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겨울을 견딘 내면의 희망 -박완서‘나’(이경)는 6.25 전쟁 중에 미군 부대 안의 초상화 가게에서 일하게 된다. 그 곳에서 미군에게 초상화를 그려 주는 옥희도를 만난다. ‘나’는 나 때문에 두 오빠가 죽었다는 죄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두 아들을 잃고 온전치 못한 정신 상태인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나’는 유부남인 옥희도에게 끌리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유부남과 미혼녀의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지게 된다. 옥희도는 진짜 화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초상화 가게에 나오지 않고 그를 잊지 못해 방황하던 ‘나’는 옥희도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 곳에서 ‘나’는 캔버스의 부연 색조의 배경에 고목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본다.세월이 흐른 뒤 ‘나’는 옥희도의 유작전에 가서 지난날 옥희도의 집에 보았던 그림이 고목이 아니라 봄을 기다리며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나목이었음을 깨닫게 된다.이 소설은 불우한 예술가인 옥희도의 삶에 초점에 맞춰 황폐한 현실에서도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또 한편으로 본인 때문에 오빠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경의 의식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 성장소설로도 볼 수 있다. 성장소설적 측면에서 나목은 옥희도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던 ‘나’의 의식을 각성시키는 계기로 작용한다.
병신과 머저리- 상처, 그리고 극복 -이청준화가인 ‘나’(동생)는 애인으로부터 이별통보를 받지만 큰 슬픔 없이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20년 넘게 외과 의사였던 형은 어린 소녀를 수술하다가 실패를 한 뒤 더 이상 의사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다. 수술 실패로 인해 과거에 6.25 전쟁에서 체험했던 상처가 되살아났고 그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병원 문을 닫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형의 소설에는 ‘나’(형)와 오관모, 김 일병이 등장한다. 그들은 패잔병이고 김 일병은 부상으로 팔이 썩어 가고 있다. 오관모는 김 일병을 성적으로 괴롭히고 있었는데 김 일병의 상처가 썩고 냄새가 심해지자 그를 죽이려고 한다.형의 소설은 그 부분에서 멈추어 있다. ‘나’(동생)는 형이 김 일병을 죽여 그 고통을 덜어 주는 것으로 소설의 결말을 지어 버린다. 형은 그것을 읽고 동생인 ‘나’를 머저리라고 욕한다. 그러고는 오관모가 김 일병을 죽이고 자신이 오관모를 죽이는 것을 결말을 고친다. 소설에서 형은 오관모를 죽였지만 현실에서는 오관모가 여전히 생존해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이에 따라 소설을 통한 가상적 결말은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쓴 소설을 불태운다.형과 ‘나’(동생)는 정신적인 아픔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 아픔에 대응하는 태도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형은 내면적 갈등을 겪고 있다. 부상당한 부하인 김 일병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오관모를 죽이느냐 아니면 방관하느냐 하는 내면적 갈등은 소녀의 수술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다시 형을 괴롭힌다. 그러나 형은 자신이 느끼는 아픔을 능동적으로 극복한다. 반면에 ‘나’(동생)는 패배적인 사고로 형체를 알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이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을 한다.
페미니즘 교실- 소통을 위한 말 걸기 -김고연주 외 8명‘혐오의 시대’라고 명명되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타인에 대한 이유 없는 혐오와 비난을 쏟아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시대를 살며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 질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이 올바른 사고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갖기 위해서라도 페미니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매우 필요하다.페미니즘은 흔히 렌즈에 비유가 된다. 즉,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혐오의 세상을 페미니즘이라는 렌즈를 통해 이해하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투표조작으로 한동안 논란의 중심이었던 Mnet의 이라는 프로그램은 시즌1에서는 여자 아이돌 연습생들이 자신을 뽑아달라며 “Pick me!”를 외쳤다. 그러나 이와 아주 상반되게 시즌2에서는 남자 아이돌 연습생들이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라고 선언을 했다. 이렇게 대중매체에서도 자연스럽게 여성과 남성에 대한 역할과 성향을 극단적으로 다르게 보여준다. 이 뿐 아니라 웹툰에서도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가 부각되고 줄거리와 아무 상관없이 여성의 속옷이 노출되는 경우도 수많이 등장한다. 또한 데이트 폭력에 대한 묘사까지 그리는 웹툰도 있어 여성이 여전히 남자에게 종속되는 인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대중문화 속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는 올바른 방향성을 찾기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여자를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지켜지지 않는 지금 현실을 다시 한 번 더 돌아볼 필요가 있다.소셜네트워크(SNS) 사용 빈도가 잦은 10, 20대 여성들은 개인적으로도 외모 비하 발언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인격모독으로까지 번지는 극심한 여성혐오가 넘쳐나면서 최근에는 ‘탈코르셋 운동’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머리를 기르고 예쁘게 화장을 해야 하는 사회적 고정관념에 지친 대다수의 여성들이 더 이상 남성 중심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의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긍정적인 결과를 갖고 오고 있다.여성혐오를 불러일으키고 여성존중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초부터 미투(MeToo) 운동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미투운동은 2006년, 여성 인권 운동가 타라나 버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 받았던 성폭력 피해자들의 위한 이 운동이 확산되면서 우리 사회 그리고 학교에서, 특히 여고에서 일어나던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마당 깊은 집- 민중의 생존 경쟁 -김원일‘나’의 가족이 세 들어 살고 있는 ‘마당 깊은 집’은 주인집을 포함하여 여섯 가구가 살고 있다. 주인집은 8명이 살고 있는데 경북 의성군에서 여러 대에 걸쳐 알려진 토호 집안이다.삯바느질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나’는 신문배달원을 하지만 딱히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다. ‘나’는 없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나’에게 매일 모질고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어머니는 ‘나’에게 집안의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을 부여하고 조금만 실수를 해도 용납하지 않는다.겨울이 되고 ‘나’의 가족은 바깥채로 옮기게 된다. 엄동설한에 갑자기 이사를 가라고 하는 것은 서민으로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현실임을 이해하지만 ‘나’의 의지가 아닌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에 더욱 슬픔이 더해진다.중학교를 가려던 ‘나’는 결국 낙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주인이 아래채를 허물고 새로 짓겠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하면서 세 들어 살던 가족들은 모두 흩어지게 된다. 이후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어릴 적 굶주림과 한겨울에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하는 설움에서는 벗어났다. 그러나 전쟁 직후에도 초호화 파티를 즐기던 부유했던 집주인을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씁쓸해진다.‘나’를 비롯해서 아래채 사람들은 각자의 삶의 방식에 따라 6.25 전쟁 이후에 열심히 살아가고 그들과 함께 ‘나’ 역시 성장한다. 성장하는 데 있어 어머니의 역할이 아주 크게 부각되는데 ‘나’에게서 남편의 모습을 기대하면서도 가족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부성적 면모가 무척 두드러진다.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은 ‘나’를 억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성장하도록 이끌어 주는 원동력이 된다.
아우를 위하여- 권력과 대중의 대립 -황석영‘나’는 군대에 간 아우에게 어릴 적 경험이 담긴 편지를 쓴다. 전쟁 중에 학교를 다녔던 ‘나’는 교실에서 혼란과 불공평함을 경험한다. 나이가 많고 힘이 센 학생들이 급장(지금으로 반장)인 영래를 중심으로 학급을 장악하고 권력을 행사한다. 많은 학생들이 그들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지만 담임 선생님은 학급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이런 폭력이 계속되던 어느 날, 여자 교생선생님께서 오게 된다. 열정적이지만 부드러운 온화한 교생선생님은 영래 및 함께 어울리는 패거리들을 차차 타이르기 시작한다. 그로 인해 억압적이었던 학급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어 가고 점차 다른 학생들의 본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그러나 영래를 비롯해서 그의 패거리들은 교생선생님들 못 마땅히 여겨서 교생선생님을 비방하는 쪽지를 돌리고 명예를 훼손한다. ‘나’는 영래 일당의 이런 행동이 옳지 않다고 정면으로 저항하고 종하에게 사과를 받아낸다. 그 뒤 교생선생님을 존경하던 대다수의 학생들이 영래 일당에게 정면으로 대항을 하고 결국 정의로움이 승리하게 된다.작가는 어느 초등학교(당시 초등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당시 우리 사회 모습의 축소판을 보여주고 있다. 불의와 폭력에 순응하던 학생들이 교생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 저항하고 정의로운 것을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된다.이는 1970년대 독재정권으로 인해 탄압받던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소설은 개인의 삶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쳐 정의로움이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용기를 북돋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