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무역실무‘행복을 찾아서…’ 감상문러시아학과20011503 구대현03.16.금요일어떻게 보면 ‘행복’ 은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도달,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개개인에 따라 무엇을 추구하느냐는 가령 물질적인 성공, 혹은 사회나 개인이 속한 집단에서의 명예처럼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는 삶을 살긴 원치 않을 것이다. 영화속에서 주인공 크리스 가드너는 ‘행복에 대한 추구’에 대해 토마스 제퍼슨의 독립선언문을 인용하면서 ‘행복을 추구한다고 적어놓은건 결국 행복을 성취, 이루려고 아무리 노력해보았자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그가 알았기 때문이죠..’ 라고 말하면서 한 마디로 우리가 행복을 갖고자 하는 맹목적인 집념들은 반대로 우리에게 행복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대상일 뿐더러,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고진감래(苦盡甘來)’ 우리나라 고사성어를 빌어 나름대로 결론지을 수 있다. 지독하게도 가난한 삶 속에서 큰 바램도 아닌 단순히 아들인 크리스토퍼와 아내 린다의 행복을 위해 척박한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크리스에게 몇 달씩 밀린 세금과 크리스토퍼의 학원 양육비, 자동차고지서, 집세등은 그야말로 삶의 희망을 앗아가는 블랙홀과 같다. 힘든 나날을 견디지 못한 린다는 결국 가족을 버리고 뉴욕으로 떠나고 혼자남은 크리스에게 크리스토퍼는 유일한 동반자이자 희망, 더나아가 행복이다. 그런 어려운 하루하루속에서도 크리스는 크리스토퍼에게 절대 꿈을 포기하지 말라며 자신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간다. 영화는 후에 크리스가 사업에서 승승장구 하는 것에 비중을 두기 보다는 크리스와 크리스토퍼 부자가 겪는 시련에 비중을 두며 극을 전개해 간다. 사회의 가장 밑 바닥에서 성공한 투자가로의 그의 변신은 일반 대중들에게 사회적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의 꿈을 좇고자 열심히 한다면 누구든지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너무 많이 접했던 뻔한 스토리로 우리에게 어필하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개인적으로 영화는 스토리의 평범함에 대한 어떤 반감이나 그런 것들을 유발하지 않는다. ‘평평함 속에서의 특별함’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넌 못할 거란 말 귀담아 듣지마…꿈이 있다면 지켜야 되고, 원하는게 있다면 쟁취해야해…’ 누구에게 상처받고 좌절하게 될 지라도 결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그의 이 말은 삶에 대한 크리스의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던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은 부분이었다.그리고 감독이 제시하는 뼈밀도 측정 의료기기는 크리스에겐 생계 유지를 위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의 현실세계에서 여러 제약들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어떻게 보면 여기서 감독은 크리스의 삶을 통해 자신이 얘기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주제를 말하고자 했다. 더 나은 삶으로의 추구과정에서 현실에 대한 딜레마는 영화속에서 주식중개인이 되고자 워터사를 찾아가서 상담을 받던 중 결국 짚시여인을 쫓아가는 즉 다시말해 생계유지라는 현실속 제약을 결국은 떨쳐버리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딜레마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Find happiness… ‘고난속에서도 희망을 가진 사람은 행복의 주인공이 되고, 고난을 굴복하고 희망을 품지 못하는 사람은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이 말은 결국 행복에 대한 품은 희망을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고난은 어쩔 수 없는 자연 본질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역설함으로써 결코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 무역실무(영화 ‘아일랜드’ 감상문)20011503 구대현04.09. 월요일처음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복제 인간'을 내용으로 한다는 얘길 듣고 어떤 영화일까 잔뜩 기대에 부풀어서 영화를 감상했던 기억이 난다. 우선 '아일랜드'라는 단어 자체가 상당히 기대감과 신비로움을 안겨주는 단어인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들 역시 '아일랜드'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꿈과 희망을 품고 그 곳으로 가길 간절히 바랬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의 '아일랜드'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뜻의 의미인 아일랜드를 말해주는 듯 했다. 영화 속 아일랜드의 뜻은 결국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들은 그런 본래의 의미도 모른 채 단지 하나의 이상향, 천국으로서의 '아일랜드'를 꿈꾼다. 인간의 그릇된 욕망에서 시작해 그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 부름을 받을 때까지(죽음에 이를 때까지) 복제 인간들은 일방적인 사육을 당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런 사실조차 모른 채 자신들이 하나의 인격체인양 알고 살아가고 있다. 생명이란 것도 결국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품이나 마찬가지였다. 과학의 발달이 우리 인간들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준 것은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이 인간들에게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가져다 줄지는 몰라도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지만 못한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인간다운 삶을 앗아가는 것만 같아서 영화를 보고 나서 한편으론 서글퍼졌다. 진시황이 영원한 삶에 대한 욕망(불멸) 때문에 백방으로 불로초를 찾았다는 것처럼 오래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는 시대를 불문하고 끝이 없는 것 같다.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었던 진시황이었지만 정작 그 역시도 죽음 앞에서는 한 없이 작디 작은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상상이라는 허구의 산물을 통해 창작되었던 영화의 내용이었지만 그런 인간의 욕구를 통한 끈임 없는 과학의 발전은 상상을 현실로 충분히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영화 속 내용들은 단지 하나의 상상이라기 보다 '아... 언젠가는 저런 날이 오겠지..'하는 생각을 나에게 주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긍정적인 측면의 핑크 빛 미래로 다가오기 보다는 인간복제가 가져올 수 그늘진 측면, 두려움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아무리 아등바등 노력한다 해도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이 인간을 만드는 창조의 능력을 설사 보여준다 할지라도 무에서 유를 만드는 신이 아닌 이상 어찌 그를 대신할 수 있겠나... 미래사회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끝없이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영화는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만약… 지금 내 앞에 나와 똑 같은 유전자를 가진 또 다른 내가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아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찰나도 없을 것 같다. 복제 인간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하고 ‘도플갱어’(독일어로 살아있는 사람의 유령이라는 뜻) 쯤으로 생각할 것 같다. 결국 인간사 최대의 화두는 수많은 영화,소설,음악에서 그려지는 ‘사랑’이 아니라 ‘영원한 생’이 아닐까 싶다.