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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자와 21세기
    노자와 21세기를 읽고어렴풋이 새내기 대학생 시절 정도 김용옥 선생이 티비에서 강의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노자의 도덕경에 대한 강의였다. 많은 한문과 어려운 내용의 강의였지만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쉬운 설명으로 기억에 오래 남았다. 세 권으로 되어 있는 책이고 뒷부분은 도덕경 자체에 관한 좀 심오한 내용이었다. 1권의 앞부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약간의 도덕경 내용을 읽고 글을 시작한다.-21세기 3대 과제1. the harmony between man and environment2. the harmony between religions3. the harmony between knowledge and life1. the harmony between man and environment과거 문명들은 자연을 착취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중적인 인간 삶의 기본적인 연속성이 크게 흩어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 연속성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화해의 연속성이다. 20세기 인류사 희대의 사건은 technology와 science가 본격적인 랑데부를 시도한 것이다. 기술이란 삶의 예술 (the art of living)의 모든 것을 지칭한다. 살아가는 방편으로서 필요한 모든 예술(기예)를 말한다. 과학이란 인간의 지식을 특징 지우는 측면이다. 기술과는 무관한 (speculative reason) 사변이성이고 과학의 특징은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를 법칙적으로 파악한다. 법칙적은 연역적과 같은 궤를 둔다. 연역적 사고의 대표적인 것이 ‘수학’이다. 과학은 인간의 사변이 고도화되면서 생겨난 하나의 철학체계요 지식체계와도 같은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 속으로 과학이 진입하고 과학이 기술로 진입했다. 꿈이 현실로 된다는 것은 즐겁다. 하지만 꿈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꿈의 상실은 인간의 도덕적 파멸을 가져온다. 50년 동안 과학과 기술의 랑데부로 인한 사회진보가 우리 문명의 모습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뻥 튀겨 놓았다면 역사의 과식, 과욕이 여러 가지 병적 부작용을 초래했다.2. the harmony between religions니체는 종교라는 놈에 엄청난 분로를 느꼈다. 종교라는 놈의 주범인 神을 살해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God is dead'. 하지만 20세기는 인류 사상 가장 종교가 보편화되고 성행했고 종교적인 죄악도 저질러진 세기이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허점을 파고든다. 인간의 이지가 발달하면 그 이면에 생기는 공허를 파고 든다.군집-> 고독합리적이성 추구-> 비합리적 감성에 호소치밀한 분석-> 맹목적 믿음.종교는 악이다. 해결법은 악의 배면을 불러일으키는 것 종교의 악은 엄청난 선의 가능성을 동반한다. 종교적인 악은 엄청난 선의 가능성을 동반한다. 평소 때 할 수 없었던 희생을 가능케 하고, 개인의 욕망을 뛰어넘는 보편적 행위를 가능케 하며, 인간을 절망에서 구원하며, 죄의식을 씻어주고, 모든 인간을 사랑과 화합으로 인도한다. 종교는 악임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인간세에 존속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악의 배면의 엄청난 선의 가능성, 그 에너지 때문인 것이다.사이비나 신흥 종교들의 문제점은 자기비판능력이 없다라는 것이다. 비판을 수용할 수 없는 모든 종교들이 自亡하도록 국민이 깨어 있어야한다.3. the harmony between knowledge and life궁극적으로 지식 체계가 과연 우리 삶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인간의 지식은 시대에 따라 그 양태가 달라진 것이다. 20세기에 우리가 콤플렉스를 느낀 지식의 양태는 모두 이 ‘과학’이라는 한 마디로 집약되는 것이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과학, 과학 아닌 지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우리의 지식이라고 말하는 것, 즉 독서를 한다고 하는 것은 모두 오늘의 개념으로 말한다면 “고전학”에 불과했다. 그것은 전혀 과학(사이언스)이 아닌 十三經이라고 하는 유가경전의 습득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의 체계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문명을 충분히 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자’에게서 무엇을 배우려 하지 말라고 역설한다. 그냥 그가 말하는 것을 빈 마음으로 따라가다보면, 그것이 곧바로 나의 삶의 바른 가치의 한 측면이라는 것이다.無爲有爲actionlessness 아무것도 하지않는다가 아니다가 아닌 남으로 스스로 하게한다.
    독후감/창작| 2020.01.09| 3페이지| 1,000원| 조회(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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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자와 21세기
    노자와 21세기를 읽고어렴풋이 새내기 대학생 시절 정도 김용옥 선생이 티비에서 강의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노자의 도덕경에 대한 강의였다. 많은 한문과 어려운 내용의 강의였지만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쉬운 설명으로 기억에 오래 남았다. 세 권으로 되어 있는 책이고 뒷부분은 도덕경 자체에 관한 좀 심오한 내용이었다. 1권의 앞부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약간의 도덕경 내용을 읽고 글을 시작한다.-21세기 3대 과제1. the harmony between man and environment2. the harmony between religions3. the harmony between knowledge and life1. the harmony between man and environment과거 문명들은 자연을 착취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중적인 인간 삶의 기본적인 연속성이 크게 흩어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 연속성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화해의 연속성이다. 20세기 인류사 희대의 사건은 technology와 science가 본격적인 랑데부를 시도한 것이다. 기술이란 삶의 예술 (the art of living)의 모든 것을 지칭한다. 살아가는 방편으로서 필요한 모든 예술(기예)를 말한다. 과학이란 인간의 지식을 특징 지우는 측면이다. 기술과는 무관한 (speculative reason) 사변이성이고 과학의 특징은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를 법칙적으로 파악한다. 법칙적은 연역적과 같은 궤를 둔다. 연역적 사고의 대표적인 것이 ‘수학’이다. 과학은 인간의 사변이 고도화되면서 생겨난 하나의 철학체계요 지식체계와도 같은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 속으로 과학이 진입하고 과학이 기술로 진입했다. 꿈이 현실로 된다는 것은 즐겁다. 하지만 꿈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꿈의 상실은 인간의 도덕적 파멸을 가져온다. 50년 동안 과학과 기술의 랑데부로 인한 사회진보가 우리 문명의 모습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뻥 튀겨 놓았다면 역사의 과식, 과욕이 여러 가지 병적 부작용을 초래했다.2. the harmony between religions니체는 종교라는 놈에 엄청난 분로를 느꼈다. 종교라는 놈의 주범인 神을 살해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God is dead'. 하지만 20세기는 인류 사상 가장 종교가 보편화되고 성행했고 종교적인 죄악도 저질러진 세기이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허점을 파고든다. 인간의 이지가 발달하면 그 이면에 생기는 공허를 파고 든다.군집-> 고독합리적이성 추구-> 비합리적 감성에 호소치밀한 분석-> 맹목적 믿음.종교는 악이다. 해결법은 악의 배면을 불러일으키는 것 종교의 악은 엄청난 선의 가능성을 동반한다. 종교적인 악은 엄청난 선의 가능성을 동반한다. 평소 때 할 수 없었던 희생을 가능케 하고, 개인의 욕망을 뛰어넘는 보편적 행위를 가능케 하며, 인간을 절망에서 구원하며, 죄의식을 씻어주고, 모든 인간을 사랑과 화합으로 인도한다. 종교는 악임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인간세에 존속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악의 배면의 엄청난 선의 가능성, 그 에너지 때문인 것이다.사이비나 신흥 종교들의 문제점은 자기비판능력이 없다라는 것이다. 비판을 수용할 수 없는 모든 종교들이 自亡하도록 국민이 깨어 있어야한다.3. the harmony between knowledge and life궁극적으로 지식 체계가 과연 우리 삶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인간의 지식은 시대에 따라 그 양태가 달라진 것이다. 20세기에 우리가 콤플렉스를 느낀 지식의 양태는 모두 이 ‘과학’이라는 한 마디로 집약되는 것이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과학, 과학 아닌 지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우리의 지식이라고 말하는 것, 즉 독서를 한다고 하는 것은 모두 오늘의 개념으로 말한다면 “고전학”에 불과했다. 그것은 전혀 과학(사이언스)이 아닌 十三經이라고 하는 유가경전의 습득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의 체계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문명을 충분히 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자’에게서 무엇을 배우려 하지 말라고 역설한다. 그냥 그가 말하는 것을 빈 마음으로 따라가다보면, 그것이 곧바로 나의 삶의 바른 가치의 한 측면이라는 것이다.無爲有爲actionlessness 아무것도 하지않는다가 아니다가 아닌 남으로 스스로 하게한다.
    독후감/창작| 2014.12.05| 3페이지| 1,000원| 조회(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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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기열전
    ----------------------------------------------- 不通과 逆鱗民主主義 :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이념과 체제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것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다. 국민의 주권을 대신해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 국회의원 등에게 최근 ‘불통’이라는 단어는 꽤 매력적인 유행어인가보다. 이런 사례들이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꽤 효과적이기도 한 모양이다. 하긴 자기말만 뱉고 들을 필요가 없으면 얼마나 편하겠는가.현대 사회는 정보화시대라고 일컬어진다. 자연히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며 정보들을 전달받고 사용 한다. 자연히 이 전달 방식에도 여러 가지의 형태, 수준, 방법들이 존재하고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문제를 제기했듯이 소통의 지수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는 여러 인물들과 가르침이 있었다. 난 이들 중 ‘遊說’라는 부분에 관심이 생겼다. 과연 수천 년 전의 가르침도 현대에 쓸모가 있을까?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따르면 대화에는 話者와 聽者가 있다. 화자는 어떤 메시지를 어떤 방법으로 누구에게 전달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청자는 그 메시지를 경청하고 이해해야 서로의 의사소통은 원활해진다.《한비》편에 이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유세의 어려움이란 상대방의 심정을 통찰하여 그가 바라는 것에 맞추어 납득시키는데 있다. 세상일이란 비밀을 지킴으로써 성공하고 누설하면 실패한다. 유세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상대방의 장점은 추켜세우고 단점은 감추는 것이다. 용이라고 하는 동물은 길들이면 등에 탈 수 있다. 그러나 목에는 길이가 한 자나 되는 거꾸로 난 비늘(逆鱗)이 있어 이것을 건드리면 죽는다. 유세자도 이것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이 얼마나 명쾌하고 현실적인 조언인가?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의 내가 이것을 읽었을 때 마치 현대 작가가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상 깊었다. 20대에는 몰랐던 부분, 대학생 시절에는 몰랐던 부분들이 30대가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을 대하고 소통하는 방법’이었다. 매일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그것에 담긴 숨은 뜻을 찾고 그 의도에 맞게 대답하는 일은 정말로 어려웠고 지금도 그렇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을 알 것이다. 고참의 "덥다“라는 한 마디는 ”그러네요“의 대답을 원하지 않는다. 누군가 빨리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켜고 물을 대령해야지 편안한 생활을 보장받는다. 나도 두 살짜리 아들과 소통에 쩔쩔매고 있다.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 같은 울음소리겠지만 배고픈 울음에는 젖을 주고 신경질이 난 울음에는 기저귀를 갈아주는 등 적절한 대응을 해주어야 편안해진다.저 글을 읽고 내 자신을 회상하며 반성 해본다. 그 동안 나는 역린이 너무 길고 예민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언행을 하는 사람들과는 딱 불통해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냥 ‘아쉬우면 자기들이 찾아오겠지’ 생각으로 대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다가서기 어렵다고 하고 멀어진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인(人)이라는 한자에서도 볼 수 있듯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게 인간 아니겠는가. 개인들이 모여서 집단을 이루고 집단이 사회가 되고 사회가 국가가 되는 메커니즘 속에서 불통하는 소속 단위들은 다른 집단에 피해를 끼치므로 ”자유“라는 말을 쓸 수 없다.《오기》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실천을 잘하는 자가 반드시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말을 잘하는 자가 반드시 실천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그만큼 言行一致가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 사랑, 금전 등 모든 부분에 매일매일 약속하고 그것을 행동하고 있다. 그 균형이 어긋나면 말이 앞서는 사람 혹은 독불장군 등으로 묘사되기 쉽다. 그렇다면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움직일 수 있을까? 《골계》 편에서도 하나의 방법은 찾을 수 있었다. 같은 뜻의 말이라도 재치와 풍자를 섞어 이야기하면 듣는 이도 즐겁고 효과도 있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뛰어난 재능과 훈련이 있어야 한다. 풍자나 해학은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우전은 시황제가 궁궐의 정원을 크게 넓히려 하자 좋은 일이라며 왕의 비위를 맞추었다. 한 술 더 떠서 그 정원에 새와 짐승을 많이 길러서 적군이 쳐들어오면 고라니나 사슴을 시켜서 대적하자고 신나게 이야기한다. 이것이 골계 열전의 유머 기법이다. 일단은 상대방의 말을 긍정한다. 잘못을 바로 일러주기 보다는 한번 꺾고 넘어간다. 그리고 거울로 보듯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게 한다. 이러한 유머들은 절대 권력자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철없는 노는 아이에게도 거울을 보여주고 더러워진 얼굴을 보게 하면 세수를 스스로 한다. 하물며 왕은 오죽하겠는가? 만약 억지로 왕의 얼굴에 손을 댔으면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랐을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4.12.05| 3페이지| 1,000원| 조회(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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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의 지도
    『생각의 지도』를 읽고저자는 대학원생의 질문 하나로 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서양인들은 직선처럼 생각한다면 동양인들은 원처럼 사물을 바라본다” 이 한 마디는 사물을 접근할 때 가치관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양인들은 물리적 사물, 동물, 사람을 모두 포함한 사물의 행동을 설명할 때 아주 분명한 규칙들에 의거한다고 생각하고 또 범주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라고 한다. 범주를 알게 되면 어떤 사물이 속하는 특정 범주를 지배하는 규칙을 사용하여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가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주장은 거의 혁명적인 일이라고 받아드리고 있다. 동양 사회의 집합주의적이고 상호의존적인 특성은 세상을 보다 넓게 종합적으로 보는 시각, 어떤 사건이든지 수없이 많은 요인들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와 일맥상통한다. 서영 사회는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인 특성을 갖는다. 개별 사물을 전체 맥락에서 떼어내어 분석하는 그들의 접근, 사물들을 다스리는 공통의 규칙을 발견할 수 있고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신념과 통한다.그리스인들에게 행복은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탁월성(아레떼)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강한 신념은 개인 정체성에 대한 강한 인식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을 ‘ 독특한 특성과 목표를 가진 상호 개별적인 존재’로 파악했다. 그리스 문화에서는 자유와 개성만큼이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중시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특성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강한 호기심은 물리학, 천문학, 기하학, 형식논리학, 이성철학 같은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세우는 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기본 원리를 추구하는 행위자체가 즐거움이었다. 영어의 'school'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schole'가 ’leisuer'를 의미한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중국에서는 자신이 어떤 집단의 구성원, 특히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스인들이 연극이나 시 낭송을 즐겼다면 중국인들은 친구나 친척을 방문하는 것을 특별한 행사로 여겼다. 철학자 헨리 로즈먼트는 이렇게 말했다.“ 초기 유교 신봉자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과 그 속에서 부여되는 역할들의 총체일 뿐, 결코 독립적 존재가 아니었다. 결국 그들의 정체성은 역할에 따라 결정되므로 역할이 바뀌면 정체성도 바뀐다. 즉 ‘다른 나’가 되는 것이다.”중국인들에게 행복이란 ‘화목한 인간관계를 맺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개인의 자율성보다는 집단의 자율성을 우선시했다. 사회는 커다란 유기체이고 개인은 그 유기체의 한 구성원이다. 유기체 내에서는 서로 지켜야 하는 의무들이 존재하고 개인들은 그 의무들을 준수하는 행위를 해야한다. 중국인들이 인간 관계의 조화를 중시했다고 해서 줏대없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른것은 아니다. ‘左轉’은 이렇게 설명한다.‘ 훌륭한 요리사는 서로 다른 맛을 섞어서 조화롭고 감미로운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 이때 각각의 맛들은 자신의 고유의 맛을 잃어버리지 않고 유지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어 훌륭한 맛을 만들어낸다’새로운 세계의 호기심은 약한 편이었지만 실용적인 정신은 뛰어났다. 잉크, 자기, 나침반, 손수레, 면역 기술등 분야에서 앞설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도널드 먼로(Donald Munro)는 이렇게 말한다.“유교적 사고에 있어서 구체적인 행위와 관련되지 않은, 즉 실용적이지 않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앎’이라는 것은 없었다.”-사물의 본질을 바라보는 관점그리스인들은 세상의 본질에 대해 항상 관심이 있었다. 플라톤은 이데아만이 참된 실재이며, 세성의 의미에 대하여 감각에 의지하지 않는 논리적인 접근 취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감각과 논리가 대립할때는 당연히 감각을 무시해야한다고 했다.본질이란 한 사물의 가장 핵심적이고 필수 불가결한 속성이다. 본질이 바뀌면 그것은 더 이상 그 사물이 아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속성은 ‘ 우연적’ 속성이다. 그리스인들은 사물 자체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다음과 같은 경향을 갖게 되었다.1) 사물의 속성 자체를 주의를 기울이고2) 그 속성에 근거하여 범주화하고3) 그 범주들을 사용해 어떤 규칙을 만들어4) 사물들의 움직임을 그 규칙으로 설명하고자 했다.중국인들의 사고를 잘 대변해주는 것이 음양이론이다. 음과 양은 서로 반복된다. 음은 양 때문에 존재하고 양은 음 때문에 존재하며, 세상이 현재 음의 상태에 있으면 곧 양의 상태가 도달한다는 징조이다.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길’을 의미하는 道의 상징은 흰색과 검은색 물결의 형태를 띤 두 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검은색 물결은 흰점을 품고 있고 흰색 물결은 검은점을 품고 있다. 이는 ‘진정한 양은 음 속에 존재하는 양이고, 진정한 음은 양 속에 존재하는 음이다’라는 진리를 나타낸다. 음양의 원리란 ‘서로 반대되면서 동시에 서로를 완전하게 하는 힘’, ‘ 서로의 존재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힘’의 관계이다.도교에서 우주란 자연과 인간사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곳이며, 이러한 생각은 중국 의학의 주요한 사상적 기초가 된다. 중국 의학은 인간의 몸을 음양 이론과 오행(土火水金木)으로 설명한다. 유교는 ‘상식’의 종교이다. 유교에서는 중용의 도가 가장 중요한 규범이다.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 것이며, 서로 대립되는 의견들도 나름의 일리가 있다라는 가르침이다. 유교는 경제적인 부와 교육을 강조하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고 가르친다.유교 불교 도교 모두 ‘조화’, ‘부분보다는 전체’, ‘사물들의 상호 관련성’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세 철학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종합주의(holism)는 우주의 모든 요소들이 관련되어 있다‘라는 것이다. 인간, 하늘, 땅은 서로에게 이런 공명을 일으킨다. 만일 땅에서 군주가 나쁜 일을 하면 우주의 상태가 나빠진다는 믿음이 바로 종합적 사고의 예이다.그러나 범주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어떤 범주에 존재하는 규칙을 무시함으로써 그 범주에 속하는 개체들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독후감/창작| 2014.12.05| 4페이지| 1,000원| 조회(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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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론을 읽고
    을 읽고한약학과 20141240 한승호최근 SNS 불법 사찰, 모기업 야구단의 CCTV 감시 등 도를 지나친 인권 침해 문제들로 연일 화제다. 더욱이 이러한 행태들이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유사한 사건들이 많다보니 무덤덤해 질 정도로 심각하다. 존 스튜어트 밀이 쓴 은 19세기의 저서이지만 현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의 핵심은 “인간을 가장 풍부한 다양성 속에서 발전시키는 것이 절대적이고 본질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훔볼트의 인용구는 같은 해에 출판된 찰스 다윈의 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돌연변이로 생긴 종의 다양성으로 개체는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여 살아남게 된다. 같은 이치로 사상의 자유와 열린 토론은 개인에게 개성과 다양성을 갖게 하고 창의성을 발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그러나 우리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대통령은 국민과 불통하고 언론은 침묵하고 있다. 사정 기관들은 국민들을 감찰하고 처벌하고 있다. 마치 공포정치 시국에서 로베스피에르가 ‘창조’라는 기치를 들고 있는 꼴이니 아이러니하다. 피로 얻어낸 프랑스 인권선언 제 1조는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유로우며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이다. 국가라는 것도 사실 개인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산업화를 거치며 자본주의 국가 권력은 점차 강해져 개인이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되거나 매몰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밀은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과거 조선 시대에도 왕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사간원을 두고 나름의 견제 수단과 대화 통로를 마련했었다. 이 사간원의 역할을 해야 하는 언론이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위축된다면 우리사회는 그토록 바라는 창조성을 얻지 못할 것이다.이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 ‘다수결의 원리’라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밀이 그토록 경계했던 ‘다수의 횡포’를 나타내기도 한다는 점을 알고 더욱 더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마땅히 그 존재 자체로도 대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건강한 토론 문화가 정착이 될 때 개인도 성장하며 행복해지고 사회도 발전한다는 이론은 밀을 단순한 공리주의자로 생각했던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밀은 인종 차별적이고 서국 문명을 중심으로 을 기술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개인이 침묵을 강요당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고 행복이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150여년이 흐른 지금도 그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독후감/창작| 2014.12.05| 1페이지| 1,000원| 조회(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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