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극에서 고전극이 갖는 의미 -비극을 중심으로연극은 자연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의지와 정열에 의해 전개되는 인위적인 행동으로서 인간생활의 제반 마찰과 갈등을 인간 스스로가 자기의 육체를 통하여 표현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이러한 연극의 기원은 우선 음악과 더불어 발전되어온 춤의 기원과 흡사한 문화인류학적 발생의 근거를 지니고 있으나 문학적 표현양식이 첨가된 연극의 유희적 형식의 발생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성격적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축제적 성격, 종교적 성격, 국가공동체적 성격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성격적 유형을 골고루 다 갖추었던 연극의 형태로 우선 그리스의 연극과 공연예술의 형태를 언급해 볼 수 있다.유럽연극의 역사는 그리스 연극에서부터 시작되며 이는 기원전 5세기에 그 발전의 정점에 이른다. 이후 그리스 연극에 관한 연구와 로마시대의 "그리스 연극의 창조적 수용"은 이제 유럽문화의 뿌리가 되었으며 현대연극의 다양한 형식속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리스 연극의 전형적인 형식은 비극작가인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와 유리피데스의 작품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도 그리스 연극의 전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 연극의 문화발생적 근원은 "축제를 위한 연극"이었으며 형식과 내용 그리고 조직적 구성이 "디오니소스를 위한 축제(Dithyrambos)"와 연관되어져 있다.그리스극에서 비극이 소재로 취한 신화와 전설의 대부분은 전설의 시인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 "일리어드"와 "오딧세이"에서 얻어져 각색되었다. 이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은 그 내용인 모든 사건이 작가의 서술이나 해설로 된 부분이 적고 대부분의 작품 중 이야기의 진행이 등장인물들의 회화와 독백 등의 행동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뿐만 아니라 그들 등장인물의 성격마저 자신의 행동과 말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서사시들에 의해 연극의 형식과 내용이 갖추어 지게 되었으며 그 위에 다시 국민적, 국가적인 기대와 환영에 따라 그들 고도의 연극예술이 발전하였다.그리스 고전극에 관한 이론에 있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저서 "시학"을 빼 놓을 수 없다. 그는 이 책에서 극작술 연구를 비롯한 연극학 연구의 핵심적인 내용과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에 대한 정의는 비극적 정서를 수용하는 관객을 대상으로 한 것이며 비극이 어떤 효과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어떻게 비극적 효과가 전달되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관점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 비극의 궁극적인 목적은 수용자인 관객이나 독자에게 "감정의 정화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비극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나 비극적 성격의 창조 혹은 비극적 언어까지도 "감동과 전율을 통해 감정의 정화작용(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데 있다."고 하여 정화작용을 예술의 기능으로 보고 있다.모든 예술적 양식은 분명한 내적 구조를 토대로 형성되어져 있으나 때로는 명백한 예술의 한 구성요소가 다른 예술적 구성요소와의 상징적이고도 추상적인 관계를 통해 새롭게 발전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비극적 형식은 사건의 전개와 인물의 성격 그리고 언어와의 관계를 통해 언제나 새로운 비극적 내용을 형성할 수 있으며 이러한 비극적 내용과 형식은 분명한 비극적 효과를 지니게 될 것이다. 즉 비극적 사건의 전개는 행복한 상태에서 불행한 상태로 빠지게 되는 비극적 인물을 보여주게 되며 비극적 인물의 "인간적인 결함"과 잘못을 지적하는 반대자의 입장과 비극적 상황에 빠진 주인공의 고통을 통해 관객들은 충격적인 사실을 경험하게 되고 비극적 인물이 처하게 된 상황에 합당한 언어적 표현을 통해 "전율과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비극의 근본적인 구조는 물론 기원전 5세기에서부터 3세기에 이르는 기간을 통해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아테네의 야외극장에서만 가능했던, 연극을 통한 비극적 현상의 재현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통해 알려진 당시 관객의 연극적 체험을 통한 비극적 인식의 과정으로 이해되어 질 수 있으나 오늘날까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의 전환을 통해 전해지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에 대한 정의의 기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유럽에 있어서 고전극의 시대라고 하면 보통 16세기로부터 18세기까지의 모든 고전주의 연극과 그 희곡을 말한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 및 로마 고대극의 영행 아래 발달한 연극으로서 이태리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이때의 작가로는 라신느, 몰리에르 등을 들 수가 있다.그들의 고전주의에 관한 이론을 보면 희극과 비극을 준별하여 양자의 혼합을 인정하지 않는다, 3일치의 법칙을 준수해야 한다, 고귀한 문체와 진실하고 우아한 그 표현을 원칙으로 한다 등이 있다. 이상과 같은 그들의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유래하고 있는데 이들은 그리스 극에 대한 깊은 연구와 지식도 미쳐 갖지 못하고 형식적인 규칙만을 지킴으로써 그들의 창작활동을 좁히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어쨌든 서양연극의 모태가 된 그리스극은 이후 고전주의 시대의 연극을 비롯하여 낭만주의 연극, 근대극에 이르기까지 그 소재와 형태적인 면에서 근간을 이루어 왔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약간 다른 양태를 보이고 있다.현대극이란 그 의의로 보아 지난날의 시대에서 취재된 시대극과는 달리 그 주제를 현대에서 취한 연극이란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리고 현대인을 위한 연극이란 뜻도 되겠으나 연극사적 견지에서는 근대극에 이어서 나타난 새 시대의 연극, 이를테면 오늘날의 연극을 의마하는 말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할 수 없는 현대의 고통, 미묘하고 복잡한 양상의 현대에 있어서의 그 현대극도 자연히 시대의 복잡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아직 그 종결을 얻지 못하고 있다. 금세기 후반에 나타나기 시작한 반연극,브레히트의 서사연극 등도 현대예술의 혼돈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현대 예술은 어느 나라의 현대극을 막론하고 근대극의 마지막 도달점이었던 사실주의로부터의 탈각과 그 초극이라는 점에서는 공통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전적인 의미에서의 비극에 대한 개념도 표현주의, 부조리극, 서사극의 형태를 통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극작가인 유진 오닐이나 영국의 극작가 엘리어트 등 새로운 현대적 의미의 비극을 구상하는 작가도 있으나 비극적 공감대의 형성은 점차 소멸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비극은 죄의식과 위기 그리고 적절한 대책, 전체를 보는 눈, 그리고 책임감을 전제로 해야만 감상될 수 있다. 이렇게 혼돈스러운 20세기에 있어서 그 누구도 죄인일 수 없으며 또한 아무도 책임을 지고자 하지 않을 때 누가 비극을 원할 것이며 비극에 대한 인식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 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