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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의 이해
    방송의 이해『과제 보고서 』방송의 이해① TV 간접광고(PPL)를 허용에 관한 논의② 일상생활 속에서 방송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고찰③ 신규매체의 지상파 재송신을 허용해야 하는가④ 다매체 시대 지상파 방송의 시장 지배력제출일 :TV 간접광고에 허용에 관한 논의TV라는 영상매체가 가지는 광고효과는 타 매체보다 분명 크지만, 상업광고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TV 프로그램의 사이사이에 배치되는 이러한 상업광고들은 광고주들의 기대와는 달리 Zipping이나 Zapping 현상에 의해 시청자들에게 외면당하는 실정이다. 광고주들은 수용자들에게 거부감을 최소화하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새로운 마케팅 수단을 고심하게 되었다. 따라서 TV 프로그램 내에서 제품 혹은 상표 등을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간접광고가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등장했다.문제는 TV는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되는 영향력이 큰 매체이며 TV 방송은 전파의 희소성 때문에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 있다. 때문에 방송은 공익성과 공공성을 추구하도록 요청되어 왔고 이를 위해 방송은 국가에 통제 하에 존재했다. 방송법 47조는 “방송은 특정상품이나 기업, 영업장소 또는 공연 등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나 의도적으로 부각시켜 광고효과를 주어서는 아니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간접광고에 대한 전문가들과 시청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양분된다. 하나는 공공재인 방송은 국민을 위해 공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나 간접광고는 방송 자원을 사적인 용도로 악용하였기 때문에 강력히 규제해야한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간접광고를 경제학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보고 열악한 방송제작 현황을 보조하고 기업에게도 접근성이 높은 광고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1. 간접광고(PPL)에 대한 입장차1) 방송사 및 외주 제작사방송사의 수익 창출 구조는 일반 기업과는 다르다. 방송사의 경우 방송의 주 소비자라 할 수 있는 시청자로부터 얻는 수익을 기대방송위원회 심의제재 중 간접광고에 관한 비율은 2001년에는 75%, 2002년에는 82%로 그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열악한 방송 제작 시스템 때문에 법을 위반하고서라도 간접광고를 시행하기 때문이다. 즉, 방송 제작 여건에 대한 새로운 방안이 제시되지 않는 한 규제를 한다 해도 간접광고의 비중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방송위의 간접 광고에 대한 규제가 미약하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법적인 제재 보다는 주의, 경고등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간접광고에 대한 법적 규제가 실효성을 지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제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TV 프로그램 속에서 제품이나 기업 서비스에 대한 간접광고가 행해지고 있고 방송사는 제작비 절감이라는 측면에서, 기업은 제품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노출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유혹을 떨쳐버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근엔 방송과 통신의 융합 및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방송의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방송 산업 경쟁력의 확보를 위해 간접광고에 대한 규제 완화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2) 규제의 주체방송의 자유는 일반적으로 국가나 정부의 통제로부터의 자유를 의미뿐만 아니라 자본이나 이익 집단으로부터의 자유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방송이 시청자에게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으로 인하여 정치적 및 사회적 규제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국의 방송은 국가적으로 통제되어 왔다.그러나 최근 매체 환경이 다변화됨에 따라 방송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탈규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간접광고의 규제에 있어서도 변화가 생겼다. 외주 제작사의 활성화를 위해 간접광고를 일부 허용하고 방송사가 자체 심의를 한다. 문제는 규제의 범위가 제한적이며 방송사 자체에서 재정지원이라는 이름으로 간접광고를 남용하는 경우가 생긴다. 즉, 방송사가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하더라도 방송사가 방송사의 이익으로부터 자유로워지 프로그램은 실제 인간의 삶을 반영하여 재구성한 창작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 할 수 있게 된다.그러나 방송은 이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가치관이나 문화를 파급시키기도 한다.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의 한 꼭지인 ‘눈을 떠요’나 몇 년전 책읽기의 중요함이나 운동의 소중함을 대중에게 전파시켰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나 ‘운동이 운명을 바꾼다.’와 같은 꼭지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는 이렇듯 여러 공익적인 캠페인을 선도하고 있으며 이런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고 급속히 확산되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다.그렇다면 과연 텔레비전은 일상생활에서 어떤 기능이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일상생활 속에서 텔레비전이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고정관념을 고착화시키는지 아니면 새로운 가치관이나 문화를 파급시키는 지에 대한 그 역할과 기능을 논의해볼 필요가 생긴다.2. 텔레비전의 두가지 문화적 역할방송의 파급효과는 크며 신속하다. 한번 방송을 탔다하면 일반인이 스타가 될 수도 있고, 알려지지 않았던 곳이 일약 명소가 되기도 한다. 방송은 또한 여러 가지 유행을 창출한다. 사람들은 “웃찾사”와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개그를 익히고 연습한다. “겨울연가”에서 배용준이 했던 머리 스타일이나 머플러는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렇듯 텔레비전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대중의 일상생활에 밀접해 있다.방송의 이러한 문화적 역할을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가 사회 보편적 가치를 형성하거나 유지하는 사회규범적인 역할이고 두 번째는 새로운 문화나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 산업으로써의 역할이다. 이 두가지 기능을 대변하는 이론들을 접하면서 텔레비전이 지니는 일상생활 속의 역할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1) 사회규범적 역할방송은 일반 대중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TV 뉴스 프로그램은 매일 새로운 소식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일부 교양프로그램들은 대중을 교육시키며 드라마는 사회 한 모든 정보가 텔레비전을 통해 전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뉴스의 경우 의제설정이론을 바탕으로 사회 기본적인 이슈들을 정리하고 선별해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경우 가부장적인 이념 하에 오랫동안 전통적인 여성상, 성적 대상자로서의 여성상을 재생산했다.텔레비전이 가진 일방적인 속성으로 인해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사람들은 텔레비전이 표출하는 이념을 무의식 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텔레비전이 인간의 사고 체계를 결정하고 파급시킴으로써 인간을 종속화를 시키고 있다. 실례로 상식적으로 몸에 좋다고 여겨지는 비타민이 뉴스에서 몸에 좋지 않다고 보도 된 경우, 시청자들은 뉴스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비타민 섭취를 지양하게 된다. 바야흐로 텔레비전이 시청자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전담하게 된 것이다.결론적으로 텔레비전은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사회 보편적 가치, 보통 스테레오타입이라 불리는 사회적 이념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반영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수요는 방송사의 이윤과 직접 연결이 되므로 이러한 일상성의 반영은 시청자에게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역할은 기존 관념의 강화뿐 만이 아니다. 텔레비전은 늘 현재를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매체이며 유행을 선도하기도 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시청자를 일정 수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가치와 맞물려서 새롭거나 신선한 소재가 필요한 법이다. 따라서 일상생활 속의 방송의 기능과 역할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면서도 사회변화에 따라 개혁적인 가치관을 파급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방송은 최대한 보편성을 중심으로 약간의 새로움을 가미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텔레비전의 메시지 전달은 가치관의 보급->양산->강화의 순환구조를 가지며 새로운 가치관이라 하는 것도 결국 사회변화에 따른 새로운 일상성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참고자료]? 이남표『매스미디어는 현실을 구성하는가 』, 『매스미디어와 문화산업』? 막대한 초기 사업비를 환수하고 시장에 조기 정착하기 위해 지상파 콘텐츠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현재의 상황으로는 지상파 콘텐츠만큼 강력하고 흡입력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신규매체의 시장 정착에 가장 큰 열쇠가 되는 지상파 재송신을 불허한다면 신규 매체의 시장 진입을 원칙적으로 통제하게 되는 것이며 이는 매체간 불균형적인 발달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위성 DMB를 전담하고 있는 TU 미디어의 경우 시청자의 시청권 보장 및 타매체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지상파 재송신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지역방송협의회 및 언론노조의 반대를 두고 TU미디어는 작년 9월 24일 사업자 선정방안 공고를 앞두고 있는 방송위에 건의서를 보내 지상파 재송신을 불허한다면 사업철수를 하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나섰다. 다행히도 최근 방송위가 지상파 재송신 허용을 밝혔지만, 앞으로도 MBC와 SBS와 시작해야하는 콘텐츠 제공 계약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2) 언론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은 위성 DMB서비스 자체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위성 DMB는 방송이 지녀야 할 보편적인 무료 서비스로서의 공공성과 공익성에 위배됨과 동시에 방송시장이 통신업계에 잠식당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한 위성 DMB는 이동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매체 성격상 위성방송처럼 권역별 재송신이 불가능하며 전국을 대상으로 한 방송이므로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음과 동시에 지방에서도 DMB를 통해 중앙 지상파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지역방송의 쇠퇴와 직결된다는 주장이다.따라서 결과적으로 지역문화의 창달과 지역간 균형발전에도 반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위성 DMB는 유료서비스에 알맞은 수준 높고 새로운 신규 서비스를 선보여야 하며 기존의 지상파 방송을 재송신하는 것으로는 방송 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3) 지상파 방송사MBC와 SBS는 작년 8월 TU미디어와 '위성DMB 사업협력 계약식‘을 갖고 콘텐츠 및 방송시설의 제공, 인력교류 등 사업이다.
    사회과학| 2007.04.07| 14페이지| 8,000원| 조회(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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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죽음의 미학 - 아마데우스 상호 텍스트성 -
    [문학과 영상예술 : 기말 보고서]죽음의 미학-『아마데우스』 상호 텍스트성을 중심으로-《죽음, 끝이 아닌 시작의 세계》◆ 담당 교수 : 교수님◆ 제 출 일 :.◆ 사회과학대학 신문방송학과◆ 학년 / 학번 :◆ 이 름 :◈ 목 차 ◈1. 들어가며- 신의 아들 아마데우스는 죽었다. 그리고 음악으로 다시 태어났다.2. 본론1.‘죽음’을 둘러싼 상호 텍스트성(1) ‘비범’의 광채를 위한 ‘평범’의 죽음(2) 영화에 ‘생명’을 주는 ‘죽음’① 주(主)의 죽음② 헐리우드의 죽음2. 죽음의 미학(1) 신의 죽음 - 신을 사랑한 자와 신이 사랑한 자(2) 자아의 죽음 - 또 다른 자아, 모차르트(3) 어머니의 죽음 - 한줄기 빛처럼(4) 사랑의 죽음 - 순수의 아픔(5) 아버지의 죽음 - 꿈의 실현 vs 꿈의 자유(6) 천재의 죽음 - 갈등과 상처(7) 전통의 죽음 - ‘다름’에 대해서(8) 모차르트의 죽음 - 희망의 열쇠, 죽음(9) 살리에르의 죽음 - ‘비범’을 인정한 ‘평범’ 짧은 화해, 영원한 결별(10) 영화 『아마데우스』의 죽음 - 존재의 질실한 목표3. 나오며- 죽음. 그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에 대해서(1) 감상 - ‘나’의 발전을 위한 끝없는 ‘나’의 죽음(2) 죽음 - END가 아닌 AND4. 참고 문헌[문학과 영상예술 - 기말 보고서]◈ 들어가며 ◈∬ 신의 아들, 아마데우스는 죽었다.그리고 음악으로 다시 태어났다. ∬하이든은 모차르트의 아버지에게 1785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말한다. 그리고 정직한 사람으로서 맹세코 말한다. 너의 아들은 내가 겪은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다.” 이 세상을 살다 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어떤 다른 작곡가들 보다 훨씬 더 거침없이 그리고 위엄 있고 장엄하게 작곡했다. 그는 서구 세계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시간과 변모하는 취향의 파괴를 회복시켰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천부적 재능을 셰익스피어의 그것과 견주기도 한다. 그는 35세에 불시의 죽러낸 음악이 곧 신의 뜻인 것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진정한 모차르트의 삶이고 그 속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의 불후의 명작 레퀴엠이어야 했다. 레퀴엠에 흐르는 죽음을 위한 선율이 어떻게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그것을 파고들어야 했다. 예술가의 의무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보다 나은 차원의 것으로 끌어올리는데 있다. 그렇다면 모차르트가 파악하고 깊이 음미했던 죽음의 의미 그 자체를 보통사람들도 함께 음미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오늘날 감정이 메말라 있는 현대인들조차도 모차르트의 음악을 통해서라면 현실세계가 아닌 또 다른 완벽한 인식의 세계를 꿈꾸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화에서 말하고 있는 신의 뜻, 모차르트 음악의 영원성이 아닌가 생각한다.(2) 영화에 ‘생명’을 주는 ‘죽음’① ‘주(主)’의 죽음영화 『아마데우스』는 헐리우드에서 만든 대부분의 영화와는 달리 사건들이 서로 단절된 듯한 인상을 준다. 즉 영화 『아마데우스』의 구성은 에피소드적이다. 영화의 불연속성이 막과 장으로 구분된 연극이 영상화된 소산이 아니겠는가 생각될 수 있지만, 연극의 영상화가 반드시 불연속성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에피소드적 구성으로부터 오는 불연속성을 메꾸어 주고, 관객의 관심을 이끌어 가는 것은 모차르트의 음악이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셰퍼와 포만이 실제 모차르트 음악을 연주하는 지휘자를 영화 감독자로 계약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셰퍼는 이 영화에서 살리에리의 내면적 갈등만큼 모차르트의 음악 자체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영화를 본 관객들도 살리에리의 연기만큼 모차르트의 음악에 심취할 수 있는 것이다.셰퍼는 영화 『아마데우스』를 개작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연극과 상용되는 동등한 예술 작품으로 간주했으며 “연극에서 내가 뚜렷하게 부각시키고자 한 점은 살리에리라는 인간이 음악의 절대성을 발견하고 몰입해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영화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된다. 즉 음악은 단순히 에피소드적인 단절을 메꾸어 주는하고 희곡이 지닌 상징성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영화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2. 죽음의 미학(1) 신의 죽음 - 신을 사랑한 자와 신이 사랑한 자살리에리는 이미 16세 때 음악을 통해 신을 찬미하면서 자기의 전 생애를 신에게 바칠 것을 맹세한 인물이다. 그는 그 대가로 음악의 창조적인 천재성을 신으로부터 받고자 갈망한다.주님, 제가 작곡가가 되게 해주소서! 찬란한 명성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소서. 그 대신 선량하게 살겠습니다.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진력하겠습니다. 전 저의 인생을 통해 많은 음악으로 당신께 영광을 바치겠나이다! (1막 2장)나의 야심은 꺼버릴 수 없는 불꽃이 되어 타올랐습니다. 그 첫 번째 목표가 왕실의 제 1악장의 자리였습니다. 당시에 그 자리는 70세의 노인이면서도 불사신과도 같은 주제페 본노가(그를 가리킨다) 맡고 있었습니다, (1막 3장)....... 그리고 밤에는 오직 한 가지만을 기도드렸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필사적으로) 나에게 신의 은총을 베풀게 해주소서!....... 나에게!이상과 같이 살리에리는 신으로부터 음악적 천재성을 부여받기를 간구한다. 그러나 신은 그에게 식별력은 주면서도 뛰어난 음악적 재능은 주지 않았다. 다만 평범함만을 주신 것이다. 음악의 재능은 신의 소리로서 오직 모차르트에게만 주어졌다. 슬프게도 이것을 살리에리는 알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살리에리는 신을 영원한 적으로 삼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신을 죽이기에 이른다. 살리에리는 신의 총애를 받는 모차르트를 통하여 신에게 도전한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악보를 찢어대는 1막의 끝이 바로 그런 것이다.2막에서 모차르트가 어떤 명곡을 발표하려고 해도 살리에리는 온갖 간악한 술책을 써서 모차르트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좌절과 절망의 늪으로 몰아넣음으로써,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모차르트가 죽은 후, 살리에리는 신의 원망과 관계없이 소망했던 바대로 음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흡족할 만한 명성을 손아귀에 넣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리에리의 명성에의 갈증은 의사진료를 거절했다. 모차르트는 그런 고통을 받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그냥 그대로 내버려둔다. 2주 후에 어머니가 한줄기의 스쳐 지나가는 불빛처럼 사라져 갔다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어 놓고 있다. 모차르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어머니를 잃은 것에 매우 충격을 받는다.(4) 사랑의 죽음 - 순수의 아픔예술가들의 사랑은 슬프고 순수하다. 예술가의 영혼은 사랑을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고 타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평범한 사람들이 버리지 못하는 소유욕이 부재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예술가들의 사랑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분명 예술가 모차르트에게도 이러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모차르트는 사랑하는 여인 알로이지아를 위해 아리아를 쓴다. 그리고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하게 된다. 하지만 알로아지아는 단 한 번의 주저함도 없이 그 프러포즈를 거절한다. 모차르트는 좌절하고 큰 상처를 입는다. 그는 친구의 집에 가 큰소리로 울어야 했다. 자신의 여인을 떠나보내야 했다.그러나 영화는 모차르트가 아내 콘스탄체를 만나는 장면을 너무 익살스러운 장난처럼 묘사하고 있고, 그 이전 다른 여자와의 만남에 따른 고뇌가 있었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분명 모차르트가 겪었을 젊은 청년으로서의 사랑의 열병이 있었을 것임에도 그러한 것을 다루고 있지 않다. 감독이 예술가의 사랑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나 예술가의 아픈 상처는 그대로 작품에 옮겨지게 마련이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그려지는 사랑의 갈등은 모차르트가 레퀴엠 작곡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떠나는 콘스탄체의 모습만 있을 뿐이다. 마지막 임종을 지키는 이도 그녀이지만 실재 그녀가 모차르트의 삶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 들였는지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이런 평범한 여자와의 만남 때문에 얻어야 할 예술가의 아픔을 말하고 있지 않다.(5) 아버지의 죽음 - 꿈의 실현 vs 꿈의 자유영화의 어린 시절의 비교장면에서 나열된 이미지 옹호한다. 곧이어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는데 이 논쟁의 배후에는 상이한 예술관이 자리하고 있다.모차르트 : 다른 때 에는요?살리에리 : (부드럽게) 글쎄요, 최상이 아닌 때에는 말이죠 가끔 있었습니다만, 예를 들자면 카테리나의 아리아 말이오. 그게 좀 지나친 것 같아요.모차트르 : 카테리나는 지나친 여자지요. 사실 그녀는 만족을 모른다니까요.살리에리 : 나의 은사이신 글룩 기사님은 늘 음악 냄새가 나는 음악은 피하라고 말씀하셨죠모차르트 : 무슨 말입니까?살리에리 : 작곡가의 재능을 너무 돋보이게 하는 음악 말이에요.모차르트 : 글룩은 천차군요.살리에리 : 뭐라고 말했죠?모차르트 : 그는 평생 동안 오페라의 근대화에 대해 말했지요. 하지만 너무 고귀한 인물만창조해서 대리석에다 똥을 싸는 것 같이 들린단 말이에요.살리에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카테리나의 아리아는 당대의 규범에서 벗어나 있다. 살리에리는 은사인 글룩의 가르침을 언급하면서 음악가는 자신의 재주를 뽐내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모차르트는 글룩과 살리에리로 대변되는 당시 비엔나의 음악관을 비판한다. 그는 당시 비엔나의 음악을 지배하던 사조의 단점을 간파하고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표준화된 형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다. 살리에리를 위시한 비엔나의 음악가들에게 추앙과 존경의 대상인 글룩은 모차르트에게 천치에 불구하다. 자신을 천재적인 창조자가 아니라 ‘지식이 있는 하인’이라고 칭하는 살리에리는 글룩이라는 권위적인 인물에 기대어 정형화된 음악의 필요성을 역설하지만, 모차르트는 엄격한 형식을 존중하고 기존의 권위를 숭배하는 당시 비엔나 음악관을 불신하고 여기에 강력하게 항거한다. 이와 같은 모차르트의 행위는 ‘계몽주의’”에 함몰되어 있는 18세기 비엔나 궁정 음악가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괴벽으로 받아들여진다.모차르트의 낭만주의적 성벽을 이해하지 못하는 비엔나 음악가들에게 그는 정형적인 아름다움을 파기시키는 이탈자이자 괴벽의 세계를 추구하는 우스꽝스러운 음악가로 영상에 비추어진다. 프랑스의 희곡
    인문/어학| 2007.04.07| 17페이지| 10,000원| 조회(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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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lsans]매체와 예술
    사람과 비트가 만나는 곳-생각해보면 컴퓨터가 어렵거나 사용이 힘들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대하는 것이 여전히 부담스럽고 때로 매우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인터페이스(interface)의 발달이 더딘 것이 가장 큰 원인인 듯 싶다.물론 여기서 말하는 인터페이스는, 컴퓨터에서, 서로 다른 두 시스템?장치?소프트웨어 따위를 서로 이어 주는 부분, 또는 그런 접속 장치 라는 의미보다는 컴퓨터에서, 사용자인 인간과 컴퓨터를 연결하여 주는 장치 라고 해석하는 것이 보다 온당할 것이다. 그리고 후자(?)가 지시하는 인터페이스 환경은 비단 하드웨어 측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포괄적이고 광의의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간 과학자들이 컴퓨터의 속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 결과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지만, 사용자 인터페이스 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소홀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사정이 한층 좋지 않은 것은 인터페이스가 전통적인 산업 디자인 문제로 취급되어 감각적인 부분을 강화하고 물리적인 디자인을 개선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는 사실이다.중요한 것은 사용하기 쉬운 키보드와 비주얼이 뛰어난 디스플레이 따위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컴퓨터로 하여금 당신을 알게 만들고,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 목소리와 목소리 이상의 언어들까지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2001 : 우주 오디세이」(2001 : A Space Odyssey)에 나오는 할(HALL)이나 1987년 애플(Apple)이 만든 지식 항해자(Knowledge Navigator)라는 짧은 컨셉 비디오에 등장하는 사람의 모습을 한 완벽한 에이전트(Agent)처럼 말이다.위와 같이 고도의 인터페이스(interface)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말하기, 가리키기, 보기 등의 요소가 다양한 감각을 이용하는 인터페이스의 개별요소로서 함께 작용해야 한다. 이러한 다 형태 인터페이스는 얼굴을 마주보며 나누는 에서의 “사람들 간의 새로운 상호작용”을 시도하였다. 즉 물리적 법칙이 지배하는 현실의 시공간 환경, 인간의 생래적 육체활동이 아닌, 비디오플레이스와 같은 매체를 통해 새로이 설정도니 인과법칙이 지배하는 새로운 공간, 실존하지 않지만 분명 인간의 “감각”을 만족시키는 공간, 진짜같은 가짜 즉 “가상현실(Artificial Reality)”을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전술한 “반응하는 환경”들을 통해 크루거는 사람과 기계 사이의 실시간 상호작용에 헌신하는 새로운 미디어예술을 제시하고 나아가 그 환경들에 기초한 가상현실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러한 사고의 과정은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반응이야 말로 미디어다” 라는 명제에 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상호작용”이라는 가치기준을 지닌 이 예술분야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참가자의 행위와 환경의 반응 사이에서 환경의 인과법칙 조절을 통한 자유롭고 다양한 상호작용의 가능성의 제공이라 평한다.이상의 고찰은 이미 “가상현실”을 “현실”의 일부로 당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전자렌지로 음식을 데워먹는 법을 설명하는 것과 같이 진부하고도 불필요해 보이는 설명들인 듯 하지만 결코 그 의미를 가벼이 평해서는 안될 것이다. 전기코드와 버튼 몇 개의 조작으로 무심코 사용하는 전자레인지도 마이크로웨이브를 이용해 음식물 안의 수분을 진동시켜 열을 발생시킨다는 사고의 과정을 거친 것과 마찬가지이다.무엇보다도 크루거의 “반응하는 환경”은 우리가 가진 “예술”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간접적으로나마 정립하는데 도움을 준다. 크루거 또한 그가 정의한 인터렉티브 아트- 반응적 미학 - 의 예술적 가치와 타당성에 대해서는 확답을 유보하고 있다. 하지만 예술이 그 개념이 모호하고 광범위한 것은 그것이 인간 자체와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 즉 문화나 사회의 한 측면을 통괄하여 보여주는 까닭이라 생각된다. 과거 조소와 회화?음악이 각각 시작과 청각의 만족을 가치기준으로 삼았듯이, 현대사회의 커다른 물결인 “기계”문명의 확산이 인간과의 필연적 관계를 맺게될 특성을 지닌다. 나아가 ‘정보량’과 ‘참여도’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만화, 영화, 텔레비전, 라디오 뿐 아니라 강의와 세미나, 선진국과 후진국, 왈츠와 트위스트, 과밀도시와 느슨하게 구조화된 도시 등 까지도 ‘쿨’과 ‘핫’으로 구분지어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장 강력한 미디어인 텔레비전은 정세도가 높아, 즉 정보량이 많아 수용자의 참여도가 낮은 영화와는 반대로 수용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쿨미디어이다. 여기서 우리는 텔레비전이 시각에만 편중되어 있었던 인쇄물과는 달리 시각과 청각이 함께 자리하게 되는, 이른바 ‘공감각적’인 미디어라는 점에 ‘촉각’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텔레비전의 촉각적 성격’을 드러내주는 것이 아닐까?텔레비전에서 케네디의 장례식을 접한 미국인들은 그 슬픔을 온 몸으로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시대의 나치 독일인들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집단적으로 슬픔에 대응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어떻게 그들은 차분할 수 있었던 걸까? 나는 우리가 이 차분함의 근원지를 ‘텔레비전’에서 찾는다 해도 결코 비약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말해 이는 텔레비전이 이성 중심, 시각 중심의 사고로 인해 잠들어버린 과거의 모든 감각을 부활시켰으며, 동시에 이렇게 새로이 부활한 감각은 더 이상 즉흥적으로 타올라 저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뜨거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인쇄 매체 시대에 인간의 감각은 냉철한 이성에 대비되는 정열적인 것이었던 데에 반해, 텔레비전 시대에 새롭게 부활한 여러 감각들의 조화, 즉 공감각은 이제 이성만큼이나 차가워졌다. 다름 아닌 모자이크의 그물눈인 쿨미디어, 텔레비전에 의해 말이다. 자연히 이러한 차가운 감각을 지닌 촉각적 존재인 텔레비전 세대들은 사회의 민주주의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어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참여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맥루언은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은 책을 하며 가장 게걸스럽게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전쟁은 모든 것의 예외에요, 강자가 모든 것을 차지해버리니까.’비릴리오가 어떤 의도로 이 전쟁과 영화라는 글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상당히 담담하려 노력했지만 일부부에서는 시니컬했고, 일부분에서는 약간 흥분한 듯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대량학살을 목표로 만들어진 이기(利器)를 위해 발달된 과학이 확장해준 팔다리-그것은 우리를 단 몇 시간만에 지구끝에서 지구끝으로 옮겨갈 수 있게 해주며 수십만광년씩 걸리는 곳의 환경조사 및 탐사를 대신해준다-로 편안히 살아가고 있다. 혹은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최소한 영화는 우리를 편안히 해주진 않으니)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보다 현란한 촬영 기술을, 보다 사실같은 CG를, 보다 실감나는 재현을 바란다. 하지만 바로 그 발전하고 있는 영화기술들이 사실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온 것인지는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과학은 분명히 인간을 보다 편안하게 편안하게 만들고 있다. 보다 편히 멋진 영화를 볼 수 있고, 보다 편히 정보 소식을 접할 수 있고, 보다 편히 병에서 나을 수 있고, 보다 편히 장소를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학으로 보다 편히 인간을 죽일 수 있고 인간 외 다른 생명들을 몰살시키고 있으며-실제로 하루에 1종꼴로 생물종들이 멸종되고 있다고 한다- 보다 편히 대량학살을 감행한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 똑같은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부시가 일으킨 1차 이라크전쟁에서 우리가 기억하는건 ‘패트리어트 미사일’ 뿐이고 2차 전쟁에서 매스컴에서 전쟁은 나쁘다며 참혹한 장면들을 비춰줄 때나 우리는 반전을 떠올린다. 그렇다고 딱히 슬퍼할 이유도, 양심의 죄책감을 느끼거나 비통해야할 이유도 없다. 당신은 인간. 이니까.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인가 지적 허세인가(1)1. 이 글에서 디노펠러거는 매트릭스가 포스트모더니즘을 관객들에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먼저, 극장판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모피어스의 대사에서마지막 견해를 피력하며 시스템을 거부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전하려했다는 워쇼스키 형제의 말은 그들이 자본주의의 심장부에 위치한 그 자체만으로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관객들이 '생각'을 하게 했다는 점에서 성공했다고 디노 펠러거는 말한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현실"의 뻔한 재현을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욕망을 거부하는 동시에 그들의 관점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는 테크놀러지에 대한 우리의 의존과 그것의 조작까지 생각하게 했다는 점이 그 이유인 것이다.2. 영화에서나 등장하던 가상현실 (혹은 사이버스페이스)은 어느덧 3차원 시뮬레이션 및 네트워크 기술 등의 발달에 의해서 우리의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다. 초기 부피가 너무 크고, 프로그램의 작동방법 또한 어려워 상용화 될 것 같지 않았던 컴퓨터는 이제 가장 유용한 도구로 자리잡았고 뿐만 아니라 가장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술에 대해 그것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뜻으로 '처음엔 사람이 술을 먹지만, 곧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엔 술이 사람을 마시게 된다'는 말이 있지만, 컴퓨터도 그에 예외가 아니라 할 것이다. 처음엔 몇몇 업무의 필요에 의해 사용하던 컴퓨터는 곧 대부분의프로세스의 기본이자, 기존의 개인단위의 업무에서 둘 이상의 사람간의 업무를 위해서 그리고 그 외의 목적으로 사람들간의 '관계' 속에 그 영역을 확대해갔으며(사이버 스페이스), 급기야 이제는 컴퓨터 없이는 무능할 뿐인 인간이 되는 것과 동시에 사이버 스페이스의 비중이 오프라인에서의 삶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커져가고 있고 이전의 오프라인-온라인 순의 정보 및 사회적 이슈의 파급의 방향은 온라인-오프라인 순의 역방향으로도 일어나고 있으며 그 진원지 또한 순수하게 온라인 상인 경우도 허다해졌다. 즉 시뮬라크르의 영향력이 막대해진 것이다. 이러한 예로 온라인 커뮤니티의 제1인자로 떠오른 '싸이월드'를 들 수 있겠다. 처음에 사이버상에서 나를 표현하고 대인관계를 위해 시작되었던 싸이월드는 이제 유행을넘어 실생활 속에 .
    인문/어학| 2007.04.07| 11페이지| 2,000원| 조회(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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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프리 쇼어의 작품
    제프리 쇼어의 작품 'The Legible City'는 관람객들이 '진짜' 자전거를 올라 탄 채 '가상'의 공간을 여행하도록이끈다.관객들이 머리 속에서나 떠올려 봄직한 대형스크린에 떠오르는 도시는 영어 단어와 문장을 조합해 만들어진 사이버스페이스(가상공간)이다.크리스타 소머러와 로랑 미뇨노가 함께 마든 'Interractive Plant Growing'은 관람객들을 창조자가 되게 한다. 식물의 잎은 사람의 손이 화면에닿기가 무섭게 쭉쭉 뻗어자란다.감히 손으로 건드리기가 겁나는 가시달린 선인장을 만졌더니, 갑자기 선인장이 죽어버린다. 식물을 만지는 부분이 같아도 만지는 사람에 따라, 다른모양, 다른 색깔로 변하는 인터랙티브 작품이다.루 쿠르셴은 관객들에게 가상인물 '마리'(Marie)대화를 하게한다. 컴퓨터를 통해 괸객이 메뉴에 나타난 질문은미디어아트는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인 대중매체를 미술에 도입한 것으로서 책이나 잡지·신문·만화·포스터·음반·사진·영화·라디오·텔레비전·비디오·컴퓨터 등 대중에의 파급효과가 큰 의사소통 수단의 형태를 빌려 제작된다예술과 기술의 갈등을 극복해야상호작용성 (interactivity) 은 비단 예술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의 화두로서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되고 이야기되고 있으며, 사용자가 창작의 일부로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을 구현한다는 것은 표현의 새 지평을 여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종종 서로 다른 두 분야가 결합되는 데서 오는 충돌과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이 창작 활동의 포기라는 결과, 혹은 주어진 하드웨어에 표현의 자유를 제한시키고 마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이러한 예술과 기술의 갈등, 특히 기술의 한계에 의해 표현이 좌절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류 발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예술가들은 특유의 개념을 초월하는 사고로 새로운 필요와 응용 형태를 창조해 왔으며, 그러한 예술의 리드가 기술 발전을 주도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례로 제프리 쇼 (Jeffery Shaw)의상작품(The Karlsruhe Moviemap/1991)이 있다. 관객이 여행하는 이 도시는 가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실제 독일의 칼스루에(Karlsruhe)시의 전철운행노선을 따라 그대로 촬영된 것으로서 조종칸에 선 관객은 마치 전철의 운전수처럼 여러 노선을 마음대로 다니며 도시의 풍경을 속도감과 함께 경험할 수 있다.그 옆으로 쉐인 쿠퍼(Shane Cooper)가 설치한 작품(Parasight/2001)은 카메라 앞을 지나가거나 혹은 여러가지 제스츄어를 취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계속해서 영상으로 확대해서 보여주다가 또 이미 지나간 다른 관객들의 모습을 회상하듯 보여주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한다.이 곳을 통과하면 약간은 불쾌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궤짝 속의 한 얼굴을 만나게 된다. 토니 아우어슬러(Tony Oursler)의 '헬로우(Hello?/1996/사진3)'라는 이 작품은 궤짝 속의 인형에 영사기가 얼굴을 투사하고 있는데 이 얼굴은 혼자 무언가를 계속 지껄이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앞에서 약간은 머슥해하거나 떫떠름한 표정을 짓고 돌아선다.여기서 돌아서면 전시장 가운데 어두운 방이 하나 세워져 있다. 그 안에는 책상과 전등이 있고 창문도 보인다. 책상 위에는 영상으로 비춰지는 가상의 책 한 권이 놓여 있는데 호기심 가득한 관객이 펜으로 움직일 때마다 책장이 넘겨지거나 책 속의 그림들이 변하고 방구석에 있는 가상의 문이 열리면서 조그만 아이가 들어왔다 나가기도 한다. 책 속의 언어들이 일본어라는 점으로 이 작품(Beyond Pages/1995)의 작가가 일본인(Masaki Fujihata)임을 짐작할 수 있다.그 방을 돌아나오면 이번엔 한 여자의 얼굴 정면(Alba d'Urbana 작가자신)이 화면에 보이는 작품 '터치 미(Touch me/1995)' 앞에 이른다. 말 그대로 관객들은 이 여자의 얼굴 여기저기를 손으로 만지고 문지르는데 어느덧 그녀의 눈코입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관객의 눈코입이 반사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이제 전시장을 권력층에 의해 독점되는 매체의 속성을 고발하였다. 즉, 그 동안 대중매체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아왔던 미술이 미디어아트를 통해 이제는 매스미디어에 반응하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 등장한 미디어아트 작가들은 대량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소비사회를 긍정적으로 반영한 팝아트와는 달리 대중매체가 지닌 부정적인 측면을 밝히거나 미디어에 의한 정보조작 등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샘(Fountain) 카페’라는 이름의 미술단체는 1971년 우편·신문·텔레비전 등의 전달매체를 통해 일반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미디어아트 작업을 하였다. 즉, 위조된 사실을 진짜처럼 가장해 일반대중에게 우편으로 전달했는데, 문자를 표현수단으로 한 점에서 개념미술의 성격도 띠었고 우편을 이용함으로써 메일아트의 성격도 함께 지녔다. 한편, 제니 홀저는 컴퓨터로 조절되는 전광판을 이용하여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상투적인 메시지들과 원색의 강렬한 빛을 통해 공공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하였다.멀티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예술1)미디어의 혁명과 문화변동전지구적 문화변동의 중심에 전자매체 혹은 멀티미디어의 보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기본전제하에 새로운 예술과 문화의 흐름을 살펴보도록 한다. 단 미디어의 기본개념이나 20세기 초 이후 테크놀로지 예술의 역사 등, 원론적 부분에 대해서는 기술을 생략하고 대신 최근의 중심 이슈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일단 멀티미디어 예술을 논하기 전에 그 이해를 위한 기초사항으로서 멀티미디터문화 전반의 특징을 몇가지 열거해보자면 우선 "수평적인 네트워크적 사회로의 이동"이다. 이것은 단지 정보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수평적 네트워크화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수평적 네트워크화는 종국에는 "개인의 승리"라는 결과로서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바로 새로운 매체, 즉 뉴미디어(new media)가 있다. '새로운 매체'란 것이 지칭하는 구체적 항목들을 여기서 상술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그것은 정확히 한정된 것이 아니라 포괄적 이질적 기호들 사이에 무한한 연결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그리하여 일정한 고정점이 없이 무한히 위치를 옮겨다니는 소위 '방랑자적(nomade) 생태성'이 지배하리라는 관찰이다.2)컴퓨터 예술의 흐름컴퓨터예술이 가져온 가장 중요한 특징은 기존 아방가르드 미술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중요한 특징인 '참여성'을 새로이 갱신하는 것이다. 소위 '상호작용성' 혹은 '쌍방향'이라고 하는 인터액티브한 측면을 말하는 것으로서, 카트린 이캄(catherine ikam)과 루이 플레리(louis fleri)가 공동으로 제작한 상호작용적 설치 작품인 는 1992년 몬트리올에서 열린 에서 출품된 작품이다. 어두운 방에는 대형 비디오 스크린이 있으며, 이 스크린 위에는 하나의 '얼굴'(컴퓨터로 합성된)이 투사된다. 방의 가운데에는 줄끝이 달린 센서가 있고, 관객은 이 센서를 사용하여 이 '타자'와 상호 작용할 수 있다. 그 센서를 사용하기에 따라, 얼굴은 커지거나 작아지며, 또는 얼굴을 돌리고, 숙이고, 변형되기도 한다. 즉 그것은 '살려고' 시도한다. 이 설치작품의 특징은 바로 관객으로 하여금 그 얼굴을 직접적으로, 원하는 대로 콘트롤하지 못하게 하는, 프로그래밍의 우발적 측면이다. 사실 관객은(혹은 대화자는) 종종 그러한 얼굴의 변화에 대답하려고 시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다.이러한 상호작용은 현대미술 전체를 관류해온 '예술의 참여적 측면'의 연장으로 해석되며, 전자매체예술 전반의 중대한 미학적 측면이 되고 있다. 그밖에도 이러한 상호작용의 예는 무수히 많다. 힐라리 캐펀(Hillary Kapan)의 경우처럼 관객이 미리 프로그래밍된 컴퓨터상에서 마우스를 통해 스스로 이미지를 변형시킬 수 있는 작업, 가상현실의 경우로서, 니콜 스텐거(Nicole Stenger)의 경우처럼 입체영상과 데이터 장갑(dataglove)을 수단으로 관객이 완전한 가상적 공간 속에서 가상적 정원들을 방문해 나가기, 컴퓨터 모니터에 투사되고 있는 가상적 민들레꽃에 관객이 입김을 불면 그 꽃가루가 퍼져 날아가해 나온 결과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Mutator'라고 하는 '예술적 진화프로그램'을 통해, 매순간 어떤 요소가 생존하고 어떤 요소가 제거될 것인지 결정된다. 이러한 진화와 변형의 과정을 통해 거의 무한한 수의 조각적 존재들이 합성되어 나간다.(…)그것은 일종의 컴퓨터적 진화 과정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그 다음으로, 기계적 변형이란 것을 신체에 직접 실행하는, 즉 '기계와 신체의 접합'을 시도하는 소위 '사이보그 작가'가 있다. 작가 스텔라크 (Stelarc)는 사이보근 기술을 소재로 하여 사이보그적 체험과 전자매체 전반의 생태성을 더욱 밀접히 가시화한 경우로서 참조될 만하다. 스텔라크가 행하는 것은 일종의 보철(prosthesis)의 미학으로서, 그의 행위들은 전선과 센서 등 매우 복잡한 첨단 하드웨어들로 가득 차 있다. 몸을 증폭시키고, '레이저 눈'과 '제 3의 팔' , '자동 팔'을 만드는 등, 그의 몸은 인간과 기계의 혼성적 존재로 갱신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의 단말기적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고 하는 은유를 시각화한다. 존 셜리(John Shirlry)는 스텔라크에 대해, 그의 작업이 "사이버펑크 적인 후기인간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며, 공포와 영광으로 결합된 키메라이며, '전(前)인간성'과 이제 태어나려 투쟁하는 내일의 인간성의 종합이다"라고 규정한다. 스텔라크의 사이보그적 퍼포먼스 중에는 플라스마가 들어 있는 유리관으로 가득 찬 설치물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있다. 이 플라스마는 그의 몸에서 발산되는 생체신호들에 응답하여 방전되고 명멸한다. 일종의 새장과 같은 구조물이 그의 어깨에 고정되며 이것이 아르곤 레이저 파동을 발산하는데, 그것은 스텔라크의 몸에 붙은 심장박동기(electrocardiograph)의 신호, 눈의 깜빡임, 얼굴 근육의 변형, 머리와 운동 등의 신호에 일치하는 것이다. 작품 에서는 자신의 주변에 설치된 비디오 카메라들이 행위를 촬영하고, 그 이미지들이 여러 개로 분리된 큰 스크린에 투사된다. 그 이미지들다.
    인문/어학| 2007.04.07| 11페이지| 3,000원| 조회(1,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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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인터렉티브 아트
    [매체와 예술 보고서 - 소감문]예술, 그 본질에 대하여‘예술’이라고 부르는 단어의 어원은 'techne'라고 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왔다. 이것은 자기표현과 창작력을 뜻했다. 이것을 로마 사람들은 'ars'라는 단어로 번역해 사용했는데 현재 쓰이고 있는 영어의 'art'는 여기서 유래한다. 한편 'techne'로부터 나온 또 다른 하나의 단어는 'technique'나 'technology'다. art와 technology는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명의 초기에는 창작품을 만들어 내는 행위인 예술과 그것을 만들어 내는 방법인 기술이 구분되지 않았고 모두 창조적 행위와 관련된 표현이었다.약 15세기 경부터 ‘Art’와 ‘technology’라는 그 의미가 분리되어 사용되기 시작해 현재는 전혀 별개의 상반되는 분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근세 이후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그 간격은 커지고 전혀 다른 장르로 인식됐다. 하지만 이렇게 분리되어 사용되고 있는 예술과 과학기술이 하나의 줄기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그들이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말해준다.예술은 우리가 세계를 시각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수단으로서, 과학기술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개념들로부터 우리가 상상해 온 것들을 현실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즉, 예술의 변화는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법에 변화를 가져오고, 과학이 자연을 바라보는 방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반적으로 예술이 과학보다 10년 정도를 앞서간다고 하는데 이렇게 볼 때 예술과 과학은 분리된 개념에서 벗어나 하나의 흐름을 타고 합쳐져야 할 것이다.예술이 표현을 위한 수단과 재료로서 과학기술을 이용한 반면, 예술은 과학기술에 새로운 해석을 제공하거나 과학적 발견의 동기를 부여했다. 큐비즘(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모습들을 한 면에 중첩해 그리는 기법)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빛의 해석에 대한 화가들의 호기심과 탐구정신은 광학의 발전을 이끌었으며 광학과 색채 이론의 발달은 인상주의 예술을 잉태했현으로 출력하며 이러한 프로세스가 연속적으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환경을 인지하고 이에 반응하는 지능적인 시스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입력 정보로부터 관객의 감정이나 감성 상태를 측정하여 이를 예술적 표현으로 출력하는 경우도 있다.멀티미디어 시대의 예술“예술창조”는 예술가의 ‘천재성’에서 나오는 것인가? 예술가의 환경-매체-기술적 노력의 결과인가? 아티산과 아티스트의 차이 즉, 전자는 기술이 예술적 능력보다 뛰어난 장인이고 후자는 기술력보다는 예술적 천재성이 뛰어난 예술가인 것이다. 예술을 함에 있어 천재성과 그 주위를 둘러싼 환경매체 등 모든 것이 톱니바퀴 굴러가듯이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천재적이며 예술적 상상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그것을 밖으로 표출해낼 기술이 없다면 그것은 공상에 일뿐이다. 화가 머릿속의 그림은 ‘머릿속의 그림’일 뿐이다. 종이에 그려지지 않은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 변화에 따라 표현양식은 주위 환경과 기술력에 의해 변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뛰어난 기술가의 창조된 부산물을 예술이라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엔지니어의 부산물이 뿐이다. 그 이유는 예술가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런 형식의 예술은 기술력이 예술을 표현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이 문제는 어쩌면 뒤샹이 오브제를 차용한 그 시점부터 발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술가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보다 효과적으로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밖으로 나타낼 수 있는 도구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인터렉티브 아트는 발전된 기술문명을 자신의 도구로 삼았다. 화가가 붓과 종이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다.(예술작품의 가장 기초적인 표현도구인 붓과 종이도 기술의 부산물이다.) 테크놀로지 기술력을 이용해 자신의 주관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노력하는 예술가이다.지금 우리나라에선 인터넷이란 공간을 이용한 공모전이나,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미술흐름이 미술계에 등장하고 있다. 발전하는 디지털 문명을 예술세계에 접합시킨다브 아트의 핵심은 감상자가 처한 감상공간에서 의도된 작가의 메시지를 어떻게 실시간으로 구현해 내느냐에 있다. 그러므로 작가들이 가진 인터렉티브한 의지들은 사실 기존의 미술적 표현도구로서의 한계성을 드러내므로, 진정한 의미의 인터렉티브 아트의 구현은 기술적 형식미를 갖출 때 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제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통신예술과 뉴미디어와 컴퓨터 기술의 접목인 가상현실의 인터렉티브특성을 중심으로 접목예술의 형태를 취하도록 자극하고 있다.그러므로 통신예수은 전화, 컴퓨터, 팩스, 이메일, 텔레비전,스캔과 같이 쌍방향 교률르 가능케 하는 기계들을 기반으로 구현된다. 그리고 ISDN회선에 의한 원거리간의 작업역시 인터렉티브 예술작품의 범주로 볼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기존 예술콘테츠를 디지털로 변화시켜 제시한 웹 아트나 사이버 아트는 아직 인테렉티브적인 형식미를 완전히 갖추지는 못하고 있지만, 새로운 유형의 인터렉티브 아트롤 발전될 잠재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인터넷 망을 통한 예술적 형식들은 예술작품으로 접근이 용이하지 못한 관객의 동선을 갤러리로 유도할뿐 아니라 컴퓨터의 멀티미디어 기술을 기반으로 작가의 메시지 그리고 작품의 의미를 보다 실감있게 제시할수 있다. 또한 감상자에 으한 변용의 영역을 기술적으로 제시할수 있는 표현기반을 가진다.그리고 쌍방향 네트워크기술을 이용하여 영화 제작자와 관객의 거리감을 좁혀가는 인터렉티브 영화와 같은 방식은 인터렉티브 아크의 개념을 정립하는데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잠시 텔레커뮤티케이션 아트의 예를 살펴보자. 매년 미국에서 열리는 에선 많은 전자아트를 선보이는데 특히 92년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의 ECI는 이벤트 형식의 ISDN네트워크회선으로 독일 카셀의 와 프랑스의전시장을 시카고의 사이그랩92전시장과 연결, 시각언어를 주고 받기도 했다.그들은 독일에서 행해졌던 퍼포먼스를 비디오로 담아 압축된 디지털데이터로 다른곳으로 전송하였고 각 지역의 화가들끼리 네트워크 환겨의 모니터를 통과 기계의 상호관계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인간에게 가상의 리얼리티를 제공하는 공간, 혹은 그 장치를 우리는 ‘가상현실’또는 ‘인공현실감’이라고 부른다. 강상현실 테크놀러지는 극도의 복수매체로서 인간과 인간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에새로운 장을 열고 잇다. 또한 텔레버츄얼리티는 비디오 컨퍼런스의 확장된 개념으로 컴퓨터로 만들어진 스튜디오에서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눌수있게 만든다.신기술과 신예술은 서로 상호소통적관계로 묶어야 하며,정보소통기술이나 데스크탑,가상현실 영상시스템같은것들의 발달은 점차적으로 현실공간과 같은 리얼리티의 구현을 실제로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이런것들일 인터렉티브 아트의 나아갈길에 참고되어야 한다.인간의 감각은 눈앞의 현상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합리적일 때 그것이 리얼리티라고 착각을 한다. 이 합성리얼리티는 의식 속에서 가상적으로 재구성하는 뇌의 작용에 의한 현실감이다.가상현실의 개념에 입각하는 멀티미디어 아트의 한 사례를 보자. 1996년 6월 14일부터 9월 15일까지 뉴욕의 구겐하임 소호분관에서 개최된 전시 에서의 제프리쇼는 가상현실 프로젝트를 보여주었다. 쇼의 가상현실이미지는 자전거를 타고 맨하탄을 달린다. 그의 작품에서 자전거의 핸들과 페달은 실리콘 그랙픽사의 워크스테이션에 연결되어 그것이 가상의 도시 안에서 관람자의 위치를 계산한다. 이는 관람자로 하여금 여행의 경로와 속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요소를 가미시켜,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투영된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조율을 한다는 것이다. 자전거 앞에 있는 소형모니터는 도시의 지도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 안의 커서는 관람자의 현재 위치를 나타낸다. 이처럼 비물질적인 경험을 통해 역사적 장소로 가는 체험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가상현실의 현실감을 느끼게 해주는 전시회였다이제 시뮤레이션의 공간 체험을 직접 자신의 체험으로 한 가상공간 구현 시스템은 관람자의 관람행위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연장시켜 몰입감을 제공한다. 이로써 자신의 실제 체험으로 인지되게 해 예술가가 상상하는 메시지의 주관 물론 관람객이 작품에 개입되는 작품은 많다. 그러나 프로그램된 대로 맹목적으로 따라 움직이는 참여는 쌍방간의 교감이라고 볼수없기 때문에 인터렉티브 아트라 할 수는 없다.1995년 비디오 미술가 슈레아 장은 인터렉티브 미술전 을 열었는데,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진 이 전시는 미술뿐만 아니라 인터렉티브 소설도 함께 이루어지고 잇다.실존인물이었던 ‘브랜든’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사이버공간에서 새롭게 만들어 가는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는 화면이 뜨고 그 위로 마우스를 움직이면 마우스가 가는 부분마다 작은 그림들이 떠오른다.25개의 작은 그림이 다뜨고 난후, 다시 그위로 마우스가 움직이면 그움직임을 따라 그림이 바뀐다. 그뿐만 아니라 정해진 사이즈와 이미지 형식으로 입력하면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삽입시킬수 있어 방문자와의 인터렉티브를 실현했다.인터렉티브 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제프리 쇼를 들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는 글자로 만들어진 터널 안에 인형이 서 잇고, 관객의 움직임을 따라 그 글자 터널속의 인형이 움직이는 작품이다.디지털 시대의 미술컴퓨터와 통신이 결합된 인터넷은 개인과 개인, 집단가 집단이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자유로이 자기공간을 만들어 가는 인류의 커뮤니케이션 매체, 정보화의 첨단기지이다.생명체처럼 끊임없이 자기번식을 하고 국가도 마음대로 통제할수 없는 무한의 창조공간인 인터넷은 정보공유정신을 바탕으로 작품의 생산과 소통의 경게를 허물어 작가와 관람자가 동시에 상호소통할수 있게 만든다.디지털 미술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예술을 폭넓게 대중화시켰던 것 이상으로 예술을 대중화시킨다. 강상현실,로보틱스 아티스트들은 전통적인 미술은 이제 구태의연할뿐이며 대중매체 및 테크놀러지예술이 현대인의 사상과 철학을 가장 잘 표현할수 있는 예술이라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들보다 더 강력하게 예술의 대중화를 실천하고 있다. 예컨대 컴퓨터로 만들어진 인터넷에 띄워진 시각 이미지들은 무한 복제의 속성르 발휘해 가장 대중적인 예술로 소통된다.이에 따라 생산
    인문/어학| 2007.04.07| 10페이지| 2,000원| 조회(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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