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의 정의, 역사, 규정규정된 길이와 너비를 가진 마루(레인:lane) 끝에 세워진 술병 모양의 10개의 핀을 비금속성 공을 굴려서 쓰러뜨리는 실내경기.10개의 핀을 사용하는 텐핀 볼링이 보통이나, 9개의 핀을 사용하는 나인핀 볼링도 있다. 옥외에서 하는 론 볼링과 핀이 양초 모양을 한 캔들핀 볼링 등이 있다.【역사】 볼링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공을 굴려서 물건을 쓰러뜨린다고 하는 인간의 파괴본능에 의한 오락은 옛날부터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영국의 고고학자 F.페트리가 BC 5000년 이상의 것으로 보이는 이집트 고분을 조사했을 때, 어린이의 무덤 속에서 오늘날 볼링과 비슷한 돌로 만든 볼과 핀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지구상에 생겨난 최초의 볼링 용구로 여겨진다. 중세 유럽에서 독일의 성직자들이 '케겔 쓰러뜨리기'라는 종교적 의식을 하고 있었다. 케겔이란 곤봉이라는 뜻으로, 이것을 세워 두고 둥근 물체를 굴려서 쓰러뜨렸다. 케겔은 악마의 상징으로 보았고, 이것을 쓰러뜨린 사람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으로 인정 받았다. 점차 흥미본위로 되어 수도원 내에서는 금지되었으나, 프랑스·영국·네덜란드 등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16세기 유명한 종교개혁가 M.루터는 볼링계(界)에서도 대개혁자였다.9개의 핀을 사용했던 '나인핀스'는 루터가 고안한 것으로서, 그때까지 일정하지 않았던 볼링의 핀은 이때부터 9로 되었고, 전유럽에 유행하였다. 이 무렵 영국에서는 '론 볼스'라는 경기가 있었는데, 이것은 잔디 위에 하나의 공을 놓고 일정한 거리에서 다른 공을 굴려서 가장 가깝게 닿게 한 사람이 이기는 것이었다. 1626년 네덜란드인(人)에 의하여 나인핀스가, 같은 무렵에 론 볼스가 아메리카대륙에 전해졌으나 나인핀스가 인기를 얻어 급속히 퍼졌다. 그러나 이것이 도박에 이용되자 청교도의 반대운동에 부딪쳐 한때 수그러졌으나, 어떤 사람이 '핀이 9개라서 안 된다면 10개로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날의 '텐핀 볼링'이 탄생하였다.1895년 ABC(American전국단체볼링대회·봉황기 전국남녀볼링대회·대한볼링협회장배 전국남녀종별 선수권대회 등이 있다.【경기방법과 종류】 19,152m의 레인 끝에 세워 놓은 10개의 핀을 쓰러뜨리는 경기로, 1프레임에 2번 던질 수 있다(다만 한 번에 10개의 핀을 전부 쓰러뜨렸을 때는 그것으로 끝난다). 10프레임까지 있으며, 최고득점수는 300점 만점이다. 볼링을 하는 사람의 연령과 남녀의 차이에서 하급에 속하는 사람에게 미리 득점을 주는 방법을 핸디캡이라 하고 이에 의하여 애버리지(average)을 같이하여 겨룬다. 실력대로 하는 것을 스크래치(scratch)라고 한다. 전원이 같은 게임을 하여 종합득점에서 승자를 정하는 것을 토너먼트(tournament)라 하고, 이와는 달리 몇 개 팀을 편성하여 몇 주간에 걸쳐서 각 팀이 돌아가면서 전원이 한 번씩 맞붙게 하는 경기를 리그(league)라 한다.【시설과 용구】 레인(alley라고도 한다)은 파울라인에서 피트까지 19,152m, 너비 1,042∼1,066m로 정해져 있다. 목재로서 재질은 캐나다산(産) 단풍나무와 미송을 사용하는데, 최근에는 나무 위에 플라스틱을 코팅한 것과 완전 플라스틱 제품이 개발되었다. 핀 1개의 무게는 1,2961∼1,641kg이다. 볼은 비금속성으로 둘레가 68,577cm 이하, 중량은 7,257kg 이하로 되어 있다. 복장은 경쾌한 차림이 바람직하나, 언더 셔츠만으로는 허용되지 않는다.【기술 및 구질】 일반적으로 3보·4보·5보 스텝을 사용하는데, 보통 4보가 많다. 이것은 표준에 불과하며, 이것을 기본으로 하여 각자의 취향을 살릴 수 있다. 구질은 4가지 방법이 있다.① 스트레이트 볼(straight ball):볼링의 기본이 되는 투구법으로서, 레인에 평행으로 회전하면서 핀을 향해 직진하는 볼이다 던지는 방법은 엄지손가락은 위에, 중지와 약지는 볼의 바로 뒤에 두고, 볼을 내렸을 때 손바닥에 똑바로 핀을 향하도록 한다.② 훅 볼(hook ball):핀에 가까워짐에 따라 왼쪽으로 회전하면서 휘는 볼로서 (Luther, M, 1483-1546)의 종교개혁 이후에 케겔 넘어뜨리기는 옥외에서 성행하게되었는데, 루터 자신도 볼링을 무척 즐겼으며, 현대의 10핀 볼링의 모체가 된 9핀 게임은 루터가 발명한 것이다. 당시 여러 가지 형태로 행해지던 볼링을 루터는 핀 수를 9개로 정하고 다이아몬드(Diamond)형으로 세우도록 하는 등 여러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규칙을 정한 9핀 게임은 여러가지로 인기가 있어서 곧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9핀 게임이 유행함에 따라 경기 장소도 초기에는 맨땅 위에서 볼을 굴리던 것을 바닥에 석탄재를 뿌리기도 하다가 판을 깔아 만든 투구대도 사용하게 되었고 울타리와 지붕도 만들어서 점차 실내경기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미국에서 창안된 10핀 볼링유럽 각지에서 유행한 '나인 핀'게임은 1625년 네덜란드의 이민인이 미국에 들여와 개척민의 오락으로 행하게 되어 미국 전지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1800년대에 들어오면서 9핀 게임이 도박으로 유행하게 되어 청교도인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혀서, 1841년 뉴욕 주를 시초로 코네티컷주에서도 금지령이 내렸으며, 곧 미국 전 연방이 9핀 경기 금지령을 선포함으로서 미국에서 9핀 게임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따라서 9핀 게임을 건전한 오락으로 즐겼던 사람들이 이 금지령이 너무 부당하여 참을 수가 없어서 고심을 하다가, 핀의 수를 하나 더 늘려 정삼각형으로 늘여놓는 10핀 게임을 창안해 내게 되었다. 이 10핀 게임이 9핀 게임의 애호가들로부터 압도적인 열광을 받아, 1841년에는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의 지하실에 최초의 볼링센터가 개설되기에 이르렀다. 이듬해에는 NBA(National Bowling Association)가 설립되어, 레인의 길이와 볼의 크기 등 여러 가지 경기규칙을 통일하였다. 그 후 1890년에는 아메리카 아마추어 볼링연맹이 발족하여, NBA의 업무를 이관하였고, 1895년에 드디어 ABC(America Bowling Congress)가 창립되기에 이른다.볼링 경기 규정 넘어뜨렸을때 스페어로 기록하며 채점표 상단 우측에 /로 표시한다. 스페어 이전 제1투구로 넘어진 핀의 수를 해 당 프레임 상단 좌측에 작게 기록하며 해당 프레임의 득점은 제2투구가 끝날때까 지 기록하지 않는다. 스페어를 득하였을때는 다음 프레임의 제1투구에 넘어진 핀 의 숫자를 10점에 가산한 득점을 스페어를 득한 프레임에서 기재한다. 10번 프레 임에 스페어를 득하였을 때는 동일레인에서 계속해서 제3투구를 해야한다.제 107조 미스어떤 프레임에서든지 제1투구후 스프릿이 아닌 잔여핀을 제2투구로 전부 넘어뜨 리지 못했을때 미스가 되며 제1투구로 득한 핀수는 해당 프레임 상단 좌측에, 제2 투구로 득한 핀수는 상단 우측에 기록하며 해당 프레임의 득점은 즉시 기재한다. 제2투구로 제1투구의 잔여핀을 한개도 넘어뜨리지 못하였을때는 '--'로 표시한다.제 108조 스프릿제1투구로 1번핀이 넘어지고 남은 핀의 배열을 경기지역에서 관찰할때1. 최소한 한개 이상 핀이 넘어져서 남은 핀과 핀 사이가 정규 배열거리 이상의 거리를유지할때 (예; 7-9 또는 3-10)2. 인접한 2개 이상의 핀의 중간핀이 최소한 1개 이상 넘어졌을때 (예; 5-6) 스프 릿이라하며 해당 프레임 좌측 상단에 0으로 표시하며 제1 투구로 넘어진 핀의 수를 제2 투구이전에 0표 내에 기재한다. 제2 투구로 스페어를 득하면 스페어 로 또는 넘어뜨린핀수를 우측 상단에 기재하고 해당 프레임의 득점을 기재한 다.제 109조 경기방식한 경기는 인접한 2레인을 한쌍으로 매 프레임마다 레인을 이동하며 투구하여 10 프레임으로 종료한다. 10프레임에서 스트라이크나 스페어를 득했을 때는 동일레 인에서 투구 완료한다.제 110조 투구순서1명 또는 이상의 선수가 한쌍의 인접레인에서 투구할 수 있다. 2명 이상의 선수 가 한쌍의 인접레인에서 투구할 때는 각자 배정된 순번에 의하여 규정 프레임을 투구 완료해야 한다. 10프레임에서의 제3 투구는 다음 선수가 제1 투구 시행 이 전에 완료해야 한다. 해당 종목의 경기가 시작여 이동시킬 수 없다.2. 유효투구에 의하여 넘어진 핀이 레인위에 누워있거나 가터에 빠져있거나 킥백 에 또는양측면 벽에 기대서서 있는 핀은 득점핀이 되며 이들은 넘어진 핀으로 인정하여 다음투구 이전에 선수의 시계 밖으로 치워야 한다.제114조 무효득점투구 이후 아래사항이 발생하면 투구는 인정하나 득점은 무효가 된다.1. 레인위로 투구된 볼이 핀에 도달하기 전에 핀이 넘어지거나 또는 위치가 이동 되었을경우2. 볼이 뒤 쿠션에 튕기어 핀데크 위로 다시 나와서 핀을 넘어뜨렸을 경우3. 핀이 정비사의 신체 일부에 접하여 넘어지거나 튕겼을 경우4. 서있는 핀이 핀셍팅기에 닿거나 스위퍼가 넘어진 핀을 치우다가 건드리거나 또는기사의 몸에 닿아서 넘어진 핀은 득점핀이 될 수 없으며 이로 인하여 넘어 진 핀은 다음투구이전에 필히 핀데크상 원위치에 원형대로 다시 배열해야 한 다.5. 투구에 의하여 핀데크를 이탈했던 핀이 튕기어 다시 핀데크위에 서게되는 핀은 득점핀이 되지 않는다.6. 투구된 볼이 파울이 되었을 경우 파울볼에 의하여 넘어진 핀수 전부는 득점핀 이 되지않는다.제115조 핀 재배열핀 셍팅 혹은 스페어를 처리하기 위해 투구했을 경우 한개 혹은 많은 핀이 부적 절하게 셍팅되었음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라도 실수가 아니라면 유효투구로 간주 한다. 각각의 선수는 핀배열의 정확성을 판단할 책임이 있다. 핀 배열이 잘못되 었을 경우 시정을 요구할 수 있으며 요구는 받아들여져야 한다. 핀 셍팅기나 핀 배열이 잘못된 상태에서 투구한 후에는 핀 위치를 변경할 수 없다.제116조 핀-바운드핀이 바운드되어 레인위에 설 경우 남아있는 핀으로 간주한다.제117조 데드볼아래와 같은 경우가 발생되면 투구는 데드볼로 선언되며, 데드볼은 투구로 계산되 지 않는다. 데드볼에 의하여 넘어진 핀은 원 상태대로 다시 배열하며 재투구하여 야 한다.1. 선수가 투구즉시 한개 이상의 핀이 모자라는 것을 발견하고 확인하였을 경우2. 투구된 볼이 핀에 도달하기 이전 또는 회전을 하고있는 동안 정비사에 의하여 핀이움직였 정상
영화해설소설가 앙리-삐에르 로세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당시 고다르와 함께 누벨 바그의 선두를 달렸던 트뤼포가 심취했던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다. 제1차대전 전야, 몽파르나스에서 알게 된 오스트리아 청년 쥘과 프랑스 청년 짐은 문학동료로서 유일무이한 친구가 된다. 어느날 두 사람은 까뜨린느라는 아름답고, 신비적인 아가씨와 만나고, 둘다 매료당한다. 쥘은 그녀에게 구혼, 결혼해 조국으로 돌아간다. 전쟁이 끝나고, 라인 강변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을 방문한 짐은 쥘로부터 까뜨린느와 결혼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복잡한 사랑의 심리를 섬세하고 세련된 연출로 극명하게 비쳐낸다. 특히 자유분방하고, 약간 익살스런 모로의 철철넘치는 애교를 포착한 카메라가 멋있다.집을 가출한 소년으로 시작한 트뤼포는 학교를 빼먹고 영화관에 가서 온통 넋을 빼앗겼다. 초등학교 중퇴가 그의 모든 학력이다. 그 후 소년원을 전전하였고, 군대에 가서는 탈영병이 되었다. 그러나 트뤼포가 쓴 영화평은 그를 구원하였다.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이 말성꾸러기 청년을 영화잡지「까이에 뒤 시네마」에 끌어들였다. 곧 프랑스에서 가장 악명높은 영화평론가가 되었다.그리고 1959년 그 자신이 평생의 꿈인 영화감독이 되었다. 그의 나이 29살의 (자서전적인) 데뷔작「말썽꾸러기」로 깐느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고, 같은 세대의 누벨 바그를 일시에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만나는「쥴 앤 짐」은 트뤼포의 세번째 영화이다.이 영화의 원작은 매우 기이한 소설가 앙리 삐에르 로샤의 평생의 단 두권의 소설 중의 한편이다. 그 소설을 트뤼포는 군대 영창에서 읽었으며, (그 자신의 고백에 의하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머리 속으로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려나갔다. 말하자면 그 자신에게 이것은 일종의 감금에 대한 저항의 기억이며, 그 속에서도 영화를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프로젝트이다. 트뤼포에게서「쥴과 짐」은 자기에 관해서 말하면서 한편으로 영화로 읽어내는 세상에 대한 그 자신의 매우 내면적인 시선이다. 비록 여기 그 어떤 성찰이나 개념을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그 대신 그 어디서도 비할 수 없는 섬세한 정서와 감각으로 불어넣어 생생하게 새로운 움직임을 불러 일으킨다.1953년, 73세의 앙리-삐에르 로셰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첫 소설 을 발표했을 때 당시 21살이던 프랑소와 트뤼포는 이 소설에 깊이 매료되어 언젠가 이 소설을 반드시 영화화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961년,트뤼포는 기어코 그 꿈을 이루게 된다. 트 뤼포는 쟝 그뤼오와 공동으로 각색했는데 그들은 1920년에서 1927년까지를 배경으로 한 원작의 다양한 사건들을 짜임새있게 압축하고 여러 등장인물의 성격과 개성을 합쳐서 까트린이라고 하는 한 명의 독특한 여성으로 합병시켰다. 소설에서는 연극관람 후의 논쟁에서 까트린이 세느강에 뛰어들고 난 뒤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트뤼포는 까트린으로 하여금 유유히 헤엄치게 함으로써 남자들을 더욱 강하게 사로잡고 그녀가 주도권을 잡도록 한다. 결국 이 영화의 까트린은 소설 속의 까트린보다도 더욱 매력적이고 독립적인 캐릭터로 새롭게 창조된 셈이다. 또한 예술가들의 시대였던 황금시기에 대한 나찌의 사상탄압을 영화에 담기 위해서 시대 배경을 1912년에서 1933년까지로 늦추기로 했다. 이와 같은 트뤼포의 각색작업은 그가 주장했던, 영화에 대한 작가로서의 감독의 면모를 확연히 보여준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을 배경으로 경쾌하게 시작해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기 이전까지의 20여년간의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연대기적으로 이록하고 있다. 시대배경은 정교한 세트와 당시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빛바랜 사진톤으로 재현되는데 이 영화의 시간적 변화는 분장 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파리 모습과 제 1차 세계대전의 다큐멘터리 필름, 여러 점의 피카소의 작품과 짐이 줄과 까트린느에게 선물하는 피카소의 작품,또 까페에 걸려있는 피카소의 작품전 포스터에서 볼 수 있는 표현기법의 변화를 통해 시간적 변화를 가늠하게 된다.60년대에 가장 새로운 영화를 발명한 사람은 장 뤽 고다르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깊이있는 영화를 만든 사람은 안토니오니와 베르히만, 펠리니일것이다. 가장 정치적인 사람은 그라우베 로차일 것이다. 그 속에서 가장 영화를 사랑한 사람은 프랑소와 트뤼포일 것이다.영화 내용오스트리아인 짐과 프랑스인 쥴은 더할 수 없는 친한 친구이다. 그 둘은 매일 서로 붙어 다닌다. 그러던 어느날 두 사이에 매우 신비한 여자 카트린느(잔느 모로)가 나타난다. 두 사람은 동시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카트린느는 짐과 결혼해서 오스트리아로 떠나간다. 그리고 이차 세계대전이 벌어진다. 전쟁이 끝나자 짐에게서 편지가 온다. 아주 오랜만에 그들 집을 찾아간 쥴은 당황한다. 카트린느는 여전히 쥴을 사랑하고 있으며, 짐은 어느날 갑자기 카트린느가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한다. 그리고 세사람 사이의 이상한 동거생활이 시작된다. 이러한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고, 쥴은 이 둘을 떠나간다. 그리고 다시 얼마후, 영화관에서 세사람은 마주친다. 카트린느는 짐이 보는 앞에서 쥴을 차에 태우고 끊어진 다리로 달려가 동반자살한다. 카트린느는 두사람 모두를 사랑하는데 성공한 셈이다.영화감상마치 보마르쉐나 몰리에르를 연상케하는 이 풍속연애활극 속에서 우리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끊임없이 드라마로 부터 빠져나와 무표정한 목소리로 책을 읽듯이 들려주는 이 영화의 감정이다.이것은 감정의 동화와 이화 사이에서 매우 애매한 거리를 끈질기게 유지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그 이미지에 집중하게 만든다. 바로 그 이미지는 이들의 연애활극을 말 그대로 풍속처럼 따라간다. 바로 이것이 프랑소와 트뤼포의 시도일 것이다. 그는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 순서대로 쫓아가면서 전혀 다른 방법으로 찍는다. 영화의 시작은 마치 무성영화처럼 보여지지만, 곧 30년대 프랑스 포에틱 리얼리즘의 방법으로 바뀐다.그리고 전쟁이 끝나면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전통에로 기꺼이 이끌린다. 그는 영화가 시대에 조응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명제를 정말 순진하게 믿는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이 영화는 그 자신의 동세대의 누벨 바그 영화 전야에서 모든 것을 끝낸다. 트뤼포는 이 영화를 그 자신이 도착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모든 영화에 대한 오마쥬를 바치는 연애의 감정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이 보다 영화 속에서 진심으로 영화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는 영화를 알지 못한다.여주인공 카트린느역 잔느 모로의 폭탄 같은 연기와 1920년대를 재현한 분위기 있는 흑백 영상, 제 1차 세계 대전의 생생한 다큐멘터리 필름과 농축된 삶의 이미지들이 생생하게 녹아있는 나레이션이 어우려져, 몇번을 봐도 어딘가 처음 보는 듯한 장면이 남아있는 풍요로움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