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이론과 캐나다 다문화 주의Ⅰ. 서론: 왜 립셋의 모자이크 이론인가?캐나다에서는 지금 캐나다 문화에 대한 믿기 어려울 만한 흥분이 일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캐나다인으로 하여금 지난날의 식민지적인 의존관계를 벗어나서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문화의 성숙을 이룩하고 있다는 의식을 불어 넣고 있다.그러나 캐나다는 국제적 환경에 위치에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다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흔적이 아직 별로 없다. 또한 이 나라는 민족적인 상징체나, 역사적 기념물, 민속의상, 이국적인 음식, 추앙받는 인물, 아니면 다른 국가에 영향을 주거나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특별한 기예품도 없다. 세계 각처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캐나다는 애매한 문화를 가진 뭔가 미스테리의 나라로 보이고 있다.그러나 캐나다는 이민자의 나라로서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달리하는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많은 이민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수의 이질적인 집단을 조화시켜 원만한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이 우선적인 국가적 관심사가 되어 왔다. 인종과 문화의 뿌리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총체적으로 만들어낸 국가로서의 캐나다가 지향하는 중요한 가치가 다문화주의다. 흔히 미국 문화를 ‘인종의 도가니’, 캐나다 문화를 ‘인종의 모자이크’라고 말한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을 이민으로 받아들여 미국정신이라는 일종의 도가니에서 용해 시키는 반면, 캐나다는 소수 민족 문화를 용해시키기 보다는 각 문화를 살려내 화려한 모자이크 패턴을 만드는 다문화주의를 추구한다는 뜻이다.이와 관련하여 현재 캐나다에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국가 정체성으로 표명하는 다문화주의정책(Multiculturalism Policy)을 구현하고 있다.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필자는 립셋의 모자이크 이론에 동의하고 있다. 여기에선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사회인 캐나다의 모자이크 이론을 사회동화이론 측면에서 설명을 하고 캐나다 문화의 다양성에 영향을 주는 배경과 사회문화적 다양성을 다루는 다문화정책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Ⅱ. 본 론 : 모자이크 화는 두 번째 것인 구조적 동화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구조적 동화란 이민 집단이 소수 집단으로 고립되는 것을 멈추고 주류 사회와 동일한 기준을 수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독일계 미국인은 구조적 동화를 달성하였으나 흑인들은 그러지 못하였다. 대체적으로 동화는 A + B + C = A와 같은 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여기서 소수 집단은 고유의 하위문화를 상실하고 이민국의 지배 집단과 구별이 없게 된다.하지만 Park의 동화론은 하위문화의 상위문화에 대한 종속의 개념보다는 공생의 의미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Park가 의미하는 공생은 “다른 인종의 사람들은 같은 경제체제 내에서 역할을 나누는 가운데 의 관계로 점차 접어들게 된다......(공생이란) 결국, 민족간의 단순한 상호협력적, 경제적인 관계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한 문화의 다른문화에 대한 예속이라기 보다는 다음에서 설명될 다원론적인 시각도 또한 견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런데 동화이론은 너무 낙관론적인 이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예컨대 지배 집단이 자신들의 하위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우수하다고 여기는 자민족 중심적인 경향을 보일 때는 이민 집단은 행태적 동화에 대한 상당한 압력을 받게 된다. 즉 얼마나 쉽게 변화할 수 있는가는 고유 하위문화에 대한 자세와 이민 집단과 이민국 사이의 유사한 정도에 달려 있다. 자신의 고유문화를 자부하는 이민 집단은 행태적 동화를 거부하기 쉽다. 이것은 미국 내의 유태인과 아시아인이 ‘특이할 정도의 민족적 결속’을 보이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민국의 원주민과 매우 차이가 많은 집단은 행태적 동화가 구조적 동화로 연결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피부색이 구조적 동화를 가로막는 가장 두드러지는 상이점이다. 예컨대 중류층의 흑인인 미국인은 영어에 서툰 러시아의 피난민보다 구조적 동화가 훨씬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대부분의 이민 집단은 동화를 미국사회에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출세를 보회 포착을 위한 무한 경쟁에 관심을 집중한다. 인종집단간의 경쟁과 갈등은 사회적 근대화의 과정에서 증가하고 이에 따라 인종간에는 동화보다 이전투구나 착취가 발생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두 번째는 정치 경제적 패러다임이라 불리는 것이다. 즉 이것은 고전적인 맑시즘에 근거한 것으로 인종, 민족 문제는 필연적인 계급의 문제이며 소수 집단의 문제는 다수 집단과 소수 집단의 계급적 조건이 동등해질 때 사라질 수 있다는 견해를 지칭하는 것이다 두 가지 접근법의 공통점은 경쟁, 권력, 불평등이라는 개념을 분석의 틀로 가져 왔다는 것이다.2. 모자이크 이론의 배경하나의 문화가 그 문화를 창조해낸 집단보다 훨씬 큰 인구 집단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은 퍽 고무적인 데가 있다. 인디언의 문화와 캐나다 이뉴이트 족의 문화가 바로 이런 면에서 매력이 있다. 아마도 이들은 한 매력적인 주거 환경의 조화와 미학적인 완성을 이룩했음이 틀림없고 그것은 바로 세계전역에서 막대한 외경심을 불러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집단에 비교할 때 수적으로 미미하다. 인디언의 수는 30만에 미달하여 캐나다 이뉴이트족은 1만 8천에 불과하다. 양쪽 민족 모두 수 천년에 걸친 유랑의 역사로서 지역적으로는 아시아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몇 세기를 거치는 동안 그들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조각 이불과 같이 흩어져 살고 있다. 환경이 어떠하든간에 그들은 그들의 고유한, 그러면서 풍부하고 활기찬 문화의 표현형식을 개발해 내었다. 인디안은 카누, 터보건(썰매), 스노우 수(눈신), 윅웸(원추형 오두막집), 티페(원추형 모피천막), 롱하우스(길게 붙은 일자집) 등의 정교한 교통과 주거 수단을 발명했다. 이러한 기술이 없었다면 후에 프랑스인과 영국인들이 대륙의 오지를 탐험하려 했을 때 거의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충적토지대로 가면 현대 캐나다의 주요 식품인 과일과 채소들이 이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북극지방의 이뉴이트 또는 에스키모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어려운 주거 환경의 압력을 받으면서도 이미 잘 이나계의 이민들이 이주해왔다. 여기에 일본과 중국계의 이주민들도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세계 2차 대전이후 캐나다 이민 형태는 크게 두가지 동향을 나타난다. 1945년에서 1965년 사이를 보면 남유럽지역의 이민과 동유럽 및 지중해의 이주민 특히 이탈리아인,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그리스인들이 이민의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도안에 한 변화가 생겼다. 남인도인, 아프리카, 아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해 와서 이 캐나다의 다수의 종족집단에 그 수를 보태고 있다. 이민의 형태가 달라지면 문화의 양상에도 변화를 미친다. 구매욕을 일으키는 새 상품이 생기고 발길을 끄는 새 시장이 생기는 것이다. 한 개의 문화집단이 이주해 오면 한나라의 문화감흥에는 그 만큼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캐나다 이민 정책은 시초부터 이민들이 그들의 문화를 고수하거나 캐나다에 기존하는 타문화에 동화할 수 있는 두 가지 자유를 모두 보장해 왔다. 결과는 두 가지가 모두 뒤섞여 존재하고 있다. 어떤 문화집단은 동화를 선택했고 어떤 집단은 그들 조국의 문화가치를 지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개의 국가들과는 달리 캐나다는 「용광로」 이기 보다는 「모자이크」가 되었다.보존과 동화 둘 중 어느 것을 행하면, 그것은 캐나다 문화의 가장 필수적인 것의 하나가 되고 있다.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캐나다 인들은 미래의 문화 발전의 기본원리로서 복수주의를 확고히 할 것임에 틀림없다.3. 캐나다 다문화주의 특성의 예■ 캐나다의 문화개발은 5개의 기본 긴장의 산물인데 그 긴장은 뛰어난 문화 테마를 일으켰다. 5개의 긴장이란 프랑스와 영국간의 긴장, 캐나다와 미국간의 긴장, 지역과 정부간의 긴장, 경제정치 이념과 사회계층간의 긴장, 그리고 캐나다인과 자연환경과의 긴장이었다.영국인과 프랑스인간의 긴장은 맣은 창조에너지를 가져다 주었다. 두 민족 모두가 의지와 결단력이 강하며 지적인 전통이 풍부하고 뿌리가 깊은 민족들이다. 그들은 동화를 통해서 각자의 특성을 유지하는 상호 공존의 생활방식을 선택중국인들의 전통놀이인 용선경주가 매년 6월 벤쿠버의 폴스크의 바다에서 중요한 문화행사로 열리고 있다.■ 캐나다 군과 연방경찰은 시크교도 군인과 경찰관들에 대해 근무중 규정된 제모 이외에 전통 복장인 터번을 쓸 수 있도록 허용했다.4. 캐나다의 다문화주의 정책캐나다의 주요한 사회정책의 하나인 다문화주의정책은 캐나다 사회과정의 소산물로서 그간 캐나다 국내외 정세변화와 맥을 같이하여 왔으며 캐나다의 이민정책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원주민을 제외한 절대다수가 이민자로 구성된 캐나다에서 이민정책의 추이를 살펴보는 작업은 다문화주의정책의 성립배경과 그 의의를 고찰하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19세기 후반 연방이 성립되면서 캐나다에서는 이민수용과 이와 관련된 정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다문화주의가 공론화되기 이전까지 캐나다는 매우 선별적으로 이민을 수용해 왔기 때문에 그간 캐나다의 이민정책은 여러 가지 형태의 차별로 일관되어 왔다. 여기에서는 캐나다 이민정책이 페쇄적인 이중문화주의와 이중언어주의에 기초한 입장에서 캐나다를 구성하는 모든 민족집단의 정치과정 참여를 권장하는 다문화주의정책으로 변경된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1) 폐쇄적 이민정책과 이중문화주의20세기 중반 이전까지 캐나다의 이민정책은 매우 제한적이고 선별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캐나다의 국가 설립 배경에서 그 첫 번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북아메리카대륙의 동북부지역은 유럽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곳이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이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경쟁한 끝에 프랑스의 영향력은 오대호 북쪽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우세하였던 영국의 영향력 또한 미국의 독립으로 인하여 오대호와 세인트 루이스강 북쪽으로 제한되었다. 이로 인하여 한 때 적대적이었던 영국계와 프랑스계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미국의 혁명 이념에 대항해 나갔다. 미국의 공화제를 반대하고 군주제를 지지하였던 영국계와 미국에서 우세한 개신교의 확산을 우려하였던 가톨릭을 신봉하는 되었다.
브랜드 네이밍 실패 사례코카콜라는 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브랜드다. 인터브랜드와 비즈니스 위크에 따르면 현재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무려 696억4000만달러. 탄생한 지 100년이 지나도록 코카콜라라는 이름이 그렇게 높은 지위를 누리는 까닭은 뭘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중요한 요인으로 코크(coke)라는 또 하나의 이름 붙이기에 성공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펩시를 비롯한 유사 상품들의 도전 속에서 단순히 콜라를 주문하는 소비자들로 인해 코카콜라가 다른 제품들과 차별화되지 않자 코크라는 별칭을 만들어내 이를 콜라 자체의 대명사로까지 만들어버린 것이다.이처럼 상품이나 회사의 브랜드는 그것을 얼굴로 한 상품이나 기업의 운명을 좌우한다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오늘날 브랜드 네이밍(이름 붙이기) 자체가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거니와 브랜드 관리에 쏟는 국내 기업들의 노력도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세계화와 함께 브랜드 역시 세계화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다는 데 있다. 구체적으로 국내에서는 별 문제없는 브랜드가 외국에서는 엉뚱한 뜻으로 받아들여진다거나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는 외국 말을 문화적 차이나 무지,오해 등으로 인해 국내 브랜드로 사용하는 경우다.○ 기아 자동차의 영문 KIA는 전사자(Killed in Action)를 뜻하는 영어 약자를 의미○ 삼성자동차의 SM시리즈는삼성 모터스의 영어 두문자지만 서구나 일본 등에서 SM은 변태성욕을 의미○ KT&G가 내놓은 새 담배의 이름클라우드 9이 미국 일부에서는 마약을 뜻하는 은어라고 해서 논란이 일어남○ 영창(Young Chang) 젊은 장씨가 만든 피아노(중국)○ 대영(Dae Young) 다이 영(Die Young)으로 발음○ 님프(Nymph) Nympho(색정에 눈먼 여성)○ 모닝가스(Morning Gas) 방귀○ 라푸타(Laputa) 창녀(스페인어)○ 볼스(Balls) 남성의 고환(미국 비어)○ 스픽스(Spixx) 스페인사람을 지칭하는 저속어○ 아모레(Amore) 거리의 여자(아모레미오, 이탈리아어)○ 삼성(Samsung) 샘승, 샘숭, 산세이로 발음, 엉클샘은 미국의 상징○ 현대(Hyundai) 현다이, 휸다이, 다이(Die)○ 대우(Daewoo) 대부, 다에부(독일)○ 선경(Sunkyoung) 가라앉은 젊은이(성크 영, Sunk Young)○ 쌍용(Ssang Yong) SS○ 보루네오 인도네시아 산으로 오인○ 한국화약(Explosive) 테러단체로 오인○ 골드스타(Gold Star) 전몰병사 묘비에 새겨진 별 표식(미국)○ 맥주 카스 (CASS) 의 경우 저주, 악담이라는 뜻의 영어단어 'cuss'
「화」라는 책을 처음 봤을 때, 종교에 대한 책인 줄 알았다. 스님이 썼고 책표지엔 연꽃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뒤에는 “혹시 당신은 화가 나 있지 않습니까? 라든지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라는 구절은 나에게 독자들의 관심을 끌려는 출판사의 상술로 들렸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그랬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난 후 내 생각이 빗나갔다고 생각을 하게 됐다.살면서 화 안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화를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나 역시 집에서 굉장히 짜증과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 이 책은 어쩌면 내가 살면서 꼭 읽어야할 책인지도 모른다. 「화」를 읽기 전에 내게 있어 화는 필요 악적인 존재였다. 상대방이 말을 안들었을때, 아님 나를 짜증나게 했을때 가장 좋은 방법은 화를 내는거라 생각했다. 물론 화를 내는 나도 안 좋지만 상대방도 무척 자존심이 상했을 거라 생각한다. 미안하기도 하고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난 그때 이런 심정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랐다.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내가 지금까지 내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알게 됐다. 이 책에 나오는 화를 틱낫한 스님은 꽃으로 비유한다. 아마도 틱낫한 스님은 이 화를 가리켜 보듬어 감싸고 위로해 주어야 할 사람의 존재로서 인식한 것 같다.화는 모든 불행의 근원이다. 화로 인해서 사소한 말다툼도 하게 되고 우정도 금가고 심하면 전쟁도 일어나게 된다. 그러면 화를 없애는 방법이 있을까?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속담 중에 “참을 인(忍)이 셋이면 살인도 막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무리 화가나도 계속해서 삭이고 참고 하라는 말이다. 화가 났을때 화를 피하거나, 생각을 다른 데로 돌려 환기시키고, 다른 대상(베개치기 같은)을 찾아 그에 응당한 분풀이를 하게 된다. 참으로 소극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다고 화가 없어질까? 틱낫한 스님은 이 화는 없어지지 않고 인간의 마음 어디에선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래서 화난 몸을 감싸안기 가장 좋은 자세로 드러눕히고 몸의 각 부분들에 집중하면서 자각이라는 사랑의 에너지를 쏘이라고 한다. 어떤 작은 습관에서 비롯되었는지, 나와 남을 동시에 해치는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직감하면 반드시 ‘남을 용서하는’ 화풀이 수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책을 읽어가면서 과거의 고통과 '화'에 대해서 담담하게 돌아보게 하는 것. 책을 읽는 중간중간 내가 화를 냈던 기억들, 나를 화나게 했던 것들, 지금도 내 맘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화, 이 화로 인해서 상쳐받았을 사람들로 인해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화를 감자와 씨앗, 울고 있는 아기에 비유하여 어떠한 자극에도 감정의 동요를 받지 않고 늘 평상심을 유지하는 ‘비법’을 틱낫한 스님은 전하고 있다. 그 비법은 의식적인 호흡, 의식적으로 걷기, 화를 끌어안기, 그와 나의 내면과 대화하기 등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틱낫한 스님은 화난 몸을 감싸안기 가장 좋은 자세로 드러눕히고 몸의 각 부분들에 집중하면서 자각이라는 사랑의 에너지를 쏘이라고 한다. 어떤 작은 습관에서 비롯되었는지, 나와 남을 동시에 해치는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직감하면 반드시 ‘남을 용서하는’ 화풀이 수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에게 자각이라는 말이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의 몸 구석구석 X-RAY로 들여다 보듯 훤히 볼수 있다는 말이 불교용어로 생각하게 된 나에게 어려웠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끝까지 읽어보니 부록편에 자각하는 법이 나와서 틱낫한 스님이 말하는 자각이라는 참 뜻을 어느정도 알게 되었다.
「안토니아스 라인」을 보고 ...안토니아스 라인(LINE 係)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안토니아스, 그리고 그녀의 딸(다니엘), 그녀의 손녀(테레사), 증손녀에게까지 내려가는 4대에 걸친 여성의 삶을 그린 영화이다. 나는 영화를 본 후 우리가 평소 느끼는 현대의 가족형태가 참으로 편협하고 고정관념에 휩싸였다고 생각하였다. 왜 우리는 부계사회가 정당한 길이라 생각하며 모계사회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재고조차 해보지 않았을 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나를 비롯한 보통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이고 보수적인 생각들을 차버리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안토니아의 고향과 그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속한 사회와 그 구성원인 듯 하면서도 모든 남녀가 성인이 되면 당연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회는 아니다. 아마도 마린 고리스라는 여성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안토니아와 같이 솔직하면서도 강하고 포용력 있는 여성을 통해서 기존 가부장적 형태에 대한 저항을 얘기하는 것 같다. 안토니아스 라인에선 남편이나 아버지의 역할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 스스로 여성공동체를 꾸며나가고 있는 동네에서 버림받거나 남성들로부터 학대받는 사람을 그 공동체의 성원으로 끌어안는다. 그들이 만들어낸 공동체는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높고 낮음이 없이 평화롭게 어울려나가는 공간으로 그려진다.네덜란드의 어느 마을, 그 마을은 겉으로는 아주 평범한 시골마을이고 아들딸들과 함께 여러 가정이 너무나 조용한 채로 살아간다. 친오빠에게 공공연히 강간당하는 정박아 디디. 그 일을 아는 모든 마을 사람들은 그저 조용하다. 아무도 그 일에 대해 언급하거나 궁금해하질 않는다. 이런 마을에 안토니아가 딸 다니엘과 함께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고향으로 돌아온다. 어머니의 마지막 임종모습을 보기 위해서이다. 마을 사람들은 남편 없이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그녀를 어색하게 맞이한다. 여기에 비춰지고 있는 자기 아내, 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업신여기고 심지어 성의 노리개로 이용하는 듯한 남자들의 태도는 남자인 나로서도 정말 믿기 싫은 현실이다.안토니아는 마을 사람들의 빈정거림을 묵묵히 견디며 오히려 자신만만한 태도로 농사를 지으며 딸 다니엘과 살아간다. 피터에게 성폭행 당하는 디디를 보고 피터의 급소를 찌르고 디디를 자기 집으로 데려온 다니엘.. 디디를 데려온 안토니아의 집은 소외되고 상처를 가진 사람들로 하나둘 씩 채워진다. 언제나 마을 사람들에게 놀림 받고 괴롭힘 당하던 미친입술은 디디와 짝이 되고 사랑을 할 줄 알고 사람된 도리, 인생을 아는 한 사람에 불과 하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서로를 위해 살아가는 행복한 두 남녀 미친입술과 디디. 그렇게 사랑으로 채워지는 안토니아의 집에서.. 어느 날 다니엘은 결혼도 남편도 원하지 않은 채로 아이를 원한다고 한다. 안토니아는 다니엘의 생각을 존중하고 미혼모 레타의 도움으로 다니엘은 아이를 가지게 된다. 이런 점에선 지금의 여성들에게도 아마 쉽게 가질 수 없는 생각일 것이다.. 아이란 남편을 둔 정상적인 가정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배워왔으니까.다니엘은 딸 케이시를 안토니아와 사랑으로 키워나간다. 천재소녀 케이시는 세상의 존재를 부정하는 비관주의자 크룩핑거와 지적 영감을 나누며 자라난다. 아버지 없이도 어머니가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있고, 얼마든지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여기서 안토니아스는 거리의 창녀들과 바람을 피웠던 아버지를 평생 원망하고 저주해서 자신의 삶까지도 불행하게 만들어 버렸던 어머니와는 달리, 자신이 원하고 선택한 일을 당당하게 해 나가는 여자로 그려진다. 다니엘이 아기를 갖고 싶어할 때 주정없이 도시로 나가 남자를 구해주고,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바즈와 잠을 같이 자기도 하지만 그의 구혼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로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부정한다. 한편 그녀는 테레사가 피터에게 강간을 당했을 때 직접 피터를 응징할 정도로 담대하며, 어린아이들에게조차 바보라고 놀림받는 "미친 입술"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줄 알며, 자신의 죽음조차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녀의 자손들 역시, 그녀를 닮아 자신의 삶에 당당하다. 각자 한 가지씩의 재능을 갖고 있으며, 자신들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여성을 억압하는 근본원인이 되는 결혼을 부정하는 것도 안토니아와 똑같다. 다니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녀는 스스로가 원해서 미혼모가 되었다. 그녀는 결혼이나 남편은 원하지 않았고 단지 아이만을 원했다. 어쩌면 이제까지 지속되어온 남성 중심적인 가족제도의 해체를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남성을 단지 아이를 가지려는 수단으로 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그 동안 여성을 아이 낳는 수단으로 생각해 온 남성들에 대한 비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시간동안 남성들은 여성을 그저 자손을 잇는 수단으로만 여겨왔다. 때문에 아들을 낫지 못하면 내쫑기기도 했고, 자손을 낫는 것 이외의 사회활동에는 심한 제약을 받았다. 이런 사회에 대한 비판을 나타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한가지 놀라웠던 점은 다니엘이 그런 이야기는 꺼냈을 때의 안토니아의 반응이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도시에 나가서 아이 아버지를 찾자고 말했다. 딸이 미혼모가 되겠다는 데 어머니의 대답이 도시로 나가자라니... 이 영화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안토니아는 자기 딸이라고 해도 그녀의 의지가 있었고, 그녀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기의 삶은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잘못되었다고 말해도 그것은 주위의 의견일 뿐이지 자신의 의견을 될 수 없다. 안토니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딸이 하고 싶다는 방향으로 도와준 것 같다. 다니엘'은 그 후에 딸을 낳고 그 딸의 선생님과 동성연애를 하게 된다.이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여성, 즉 안토니아스의 모계혈통속의 여성들은 페미니즘적 자세를 가지고 있다. 또한 특별한 대립 구도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이 영화속의 남성들은 다르다.가부장적 자세를 고수하는 그의 아들 피터와 여성을 자신들과 똑같은 욕구를 지닌 존재이며 동반자라는 의식을 가진 남성들은 바즈와 크룩핑거, 시몬, 미친 입술, 신부 등이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또한 테레사를 유혹하는 남성들 역시 피터와 같은 분류로 나누어진다.안토니아스 라인은 전형적인 가부장제 문화에 저항하고 있다.안토니아스 라인이 가부장적 문화에 전면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흔적들은 영화 곳곳에서 발견할수 있는데 이것은 영화의 주제와도 연관되는 것일 것이다. 그 모습은 안토니아, 다니엘 그리고 테레사는 모두 아이의 어머니이면서 결혼을 하지 않은 모습에서 전통적인 결혼 거부와 정상적 가족의 신화를 깨어 나가면서 나타난다.안토니아의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자주 보여지는 식사광경은 그야말로 풍요롭고 평안한 모습이다.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은 혈연관계로만 묶여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안토니아의 관대함으로 함께살게 된 그들은 어느 가족보다도 서로를 아끼며 이해한다. 또한, 그들의 공동생활은 출산에 따르는 양육의 책임을 공동으로 부담함으로써 안토니아와 그녀의 자손들, 특히 테레사가 자신의 일이나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 줄 뿐만 아니라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모성을 나름대로 부정한다. 즉, 여성의 생리적 특성이 사회적 활동과 지위를 억압하게 하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의 부담을 공동체라는 대안적 가족형태로 극복해 내는 것이다.가부장제의 비열함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설명될 수 있는 피터의 두 번의 강간은 두 번 모두 안토니아 일가의 응징으로 끝나게 된다. 이처럼 영화에서 강간 혹은 성추행에 대한 대응방식은 법이나 다른 사회적 방법보다는 인과응보라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Ⅰ. 서 론1967년 8월 방콕선언(Bangkok Declaration)에 의해 창설된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은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카포르 등 5개국에 의해 지역협력을 통한 동남아 국가들의 공동 발전이라는 목적 아래 성장해 왔으며, 1984년에 브루나이와 1995년 베트남이 추가로 가입했으며 1997년에는 라오스·미안마가 가입, 1999년에는 캄보디아가 가입해서 10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지역 협력체로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지역협력의 경험이 일천했던 동남아 지역에서 ASEAN이 처음 출범할 당시에만 해도 이러한 약소국가들 간의 협력체가 장기간 존속되고 또 생산적인 조직체로 발전해 나가리라는 낙관적인 기대보다는 오히려 존속가능성 그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비관적 전망이 더 압도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1970년대 중반에 ASEAN의 발전 가능성을 진단했던 다수의 전문가들조차도 이 지역 협력체에 대해 별다른 전략적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으며, 그저 완만한 속도로 점진적 발전을 해나갈 것으로만 보았다.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국가간 협력 문제를 연구하는 많은 구미의 학자들은 국제 레짐(International regime) 형성을 통한 국제 협력은 정치적 다원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 국가들 간의 고도의 상호 의존을 바탕으로 할 때 더욱 성공적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국가들끼리는 서로 싸우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EU로 대변되는 유럽의 지역협력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 경제적으로 유사한 체제를 가진 민주 국가들 간의 높은 수준의 상호 의존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러나 ASEAN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매우 다양하고 때로는 다소 이질적이기까지 한 동남아 국가들의 연합체이다. 동남아 각국의 정치체제는 서로 상이할 뿐만 아니라 아직 어떠한 국가도 완전한 미주 정치 체제라 할 수 없는 것이 LINDO)라는 동맹체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이 동맹체도 말레이시아 연방이 창설된 후 수카르노의 '말레이시아 분쇄정책(Crush Malaysia)' 이 후 무의미하게 되었다.이에 태국의 타난 꼬만 외상은 말레이시아와 필리핀간의 사바 분쟁과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간의 대결정책을 중재하고자 하였다. 1965년에는 마르꼬스 당선 후, 사바에 대한 쿠데타 시도가 있은 후 수카르노의 권력과 영향력의 급속한 축소를 가져왔다.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ASEAN 구성 국가들은 우연한 정치변화로 상호협력을 준비하고 있었다. 또한 모든 회원국들이 反共 국가들이지만, ASEAN은 단순한 반공조직으로 인식되지 않았으며, 처음부터 국내정치 중시형으로 회원국 모두 자국의 자립과 경제적 복원에 몰두했다.ASA와 MAPHILINDO가 기능을 정지한 동안 동남아 정세는 다시 중대한 변화를 경험했다. 베트남의 전쟁의 격화와 중국의 문화대혁명의 진전과 이에 따른 동남아 사회로의 파급 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 그리고 싱가포르의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의 독립 등이 이뤄졌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변화는 수카르노의 실각과 수하르토의 집권에 의한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간 양국의 화해가 이루어진 것이다.이에 따라 이듬해인 1966년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필리핀간의 대결이 종결되고 3년만에 국교가 재개되었다. 이러한 동남아 정세의 급변에 대응하기 위해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인도네시아를 포함시켜 ASA를 강화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1966년 8월에 3년만에 재개된 제3차 ASA 외상회의에서 이와 같은 논제들이 논의되었다.이후 1967년 4월 인도네시아의 아담 말리끄(Adam Malik) 외상은 이와 같은 분위기를 감지, 새로운 지역협력 기구 창설을 제안하였다. 그로부터 3개월 후 말리끄 외상은 방콕을 방문, 꼬만 외상과 새 지역협력기구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하였다. 이와 같은 말리끄의 노력은 인도네시아와 우호협력관계를 강력하게 희망했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 의하여 쉽게 로 알려져 그들대로 잠재위협을 안고 있었다. 또한 초기의 ASEAN 5개국은 세계적인 불황과 선진 공업국들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경제개발의 후진성 등으로 경제적 궁핍에 처해 있어 지역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형편이었다.이러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이들 ASEAN 국가들의 후견자였던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하여 물러난 데서 생긴 갑작스런 공백은 소련과 중국의 침투를 유도하는 촉진제가 되었다. 소련·중국의 대륙세력의 남하와 통일 베트남의 세력팽창은 동남아 약소국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 일보 물러난 미국과, 경제적인 면에서 미국의 역할을 대체하려는 일본에게 큰 위협의 신호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따라서 인도차이나의 공산화 후, ASEAN 회원국은 서둘러서 지역 내 국가간의 우호협력을 선언하고, ASEAN의 평화·자유·중립을 재천명하여 이 지역의 공산화에 따른 지역내 반정부 게릴라 활동의 점증으로 인한 불안을 상호협력을 통하여 극복하고, 강대국의 동남아 지역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견제하여 중립을 보장받고, 지역내 국가의 경제적 고충을 해결하며, 나아가서 일본과 호주 등의 해양국가와의 폭넓은 협력을 통하여 동남아 발전에 기여한다는 ASEAN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게 된 것이다.(3) ASEAN의 조직 구성창설 당시 ASEAN의 최고기구는 외상회의였다. 그러나 1976년 제1차 정상회담이 개최된 후 그 위치가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정상회담이 최고기구로 정착되었다. 이 정상회담은 회원국의 결속과 권위를 과시하는 정치적 효과를 가진 동시에 제반 공동사업을 확정하였다. 초기에는 비정기적으로 열렸으나, 제4차 ASEAN 정상회담에서 매 3년마다 개최할 것을 결정하였다. 외상회의는 ASEAN의 최고 의결기구였으며, 원칙적으로 연1회 각국의 수도 또는 주최국이 결정하는 곳에서 개최되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ASEAN 제반 중요 문제를 토의·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977년부터는 외상뿐만 아니라 토의에 연관되는 다른 각료들도 참가하게 되어 그 명칭이 외상회 위해서는 외국인투자 유치필요성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AFTA는 ASEAN 회원국간의 무역거래에 대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점진적으로 인하 또는 철폐함으로써 ASEAN 역내무역을 자유화하고 외국인에 의한 ASEAN 역내투자를 촉진하여 그를 통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 규모의 경제실현, 경쟁력 향상 및 지속적 경제발전을 도모하고자 설립되었다.{내적요인외적요인정 치ㆍ캄보디아문제의 평화적 해결ㆍ동서냉전체제 종식경 제ㆍ급속한 경제성장ㆍ상호보완성 확립ㆍ세계경제의 블록화 추세ㆍ직접투자 유입저조(2) AFTA의 주요 내용공동유효특혜관세(CEPT: Common Effective Preferential Tariff) 제도와 이를 통한 역내 거래에 대한 관세 인하 및 비관세장벽의 철폐계획, 원산지규정, 그리고 역내 회원국간 협력분야검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CEPT는 농산품 및 서비스, 일부 제조상품을 제외한 역내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공산품 및 농산가공품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특혜관세로서, 각 회원국은 1993년 1월 1일부터 자율적 계획을 통하여 상품 단위별로 역내 관세율을 지속적으로 인하시켜 향후 15년 이내(2008년까지)에 역내거래에 대한 관세율을 0-5% 수준으로 일치시키며, 비관세장벽은 전면 철폐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3) AFTA의 진전사항1994년 9월 태국에서 열린 제26차 경제각료회의에서는 2003년 1월 1일까지 역내 무역자유화를 완료하고 극소수 비가공농산물을 제외한 모든 품목을 인하대상에 포함시킨다는 점진적 CEPT 대상품목화 계획을 골자로 하는 수정관세인하계획을 발표하였고, 1995년 8월 싱가폴에서 개최된 ASEAN 농업장관회의에서는 지금까지 CEPT 목록에서 제외되어 왔던 비가공농산물 1,304개 품목을 1996년 1월 1일부터 관세인하계획에 포함시키기로 합의한 것을 들 수 있다.이러한 AFTA는 역외시장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회원국간 상호 보완성의 미흡 및 이해관계의 상충 등 여러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나, 향후 CEPT의 충실한 이조업부문에 27억 4천만 달러, 광업부문에 4억 달러, 그리고 도소매업에 3억 7천만 달러가 투자되었다. ASEAN 국가 중 제조업에 대한 한국의 해외직접투자는 인도네시아에 11억 달러가 투자되었으며, 다음으로 베트남에 4억 7천만 달러가 투자되었다. 광업의 경우에는 인도네시아에 대부분 투자되었다.3) ASEAN과의 관계 전망아세안은 90년대에 들어서 정치,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한국의 중요한 파트너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먼저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아세안은 미국, 일본, EU와 함께 한국의 중요한 교역상대로서의 위치를 유지해오고 있으며, 해외투자 부문에 있어서도 미국에 이어 제2위 투자대상지역으로서 중요성을 갖고 있다. 또 아세안은 한국의 제1위 해외건설수주지역으로 부상하였다. 동남아의 많은 국가들은 이미 한국과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친숙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지만 국제기구로서 아세안과 한국이 공식관계를 수립한 것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일이다.한국은 중장기적으로 아세안을 적어도 현재 한국이 간주하고 있는 한반도 주변의 4대 강대세력과 동시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주요지역 또는 주요세력으로 새롭게 재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세안이 한국의 4대 교역대상이라든지 2대 투자지역이라는 또는 최대 건설수주 지역이라는 단순한 경제지표상의 중요성 뿐만 아니라, 아세안으로 대표되는 동남아가 한국외교에 있어서 가지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동남아 각국이 개별적으로 볼 때는 분명 하나의 약소국임이 분명하나, 아세안이라는 지역협력체를 통하여 특정한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공조체제를 형성함으로써 때로는 강대국 못지 않은 외교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태지역 협력에 있어서 아세안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아세안 회원국 모두는 정치,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아태지역 협력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강대 세력들은 아니지만 이들은 아세안이라는 지역협력체를 중심으로 단합된 공동의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아태지역 협력에 상징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