 주력하였으며 1977년부터의 제4차 경제 개발 계획은 투자 자원을 스스로 조달하고 국제간의 이익과 손해의 균형을 이루는 데 주력하였다. 이후 5차와 6차 계획은 명칭이 경제 사회 개발 5개년 계획으로 바꾸어 시행되었는데, 이 때까지의 성장 위주의 급속한 경제 개발이 가져온 사회, 경제적인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 성장 대신에 안정적이고 능률적이며 균형 있는 사회, 경제 발전에 주력하였다.2. 경제개발계획과 1·2차 경제개발계획자본주의 제국에 경제개발계획이 도입된 것은 제2차세계대전 후였다. 경제개발계획은 정부의 종합경제정책이라는 계획된 의도로서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산업화와 사회의 근대화를 추구하면서 선진국 경제와의 협력체제를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시행된 것은 1962년 이후였지만, 처음으로 종합적인 경제개발계획이 수립된 것은 1953년 3월의 네이산보고서로 알려진 한국경제재건5개년계획이었고 다음은 그 해 7월 미국의 대한경제원조의 지침으로 한국 정부에 건의된 타스카 3개년대한원조계획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정부의 독자적인 경제개발계획은 아니었으며, 미국이 대한 원조정책의 일환으로 원조도 크게 확대되었다. 제2차 5개년계획에서 추진된 높은 수출 신장은 고도성장과 공업화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투자재의 수입 의존도의 증대로 무역구조면에서는 만성적인 불균형을 초래하였다. 즉, 무역수지는 1966년의 4억 6,960만 달러로 적자 규모가 커졌으며, 수입의존율은 16.7%에서 26.3%로 늘어났다. 이와 같이 수출 증대는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수입을 크게 유발하였던 것이다.3. 3차 경제개발계획(1) 기본목표제 3차 계획은 계획기간 중 연평균 8.6%의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다음의 목표를 중점적으로 달성할 것으로 보았다.1. 식량을 증산하여 주곡을 자급하고 농어민소득을 적극적으로 증대시키는 동시에 경지 정리 및 기계화 등을 촉진한다.2. 농어촌의 보건 및 문화시설을 충실화하고 농어촌전화 및 농어촌 도로망을 확충한다.3. 무역수출을 목표 년도에 35억불 달성하는 등 국제수지를 개선한다.4. 중화학공업을 건설하여 공업의 고도화를 기한다.5. 과학기술의 급속한 향상과 교육시설의 확충으로 인력을 개발하며 고용을 최대한으로 증대한다.6. 전력 교통 보관 하역 통신 등 사회기초시설의 균형 된 발전을 기한다.7. 4대강유역개발을 비롯한 국토자원의 효율적인 개발과 수출공업단지 등 개발단지의 조 성으로 지역개발을 촉진하고 공업과 인구를 적정히 분산한다.8. 주택과 위생시설 및 사회보장을 확충하고 근로환경을 개선함으로써 국민의 복지와 생 활 향상을 기한다.(2) 총량계획1) 경제규모의 확대경제성장과 규모는 계획기간 중(1972∼1976) 년 평균 8.6%의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국민총생산을 1970년의 2조 5,620억 원에서 1976년에 4조 2,570억 원으로 66.2% 늘인다.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은 년 평균 8.6%를 상회하는 것으로 보여지나 2차 계획기간 중의 년 평균 11.6% 보다 낮은 8.6%에 둔 것은 성장과 안정을 조화시키는 동시에 농어촌부문 중소기업 유통부문 등 저생산성부문의 개발에 역점을 둠으로써 부문간의 균형도 함께 이룩하려는데 있다. 1,경공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1970년의 64.1%에서 1976년에 59.5%로 낮아질 것이다.7) 투자재원의 조달재원조달의 구성 계획기간중의 총투자소요 4조 5,250억 원은 국내저축으로 3조 5,760억 원, 해외저축으로 9,490억 원을 조달한다. 따라서 국내저축과 해외저축의 구성은 79:21로 되어 2차 계획기간 중의 62:38에 비하여 국내저축의 비중이 크게 높아져 투자재원조달의 자립도가 제고된다.8) 투자소요와 그 배분총투자는 계획기간중의 총투자소요액은 4조 5,250억 원으로서 2차 계획기간중의 3조원에 비하여 50.8%가 증가한 것이다. 이는 국민 총생산에 대한 비율에 있어 24.9%에 해당하는 것으로 2차 계획기간 중의 26.1%에 비하여 1.2%「포인트」가 떨어진 수준이다.부문별 투자배분은 투자의 산업별 배분은 계획의 기본방향에서 설정된 제목표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을 두고 총투자 4조 5,250억 원 중 농수산부문에 11.8%인 5,360억 원 광공업에 28.8%인 1조 3,020억 원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부문에 59.4%인 2조 6,870억 원을 투자토록 하였다. 특히 농수산부문투자는 2차 계획보다 183.6% 증가했고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부문은 39.4% 증가하였으나 그중 전력 교통 통신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은 45.6%가 증가하였다. 한편 광공업투자는 47.4% 증가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투자비율이 떨어졌다.9) 국제수지의 개선규모의 확대는 계획기간 중 상품 및 용역을 포함한 총수출은 1970년의 1,379백만 불에서 1976년에 4,058백만 불로 약 3배 늘어난다. 이중 무역수출은 1970년의 882백만 불에서 1976년에 3,510백만 불로 약 4배 증가하며 무역 외 수입은 1970년의 497백만 불에서 1976년에 548백만 불로 약 2배 증가한다. 이중 무역수입은 1970년의 1,804백만 불에서 1976년에 3,654백만 불로 약 2배 증가하며 무역 외 지불은 1970년의 378백만 불에서 1976년에 878백만완전취업을 점차 해소할 것이다.15) 주요농산물 증산과 주곡의 자급식량증산과 주곡의 자급은 식량작물의 수요는 60년대에 년평균 5%씩 계속 증대되었는데 반하여 국내생산은 년평균 2.5% 증가하였으며 주곡인 쌀도 년평균 3%의 수요증대에 대하여 국내생산은 2.3%의 증가로 양곡도입을 불가피하게 하였다. 식량의 수요는 계획기간 중에도 인구증가와 소득증대에 따라 계속 증가될 것으로 예측되나 쌀은 1인당 평균 소비수준이 1970년에 140kg에 이르렀고 앞으로 소득증대에 따른 식품소비 기호의 변화와 미가의 적정화 정책 등으로 1인당 쌀의 소비량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아 총수요는 인구증가에 비례하여 년평균 1.5% 정도가 증가될 것으로 추정된다.16) 수리 경지정리 및 기계화 촉진농업용수의 확충 수리시설이 가능한 1,176천ha를 계획기간 중에 모두 완료한다. 또한 4대강 유역 등 대 하천유역의 종합개발로 수원을 보강하여 조수해를 극복하는 농경지를 조성토록 한다.경지정리의 확대 경지정리는 농업기계화기반의 확대와 농로 수로의 정비로 노동능률을 향상시키고 경지 이용도를 높이며 토양개량 및 지력증진 등 종합적인 효과를 위하여 필요한 사업으로서 계획기간 중에는 보다 중점을 두어 정리가능면적 600천ha의 75%인 450천ha로 확대한다.영농의 기계화 촉진 계획기간 중에는 약 450천ha의 기계화를 목표로 하여 동력경운기 38.7천대 방제기 98천대와 양수기 탈곡기 등의 보급으로 기계화를 촉진한다. 농업기계화 촉진에 있어서는 조작기술의 습득 유지 보수 농가의 부담능력 등 문제점이 수반되므로 농민에 대한 기술보급을 강화하고 기계의 국산화촉진과 공급체계를 개선하여 보급후의 유지 관리를 충실히 하여 기계 이용의 효과를 높이도록 한다. 수리시설 경지정리 기계화촉진을 위하여 계획기간 중 각각 182억 원 454억 원 406억 원을 투자한다.17) 4대강 유역의 개발촉진4대강 유역의 종합개발 4대강 유역개발은 1971년에서 1981년에 걸치는 장기계획으로 추진될 것이며 3차 되어야 할 것이다.비철금속공업은 기계공업의 소재를 공급하는 비철금속공업은 제품수요의 증대로 시설의 확장을 가져왔음은 물론 원료광물의 생산증가도 유발시켰다. 비철금속의 수요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므로 부분을 국산으로 공급토록 한다. 계획기간중 금속공업부문에 필요한 투자는 내자 680억 원 외자 355백만 불 계 1,780억 원이 소요된다.24) 기계공업일반기계공업은 계획기간 중 건설사업의 추진에 따라 중기의 수요는 년평균 6.3%로 증가되어 1976년에 2천대에 달할 것이므로 이와 같은 수요에 부응하는 중기계공장을 건설한다. 한편 농업기계는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노동력의 기계대체를 위한 농업기계화의 촉진에 따라 계획기간중 동력경운기 38.7천대와 방제기 양수기 탈곡기 등을 생산보급한다. 이를 위하여 기존시설을 전문화 및 계열화함으로써 경운기 생산은 1970년의 3.7천대에서 1976년에 10천대로 증가시키고 그 국산화를 촉진한다.25) 중소기업중소기업은 수출 전망이 유리한 업종이나 지방특화산업 및 대기업과의 계열화가 가능한 업종 등을 중점 육성하여 중소기업부문의 생산성향상과 수출 및 고용을 증대시킬 것이 요청된다.26) 교통철도 철도는 신규철도건설을 억제하고 화물수송을 위한 애로구간의 시설능력확장 및 디젤기관차 화차의 증가와 더불어 화물수송방식의 개혁 업무의 기계화 등으로 경영합리화를 기하여야 할 것이다. 철도건설에 있어서는 중앙 태백 영동선(348.6km)을 전철화하여 영동지구의 석탄과 시멘트 수송을 위한 선로능력을 증가하고 수요지인 대도시에 화물의 하역을 신속히 하기 위한 화물취급시설을 확장한다. 수도권의 교통난을 완화하기 위한 지하철건설과 병행하여 수도권기존철도를 전철화한다. 철도차량에 있어서는 철도화물수송수요의 증가에 대비하여 디젤기관차 100대를 도입하고 화차 2,200량 및 객차 770량을 건조한다. 철도수송효율을 향상하기 위하여 주요선의 선로개량과 아울러 철도업무의 기계화 종업원의 교육강화에 중점을 두며 건널목시설 등을 정비 개량하여 철도수송의 안다.
서론1. 일본에서의 한국문화 붐최근 몇 년 사이에 일본에서 영화, 가요 등 한국 대중문화와 김치, 고추장 등 한국관련 제품의 이상적인 선호현상 소위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그 동안 우리나라가 중국, 일본, 미국 등 외국으로부터 문화를 수용하기만 하였는데 다른 나라에 우리문화를 보급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반갑고 주목할 만하다. 이렇듯 한국문화 붐은 정부도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설 만큼 대단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급속하게 불고 있는 이 한국문화 붐을 아무런 분석 없이 그냥 지나친다면 모처럼 맞은 이러한 호기를 언제 놓칠지도 모르는 지경이다. 따라서 이 한국문화 붐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를 발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일본에서의 한국문화 붐을 알아보고 그 배경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살펴보자.본론1. 한국문화 붐의 예★ 한국음식 열풍‘한국 음식이 맛있다'라고 하게 된 시기에 와서야 비로소 한국의 대중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다. 어차피 영화, 가요 등의 대중문화 고객은 젊은 층이다. 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 음식을 맛있게 먹어본 뒤에야 비로소 한국이란 나라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 음식의 키워드는 '카라이(맵다)라는 단어인데 일본인들은 김치찌개 식의 한국식 매운맛을 알고 나면 거의 미친다고 한다. 인스턴트라면의 원조국인 일본에서 최고 히트작 이칸코쿠토오카라시멘 (한국 고추면)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TV프로에서는 여지없이 한국 이야기가 나오고, '언제부터 일본인들이 그토록 한국 음식을 좋아했나'하고 깜짝 놀랄 정도로 한국 음식 소개 프로가 있다고 한다. 3,4년 전 김치 붐이 한창 일었을 때, 한 방송사가 김치에 대한 특집을 제작해 방송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한국 음식 소개라면 유명인들이 한국으로 가서 소문난 식당을 찾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내용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가령 김치가 어떤 성분 때문에 몸에 이로운지 직접 의사가 실험을 하고 그 내용을 다큐멘터리로 엮어 방송했던 것이다. 그 효과는 있으며‘가을동화’와‘겨울연가’도 5월 일본에서 DVD가 출시되기 전까지 상당량을 일본 고객들이 사갔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본 DVD시장에 한류열풍이 불다 보니 아예 DVD 판권이 TV 판권보다 먼저 팔리는 예도 있다. KBS미디어에 따르면 원빈이 주연한 드라마‘광끼’의 DVD 판권이 TV 판권에 앞서 팔려 9월 일본에서 DVD로 발매될 예정이다.‘광끼’의 경우 지난해 일본 TV에서 방영된‘가을동화’덕분에 원빈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DVD판권 계약이 이뤄졌다. MBC는 드라마‘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를 DVD로 먼저 출시한 뒤 TV로 방영하자는 제안을 받고 검토 중이며‘로망스’는 8월말 DVD로 발매되었다. 또‘레디고‘호텔리어‘별은 내 가슴에’등이 일본에서 DVD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SBS도 NHK BS1채널과 드라마‘해피투게더’‘올인’ 수출협상을 벌이면서 DVD수출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 내용이‘드라마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책으로 묶여 나오거나 한국어 교재용 대본집으로 출시되기도 한다. ‘겨울연가’는 7월20일 두 권의 소설로 출판돼 8월말 현재 28만부가 팔렸다. 또‘별은 내 가슴에’‘안녕 내사랑’‘레디고’등도 소설 출시를 위해 일본 출판사와 MBC프로덕션이 출판권 수출 협상을 벌이고 있다. 우리 드라마와 영화가 이처럼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요인을 무엇일까. 일본 소니네트 워크커뮤니케이션즈 텔레비전의 가와고에 테쓰야 프로듀서는 일본 여성들의 ‘신데렐라 신드롬’에서 원인을 찾았다. 그는“일본에서 한국 드라마가 주로 방영되는 시간대가 밤 10시 이후”라며 “이 시간대에는 직장여성과 가정 주부가 주 시청자여서 용모가 빼어난 배우들이 출연해 사랑을 나누거나 어려움을 딛고 눈부시게 성공하는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한국 드라마가 인기”라고 말했다. 이 같은 요인은 한편으로 한국 드라마 수출을 제약하기도 한다. MBC프로덕션의 구대성 국제사업부장은 “아직까지 국내 드라마의 일본 수출은 작품성보다 스타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일본 방송사에게는 참신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아의 성공은 불황의 늪에 빠진 국내 음반계에 탈출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월 발표한 보고서 '국내 음반산업의 주요 이슈와 대응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보아를 해외진출 성공사례로 제시하며 "국내 음반산업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투자와 인력이 음반산업에 다시 유입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또한 시장 규모가 크고 불법 복제가 적어 수익률이 큰 일본시장을 대상으로 한 '대작'을 기획한 것도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보아가 이루어 낸 더 큰 성과는 일본에 대한 우리의 문화적 열등감을 해소해 줬다는 데 있다. 일본문화 개방을 앞두고 문화 잠식을 우려하며 절절 매던 때와 달리 일본 대중이 우리 가수의 노래를 듣고 열광한다는 데서 자부심을 얻게 된다는 것. 문화평론가 김지룡씨는 "지금까지는 우리 것을 세계 속에 내 놓기를 부끄러워했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보아의 성공은 우리 문화가 세계 수준에 올랐으며 문화 컨텐츠 수출에 대한 희망을 얻게 된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소녀 가수 보아가 화려한 성공 신화를 이루면서 요즘 일본에서 활동하거나 일본 진출을 준비하는 한국 연예인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중 가장 오래 활동하면서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는 이가 바로 윤손하(27)이다. 그녀는 2000년 6월 NHK 드라마 '다시 한번 키스'로 일본 안방극장에 진출했다. 그녀는 현재 일본에서 '소나'라는 애칭으로 연기자, 리포터, 작가, 쇼 프로그램 게스트 등 폭넓은 분야를 넘나들며 전천후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MBC에서 그녀의 일본 활동을 담은 휴먼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기도 했다.그밖에도 원빈이 최근 한 일본 아줌마 팬에게서 명품 브랜드인 C사의 고가 시계를 선물 받아 화제다. C사의 시계는 웬만한 제품이 1000만원을 호가하는 고급시계로 보통 사람들은 만져보기도 쉽지 않다. 연예인을 상대로 한 일부 재력가의 애정 공세 때 가끔 등장해 화제가 된 시계이다. 일본 아줌마 있는 5인조 남성그룹‘SMAP’멤버이며, 국내에서는‘초난강’으로도 잘 알려진 구사나기 쓰요시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지난 6월 일본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과의 TBS 방송 대담에서“한국어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구사나기가 그 꿈을 실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밖에도 인기 여배우 나카타니 미키, 중견배우 가가와 데루유키, 30년간 연극배우로 활약해 온 이치무라 마사치마 등이 출연하고 있다. 4일 도쿄 인근 조후시 닛카츠 촬영장에서 가진 제작 발표 기자회견에는 방송, 신문, 잡지 등에서 100여명의 기자들이 참석해 뜨거운 취재 경쟁을 벌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수 년전부터 한국어를 공부해 이미 유창하게 한국말을 구사하는 구사나기 뿐 아니라 다른 일본 출연진도 모두 한국어로 인사말을 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한국 문화 전문잡지도 잇따라 창간한국가요 전문지인‘K-POP'와 연예전문지’핫칠리페이퍼‘종합 문화지 ’프로포즈‘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뜨는 잡지이다. 한국방송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kn-tv에도 일본인 신청이 늘어나 현재 가입자 2만 5000천명 중 60%이상을 차지한다. 니이가타 현 라디오 방송 FM포토는 2월부터 매주 화요일을 한국의 날로 정하고 하루종일 한국 관련 방송만 하는 등 방송계에서도 한국 문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전문가들이 보아의 성공 비결을 철저한 시장조사에 의한 사전준비와 기획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콘텐츠 진흥원 김병석 음악산업팀장은 "보아는 4년 간의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 현재 일본어 방송을 진행할 수준의 일어 교육, 일본 현지 음반사 AVEX를 통한 활동 등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선행됐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 뒤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국내 음반 시장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쳐 해외 진출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미국 다음인 세계 2위의 규모인 선진 대중음악 시장이기 때문에 분위기에 편승한 주먹구구식 접근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중음악 평론6년 초 조사 때는 진로를 안다는 소비자가 55%였지만, 96년 10월 첫 광고를 내보낸 이후 급상승해 작년 말 조사 때는 브랜드 인지도가 86%로 올라갔다. 과거엔 음식점 등 업소 판매량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전체의 40%가 일본 가정에서 팔린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비결이다. 김태훈 사장은 지난 84년 진로그룹 다른 계열사의 오사카 주재원으로 나온 이 후 15년을 계속해 일본에서 근무, 일본주류 시장의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 꿰차고 있다. 3∼4년만 되면 교체하는 다른 한국 기업과 달리 일본 전문가를 키워 맡긴 것이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2. 일본에서 한국문화 붐을 일으키는 이유1) 2002년 한·일 공동월드컵개최의 효과▶월드컵을 계기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증대와 이미지 상승(기사요약)-아시아 최초의 4강행과 함께 일본에서 폭발적인‘한국붐’이 불고 있다. 일본 민영방송사인 닛폰TV는 24일 밤 월드컵 한국특집방송에서 이례적으로 현장 생중계를 했다. 메인 진행자 2명이 직접 한국의 동대문시장을 찾아 한국의 뜨거운 월드컵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파격적으로 빨간색 티셔츠와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맨 여자 진행자는 동대문시장의 한 노점음식점에서 순대와 떡볶이를 먹으며 방송을 진행했다. 일본TV에서 이런 일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되다시피 하고있다. 4강행을 기점으로 한국 관련 보도가 셀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 전 골든골의 주인공 안정환과 승부차기에서 4강행 결정골을 터트린 홍명보는 일본에서도 스타가 됐다.22일 한국-스페인전을 생중계 한 NHK는 시청률이 28.7%였다고 발표했다. 당일 밤 터키-세네갈전이 27.7%. 낮 경기 중계가 밤 경기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는 한국전이 처음이다. 교도통신도 24일 일본인 10명 가운데 6명은 한국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다는 앙케트 조사를 발표했다. 또 한국 대표팀 유니폼도 인기를 끌고 있다. 도쿄와 오사카 등 시내의 옷가게를 중심으로 빨간색 유니폼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보도.
머리말요즘 우리는 TV에 친숙해 있다. 예보다 접할 기회가 많고 인터넷이라는 컴퓨터에 많이 빼앗겼지만. 우리들에게 어린 시절의 TV는 빼놓을 수 없는 크나큰 친구였다. 그 중에서도 만화를 들 수 있다. 어릴 때 만화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본되어 있는 문고판 책뿐 아니라 TV만화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일요일 아침 울면 안돼 를 외치던 캔디 , 그리고 미래소년 코난 등이 있다. 어릴때의 기억의 잔상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때의 추억때문일까? 아직도 저패니메이션이라 대별되는 일본 만화가 더욱 친숙하게 느껴진다. 요즘도 가끔은 애니메이션을 접하게 된다. 물론 저패니메이션이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른 채 쳐다보던 그 모습에서 이제는 나름대로의 재미와 비판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럼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 알아보자.1.애니메이션애니메이션(animation)은 움직이는 그림이다. 애니메이션은 어원에서도 보듯이 생명이 없는 사물에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는 동영상 작업을 총칭 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또한 그 기법에 있어 24프레임을 각 프레임마다 정지시켜 각각을 따로 촬영하는 것이다.2.망가에서 저패니메이션(망가, 아니메, 저페니메이션)1)망가(manga)망가(まんが:만화)"는 1815년 호쿠사이(ほくさい)라는 미술가에 의해 만들어졌고 '무책임한 그림들'로 통했다. 하지만, 이 망가가 아니메의 근간이 되었고, 일본 지하철 어디에서도 일본인 손에 이 망가가 들려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일본인의 정서와 생각을 담아 내고 있는 일본 문화의 키워드가 되었다.2)아니메(anime)지금은 이 아니메{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쓰여지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일컫는 다른 말로 Japanimation이라는 용어가 있다. 하지만 이는 미국에서 시작된 말로 자국의 애니메이션과 구분하는 산업적 측면이 강한 용어적 성격을 띈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나온 그들만의 단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다르다고기 있는 만화주간지인 는 발행 부수가 매주 평균 600만 부이며, 인기 작품의 경우에는 총 발행 부수가 1000만부가 넘는다. 더욱이 이러한 작품들은 우리 나라는 물론, 대만, 홍콩, 태국 등에서 단행본 출간으로 폭발적 인기와 수입을 올린다. 이러한 만화들은 곧 애니메이션화로 TV나 극장으로 상영되어 그 인기는 더욱더 막강해진다. 고단샤, 슈에이샤, 쇼가쿠간 등 일본을 대표하는 3대 출판사를 비롯하여 주요 출판사들의 주된 수입원은 전체 출판 율의 40%을 차지한 만화입니다. 95년이후 현재까지 매주 100만 부 이상 발행되는 대형 주간지가 총 13총인데, 이 가운데 여성 생활정보지 1종을 제외한 12종이 모두 만화잡지이다. 또 이중에서도 인기는 소년 주간지와 더불어 20∼30대 샐러리맨만화이다.2)일본 애니메이션-시작과 배경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의 역사는 1917년 시모가와 보코텐, 고우치 준이치, 기타야마 세이타로 3인에 의해 시작되었다. 시모가와 보코텐에 의해 만든 "문지기 이모가와 게이조"라는 작품이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으로 기록된다.일본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은 세오 미츠요가 만든 "모모타로의 바다매"인데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애니메이션은, 영화사 전속의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이라는 형태만 제외되었을 뿐 작품들이 미국에서 계속 수입되었기 때문에 교육용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만 그 명맥을 이어갔다.일본에 처음으로 공개된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은 였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폐허가 되어 버린 마을에서 눈부신 컬러로 나타난 디즈니 만화는 문화적 충격이었으며, 그 이후 디즈니에 사로잡혔던 아이들이 성장하여 애니메이션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1956년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기업수준의 대규모 애니메이션 제작에 뛰어든 토에이 동화는 스스로 "동양의 디즈니"를 목표로 하여 설립한 후 2년 만에 일본 최초의 장편인 을 완성시켰고, 그것을 시작으로 매년 일본과 동양의 이야기를 소았다. 이것은 성적인 이야기를 단지 만화로 만든 고전적인 것과 달리 포르노그라피 그 자체였다.다음으로 소녀만화라는 분야도 주목을 받았는데. 특히 환상적이고 문학적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작품, 또는 고등학교를 무대로 소년애를 그린 작품 등 종래에는 없던 작품이 나타났다. 한편 제3기에 만화제작방법으로 인정받은 원작만화는, 제4기에 들어 만화원작가를 지망하는 청년들이 나타날 정도로 정착되었다.6)생활감을 잘 드러내는 만화 (제5기 : 1979∼1986)이 시기에 일본 경제는 장기적으로 안정세를 보였으며, 국민의 중류의식과 현상 긍정주의가 정착하였다. 즉 문화적 에너지는 가속되지 않고 자가 소비적으로 흐르게 되어는데, 만화도 새로운 경향은 나타나지 않았고, 10년, 20년전을 반복하며 기술적으로만 정교하고 치밀해져 갔다. 제5기는 전반적으로 제4기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한편 제5기 초반에는 네칸만화가 큰 붐을 일으켰다. 이 현상은 극화의 설정이 너무나도 거짓처럼 느껴지거나 실증이 난 것에 대한 반동이라 볼 수 있다.한편 「영점프」가 영지 제1호로 창간된 1979년을 제5기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소녀만화의 장기인 연애물을 영지·소년지의 러브코미디물에 잠식당한 결과로 제4기에 새로운 분야로 주목을 받은 소녀만화를 총체적으로 침체에 빠지게 하였다. 반면 소녀지에 게재된 작품이 단행본으로 만들어진 후 독자층이 넓어지는 현상도 나타났다.7)정보를 제공하며 문학에 영향을 끼치는 만화 (제6기 : 1986∼)제6기는 하드커버로 제작된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단행본 『만화 일본경제입문』이 출간된 1986년부터이다. 이 작품은 속편과 자매편이 나왔을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는데, 그 영향으로 만화와 인연이 없던 출판사까지 비슷한 종류의 책자를 출판하게 되었다. 내용은 경제·정치·법률·자연과학의 해설로부터 고전·위인전기에 이르기까지 폭넓었는데 총칭하여 정보만화라고 부른다. 한편 제6기에는 만화가 문학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만화에 대한 평론도 나타났다. 또요새 마크로스〉(1982), 카와지리 요시아키의 〈요수도시〉(1987년), 미야자키 하야오의〈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년)와 〈천공의 성 라퓨타〉(1986년),오토모 카츠히로의〈아키라〉(1988년) 등이 있다.·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 재도약기일본애니메이션 업계의 불황은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다. 이는 극장용 장편들의 계속적인 흥행실패로 인해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가 감소하고 컴퓨터 게임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보급되면서 21세기형 놀이 문화의 붐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황극복을 위해 옛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리메이크 작품들이 복고주의의 영향을 타고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세일러문〉(1992년), 〈슬램덩크〉(1993년)은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였고, 〈추억은 방울 방울〉(1991년), 〈붉은 돼지〉(1992년)이 다수의 팬을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돌리게 하였다.97년 10년만의 히트작 안노 히데아키의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두 애니메이션 작품의 무게 실린 세기말적 주제는 사회학자들 사이에서 논의가 될 정도로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대중문화로서 일본 사회에 애니메이션의 위력을 한껏 보여주게 되었다.주요 작품으로는 타카하타 이사오의 〈헤이세이 너구리 대전쟁 폼포코〉,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 기동대〉(1995년), 데자키 오사무의 〈X〉, 콘도 요시후미의 〈귀를 기울이면〉, 오토모 카츠히로·모리오토 코지의 〈메모리즈〉(1995년) 등이 있다.·200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미야자키 하야오의 흥행과 작품성의 성공, 의 일본 박스 오피스 1위 점령 등 밝은 미래를 보여주고, 아니메 초기를 이끌던 선배감독들의 정신을 이어 받은 후배 재능꾼들의 포진으로 강렬한 창작의지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어서 일본 아니메의 미래를 밝다.6. 흥행요인 - 성공비결1)마케팅◎캐릭터의 철저한 상품화캐릭터들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동식물이나 인물들로 이들의 성격이나 모습이 어떻게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그 애니메이션의 성패가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핵심이다. 그런데 일본은 영화취미의 도를 넘어 빠져드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팬 ,매니아, 그 다음의 단계가 오타쿠다. '오타쿠'가 되기 위해선 전문가를 넘어 비평가 적인 시각까지 지녀야 한다. 애정의 대상을 여러 각도의 관계성으로 인식하고 자기자신과의 관계를 뒤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오타쿠가 팬이나 매니아와 다른 점이 바로 이점이다. 앨빈토플러는 '미래 사회에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결합된 생비자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직접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여 이런 이분법이 사라진다고 했는데 이러한 전조를 바로 일본의 오타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이 오타쿠라는 단어가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배경에는 미국은 물론 동남 아시아, 유럽 등지 전세계에서 일본의 아니메, 만화의 팬이 급증하고 있는 사정이 있는데, 즉 이런 사정은 세계적으로 아니메 오타쿠가 확실하게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2)코스플레이(cosplay)흔히 일본식 표기법으로 코스프레(コスプレ)라 일컬어지며 코스튬(costume)+플레이(play), 즉, 애니메이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똑같은 의상을 입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그들은 아니메를 계기로 해서, 만화나 특수촬영물 등의 오타쿠 문화에 빠져 있는 것이다.이것은 의상을 입고 행동한다는 것으로서 원의(原義)를 우리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가장무도(假裝舞蹈)이다. 이것이 하나의 문화로서 발생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문학 작품에 비추어 본다면, 16세기 세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는 곳은 바로 가장무도회였다. 한국의 가면극에서 또한 가면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익명으로 일상적 공간을 극복하고 자신들이 가진 불만을 해소하는 모습에서 그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따라서 수용자는 코스튬플레이를 통해 작품 속의 캐릭터와의 이미지 동일화를 이루는 것이다. 자신과는 동일선상에 놓일 수 없는 이미지의 경배... 의상과 외적 형태의 동일화는였다.
베니스의 상인어릴 때, 베니스 상인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동화책이 였지만,,,) 그때는 아무 생각없이 읽었던 책이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여러 시대적 상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은 그의 희곡 중 가장 대중적이며, 치밀하고 견고한 구성으로 되어있다. 「베니스의 상인」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자본주의 태동과 더불어 야기된 사업 금융의 문제를 다룬 최초의 경제 진단서로 이 경제문제와 관련해 소외자 유태인의 문제를 부각시켰다.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로부터 벨몬트에 사는 포샤에게 구혼하기 위한 여비를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가지고 있는 배를 담보로 하여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으로부터 돈을 빌린다. 그리고 돈을 갚을 수 없을 때에는 자기의 살1파운드를 제공한다는 증서를 써 준다. 포샤는 구혼자들에게 금·은·납의 세 가지 상자를 내놓고 자기의 초상이 들어 있는 것을 선택하게 하였다. 바사니오는 납으로 된 상자를 골라 잡아 구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배가 돌아오지 않아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남장을 한 포샤가 베니스 법정의 재판관이 되어, 살은 주되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고 선언함으로써 샤일록은 패소하여 재산을 몰수당하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것을 명령받는다. 그 후 안토니오의 배는 돌아오고 샤일록의 딸 젠카도 애인 로렌조와 결혼한다.당시 런던 시민이 가지고 있던 증오심과 반유대 감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이 작품은 르네상스시대 최대 상업도시 베니스의 거리를 배경으로 하여 베니스에서 활동하는 상인과 고리대금업자의 경제적 삶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기독교 사회와 유태인 샤일록은 관계에 대해 중점을 두고 서술해 나가고 있다.이 작품에서 우리는 특히 샤일록이라는 인물 설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분명히 잔악하고 몰인정한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기독교인들의 박해를 받으며 살아가는 비극적인 인물로도 보여지기 때문이다. 사실상 안토니오의 투자행위와 샤일록의 고리대금업은 재산증식을 목표로 하는 똑같은 자본주의 경제행위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안토니오를 포함한 베니스 기독교 상인들은 지배계층으로서 위치를 정립하기 위해 경제행위를 합리화하는 한편 이방인의 경제행위를 억압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에 반해 샤일록은 살아남기 위해 현실원칙에 충실한 자본주의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베니스 사회의 종교적 편견의 문제는 안토니오와 샤일록 사이의 적대감에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과 유태인 사이의 사랑이라는 정반대의 사건에서도 나타난다. 로렌쪼와 제시카의 사랑은 기독교와 유태인 사이의 화합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종교적 화합을 약속할 만큼 순수하지도 희망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그들의 사랑은 돈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에 제시카의 미래는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