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가지려다간 다 잃는다""부도덕한 재산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 재물에 의해 파멸을 맞는다."이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3년 전 한국일보 연재였다. 신문 연재의 특성상 간혹 못 읽고 넘어가는 일도 있어 내용 연결이 완벽히 되지는 않았지만 인간에 대한 배려 없이 돈에만 혈안이 된 재벌들은 반드시 패망할 것이라는 경고를 담은 소설임은 그때도 쉬이 알 수 있었다.다섯 권 분량을 읽는 일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쓴다는 것은 어릴 때 느꼈던 막막함을 또 다시 느끼게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화장실(?)에서 재미 삼아 보았던 신문 연재 소설이라는 점, 가끔 따분한 한시들을 제외하고는 흥밋거리가 가득하다는 점등이 다른 과제 대신 “상도”의 독후감을 택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자동차 전문기업인 기평그룹의 총수 김기섭 회장이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질주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고가 발생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죽은 김 회장의 지갑에서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이란 글귀가 적힌 쪽지가 발견된다.글귀의 뜻은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즉 재물에 대한 과욕을 버리고 정직한 상도덕을 가지라는 말이다.평소 개인적 관계를 전혀 만들지 않던 김회장에게 있었던 유일한 사람인 ‘나’에게 문장의 출처를 밝혀달라는 회사측의 요청이 들어오고 그 문장을 쓴 사람이 조선 중기의 무역왕 임상옥임을 알아낸 다음 그의 생애를 추적해 나간다.임상옥은 19세기 상인이 사농공상의 맨 아래 자리에서 천대받던 시대에 태어나 본받을 만한 '상도'(商道)를 이루었던 인물... 평안도 의주 지방에서 비천한 상인으로 태어난 그는 불심으로 뜻을 세우고, 당대의 '인삼왕'으로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친다. 그러나 중국에서 무역을 하던 그는 중국 여인 장미령이 유곽에 팔려나온 첫날, 우연히도 그녀를 구해주고 의주 상계(商界)에서 파문당하는 재기불능의 위기에 빠진다. 그 후 임상옥은 속세를 떠나 스님이 되려하지만...그 당시 은혜를 입은 장미령이 고관대작의 부인이 되어 나타나 그를 다시 상인으로 복귀시킨다.그가 잠시 상계를 떠나 절에 있을 당시 장미령의 하수인인 박종일이란 사람이 찾아왔다. 그의 적절한 충고에 따라 임상옥이 하산할 때 스승인 석숭 스님이 내린 세 가지 활구가 있었다. 위기때마다 적절히 사용한 이 활구의 첫째 구는 죽을 사(死), 스스로 죽을 각오를 해야 위기를 물리칠 수 있다. 둘째 구는 솥 정(鼎), 부와 권력과 명예는 솥의 세 발처럼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활구는 계영배(戒盈盃)라는 술잔, 계영배는 가득 채우면 잔 속의 술이 사라져버리고 오직 팔 할 정도 채워야 온전한 술잔으로, 지나친 욕심을 자제하라는 경구이다.첫번째로는 베이징 상인들의 인삼불매동맹을 스스로 인삼을 태우는 방법으로 물리칠 수 있었으며, 두 번째는 풍운아 홍경래의 유혹을 '솥 정' 자의 비의를 타파함으로써 그 혁명의 와중에도 온전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가득 채우면 다 없어져 버리고 오직 팔 할 쯤 채워야만 온전한 '계영배'의 비의를 통해 스스로 만족하는 자족이야말로 최고의 상도임을 깨달은 임상옥은 사랑하는 여인, 친구의 딸 송이를 떠나보내고 스스로 물러나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당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닭 한 마리를 솔개가 채워 가는 모습을 본 순간, 자신의 명운이 다하였음을 직감한 임상옥은 자신에게 빚진 상인들을 모두 불러 일일이 빚을 탕감해주는 한편 오히려 금 덩어리까지 들려 보내는 것이 아닌가... 이를 못마땅히 여긴 개성상인 박종일이 그 이유를 따져 묻자 임상옥은 이렇게 말한다."어차피 빚이란 것도 물에 불과한 것.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었다고 해서 그것이 어찌 받을 빚이요, 갚을 빚이라 하겠는가. 또한 빚을 탕감하고 상인들에게 금 덩어리를 들려보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나 또한 상인으로서 성공을 거둘 수 가 없었을 것이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 물건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에 불과한 일이다."박종일은 임상옥의 명령으로 한양에 있는 봉은사로 출장을 떠난다. 그곳에서 추사 김정희를 만나 임상옥이 보낸 산삼을 전하고 추사로부터 상업지도(商業之道)란 그림을 받아오게 된다.한편 임상옥의 사랑하는 여인 송이는 천주교인이 되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대세를 주며 천주학을 전파하다가 포졸들에게 붙잡혀 황새바위에서 돌에 맞아 죽는 형벌로 처형당한다. 그 이후 임상옥도 건강이 급속도로 쇠약해지고 박종일에게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끝으로 ‘나’는 김기섭 회장의 호를 딴 의 개관식에 참석, 추사가 임상옥을 위해 쓴 발문의 내용을 천천히 훈독한다. 그리고 지난 일년동안 우연치 않게 뛰어들어 임상옥의 생애를 추적해 오고 있던 일련의 작업이 추사의 발문으로 대단원의 종지부를 찍는다.임상옥..조선 최대의 거상이었던 그를 보며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참 많은 것을 느낀다. 경영학과 학생으로서 많은 국내외 기업들의 경영사례들을 살펴 볼 기회가 많은 나로서는 임상옥의 상업지도가 더욱더 특별하게 느껴짐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꼭 작가 최인호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미 수많은 재벌들이 확장과 자기 성취욕에 눈이 멀어 맹목적이고 부도덕한 상행위를 일삼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져갔다. 우리가 이고 나가기에 너무나 버거운 파장들을 남겨두고서...세상에는 많은 상인들이 있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가치관과 기업철학을 가지고 자신의 기업을 꾸려 나가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윤리의식이나 남을 생각하는 동정심 등은 귀찮은 문제로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많은 기업인들이 남들 앞에서 솔선수범하기보다는 많은 부정부패를 끌어안고 사는 경우가 많은 게 요즘의 실정이다. 그러나 조선 최대의 거부 임상옥의 삶의 모습을 보면 요즘의 재벌 기업인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는 상업에도 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상업을 발전시킴과 동시에 자신만의 상업의 도를 만들어나가고 그렇게 만든 상도를 자신이 죽을 때까지 지키며 살아간다. 어려울수록 돌아갈 줄 알고 정도를 고집하는 임상옥의 배포에 대리만족을 느낀다.
나는 이 글을 오래 전부터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끝까지 읽은 적이 없었다. 1900년대 초반의 웬만한 소설은 다 즐겨 읽는 나였지만 왠지 이 책은 그리 흥미가 가지 않았다.읽어야 할 책 중에서도 굳이 ‘태평천하’와 ‘삼대’를 고른 것은 장편은 잘 읽지 않으려 하는 나의 못된 습관을 길들이기 위함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고 기꺼이 단숨에 읽어버린 이 책은 부자, 윤 직원 영감 가문의 무지한 역사의식과, 그들 가문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며 3대를 등장시켜 세대간의 차이를 시대의 변화와 연관지어 나타내고 있다.표현상의 특질을 보면 판소리의 수법을 이용한 것이 우선 눈에 띈다. 경어체를 빌려 독자와 가까운 위치에서 작중 인물을 조롱하고 있다. 작가는 특히 윤 직원 영감의 말, 행동, 생각 등을 거의 모두 풍자적으로 썼다. 또한 독자와 작중 인물의 중간에 서서 작중 인물을 평하면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 점은 판소리사설에서의 창자의 역할과 같다.일꾼이나 하인은 상전을 섬기기만 하고 대가(對價)는 바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윤 직원 영감은 인력거를 타고 와서는 그 삯을 깎겠다고 한다. 또한, 그는 나이 어린 기생을 데리고 다니면서도 아무것도 주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윤 직원 영감은 자기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푼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소작인에게 땅을 붙여 먹고 살게 하는 것도 무슨 큰 자선 사업이나 되는 것처럼 여긴다. 이만큼 돈을 번 것은 자신의 치재 수단이 좋았고 시운이 따라 가능했던 것이지 절대로 남의 것을 뺏은 것은 아니라는 탄탄한 소신이 그에게 내장되어 있는 탓이다. 시골 치안의 허술함과 후손 교육을 기회삼아 서울로 올라온 윤직원 영감에겐 지금이야말로 태평천하 이다. 든든한 경찰이 있어 도둑 걱정 없고 자신의 고리대금업은 날로 성업이 되고 있으니 이런 좋은 세상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니만큼 현재의 그에게는 사회주의 운동 운운하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경멸스럽고 두려운 인물들이다.그런 식으로 부(富)를 축적한 윤 직원 영감에게는 쓰라린 기억이 있다. 출처가 불확실한 돈을 모았던 그의 아버지가 구한말(舊韓末) 시절에 화적들의 습격을 받아서 죽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일본인이 들어와 불한당을 막아 주고 '천하 태평'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에 윤 직원은 진심으로 일본인들을 고맙게 생각한다. 돈을 버는 데는 무엇보다도 권력과의 결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윤 직원 영감은 경찰서 무도장을 짓는 데 아낌없이 기부한 것이다.그러나 현실적 위협이 없으니 그것도 피안의 불일 따름, 윤직원 영감에게 절박한 실적 위협이 없으니 그것도 피안의 불일 따름, 윤직원 영감에게 절박한 근심은 없다. 단지 남은 소원이 있다면 그의 두 손자 - 종수와 종학이 각각 하나는 군수, 하나는 경찰서장이 되어 집안에 지위와 명성을 보태어주는 것뿐이다. 돈이 있으니만큼 이러한 자리욕심이 생긴 터인데, 사실 직원이라는 그의 직함도 시골에 있을 무렵, 향교의 수장자리를 돈주고 사들인 것이다.그러나 아들과 손자는 윤 직원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래서 집안의 분란은 끊이지 않는다. 아들 '창식'은 집을 돌보지 않고 노름으로 밤을 새며 가산만 탕진하고 있고, 군수를 시키려던 손자 '종수'는 아버지의 첩 '옥화'와 정을 통하는 불륜을 저지른다. 며느리나 손자며느리도 고분고분하지가 않고 딸마저 시댁에서 소박맞고 와서 함께 살고 있다. 또 윤직원 영감은 회춘을 하려고 여러 차례 동기를 바꾸어 가며 동접(逆)을 기도하나, 이번에는 열다섯짜리 동기 춘심이년이 애간장을 태우게 한다. 실은 춘심이는 윤직원의 증손자 경손이와 누이 맞아 연애를 즐기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속에서 윤직원 영감은 고압적으로 집안 분위기를 억누르고 있던 중...... 자신이 가장 증오하고 두려워 해 마지않는 사회주의에, 가장 큰 희망이요 보람이었던 경찰서장감 종학이 연루되었다는 것을 안 윤직원은 격노에 비틀거리며 소리지른다. 왜 태평천하에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