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Ⅰ.모더니즘. ---------------------------------- 11. 모더니즘의 발생 배경 ------------------------------------ 12. 모더니즘의 특징 ----------------------------------------- 33. 모더니즘과 형식주의 ------------------------------------- 54. 모더니즘과 이데올로기 ----------------------------------- 65.모더니즘의 대표적 작가 소개------------------------------- 7Ⅱ.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과의 비교------------- 9Ⅲ. 포스트 모더니즘---------------------------- 101. 포스트 모더니즘의 발생배경------------------------------- 112.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 103.한정된 논의들 -------------------------------------------- 134.상상력 --------------------------------------------------- 155.유보 ------------------------------------------------------- 176.주의사항 --------------------------------------------------- 187.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한국학계의 입장 --------------------- 198.하일지 문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 19Ⅳ. 맺 는 말 -------------------------------- 24≪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Ⅰ. 모더니즘1. 모더니즘의 발생 배경*모더니즘의 어원적 의미모던 : 근대적, 현대적이라는 의미로, 20세기초엽부터 서구에서 시작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운동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라가를 치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테니슨이나 브라우닝, 조지 엘리어트나 쌔커리 같은 빅토리아 시대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민중에게 윤리적·도덕적 비전을 제시하는 하나의 도구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은 사실주의 문학에 위하고 있는 입장과 태도를 신랄히 공격했다. 심미주의가 주창하고 나선 은 바로 사실주의의 이런 입장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19세기 사실주의 문학은 작가와 독자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인정한다. 따라서 사실주의 작가들은 흔히 직접 작품에 개입하여 진부한 도덕적 교훈을 강조하기 일쑤였다.2) 주관성과 개인주의모더니즘은 과거의 전통이나 인습과의 단절을 통하여 주관성과 개인주의를 중시하여 그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그것은 객체보다는 주체를, 외적 경험보다는 내적 경험을, 집단의식보다는 개인의식을 훨씬 더 높이 평가한다. 현상 세계와 인간의 자아 사이에 유기적인 상호 관련성을 인정하던 19세기 작가들과는 달리, 모더니즘의 작가들은 오히려 그것을 창조해내는 것이라는 모더니즘의 기본 입장도 사실은 이런 주가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본다면 모더니즘은 다분히 낭만주의적 기질을 이어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개인의 주관성과 내적 경험을 강조하는 모더니즘의 작품은 복잡성을 수반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의 외적 행동이나 현상세계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내적 성찰이나 심리 분석 혹은 의식 세계를 다루는 데서 생겨나는 피치 못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복잡성과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난해성은 모더니즘 문학의 중요한 특징을 이룬다.3) 문학의 독자성과 자기 목적성모더니즘의 독자성과 자기목적성을 강조하는 면에서 이제까지의 문학 전통과 비교하여 볼 때 큰 차이를 보여준다. 문학의 독자성과 자기 목적성을 강조하는 모더니즘은 무엇보다도 프랑스의 상징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바 크다. 자연의 객관적인 모방이나 자아의 주관적인 표현을 함께 거부하는 상징주의는,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어떤 구체적인 실제에도 방해받지 않는 를 창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모더니 외가 쪽도 영구 데본제방에서 이주해서 아일랜드 서쪽 해안의 슬라이고에서 정착한 집안이었다. 예츠는 더블린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3년간 미술학교에 다니기도 했지만 곧 문학쪽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는 정통적인 기독교를 수용하지 않고 여러 형태의 신비주의(mysticism)와 민담, 신지학(Theosophy), 영매술 및 신 플라톤 사상에 몰두했다. 그는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더블린과 런던 그리고 슬라이고에서 보냈다. 런던에서는 1890년대에는 시인회의 일원으로 탐미주의 시인들과 교류를 했으며 이 무렵 라파엘 전 예술가의 이념에 동조하면서, 그는 시인은 꿈같은 환상적인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고 믿었다. 이 때 그의 시는 짙은 romanticism의 향기를 풍기었고 산수적 소재를 시의 바탕으로 하였다. 이 시기에 그에게 영향을 미친 시인으로는 Spencer, Shelley, Blake등이다. 그는 슬라이고에서의 체험과 옛 아일랜드가 지닌 풍부한 시적인 유산과 전설에 매혹되어 이를 시로 형상화하였다.그후 아일랜드의 독립과 문예부흥을 위한 운동의 선봉에 서서 활동을 하게 되고 국민적 소망과 꿈을 표출하는데 대중적인 소박한 언어 구사의 필요를 느꼈다. 이 무렵 그의 시어는 이전보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구사하게 된다. 그 당시 그는 애란의 독립투사이며 미모의 여배우인 Maud Gonne을 알게 된다. 그는 장구한 세월동안 그녀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다.이후 아일랜드 문학의 후원자인 Lady Gregory를 만나서 아일랜드 국립극장 을 창설하고 극작가로서 활동을 한다. 이후 그는 아일랜드 국민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민담, 전설, 민요 등을 소재로 작품활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국립극장인 사원-극장(Abbey-Theater)에서 상연된 연극에 대한 국민들의 조잡하고 무감각한 반응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2) 현실참여기 (1910-1917)이 때를 가름하는 시집으로 Responsibiliyies(1904)가 나오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해서 예츠는 공인의 어떠한 관심도 없다. 그들은 단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우연하고도 임의적인 사건에 대하여 순간순간 감각적, 유희적으로 느낄 따름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역사적 의의라거나 역사적 전통이라고 하는 것들도 무의미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역사는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에 불과하므로 역사는 무시하여도 좋거나 부정되어야할 그 무엇이다.포스트모더니즘 속의 대중은 세계의 분열상, 파편화를 한탄하거나 그 극복을 위하여 몸부림치지 않는다. 그들은 삶의 다양성, 무작위성, 우연성을 단지 그대로 받아들이며, 나아가 절대적 질서란 원래 없는 것이라는 전제아래 끊임없는 실험과 변용, 반역과 해체의 유희를 즐겨 계속할 뿐이다.{ ) 서강목, 포스트모더니즘, 어떻게 볼 것인가? 실천문학 , 1990, 가을호.셋째, 포스트모더니즘 문화는 脫正典化를 추구하는 문화다.각 사회는 보편적이고도 본질적인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는 오랜 믿음 아래 절대적으로 옳고 그 자체적으로 가치있다는 견지에서 정당화되는 학문적 이론체계, 종교적 교리 및 도덕적 규범체계 그리고 예술적 창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여타 문화활동의 올바른 典型 즉 正典으로 간주되어서 이후 여러 문화활동의 중핵이나 지침서 역활을 하며, 이 전형에 부합되도록 이루어진 생활양식은 교양있고 품위있는 고급문화로 간주된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 문화 속의 대중은 문화활동의 전형 특히 고급문화의 전형인 정전에 관심을 갖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전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모든 사물 사건이 상품화의 논리 속에서 평가되는 소비사회 속에서 그 자체로 가치있는 고전 명작, 그 자체로 정당화되는 도덕규범은 무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 문화논리 속에서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이 무의미하며, 대중은 문화활동의 전형에 관계없이 자기주변의 일상생활적 대상에 대하여 자연스럽고도 우연히 임의적으로 일어나는 관심을 자유스럽게 실험적으로 발산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자신의 문화세계를 구축하여 간다.결국 포스트모더니즘 문화논리 속에서는 지금까지의 지배적인 고급 관대로 사튀로스 중창단이 무엇을 노래하느냐하는 물음에서부터 해체된 햄릿의 이중무대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예술현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보다 높은 찬사를 염두에 두고 벌어지는 작업이다. 최초의 논의는 배우와 관개과 연출자 중에서 누가 주인이 되어야하느냐 하는 꽤 편협적인 토론에서부터, 연극현상의 확장을 위한 연극도그마의 이데올로기 창출에 있어서까지(철저하게 내 생각이다. 지금 무대이거나 무대 비슷한 곳에서 일어나는 어떤 연극이거나 연극 비슷한 것이, 상식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형식이거나 형식 비슷한 것이냐는 질문을 애초부터 부정하는 예술지상주의이거나 이와 비슷한 해체적 성향의 미학적 지배라는 뜻에서 연극도그마라는 말을 썼다.), 이 중심의 문제는 상당히 민감한 주제가 된다.한번 역사를 끄집어내자.극작가는 신처럼 명령하고, 배우는 노에처럼 연극하며, 관객은 수동적으로 지켜보는 전통재현극에 반기를 든 아토르는 삶이란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서 그의 잔혹극을 통해 불가능의 성극(性劇)을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에 즉각 반응하여 베케트의 초기작 고도를 기다리며 엔드 게임 등을 통해 플롯의 와해를 실험한다. 즉, 이것은 구조의 와해라고도 볼 수 있고, 텍스트의 와해를 통한 전통적 연극공간(극작가, 배우, 관객)의 와해라고 볼 수 있다. 베크의 살아있는 극장 , 쉐크너의 행위그물 등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공동체 축제극의 모습을 나타내는데, 배우가 옷을 벗고 알몸으로 무대 위에 현신함으로써 보는 자와 행위하는 자 사이의 제의적 화해를 상징하게 된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듯이 알몸이라는 상징성은 그 충격적인 해방공간의 창출이라는 놀라운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몹시 기호적이라는 평가를 얻는다. 다시 말해 아직 문법에 얽매어 있으며, 그런 까닭에 아직 연극을 완전한 해방과 화해의 장(무엇에 대한 해방이고 무엇에 대한 화해인지 여기서부터는 의도하는 쪽에서조차 애매해지지만.)으로 인도하지는 못한다. 대안이 등장한다. 아토르를 무시하고 차라리 재현을 인정하여 재현을 뒤업
Ⅰ. 들머리유교 사상은 삼국시대에 이르러 고구려가 태학을 세우면서 중국으로부터 유래되어 왔다고 알려지고 있다. 통일 신라 시대 이후 강수(强首), 설총(薛聰), 최치원(崔致遠)등이 유학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건국 이념이 불교인 탓에 유학은 그리 큰 빛을 발하지 못하였으나, 최충(崔沖)등의 일부 문인들에 의하여 유가적인 문학만이 유지되어 왔다. 비록 고려의 불교 국가였고, 소수의 학자들만이 유학의 명맥을 유지해 왔으나, 정치, 교육, 윤리, 학술, 문화 등의 제도적 부문에서는 유교가 그 영향력을 미쳤다 할 수 있다. 고려후기 송대의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신진 사대부들의 현실 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또한 당시 부패했던 불교에 대한 배척 정신이 강화되면서 급속도로 유학의 세력은 팽창하기 시작했다. 조선 왕조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정책이 펴졌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고려 충렬왕 때 안향에 의해 전해져 온 성리학이 본격적인 이론 탐구에 들어가게 된다. 특히 괄목할만한 것은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 벌어진 사단과 칠정에 관한 논쟁과 이기(理氣)의 해석에 관한 이론의 등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茶山 丁若鏞(1962∼1836)이 살았던 시대는 중세사회의 모순이 터져 나오던 시기였으며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과도기였다. 재편되는 사회질서 속에서, 성리학에 대한 자생적 비판과 외국문물의 전래를 통해 지식영역이 한껏 확대되고 과학적·합리적 사고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이 시대적 문제에 스스로 뛰어들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고 그 해결방법을 모색한 개혁사상가가 바로 다산 정약용이었다. 그는 전통적인 사회 지도 이념이었던 주자학을 비판하고 사회 실정에 맞는 새로운 정신적인 지도 이념을 제시하려고 하였으며 또 민족적인 자각 아래 조선 실정 연구에 힘을 기울여 사회를 개혁하려고 하였다.Ⅱ. 교육사상 형성의 배경먼저 이황은 조선의 대 유학자로 교육가이자, 정치사상가였다. 그는 관계에는 오래 머물지 않고, 고향에보는데 중요한 저서라고 할 수 있다.이황의 철학사상은 주자의 이기이원론이며, 이에 터한 이기호발설이라 할 수 있다. 즉, 그는 주자와 같이 우주의 근원을 이루는 이성인 이 와 감성인 기 는 서로 떠날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이기이원론의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이는 기를 움직이게 하는 근본적인 법칙이고, 기는 이의 법칙에 따라 구상화되는 존재라 하여 이기이원론의 입장을 주장하면서도 주리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이 주리설의 주장은 대개 사물의 법칙성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우주의 근원이 되는 생명력에 대한 인식을 보다 중요시했고, 그 생명력에 근본을 둔 인간의 도덕적 의욕을 중요시하였다. 따라서 체험주의와 수양주의의 입장을 강조했던 것이다.퇴계의 교육적 인간관은 이기이원적이다. 즉, 그는 인간을 이의 사람 과 기의 사람 으로 크게 나누고 있으나, 이런 구별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교육여하에 따라 기의 사람 도 될 수 있고 이의 사람 도 될 수 있는 것이었다.다산의 교육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적 기초가 되는 학문의 배경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먼저 경학적인 면을 살펴보면, 첫째 洙泗學은 다산 경학의 구조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洙泗學이란 본래 유교의 대명사이지만 다산이 주장하는 수사학은 실천적 윤리학으로써 修己治人의 時中君子를 理想으로 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堯舜-周公-孔子로 이어지는 수사학의 계보에 그의 경학적 기반을 두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다산경학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둘째, 조선유학에 있어서 반주자학적인 경향은 비단 다산에 있어서 뿐 아니라 조선후기 실학자들 사이에서도 空理空談으로 변한 주자학을 비판하고 程朱의 세계에서 탈피하여 실증적인 태도로 유교경전을 해석함으로써 주자가 아닌 공자의 뜻을 찾으려는 일련의 노력이 경주되고 있었으므로 반주자학적인 경향은 조선후기 사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반주자적인 학풍은 다산시대에 이르러서는 실학의 전성과 더불어 더욱 고조되었으며 다산도 독자적인 자세로 경전연구에 몰두하여 마침내 修己治人수 있다.다음으로 실학적인 면을 살펴보면, 경학사상을 바탕으로 당시 조선사회의 병폐를 연구하여 이를 개혁하기 위한 다수의 논문과 一表二書{)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를 이름.를 저술한 다산은 16세 때 성호 이익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한편 이익은 율곡의 至治主義的 실학과 반계 유형원의 經國濟世의 실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다산이 받은 영향도 바로 이러한 면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다산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중농주의에 바탕을 둔 유형원과 이익의 경세론이었음을 알 수 있다.Ⅲ. 교육사상1. 교육목적퇴계는 天人合一적 사고의 틀로 우주와 세계를 바라본다. 天道와 人道를 지배하는 원리는 하나라는 사상이다. 즉, 天道에서의 원·형·이·정과 인도의 인·의·예·지는 서로 상응하는 것으로서 하나의 理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의 본연지성인 인·의·예·지를 지켜감으로써 천도에 합일될 수 있고, 이 도리를 지키는 사람은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이 도리를 완수하는 사람은 곧 성인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衆人이라는 것이다.그런데, 이 인간의 본연지성인 理는 마음속의 氣에 의하여 둘러싸여 있다. 이 氣는 理와 합쳐지는 경우에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는데, 이것을 제어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이다. 이 氣를 제어하고 理를 구현하기 위해서 인간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교육의 목적이라는 것이다.따라서, 퇴계는 교육의 목적이 인간의 본연지성인 인·의·예·지를 발휘하여 천도와 합치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본다. 퇴계는 천인합일적 사상에서 안와 밖, 주관과 객관, 물질과 정신의 세계를 통합시키려 함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행동주의자들처럼 교육의 목적을 인간의 객관적인 사실에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 교육의 목적은 그 모든 것을 통합하는 立志에 있다고 말한다. 객관적이고 단편적인 사실들의 암기가 아니라, 주관과 객관,물질과 정신, 안과 밖을 통합하는 하나의 원리를 터득하는 것을 교육기초는 평등한 인간, 인간에 대한 욕심의 긍정, 인성에 대한 환경요인설 등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파악한 다산의 교육목적은 당시 사회의 현실적 개혁에 있었다. 이를 위한 하위목표로 문벌이나 신분을 중요시하는 것보다는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볼 수 있는 인간, 중국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난 자주적인 인간, 당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적인 인간, 헛된 명분의 성리학적 인간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합리적인 인간, 직업에 대한 실천보다는 인간생활에 유용한 과학적이고 탐구적인 기능적인 인간을 들고 있다.다산이 바라는 인간상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실용적인 인간, 자주적이고 비판적이며 현실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당시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경세적인 인간이다. 따라서 다산의 교육목적은 현실의 모순을 발판으로 삼아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데 있다.이러한 다산의 인간관이 전근대적인 조선사회의 말기적 현상 속에서 비판적인 극복책으로 형성되어 졌다는 점에서 근대적 지성에로 지향되고 있는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2. 교육내용과 교육방법퇴계는 과거중심에서 학문 중심으로 지식 위주에서 생활 위주로 공리(功利)의 위기지학(爲己之學)에서 덕행의 위기 지학으로 개인의 이해보다 집단의 화애(和愛)로,권위와 체면보다 예양(禮讓)과 합리성을 강조해서 가르쳤다.그는 계당서당에서 사교육을 하면서 10년 동안 전래의 교과과정을 개편하여 성리학의 통록(通錄)과 절요(節要),개론(槪論) 잠명집(箴銘集),계몽(啓蒙)의 전의,강해(講解),주석서(註釋書) 등 새로운 교과서를 손수 저술하여 도산 서당 교육을 시작하였다. 퇴계는 한때 성균관 대사성으로서 사학의 유생과 교육자들에게 나라가 학교를 만들어 교육하는 목적에 대하여 지도한 일이 있었으나 퇴폐한 공교육으로서의 개혁의 가망이 없어지자 인간성회복과 윤리 도덕을 바로 잡기 위하여 서당 교육을 펴 나갔다.퇴계의 교육방법은 교육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이는 교육의 과정 속에 있는 아동들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원료(raw materi 行과 思가 서로 연관성을 갖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능적인 구실로만 인식되는 행동주의 심리학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이렇게 되면 또한 지식은 객관적인 사실일 뿐만 아니라 주관성을 강하게 갖는 학습자 자신의 참 지식이 될 수 있다.둘째는, 통찰 학습에 대한 퇴계의 독특한 견해다. 그는 지식이 단편적인 사실의 습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의 상호 연관성 또는 사물의 근본원리를 통찰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또한 우주 만물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천인합일사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물의 상호 연관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그 기본원리를 통찰하는 것이 사실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논리다.마지막으로, 퇴계는 敬을 학습에서 가장 중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경이야말로 인간이 욕심을 제거하고 본연지성으로 돌아가서 진리를 체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는 것이다. 경을 통한 순수한 성의 회복이야말로 교육에서 가장 중시해야 할 과제라고 보고, 그는 경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조정과 통제를 통하여 사물의 관계를 인과관계로만 파악하려는 행동주의적 발상을 극복하는 것으로서 Maslow 등의 Third Force Psychologist들은 B-Cognition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물의 관계를 의도적인 통제의 결과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적인 상태에서 종합적으로 파악하려는 것이다.{-90-다산의 교육내용에 관해서 살펴보면, 먼저 육서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문학을 위한 기초교육으로 초등학교 교재로 쓸 것을 제안하고 있다. 또 다산은 도서관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오학론에서는 성리학·훈고학·문장학·과거학·술수학을 배격했고, 불가독설에서는 천자문·통감·사략은 교재로서는 비효과적이라고 했다. 아학편에서 어린이에게 알맞은 교재를 논하고 아학편 이천자문을 직접 만들었으며, 그밖에 다산은 사서 육경을 중시했다. 또 국학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나열하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