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러시아의 지리. . . . . . . . -2-러시아의 자연. . . . . . . . -3-행정구역. . . . . . . . . . . -7-15개 공화국. . . . . . . . . -7-자치공화국. . . . . . . . . . -11여러민족들다게스탄 원주민. . . . . . . . -14-바쉬끼르 민족. . . . . . . . -17-부랴트족. . . . . . . . . . . .-21-아드이게족. . . . . . . . . . -24-알따이족. . . . . . . . . . . -26-러시아연방민족분포. . . . . . -30-◈러시아의 지리▶지리 개황1. 입지러시아연방(또는 러시아는) 구소련방내에서 가장 큰 공화국으로 서쪽의 칼리닌그라드로부터 우랄지방을 거쳐 태평양 연안까지 6,000km의 광활한 영역에 걸쳐 있으며, 면적은 구소련방의 76.2%에 해당하는 17,075,400㎢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영토가 넓은 국가인 캐나다의 2.5배에 달한다. 북서와 서쪽으로는 노르웨이, 핀란드,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로루시와 남쪽으로는 중국, 몽고, 북한, 우크라이나,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선을 접하고 있다. 러시아연방의 해안선은 적도의 길이보다 길며 북해와 태평양연안을 접하고 있다.러시아연방의 가장 서쪽은 동경 28도, 가장 동쪽인 추코트카 반도의 데지네프 곶은 서경 170도, 동서 양 극단 사이가 지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크기이다. 일반적으로 경도가 15도 동쪽으로 나아갈 때마다 시간은 1시간씩 빨라지므로 러시아에는 11개의 시간대가 있어야 되겠지만, 유럽지역은 하나의 시간대로 통합되어 있고, 동쪽 끝부근에서 날짜 변경선이 크게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10개의 시간대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모스크바가 오전 7시일 때 하바로프스크는 이미 낮 2시, 추코트카 반도는 오후 5시가 된다. 한국과 모스크바의 시차는 6시간(러시아 전국에 썸머타임이 실시되는 3월 하순부터 9월까지는 5시간)이므로 한국의 오전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천연가스는 생산량과 수출량에 있어서 세계 최대이다. 천연가스 역시 확인된 매장량의 73.4%가 서시베리아에 집중되어 있다. 주요 천연가스전(田)은 베레조보, 우렌고이, 얌부르그, 쟈플랴르노예 등의 가스전이다. 천연가스도 최근 생산량이 하락하고 있는데, 최대 수요자인 구소련 국가들의 구매력 저하가 큰 요인이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송유관을 통해 러시아 전역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국가까지 수출되고 있다. 한편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국가가 운영하던 석유와 천연가스부문을 1992년부터 민영화하기 시작하였다.러시아의 전력생산은 풍부한 화석연료를 이용한 화력발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과거에는 볼가강, 드네프르강, 예니세이강 유역의 수력발전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지만, 전력수요가 늘면서 화력발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현재 전체 전력생산 중 화력발전이 70%를 넘는 반면, 수력발전이 약 15% 정도, 원자력이 약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2 광물자원철광석, 망간, 크롬, 티탄, 구리, 납, 아연, 니켈, 코발트, 텅스텐, 금, 주석 등 금속광물의 매장량이나 생산량에 있어서 세계 최대 혹은 상위에 속할 정도로 풍부하다. 주요 철광석 매장지는 우랄 지역, 쿠르스크 지방, 콜라반도, 동시베리아 지역, 극동지역,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에 분포해 있다. 이러한 막대한 철광석 생산량을 바탕으로 우랄, 쿠르스크, 쿠즈네츠크 지방에는 대규모 철강공업이 발달하였고, 도처에 크고 작은 철강공장이 들어서 있다. 그 밖에 비철금속은 우랄 지역(망간, 크롬, 니켈, 코발트, 구리, 납, 아연)과 시베리아(망간, 티탄, 니켈, 몰리브덴, 텅스텐, 구리, 납, 아연) 및 극동지역(텅스텐, 금, 다이아몬드, 주석, 납, 아연)에 집중 매장되어 있다. 특히 우랄 지역은 인근의 풍부한 광물자원과 유럽러시아와의 근접성 때문에 일찍부터 비철금속 야금업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행정구역혁명 전의 러시아는 약 100개의 현(縣, guberniya)으로 나뉘고, 그 아래에 군(郡, uezd) 수도 두샨베에 집중해 있어 1970년 통계에서는 두샨베 전인구의 42.0%를 차지하며, 타지크인의 26.2%를 훨씬 웃돌고 있다. 타지크인 중에는 이슬람교도가 많다.15. 투르크멘 공화국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의 하나. 중앙아시아 남서부에 있고, 남쪽으로는 이란,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서쪽으로는 카스피 해에 면한다. 정식명칭은 투르크멘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Turkmenskaya SSR. 이 지방을 투르크메니스탄 또는 투르크메니아라고도 부른다. 면적 48만 8,100㎢, 인구 353만 4천명(1989). 수도는 아슈하바트이다.공화국의 민족구성은 투르크멘인이 68.4%를 차지하고, 러시아인 12.6%, 우즈베크인 8.5%, 카자흐인 2.9% 등이다(1979).1. 나히체반자치공화국아제르바이잔 공화국내의 자치공화국. 정식명칭은 나히체반 자치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Nakhchyvan Mukhtar Sovet Sosilist Respublikasy. 러시아어로는 Nakhichevanskaya ASSR. 소(小)카프카스산맥 남서부에 위치하고, 북은 아프메니아 공화국과 접하며, 남은 아라스 강이 이란, 터키와의 국경을 이룬다.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서쪽에 공화국과 동떨어져 있으면서 아라스 강 유역에 평야가 펼쳐져 있다. 1924년 2월 9일에 성립. 면적 5,500㎢, 인구 29만 5천명(1989). 수도는 나히체반이다.자치공화국내의 민족구성(1979)은 아제르바이잔인 95.6%, 러시아인 1.6%, 아르메니아인 1.4%등이다.2. 다게스탄 자치공화국러시아공화국 부카프카스에 있는 자치공화국. 정식명칭은 다게스탄 자치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Dagestanskaya ASSR. 1921년 1월 20일에 수립되었다. 지역명 다게스탄은 터키어의 다(산) 스탄 (나라)에서 유래된다. 카프카스 산맥 동쪽 끝 북쪽 경사면에 위치하고, 국토의 4분의 3이 산지이며 동쪼게 카스피해는 면하고, 쿠마강, 테레크강, 술라크강, 사무르강을 끼고 있다. 면적 5만 300㎢, 인구 179만틴문자를 기초로 하여 번역되었다가 1938년에는 러시아어로 바뀌었다.민족의 전통적 생업은 목축업과 농업이다. 고대 문헌에 의하면 이들은 옛부터 농업의 형태가 발생, 발전하였다. 산악지대와 산기슭 지대에는 목축업과 농업을 병행하였고 고산 지대에는 주로 목축업을 하였다. 층계모양으로 들판을 개간하였고 마른 토대에 돌담벽을 세워 둘러쌓았으며 배수시설도 설치했다. 보통 3층으로 경작지를 나누었는데 위에는 과일나무를 아래에는 옥수수를 중간에는 콩이나 감자, 야채를 심었다. 경작지는 재 혹은 분뇨, 짚으로 거름을 주곤 했다. 산골짜기(계곡)에는 수도관, 배수통, 목재 수레차 등 관수(灌水) 시스템이 발달하였다. 농기구로는 철보습기가 있는 목재 쟁기, 곡괭이(мотыга, кирка), 낫(малая коса, серп), 탈곡판, 땅 고르는 용구인 볼로꾸쉬(волокуши), 갈퀴(вилы, грабли), 목재 삽 등이 있다. 보리, 밀, 호밀, 쌀보리, 귀리, 수수, 콩, 옥수수, 감자 등을 재배했다. 아마와 대마를 키우는 기술도 있었다. 수력을 이용한 맷돌을 이용해서 곡물을 갈았다. 계곡 지대에는 포도와 과일을 재배하는 일을 하였다. 이 지방 특유의 품종이 있었다. 그외 다른 복숭아, 살구, 버찌, 사과, 배 등을 재배하였다. 집에서 이들 과일을 말리기도 하였고 19세기말부터 가내수공업의 형태로 통조림 공장에서 가공하기도 하여 이를 아바리야 국경너머에 내다 팔기도 하고 곡물과 바꾸기도 하였다. 포도 중 가장 좋은 것들은 포도주 만드는 곳에 팔았다. 19세기말부터 양파와 마늘, 양배추, 오이, 토마토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현대에는 특용작물 재배에 특별히 노력을 기울였으며 곳곳에 기업의 지점들과 통조림 공장들도 생산 활동을 하고 있다.청동기 시대에 아바리야 영토에서 이미 정착적인 성격의 목축업이 행해졌는데 염소나 양같은 작은 가축뿐 아니라 뿔달린 짐승, 말, 당나귀, 노새 등도 키웠다. 특히 고산지대에는 목양산업이 발달했다. 전통적인 양 종류는 털의 질이 낮은 것(гр자동화기계, 원유기, 모터, 전등 등을 생산하게 되었다. 능력을 인정받은 기술자와 지식인이 점차 많아졌다.기본적 생업은 가축을 먹이고 농사를 짓는 것이다. 주로 쌀보리와 밀농사를 하는데 메밀, 수수, 귀리, 보리 농사도 부차적으로 하였다. 그 외 옥수수, 감자, 스뵤끌라, 해바라기, 근채 등의 농작물도 키웠다. 가축으로는 돼지, 양, 짧은 뿔 동물을 키웠다. 또한 말을 떼로 키워서 말우유를 얻기도 하고 팔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양봉을 하였고 새도 키웠다.러시아로 병합이 된 후에 바쉬끼르의 사회구조는 러시아의 봉건적 태도와 자국의 민족적 관습간에 갈등이 계속되었다. 약 40개의 종족 그룹들이 무리를 이루어 읍들을 형성했다. 규모가 큰 읍은 몇 개의 제한적이지만 정치적 조직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다시 몇 개의 씨족 단위로 나뉘어지고 이들은 외족혼인의 관습이 있었다. 읍장은 세습적으로 정해졌으나 1736년부터는 선출되었다. 1798-1865년 반(半) 군사 자치 행정 단위가 존재했었다. 바쉬끼르인들은 군 종사자 계층으로 되었고 그들 중에는 자치국의 장이나 관리들도 있었다.고대 바쉬끼르인들은 가족보다 좀 큰 단위로 모여 살았다. 바쉬끼르인들은 다른 유목민들처럼 대가족이 좀 더 잘 짜여져 있었다. 16-19세기에 대가족과 소가족이 비슷하게 있었는데 소가족이 점차 더 많아졌다. 가족의 재산을 상속할 때 유산 상속권의 원칙을 고수하였다. 무자녀 자부를 아내로 맞이하는 관습과 어린 나이의 자녀를 약혼시키는 관습이 있다. 혼인은 중매자를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신부를 보쌈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때로는 서로 합의를 통해서 이뤄지기도 했다. 바쉬끼르인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부모님에게 복종하는 가족 풍습이 있다. 현대에 특히 도시에서는 가족의식은 점차 간소화되었다. 최근에는 이슬람의 의식이 다소 보이고 있다.거주지역의 전통적 형태는 강가나 호수가에 세워진 이다. 유목 생활의 여건에서 모든 아울은 봄촹 여름 촹가을 촹겨울 계절별로 몇 개의 장소가 있었다. 계속적인 거주는 유목 생활에서였다.
후흑 열전처음 이 책을 보고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제목이 이리도 이상한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퍽 신기한 책이라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나는 이 책의 작가가 요즘에 등장한 신인 작가인줄만 알았다. 그러나 1879년에 태어나 그는 나에게는 증조할아버지뻘 되는 분이셨다. 큰 기대는 안 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나에게 다른 면의 생각을 가능케해준 책이라 평가하고 싶다.먼저 추측 이란 말의 뜻은 두꺼운 얼굴과 시커먼 뱃속을 뜻하는 말이다. 이것은 이 책의 저자인 이종오가 고안해 낸 일종의 인간학이라 한다. 이 책이 1911년도에 신문에 연재되었다니 그 당시 사회의 반응을 거의 100년 후의 사람인 나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이종오는 중국의 역사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예로 들면서 , 그들의 성공과 패배를 결정적으로 좌우한 것은 두꺼운 얼굴과 시커먼 뱃속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얼굴이 더 두껍고 뱃속이 더 시커먼 자기 승리를 거머쥐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사실상 추측이 판치는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알고 읽었는데 읽다보니 이종오라는 작가는 오히려 추측을 권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보통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논리였으니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종오는 추측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는 모두가 추측에 능통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은 누구 나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쉽게 말하기를 꺼려하는 부분인데 이종오라는 작가는 그 당시에 이 부분을 풍자하는 욕설을 퍼부었으니 그 당시 그의 심정을 막연하게나마 알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용보다도 이종오라는 인물에게 더 많은 관심이 가고 매력을 느꼈다고나 할까! 우선 그의 기발한 생각들과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중국 고전에 대한 지식도 상당한 듯 하다. 또 추측의 이론을 인간의 내면과도 결부시키는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파헤침 당한 것 같은 예리한 시각이라든지 책을 읽는 중간 중간 문득문득 많이 느낀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할까? 어쨌든 자신과 또 다른 자신의 이론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없으면 쉽게 나타날 수 없는 자만심을 엿 볼 수 있었다. 몇 변을 읽어야 이해가 완전히 될 듯 하다. 이제부터 몇 단락의 글을 발췌해 쓰고 거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써 나가고자 한다. 『삼국 시대 영웅들 가운데 먼저 조조를 들어보자 그의 특출난 점은 저울질하기도 어려울 만큼 음흉하고 시커먼 속마음에 있다. 그는 젊었을 때 대단히 의심이 많았다. 당시의 권신인 동탁을 자살시키려 하다 실패해 오히려 쫓기는 몸이 되었을 때 하룻밤 수식을 위해 찾아든 집 뜻밖에도 구면인 여백사의 집이었다. 여백사는 조조와의 만남을 기뻐하여 자기 가족들에게는 돼지를 잡아서 조조를 대접하도록 명하고, 자신은 술을 사오기 위해 집을 나섰다. 가족들은 돼지를 잡기 위해 열심히 칼을 갈기 시작했는데 조조는 이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으로 지레 짐작해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한 가족을 모두 살해해버렸다 그리고는 여백사의 집을 뛰쳐나와 도망하려 하던 중 마침 술을 사 가지고 돌아오던 여백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자 조조는 그 자리에서 여백사마저 살해해버렸다. 이때 동행하던 진궁이 차마 보다 못해사정을 모르고서 살해한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지만 알고 나서도 살해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일이 아니오? 하고 힐책하자 조조는 조금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듯이 오히려 오만하게내가 남을 배신할 지언정, 나는 다른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싶지 않다. 라고 대답했다. 조조는 공융, 양수, 동승, 복완 등 제 앞길에 방해가 되는 자라면 아무런 정의 없이 죽였을 뿐 아니라, 후한 황실의 황후와 태자까지 죽이는 등 한마디로 제 마음대로 행동했다. 이처럼 조조의 속마음은 시커멓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뻔뻔스러운 배짱과 음흉함에 놀라운 점이 있기 때문에 일세의 영웅으로서 역사에 남아있는 것이다.다음으로 유비를 보자. 그의 특출난 점은 보통 낯가죽이 두꺼운게 아니라는데 있다. 그는 애매한 태도의 줏대없는 사람으로 생각이나 태도가 갑자기 싹 바뀌어 여포를 믿는가보다 하고 생각하기 무섭게 조조에게 붙고 거기서 다시 원소의 품으로 투항하고 거기서 다시 또 뛰쳐나와서는 유표밑으로 가 있다가 끝내는 숙적인 손권과 결탁하는 등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조금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행하는 인물이었다. 유비는 이렇게 이리저리 쫓겨 다니고 남의 처마 밑에 얹혀살면서도 전혀 수치심을 갖지 않는 것은 물론, 평소에 울기도 잘했다. 그러한 유비를 『삼국연의 』의 작가는 다음과 같이 생동감있게 그리고 있다. 그는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봉착하면, 사람들을 붙잡고 한바탕 대성통곡을 하여 즉시 패배를 성공으로 뒤바꿔 놓았다. 그리하여 유비의 역할이란 울음보를 터뜨리는 것이다 라는 속담까지 나오게 되었다. 유비란 인물 역시 수완이 대단한 영웅이다. 그와 조조 두 사람은 서로 쌍벽을 이룰 만큼 비할 데 없이 출중한 인물이다.』이 부분을 읽어보면 느끼는 바가 모두 다를 것이다. 나도 어릴 적부터 옛 영웅들의 얘기를 읽거나 들을 때면 이런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을 죽이거나 계략에 능해야만 큰 인물이 될 수 있구나! 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느꼈다 해도 그냥 그 사실을 받아들였고 감히 그 부분에 대해 그 영웅의 행동을 비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종오는 역사속의 인물들을 과감히 평가했다. 때문에 모든 사물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도 좀 더 날카로와졌다고 할까? 그럼 여기에서 이종오의 기괴한 후흑학을 보기로 하자.『후흑학의 수업은 모두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제 1단계는 낯가죽이 성벽처럼 두껍고,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시커먼 것 이다. 처음에는 낯가죽이 종이 한 장처럼 얇겠지만, 점차 밀리미터에서 센티미터, 미터로 늘어나 마지막에는 성벽처럼 두껍게 된다. 마찬가지로 맨 처음 마음의 색깔은 우유 빛을 띠다가 차츰 회색 빛, 검푸른 빛으로 바뀌고 마침내 숯덩이처럼 새까맣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경지에 도달했다 할지라도 겨우 기초적인 기량을 지니고 있는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비록 성벽이 두껍다고는 하지만 대포 한 방에 폭파되거나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시커멀 경우 얼굴빛이 혐오스러워 모두들 그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단계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하고 할 수 있다.제2단계는 낯가죽이 두꺼우면서도 단단하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맑은 것 이다. 낯가죽 두껍기에 능통한 사람은 상대방이 제 아무리 공격해도 전혀 끄떡도 하지 않는다. 유비가 바로 이런 사람으로, 조조조차도 그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속마음 시커멓기에 능통한 사람은 마치 빛바랜 칠흑 간판이 시커멀수록 귀한 대접을 받는 것과 같이 남에게 인정을 받는다. 조조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속마음이 시커멓기로 유명했지만 오히려 중원의 이름난 호걸들은 거기에 넘어가 그에게 승복하고 말았다. 따라서 속마음은 칠흙처럼 시커멓지만 얼굴은 투명하리 만치 밝다 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두 번째 단계에 도달하여도(물론 이전 단계와 천지 차이라고 할지라도) 자취를 드러내는 구체적인 형체와 색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조조의 시커먼 마음을 알아볼 수 있듯 관심을 갖고 보면 쉽게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제 3단계는 낯가죽이 두껍지만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시커멓지만 색채가 없는 것 이다. 이런 영역에 이르면 하늘마저, 후세 사람들마저 그 사람이 제 아무리 얼굴이 두껍든, 그 사람의 속이 제 아무리 시커멓든 두껍다거나 시커멓다고 여기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지는 아주 도달하기 힘든 것이다. 부득이 이런 경우는 위대한 옛 성현들 가운데에서 찾아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을 보면 옛부터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역사상 위대한 왕이나 영웅호걸, 성현들도 모두 이종오의 후흑학의 이론대로 행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이론을 생각해본다면 우리들은 세상을 좀 더 비판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라는 사람들을 보자면 이 후흑학을 통달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한다. 그러고 보면 이종오라는 작가는 새로운 이론을 펴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던 이론들을 찾아내어 자신의 이론으로 만든 것이다.『또 어떤 이가 물었다. 당신은 후흑학 을 그렇게 훌륭하게 얘기하는데, 그럼 왜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정작 보지 못하겠는거요?이 물음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한번 물어보겠소. 그래, 우리의 공자님께서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셨나? 그가 말한 소위 나라를 위한 정치라는 것이, 큰 제후의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도대체 몇 가지나 실행이 되었나?증자는『대학』을 저술하여 주로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평정하는 데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가 다스린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평화로운 세상은 어디에 있는가?자사는 『중용』을 저술하여 조금의 치우침도 없는 중화 단계에 이르면 천지가 제자리를 찾고 만물이 육성된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런 게 사실상 어디에 있는가?』이 단락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감이다. 대표적으로 공자를 들어보면 그 당시에 그의 주장은 실제적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너무 이상적이어서인지 공자가 추구한 단계까지 이르지 못했다. 작가는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또 그의 이론 중에서 「관직을 구하는 여섯가지 요령」이라든지「공무원의 여섯가지 지침사항」이라든지「일 처리의 두가지 비결」을 보면 정말 날카로운 그의 풍자에 미소를 짓게 된다. 민중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들은 많이 있지만 실로 오랫만에 가슴에 와 닿는 글을 본 것 같다.
진시황의 특수성에 대해..........中國. 중국을 말하자면 중국 앞에 붙는 수식어는 많다. 세계 최고의 인구, 그 장엄한 영토와 유구한 긴 역사 등등..... 그 중국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우리가 역사에서나 서적을 통하여 접한 인물들은 많다. 유방, 항우, 한무제, 진시황 등등 한때 중국사회를 풍미했던 인물들은 수없이 많았다. 여기서는 그중에서 최초로 중국을 통일시킨 진시황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진시황은 분열되었던 중국 땅을 그 자신만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통일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를 알아보려면 그에 대한 출생부터 알아보는 것이 순서이겠다. 기원전 260년 한나라의 적양성에 여불위라는 상인이 있었는데 그는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던 중 그는 진나라의 태자 안국군의 아들 자초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 인질로 와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초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접근하여 교분을 맺고, 조나라의 인사들과 교제를 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해준다. 여불위는 자초를 이용하여 정치적으로 출세할 목적으로 안국군의 부인들 중 가장 총애를 받고 있는 화양부인에게 자식이 없음을 알고 화양부인에게 자초의 이름으로 선물공세를 가한다. 이로 인해 자초의 이름이 화양부인의 기억에 새겨지고 주목을 받게된다. 또 여불위는 진나라 궁정의 여론을 자초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해 궁정대신들을 매수한다. 이와 같은 분위기 조성으로 자초는 화양부인의 적자가 되고 이에 왕위를 이어받게 된 장남 자계를 대신해서 자초가 후계자가 된다. 자초를 진나라의 후계자로 만든 여불위는 이에 더해 그의 애첩 주희까지 자초에게 주어 더욱 환심을 산다. 자초와 주희가 함께 진나라로 돌아간 후 아들을 낳았으니 이 아이가 여불위가 주희를 첩으로 삼았을떠 이미 잉태된 씨앗으로 그가 훗날 시황제가 된다. 자초는 안국군의 뒤를 이어 장양왕이 되고 여불위는 승상의 임명이 된다.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된 진시황은 후에 자신의 출생 배경을 알게 되고, 여불위를 추방시켜 자살케 하고 23세에 대관식을 거쳐 명실상부하게 왕의 권좌에 오른다. 그리고 정치에 관여하는 생모인 주희마저 음란하다는 이유로 연금을 시키며 천하통일의 대업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를 정리해보면, 진시황의 이름은 정(政). 조나라의 대상인 여불위의 공작으로 즉위한 장양왕의 아들로써 13세에 왕위에 즉위한다. 처음에는 태후의 신임을 받은 여불위와 노애가 권력을 농단하나 진시황은 노애의 반란을 평정하고 여불위를 제거한다. 그 뒤, 울요와 이사 등을 등용하여 강력한 부국강병책을 실시하여 한(韓),위(魏),초(楚),연(燕),조(趙),제(齊)나라를 차례로 매몰시키고 천하를 통일하게 된다. 통일 후 왕의 칭호를 황제라 칭하고 스스로를 시황제라 불렀다. 진시황은 태황의 태(泰)를 때어내고 황(皇)만을 취하고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오제에서 제(帝)를 택해서 황제로 칭하기로 했던 것이다. 삼황오제란 중국 고대전설에 나오는 인물로 삼황(三皇)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로 복희씨 여와씨 신농씨 세사람의 지도자를 말한다. 오제는 황제, 전욱, 곡, 순, 요라는 다섯사람의 성군을 가르킨다. 따라서 황제라는 말에는 진시황 자신이 삼황오제의 덕을 겸비한다는 뜻도 포함되어있다. 진시황은 군현제도를 확립하고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도량형, 화폐, 문자 등에 이르기까지 통일적인 제도를 마련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만리장성을 쌓아 흉노를 격퇴하고 남월을 정벌하여 인도차이나 북부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법가주의 정책을 사용하였는데 이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 분서갱유이다. 분서갱유는 시황제의 언론 통제정책으로, 당시의 유학자들이 주의 봉건제도를 찬양하고 시황제의 정치를 비난하자 사상통제의 필요성을 느끼던 중 승상인 이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여러 학자들을 체포하고 책을 불질렀으며 여러 학자 중에서 460명을 함양에서 생매장한 것이다. 앞에서 말한 진시황의 도량형, 화폐, 문자 등의 통일제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문자를 살펴보면 전국시대에 7웅은 각 나라마다 글자의 형태가 달랐다. 그 근본은 은나라의 갑골문에서 나온 것이지만 지역에 따라 달랐다. 진시황은 진나라에 소전(小篆)이라는 글자의 형태를 천하의 문자로 정하고, 나머지 문자들을 폐지시켰다. 폐지된 문자를 육국문자라고 하는데 분서갱유로 인해 소멸되었다. 같은 문자가 전국적으로 통용된다는 것은 전국적으로 의사소통을 도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국토통일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참된 뜻으로의 천하통일을 이루게 된 것이다. 진시황의 통일정책으로 또 하나 유명한 것은 바퀴 폭의 통일이다. 바퀴 폭의 차이는 전국적인 교통의 흐름을 저해시킨다고 여긴 시황제는 전국의 치도(馳道) 라는 도로를 만들고 차륜의 폭을 통일시켰다. 그에 따라 도로로 인해 각 지역의 교역이 번창하게 되었고 산업경제가 활성화되는데도 큰 힘이 되었다. 진시황이 도량형을 통일시켰다는 점도 아주 중요하다. 한 홉(合),한 되, 한 말이라든가 , 길이의 단위인 보(步), 장(丈)등이 각국에서 약간씩 달랐다. 그래서 전국의 도량형을 엄격히 통일시켰던 것이다. 화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진(秦)의 화폐가 전국에서 통일되었다. 이렇게 많은 개혁을 이루어내고 ,중국을 변화시킨 진시황은 통일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시도했다. 거기에 대조되어 진시황은 아반궁의 건설과 여산릉의 건설 등으로 300만 명의 무상노동 동원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정을 조달하기 위하여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였다. 과중한 조세부담과 , 가혹한 법과 형벌로 인해 진시황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 할 수 있었던 배경과 요인으로는 지리, 기후, 문화적으로 통일 된 정치를 필요로 했다는 부수적인 요소들과 정치적으로 법가사상에 기초한 부국강병책, 그리고 교묘한 외교정책의 복합적 상황들이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진시황은 지나친 강압정치로 농민 반란이 격화되어 멸망하게 되었고, 이후 한 고조의 유방의 통일로 이어지게 된다.
관 람 소 감 문 공 연 예 술 론이상 열 셋까지 세다 를 보고... 이 연극을 본 나의 느낌은 한마디로 신선함과 충격이었다. 연극에 약간의 관심이 있었던 95년도 1학년 때부터 자주는 아니더라도 1년에 4편 정도의 연극을 관람했었다. 그래서 연극이라는 예술이 영화보다는 훨씬 더 현실적이고 배우와 관객이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안다.하지만 이번 연극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연극에 대한 관념을 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연출이나 작가가 의도하고 배우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쉽게 선뜻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 가운데 내가 느낀 극의 주제는 뭐랄까 극중 이상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들이 깨닫지 못한 가치, 즉 무엇을 위해 살아가느냐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무엇보다도 신선한 물을 찾아가는 이상의 행동에서 더욱 크게 느껴졌다. 이 주제가 연출과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느낀 극의 주제는 이것이었다. 유독 이상은 물에 대해 집착을 하는데 그 물에 대한 의미를 이상은 관객들에게 쉽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물뿐만 아니라 과거의 이상이었다가 다시 현재, 다시 말해 콜라나 홍콩영화가 영상으로 등장하는 현재로 왔다 갔다 하며 시공을 초월하는 극의 구성은 관객들로 하여금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제공한다. 한편으로는 이상의 혼란을 관객들로 하여금 같이 동참하도록 하는 작가나 연출가의 의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내가 알고 있는 이상은 천재라는 것과 시인이라는 것, 그리고 혼란 속에 몸부림을 치다가 요절했다는 것 외에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극을 보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이상에 대해 생각해 보면 천재이기에 느낀 갈등과 혼란 속에 이상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극은 지금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간들,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인간들을 묘사한 것이라고 느껴진다. 아울러 그런 인간들에게 삶의 의미에 대한 화두를 던진 것이라고도 생각되어진다. 극을 보고난 후 극의 주제에 대한 생각은 대강 이렇고 이제 극의 주제를 나타내기 위해 설치된 무대 분야에 대해 느낀 것을 말하려 한다.실험극... 실험극이란 단어의 명확한 의미는 잘 모른다. 하지만 기존의 극의 요소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방향에서 다른 각도에서 연출한 극이라고 생각된다.의 무대는 내게 신선함을 주었다. 솔직히 신선함보다는 내가 접해보지 못했던 형식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코러스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무대위에서의 자유로운 모습이라던가, 무대에서 등퇴장이 빈번하고 자유로운 해설자등은 내게 연출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느껴진 것 같다. 그리고 연극은 배우 자신의 복식호흡을 통한 발성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나에게 배우들의 마이크 사용은 역시 거부감이었다. 물론 극을 보며 마이크가 등장하는 일부 부분은 배우의 숨결까지 느껴지면 생생한 감정을 전달 받을 수 있었지만 너무 마이크의 사용을 남발하지 않았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대형무대도 아닌 소극장에서 연출자가 의도한 연출이 아니라면 무대에서의 마이크 사용은 자제했으면 하는 것이 관객으로서 내가 갖는 생각이다. 무대 디자인 분야에서 영상을 사용한 것은 전에도 몇 번 보았다. 하지만 그때는 영상이 극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에서는 영상이 관객에게 연출자의 의도를 피력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큰 부분으로 등장하였다는 것이 획기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 점에서는 실험극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여기에 배우가 직접 무비카메라를 들고 나와 서로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로 영상을 통해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 또한 배우의 감정 상태나 이상의 감정의 혼란 상태를 관객의 입장에서 더 적극적으로 느끼도록 도와준 것 같다.음향이나 조명 부분에 있어서는 관객의 입장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공연 도중에 음향기계의 조작하는 소리의 실수는 자칫 극에 몰두하는 관객의 감정흐름을 깰 수 있는 치명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전에 본 연극에서의 이런 실수는 관객들로 하여금 극에 대한 평가를 절하시킨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볼 때 에서의 음향은 극의 흐름을 도와준다는 점에서 비교적 매끄럽게 되었다고 느껴진다. 다만 중간 중간에 나오는 음악에 배우들의 대사나 행동이 묻힌 부분이 없지 않아 안타깝게 느꼈다.조명 부분에 있어서도 빛의 혼합이나 조명 구역의 설정이라던지, 빛의 세기 등을 보았을 때 비교적 멋있는 조명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명은 분장과 적절히 어우러져야 관객들로 하여금 부담 없이 배우를 바라볼 수 있다고 알고 있는데 에서는 연극의 진행 도중 배우의 표정이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이는 분장과의 조화가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내가 극을 보면서 가장 불만(?)이었던 부분은 소품 분야이다. 실험극이라는 것을 내 생각에 전제로 깔고서 보았는데도 빈번한 소품의 등장과 소품을 이동시키는 스탭들의 실수는 연출자가 의도한 극의 주제를 반감시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대 디자인은 비교적 단순한 반면 그 점을 소도구로서 보충하려는 것이라고 느껴졌는데 너무 다양한 소도구들이 등장하여 조금은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었다고 본다. 내가 스탭이라고 말한 사람들도 무대에 나와 있으니 배우라고 할 수 있다.
부모교육과제: 자녀교육에 관련된 도서를 읽고 감상문을 제출하라 (딥스를 읽고......)딥스, 이는 주인공아이의 이름이다. 이 책의 내용은 주인공인 딥스가 바보로 취급받다 못해 정신병 환자로까지 몰릴 뻔했는데, 이 책의 제자인 액슬린 여사의 사려 깊은 도움으로 마침내 천재 아동의 본질을 유감없이 드러낼 만큼 변화해 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딥스가 유아학교를 거의 2년간 다니고 난 후 부터 이다.딥스는 처음에 전혀 말을 하려 하지 않는다. 한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오랜 시간동안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거나, 선생님을 피해 다니며 교실안을 기어다니기도 한다. 딥스의 의사 표현은 가끔 상태를 할퀴거나 성을 내는 경우이다. 딥스를 가르치는 교사나 심리학자, 의사들은 물론 부모조차도 딥스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암담하기만 하다. 딥스의 상황에 대해 천성적인 저능아인지 아니면 어릴 때 부터 길러진 정신적인 병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뇌에 이상이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를 액슬린 여사가 행한 능숙한 놀이 치료로 처음엔 그렇게 상처받아 병들었던 딥스를 명석하고 능률적인 아이로 변화시킨 것이다.이 책은 나로 하여금 자녀 교육에 대한 어려움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아이의 행동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과 의사 표시만 다를 뿐 어른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또 다른 책들이 주장하는 바와는 다른 새로운 점이 있다면 정신적인 장애를 지닌 어린이를 치료하는 동시에 그 아이의 부모의 정신 위생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은 기존의 정신 장애를 가진 아이를 치료하려면 먼저 그 아이의 부모를 성공적으로 치료한 후에라야 한다는 사고 방식에 반대되는 개념이다.액슬린 여사의 아이 치료 방식에서는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많다. 그녀는 딥스가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심리적인 독립심을 얻음으로써 진정 다시 찾게 될 그의 능력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만 있다는 것을 느끼기를 바랬다. 일방적인 주입식 치료가 아닌 스스로가 자신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녀의 생각 중에서 나의 맘을 크게 움직인 것이 있다. 그녀는 놀이치료와 같은 정신 치료를 가치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가 자기 자신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느끼고 자신의 생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데 있다고 본것이다.그녀는 또 딥스에게 사람들과 사귀는데 있어서 두 가지 중요한 진리가 있음을 깨닫게 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첫째로 이 세상에는 누구든지 자기 자신만큼 자신의 내적인 세계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것, 둘째로 책임감 있는 자유의식은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부터 자라고 발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 말은 내가 보기에 다른 사람들이 가진 인격, 권리, 다른 점을 이해하기 전에 마음속에 끊임없이 자라나는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자기를 존중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갖게 되는 것을 먼저 배우도록 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교사들의 위치와 책임은 막중한 것이다. 왜냐하면 교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지식이나 은연중의 것들도 아이들이 살아가는 방법들일 것이고 아이의 특성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아이들의 특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교사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이 책의 일부분을 예로 들면 딥스의 아빠는 도무지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딥스의 사고방식과 의견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딥스는 아빠와 얘기해 보려고 애썼지만 아버지는 그 것을 쓸데없는 지껄임이라고 일축한 것이다. 어린아이인 딥스도 이에 대해 인격적인 모독감을 느낀 것이고 딥스 나름대로 생존하기 위해 내적인 강인함을 길러준 것이다. 이와 같은 딥스의 성격이 형성된 데에는 부모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나도 몇 년 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질 예비 부모로서 느낀 것은 자녀의 행동 속에는 반드시 어떠한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들이 어린아이를 사랑할 수 없고,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의 이유가 그들의 성격 같은 것에 기인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아이는 어린 묘목이라고 느껴진다. 얼마나 정성껏 하느냐에 따라 잘 자라고 못 자라는 것이 판가름 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잘해 줘야 겠다는 생각에 필요 이상으로 비료룰 준다면 그 묘목은 머지 않아 말라죽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자녀의 교육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방법적인 측면에서 부모들이나 어른들의 많은 연구와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책의 중간에 보면 딥스가 놀이방 한쪽에서 보이지 않는 거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가 나중에 지나가는 말로 그들의 존재를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아이들이 그들의 주의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하여 얼마나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른들도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모두 말하지는 않는다. 이 부분은 아이들도 그 사고의 폭만 어른에 비해 작다 뿐이지, 어른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바꿔 말하면 어른들은 자신들의 잣대에 맞춰 아이들을 생각하고 과소 평가한다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경험으로 봐서도 어린아이들의 생각을 무시하고 과소 평가한 적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 책의 중간에 어린 딥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인물로 나이 많은 정원사 제이크가 나온다. 액슬린 여사는 딥스와의 대화 속에서 제이크의 이해심과 따뜻한 친절이 딥스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아이에게 이해심과 친근한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엄마, 아빠와는 대화를 나누지도 않고 적대시하지만 할머니와는 그렇지 않게 지내는 딥스를 보면 더욱 확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