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의예술과 종교{{Marc Chagall (1887.7.7~1985.3.28)인생에서나 예술에서나 모든 것은 변한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입 밖에 낸다면 진실 된 예술은 사랑 안에서만 존재한다.비테프스크에서 출생한 러시아 출신 유대계 프랑스 화가.유대인 집안의 맏이로 태어나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에콜 드 파리 최대의 화가이다.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학교와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했다.1차세계대전후 러시아에서 미술관련 단체 일을 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파리에서 작품 활동 나치로 인해 미국에 머물렀다가 프랑스로 돌아왔다.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유화, 벽화 등의 다양한 작품을 남긴 화가이다.그는 1910년 파리의 생활을 하며 그는 놀라운 속도로 야수파의 근대성을 자기 것으로 소화했고 눈부신 색체의 마술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지나친 사실주의적 묘사를 경계하여 큐비즘에서의 구도의 분할을 차용하였다. 러시아 청년의 눈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자유, 사랑의 빛깔 을 구현해 놓은 파리는 큐비즘 그 자체로 비쳐졌다.그렇지만 25살의 청년인 그는 어떤 유파의 화가그룹에도 합류하기를 거부한다. 그런 특징은 러시아 태생의 유대인인 그의 본성의 욕구로서 확고한 것이었다. 화실에서 고독하게 지내며 샤갈은 비테브스크 시절을 회상한다.'나는 러시아에서 나의 것들을 가져 왔고 파리는 그것들에 빛을 비춰 주었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초현실주의에 열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입체파에 몰두하는 것을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단지 그의 내적 세계관을 더욱 잘 표현하기 위해 실재를 자유롭게 만들려고 노력했고 자신의 상상력과 자기 자신에만 충실하였다.11년 베를린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성공한 후 그 해 결혼을 위해 일시 귀국하였으나 마침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잇달아 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은 러시아의 유태인에게는 곧 해방이요 샤갈에게는 자유였다. 그의 자유의지는 고향으로 돌아온 후 환희에 가득 차서 비테브스크 지역의 미술 분야를 책 이것은 추후 샤갈이 착수하게 되는 성서의 작품들에 큰 정신적 모토가 된다.1930년대의 주요 창작물인 의 삽화작업으로 열중하는 샤갈은 정식으로 작업에 착수하기 전에 성서를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기위해 팔레스타인으로 향한다. 후일 샤갈은 이 여행에서 그의 생애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샤갈은 그림의 소재를 찾는다는 과제도 잊고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온 유대의 나라에 푹 빠져든다. 파리로 돌아와 구약성서에 나타난 창조주의 메시지를 판화의 선으로 옮기는데 열중하게 되는 샤갈은 창세기와 아브라함의 이야기로부터 예언서에 이르기까지 성상화를 선택하여 쉬지 않고 연구에 골몰한다.그러나 1933년 나치스는 그의 작품 3점을 만하임에서 화형식을 벌이며 불살라버린다. 독일의 미술관에서 그의 유화들이 헐값으로 팔리고…다른 작품들은 퇴폐예술 전시회에 나온다.1937년샤갈은 이 작품에서 혁명가들에게 붉은 기를 가리키는 어릿광대 모습의 레닌을 통렬히 비난한다. 1941년 반유대인법 때문에 마침내 프랑스로 떠나게 되고 미국으로 두 번째 망명을 떠나게 된다. 뉴욕에서 자유의 여신상의 그늘 밑으로 모여든 피난민들 중에는 유대인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많았다.46년 샤갈의 완벽한 회고전이 열어지고 샤갈은 미국 최초의 발레단 공연에 필요한 무대장식과 의상까지 맡게 되고 그 후에도 그의 딸 이다의 도움으로 함께 찬사를 받게 된다.1947년 파리가 해방되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지고 파리로 돌아갈 꿈에 부풀어졌지만 그해 그의 그림세계의 여신이며 인생의 동반자인 벨라를 잃는다. 벨라의 죽음으로 절망에 빠진 샤갈은 이후 얼마간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다. 그런 그의 좌절을 또다시 극복하고 파리로 다시 돌아가고 파리는 내 마음이 반사된 모습이다. 나는 나만의 독자적인 존재이기보다는 파리와 하나가 되고 싶다. 샤갈은 제2의 조국 프랑스에 대해 변함없는 애착심을 갖는다. 그에겐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 창조주 하나님처럼 파리는 상징되어졌다.60의 나이에 전 유럽에서 경의를 표하고 1948년 베치니아 비엔고 신에 대한 자신의 의문을 표현하게 된다.스테인드글라스는 나의 마음과 세상 사람들의 마음사이에 투명한 막을 상징한다.30여 년간 샤갈은 프랑스와 미국 ,이스라엘, 영국, 스위스, 독일의 15군데의 건물에 그의 특출한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 빛이 들어오게 한다. 그러나 황혼기에 접어드는 샤갈에게는 영적인 욕구가 가장 중요했다. 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하나하나가 모두 건축학적 구조나 조형적 종교적 필요성에 합당한 것 이어야하고 성서의 기록과 일치해야 했다. 천상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그의 지적탐구는 끝없이 이어지고 신을 마주한 세계에 대한 그의 이런 인식은 그의 걸작들 속에 계속 자리 잡는다.1985년 3월 28일, 20세기 미술계의 마지막 거장, 그림을 통한 예언자인 마르크 샤갈은 98년에 걸친 그의 삶을 평화롭게 마감하고 생폴르방스에서 묻힌다.마르크 샤갈, 성서의 메시지"나의 유년기부터, 나는 성서에 매혹되어왔다. 그것은 당시 나에게 있어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태초 이래 나타난 모든 시의 근원처럼 보였다. 그때부터 나는 인생과 예술 안에서 이것의 그림자를 찾아왔다. 거의 모든 자연 속에서 성서는 모습을 드러내었고, 나는 이 비밀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내 인생 전반에 걸쳐 때때로 나는 내가 완전히 다른 개체처럼, 내가 하늘과 땅 사이에서처럼, 그리고 세상은 나의 영혼이 한줄기 빛처럼 배회하는 거대한 사막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들 그림을 꿈의 모음으로 만들었다. 나는 이 집안에서 사람들이 평화, 정신력, 신앙심 그리고 삶의 숨결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랬다. 이들 그림은, 적어도 내 생각으론, 나 한 사람이 아닌 인류 모두의 꿈을 나타내는 것이다...."{다윗왕후에 로서 통괄되는 작품의 중핵이 되는 3점의 회화가 바로 이과 , 그리고 이다. 1951년 이 작품을 그린 해에 이스라엘을 재차 방문한 것을 계기로, 샤갈은 20년 만에 판화집 성서의 못 다한 부분을 완성 하고, 그 여세로 조각과 스테인드글라스에 이르는 대하(大河)와도 같은 광범위한 제작에 들어직접 모세의 힘으로 바다를 두 쪽으로 갈라, 해안과 해안 사이에 길을 이루어 피난민을 건너게 하고, 신의 사자인 모세는 다시 되돌아와 그들을 뒤따라 절박하게 추격하여 온 파라오의 군세(軍勢)위쪽에 서서 구름과 어둠을 내려 그 진격을 저지한다. 날이 밝아 모세가 그의 지팡이를 휘둘러, 주의 힘은 좌우로 갈라졌던 바닷물을 일시에 되덮게 한 광경을 그리고 있다. 강렬한 색 대비의 화면이 아니라, 아주 부드러운 하모니를 이루는, 그의 원숙기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홍해를 건넘 1954-1955년샤갈은 여기서 화면을 세로로 나누어 독자적인 대담한 구성법에 의해서 훌륭히 화면화 하고 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기적에 의해 만들어진 바다 속의 길을 통해 바다 건너편으로 계속 도망간다. 그때까지 피난민 선두에서 이끌고 있던 [하나님의 사자]는 뒤로 가서 그들을 추격하는 바로 군대의 위에 서서 구름과 어두움을 내려 그 추격을 저지한다.{출애굽 1952~1956년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이라는 그림 전체를 지배하면서 출애굽 사건 전체를 지배한다. 오른쪽 밑 구석에 그려진 짐승은 유월절에 희생당한 어린양으로 이 어린양이 대신 죽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날 수 있었다. 예수는 어린양과 같이 말없이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다. 모세가 들고 있는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율법의 모든 요구를 만족케 함으로 인류의 죄를 속할 수 있었다.{십계판을 부수는 모세이 작품을 앞에 소개한 , 과 더불어 대작 3폭의 기념적인 작품 중의 하나이다. 산에 올라 주(主)의 손으로부터 증표가 되는 십계판을 받고 있는 사이, 아론의 선동에 의하여 황금의 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의 대상으로 한 민중이 화면 우측에 보인다. 이에 너무 화가 나서 십계판을 던져 깨어 버린 모세의 모습을 화면 중앙에 세워 화면을 좌우로 갈라 놓았다. 이 작품은 이중으로 어떤 뜻을 시사하고 있다. 왼편 아래쪽에서는 거룩한 분노의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 오른쪽 쪽에는 모세가 주(主)로부터 십계판을 받는 장면이, 다超越者)의 놀라운 통과를 이 천사는 나타내고 있는 것인지? 오른손을 올려 희생된 어린 새끼 양을 부르고, 가난한 에스파냐 사람들은 이를 환송한다. 모든 것이 여기서는 희생에의 축성(祝聖)을 낮은 소리로 읊조리고 있는 것이다. 부조리의 초극(超克)은 이리하여 최고의 축성(consecration)의 의의와 합치된다.{순교자순교자는 십자가가 아니라 커다란 일자 막대기에 매달려 있다. 순교자의 집은 불타 하늘에 시커멓게 연기로 채워지고 있다. 결혼 이후 25년간 행복하고 안락한 그 의 가정에 피어나던 사랑의 이야기를 환희와 더불어 그려오던 그의 작업은, 정세의 변화와 함께 전해 내려오는 전설 신화에 그 자신의 현실을 일체화시키는 총합적인 작업으로 변하여 간다. 이 작품에 있어 순교자란 예수가 아니라, 나치에 의하여 학살되어 간 이름 없는 무수한 유태인들 중의 하나이다. 죽은 자를 한 여인의 눈물, 명복을 비는 아직 살아남은 사람의 기도, 바이올린으로 진혼 음악을 연주하는 녹색 옷을 입은 악사, 그런 것에 의하여 죽음을 보상받는 순교는 유난히 화면 중앙에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인간의 창조 1956 - 58이 그림은 '우리의 모습을 본 따 인간을 만들다 (창세기 1:26)'를 따르고 있다. 천사의 얼굴 모습은 아직 생명을 얻기 전인 인간의 얼굴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샤갈은 그만의 세계에서 이 주제를 더욱 풍족하게 하고 있다. 부드럽게 하나가 된 부부와 새, 당나귀, 사자들의 아직 평화로운 동물의 세계가 그림 하단에 위치한다. 상단에는 태양의 주위로 유대민족의 운명적 모습들, 즉 십계를 애워싼 민중, 왕,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의 모습이 둘러있다.{쫓겨난 아담과 이브 1961잃어버린 낙원을 표현한다. 파랑과 녹색의 전체 분위기는 이브의 머리칼과 아담이 데리고 있는 수탉의 빨강, 왼편의 노란 빛으로 빛나는 꽃다발과 같은 갑작스러운 부조화에 의해 깨어진다. 중앙에는 복수의 대천사가 타락한 남녀를 쫓아내고 있다.{아담과 이브이 작품 샤갈의 작품 중에서 면을 가장 세분화한
지구촌 언론 이해 자료집 프랑스편BCAD*************1**************************0*************47*************3*************7*************4771494*************589*************63**************************6**************************마실리아(마르세유)에 그리스의 식민지 건설켈트계 갈리아인 갈리아 지방에 정주케사르의 갈리아 정복 (BC∼ 51)리용에서 그리스도 교도 박해카탈라우눔 싸움클로비스 1세, 메로빙 왕조의 프랑크 왕국 성립트루프와티에 싸움에서 칼 마르텔이 사라센인을 격퇴소(小) 피핀 즉위, 카롤링 왕조 성립칼 대제(제위 768∼814)대관(戴冠)스트라스부르 서약베르됫 조약으로 프랑크 왕국이 3왕국으로 분립노르만인 파리를 포위, 외드의 방위로 격퇴외드 즉위(∼898), 로베르 왕조 성립클뤼니 수도원 창립위그카페 즉위(∼996), 카레 왕조 성립클레르몽 종교회의제 1 차 십자군(∼99)제 2 차 십자군(∼49)제 3 차 십자군(∼92)루이 9세 즉위(∼70)필립4세, 교황과 분쟁3부회 최초로 개최교황의 바빌론 유수(幽囚)(∼77)필립 6세 즉위, 발르와 왕조 성립100년 전쟁 시작(∼1453)자케리의 농민반란아쟁쿠르의 패전잔 다르크, 오를레앙의 포위를 풀다. 샤를 7세 랭스에서 대관(戴冠)브르고뉴 공가(公家) 샤를 용담왕(勇膽王) 낭시에서 전사,루이 11세의 시대가 되다이탈리아 전쟁 개시(∼1559)루이 12세 즉위(발르와·오를레앙 왕조)프랑스와 1세 즉위종교전쟁(위그노 전쟁)개시앙리4세 즉위(∼1610), 부르봉 왕조 성립, 재상에 쉴리 등용낭트 칙령, 종교전쟁 끝남앙리 4세 암살됨, 루이 13세 즉위(∼43), 마리 드 메디시스 섭정파리에서 전국 8부회(∼15)루이13세 30년 전쟁에 개입루이 14세 즉위(∼1715), 섭정 시작, 재상에 마자랭 등용프롱드의 난(∼53), 베스트 팔렌 조약(30년전쟁 종료)루이 1복고(∼30)7월 혁명, 루이 필립 즉위(∼48)2월 혁명, 제2 공화정(∼52)(12.2)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나폴레옹 3세 즉위, 제2 제정(∼70)(7월)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71), (9월) 파리에서 혁명, 제3 공화정(∼1940)(3.18∼5.28) 파리코믓, (8월) 피에르 대통령에 취임마크마옹, 2대 대통령에 취임신헌법 성립그레비, 3대 대통령에 취임튀니지 점령청·프 전쟁마다가스카르 보호권 획득불랑제르 사건(∼89)드레퓌스 사건(∼99), 러시아·프랑스 동맹프왱카레, 대통령에 취입(∼20)제 1 차 세계대전 시작(∼18)(1월) 파리 평화회의, (6월) 베르사유 조약블룸 〈인민전선내각〉성립(9월) 제 2 차 세계대전(∼45)(6월) 독일·프랑스 휴전협정, (7월) 비시 정부 성립(5월) 독일군 항복, (11월) 드골 내각 성립(10월) 제 4공화정(∼56), 제네바 회의망데스 프랑스 내각, 알제리 전쟁 시작(∼62)(5.13) 알제리에서 반란이 일어남(10월) 제 5공화정 성립, 드골 대통령에 취임에비앵 협정(알제리 독립)5월 위기, 전국에서 총파업드골 퇴진, 퐁피두 대통령에 취임지스카르 데스탱 3대 대통령에 취임프랑스와 미테랑, 4대 대통령에 취임, 사회당 정부 출범자크 시라크 대통령에 취임면적55만 1,208km2인구5.295만 (1984 추계)국민소득1인당9,477달러(1983)총생산액4,899억달러(1984)수출입 규모수출933억 1,200만 달러수입1,037억 2,500만 달러사용언어프랑스어ⅰ) 프랑크 왕국5세기에 게르만 족 계통의 프랑크 족이 골을 정복하였다. 클로비스(Clovis)는 프랑크 왕국을 세우고 빠리를 수도로 정하였고, 496년에 크리스트교로 개종했다.ⅱ) 카롤링 제국771년에 프랑크 족의 유일한 왕이 된 샤를르마뉴는 계속적으로 군사원정을 벌여 광대한 영토를 획득했으며, 로마에서 교황 레오 3세(Leo Ⅲ)로부터 서로마 제국의 제관을 받음으로써, 프랑크나 크리스트교의 양면성을 지닌로마제국이 창건됨. 한편 새로운 문화의 ) 동레미(로렌지방에 있는)에서 태어난 한 젊은 목녀는 프랑스를 구하라고 자신에게명령하는 초자연적인 음성을 들었다. 16세에(1428) 그녀는 군부대의 지휘관이 되어, 프랑스가 영토를 되찾는데성공했다. 그러나 쟌다르크는 체포되어 마녀로 재판받아 화형당했다. 쟌다르크는 프랑스 국가주의의 첫번째 상징 중 하나이다.L'Ancien Regime15세기말 프랑스의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전력을 정비하면서 외부로 팽창해 나가려는 움직임과 함께 새로운 지적, 이학적 욕구가 싹텄다.ⅰ) 르네상스 (La Renaissance)1515∼1610 프랑스는 예술적인 측면에서 이탈리아의 새로운 사조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단계를 거쳤다. eries)궁)ⅱ) 종교 개혁루터와 캘빈의 자극으로 이 일어나서 교회의 부와 권력의 남용을 비판하며 성서의 근원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프로테스탄주의) 카톨릭 교회와 교황은 교의와 종교예식의 원칙들을 세우며(트렝트 공의회), 예수회의 종교적 질서를 창조하면서 반종교개혁운동을 했다.(예수회 수도사들과 예수회 : 반 개혁의 시기에 스페인인 이그나스 드 로욜라에 의해 1540년에 설립된 카톨릭의 종류) 교황에게 충실한 교황예찬자들과 개혁을 지지하던 위그노들 사이의 종교적인 갈등은 시민전쟁 즉 종교전쟁으로 악화된다. 생 바르텔르미의 학살(1572년 8월 24일) 사건은 하룻밤에 파리의 모든 신교도들을 학살했다. 어머니에 의해 프로테스탄트 종교 속에서 키워진 앙리4세가 1589년 프랑스의 왕이 되었을 때(부르봉왕가의 첫번째 왕), 그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카톨릭으로 개종했다.ⅲ) 17세기 (Le ⅩⅦ siecle)위대한 세기 (Le Grand Siecle) * 루이 13세와 리쉴리에 (Louis ⅩⅢ et Richelieu) : 1617∼1643 앙리 4세의 섭정기간이 지난 후 그녀의 아들인 루이 13세는 왕좌에 오르게 되고 리쉴리에 추기경의 도움으로 통치한다. 지방의고등법원의 힘을 제한하기 위해 왕은 권력의 중앙집권 정책을 시작한다칙을 제시행정혁명 : 왕국의 행정이 재조직 1792년 : 국민공회는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정을 선포 공화국의 이념은 자유·평등·박애2) 국민의회 (La Convention) (1792∼1795)루이 16세가 처형되고 군대는 젊은 장군들의(보나파르트 장군의) 지휘 하에 재조직되어 수많은 승리를 가져온다. 로베스피에르는 를 강화하지만 6주후에 테르미도르 9일(1794년 7월 27일) 그는 실각한다3) 5집정관 정부 (La Directoire) (1795∼1799)5명의 집정관에게 - 행정권, 양원 - 입법권과 같은 권력을 준다. 공화국은 혁명주의자들과 왕당파의 폭동으로위협을 받고, 결국 공화력 3년 브뤼메르 18일 (1799년 11월 9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킨다.ⅰ) 집정시대 (Le Consultat) (1799∼1804)코르시카의 소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세는 프랑스인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그는 구체제와인사들로 구성된 집정관을 자신의 통치에 연결시킨다. 카톨릭교도들을 집합하기 위해 교황과 1801년 협약을 맺는다. 행정을 재조직, 프랑스 은행의 설립과 박람회의 조직으로 산업발달 꾀함. 민법전의 개작은 1804년 완성된다(나폴레옹 법전).ⅱ) 제 1제국 (Le premier Empire) (1804∼1815)1804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황제라고 불리게 되고 교황에 의해 나폴레옹 1세라는 이름으로 축성받게 된다. 나폴레옹은 유럽원정길에 오르는데, 1814년부터 패배가 계속된다. 파리 조약(1814)은 프랑스를 1792년의국경으로 되돌려 놓고 나폴레옹이 왕위를 포기하도록 했으며, 루이 18세 왕에 의해 지도되는 입헌 군주제를 권좌에 올려 놓았다. 엘바섬으로 추방당한 나폴레옹은 파리로 행진하여 승리의 입성을 하고 100일 동안 권력을 다시 잡는다. (1815년 3월 20일부터 6월 20일까지) 그러나 유럽은 동맹하게 되고 나폴레옹은 두번째로 패배한다.ⅲ) 왕정복고 (La Restauration) (1815∼183022∼28일)동안30,000명도 넘는 파리 코뮌당원들이 싸우다가 죽는다. 1879년에서 1899년까지 권력을 쥔 온건한 공화주의자들은민주적인 공화정을 공공하 하였고 자유가 강화되었다. 그러나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를 심각하게 분열시킨다.(1894∼1899) 드레퓌스는 독일을 위해 일한 간첩혐의로 고발된 유태인 장교로 면직되어 유배되었다. 라는 좌파세력과 민족주의적이고 유태인 배척자들인 반드레퓌스파들(우파)이 대립했다. 한편, 파나마의 재정스캔달등으로 결국 1899년 클레망소와 콩브에 의해 지휘되는 급진당에게 권력을 주게된다. 급진주의자들은 1905년 종교와 국가의 분리에 대한 법을 가결시킴으로 세속화의 정치를 강화한다.ⅰ)14∼18년의 전쟁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간의 , 프랑스, 영국, 러시아간의 의 동맹이 이루어졌다. 전쟁은사라예보의 습격이라는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한 사건으로 발발하며, 유럽 전역을 전쟁으로 끌어들인다. 1914년8월 3일 독일은 프랑스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다. * 18년의 대공세 : 동맹군의 편으로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면서독일의 공세는 실패한다. * 베르사이유 조약(1919년 6월)은 독일에게 군사력의 축소, 전쟁의 피해보상, 수많은 영토의 손실을 요구한다.ⅱ)두 전쟁 사이1919∼1939년 사이의 프랑스 (Entre-deux-guerres : la France de 1919∼1939) 프랑스는 전쟁으로부터 심한 고통을 받았다. 시설들은 파괴되고, 화폐는 평가 절하 되었다. 국민연합(우파와 중도파), 좌파 동맹(사회주의와 급진파), 국민연합 같은 동맹이 계속된다. 스타비스키 사건은 극우파 연맹들의 과격한 시위사건의 계기가 되며, 좌익당들은 이라는 연맹을 결성한다.ⅲ)민중전선 (Le Front populaire)1936∼1938 1936년 5월 선거에서 승리한 민중전선은 레옹불룸이라는 사회주의자에 의해 최초로 주재되는 사회주의적이고 급진적인 형태의 정부를 권좌에 놓는다. 그러나 민중전선은 실패하여, 노동자들을 실망시킨다. 왜냐하면 프랑화의 인
한국문학과 페미니즘1. 페미니즘 비평의 흐름과 동향우리가 사는 사회는 현실과 학문의 모든영역에서 한쪽은 지배자의 논리로 또 한쪽은 피지배자의 논리로 위치되어 왔으며 지배자의 논리만이 진리시 되어왔다. 이제 그 전통을 깨고 경계를 깨는 것을 원하고자 하고 있으며 페미니즘 비평이 조명을 받는 것은 그 이유와 동일하다 하겠다.페미니즘 비평은 크게 3가지로 불리우는데 여성해방비평, 여권론 비평, 여성주의 비평이 그것으로 여성해방운동과 관련을 갖고 출발하여 작가나 비평가의 성별보다는 여성시각과 여성의식의 유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페미니즘 비평은 이미지 비평을 통해 왜곡되어온 여성상을 해방하였고 이후 여성중심 비평을 통해 그건 소외된 여성을 주체 중심위치에 놓았으며 이후 여성작가연구를 통해 여성문학의 전통을 발견, 정립하려고 하였다. 또한 여성주체의 형성과정과 체험을 중요시 하여 여성적 글쓰기를 강조하였다.1) 여성이미지 비평여성독자의 성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비평으로 그동안의 보편적 진리였던 남성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저항적인 독자'가 될 것을 강조한다. 남성과 여성은 그 생활경험, 가치, 세계관등이 다를수 있는데 이 차이가 잘못된 것으로 무시 왜곡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지적한 것은 왜곡되어진 상투적인 여성상으로 메리엘만은 이 이미지를 무정형성, 수동성, 불안정(히스테리), 제한성(편협함), 실용성, 순결성, 물질주의(현실성), 정신주의(공상성), 비합리성, 순종성, 반항성(말괄량이, 마녀)등의 11한가지로 정리하였다. 둘째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은 천사와 마녀로 이분시켜논 것이 현대 문화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있음을 지적하였다. 세 번째는 동화 다시쓰기를 통해 기존의 동화에서 남성중심의 전제주의를 다시 찾아내는것이었다. 하지만 이미지 비평은 이데올로기적인 특성 때문에 여성의 모습을 적극적이고 강인한 모습의 이상적인 모델만을 그려내어 해결의 전망이 작품에 구현되지 않는 것이 아쉬운점이라 할수 있다. 또한 동어반복의 단조로움 때문에 곧 지루해지기 쉽다는 단점도 갖는다.2) 여성작가 연구페미니즘 비평은 이미지 비평의 다음으로 묻혀있던 여성의 text를 발굴하고 재평가 하려는 여성중심비평으로 바뀌었다. 여성중심 비평은 작가의 의식보다는 성별을 중요시 하였으며 무조건적인 찬양보다는 여성문학의 전통과 차이성을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접근방법이 문학적이지 않은것과 text의 문학적 가치와 해석자체를 간과해버릴수 있는 단점이 있지만 문학적연구를 위해서라도 작품의 발굴과 1차자료확보 또한 중요하다볼 때 그 의의가 있겠으며 연구를 통해 초기 여성들이 이중적 전략을 통해 천사같은 미와 온순함뒤에 광기ㅘ 분노의 괴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 성과를 가졌다. 여성작가 연구가 이미지 비평에 비해 훨씬 문학비평답긴 하지만 억압의 시대에 여성의 작품을 발굴하고 이해하는 문학사적 연구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이미 자유롭게 글쓰는 현시대의 여성작가에게는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단점을 갖고 있다. 또한 여성성은 동등한 인간상이 아니라 우월한 특성으로 찬양하는데까지 이르러 비판을 받고 있다.3) 여성적 글쓰기페미니즘 비평의 또다른 축은 심리분석적인 페미니즘으로 프로이드의 성정체성과 같은 남성의 경험에서 비롯된 남성적 패러다임을 수정하고 전복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였다. 미국의 낸시초도로우는 여성적 글쓰기를 통해 여성의 주체경험은 관계지향적이고 남성은 분리와 차이에 기반을 둔 전체지향적이라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으나 이는 가정과 육아의 주첵 여성이라는 기성관념을 더욱 공고히 하는 폐단을 낳았다. 또한 라캉과 크리스테바는 언어자체를 상징계인 남성의 것으로 규정하였는데 때문에 언어를 통한 여성의 저술은 남성에게로의 편입으로로만 평가하고 언어자체를 초 역사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추상화 해버리는 한계를 갖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여성내에서도 계급과 인종의 차이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이를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유색여성페미니즘)이라 한다.페미니즘비평이 이처럼 지금도 계속적으로 수정, 재정립 되어오고는 있으나 그 최종적인 목적은 문학작품의 창작, 독서, 해석을 통해 남녀 동등한 평등사회를 구현하는데 있다.2. 한국문학과 페미니즘 비평의 수용한국내의 페미니즘의 비평은 80년대 후반의 민주화 운동에 따른 여권운동의 전개, 여성학의 발달, 외국페미니즘이론의 도입과 소개를 통해 그 영향을 받았으며 현재는 한국의 현실과 상황에 따른 여성해방운동과 외국이론에 의지하려는 학문적 연구 2가지 경로를 통해서 외국이론에 선도를 받기는 하지만 그 비평 창작 모두 리얼리즘문학으로 이루어져 있다.1) 한국문학과 페미니즘 비평① 1930년대 여성문학론강경애, 박신애, 박화성, 이선희, 김말봉등의 여성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은 크게 3가지로 나뉘었는데 여성적글을 쓰라고 제한하는 입장과 사회핵심적으로 뛰어들기를 권하는 입장 막연한 센티멘탈리즘에서 벗어나 현실주체성문제를 형성화 할 것을 권하는 입장으로 특히 세 번째는 여성작가의 위상정립과 여성독자를 확보하기위해 바람직하다 할수 있다.② 1980년대 이후 페미니즘 비평문단 내적현상이었던 1930년대에 비해 1980년대에는 외국 이론의 도입과 문단외적 영향을 크게 받았다. 국외에서 여성해방운동과 탈식민주의, 탈구조주의, 해체주의 비평의 영향을 받았고 국내에서는 '한국 여성연구회'와 '또하나의 문화'라는 동인모임, '한국여성학회'. '한국여성문학연구회' 등의 단체가 주축이 되었다.한국여성연구회에서는 여성운동을 사회변혁운동과 동일궤도에 두고 여성으로서의 독해를 최초 실천비평으로 선도하였으나 현실문제를 간과하여 높은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또하나의 문화는 대학원생과 일반인들이 고루 참여하는 유동적인 조직으로 가부장적 문제를 공격하고 그 대안을 찾는데에 관심을 두었다. 우리사회의 김기인 성과 사랑의 문제를 사회표면으로 이끄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주요 필자가 여성학, 사회학 전공자여서 문학비평의 경우 기존의 문화 분석자료로 활용하는 한계를 가졌다. 한국 여성학회는 이대 여성학과가 주축이 된 대규모의 전국학회로서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추구하여 각분야의 여성시각을 자극 장려하는 역할을 하였다. 한국여성 문학연구회는 문학전공여교수들과 여성작가를 주축으로 기본문학사에서 소외된 여성작가의 발굴, 작품소개, 재평가등에 기여하였다.2) 페미니즘 비평의 수용과 전개① 이미지 비평한국에서의 이미지 비평은 이문열의 '영웅시대' 나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의 왜곡된 여성상을 비판하는등의 성과를 가져왔으며 가장 쉽게 접할수 있는 장점을 통해 여성독자 소모임이나 여성으로서의 독서법등으로 활용 그 영역을 확대하여 TV드라마, 영화, 비디오물에 까지 분석폭을 넓혔다. 그러나 이 경우 비 전문 독자에 의해 모든 문학작품을 여성학자료로만 활용하여 그 작품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가로 막는다는 요인과 함께 동어반복에 지루함등의 단점을 지니고 있다.② 여성작가 연구한국문학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페미니즘 비평분야로서 1920년대의 김영순, 나혜석, 김원주 1930년대의 강경애, 박신애, 이선희, 김말봉 80년대 이후 박완서, 오정의, 김향숙, 이순, 서영은 90년대 공지영, 공선옥, 신경숙, 최영미등의 여류작가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져 왔다.
포르노그라피를 어떻게 볼 것인가?Ⅰ.포르노그라피란 무엇인가?1) 포르노그라피의 어원2) 포르노그라피의 정의3) 포르노그라피의 역사Ⅱ.포르노그라피에 관한 논쟁1) 페미니즘 밖의 논의2) 페미니즘 안의 논의Ⅲ.에로띠끄 페미니즘적 분석고대 그리스어의 porne와 gra포르노그라피를 어떻게 볼 것인가?phos에서 파생porne는 '가장 싸고,고려되지 못하고, 노예를 포함해서 여자 중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였 던 최하층의 매춘부'를 의미하였고, graphos는 '글쓰기, 그리기'를 의미하였다. 즉, 그리스 시대의 포르노그래피는 '매춘부에 관해 쓰기'를 의미포르노그라피는 '섹스와 관해서 쓰기', '관능적인 것의 묘사', '성적행위의 묘사', '성의 표현'등의 해석되는데 현대에 와서는 '성에 대한 음란한 표현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물론, 시대에 따라서 도덕적 관념이나 윤리관이 항상 변하기 때문에 각 사회 또는 문화마다 포르노에 대한 판단기준에 다르다.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 성을 억압했던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인하여 다른 나라에 비해서 포르노그라피가 성행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플레이보이라는 포르노잡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외설물에 해당하지만 그 사회에서는 이미 성인용 대중잡지로 통하고 있다. 미국사회에서는 인간의 성을 묘사하는 내용이 인간성을 상실시키고 폭력적인 묘사를 하여 인간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정도를 외설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포르노가 가지는 존재가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 해석이 다르다.※ 포르노의 정의(인디애나 폴리스시 조례)ⅰ) 여성이 비인간적 모습으로 성적 대상이나 상품으로 묘사된 경우ⅱ) 여성이 수치나 고통을 즐기는 성적 대상으로 묘사된 경우ⅲ) 여성이 강간당하는 것을 즐기는 성적 대상으로 묘사된 경우ⅳ) 여성이 묶여 있거나 신체적으로 상해를 당한 상태에서 성행위의 대상으로 묘사된 경우ⅴ) 여성이 종속되거나 노예의 모습으로 성적 대상으로 묘사된 경우ⅵ) 여성의 신체가 부분화되어 그 부분으로 여성이 축소된 경우(즉, 여라피를 소비, 여성의 상품화가 시작※ 노동계층 - 억제된 성행위만을 허용, 억압된 성도덕 강요, 성병을 강조하여 피지배계층의 성행위를 억압부르주아 계층 - 고급매춘부 독점, 쾌락만을 위한 자위행위가 늘고 다양한 체위발달, 매춘부의 기하급수적인 증가, 밀실화된 성행위는 관음증을 증가시킴..현대 - 성윤리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세력들은 고부가가치 산업인 연예계와 연결시켜 포르노그라피를 이용하고 있음. 포르노에 대한 집착은 기득권을 차지하지 못한 자들의 관음증을 통한 성적욕구를 충족.보수주의자들은 바람직한 성과 그릇된 성이 있다는 전제하에 이성애적 성관계와 결혼 안의 성을 가장 우위에 둔다. 그들은 포르노가 인간의 내부에 깊숙이 숨어 있는 성의 사악한 측면을 작 동시킨다고 보고, 이를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포르노는 이사회의 도덕적 합의를 위반하고 일반인에게 혐오감과 불쾌감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부패, 타락하게 하는 사회적으로 유해한 해악을 끼치는 음란물이므로, 그러한 포르노로부터 성도덕과 성질서를 보호하기 위해 법이 적극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포르노에 대한 견해는 성에 내재된 본질적인 욕망이 있다는 생각과 그러한 욕망에 대한 부정적 시각, 욕망의 발현과 도덕성과의 연관성, 무엇보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의 기준에 따라 다양한 층위로 범주화된 섹슈얼리티에 대한 선입견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포르노는 억압해야 할 성적 욕망을 재현하고 부추기며 충족시키는 기제이자 우리 사회가 정해 놓은 도덕률을 위협하므로 규제되어야 마땅한 것이 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성적 가기 결정권의 입장에서 포르노에 접근한다. 그들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개인의 합리적 자율성에 대한 믿음이라는 자유주의적 가치에 근거하여 전 통적인 자유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과 소위 '성적 급진주의' 혹은 '성적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이들이 자유주의의 스펙트럼 안에 공존한다.a. 전통적 자유주의자들의 관점그들은 포르노가 개인과 사가 현재의 위계적 성담론을 전복시키는 기제가 되어 줄 것이라고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명쾌한 성적 억압에 대한 분석에 비해 성별의 문제에 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별 억압보다는 성적 억압만을 강조함으로 해서 성적 억압을 강화시키는 성별관계, 성적인 관계 석에 내재된 성별관계에 대한 분석을 무화시킨다. 이것은 현대의 포르노 산업에 개입되어 있는 남성 중심의 자본주의 속성, 그러한 포르노 산업을 지탱시켜 주는 권력관계를 오히려 분석해 내지 못하게 하는 아이러니를 낳을 뿐만 아니라, 포르노가 남성의 성적 욕망에 부합하고, 남성의 시선에 따라 만들어지며, 주로 남성들에 의해 유통되며 소비되어지는 현실을 간과하게 한다. 결국 섹슈얼리티 안에 교차되는 성별의 측면을 무시함으로써 사회 문화적 맥락 안에 성을 위치시키려는 그들의 본래적 의도마저 손상되게 된 것이다.그들은 섹슈얼리티를 남성권력의 주요한 사회적 영역으로 설정하고 여성에 대한 남성 지배의 근 원을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의 통제에서 찾고 있다. 그들은 남성이 여성을 성적 대상 으로 규정하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남성의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능력으로 개념화한다고 비판한다. 남성 지배의 사회에서 이성애적인 실천은 독점적 우월적 위치를 점하며, 이는 성적 대상화의 이데올로기, 여성억압의 성애화를 포괄한다. 남성은 성적 행위를 통해 성적 권력, 남성성이 가진 권력을 이성애라는 수단을 통해 표현한다고 한다. 여성은 단지 그 행위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성의 성적 자유는 섹슈얼리티와 감성이 상호 연관된 평등한 관계를 필요로 하는데, 이는 이성애적 성관계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된다. 그들은 포르노가 남성 지배의 도구가 될 것임을 경고한다. 포르노를 통한 여성의 비하, 성적 대상화, 비인간화는 남성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시키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모욕을 성애화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고 여성의 굴종을 유지시키는 성적 종속의 기제는 여성의 자유를 침해하고진적인 사고와 주장을 통해 지존의 성별체계에 도전해 온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을 검열하게 하는 도구로 사용될 위험성이 있음을 강조한다.따라서 이 관점에 속해 있는 페미니스트들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견지하고 있는 포르노그라피에 대한 견해가 전통적 반성애적 입장과 믿음, 성적 표현에 있어서 적절하고 옳은 여성적 형태가 있다라는 믿음 을 강화시킨다고 비판하고, 그러한 주장이 결국 권력을 쥔 남성 보수주의자들에게 이용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반포르노 운동이 여성의 성적 이미지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이성애적 관계와 동성애적 관계 안의 여성들을 억압하는 논리로 작용하고 있음을 그들은 경고하고 있다.이 관점의 요지는 성적 존재로서의 여성에 주목하고 여성의 성적 자율성을 존중하며, 여성에 성적 쾌락을 제공하는 성적 행위에의 참여를 적극 옹호하는 것이다. 그들은 폭넓은 성적 이미지들이 현실의 가능한 비전들을 증가시킬 수도 있음을 주장하면서 섹슈얼리티를 재생산과 가정의 영역 안에 제한할 필요가 없다고 하고, 쾌락이나 모험으로서의 섹슈얼리티, 자기 확신과 자시 표현의 수단 의로서의 포르노그라피에 대한 믿음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포르노는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보호되어져야 할뿐만 아니라 여성의 자기 정의적 이미지, 여성의 성적 쾌락에 부합되는 이미지를 포괄하는 방식으로 확대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이 포르노의 희생자라기보다는 포르노를 통해 성적 쾌락을 추구하기도 하는 잠재적 고객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자유로운 성적 표현이 기존의 성별 역할에 도전하는 담론을 허용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 자유의지론 자들은 포르노에 대한 현재의 제한과 검열이 결국 누구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한다. 이들은 여성과 성적 소수집단의 재생산적 권리와 성애적 권리를 옹호하며, 현재의 포르노에 대한 제한과 검열이 결과적으로 보수주의적 정부, 남성 우월주의 법체계, 총체적으로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의 여성과 성적 소의 가부장 사회이므로 우리의 성에 대한 인식은 그러한 문화의 결과이다. 따라서 포르노 또한 여성 억압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자본주의 가부장 문화의 산물이며, 가부장적 가치가 자본주의에 힘입어 재생산되는 데 기여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들은 포르노가 육체와 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전개의 한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이때의 이데올로기는 모든 성적 재현의 한 가지 작용이며, 재현과 성적 행위는 무수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담론들 안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포르노를 강간을 발하는 것이라든지, 문화적 저항의 한 형태로 파악하지 않는다. 포르노의 성차별적 이미지는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포르노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페미니즘의 정치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재현은 시각적이든 언어적이든 우리 문화의 전반적인 상징적 코드 안에 깊이 새겨져 있으므로 대중매체 안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이미지만을 다루는 것은 잘못이다.그러므로 포르노가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편 사 회의 남성 우월주의 담론을 재현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 자신의 주체성, 정체성, 성적 욕망과 쾌락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욕망에 대한 정의의 틀 안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여성의 욕망이라는 것도 남성들의 특권을 유지시켜 주는 담론에 의해 구성된 것일 수도 있다. 20세기 남성 우월주의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된 포르노는, 이를 통해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의 부분이 되므로 포르노 속에 성차별 적인 요소의 개입과 포르노 생산에 있어 여성 착취적 요소는 당연한 것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소비자로서의 남성도 포르노 생산자와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포르노에 대한 일방적인 규제와 포르노를 추방하기 위한 캠페인에 반대한다. 성과 포르노는 문화 속에서 구축되고 배태되는 것이므로, 섹슈얼리티가 전개되고 표현되는 물적 맥락의 변화만이 포르노를 변화시킬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