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게리 그는...Subject : 현대 건축Date : 2003.11.22Prof. : 박석현 교수님Major : 건축공학과Student no. : 0032124Name : 유 정 숙◎ 거장이 되기까지의 프랭크 게리 건축계의 뚝심 있는 장인인 프랭크 게리는 1909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유태교집안의 종교적인 영향을 받으며 자라는데 특히 조부가 운영하던 가게에서 망치, 톱, 울타리, 파이프, 지붕재, 볼트, 나사, 쇠사슬, 금속기구류 등을 접하면서 재료의 본성을 어렸을 적부터 깨달았고 그 후 그는 건축에서 연결 사슬망이나 주름 접힌 메탈패널 등으로 발전되어 표현되기도 한다. 여기서 받은 재료의 본성에 대한 충격은 그의 일생을 지배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그가 특이한 건축가로 불리워지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그 후 20살 즈음에 트럭 운전 일을 하며 돈을 벌어 야간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데 당시 그는 사물의 본질에 대해 깊은 사고를 하게 된다. 그 당시의 이미 그는 사물에 대해 깊은 사고를 하고 이당시의 경험과 사고가 그의 건축의 방향을 결정 지운다.그는 또 조모로부터의 영향도 받게 된다. 조모는 특히나 물고기를 좋아했었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조모의 물고기를 봐온 게리는 물고기라는 존재를 아주 친숙히 생각하게 되었고, 그의 작품들에서 물고기라는 특이한 아이템을 많이 사용하였다. 할머니가 주말마다 시장에서 사오는 물고기들이 훗날 게리의 건축에까지 접목시키게 된 것이다. 이처럼 프랭크 게리는 조부모로부터 문화적인 가치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받으며 자났고 그 영향들이 고스란히 훗날 그의 건축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프랭크 게리에게 있어 그루엔이란 사람을 만남으로써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오게 된다. 1950년 그루엔과의 만남으로 인해 도시계획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전공하다 대학시절 교수들의 도움으로 1956년에는 하버드대학원 디자인학과에 들어가게 되는데 다른 학과의 강좌도 열심히 첨강 하면서 그의 일생동안 새로운 사상을 추구하도록 자극받게 되었던 것ject)인 까닭에 조각이어야 한다'는 스스로의 건축정의를 바탕으로 하루에 적어도 12시간 이상을 작품창작에 쏟고 있다는 게리는 그의 건축에 관한 정의를 웅변하듯 기존의 건축형태를 생성시키는 철골과 콘크리트 대신에 물결모양으로 주름진 알루미늄과 다층적 철조망, 그리고 연속적인 굴곡면 등을 사용하여 건축물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같은 그의 건축관과 역량은 예술의 장르를 넘나들어 바우하우스(Bauhaus)의 건축가들처럼 종이(cardboard)를 이용한 의자디자인이나 물고기와 뱀을 모티브로 한 조명시설 디자인은 걸작으로 평가되어 많은 미술관에서 건축+디자인의 초대전이 개최되기도 하였다.프랭크 게리의 독특한 건축형태는 1972년에 설계된 론 데이비스 스튜디오(Ron Davis Studio)에서 시원을 찾을 수 있으며 이같은 그의 경향을 더욱 분명하게 한 작품으로는 1979년에 설계된 스필러 하우스(Spiller House)를 꼽을 수 있다. 이같은 작품을 통해 그는 관찰자로 하여금 시각적 긴장을 갖도록 하는 형태적 유인력을 표방하였으며, 평면구성에 있어서도 기존의 상식적인 방의 결합방법에서 탈피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후 설계된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물 형태는 점점 더 추상적인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최근에 이르러서는 조각난 기하적 형태, 추상적 조각물의 조합, 진부한 형상의 적극적인 채용방법을 통해 모호함(ambiguity)을 극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커티스(William J. R. Curtis)와 같은 건축사가로부터 '사회적, 이념적 프로그램이 없는 건축'이라는 혹평과 함께 '만연되어 있는 불확실성을 가장 잘 채용한 건축'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평가는 어쩌면 프랭크 게리가 TIME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나는 그저 세계를 다루고 그에 대응할 뿐'이라는 창작관을 가장 잘 언급한 것인지도 모른다.◎ 프랭크 게리의 디자인 개념 (=건축관)건축가 Frank Gehry는 기존 차원의 논리와 규칙 그리고 질서를 초월하여 새로결책을 제시해 주길 청하였다. 자그레브 태생의 건축가 블라도 밀루닉이 발탁되었고, 그와 콕은 그의 생각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이루어줄 건축가로 게리를 선택하였다. 콕의 결정과 하벨의 후원, 그리고 밀루닉의 집행능력 덕분에, 열성적인 보존주의자들에 의해 중단될 수도 있었던 건물이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 건축가는 “나는 건축주들과의 대화를 좋아한다. 특히 그들이 밀고 나가려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라고 말한다.프라하와는 대조적으로, 건축가가 아닌 산업에 의해 이루어진 빌바오에는 제강 공장과 조선소의 폐업이 이루어지면서, 바스크 사람들의 긍지와 활력 이외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강변지역을 부흥시키기 위해, 당국은 소장품과 새 전시품을 맡길 유럽 지부를 찾고 있던 뉴욕의 야심찬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장 토마스 크렌스와 접촉하였다. 빌바오시는 전 세계 방문객과 투자자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질,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처럼 강력한 상징물을 원하였고 또한 이를 얻게 되었다. 이는 아울러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폭력사태라는 신문 보도에 맞서기 위한 것이고 도시 부흥이라는 거대한 프로그램의 커다란 첫걸음이기도 했다.파리의 아메리칸 센터처럼, 이 두 건물도 도시체계와 강물의 희미한 물빛, 직각에서 자유형태까지 이어지는 기하학적인 변형체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그 규모는 완전히 다르다.프라하의 건물은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7층짜리 주변 건물들의 외피를 따르고 있으면서도, 그 건물들처럼 빽빽이 채워지는 것은 자제되었다. 게리는 밀루닉의 아이디어를 한 쌍의 남녀 구조체로 발전시켰으며, 여기에 단순한 블록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파편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덧붙였다. 돌출된 모서리 샤프트와, 이와 나란히 지지기둥을 위로 치마처럼 너풀거리는 잘록한 허리를 가진 유리 타워로 인해 이 설계안은 일찍부터 ‘프레드 앤 진저’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이것은 유명한 헐리우드의 댄스 파트너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게리가 의도한 바는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그가 불규칙한 교단 위로 전체 건물이 확 펼쳐진다. 비가 내린 후면 티타늄 외관은 반짝이면서 물빛을 반사한다. 국제 시장에서의 가격 하락으로 인해 이 자재는 예산 내에서 구입했으며, 재료의 내구성이 뛰어나 강철의 절반 두께로 시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 비늘들은 바람 속에서 물결을 이루고 거대한 부피의 미술관을 가볍게 해주었다.3개 층에 걸친 19개의 갤러리, 계단과 통로가 아트리움 밖으로 펼쳐진다. 클래스 올덴버그의 부드러운 셔틀콕을 비롯한 미술품들과 사람들이 아트리움 밖으로 펼쳐진다. 430피트에 달하는 긴 갤러리에 대해 게리는 이렇게 말한다. “리차드 세라의 150피트짜리 금속성 뱀에게조차도 이 갤러리는 힘이 넘쳐난다. 우리는 벽들을 헐어내야 했고, 또 해냈다. 이 건물은 여기저기 두들겨서 구멍을 낼 수 있다.” 분할 캠퍼스가 없더라도, 가우디풍의 천창이 그 공간을 자리잡도록 도와준다. 모든 갤러리는 그 자체의 독특한 특성을 지니며, 자연광을 받아들이게 설계되어 있으며, 예술과 건축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느낄 수 있다. 공간들은 드러내거나 감춰가면서 찌그러지고 이로 열려 있으며, 저 멀리서 미술관이 손짓해 부르기라도 하는 듯 계속 관람객들을 끌어 모은다.“내부에 정열을 지난 건물을 짓고 싶다. 설령 사람들이 이를 싫어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뭔가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게리는 이야기한다. 지난 두 세기 동안 대부분의 미술관은 정적인 예술작품들을 위해 장엄하고 차분한 대칭적 체계를 지닌 사원과 궁궐들의 예를 따랐으며, 사무용 건물들도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회색정장과 버튼다운셔츠만을 입고 있었다. 사회 변화의 선도자이 예술가들은 이제 그러한 아폴로적인 이상에서 멀리 떠나 왔으며, 사업가들도 여가 시간처럼 유니폼을 벗고 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게리의 건물들에 담긴 디오니소스적 정신은 다듬어진 혼돈과 솟아나는 고안들을 통해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천년으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 시대의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프레드 앤 진저와 구겐하임이라는 건축은 자유로이 열려 있으며, 의 건물로 하는 것이 피하여 지고, 한편으로는 현상의 지상층 교실 본디 그대로의 상태로 하여 두고, 덧붙여 풍부한 캠퍼스의 환경과 외부의 아메니티를 만들과 있다. 이 계획의 지침은, 분산된 건물이 대개의 시각적인 흥미를 만들어 낸다는 특별한 관계를 건물군 속에서 갖추고, 경제적이고도 명쾌하게 건설하고자 생각한 것이기도 하다.제1기 계획은 기다란 4층 높이의 건물이고, 1층에는 지붕이 씌워진 열주가 있는 포치에 면하여 카페테리어와 라운지와 서점들 등과 같은 학생용의 오피스와 아메니티 시설, 2층에 관리사무실과 제미용의 연구실, 3층과 4층에는 교수용의 연구실이 있다.제2기 계획은, 일련의 3개로 나뉘어진 커다란 교실과 종은 종파의 교회이다. 각각의 건물은 명쾌한 목조기둥보 구조로, 80에서 120명의 학생을 수용한다. 교실은 아트 비디오와 시청각 설비를 갖추어 설계되었다. 음향설계는 뿜칠이 된 벽에 가까운 높은 부분에 반향판 및 특별한 부분에 흡음 패널의 설치를 필요로 하였다. 자연관은 스카이라이트를 열어서 각각의 교실에 집어넣고, 대부분의 인공조명은 HID(고휘도 방전등) 와 형광등의 간접조명기구가 갖추어져있다.제3기 계획은 1963년에 지어진 오래된 법학부건물의 개축이다. 건물의 반은 법학부의 도서관이 되고, 그 나머지의 부분은, 관리사무실, 집회용의 중정, 몇 개의 소교실로 되어 있다. 원래의 도서관은 최대 10만권의 장서량이었다. 증축부분은 대개 쓰이지 않는 서적을 콤팩트한 선반에 끼워두고 있어서, 25만권까지 단계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 학생용의 500의 좌석이 갖추어지고, 개인 또는 그룹용의 비디오와 시청각실이 있는 컴퓨터 화에 따른 설비를 짜넣은 법률연구 컴퓨터 센터, 그룹 연구실, 학생을 위한 워드프로실, 관리실, 서큘레이션 및 프로세싱 에어리어가 있다. 대개의 조명은 에너지 효율이 좋은 HID의 간접조명기구를 쓰고 있다그의 설계에 있어서 강력한 구성력을 증명하는 작품 중 하나로...이 건물의 설계에 있어서 가장 요구되는 점은,없다.
빌딩의 설계 및 시공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점차로 초고층 건물들이 도심지에 지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1990년 이후에 3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들이 활발하게 건설되는 추세이다. 고층건물에 대한 설계기술 시스템 선정, 변위 및 진동제어, 상세설계 등의 과정에서, 경제성, 구조 안정성 및 사용성이라는 측면을 모두 만족시키는 최적설계가 이루어져야 하므로, 구조 안정성 확보를 중시하는 일반 저층 구조물에 비해 설계가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고층건물은 세장비가 높기 때문에 외력에 대한 에너지 분산능력이 적다. 따라서 이와 같은 구조물은 바람, 지진 등의 진동에 의해서 구조적인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고, 거주자의 불쾌감을 유발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 진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미국과 일본에서는 20여년 전부터 진동제어 장치를 개발하여 고층건물에 적용해 왔으며, 최근에는 충격흡수 장치를 건물에 부착시켜 건물의 진동감쇠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시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중 충격흡수 장치의 하나인 유압댐퍼는 건물의 강성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비교적 작은 장치로 진동에너지를 분산시키므로써 ?망?부재의 응력과 변형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이 유압댐퍼는 복원력이 매우 뛰어나서 유지보수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 앞으로 고층 건물의 진동저감을 위하여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유압식 댐퍼(Hydraulic Viscous Damper)의 일반특성여기에서 소개하는 유압식 댐퍼는 미국의 Taylor Devices, Inc. 에서 제작한 에너지 소산장치로 이제까지는 주로 군용이나 항공산업등에서 사용되어 왔지만 현재 건물과 교량에의 적용이 시도되고 있다. 유압식 댐퍼의 동적 특성은 기본적으로 점성유체의 특성을 가지며, 댐퍼의 기하학적 형상에 의존한다. 감쇠기의 유체는 실리콘젤(silicon gel)로 -40 ~ +70℃의 범위에서 온도와 무관하게 거동한다. 주요 특성은 진동수에 강하게 의존하며 에너지를 소산시키는 수단은 열전달이다. 댐퍼에 의해서 소산되는 역학적 에너지는 댐퍼의 유체와 기계적 부분의 열로 바뀌고 이 열에너지는 일반적으로 대류, 복사에 의해서 외부환경으로 전달된다. 유압식 댐퍼는 마찰에 의한 이력거동이나 고무 등의 점탄성거동, 동조질량기 등 다른 형식의 에너지 소산장치에 비해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유압식 댐퍼의 출력하중은 기본적으로 구조물의 휨 및 전단거동과 위상차이가 나므로 유압식 댐퍼를 사용함으로써 구조물에 내부 응력과 변위를 감소시킬 수 있다.특별한 보조장치나 전력이 필요하지 않다. 크기가 작고 설치가 용이하다.일반적으로 가격, 설치비 및 유지비 면에서 다른 형식의 에너지소산 감진장치 보다 경제적이며, 특히 15~40%의 높은 감쇠비를 가지면서 구조물의 건설비를 경제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댐퍼의 작동원리 (Operation of Damper)유압댐퍼의 구성 예댐퍼에 작용하는 힘은 피스톤 헤드 양쪽의 압력의 차이에 의해서 헤드 구멍(orifices)을 따라 유체의 흐름을 발생시킨다. 원형의 헤드 구멍을 갖는 댐퍼의 경우 감쇠력은, 일반적으로 유압댐퍼의 헤드구멍은 다양한 형태를 가지며 압력차는 속도에 대한 frational power 로 표현된다.여기서 값의 범위는 제작회사에 따라 다르게 되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범위는 이며, 값이 작을수록 높은 속도압을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인 경우를 먼저 고려하고, 요구조건을 만족하면 이 값을 줄여서 적용 가능한지를 검토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감쇠력은 실린더 내부 두 개의 실(chamber) 사이의 압력차에 비례하나 유체의 체적은 피스톤의 면적과 피스톤 이동거리의 곱만큼 감소되고 유체는 압축성이므로 체적의 감소는 복원력을 유발시킨다. 그러나 이 유체는 실린더 내부의 accumulator 또는 reservoir라고 부르는 공간으로 배출되어 복원력으로 인한 강성의 발생은 제거되어진다. 이러한 특별한 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주파 영역(4㎐이상)에서는 accumulator의 한계로 인해 약간의 강성을 갖게 된다.
고전주의 건축 (Classicism)1.시대적 배경프랑스 대혁명(1789),산업혁명(18세기 후반) - 과학과 기술의 발달, 대량생산, 도시집중계몽주의 사상, 기독교 중심사상의 쇠퇴새로운 용도의 건축물의 필요 - 새로운 건축적 해결책의 대두건축역사학, 고고학의 발달 - 과거양식에 대한 의존근대건축의 태동기18세기 전반기에는 고대유적에 대한 발굴과 고고학적 연구가 활발하여 고전건축에 대한 관심이 증가독일의 요한 빙켈만은 1764년 고대예술을 객관적으로 연구한 고대예술사를 저술하여 고전부흥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2. 건축상의 특성18세기 중기 이후의 계몽주의 사상 - 아카데미즘 - 고고학내부의 기능을 무시한 외피의 형식을 중시고전건축의 사실적 모방영국, 독일 - 그리스의 신전, 로마의 개선문 등프랑스 - 로마건축 (앙피르양식)시대를 초월하는 절대적 미는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이라고 믿고 그리스와 로마양식을 모방그리스와 로마 건축양식의 정확한 복원과 모방에 열중하였으며 특히 주범을 중시르네상스 건축을 로마건축을 규범으로 하여 창조적으로 이용한 반면, 신고전주의 건축은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을 정확하게 복원하는데 주력블레, 르듀, 길리 등의 신고전주의 건축가들은 고대건축과 같은 장대한 규모와 순수 기하학적 입방체를 결합한 단순 거대한 건축을 추구3.나라별 신고전주의▶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건축(1780-1830)ㆍ신고전주의 건축의 발상지로서 유럽에 전파ㆍ앙피르 양식 (Empire Style)프랑스 대혁명 발발(1789년)후 즉위한 나폴레옹 1세 당시(1804~14년) 로마양식을 모방한 신고전주의 건축양식ㆍ로마문화를 동경하고 숭배한 나폴레옹 1세는 로마건축을 모방한 장엄하고 웅장한 대규모 건축물을 건설하여 정치적, 군사적 강대함을 과시ㆍ주로 로마의 신전과 개선문을 모방한 기념건축물을 다수 건립ㆍ건축실례샬그랑의 파리 에뜨와르 (Charglin의 Etoile)개선문 (1806)비뇽의 파리 마드레느 교회당ㆍ스플로 (Jacques Germain Soufflot, 1713~80년)추구성 쥬느비에 교회, 파리, 1758~89년일명 판테온이라고도 하며 로마의 판테온을 모방ㆍ가브리엘 (J.A.Gabriel, 1669~1780년) - 트리아농 성ㆍ블레 (Etienne Louis Boullee, 1728~99년)건축의 제일원리는 육면체, 구, 원통형, 피라미드 등 순수 기하학적 대칭적 입체에서 발견된다고 주장뉴톤 기념관 계획안, 1784년ㆍ르듀 (Claude Nicholas Ledoux, 1736~1806년)블레의 제자로서 순수 기하학적 입방체나 매스가 지니는 극적 효과를 활용건물의 상징성을 표현할 수 있는 "말하는 건축"을 주장쇼(Chaux) 이상도시 계획안, 1790년농장관리인 주택 계획안, 1780년제염공장 감독관 집, 1775~79년{{[에뜨와르 개선문] [성 쥬느비에브 교회]▶ 영국의 신고전주의 건축(1760-1850)ㆍ주범, 열주랑, 박공,엔타블레춰 등을 이용한 그리스 복고양식이 성행ㆍ스머크 경(Sir Robert Smirke, 1780~1867년)대영박물관, 런던, 1823~47년그리스 양식을 재현한 영국 신고전주의 건축의 대표작ㆍ존 소안 경(Sir John Soane, 1753~1837년) - 잉글랜드 은행, 런던, 1788~1835년{[대영박물관]▶ 독일의 신고전주의(1770-1850)ㆍ베를린의 쉰켈과 뮨헨의 크렌제가 주도ㆍ쉰켈(Karl Friedrich Schinkel, 1741~1841년)우아한 비례의 미와 간결한 벽면의 처리에 의해 그리스 건축의 미를 재현19세기 초 유럽의 신고전주의 건축을 선도하며 현대건축에 영향베를린 고대 미술관, 베를린, 1822~30년베를린 왕립극장, 베를린, 1818~21년니콜라이 교회, 포츠담, 1830~37년ㆍ크렌제(Leon von Klenze, 1784~1864년) - 발할라 (Valhalla)궁전, 레겐스부르그, 1830~42년ㆍ랑간스(Karl Gotthard Langhans, 1732~1808년) - 브란데부르그 문, 베를린, 1788~91년ㆍ길리(Friedrich Gilly, 1772~의 건축 (Romanticism)1.개론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감정을 존중주관적 서정주의에 기초를 둔 민족주의 - 중세의 건축전통을 재현 - 영국구조와 실용에 중점을 둔 근대적 접근고전복원의 신고전주의 건축이 자신들과 시간, 거리상으로 먼 이국적 양식을 도입하고 건물외관의 피상적 형태를 추구하는데 반발고대보다는 당시와 시간적으로 가까우며 자기 국가와 민족의 기원으로 삼고 있던 중세의 고딕양식에 주목오거스투스 퓨긴은 [고딕건축 실례집(1821~23년)]을 출판하여 고딕건축을 전파2. 특성ㆍ신고전주의 건축이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건축에 열중한 반면 낭만주의 건축은 중세의 고딕건축에 관심ㆍ자신들의 국가와 민족의 기원이 중세에 있는 것을 보고 중세를 낭만주의의 이상으로 삼음ㆍ구조와 재료의 정직한 표현이라는 진실성이 반영된 고딕건축이 양식과 방법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시도3. 나라별 건축▶ 영국의 낭만주의 건축 (1760-1870) - 고긱건축에 대한 활발한 연구ㆍ낭만주의 건축의 발상지로서 유럽에 전파ㆍ영국의 낭만주의 건축은 후에 19세기말의 현대건축운동인 미술공예운동을 유발ㆍ찰스 베리경(Sir Charles Barry, 1795~1860년)영국 국회의사당, 런던, 1835~60년, 고딕양식을 재현한 건물ㆍ A. W. Pugin (1762-1832) : 구조의 중요성 (고딕)ㆍ John Ruskin (1819-1900) : 미술평론가, 사회사상가 ,이탈리아 고딕에 대한 동경,ㆍ William Morris (1836-1896) : 사회사상가, 고건축보호협회 :공예미술이론 - 실용과 미의 결합▶ 프랑스의 낭만주의 건축(1830-65)ㆍ신고전주의 건축이 활발했으므로 낭만주의 건축은 상대적으로 저조ㆍ비올레 르 뒨(Viollet-le-Duc, 1814~79년)중세건축의 연구를 통해 고딕건축의 구조적 합리성과 우수성을 지적모든 건축형태는 재료와 구조의 논리적 사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구조합리주의 이론의 주장비올레 르 뒨의 구조합리주의 이론은 후에 현대 건축에 영향피에르퐁 성 복 게르만적 양식이라고 생각되어 쾰른 성당, 울름성당 등 중세성당들을 중수ㆍ에르스텔(Heinrich Eerstel, 1828~83년) - 보티브성당, 비인, 1853~79년ㆍ K. Schinkel의 베를린 대성당 (1819) - 고딕식ㆍ F. Adler의 토마스교회당 - 로마네스크식절충주의 건축1. 개론절충주의 (Eclecticism) - 네오 르네상스, 네오 비잔틴 등구세대의 청산, 새로운 양식의 모색기모든 과거 양식에 대한 이해와 비판 - 주관적 선택다양한 과거의 건축양식을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2.발생배경ㆍ그리이스, 로마 위주의 신고전주의 건축과 고딕 위주의 낭만주의 건축을 통해 과거 건축양식의 복원에 의한 새로운 건축양식의 접근방법을 습득ㆍ활발하고 광범위한 역사의 연구를 통하여 과거 건축양식 전반에 관한 지식이 증대ㆍ과거양식에 관한 객관적 이해와 평가로 사라센, 비잔틴, 바로크 등 건축양식 선택대상의 범위가 확대3. 특성ㆍ그리이스, 로마 위주의 신고전주의 건축과 고딕위주의 낭만주의 건축처럼 일정한 양식에 국한되지 않고 과거의 모든 양식을 이용ㆍ과거양식의 절충을 통하여 새로운 양식의 창조를 시도ㆍ일정한 기준이 없이 건축가의 주관에 의해 각종 양식을 선택하거나 종합4. 국가별 절충주의 건축▶ 프랑스의 절충주의 건축ㆍ신고전주의 건축이 발달하였으므로 그리이스, 로마 양식을 기본으로한 절충주의 건축이 성행ㆍ샤를르 가르니에 (Charles Garnier, 1825~98년)파리 오페라 하우스(Grand Opera House), 파리, 1861~74년; 베네치아 바로크식바로크 양식에 르네상스 양식을 혼합한 신바로크 양식의 건물ㆍ앙리 라스루스테 (Henri Labrouste, 1701~75년)파리의 국립도서관과 성 쥬느비에(Geneviere) 도서관 (1843-55) : 주철재 기둥, 르네상스식새로운 재료인 철을 구조체로 사용하여 과거양식을 재현한 건물ㆍ Duban의 Ecol des Beaus-Arts (1858-62)ㆍ George E. Haussmann의 파리도시계rles Barry, 1795~1860년)리폼 클럽, 런던, 1834년여행자 클럽, 런던, 1829년ㆍ존 나쉬 (John Nash, 1752~1835년)로얄 파빌리온, 브라이톤, 1818~21년브라이톤 궁이라고도 하여 동양의 사라센 양식과 고딕양식의 혼합양식ㆍ존 프란시스 벤트리 (John Francis Bently, 1839~1902년)웨스트민스터 사원, 런던, 1895~1903년비잔틴 양식을 기본으로 하여 여러 양식을 절충{[웨스트민스터 사원]▶ 독일의 절충주의 기본ㆍ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을 기본으로 한 신르네상스 양식이 성행ㆍ고드프리드 젬퍼 (Gottfried Semper, 1803~79년)독일 절충주의 건축의 거장국립 가극장, 드레스덴, 1837~41년부르그 극장, 비인, 1873~88년ㆍ프리드리 폰 가르트너 (Friedrich von Gartner, 1792~1847년)국립도서관, 뮨헨근대 건축의 흐름1. 근대( Modern)의 정의고대(그리스, 로마) - 중세(로마네스크, 고딕) - 근세(르네상스) - 근대 - 현대로 이어지는 건축사조의 흐름으로서 시대적으로는 18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를 근대라고 부른다. Modern의 어원은 모데르누스(Modernus)이다. 중세 기독교 시대에 과거의 구세력에 대한 새로운 혁신적인 세력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Modern은 새로운(Novelus), 현재의(Prasentaneus)라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19세기 중반부터 프랑스에서 사용되었던 신조어로서 근대가 지니는 성격을 함축한 용어로 '근대성'(Modernity)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근대가 지니는 성격, 본질은 실험적이고 개혁적이며 추상적이라고 말할 수 가 있는 것이다. 또한, 현대의 건축을 이해하자면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 레이트 모더니즘(Late Moderism), 네오 모더니즘(Neo Modernism)이라는 말들이 나오는데 여기에서도 Modernism이라는 말들이 나오는데 Modern 이나 Mod한다.
가족구성이 주택에 살고자 하는 가족은 대기업 회사원인 가장과 전업주부인 아내 그리고 대학생인 큰딸과 고등학생인 아들을 포함하여 4인이다. 아버지는 비교적 개방적이고 가정적이며 어머니는 전업주부이지만 봉사활동 등의 사회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웃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매우 현대적인 여성이다. 대학생인 큰딸은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며 의상디자인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고, 컴퓨터프로그래머를 꿈꾸는 아들은 대학입시를 준비중인 고3수험생이다.{구성원성 별나 이직 업취 미특 기종 교아버지남50대기업 회사원등 산테니스기독교어머니여47전업주부붓글씨요 리기독교딸여22대학생십자수피아노기독교아들남19고등학생농 구컴퓨터기독교생활구조{{아 들결혼딸출가어머니아버지0 5 10 15 20 ▲ 25 30장래 생활구조{아 들결혼딸출가어머니아버지25 30 35 40가족의 1일 생활구조{주부의{{{{{{1일 생활구조(식준 : 식사 준비){시각6(AM)789101112PM1234567891011행위기 세상 면식 식준 사설 청겆이 소청 세소 탁휴식취미활동취 식미 준식 설겆사 이휴식휴식휴식장보기식사준비식사설 휴겆이 식휴식휴식취침장소침 욕실 실부 식엌 당부 각엌 방각 세탁방 실거실서재서 부재 엌식 부당 엌거실거실거실슈퍼부엌식당부 거엌 실거실거실침실가구침 세대 면 대조 식리대 탁싱크대세탁기쇼파조리대식 싱탁 크대쇼파쇼파쇼파조리대식탁싱 쇼크 파대쇼파쇼파침대남편의 1일 생활구조(출준 : 출근 준비){{{{{{시각*************4567891011행위기 세상 면출 식준 사출근귀가세 식면 사휴식휴식휴식취침장소침 욕실 실식당욕 식실 당거실거실거실침실{시각*************67891011121행위기상세 식면 사등교귀 세가 면휴식공부공부취침장소방2욕 식실 당욕실거실방2방2방2딸의{{{{1일 생활구조(등준 : 등교 준비){시각*************4567891011행위기상세 식면 사등 등준 교귀 세가 면식사휴식공부공부취침장소방1욕 식실 당욕실식당거실방1방1방1아들의{{{{1일 생활구조이 주택에 살고자하는 가족은 대기업 회사원인 가장과 전업주부인 아내 그리고 대학생인 큰딸과 고등학생인 아들을 포함하여 4인이다. 큰딸은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며 의상디자인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고, 컴퓨터프로그래머를 꿈꾸는 아들은 대학입시를 준비중인 고3수험생이다. 큰딸은 의상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이므로 자신 혼자만의 작업실을 원했고, 대학입시를 준비중인 아들은 지쳐있는 몸을 잠시나마 쉴 수 있게 해줄 공간을 원했다.깔끔하고 편안한 현대적 감각의 주택. 그러나 1세대 집 주인의 나이를 고려해 한국적인 것을 외면하지 않는, 우리 식 현대 주택의 한 전형이어야 했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이렇게 두 세대가 함께 살집이므로 거주 공간도 특색 있어야 했고, 두 자녀도 아들과 딸로 성이 달랐으므로 그들의 공간도 따로 분리되어야 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가족의 가장은 대기업 회사원이고, 아들은 대학입시 공부에 바쁜 고3수험생이었으므로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가족 공동의 공간을 보다 넓게 살려 공동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것을 2층까지 하나로 뚫린 거실 천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집의 외형은 대체적으로 목재를 사용했다. 은은한 나무 빛깔이 시선을 편안하게 정리하고, 은근한 향내로 찾는 이를 반긴다.하얀색 나무 울타리로 담을 대체하여 포근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었고 대문 역시 하얀색 나무 울타리 모양으로 처리하여 피곤에 지친 몸을 쉬는 공간으로서의 집의 기능을 강조하면서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울타리 너머로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가 보인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평탄한 정원이 펼쳐지며 한 쪽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아래에 가족들이 모여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을 두었다. 거실 안에서도 나무가 한 눈에 보이게 하여 자연의 푸르름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정원 한쪽 구석에 작은 화단을 만들어 아기자기한 집의 분위기를 한껏 강조하였다.정원의 한가운데로 나있는 작은 길을 따라 가면 집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현관이 눈에 들어온다. 현관에는 작은 계단이 있고 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현관문이 있다. 현관문 역시 눈부신 하얀색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신발장이 있는 작은 공간이 있으며 그 앞으로 미닫이문이 하나 더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문을 열자마자 내부의 모습이 그대로 보여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집안으로 들어서서 옆으로 몸을 돌리면 탁 트인 공간인 거실이 눈에 들어온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스럽고 편안하다.거실은 가족 간의 열린 공간으로 활용된다. 특히 대기업 회사원인 아버지와 고3수험생인 아들은 두 사람이 얼굴 마주할 시간도 없이 바쁠 때가 많다. 그런 아버지와 아들, 학교생활로 바쁜 딸 이들을 위해 거실 공간을 일부러 넓게 두었다.집 안을 통 털어 텔레비전은 거실에 한 대 뿐이다. 집안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일단 거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흩어지자는 의도이고 가족들은 거실을 모두의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방들은 가장 자리를 빙 둘러가며 자리를 잡았다. 1층에는 두 부부의 전용 침실과 손님 접대를 위한 응접실을 두었다. 부부침실에는 프라이버시를 위한 독립적인 욕실을 두었으며, 응접실 옆에 조그마한 욕실을 하나 더 두었다.부엌은 가사노동에서 주부의 비중이 가장 크고 장시간 기거하므로 어머니께서 방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옆으로 부엌이 보이도록 하였다. 식당은 따로 없고 부엌과 함께 사용하는 다이닝키친으로 계획하였다.지하에는 서재와 가족들의 신앙 생활을 위해 기도실을 두었다. 개인의 공간인 서재는 조용하고 편안함을 주기 위한 공간으로 지하의 한 쪽에 두었고, 기도실은 1층의 거실에 이은 가족 공동 생활 공간의 연장이라 할 수 있겠다.집안의 통로는 계단 하나로 이어진다. 목재로 마감한 계단은 지하에서 1층으로 집 전체의 높은 공간을 이어준다. 2층에는 딸과 아들의 방이 있는데 방문을 열고 나오면 1층의 거실이 한 눈에 들어오고 밖으로 눈을 돌리면 창 밖으로 펼쳐진 안 마당의 정취는 물론 집 밖 도시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수험공부로 인해 오랜 시간을 책상에만 앉아있어야 하는 아들이 방문을 열고 나오는 동시에 답답한 마음을 탁 트이게 할 수 있는 피로회복제의 역할을 하는 샘이다. 또한 아들 방의 옆으로 커다란 창이 있는데 그 창을 열고 나가면 1층의 돌출부분으로 인해 작은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을 활용하여 아들과 딸의 휴식공간을 마련하였다. 이 휴식공간으로 인해 아들과 딸의 분리되어있는 공간을 이어주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딸 방의 바로 옆에는 그녀만의 작은 공간을 두어 작업실로 쓸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