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보고서 첫머리.논쟁의 출발점. 근대로의 접근. 근대에 대한 나의 생각. 그렇다면 박노자 교수와 허동현 교수는 어떻게 다른 시각으로 문제점을 보았으며,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그 해결책 은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노무현 대통령의 신독트린. 본 론. 윤치호와 영어 배우기■ 도나스와 도너츠의 차이■ 갑신정변 다시 보기■ 아나키스트의 이상과 좌절■ 후세인과 박정희. 결론{【근 현대사의 이해】{◇우리역사 최전선을 읽고…◇{개 요. 보고서 첫머리대학 이전의 교육과정, 즉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역사 교육과정에서는 근대라는 개념에 대해 그리 깊게 가르치지는 않는 것 같다. 근대화에 대한 커다란 흐름보다는 입시위주의 컨텐츠 교육이 전부였던 것 같다. 중요한 사건과 그 세부사항, 그리고 그 성격 등에만 집중했지, 커다란 흐름에 대해서는 어떤 선생님도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이렇게 교과 과정에서 배제되어온 근대화 에 대한 궁금증은 대학 생활 내내 머릿속에서 화두가 되어왔다. 그리고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는 다양한 관점에 대해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시발점이 된 계기는 소설가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을 읽으면서부터였는데, 그 소설들을 읽고 난 뒤, 나는 혼돈과 충격 속에서 수없이 많은 밤들을 지새워야 했다. 학교에서 배운 짧은 견해로는 그 소설을 완전히 이해하기도 힘들었고,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이 전무한 고등학생, 대학 초년생에게는 소설 속에서 말하는 역사적 픽션이(픽션인지 픽션을 가장한 넌픽션인지 아직도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지만) 혼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고, 지금까지의 교과과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던 역사서적들을 읽어나가면서 내게 주입되었던 역사 교육으로는 역사가 보여주고 있는 흐름, 그리고 그 과거사실과 현재시점에서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였고 역사를 바로 바라볼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되었다. 그리고 취업대란이라는 현실 속에서 여유 없이 살아가고 있는 졸업학년이지만 교수님의리 역사를 구분하는데 있어서 자구적인 개념을 도입해서 해석하는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 본다.허동현, 박노자 교수는 서론에서, 실패했던 100년 전의 역사 그리고 유사한 구조적 패턴으로 다가오는 현 역사를 맞으며 반복된 실패의 누를 범하지 않기 위해 과거와 현재의 비슷한 상황을 비교 분석하여 그 문제점을 도출해 내고 있다. 그들이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비록 시각과 방법은 서로 달랐지만 박, 허 두 교수 모두 주어진 역사를 피하지 않고 시대적 과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이러한 자세는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의 목표와 지표를 열어주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바야흐로 인터넷시대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도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모든 정보를 찾고 있으며, 인터넷은 수많은 정보를 기초로 미디어의 역할, 커뮤니케이션의 역할도 하고 있다. N GENERATION'이라는 신 계층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인터넷은 현대인에게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 계층은 책보다는 TV를, 인터넷을 선호하고 그로 인해 감각적이고 3차원적인 영상물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양상은 기존세대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접하게 하고 다양한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는 반면 깊이 있는 사고를 못하게 하는 단점도 있다. 특정 시기에 꼭 해야만 하는 역사적 인식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게 되어 젊은 세대들에게 역사적 인식은 고리타분한 역사학자만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요즈음, 두 교수는 서로 다른 시각으로, 다양한 흥미 있는 관심거리로 신세대들에게 보다 효과적인 역사인식을 하도록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박노자 교수와 허동현 교수는 어떻게 다른 시각으로 문제점을 보았으며,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그 해결책 은 무엇인지 살펴보겠다.먼저 박노자 교수는 실패했던 역사의 문제점을 관계(국제/국내적인 잘못된 관계의 틀)속에서 도출해 낸다. 박노자 교수는 역사 속에서 구조적으로 비슷한 발전 패턴을 살펴보고 근대의 길목에서 선택의 기로에 a military academy graduation he spoke boldly of how "the choices Korea makes will determine the landscape of Northeast Asia." During the same span of time high-ranking officials in foreign and unification affairs said things that were similar, and on Thursday officials explained why there would be no three-party alliance composed of Korea, the United States, and Japan.Given how the president and high placed members of his government are speaking with almost the same voice, it looks like the "independent diplomacy" that is symbolized by the "stabilizer" doctrine is not an impromptu product developed to excite the people'ssentiments.』 ※- KOREAN HERALD, MAR, 2005 -물론 많은 수구세력들이 노무현의 이러한 발언은 국제 관계 속에서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의 내용이라고 반박하고 나서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미국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 있으며, 이러한 발언으로 인해 미국을 자극하여 이로울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그렇다고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강대국들에게 이리 저리 끌려 다니기만 한다면, 앞으로 우리 나라는 통일이 되고 난 후에도 더 이상 희망이 없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고등학교 때부터 우리 나라의 비극적인 지정학적 위치에 대해 끊임없이 들어야 했다. 이렇듯 우리의 역사는 주변 여러 열강들 속에서 피 침략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 우리의 자상한 어버이 가 되리라는 순진한 상상과 미국이 약자를 동등하게 대해주리라는 근거 없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다고, 용미는 가능하고 바람직할 지 몰라도 지나친 친미는 좌절만 가져다 줄 확률이 많다고 했다. 반면, 윤치호의 문제점을 요괴인간 증후군 이라고 규정 짓고 -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요괴인간들이 인간을 위해 악에 맞서고 선을 행하지만, 결국 인간에게 배신을 당하는 요괴인간 윤치호에 대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지만 그 대안격으로 유길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윤치호와는 달리 서구에 대해 극단적 패배의식이나 열등감을 갖지 않았던 유길준은 우리가 영어를 배우고, 미국문화를 받아들이되 우리가 지켜가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있다. 유길준은 또한 귀국해서는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자신의 식견과 지식을 동포들과 공유하는데 힘썼다. 이러한 윤치호와 유길준에 대한 비교는 미국에 대한 종래의 고정된 이미지를 버리고, 좀 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미국을 인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우리는 윤치호와 유길준의 이야기가 들려주는 교훈을 잊어버리지 말고, 우리의 주체성을 지키면서 받아들이는 선택적 수용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아직도 많은 젊은 사람들이 fluent speaking을 목적으로 영어공부에만 매달리고 있다. 특히 3, 4학년들은 취업의 턱인 토익점수 따기에 급급하여, 정말 자신이 공부해야 할 것들을 외면하고 영어공부에만 매달리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 개개인만이 노력해야 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사회 전체적으로, 제도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검토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개인이 모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사회가, 기업이 원하는 것은 그 반대의 것이기 때문에..■ 도나스와 도너츠의 차이민권회복을 외쳤던 도나스를 먹고 자란 386세대, 그리고 인권신장을 도모하는 도너츠를 먹고 자란요즈음 대학생들, 나는 도대체 어디에 속한 세대인가? 물론 나는 도나스와 도너츠를 둘 다 먹고 자랐다. 도나스와 도너츠갑신정변 주도자들은 분명 청 이라는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 일본 이라는 세력을 등에 업었다.그리고 정변 주체들 중 상당수가 훗날 일본의 조선통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정변의 행동대원으로서 민씨파 대신들의 피를 손에 직접 묻힌 서재필 같은 인물이 자신이 죽인 사람들에 대한 애도와 참회를 하기는커녕 평생 자신들의 혁명 참여를 자랑하였고 또 사람의 목숨을 이렇게 가볍게 여겼던 인물들이 한국 민주주의의 비조로 알려졌다.도대체 근대화는 누구를 위한 것이고, 민주주의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부터 해보고싶다.또 하나의 외세를 빌려 외세를 몰아낸다는 전략이 과연 성공을 한 뒤에도 자신의 주체성에 흠집 없이 완전하게 거둔 성공일까? 그리고 동족을 살해하고 얻은 근대화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할까?한국의 근대, 일본의, 그리고 서구의 근대화는 분명 살육과 주변분자들의 해골 위에 세워진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가 범한 살육이 서구나 일본의 근대가 범한 그것보다 참혹하지 않다고 하여, 자신들의 범죄행위에 대해 참회하지 않는 몰염치가 한국의 살육자들에게만 보이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고 하여 그들이 저지른 동족 상잔이 용서되는 것인가?분명 그렇지는 않다.우리 집은 옆집보다 가난하다. 가족 구성원의 평균 학벌도 낮다. 그런데 옆집은 아주 자유 분방한 분위기이고, 우리 집은 아주 폐쇄적이고 세상의 유행을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뒤쳐지고, 돈도 잘 못 벌고, 비문화적이라고 남들이 수군거린다.그래서 우리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옆집의 모든 것을 배우고 따라 하려한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에게도 그것을 따라 하도록 시킨다. 그런데, 이에 반대하고 나선 삼촌들과, 동생들이 있었다. 몇 몇 고모들도 반대하고 나섰다. 부모님도 반대하는 눈치이지만, 개혁 세력인 내가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들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 그렇다면, 우리 집안 전체를 위해서 반대하고 나선 가족들을 잔인하게 죽여야 하는가? 그들을 참혹하게 살해하고 난 뒤, 옆.
독{♣근현대사의 이해{⊙안중근의사와 이토히로부미도 문제로 한·일 외교관계가 시끌벅적한 요즈음, 안중근 의사의 이토 저격 사건 의 회고는 앞으로 우리가 헤쳐 가야할 시급한 문제를 직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훈과도 같다.우리나라의 산업혁명과도 같은 60∼70년대를 거쳐, 인터넷이 이룩한 정보혁명으로 이르기까지 우리는 살기 위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시시각각 변해 가는 사회에 적응하고,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일련의 삶속에 파묻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잊어가고 있다.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라는 다큐멘터리를 수업시간에 보고 난 후점점 잊혀졌던 가치들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죽인 이유{"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는 이러하다조선의 황후를 시해한 죄요.조선의 황제(고종)를 폐위시킨 죄요.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맺은 죄요.무고한 조선인들을 학살한 죄요.조선의 정권을 강제로 뺏은 죄요.조선의 산야를 (철도, 광산, 산림, 천택) 강제로 뺏은 죄요.조선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죄요.조선인들의 교육을 강제로 방해한 죄요.조선 청년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요.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요.조선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퍼뜨린 죄요.현재 조선과 일본 사이엔 경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태평 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요.동양 평화를 깨뜨린 죄요.일본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요."아..장부가 비록 죽을 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기운은 구름과 같도다."티끌만큼의 부끄러움도 없는 당당한 한국인이자, 우리를 비롯하여 일본인들에게까지 존경을 받고 있는 동양평화주의자요 민족주의자이다.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는 말 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 인물, 그 분이 바로 안중근 의사이시다.안중근과 이토에 대한 자료를 참고하고자, 서적과 인터넷을 뒤지다 이런 글을 발견했다.『많은 사람들이 10.26 하면 박정희를 먼저 떠올린다.25년 전 10월 26일, 그날 밤 박정희는 자신의 의사가 95년 전 아침 하얼빈 역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민족의 이름으로 저격한 날이기도 하다. 우리가 박정희의 10.26이 아니라 안중근의 10.26으로 기억하고, 그날의 의미를 가슴깊이 되새겨야 함에도 10.26을 안중근 의거일 보다는 박정희 죽은날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사실 따지고 보면 안중근의 10.26은 자랑스럽고 의로운 날이고 박정희의 10?26은 부끄럽고 창피한 날인데도 의로움이 개 같은 죽음보다 홀대받아 온 이유가 무엇일까? 안중근은 한 사람을 죽인 가해자였고 박정희는 죽음을 당한 피해자라서인가? 그러나 일본군의 칼날과 작두에 목이 잘린 채 잔혹하게 죽어간 수많은 의병들과 독립투사들, 그리고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민주투사의 죽음을 두고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다. 아마도 이 나라를 장악한 기득권 세력들이 안중근 의사보다는 박정희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안중근 의사는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을 잘못했다고 말하면 살려주겠다는 회유를 받았지만 한마디로 거절하고 자신은 독립 의병군 중장으로서 10만여명의 의병을 죽인 적장을 전투에서 사살한 것이니 만국공법에 따라 포로로 대우하라고 당당하게 밝혔다.안중근 의사는 부친이 세상을 뜨자 가산을 정리해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워 기울어 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인재를 키우다가 계몽운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동지들과 손가락을 잘라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는 혈서를 쓰고 항일 독립군이 됐다.그러나 대구사범학교를 나와 일제가 세운 소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박정희는 어느날 문득 긴 칼이 차고 싶은 욕망을 위해 일본 천황에게 진충보국 멸사봉공 일본제국 황국신민 박정희라는 혈서를 바치고 독립군 때려잡는 일본군 장교가 된다. 일본 천황에게 혈서를 쓰며 충성을 맹세했던 일제관동군 장교출신 박정희는일제 36년동안 흘린 우리민족의 피와 눈물로 얼룩진 고통의 대가를 일본측의 한마디 사죄도 받지않고 단돈 3억달러에 합의해줘서수십만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지금까지 난 땅을 찾기위해 소송을 벌여도 모른체 방관하면서 그저 입만열면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한다는 정신빠진 국회에서는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어거지 생떼를 쓰고 고이즈미가 일제침략의 원흉들을 위해 신사참배를 하고 있을때 민족정기를 바로잡자는 친일인명사전예산을 전액 삭감하고도 모자라서 친일파 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사사건건 트집잡아 누더기법률로 만들어 버렸다.10월 26일안중근은 그날 아침 의병군 대장으로서 적장 이토히로부미를 죽였고,박정희는 그날 밤 자기 딸보다 어린 여자들을 끼고 주색에 빠져 있다가 한마디로 개 같은 죽음을 당했다.우리가 이제 10.26을 박정희가 죽은 날이 아니라 안중근 의거의 날로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출처 : NAVER 익명의 블로그에서다소 거친 표현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지만 많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박정희는 분명 역사 속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평가를 받는 인물중 하나이다. 그가 정치를 잘했건 잘못했건 간에 그의 정권 취득과정은 비도덕적이고 비민주적인 것이었으며, 그들이 말하는 혁명이라는 틀을 만든 후에도 그는 물러나지 않고 제왕과 같이 장기적으로 국가를 지배했었다. 물론 경제발전이라는 업적 때문에 일부 시민들의 경제 부흥에 대한 갈망과 향수로 회고되고 있지만, 10월 26일을 그가 죽은 날로 기억하는 건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다큐의 서두는 안중근에게 있어 과연 이토는 무엇이었는가? 라는 화두를 던지며 전개해 나간다. 일본은 한국인에게 침략자로서 증오 그 자체이고 이토는 증오의 상징으로 각인 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생각이고 일본에서 이토의 평가는 이와 사뭇 다르다. 일본인들에게 그는 근대 일본의 토대를 쌓은 민족의 위인이며 네 차례에 걸친 내각의 수반으로서, 그리고 얼마 전까지도 천엔짜리 지폐의 주인공으로도 기억되고 있다.도쿄 중심가에 자리 잡은 히비야 공원 , 이곳은 도쿄 시민들의 애정을 받아 온 장소라고 한다. 이토 시대에 만들어 졌던 이 공원처럼 아직도 이토는는 일본 내에서 가장 힘있고 존경받는 인물이었고, 그의 죽음은 일본 열도에서 최고의 화제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를 죽인 안중근은 그들에게 있어 무자비한 테러리스트로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에서는 안중근의 추모 움직임이 일고 있다. 또한 이토에 대한 평가도 과거보다는 좀 더 다양한 각도로 조명되고 있다. 그들은 안중근을 단순한 테러리스트의 시각에서 벗어나 자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은 위인으로 평가하고 있었다.그들은 민족의 자결권을 침해하고 이웃나라의 독립을 유린한 것은 국제법 상 용서될 수 없는 일 이라며 이토에 대한 시각을 재조명하고 나아가 이러한 상황에서 자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다.이들 중 몇몇은 안중근이 일본의 감옥에서 있을 때, 안중근을 존경했고, 안중근의 유목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간수 등 주변인들의 친족들이었다.여기서 안중근 의사의 위대함은 더욱 증폭되어 나타난다.분명 안중근은 그들에게 있어 우리가 생각하는 테러분자의 이미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로 취급되었던 그는 그러한 적지에서 그가 수감되었던 형무소의 형무소장, 그를 호위했던 경찰관, 그리고 헌병들에게까지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일본에 돌아가서도 안중근의 죽음을 애도했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이처럼 그의 인품과 사상은 실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고, 적과 아의 테두리를 초월하는 한 인간의 강인함과 숭고함을 내포하고 있다.그 뒤 다큐는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성장과정과 이토의 정권 진입, 그의 신분상승, 일본 내에서의 업적, 그리고 안중근이 체포된 뒤 의사의 공판 과정과 그가 옥중에서 집필했던 『안응칠 역사』, 『동양 평화론』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고 이토가 주장했던 동양 평화론과 안중근이 옥중에서 열변했던 『동양평화론』을 비교하여 설명한다.※별첨1 안중근 의사의 성장과정이토는 일본 무사계급 중 가장 낮은 아시가루 출신의 비천한 인물이었지만, 16세 때 일본 개화파의 선구자였던 요시다 소교우관계를 맺어 새로운 메이지 시대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또한 유학의 목적은 아니었지만 적의 동향을 시찰하고 서양 문물을 흡수하기 위해 영국에 다녀왔고 이를 계기로 외국 사무를 맡는 조정 관직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정한론을 주창했던 세력들을 몰아냈고, 황제의 신임을 등에 업고 일본의 최초 헌법을 제정, 내각 총책임자인 총리 대신이 된다. 그가 하얼빈으로 간 이유는 바로 만주 철도 이권을 확보하러 가는 길이었으며, 이러한 정보를 신문에서 얻은 안중근 의사는 거사를 계획하게 된다. 그리고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반 삼엄한 하얼빈역 머리에 각국 대표의 환영과 군대의 호위속에 하차한 이토는 단신으로 달려든 의사의 벼락같은 권총 4발에 즉사하였다. 의사는 총을 내던지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노국 헌병의 손에 태연히 포박되었다가 곧 다시 일본관현의 손으로 넘어갔다.결국 이토의 동양 평화론의 요지는 일본이 탈아론 의 영향을 받아 조선과 중국을 침략하고 일본 중심의 평화를 외친 것에 불과했고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은 동양의 여러 나라들이 인도주의적 가치 위에서 서로 연계하여 동양 평화를 지키는 것이고, 이러한 동양 평화는 궁극적으로 세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된다.이러한 안중근의 평화론은 이토의 약육강식의 개념이 아닌 보편적 도덕을 목표로 하는 것이고, 각국의 독립을 이룩하고 서로 연계하여 평화를 이룩하자는 생각인 것이다.이러한 그의 깊이 있는 사상과 인도주의적, 보편 도덕적 가치에 일본인들도 존경을 표하고 있으며 지금 일본에서 일고 있는 안중근 추모운동 또한 이러한 의사의 사상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또한 이러한 동양 평화론은 요즈음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신독트린 개념과도 맞물려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물론 그의 다자 안보론에 대한 엇갈린 의견들이 난무하지만 적어도 나는 노대통령이 우리가 앞으로 이룩해야 할 장기적인 OUT FRAME 구축을 위해 그 의견을 제시했다고 생각하고 수구꼴통 세력들을 비롯한 아친다.
{♣ 영 화 감 상{⊙ CITY LIGHTS [CHARLIE CHAPLIN]처음으로 채플린의 영화를 끝까지 보았다. 무성영화라서 짧을 줄만 알았는데, 1시간 반정도 되는 분량에 놀라웠다. 영화를 좋아하고, 관심 있게 여러 영화와 관련된 책들을 읽었지만, 채플린의 영화는 광대 같고, 무작정 웃기기만 하는 영화 라고 생각했던 나의 지극히도 무식한 선입견에서 벗어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짤막하게 영화 관련 다큐멘터리에서나 언뜻 보아왔던 장면 장면들이 하나의 서사구조를 갖추고 일련의 메시지들을 보여주었다. 처음에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들은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점점 확신으로 다가왔고 감동으로 마무리되었다. 채플린의 영화는 단순한 희극영화가 아니라 그 웃음 아래로 진하게 흐르고 있는 어떤 감동이 있는,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사실 이 영화를 구해서 다시 여러 번 보고 난 후에 진하게 다가오는 감동을 더 잘 표현해 보고 싶었고, 촬영기법, 미장센 등 이 영화를 세부적으로 분석해 보고 싶었으나, 여러 사정 때문에 단 한 번의 기억으로 서술해 보고자 한다.영화가 시작되는 첫 시퀀스에서, 통상 상징적으로 묘사되는 풍자적인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정장을 차려입은 ‘권위 있어 보이는’ 한 남자가 연설을 하면서 무엇인가 감추고 있던 하얀 천을 드리우는 순간, 동상 위에서 편안히 누워 자고 있는 채플린이 등장한다. 집 없는 떠돌이를 묘사하는 듯, 남루한 옷차림에 어눌한 눈빛을 지닌 채플린. 서울역 지하도에서 차디찬 밤바람에 몸을 숨기고 살아가는 노숙자 의 이미지를 보이고 있는 그는 수많은 군중들을 의식하고 가능한 그곳에서 빨리 내려오고자 허둥지둥 한다. 하지만 나오지 못하고 실수만 연발한다. 빨리 내려오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이리저리 걸리고 엉켜 쉽사리 내려오지 못한다. 관객들은 실소를 하고, 채플린의 허둥지둥되는 그 모습들을 보고 좋아한다. 하지만, 이 희극적 묘사장면에서는 클로즈업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챨리 채플린의 그 유명한 인생은 멀리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라는말이 실로 느껴지는 부분이었다.그 권위 있어 보이는 사람은 경찰 혹은 경비원으로 보이는 남자들을 동원하여 동상을 함부로 대하는 채플린을 저지하려고 한다. 채플린은 실수인지 아니면 실수를 가장한 ‘의도’인지 모르지만,동상의 손에 옷이 걸려 빠져 나오지 못하고, 가까스로 빠져 나온 후에는 이리 저리 동상을 밟고 다닌다. 그 장면들을 보는 내내 불안해했던 건 왜일까? ‘동상이 깨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경찰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들에게 잡히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한 마음들은 분명 나 혼자 느끼는 감정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권위를 부정하고 싶은 나마저도 ‘동상=권위’라는 세뇌교육에 당한 것일까? 과연 나도 동상 위에서는 저렇게 밟고 뛰어 다니면 안된 다고 분명히 느끼고 있었고 그로 인한 불안감은 감출 수 없었다. 자칫 깨어지면 안된 다는 두려움으로 그 아슬아슬한 장면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천재 감독의 연출에 나도 공감하는 것일까? 아무튼 아주 위태한 장면이었다. 예로부터 동상은 권위와 위엄을 상징해 왔다. 혹은 기념비 적인 이벤트나 특정 업적을 기리는 상징물이었다. 채플린은 이러한 상징을 뭉개버림으로써 ‘쓸데없는 힘 보여주기’, 겉치레, 허위의식으로 압축되는 '기득권'이라는 세력들에 대한 반항의 이미지를 하나의 시퀀스에 담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허름하고 남루한 옷을 걸치고, 집도 가족도 돈도 없이 이리 저리 떠도는 채플린과 대단히 권위 있어 보이는 위엄 서린 동상, 잘 차려입은 사회자 그리고 군중들.. 이 같은 대립적 이미지를 통해 관객들에게 또 다른 의미를 찾게 해주는 대립적 미장센들의 배치를 통해 채플린은 세르게이 아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에서 본 것 같은 변증법적인 편집의 의미를 표현하려 했던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또한 그 권위 있어 보이는 잘 차려 입은 남자가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하는 도중, 분명 무성 영화인 이 영화에서는 알아듣지 못할 시끄러운 소리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장면 때문에 수많은 장면을 놓쳐야 했고, 많은 시간동안 고민해야 했다. 덕분에 나는 몇 몇 장면들을 놓쳐야 했지만, 참으로 의미 있는 발견을 했고, 또한 많은 것들을 생각했고 또 배웠다. 처음에는 분명 엉뚱한 생각을 했었다. 혹시 잘못 녹음이 된 비디오 테이프 일까? 그렇지만 이건 분명 감독의 의도였고, 채플린은 분명 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인터넷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내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느끼고 써 내려가고 싶었지만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 평론 자료들과 서적을 읽어야 했다. 그래서 그 당시 사회적 배경과 영화사적 흐름 등을 참고하였고 결국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어내었다.워너 브라더스가 그 당시 메이져 영화사들과 차별화 된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JAZZ SINGER를 만들었을 때가 1927년, 그리고 CHAPLIN이 CITY LIGHT를 만든 해는 1931년이었다. 당시 관객들은 유성영화에 환호를 했고, 산업적 예술인 영화의 흐름은 당연히 소비자의 주체인 관객들의 반응을 따라가야만 했다. 제작자 혹은 자본가와 관객들의 압력을 받는 감독들로서는 당연히 유성 영화를 만들어야 했고, 그것이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이 되었다. 그 당시 마이크는 너무 커서 감독이 연출할 수 있는 공간을 제약했고, 배우들의 움직임도 제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들은 관객들의 유성영화를 만들어야 했고, 많은 제약으로 인해 자신이 진짜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많이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회의감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채플린은 그러한 시대의 흐름을 단호히 거부했고, 그렇게 제약적이고 규제된 공간 속에서 표현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상상력을 일으켜 한 마디 언어보다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무성영화로 CITY LIGHT를 만들어 버렸다.채플린은 이 장면에서 그렇게 쉽사리 자신의 스타일을 바꿀 수밖에 없는 힘없는 감독들과 그 현실을 대 놓고 비꼰 것이다.결국 헐리우드 시스템 속에서 감독의 역할은 고작 거대한 기계속의 부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치 연설과도 같은 그 위엄이 있어야 할 장면에서 꽥꽥되는 소리가 나오는,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하게 된 것이다.장면이 바뀌면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거리 모퉁이에 채플린이 도착했다. 채플린은 그 모퉁이에서 꽃을 파는 아리따운 아가씨를 발견한다. 그 아가씨의 행동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야 그 아가씨가 장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리가 없으니 그 소녀가 장님이라는 정보를 얻는 시간도 길어진 것이다. 아무튼 이 불쌍한 소녀를 동정 어린 눈빛인지, 아니면 예뻐서 쳐다본 건지 모를 얼굴을 하고 채플린은 자신의 마지막 동전을 털어 소녀의 꽃을 사주었다. 소녀의 어둠으로 인해 채플린은 돈 많은 부자로 오해를 받는다. 이들은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영화를 전개해 나간다.여기서 떠돌이 채플린이라는 인간이 갖는 휴머니즘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그 후에 채플린은 소녀를 돕기 위해 청소 일도 하게 되고 권투 시합에서 흠씬 두들겨 맞는 일도 하면서 소녀를 도우려고 노력한다.같이 영화를 본 대다수의 학생들은 이 ‘무모한’ 인간성에 주목했을 것이고, 그의 ‘대단한’ 인간성에 찬사를 보냈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무리 자유인으로 살아가고 싶은 스타일의 인간이라고 하지만 자기 자신 하나 돌보지 못하는 인간이 불쌍한 인간을 돕는다?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이러한 도덕적 이상은 실제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위태위태한 동정심이 그가 추구하는 휴머니즘의 이상향일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이 진정한 휴머니즘인가?’ 라는 의문은 그의 위태한 자선행위를 통해 휴머니즘의 감동을 극대화 시켰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아무튼 이 영화에서 채플린은 인간이 가져야 할 도덕적 이상향에 대해 언급을 한 것 같고,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계층간의 갈등에 대한 자유인으로서의 반항을 표현한 것 같다.채플린이 여기서 제시하는 일반적인 동정 속으로의 몰입, 인간성으로의 몰입을 통해 또는 그들의 위태한 사랑을 통해 관객들에게 그 영화에 빠져들게 하는 그래서 다른 것들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면은 없을까? 그래서 누벨바그 영화감독들이 영화에 집중하지 마라! 하고 외쳐댔던 건 아닐까? 대답은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 쓸데없는 생각인가? 너무 한 가지에 집중해서 나온 생각일 수도 있지만, 조금 다른 각도로 접근해 본다는 의미에서는 괜찮은 생각일 수도 있다고 위안해 본다.
. 서두. Nobless Oblige. 대한민국 지도층,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 의무. 대한민국에도 존경할만한 부자가 있다.. 본론. 과거 부자의 척도 : 천석꾼, 만석꾼. 정무공 최진립 장군 - 최부자의 가문을 일으키다.. 경영 철학의 역할을 한 가거십훈. 300년 만석꾼 집안의 구체적 상황 대처법, 육연.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하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스스로 초연하게 처신하라 : 자처초연(自處超然). 남에게 부드럽고 온화하게 대하라 : 대인애연(對人靄然). 일이 있을 때는 과단성 있게 하라 : 유사감연(有事敢然). 한국적 인간관계에 바탕을 둔 노사 관계를 실천한다.. 함께 일하고 일한만큼 가져간다.. 때를 가려 정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늘린다.. 2등을 위해 1등 만큼 노력한다.. 가치있는 일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기쁘게 버린다.. 어버이를 섬김에 효도를 다한다.. 가정을 잘 다스린다.. 형제 사이에는 우애가 있다.. 친구 사이에는 신의가 있다..결론. 맺음말{서 두{★ 생활과 경제 ★{★300년 부의 비밀, 경주 최부자집을 읽고..★. Noblesse Oblige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군대에 있을 때 장교들의 임무 책자에서 발견했던 내용인데, 참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단어는 프랑스어로 귀족들의 의무란 뜻을 가진다. 곧, 한 사회 내에서 지도층, 상류층이 지녀야 할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프랑스 격언에서 유래된 말인데, 귀족이 받은 권리(Noblesse)만큼 그에 상응하는 의무(Oblige)를 다하란 의미가 된다. 일반적으로 동감하는 내용일지라도 귀족만 의무를 다하라는 논리적 전개는 처음 들었을 때 이해가 가지 않던 부분이었다. 그 말뜻인 즉, 인간은 오래 전부터 사회를 만들어 살아왔다. 또한 이 사회 내에서는 각자에게 권리와 의무, 즉 내가 사회로부터 얻는 이익과 주는 불이익이 수반된다. 하지만 과거에서는 권리가 귀족이란 계층에 편중되어 나머지 평민들 지켜온 명문가들이 있을까? 다시 말하면 '혜택받은 자들의 책임', 또는 '특권 계층의 솔선수범'의 계를 대대로 지켜온 명문 가문들이 존재할까? 라는 물음이 생기게 된다. 예전에 읽었던 조용헌 교수의,(제목은 생각이 안난다.) 책에서는 전국의 명문가 열 다섯 고택을 찾아 각 명문가의 역사와 정신,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고 있는데, 그 책에서 경주 최부자집은 조선 선비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비록 레포트가 주된 이유였지만, 존경할만한 부자를 보게되어 부자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씩사라지고 있다고 생각된다.한국 사회도 이제 부도덕한 졸부와 소인배의 근성이 사라지고 올바로 된 지도층 사회가 나와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처음에는 300년동안 부를 축적하고 그 부가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은 그들의 어떤 사업적 노하우 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장사 수단으로 생각되었다. 물론 내가 보는 우리 나라의 부자에 대한 시각은 아주 부정적이라고 인정한다. 우리 나라 부자의 근간을 이루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땅으로 하루아침에 돈을 번 졸부, 혹은 과거에 일본과 미국의 개가되어 민족을 팔아먹고, 그 대가로 자신들의 배를 채워 그 부를 이어 내려온 짐승들이 거의 다라고 생각했고, 아직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 논리는 강한자에게 굴종하고, 약한자에겐 강도가 되는 아주 비열한 것이라 여겼고, 모든 부자가 그럴 것이다고 생각했다. 즉 우리 나라 대부분 부자의 정체성은 바로 배신과 간사함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편견을 깨준 부자가 있었다.10대를 이어져 내려온 만석꾼의 비밀은 최씨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가훈과 가거십훈, 육연과 15가지의 비밀에 의한 것이었다. 양반이면서도 최소한의 지위만을 갖게 하여 정당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안정되게 부를 이을 수 있도록 하고, 천한 신분의 사람일지라도 무시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우해주며, 자신의 이득보다는 적정한 양의 이득만을 취하였다. 또한 정당하고 도덕적인 부만을 취할 것과 근검립은 자신의 집에 머물러 있는 왜군을 불태워 죽이고 조총과 창, 칼 등 노획한 무기를 관가에 바쳤다. 그러나 머지않아 경주성이 함락되고 이에 최진립은 동생과 함께 판관의 박의장을 따라 무명으로 종군하고 무인 김호, 주사호, 최신립 등과 함께 의병 수천명을 모아 경주성 탈환에 성공했다. 갑오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부장벼슬을 받았으나 병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 후에도 여러 전투에 종군했다. 정미년에 도총부사에 임명되고 이듬해 마량첨사에 임명되었으며, 신해년에 경상좌도 우후에 제수되었고, 갑인년에는 함경도 경원부사에 제수되어 통청대부에 올랐다. 신유년에는 양책관에 머물렀는데 누명을 쓰고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 그는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치는 것은 옳은 일이나 관직에 있다는 것은 대립되는 파벌이 있으므로 언제 모함에 빠지거나 숙청될 지 않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2년 후 귀양살이에서 풀려 가덕참사가 되었으며 3년 후 다시 경흥부사에 올랐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최전선에서 싸우다 인조 병자년 예순 아홉에 순국하였다. 그는평소에도 첩을 두지 않았으며, 뇌물은 물론이고 선물이나 물건에도 마음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경영 철학의 역할을 한 가거십훈▣ 인륜을 밝힌다.▣ 어버이를 섬김에 효도를 다한다.▣ 임금을 사랑함에 충성을 다한다.▣ 가정을 잘 다스린다.▣ 형제 사이에는 우애가 있다.▣ 친구 사이에는 신의가 있다.▣ 여색을 멀리한다.▣ 술에 취함에 경계한다.▣ 농업과 잠업에 힘쓴다.▣ 경학을 익힌다.. 300년 만석꾼 집안의 구체적 상황 대처법, 육연▣ 자처초연(自處超然) : 고요하게 혼자 있을 때는 초연하라.▣ 대인애연(對人靄然) : 사람을 만날 때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만나라.▣ 무사징연(無事澄然) : 큰일이 없을 때는 물이 맑듯 고요하고 투명해야 한다.▣ 유사감연(有事敢然) : 결정을 해야 할 때는 과감하게 실행하라.▣ 득의담연(得意淡然) : 뜻을 얻어도 담담하게 처신하라.▣ 실의태연(失意泰然) : 뜻을 잃어도 태연하게 처신하라..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특히 지역 사회에 대한 책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이때 기업이 그 이익을 사회에 되돌려 주지 않으면 결국 그 기업은 사회에서 오랫동안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다..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과객 중에는 풍류객이나 학문이 깊은 선비도 있었고 무인도 있었다. 그들은 대체로 지식인들이었고 세상 물정이나 인심과 지방의 사정을 살피면서 이곳 저곳으로 소식을 전해 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즉,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에 이들 과객은 정보 교환을 해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는 가훈은 과객을 차별 없이 대접하여 인심을 얻고 동시에 지식과 문화 교류를 통해 다른 지방의 정보를 얻고, 집안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최씨 가문은 이렇게 과객을 후하게 접대함으로써 가만히 앉아서 전국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오늘날의 의미로 보면정보를 널리 수집하여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었고 가문도 널리 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초연하게 처신하라 : 자처초연(自處超然)고요하게 혼자있을 때는 초연하라. 초연함이란 어느 한 가지에 집착함이 없고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혼자 있을 때는 어느 한쪽에 쏠리거나 매이고 집착하면 중용의 도를 잃어버리고 본직이 왜곡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로 보면, 최고 경영자나 지도자들은 혼자 있을 때 명상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특정한 하나의 안에 집착하면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다.. 남에게 부드럽고 온화하게 대하라 : 대인애연(對人靄然)사람을 만날때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만나라. 인간관계이 기본은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라는 속담처럼 따뜻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고 대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이다.. 일이 있을 때는 과단성 있게 하라 : 유사감연(有事敢然)결정을 해야 할 때는 과감하게 실행하라.오늘날 최고 경영자는 이런한 . 또한 최씨 집안에서는 항상 다른 집과 달리 작인들에게 일을 하고나면 배불리 점심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최동량이 지은 가거십훈은 현대적 의미로 보면 가문의 경영철학을 형성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때를 가려 정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늘린다.지나치게 재산을 불리지 않는다, 흉년이 든 해에는 땅을 매입하지 않는다, 1년에 만석 이상을 지니지 않는다. 99석 갖은 사람이 1석을 마저 채우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경주 최 부잣집에서는 이러한 재산의 과도한 증식과 주변사람들이 어려울때, 오히려 갖은자에게는 재산축적의 큰 기회일 텐데, 이러한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손 쉬운 재산증식을 거부했다. 그러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경주 최 부잣집의 얘기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전통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제 의 사례라고 말하기에 손색이 없는 것이다.. 2등을 위해 1등 만큼 노력한다.어찌보면 바보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항상 정상만을 고집하는 요즘 세테에서 미련스럽게 TOP의 자리를 지양하고, 2등을 위해 노력하라니! 그러나, 여기에도 경주 최 부잣집의 또다른 전략이 숨어있다. 왜 2등에 만족하는가? 그 이유는 1등에게 가해지는 FOLLOWER 들의 공격과, 견제를 피하고, 오히려 그러한 견제에서 좀 더 자유로운 2등에 만족하면서, 항상 1등이 되기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어찌보면 1등 만능주의의 세태 를 뛰어넘어서는 탁월한 그 집안 만의 독특한 생존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비밀인 것이다.. 가치있는 일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기쁘게 버린다.경주 최 부잣집의 부의 명성이 지금까지 이어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라가 독립운동에 매진할 때, 기꺼이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으며, 자기 가문의 최대 숙원 사업인 교육재단의 설립 (現 영남대학교, 영남이공대)에 남아 있는 재산을 쏟아 부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노블리스 오블리제 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가는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두고두고 회자될 아름답고 자랑스런 있다.
{목 차I.서론1.마르쉐 선정 동기2.업체 소개3. The visons of Amoje coporation4.(주)아모제 유니버시티5. 마르쉐의 3F6.마르쉐 이용방법7.회사개요 및 매출현황II.본론1.입지분석2.상권분석3.메뉴분석4. 점포력.5. 서비스6.선전 기획력Ⅲ.결론 및 제안사항I.서론1.마르쉐 선정 동기현재 우리는 급변하는 사회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급변하는 물결속에서 가족의 유형에까지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30∼40년전 까지만 하더라고 3대 또는 4대가 함께 모여 살아가는 대가족 중심이었지만, 80년대부터 핵가족 현상이 보편화되면서 2대 또는 1대(부부, 독신)로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핵가족화 현상으로 인하여 식생활 유형도 많은 변화를 보였다. 외식 빈도는 가족수가 많을수록 현저히 떨어지고, 가족수가 맣을수록 빈도수가 많아진다. 예를들면 7인이상 가족은 6.7%이고 3인가족은 10.7%이고 2인가족은 12.7%이며 독신의 경우에는 62.4%이다. 또한 연령이 낮을수록 외식 빈도수가 높다고 알려졌다. 예를 들면 25세 미만은 48%, 65세 이상은 27%이다. 이렇듯 가족 구성원 수가 적을수록 연령대가 낮을수록 편의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외식산업이 급성장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외식업의 종류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수업에서 배운바와 같이 패스트푸드, 패밀리 레스토랑, 호텔 외식업, 택배/테이크아웃 서비스, 단체급식서비스로 구분된다.우리는 현재 외식서비스 업체에서 특히 급성장 하고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조사하고자 한다. 패밀리레스토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는 브랜드인 T.G.I.F 나 베니건스 가 있지만, 이들업체에 관한 조사나 연구는 다른 관광학도들이나 업체들에 의해 많이 행해진걸로 파악되기 때문에 다소 생소하다면 생소한 (주)덕우산업의 마르쉐 를 선정하게 되었다. 마르쉐 는 다른 패밀리 레스토랑(미국식 레스토랑)과는 다르게 유럽식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는 컨셉으로 1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기업으로 우리는 마르쉐의 다고 믿습니다. "시켜만 주십시오, 그대로 하겠습니다"가 아니고 주어진 책임과 권한 하에 자율적으로 일을 해나가는 업무 환경을 만들도록 계속 노력하는 기업입니다.8.노하우(지식)가 잘 축적된 전문기업저희를 포함한, 외국으로부터 FRANCHISE를 들여온 많은 기업들은 로열티를 지급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들의 인건비로 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제공된 노하우, 즉 지식에 대한 대가로 지급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산업으로서의 외식업이 시작된 지 10여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만의 노하우를 쌓아갈 때가 되었고 더 나아가 우리가 쌓은 노하우를 가지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으로 승부하는 회사, 지식경영을 추구하는 기업이 되겠습니다.3. The visons of Amoje coporationAmoje Anytime AnywereAmoje가 지역적으로 그리고 업태, 업종별로 성장하여 모든 국민이 최소한 하루한끼는 Amoje를 통하도록 하겠다는 의미이며, 종합적인 외식 및 식품관련 기업으로 성장하되, 외식업에서의 외국자본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탈피하고 한국기업으로서 외국으로 진출하는 선도적인 업체가 되어 세계 어느 곳에서나 Amoje의 이름을 접할 수 있게 하겠다는 뜻이자, 아모제인 모두의 의지의 표현이다. 2010년 Amoje는 국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 네임으로 자리잡게 되고, "Korea"라는 단어가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high quality, long history & sophisticated tradition, hospitality"를 대표하는 단어로 인식되도록 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4.(주)아모제 유니버시티마르쉐 유니버시티는 전직원을 전문가로 양성하기 위해 마련된 교육기관입니다. 신입직원에서 점장까지 6과정, 16단계로 진행되는 교육과정을 통해 전문가의 꿈을 키워보세요.{마르쉐는 2000년 12월 14일, 자체적인 인재 양성을 위해 별도의 독립된 교육장소인 유니버시티를 역삼점 건물 내에 증축, 오픈하고 효과적581투자자산16,68530,342유형자산4,53110,239부 채 총 계12,45722,797유동부채7,89519,581고정부채4,5633,216자 본 총 계10,44310,660자본금1,3001,300익잉여금720503당기순이익994217자본조정9,8639,863부채와자본총계22,90033,456대차대조표(단위:백만원){1999.122000.12매출액1136925672매출원가985621820매출총이익15133852판매비와관리비10602570영업이익4541282영업외수익1173162영업외비용6091123경상이익1017322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1017322법인세비용23105당기순이익 994 217손익계산서(단위:백만원){{자료출처-2001년 매일경제 회사연감』[파워브랜드-패밀리레스토랑] TGI Friday's, 베니건스 제쳐{TGI Friday’s’와 ‘베니건스’ 간의 경쟁이 치열했으나 결국 종합점수(100점 만점)에서 TGI Friday’s가 32.5점을 얻어 베니건스(29.2점)를 근소한 차이로 물리치고 조사대상 8개 브랜드 가운데 1위 자리에 올랐다.‘마르쉐’도 21.2점을 획득, 3위를 차지하며 만만치 않은 브랜드파워를 과시했고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16.6점)와 ‘스카이락’(15.8점)이 그 뒤를 이었다. ‘씨즐러’(11.3점) ‘코코스’(10.9점) ‘토니로마스’(9.1점)는 하위권에 머물렀다.◇브랜드 인지도=90년대 초 한국시장에 입성한 TGI Friday’s가 선발 주자라는 이점을 등에 업고 수위를 달렸다. 그러나 응답률은 36.8%에 그쳤다.베니건스와 마르쉐가 각각 23.9%와 13.6%의 지지를 얻어 나란히 2·3위에 자리했고 4위는 스카이락(9.8%)이 차지했다.◇브랜드 호감도=베니건스가 77.42점을 받아 75.19점을 얻는데 그친 TGI Friday’s를 제치고 선두에 올라섰다. 마르쉐(71.81점)와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71.17점)는 3위 자리를 놓고 진땀나는 승부를 벌였다.◇품질 이미지=음식의 맛과 친절성, 매장분위기, 청결성, 외형성장보다 TGIF가 선보인 각종 서비스 및 마케팅 전략은 외식업을 비롯한 국내 서비스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한국 TGIF가 처음 선보인 ‘퍼피독 서비스’ 즉 고객의 눈 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는 일종의 눈 높이 서비스 시스템은 일부의 부정적인 의견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패밀리 레스토랑은 물론 일부 호텔로 파급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생일을 맞은 어린이 고객에겐 각종 풍선장식 및 케이크 제공과 함께 고깔모자를 쓴 종업원들이 빙 둘러서 노래까지 불러주는 모습도 당시엔 생소했지만, 지금은 패밀리 레스토랑 특유의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TGIF의 진정한 경쟁력은 현재의 1위에 만족하거나 자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최고의 서비스를 위해 노력한다는 점. 생일축하파티를 활성화하기 위해 매년 전체사원 차원의 ‘생일 콘테스트’를 실시하고 영업점 직원들이 항상 생일축하 노래연습을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1호점 개점 10주년을 맞는 2002년에는 기업 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경영방침을 ‘내부 역량 및 브랜드가치 강화’로 정하고 고객밀착 서비스를 통해 오는 2002년까지 25개 이상의 매장에서 1천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동양제과 베니건스대형화·발빠른 지방공략 돋보여95년 대학로에 1호점을 낸 것을 시작으로 올 6월 해운대에 11호점을 내기까지 꾸준한 성장으로 패밀리 레스토랑업계 2위를 지키고 있는 베니건스의 가장 두드러진 전략은 매장 대형화다. 7월초엔 기존의 도곡점을 6백30석 규모로 확대 개장, 국내 최대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2002년 한국어판 기네스북에 등재된다.베니건스 도곡점은 국제 규격 수영장 크기의 2배, 일반 패밀리 레스토랑 2~3배 크기로 하루 방문 고객수는 평일 1천6백명, 주말 및 공휴일 1천8백명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예상 매출액도 월 10억원으로 웬만한 중소기업 규모에 맞먹을 것으로 추산된다.도곡점뿐만 아니라 베니건스의 거의 모든 점포는 해당 지역내 다른 경쟁업체에 비해 점포가 큰 기반을 둔 신사장의 독특한 철학도 한 몫을 하고 있다.“우리 식당에서 쓰는 채소와 과일은 90% 이상 유기농 재배 제품을 쓰고 있습니다. 단가는 비싸지만 고객의 건강까지 생각하지 않고서는 외식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였습니다. 고객들을 대상으로 유기농 현장견학이나 유기농 요리대회 등을 통해 유기농 제품에 대한 인식제고 작업도 하고 있지요.”신사장은 지난해 패밀리 레스토랑 업계로선 드물게 ‘마르쉐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마르쉐 각 점포가 이익금의 일부를 저축해 해당지역 고아원이나 보육원과 연결, 지속적으로 돕기위한 재단이다.“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덕우산업에서 만든 음식을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외국 브랜드를 들여와 운영하고 있지만 머잖아 저희가 직접 개발한 외식 브랜드로 세계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꿈도 꾸고 있어요. 이를 위해 내년에는 한국 음식을 기반으로 한 외식 브랜드를 선보일 계획입니다.”『자료출처 한경비즈니스』II.본론1.입지분석현재 서울의 패밀리 레스토랑은 포화상태이다. 그래서 지방을 타겟으로 정했으며 울산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는 것에 치중을 두어 울산점을 오픈하게 되었다. 2001년 10월 5일에 오픈하였으며 총 좌석수는 230석이며 연중 휴무이고 여약이 가능하다. 단 주말은 오전만 예약이 가능하며 영업시간은 아침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이며 주말은 11시까지 한다. 특히 롯데백화점 시네마동에 입점해 있어서 쇼핑과 영화관람, 외식을 한 번에 편리하게 즐기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버스 이용 할 경우 1-2, 2, 5, 5-1, 8, 66, 314, 318, 319 타고 롯데백화점 앞에서 하차 하면 되고 자가용 이용시 공업탑 로터리에서 울산역 방향으로 직진시 우측에 보이는 롯데씨네마타운 2층으로 오면 된다.2.상권분석상권분석은 울산 남구지역 1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을 기초로 분류하였으며, 각 상권에 대한 수요와 공급 분석으로 타당성을 예측하였다. 1차상권은 150명중 약 80명의 거주지인 남구로 하였으며, 2차낸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