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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서의 무와 도교의 습합 전개 양상
    강사명 :강정훈 교수님강좌명 :한국의 전통 윤리 사상발제자 :윤리문화학과 4학년 이춘희윤리문화학과 4학년 정민재윤리문화학과 2학년 박성준목 차Ⅰ. 이끄는 말3Ⅱ. 고대 한국인의 정신성3Ⅲ. 도교의 연원4Ⅳ. 도교와 무의 습합 원인5Ⅴ. 화랑도5Ⅵ. 관방도교와 무6Ⅶ. 민간도교와 무6Ⅷ. 관제신앙7Ⅸ. 맺는 말9Ⅰ. 이끄는 말고대선사시대의 샤머니즘 문화는 유교, 불교, 기독교 문명의 발생과 함께 주도권을 상실하지만 기원 전 7세기 이전에는 세계문명을 지배한 강력한 종교였다. 칼 야스퍼스는 오늘날 고등종교로 지칭되는 불교, 기독교, 유교, 조로아스터교 등은 모두 신선교(후에 巫敎로 칭함) 이후에 일어난 파생종교로 보았다.샤머니즘(지금의 무당과 다르다)은 종교의 원형이며 인간생활의 원형이다. 샤머니즘은 천(天) 지(地) 인(人) 사상 이외에도 문화적 프로그램(노하우)을 한데 모은 복합적 특성(문화복합)으로 고대미개선사사회를 이끄는 문명체계를 이루었다.더욱이 유교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고대 샤머니즘의 정신을 반영하거나 합리화하여 재구성한 부분이 많다. 춘추전국시대의 공자(孔子)에 이르러 재래의 사상과 원시유교가 집대성되고 합리화되면서 모양이 크게 달라졌지만, 샤머니즘의 천 지 인 사상 등은 유교체계의 기반을 이룬다.불교도 중국을 거친 '격의불교(格義佛敎)'의 탓으로 한자말로 옮겨지면서 이(理)와 기(氣)라는 용어의 사용과 함께 도교와 습합된다. 그런 점에서 유교와 불교 속에서 선맥(仙脈)을 찾을 수 있다.한국 무교가 불교뿐만 아니라 도교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공공연히 인정하고 있다. 정확히 어떤 부분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느냐는 것을 문헌으로 중명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한 것 같다.Ⅱ. 고대 한국인의 정신성샤머니즘과 선도(仙道) 중 시기적으로 선후를 따질 때 선도가 앞설 것 같다. 선도는 천지(天地) 속에서 인간의 입지를 정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중개자를 설정하기보다 개인적 자연적(과학적) 진격하여 이를 크게 쳐부수고 북으로 추격하여 수곡성의 서북에까지 도달하였다. 장군 막고해가 간하기를 도가에 족함을 알면 욕을 보지 않으며, 멈출 곳을 알면 위태하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도 얻은 것이 많은 것을 구하려 하십니까. 태자가 옳게 여겨 멈추었다.”여기에 ‘지족(知足)’과 ‘지지(知止)’의 개념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말이고 근수구왕의 재위기간이 375년~384년까지였다. 그리고 불교의 공인이 침류왕 즉위년인 384년인 것으로 미루어볼 때 적어도 백제에는 불교보다 도가사상이 먼저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신라는 지리적인 여건으로 인해 대륙과의 접촉이 삼국(三國) 중에서 가장 늦다. 그러므로 문물제도나 사상의 직접적인 수용도 제일 늦게 이루어지고 있다. 백제와의 관계를 끊고 한강유역을 장악함으로써(A. D. 555) 중국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며 통일기반을 마련하던 시기 이전까지는, 신라는 오로지 고구려와 백제를 통한 간접적인 수용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 중에서도 북쪽의 강대한 고구려에 대처하기 위하여 백제와의 동맹을 맺음으로 해서 중국으로부터의 간접적인 수용은 물론 신라의 모든 문물과 사상적 성향은 전적으로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신라 초기에 있어서의 문물, 사상은 백제의 문물, 사상의 예속에서 벗어나기 힘든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능화 선생에 의하면 초기신라의 정체(政體)는 도교의 무위사상과 일치한다고 했다. 또한 조선시대의 학자 이종휘는 그가 쓴 『수산집(修山集)』에서 혁거세로부터 소지왕에 이르는 약 5세기 반(BC57년~AD499년)에 걸친 통일이전의 신라를 변화에 따라 대응해 가면서 자연대로 작위(作爲)함이 없이 나라와 백성을 이끌어 왔다고 보아 도교의 이념을 실천해 낸 시대로 단정하고 노(老)?장(莊)을 시켜 나라를 맡아 다스리게 한다 하더라도 그 이상은 해나가지 못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신라에서는 노?장의 도에 따라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을 내걸은 일은 없고 실제로 노?장의 도에 부합하는 정치를 의 영원으로부터 존재를 보는 사고"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를 풀이해보면, 존재근원이 카오스이고 카오스는 바로 영원이며, 영원에로의 회귀가 바로 원본사고가 된다. 원본은 ‘자연적 상황의 미분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무교와 도교의 기저(基底)에는 근원적으로 우주질서를 초월하려는 원본적 욕망이 있으며 그 열망은 분화된 논리적(論理的) 세계가 아니라 미분화된 초논리적(超論理的) 세계를 추구하게 된다는 말인 듯하다.중국은 후한 장각의 태평도와 삼장(三張)(장릉, 장형, 장로)의 천사도(=오두미도를 조형(祖型)으로 하여 노장(老莊)과는 상관없이 출발하였으나 그 교세의 확장과 교리 정비 과정에서 노장의 사상이론을 끌어다 이용하였다. 그래서 일단 도교가 교단이 성립하자 중국에서 무는 도교에 습합되어 버리지만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무교가 각종 국가의례와 함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불교와 기독교와는 달리 도교와 무교는 수많은 신들이 우주 속에 꽉 차있다고 보는 시각과 수많은 신령을 섬기는 모습이 비슷하고 둘 다 동화력이 강해서 다양한 사상체계를 아우를 수 있었으며 또한 내세 혹은 사후의 세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를 중시하였다는 점에서 두 종교는 따로 존재하기는 힘들다고 생각된다.Ⅴ. 화랑도신라의 기층사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유사상의 흐름에 유의할 필요가 있는데, 종교학적으로 접근하면 한국 고유의 종교적 원형은 Animism)적 무(巫)와 Manaism)적 선(仙)이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드러난다는 설이 있다. 신라의 문화토양에도 이러한 양면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전자를 무당을 뜻하는 ‘차차웅(次次雄)’의 어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면 후자는 광명을 뜻하는 ‘혁거세(赫居世)’의 어의에서 발견하게된다. 신라의 화랑도는 무와 선의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이능화의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를 보면 여자 무당을 ‘만신(萬神)’, ‘무당(巫堂)’이라고 불렀고 남자 무당을 ‘박수(博士)’, ‘화랑(花郞)’, 앙형태 및 조직이라 할 민간도교(民間道敎)의 그것과 상대적인 견지에서 파악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중국과는 달리 지속적이고 전면적인 관방도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다. 삼국시대에서 관방도교의 존재를 확증할 수 있는 경우는 고구려에 한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살펴보면 고구려는 당(唐)과의 첫 수교와 동시에 도교를 수입하기 시작하고 20여년의 기간이 경과한 후 권신(權臣) 연개소문의 주장에 의해 도교를 강화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다시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보면 고구려 승(僧) 보덕이 국가가 불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남행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연개소문의 주장 이후 7년 사이에 관방도교가 완전히 뿌리를 내렸음을 알 수 있다.고려왕조에 이르러 우리는 고구려 이후 가장 현저한 관방도교의 성립의 예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건국 무렵 도참(圖讖)?비기(秘記) 등 도교적 예언서가 유행하였고 태조 때부터 재초(齋醮) 등의 도교적 행사를 시행하여 예종조에 이르면 관방도교 기관인 복원궁(福源宮)이 건립되는 등 도교의 세력이 크게 신장된다. 복원궁 이후 신격전(神格殿), 소격전(昭格殿), 성숙전(星宿殿) 등 15개소의 도교의례기관이 설치되고 본명성수초(本命星宿醮), 북두초(北斗醮), 태일초(太一醮), 삼계초(三界醮), 백신초(百神醮), 천성초(天星醮) 등 갖가기 명목의 초제가 총 187회에 걸쳐 시행되는 등의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이는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도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무속(巫俗)이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오직 고려시대에만 무풍(巫風)이라는 제목을 단 것만 봐도 그 세력을 알 수 있다.고려시기, 관방도교의 강화에 따라 설치되었던 복원궁, 신격전, 소격전 등의 도관을 위시한 15개소에 달하는 재초의례(齋醮儀禮) 처소는 유교를 치국의 이념으로 하는 조선왕조에 들어와 거의 모드 폐지된다. 조선보다 조금 일찍 건국되었던 명조의 태조 주원장은 당나라나 송나라와는 달리 도교에 대해 비교적 냉정한 태도를 취하고 섯 개 산의 목화토금수 오행(五行) 즉 하늘의 칠정(七政)의 호위를 받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한편 천장에는 용 두 마리가 각 28개의 발가락(하늘의 28수를 상징)으로 여의주(임금)를 호위하고 있다.7월 7석에는 음?양신인 견우와 직녀가, 마치 강릉단오제 때 대관령국사서당과 총제동여서당이 일년에 단 한번 단오 때에 만나 합혼(合婚)하는 것처럼 서로가 상사(相思)하다가 만나는 생생력이 발동하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칠석제(七夕祭)나 칠성제(七星祭)를 지낸다고 한다.한국무에서 개인 신당의 형성에 관한 규칙은 없다. 무당이 자기 집의 방 한 칸을 이용하여 오로지 신령만을 그곳에 모시고 아울러 신령에 관계되는 모든 물건을 그곳에 보관한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의 제단에는 무신도와 신상이 있고 명두(또는 명도), 명다리, 신복, 악기, 신기, 점구, 무구 등의 물품이 있다.- 무신도 : 대개 족자의 형태를 취하는데 신령이 종이나 천에다 채색화로 표현된다. 무신도가 위패나 조상의 모양을 취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칠원성군의 무신도는 족자형태가 많은데 모습이 서로 다른 일곱분이 묘사되어 있다.- 명 두 : 놋쇠로 만들어진, 둥글고 가운데가 볼록한 거울 모양인데 오목한 뒷면에는 종종 북두칠성이 양각으로 묘사되어 있거나 그 명칭이 한자로 양각되어 있다. 뒷면의 한가운데 고리가 있어 무신도 상단의 중앙에 걸게 된다.- 명다리 : 어느 집안의 아이가 단명한 듯하거나 무꾸리에서 그런 점사가 나오면 그 집안에서는 무당에게 그 아이의 나이에 따라 석 자 내지 여섯 자의 무명을 바친다. 그 무명에는 해당된 아이의 주소, 생년월일, 성명과 아울러 무당의 이름이 한자로 쓰여진다. 그런 다음 이것을 아이들의 생명을 주관한다고 믿어지는 칠성이나 삼신제석에게 바친다. 이 제물을 통하여 아이의 가족과 그 무당 사이에 단골관계가 맺어진다. 그러고 나서 그 아이는 그 무당을 성별에 따라 아버지나 어머니라 부르고, 무당 측에서는 그 아이를 수양아들이나.
    인문/어학| 2007.10.11| 10페이지| 1,000원| 조회(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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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인의 일생] John Fitzgerald Kennedy와 취임연설 평가A좋아요
    {John Fitzgerald Kennedy 1917∼1963미국 제35대 대통령(1961∼63).매사추세츠주 브루클린 출생.하버드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였고 아버지의 해외근무를 따라 제 2 차 세계대전 전야의 유럽을 시찰하고 졸업논문 《영국은 왜 잠자고 있었는가》로 정리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본의 진주만기습 후 해군에 지원, 솔로몬 난바다해전에서 지휘하던 어뢰정이 격침될 때 중상 입은 부하를 구해 영웅이 되었다. 전쟁 후 통신사 기자를 거쳐 1946년 매사추세츠주 제 11 구에서 하원의 원에 당선되었고, 52년 현직의 H.C.로지를 물리치고 상원의원에 선출되었다. 이듬해 재클린 부비에와 결혼하였다. 전쟁에서 부상당한 등뼈의 악화로 입원해 요양하던 중 《용기있는 사람들》을 저술하여 57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1956년 민주당대회에서 부통령후보를 겨냥하였으나 패하고, 58년 상원의원에 재선되었으며, 60년 대통령선거 에서 민주당후보지명을 받았다. 아이젠하워시대의 침체를 타파할 참신한 후보로서 “뉴프론티어”의 슬로건을 내 걸고 공화당 R.M.닉슨 후보와의 텔레비전 토론에서 우위에 올라, 격전 끝에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거두었다. 미 역사상 최연소(43세)대통령이고, 최초의 가톨릭교도 대통령이었다. 61년 1월 취임연설에서는 미국의 전진을 호소하고, 국민에게 국가에 대한 헌신을 부르짖었다. 웅변과 재기에 뛰어나 기자회견 등에서 텔레비전을 교묘히 이용해 이미지를 심는 정치를 하였고, 하버드대학을 비롯한 각계로부터 “베스트 앤드 브라이티스트”라 총칭되는 많은 지식인을 각료로 포섭하였으나 화려한 슬로건에 비해 의회와의 관계는 원활하지 못하였고 내정에서도 그다지 업적이 없었다. 외교면에서는 취임하자 곧 쿠바침공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빈 수뇌회담에서 옛 소련의 최고 지도자 N.S.흐루시초프에게 얕잡히는 등 순조롭지 못한 출발을 하였으나, “평화봉사단”을 창설해 국민의 봉사 정신과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를 결부시킨 일은 환호를 받았다. 62년 10월 쿠바미사일위기 때 핵자랑하는 이 새로운 세대의 미국인들은 이 국민이 항상 이바지하여 왔고 지금도 국내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이바지하고 있는 그 인권이 서서히 와해되어 가는 것을 방관하거나 허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전해야 하겠습니다.우리에게 선의를 가졌든 악의를 가졌든지간에 모든 국민에게 알려야 하겠습니다-자유가 살아남고 번창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대가라도 치를 것이며, 어떠한 짐이라도 짊어질 것이며, 어떠한 고난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친구라도 도울 것이며, 어떠한 적에게도 대항하리라는 것을 알려야 하겠습니다.우리가 맹세하는 것은 이러한 것입니다-그리고 이것만이 아닙니다.문화와 정신의 원천이 우리와 같은, 우리의 오랜 동맹 제국에게 우리는 성실한 친구의 충성을 맹세합니다. 결합하면, 허다한 협조적 사업에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분열되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왜냐하면 사극하고 균열되어서는 거센 도전에 감히 맞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자유국가의 대열에 환영해 마지않는 신생국들에게는 한 형태의 식민적 통치가 사라지고 훨씬 더 잔혹한 압제로 대치되지는 않게 하리라는 것을 맹세합니다. 우리는 그 신생국들이 우리의 견해를 지지해 줄 것을 항상 기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자유를 강력히 지지하고, 과거에 어리석게도 호랑이의 등에 올라탐으로써 세력을 얻고자 하였던 자들은 결국 호랑이 뱃속에서 최후를 마쳤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항상 바랄 것입니다.세계 전지역의 반에 걸쳐 오두막과 촌락에서 살며 집단적 빈곤의 굴레를 부숴버리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는 제국민들에게 우리는 아무리 오랜 기간이 요구된다 하더라고, 그들이 스스로 돕는 것을 돕기 위하여 우리의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그것은 공산주의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 아니고, 우리가 그들의 표를 얻으려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사회가 가난한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면, 일이지만 양측이 다같이 죽음의 원자의 끊임없는 확산에 놀래고 있으면서도, 양측이 모두 인류 최후의 전쟁의 손길을 막고 있는 그 불안정한 공포의 균형을 바꾸어 보려고 경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정중함은 허약함의 징조가 아니며, 성실성은 언제나 행동으로 입증되어야 한자는 것을 양측이 다같이 기억하며-새로운 출발을 합시다. 우리는 결코 두려움에서 협상을 하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결코 협상하기를 두려워하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양측이 다같이, 우리를 분열시키는 문제에 전력하는 대신 우리를 결합시키는 문제들을 탐구합시다.양측이 다같이 처음으로, 진지하고도 세밀한 무기감시통제안을 공식화하고, 다른 나라들을 파멸시키려는 전제(專制)세력이 모든 나라들의 절대적 통제를 받도록 합시다.양측이 다같이, 과학의 공포 대신 과학의 경이를 낳기 위하여 노력합시다. 우리 다함께 성신을 탐험하고, 사막을 정복하고, 질병을 박멸하고, 해저를 개발하고, 예술과 교육을 장려합시다.양측이 다같이, 세계 방방곡곡에서 이사야의 가르침에 유념하여 무거운 짐을 벗겨 주고-압제 당하는 자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결합합시다.협조의 교두보가 불신의 밀림을 밀어낼 수 있다면, 양측 다같이 힘을 모아 하나의 새로운 노력을, 새로운 힘의 균형이 아니라, 강자는 의롭고 약자는 안전하며 평화가 보장된 새로운 법의 세계를 창조합시다.이러한 모든 일이 앞으로 백일 동안에 성취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1000일 동안에도, 현행정부의 임기 동안에도, 또는 어쩌면 우리가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도, 성취되지 못 할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시작합시다.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의 손에 보다 더욱 여러분의 손에 우리의 나아가는 길의 궁극적 성패 여부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세워진 이래로, 미국의 모든 세대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입증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부름에 응한 젊은 미국인들의 무덤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이제 나팔 소리가 또 다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한 보상으로 여기고, 역사를 우리의 행동의 최후의 심판자로 삼아, 하나님의 축복과 가호를 빌며, 그러나 여기 이 지상에서는 하나님의 일이 진실로 우리 자신의 일임을 깨닫고, 우리가 사랑하는 이 고장을 이끌어 나아갑시다.We observe today not a victory of party but a celebration of freedom-symbolizing an end as well as a beginning-signifying renewal as well as change. For I have sworn before you and Almighty God the same solemn oath our forebears prescribed nearly a century and three-quarters ago.The world is very different now. For man holds in his mortal hands the power to abolish all forms of human poverty and all forms of human life. And yet the same revolutionary beliefs for which our forebears fought are still at issue around the globe -the belief that the rights of man come not from the generosity of the state but from the hand of God.We dare not forget today that we are the heirs of that first revolution. Let the word go forth from this time and place, to friend and foe alike, that the torch has been passed to a new generation of Americans born in this century, tempered by waof colonial control shall not have passed away merely to be replaced by a far more iron tyranny. We shall not always expect to find them supporting our view. But we shall always hope to find them strongly supporting their own freedom-and to remember that, in the past, those who foolishly sought power by riding the back of the tiger ended up inside.To those people in the huts and villages of half the globe struggling to break the bonds of mass misery, we pledge our best efforts to help them help themselves, for whatever period is required-not because the Communists may be doing it, not because we seek their votes, but because it is right. If a free society cannot help the many who are poor, it cannot save the few who are rich.To our sister republics south of our border: we offer a special pledge-to convert our good words into good deeds-in a new alliance for progress-to assist free men and free governments in casting off the chains of poverty. But this peaceful revolution of hope cannot
    인문/어학| 2002.06.05| 5페이지| 1,000원| 조회(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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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예술철학-플라톤의 예술과 예술의 정의 평가A+최고예요
    {예술철학-플라톤의 예술과 예술의 정의◆목차◆Ⅰ. 머리말ⅰ.미학과 예술철학ⅱ. Auraⅲ. 구조주의-signifiant과 signifiⅡ. 플라톤-『국가』편과 『법률』편에서의 예술ⅰ. 모방ⅱ. 습득의 예술과 생산의 예술ⅲ. 쾌락적 예술ⅳ. 플라톤에 있어서의 예술적 진리ⅴ. 예술가들의 이상국가에로의 귀향ⅵ.『법률』편에서 묘사된 예술ⅶ. 플라톤 미학의 결론Ⅲ. 예술의 정의ⅰ. 예술 작품이 표상하는 세계ⅱ. 예술의 존재가치Ⅳ. 참고문헌예술철학-플라톤의 예술과 예술의 정의영문과 1999048167 박 주 연Ⅰ. 머리말ⅰ.미학과 예술철학예술이란 무엇인가? 새삼스러운 이 물음의 제기는 다음의 세 가지 이유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첫째, 지적·기술적·경제적 또는 정치적 활동과는 막연하나마 구별되는 예술적 활동이 모든 인간 사회에 있어 왔고 여러 가지 이론이 단편적으로 또는 보다 체계적으로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성격이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둘째, 문학·음악·회화·조각·영화·연극·무용 등으로 대표되는 여러 가지 예술 활동의 공통적이며 동일한 요소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셋째, 최근의 이른바 事件藝術(사건예술) 또는 槪念藝術(개념예술) 등이 나타남에 따라 예술 작품과 그냥 사물과의 관계가 흐려지게 되었다. 흔히 예술은 아름다움과 동일시되거나 혹은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래서 예술에 대한 학문이 美學이라고 불리어지게 된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 혹은 심미적 경험 대상이 오로지 예술 작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면 비록 예술이 아름다움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미학이 반드시 예술 작품에만 관련된 학문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자연 현상을 비롯한 모든 사물 현상, 또는 어떤 종류의 심리 현상까지도 그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넓은 뜻으로서의 미학을 심미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미학을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정립하고자 했던 바움가르텐은 미학을 보다 좁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뜻에서의 미학은 아름다움된다. 그러므로 langue는 개인이 수동적으로 습득하는 산물이며 화자가 수시로 그 중에서 어떤 요소를 선택, 결합하는 기억의 체계이다.나. parole개인적,구체적 언어 행위인 언어 운용을 의미한다. 따라서 parole은 의지적이고 지적인 개인 행위로서 기호를 문장으로 구성하거나 기호들의 의미를 전체 문장의 의미를 구성하도록 결합하는 것이다.parole은 langue의 제약 속에서 자유로운 표현이나 다양한 변이체를 구사한다. 따라서 parole은 기호를 창조하지 못하고 체계와 법칙에 따라 기호를 결합시킬 뿐이다. 그러나 langue와 parole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내포 관계이다. parole은 langue에 선행하여 langue를 형성시켜왔지만 langue가 형성된 다음부터 parole은 langue에 종속된다.)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글을 쓴다. 그래서 말로 표현되면서 개념에 이미 아우라가 묻어들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화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이미 의미를 담고 있다.ⅲ. 구조주의-signifiant과 signifi나는 진짜 의 부재가 바로 예술 작품에 본질적 가치를 부여한다고 본다. 부재하는 본질에 관하여서 제임스의 소설 The Real Thing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이 이야기는 한 화가의 이야기이다. 한 화가가 귀족 생활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데 매우 점잖은 부부가 그에게 모델로 나선다. 그 부부는 살기가 어려워져서 모델 노릇을 자원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화가의 그림이 점점 나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속된 런던 출신의 소녀와 떠돌이 이탈리아 남자를 모델로 바꾸어 보았더니 남녀 귀족을 그리는 그 그림이 생기를 되찾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술이란 현실 의 재생도 아니고 그러한 현실을 모방하는 것으로 해서 창조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전혀 다른 특질을 요구한다. 현재의 경우에 있어서 진짜 라는 것은 유해한 것이기까지 하다. 예술의 영역에서는 작품에 대해 예비적인 것, 작품의 연원을 이루는 것를 찾기 위해 사전을 찾는다고 해도 그 사전에 나타나는 것은 한 기표를 설명하기 위한 수많은 기표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표의 의미를 찾기 위해 수많은 기표를 만나는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게 된다. 따라서 기의는 지속적으로 유보된다. 결국 기의가 완전한 의미로 확정되지 않는다면 텍스트 자체도 확정된 의미체일 수 없다. 한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에 의해 보충되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상호텍스트성이라고 말한다. 한 텍스트의 지시가 그것을 넘어 있는 것을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 그것은 다른 텍스트에 대한 지시일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텍스트는 상호간에 거미집 모양으로 상호교차하여 무한히 확장 가능한 망상 조직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김홍걸이 구속되었다는 한 텍스트가 있다고 보자. 그 텍스트에 관한 어떠한 사전지식도 없다면, 그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그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텍스트들을 다시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김홍걸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가 나오고, 그가 왜 구속되었는 지를 알게 되면, 그와 관련된 사람에 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이 통합되어서 김홍걸이 구속되었다는 텍스트는 이해된다. 그런 상호텍스트성에 의하면, 작가는 죽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난점에 왜 생기는 지를 플라톤을 통하여 주목하면서, 문제해소를 위한 어떤 해결책을 찾기보다 어떤 혼동과 섞임을 구분하여 본성적인 것을 드러내 보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는 모방에 대한 일반적 견해, 그리고 플라톤이 말하는 모방(모상)에 대한 견해, 인간을 매혹시키고 또는 인간을 정화하는 예술에 내재된 힘에 대한 견해, 그리고 존재론이나 인식론과 다른 미(美)자체(최고 미)에 대한 견해를 구분하여 다루어보고자 한다.Ⅱ. 플라톤-『국가』편과 『법률』편에서의 예술플라톤(Platon, 428-348 BC)은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철인왕이고, 철인왕은 곧 철학자라고 말했다. 플라톤에게 필로소피아(philosophia)란 소크라테스의 필로소피아(phil신은 거짓말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따라서 호메로스는 신을 잘못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방적인 예술은 진리와는 동떨어져 있다. 이제 우리는 시인을 배척해야한다고 하는 것은(Ibid, 398a,b) 시가 미메시스(mimesis) 즉 모방(l'imitation)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미메시스로서 기예(술)(art)의 정의는 존재와 진리의 개념과 관련되어있다. 그림 같은 모방의 성질인 미메시스(mimesis)는 기술자(l'artisant)의 모방과 구별해야한다. 플라톤의 작품들에서 테크네(기예(술), art)는 지식, 즉 반성하고 추론하는 지식을 지칭한다(『고르기아스』편, 346b, 『파이드로스』편, 260e). 그리고 『필레보스』편(56a)에서는 기술의 분류에 대한 설명이 있다. 평균(절도)과 수의 예술로서 건축을 말하고, 경험 직관 추측의 예술로서 음악, 의학, 농업을 구분한다. ‘실재(r el)를 있는 그대로’란 형상에 대한 모방으로써, 존재적 측면에서 이데아들에 대한 수학적 도형과 관계이고, 인식적 측면에서 노에시스와 디아노이아(추론적)의 관계이다. 그런데 실재가 나타는 대로란 의미는 현실적 대상(objet actuel)인 자연물이 현상으로(en apparence)나타나는 대로 모방이며, 이것은 존재론적 측면에서 사물의 모형과 그림자 관계이고, 인식론적 측면에서 피스티스와 아이스테시스 관계이다. 플라톤이 화가를 비난한다면 디아노이아를 통한 모방(mimesis)이 아니라, 아이스테시스를 통한 모방을 비판한다. 그러나 조각과 건축에는 디아노이아 측면이 부각되고, 회화에는 아이스테시스 측면이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다. 건축을 평균[비례]와 수로 파악하는 기술(예술, techne)로 간주하는 『필레보스』편(56a)을 상기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런 두 측면에 관한 논의를 회화론의 예술사에서 검토해보면, 선(디아노이아)과 색(아이스테시스)관계가 서로 반전의 기회를 갖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 물론 자연학에 예술에 대한 플라톤의 견해는, 예술은 철학적 진리를 나타내는 상징적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한낱 임의적이고 통제되지 않은, 따라서 진리와는 동떨어진 무절제한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나 조금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예술사라는 구체적인 사실을 반성해본다해도 여기에는 어느 정도 난점이 있다. 추상화, 현대의 갖가지 형태의 조각, 현대 무용이나 음악에 주의를 기울여 볼 때, 모든 예술 작품이 표상이라 전제한다 해도 모방, 혹은 모사로서만의 표상이란 관념은 수긍하기 어렵다. 바꿔 말해서 예술 작품들이 표상이라는 속성소를 소유하고 있다고 할 때 그 표상이 모방·모사란 뜻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무슨 근거에서 예술이 진리를 내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이데거에 의하면 예술은 일상적 혹은 과학적 진리보다 더욱 근본적인 진리를 밝힌다고 하였다. 즉, 예술적 진리가 더 우월하다는 얘기다. 메를로 퐁티나 리드도 예술은 발생학적으로 가장 근원적인 진리라고 했다. 예술 작품이 과학적 논문이나 갖가지 기사 보고서와 똑같은 의미에서 실재하는 사물 현상이나 혹은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떤 의미로, 어쩌면 보다 더 근본적일 수 있는 의미에서, 진리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어야 할 것이다.ⅴ. 예술가들의 이상국가에로의 귀향플라톤이 모방적 예술가들을 자신의 이상국가에서 추방하고 있지만, 『국가』편에서 자신의 이상국가 속으로 다시금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플라톤은 시의 매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가 즐거운 것일 뿐만 아니라 도시와 인간의 삶에 유용하기도 하다는 점을 증명해주는 어떠한 논변이라도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플라톤은 “서정시나 또 다른 운율을 옹호하는 일이 끝난 후에는 추방에서 되돌아오게 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것에 덧붙여 그는 모든 형태의 예술을 일률적으로 이상국가에서 추방하지 않고 어떤 형태의 예술의 경우에는 이상국가에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다.
    인문/어학| 2002.06.05| 18페이지| 1,500원| 조회(1,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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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감상문] Love! Valour! Compassion!
    Love! Valour! Compassion!영문과 1999048167 박주연이 영화는 동성애가 아닌 동성애자들에 관한 영화이다. 어떻게 동성애를 하는가, 하는 이성애자들의 시각에서 본 영화-Ramon과 Bobby의 성적인 장면은 그런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가 아니라, 동성애자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약간 극적인 캐릭터들을 내세워 말하고 있는 영화인 것이다. gay men 이 친구와 연인으로서 어떻게 성장하는 것을 다루는지 말하고 있고, 어떤 gay든 거쳐야하는, 혹은 있을 수 있는 issue를 다루었다.이 영화는 이미 두 명이나 걸려있는 HIV virus 같은 그들의 집합적인 시련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개인적인 캐릭터들의 버릇이나 어떤 운명의 급변같은 것을 잘 묘사하고 있다. 서로 얽혀있는 관계인 8명의 gay men은 여름, Gregory의 집에 초대를 받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를 치료하게 된다. 카메라는 그들의 우정과 관계를 따라간다. 8명의 남자는 한정된 장소 안에서 거의 매 쌍이 관계에 있어서의 변화를 본다. 몇몇은 서로 관계가 있고, 몇몇은 실제로 그랬다. 또 몇몇은 서로를 싫어한다. 그러나 미움도 사랑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말처럼, 그들은 서로를 거의 완전히 마음에 둔다.이 영화의 제목에 관해서 처음 생각해보았을 때는 단지 gay men의 사랑이 용기 있는 것이라는 말인가, 하는 추측만을 했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시선으로 gay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극적인 캐릭터나 문답식 대사는 신랄하게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제목에 나타나있는 주제를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일종의 치료라는 것을 느꼈다.이 영화의 다양한 부부 사이의 Love는 사실 거의 sex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어둡고 열정적인 순간에 나오는 동물적이고 호색의 행위이긴 하지만, 그것은 몇 백년동안 우리가 탐했던 것이고, 어찌보면 이 세상의 어떤 것들보다 더 부드럽고 기본적인 인간의 상호 작용일 것이다. 그것은 가장 예민한 것이기도 하다. Valour는 virus를 가장 친밀하게 다루는 인물들의 대담한 이성이다. 아프고 길어지는 죽음에 직면하여서도 아름답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Compassion은 각각의 gay men이 다른 사람들과의 사소한 차이를 서로 고쳐나가는 연민이다. 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려운 시간 동안 내내 서로를 조용히 도와주는 것 때문에 이 8명의 진절머리나는 여행가들은 어떤 의미에서 서로에게 속박되어 있다.Love! Valour! Compassion!의 성취는 일반적으로 봤을 때 잘 된 것 같다. 악의에 찬 John과 그의 죽어가는, 여지껏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던 쌍둥이 동생 James의 화해가 그렇다. 1인 2역이어서 둘이 같이 있었던 장면을 일부러 많이 내보이지 않은 것 같지만, 마지막 침대에 누워있는 James와 John의 대화라던가, 춤을 추다가 쓰러지는 James의 곁을 지키는 John의 모습에선 이미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James가 영국에 돌아오고, 자살한다는 것을 narration을 통해 알게 된다. Buzz의 고민도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Buzz는, 그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이 거기에 있지 않을 것이라던가, 그들이 그를 필요로 할 때 그가 그들의 친구로 거기에 있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이미 HIV+인 Buzz의 두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커플은 Arthur와 Perry였다. 그들은 부부가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를 보여준다. gay 역할로서의 그들의 인생은, gay로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모든 커플들에게 모델화되어야하지 않을까. Ramon의 유혹을 이기려고 하면서도 빠져드는 Bobby의 모습이나, 그런 Ramon과 Bobby를 질투하는 Gregory의 모습도 일반 커플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gay라고 따로 규정짓는 우리가 더 이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후감/창작| 2002.06.05| 1페이지| 1,000원| 조회(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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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학리포트] 여성학적인 관점에서 바라 본 가족 평가B괜찮아요
    Ⅰ. 들어가면서.나는 결혼을 한 사람으로써 다른 학생들과는 다른 가족구성이라고 본다. 그것을 일일이 다 분석해보면,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가족들이기 때문에,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게 가장 영향력을 미친 친정집의 가족을 예로 분석해보았다.Ⅱ. 자신의 가족구성과 가족의 가치관, 문화 분석.할아버지, 아빠, 엄마, 나, 남동생, 여동생.-이것이 우리 가족의 구성이다.그러나 작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구조기능주의적 가족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아빠는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 오심으로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시고, 엄마는 주부로써, 아내로써, 어머니로써 살고계신다. 즉, 생계유지자인 남편과 전업주부인 아내로 이루어진 가족이다. 엄마가 하는 무급의 가사노동이 당연한 것이었으며, 어쩌다가 식구들이 엄마를 도와 집안 일을 하는 것은 대단히 특별한 일이었다.아빠는 전형적인 보수파 성격의 남자이시다. 제사상을 보는 것도 엄마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붕괴된 것은 7년 전 쯤 엄마가 아프시면서였다. 엄마는 수술을 요할 정도로 심각하셨지만, 집에서 밥을 굶을 자식들을 생각해서 병원조차 제대로 가지 못하셨다. 그렇게 해서 아빠는 사소한 집안 일-예를 들면, 부엌 일-정도는 도와주신다. 그러나 주로 첫째 딸인 내가 집안 일을 도맡아했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주부의 일은 한도 끝도 없이 힘든 것임을 체험했다.엄마 역시 전형적인 주부이자, 엄마이다. 내 자식들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에, 좋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해 먹이고, 해 입히셔야 했다. 그런 엄마의 빈 자리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느낄 수 있었던 계기도 엄마가 편찮으시면서였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서 집에 안 계실 때마다 내 동생들은 늘 불안해했고, 학교에서 사고를 치곤했다. 혹은 학교를 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엄마가 안 계신 그 며칠 사이에 집안은 전쟁이 휩쓸어간 자리보다 더 초토화되어 있곤 했다. 그동안 우리 친정집은 여성이 가정에서 자녀와 남편을 보살피는 역할을 한다는 것에 충실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엄마가 많이 나아진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빠가 많이 가정적이 되시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정의 생계를 꾸리시는 몫은 고스란히 아빠 것이며, 엄마는 여전히 집안 살림만 하시며, 아빠가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오시는 것을 감사해하신다. 오히려 엄마는 아빠가 부엌 일아던가 청소같은 집안 일을 하시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엄마가 집안 일외에 신경을 쓰시는 것은 자식들의 교육문제였다. 자식들 셋을 대학보내는 일에만 전념하셨기 때문에, 아이들이 모두 커버린 지금은 갑자기 사라진 열정(?)에 허전해하고 계신다. 아이 셋이 다 대학을 가 버린 지금, 각자의 삶을 살겠다고 엄마를 나 몰라라하면서 엄마의 빈 시간은 외롭고 허전하다. 지금 엄마는 우울증 초기 증세를 보이고 계신다.엄마와 아빠는 특히 유교적인 성격이 강하셔서 제사상을 봐주는 사람은 아들뿐이기 때문에, 남동생을 가장 편애하시는 편이다. 여자는 집에 일찍 들어와서 조신하게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셨기 때문에,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에 들어가야만 한다. 아르바이트도 과외 이외의 것들-서빙이라던가, 나레이터 모델같은 것-을 하면 집에서 쫓겨나는 날이다. 아들은 외박을 해도 상관없다. 남자가 밖에서 술을 마시고 늦을 수도 있다는 사고방식이셨다. 그러나 그것이 싫어서 내가 일찍 시집 간 이후로 여동생이 엄마와 아빠를 상대로 투쟁을 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귀가시간이 12시를 넘어서고,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간다. 친구네 집에서 자고 외박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여동생은 아빠에게 얻어맞았지만, 한 번도 잘못했다고 빌지를 않았다. 여동생은 아빠와 엄마가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해줄 때까지 계속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집 역사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아빠가 여동생과 타협-아빠와는 대화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명령으로 끝이 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타협이라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을 하신 결과, 여동생의 귀가 시간은 저녁 10시 30분이 되었다. 그리고 특별히 더 늦을 시에는 집에 전화를 해서 귀가시간을 알리기로 결정되었다. 그것은 언제나 학교가 끝나면 집에 바로 들어가야했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여동생의 투쟁의 결과였다.Ⅲ. 어머니의 성장배경과 결혼, 결혼 후 생활을 분석.엄마는 외할머니께서 결혼하신 지 7년만에 간신히 낳으신 첫째 아이였다. 그 시대에 딸이라고 아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 것이 경축인 셈이었다. 집안에서 첫째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모두가 기다렸던 만큼 사랑만 받고 자라셨다. 엄마 밑으로 외삼촌들이 계셨지만, 한 번도 차별대우를 받으신 적이 없었고, 엄마의 말이라면 모두가 들어주었다고 했을 정도로 공주처럼 자라셨다. 그러다가 결혼하신 이후로 엄마의 삶은 완벽하게 바뀌었다. 아빠는 2대독자셨다. 워낙에나 손이 귀한 집이라고 했다. 게다가 할머니가 아주 대단한 시어머니셨다고 했다. 첫째로 딸인 나를 낳자, 집에서 구박이 아주 심했다고 했다. 게다가 아빠가 엄마와 결혼한 이후로 1년동안 직장을 갖지 못하자 사람이 잘못 들어와서 그렇다고 별별 소리를 다 들었다고 하셨다. 아빠 밑으로 고모들과의 나이 터울이 워낙에나 많아서 엄마는 엄마보다 한참이나 어린 시누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어려우셨다. 한 끼 식사를 먹기 위해 엄마가 차린 밥상은 식구별로 한 번 씩 다 차려야 했었다. 결혼 후 한 마디로 엄마의 생활은 식모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깐깐한 성격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지금껏 모시고 살다가 작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드디어 엄마는 시집살이에서 풀려나셨다. 그러나 엄마는 알게모르게 할머니의 성격과 자신의 시댁이었던 집의 분위기에 그대로 흡수되고 마셨다. 언제나 아들, 아들 타령을 하신 할머니와 똑같이 남동생을 가장 우선으로 치셨고,-본인은 한 번도 그렇게 취급받지 않고 자라시었으면서도-여자는 시집을 잘 가서 남편 잘 만나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셨다. 당신께서 결혼하시면서 간호사라는 직업을 그만두신 것을 내내 안타까워하셨으면서도 말이다. 여자가 할 일, 남자가 할 일을 늘 구분지으시고 아빠가 부엌에 들어오는 것을 지금도 싫어하신다. 엄마가 정 아파서 아무 것도 하시기가 힘드실 때는 말만한 딸년들이 일을 해야지, 아빠가 뭔가를 하시는 것을 절대로 그냥 보고 계실 수 없으시다. 그 딸들이 과제 때문에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딸들이 하는 일은 과히 중요하지 않게 여기셨다. 그래서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서운함을 토로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지나와서 생각해보니, 엄마가 외가에서 사신 것보다 시집 와 사신 햇수가 더 많으시다. 엄마는 당연히 시집와서 이 집 귀신이 되어야 했을테니 예전의 사고방식을 다 버리실 수 밖에 없으셨을게다. 사람의 가치관이란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Ⅳ. 어머니 친정(자신의 외가)의 분위기를 자신의 가족과 비교.180。다르다. 거기서 여성 차별의 요소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엄마의 의견이 무시된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언제나 나이 순으로 의견의 경중을 구분했다. 우리 집은 언제나 아빠의 의견만이 최고였으며, 남동생이 나이를 먹으면서 그 아이의 의견이 집안의 결정권을 가지게 되었다. 여동생의 귀가 시간이 늦어진 것도 남동생이 옆에서 한 마디 했기 때문으로 풀이되어 질 정도이다. 외가쪽은 농삿일을 하셨기 때문에 여성이라고 집에서 노는 것이 아니었다. 할 일으 늘 있었고, 각자가 맡은 농삿일에 대한 서로의 책임과 권리가 잘 분배되어 있었지만, 우리 집은 생계의 책임은 언제나 아빠가, 아이들 교육문제는 언제나 엄마가 책임지셨으며, 동생들의 숙제는 언제나 첫째인 내가 책임져야 하는 식이었다. 결국 가장 연소자인 여동생과 집안의 후계자인 남동생은 그 어떤 책임의식이 없이 자란 셈이다. 내 동생들은 집안 일을 도와본 적도 없고, 아르바이트를 해 본적도 없다. 아빠가 힘들게 벌어오는 돈이 당연한 것이며, 엄마가 힘들게 밥을 해 주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곤 한다. 바람직한 가족은 가족 성원 중 어느 누구도 집단의 복리라는 이름으로 희생당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 집은 엄마와 아빠가 가장 많은 희생을 하고 계시며, 나는 첫째라는 이름으로 몇 가지 희생을 했다고 본다. 유교적인 생각으로 개인의 성장과 발달이 억압되지도 않았어야 하는데, 우리 집은 언제나 아들 위주인 사고 방식으로 현대사회에서 여자아이들의 자아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상호간의 대화를 통해 이해하고 협력하고 상호 존중해주어야 하는데, 언제나 아빠가 전하는 명령어조에 온 가족이 그대로 따라야만 했다. 대화는 없었다. 그 모든 것이 외가쪽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친가쪽의 영향이다.Ⅴ. 가족에 대한 이론적인 시각, 예를 들면 구조기능주의적 시각과 여권론적 시각을 참조하여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여권론적 관점에서 분석. 어머니와 아버지는 평등하다고 생각되는가?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회과학| 2002.06.05| 4페이지| 1,000원| 조회(1,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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