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논란을 통해서 본 고구려와 발해목차1. 동북공정이란?2. 동북공정의 실체(1) 동북공정의 배경(2)동북공정의 내용(3)동북공정의 목적(4) 동북공정 현 진행 상태3. 동북공정에 나타난 중국학계의 주장4.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측의 반론5. 동북공정에 대처하는 한국의 자세와 대응방안(1) 현재 한국의 대응방안(2) 앞으로의 대응방안동북공정 논란을 통해서 본 고구려와 발해1. 동북공정이란?'동북공정'이란 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의 줄임말로서,중국 국무원 산하의 사회과학원 직속 '변강사지연구중심' 에서 주관하는 국책 프로젝트를 말한다. 이는 앞으로 동북아시아의 허브로 작용할 동북 3성 즉, 지린성[吉林省]·랴오닝성[遼寧省]·헤이룽장성[黑龍江省] 지방의 안정과 개발을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프로젝트이다.동북공정의 예산규모는 동북 3성이 각각 매년 25만 위안씩 총 375만 위안, 중국사회과학원이 매년 25만 위안씩 총 125만 위안, 중앙정부(재정부)가 매년 200만 위안씩 총 1000만 위안을 출연하여 합계 1500만 위안(한화 약 25억원)에 달한다.??#출처 http://www.gscass.net.cn/'동북공정'을 우리가 문제라고 인식하는 이유는 이 부분의 연구계발이, 한국의 역사인 고구려사에 대한 왜곡을 가하여 중국사의 일부로 끌어들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만약 고구려사가 중국사의 일부로서 편입된다면, 한국사의 시간적 범위는 크게 줄어들고, 공간적으로는 한반도의 한강 이남까지로 축소되는 결과를 맞는다. 뿐만 아니라, 한국사를 이루어왔던 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기도 한다. 이는 한국의 역사적 정체성에 큰 위협을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국가의 주도로서 이러한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는 없다.여기서는 주로 '동북공정'이라는 것의 실시 배경이나 원인에 대해서 조사하고, 중국의 논리가 무엇이며, 고구려사가 왜 한국사인가를 밝히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둘 것이다.2. 동북공정의 실체( 발견되었고 여명 문화로 명명되었다. 이는 신석기 시대 동북방 홍산 문화의 후속 문화로 초기 고구려의 유적들이 산재한 지역에서 가까운 통화 현에서의 유적들, 그리고 고구려의 특징적 묘제인 적석묘군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이다. 이 적석묘들은 신석기 시대 우하량 지역의 홍산 문화 적석묘와 고구려 적석묘를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계단식 피라미드인 적석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고구려를 세운 부여족의 연관성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단 한 번의 신문 보도 이후 함구하고 있다. 이런 중국의 태도는 만주 지역을 둘러싼 복잡한 국가 전략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여덟째, ‘하산주단대공정’과 ‘중화문명탐원공정’* 9.5, 10.5 계획이란?9.5계획은 1996~2000년까지 이어진 9차 5개년 계획으로 동북공정을 위한 밑그림인 ‘하산주단대공정’을 통해 존속연대에 대해 일치를 보지 못했던 하, 상, 주 3대의 존속연대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통일된 견해를 도출하였다. 대대적인 발굴과 연대 측정으로 최종적으로 하, 상, 주 삼대의 존속 연대를 확정하는데 이는 중국의 역사를 무려 1229년이나 끌어올린 것이다. 10.5계획은 2001~2005년까지 이어진 10차 5개년 계획으로 주된 목표는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이다. “민 족의 응집력을 증강하고 애국주의를 널리 고양시킨다.“와 같이 개혁 개방과 현대화를 이루는데 강력한 사상적 밑받침을 하기위해 정신적인 동력과 지력을 제공하려는 것이다.‘하산주단대공정’을 통해 동이족은 한국 민족의 뿌리며 상나라는 동이족이 만든 것이다. 또한 한자도 동이족의 산물이기 때문에 우리민족의 것이라는 식의 일부 남북한 역사 민족주의 논리에 쐐기를 박았다.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9.5계획의 한 부분인 하상주단대공정이 성공리에 끝나고 그 연장선상에서 10.5계획의 한 부분인 동북공정이 기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산주단대공정을 마친 중국은 2000년부터 그 후속작업으로 ‘속으로 동일한 계통이 아니었다.중국학자들은 예맥 족과 한민족의 연관성을 없애기 위해 ‘예맥족은 중국 소수 민족 중 하나’라는 가설을 만들었다. 중국은 족원을 BC 3000 3황5제 중 황제의 자손인 전욱 고양(高揚)에서 찾아 고구려가 중국 민족의 후예임을 강조하고 있다. 전욱이 요서지방 고양에 수도를 두었다가 중원으로 이동할 때 일부가 동쪽으로 이동해 고구려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노합하~대릉하 유역의 홍산(紅山)문화를 고양족의 산물로 설정하여 고구려 선인이 이곳에서 연원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근거로 『일주서』서주의 축성기념식에 고이(고구려)가 참석했다는 것, 고(高)의 유사성, 요서지방의 돌무지무덤과 고구려 돌무지무덤이 일치한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고구려 적석 무덤은 중국의 신석기 문화인 흥산문화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한다.중국의 의도대로 예맥족이 중국 소수 민족 중 하나로 전락하게 되면 고구려 왕조 역시 독립왕조가 아닌 중원왕조와 종속관계를 갖는 중국 지방 정권정도로 추락하게 되고, 한국사와의 연관성이 사라지게 된다. 또한, 고구려와 신라, 백제의 주민 속성과 생활습속, 문화 등은 서로 다른 계통이라고 보아 고구려는 삼국사에 속하지도 한국사에 속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사기에 나타난 삼황오제 중 고양족 문화에 탄조난생자(呑鳥卵生子),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화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탄생설화와 들어맞다며 고구려인들을 중국민족의 후예라 주장하고 있다.영토에 관한 중국학자의 의견을 살펴보면, 기원전 3세기에는 모두 연나라의 영역이었고, 기원전 2세기에는 연나라 위만이 위씨조선을 건립했는데, 위만이 한나라의 위탁을 받아 그 지역을 관할했다는 것이다. 고구려는 기원전 108년에 벌써 한나라 현토군의 한 현이었고, 졸본부여 역시 현토군이며, 기원전 37년에 주몽이 고구려 5부를 통일했는데, 이 역시 모두 한나라 현토군의 영토였다는 것이 중국측의 주장이다. 중국은 이 모든 것이 중국 영토에서 진행됐으니 오늘의 조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랑캐는 중화민족이 될 수 없다는 차별화에서 나온 것이다. 전통적인 화이사상이 주변의 소수민조와 중앙을 차별하기 위해 존재했다면 ‘통일적다민족국가’라는 기치아래서는 화이사상이 주변의 소수민족을 중화민족 안으로 끌어들여 하나로 만든다는 의미로 변화된다. 소수민족들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역사이며 소수민족과 관련된 역사도 중국 역사가 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적석총이란?적석묘 혹은 적석총으로 불린다. 분포지역은 내몽골 동부에서 요서, 요동반도 일대, 특히 평양천도 이전의 고구려 중심지인 집안시 일대에 수천기, 여명문화 유적이 있는 통화현 일대에 수 백기, 한성 백제시기의 송파구 석촌동 일대, 일본에도 고구려, 백제유민들이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1500여기가 산재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지구라트와 유사한 구조를 하고 있다. 특히 동북아의 적석묘는 점점 좁아지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으면서 윗부분이 평평하게 되어 있다는 점, 평평한 윗부분에 제사를 위한 사당 등의 건물이 있었을 거라 추측되는 점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와 매우 유사하다. 곧 적석묘가 발견되는 지역은 기마 민족의 이동 경로와 연결되어 있고 고구려 계통의 민족 이동과도 바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석묘를 고구려의 대표 무덤양식이라 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복원한 단군릉도 고구려 적석묘를 본뜬 것이고, 집안의 장군총도 가장 대표적인 고구려 적석묘 양식이다.2) 장소와 건국집단.중국의 논리는 다음 기록에서 온 것이다.“(한나라)무제가 조선을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현으로 만들어서 현도에 속하게 하고 북 치고 피리 부는 악공을 하사하였다” 『후한서』“ 한나라 대 북 치고 피리 부는 악공을 하사하였고, (고구려는) 항상 현도군에 나아가 (한나라의)조복과 의책을 받아갔는데, 그에 따른 명단은 (현도군의) 고구려현 현령이 문서를 관장하였다. 그 뒤에 차츰 교만 방자해져서 다시는 (현도)군에 오지 않았다. 이에 동쪽 경계에 작은 성을 쌓고 조복과 의제를 제외하고 고구려만 포함시킬 수 없기 때문에 역시 설득력이 없었다. 쑨진지는 또다시 2004년 백제는 고구려왕처럼 중국 황실로부터 지속적으로 작위를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중국에 속한 국가로 볼 수 없다는 주장으로 백제 딜레마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중국 황실과 고구려, 백제 왕실간의 관계에 대한 기록을 대강 훑어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고구려에 비해 오히려 백제가 중국 황실과 가까이 지내는 데 훨씬 적극적이었다.4) 고구려 붕괴 후 유민의 거취고구려 멸망 후 신라로 내려간 사람보다 중국인으로 동화된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민 유입의 많고 적음이나 귀속된 땅의 넓이가 아니라 그들이 자의적으로 자신의 거취를 선택했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각지로 흩어져간 고구려 유민들이 가지고 있던 자의식이다. 유민들의 거취 결정시의 자의성 여부를 보면 중국으로 간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의적인 선택이었다. 이는 바로 당보다는 신라에 더 친연성을 느꼈다는 것을 말해주며 이 친연성이란 지리적인 근접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면과 문화적인 측면, 종족적인 측면에서 공유점이 있기 때문이다.또한, 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평양성이 함락된 후에도 고구려 지역에는 상당수의 주요 성들이 여전히 저항하고 있었다. 이적의 보고에 의하면 669년에 이르기까지도 신성주, 요동성주, 안시성 등 11개의 성이 아직 항복하지 않았고, 또 압록 이북의 성 7개가 도망했다고 한다. 이 해 2월에는 보장왕의 위 손인 안승이 4천여 호를 이끌고 신라에 귀부하기도 했다. 보장왕이 당에 항복했음에도 구하고 요동 지역의 대표적인 큰 성들이 항복하지 않았고 이미 점령한 지역에서도 성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해 버리는 등 당의 지배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인들은 당나라에 속해 있으면서도 고구려인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당나라도 이들을 시종 전쟁포로로 대접했다. 또한, 고구려인들은 끈질긴 부흥운동을 펼쳤다.록이다.
목차? 골프란? , 골프 용어 -P2? 골프의 역사 -P3~9⑴ 서양 골프의 역사⑵ 한국 골프의 역사? 클럽 -P9~30? 그립 -P29~39? 자세 -P39~47? 스윙 -P47~79? 그린 -P79~81? 구질 -P81~91? 골프 용품 -P91~95⑴ 골프 볼⑵ 기타 용품⑩ 골프 전 준비 운동-P95~98⑪ 골프의 장점 -P98? 골프란?코스 위에 정지하여 있는 볼을 클럽으로 쳐서 정해진 홀에 넣어 그때까지 소요된 타수로 우열을 겨루는 경기로 구기경기에 속한다. 기원은 스코트랜드, 네덜란드이며 한국에 도입된 시기는 1890년경이다.라운드(ROUND)코스를 도는 것. 18개 홀을 단위로 한 바퀴 도는 것을 1 라운드라고 한다. 또 18홀의 절반인 9홀을 플레이하는 것을 하프 라운드라고 부른다. 코스를 도는 것을 대부분의 골퍼들이 라운드를 라운딩으로 잘못 말하고 있다. 라운딩이라는 말은 골프용어에 없는 말이다.홀(HOLE)그린에 뚫려있는 구멍을 ‘홀컵’이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홀과 컵은 같은 의미이다. 마치 ‘역전앞’이나 ‘처갓집’이란 중첩 표현법과 같은 것이다. 홀(HOLE)이나 컵(CUP) 둘 중 하나만 사용해야 한다.핸디캡(HANDICAP)핸디캡은 기술을 균형 잡기 위해 정하는 그 사람의 기량이 코스의 기준타수와의 평균차를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핸디캡’을 줄여 ‘핸디’라고 하고 있지만 이는 틀린 표현이다. ‘핸디가 얼마냐?’가 아니라 ‘핸디캡이 얼마냐?’가 맞는 표현이다.티오프(TEE OFF)와 티업(TEE UP)티오프(TEE OFF)란 볼이 티를 떠났다는 의미, 한마디로 티샷을 하는 행동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많은 골퍼들이 티업(TEE UP)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티업은 골을 치기 위해 티펙 위에 공을 올려놓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다. 따라서 ‘티업 시간이 9시야’라는 표현은 틀린 것이다.라이(LIE)라이(LIE)는 낙하된 공의 위치 도는 상태를 말한다. 말 그대로 공이 놓여진 상태를 뜻하는 것이지 공이 굴러가거나 움직이는 모렸지만 지금은 그래파이트 샤프트도 워낙 토오크가 낮게 제작된 것이 있기 때문에굳이 스틸을 선택하지 않아도 무관하다..... 특히 초보자들의 경우 정확한 것이 좋다는 말만 믿고 스틸 샤프트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선택일수도 있다......힘이 아주 좋거나 젊은 나이에 골프를 시작한다면 스틸을 선택해도 무관 하지만 그 외에는 그래파이트를 선택하는 것이 무난ㄴ하다고 본다.채를 구입할 때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점은 샤프트의 강도인데 크게 나누어 regular, stiff(혹은 firm), x-stiff등 으로 나뉜다. 스팁이나 엑스트라 스팁은 프로들이나 싱글 핸디캡인 사람들이 많이 쓰는데 힘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강한 샤프트를 선택하는건 잘못된 것이고보통 아마추어들은 레귤러 샤프트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2. 헤드헤드는 크게 단조와 주조로 나뉘는데 단조는 말 그대로 하나의 쇠를 꺆아 만든 것이고 주조는 주물로 제작된 것을 말하는데 차이점은 단조가 타구감이 좋다는 것 이외는 별로 다를게 없다. 대개 단조는 헤드 면에 "forged"라고 표시되어있다.... 그러나 지금은 단조, 주조 어느것이 좋은가 하는 개념은 없어졌다. 옛날에는 단조를 핸드메이드 라고 인기가 있었는데 지금 전세계 유명 브랜드 에서 만드는 골프클럽에 대부분이 주조공법을 선호하기 때문에 단조, 주조에 의미는 크게 없어졌다고 보면 된다.예전엔 헤드 뒷면이 파이지 않은 블레이드 타입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뒤가 움푹 파여져 있는 캐비티 백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아직도 옛날에 제작된 블레이드 타입의 골프채들이 중고 시장에 많이 나와 있는데 초보자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 타구면(sweet spot)도 작고 치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다. 헤드의 사이즈도 일반, 미드사이즈, 오버사이즈등으로 다양해 졌는데 버사이즈는 스윗스팟도 넓고 잘못 맞았을 때도 거리손실도 그다지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 초보자들에겐 더 없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페이스면을 티탸늄이나, 머레이징등 다른 신소재로 만는 중요 요소는 중심 높이,유효 타면, 중심 심도, 중심 거리를 들수 있다. 이런 요소들은 우리가 골프클럽의 완성품을 보고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대형화된 티타늄 헤드는 헤드 안에 무게 변환을 위한 이 물질을 정착하기 어렵기 때문에 형상을 잘 살펴보면 알 수 있다.(1)중심 거리 - 티타늄 드라이버의 중심 거리는 32 ~ 33mm부터 38 ~40mm정도다. 너무크면 비거리에 도움을 주지만 방향성은 떨어진다. 또 너무 작으면 비거리에서 손해를 보기 때문에 페이스 현상이 샬로우 형태로 중심 거리가 큰 헤드는 클럽 무게의 결량화 정도와 체이스 각을 고려해 선택해야 한다.(2)중심 심도 - 메탈 드라이버의 중심 심도는 30mm 미만이었지만 티타늄 드라이버는 36mm 전후로 월등히 커졌다. 중심 심도가 클수록 스위트스폿이 넓어지고 방향의 안정성이 좋아지며 어퍼블로 스윙 형태로 임팩트 되는 드라이버 스윙의 특성상 탄도는 높아지며 백스핀량도 증가된다. 헤드 스피드가 빠른 로우 핸디 캐퍼는 중심 심도가 너무 큰 것을 사용하면 백 스핀량이 많아지고 탄도가 지나치게 놓아져 비거리를 손해 보며, 바람 등의 외부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3) 중심높이 - 최근 티타늄 드라이버의 중심높이는 22 ~ 24mm부터 28 ~ 30mm 정도인데 낮을 수록 볼을 쉽게 뛰울 수 있지만 탄도가 높아지고 백 스핀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비거리는 떨어질 수 있다. 어는 정도 이상의 헤드 스피드를 갖는 골퍼라면 티업해서 샷을 하는 드라이버 특성상 다소 높은 것이 비거리에 도움된다.(4)유효타면 - 유효타면은 헤드 페이스의 중심점부터 페이스 상단까지 이어진 평면으로 사실상 볼이 중심점에 맞는 것보다 페이스가 수직 방향으로 원을 그리기 때문에 볼의 탄도가 높고 기어효과의 원리상 백 스핀량이 감소된다. 때문에 볼을 임팩트시켜야 할 가장 좋은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상적인 페이스는 페이스가 높은 딥 페이스이면서도 무게 중심의 높이가 낮으면 이 범위는 커지는 것이다.아이언 선택요령골프클럽을 선택할 때성분은 깨끗이 닦아줘야 한다. 미지근한 물과 중성세제로 잘 닦은후 그늘에서 말려줍니다. 특히 햇빛차단제등과 같은 로션이 묻은 손으로 그립을 잡는것은 그립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가끔은 그립 솔벤트를 헝겊에 묻혀 그립을 닦아주면 원래의 그립 재질을 회복시켜준다.4.그립은 소모품골프클럽의 구성은 헤드,샤프트,그립입니다. 이중에서 그립은 소모품이란 사실을 알아야한다.. 당연 그립의 관리는 신경을 써야겠지만,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그립은 정기적으로 교환해 줘야한다.그립상식-그립의 중량그립의 중량은 보통 32~60그램 정도입니다. 모델에 따라 특성에 따라 다양합니다만, 일상적으로는 40~55그램정도가 보통이다.그라파이트 샤프트를 사용하면서 클럽 전체의 중량을 가볍게 하는 경향으로 최근에는 그립 역시 가벼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립을 교환하기 전에는 기존 골프클럽에 끼워져 있는 그립의 중량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립을 벗겨내어 전자저울로 중량을 확인하는 것이 괜찮은 방법입니다. 골프클럽에 변화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비슷한 중량의 그립으로 교환을 해야 한다. 보다 가벼운 그립을 사용 시는 상대적으로 헤드부분의 중량이 무거워져, 스윙웨이트가 무거워 집니다. 반대로 무거운 그립을 사용 시, 스윙웨이트는 가벼워 집니다.그립중량 4그램당 스윙웨이트 1단계가 변한다. (예를 들면,,50그램 그립의 클럽이 D1 이었는데,46그램의 그립으로 교환을 했다면 스윙웨이트는 D2로 한단계 무거워 집니다.) 그립교환시 허용되는 중량은 약 4그램입니다. 스윙웨이트 1단계 정도의 차이는 민감한 골퍼일 경우에만 느낄수 있습니다. 그립을 선택 시는 제품의 표준중량을 비교한후 그립을 선택해야한다.그립상식-그립사이즈그립을 구입하시는 분들은 꼭 한번 읽어보셔야 하는 부분 그립의 사이즈를 결정하기위해서 점검해야할 사항은1)손의 크기 측정,2)클럽 샤프트 굵기 확인3)그립의 굵기와 중량1.손의 크기를 측정해봅니다.손의 크기는 세번째와 네번째 손가락의 길이로 표시할수 있다. 세번째와 네번째로 증대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볼이 아무 곳으로나 날아가 버린다.④ 다운스윙탑어브스윙은 신체의 감아올리기가 최대로 되는 장소 즉, 정점이다. 따라서 다음은 한번에 되돌릴 것을 기다리겠지만 이 경우에 되돌리는 순서가 틀리게되면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만다. 많은 미스의 예가 다운스윙의 순간에 볼을 향해서 우측 어깨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이것은 얼핏 볼을 멀리 날리는 파워가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는 이 액션이야말로 힘의 로스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다 스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임팩트에 있어서 클럽헤드의 스피드이다. 탑어브스윙에서 신체의 각부를 최대한 비틀어서 최대의 파워를 얻을수 있는데 이 파워가 클럽헤드에 스피드를 생기게 하는 유무는 다운스윙을 상반신에서만이 아닌 하반신에서 개시하는 것이다.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왼쪽 무릎끝과 그립을 하나의 고무로 연결하였다고 가장하면 이 고무는 백스윙의 정점에서 팽팽하게 최대한으로 당기고 있을 것이다.이대 손끝에서 혹은 오른쪽 어깨에서 볼을 쳐나가려고 하면 이 고무는 한쪽으로 느슨해질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왼쪽 사이드 - 엄밀하게는 왼쪽 발뒤꿈치의 발바닥 아래 - 왼쪽 무릎의 되돌리기 - 왼쪽 허리의 되돌리기 - 의 순서대로 행해 나가면 이 팽팽하게 당긴 고무는 그대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있을 것이다. 이 상태가 소위 '손목을 위함'이 되고 볼을 멀리 쳐내기 위한 '레이트비팅'을 가능하게 해준다.ⓐ 오른팔의 비밀백스윙의 주도는 왼 팔과 왼쪽 어깨의 주도지만 다운스윙의 핵심은 오른팔에 있음을 명심하자. 탑에서 다운스윙으로 전환 때 오른팔을 아래로 내려 보자. 클럽 페이스가 볼을 바라보며 임팩트로 향하는 동작이 만들어질 것이다. 여기서 눈 여겨 볼 것은 오른팔의 비밀 역할이다. 다운스윙에서 오른쪽 팔꿈치가 왼팔보다 아래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오른팔이 보이지 않는다면 슬라이스의 원인인 OUT-IN의 궤도를 그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른팔을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방향과 거리감에 자신감을 느낄 수 있
신학적으로 본 시한부 종말론1. 한국인의 죽음 이해‘한국인은 과연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죽음 너머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죽음과 같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에 직면하여, 인류는 고대로부터 그 궁극적 의미를 제공하는 종교를 발명했다. 일정한 집단의 생사관 혹은 내세관은 그 집단이 갖고 있는 종교와 직결되기 때문에 만일 단일종교를 신봉한다면 그에 따른 생사관도 단일 할 테지만 그 종교분포가 복잡다양하다면 생사관도 자연히 그것을 따라서 복잡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종교는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세계종교사에 유례를 보기 힘들 정도로 다양함을 자랑하고 있는데 이때 한국의 경우는 단지 다양한 것뿐 아니라 수용되어 있는 고유종교 및 세계종교들이 팽팽한 세를 누리고 있는 면에서 그 특이함을 찾아 볼 수 있다.한국에는 고유종교, ( 학자에 따라 무교(巫敎)나 풍류도(風流道) 혹은 신도(神道)라 불려왔는데 그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히 연구되어 있지 못한 형편이다.) ,불교, 유학(성리학)의 영향권 하에 있었다. 전통종교 가운데 현대의 한국인이 갖고 있는 생사관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유학, 무교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최근에 전혀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및 서양과학)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한국인의 종교 관념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기독교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한국인의 근본적 가치관에는 고유종교에서부터 불교, 유교, 기독교와 같은 종교 관념들이 섞여있어 그 단일성을 찾아보기가 대단히 힘들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의 생사관을 가려내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한국인의 죽음관이나 내세관을 확정지은 종교적 가르침을 단일적인 모습으로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종교가 다양하다 하더라도 한국인의 생사관에는 예로부터 변하지 않는 단일적인 개념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를 찾기 위해 우리는 종교적으로 한국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무교. 불교, 유교의 이런 한국인의 현실적인 생사관은 다양한 종교에서 생생히 드러난다.2. 시한부 종말론1) 한국 사회 시한부 종말론 유행의 배경㉠ 한국인의 특징적인 종교적 심성 - 한국인의 주술적, 비합리적, 열성적 종교성한국인의 신앙경향은 신비적이면서도 열광적, 초자연적이며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현실참여와 변혁의지 보다는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크다. 이러한 감성적이고 신비적, 열정적인 종교성은 시한부 종말론과 같은 자극적이고 의존적인 신앙을 만들어 내기에 적합한 신앙경향이다.㉡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사회 상황.60년대 이후 현재까지 급속한 산업화와 고도의 경제 발전은 특히 도시 빈민들에게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으로 소외감을 갖게 하였다. 평생 돈을 벌어도 내 집 마련의 꿈은 점점 멀어져 가는 현실 속에서 도저히 지상에서는 소망이 없어 보이게 되었다. 80년대 광주사태, 김일성 사망, 5공 비리 등의 정치적 상황과 걸프전의 참상이 벌어졌다.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급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정치권에서는 국민들에게 소망을 주지 못하고 사회는 배금주의와 경제 부정의 향락주의가 날로 팽배해 사람들에게 말세라는 의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재난세계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가져오는 지진, 가뭄, 태풍, 홍수와 같은 재난, 환경오염과 환경파괴 때문에 발생하는 수많은 환경문제들 역시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사람들은 종교적 피안으로부터 불안과 불확실성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모든 일반적, 구체적 상황들을 한국의 시한부 종말론 자들은 말세의 징조로 설명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보수적 신학자들을 통해 현 역사는 멸망할 세계이며 영적인 세계만이 아름답고 영원한 것으로 믿도록 해 지상에서는 소망이 없다고 여기게 된다. 이런 신앙관은 현실에 대한 좌절과 불만을 미래에 보상받겠다는 의식을 갖게 하며 한편으로 이기주의와 맞물려 이 세상에서 온갖 축복을 다 받겠다고 하는 철저하게 현실주의적인 신앙을 갖게 한다. 이런 토양위에 천국만이 유일한 소망이 되었다.* 천년한 성구만을 이용해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 한다.③ 자기 집단만 구원을 얻는다는 집단적 이기주의 경향이 있다. 자신들만 대재앙에서 살아남거나 구원을 받거 나 탈출하거나,「특별한 역할」을 한다고 맹신 한다④ 예수의 재림 시기를 예고한다. 성경에 ‘ 그 날과 그 시’는 하나님 이외에는 알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으나 시한부 종말론 자들은 그 때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최초의 이단적 종말론자 몬타너스는 자신의 세대 내에 페푸자 언덕에 그리스도가 재림한다고 했으나 빗나가고, 이후 재림을 예언한 사람은 많았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성경은 말세를 특정한 기간으로 정하지 않는다. 즉 오순절 성령강림으로부터 시작되어 신약시대 전체가 말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 역시 어느 특정한 시간대가 아니라 이 말세 기간 동안 어느 때이든 오실 수 있는 것이다.⑤ 현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원론적 사고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현실을 도피할 뿐, 현실 참여와 개혁을 등한히 여긴다.⑥ 소외층에 속한 자들로 비소외자들을 질시하고 저주의 대상으로 보아 이웃, 사람에 대한 공존의식이 희박하다.⑦ 그들은 자신의 집단을 마지막 시대의 파수꾼으로 자처하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은 독선적이고 교만하다.3) 시한부 종말론 사례-몬타너스주의 : 2세기 중엽 교회에서 일어난 반동적 개혁운동, 초대 교회는 세상의 종말이 임박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교회의 세속, 제도화에 반발하여 그것을 개혁하려고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것.-밀러의 종말 운동 : 침례교 목사 밀러는 1843/3/21~1844/3/21 사이에 예수가 재림하여 지상을 불로 씻어버림으로 하나님 나라가 건설될 것을 주장. 재림하지 않자 44/10/22로 날짜를 수정. 실패하자 그의 추종자들은 신앙을 포기.한국은 기독교의 선교가 시작된 지 약 130년에 불과한 짧은 역사에도 수많은 이단 종파가 일어났다. 급격한 사회변동과 사회구조 속에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기독교가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한국에서는 1920~30년대 신비주의와 것의 끝과 파멸로 가르치기보다는 영원한 생명의 시작, 천국의 도래로 이해시키고 있다. 따라서 종말은 곧 천국 입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초대교회의 신앙은 임박한 천국을 준비하는 순수하고 진실한 종말신앙에 입각해 있었다. 현재도 많은 기독교(基督敎) 신도들은 다만 성서(聖書)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믿고 있다.말세(末世)에는 하늘과 땅이 모두 불에 타서 소멸(消滅)되고(베드로후서 3장 12절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마태복음 24장 29절 :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천사장(天使長)의 나팔소리와 함께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일어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름 속으로 끌어 올리어 공중(空中)에서 예수님을 상봉(相逢)하리라고(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 17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그들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이용하는 주요 성경구절은1) 하늘과 땅을 멸하고(베드로후서 3장 12절)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심(요한계시록 21장 1절, 베드로후서 3장 13절, 이사야 66절 22절)새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은 새 주권의 나라를 세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과 땅을 멸한다는 것은 그를 주관하고 있는 사탄주권을 멸한다는 뜻이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운다는 것은 예수님을 중심한 하나님 주권하의 새로운 천지(天地)를 복귀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2) 하늘과 땅을 불로써 심판하심(베드로후서 3장 12절)베드로후서 3장 12절을 보면 말세에는 하늘이 불에 타서 풀(요한복음 3장 13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중에서 주(主)를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사탄주권을 물리치시고, 지상천국을 복귀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선 주권의 세계에서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미선교회 성경의 자의적 해석 사례마태복음 24:36의 "아들도 모르고"라는 말을 그들은 "예수님이 모른다는 말로 해석하지 말고 그의 인성으로서는 모르게 되어 있으니 시간의 주권이 인간에게는 없고 아버지에게만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라고 하면서 "성경에는 모른다고만 있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말한곳은 없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그 때를 그들에게만 알려 주셨음을 뒷받침하려고 하였다.고전 15:51-52에서는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라고 번역돼 있다. 다미 선교회는 이곳에 나오는 "마지막 나팔"을 휴거전에 있을 나팔절과 접목시켜 해석하고 있다.살전5:4-5을 보아도 마찬가지의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나니"라고 번역돼 있다. 이 귀절의 내용을 가지고 그들은 "빛의 자녀들에게는 도적같이 오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깨어 있는 신자는 재림의 날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A13, 하나님은 때를 일러주신다 에서 15번째 항목)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성경에는 모른다고 했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말한 곳이 없다"라고 하면서 그 날을 계시로 자기들에게만 알려 주었다고 주장한다.* 종말론의 유형①천년기전설 (premillennialism, 전천년 설)예수의 재림이 천년 왕국 이전에 있다고 본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 여 성도들과 더불어 1천년간 이 세상을 다스리며 그 후에 심판이 있다는 설이다. 천년기전 설은 재림 후 천년왕국 전에 공중 휴거 와 7년 환난이 선행한다고 믿는 세대주의(dis이다.
♥ 디지털시대와인간 존엄성 서평과목:이름:학번:학과:여러 가지 책이 있었지만 저는 제 전공과 연관되는 디지털에 관한 책이 읽고 싶었습니다. 저는 디지털 시대에 인간, 개인에 대한 존중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원하지 않는 스팸 메일, 핸드폰으로 걸려오는 많은 상업적 전화들.. 도대체 온라인 상에서 나와도 같은 내 정보가 왜 이렇게 퍼져 나가는 것일까? 또한 익명성을 이용한 많은 인터넷 폭력에 노출 되 있는 인터넷 이용에 대한 회의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선뜻 골라 디지털 시대 문제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컴퓨터나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디지털 사회라 불리는 현재를 더욱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 생활 부분에서 편리함을 얻고는 있지만 , 이로 인한 역기능은 정말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인터넷에서의 개인 정보는 오프 라인 상 정보와는 다르게 한 개인의 모든 것을 판단케 하고 정체성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보통신 이용자는 자신이 제공한 개인 정보가 불성실한 관리와 보호조치의 미비로 인해 적절하게 보호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는 곳에서 개인 정보가 수집되고 이용될 것이라는 우려를 안고 있습니다. 저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까지 너무나도 중요한 이런 정보들이 유출되고 있는 것 같은 꺼림 직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또한 인터넷의 특징 중 하나가 익명성인데 이 익명성이라는 것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많이 오용되고 있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저는 크게 디지털 세상에서 인간 존중이 사라지고 있는 문제 를 두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개인 정보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경우에 대해 3가지로 압축해 조사해 봤습니다.첫째로, 합법적이지 않고 불필요한 개인 정보의 수집으로 인한 침해입니다. 상업적 목적의 기업이 정상적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인 정보의 수집은 반드시 합법적이고 정당한 절차에 의해 이용자의 인지나 동의를 얻은 후에 수집되어야만 합니다. 동의를 획득한 개인정보의 이용은 정보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고 신뢰받을 수 있습니다. 정보를 제대로 관리치 못해 정보가 공개되거나 사고 파는 행위는 엄격히 단속되어야 할 것입니다.둘째로, 수집된 정보가 이용자의 동의 없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때 프라이버시는 침해됩니다. 제 3자에게 노출될 때 침해는 더욱 커집니다. 제 다음 메일로는 스팸메일이라 하는 상업적 목적의 메일이 하루에 5개 이상 들어옵니다. 요즘 단속으로 인해 많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이것을 지우거나 보는 일이 참 곤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마지막으로. 개인정보가 고의적인 또는 여러 가지의 사용 사고로 인해 오류를 불러 일으켰을 때 문제가 발생됩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개인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만들어 내어 인간 존엄성이 침해됩니다.이렇게 여러 가지 상황에서 한 개인에 대한 정보 프라이버시 침해가 나타납니다. 인터넷상 한 인간을 나타낼 정도로 중요한 개인의 정보가 이렇게 쉽게 노출되고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사회적으로 큰 문제입니다. 개인 정보가 보호 될 수 있는 다방면의 방법에 대한 생각입니다.첫째로, 가장 먼저 개인정보가 분실, 도난 당하지 않도록 안정성이 확실한 기술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것보다 먼저 보완기술이 발전되야 개인의 존엄성이 존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마지막으로 ,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 스스로가 이런 기술에 대한 숙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개인 정보 공개, 제공에 있어 내가 선택한 만큼 제공되게 하는 기술 등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정보 숙지가 필요할 것입니다.이제는 익명성을 악용하여 인간을 존중하지 못하게 되는 사레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익명성이란 것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익명성을 보장해 주어야만 개인 정보의 침해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터넷을 더 잘 이용하자고 만들어 놓은 익명성 이란 것을 악용하여 한 개인을 모욕하고 궁지로 모는 경우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백지영씨나 오현경씨 비디오 사건입니다. 이것은 정말 한 개인을 무참히 짓밟는 일이었습니다. 아직도 본래의 무대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 정말 디지털 세상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철저히 존중받아야 할 정보들이 익명성을 이용해 널리 유포되고 확대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당했을 때에 한 인간이 느끼는 치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또한, 익명으로 글을 재개하거나 채팅 등을 할 때에 언어 폭력으로 인한 인간 비 존중 문제입니다. 한 개인에 대한 거짓된 정보를 올려 비하하거나 채팅 시에 폭언으로 인해 한 개인에게 치욕감을 느끼게 하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연예인의 예로 또 들어보면 먼저, 최진실 씨에 대한 사실과 다른 글, 비하하는 글이 홈페이지에 올라 글을 올렸던 한 여학생이 대표로 고소당한 사건이 얼마 전에 있었습니다. 또한 박신양 씨도 결혼 상대자에 대한 비하의 글이 올라 결혼까지 위험할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정보의 바다라고 불리는 편리한 인터넷, 디지털 세상에서 익명성이란 도구를 지니고 여러 가지 악용이 생겨나고 있습니다.우리나라는 인터넷 이용자 수는 세계 최고인데 이용자들의 수준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편리한 정보의 바다 인터넷이 익명성이라는 포장지로 인해 해적의 천국 테러의 장소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요즘 이런 문제에 대한 법도 만들어지고 채팅을 할때도 욕을 입력하면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등의 엉뚱한 멘트가 나온다거나 하는 기술도 많이 발전되어 사용되어 지고 있습니다. 이런 강제적인 조치도 필요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사용자들이 익명성이 보장되더라도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고 올바르고 정당하게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디지털 세상은 편리합니다. 아날로그 세상에 비해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기도 쉽고 정보를 얻기도 편하고 여러 가지로 이로운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날로그 세상에 비해 사람들의 인간미는 많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저도 컴퓨터 공학과를 와 2년 간 공부하면서 제가 좀 더 각박해 진 것을 느낍니다. 늘 컴퓨터 앞에서 홀로 생활하고 공부하다 보니 친구나, 남, 사회를 생각하면 살아가기 보다는 내 성적, 내 시간, 내 이익만을 챙기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집에 들어와 가족 각자 밥을 먹고 TV나 컴퓨터 앞에서 각자 말없이 할 일 하고..... 아날로그 시대와 같은 인간스러움이나 정이 참 그리워 집니다.
① 책 소개1. 저자 - 진순신 :1924년 일본 고오베 출생으로(본적은 대만 타이뻬이), 오오사카 외국어대학 인도어부 졸업.1961년부터 최근까지 『마른 풀뿌리』 『청옥사자향로(靑玉獅子香爐)』 『아편전쟁』 『돈황으로의 여행』 『제갈공명』 『소설 십팔사략』 『칭기스 칸의 일족』 등의 작품으로 일본의 유명 문학상인 나오키(直木)상,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상과 아사히, 요미우리, 마이니찌 등 일본 주요 신문사의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지금까지 주로 중국역사를 소재로 하는 150여 편의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미 작고한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나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소설가로 세계에 이름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