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서양 고대사회는 어떤 교육적 특징을 갖고 있는가?서양 고대사회의 교육에 대해서는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살펴봅시다.1) 그리스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교육그리스는 국가의 형식을 완전히 갖춘 사회로서 성격이 서로 다른 스파르타와 아테네로 대표된다. 그리스 반도에는 그리스 민족이 침입하여 살기 전에 에게문명을 만들어 낸 선주민족이 있었습니다. 찬란한 청동기문명을 지닌 에게인들은 왕을 받들어 모시며 교육을 하여 번영하였으며 견고한 성벽을 쌓아 시민과 시의 재산을 보호하였습니다. 그리스 민족은 이미 고도의 문화를 가지고 있던 선주민족의 거주지에 북쪽으로부터 침입해서 그들을 추방하고 때로는 노예화하여 그 땅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그리스 사회가 노예제 사회였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를 공부할 때 단순히 그들의 찬란한 문화와 문명만을 기억할 것이 아니라, 그 찬란한 문화와 문명 이면에는 수많은 노예들의 고통스럽고 비참한 희생이 존재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그렇다면,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교육적으로 어떤 특징을 갖고 있었을까요?먼저, 스파르타의 교육부터 살펴봅시다.스파르타는 사회는 극소수의 귀족과 그에 30배에 달하는 평민과 노예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노예들의 잦은 반란이 있었겠죠. 더욱이 험준한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농토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즉, 스파르타는 지배자로서 자신들의 수십 배에 달하는 피지배자들을 억누르고, 외적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고 농토 확보를 위한 전쟁을 끊임없이 수행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국가체제는 어떤 형태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강력한 군국주의 국가체제로서 일종의 군대국가였을 것입니다.교육은 현실 사회 속에서, 그 사회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존재한다. 따라서 그리스의 교육은 그 사회의 구조적인 특징으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스파르타의 교육은 강력한 군 되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특징은 그리스 말기에 나타나는 특징과 거의 다를 바가 없습니다.이상에서, 서양 고대사회의 교육적 특징을 검토해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서양 고대 사회는 기본적으로 노예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육은 오직 지배계급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따라서 교육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은 지배하고 다스리기 위한 이념적, 기술적 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일본의 교육사가인 우메네 사토루는 지배계급의 직분을 크게 '군사, 제사, 정치'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는 매우 통찰력있는 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군ㆍ제ㆍ정 세 가지는 결국 노예제사회에서 그들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한 기초적인 임무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배계급의 교육도 이 세 가지를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교양 있고, 자유로우며, 문화적이었던 아테네의 교육도 넓게 보면 이 세 가지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미리 생각해 보기1. 중세는 어떤 배경에서 출현하게 되었나?2. 중세의 사회ㆍ경제적 특징은?중세사회의 교육 1- 서양 중세1. 서양 중세의 성립 배경과 사회경제적 및 사상적 특징첫째로, "서양 중세사회가 어떠한 배경에서 성립되었으며, 그 사회경제적ㆍ사상적 특징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검토해 봅시다. 중세시대란 일반적으로 신 중심, 내세 중심의 기독교적 가치가 절대적으로 지배했던 시기로서,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5세기 중엽부터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15세기 중엽까지 약 천년간의 시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경제사관을 취하는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봉건사회라고 일컫기도 하는데, 이는 소수의 영주와 다수의 농노가 토지를 매개로 맺은 생산관계를 중시하여 사용하는 개념입니다.중세 봉건사회가 성립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시간에 간단히 언급한 바 있는 로마 후기의 사회상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제국을 건설하기까지 로마인들은 실제적이고 실용적이었으며, 강한 도덕심과 준법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제가 성립된 배경을 정치ㆍ경제적인 측면과 종교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중세사회의 정치ㆍ경제적인 특징으로 봉건제를, 사상ㆍ문화적인 특징으로 기독교 이념을 들었습니다. 중세사회의 교육 또한 정치ㆍ경제적인 측면과 종교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전자의 틀에 의해 세속교육을 그리고 후자의 틀에 의해 종교교육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세속교육은 다음 차례로 미루고, 여기에서는 종교교육기관을 먼저 다루겠습니다.기독교의 입장에서 중세를 한 마디로 요약하여 말하면 '선교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선교의 주요 대상은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기층 민중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정치ㆍ경제ㆍ문화ㆍ교육 등 제반 영역에서 매우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해방과 평등과 박애라는 기독교 이념을 쉽고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비기독교도들을 기독교도로 개종시키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학습과 세례라는 의식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의식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들 중의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도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준거가 바로 그 사람이 학습과 세례를 받았는가의 여부에 있을 정도입니다. 이는 마치 대부분의 원시부족에서 한 사회집단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반드시 성년식이라는 의식을 거쳐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학습과 세례라는 종교의식을 거론하는 이유는 그것이 중세 최초의 기독교적 서민교육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교도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기 위해서는 학습과 세례라는 의식을 반드시 거쳐야 하고, 학습과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보다 효율적인 선교사업을 위해 이교도들에게 기독교 교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전수해 주는 활동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을 것입니다.중세 초기(더 정확하게 말하여 로마 제정시대 말기, 약 2세기경)에 이러한 필요에 의해 생긴 것이 바로 '문답학교'인데, 기독교가 기 위한 사적 교육을 일컬어 기사교육이라 합니다. 이 기사들은 보통 방위 및 농노ㆍ노예 관리를 담당하는 중상류계급을 이루었으며, 따라서 중상류계급에 요구되는 용기와, 충성심, 관용, 예의범절, 정의, 공익 등의 덕목을 주로 수학하였습니다. 12세기경에 절정에 달한 이 기사교육의 단계는 대략 3단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1단계는 주로 가정에서 이루어진 교육으로서, 순종과 덕, 쾌활한 성격, 바른 자세, 경건한 신앙심 등을 모친으로부터 배웠습니다. 2단계에서는 궁전이나 영주의 저택에 들어가 귀족사회의 생활을 직접 배웠으며, 3단계에서는 영주나 선배 기사들을 보필하며 실전기능을 습득하는 등 본격적인 기사수련을 받았습니다.다음으로 중세시대에 나타난 특징 중의 하나는 일반 서민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교육을 받기 시작하였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서 역할을 했던 기독교교육이나 기사교육이 아닌 시민교육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교육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시민교육이 발생하게 된 사회적 배경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12-13세기의 유럽은 물밑에서 중요한 사회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사상ㆍ문화적인 측면을 먼저 살펴보면, 그 때까지 기독교문화에만 매몰되어 있던 유럽인들은 십자군원정으로 인해 사라센문화 등과 같은 다양한 사상과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교황의 권위와 신에 대한 경외심이 약화됨과 아울러 이민족의 사상과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서서히 해소되어 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가 '전부'라고 여기던 유럽인들에게 기독교 외에 새로운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는, 다시 말하면 새로운 세계관을 갖도록 해 주는 계기로 작용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정치ㆍ경제적인 면에서는 기존의 계급질서가 와해되는 한편 새로운 계급이 출현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점은 중세 봉건사회를 뿌리로부터 흔들어 놓고 장차 새로운 근세 시민사회를 도래하게 만든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윤리학 등을 주로 수학한 문과의 경우 그들이 기독교의 이론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학문적 결과가 구체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법학과 의학은 당시 사회의 현실적 필요를 반영한 것입니다. 현대의 대학에서 이들 분과가 가장 핵심적인 분야로 자리잡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전통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입니다.또한 교육방법은 아직 인쇄술이 폭넓게 발달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주로 강의와 청강 및 필기 그리고 토론 등에 의존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대학이 소유하고 있던 특권에는 병역면제권, 면세권, 대학 내에서의 재판 및 처벌권(치외법권), 학위수여권 등이 있는데, 이러한 특권은 사실 오늘날에도 부분적으로나마 계속 유지되어 오고 있습니다.마지막으로 대학이 사회에 미친 영향을 세 가지만 지적해 보면, 첫째로 자유로운 학문 탐구를 통해 훗날 종교개혁과 문예부흥운동을 촉발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입니다. 둘째로는 서양의 고전문화를 계승함과 아울러 동방의 문화를 서양에 소개해 주는 가교적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는 점이며, 마지막으로 정치ㆍ사회ㆍ종교적 문제에 대한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태동시키는 데 큰 몫을 차지했다는 점입니다. 대학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대부분의 교육사 문헌들이 대학의 성립 배경과 특징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므로, 더 상세한 부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5. 중세사회의 몰락 원인과 교육의 영향이제 마지막으로 "중세사회가 쇠퇴한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교육은 중세의 쇠퇴와 근대사회의 성립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중세 사회의 쇠퇴 요인과 관련하여 앞에서 이미 부분적으로 또는 간헐적으로 언급했으므로, 여기에서는 간단하게 종합하여 말씀드립니다. 중세 사회가 쇠퇴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보다도 경제 및 계급구조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상업과 무역의 발달이 기존의 계급질서와 경제적 기반을
Ⅵ. 고교 등급화고교 등급화란 고등학교의 학력차이를 고려해 대학에서 고등하교 자체를 평가해 입학여부를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기준으로는 4~5년 동안의 입학생 수, 입학 이후 학업성취능력등을 이용한다. 이는 학생부(내신평가) 방식으로는 학교간의 차이에 따른 우수 신입생 선발이 곤란함을 배경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즉, 각 고등학교별로 성적을 주는 방법이 다르고, 서울의 우수 고등학교와 지방의 일반 고등학교 사이에는 상당한 점수 차가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아직 시행되고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그 찬/반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현재 서울대학교에서는 고교종합평가제를 도입할 방침을 보이고 있고, 연세대와 고려대는 2000년도 입시전형에서 수시모집에 한하여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교육부는 대학이 고교별 특성을 반영해 여러 전형요소를 활용하는 것은 대학의 자율에 관한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고교 등급화 제도를 찬성하는 입장의 이유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 실행되고 있는 평준화 정책은 학력의 저하를 가져온다. 따라서 인재양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둘째, 학습자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비효율적인 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셋째, 학습의 균등이라는 입장에서 보아 부진아들에게 적절한 수업을 행함으로 수업에 배제되어 오던 학생들에게 의욕을 주고 즉, 모든 학습자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학교의 명예를 위해 자교의 학생들의 내신을 높이기 위한 방책으로 학생부에 부정을 저지르는 고교들이 있기 때문이다. 찬성 측은 이밖에도 여러 이유들 들어 고교등급화 제도의 도입여부에 찬성을 하고 있다.그러나 나는 고교 등급화란 제도실행에 있어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고교 평준화 정책으로 인한 고교의 선택권이 없이 고교에 강제로 배정되고, 공립학교 교원들도 순환 보직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의 질을 이미 졸업한 선배들의 학업능력과 성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기전여고를 2000년에 졸업한 학생이다. 우리학년의 성적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전주의 고등학교 중에서 하위의 성적을 가졌었다. 모의고사를 보면 우리와 성적이 비슷한 x심여고나 근x여고와의 순위를 비교하곤 했다. 여기서 순위의 비교란 누가 꼴등을 하였나하는 것이 이었다. 나의 여동생은 지금 기전여고 3학년인 수험생이다. 내동생 학년 학생들은 모의고사를 보면 전주지역 고등학교에서 1~2위를 다투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인데 고교 등급화제도를 반영해서 우리 학년의 성적 및 학업능력을 내동생의 학년학생들의 성적을 낸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 제도는 학벌을 조장함으로써 치열한 입시경쟁을 야기할 수 있다. 대학의 입시전쟁에 모자라 고등학교까지 입시에 시달리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또한 특목고의 학생들의 고교 등급화 찬성 이유를 들어 보면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고교 등급화를 외치면 외칠수록, 특목고에 간 것이 진정으로 자신의 적성을 위해 간 것이 아니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발판이였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 간통죄의 존폐 ]학 번 : 200209063이 름 : 정희경학 과 : 유아교육과날 짜 : 2003년 3월27일교 수 님 : 박강익먼저 간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간통의 법률적인 뜻을 먼저 살펴보면 형법 제241조 제1항에는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그와 상간한 자도 같다라고 규정되어 있다.간통이라 함은 유부남이 자기 처가 아닌 다른 여자와 또는 유부녀가 자기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서로 합의하에 정교관계를 맺는 죄 및 그 유부남, 유부녀와 상간하는 죄를 말한다.사회에서 흔히 외도라든지 오입이라든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지칭하는 것들이 법률의 눈으로 바라볼 때에는 바로 간통죄가 되는 것이다. 배우자라 함은 혼인신고가 되어 있는 법률상 배우자만을 말한다.간통죄에 있어서 배우자 있는 자]라 함은 법률상 혼인신고가 되어 있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미혼 남녀간의 합의정사는 간통죄에 해당되지 않으며,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실혼관계에 있는 부부도 그중 일방의 외도를 간통으로 고소할 수 없다.간통은 상간자도 동시에 처벌한다.간통은 배우자 있는 자와 상간한 자도 똑같이 처벌받는다. 유부남이나 유부녀와 정을 통한 상대방도 간통죄로 똑같이 처벌받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경우 상간자는 상대방이 배우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성관계를 가졌어야만 한다.따라서 만일 유부남이 미혼의 아가씨와 연애를 하면서 자기가 총각이라고 속였고 여자 또한 남자가 유부남인 줄을 전혀 모르고 육체관계를 가졌다면, 여자는 남의 남자와 간통을 한다는 고의가 없었기 때문에 간통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법에는 정의하고 있다.한편 간통죄 존치에 관한 의문으로 여러 가지가 제기되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되는 문제는 국가의 애정문제 개입은 옳은가? 라는 것이다.이 문제에서는 찬반 양론이 많이 엇갈리겠지만 내 생각에는 옳다고 결론을 내리고 싶다. 지금도 여러 문명들의 발달과 문화교류로 성이 많이 개방되어 있는 상황이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사회가 문란해지고 있는 걸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그런데 거기에 이런 법적인 제제마저도 없다면 사회가 너무 혼란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두 번째 문제는 가정 파탄 방지에 효과 있는가? 즉, 간통죄가 무서워 외도를 안 하는가의 문제이다.물론 할 사람들은 다 한다지만 그래도 미연의 방지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우리 고등학교에서 학칙이 있어서 머리 단속, 명찰이나 타이 단속을 하는 것이 더 많은 학생들에게 효과가 있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우리 사람은 다 비숫하다고 생각한다. 법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사회를 다스리는데 더 이롭듯이 이 법 또한 마찬가지 일 것 같다.과연 여성 보호차원에서 효과 있는가 다시 말하자면 간통죄 처벌은남녀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하고 있는가라는 것이다.간통죄의 존폐론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세계 각국의 경향은 남녀간의 문제를 개인 사이의 문제로 보아 국가형벌권이 개입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 폐지하고 있는 경향이 짙다.우리나라도 이 문제에 대하여 여러 차례 입법시도를 하였으나 여성단체의 반대로 무산되었던 적이 있었다.간통죄의 찬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선량한 성도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라는 주장 그리고 이혼을 할 때 약자의 입장에 서 있는 여성들이 위자료를 받아낼 수 있는 방편으로 하나의 고소권 행사에 이용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여성보호적 측면에서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며 성도덕에 대한 국민적 전통이 간통죄를 불벌시 할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한다.반면, 폐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적 성윤리보호나 부도덕성을 이유로 형벌권을 발동하는 것은 형법의 보충성에 반한다는 주장과 함께부부의 성실의무에 대한 배반은 이혼이나 민사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며, 이를 처벌할 만큼 형법적 불법이 된다고 할 수 없다.또, 피해자인 배우자가 과도한 위자료를 받아내거나 복수심의 만족을 위해서 형벌권을 합법적인 공갈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형사정책적으로도 범죄억지나 재사회화의 효과도 거의 없다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간통에 대한 처벌의 시작은 여자들의 외도를 단속하기 위하여 불문율 관습으로 행해지던 것을 명문화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전환되면서, 생산물의 잉여에 대한 사유재산이 생겨나면서 남자들은 자신의 종족을 지켜야할 필요성과 자신의 재산은 자신의 아들에게만 물려주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부녀자들의 외도는 용납되어질 수 없다고 보아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황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형법도 1953년 형법개정이 있기전에는 간통한 부녀자만 처벌을 하도록 한 남녀불평등조항이었으나, 개정형법에 의해 남녀모두를 처벌하도록 하는 쌍벌주의로 바뀌었다.종래부터 간통죄처벌규정에 대하여는 위헌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그에따른 개폐논란도 계속되었다.1954년 헌법재판소는 "간통죄의 처벌법조인 구형법 제183조 제1항은 남녀평등을 규정한 구 헌법(제정헌법) 제8조에 저촉된다고 주장하나 남녀평등이란 국민의 기본권리를 말하는 것이고 성별 기타 신분에 따라 경우와 처지를 달리할 것은 물론인바 혈통을 존중히 여기는 의미에서 된 간통죄으 처벌법조인 구 형법 제183조 제1항은 헌법위반이 아니다.(1954.4.3.선고 4286형상169판결)"라고 판시하고 있다.또한 1990년 위헌시비에서는 "선량한 성도덕과 일부일처주의, 혼인제도의 유지 및 가족생활의 보장을 위하여서나 부부간의 성적성실의무의 수호를 위항, 그리고 간통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사회적 해악의 사전예방을 위하여 간통행위를 규제하고 처벌하는 것은 성적자기결정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거나 헌법 제36조의 제1항의 규정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헌재 1990.9.10 89헌마82결정)"라고 입장을 확립해 놓고 있다.이 결정에서도 소수 의견 중에는 징역형이외 달리 선택의 여지를 없게한 형벌제도에 문제가 있다거나 간통죄를 처벌함은 국가의 형벌권이 성적자기결정권이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가 라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이후의 헌법재판소의 입장은 바뀌지 않고 있다.아무리 국가가 형벌권을 내세워 미풍양속을 해치는 범죄로서 간통죄를 처벌한다고 하더라도 간통죄가 미연에 방지되거나 이혼율이 감소되지는 않을 것 같다.간통죄의 찬성여부보다는 혼인생활이나 이혼에 있어서의 재산분할제도, 양육권, 그리고 여성들의 취업이나 이혼한 여성들에 대한 인식과 처우개선 등 여러 가지 불평등 조항들의 개폐등 법률적인 부분에서 여성들의 지우향상을 꾀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보는게 간통죄의 폐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일 것이다.재판부는 간통죄 폐지가 세계적인 추세이고 성의식 변화에 따라 규범력이 많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우리 사회 고유의 정절관념, 도덕기준에 비춰볼 때 아직도 국민의 법의식은 간통죄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판단했다. 이 점에 기초할 때 간통죄 규율은 선량한 성도덕과 일부일처제 유지, 부부간 성적 성실의무 수호, 간통으로 야기되는 가족문제 등 사회적 해악의 예방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간통죄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한 혼인과 가족생활보장에 부합하는 법률이며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일 뿐이라고 밝혔다. 다만 간통죄 폐지의 세계적 추세와 사생활에 대한 법개입 논란, 간통죄 악용사례, 국가형벌로서의 기능약화 등을 고려할 때 입법부는 간통죄 폐지 여부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간통죄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가정과 혼인제도를 보호하기 위한 형법의 구체화 규범이다. 이 제도적 가치를 침해하는 간통행위의 구체적 피해자는 상간자들의 배우자나 가족만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공동체 구성원 대부분이라고 해도 좋다. 따라서 간통죄를 단지 사생활영역이나 개인의 애정문제 또는 성적 자기결정권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가정과 혼인 및 건전한 성풍속을 포괄하는 간통죄의 사회질서로서의 의미를 제대로 짚지 못한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굴원(屈原)의 전설굴원은 전국 시대 초나라 대부라는 관직에 있을 때 국왕에게 6개 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의 진공을 막자는 제안을 했다가 국왕에게 거절 당하고 추방 당했다. 고향에 돌아온 굴원은 하시도 조국의 전망과 운명을 걱정하지 않을 때가 없었고 그의 몸은 갈수록 수척해졌다. 결국 초나라의 수도가 진에 의해 함락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굴원은 비통한 나머지 단숨에 장시를 써서 남기곤 멱라강에 뛰어들어 자살했다.굴원이 자살한 날이 바로 기원전 278년 음력 5월 초닷새 날이었다. 당시 백성들은 굴원의 애국 정신을 매우 숭배했으며 그의 불행에 대해 너무도 동정한 나머지 앞을 다투어 그의 시신을 찾으려고 배를 몰고 나섰다. 그래서 지금도 단오절이 되면 뱃놀이 시합을 하는 풍습이 있다. 뱃놀이 경주를 龍船경주라고도 한다. 이 행사는 당시 사람들이 굴원을 구하고자 한 절박한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지금도 굴원의 고향에 사는 사람들은 장강 가에 모여 용선경주를 하는데 이는 아주 성대한 행사로 자리 잡았다.중국 사람들은 단오절에 종자( 子)를 먹는다. 종자는 대나무 잎에 찹쌀을 넣어 꼭 싸서 쪄서 만드는데, 당시 사람들이 굴원의 시신을 강에서 찾지 못해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을 해칠까 염려되어 종자를 강에 던져 물고기들이 종자에 몰려 굴원의 시신을 해치지 말도록 배려한데서 비롯되었다. 요즘 대만에서는 편의점에서도 갖가지 소를 넣은 종자를 팔고 있다.⊙ 항아(嫦娥)의 전설항아의 남편은 백발백중의 명사수였다. 어느날 하늘에는 열 개의 태양이 떠올랐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대지를 태우자 온누리에 기근에 휩싸였고 모든 생물은 고사 직전에 빠졌다. 이때 항아의 남편이 화살을 당겨 태양 9개를 떨어뜨리자 세상은 다시 평온을 되찾게 되었다. 이를 어여삐 여긴 신선은 불로장생약을 하사하였다.그러나 기고만장한 항아의 남편은 날로 포악해졌고 견딜 수 없었던 항아는 남편의 불로장생약을 훔쳐먹고는 양어깨에 날개가 돋아 푸른 하늘 은하수 저켠에 두둥실 떠오른 아름다운 달로 날아가 버렸다. 허나 정작 달에 도착해보니 사람이란 자기 혼자뿐 계수나무 아래 토끼 한 마리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항아는 광한궁(廣寒宮)을 짓고 달에 군림한 월신(月神)이 되었지만 남편을 속인 죄로 하늘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보기에도 끔찍한 두꺼비[蟾(섬)]로 변해 버렸다. 우리가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동요 가사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니 선녀가 광한궁에 살고 있다던 어른들의 이야기는 모두 중국의 전설에서 유래된 것이다.
중국의 명절★원단(元旦)양력 1월 1일로 공식적인 쉬는 날이다. 이 때에는 신문마다 원단을 기념하는 사설을 싣고, 지난 해를 회고하며 신년을 전망한다.★춘절(春節)음력 1월 1일로 舊曆年이라고 한다. 이 날은 중국 각 민족들이 가장 중시하고 즐거워하는 전통 명절이다. 3일간 휴일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농촌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까지 쉬면서 즐긴다. 춘절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하며 사람들은 천지 귀신솨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오곡이 풍성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기를 기원한다.매년 음력 12월이 되면 춘절의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한다. 음력 섣달 초파일에는 라빠쪼우 라는 팥죽을 먹는다. 이는 오곡이 풍성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쌀, 좁쌀, 찹쌀, 수수, 팥, 대추, 호두, 땅콩 등을 삶아서 만든다. 음력 섣달 스무 사흗날은 조왕신에게 제사 지내는 날로서 부엌에 모신 신상 앞에 맥아당을 바친다. 그러면 조왕신은 엿을 받아먹고 집주인을 위해 덕담을 해주고 행운을 내려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관습이 사라지고 없다. 요즘까지 전해지는 전통적인 행사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있다.1)대청소 - 집 안팍을 깨끗이 청소하고 장식한다.2)설빔준비 춘절을 보내는 데 필요한 물건을 마련하는 것으로 옷, 가구, 주방도구, 폭죽, 신상, 대련, 과자, 음식, 연화 등이 있다.3)춘련-신춘과 관련되 대련구를 써서 집안에 붙이는 풍습으로 春條(축복을 담은 글을 문 위에 붙이는 것), 斗方(상자난 궤짝에 붙이는 것), 福字(福 자를 써서 거꾸로 붙이는 것 등이 있다.4)전지-홍, 녹, 황 등의 색종이를 오려 여러 상스러운 모양을 만들어 창이나 문짝에 붙이는 풍습니다.5)연화 붙이기-귀신을 쫓는 귀신의 그림을 집안에 붙이는 것으로 이는 생활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 것이다.6)守歲와 年夜飯-수세란 음력 12월 31일 제야의 밤에 밤새도록 전 가족이 모여 먹고 노는 것을 말한다. 저녁 밥을 먹은 후 담소나 놀이 등을 즐리겨 12시 제야의 종이 물리면 일제히 폭죽을 뱃놀이 시합을 하는 풍습이 있다. 뱃놀이 경주를 龍船경주라고도 한다. 이 행사는 당시 사람들이 굴원을 구하고자 한 절박한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지금도 굴원의 고향에 사는 사람들은 장강 가에 모여 용선경주를 하는데 이는 아주 성대한 행사로 자리 잡았다.중국 사람들은 단오절에 쫑즈를 먹는다. 쫑즈는 대나무 잎에 찹쌀을 넣어 꼭 싸서 쪄서 만드는데, 당시 사람들이 굴원의 시신을 강에서 찾지 못해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을 해칠까 염려되어 쫑즈를 강에 던져 물고기들이 쫑즈에 몰려 굴원의 시신을 해치지 말도록 배려한데서 비롯되었다. 요즘 대만에서는 편의점에서도 갖가지 소를 넣은 쫑즈를 팔고 있다.★중추절(仲秋節)우리나라에서는 추석이라고 하는 이 중추절은 중국에서도 큰 명절 중의 하나이다. 음력 8월 15일이 바로 가을 절기의 한 가운데 이기 때문에 중추절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이 날 달구경을 하고 月餠을 먹는데 중추절을 쇠는 풍습은 2천여 년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대 황제는 풍작을 빌기 위해 늘 밝은 8월의 달밤에 연주하면서 달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이것이 점차 달 구경 하는 풍습으로 변해 갔다.중국인들이 중추절에 먹는 위에빙은 둥근 달 모양에 소를 넣은 과자로 추석선물로 많이 한다. 최근 대만에서는 이 위에빙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지고 고급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 잘못하면 다이어트에 치명적일만큼 칼로리가 높은 것들도 있다.중국인들은 중추절에 전가족이 모여 앉아 위에빙을 먹으면서 아름답고 큰 달을 구경하는 풍습이 있다. 중국 사람들은 둥근 달은 특히 좋아 하는데 이는 달이 가족간의 상봉과 행복한 생활을 상징하기 때문이다.중국의 명절음식설날은 중국에서도 최대의 명절이다. 양력 1월 1일은 하루 휴일이라는 의미 정도밖에 없고, 음력 설을 크게 쇠는데, 보통 2주 정도의 기나긴 설 연휴를 갖는다. 우리가 설날 아침 떡국을 먹듯이, 중국에서는 설 음식으로 물만두와 중국식 떡을 먹는다. 이 두가지를 다 먹는다는 것이 아니라, 북쪽 지방 사람들은 설날 물만두를 먹고, 일년 내내 바빴던 농민들은 가을이면 풍성하게 곡식을 수확한다. 그리고는 겨울이 끝나고 봄을 맞이하는 농한기 때에 바로 이 명절을 맞으면서 지난해의 수확을 함께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12월 하순이 되면 중국 사람들은 집집마다 설빔을 사고 음식을 장만한다. 또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는 한편 새해의 복을 비는 글씨나 그림을 집안 곳곳에 붙이고 예쁘게 꾸미며 설을 셀 준비를 한다. 설이 되면 사람들은 일가 친지들끼리 모여서 섣달 그믐 밤새기·차례 지내고 세배하기·만두 빚어 먹기·폭죽 터뜨리기 등 갖가지 행사와 놀이를 갖는다. 중국 전통 풍속에는 설 전날 외지에 나가 일하던 사람들도 모두 고향에 돌아와 가족들과 설을 맞는다. 설 전날 밤은 "除夕"이라고도 하는데, 이 날 밤 가족들이 모이면 텔레비전을 보거나 놀이를 하면서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지새는데 이를 "守歲"라고 한다. 이 날은 하루 밤에 두 해를 동시에 지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풍속으로 지나는 해를 돌이켜 보고 또 맞이하는 해에 대한 희망을 비는 것이다.음력 정월 초하루에 중국인들은 또한 친척 친지를 방문하며 세배를 올리는데 이는 새해에도 만사가 여의 하라는 축복의 의미이다.폭죽을 터트리는 것도 역사가 오랜 풍습이다. 예전 사람들은 대나무 마디를 불태워 터트렸는데 그 터지는 요란한 폭음에 놀라 모든 잡귀들이 물러나라는 소망을 담았던 것이다. 나중에는 이 폭죽이 종이에 화약을 싼 鞭 로 바뀌게 된다. 중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爆竹聲中舊歲除"는 바로 춘절에 폭죽을 터트리는 이런 풍속을 두고 하는 말이다.군중 놀이 역시 춘절 기간 동안의 중요 행사이다.秧歌(모내기노래)· 高 (널띠기)·舞龍燈(용춤)· 獅子(사자놀이)· 旱船(뱃놀이) 등의 즐거운 놀이들은 명절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 준다. 일부 지방에서는 이런 춘절 행사가 元宵節까지 이어진다. 원소절은 음력 정월 보름을 말한다. 이 날 중국 사람들은 등불 구경과 원소를 먹는 풍습이 있다. "정월 십 오일은 꽃등 구경"이라는 말이 있을 할 정도로 등불이 이 있다. 중추절은 이미 2천 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명절로 고대에는 황제들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이 날 밤 달에 제사를 지내던 것이 점차 민간 풍속으로 바뀌었다. 중국 사람들은 이 날 전 가족이 모여서 달 구경을 하며 월병을 먹는다. 중국 사람들은 특히 둥근 달을 좋아하는데 둥근 달은 바로 가족간의 단란함과 행복함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만약 가족과 헤어져 있다면 이 날 밤만이라도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면서 서로의 그리움을 달랬던 것이다. 중추절에 월병을 먹는 풍습은 명나라와 청나라 때 전국적으로 보편화되었다. 그 뒤 월병을 만드는 기술도 정교하게 발달해서 요즘의 월병은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보기도 좋은데 그 중 광동 지방의 월병은 맛이 좋기로 전국에서 이름이 나 있다.음력 9월9일은 중양절이다. 중국 전통문화에서 9라는 숫자는 陽數이기 때문에 중양절이란 양수가 두 번 겹쳤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고대 중양절에는 가족 친지들과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고 시를 지으며 활쏘기와 국화감상, 꽃 떡을 먹는 등의 풍속이 있었다. 이 날은 가을의 정취를 가장 만끽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에 산에 오르는 등 들놀이를 하면서 아름다운 가을 경치 속에서 대자연의 청신함을 맛보며 시의를 북돋우었던 것이다.중국은 다민족 국가로서 漢族이외에도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다. 이 소수민족들도 모두 고유한 민속 명절이 있는데, 예를 들면 族의 "潑水節" 등이다. 이 날 사람들은 서로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행복을 기원한다. 彛族의 "火把節"에는 청년 남녀들이 산 위에 올라 民歌를 부르며 사랑할 사람을 서로 고르는 풍속이 있다. 몽고족은 "那達慕"라는 큰 명절을 통해서 민족 고유의 놀이 행사와 상품 교류 등의 활동을 한다.중국의 명절신년(新年) - 양력1월1일 원단(元旦)중국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설맞이를 위한 대청소를 한다. 이는 옛날 역병을 몰아내고 불길한 징조들을 몰아내기 위한 종교의식에서 생겨났다. 이날 사람들은 벽에 걸려있던 낡은 세화(설날 실내에 붙이는 그림)와 창문에. 단오절은 춘추전국 시기, 강남에서 시작되었다. 민간에서 알려진 단오절의 유래는 이러하다. 초(楚)나라의 애국시인 굴원(屈原)이 강에 투신해 죽자, 그의 죽음을 슬퍼한 백성들이 그 강에 음식들을 던져, 물고기가 굴원의 시신을 해치지 못하도록 했다. 이때부터 민간에서는 해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행사가 이어져 내려왔는데, 그 대표적인 행사가 바로 "용선(龍船)경기"다.단오절 먹는 음식으로는 종자( 子)가 있다. 종자란 찹쌀에 대추 따위를 넣어 대나무 잎이나 갈대 잎으로 싼 다음 쪄 먹은 음식이다. 집에서 만드는 종자는 대추와 설탕으로 속을 넣은 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빵집이나 거리의 리어카에서는 팥, 대추, 햄, 말린 고기 등을 넣어 만든 것들로 그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종자는 보통, 그 계절에 나오는 신선한 과일과 함께 먹는데, 이때 함께 마시는 술이 있다. 이름하여 웅황주(雄黃酒)! 웅황주란 웅황가루와 창포 뿌리를 잘게 썰어 넣은 술로, 음용하는 외에 주로 재액을 막기 위해서나 방독용으로도 쓰인다. 이 술을 마실 때 재미있는 습관이 있는데, 바로 이러하다. 술을 다 마시고 나면, 손가락으로 컵 밑에 남은 웅황을 찍어 아이들의 가슴에 "王"자를 크게 그려 넣는다. 그리고 다시 웅황을 찍어 아이들의 눈, 귀, 코 주변에 발라주는데, 이는 웅황의 약 성분을 이용해 온갖 해로운 것들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다.칠석 - 음력7월7일견우와 직녀의 전설에서 기인한 명절로 '걸교(乞巧)'풍습이 행해진다. '걸교'란 직녀가 견우를 만나 기분이 좋을 때 길쌈과 수 놓는 솜씨를 달라고 기원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체적으로 '솜씨 점치기', '손재주 겨루기', '과자 만들기' 등이 있다.중추절(中秋節) 음력8월15일중국에서는 음력 8월 15일을 "중추절"(中秋節) 혹은 "8월절"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의 추석이다. 설과 단오와 함께 중국의 3대 명절로 꼽힌다. 그럼 중국은 추석을 왜 중추절이라 이름지었을까? 중추절이란 명칭은 옛날 역법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다. 즉, 1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