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삶...그러나 영원한 불꽃으로 남은전태일 평전을 읽고...전태일...내가 그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 물론 그 전에도 영화다 뭐다 해서 이름 석 자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대학 일학년 때 해오름식을 마치고 과 선배들이랑 막걸리를 마실 때였다.해오름식 날 비가 오면 학생회가 순결(?)하지 못해서라는데... 그 날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에서 기분 좋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시던 중 내 옆에 앉은 과회장 오빠가 얼추 취기가 도는 붉어진 얼굴로 내게 물었다.너 전태일이라구 알어? 전태일? 응, 홍경인 나오는 영화? 오빠가 그 책 읽었는데 그거 읽다가 눈물나서 혼났다.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여려서 평소에도 눈물짓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던 오빠였다.)그렇게 얘기를 주고받다가 오빠가 읽어보라고 빌려줘서 읽게 되었는데 사실 그때는 학교 오가며 버스 안에서 졸면서 봐서 그런지 전태일 열사 라 불리는 그의 존재에 대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마지막에 자신의 몸을 태우며 죽어 가는 모습에 나와는 다른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하지만 대학교 4학년 들어와서 다시 읽어본 전태일 평전은...정말 그 몸서리치도록 싫은 비참함과 어두움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스물 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토록 많은 곡절과 사연을 겪으며 살아야 했던, 지상최대의 과제가 배고픔이었던 전태일...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의 그가 짊어져야 했을 그 엄청난 삶의 무게가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전태일 평전 은 청년 노동자 전태일 열사의 길지 않은 생의 기록이다. 여기서 지은이 조영래 변호사는 전태일 열사와 일체가 되어 혼이 담긴 생생한 육성으로 그의 삶을 전하고 있다. 이 책은 1883년 저자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어느 청년노동자의 우회 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는데 발간되자마자 판매금지 조치를 당하며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연금 당하기도 하였다.하지만 이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독자들의 폭발적 호응으로 지금까지도 고전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전태일...그는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재단사로,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나 1970년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스물 두 살의 어린 나이에 근로 기준법 책을 불태우고 그와 함께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살라 죽어갔던 인물이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며 너무도 처절히 죽어갔기에 지금까지도 자주 회자되는 그의 이름 석자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뜨거운 불꽃으로 남아 있다.전에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그 영화는 그다지 가슴에 남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태일이 분신자살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처절하고 절실했던 동기가 잘 그려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영화는 너무 감상적으로 전태일을 그리고 있는데다가 그가 겪어왔던 가정환경, 가출, 굶주림,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의 과정을 그리는데도 소홀했다. 그리고 그저 뜻대로 안되니까 분신자살을 한 것처럼 비쳐지고 있었는데 이는 오히려 나약한 인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아 역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전태일이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이고도 참혹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 많이 생략된 채 실감 없이 그려져 분신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던 그의 절박했던 심정과 강한 희생정신이 잘못 알려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전태일은 반복되는 실패와 실직으로 폭음을 일삼게 된 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하며 눈물 맺힌 어머니, 동생들과 하루하루 힘겨운 생활을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글을 읽으며 어려운 시절에 늘 있게 마련인 무능력하고 난폭한 아버지들을 원망했는데 책장이 한 장 한 장 넘어 갈수록 이 땅의 아버지들이 너무도 아프게 다가왔다.전태일도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원망하였으나 차차 철이 들면서부터는 아버지의 어두운 생애를 가슴아파하며 잘 해 드리려고 노력했다고 한다.그는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가출을 반복하였는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치지 않는 그의 향학열에 그저 되는대로만 살아온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학업을 위해 동생 태삼이를 데리고 나갔을 때 동생도 공부를 계속 시켜 보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아버지의 구타에 못 이겨 식모살이를 하러 집을 나간 엄마를 찾아 서울로 갔을 때도 그의 등에는 여동생 순덕이가 업혀 있었다. 동생이 짐스럽기도 했을 법 하지만 큰 애정으로 동생을 보살피던 그는 배곯는 일이 반복되자 하는 수 없이 미아보호소에 동생을 맡겼는데 이때도 동생의 배를 채워줄 생각으로 입고 있던 학생복 상의를 고작 30원에 팔았다. 어린 나이에 어디서 그런 생각이 나오는지...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인가...요즘의 청소년들하고는 너무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가 남긴 낙서나, 수기, 일기, 장문의 편지들을 보면 중학교 중퇴자의 학력이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문장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가난으로 인해 꺾일 수밖에 없었던 향학열이 매우 안타까웠다. 비록 학교를 많이 다니지는 못했지만 만약 부유한 환경에서 꾸준히 학교를 다닐 수가 있었다면 그의 공부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보아서 상당히 공부를 잘하는 우수한 학생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배고픈 삶을 살았으면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필 줄 알고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던 전태일의 아름다운 심성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전태일은 가족이 모두 서울에 살게되면서 직장을 얻게 되고, 1964년 봄, 그의 나이 16세 때 시다라는 이름으로 평화시장 노동자로서의 첫발을 들여놓았는데 처음에는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이란 생각에 기대와 희망에 부풀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노동자로서의 궁핍한 생활과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했다. 하루 14시간 노동에, 약 2천명이상의 인원이 화장실 3개만을 이용해야 할만큼 열악한 시설 속에서 고작 커피한 잔 값밖에 안 되는 일당 50원을 벌기 위해 뼈가 휘는 고된 생활을 했는데, 그 당시 경기가 좋을 때는 만들기만 하면 팔린다. 는 말이 그대로 통했던 평화시장의 실상을 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막힌 저임금에 잔인한 착취였다.평화시장 노동자로서의 삶을 서술해 놓은 부분에서는 정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처참한 생각이 들었는데 한참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라야 할 나이에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창고 같은 곳에서 하루 종일 일만 해야했던 어린 소녀들이 너무나도 가여웠다. 특히 책에서 시다들과 찍은 사진을 봤을 때 너무 어려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전태일은 시다에서 미싱사에서 재단보조공에서 재단사로 옮기는 동안 직종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재단사는 업주와 어느 정도 유착관계가 생겨서 임금도 많고, 하루에 자신의 시간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주인에게 있어서 편파적인 대상인 동시에 공장 안에서의 절대적인 책임자였던 반면, 시다는 조금의 불평도 용납 안 되는 그야말로 일하는 기계 같은 존재였다. 이 때문에 미싱사로 월 7천 원 정도의 꽤 괜찮은 수입을 올리고 있던 전태일은 어린 여공들을 도와주고 그들의 힘이 되어주기 위해 월 3천 원 정도로 수입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재단사가 되기를 결심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차비를 털어서 배고픈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줬던 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말 타고난 희생정신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미싱사 처녀가 핏덩이를 재봉틀 위에다 토했는데 폐병 3기라는 진단을 받은 그녀는 업주에게 당장 해고당하고 말았다. 이 일로 인해 전태일은 큰 충격을 받았는데 이때부터 그는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근로기준법 이란 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법이 있는데 왜 우리 노동자들은 이런 법이 있는 줄도 모른 채 그 동안 당하고만 살아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 전태일은 곧 말그대로 바보처럼 당하며 노동 일을 했다 는 뜻의 바보회 라는 조직을 결성하였다.바보회를 통해 전태일은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노동자의 참상을 일일이 열거하며 이것도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하고 항의하였는데, 규정과는 너무도 다른 평화시장의 비인간적 노동현실에 대한 그의 분노를 엿볼 수 있었다.하지만 힘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익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법...전태일은 바보회가 창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업주들에게 위험분자 로 인식되어 직장에서 해고당했고, 다른 곳으로 취직 할 수도 없었다. 또한 바보회 역시 평화시장 노동실태에 관한 설문지 조사 후 여기저기서의 압력으로 사실상 해체에 이르게 되었다.이처럼 평화시장에서는 더 이상 일할 수 없어진 전태일은 어머니 보기에 미안해서 공사판에 나가 일하게 되었는데 그 때의 괴로운 심정을 친구 원섭에게 보낸 편지에서 알 수 있다. 너무 악착같아서 슬프기까지 했던 치열한 생존경쟁을 보며, 새삼 그리 넓진 않지만 엄마, 아빠가 있는 우리 집의 존재가 너무도 감사하게 다가왔다.전태일은 계속되는 가난과 마음속의 번민으로 고민하다가 임마뉴엘 수도원 신축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삼각산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이 당시 그는 이미 유서까지 써놓고 죽음 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삼각산에 올라가 돌을 깨고 당을 파고 장작을 져나르던 넉 달 동안 그는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에 대해 비난하며 번민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스스로의 인간적인 책임에 대해 목숨을 거는 결단을 했다. 밑바닥 인생으로서의 비인간적인 삶에 진저리치며 철저하게 증오하다가 결국 비인간의 삶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1970년 9월, 전태일은 오랜만에 평화시장에 모습을 나타내었는데 그 동안 전태일에 대한 소문도 어느 정도 가라앉고 업주가 바뀐 곳도 더러 있었으므로 겨우 취직할 수 있게 되었다.그의 출현을 계기로 뿔뿔히 흩어져 있던 바보회 회원들이 다시 모이게 되었는데 얼마 후 그들은 바보회 를 삼동친목회 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하였다. 여기서의 삼동 은 평화시장, 동화시장, 통일상가 의 세 건물을 가리킨 것인데 삼동친목회는 바보회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투쟁의식을 가지고 출발했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민중의 외침태백산맥을 읽고...요번 한국사 보고서 주제가 태백산맥이라는 말을 듣고 대학교 일 학년 겨울방학 때 느꼈던 그 이상스런 억울함과 느닷없이 순간순간 밀려왔던 감동이 동시에 떠올랐다. 장편 대하소설이라고 하면 그저 딱딱하고 어려운 글 일거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 책이 전해주는 묵직한 느낌은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평소에 뭐 특별히 남다른 사회비판의식이나 역사의식 같은 걸 갖고 있다고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난 열 권의 분량만큼이나 큰 부피의 놀라움이 책을 한 권 한 권 읽어 나갈수록 점점 커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추운 겨울에 읽어서 그런지 가끔 마음속에 찬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것 같던 그 서글픔이 지금도 기억난다.아무튼 대학 일 학년 때 읽었던 태백산맥과 대학 졸업반이 되어 읽는 태백산맥은 글쎄...삼 년 동안 내 의식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다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똑같았다. 그 어지러운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민중들의 이야기와 어쩔 수 없이 목격해야했던 억울한 죽음들이 날 슬프게 했을까? 지금 내가 태백산맥을 떠올리며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은 분명 슬픔이다. 아니, 슬픔이라고 표현하기엔 뭔가 부족한, 통속적으로 말하는 사랑이야기 같은 데서 느껴지는 눈물나는 슬픔이 아니라 좀 더 끈끈하고 보듬어주고 싶은 그런 안타까움이 담긴 서글픔이다.난 평소에도 TV 사극 같은데서 왕위를 지키기 위해 벌어지는 궁정의 암투, 권력을 쥐고자 벌이는 갖가지 음모 같은 걸 볼 때면 그 어지로움에 슬그머니 짜증을 느끼곤 했는데 태백산맥을 읽고 나서도 그런 어지로움을 느꼈다는 데에 너무 화가 났다. 뭔가 한참 잘못 알고 있었다는, 꼭 누군가한테 오랫동안 속아온 거 같다는 그 배신감 아닌 배신감에 매우 어리둥절했다.난 어릴 때부터 빨치산 하면 우리 나라를 공산화시키려고 산 속에서 숨어 다니는 정말 독하고 잔인한 괴물 같은 집단이라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들었던 이승복 어린이 이야기가 로 김범우 였기 때문이다. 이런 경건한 대하소설 앞에 두고(?) 평소 연애소설 속의 남자 주인공을 동경하던 버릇이 튀어나온 것 같아 조금 민망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인물임에는 틀림없으니 할 수 없다!!!김범우는 지주 김사용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 김사용은 분명 지주임에도 불구하고 안창민의 어머니 신씨와 마찬가지로 벌교의 최익달, 정현동 등의 여느 지주들과는 달리 민중을 생각할 줄 아는 넓은 아량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자란 김범우 역시 벌교가 배출한 걸출한 인물 이다. 그는 시대의 흐름에 고민할 줄 아는 지식인이면서도 손승호, 안창민 과는 달리 미국 첩보원 OSS 훈련을 받는 등(물론 이것이 김범우에게는 정말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기억일 테지만...) 어느 정도의 육체적 완력도 지니고 있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좋아했던 것일까? 꼭 완력이 있어야 강인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병약한 것보다는 자기 몸 하나 지킬 정도는 되는 게 더 나으니까...그래서 그가 미군에게 농락 당하는 두 한국여인을 구해줄 때 얼마나 멋있었는지 모른다. 또 전쟁이 터진 후 송경희의 부탁으로 그녀가 한강을 건널 수 있게 도와 준 부분에서도 난 나도 모르게 그에게서 남성적 매력을 느꼈다. 앗! 또 시작이다. 또 내 멋대로 유치한 연애 소설의 잣대를 들이대는군...이제 그만하고...- 불필요한 말은 거의 하지 않는 무게감, 세상의 이치를 훤히 아는 것 같은 해박함, 그 누구도 무시하지 않을 것 같은 겸손함, 어딘지 우울한 듯하고 쓸쓸하기도 한 범접하기 어려운 사색적이고도 지성적 분위기...-이 책에 표현되어 있는 김범우의 매력이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에서도 특별한 깊이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좌익세력의 염상진, 정하섭과도 깊은 교분을 맺으며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을 안타까워했는데, 난 엉뚱하게도 그가 이학송, 손승호와 술을 마시며 염상진을 생각했던 부분에서 그의 인간적인 매력을 발견했다. 그건 마치의 아들로 씨름판에서 내리 지던 상대를 약간의 변칙(?)을 써서 기어코 혼내주고 마는 강한 오기와 남다른 뚝심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염상진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아 노동쟁의를 일으키기도 하는 등 사회 개혁을 꾀하며 입산 후 마침내는 전라도 내 좌익세력의 중심으로 우뚝 서는 인물로, 읽는 내내 그 구수한 사투리로 날 즐겁게 해주었다. 참,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데 전라도 사투리는 참 신기했다. 어쩌면 그렇게 상황을 한 눈에 보이는 것 같이 설명할 수 있는 건지... 길게 늘어놓는 걸쭉한 사투리는 그 말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담아내는 묘한 재주를 지닌 것 같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이른 바 표준어와는 달리, 그리고 내가 들어본 여느 전라도 사투리와는 또 다르게 - 우리 할머니가 전라도 분이라서 내겐 그다지 낯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 유난히 직설적이고 다소 거칠어 보이기도 하는 말들은 내가 태백산맥을 오래토록 기억하게 하는데 크게 일조하지 않았나 싶다.하대치는 무산자 출신으로 높은 혁명의식, 민첩한 행동력, 강한 투지 등 빨치산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최상의 조건을 갖춘 정말 책 속의 말대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빨치산 그 자체인 인물이다. 대대로 억압받고 살아야만 했던 불합리한 계급구조의 타파, 끊임없이 계속되는 착취 속에서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등의 목표를 위해 그 누구보다도 노력했던 그는 안창민의 독백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특히 염상진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인간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벗이지만 사상적으로 달라 서로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김범우 와는 달리 염상진에게 있어서 하대치의 존재는 목숨을 걸고 강한 동지애로 뭉쳐 있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영원한 한 편인 것이다.- 한은 맺히기만 혔지, 풀리는 것이 아닝께 한인 법인디 고건 풀라고 발싸심허면 헐수록 헝쿨어진 실꾸리맨치로 얽히고 설키다가 종당에는 지 명꺼정 끊어묵는 법인디...-하대치의 아버지 판석영감이 입산한 아들을 향해 염려하는 구절이다. 이상. 아버지를 내놓고 말할 수 없는, 숨겨야만 하는 길남의 마음이 너무 슬펐다. 그리고 형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는, 썰매를 만들기 위해 불평 한 번 없이 이틀 점심을 내리 거르는 종남이...길남이가 배고프냐고 묻는 말에 아녀, 암시랑토 안혀 하고 대답하는 종남이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떨어지지 않는다.태백산맥은 하대치가 부하들과 함께 자폭한 염상진의 무덤을 찾아와 새로운 투쟁을 결심하는 데서 끝맺어지는데 그가 대장님, 지가 왔구만이라. 하대치여라 하며 죽은 대장에게 인사하는 모습에서 난 콧등이 시큰거림을 느꼈다. 서로가 순수한 마음으로 투쟁을 시작했던 그 때처럼 다시 한번 힘을 내고자하는 그 모습에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소용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난 정말 간절히 바랬다. 그가 소원대로 할아버지로부터 넘겨받은 그 이름을 손자에게 넘겨달라는 말을 죽기 전에 아들에게 꼭 할 수 있었기를...제발 그럴 수 있었기를 정말 바랬다.3. 흰 꽃의 잔잔한 향기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 소화...3년 전 태백산맥을 읽고 나서 쓴 일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나도 꾸며내지 않은, 잔잔한 아름다움으로 그 존재 자체가 향기가 되는 소화 같은 여인이 되고 싶다 라는...그 정도로 나는 소화가 가지고 있던 아름다움에 도취되었었다. 한없이 약할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에 닥치면 한없이 강해지는, 특히 사랑하는 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것 같은 그 강인함...어쩌면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이 바라는 이상형일지 모르는 소화는 그에 상응해서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되고 싶어하는, 특히 동양 여성의 가장 바람직한 표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소화는 무당의 딸이다. 그녀는 이름 그대로 한 떨기 꽃처럼 아름답고 고고한 매력을 지닌 여성으로, 어릴 적부터 왠지 모르게 마음 깊숙이 남아 있던 정하섭과 순결한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조카인 정하섭을 사랑하게 된데서 오는 불행일까...(그녀의 어머니와 정하섭의 할아버지 정참봉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소화이니, 굳이 따져보을 텐데...하지만 그녀라면 평생 정하섭에 대한 사랑으로 그의 아들을 누구 못지 않게 잘 키울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처음 정하섭에게 몸을 허락하며 - 그녀에게 있어 몸을 허락한다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만큼 사랑한다는...- 머뭇거리는 그에게 다 신령님의 뜻이구만요 라고 나직히 말하는 모습에서 난 진정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디에 섞여 있어도,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누구나 기댈 수 있는, 하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녀의 깊은 무게감...앞으로 살아갈 내 미래에 그녀의 이런 모습이 조금이나마 투영되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아들 민승이와 행복하게 거닐고 있는 소화의 모습을 상상해본다.4.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 염상진...이 보고서를 쓰게 되면서 사실 쓸까 말까 가장 고민했던 인물이 바로 염상진이었다. 솔직히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망설여진다. 책 전반을 거의 주도하며 누구보다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그의 모습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하는 것도 걱정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다시 읽어 본 태백산맥의 그는 3년 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3년 전의 그는 태백산맥 하면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좌익세력의 독보적 인물이었다. 물론 그건 지금도 변함없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의 모습에서 자꾸 말로는 표현 못할 생경함이 느껴진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3년이 지난 후의 그가 내 의식 속에서 변화를 일으킨 것만은 분명하다. 아무리 머릴 쥐어짜도 그 느낌을 설명하기에는 내 표현력이 너무도 부족했기에 그건 포기하고 그저 내게 보이는 그의 모습만 써보기로 하겠다.(아무리 생경함이 느껴진다고 염상진에 대해 쓰지 않을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는 가장인상 깊은 존재 중 하나였음은 분명하니까...)염상진은 숯장수 염무칠의 아들로 염상구의 형이다. 그는 아버지의 열망으로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사범학교까지 나와, 잘못된 세상에 대해 분노를 느껴 적극적인 투쟁을 수행하
이집트 신화와 신들에 대해...자유 보고서로 뭘 쓸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것이 이집트였다. 마침 내 전공이 아랍어인 것도 있겠지만 평소에도 여러 종류의(만화책을 포함해서) 책을 통해 본 이집트는 항상 신비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번 계절하기 수업에서는 이집트에 관해 오시리스 신화를 다뤘는데, 내가 알고있던 오시리스 신화와는 조금 달랐다. 파라오니 투탄카멘의 저주니 하는 것들로 사람들에게 더욱 신비스러워 보이는 이집트에 관해 더욱 더 많은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지금부터 이집트의 신화와 주요 신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이집트인들은 자신이 나일강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일강 유역을 누워서 자고 있는 인간의 몸에 비유하면서 그 몸 위에서 인간. 동물 그리고 식물이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하늘을 광대한 바다로 보고 그 바다에서 태양과 별이 매일 모습을 드러냈다가 서쪽으로 향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지하에도 나일강이 있어서 그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생명의 근원으로 회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집트인들은 수많은 신과 여신을 섬겼으며, 신들은 대개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또 이집트인들은 신전과 무덤을 만들어 지방마다 자신들만의 신을 섬겼다. 이집트 종교에서는 태양신이 가장 중요한 신이었는데, 새벽에는 케프리신, 곧 신성투구풍뎅이가 되어 동쪽 지평선 위로 둥근 태양을 굴리고, 그 다음에는 라 하라크티 신, 곧 매가 되어 하늘을 날아오른다.고대 이집트 유물에는 기독교 창세 신화나 중국 창세 신화처럼 체계적인 기록은 없지만, 각지에 있는 신전의 비문에 어렴풋하게나마 신들의 계보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한번 살펴보면, 원초에는 눈이라는 불리는 바다가 있어 여기에서 아툼이 태어났다. 이는 태양신 라와 동일시되며, 눈은 나일강 물이라고 생각된다. 아툼 라는 스스로의 수정작용으로 게브, 슈, 테프네트, 누트를 낳았다. 이 4명은 서로 다툰 끝에 게브는 대지가 되고, 슈와 테프네트는 공기와 증기가 되었으며, 막내 누동생 누트는 하늘이 되었다. 그리고 게브와 누트는 부부가 되어 오시리스와 이시스라는 남매를 낳았다. 이들이 바로 오시리스 신화의 주인공이다. 또한 태양신 라의 숭배는 헤리오폴리스를 중심으로 이집트 전기간에 걸쳐 성행하였는데, 여기에는 호루스(매의 신)의 숭배가 수반하여 왕권의 확립 및 계승과 관련이 있다.지금부터 이집트의 주요 신들에 대해 알아보면, 먼저 눈은 그리스 신화에서 우주 발생 이전의 원시적인 상태를 일컫는 말인 카오스를 뜻하며, 창조에 앞서서 모든 것, 생물의 근원을 품고 있는 원초의 대양이며 몇몇 문헌에서는 이것을 '신의 아버지' 라 일컫고 있다. 신화에선 물 속에 몸을 반쯤 담그고 두 팔로 신들을 받치고 있는 자세로 묘사되며, 눈으로부터 태양신인 라가 탄생한다.다음으로 아툼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는 '가득 차 있다.'를 뜻하는 어원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처음에는 헬리오폴리스의 지방신이었는데 여기서는 성스러운 동물, 즉 므네비스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일찍이 헬리오폴리스의 사제들은 이것을 위대한 태양신 라와 동일시했다. 그리고 그들은 창조에 앞서 원초의 대양인 눈 속에 아툼이라고 불리는, 온갖 실재를 내포하는 아직 밝혀지지 않는 정령이 살아 있고, 그것이 어느 날 아툼 라라고 자칭하며 신들와 인간들과 그 밖의 모든 존재를 낳았다고 한다. 훨씬 뒤에 아툼은 가라앉는 태양과 일출 전의 태양의 인격화가 되어 그에 대한 제사는 이집트 전역에 걸쳐서 라의 제사와 더불어 상당히 보급되었다. 일반적으로 아툼은 인간의 선조라 생각되었고, 항상 왕의 쌍관 푸스칸트를 쓴 남자의 머리 부분으로 표현되어 있다. 처음에는 독신이며 여자의 도움 없이 자기 자신의 몸에서 최초의 신 한 쌍을 탄생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 하나 또는 두 배우자를 연관시키게 된 것은 훨씬 훗날에 가서였다. 예컨대 멤피스에서 그는 쥬사스 또는 네베트호텝과 동일시되며, 슈와 테프네트의 쌍둥이를 낳은 것으로 되어 있다.다음으로 태양신 라는 창조자라는 뜻이며 하늘과 땅의 절대적 지자인 태양신이다. 생명 탄생 이전에 원초의 바다 눈의 품안에 웅크리고 있다가 바위 속에 들어가 형체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태양신은 그 광채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눈을 감는다든지 하얀 연꽃 속에 숨는 등 갖은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힘으로 대양 위에 우뚝 일어서서 라 라는 이름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그러나 라는 젊고 활력 넘치던 시절에는 신들이나 인간들을 평화롭게 통치할 수 있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의 젊음과 건강은 빛을 잃어갔다. 그래서 그는 입을 벌리고 줄곧 침을 흘리는 노인으로 묘사된다. 신화 속에서 그는 뾰족한 바위, 즉 오벨리스크의 모습으로 표시되는데, 세계 곳곳에 오벨리스크는 라의 상징이며 승리와 영광과 최고의 권력을 의미한다. 그를 모시던 이시스가 세트를 이기기 위해 꾀를 내어 라의 신통력과 주문력을 빼앗아 간 후 하늘로 들어가 은거한다. 오벨리스크 중에서 가장 오래 된 것이 12왕조의 파라오 세누세르트의 것이며 이후 태양신의 힘을 가진 이시스가 이집트 전체를 통해 숭배 받게 된다.또, 대지의 신 게브는 누트와 함께 슈와 네프네트에 이은 헬리오폴리스신화의 두 번째 부부이며 플루타르코스에 의해 크로노스와 동일시된다. 인간들로부터 제사를 받지는 않는다. 게브는 슈에 의해서 그의 아내이며 누이동생인 하늘의 여신 누트와 떨어졌기 때문에 그 후로는 비탄에 잠겨 그 울음소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려퍼졌다. 어쨌든 게브와 누트는 오시리스의 신들을 낳아, 게브에게는 '신들의 아버지'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게브는 3대째의 신의 왕으로서 슈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비교적 파란만장한 통치를 했다. 이어서 그는 그 권력을 장남인 오시리스에게 물려주고 하늘로 은둔하여, 거기서 때때로 토트 대신 라의 군사가 되고 또 신들의 지배자가 되었다.다음으로, 공기의 신, 공허의 신 슈는 쌍둥이 누이동생 네프네트와 함께 헬리오폴리스 최초의 부부가 된다. 아톰이 그를 내뱉아 탄생시켰기 때문에 '내뱉는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슈는게브와 누트가 꼭 껴안고 있을 때 태양신의 명으로 누트를 떼어 하늘로 올렸던 신이다. 아버지 태양신 라의 뒤를 이어 천계를 다스리지만 반란이 일고 신하들이 배신하는 등의 쓰라린 경험을 겪은 후 게브에게 권력을 넘기고 폭풍우와 함께 승천해 버린다. 신화에선 타조 깃을 머리에 꽂은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된다또 테프네트는 현실적인 인간상이라기보다는 신화적인 본질로 생각된다. 헬리오폴리스에서 그녀는 슈의 누이동생이며 아내인 여성으로 되어 있다. 테프네트는 이슬의 여신 또는 비의 여신이었지만, 그녀 역시 태양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녀를 암사자의 모습이나 사자의 머리를 한 여자의 모습으로 숭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프네트는 여러 문서를 통해서 슈의 창백한 묘사에 불과한 것으로 그려져 있지만, 그녀는 슈를 도와서 하늘을 받치고 태양이 동쪽 산에서 떠오를 때 그와 더불어 갓 태어난 어린 태양을 매일 아침 맞이하는 것이다.다음으로 누트는 하늘의 여신으로서 역사시대에는 제사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리스인들은 그녀를 태양신 라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녀는 대지의 신 게브와 쌍동이인 누이동생이었는데, 라를 배반하고 무의식중에 오빠와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노한 신은 슈로 하여금 그 둘을 떼어놓게 한 다음, 누트에게는 1년에 한 달도 땅에 눕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플루타르코스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다행히도 토트가 그녀를 가엾게 여겼다. 그래서 그는 달과 내기 장기를 여러 번 두어 마침내 달의 72번째 빛을 손에 넣어 닷새 동안을 간직했는데 그 5일간의 정력으로는 계산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누트는 연달아 그녀의 다섯 아이(오시리스, 하로에리스, 세트, 이시스, 네프티스)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늘의 여신 누트는 때때로 손발을 쭉 편 여인으로 표현된다. 그녀는 발가락 끝으로 발돋움을 하고 서서 손가락 끝을 대지에 대고 있으며, 별이 아로새겨져 있는 그녀는 배가 슈에 의해 받쳐져 공중에 떠서 하늘의 공륭을 이루고 있다.그런데 너무 높이 솟은 나머지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래서 네 발, 즉 하늘의 네 기둥이 된 그 네 발에 각각 신을 하나씩 두어 그 발을 받치도록 하였다. 한편 슈는 그녀의 배를 받쳤다. 그래서 그 배가 하늘이 되고 라는 지상에 사는 인간의 세계를 밝혀주기 위해 그 배에 별과 성좌를 박아 놓았다. 가끔 라의 딸의 자격으로 누트 역시 태양의 어머니로 대접받기도 한다. 태양은 아침마다 여러 가지 형태로 그녀의 가슴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또한 누트는 한 마리의 암소로 표현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반역을 겪은 다음 원초의 대양인 눈의 명령으로 대지를 떠날 결심을 한 아버지 라를 등에 업고 갔을 때, 그녀는 암소의 모습을 했었기 때문이다. 누트는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될 때 간혹 그 이름의 표의문자인 둥근 항아리를 머리 위에 얹고 있다. 또한 그녀는 죽은 자의 수호여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죽은 자를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돌로 만든 관의 뒷면에는 여신이 미이라 위에 별처럼 찬란한 몸을 펼치고 우아한 자태로 죽은 자를 지켜보고 있는 그림이 있다.그리고 죽은 자의 신, 오시리스가 있다. 그리스인들은 오시리스를 디오니소스와 동일시하고 있다. 오시리스는 처음에는 자연의 신이요 식물의 정의 변신으로서, 수확기에 죽고 곡식의 배아와 더불어 다시 살아난다고 믿어지는 오시리스는 죽은 자의 신으로서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 받았다. 아버지 게브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뒤 이집트를 통치하였으나 동생 세트와의 싸움에서 살해되고 회생한 후에는 지하세계에 은거하며 사후 세계를 다스리는 신이 되었다. 인간이 죽어 지하 세계로 오면 이승에서 그들이 지은 죄를 재판한다. 신화에선 가늘고 흰줄모양의 옷을 입고 왕좌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집트인들의 오시리스 숭배는 자연 종교로서 출발했다. 오시리스는 식물의 성장과 나일강이 가져다주는 생명력을 의인화 한 것이었다. 오시리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자세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이는 수업시간에 다룬 적이 있으니 그냥 넘어가기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