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 통일을 위한 남북한 경제 협력 연구주제: 성공적으로 통일을 하기 위한 남한과 북한의 경제 협력의 당위성과 이에 대한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여 본다.Ⅰ 서론오늘날의 세계 질서는 탈냉전의 시대적 추세에 따라 이념이 쇠퇴하고 국가이익의 중심이 군사력에서 경제력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는 군사력보다 경제 번영에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두고 상호의존과 협력에 바탕을 둔 무한 경제경쟁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급격히 변화하는 새로운 국제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아직도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분단상태를 극복하지 못한 채 남북한간의 적대적 갈등과 불신에 시달리고 있으며, 군사력 사용에 대한 불안이 상존 하는 냉전적 요소로 인해 주기적으로 긴장관계를 연출하고 있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북한의 대남 보복발언 그리고 비무장지대에서의 도발 등이 그 좋은 예이다.이와 같은 상황하에서 우리의 국가안보는 전쟁 방지뿐만 아니라 긴장완화와 평화증진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보장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한의 상호불신과 적대를 해소하는 일이 필요하다. 즉, 지금 우리에게는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대응처럼 군사적 균형을 통한 전쟁억제라는 차원을 넘어 경제협력을 통한 긴장완화와 평화증진을 추구하는 보다 적극적인 안보개념이 필요하다.사실 경제협력은 정치·군사적인 협상 등과는 달리 타협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에 남북 경·협의 활성화는 남북한간의 정치·군사적 긴장 관계의 악화를 막는 완충제 역할은 물론 남북관계의 개선에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분명한 점은 남북 경·협은 남북한 모두에게 경제적인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이에 우리는 지금 김 대중 정권 하에서 북측에 대하여 이른바 햇볕정책 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하에서 체제적 오류로 인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사회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나는 북한에 대한 지원이 꼭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내에서도 보수적 수구세력들이 반대론 등을 옹호하고 있으나 이는 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로 보아 프랑스는 북한에 대해 유럽연합의 회원국의 대북 정책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000년 북한은 이탈리아, 영국 등과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벨기에와는 2001년 1월 공식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북한은 독일정부와도 외교수립을 협상중이다. 유럽연합의 중심국가인 독일이 북한과 수교함에 따라 앞으로 EU의 대북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유럽연합과의 외교관계 수립은 우리 나라 외교정책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하며 실질적인 이익도 주고 있으며 북한의 대·내외정책의 변화를 상징하는 신사고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도 가시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2.북한경제의 구조적 문제점그렇다면 무엇이 북한경제의 어떠한 제도적 특성 및 정책변수의 상호작용이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부족현상을 가져왔는가에 대해 분석해 보기로 하자.북한의 부족현상은 이념 편향적인 발전전략과 중앙계획경제 운영상 나타나는 비효율성, 그리고 이들의 상호작용에 따른 산업불균형의 심화기제, 대외경제제도의 결함 등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1)주체사상과 자급적 경제의 추구1960년대 초, 중소분쟁 악화 및 사회주의 동맹국들로부터의 원조감소와 새로이 나타나기 시작한 경 제적 문제점에 대해 북한 지도부는 주체사상에 입각한 독립적인 경제 및 군사체계건립을 해결책으 로 제시하였다. 따라서 제1차 7개년 계획이래 자족적 중공업 및 구 수산업체계 건설을 위해 대부분 의 가용자원을 투입하게 되었다. 1965년의 경우 전체 정부투자 중 66.7%가 선업부문에 투자되었고, 그중 87.3%가 중공업부문에 투자되었으며, 이와 같이 편중된 투자구조는 이후에도 큰 변화 없이 유 지되었다.자급적 중공업체계를 위한 편중된 투자구조는 북한과 같이 에너지 및 생산원자재의 대외의존도가 높고, 비교적 작은 규모의 경제에 심각한 비효율성을 가져왔다. 더욱이 희소비용을 반영하지 못하는 가격 체계 하에서 중공업 분야 내에서의 투자 역시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의사결정권.3)대외 경제 관계의 비효율성북한의 부존자원과 경제 구조를 고려해볼 때 대외 관계는 중요한 역할을 담담하고 있다. 북한은 비 록 자급적 공업체계건설을 추구해 왔으나 원유를 포함한 공업용 원자재 및 생산설비는 구 소련. 중 국, 및 일본 등으로부터의 지원 및 수입에 의존해 왔으며 체계의 비효율성으로 인한 만성적 부족현 상과 기술 낙후로 인해 해외로부터의 산업기술 및 원자재 수입 가능여부는 경제성장의 관건이 된 다.그러나 북한은 지금 자급적 공업건설 정책에 따라 산업특화 및 기술개발을 통한 비교우위의 개발에 실패했으며 이는 곧 상품 수출능력의 결여와 무역패턴의 낙후성으로 나타났다. 구 소련 및 동구권 변혁 이전 시기에 북한은 주로 구 소련으로부터의 지원 및 바터무역에 의존하여 생산원자재 및 생 산설비를 확보했으며, 이는 국가의 체제변혁 이후에는 중국의 지원성 수출과 바터 형식의 변경무역 에 의존하여 주요물자를 조달하였다. 그러나 중국 역시 시장 지향적 개혁정책으로 인해 북한에 대 한 지원성 교역을 지속하기 힘들어지자 최근에는 북·중 무역 규모를 급속히 감소를 겪게 되었다.결과적으로 북한은 원유 및 곡물 등 필수적인 상품의 수입을 위해 북한경제의 자체수요에 대한 공급도 부족한 석탄, 철강 등 생산재를 수출해야 하는 비효율적 무역구조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놓 여있다. 이는 경제 전반의 부족현상을 더욱 심화시켰으며, 생산원자재 부족으로 인한 산업가동률 저하는 이와 같은 상황을 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이를 요약하여 본다면첫째, 중앙집권적 계획 경제 하에서 생산 요소의 이동이 경제적 효율성을 무시한 채 지시에 의해서 경직되게 행해짐으로써 자원의 효율적 분배가 곤란하다.둘째, 생산 수단의 국유화 등으로 노동 동기부여가 미흡하여 일하러 나아가되 일하지 않고, 일하 되 열심히 하지 않는' 형태가 널리 퍼져 있다.셋째, 관리 부문을 포함하여 비생산부문의 비대가 경제의 효율성을 저해시킨다.넷째, 할당제 중심에 의한 계획 경제로 기술개발이나 노동성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다섯째,을 시발로 1992년 1월 대우그룹 김 우중 회장의 남포공단 건설 협의를 위한 방북, 1992년 9월 고합그룹 장 치혁 회장의 방북 등의 사례가 있었으며, 1992년 9월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교류협력 부속합의서」가 채택되면서 많은 국내기업들이 대북 경제협력사업을 준비하게 되었으나 1993년 3월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의 탈퇴를 선언함에 따라 남북관계는 재차 경색되었고, 남북한간 경제협력은 핵 문제의 해결과 연계한다는 우리 정부의 기본방침에 의하여 모든 경제협력사업은 사실상 중단되었다.핵 문제로 중단되었던 남북 경제협력사업은 1994년 10월 21일 북·미 제네바 합의로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토대가 마련됨에 따라 한국정부는 대 북한 경제협력을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조치를 취하여 왔다. 1994년 11월 기업인방북허용, 위탁가공교역활성화, 시범적 경제협력사업 실시 등을 골자로 하는 남북경제협력활성화조치에 따라 1995년에 (주)대우에 대해 협력사업 승인 그리고 고합물산 등 6개 기업에 대해 협력사업자 승인이 이루어졌으며, 1996년 4월에는 삼성전자 등 3개 기업이 협력사업자 승인을 받았다. 이에 따라 남북한간 경제협력사업을 목적으로 한 방문과 북한주민접촉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으며, 1996년에는 (주)대우(투자규모 512만달러)와 북한의 삼천리총회사 간에 남북한 최초의 합작사업인 민족산업총회사가 가동에 들어갔다.그밖에 국영기업들의 대 북한 접촉도 증가하고 있다. 토지개발공사가 나진·선봉지역에 한국기업전용공단 건설을 위해 북한측과 협의 중에 있으며, 수자원공사도 임진강 수자원 조사 및 개발, 나진·선봉지역 용수개발을 위해 북한측과 접촉 중에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북한에 대한 남한기업의 투자는 아직 시장조사 수준에 머물고 있다.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대북 경제협력사업은 1994년 이전에는 북한의 핵 문제 와 연계하여 왔으며, 1996년 4월 이후에는 북한의 4자 회담 참여와 연계하여 크고 작은 정치적·군사적 사건에 의하여 경직적으로 운경·협에 대한 남북한 당국간의 정책적 입장 차이에 기인하는 바 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당국자간의 대화를 통한 정부차원의 경·협은 철저히 배제한 채 민간차원의 경제협력만을 추구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는 남북 경·협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당국 간 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남북 경·협이 아직도 경제적인 논리보 다 정치적인 논리에 의하여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으로 4자 회담의 틀 속에서 운용되 고 있는 지금의 경·협 정책 특히 대북 경제협력사업 부문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결국 남북 경·협의 가장 큰 장애요인은 정치와 연계한 남북한 당국의 경·협 정책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으 며, 이와 같은 정치논리 우위의 일관성 없는 경·협 정책은 외국기업에 의한 시장 상실과 함께 남 한 기업간의 과당경쟁을 유발하여 북한보다 남한 기업에 더 큰 피해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2)복잡한 경·협 관련 절차 및 규제남북 경·협 전반에 걸쳐 상존 하고 있는 복잡한 절차와 규제 또한 남북 경·협의 활성화를 가로막 는 중요한 원인이다. 남북교역의 경우 최근 들어 일부 개정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반출입시 해당 물품이나 거래 형태, 대금결제방법에 있어서 정부의 승인을 얻도록 되어 있거나 승인이 제한되어 있어 대 북한 교역이 다른 나라와의 교역보다 더 강한 규제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수출 입 공고의 통일원 고시에 따른 반·출입 제한 승인, 남북간 선박 운행에 관한 승인, 통관 시 원산 지 증명 및 제3국 경유 입증 서류 제출, 시설재 공급 위탁가공 교역 시 제한 승인 등 대북 접촉에 서 통관에 이르기까지 까다로운 절차 및 규제가 아직도 남아있어 남북 경·협 활성화의 장애요인으 로 지적되고 있으며, 사업승인 절차 또한 북한 주민 접촉 승인 및 방북 승인→협력사업자 승인→협 력사업 승인의 3단계로 되어 있어 신속한 경·협 추진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더욱이 승인절차와 시 기, 업종, 규모 등에 있어서 정부의 권한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은식의 사상과 나의 생각 1980~1990년199702666 금속공학과 김 정 재**1898~1910년도: 유교 개혁운동과 애국 계몽운동을 통해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한 시기.백암은 40세가 되어서야 사상적인 전환을 일으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학설이 수입되고 언론의 자유되면서 이전의 유학적 세계에서 벗어나 사상적 전환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 많은 갈등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이유야 뚜렸했지만 40여 년간 주자학에 있던 가 있는 시대를 접하게 그에게 신학문과 신사조의 수용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상적인 전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합리적인 서구의 각종 학설이 수입되고 개화된 신서적을 접하게 됨으로써 주자학으로는 그러한 시대적 형세를 타개할 수 없다고 하는 깨달음이었던 것이다. 세계학설과 언론자유의 시기는 구체적으로 독립협회의 자유민권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엄격히 금지되었던 모든 학설을 마음대로 접할 수 있었던 시기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백암은 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회원이 되었으며, 독립협회가 의회개설을 눈앞에 두고 수구파의 모략전술로 말미암아 해방된 후 한성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만민공동회에서 문교부장급 간부로 활동하였다. 그는 만민공동회에 참가하여 간부로서 활동을 함으로써 생애에 획기적인 사상적 전환을 가져오게 된다** 박은식의 교육사상1) 실용주의적 교육사상백암은 교육을 통해 민중을 계몽시켜 도래한 생존경쟁의 시대에 대응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이 대동 단결하여 진취적인 사상을 견고히 하는 한편, 학문을 자수하고 교육을 계속하여 자주·자강의 독립을 회복할 수 있다고 그 방법을 제시했다.그러나 구학문·구사상으로는 현실 대응 능력에 많은 한계점이 있었다. 왜냐하면 주자학이 세상의 풍속과 교화를 도와 뿌리를 내리게 한 공이 컸다고 하여 주자학의 공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상적 폐쇄성으로 인해 문화진보의 장애 가 된 폐단이 적지 않았다고 지적하였고, 또한 유림을 개명시대의 일대장애물 로 보고 있다.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국민들은 여전히 전통적 유교문화에 집착하는 보수성이 강하였다. 따라서 유교적인 폐쇄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세계의 정세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여 개화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 이 때문에 백암은 구국사업의 제일요소를 교육에 두어 교육을 통해 민중을 계몽시키려한 것이다.2) 민본주의적 교육사상당시 대부분의 국민들은 유교적인 폐쇄성에서 탈피하지 못하였으므로 개화를 더욱 어렵게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에 백암은 당시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정치적 개혁보다는 교육을 통한 국민전체의 의식의 변화라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백암에 의하면 사회라는 것은 일반 인민이 서로 결합하여 국가와 민족의 공익사업을 협력하여 나아가는 것이며, 국가라는 것은 인민이 모인 것이므로 그 민의 문명은 그 나라의 문명이오 그 민의 부강은 그 나라의 부강이라 하여 백성이 곧 나라의 근본임을 강조했다.백암에 의해 이렇듯 사회가 신생중심이 아닌 제왕중심으로 흐르게 된 원인은 맹자의 민본주의적 사상이 발전하지 못하고 제왕을 중심으로한 사상이 발전했기 때문이라 했다. 즉 그는 기존의 사회를 제왕중심의 사회로 단전하고 유교계의 발전 분 아니라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도 이를 탈피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이는 곧 당시 사회전반의 폐단을 극복하고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민본주의에 입각해 민지를 개발하고 민권을 신장해야 한다는 말이다. 구국의 방침이 되는 교육에 있어 그 대상의 원류를 국민에게 두고 있는 점 등을 통해 볼 때 그의 교육구국사상은 민본사상에 입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백암은 이런 민본사상에 입각한 보다 폭 넓은 교육의 보급을 위해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첫째, 여성교육을 주장했다.둘째, 국문의 사용을 주장했다.셋째, 광범위한 서적의 간행을 주장했다. 백암은 나라에 서적이 풍부한 연후에야 배우는 사람이 견문을 넓힐 수 있음을 들어 서적을 널리 출간할 것을 주장했다.3) 자립자강의 민족주의제국주의가 팽배한 현실 속에서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자연히 국가의 독립유지와 민족의 보전 문제를 심각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세계민족은 자국의 자존을 위해 구투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자립자강론을 펴게되었다. 특히 백암은 당대는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이 극렬한 시대이므로 누구도 믿을 수 없다고 단정했다. 이는 자강의 성질과 자립의 능력이 없이 다만 타에 의존하는 자는 결코 노예를 면할 날이 없게 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일호라도 타에 의존하는 마음이 없는 자 만이 필경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백암은 우리의 최대 당면 과제였던 독립도 또한 지립자강에 의해 이루어져야 할 것임을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자력을 해야지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타인의 노예요 희생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하여 자력에 의한 독립을 극력 주장했다. 백암은 이런 자립을 위한 방한으로 생활상 자립과 상무적 교육의 실시를 들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199702666 금속공학과 김 정 재개항 이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상인의 변동에 관하여강화조약이 체결된 후 한국과 일본과의 무역은 그 이전의 왜관무역과는 달리 많은 점에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었다.첫째로 무역액의 격증. 둘째로는 무역품 내용의 변화.셋째로는 일상의 대거진출을 들 수 있겠다.강화조약 체결 이후 한일간의 무역액은 매년 2배 내지 3배로 늘어났다. 개항 전의 왜관무역에서는 수입 및 수출액이 각각 5만원내지 8만원대였으나 개항 이듬해인 1887년에는 일약 20만원대로 상승했고, 1879년에는 50만원대 1881년에는 100만원대로 격증하였다. 또 무역품의 내용을 보면 일상에 의한 수입품은 개항 후 거의 모두가 서구산공장제품이 차지했으며, 수출품은 미곡 등 식량과 금괴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일상의 진출에 있어서도 개항 전에는 소수의 일상이 부산에 상주하였을 뿐이었으나 개항 후에는 부산 · 인천 · 원산 · 서울 등으로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상주 인원도 격증하였다.개항 후 나타난 이러한 새로운 상황의 전개로 민족상인의 대응자세도 크게 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개항장에서 외상및 외래상품의 상륙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 것은 객주와 여각이었다.이들 객주와 여각은 17, 18세기 이래 전통적인 특권 시전에 대항하면서 성장한 상인층이며 그들은 서울의 한강과 지방의 각 포구에 자리잡고 도읍으로 반송되는 물화를 매점함으로써 재화를 축적한 것이다. 육의전을 비롯한 특권 시전은 봉건적 상업질서 속에서 정부의 권력과 밀착하여 물화의 독점수매 및 판매로써 재화를 축적한데 반하여 이들 객주와 여각은 전통적 질서를 붕괴시키면서 성장하는 혁신적인 상인이었다. 18세기 말엽부터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들 객주와 여각들 중에는 이미 특권 시전을 능가하는 거상도 많았다. 18세기 말엽에 자주 나타나는 시전상인이 객주도매의 횡포를 규탄하는 상소는 바로 이러한 신구상인의 싸움을 의미한 것이라 하겠다.물론 객주 · 여각에서 성장한 도매들도 관과 결탁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매의 재화 축적은 경제적 독점으로 이룩된 것이며 관권이라는 권력기구를 통하여 독점 이득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점에서 객주와 여각은 봉건적 상업질서를 붕괴하면서 등장한 새로운 상인이며, 따라서 특권시전인과는 달라서 근대적 상업에 한 걸음 접근하고 있었다고 하겠다.개항 직후의 무역관계에서 객주와 여각의 활동은 컸다. 초기의 무역에서는 외상들은 전관거류지에서 사방 10리를 넘는 지역에는 행상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그들의 상거래는 개항장에 한정되고 있었다. 또 이 초기에 진출한 외상들은 언어도 통하지 않았고 상거래상의 관습에도 익숙하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부득이 개항장의 전통적인 상업망을 통하여 상품을 판매하고 물화를 수집할 수 밖에 없었다.그리하여 개항초기의 무역관계에서 외래품의 판매와 지방물화의 수집을 담당하고 나선 것은 상리에 예민한 진취적인 객주와 여각이었다. 이들 객주와 여각은 산하에 다수의 거간 및 군소상인과 보부상을 두고 수입 상품의 판매와 수출품의 수집에 종사함으로써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개항 후 7, 8년간은 이와 같이 객주와 여각은 전통적인 상업망을 통하여 개항장의 국제 무역에서 주요한 몫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18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무역관계가 점차 달라져 갔다. 1882년에 미국 및 청국과도 통상조약이 체결된 데 이어 서구 각국에도 문호가 개방되었고, 개항장도 부산항 외에 새로이 인천 및 원산 두곳이 개항되었고 한성개시가 실현됨에 따라 외상의 진출도 활발하여졌다. 이 시기에 특히 괄목할 만한 일은 일상과 청상의 경쟁이 격화되었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청상과 일상의 경쟁은 개항장에서 뿐만 아니라 지방 소읍에 까지 확장됨에 따라 그들의 상업활동은 민족상인의 이해와도 무관할 수는 없게 되었다.원래 외국상인은 개항장에서 상업을 할 수 있었고 개항장 밖에서 행상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런 원칙은 한청통상조약의 체결과 더불어 완화되었고, 그 후에 체결한 한영통상조약에서 사실상 철폐하고 말았다. 한청통상조약의 제4조에서는 '중국상민은 조선에 입국하여 양화진 · 한성에 좌상함을 허하나 각종 물화를 내륙 지방에 반입하여 점포를 개설할 수는 없다'고 하여 지방 행상을 원칙적으로 불허하면서도 '만일에 지방에 들어가서 지방 물화를 수집하고자 할 때에는 양국의 상무원과 지방관회로부터 충회자(허가장)를 받아야 한다.'고 하여 허가서만 있으면 청상도 지방에서 물화 모집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결과가 되었다.외국 상인에 대한 지방 행상은 1883년에 체결된 한영통상조약 제4조 제6항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규정으로 허용되었다. 이 조문을 보면 '영국상민은 통상 항구에서부터 조선 이수로 100리 이내의 지역, 혹은 양국 정부의 관할 당국 사이에 동의할 수 있는 구역내는 여행권 없이 그들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고 하였고, 또 '영국민은 조선 정부에서 불허하는 서적 및 기타 출판물을 갖지 않는다면 여행권을 갖고 조선 국내 각지에서 유람이나 무역을 목적으로 여행할 수 있고 각종 상품을 운반하고 구매할 수 있다.'고 하여 지방 행상을 사실상 허용하고 말았다.
이산화 티타늄 (TiO2)▶ 이산화 티타늄이란?보통은 산화티탄을 가리킨다. 산화티탄은 이산화티탄이라고도 하며, 또 티탄산무수물 ·티타니아라고도 한다. 화학식 TiO이다.천연으로는 브루카이트 ·예추석(銳錐石) ·판(板)티탄석 ·일메나이트(티탄철석) 등의 광물로서 존재한다. 구조가 다른 3개의 변종이 알려져 있는데, 고온에서 안정한 형을 루틸형, 저온에서 안정한 형을 예추형, 중간 온도에서 안정한 형을 브루카이트형이라고 한다.루틸형은 각종 무기산 ·유기산 ·알칼리 ·가스 등에 침식되지 않으며, 열에 대해서도 1800℃까지 용해하지 않는다. 금속티탄을 공기 속에서 강열하면 생기는데, 공업적으로는 일메나이트 등의 광물을 분쇄 ·건조시켜 진한 황산을 가하고, 여과액에 쇠부스러기를 가하여 위에 뜬 액체를 냉각시킨 후 물을 가해서 침전시켜 800∼900℃에서 배소하여 얻는다.▶ 이산화 티타늄의 원리와 특성①원리:이산화티타늄은 빛이 닿으면 마이너스 전기를 띠는 전자와 플러스 전기를 띠는 미세구멍(정공)을 만든다.이 전자와 정공은 매우 강한 환원력과 산화력을 갖고 있어 대기중의 물과 산소로부터 아래 그림과 같이 활성산소인 수산기( OH)와 과산소이온 (O2-)을 생성한다.생성된 수산기와 과산소이온이 강력한 산화, 환원력을 갖고 있어 살균, 유기물분해등에 작용한다.생성된 수산기와 과산소이온의 일부는 과산화수소로 변하여 산화에 참여하기도 한다.전자와 정공에서의 반응식은 다음과 같다.전자O2 + e- → O2-정공H2O + hole+ → OH + H+②이산화티타늄의 분체적 특성이산화티타늄 결정구조에 따라 Anatase와 Rutile 타입으로 구분한다. Anatase은 아래의 그림과 같이 결정단위와 결정단위가 꼭지점끼리 (점접촉) 연결되어 있는 결정모양이고, Rutile은 결정단위와 결정단위가 측면모서리끼리(선접촉) 연결되어 있는 결정모양이다.따라서 Rutile이 Anatase에 비해 결정구조가 안정되어 있어 경도, 비중 이 높다. 또한 결정구조의 차이에 의해 광학적 특성도 차이가 나며, 빛의 굴절정도가 달라 눈으로 볼때의 색깔도 다르다.과거에는 Anatase 타입이 Rutile에 비해 가격이 낮아 백색도료용으로 Anatase타입을 사용했으나 Anatase 타입이 Rutile 타입보다 OH 를 상대적으로 많이 만들어 도료에 함유돼 있는 수지 등을 분해하여 도막 이 하얗게 들뜨는 Chalking현상을 일으키므로 1940년 이래로 광촉매 활성이 작은 Rutile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이산화 티타늄의 용도①항균 살균 방취 기능㉠원리이산화티타늄 광촉매에의해 발생한 수산라디칼(OH )와 과산소이온(O2-)은 박테리아 세포막에 달라붙어 산화, 분해함으로서 세포막을 파괴하여 살균, 방취할 수 있다.따라서 MRSA, O-157 등 각종 병원균과 각종 박테리아를 99%이상 살균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장점일반 항균제는 항균력이 있는 물질이나 그 주변에 박테리아가 접촉했 을 때 효력을 나타내지만, 이산화티타늄 광촉매는 이산화티타늄 표면에서 빛에너지를 받아 전자가 계속해서 이동하므로 정공이 한 곳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그러므로 정공에 의해 생성되는 수산라디칼과 전자에 의해 생성되는 과산소이온이 이산화티타늄 표면 곳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박테리아와 접촉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따라서 항균, 살균, 방취 능력이 기존 항균제에 비해 뛰어나다.일반적으로 항균제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항균력이 떨어지는데, 광촉매 항균타일은 반영구적이기 때문에 설치만 해놓으면 항균력이 꾸준히 유지되며, 유지,보수비도 거의 들지 않는 획기적인 것이다. 병원등 수많은 균들이 존재하는 공간에 적용시키면 정기적인 소독, 살균없이 병원내에 존재하는 균들을 살균처리할 수 있어 위생적이며, 유지비용이 적게든다이산화티타늄은 인체에 무해하므로 부엌용품, 욕실 등에 일상생활용품 에도 적용할 수 있다.②유기물 분해기능㉠원리이산화티타늄 광촉매는 정공의 뛰어난 산화력이 각종 유기물을 분해할 뿐만아니라 NOx, SOx 를 제거하는데도 탁월한 효과를 갖고 있다.일본에서는 광촉매 블록 및 타일을 제조해 일본도로공사와 공동으로 도로 및 고가도로 기둥, 터널내벽에 부착시켜 자동차 배기가스를 정화 하는 실험을 통해 NOx, SOx가 90%제거되는 효과를 확인했다.또한 과산소이온에 의해 납, 수은등 인체에 극히 유해한 중금속물질을 산화, 침전시켜 80~90%제거할 수 있다.납이온을 산화하는 과정을 간략히 보면 다음과 같다.Pb+ + 2O2- → PbO2 + O2 또는 Pb2+ + 2O2- → PbO + 3/2O2㉡장점수중의 유기오염물을 제거하는 최근 방법들로는 활성탄에 유기오염물 을 흡착시켜 제거하는 활성탄흡착법, 액체상을 기체상으로 변화시켜 제거하는 탈기법(Air stripping), 오존, 과산화수소를 사용하여 오염물을 산화시켜 제거하는 고급산화법(Advanced Oxidation Process : AOP) 등이 있다.기존의 폐수처리법으로 처리한 폐수는 활성탄 찌꺼기를 매립, 소각 하면서 2차오염이 발생하거나 고가의 화학물질을 투입하여야 하기 때문에 처리비용이 많이 들어갔다.이산화티타늄 광촉매를 사용하여 폐수를 처리하면, 태양광으로 폐수를 처리할 수 있어 폐수처리를 위한 에너지 소비가 별도로 들어가지 않으며, 2차오염이 발생하지도 않고, 고가의 화학물질이 첨가되지도 않기 때문에 폐수처리에 있어 획기적인 방법이다.이렇게 획기적이고 좋은 방법이 아직 상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폐수처리가 기계의 부품을 교체하듯 쉽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수처리 시스템 중 일부분의 처리방식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전후의 시스템을 고려해야 하고, 폐수의 성격에 따라 처리단계를 달리 하므로 적절한 단계에 적절한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③초친수성 분야㉠ 원리일반적으로 재질의 표면에는 유기물이 붙어있어 소수성을 띠게 되며 따라서 세척할 때 유기물을 제거하기 위해 세제를 사용하지 않으며 세척이 잘안된다.그런데 이산화티타늄 표면은 자외선을 받으면 광촉매 활성을 일으켜 표면에 오염된 유기물들을 분해하여 없애버리므로 친수성이 된다.㉡ 장점물이 물위에 떨어지면 방울이 생기지 않고 물 표면에 흩어져 없어지듯이 어떤 물질의 표면이 물과의 친화력이 있으면 물은 방울을 형성하지 않고 흩어질 것이다.일본 TOTO는 이산화티타늄 광촉매의 이러한 효과를 발견하고 상용화하기 시작하여 먼지 및 자동차 배기가스에 오염되는 도시미관을 해치는 차음벽에 적용하여 오염물질이 없는 깨끗하고, 물로만 청소할 수있는 차음벽을 제품화했으며, 자동차 바디용 스프레이를 개발, 세제없이 기존 물사용량의 1/10로 세차할 수 있도록 했다.초친수성은 표면에 물이 맺히지 않기 때문에 화장실, 실내의 유리 및 차음벽, 자동차 Room mirror 등에 김서림방지(Anti-fogging)용으로 유용 하게 사용될 수 있다.▶이산화티타늄의 핵심기술① 표면적 확대이산화티타늄 광촉매의 효율이 좋기 위해서는 촉매역할을 하는 이산화티타늄이 가능하면 넓은 영역에서 많은 빛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이산화티타늄 광촉매의 입자를 작게하면 할수록 표면적은 증가하는데 자외선을 인위적으로 강하게 비추어 폐수를 처리하는 바투환경기술에서는 1㎛의 입자를 사용하며, 아직 실험실 단계이지만 태양빛을 이용하여 난분해성폐수를 처리할 때는 30nm크기의 이산화티타늄 분말을 사용한다.
실리카(규산)● 정의실리카 (Silica-산화규소) : 모래의 주성분인 (비)결정체천연으로 존재하는 각종 규산염 속의 성분으로서의 이산화규산 을 말한다. 화학식 SiO2. 천연으로는 석영·수정·옥수(玉髓)·마 노(瑪瑙)·부싯돌·규사(硅砂)·인규석(鱗硅石)·홍연석(紅鉛石) 등에 결정 또는 비결정으로 산출된다. 석영은 장석류에 이어 풍 부하며 지구상의 여러 곳에 분포하여 지각의 12%를 차지한다.● 제조법가용성 규소의 염류 수용액에 적당한 산을 가해 증발·건고하면 비결정물질을 얻을 수있 다. 비결정성인 물질을 융제를 사용하여 적당한 온도와 압력으로 융해·고화하면 3가지 변태(석영·인규석·홍연석)를 얻을 수 있다.● 종류와 성질순수한 것은 무색 투명한 고체로, 분자량 60.09이다. 천연산은 불순물을 함유하므로 불투명, 또는 유색인 것도 있다.규소를 4개의 산소가 둘러싼 정사면체형인 SiO4를 기본단위로 하고 모든 산소를 규소가 공유하여 3차원적으로 연결된 거대분자구조를 가지고 있다.이 때의 SiO4의 사면체 배열에 따라서 석영·인규석·홍연석의 차이가 생긴다. 또, 이 배열이 불규칙한 것이 석영유리이며, 결정 이산화규소를 융해하여 냉각하면 석영유리가 된다.산에 녹지는 않지만 알칼리용융 또는 탄산염융해 등에 의하여 가용성인 규산염이 되기도 한다. 진한 알칼리수용액에도 서서히 녹는다.플루오르화수소 HF에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나타내며 아주 침식되기 쉽다.SiO2+4HF→SiF4+2H2O● 용도석영유리는 고온에 견디며 팽창률이 아주 작고 급격한 열변화에 강하기 때문에 내열(耐熱)유리로서, 또 자외선을 잘 통과하기 때문에 각종 광학장치에 사용된다. 그 밖에 피에조 전기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수정발진기(水晶發振器)에도 사용되고, 비결정성인 것 특히 실리카겔은 흡습성이 있어서, 건조제로 사용된다.용도를 같은 분야이지만 좀 더 자세히 나열하여 보겠다.ⓛ PHC Pile 제조시 규사(SiO2)를 사용Auto clave양생을 실시하는 제품의 주재료로는 시멘트와 석회이며 여기에 적량의 실리카질 재료가 필요합니다. 실리카질 재료로는 세립규사, 플라이애쉬, 규조토, 분쇄한 클링커 등이 사용되어지고 있다.규사를 사용하는 이유는 양생온도 180도 ~ 200도, 압력 10 ~ 15 kg/cm2 의 범위에서 고온고압 양생(Auto clave양생)을 행하면 CSH 결정겔, 터보모라이트(tobermorite), 칼슘실리케이트 화합물(C₂SH), αC₂SH, CaOH₂등과 같은 상압의 습윤양생에서 발생되는 수화생성물과는 다른 생성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고강도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물론 고강도화의 방법이 규사를 사용한 배합의 Auto clave 양생에 의하여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공장제품으로 경제적이고 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② 장섬유방사후 gel 섬유의 권취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적절한 방사용액의 농축정도 즉 SiO₂ 함량을 결정하여 첨가한다.③ 부식방지용도료산이나 열, 풍화작용에 탁월한 내성을 지니고 있으며 화학적 안정성도 높다따라서 선박, 콘테이너, 철구조물, 금속등 여러곳에 부식방지를 위한 도료로 사용되고 있 다.④ 분체도료모든 분체원료와 화학적반응 없이 안전하게 혼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널리 이용되고 있다.⑤ 건축용 도료화학적 안정성이 높은 기능성 안료로서 견고성이 뛰어나서 내외장 코팅의 내구성을 높여 줍니다.⑥ 실리콘라바준보강충전제로서 훌륭한 효과가 있으며 모든 교질실리카와 혼용할 수 있습니다.⑦ 고순도 실리카(Silica)섬유▶ 장시간 연속 사용온도 800℃, 순간 사용온도 1600℃에 견딜 수 있는 내열재료이다.▶ 안전하고 인체에 해가없는 단열재이다.▶ 내약품성이며, 전기절연성이 있다.▶ 용도1. 닥트, 배관, 방화커-텐 등 보온, 단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