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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D의 종류와특징활용 및 이용효과분석 평가A+최고예요
    CAD의 종류와 특징, 활용 및 이용효과 분석▶ 목 차 ◀Ⅰ서론Ⅱ본론1. CAD의 개념1-1. CAD의 정의1-2. CAD의 활용1-3. CAD의 적용 단계1) 컴퓨터에 의한 제도(drafting)2) 컴퓨터에 의한 설계(design3) 컴퓨터에 의한 해석(engineering)2. CAD의 역사1) MIT 서덜랜드로부터 CAD가 시작2) 항공사와 자동차 회사가 CAD 프로그램 상용화의 주인공3) 국내는 자동차 업계가 CAD/CAM 도입의 선지자4) 80년대 국내 건설분야에서의 CAD 도입 시작5) 미국 이외 지역에서 개발된 CAD 프로그램들6) 우리 나라에서는3. CAD의 종류3-1. 하드웨어기준1) 범용 캐드2) 턴키 캐드3) 워크스테이션 CAD4) 퍼스날컴퓨터 CAD3-2. 기능 기준1) 제도 CAD시스템2) 3차원 CAD 시스템3) 데이터의 교환3-3. 분야별 적용 CAD 시스템1) 범용 CAD2) AEC3) EDA4) GIS5) CNS/FMS6) MDA7) CAM8) 서드파티9) CGP10) PACS11) 변형 CAD12) 특수목적 CAD4. CAD의 응용분야4-1. CAD의 활용영역Ⅲ결론1 CAD의 이용효과 및 특징1) 품질의 향상2) 생산의 향상3) 출력의 다양성4) 보관 및 보안성5) 정보화6) 설계의 표준화7) 데이터 베이스 구축Ⅳ참고문헌Ⅰ 서 론동시공학(Concurrent Engineering), Rapid Prototyping/Rapid Tooling, Re-engineering Knowledge-based Engineering (KBE), Computer Integrated Manufacturing (CIM), Flexible Manufacturing System (FMS), Virtual prototying, Value Engineering (VE) Design for Assembly (DFA) or Design for Service (DFS), Computer-Aided Engineering (CAE)등 관련 주제가 많이 있다.CAD에치시키는데 반해, 컴퓨터 그래픽에서 캔버스의 역할을 하는 모니터의 화면은 간격이 일정한 픽셀로 이루어져 있어 정확한 사이즈로 분할이 되어 있기 때문인데, 모니터에 곡선을 그릴 경우 언뜻 보면 부드러운 곡선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굴곡이 지는 거친 점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간혹 그림을 확대하거나 세밀한 표현을 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지만 컴퓨터 화면의 해상도는 하드웨어, 즉 그래픽 카드와 모니터의 발전속도에 의해 원하는 만큼 높일 수 있다.정확성은 그려지는 형상의 위치나 크기 등에서 뿐만이 아니라 채색되는 색깔에서도 나타나는데 실제 그림은 한 번 물감을 섞으면 또 다시 똑같은 색상을 만들어 내는 일은 거의 없지만 컴퓨터는 물감을 섞어서 거의 무한한 색깔을 만들어 내면서도, 항상 처음에 섞도록 지정한 색상이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사용자는 자신이 혼합하여 지정해 놓은 색상은 물론 명도와 채도까지도 지정하여 저장해 두고 원하는 만큼 지속적으로 똑같이 반복하여 사용할 수 있음은 물론 이러한 팔레트의 혼합 역시 실제 물감을 이용할 때와 비교하여 전혀 손색이 없이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으며, 화면의 저장과 막강한 수정 기능을 이용하여 언제라도 화면상의 실수를 고치거나 필요한 부분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 영상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디스켓이 손상되지 않는 한 그래픽으로 그려진 화면은 수시로 모니터에 불러들일 수 있으며, 막강한 수정 기능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수정, 편집할 수 있으므로 화면의 구성이나 색상의 선택 등을 위한 시행착오를 얼마든지 반복하여도 다시 그릴 수 있다.이로 인해 그래픽 화상은 보다 정밀하고 풍부한 표현을 보다 손쉽게 구현할 수 있는 장점을 갖게 됩니다. 한편으로 이러한 저장성은 제작한 화면의 보존에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데 컴퓨터 그래픽에서의 화면은 사용자가 그림을 화면에 그릴 때 느끼는 것과는 달리 0과 1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전기신호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보관되기 때문에 손으로수 있는 컴퓨터 화면과 라이트 펜을 이용, 컴퓨터와 대화를 하며 설계를 한다는 것이다. 즉 대화식 컴퓨터 그래픽스의 개념을 개발, 컴퓨터에 응용한 것이 최초의 캐드이다.DAC-1은 GM과 IBM사가 개발한 CAD 프로그램으로 자동차 전면 유리 설계에 최초로 사용되었으며, 후에 사용화가 되기도 했다. DAC-1은 실용화라는 측면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그림 SEQ 그림* ARABIC3) 항공기의 CAD사용(catia v5)2) 항공사와 자동차 회사가 CAD 프로그램 상용화의 주인공1967년-록히드사가 항공기 제조용으로서 CADAM(Computer graphics Augment Design And Manufacturing)을 개발.1973년-턴키시스템의 원조라 부르는 ADAM 시스템 발표.상용화된 프로그램 중 처음 개발된 시스템은 록히드사가 개발한 CADAM (Computer Graphics Augmented Disign and Manufacturing) 이라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1965년 록히드사가 개발하기 시작하였으며, IBM의 그래픽 디스풀레이 단말을 접속한 최초의 본격적인 CAD/CAM 시스템이다. CAD/CAM은 1967년 실용화된 이래 여러 가지 개량이 이루어졌지만, 일본 IBM이 전체적인 개발과 영업을 관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스템들은 모두 제조업체가 자체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개발한 시스템이지만 1960년대 말부터 시판을 목적으로 하는 전문 메이커에서 개발된 CAD/CAM 시스템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면 1968년에 발표된 AGS, 1969년의 컴퓨터비전사의 CADDS등이 그것이다. AGS는 2차원, CADDS는 3차원의 도형을 취습하는 것이었으며 컴퓨터는 미니컴퓨터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이른바 스탠드 얼론 방식이었다.3) 국내는 자동차 업계가 CAD/CAM 도입의 선지자한국은 1970년대에 들어와 미니컴퓨터를 호스트로 한 단독형에서 턴키 베이스의 CAD/CAM 시스템이 도입되면서부터 급격하게 확산되었다.국내의 CAD/CAM 산 사용 중이던 CAD/CAM 시스템을 유클리드에 통합시킴으로서 3차원 종합 CAD/CAM/CAE 시스템으로 완성되었다. 이외에 영국에서 개발된 MOSS 시스템에서 개발한 MOSS, 캠브리지 연구소에서 개발된 Eagle Point 등이 있으며, 일본에서는 CAM 관련 프로그램이 전세계 시장에서 활약을 하고 있다.그림 6) Catia v5에서의 모델링그림5) Pro/E에서의 모델링6) 우리 나라에서는우리나라에서 개발되어진 CAD 프로그램의 개발역사를 살펴보면 실로 미천하기 짝이 없다. 1980년대 본격적으로 CAD 시스템 도입이 되어왔기 때문에 산업화 진행이 다른 나라 보다 늦어진 탓도 있으며, 개발자들의 개발의지도 약했던 것도 사실이다. 1990년대 들어서 자체개발 또는 OEM 방식의 CAD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국산캐드의 시작은 삼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매직캐드(후 : 유니캐드)가 국내 기술로 개발된 최초의 CAD 소프트웨어라고 볼 수 있다. 매직캐드는 유닉스 베이스의 CAD 프로그램이여서 그 대중성에 있어 한계성이 나타나, 이후 PC 기반의 유니캐드로 전환하게 되었다.매직캐드 이후 OEM 방식의 CAD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WINCAD는 소련의 CAD 엔진을 OEM 방식으로 구매, 국산화는 성공했지만, 상업적인 측면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케이스이다. 현재 Archi-WinCAD로 합병되었다.3. CAD의 종류3-1. 하드웨어기준1) 범용 캐드중.대형 범용 컴퓨터를 호스트로한 대표 CAD 시스템.2) 턴키 캐드슈퍼 미니콤을 호스트로한 중규모의 CAD 시스템, 선발 CAD메이커를 중심으로 보급되었다.3) 워크스테이션 CAD슈퍼 퍼스날 컴퓨터나 엔지니어링 워크스테이션에 의한 CAD. 분산처리 시스템을 지향할 수 있으며, 대단히 유망 시 되고 있는 형태.4) 퍼스날컴퓨터 CAD간이 지향의 캐드로 저가격이 특징이다.3-2. 기능 기준1) 제도 CAD시스템CAD시스템을 사용하면 종이로 하는 제도에 비하여 수정이 용이하며 시행착오가 적고 설계의 질이 향상된다들어진 프로그램.(예 : 3DS MAX, 3DS VIZ, Bryce 3D, Poser, Soft Image, Light Wave 3D, Maya 등)10) PACS의학에서 CT나 MRI에서 만들어진 데이터를 데이터 구조로 만들어주며, 가상 수술 등을 위한 의학 전용 CAD프로그램.(예 : DICOM 등)11) 변형 CAD일반적으로 단순한 CAD 기능뿐만이 아닌 다른 특정한 부가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을 말하며, 예를 들어 CAD의 기능과 Office의 기능을 합한 것이나, CAD의 기능과 CG의 기능을 합한 기능을 보유한 프로그램처럼 단순히 CAD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면서 CAD의 기능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는 프로그램.(예 : Rino 3D, SmartSketch, Visio 등)12) 특수목적 CAD보석세공을 위한 설계나 의류설계 등 특정 분야에만 적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CAD 프로그램.(예 : JewelCAD 등)4. CAD의 응용분야4-1. CAD의 활용영역1) 스타일링 분야 : (2-D)2) 모델링/랜더링 분야 : (3-D)3) 생산 분야 (CAM)CAM은 Computer Aided Manufacturing의 약자로서 제조에서의 컴퓨터의 지원에 관한 기술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개념을 나타내고 있다.- 기계관련 도면작성 (자동차, 자동차부품, 선박, 항공기 등)- 산업기계 도면작성 (공조기계, Clean room관련기기, 주차 설비 등)- 철구조물 SHOP 도면작성 (호텔, 주차빌딩, 공장건물 등)- 화공장치설계 (Vessel, H/EX, Tower, 소각로 등)- 산업용 보일러, 버너설계- 전기PART도면작성 (Power, Lighting ,Receptacle, Comm., Fire&Alarm 등)- 건축전기, 수변전 설비 도면작성- 플랜트, 계장, 교반기 설계- 반도체나 PCB의 회로도 등 전자 설계분야- 금형 설계 분야- 지도나 지형 등 지리 설계- 의류 디자인이- 방송, 영화, 애니메이션, 광고 등- 군사, 과학 분야의 모의 실험- -
    공학/기술| 2009.05.31| 22페이지| 2,000원| 조회(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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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 로마신화]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인물들 평가B괜찮아요
    텔레마코스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테네 여신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소식을 찾아 떠나기 전의 전반부에서는 어머니의 구혼자들에 대해 불만을 품고 이를 시정하려고 생각하지만 행동이 따르지 않는 무기력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었으나 후반부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아버지 없이 자란 텔레마코스가 내성적이고 선량한 소년에서 용감한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텔레마코스의 성장한 모습은 그의 어머니 페넬로페조차도 놀랄 정도로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빼닮은 용맹하고 완벽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텔레마코스의 이러한 성장은 어머니를 보호하고 그를 제거하려는 악한 구혼자들의 음모에 당당히 맞설 수 있게 하여 귀국한 아버지와 손잡고 구혼자들을 몰아내는데 성공할 수 있게 한다.텔레마코스는 어머니 페넬로페가 그를 묘사할 때도 고생을 겪지 못하고, 세상일 겪는데도 경험이란 없는 순진하고 유약한 어린 소년의 모습이었다. 아테네 여신이 오디세우스의 친구 멘테스로 분하여 오디세우스의 집에 당도하였을 때 그는 슬픔에 잠겨 건달들 틈에 끼어 앉아 혹시 아버지가 어딘가에 나타나 건달들을 내쫓고 자신의 명예를 돌이켜 영토를 다스리게 해주었으면 하고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을 뿐이었다.“아버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제게 남겨 주신 건 한숨과 슬픔뿐, 그러나 전 지금 홀로 그 분을 위해 슬퍼하지도, 비탄해하지도 않습니다. 신들께선 제게 다른 근심을 지워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들 섬의 지배권을 쥔 세력가들, 그리고 암석의 이다카에서 권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제 어머님께 구혼을 강요하고 가정을 약탈합니다. 어머님께선 이 증오의 구혼을 거절도 안하시고 그걸 결단할 능력도 없으십니다. 한편 그자들은 향연을 베풀어 우리 집안을 쪼들리게 하는가 하면, 조만간 저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겁니다.”이제 만 20세가 된 나이 어린 텔레마코스로서는 어머니 페넬로페의 청혼자들에게 불만만을 가질 뿐 대항하지 못하였으나, 아버지를 찾는 여정을 마치고 구혼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돌아온 텔레마코스는 거지로 분한 오디다면 차라리 달게 받으리다. 매일같이 성스럽지 못한 행위들, 손님들을 모욕하고, 궁내로 시녀들이나 끌고 다니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편히 훨씬 나을 것이리라.”라며 구혼자들을 꾸짖는 당당하고 용감한 모습을 보여준다.호메로스는 어린소년이었던 텔레마코스가 여정을 거치며 아버지 오디세우스와 같은 영웅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와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의 늙으신 아버지 라엘테스와 20년만의 재회의 기쁨을 나눌 수 있기까지의 조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페넬로페“잊혀질 수 없는 슬픔이 나를 휩싸고 있구나. 난 헬라스와 알고스에 명성이 널린 사람을 기억하면 그 그리운 얼굴이 사무친다오. 올림피아 신명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 자라난 모든 여자들 중에서도 유독 나에게 슬픔을 내리신 것이리라. 내 훌륭한 낭군을 난 일찍이 잃었느니라. 더욱이 이제 폭풍은 내 사랑하는 아들을 말없이 내 곁에서 빼앗아가서는 소식마저 듣지 못하게 되었구나.”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는 트로이 전쟁으로 떠나간 남편 오디세우스가 전쟁이 끝난 뒤 20년 동안 귀향하지 않자 오디세우스의 재산과 왕위를 노린 포악한 구혼자들에 의하여 괴로움을 겪게 된다. 페넬로페는 수많은 구혼자들의 성화같은 청혼과 남편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무릅쓰고 오로지 남편만을 기다리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사기꾼, 건달패들과도 같은 구혼자 무리들에게 시달리는데다가 아들 텔레마코스마저 아버지의 소식을 찾아 항해에 나서 행방을 알길 없자 페넬로페는 더욱더 슬픔과 비탄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재혼을 성화하는 구혼자들을 달래기 위해 “가지신 것도 많으신 분께서 수의 한 벌 없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온 아카아의 부인들이 나를 책망할 것이외다.”라며 오디세우스의 아버지 라엘테스의 수의가 완성될 때까지 재혼을 미루겠다고 공표하고 낮이면 커다란 베틀에 앉아 비단을 짜고, 밤이면 관솔불을 켜고 다시 풀어놓기를 삼년동안 계속해 아카이아 사람들을 속여 왔으나 사년 째가 되자는 구혼자들 앞에 나서 악한 구혼자들의 우두머리격인 안티노우스를 꾸짖어 이르기도 한다.“그대는 어인일로 텔레마코스를 죽음과 파멸로 빠뜨리려 한단 말이외까? 의리를 버리고범죄를 획책한다는 것은 무모한 것이오. 그대 선친께서 민중의 반란을 모면코자 이 곳에 피난해 계셨던 일을 잊었단 말입니까? 오디세우스님께서 그들을 물리치시고 그들의 광적인 분노를 진정시키셨소이다. 그런데 당신이 배은망덕하게도 은인의 집을 삼키다니, 그러고도 모자라 부인을 괴롭히고 아들마저 살해하려 들다니, 내게 너무하는 일입니다.”수의를 짜는 길쌈과 활쏘기 시합을 여는 등 구혼자들을 피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보기도, 그들 앞에 나서 꾸짖어 보기도 했지만 연약한 여자인 페넬로페가 자신을 둘러싼 역경을 헤쳐 나가기에는 무리였다. 자신을 구해줄 왕자님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공주 이야기의 전형처럼 페넬로페 역시 자신 앞에 처한 상황을 능동적으로 타개하기보다는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을 함에 그쳤지만 그럼에도 남편의 생사가 불분명한 오랜 출타 중에도 많은 구혼자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남편이 살아 돌아올 것을 굳게 믿은 페넬로페의 절개만은 높이 살만하다.포세이돈오디세우스가 귀국하는 그 날까지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그것은 오디세우스가 포세이돈의 아들인 싸이클로프스 제일의 장사, 폴리페모스의 한쪽 눈을 멀게 해 놓았기 때문이다.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귀국길에 올랐으나 갖은 고초를 겪게 되고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족이 사는 섬에 표류하게 되어 키클롭스족의 양치기이자 포세이돈의 아들인 폴리페모스에 의해 동굴에 갇히고 매 식사 때마다 한명씩 잡아먹히기에 이르렀다. 이에 오디세우스는 이스마로스에서 가져온 포도주를 폴리페모스에게 먹여 취하게 만든 뒤 거대한 나무기둥을 뾰족하게 깎아 불에 달구어놓고, 인육으로 배가 부른 폴리페모스가 잠들자 그를 공격하여 하나 뿐인 눈을 장님으로 만들어 놓는다. 양의 배에 매달려 동굴을 빠져나간 오디세우스는 의기양양해져 폴리페모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온 땅과 바다를 구름으로 뒤덮는다. 어둠이 하늘에서 급히 내려 덮고 동남풍이 서로 부딪히는가 하면 서풍, 북풍에 폭우가 서로 때리고 물결을 휘몰아 일으킨다. 포세이돈은 어마어마한 파도를 일으켜 오디세우스의 머리를 치고 후려갈기고 커다란 태풍을 일으켜 오디세우스가 탄 뗏목을 산산이 부수어 놓는다.또한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 이외에도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인 아이아스를 징벌하였다. 처음에 포세이돈은 신들의 노여움으로 난파한 아이아스를 지라에의 큰 바위위에다 피난시켜 바다로부터 그를 구해주었었다. 그러나 그가 비록 아테네의 미움을 받고 있었지만 교만한 말만은 하지 않았다면 액운을 피할 수 있었겠으나 그는 신의 노여움에도 불구하고 바다의 거대한 늪을 빠져나왔다고 말해 이 교만한 호언이 포세이돈의 귀에 거슬리게 된 것이다. 포세이돈은 그 자리에서 센 팔로 세발창을 잡아 지라에의 바위를 쳐부수어 발겨놓고 아이아스는 익사하고 말았다.칼립소오디세우스는 싸이렌의 유혹을 이겨내고 스킬라, 챠리브디스가 버티고 있는 협곡을 지나지만 신을 모독한 죄로 부하들이 전멸하고 칼립소가 사는 오기기아 섬에 도착하여 7년간 동거에 들어간다.오디세우스는 요정 칼립소의 집에 강제로 붙들려 있다. 매일을 바닷가에서 고향을 그리며 눈물로 지내지만 고향에 돌아갈 힘은 모두 잃었다. 노를 채울 배 한척 없고, 망망대해를 지나 동반할 선원한명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이러한 형편을 안 아테네가 제우스에게 오디세우스를 귀향시킬 것을 간청하자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사자로 보낸다. 제우스의 명을 받아 전령 헤르메스가 칼립소를 찾아 피에리아 섬의 동굴로 와 오디세우스를 귀향시키라 명하자 칼립소는 벌벌 떨면서 비호같이 입을 연다.“사랑하는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함이 상례이거늘 사내를 만나 공공연한 결혼 생활을 하려는 여신을 못 마땅히 여기시다니 .지금 또 다시 신들께선 여기 인간과 체재함에 나를 미워하는 구려. 그러나 제우스신께서 하얀 번갯불을 보내 쾌속선을 때려 쳐 먹빛 바다 중간에서난파를 시키자 홀로 있불러들여 묻는다.“그대 당장이라도 고향집으로 돌아가시기를 바라나이까? 그러시다면 안녕히 가시오. 그러나 고향땅에 당도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고난을 그대 겪어야 하는지를 기실 안다면 내 곁에 남아서 내 집의 보호자가 되어 불사의 존재가 될 것이외다. 그대 늘 주야로 그리워하는 부인을 만남이 소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외다. 내 단언하오니 용모나 태도나 그대 부인께는 떨어지지 않으리다. 사파의 한갓 여인이 어찌 불사의 신과 용모나 아름다움에 있어 비할 수 있으리오.”그러나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영원한 삶과 재물·권력을 주겠다고 하였으나 집으로 향하는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였다. 그를 사랑하여 보내고 싶지 않지만 칼립소는 결국 오디세우스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귀국을 애태워 슬퍼하는 오디세우스를 더 이상 기쁘게 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도끼와 돛을 내어주며 뗏목을 만드는 일을 도와준다. 오디세우스가 뗏목을 만드는 것을 도와 나흘째 되던 날 모든 일이 완성되자, 닷새째 되던 날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목욕을 시키고 화려한 옷을 입혀 그를 섬으로부터 떠나보냈다.아테네아테네는 오디세우스가 동료들과 두절되어 바다로 둘러싸인 섬 바다 한가운데서 칼립소에게 묶여 있는 것을 안타까워해 제우스신에게 그를 귀향시킬 것을 간청했다.“오디세우스는 자기의 고국의 하늘에 피어오르는 연기만이라도 보고 싶은 염원에서 죽기를 갈망하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대 올림퍼스 군주시여 당신께선 무관하고 계시나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의 평야에 제물을 바치고 알지브 뱃전에서 당신의 관용을 구하지 않았나이까? 그런데 어찌하여 당신께선 이다지도 그를 냉대하십니까, 제우스 아버님?”이와 같은 아테네의 간청에 제우스는 마음을 움직여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모색해보라 명하고 아테네는 이에 바로 올림퍼스 산마루를 질주해 내려와 오디세우스의 친구 멘테스로 분해 이다카 땅 오디세우스의 집에 당도하여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찾아 나서도록 "아버지를 찾아보고 더 이상 생존하시지한다.
    인문/어학| 2005.12.08| 6페이지| 1,000원| 조회(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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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태백산맥을 읽고
    태백산맥을 읽고이 책은 좌익용공논란으로 크게 주목을 받은 책이다. 이 장편 소설은 한국 근현대사의 일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1945년 해방이후 정국의 상황과 그리고 6.25를 거치는 과정 안에서 이념으로 인한 민족의 갈등 내면에 숨겨져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글을 통해 우리가 이제까지 반공교육으로 인해서 그저 배타의 대상으로 밖에 인식되지 못한 공산주의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은 한반도의 이념적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저 한편의 소설처럼 보일지도 모른다.그러나 반공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우리네 삶에서 이 책은 좌익이라는 존재를 건드려서 용공시비를 불러 일으켰다. 이로 인해 작가 조정래는 재판정에 서야만 했고, 재판부는 이 책에 용공시비에 대해서 완곡한 각계각층의 인사들에게 평가를 내리도록 요청을 하게 하였다. 과연 무엇이 이 한편의 소설을 이토록 주목하게 하는가? 먼저 이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자.‘태백산맥’은 보성ㆍ벌교 지역을 배경으로 1948년 여순반란사건을 기점으로 그 후 발생한 6.25 한국전쟁까지 기간을 크게 3부로 나누어서 줄거리를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주요 등장인물 중 염상진이라는 인물은 공산주의적 신념에 입각해 투쟁을 벌이는 인물로, 김범우라는 인물은 공산주의에는 뜻이 있으나, 이념보다는 민족이라는 명제를 먼저 생각하고 있는 인물로, 그리고 인텔리겐자는 아니지만, 시대적 상황을 틈타 반공청년단의 단원에서 단장으로 성장하게 되는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 그리고 심재모, 강동식, 하대치, 최익승, 유주상 등의 주변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제 1부에서는 여수반란사건의 실패이후 염상진이 보성, 벌교지역으로 들어가 빨치산을 형성하게 되는 과정과 김범우가 중도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사회를 바라보고, 민족을 생각하는 것들을 보여준다. 제 2부에서는 빨치산으로 성장한 염상진의 제 2의 봉기와 그와 함께 민중들이 빨치산으로 합류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제 3부에서는 6.25 발발 후 김범우라는 인물이 다시 공산주의적 입장으로 돌아가는 과정과 빨치산으로 활동하였던 사람들이 국군토벌대에 의해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과정들을 서술하고 있다.이 책은 전라도의 사투리를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벌교를 중심으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배경이 되었던 1940년 후반은 일제의 해방이후 혼탁하기만 하는 그 당시의 정국을 보여준다. 좌ㆍ우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한 국가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그 보이지 않는 암투 속에서 발생한 여순반란사건은 또 다른 좌, 우익의 암투이고 이로 인해서 좌익은 남한에서 배척의 대상으로 변모하게 된다.여수사건이후 벌교지역은 우리들에게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그대로 암시한다. 당시의 기득권층은 일제시대의 기득권을 획득했던 인물들로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우익 쪽 입장에 서있었고, 민중들은 새로운 세상을 바라기에 좌익의 편에서 기득권층에 대한 반항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염상진과 김범우 등 그 당시의 지식인들은 민주주의라는 이념보다는 사회주의적 이념을 통한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였다. 이들에게는 민족이라는 것이 이념보다는 앞서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조국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방편에서, 해방이후 다시 새로운 권력으로 인해 이념이 민족보다 중요시된다.그 당시 지식인들이 사회주의에 심취한 이유는 무엇일가? 그것은 소위 일본으로 대표되었던 우익적 성향의 국가들에 대한 반발이었고, 사회주의 이념에서 표현되었던 민중을 위한 것들이 지식인들의 욕구를 충족하여 주었던 것이다.이 책에서는 여순반란사건의 발생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기술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좌익적 성향은 강요적 성향이 아닌 자발적 참여임을 보여주고 있다. 즉 민중 스스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사회주의라는 이념적 성향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그 당시의 우익을 대표하는 염상구는 그럼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는가? 그는 지식은 없으나 힘이 있기에, 그것을 이용해 반공청년단의 우두머리로서 형과는 반대로 우익으로서 활동한다. 여기에는 기득권층과의 유착관계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염상구라는 인물을 통해서 유주상등의 지주계층은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었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들에게 염상진을 비롯한 좌익성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파괴하는 자들로 밖에 인식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그들이 어떤 식으로 민중을 착취하여 가고 있는지를 잘 묘사하고 이다.염상진과 염상구 형제로 대표되는 좌ㆍ우익의 싸움에서 김범우는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듯 하다. 그에게는 이념도 중요하지만 민족과 민중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그는 제도권 안에서 민족의 문제를 풀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듯 하였다. 그와 같은 인물로 계엄군 사령관으로 내려왔던 심재모라는 인물도 있다.이와 같은 우익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은 제도권 안에서 권력을 쟁취한 사람들로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민중과 공권력을 이용하고 있으며, 좌익은 이런 기득권층에 의한 민중들의 착취를 거부하고 평등적인 세상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태백산맥’에서는 하대치, 강동식, 외서댁으로 대표되는 민중들이 어떻게 좌익, 즉 빨치산으로 입문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민중은 조선시대 이후로 내려왔던 지주-소작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몫을 찾지 못하고 착취의 대상으로 밖에 인식되지 못한 존재들이었다. 일제 시대이후 새로운 세상에서도 이들의 입장은 변동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한 불만이 쌓이게 되었고, 좌익에서 이야기하는 ‘민중들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들의 생계를 버리고 과감히 빨치산으로 활동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이 책에서 나타나는 민중들의 모습은 이면적인 형태를 띄고 있다. 대부분의 민중들은 기득권층에 대한 반발은 있으나, 농경 문화적 영향을 받아선지, 자신들의 생활에 안주하고픈 생각이 있어 新세상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제도 권력에 대한 복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투쟁에서 염상진은 제도권을 뒤엎는 것으로, 김범우는 제도 권력의 안에서 안정적인 자세로서 개혁을 요구하고 있었다.그러나, 역시 김범우라는 인물 역시, 다시 제도권력 안에서의 개혁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빨치산으로 합류하게 됨으로써, 제도권과의 싸움을 표현하고 있다.염상진의 부하들인 하대치, 강동식 등의 인물들은 우리가 보기에는 인텔리는 아니다. 그들은 까막눈인 농민들에 불과할 뿐이다. 이들에게 이념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요원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생존의 문제였고, 자신들의 권리를 갈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들에게 이념을 선택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이와 같이 ‘ 태백산맥은 ’우리가 인식하고 있었던 공산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초등하교 때부터 지겹게 들었던 이야기는 공산주의는 나쁘며, 이 세상에 가장 적합한 이데올로기는 ‘민주주의’라는 것이다.이러한 세뇌 교육 안에서, 우리는 그 당시 민중들이 선택하였던 공산주의라는 것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북한에 대한 또 다른 상상을 가져오게 한다. 그러나 ‘태백산맥’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중들의 자세는 이념 그 자체이기보다는 자신들이 가졌던 삶에 대한 권리를 가져오기 위한 방편으로서 선택하게 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들에게 이념은 민중들의 새 삶을 담보하고 있는 것과 같은 거이었기에, 민중들 스스로 이념을 택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이것은 바로 박현영과 김일성 등으로 대표되는 중앙의 공산주의와는 상반되는 거임을 보여주고 있다. 박현영/김일성으로 표현되는 공산주의는 구각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하나이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이념적 체계였다. 이들에게 민중도 소중하지만, 이승만으로 대표되는 우익과의 헤게모니쟁탈 전에서 중요한 무기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태백산맥’에서 보여주고 있는 좌익의 개념과는 상반되는 입장일 것이다. 이러한 입장으로 우리는 제주도 4.3항쟁을 다시금 보게 한다. 우리에게 4.3항쟁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벌여진 민중반란이다. 그러기에, 그 당시 학살된 제주도민은 공산당으로서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이념이라는 존재는 없었다. 단지 자신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는 자들에 대한 반항이면서 자위권의 한 방편이었을 뿐이며, 이 안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활동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 그 당시에 이승만 정권은 항쟁에 참가하였던 제주도민을 공산주의로 간주하고 그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하였고, 이런 논리가 90년대까지 이어져 왔었던 것이다.‘태백산맥’은 이런 정체된 시각에서 바라보는 인식 틀을 바꾸고자 하였다. 어떤 공산주의자들의 일대기나, 이념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며 공산주의의 우월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상황에서 민중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 안에서 민중 스스로 자각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드에게 이념은 하나의 투쟁의 수단이었지, 전부는 아니었다는 것을 암시하여 준다. 즉 토지개혁이라는 껍데기에 담겨져 있었던 기득권의 야심에 대한 민중들의 반발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는 민중들이 행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갔던 사상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4.11.03| 4페이지| 1,000원| 조회(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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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정치와 진리를 읽고
    정치와 진리정치라는 것은 무엇일까?정치라는 말에 나는 TV 뉴스에서 간간이 보이는 국회에서 의원들끼리 치고 받는 모습을 떠올린다. 정치는 내게 있어 권력, 부패, 모략과 같은 말이며 국회의 난투극을 보며 그 스펙타클한 모습에만 흥미를 느낄 뿐이지 정치라는 것이 무엇인지, 현재의 정치적 쟁점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가질 않는다.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것은 내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번씩 터지는 정치인들의 부패와 난동에 대한 불신에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 때문일 것이다.「정치와 진리」라는 이 책에서 정치는 인간이 함께 모여 공동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발생하는 인간적 현상으로서 인간의 복수성에 따른 갈등에 의한 필요성에 생긴 것이며, 정치는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 양상이며 상대방에 대한 설득을 목표로 한다. 정치는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시끄럽게 논쟁하며 경쟁하는 모습이라고 한다.이것은 정치는 대립의 조정을 위해 자신과 항쟁관계 속에서 상대방을 복종시키고 스스로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에 조화로운 것, 대화로 완만하게 풀어 나가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생각은 국회의 난투극은 한심하고 비난받을 것이 아니라 정치의 본질에 따라 자신과 같은 의견을 지닌 편과는 단결, 협력해 상대방을 복종시키고 상대방을 통제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행동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이 책은 정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진리, 사회, 철학적인 면과 비교해 가며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너무 장황하게 이어지는 비교와 설명들에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대강의 내용이 위와 같다고 할 때 나는 이와는 다른 생각을 갖는다.나는 정치라는 것은 다양한 인간이 존재하는 복수성에서 나온 갈등에서 생겨 났다기 보다는 인간이 생활하는데서 생긴 모든 다양한 갈등과 문제, 즉 구성원들간의 갈등 뿐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전반적인 문제에서부터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짓는데 비가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우제를 지내자 나 누군가 죽었는데 장례식은 어떻게 하자 와 같은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의 구성원들의 합의에서부터 정치가 생겨났다고 본다.구성원들의 생활에 있어 특히 중요한 부분들은 점차 집단의 규모가 커지며 소수의 권위 있는 지도자급들에 의해 결정되고 나머지 구성원들이 이를 따르는 방식으로 진행되게 되었으며 이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장 효율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리라 생각한다.정치는 사회 구성원들간의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은 나와 생각이 다른 편을 설득시키고 굴복시키는 목적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관된 관점, 즉 문제 해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일종의 하나의 진리에 가까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절충점을 찾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후감/창작| 2004.11.03| 2페이지| 1,000원| 조회(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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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고학] 호남지역 원삼국시대와 철기시대 패총의 현황과 형성 배경
    「호남지역 원삼국시대 패총의 현황과 형성 배경」과「철기시대 패총의 형성 배경」패총은 조개 敗, 무덤 塚 즉 조개 무덤이라는 뜻의 말이다. 이것은 조개로 된 무덤이라는 뜻이 아닌 그 당시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의 껍질 무더기로서 일종의 생활 폐기물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패총은 패총이 형성될 당시의 식생활과 나아가 패총의 형성 배경을 유추해 봄으로 당시의 생활상과 환경을 짐작케 해주며, 또한 패류에 포함되어 있는 칼슘성분으로 인해 다양한 유물을 보존하고 있어 고고학의 유물발굴과 생활사 복원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신석기 시대는 아직 농경이 발달하지 않은 수렵?채집에 식량을 의존하던 시기였기에 현재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신석기 시대의 패총은 모두 160여 곳으로서 한반도에 살았던 신석기인들은 주로 물과 자원이 풍부한 바닷가에 정착해 살았고, 그 생활의 흔적을 패총으로 남겨 놓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철기 시대는 신석기 시대와는 상황이 다르다. 철기 시대는 이미 농경 문화를 받아들이게 된지 오래이며, 또한 철기의 사용으로 인해 농경 문화의 비중이 더욱더 커져 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수렵?채집에 의한 식량 조달의 필요성은 이미 미미해진 시기일 것이다. 그러나 철기 시대에 이르러 특히 남해안 일대에 패총이 급격하게 늘어난 모습이 모인다. 이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호남지역 원삼국시대 패총의 현황과 형성 배경」과「철기시대 패총의 형성 배경」이 두 논문은 모두 제목에서 보여지듯 패총의 형성 배경에 관한 논의이다. 철기 시대에 이르러 남해안 지역에 어떻게 그리고 왜 많은 수의 패총이 형성되었는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 글로써 두 논문은 이에 각기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먼저 「호남지역 원삼국시대 패총의 현황과 형성 배경」는 기후의 한랭화가 원삼국시대(철기시대)의 패총이 급격하게 증가한 원인이라 설명하고 있다.신석기시대 패총의 성격에 대해서는 유물의 구성과 층위 양상으로 보아 근거지 유형과 일시적인 캠프형의 유적으로 나누고 특히 서해안 지역의 패총은 해안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패류채집을 위한 일시적 캠프로 파악한 견해도 있다 .이와 비교할 때 원삼국 시대 패총은 도서지역이 있는 노래섬 패총처럼 용수가 없어 패류 등 채집을 위한 장소의 성격이 강한 곳 도 있지만 대체로 근거지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근거지 유형의 패총은 당연히 거주 생활의 결과로 남아 있게 된 폐기장이다. 패총이 다른 생활 유적과 구별되는 것은 패류의 존재 때문이다. 패류는 채집이라는 단순한 생업활동을 통해 과거에서 현재까지 계속해서 이용되어 왔으며 이용후에는 껍질이 폐기 되면서 퇴적이 이루어지는데 현재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패총으로 남아 있게 된 것은 자연 분해율에 비해 퇴적율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원삼국 시대 패총또한 퇴적율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남아 있게 된 것인데 당시에 패류등 해양자원의 이용이 상당히 활발했음을 단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다.농경의 비중이 점점 커져가는 원삼국 시대에 도서지역뿐 아니라 해안가에서도 패총이 형성되고 있는데, 특히 다수를 차지하는 A.D. 2~3세기에 속하는 패총이 형성된 이 시기는 삼국사기사료와 세계의 기후관련자료로 보아 상대적인 한랭기로 추정된다.농경은 자연환경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상환경은 농경의 성패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즉 기후는 재배가 이루어지는 식량 자원을 획득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기온, 강수량, 습도, 운량, 일조, 바람 등 여러 기후요소중 특히 기온은 모든 농작물의 생산에 중요한 조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원삼국 시대는 쌀, 보리, 밀 등 여러 곡물이 재배되며 점차 벼농사의 비중이 커지는 시기라 할 수 있는데 특히 벼는 어느 정도 이상의 기온이 되지 않으면 재배가 불가능하며 생육 시기인 여름과 가을에 이상저온이 나타나게 되면 생산량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다. 최근의 연평균 기온과 벼생산량 자료를 비교하여 본 결과 1~2℃의 기온저하가 농업 생산량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A.D. 2~3세기의 한랭기에는 현재에도 기온의 변화가 생산량의 증감에 크게 영향을 미칠 정도이므로 기술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던 당시 농경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농경자원에 대한 의존도에 비해 해양자원의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졌을 것이며 이로 인해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단순한 채집활동까지 담고 있는 패총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원삼국 시대 패총, 특히 정착생활을 했을 해안가 패총의 경우를 보면 다른 생활 유적들보다 어로?수렵도구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패총의 주변에서 어로?수렵, 특히 해양자원의 활용 비중이 상당히 높았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농경에 의한 생산력이 떨어지면 해양과 육상의 자연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해안가에서는 특히 해양자원의 활용이 높게 나타날 것인데 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 패총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기후의 악화(한랭화)는 농업생산력의 감소로 이어져 해안지역에서의 패류 채집과 같은 채집의존도를 증가시킨다. 이에 따라 패류의 퇴적율이 증가하여 패총이 형성 된 것이다.「호남지역 원삼국시대 패총의 현황과 형성 배경」이 기후의 한랭화를 원삼국 시대(철기 시대)의 급격한 패총의 증가로 내세우고 있는데 반해 「철기시대 패총의 형성 배경」은 ①철기문화의 시작으로 인한 해로의 발달 ②인구증가 ③한랭화 ④주민집단 간의 갈등과 같이 복합적 요인에 의한 형성 배경을 주장한다.일단 패총의 형성 배경을 철기 문화의 시작과 관련된다고 본다. 청동기 시대 후기를 지나면서 새로운 철기 제조기술이 유입되는데 이러한 기술의 유입과 더불어 해로가 발달되었으며 나아가 해안지역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인구가 증가하였을 것이다. 해안가에 자리잡았던 주민들은 바다로부터 식량자원을 획득하였고, 이로 인하여 많은 패총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한편 기원후 2~3세기에는 기후의 한랭화가 이루어지면서 식량자원이 부족하게 되었고, 더불어 주민집단간의 갈등이 나타났는데 이것으로 인하여 패총의 급증과 고지화를 야기시켰을 것이다. 따라서 철기시대 패총의 형성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이다.두 논문의 중심된 논의는 이상과 같다. 철기시대의 패총의 형성 원인이 기후의 한랭화 때문이냐와 기후적 요인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일어난 결과이냐로 요약되는 두 글은 다음과 같이 서로의 의견차이를 보인다.「호남지역 원삼국시대 패총의 현황과 형성 배경」에서는 물론 패총에는 당시의 빈번했던 갈등, 어로의 전문화 등과 같은 인문적인 요인도 반영되어 있지만 자연 환경으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보다 직접적인 요인 이라고 한다.
    사회과학| 2004.11.03| 4페이지| 1,000원| 조회(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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