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하에서 천산까지- 소수(?)민족이 아닌 중국 내 이민족의 이야기 -21세기 동아시아의 패권은 누가 잡을까? 많은 이들의 시각은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오랜 역사유산과 더불어 광활한 영토와 세계 최고의 인구수를 자랑하는 중국이 경제, 군사 대국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진출했고 지금도 진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로 한국 내에서는 중국어 붐까지 불어 중국어배우기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 나 역시 졸업 전 취업준비와 더불어 중국어를 한 학기 동안 공부하기도 했었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중국의 숨은 잠재력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중국에 대한 지식은 아직도 아주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의 동부 연안의 몇몇 대도시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중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도 이른바 중원지역을 넘어가지 못했다.중국의 광활한 영토는 그보다 더 서쪽으로 그리고 북쪽으로 이어져있다. 지금의 중국 영토가 확정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언젠가 중국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다가 중국의 과거 지도를 보면서 ‘ 에이, 생각보다 작네..’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물론 한국 특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남한만을 비교로 놓고 본다면 엄청나게 큰 나라이지만 흔히 사람들이 하는 말과 책 속에서 그려지는 광활한 중국 영토치고는 사실 조금 작게 느껴졌었다. 그러다 현대 중국의 지도도 보게 되었다. 과거 수많은 영광을 지녔던 시대보다 더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던 것일까? 2차 대전과 공산주의 사회를 겪으면서 어떻게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된 거지? 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었다. 그 중간의 자세한 역사적 사건들이나 배경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이 책을 보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중국 지형이 나타나기 까지는 수많은 민족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책은 그 중 4개의 중요한 소수민족에 대해 논하고 있다. 티베트족, 회족, 몽골족, 그리고 위구르족이다. 오늘날 중국에는 공인된 소수민족만 50개에 이른다. 공인되지 못한 소수민족까지 일일이 따지자면 그 수는 더 많아진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와 같은 핏줄인 조선족도 포함이 된다. 그 중 많은 민족들이 중국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자기의 땅과 나라를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은 그들이 한족사회에 편성되기까지에 얽힌 희생의 역사를 담고 있다. 사실 소수민족이라는 말도 처음에 누가 쓴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중국 내에서 그들을 칭하는 말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라고 나름의 추측을 해본다.) 이 말의 의미에도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음을 느낀다. 단순히 수가 적어서 소수민족으로 분류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본인들의 주권을 행사할 수 없는 권력의 부재로 인한 지칭인가? 작가의 글에도 나오지만 소수민족의 역사는 다수민족에 의해 씌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도 어느 정도 이미 결정이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가 일본에 의해 왜곡된 것에 대해 얼마나 분개하였고 우리의 역사와 영토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중앙아시아에 속한 여러 소수민족들에 대한 글은 과거 우리도 단순히 국사책의 한 귀퉁이도 차지하지 못하는 돌궐족, 말갈족, 여진족 등등의 이름으로만 들어왔지 그 곳에 있는,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우리 민족의 역사와 수난에 대해 분개하듯이 그들도 그들 민족에게 가해진 핍박과 고통에 대한 애환을 가지며 자신의 나라도 아닌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을 이 책을 보면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서론이 생각보다 길어졌지만 처음에 책을 선택할 때는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어차피 모두 중국과 관련된 책들이고, 그 중에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실크로드나 칭기즈칸 혹은 중국 문화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물론 다행인지 운인지 모르겠지만 이 황화에서 천산까지의 가는 길 자체가 실크로드라 불리는 길과 바로 연결되다 보니 실크로드의 역사를 본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 되었다. 순전히 책의 질(내용 외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요즘은 책의 질도 책을 선택하는 데 꽤 많은 비중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종이 질이 좋다보니 책이 크기에 비해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말이다.)과 많은 사진들, 그리고 달라이 라마에 대한 첫 부분의 이야기 그리고 머리말에 쓴 작가의 글을 보고 마음을 정하였다."우리는 곧잘 강한 자와 강한 민족의 역사에 매료된다. 위인과 영웅의 생애를 즐겨 읽는 것은 어쩌면 우리 내면에 '권력에의 의지'가 꿈틀거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세계제국을 건설하고 지배했던 파라오나 시저 혹은 칭기즈칸을 읽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진정한 강자는 약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약하고 짓눌려 온 민족들의 비가를 들려주고 그들이 소중하게 간직하려 했던 신앙의 자취를 보여 주고 싶었다. 그것을 듣고 공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단지 오늘날의 중국을 더 깊이 이해한다는 차원을 넘어, 우리 민족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이 시대에 존재하는 수많은 약자들을 외면하지 않는 참된 마음의 넓이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왠지 꼭 나의 평소 역사를 대하는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는 말로 느껴졌고 또 나를 꾸짖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읽으면서 확실히 많은 부분 그들 민족들과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에 분개하고 감동과 비애를 느끼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이미 지금 내가 느낀 것을 알고 있었고 깨달았기에 이런 글들이 나온 것이라는 생각에 더 속도감 있게 흥분하며 책을 읽어 나간 것 같다. 글은 담담한 어조로 회족, 몽골족, 위구르족과 티베트인들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며 그들의 지금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열광적인 어조도 아니고 과장스럽지도 않은 담담함이 베어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런 심각한 역사 이야기를 작가의 시선을 따라 어렵지 않게 부담되지 않게 따라가며 읽게 만드는 것도 역시 작가의 힘이구나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작가가 서두에 밝혔듯이 학술적 장치들을 배제한 작가 느낌 그대로의 글은 받아들이는 독자에게도 상당히 큰 감동과 공감을 준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기회이기도 했다.이제 책의 실제적 내용을 살펴보자. 책은 전부 4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1장 라싸로 가는 길부터 2장 청진의 세계, 3장 초원의 노래, 4장 성묘를 찾아서 까지가 황하에서 천산까지의 여정이다. 각 장은 네 소수민족 각각의 역사와 오늘날의 이야기가 실려 있고, 조선족 출신 화가 한락연의 그림으로 각 장을 구별해 놓았다. 그 그림들은 화가 자신이 자신과 유사한 위치에 처해 있던 소수민족인 티베트족, 위구르족, 몽골족 등의 삶을 담아 그렸으리라 짐작된다.1장은 티베트족의 역사와 오늘의 모습이다. 특히 티베트 독립 문제를 역사적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중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티베트인들이 왜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2장인 영하의 회족에 대해서는 특히 1719년 출생하여 1781년에 처형된 마명심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내부의 분란으로 인해 청정부의 개입을 불러 약 8천여 명이 피살된 마명심 사건은 호메이니 혁명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데, 여기서 작가는 마명심에 대한 관심이 자신의 은사인 플레처 교수의 못다 이룬 유업에서 비롯되었음을 회상하고 있다. 3장에 나온 민족은 몽골족이며, 마지막으로 애정을 갖고 본 것은 신강 위구르족이다. 내외몽골로 분단 상황에 처해있는 몽골의 간고한 역사와 마찬가지로 한민족 국가와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갈등을 겪어온 위구르족의 비애를 향비라는 한 여인을 통해 서술하고 있다.당연히 중간 중간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들이 있다. 원래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에는 관심을 조금 가지고 있었었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나와 있는 그들의 삶과 달라이 라마의 어원, 그리고 그들의 고난의 시작과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도 버릴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특히나 그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긴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초대 달라이 라마의 전생들에 대한 얘기는 나에겐 아직도 이해되지 않지만 더 접근해 들어가 보고픈 영역의 문제였다. 물론 종교적 믿음의 대상조차도 중국의 개입으로 인해 정치적 이용도구로 이용되고 지금도 민족의 독립을 위한 망명의 길을 걷고 있는 현실이 있지만.소수민족에 대한 역사를 읽다보니 자연스레 그들과 연관된 중국의 역사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무리 큰 영토와 많은 힘을 가져도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욕심으로 강자의 위치에 서게 된 중국이라는 나라의 힘을 과거에도 그랬고 독립적 국가의 위치에 있는 현재에도 무시할 수 없다. 이를 작가는 동양적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로 표현을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작가는 지도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아마도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의식의 전환, 고정관념의 파괴와도 연관되리라 생각하고 또 당연히 그럼으로써 작가나 나 역시 강자의 입장이 아닌 현재 약자의 위치에 있는 그들의 시선으로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을 것이다. 앞에서도 인용하였지만 작가의 말처럼 역사란 것이 강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서술하고, 다수민족인 소수민족을 정의내리는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작가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직접 실천한 것처럼, 그리고 우리도 그들의 시선에 따라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위대한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 실제로 살아 숨쉬는, 살아 숨쉬었던 많은 ‘사람’, 즉 인간이 있었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마왕퇴한묘(馬王堆漢) 발굴을 보고....아침부터 이 대후부인의 시신을 해부하는 장면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보아서 그날 속이 좀 안 좋긴 하였지만, 평생에 다시 볼 수 없는 진귀한 장면이란 생각으로 열심히 보았다. 그리고 단순히 200년 동안 썩지 않은 미이라의 발굴뿐만이 아니라 능묘 안에 함께 부장되어 있던 부장품들의 발굴도 엄청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보고서를 쓰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니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었다. 화면에서 소개된 부장품들은 다른 자료들에서도 중요하고 놀라운 것들로 인정된 것들 위주로 보여준 것 같았다. 화면 보느라 내용 적느라 정리가 제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나의 눈에 띈 것들만 우선적으로 나열해보면, 당시의 식품종류들의 발굴, 과일과 육류, 특히 벼가 많아서 당시의 벼 재배 수준이 상당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고, 대나무 상자나 칠기, 칠기는 마치 새것과 같이 잘 보존되어 있었으며 채색 칠기와 거기에 송곳으로 그려 넣은 섬세하고 정밀한 그림들과 엄청난 고가의 비용들을 생각해 본다면 대단한 발굴이 아닐 수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또한 대후 부인의 시신을 싸고 있던 비단을 비롯한 1400여점의 비단방직물들, 특히나 이 비단의 질이 현재 우리의 상상 이상이라 무게가 28그램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또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화면에 나온 말을 그대로 빌자면 ‘얇기로는 선옷과 같고 가볍기로는 안개와 같다’라고 하니 그 당시 중국의 방직 기술이 현대의 우리가 흉내내기도 힘들 만큼 대단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676명의 사람 토기도 보였는데, 이는 대후 집안에서 부인을 보시던 사람들을 재현한 것으로 보이며 15명의 관리와 9명의 환관과 하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이제 가장 하이라이트 부분인 대후 부인의 미이라에 대한 얘길 해보려 한다. 그녀의 키는 154cm이고 몸무게는 33.3kg으로 겉으로 보인 외형의 모습은 정말 완벽에 가까웠으며, 특히 그 머리카락과 손, 발톱의 완전한 형태 보존과 팔을 드니 관절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그 모습은 내 온 몸에 소름이 돋기에 충분했다. 뇌를 해부하고 배를 갈라 내장기관을 해부해보니 시신의 여러 내장기관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으며 식도와 위, 소장에는 100여알의 참외 씨가 나와 이 대후부인이 참외가 열려 있을 무렵에 사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나이는 50세 전후로 담석통으로 유발된 동맥경화로 인해 사망했다는 것을 다른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밝혀냈다고 한다. 이쯤까지 보고 드는 생각은 당연히 대체 어떻게 완전한 시신의 보존이 이뤄졌을까하는 점이다. 화면에서 나온 것과 나레이션을 토대로 추정해보면, 우선 그녀의 시신이 있던 묘는 진흙층에 묘의 아래층은 석사층으로 빛이 단절되어 있었으며, 습기 방지용의 목탄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요실을 견고히 여러 겹으로 밀봉하고 시신을 비단요와 이불로 꽁꽁 싸서 최대한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였던 것 등이 2000년이 넘도록 대후부인의 시신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남아 있는 시신도 대단하지만 황제 밑의 한 승상의 부인의 묘가 이 정도인데 대체 황제나 그 일가의 묘는 어떠할지 도저히 상상이 안 될 뿐이다. 사실 진시황릉의 묘 역시 지금 발굴된 것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일 뿐이라고 하니 말이다.다음으로 가장 마지막부분에 나온 것으로 또한 내가 생각하기에, 그리고 교수님께서도 가장 관심을 가지고 따로 설명도 해주셨지만 지금 우리가 배우려는 부분과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는 부장품들이 나왔다. 10만여 장의 백서와 목독, 죽간들 그리고 백서가 출토된 것이다. 이것들을 토대로 진한서체에서 예서, 전서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의 서체를 알 수 있고, ‘도인도’를 통해서는 당시의 체육운동이나 의학보건체조가 어떻게 이뤄졌는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오래된 천문서적인 ‘오성점’이 발굴되어 5대 행성의 위치와 주기의 정밀 측정, 구름, 무지개, 항성, 해성 등을 관측한 기록과 29개의 해성을 그린 그림 등을 볼 수 있었다. 이는 당시의 예술 수준만큼이나 과학의 수준도 우리가 생각한 이상으로 발전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나온 ‘백화’는 교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묘주가 죽고 나서 제사를 지내고 그의 혼이 올라가는 그림을 그린 것으로 당시의 신화 사상에 기반을 둔 그림으로 보였다. 9개의 태양과 태양 속의 금오(예전에 신화를 좋아해 찾아보다가 삼족오를 자주 본 적이 있는데 그와 흡사한 그림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삼족오에서 발달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까만 새가 태양의 흑점이라는 건 아무래도 어불성설인거 같고 그냥 태양 속에 살고 태양을 움직이는 삼족오에서 발전된 형태인 것만 같다.) 그리고 달 밑에 있는 두꺼비와 땅을 받치고 있는 거인 등의 그림의 세부묘사를 하며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의 모습, 하늘과 땅, 그리고 지하(죽은 이들의)의 모습에 대한 사상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제 2장 노예제 사회의 대두퓌스텔 드 쿨랑주; 노예제는 사회의 기원과 함께 출현한 하나의 원초적 사실이었다. 그것은 모든 불평등들이 그 나름의 존재 이유를 지녔던 시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핀리;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우리가 아는 한 각기 독립적으로 이 같은 원초적 사실을 세계 역사상 새롭고도 전적으로 독창적인 어떤 것, 그리고 전체 역사를 통틀어 희귀한 어떤 것으로, 즉 농촌과 아울러 도시들에서 노예 노동의 대규모 고용을 하나의 제도화된 체계로 전환시켰다.노동1. 자기 자신을 위한 노동 : 개인적 의미와 어떤 특정 사회에도 해당될 수 있는 핵가족 내지 대가족을 포함하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2. 타인을 위한 노동 : 타인들이 산출물의 일부를 취함은 물론, 개인적으로건 아니면 대리인들이나, 관리인들을 통해서건, 행해진 일과 그 일이 행해지는 방식을 관례상으로 그들이 직접 지배함을 뜻한다.3. 고대로부터 있어온 개인이나 가족의 능력을 넘어서는 필요에 의한 노동력은 농업이나 광산, 공공사업 혹은 무기제조 등에 있어서 직접적 협동에 적합하지 않은 온갖 목적들 혹은 이익을 위해 강제적으로 얻어진다.4. 이러한 강제는 고용노동의 배후에 놓여 있는 강제와는 다른데, 고용노동은 인간 자신으로부터 인간 노동력의 개념적 추상을 함축한다. 임금 노동자는 또한 그가 피고용자가 될 때 그의 독립성의 일부를 넘겨주지만, 그러한 상실은 노예들이나 농노들이 당하는 상실과 같은 것으로 분류될 수는 없다.5. 초기 사회들에서 자유로운 고용노동은 산발적, 임시적, 주변적인 것이었다. 그 연휴에 노동력은 시장에서 주요한 상품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노예제에 있어서는 반대로 노동자 자신이 상품이다. 그러한 점에서 노예는, 비록 예컨대 가장 억압적인 종류의 농노제나 징역노동과 중첩되기는 하지만, 노동의 유형들 가운데서 독특하다. 따라서 노예와 임금 노동자는 각기 타인을 위한 노동의 양극단에 위치한다.6. 그러나 오히려 노예들과 다른 유형들의 강제노동 사이에 있다.노동 유형들에 대한하게 된 객관적 근거들을 밝혀주는 일반적 이론은 사실상 없다.........노예들과 여타의 모든 구성요소들 간에 범주상의 구별을 허용하는 어떠한 공식적 기준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3. 역사상 나타났던 여타 형태의 강제노동에 대해서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우리가 그 명칭들을 현대 서유럽 언어들로 번역할 수조차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처한 곤란의 심각성을 드러낸다.4. 디아코노프 - 고대 초기의 노예들, 헤일로타이, 농노들: 주요한 점들에 대하여 두 유형의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차이점이 없다. 즉, 둘 다 경제 외적 강제에 의하여 착취되며 둘 다 생산수단이 되는 소유물을 전혀 갖지 못하였다.5. 온갖 형태의 비자발적인 노동이 형식상 하나의 단일한 범주로 분류될 수 있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유용한 분류인가? 디아코노프가 주장하는 것처럼, 경제 외적 강제와 생산 수단에 대한 소유권의 결여로서 주요한 점들이 다 얘기된 것인가?디아코노프의 단순한 도식에 대한 비판① 헤일로타이들이 집단적 예속자들, 즉 예속 아래 놓이게 된 전체 주민 혹은 주민들인데 비해, 채무긴박자들과 노예들은 개별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씩 예속 상태로 전락한 사람들임은 거의 논란의 여지가 없다.② 동산노예들 이외의 다른 모든 범주의 강제노동이, 정도는 다르지만 제한된 재산권을 지녔고, 결혼과 가족법의 영역에서 대체로 훨씬 더 폭넓은 권리를 보유하였음도 똑같이 확실하다.6. 강제노동의 유형들간에 놓여 있는 차이를 강조하는 데 대한 반론에 대한 반론: 분류들이란 하나의 분석도구로서, 어느 쪽이 그와 경쟁하는 다른 분류들보다 더 혹은 걸 유용한가 하는 점만이 생각될 수 있을 뿐이다. 현재의 맥락에 있어서 문제는 그러한 구별들이 노예제 사회의 대두, 즉 해당 지역에서 여타 형태의 강제노동들이 동산노예제로 대체된 데 대한 이해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따라서 곧바로 노예와 노예제에 대한 보다 상세한 검토로 나아가보겠다.노예와 노예제1. 하나의 상품으로서의 노예는 재산이다. 노예다. - 고대 라틴어 erus의 사용에 함축된 노예, 재산의 독특성에 따른다. 노예는 가축과 같은 재산의 하나와 다르지 않았다.2. 노예 소유주의 권리들에 대한 법률적 제약들도 또한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이다. 노예 소유주의 노예에 대한 권리는 언제나 일방적인 것이었다. 그 점은 결정적인 사실이다.3. 소유물로서의 노예가 갖는 이 같은 특성이야말로 소유 계급에게 여타 형태의 강제노동에서는 얻을 수 없는 융통성을 제공하였다. 그것이야말로, 노예에 대한 규정이 법률적인 범주이고 그래서 그 자체만으로는 노예에 대한 충분한 정의가 아님을 강조하는 이유이다.4. 자신의 노예 소유물에 대한 노예 소유주의 권리는 한 가지 이상의 의미에서 절대적인 것이었다. 노예는 노예가 됨으로써 비단 자신의 노동에 대한 통제력의 완전한 상실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신과 개성에 대해서도 완전히 상실당하였다.5. 노예제의 독특성은 단지 그의 노동과 노동력만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이 상품이라는 사실에 있다. 또한 그의 통제력의 상실은, 만일 그의 소유주가 일방적인 행동으로써 무조건적인 해방을 통해 고리를 끊어버리지 않는 한, 그의 자식들과 자식들의 자식들 등 무한정으로 연장된다.6. 노예 소유주가 갖는 권리의 완전함은 노예가 항상 뿌리 뽑힌 외부인이었다는 사실에 의해 보강되었다.① 노예가 노예로서 끌려온 사회의 외부 출신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하며, ② 그가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유대인 혈연관계를 거부당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7. 노예제의 세 가지 요소들 - 소유물로서의 노예의 지위, 노예에 대한 권력의 완전성, 그의 무혈족 - 은 노예 소유주에게 다른 형태의 비자발적 노동에 비해 강력한 장점들을 제공하였다. 즉 노예 소유주는 자신이 보유한 노동력을 이용하는데 있어서 더 많은 통제력과 융통성을 가지며, 원치 않는 노동력을 처분할 수 있는 훨씬 더 큰 자유를 가진다.달리 표현하자면, 노예들은 논리적 계급이요 법률적 계급이었던 것이지, 그 용어의 통상적인 의미로 볼 때 하나의 사회적인 계급은 아이 개개 노예들이라고 하는 원초적 사실로부터 노예제 사회로의 전환을 초래하였으며, 무엇이 결국에 가서 그러한 과정의 반전을 초래하였는가?노예제 사회로의 전환1. 그 과정은 복합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결같지 않으며, 어느 의미에서는 불완전하였다. 자유인 노동과 노예 노동의 공존은 공간상의 일치 그 이상의 공생관계라 할 수 있었다.2. 개별 공동체들이 비교적 작고 자기폐쇄적이며, 단일한 구조 내에 도시 중심부와 농촌배후지를 포함하는 그리스어의 폴리스로 남아 있었던 한, 노예제와 여타 형태의 강제노동은 공존하지 않았던 것이 통칙이었던 같다. ex) 펠라타이, 헥테모로이 ⇒ 솔론의 개혁이후 노예들( 혹은 자유민 소농들)로의 대체, 헤일로타이의 존재는 노예의 불필요를 초래3. 그 외 지역은 혼합된 체제가 나타났으며, 그 후대에는 순수한 노예제가 발달한 것으로 믿기로 하자. ( 핀리 왈(曰) ‘믿을 수는 없지만, 아무튼 믿기로 하자.’ )- 흑해 연안과 소아시아의 여러 지역들, 알렉산더 이후 그리스-마케도니아 지역, 로마 -시칠리아4. 그러나 자유민 소자영농들과 장인들이 모든 정치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가 존속하였다는 사실과 함께 그렇다고 해서 속주의 농촌 지역에 노예들이 없었음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컨대, 노예들이 존재했던 사회들과는 구별되는 노예제 사회들이 후에 로마제국이 된 모든 지역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5. 상이한 노동제도들과 생산양식들이 공존하였으며, 경제적으로 보다는 정치적으로 한데 묶여 있었던 구조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로마 노예제의 발전에 대한 설명은 그 자체가 적어도 초기에는 그리스, 이탈리아, 그리고 시칠리아에 국한되며 그것이 곧 내가 설명하려고 하는 대상이다.당시 노예들의 위치- 한 사회에서 노예들의 위치에 대한 평가는 그들의 총수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소재의 문제이다.1. 그들의 소유주가 누구인가? 경제에서( 비단 경제에서만은 아니지만) 그들이 수행한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2. 모든 직종들은 노예들과 들은 피고용인이 아니었으며, 스스로 노예들을 고용하였다. 농촌에서건 도시에서건 가족단위보다 큰 모든 그리스 혹은 로마의 작업자들에서 영속적인 노동력은 노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4. 자유인들은 도시에서의 소규모 상품생산과 소규모 교역뿐만 아니라, 소규모 농업을 지배하였다. 반면 노예들은 농촌과 도시 양 부문에서 대규모적, 사회적, 정치적 엘리트들의 자산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나오는 수입의 대부분을 제공하였다.결론1.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러한 희귀한 현상이 초래되었는가?1. 관례적인 출발점은 거의 항상, 초기의 단순한 사회들에 있어서 상이한 부족들과 민족들 사이에 존재했던 것으로 생각되어 온 자연적 전쟁상태였다. - 노예제는 야만적인 전투양식의 완화였다 : 퓌스텔의 원초적 사실2. 고대사가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전쟁과 정복이 노예제 사회의 발생에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로마에서 상당히 오래전에 있었던 노예제의 성장을 보지 못한 데서 야기된 것이다. - 기원전 3세기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의 엄청난 도약과 더불어 새 제도의 도입과 그것의 확대, 발전과정이 있었으며, 이것들을 혼동하여서는 안 된다. 전쟁 후 처음으로 상당 규모의 노예 노동을 고용하는 관행에 빠져들었다는 식의 주장도 어불성설이며, 그전부터 이런 식의 노예 노동이 있어왔었을 것이다.3. 또 하나의 접근이 가능하다. 기원전 4세기와 3세기에 부유한 로마의 지주들이 있었으며, 또한 그들은 일하는 농민이 아니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토지를 누가 경작하였는가? - 겔처 : 노예 노동의 사용이 그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소농들보다 유리한 입장에 서게 하였다.4. 또한 당시 전쟁 동원인원을 보아도 이미 상당 규모로 그들의 징집을 가능케 할 만큼의 충분한 노동력을 제공할 노동력이 있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5. 물론 로마 노예제의 역사에 있어서 정복의 특별한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복의 본질적인 역할은 ①대영지들의 기반 창출과 그에 수반하여 ②그것이 된다.
둘 다 어린 시절에 무수히 읽어보았던 글들이다. 어린 왕자는 따로 말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누구나가 한권씩은 가지고 있는 책일 것이며, 빨간 피터는 고등학교 때 괜한 무게감과 겉멋에 이해도 못하는 카프카의 책에 빠져 있을 때 그냥 읽어보았던 책이다. 대학을 오고 시간에 쫓겨 잊고 지내다 지금 다시 읽고 나서 느낀 것은 어렵다는 거다. 뭣 모르고 읽었던 시절에는 마냥 쉬웠다. 왜 이런 얘기들을 사람들은 어렵다고 하는지, 그냥 흔한 아름다운 얘기 혹은 동화 같은 얘기인데 이렇게 유명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지금도 그다지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은 다르다. 너무 어렵다. 그리고 교수님이 말하시는 둘 사이의 차이라는 것이 과연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맞는지 그리고 이렇게 내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를 하는 것이 이 두 작가가 글을 쓴 이유였을까 하는 궁금증 등등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럽다. 결국 내가 하는 이 생각들도 인위적인 만들어내기가 아닌가.어린왕자는 아련한 아픔 같은 것이 느껴진다. 흔히들 어린왕자에서 가장 손에 꼽는 구절이라면 꽃과 여우에 관련된 부분일 것이다. 물론 그 부분이야말로 인간관계 혹은 만들어지는 모든 관계에 대해 가장 완벽하고 모두가 공감할 정의를 내려준 부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픔이 느껴지는 이유는 실제 우리 사회의 만남과 관계가 어린왕자와 여우의 관계가 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중고등학생 때 읽었을 때 그나마 쉽게 다가왔던 것은 그때는 지금 내가 맺고 있는 이런 관계들을 생각도 할 수 없었고 할 필요조차 못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어린왕자에 열광을 하고 또 거기에 있는 글들처럼 이루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아름답다고 말을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반면 빨간 피터는 다르다. 피터는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간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피터처럼 우리 의지에 의해 보다 더 ‘인간다워’지려 하고 있다. 카프카는 피터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이중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피터를 통해 본 인간, 피터와 같은 인간! 피터는 인간을 구별하기가 힘들다고 그랬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 누가 오든지 누군지 구별이 안 된다고 말이다. 거리를 나가보자. TV속에 나오는 화려한 연예인의 모습을 보며 요즘은 나도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가 힘이 든다. 모두가 같은 겉모습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힘이 없는 눈을 가지고 있다. 피터는 자유를 찾으리라는 기만을 하지는 않았지만 탈출구를 원했고 그것을 위해 인간이 되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인간이 되면 탈출구를 찾을 수 있는 걸로 알았던 걸까? 인간이 되는 길이 바로 탈출구라 여겼던 걸까? 그건 지금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피터는 생각을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본인과의 합의, 타협을 아주 잘 한 거 같다. 아직 탈출구를 찾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어린왕자와 빨간 피터를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을 주는 부분이 있었다. 예전에 어린왕자에서 모두가 꽃과 여우 얘기를 할 때도 난 어린왕자가 처음 만난 다른 어른들의 얘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명령만 내리는 왕과 계산만 하고 있는 사업가, 그리고 학자할아버지 같은 어른들을 어린왕자가 만나는 부분이었는데, 어른이 된다는 것이 저런 것일까란 생각에 좀 씁쓸함을 주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빨간 피터에서는 피터가 인간의 행동을 따라하고 인간이 되기로 한 부분보다 더 어린왕자와 비슷한 느낌을 준 부분이 인간이 되기로 결정하게 되는 과정이다. 한 마디로 배 위에서 좁은 우리 속에 갇혀 있는 동안에 겪는 괴로움을 나타내는 부분이었다. 글이 길지도 않다. ‘소리죽여 흐느끼기, 앉아서 벼룩잡기, 혀끝이 헐 때까지 야자열매 핥기, 궤짝에 머리 박기’ 간단한 문장들인데 피터의 그 심정을 느낄 수가 있을 것만 같았다. 자유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었던 존재였는데 한순간에 그 방식이 타의에 의해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 괴로움과 고통 같은 과정 속에서 피터는 인간으로서 행동하기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난 어린 왕자가 보았던 어른들도 같다고 본다. 어린 왕자가 ‘어른이랑 참 이상하구나’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에게도 올 그 시기가 두려웠던 것과는 다른 슬픔이었다. 그들의 과거를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의 과거 역시지금의 나와 내 친구들 혹은 나의 부모님들, 그리고 결국 피터가 인간이 되기로 마음을 먹게 된 그 과정과 다를 바가 없을 거라 여겨진다.
목 차1. 갯벌이란 무엇인가2. 정부의 갯벌 정책 - 습지보존법과 람사협약3. 간척사업이란 무엇인가4. 새만금 간척사업◆ 개요◆ 개발론자들의 주장◆ 반대론자들의 주장5. 새만금 간척사업의 이론적 함의 - 환경생태주의와 인간 중심주의 가치관6. 대안 - 지속가능한 개발은 필요한가? 그리고 가능한가?1. 갯벌이란 무엇인가우선 갯벌의 사전적 의미를 정리하여 보면 '조수가 드나드는 바닷가나 강가의 모래 또는 개펄로 된 넓고 평평하게 생긴 땅'이라는 뜻이다. 갯벌이란 말 그대로 '갯가의 넓고 평평하게 생긴 땅'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조류(潮流)로 운반되는 미사(silt)나 점토(clay)등의 미세입자가 파랑(波浪)의 작용을 적게 받는, 즉 파도가 잔잔한 해안에 오랫동안 쌓여 생기는 평탄한 지형을 말한다. 이러한 지역은 만조때에는 물 속에 잠기나 간조 때에는 공기 중에 노출되는 것이 특징이며 퇴적 물질이 운반되어 점점 위로 쌓이게 된다. 따라서 오랜 시간이 경과하면서 그 지면도 높아진다.◆ 갯벌의 능력미국 조지아대 오덤(Odum) 교수팀은 갯벌이 지닌 정화능력을 조사한 결과, 갯벌 1㏊는 하루에 BOD 21.7㎏을 정화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박원규 박사(한국환경개발연구원 )는 이 계산법을 그대로 인정할 경우 동양 최대규모의 간척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새만금간척 지역의 갯벌 2만㏊는 하루 10만t을 처리할 수 있는 하수종말처리장 40개와 같다고 밝혔므며, 이는 새만금 유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오염물질(추정치 1백56t)의 무려 28배를 처리할 수 있는 정도다.◆ 갯벌의 기능과 경제적 가치해안의 갯벌, 강어귀의 삼각주, 육지의 늪을 아우르는 개념이 바로 '습지'이다. 이러한 습지가 인간들의 개발행위로 죽어가고 있다. 개발은 대규모적으로 무분별하게, 그리고 너무나 빨리 진행되고 있다. 갯벌은 일반의 인식과는 달리 쓸모없는 땅이 결코 아니다. 갯벌은 하천이나 강을 통해 육상의 유기영양물질이 끊임없이 공급되어 영양이 풍부하며, 수천 종에 이르는 동.식물의 중요한 서식지로서 지구상관리한다. 습지보호 지역에 대해서는 지역 보전 계획을 수립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해 나가도록 한다.셋째, 습지보호지역에서는 매립면허, 골재채취허가, 건축물의 신?증축, 습지의 수위?수량 증감행위, 동?식물의 포획?채취등의 행위를 할 수 없다. 다만 해당 지역주민이 장기간 지속하여 온 경작?포획 또는 채취는 허용된다.넷째, 습지주변관리지역안에서 일정규모이상의 간척사업이나 습지보호에 위해를 줄 수 있는 행위를 하고자 하는 자는 해양수산부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다섯째, 불가피한 사유로 갯벌을 훼손하게 될 경우에도 습지보호지역의 일정부분은 존치되도록 하여야 하며, 정부는 갯벌의 복원 등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람사협약 )람사협약(Ramsar Convention)은 1971년 이란의 람사에서 채택된 습지에 관한 협약으로써 '자연자원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에 관해서 근대에 맺어진 최초의 국제적인 '정부간 협약'이다. '물새서식지로써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의 보존과 현명한 이용'을 얘기하는 람사협약은 물새와 습지생태계에 관한 이해가 부족하면 자칫 물새만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좁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가 있다. 그러나 람사협약은 분명 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종 다양성의 보존과 인간의 복지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의미로써 습지를 인식하고 있다.람사협약은 1975년에 효력이 발효되기 시작했고 1999년 1월 현재 113개의 당사국이 가입되어있다. 전 세계적으로 957개의 습지가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목록에 등재되었으며 그 면적은 7천백만 헥타르에 달한다.1) 람사협약의 회원국이 되면 국가적인 정책과 입법을 포함하여 국가는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면서 자신들의 습지자원을 이용하도록 하는 원칙을 존중하도록 요구받는다.2) 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에 관한 정부 간의 중요한 회의에서 각 나라는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는 기회를 가진다.3) 람사협약에 가입한 나라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를 가진 나라라는 명성과 위상의 증가를 가화미가 생산되고 있다. 이 외에도 앞으로 살펴볼 시화지구, 새만금 지구 등의 간척사업을 예로 들 수 있다.간척사업갯벌사전적 의미호수나 바닷가에 제방을 만들고, 그 안에 있는 물을 빼내어 육지화 하여 농토나 기타 산업부지로 만드는 일.조수가 드나드는 바닷가나 강가의 넓고 평평하게 생긴 땅.일반적으로 조류(潮流)로 운반되는 모래나 점토의 미세입자가 파도가 잔잔한 해역에 오랫동안 쌓여 생기는 평탄한 지형을 말한다. 이러한 지역은 만조 때에는 물 속에 잠기나 간조 때에는 공기 중에 노출되는 것이 특징이며 퇴적물질이 운반되어 점점 쌓이게 된다.기능호수는 담수호와 해적호로 나누는데, 해수의 영향을 받은 호저의 호저토를 경작지로 조성하는 데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어, 주로 간척지에서 취급되는 것은 해적호의 호저토의 경우를 말한다. 호수의 배수는 주로 기계배수에 의하기 때문에 가급적 고위부의 물은 자연배수하여 기계배수량을 줄이고 기계설비와 경비를 적게 하도록 한다. 해면의 간척은 간만의 차가 큰 해면간석지 또는 큰 하천의 하구 부근의 해면을 대상으로 하는데, 해저토를 경작지로 이용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O갯벌은 하천이나 강을 통해 육상의 유기영양물질이 끊임없이 공급되어 영양이 풍부하며, 수천 종에 이르는 동.식물의 중요한 서식지로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20% 가량이 서식하고 있어, 생물생산성이 가장 높은 생태계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또한 갯벌은 자연의 신장으로서 정화기능을 하여 환경생태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첫째, 어류 생산 및 서식지 기능이다.둘째, 오염정화 기능이다.셋째, 심미적 기능이다.넷째, 홍수 조절 기능이다.다섯째, 폭풍 조절 기능이다 B위치간척사업은 매립의 목적에 따라 투자 및 기술과 공기(工期)가 서로 다르나, 한국의 간척사업은 그 대부분이 농경지를 조성 ·확대 개발하는 농업기반조성이 목적인 간척사업이다. 이 사업을 전담하는 농어촌진흥공사는 1970년 발족 이래 계화도지구, 영산강 유역 제3단계지구, 삽교천지구 ·새만금지구 ·화옹지구 ·시화지조성(1억2천만평)- 대단위 기계화영농단지, 국가공단- 세계 최장의 33km 방조제축조, 항만도시, 관광단지 건설예정- 새만금 담수호(3억5천만톤 저수)조성, 육운 66km단축o 사업의 필요성- 우리나라는 국토면적이 협소하고, 생산기반시설이 미비하여 지역적으로 균형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국토이용구조상의 모순점을 안고 있으며, 도로, 항만등 사회기간시설 부족과 산업화·도시화에 따른 공단 및 택지부족, 농지규모화 및 집단화 미흡에 따른 농업생산성 저하, 수자원 부족현상 심화, 수도권 인구 및 산업집중에 따른 환경악화 등의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국토이용구조상의 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부권지역의 중심관문인 새만금지구를 개발하여 대규모 임해공단 조성과 중국과의 교역항을 조성함으로써 균형적인 국토개발을 통해 21세기를 대비한 국토이용구조를 재편성하는데 본 사업의 뜻이 있다.o 사 업 효 과- 이사업이 완료되면 농어업용수 및 생·공업용수 등으로 년간 10억톤의 수자원을 이용할 수 있어 전북 서부내륙지역의 만성적인 용수부족현상이 해소될 것이다.- 새만금지구는 지리적으로 중국 청도항까지 580km밖에 되지않아, 대중국 및 동남아교역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고, 대륙권 무역기지화에 유리하며, 백제 고도권, 변산국립공원 및 해양관광권(고군산군도)을 연계하는 국제적인 휴양관광단지로 개발이 가능하게되며, 또한 고군산군도는 수심이 20~25m로 10만톤급 선박의 자유 입출항이 가능하며, 방축도등 주위의 섬들이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천혜의 항만 입지여건을 갖추고 있어, 새만금지구 사업수행으로 고군산군도가 연육되면, 년간 5천만톤 규모의 새로운 국제항 개발여건이 성숙되게 될 것이다. 뿐만아니라 만경, 동진강 유역 12,000ha의 수해 상습지가 고질적인 홍수 및 침수피해로부터 벗어나게 되며, 새로운 4차선 해안도로 35km가 개설되고, 기존의 해안선이 66km나 단축되어, 전북 서부지역 육운개선 및 교통편익이 증진될 것이며, 연 1,399만명의 고용증대 효과를의 자산이므로 보존하여 미래세대에게 되돌려주어야 할 보전가치가 있다. 지금 우리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미래세대가 사용해야할 자원마저도 훼손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자원은 40억년의 지구역사의 누적된 유산인만큼 우리는 미래세대가 사용해야 할 자원을 남겨 물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세대간의 평등성이며 지속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세대가 공유할 보전가치를 파괴하여 현 세대만이 일시적인 개발이익을 누리는 것은 세대간 형평성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거시경제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갯벌은 재해방지기능을 가지고 있다. 갯벌은 홍수시에 물의 흐름을 완화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하며 물을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흘려 보낸다. 태풍이나 해일이 발생하면 이를 흡수하고 완화하여 육지에 주는 피해를 적게 하는 역할을 한다.이렇게 갯벌이 갖는 가치는 대단하다. 갯벌을 매립하는 간척사업은 갯벌을 쓸모없는 땅으로 인식하여 개발하려고 할 뿐 갯벌의 생태적 가치, 보전가치, 경제적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개발주의자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갯벌이 갖는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하면 매립해서 얻는 경제적 이익보다 보전해서 얻는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7년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Nature)'에서 평가한 갯벌가치에 근거하여 환경부가 우리나라 갯벌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평가한 자료에 의하면 연간 1ha당 2만7천3백16달러로 평가하고 있는데 새만금 갯벌 40,000ha는 10억9천2백64만달러(1조4천2백억원)에 이른다.o 경제성이 없는 간척사업새만금 간척종합개발사업은 공사허가시 사업비가 8천2백억원에서 현재 외곽시설비 1조5천7백10억원, 내부개발비 4천8백억원을 합해 2조5백10억원으로 2.56배 증가했다. 여기에 수질개선비로 환경기초시설비 8천2백억원, 하수관거시설비 6천5백6억원을 합해 1조4천억원의 투자계획이 있어 새만금 종합개발사업이 완공될 때까지 3조4천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되어야 한다. 그러나 88년 가격으로 계산된 내부개발비 4천8백억원을 98년 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