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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A.뒤마의 철가면 속의 베르사유궁전
    A.뒤마의 철가면을 본 후......목표: 소설 철가면에서 나오는 역사적 배경과 건축적 양식의 관계 고찰루이 14세 베르사유 궁전의 분석 및 건축적 형태와 의미 분석소설 내용적 접근A.뒤마의 철가면이란 인물은 실존 인물이며, 17세기중반 무렵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철가면의 인물이 과연 누구인지에 관한 의문은 현재에도 제기되고 있다. 17세기 프랑스 역사상 수수께끼의 인물로 항상 가면에 씌워진 채 여러 감옥을 옮겨다니며, 유폐되었고, 1703년 숨진 뒤 마르치알리라는 이탈리아인 이름으로 파리의 생 폴 묘지에 묻혔다. 신원 해명은 볼테르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그 비밀이 풀리지 않은채 루이 14세의 쌍둥이 형제설, 루이 14세와 발리에르부인 사이의 사생아설, 드트리슈와 재상 마자랭 사이의 사생아설과그의 실제 아버지란 설이 존재한다. 뒤마의 철가면은 쌍둥이설을 전제로 그려졌다.중세시대 절대군주로 군림하는 루이왕. 그는 굶주린 백성들을 외면한 채 전쟁을 일삼고 향락에 빠져 산다. 총사의 직위에서 은퇴한 삼총사는 각자 조용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아라미스는 신부로서 소임을 다하며 살고, 포토스는 여자와 즐기며 오직 쾌락만을 일삼고, 아토스는 아들 라울이 총사가 되길 바라며 지내고 있다. 달타냥은 루이왕의 경호대장으로 바쁘게 생활한다. 이즈음 라울은 아버지와 그 친구들을 따라 명예로운 총사가 되어 사랑하는 여인 크리스틴에게 청혼하려 한다. 그런데 평소 여자를 밝히던 루이왕은 궁전에서 라울과 함께 있던 크리스틴을 보고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방해가 되는 라울을 전쟁터 최전방에 보내 죽음으로 몰고, 결국 크리스틴을 차지한다. 이에 분노한 아토스는 아들의 복수를 결심한다.한편, 루이왕의 횡포에 적개심을 품은 세력이 생겨났고, 그중 하나가 '주스윗'이다. 이들은 루이왕을 제거하기 위해 암살자를 보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만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루이왕은 즉각적으로 아라미스를 불러 주스윗의 주동세력을 제거할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주스윗의 리더가 아도 죽이려고 병사를 이끌고 출동한다. 삼총사와 필립에겐 절대절명의 순간이 다가오는데, 한가닥 희망이라면 달타냥이 과거 삼총사와 맺은 '모두를 위한 하나, 하 나를 위한 모두'라는 맹세뿐이다. 이로 인해 달타냥은 삼총사와 다시 뜻을 하고 루이왕이 철가면을 쓰게되고 필립이 왕에 오르게 되어 루이왕이 되면서 안정적 정치를 베풀고 국민을 이끌게 된다는 내용이다.베르사유궁전 형성과 역사적 배경간의 관계소설 자체의 내용은 실제적인 현실과 상반된다. 실제적으로 루이14세의 향락적이고 전쟁을 일삼는 절대군주를 국민이 반가워하진 않았을 터, 작가의 철가면이란 미스테리 인물과 결부시켜 새로운 국왕의 탄생기를 그림으로써, 희망적 회상을 그린다고 생각해본다.소설속에 등장하는 루이 14세는 우리가 잘알고 있는 태양왕이라고 불리며, 유명한 베르사유궁전을 지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또한 베르사유궁전하면 떠오르는 인물,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가 있다. 여기 등장하는 베르사유궁전은 시기적으로 절대군주제인 사회에 하나의 핵을 이룬다고 볼 수 있으며, 루이 14세 역시 단순하게 화려하고 웅장한 궁전을 사치의 목적으로 지었다고 보기보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철가면속의 인물인 루이왕은 귀족들을 향락에 빠지게끔 베르사유궁전내에 기거하게 하고, 왕권의 절대성에 귀족들을 복종시켜 나갔다. 이렇게 된 계기는 루이왕의 어린시절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루이 13세가 세상을 떠나면서 어린루이왕이 정치를 하지 않고 모후의 섭정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수렴청정시대를 말한다. 현재 막내린 대장금의 문정왕후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모후의 섭정시대에 마자랭이란 사람이 재상이 되면서, 모후와 마자랭의 정치시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프롱드의 난, 즉 귀족들의 난으로 인해 왕은 모후와 각지로 유랑하는 고난을 겪게 된다. 이 난은 오랫동안 루이왕의 기억에 남게 되고, 파리가 싫어져서 나중에는 궁전을 베르사유로 옮기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는 귀족들의 영향력이 오랫동안 농촌 생활을 지배해온 후원제로부지하려는 포석인 듯하다. 루이14세는 절대 왕정을 이끌면서 귀족들의 재산을 베르사유궁전을 짓는데 쏟으므로, 귀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궁전내부에 기거하게 하면서 지방세력과의 연계를 초기에 끊음으로써, 절대 왕정 시기를 이루내었다고 볼 수 있다. 소설 속에서도 국왕의 모든 행동에는 대규모 의식이 수반되었고, 자존심 강한 귀족들은 국왕의 침실용 변기를 비우거나 국왕에게 자신의 셔츠를 넘겨주는 영광을 얻기 위하여 경쟁하였다. 베르사유의 세계는 갑갑했고, 인위적이었으며, 음모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기 지붕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던 왕에 의하여 아주 세부적으로 통제되던 사회였다. 그곳에 머문다는 것은 자신의 독립성을 상실한다는 것이고, 그곳을 떠난다는 것은 영예나 이익을 얻을 가능성을 상실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1670년 무렵이면 프랑스의 귀족은 길들여졌다.비록 루이 14세는 앙리 4세 및 리슐리외(루이 13세때 재상)가 수립한 선례를 따르기는 했지만, 베르사유가 의미하는 중앙집권화는 국왕의 행정으로까지 확대되었다. 특히 리슐리외는 자문회의를 통하여 통치하는 낡은 체제를 장관으로 대체하는 작업을 완수했다. 이 경우에 한 사람은 정부의 주요 기능 중의 하나에 대해 군주에게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는 또한 징세 업무를 감독하고, 지방 당국을 계속적으로 점검하는 감독관인 지방장관(intendant)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국왕의 권력을 도(provinces)로까지 확대하였다. 루이 14세는 이 체제를 확대하고 완성하였다. 지방장관의 권한은 단순히 지방적인 경계선을 초월하였고, 나아가 지방 귀족의 결속력을 약화시켰다. 루이 13세 때와는 달리, 전쟁, 재정, 외무, 심지어 도로 및 교량 장관들은 국왕에게 직접 업무보고를 함으로써 루이 14세는 스스로 수상 역할을 맡았다. 루이 14세는 의식에 의하여 둘러싸이고, 침실, 식탁, 사냥 등의 쾌락에 몰두한 태양왕이었을지 모르지만, 일도 열심히 하였다. 그는 하루에 적어도 여섯 시간, 일주 내내 공무에 전념하였다교황청이 중심이 된 반종교개혁의 결과로 인해 인간의 감성에 충실한 건축이 요구되었다. 그리고 프랑스를 시작으로 절대군주제가 확립되면서 식민지를 통해 부의 축적이 가능했던 것도 이전의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건축양식이 탄생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이런 이유로 바로크건축은 르네상스적인 요소를 계승하였으나, 그 수법이 자유롭고 대담하여 고전적 형태를 개인적 취향과 재능에 따라 다양하게 변용하였다. 인간의 감성을 중시하고, 정신보다 감각을 강조한다. 인간의 감성, 감각을 중시함으로 내부공간의 역동성을 표현하게 되었다고 본다. 베르사유궁전을 통해 프랑스는 바로크건축의 정점에 도달하게 된다. 이 곳을 구성하고 있는 건물군들은 요철형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이탈리아 매너리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본관 2층에 거울의 방과 북쪽 궁정예배당은 17세기말의 화려한 장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며 이후 유럽 전역의 궁전건축의 표본이 된다. 건물뿐만 아니라 대운하와 연못, 그리고 절점으로 이어지는 방사형 배치의 정원은 바로크시대의 조경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방사형의 산책로와 도로를 가지고 있는 이 원형의 공터는 18세기의 도시계획에서 많이 쓰이게 된다. 정원쪽의 거대한 정면은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으로써 하나의 단위와 두 개의 부속단위로 이루어지는 삼분된 구획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벽면을 분절시키고 있다. 이러한 구성방식은 이와같이 큰 스케일에서도 효과적이다. 따라서 확장이 기본 주제가 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건물도 필라스터 사이가 커다란 아치창문들로 완전히 채워지는 투명한 골조로 구성된 단순한 반복체계로 변형되었다. 그 결과 베르사유궁전은 유리집과 같은 특성을 지나면서 고딕시대의 투명한 구조를 19세기의 거대한 철골-유리 건물로 이어준다. 또한 신고전주의 시대의 반복적인 체계를 예시하기도 한다. 근대적 개념을 예시하는 또 다른 특징은 확장의 불규칙성과 내부와 외부공간의 상호관입이다. 건물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겉으로 보기에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건축가,화가,조각가,원예가,공예가들도 말할것이 없었다. 늪지대이던 곳을 전국에서 끌어온 흙으로 메꾸어 기초를 다졌고, 나무를 옮겨 심었으며 강의 흐름을 바꾸어 1천여개의 분수를 만들었다. 거대한 펌프로 센 강물을 끌어올렸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치장 을 다했다. 이렇게 해서 만든 베르사유 궁전은 3개로 나뉘어져 있으며, 특히, 400여장의 거울과 대리석, 샹들리에의 조화로 이루어진 거울의 방에는 전쟁기념 기록화와 역대 왕 왕비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으며, 마리 앙뜨와네트가 사용했던 침실 등은 도저히 발걸음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해서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다. 687년 망사르가 완성한 거울의 방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길이 75m, 높이 12m의 넓은 방을 17개의 벽면으로 나누어 578개의 거울로 장식하였다. 이곳에서는 주로 궁정 축제와 중요한 행사들이 열리거나 주요 외국 사신들을 접대하였다. 궁전은 2개의 층으로 되었다. 하지만 제단 위의 조각과 천정화가 볼 만한 예배당(chapelle)과 그 앞에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뜨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오페라의 방을 제외하곤 주로 볼거리는 2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루이 14세의 침실, 베르사유 평화조약이 개최되었던 거울의 방등 모두 15개의 크고 작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르사유 궁전 뒤로 펼쳐지는 100ha가 넘는 광대한 정원은 루이 14세가 공사기간 중 거의 매 일 현장에 나와서 간섭했다고 한다. 특히 이 정원조성에 지극한 정성을 쏟았다. 그는 '베르사유 정원의 안내'라는 제목의 노트 속에 정원을 효과적으로 둘러 볼 수 있는 코스를 그려두기도 했다. 정원에는 작은 규모의 또 다른 2개의 궁들이 있는데 그랑 트리아농(grand trianon)과 프티 트리아농(petit trianon)라 불린다. 그랑 트리아농은 넵튠의 샘에서 트리아농 거리를 걷다보면 있는데 1687년 루이 14세가 퇴임 후 부인과 여생을 함께 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그랑 트리아농은 궁전에서 도보로 20분 정도걸리는 운하다.
    독후감/창작| 2004.10.04| 8페이지| 1,000원| 조회(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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