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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로사와 아키라의 모든것 평가A+최고예요
    - 목차 -서론본론Ⅰ.쿠로사와 아키라란 누구인가?Ⅱ. FilmographyⅢ. 쿠로사와 아키라의 명작들1. 라쇼몽2. 백치3. 7인의 사무라이4. 요짐보5. 데르수 우잘라6. 카게무샤7. 란8. 꿈Ⅳ. 쿠로사와 아키라가 그려낸 휴머니즘Ⅴ. 영화에 대한 열정결론서론영화는 물론이겠지만 모든 예술의 가장 큰 장점은 “애매모호함”일 것이다.메이지 시대가 완전히 저물어지지 않았을 무렵, 일본이 그 자체로서 아시아의 중심이라고 여겨지던 시절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홀로 내던져진, 혹은 서구문화로부터의 강제성을 띈 시대에 태어나 모든 혼란과 변화를 몸소 겪으면서 성장한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분명 그의 인생에 걸친 영화들로서 자신의 “혼란성”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강제성을 띈 서구에 둘러쌓여 주인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일어서야했던 일본의 시기를 그는 “주인을 잃어버린 사무라이”들로 대신해 자신의 페르소나로 표현했다.한때 전세계의 극찬을 받았고, 한때는 일본 자국 내에서 버림받아 제작비가 없어 CF까지 해가며 친구에게 돈을 빌리면서도 다음 영화를 위해 수백 장의 드로잉을 그리고 각본을 틈틈이 썼던 쿠로사와 아키라에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물음으로부터 이 레포트는 시작된다.본론Ⅰ.쿠로사와 아키라란 누구인가?그는 1910년 3월 23일, 도쿄에서 8명의 형제,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구로사와의 아버지 이사무는 학교교장이었고 어머니 시마는 오사카 상인집안 출신. 도쿄에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닌 그는 사춘기 때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등의 책을 탐독하고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고교 졸업 후 미술대학에 응시했으나 실패하고 전시회에 자신의 그림을 출품하여 전시하게 된다.구로사와는 26세 때인 1936년 도호영화사에 취직하여 연출부 말단부터 시작하여 야노 시게오, 야마모토 카지로 등 여러 명의 감독 밑에서 일하며 실전 영화경험을 쌓는다. 그는 도호영화사에서 차근차근 승진하여 1943년 33세의 나이에 영화 로 데뷔한다. 1944년 , 45년 를 만들었으며 의 주연배우였던 카토 카요와 결혼한다.이후 몇 편의 영화를 더 만들었던 그가 결정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50년 걸작 부터. 한 사무라이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의 아내, 산적, 나무꾼, 죽은 사무라이의 영혼의 증언이 각각의 관점에 따라 사건을 전혀 다르게 해석함을 보여줌으로써 객관적인 진실은 없다고 말하는 이 영화로 구로사와는 51년 베니스 영화제 대상과 다음 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다. 은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 아쿠다가와 문학상을 탄생시킨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라벨의 음악 '볼레로'를 사용하여 일본 시대극을 서구식 화술로 풀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1951년 뉴욕에서 상영되기도 했다.을 계기로 주목을 받기 시작은 그는 1950년대 잇달아 걸작을 발표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1951년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를 바탕으로 를 만들고 52년작 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다.54년에 구로사와는 그의 또다른 걸작 를 완성한다. 산적들의 습격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사무라이를 고용하여 산적과 맞선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서부영화와 유사한 화법에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원형태로 연출한 '원구도'로 유명하다. 이 영화 역시 서부극이라는 서구양식을 사무라이라는 일본적 소재에 적용한 것으로 유명한데 구로사와의 이 영화는 후 존 스터지스의 (60)부터 , 까지 수많은 영화와 감독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 영화는 베니스영화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다.이후 (55), 셰익스피어 "맥베스"의 일본판 (57)과 (58)를 감독한 그는 1959년 구로사와 프로덕션을 설립한다. 구로사와의 1961년작 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효시가 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로 번안되었다.그러나 구로사와는 65년 이후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일본영화계가 높은 제작비에 비해 흥행성이 보장되지 않는 구로사와의 영화를 기피했기 때문이다. 어려움에 처한 구로사와는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데 57년엔 20세기 폭스사와 를 계획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직에서 해임된 후 크게 자존심이 상한 구로사와는 최초의 칼라영화인 70년
    예체능| 2003.07.23| 22페이지| 1,000원| 조회(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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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한 교류협력
    남북한 사회문화 교류 협력에 대하여남북한 사회문화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정책제안과 목 :담당교수 :학 과 :학 번 :이 름 :- 목차 -서론본론1. 문제제기2. 사회문화 교류협력의 현황1)추진현황▶문예분야▶학술분야▶ 종교분야▶언론출판분야▶체육분야2) 교류침체의 제 요인3. 사회문화 교류협력에 대한 향후전망1) 「기본합의서」타결과정에서 나타난 북한의 교류원칙2) 「부속합의서」타결과정에서 나타난 북한의 교류원칙3) 향후전망4. 사회문화 교류협력 추진방향1) 기본방향2) 추진전략▶교류기반구축 단계▶제도화 단계▶활성화 단계Ⅴ. 결 론서론“교류와 협력”, 이 말의 참뜻은 서로 친해지기 위해, 혹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행하는 일들을 말하는 것 일게다. 2000년이 넘어들면서 북한이 “적”이라는 의미는 내가 초등학교에서 공산당에 대해 배울 때와는 정말 많이도 달라졌다.이 수업을 통해 우리가 배우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세계화의 거센 물결에 대비해 한반도에서 보다 나은 삶을 설계해 나가는 과정에서 포용해야 할 북한의 실체는 무엇인가? 상이한 이념과 체제에 입각하여 반세기 이상 삶을 영위하여 온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대한 기초지식을 제공함으로써 수강생들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 이다.아래의 글의 대부분은 동국대학교의 최대석 교수가 발표했던 글이다. 북한과의 이해관계에 대해 조사하던 중 찾은 자료로 거의 대부분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우리가 어떤 일을 생각하기 이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은 현실을 똑바로 객관적으로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섣불리 생각을 하기 전에 이러한 자료를 찾은 것이 다행이다.본론1. 문제제기지난 1985년「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교환방문으로 물꼬를 튼 남북한 사회문화 분야 교류협력은 90년대 들어「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1990)이 제정되고, 「남북문화교류의 5원칙」(1990)이 마련됨에 따라 문학예술, 종교, 학술, 이산가족 등 제 분야에 걸쳐서 접촉 및 교류가 시도화와 여성의 역할? 서울세미나가 연기되었다. 이후 남북 학술교류는 제3국에서의 교류를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앞서 살핀 문예분야 교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학술분야 남북교류도 핵문제가 붉어졌던 1992년과 93, 94년에 극도로 부진하였으나 1995년을 기점으로 점차 회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학술교류가 부진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외래사조의 침투를 우려, 지식인들의 외부세계와의 교류를 통제하고 그들의 체제선전에 필요하거나 친북성향의 학술회의 등의 경우에만 선별적으로 응해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울러 북한의 입장 등 성사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성급한 교류추진에도 그 이유가 있으며, 가중된 경제난으로 인하여 제3국 개최 국제학술회의 등에 북한이 전반적으로 참가를 억제하는데에도 그 이유가 있다 하겠다. 학술분야 남북교류 내역(1989.6.12~ 1997.8.31) 건(명)신 청승 인접촉회수198911 (11)10 (10)·199060 (311)57 (308)14 (193)199192 (598)85 (590)26 (449)199287 (364)80 (351)13 (150)199341 (224)40 (224)9 (50)199439 (276)28 (250)7 (93)199551 (519)55 (501)24 (383)199644 (513)39 (280)21 (174)199723 (388)18 (209)8 (141)계375 (2,803)343 (2,327)107(1,446)자료: 통일원 교류협력국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학자,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북한과의 학술교류를 추진하고 있으며, 북한주민접촉 신청에 있어도 학술분야는 이산가족, 경제에 이어 세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성사된 학술교류 사례들을 분석해 볼 때 무엇보다 중국이 주요 접촉장소로 이용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연변지역 교포학자·단체들의 과거 북한과의 교류경험과 지리적 근접성 등을 활용하여 북한측을 교류의 장으로 쉽게 끌어내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연변지역유로 남한 5공화국정부의 정통성을 계속 부정해오던 북한당국이 남한정부가 지속적인 안정을 이루자 이를 공식적인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예술단의 교환을 통해 남북한간의 긴장완화를 시도한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제 5공화국의 입장에서도 북한과의 대화재개 및 교류가 체제유지와 정통성 확보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하겠다.90년대 초반 남북한 사회문화교류가 비교적 활성화 되었던 것도 당시의 주변정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한은 1989년의 독일통일, 1990년의 소련연방 해체 등 사회주의권 몰락으로 체제존립의 위기에 까지 몰린 바 있다. 따라서 북한은 체제내부의 결속에 힘을 쏟기 위해 서울올림픽, 북방외교 등으로 긴장과 갈등상태를 지속하여 오던 당시 남북한 관계를 정상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90년대 초반 문화분야 남북교류는 이러한 북한의 대남 관계개선책의 일환으로 전략적 차원에서 시도된 측면이 크다.이는 불과 몇달전 ?꽃파는 처녀? 공연문제를 구실삼아 제2차 이산가족 및 예술단 교환방문의 파기를 선언하였던 북한이 ?범민족 통일음악회?(1990.10)에 남한공연단을 선뜻 초청한 데에서도 잘 나타나며, 이후 두달 뒤인 그해 12월에 서울에서 개최된 ?’90 송년 통일전통음악회?에도 그들이 요구한 전제조건들을 남한측이 수용치 않았음에도 선뜻 참가한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주변정세가 비교적 안정되고 ‘조선민족제일주의’와 ‘우리식 사회주의’ 등으로 체제내부의 사상적 결속을 다진 1992~93년경 부터 북한은 다시금 문화교류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셋째, 교류의 부진현상은 기본적으로 북한측이 사회개방의 여파가 큰 인적교류에 대해서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하는데 기인한다. 남한주민의 북한방문은 1991년 10건에 237명이, 1992년에는 8건에 257명이 성사되었으나, 1993년에는 4건에 18명만이, 1994년에는 단 1건에 12명만이 이루어졌다. 또한 감소하는 교류추세에 따라 1992년 들어 사회·문화분야에서 북한을 직접 방문한 사례는 KNCC 권호류실천사업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남북교류협력 부속합의서?를 채택·발효시켰다. ?부속합의서? 타결과정에서의 남북한 쌍방의 제의 및 주장에 있어서 쟁점으로 부각된 사항은 다음과 같다. 우선 남한측은 ?부속합의서? 제9조 3항과 관련하여 “국토순례, 수학여행, 친선방문, 취재활동 등을 통한 학생, 교직원, 작가, 예술인, 체육인, 언론인, 종교인, 학자, 전문가 및 종사자 등 사회문화분야 관련인원간의 상호 교류”의 실시를 제의하면서 구체적인 교류대상을 명시하기를 주장하였다.이에 대해 북한측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표현을 사용하여 “북과 남은 교육, 문학예술, 보건, 체육, 출판보도 등 여러분야의 기관과 단체, 인물들 사이의 련계와 교류”를 실시할 것을 주장하면서 교류대상을 구체적으로 명기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특히 북한측은 종교인, 언론인 교류에 강한 거부반응을 보임으로써 ?기본합의서?채택시의 입장을 재확인시켜 주었다.또한 북한은 남한측의 “남북공동기념일과 민족명절에 문화·예술단을 상호교환하자”는 제의(제9조 2항)에 대해 예술단 표현 및 예술단 교환 시기 등의 명기를 회피하면서 “문학예술분야 등의 분야에서 다각적인 협력”으로 하자고 주장하였다.) 북한은 1985년 이산가족고향방문단 교환시 예술단의 교환을 함께 주장한 바 있으며, 1990년 「범민족통일음악회」와 「송년통일전통음악회」행사에도 적극적이었다. 더우기 제2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을 위한 실무대표 접촉에서 북한측은 소위 혁명가극인 ?꽃파는 처녀?의 공연을 위한 예술단의 교환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북한이 민족공동기념일과 민족명절에 예술단을 상호교환하자는 남한의 제의를 거부한 것은 다소 의외이다. 이는 북한예술단의 서울공연에 대한 남한측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음을 고려한 태도로 보여진다. 즉 예술분야의 우수성을 과시함으로써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북한측 의도가 제대로 성사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결국 남한측은 북한측 안을 대폭 수용, 제9조 2항을 채택하였다.)북한은 제9조 4항에서호 핵사찰, 포커스랜즈 군사훈련 등 정치·군사적 쟁점사항의 우선 해결을 주장하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접촉을 중단함으로써 무산된 바 있다.남한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1993년 3월 인도주의와 민족화합적 차원에서 이인모를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전향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다. 한편 그 동안 쟁점이 되어 왔던 핵 문제, 조문파동, 평화체제 구축 등을 둘러싼 남북한간의 갈등도 경수로 사업의 원만한 진행, 4자회담 본회담의 성사 등으로 상당부분 완화된 상태이다. 더우기 남북왕래에 의한 문예교류가 1990년 10월과 12월 실시된 예술단 상호방문 행사 이후 현재까지 단절되어 있음을 감안 할 때, 북한측이 ?노부모 방문단 및 예술단? 교환방문 합의를 사문화시키려는 태도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셋째, 민간주도의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주도의 사회문화교류는 남북한간의 현 체제가 비정치화, 탈군사화하지 않는 이상 정치적 상황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음은 지난 10년간의 교류현황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물론 북한체제의 특성상 북한에 순수한 의미에서 민간단체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이로 인해서 야기되는 문제점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민간주도의 교류를 시행할 경우, 북한에게 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교류거부 및 중단의 빌미를 더 이상 제공하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교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한층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모두 여섯차례에 걸쳐 남북합동공연 형식으로 일본에서 시행된 바 있는 ?한겨레 음악회?시리즈는 민간차원 교류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넷째, 정부차원에서 북한의 사회문화관련 이론 및 정책에 대한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1985년 예술단 교환방문시 북한측이 남한측 공연을 관람하고 복고주의 또는 봉건잔재라고 혹평한 것은 사회주의적 미학의 관점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당시 공연물의 선택이 북한의 문예이론과 미학적 관점에 대한 아무런 고려없이 남한,
    사회과학| 2003.07.18| 23페이지| 1,000원| 조회(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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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면접] 면접의 모든것 평가C아쉬워요
    면접시험인재를 선발하는 채용과정에 있어서 수험생과 면접위원이 직접 대면하여 질문과 대답이라는 과정을 통해 수험생의 잠재적인 능력, 책임감, 인내력, 사고력, 창의력, 업무추진력, 대인관계, 성격 등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신입사원의 채용방법을 분석해 보면 기업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으나 필기시험보다는 면접시험을 통한 인물평가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경향이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그 예로 지도교수의 추천을 받으면 아예 필기시험을 면제시킨다든지, 필기시험을 치르더라도 필기시험 합격자를 모집인원의 2∼3배나 더 뽑아 면접시험에서 최종합격자를 가려내고 있고 개별 또는 집단 면접식으로 세차례에 걸쳐 먼접시험을 치르는 등의 면접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요즈음은 대학을 졸업했을 경우에 대개 기본적인 실력을 갖추었다고 보기 때문에 더더욱 면접시험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면접시험의 종류1. 단독(개별) 면접수험생 한 사람을 불러 한 면접위원이 개별적으로 질의 응답하는 보편적인 방법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면접위원의 주관이 작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으나, 한 사람을 조목조목 알아내는 데는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 또한 1:1로 마주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긴장이 될 수도 있겠지만 평소 선생님이나 선배님과 같은 친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면접시험에 임한다면 오히려 다른 면접방식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2. 개인면접면접위원 여러 명이 수험생 한 사람을 불러 놓고 질문하는 형태의 면접시험이다. 면접위원이 여러 명이므로 질문도 다각도 여서 여러가지를 알아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사항은 한 사람의 면접으로부터 질문이 있어 그것에 대해 대답하는 가운데에도 다른 면접위원 전원이 수험생을 관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질문을 한 그 면접위원에게만 응답한다는 태도를 취할 것이 아니라 면접위원 전원을 향해 대답한다는 기분으로 임하는 것은 물론 시선 처리도 주의해야 한다. 면접위원도 그 기업의 수뇌(首腦)로 구성되는 일이 많으며, 수석 면접위원 앉아 등받이에 등을 약간 기대는 것이 좋다. 면접위원의 눈을 너무 빤히 쳐다보거나,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지 말고 면접위원의 가슴 부분을 본다. 다리는 꼬거나 나무 벌리지 말고 가지런히 한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고 질문을 기다린다.3) 질의 응답질문이 시작되면 침착하게 질문자를 바라보며 주의 깊게 청취하고 답변할 때는 잠깐 생각을 정리한 취 또렷하게 대답한다. 너무 빨리 말하거나 말끝을 흐려 얼버무리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한다. 특히 다음 몇 가지 사항을 주의한다.1. 솔직하게, 그리고 자신 있는 태도로 대답한다.2. 대답을 잘 못했다 하더라도 머리를 긁적거리거나 혀를 내밀지 않도록 하고, 질문 내용을 잘 모를 때에는 얼버무리지 말고 다시 묻도록 한다.3. 질문에 대답할 때 "에∼저∼"등의 불필요한 말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한다.4. 질문에 대해 자신 있다고 너무 큰 소리로,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말하지 말고 또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오래 끌거나 잠자코 있어서는 안된다. "잠깐 생각할 여유를 주십시오."하고 말한 다음 생각을 정리해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4) 퇴장들어왔을 때와 반대의 동작으로 조용히 면접실을 나간다. 이 때 주의할 점은 면접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무의식적으로 문을 거칠게 닫는 일이 없도록 한다. 면접시험이 끝나고 의자에서 일어나면 않았던 의자를 정돈한 후 15 정도의 가벼운 인사를 한다. 퇴시할 때도 힘없는 표정을 짓지 않도록 주의한다. 면접위원은 수험생이 들어오면서부터 나가기까지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음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질의·응답에 임하는 자세적과 싸워 이기려면 먼저 적을 알아야하는 것과 같이 면접위원이 자기에게 어떠한 질문을 할 것인지를 미리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긴장을 풀면서 면접위원을 똑바로 응시해야한다. 아래로 내려 깐다든지 하면 정서 불안, 자신감의 결여, 또는 소극적(내면적)인 인상을 주게 된다. 필요 이상의 답변은 금물이다. 아는 대로 대답하여 패기를 보여 주면 된다. 대부분이 "서울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대답을 하게 된다. 이때 면접위원은"정말 서울 아니면 안되는 겁니까?"하고 다시 질문을 던져오게 되고 수험생은 얼떨결에 "서울하고 충청도는 됩니다. "식으로 대답하게 된다. 그러면 "그럼, 충청도는 왜 되는 겁니까?"하고 또 꼬리를 물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꼬리를 물리다보면 나중에는 낭패를 겪게 될 수도 있다. "서울에서 근무하고 싶기는 하지만 현장에서 일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지방근무도 감수하겠습니다." 정도로 답변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도록 한다. 면접시험도중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못했다거나 뜻밖의 실수를 했다고 해서 도중에 면접시험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성의를 보인다면 이는 충분히 만회할 수도 있다.면접 당일의 준비아침에 일어나 조간신문을 읽는다. 충분한 수면으로 안정감을 유지하고 첫출발의 신선한 마음가짐을 갖는다. 그날의 뉴스가 질문 대상에 오를 수도 있다. 특히 경제면, 정치면, 문화면 등에 유의해 둘 필요가 있다. 면접위원 중에서 시사성의 기사를 수험생에게 질문함으로써 그날그날 돌변하는 정세를 알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사람도 있다.1. 복장 점검① 구두는 잘 닦여 있는가② 옷은 깨끗이 다려져 있으며 스커트 길이는 적당한가③ 손톱은 길지 않고 깨끗한가④ 머리는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가특별히 화려한 복장과 요란한 화장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면 되고, 안색이 좋지 않은 사람은 피부화장에 신경 써야 한다.2. 출발전 확인할 사항이력서, 자기소개서, 성적증명서, 졸업(예정)증명서, 건강진단서, 추천장, 회사안내책자, 스케줄표, 취직노트, 지도수첩, 지갑, 도장, 학생증(주민등록증), 손수건, 휴지, 연필, 볼펜, 만년필, 지우개, 메모지, 잔돈, 전화카드, 예비스타킹 등을 준비하자.3. 면접시 옷차림면접에서 옷차림은 간결하고 단정한 느낌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색상과 디자인 면에서 지나치게 화려해 야한 색상이나 노출이 심한 디자인은 자칫 면접 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있다. 단정한 오.2. 회사를 선택할 때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입니까?3. 우리 회사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4. 추천인과는 어떤 관계입니까?5. 다른 회사에도 응시했습니까?6. 우리 회사에 채용이 안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7. 우리 회사와 다른 회사 모두 붙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8. 지망 회사를 결정하기 위하여 누구와 상담했습니까?9. 가업을 이어받지 않아도 됩니까?10. 우리 회사 같은 중소기업을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11. 왜 지방 기업에 취직하려고 합니까?12. 우리 회사의 장점과 단점을 아는 대로 말씀해 주십시오.13. 우리 회사제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14. 집에서 회사까지 얼마나 걸립니까?15. 왜 상사를 지망했습니까?16. 왜 은행을 지망했습니까?17. 왜 증권회사를 지망했습니까?18. 왜 보험회사를 지망했습니까?19. 왜 유통업계를 지망했습니까?20. 왜 가전 메이커를 지망했습니까?21. 왜 자동차 메이커를 지망했습니까?22. 왜 매스컴을 지망했습니까?23. 왜 공무원을 지망했습니까?3. 일에 대한 열정1. 당신에게 직업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2. 입사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3. 희망 부서에 배치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4. 희망하는 근무지가 있습니까?5. 시간외 근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6. 휴일근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7. 일과 개인 생활 중 어느 쪽을 중시합니까?8. 격주 휴무 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9. 어떤 일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합니까?10. 당신의 특성을 일에서 어떻게 살릴 생각입니까?11. 입사 후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지지 않을 만한 것이 있습니까?12. 회사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13. 신입사원으로서 마음써야 할 것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14. 비즈니스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15. 우리 회사에서 언제까지 근무할 생각합니까?16. 어디까지 승진하고 싶습니까?17. 어떤 사람을 상사로 모시고 싶습니까?18. 첫 월급을 타면 어디에 쓸 겁니까?19. 출지루한 표정을 짓지 말고 끝까지 듣는 진지함을 보여야 한다. 왜냐? 긴 설명 중 갑자기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적시타가 터지므로...3) 적절한 경어를 사용한다올바른 경어사용법은 쉽지 않다. 특히 경어를 사용할 자리에 오면 신세대들은 '어머님 머리님에 파리님이 계세요'라는 식의 경어법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면접관에게 경어 사용법도 모른다는 인상을 주면 곤란하다. 어른들은 '버릇없는 아이'를 제일 싫어하므로, 미리 시간, 장소, 사람 등에 따라 달라지는 경어를 익히도록 한다. 특히 지원회사를 언급할 때 회사이름을 직접 말하지 말고 '귀사'라고 하면 호감을 준다는 점을 기억해 둘 것.4) 자신의 평소 스타일로 대화한다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문 발표하듯이 문어체 표현을 사용한다거나 군기 든 이등병처럼 말하면 대화의 경험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특정인의 '대화법'을 흉내내는 것도 꼴불견이다. 자신이 평소 남들과 이야기할 때의 대화법을 조리있게 사용해야 어색하지 않다. 덧붙여 말고리 흐리는 버릇을 가진 사람은 조심.5) 알아듣기 쉽게 말한다'알아듣기 쉽게'라는 건 두가지 의미가 있다. 말의 하드웨어적 측면에서 보면 너무 빠르게, 너무 많이 말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말의 핵심을 놓치거나 가벼워 보이면 좋을게 하나도 없다. 소프트웨어적인 면으로는 어려운 용어나 전문 용어, 대학가의 은어, 사투리 등을 절제 없이 사용하지 말라는 뜻. 면접관이 소외감 느낀다.3. 위기상황때1) 위트로 탈출한다만약 당신이 나이 서른쯤 된 늙은 지원자라고 하자. 면접관이 신입사원의 평균연령이 몇 살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이 말은 '당신의 나이가 너무 많지 않느냐'는 우회적 물음이다. 이 때 '나이와 업무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변하면 분위기만 굳어진다. 이럴 땐 레이건처럼 유머를 동원하는 기지가 필요하다. "저는 동료들이 나이어려서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미숙하다 하더라도 결코 얕보지 않고 제 성숙함으로 도와주며 일할 자신이 있습니다."2) 솔직함을 벗어난다모르는 질문을다.
    경영/경제| 2003.07.23| 19페이지| 1,500원| 조회(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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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에 대하여
    초기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과 목 :담당교수 :학 과 :학 번 :이 름 :- 목차 -르네상스(Renaissance, Rinascimento)에 대하여1. 역사적 배경2.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태동 하게 된 이유3. 초기 르네상스1) 건축2) 조각3) 회화4. 초기 르네상스의 작가들치마부에조토 도나텔로 프라 안젤리코 마사치오보티첼리 얀 반 에이크 르네상스(Renaissance, Rinascimento)에 대하여르네상스(Renaissance, Rinascimento)는 단어자체의 의미로 '재생', 또는 '부활'-Re(Again)+Nascere (Birth)을 의미한다. 르네상스는 중세와 근세 사이에 서유럽 문명사에 나타난 역사시기와 그 시대에 일어난 문화운동을 일컫는 데, 르네상스가 문명사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게 된 것은 고대 그리스·로마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들을 부흥 시키고 중세의 神 중심의 금욕과 절제의 암흑 속에서 벗어나 인간 이성·인간성의 해방이라는 것에 있다.1. 역사적 배경이탈리아는 고대 로마 이래 오랜 역사가 축적되어온 곳일 뿐만 아니라, 지리적 혜택으로 이슬람 세계 및 비잔틴과의 접촉을 항상 유지하여, 이들과 서유럽을 연결시키는 소임을 맡아왔다.특히 11·12세기의 '상업의 부활'과 십자군 운동의 참여를 통하여 도시가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12세기에는 중북부의 많은 도시가 자치 도시(Comune)로 조직되었다. 이들 자치 도시들은 주위의 농촌지대도 지배하여 도시국가의 형태를 취하였다. 또, 기존 봉건귀족층과 토지 소유자 계층은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이들이 도시의 경제활동과 정치에 참여하게 되었다.특히 13세기 후반의 경제적 발전기에는 사회계층의 변화도 심하여, 상인의 현실적인 감각이 사회의 모든 면이 침투함으로써 이탈리아 특유의 시민문화의 기반을 형성하였다.이탈리아는 지리적인 조건과 상업상의 교류의 필요에 따라, 이슬람과 비잔틴 문화와의 접촉 가능성이 가장 많았고, 또 실제로 그런 교류가 유지되고 있었음도 간과해서는 안된다.학문의 것이다. 모델을 주변에서 찾지 않고 신적인 영감을 얻은 것을 기초로 하였다. 조각은 건축과 함께 고대 작품과 관련이 깊고, 작풍과 기법 양면에서 그 당시의 조각가는 많은 암시를 받았다. 15세기 초의 난니 디 방코·L.기베르티·브루넬레스코, 시에나의 J.퀘르치아 등이 일찍부터 연구에 착수했으며, 앞다투어 인물의 조소적(彫塑的) 표현의 여러 문제에 몰두했다. 특히 도나텔로는 고대연구와 함께 인체의 사실적 추구를 거듭하여 고전정신과 자연주의의 융합을 시도했고 고딕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혁을 가져왔다. 이 무렵, 조각은 차츰 건축에 종속된 위치에서 벗어나 조소예술 본래의 양괴적(量塊的)인 입체성과 자유로운 공간성, 그리고 독립된 기념비성을 확립해 나갔다. 종교적 주제 외에 초상이나 기마상, 이교적인 주제도 많이 등장했으며 나무·대리석·브론즈·테라코타 등 다양한 소재를 구사하여 다채로운 조형표현이 앞당겨졌다. 15세기 후반에는 진보적인 폴라이우올로 형제, A.베로키오 등이 해부학적 탐구와 운동표현·심리묘사에 의해 사실주의를 한층 촉진시켰다.3)회화피렌체 회화는 격렬한 동세와 떨림이 강한 윤곽선을 유지하였으며 많은 작품이 고전 작품에의 제재를 따온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15세기 말에 유행된 신 플라톤주의자들의 영향으로 짐작할 수 있는 데, 그들은 고전고대를 연구하면서 종교를 인간적인 것으로 해석하였으며 그리스, 로마의 예술, 철학, 종교의 정신적 문화적 가치와 그리스도교 문화의 융합을 꾀하였다. 회화에서 르네상스의 개화는 국제고딕양식의 극복과 조토의 예술정신의 재흥을 의미했다. 그 획기적인 혁신자는 1420년대의 마사치오였다. 마사치오는 26살에 요절했으나 15세기 회화 분야에 있어 경탄할 만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 그는 섬세한 우아함이 아니라 큼직하고 육중한 인물, 건장하고 모가 진 형상을 표현하고 있다. 는 지옷토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도나텔로처럼 의복보다는 육체를 더 중시한 르네상스적 사고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브루넬레스키로부터 투시도법(透視圖法전기에는 그가 1240년에 태어나 1300년에 죽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치마부에가 1302년에도 피사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문헌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에, 바사리의 기록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밖에 치마부에의 생애와 관련된 또다른 유일한 문헌에는 그가 1272년 로마에서 한 서류에 독립 화가이자 입회인으로 서명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로 미루어볼 때 그는 적어도 1251년 이전에 태어났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또 다른 문헌들은 그의 세례명이 벤치비에니 디 페포, 현대 이탈리아어로는 벤베누토 디 주세페임을 알려준다. 치마부에는그의 별명이었는데, 나중에 그의 성으로 잘못 알려졌다. 그의 초기 교육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그가 이탈리아에 살고 있던 그리스 비잔틴 화가들 밑에서 도제를 했다는 바사리의 주장은 아마 이 천재의 갑작스러운 출현과 화풍을 설명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듯하다.그가 이탈리아 비잔틴 화가인 준타 피사노와 코포 디 마르코발도의 영향을 받은 것은 확실하고, 아마 코포의 도제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치마부에의 성격은 별명이 말해주듯이 '고집불통'이었다.1333~34년 단테를 해설한 한 주석자에 따르면, 치마부에는 자존심이 매우 강하고 자신에게 엄격했기 때문에, 누가 그의 작품에서 결점을 발견하거나 그 스스로 불만스러운 점을 발견하면 아무리 값진 작품이라도 그 작품을 폐기해버렸다고 한다. 단테는 〈신곡〉에서 치마부에를 연옥의 거만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사실은 그의 성격과 관련해볼 때 의미가 있다. 또한 단테는 속세의 명성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실례로 치마부에를 인용하고 있다."치마부에는 자신이 회화 분야를 거머쥐고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조토의 명성이 자자하다." 그러나 자신의 업적에 대한 자부심과 작품성에 대한 개성적이고도 높은 그의 기준은 치마부에를 다른 익명의 중세 화가들과 구별해주었다.피사 대성당에 있는 그의 마지막 작품인 〈복음서 저자 성 요한 St. John the Evangelis. 성당의 내부 벽에는 조토의 프레스코화가 있다.그림 "프란체스코의 생애" 중 일부그림 그리스도를 애도함그러나 13세기말부터 피렌체에서 활동한 조토는 이러한 중세 미술 전통에 인간의 향기를 불어넣으며 2차원 화면에 실제와 같은 감정과 공간을 구현하기 시작했다.작품 [애도 Lamentation] 는 예수의 일생을 주제로 한 전통적인 여러 도상 가운데 하나이다.우리들의 눈에는 어딘가 어설프고 미숙해 보이지만, 이 그림을 곰브리치가 했듯이 13세기 화가의과 나란히 비교해 보면 쉽게 그 혁신성을 알 수 있다.화면 속의 주제는 거의 동일하지만 지오토는 성모 마리아의 표정이나 성 요한의 양팔을 젖힌 자세, 고통스럽게 몸을 뒤트는 천사의 모습 등을 통해 성서 속의 이야기를 마치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게 묘사했다(부분확대 이미지). 이전의 미술가들이 예수와 성모의 신성(神性)을 강조하며 이집트의 정면성의 원리를 빌어 불멸의 모습을 강조했던 것과 달리, 지오토의 예수와 성모, 성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인간적이며 사실적이다.지오토가 최초로 인간 예수를 그린 화가라 불리는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일 것이다.마치 실제와 같이 그럴듯한 공간 표현도 지오토가 가져온 변화 가운데 하나이다.을 그린 13세기의 화가가 중요성에 따라 인물들의 크기를 달리하면서 한 화면에 필요한 인물들을 모두 집어넣은 반면, 지오토는 단순하지만 원근법에 근거한 방법들로 3차원적인 환영(illusion)을 만들었다.화면 앞쪽에 구부리고 앉은 사람을 그려 넣어 성 요한과의 거리를 강조하거나, 왼편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가로지르는 언덕을 넣는 방법 등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화면 위를 가득 채운 아름다운 푸른 하늘도 중세의 금빛 배경과 차이를 보인다.지오토는 시기적으로는 고딕 말기에 활동했지만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황금빛 배경 대신 푸르른 하늘을 선택한 지오토로부터 신 중심의 신성하고 정형화된 예술 대신,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자유로운 예술로 돌아가 인간적인 가치를 회복하려 했 벽감과 그 기초작업까지 의뢰받았다. 그 벽감은 고딕풍에서 완전히 벗어난 브루넬레스키의 새로운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최초의 것이다. 그 벽감을 혼자 설계할 수 없었던 도나텔로는 1~2년 뒤 조각가이며 건축가인 미켈로초를 분야별 협력자로 삼아 도움을 받았다. 미켈로초와 함께 일하면서 도나텔로는 오직 중심 조각상에만 매달렸는데, 분리파 교황 성 요한네스 23세의 무덤 앞에 세운 청동상(피렌체 세례당에 있음), 나폴리 산안젤로아닐로 교회에 있는 브란카치 묘소의 부조〈성모승천 Assumption of the Virgin〉, 프라토 대성당 옥외 설교단 난간에 춤추는 천사들을 새겨넣은 부조(1433~38) 등이 그 예이다. 미켈로초는 건축 구조와 장식조각을 맡았다. 이들의 공동작업이 보여주는 양식은 브루넬레스키의 양식과 비슷하며 1430년대에 도나텔로가 독자적으로제작한 작품 경향과는 아주 다르다.혼자 만든 그의 모든 작품은 고전과 중세의 양식에서 유래된 비정통적 장식들과 브루넬레스키와는 정반대로 건축적 요소들과 조각적 요소들 사이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산타크로체 교회에 있는 성합에 새겨진 〈수태고지 Annunciation〉와 두오모 교회의〈칸토리아(성가대석) Cantoria〉(지금의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 소장)에서는 고대 미술에서 따온풍부한 형태들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은 그가 오랫동안 로마에 머물던 시기(1430~33)의 산물이다.이처럼 그의 작품들이 브루넬레스키의 원칙에서 벗어나자 그들의 오랜 친분이 깨지고 다시는 회복되지 않았으며, 브루넬레스키는 도나텔로를 비난하는 풍자시까지 지었다.미켈로초와 공동작업을 하는 중에 독자적인 의뢰도 받아 시에나의 산조반니 교회에 세례반(洗禮盤)을 위한 몇몇 청동작품들을 비롯해 건축과는 무관한 순수 조각도 여러 점 만들었다.그중 가장 초기의 작품이며 가장 중요한 작품은 건축적인 배경에 극적인 인상이 강렬한 부조〈로데의 축제〉(1423~27)로 도나텔로 는 여기서 불과 수년 전에 브루넬레스키가 창안한 과학체
    예체능| 2003.07.15| 29페이지| 1,000원| 조회(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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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학 개론] 영화감상문 - 샤이닝 평가B괜찮아요
    {현실공간 안에서의 광기의 공포- 샤이닝과 목 :담당교수 :학 과 :학 번 :이 름 :서론국내관객들의 무관심과 소재의 부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우리나라 영화시장이 쉬리이후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발전한 것이 사실이다. 그 영향으로 생긴 거품으로 인해 질이 떨어지는 작품들이 거대 투자가들에 의해 마구 생산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기도 하다.어쨌든 한가지 반가운 것은 그만큼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다양한 욕구가 충족돼고 또 고전 명작들까지 들춰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어찌됐건 반가운 사실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그 소재가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 방영불가 판정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던 스텐리 큐브릭의 샤이닝 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한다.스텐리 큐브릭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며 인간적으로도 존경하는 인물중의 한사람이다.그의 천재성을 떠나서 그가 영화에 가지는 열정과 노력과 고집이 만들어 내는 그의 작품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감탄해 마지 않는 이가 없을것이다.스스로 헐리우드를 마다하고 은둔자 로 불리우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위해 끝없이 탐구하고 연구했던 스텐리 큐브릭의 작품중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영화는 풀 메탈 자켓 , 아이즈 와이드 샷 단 두 작품 밖에 없다.어쨌든 그중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영화 샤이닝에 대해서는 정말 할말이 많다.수많은 감탄사와 온갖 수식어를 가져다 붙여도 남아 돌 만큼의 영화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한 작품을 보고 느낀 바를 하나하나 정리해서 나열하는 것이 부자연스럽긴 하겠지만 어쩌겠는가. 할말이 많은 것을..본론미장센 (Mise-en-Scene)에 대하여우리나라의 영화중에 미장센을 중점으로 연구하고 표출된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이 샤이닝이란 영화 (스텐리 큐브릭의 영화에 언제나 그렇듯이)에서는 정말이지 치밀하게 계산되고 연출된 장면이 장면 곳곳에 숨어있다.흔히들 미장센이란 단어를 들어본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이 인지하고 있는 미장센의 개념이 무대장치에 국한돼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사실 무대장치는 커다란 미장센의 한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연극과는 달리 영화에서의 미장센은 세트의 배치뿐만 아니라, 주어진 공간내에서의 공간이동까지도 포함시킨다. 즉, 배우의 움직임 및 카메라의 움직임, 심지어는 화면의 크기까지도 이 범위에 들어간다. 따라서 미장센이란 연극과 촬영이 혼합된 개념이라고 볼수 있다.이 용어는 카이에 그룹에 의해 보다 특정한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데, 이들은 이 말을 그들이 작가라고 부르는 일부 미국 감독들의 작품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했다. 이들 영화 감독들이 헐리우드의 전권 아래 작업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이 대본에 대해 아무런 권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적어도 쇼트를 구성할 권리와 여기에 자기만의 식별 가능한 스타일을 가질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미장센은 감독이 구사할 수 있는 표현 도구로서 그의 특정한 스타일, 즉 작가적 날인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감독은 대개 자기 쇼트를 선택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의 다른 기준을 갖고 있다. 주제물과 관련지어 감독이 카메라를 설치하고 움직임을 결정하고 시간을 조절하는 기준은 감독 개개인의 감정 및 속성에 의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장센은 감독이 구사할 수 있는 표현 도구로서 그의 특정한 스타일, 즉 작가적 날인으로 볼 수 있다.또한 미장센의 분석은 영화를 감상하든 제작하든 가장 실제적인 분야임에 틀림없는데, 그건 극의 문맥에 따라 영상을 이루는 요소들을 일일히 끄집어내어 확인하는 영화 분석의 가장 기본적인 공부이다.샤이닝의 미장센 (Mise-en-Scene)샤이닝이란 영화 안에서의 스텐리 큐브릭 감독의 미장센을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이 영화에서의 가장 큰 공간 연출의 심리적 요인은 열리면서도 닫힌 공간이라는 것이다.영화속 공포의 공간이라는 개념은 깍아 지를듯한 절벽위에 세워져 있는 오버룩 호텔로 이야기 할 수 있다. 다른 공포영화에서 공간의 개념은 어둡고 음침한 한정된 공간이다.하지만 잭 토랜스가 미처 버리게 된 이 호텔이라는 공간은 다르다. 넓고 깨끗하고 또한 밝으며 좌우대칭이 완벽한 공간이다. 그 좌우대칭은 완벽한 공간은 흐트러짐이라고는 찾을 수 없다. 그 만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이 막히게 한다.또한 넓은 공간이 그렇다. 앞뒤가 막힌 한정된 공간 안에서 망치가 있다면 그 벽을 부수고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지만 샤이닝에서 공간의 희망의 배제시킨 무한정의 공간이다. 무엇보다 무한정의 공간이며 우리가 바라보는 수평선은 완벽한 직선구도이다. 과연 이곳에서 희망은 있을까? 가도가도 끝이 없는 끝없는 공간과 완벽의 수평선.. 이 공간 안에서 인간은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바로 그 극단의 현실이 만들어내는 공포.. 그것이 영화 샤이닝에서 말하고 있는 공간공포의 정의다.자연과 초자연적, 거기에 모순된 이 사회의 모습은 투과 돼어 결국 폭력과 광기로 변하고 만다. 좁디 좁은 호텔의 복도, 나갈길 없는 정원의 미로의 폐쇄적 공포감은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디어로 이룩된 그 유명한 촛불조명 과 핸드 핼드 카메라 기법 으로 재창조된다.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순간 시뻘건 피가 쏟아져 오는 씬.( 이후 이 씬은 첩혈쌍웅의 주윤발의 뒷배경 으로도 페러디 된다.) 이 씬 하나만으로도 심리적인 충격과 이 호텔에서 어떤 끔찍한 일이 있어났었는가 하는 관객의 궁금증이 폭발하기 시작한다.길게 뻗은 복도를 카페트와 나무바닥을 번갈아 지나면서 으스스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며 달리는 아들의 세발자전거의 롱테이크으로 찍힌 이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점점 이상한 낌새를 느끼게 하며 아들이 운전해 나가는 그 끝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해준다.끝없는 눈덮힌 미로의 뒤에서 자신을 죽이러 쫓아오는 도끼를 든 나의 아버지, 이 아버지를 피해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서 도망치는 아들을 스태디 캠으루 찍은 장면에서는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보호해야할 대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으로 그 절망감과 긴박함이 절묘하게 묘사돼어 있다.잭이 수수께끼의 방으로 들어가 방문 앞에서 아리따운 썩은 시체가 있는 욕조까지는 마치 늪에 빠져들 것 같은 짙은 녹색과 묘한 무늬의 카페트가 깔려있다.이 연출 만으로도 잭이 무언가에 홀려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이미지를 강렬하게 표출해 준다.무엇보다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장면은 두 모자가 헤매는 미로가 롱셧으로 변하면서 잭이 그 위에서 마치 신처럼 내려굽어 보며 알수 없는 섬뜩한 미소를 짓는 장면이다.이 장면으로 이 모자가 어디를 도망가도 아버지의 눈을 피할수 없다는 것과 이미 보호 받아야 할 신과 같은 인물로 묘사돼면서 그 두려움이 점점 증폭돼어간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잭이 완전히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호텔 로비의 잭의 책상위에는 단정하게 쌓여진 'All Work &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놀지 않고 일만 하는 잭은 바보가 된다')라는 문장으로 빽빽하게 가득 찬 원고들이 수북히 쌓여있고 이를 본 부인은 소스라치게 놀란다.어느 한 구석을 보아도 그 하나하나를 위해 계획되어진 치밀한 미장센에 혀를 두르다 보면 어느새 영화는 후딱 지나간다.샤이닝의 음향 (Sound)요즘 우리나라의 공포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얼마전까지는 헐리웃의 스플래쉬 영화를 표방했다가 일본 공포영화가 대거 수입돼면서 링 을 바탕으로 한 아류작들이 나오고 있다.(개인적으로는 아류작 이라고 밖에 말할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여기에 식스센스의 반전에 영감을 얻었는지 알고보니 미친 , 알고보니 죽은 식의 식상한 반전들도 흥행요소에 한몫을 하고 있나 보다.공포영화의 범주에 그다지 넣고 싶지 않은 스플래쉬 무비에서는 으례 헤비메탈의 일렉 기타음이 신나게 나오지만 스텐리 큐브릭의 영화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클래식을 그대로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도입 시퀀스에서 리게티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대기 의 한 악장을 씀으로 해서 영화는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샤이닝의 사운드는 역시 미장센과 맞물려 영화의 심리적 공포를 동시에 전해주고 있다.넓은 부엌을 걸어가는 부인. 이미 남편은 미쳐있다. 조금씩 조금씩 음을 높여가는 날카로운 현악기는 신경을 거스를 만큼 높아져 남편이 어디선가 나타날 것만 같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는 부인은 무사히 할 일을 하고 화면은 바뀐다. 이런 긴장상태는 계속 반복되지만 매번 속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무엇보다 절묘한 것은 아들이 세발자전거를 타고 복도를 지나갈 때이다.마룻바닥과 카펫트를 번갈아 지나감에 따라 들리는 드르륵 드르륵 하는 소리들은 이 아들이 처해진 상황을 눈치챈 관객들로 하여금 이 아들이 더욱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요소가 된다.음향이라고는 할수 없겠지만 역시 이 영화의 명대사라면.. 방문을 도끼로 내려치며, 그 사이로 불쑥 얼굴을 내민 잭의 익살스레 뱉어내는 말."Wendy~ I'm home~"이 말보다 더 섬뜩한 대사가 있을까?자아를 잃은 대니가 계속 중얼거리는 "Redrum"이라는 말 또한 뭔가 심상치 않은 대사라는 궁금증을 증폭시켜준다. (후에 "Mueder" 라는 것을 알았을때의 관객의 충격을 한층 강화시켜준다.)
    독후감/창작| 2003.07.19| 8페이지| 1,000원| 조회(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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