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동지는 입춘으로 시작하는 24절기 가운데 22번째 해당하는 절기로 태양의 황경이 270도에 달하는 때를 말한다. 동지는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하는데, 이는 동지가 드는 시기에 따라 달리 부르는 말이다. 동지란 글자 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태양이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밤의 길이가 일 년 중 가장 긴 날이다. 동지는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 음이 극에 이르지만, 이 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 하여 양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이 날이 지나면 하루 중 낮의 길이가 1분씩 길어지는데 옛 사람들은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날로 삼기도 했었다. 그래서 옛 말에 '동지를 지나야 한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살 더 먹는다' 라는 말이 전하기도 한다.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다. 이 때 찰떡을 새알 같이 빚어 놓고 쑤었다. 이 떡을 새알심이라고 하는데 동짓날 새알심을 자기 나이만큼 먹어야 몸이 건강해진다는 말이 전해 온다. 또한 동짓날에 팥죽을 먹으면 감기를 앓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동지 팥죽은 먼저 사당에 올리고 여러 그릇에 나누어 퍼서 장독, 곳간, 헛간, 방 등에 놓아둔다. 그리고 대문과 벽, 곳간 등에 뿌리기도 했다.동지는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로 음의 기운이 가장 강한 날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날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먹음으로 인해 팥죽의 붉은 색이 잡귀를 몰아내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염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있는 집에서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집에서 떠도는 영혼을 내쫑기 때문에)동지 팥죽은 잔병을 없애고 건강해지며 액을 면할 수 있다고 전해져 이웃간에 서로 나누어 먹었다. 이는 여름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이라 하였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음의 기운이 충만한 때에 사뭇 암울하고 우울할 수 있는 분위기를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는 등의 찬치 분위기를 냄으로써 지혜롭게 극복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힘든 일이 닥치면 포기한다거나 술로써 잊으려 하는 것과는 달리 이웃끼리 하나가되어 즐겁게 극복한다는 점에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움을 우리 역시 본받아야 할 것이다.{동지 때는 '동지한파'라는 강추위가 오는데 이 추위가 닥치기 전 보리밟기를 한다. 이 역시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끼리, 가족끼리 웃음으로 대화로 추위를 이겨내며 했었다. 겨울 방학을 앞두고 학생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보리밟기를 하기도 했다.동짓날 한겨울 기나긴 밤에는 새해를 대비해 복조리와 복주머니를 만들었다.복조리는 새해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복을 사라며 "복 조리 사려"를 외치며 다녔다. 복조리를 부엌 부뚜막이나 벽면에 걸어두고 한해의 복이 그득 들어오기를 기원했다. 복을 받아도 혼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은 우리네 조상들의 따뜻함이 이 복조리 팔기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조상들의 겨울은 결코 춥지만은 않았을 것이다.산업사회라는 험한 상황이 아름다운 겨울의 낭만을 사라지게 했다.모진 바깥 세상에 시달린 손을 포근하게 묻을 곳이며 얼어붙은 볼을 감싸 녹여주며 거칠어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정(情)의 원천이던 겨울나기. 쇠죽을 끓여 지글지글 끓던 방에서 밤과 고구마에 동치미를 들이키며 가족끼리, 이웃끼리 도란도란 얘기 나누던 따뜻함이 새삼 그리운 시절이다.윤달달은 29.5일에 한번씩 모양이 바뀐다. 그러므로 음력에서는 한달을 29일(작은달)이나 30일(큰달)로 정하여 쓴다. 그러나 음력은 달의 변화현상과는 관계있지만 태양의 운행과는 관계없는 까닭에 계절과 일치되지 않으며, 33.6년만에 1년의 차가 생기게 된다.윤년은 윤달이나 윤일이 든 해를 말하는데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데 356일 5시간 48분 46초가 걸리므로 태양력에서는 4년마다 하루 늘려 2월을 29일로 한다.12개의 태음월로 만들어진 순태음력의 1년 길이는 약354일로 1 태양년의 길이 약365일보다 11일 정도가 짧다. 따라서 3년이 지나면 음력 날짜는 태양의 움직임과 약 33일, 1달 차이가 나게 된다. 이런 차이가 쌓이다 보면 농사일을 위해 태양의 운행에 맞춰 만든 24절기와 맞지 않는다. 날짜와 계절의 차이가 많아진다. 음력에서는 이 차이를 없애주고, 날짜와 계절을 맞춰주기 위해 가끔 윤달을 도입하여 1년을 13달로 한다. 음력은 태양의 움직임과 3년에 약 1달의 차이가 나므로 윤달은 대체로 3년에 1번 들게 된다. 이를 치윤법이라 한다.(좀 더 정확하게는 19년에 7번의 윤달이 든다).음력에서 윤달을 도입하는 방법은 앞에 설명한 24절기의 12중기에 의한다. 24절기의 각 기 사이는 대체로 15일이므로 한 달에는 대체로 1번의 절기와 중기가 들게 된다. 음력에서 어떤 달의 이름은 그 달에 든 중기로 결정한다. 즉 어떤 달에 1월 중기 우수가 들면, 그 달은 1월이다. 마찬가지로 음력 11월에는 반드시 11월 중기 동지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절기만 한번 들고 중기가 들지 않는 달이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그 달의 이름을 결정할 수 없으므로, 그 달을 윤달로 삼고, 달 이름은 전 달의 이름을 따른다. 이와 같이 중기가 들지 않는 달, 무중월(無中月)을 윤달로 하는 법을 무중치윤법(無中置閏法)이라 한다. 간혹 1년에 2번의 무중월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에는 처음 달만 윤달로 택한다.윤달은 정상적인 달이 아닌 모든 일에 부정을 타거나 액이 끼지 않는 달로 인식되어왔다. 하늘과 땅의 신이 사람들에 대한 감시를 쉬는 기간으로 그때는 불경스러운 행동을 하더라도 신의 벌을 피할 수 있다고 널리 알려졌다.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안 난다. 빗자루를 거꾸로 심어도 탈이 안 난다. 는 속담 표현이 있을 정도로 윤달에는 꺼릴 일이나 피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또한 하루하루 손 있는 날을 정해놓았는데 손 있는 날이란 손해 손실을 본다는 날로써 악귀와 악신이 움직이는 때를 말한다. 1■2일은 동쪽에 손 있는 날이며 3■4일은 남쪽, 5■6일은 서쪽, 7■8일은 북쪽에 손 있는 날이라 하여 각 해당일에는 손 있는 방향으로는 걸음을 삼가 했다. 9■0일은 손 없는 날로 윤달에서와 같이 부정이나 액이 끼지 않는, 귀신없는 날로 여겨져서 이날 이사나 결혼식을 많이 행했다. 지금도 이사나 사업장을 개업알 때 손 없는 날을 택해서 하고 있다. 9■0일 뿐 아니라 음력 그믐도 손 없는 날이라 하여 많이 이용된다.예로부터 윤달은 썩은 달 혹은 거저 얻는 달이라고 하여 공달로 불려왔다. 윤달은 귀신없는 날로 액이나 화가 끼지 않는 날이기 때문에 이장을 하거나 수의를 하는 풍습이 전해 내려왔다.민간에서는 이 때를 이용하여 결혼, 건축, 이사 등 대소사를 치러내기에 바빴다. 어떤 일을 해도 재액이 없는 달이라는 믿음이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에도 노인들을 위한 수의를 준비하는 집이 많다.윤달은 손 없는 날이라 하여 부정이나 액이 없다고 믿어져 오기도 하였지만 금기시되는 행동들도 전해져 온다. 이는 아무리 손 없는 날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는 지켜야 한다는 의미에서이다. 이 날 전해지는 금기 사항으로는 초상이 났을 때 바느질을 하면 불길하다. 마루문전에 돌아앉아 키질을 하면 집안이 망한다. 등이 있는데 이러한 금기 사항들 역시 이웃과 함께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 조상들의 미덕을 엿볼 수 있다.요즘 들어 윤달에 결혼식이나 기타 집안의 행사를 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는 액이 없는 달인 윤달을 오히려 질병과 재앙이 있는 궂은 달로 여기고 천간과 지지가 배당이 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상식이 세간에 퍼져 있기 때문인 듯하다.윤달이라고 하더라도 간지는 배당이 되는 것이다. 윤달이 간지가 없기 때문에 하늘과 땅의 감시가 소홀하다는 생각은 수정되어야 한다.결국 윤년, 윤달에 조상의 묘지 일을 하거나 여러 가지 대소 경사를 하는 것은 윤달이 거저 얻어서 생긴 덤이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이용한다는 경제적 관점에서 비롯됨과 동시에 손 없는 날, 액 없는 날 집 안의 중대사를 처리 하는 것이 좋다고 여긴, 우리 조상들의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해법일 것이다.{식견문화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처한 환경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문화의 본질이다. 따라서 집단이나 사회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며 문화는 상대적이므로 다른 문화를 비난할 수 없다. 그러나 서구의 음식문화는 다른 음식문화를 혐오하는 경향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먹거리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먹거리를 비난한다는 것은 우매한 편견이다.우리나라의 개고기 식용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고유의 음식문화이다. 복날 개를 먹는 이유 역시 우리 조상들의 나름대로의 여름나기 비법인 셈이다. 여름 자체가 불(火)이다. 게다가 더위의 절정인 삼복은 경일로 화기가 왕성하면서도 쇠(金)에 해당한다. 따라서 복날은 불이 쇠를 녹이는 화극금이므로, 쇠를 보충하기 위해 개를 먹었던 것이다. 개에게 쇠의 기운이 있는 탓이다. 여기서 이냉치열이 아닌, 더울 때 더운 음식을 먹는 이열치열을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위를 근본적으로 이기는 현명한 처사인 셈이다.개고기 식용논쟁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일이다. 우리민족이 개고기를 먹어 온 역사는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되었다. 우리가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가축의 하나인 개를 먹는 데 대하여 다른 나라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런 일이고 다른 나라 사람이 비난한다고 하여 개고기를 못 먹게 하는 것은 주권을 팽개치는 사대적인 일이다. 즉, 외국사람이 김치냄새를 싫어한다고 하여 국민들에게 김치를 못 먹게 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세시 풍속예로부터 해마다 관례로서 행하여지는 전승적 행사. 집단적 공동적으로 집집마다 촌락마다 또는 민족적으로 관행 되는 것이 상례이다. 오늘날 행하여지고 있는 세시풍속은 예로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며, 또 옛 문헌에 보이는 것 중에는 이름만 남아 있고, 현재 행하지 않는 것도 많다. 한민족에 의하여 발생되고 전승되어 오는 고유한 것도 많지만 외국과의 교류에 의하여 전래된 것도 있고, 또 이 외래의 것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한 민족의 색채가 가미되어 있는 것도 많다. 이러한 세시풍속은 주로 농경문화와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세시풍속은 마을 사람들끼리 유대를 돈독하게 함으로써, 농사일을 서로 도우며 수확량을 증대한다.세시풍속은 일상생활에 있어 계절에 맞추어 관습적으로 되풀이하는 민속을 말한다. 설날, 상원, 단오, 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면 오랜 관습에 의해서 새 옷으로 단장하고 주찬을 장만하여 조상과 제신에게 제사하는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있다. 이러한 행사는 오랜 생활문화를 이루고 있으며 매년 반복되는 관습이어서 세시풍속이라 한다. 세시풍속이 생활에 정착된 시기는 일정한 것이 아니겠으나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었거나 필요에 의해서거나 또는 당위에 의해서 관습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이 같은 자연환경과 은 역사 속에서 생업을 같이 하고 동일한 언어를 쓰고 살아오는 동안 생활관습의 동질성을 낳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즉, 세시풍속은 생활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가 없고 계절적으로 반복되는 생활 그 자체가 세시풍속이다. 생활에 있어 한 번 또는 몇 번 채택되었다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고 사라진 것은 세시풍속이라고 할 수 없다. 세시풍속은 넓은 지역에 있어 향상문화현상으로 나타나거나 아니면 민족국민을 단위로 나타나는 생활 현상이다. 이러한 대단위는 그만큼 공감에 의해서 채택되고 토착화해서 전파되고 전승되어 왔음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한번 토착하면 생활양식이나 의식에 큰 변화가 없는 한은 오래 지속되기 마련이다. 넓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반복되는 생활관습일 때에 그 세시풍속은 확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세시풍속은 일반성을 띠면서도 이웃과 다를 수도 있다. 즉, 음편성을 지니면서도 개성을 드러내는 수가 있어 이런 경우에는 종교 또는 가문 이 관련되는 수가 있다. 유불선은 일찌기 한토에 들어와 토착해서 우리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영항을 받고 생활화하고 있다. 게다가 근대에 들어와서 기독교가 들어와 외래문화를 도입하여 재래의 관습에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서로 이웃에 살면서 일반성이 아닌 특수한 의식 속에 살게 되고 따라서 전반적이거나 부분적으로 관습을 달리하게 되는 수도 있다. 우리의 세시풍속은 반복하는 시계의 산출을 태음력에 의했다. 세시풍속은 하루 이틀의 짧은 시일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생활경험에서 느껴서 필요했고 그래야만 했기에 채택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세시풍속 의 공감성과 문화성이 있다. 하나의 세시풍속이 정착하기 까지에는 수백년 수천년 수만년이 걸린 것도 있을 것이다. 역사가 오래이고 뿌기가 깊은 만큼 확고하게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세시풍속은 냉큼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강인성이 있다. 서구문물을 받아들이고 행정력으로 권장하고 법제화하였어도 여전히 음력이 생활문화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까닭도 여기 있다. 세시풍속은 내륙지방과 해안 지방의 풍속의 차이처럼 지리적 여건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나타나며(풍토성) 사회가 변천하고(사회성-예:북한에서는 단오를 최대의 명절로 치지만 우리는 추석이 더 큰 명절이다.) 역사가 흐름에 따라(역사성) 조금씩, 혹은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의 변화과정을 겪는다.계속 반복되는 풍속이 되풀이되어 원형의 모습(굳어진 하나의 모습)으로 남아진 것을 원형상징 창출 이라한다. 월형상장은 되풀이되어진 체험이 하나의 원초적 이미지 내지는 상징으로 남음을 말하며 집단 무의식의 일부로 그 집단 성원만이 알고 있는 집단의식의 성향을 나타낸다.(예:비둘기를 보았을 때 평화를 생각함. 당연히 무의식적으로 여겨짐. 체계적, 논리적 설명이 필요없다.) 이러한 원형 상장은 민족 동질성 회복의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남북화합의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정치 사회적인 공감은 어려우나 민족적 화합은 가능함.)원형상징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불(火)의 의미를 떠올릴 때 우리는 번성과 풍요를 생각하는데 이것의 기원을 살피자면 신화로 들어가야 한다. 신화 주인공들의 탄생은 불(火),해(日)와 관련이 있는데 신화의 주인공들 즉, 왕이나 임금들은 풍요를 보장해야 하는 사람들이다.(-rainmaker: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면 쫑겨나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에서 풍요의 의미를 떠올리는 것이다. 한가지더 살펴보자면 나무(木)를 신성하게 여겨 서낭목(성황당, 서낭당), 장승, 솟대(소도지역에 세워져있는 나무) 자체뿐 아니라 이 나무들이 세워진 지역까지도 성역으로 여겨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 역시 신화를 살펴보면 신화 주인공들의 탄생지역이 대부분 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웅은 태백산 신단수라는 나무로 내려왔으며 신이 죽으면 나무에다 제를 지내곤 하였다. 이리하여 나무나 산은 신이내려와 머무는 곳이라 여겨 신성한 지역이라 생각 했다.이렇듯 원형상징을 통해 그 민족의 독특한 삶의 양식을 밝혀낼 수 있다.오랜전통있는 세시풍속이 교육의 보급, 서구문물의 도입, 과학사상에 의해서 현대인들의 생활의식과 생활양식은 나날이 달라져 가고 있다. 생산양식도 농경에서 도시산업으로 전이되고 있으며, 가옥 구조도 식사도 복장도 양식화 하고 의식도 변천하고 있어서 종래의 관습의 수구보다 외래적인 것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세시풍속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있게 되었다. 우리의 오랜 명절인 설은 소홀히 다루어지면서 크리스마스, 불탄일은 공휴일로 제정되어 숭상되고 있으며 세시풍속에 있어서의 신풍이나 신도는 미신이란 낙인이 찍혀 있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전래의 세시풍속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이다. 우리는 현대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다. 현대란 같은 시간성 속에서 한국이란 공간성과 문화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세시풍속을 논할 때에 이 양자는 부합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상반된 갈등이 있을 수도 있다. 시대의 대세에 따라 생활과 그 의식이 변하는 것은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명의 이기를 생활에 이용해서 후생하는 교통수단, 방직, 도정, 전기기구, 플라스틱 등은 이미 생활화하였고 장차 더 많은 활용이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기들은 우리의 노동력을 덜어주었고 따라서 편하게 살 수 있게 만들고 있다. 거부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런데 문명 속에서 인간은 점점 새로운 모순에 봉착하게 되었다. 물질의 이용후생에 치중하고 보니 정신적 결함이 노출되었다. 소위 문명국민일수록 생명을 경시하고 이기적이고 잔인하고 흉악범이 많아서 사람들은 오히려 불안에 떨게 되었다. 인간의 궁극에 바라는 것은 행복인데 오히려 평화와 신복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불안의 요소가 더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의 생활과 의식이 급격하게 거구화함에 따라 사회범죄는 늘어나고 교육수준은 높아졌는데 청소년문제는 더 크게 부가되어 과격하고 잔인해지고 있다. 왜 그러는 것일까 태초에 있어 인간의 적은 자연이었다. 홍수, 한발, 화재, 맹수는 무엇보다도 무서운 존재이었다. 그러나 문명시대에 있어서의 인간의 적은 자연이 아니라 이제는 인간이 되었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피해를 입게 되고 따라서 인간이 인간을 적으로 삼아 싸워야하는 비극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불행한 변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대책과 새로운 생활의식과 새로운 생활양식을 요구하고 있다. 인류가 불행을 막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세시풍속에서 많은 교훈을 찾아야 한다. 세시풍속은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와 생활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결론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진리가 들어있다. 인류의 지혜, 민족의 지혜가 현명하게 엮어져서 세시풍속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 자연, 그 역사, 그 사회 속에서는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타당하고 현명하고 편하게 살 수 있다고 판단되어 관습으로 정착되었기에 우리는 세시풍속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 속에서 교훈을 찾아내야 한다. 세시풍속에 의하면 신을 설정하여 그 신에 대해서 복을 빌었고, 풍년들기를 빌고 제사를 지냈다. 생존과 생활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풍족과 복을 기원했으며 조상에 대한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려는 인간적인 의식과 행위가 있다. 신을 즐겁게 하고 자신의 생활을 즐겁고 예술화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무를 낳게 하였다. 이러한 것을 계절적으로 알맞게 반복하면서 생활해 왔다. 현물만을 생각하지 않고 신앙적이며 협동적인 생활로 풍년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려고 했던 것이다. 현대인도 풍족과 신복을 기대한다. 다만 방법에 있어 정성이나 공경없이 물리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에 협동이 희박해지고 있다. 협동과 예의를 떠나 풍족과 신복을 요구하기 때문에 공리적이고 갈등의 역학적인 관계만 남게 된다. 이것은 오히려 인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세시풍속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서 모든 세시풍속을 재연할 수는 없다. 의미를 상실한 것도 공감을 잃은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을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거의 것일지라도 현대에 있어서도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가 궁극에 노리는 행복을 이룰 수 있는 것은 그 장점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세시풍속에 나타난 숭신성, 협동성, 예술성은 계속되고 강조되어 현대의 결함을 시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 뜻에서 세시풍속은 취사선택되어 장점을 계승시킬 노력과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그래서 내 것은 경시하고 남의 것만을 숭상하는 현대판 사대주의를 없애야 하겠다. 즉, 문화 주체적 관점에서 세시풍속의 계승은 이루어져야 한다.
{{기우제비는 우리와 같은 농경민족에게는 생존의 근원이자 국운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가뭄때 지내던 기우제는 생존을 위한 것으로 고대부터 내려오는 국가적 행사였다. 자고로 왕-군주-이라는 존재는 우사(rain maker)라 여겨졌기 때문에 나라에 가뭄이 드는 것은 왕이 덕이 없기 때문에 내리는 벌로 여기기도 했다. 그래서 가뭄이 심하면 왕은 음식을 먹지 않고 밖에 움집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혼자 생활하는 등 거처를 옮겼으며 자신의 정치가 너무 혹독하지는 않았는지 반성을 하며 죄인을 재심리하여 무고한 백성들을 풀어 내보내 주기도 했다.고려시대에는 종묘사직과 구월산, 남남북교, 임해원 등에서 무당이 기우제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종묘사직, 4대문, 한강등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장기간 비가 오지 않을 때는 12차례에 걸쳐 3품이상의 제관을 보내어 기우제를 주관하게 했다. 이는 비 다스리는 것을 국가존립의 근본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기우제는 음양조화와 유감주술이라는 두 가지 형태를 취한다.가뭄이라는 것은 양의 기운이 강하고 음의 기운이 약한 것으로, 음양의 조화를 위해 양의 기운을 막고 음의 기운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으로 기우제를 드렸다. 기우제는 음의 기운인 여자무당(女=水=月)이 드렸으며, 기우제시에는 남대문(남쪽=양기)을 잠그고 북문을 열어 그 쪽으로만 통행하도록 하였다. 또한 가뭄에는 역시 음을 상징하는 검은 옷을 입고 다녔다.유감주술이란 비슷한 행위를 함으로써 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으로 가뭄이 극심할 때 비 오는 소리나 모양을 흉내 냄으로 인해 비가 오도록 한다는 우리민족의 토속적인 주술 형태이다.키에다 쌀을 까불며 비 오는 소리를 모사하고, 처마에 호리병을 걸어두고 병 입구에 나뭇가지를 끼워 넣음으로 물방울이 한, 두 방울 씩 떨어지게 하여 마치 비가 오는듯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였다.기우제는 지방에 따라 별의별 습속이 다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가뭄의 원인들 중 풍수지리설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명산에 묘를 쓰면 그 지역에 가뭄이 든다는 말이 전해졌으며, 가뭄을 몰고 온다는 전설상의 동물인 '강철이'가 출현하면 비다 내리지 않는 다는 전설이 있어, 가뭄의 직접 피해자인 농민들은 명산에 암장된 묘를 파낸다든지, 강철이를 쫓는 다는지 하여 가뭄을 몰고 온다고 믿는 원인제거에 힘썼다.청주, 춘천 지방에서는 아들을 못 낳는 여인네들만 골라서 쌀 까부는 키에 강물을 담아 키 틈으로 새어 나오는 물을 온몸에 맞으며 맹렬한 비빌이 춤을 추게 하였고, 옥천지방에서는 할머니부터 며느리까지 3대 과부가 하는 집에 부녀자들이 모여 세 과부에게 솥뚜껑을 씌워놓고 둘러서서 물을 필사적으로 끼얹었다. 아들 못 낳는 여인이나 삼대과부를 기우제에 이용한 것은 그들의 원한이 크기 때문에, 바로 그 원한이 하늘을 감동시키는 수단이 된다고 믿었다. 곡성, 옥구, 장성지방에서는 동네 부인들이 총동원되어 인근 동산에 올라가 일제히 오줌을 눔으로써 비를 빌었다. 이는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하나는 부정한 존재인 여자들이 성지인 산에다 부정한 행동을 함으로써 신의 노여움을 사, 신이 부정함을 씻어 내리기위해 비를 내린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음의 상징인 여자들이 산에 올라 방뇨를 함으로써 강한 양의 기운을 음의 기운으로 막으려함 이였다는 견해인데 후자가 좀 더 신빙성있는 견해라 여겨진다. 경주에서는 수십 명의 무녀들을 모아놓고 머리에 버들가지로 만든 모자를 씌우고 음탕한 춤을 추게 했다. 속옷을 들추기도 하고 저고리 깃을 들춰 젖가슴을 들썩이면서 강렬하고도 요염한 춤은 음성인 여자로 하여금 음기를 발동시켜 양성인 가뭄에 도전한다는 뜻이었다. 또 서낭당 나무에 개의 피를 바르는 풍속이 있었으며, 수신인 용이 사는 용소에 찾아가 제물로 개나 돼지를 잡아 그 머리만 물속에 버리며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는데 이 두 가지 풍속은 부정한 동물의 피를 바르거나 부정한 동물을 제물로 바치면 신(용신)이 노하여 그 부정함을 씻어내기 위해 비를 내릴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노방토룡제라 하여 마당에 진흙으로 용(수신)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뜨거운 볕을 쬐이게 하였는데 뜨거우면 비를 내릴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토룡을 아이들로 하여금 질질 끌고 다니게 하였다. 이 때 아이들은 용한테 욕도 하고 때리기도 하며 조롱하고 조소를 퍼붓는 등의 모욕을 주었다. 용을 화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물의 왕인 용왕이 화를 내야만 비가 온다고 믿은 때문이었다. 한때는 신에게 모욕을 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하여 노방토룡제 금지령을 내린 때도 있었다. 온갖 방법을 다 써도 가뭄이 계속될 때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산에 불을 놓기도 했었다.기우제도 효혐이 없고, 무당까지 불러다가 굿판을 열어도 마찬가지일 때 여성들이 나선다. 이름하여 도깨비굿이라 부르는 진도고유의 풍습. 월경서답을 장대에 내걸고 양푼을 두드리며 한바탕 시위를 한다. 이슥한 밤부터 대낮까지 남자들은 감히 집밖으로 나올 염두를 못 내고 방 안에 틀어박혀 꼼짝 못한다. 해방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굿판이 열린 다음에는 영영 사라진 풍습이다.기우제에 대해 공부하면서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여자를 부정하게 여겨 제사를 비롯한 신을 모시는 자리에서 여성의 등장을 엄격히 금했던 우리 민족이 유독 기우제에서는 여성에게 관대하였다는, 아니, 오히려 기우제에서만은 여성이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이다.이렇듯 기우제에 있어 여자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앞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었듯이 가뭄은 양의 기운이강한 때로, 음의 기운인 여성이 양의 기운을 억제하고 비를 부를 수 있도록 음의 기운을 극대화시키기 위함이라 보여지기도 하며 여자와 땅, 남자와 하늘, 정액과 비를 상징관계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땅인 여자는 하늘인 남자가 정액을 뿌리게 하는 흡인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깨어진 유리배의 진실(‘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전경린作-을 읽고)2001507062 경영학과 심양순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가는 여자.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로 나간 스물다섯 살의 여자는 그곳에서 무엇을 만난 것 일까?스무 해가 넘게 살아왔지만 세상은 그녀에게 결코 익숙지 않다. 아니, 어쩌면 그녀의 나이가 심각하게 희망을 앓는 나이-작가의 말에 의하면-이기에 새삼스레 낯선 존재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는 지도 모른다.스물다섯 살의 여자 앞에 놓인 결코 유쾌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현실.일, 결혼, 사랑 그리고.....가족.은령(주인공)은 사회적 통념과 가치관을 거부한다. 그녀는 자유로우며 탈주의 욕망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욕망은 가출로 이어진다. 스물다섯 살의 여자 은령은 그렇게 규범의 세계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도무지 일상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여자 은령은 유경과 진을 만남으로 인해 삶에 또 한번의 전환점을 만난다. 아니, 그들과의 만남에서라기보다는 그들과의 만남의 끝에서 그녀는 진정한 허무를 앓는다.지독하게 일상적인 사회. 지나친 억압과 통제가 일상화된 사회. 그러한 억압을 암묵적인 순응으로 받아들여버리는 자유민주주의사회. 그 속에서의 탈출.탈출은 그녀에게 사회뿐만 아니라 양부의 집에서까지 해방되게 하는 수단이다. 잠시나마 일상 속에서 그녀가 꿈꿨던 결혼 역시 양부의 집을 나올 수 있다는데 큰 이유가 있었다. 결코 정상적이지 않은 가정. 아니, 결코 정상적으로 느낄 수 없었던 가정에서 자라면서 은령은 너무 일찍, 너무도 처절하게 고독과 몽환감과 허무를 경험하며 그에 물들어간다. 탈출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과의 조심스런 교류의 시작이 된다.그러나 탈출은 그녀를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완벽하게 독립시키지는 못한다. 생계를 위해서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새로운 직장에서 그녀는 다시 규범의 세상을 만난다. 돈이라는 물질적인 요소로 인해 철저한 현실로부터의 도피에 방해를 받게 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은령의 권태로움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지나친 허무로 가득 찬 남자, 유경과 너무나도 육체애적인 남자, 진을 만나게 해준다.세상을 겉도는 두 남자. 그렇지만 세상을 등지지는 못하는 남자..그들은 은령에게 갈등을 안겨 준다. 육체적인 욕망과, 내면의 정화 내지는 순수로부터의 갈등을 낳는다. 이러한 갈등은 그녀가 사회의 통념을 벗어난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하도록 요구되어왔던 것들, 모두가 그렇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부정해 버리고 자신의 내면에 충실했음이 낳은 결과이다.그들과의 만남은 그녀를 꿈꿀 수 있게 한다. 더 이상 일할 필요 없이 자신의 세계에 빠질 수 있도록 한다. 레이스를 뜨고 화초에 물을 주고 유경과의 만남과 진과의 관계에서 그녀는 항상 꿈을 꾼다.작품 속에서 작가 전경린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던 은령은 결혼-비록 선모의 어머니(시어머니)로부터 인정받지는 못했으나 포기나 실망이라기보다는 자신 스스로의 거부로 받아들여진다.-이라는, 가정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결정한다. 나름대로 안정적이라 일컬어지는 사회체제에 편입됨을 거부하고 자신내면의 야성적인 정념에 몸을 맞기고 바다로 나간다. 바다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바다에서 그녀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바로 그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보내는, 그녀 전경린과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세계의 표면이 열리는 초현실적인 통로가 아닐까?초반부에서 작품을 살피면 은령이 결과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사회통념으로부터의 저항, 그러한 통념과 규범이 사라진 이상향적인 사회의 동경과 철저한 자기 내면의 성숙과 독립이라 여겨진다. 그리하여 그녀는 영혼의 성숙을 위하여 결혼이라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무거운 굴레와 불안정한 가정으로부터의 독립을 단행한다. 스물다섯 살의 여자를 결혼적령기라는 무서운 범주 안에 가두고 결혼이란 것이 매우 안정적인 생활인 양 부추긴다. 은령은 탈출을 감행함으로서 현실의 요구에서 벗어나 스물다섯 살의 시간을 상실과 허무의 측면으로 즐긴다. 강박적인 사회의 요구가 그녀가 추구하는 이상향의 장애요인이라면 혼자만의 시간과 그녀가 그 시간 속에서 만나게 되는 유경과 진은 그녀의 허무를 증폭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그들과의 관계에서 그녀는 내면의 욕망과 마주하게 된다. 친구인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갈등한다. 여자의 사랑은 당연하다. 육체와 정신이 하나가 되는 사랑이 아니라 육체의 욕망과 영혼의 정화가 진과 유경이라는 각각의 같으면서도 확연하게 다른 두 인물을 통해 대변된다. 은령은 둘 중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지만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음에 갈등한다. 아니, 그 자체를 받아들인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결국 떠나 버린 두 남자로 인해 지극한 허무에 빠진다. 어느 누구도 나서서 그녀의 행동을 비판한다거나 충고를 해주는 조언자는 없다. 철저하게 혼자서 상황을 즐기고 느끼며 판단한다. 사회적 통념자체에 따른 갈등이라기보다는 그 속에서 그녀를 자라게 한, 어쩔 수 없이 그것에 물들어 버린 은령 혼자만의 갈등이다.책의 결말에서 그녀가 상실한 것과 얻은 것은 무엇일까?내면의 성숙? 사회로부터 느끼는 환멸감 생성 내지는 증폭? 완벽한 이상향의 건설?어쩌면 은령이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자신이나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 가정 내부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품을 읽으면서 페이지를 넘길수록 은령의 꿈꾸는 듯한 행위의 해답(?)의 실마리를 가족공동체라는 것에서 찾아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유경과 진이 떠나고 은령은 양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얼마 뒤 어머니의 죽음을 맞는다.5년 뒤 서른의 그녀는 자신의 의붓동생을 아들로 키우며 살아간다. 소설의 결말은 그렇게 끝이 난다. 아니, 책의 페이지는 거기서 끝이 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그녀는 가족을 구성한다. 아이를 키우며 작은 것들이 삶을 조금씩 변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살며시 미소를 짓기도 한다.
개요서론1.존재하지 않는 어머니본론2.호주제란 무엇인가?3.선택받은 자가선택받지 못한 자를 기다리는 사회4.변화하는 것들과변하지 않는 것들5.번거롭지 않지만,번거롭다해도 해야만 하는 일결론6.이젠 하기도 지겨운 말...우리가 걷고 있는길-호주제 폐지와 엄마성 함께 쓰기-서론1.'우리는 누구의 딸, 혹은 아들들인가...'너무나 어리석고 미련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물음을 던지고 있는 나 자신 조차도 웃음이 나올 지경이니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물음을 하루에도 몇 백, 몇 천 번씩 던지게 할 정도로 어리석기 그지없다.하루에도 수 십 번씩 불려지는 우리 이름 어디에서도 우리는 엄마란 존재를 찾을 수 없다. 마치 '넌 아빠만의 딸 (아들) 이야..' 라는 식의 답변만을 계속 반복해 대고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이런 말을 하는 내게 혹자는 '그깟 이름 하나 갖고 뭘 그래..신경과민이군..지나친 비약 아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름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에 대해 무지하거나 잊고 사는 것이 분명하다.이름은 그 사람을 대표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그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고, 느끼는 것이다. 중요한 일을 처리 할 때하는 서명 (이름이 아닌 기호로 서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름이나 이름에서 파생된 약자 등을 이용하여 서명을 한다.) 역시 나를 대표하여 '이거 아무개 아무개란 사람이 결정한 일이오.'라는 표시를 남기는 것이다. 얼굴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먼저 소개되는 이름은 우리에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하는 추측까지 하게 한다. 아이가 태어나 이름을 지을 때만해도 상당한 고민과 생각 끝에 결정하는 것을 보면 우리 역시, 사람에게 있어 이름이란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란 것을 알고있음이 분명하다.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이름에서 정작 아이를 낳는 죽을 만큼 힘든 산고를 이겨내야만 했던 우리 어머니들의 존재는 철저하게 무시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누가 그래도 좋도록 내버려두었단 말인가.나는 여기에서 '엄마성 함께 쓰기' 의 중요성을 말하고자한다.왜 그것이 필요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고자 한다.더불어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박혀있는 남성중심사상의 원천 (감히 나는 그렇게생각하고 있다.) 이라 할 수 있는 '호주제' 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그러기에 먼저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 부분에 대해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본론2.먼저 '호주제'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호주제도란 민법상 가정을 규정함에 있어 ‘호주’를 중심으로 하여 가족을 구성하는 제도로써, 민법 제4편 (친족편) 을 통칭하며 그 절차법으로 호적법이 있다. 그런데 이 제도에 ‘남성 우선적인 호주승계순위·호적편제·성씨제도’와 같은 핵심적인 여성차별조항이 있어 문제가 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사회의 가부장 의식과 악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전세계 유일무이한 법이다.또한 호적제도라 함은 민법상의 호주제도·가족제도가 규정하는 바에 따라 국민 각 개인의 모든 신분변동사항 (출생, 혼인, 사망, 입양, 파양 등) 을 시간별로 기록한 공문서로써, 사람의 신분을 증명하고 공증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편제방식은 하나의 호적에 가족 모두의 신분변동사항이 기재되며, 편제의 기준은 ‘호주’이다. 즉 가족원 모두는 호주를 중심으로 하여 그 상호관계를 기재함으로써 그 지위가 명시된다. 이 때문에 가족 내 주종관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비판과 아울러 이혼·재혼가구 등의 증가에 따른 현대사회의 다양한 가족형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이처럼 현 호주제와 호적법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호적에 기록된 호주와 가족의 집합체야말로 ‘가족’이라고 하는 고정관념을 심어주고, 호적에 이처럼 기록되지 않는 이혼가족, 홀 부모가족, 사실혼 가족과 그 자녀를 차별하는 의식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호적이라는 존재가 가족 관념에 주는 영향은 무시 할 수 없는 것이다.3.현 호주제는 호주가 죽었을 경우에 그 승계순위를 아들에게 먼저 주면서 (승계순위를 살펴보자면 아들-손자-미혼인 딸-배우자-어머니 순이다. 현 호주제 안에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있겠지만 이건 정말 웃기는 원칙이라 생각한다. 평생을 같이 살아온 아내보다, 나이가 아무리 어리더라도 무조건 아들이 우선이 라니.. 또 손자는 뭐란 말인가..) 아들이 딸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정에, 사회에 심어주면서 결국에는 사회 전 분야에서 남성이 모든 여성보다 우선해야만 한다는 남성 우월주의를 조장하고 있고, 또한 가정에서 역시, 아들을 낳아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남아선호사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우스갯소리지만 가깝게 우리집에서 역시 남아 선호사상이라는 무서운 관념은 딸만 둘 낳은 엄마를 평생 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했다. 나 역시 아들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인 양, 아들을 낳은 큰댁에 가면 괜히 기가 죽곤 했다.아들을 낳지 못하면 죄인이 되고, 이혼까지 당하는 세상. (우리 엄마의 경우는 감사히도 이혼을 당하지(?)는 않으셨다.) 그런 슬픈 현실 속에서 자신이 스스로를 죄인이라 규정짓고 숨죽인 채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우리는 왜 그토록 '남자'에 연연하는 것인가?그러한 남아선호사상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정녕 무엇이란 말인가?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성감별을 통한 낙태를 서슴지 않고 있고 그러한 행태는 우리 사회에 생명을 경시하는 끔찍한 풍조를 자아내고 있다. 초등 학교 교실에서는 여아의 부족으로 남자아이들이 짝꿍이 없고, 그 아이들이 자라 결혼 적령기에 이르렀을 때 결혼 상대 여성이 부족해 허덕여야한다니,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부러 성감별까지 해서 낳은 선택받은 아이들이 선택받지 못한 아이들의 부족으로 고통받아야한다니... 남아선호사상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오는 지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계속 얘기한다면 자꾸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더 이상은 참지 못할 것 같으니 말이다.4.호주제도가 폐지되면 호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위계질서가 파괴되어 급격한 가족해체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은 더욱 바빠졌고 그에 따라 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으며, 사고 역시 바뀌고 있다. ( 사고들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 남성 중심적 사고가 뿌리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고의 변화는 가족제도의 변화 역시 가져왔다. 위계 질서적인 대가족에서 점점 핵가족화되어 가고 있다. 아니, 벌써 많은 가정이 부모와 자녀들로 구성된 핵가족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현 호주제의 폐지는 가족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핵가족화된 우리 가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게 될 것이다.호주제도의 존재가 가정의 안정에 기여하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변화된 사회현실과 괴리된 낡은 가족제도가 오히려 가족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음은 더 이상 재고해볼 여지가 없다. 여성의 교육수준과 사회의식, 경제적 능력이 훨씬 나아진 현실 속에서, 일방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여 가족이 유지되기는 점점 힘들어 질 것이다. 아무런 합리적 이유없이 남성에게 우월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는 호주제는 현실의 가족형태를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폐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5.호주제 폐지와 더불어 우리가 생각해볼 문제, 바로 '엄마성 함께 쓰기' 이다.서문에서도 말한 바가 있듯이 사람에게 이름이란 것이 갖는 의미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것이고 존재 함축적 의미를 갖는 이름이란 것에서 우리는 항상 아버지만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 남녀 평등의 차원에서라도 이러한 남성 중심적 제도는 개선되어 마땅하다. 그런데 이러한 양성평등 운동에 있어 가장 커다란 장애가 바로 '호주제' 인 것이다. 앞에서 '호주제 폐지를 목놓아 부르짖은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였음이다.'엄마성 함께 쓰기 운동'을 말하는 이들에게 혹자는 이런 말을 한다. 너무 번거롭지 않느냐고.. 사실 그건 우리 생각처럼 그리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번거롭다하여 잘못된 것을 그냥 방치해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